제4장 결전 '워스트원'VS'소드 이터'
아야세와의 시합이 있었던 날의 심야.
잇키 일행이 평소 단련을 하는 숲의 광장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춤추었다.
나무들 사이로 내리비치는 어렴풋한 달빛 아래에서 인영은 희미하게 빛나는 칼을 휘둘렀다.
바람 없는 밤.
한밤중의 고요함 속에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림자가 추는 것은 춤처럼 아름다운 연무였다.
그러나 그 움직임이 갑자기 멈추었다.
"스텔라야?"
그림자…… 쿠로가네 잇키는 땀을 닦으면서 광장 입구를 향해 물었다.
그곳에서 사람의 기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부름을 받고 입구에 길게 드리운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예상대로 어두운 밤에 있어도 그 윤기가 손상되지 않는 파이어 블론드의 소녀, 스텔라 버밀리온이었다.
스텔라는 조금 질렸다는 듯이 미간을 찡그리며 쓴소리를 했다.
"아직도 하는 거야? 적당히 해두지 않으면, 내일 싸움에 영향이 가잖아."
스텔라가 말하는 내일 싸움이란 쿠라우도와의 결투였다.
잇키와 스텔라는 아야세의 시합 후, 아야세에게서 2년 전에 일어났던 일을 모두 들었다.
그 처음부터 전말까지, 모두.
'라스트 사무라이' 아야츠지 카이토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그리고 모든 사실을 알고서 잇키는 내일 쿠라우도에게 도장을 건 결투를 신청하겠다고 아야세에게 굳게 약속했던 것이었다.
내일은…… 오늘 치른 아야세와의 시합 이상으로 고된 싸움이 기다릴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빨리 몸을 쉬는 편이 좋았다.
"……쇼크였어?"
"뭐, 그렇지. ……나에게 카이토 씨는 어떤 의미로 동경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쿠로가네가의 어른들이 누구 한 사람도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잇키에게 카이토나 다른 저명한 검술가는 스승과도 같았다.
그들의 시합을, 그들의 검기를 필사적으로 훔치고 해석하고 반복했다.
그것이 지금의 잇키의 토대가 되었기에.
그렇기에 잇키로서는 아야세가 말했던 과거의 단편이 충격적이었다.
병들어 쇠약해져 있었다고는 해도 마력을 쓰지 않은 결투…….
말하자면 기사가 아니라 검사의 영역에서, 그 카이토가 그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무너졌을 줄이야.
"역시. 만만치 않아, 쿠라시키는."
"혹시 예민해진 거야?"
"……상대가 상대니까 말이지."
돈로 학원의 에이스.
3학년 쿠라시키 쿠라우도.
작년 칠성검무제 베스트 8.
이 정도의 클래스쯤 되면 어느 정도의 정보는 찾으면 금방 나왔다.
쿠라우도의 디바이스 '오로치마루'는 자유자재로 변형하고 신축해서 모든 간격을 침식한다.
먼 거리에 있는 적에게는 탄환 같은 속도로 쭉 뻗고, 그 공격을 피해도 링 전체를 쓸어버리는 베어내기로 쓰러뜨린다.
간격으로 뛰어드는 적에게는 '오로치마루'를 한손검 정도로 축소해 연타의 회전으로 압도한다.
어떤 간격에서도 최선의 사정거리를 선택할 수 있는 쿠라우도의 노블 아츠 '사골인'은 칼싸움에서도 일절 사각이 없었다.
화려함은 없지만, 단순하기에 지극히 공격적이고 성가신 능력이었다.
특히 칼싸움을 주로 하는 잇키 같은 검사에게는 끊임없이 상대의 사정거리가 변화하는 것은 상당히 괴로웠다.
그 때문에 '소드 이터'.
그 별명 그대로 쿠라우도의 능력은 검사에게는 천적이었다.
카이토가 무너진 이상, 그 이외에도 무언가 쿠라우도에게는 비밀이 있을 터인데──.
"그렇지만, 그건 뭐 알고 있었던 일이야."
레스토랑에서 그 짐승의 기운이라고조차 표현할 수 있는 야만스러운 오라를 보았을 때부터.
그렇지만 잇키가 석연치 않은 것은……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저기, 스텔라. 스텔라는 아야츠지 선배의 말을 듣고 말이지, 어땠어?"
"성가신 광견에게 찍혔구나 싶어서 선배에게는 동정해."
"그뿐이야? …………나는."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잇키의 말을 덮으며 스텔라는 중얼거렸다.
"아마도 나 역시 같은 생각을 나도 했을 테니까. 그러니까 말했잖아. 선배에게는이라고."
"──그런가. ……그렇구나. 스텔라라면 그럴 거라 생각했어."
잇키는 기쁘다는 듯이 싱글벙글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기뻤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진상이 어땠는지는 잇키에게 관계없는 일이잖아. 잇키가 할 일은 변함없어."
"아아, 그래. 그렇고말고."
고개를 끄덕이며 잇키는 다시 어둠 속에서 검을 내리쳤다.
……몸 상태는 좋았다.
기력도 충분했다.
남은 것은 내일의 싸움을 기다리는 일뿐.
내일이 되면 모든 것이 명백해지리라.
──아야세가 깨닫지 못했던 2년 전의 진실이.
◆
다음 날 저녁 시간대.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서 잇키와 스텔라는 아야세의 안내를 받아 구 아야츠지 검도장으로 향했다.
"반갑네. 이 길도."
조금 낡은 집들이 늘어선 도로를 걸으면서 잇키는 중얼거렸다.
"그런가. 쿠로가네는 분명 한 번 우리 도장을 격파하러 왔다고 했지."
"응. 그런 거 안 한다는 말을 듣고 쫓겨나긴 했지만 말이야."
"잇키의 중학생 시절 이야기구나. 그런 식으로 여러 군데 도장을 발견하고는 찾아다녔다고."
"내가 한 일이지만 철이 없었지. 시간을 내서는 일본 전국에 있는 도장을 찾아다니며 시합을 신청했어."
"굉장한 행동력이구나, 쿠로가네는. ……그렇지만 위험하지 않았어? 중학생이 그런 일을 하면, 건방지다! 그렇게 말하며 흠씬 두드려 맞을 거 같은데."
"물론 그런 적도 있었어. 제자들이 총출동해서 반죽음이 될 때까지 멍석말이를 하는 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이쪽은 도장 격파라는 무례한 짓을 하는 거니까. 도장 격파는 도장 측에 무슨 짓을 당해도 불만 따위를 토로하면 안 돼. 그게 철칙이야."
그랬다.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은 알았고, 실제로 죽을 뻔했던 횟수도 한 손으로 꼽기에는 부족했다.
그렇지만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그 시절에는 어쨌거나 강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주변 어른들은 누구 한 사람 잇키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기에, 어쨌거나 무엇이든지 흡수하고 경험하고 체험해서 그 모든 것에서 힘을 얻으려고 필사적이었다.
'뭐, 그래도 도장 격파를 거부하는 곳의 문하생을 습격해 억지로 시합을 강요하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옛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세 사람은 도로를 벗어나 잡목림이 눈에 띠는 한산한 공간으로 나왔다.
세 사람의 눈앞에는 덩그러니 긴 담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가옥이 서 있었다.
"여기가…… 예전 내 본가였던 곳이야."
그 건물은──이미 폐옥이라고 해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허름해진 무가 저택이었다.
기와는 벗겨지고, 문을 지지하는 나무 기둥은 거무스름해져 썩어 문드러졌다.
저택 주변에는 담배꽁초, 빈 캔이나 빵 봉지, 과자 봉지 등이 어지럽게 널렸고, 하얗게 칠한 벽면은 형형색색의 스프레이로 마구 그려진 품위 없는 낙서로 더러워졌다.
"센스 없는 낙서. 이런 거, 종종 깜짝 놀랄 만큼 잘 그리는 사람이 있는데 여기는 영 꽝이네."
"……어이없어 할 부분은 거기가 아닌 거 같은데 말이야. 그렇지만 지독한 상태야."
안내해준 아야세는 분한 마음을 억누르려는 듯이 애처로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의 추억이 깃든 장소가 이렇게까지 유린되면 마음이 아픈 것은 당연하리라.
'빨리, 되찾아주어야지.'
잇키는 다시금 그렇게 강하게 결심하고 손에 든 길쭉한 주머니에서 목검을 꺼내들었다.
"쿠로가네. 그걸로…… 어떻게 도장을 되찾을 거야?"
"그야 물론, 정면에서 똑바로 쳐들어가서 도장 격파를 할 수밖에 없지."
2년 전의 이야기를 듣고 잇키가 떠올린 생각은, 쿠라우도의 방식이 의외로 올곧다는 사실이었다.
도장 격파를 승낙 받기 위해 문하생을 습격한 일은 확실히 범죄 행위였지만, 모든 결판은 합의 하에 행해진 결투 중에서 냈다.
즉 선도 악도, 정도 사도, 모든 것은 그 싸움의 승패에 맡겼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그 결과에 제삼자가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는 행동은 멋쩍었다.
그것은 카이토에 대한 모욕이기도 했다.
"잇키답네."
"알겠어. …………그렇지만 쿠로가네. 조심해. 그 남자……'소드 이터'는 정말로 강해. 아빠는 확실히 쇠약해졌지만, 그 시점에서도 나나 다른 문하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했어. 그렇지만 이길 수 없었어……."
"알아. 그렇지 않아도 상대는 돈로의 에이스야. 나 정도가 방심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야."
잇키는 깊게 한 번 숨을 들이키더니,
"그럼, 간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구 아야츠지 도장의 문으로 향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무너져 내릴 정도로 썩어서 기울어진 문 앞에는 다섯 명 정도의 질 나쁜 학생이 앉아서 상스러운 목소리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 이전에 레스토랑에서 보았던 스킨헤드가 있었다.
틀림없이 쿠라우도의 동료였다.
"얘기하는 중에 미안한데, 잠시 실례할게."
"뭐야, 이 자식 어엉?"
'어째서 이쪽 방면 인종은 무슨 일이든 위협부터 하는 걸까.'
"……아, 너, 전에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있었던 얼간이잖아!"
아무래도 스킨헤드 역시 잇키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곧바로 이쪽을 알아보았다.
"어? 그거 혹시 말이지, 요전번 이야기 했던 그 녀석?"
"그래, 그래. 쿠라우도에게 얻어맞고 침을 뒤집어써도 덜덜 떨기만 할 뿐 불만 한마디 말 못했던 겁쟁이야!"
"하하하! 확실히 그런 허약한 낯짝을 하고 있구마안. 하군의 교복을 입고 있는데 정말로 블레이저냐, 이 녀석."
"응? 그보다 뒤에 있는 건 아야세랑………… 우와! 누구야, 저쪽 빨간 머리 여자! 엄청 미인인데!"
뭉쳐 있던 소년들 중 한 명이 스텔라의 존재를 알아채고 히쭉히쭉 품위 없는 웃음을 띠우며 그녀에게 접근했다.
한편 스텔라는 그 소년을 마치 더러운 벌레라도 보는 눈으로 훑어보았다.
화드득 하고 작은 불똥이 하늘에 흩날렸다.
'아, 이거 곤란해.'
타버린 시체가 한 구 나오기 전에 잇키는 손을 뻗어 스텔라에게 다가가려고 했던 남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것은 친절한 마음에서 한 행동이었지만, 주위의 분위기가 갑자기 술렁이며 험악하게 바뀌었다.
"이봐, 뭐냐, 이 손은."
"도와준 건데. 뭐, 어쨌거나 먼저 내 이야기를 들어줘. 쿠라시키에게 결투를 신청하러 왔어. 쿠라시키가 있는 곳까지 안내해주겠어?"
섣불리 스텔라의 역린을 건드려서 성가셔지기 전에 잇키는 용건을 솔직하게 전했다.
그 말에 소년들은 일순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하하핫하핫하핫하하하!!!!"""
입을 크게 벌리고 껄껄 웃기 시작했다.
"이거 봐, 진심이냐! 결투라고?! 너 같은 겁쟁이 녀석이? 이건 걸작이구나!"
"애당초 네놈, 결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아냐아?"
"히히히! 아아, 배가 아파아."
"크크크……. 어이, 형씨. 공교롭게도 쿠라우도는 네놈 같은 얼간이 피라미를 상대하는 취미는 없다고. 그러니 내가 대신 싸워주지. 나를 이기면 쿠라우도가 있는 곳까지 데려가 줄 수도 있다고오?"
"휴우, 파이팅, 파이팅, 기대되네에."
그렇게 말하고 나서 소년들 중 한 명이 군용 나이프형 디바이스를 구현시켜 잇키의 볼을 칼날의 넓은 면으로 툭툭 쳤다.
그 도발을 받고서 잇키는,
'아아, 이 사람들도 돈로의 학생인가.'
──그것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며 볼을 때리는 나이프를 든 소년의 손목을 콱 움켜쥐고는,
"이야기가 빨라서 다행이야."
빙긋, 잔혹할 만큼 멋진 미소를 띠웠다.
◆
"그래서 말이야아, 그 갈색 머리 녀석이 너무나 끈덕져서 바지를 벗기고서 대로에 던져 넣어 주었다고."
"갸하하. 진짜냐!"
"싫다아! 캬하하!"
쓰레기가 여기저기 흩어진 구 아야츠지 검도장의 바닥에 쭈그려 앉아 낄낄거리며 잡담을 하는 소년들.
화제는 항상 대개 같았다.
누구누구를 때렸다.
누구누구를 속였다.
누구누구랑 했다.
그런 화제에 쿠라우도는 딱히 흥미가 없어서, 홀로 동료들의 무리에서 떨어져서 들여놓은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잘도 저렇게 매일매일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질리지 않는군.'
자신을 따르는 마음 편한 녀석들이지만 이런 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도 하군에서 시작한 것처럼 선발전을 열어주면 좋겠네.'
그렇게 하면 자극적인 매일을 보낼 수 있을 터인데.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를 토해내며 구멍 뚫린 천장으로 보이는 저녁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았다.
돌이켜 보니, 이 도장을 빼앗은 지 벌써 2년이 되었다.
'이제 슬슬 팔아버릴까………….'
멍하니 담배연기로 피어오르는 생각을 굴리던 때였다.
"이봐, 쿠라우도."
동료 중 한 명이 무슨 일인지 파래진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왜 그래. 배라도 아프냐."
"……요전번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쿠라우도가 집적댔던 녀석, 기억해? 그 왜, 아야세랑 함께 있던 두 사람 말이야."
"아아, 그게 왜."
"나, 녀석들의 얼굴을 어디선가 본 기분이 들었는데…… 어제 간신히 떠올랐어."
그렇게 말하며 동료는 쿠라우도에게 돈로 학원의 전자 학생 수첩을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A랭크 기사 '홍련의 황녀' 모의전에서 F랭크 기사 '워스트원'에게 설마 하던 패배'라고 제목 붙은 인터넷 게시판 정리 기사와 참고 동영상이 표시되어 있었다.
참고 동영상은 말할 것도 없이 잇키와 스텔라의 시합 모의전을 찍은 동영상이었다.
"오늘, 하군에 다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 녀석, 얼마 전에 그 '러너즈 하이'를 쓰러뜨렸다는 모양이더라고! 그것도 일부에서는 '어나더원'이라는 거창한 별명으로 불리는 모양이야. 있잖아……, 혹시 우리들은, 터무니없는 상대를 건드린 거……."
자신들이 걸게 욕했던 상대가 누구였는지를 알고서 동료는 파래진 얼굴로 식은땀을 흘렸다.
그러나 한편에서 쿠라우도는,
"…………하핫."
그 동영상을 보고 겁먹기는커녕 송곳니를 드러내며 사나운 웃음을 띠웠다.
"과연 그렇군. 아야세 빼고는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쿠라우도는 급격히 몸의 온도가 올라갔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안에서 뿜어져나오는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재미있군.'
칠성검무제까지 미루려고 생각했지만, 이제 차라리 지금부터 하군으로 찾아가볼까.
그렇지 않으면 아야세를 이용해 끌어내볼까.
그런 사악한 생각을 쿠라우도가 굴리던 순간,
"…………아?"
쿠라우도는 땅을 밟으며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꽤 깨끗한 소리였다.
소리가 깨끗하다는 말은 자세가 바르다는 뜻.
쿠라우도의 동료 중에 이렇게 좋은 자세로 걷는 사람은 없었다.
"하핫. 이거 보라고,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데."
"어? 쿠라우도, 무슨 소리를 하는……."
순간, 발소리는 도장 입구 앞에서 멈추더니 문이 기세 좋게 열렸다.
나타난 손님은 모두 쿠라우도가 예상했던 대로의 면면.
이전에 레스토랑에서 만났던 쿠로가네 잇키, 스텔라 버밀리온, 아야츠지 아야세 세 사람이었다.
"실례할게."
"우와, 도장 안도 더러워. 너희들 잘도 이런 쓰레기장 같은 곳에 눌러붙어 있구나."
"뭐, 뭐냐, 너희들!"
"이 녀석, 얼마 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갑작스러운 방문자에 허둥대는 동료들을 무시하고는, 쿠라우도는 소파 위에 털썩 앉은 채 목검과 편의점 비닐봉투를 손에 들고 도장에 들어온 잇키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우연이구만. 지금 막 네놈이 있는 곳에 가려고 생각한 참이었지."
"그런가. 엇갈리지 않아서 다행이야."
잇키의 대답에서는 적지에 뛰어들어 풍기는 위축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꽤 간이 컸다.
"그래서, 뭐 하러 왔냐. 얼간이."
"이 상황을 보고 그걸 모를 정도로 둔한 남자는 아닐 거라 생각하는데. ……도우미야. 아야츠지 선배를 대신해서 이 도장을 되찾으러 왔어."
"하핫!!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시시해애. 거기 있는 여자가 뭘 불어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도장은 정식 결투로 얻은 전리품이다. 검객이라면 이 의미는 알겠지?"
"물론. ──그래서 그냥 돌려달라고는 안 해."
그렇게 고하며 천천히 쿠라시키가 앉은 소파에 다가와서는,
"쿠라시키, 너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목검의 날 끝을 쿠라시키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도장 격파인가."
"쿠라시키와 같은 방법이야. 설마 도망치지는 않겠지."
'호오, 도발까지 해오는 건가!'
얼마 전에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대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었다.
쿠라우도는 코앞에 들이대진 목검을 부여잡더니,
"하핫. 좋아, 받아주지."
자신의 악력으로 목검을 으스러뜨리고서 잇키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다만 내가 이곳을 빼앗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네놈 혼자서 여기에 있는 바보 녀석들 서른 명 전원을 상대하도록 해. 일단 그것부터다."
"상관없어. 같이 온 두 사람은 견학을 하러 온 것뿐이고, 도장 격파는 도장주가 제시하는 규칙에 따르는 게 예의니까 말이지."
"도전자의 관례는 아는 모양이구만. 좋아, 기다려라. 지금 전원 불러주지."
쿠라우도는 밖에 모여 있는 동료를 불러들이려고 학생 수첩의 전화기능을 사용했다.
그러나,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뭐?"
"그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해서, 여기에 오기 전에 전원 처리해두었어."
그렇게 말하며 잇키는 쿠라우도의 앞에서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거꾸로 뒤집었다.
와르르 소리를 내며 도장 바닥에 흩어진 물건은 몇 십 개나 되는 돈로 학원의 학생 수첩.
그중 하나가 착신음을 울렸다.
그것은 바로 쿠라우도가 지금 걸었던 전화의 착신이었다.
"남은 건 여기 있는 일곱 명뿐이야."
전리품을 보여주자 쿠라우도는 위압하는 듯이 느긋한 미소를 띠웠다.
"이, 이 녀석! 깔보는 행동을 하다니!"
"쳐 죽여주마아아!!"
자신들의 동료가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서 도장에 있던 쿠라우도의 동료들은 각각 디바이스를 구현시켰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쿠라우도는 흘끗 보더니,
"네놈들은 물러서 있어."
"쿠라우도?"
"거, 거거겁먹을 거 없어! 다 같이 덤비자!"
"물러서라. ────방해된다."
"힉!"
동료들이 숨이 막혀 창백해졌다.
쿠라우도의 눈동자에 깃든 위험한 빛이 그들을 위압했던 것이었다.
'과연, 이 녀석들이 뭉텅이로 덤벼들어도 놀잇거리조차 안 돼.'
그렇다면 시간 낭비였다.
"규칙 변경이다. 승부는 나와 네놈의 '진검 승부'. 죽는 쪽이 지는 거야."
그렇게 고하며 쿠라우도는 자신의 디바이스인 백골을 깎아 내어 만든 것 같은 야태도 '오로치마루'를 구현시켰다.
기본적으로 학생 기사는 학교 밖에서의 능력 사용이 허가되지 않는다.
그러나 몇 가지 예외는 존재했다.
무언가 사건에 휘말렸을 때.
그리고 허가를 받은 사설도장에서 도장주가 이것을 허가했을 경우였다.
이번 케이스는 후자에 해당했다.
따라서 잇키도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승부를 받아들여줘서 고마워, '소드 이터'."
그렇게 답하며 잇키도 응하듯이 부서진 목검 대신 '음철'을 구현시킨 뒤 자세를 잡았다.
순간, 마주한 쿠라우도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감각을 느꼈다.
──과연.
1급품이었다.
이런 감각은 '라스트 사무라이' 이래였다.
'역시 검객은 좋아. 능력에 얽매인 바보와는 마주하는 긴장감이 하늘과 땅 차이야.'
찌르는 시선.
희미하게 빛나는 칼끝.
모든 것이 이쪽의 마음속을 파고들어서는 뒤흔들었다.
참을 수 없이 끓어올랐다.
이런 감각은 칠성검무제에서도 쉽사리 맛볼 수 없었다.
그 흥분에 쿠라우도는 으르렁거리듯이 목을 울리더니,
"그럼──간다!!"
피가 흥분한 상태로 잇키를 베려고 달려들었다.
◆
첫수, 거리를 일단 줄이려 달려든 사람은 쿠라우도였다.
마력을 실은 다리로 지면을 박차 바닥을 부수며, 폭발하는 기세로 잇키에게 밀려들었다.
"하핫!"
강한 팔 힘을 실은 일격.
바람을 울리며 오른손 하나로 톱날 야태도를 휘둘렸다.
빈틈투성이, 결점투성이.
실로 조잡한 초심자 검술.
막기는 쉬웠다.
그러나──.
야태도의 기본적인 취급 방식도 모르는, 한 손의 완력만으로 휘두르는 일격.
그것은 벤다기보다도 후려친다는 표현이 들어맞으리라.
그러나──.
'난폭한 동작인데 휘두르기가 날카로워!'
한 수, 두 수, 세 수──.
연달아 거친 공격을 받은 '음철'이 삐걱거렸다.
지탱하는 잇키의 양팔이 비명을 지르며 충격이 복사뼈까지 관통했다.
이 무슨 엄청난 힘인가.
마치 짐승 같았다.
야성 그대로 휘두르는 대검은 그야말로 짐승의 발톱.
이론도 이념도 없이, 그저 힘으로 사람을 억누르는 노골적인 강인함!
'그래도 그런 '손동작'은 몸의 축이 흔들려서 되돌아오는 게 늦어져!'
세 번 정도 대검의 거친 공격을 받고 나서, 잇키는 사뿐한 걸음으로 몸을 뒤로 옮겨 휘두르는 쿠라우도의 가로 일격을 피했다.
대포가 스치는 것만 같은 검압이 휭 코끝을 어루만졌다.
한 손의 완력만으로 대검을 휘둘렸기에 쿠라우도의 가슴께가 크게 열렸다.
'여기다──!'
코끝을 검압이 스칠 정도로 슬아슬하게 회피한 이유는, 치는 동작 끝에 카운터를 넣기 위해.
잇키는 붙잡은 기회에 망설이지 않고 뛰어들어 몸통에 가로 베기를 넣었다.
그러나?──그 과감한 판단을 쿠라우도의 벌어진 가슴께에서 엿보이는 해골이 비웃었다.
"윽?!"
잇키의 손에 되돌아 온 충격은 강철의 감각.
백골의 검신이 잇키가 완벽한 타이밍에 펼친 카운터를 날을 세워서 막아낸 것이었다.
"하핫, 안타깝군."
혀를 내밀며 코웃음 치는 짐승.
확실히 안타까웠다.
타이밍은 완벽했다.
그 타이밍에 비틀거린 오른팔을 되돌리기란 인간의 반사 신경으로는 불가능했다.
이쪽의 카운터를 예측하고 미리 방어하기로 결정하고서 치지 않았다면.
'……아니, 그렇지 않으면 설마.'
문득 잇키의 뇌리에 또 하나의 매우 성가신 가능성이 떠올랐다.
"핫, 으으하────!!"
그러나 깊게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쿠라우도는 받아낸 '음철'째로 한 손의 완력만을 써서 잇키의 몸을 뒤로 날려버렸다.
떨구어져 나가 간격이 검의 사정거리에서 창의 사정거리로 바뀌었다.
그것은 쌍방의 검이 닿지 않는 위치.
한 번 거리를 두고 태세를 정비하는 것인가.
──아니, 틀렸다.
"쫓아가 없애라, '사골인'!"
그 거리는 여전히 '소드 이터'의 사정권!
쿠라우도의 '오로치마루'는 꿈틀꿈틀 검신을 뱀처럼 비비꼬며, 잇키를 꿰뚫으려고 쫓아와 늘어났다.
"으으아!"
잇키는 반사적으로 뻗어온 검신을 '음철'로 튕겨내서 방어했지만,
"하핫! 아직 멀었어!"
쿠라우도의 베기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쿠라우도는 늘어난 검신을 곧바로 칼날로 되돌려, 휘어지는 검신을 채찍처럼 휘둘러 먼 간격에 있는 잇키를 잘게 썰었다.
지금 두 사람의 간격은 '소드 이터'의 공격만이 일방적으로 닿는 거리였다.
잇키는 먼 간격에서 펼치는 베기 공격 앞에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일격 일격에 으드득으드득 소리를 내며 톱날의 검신이 받아치는 검은 칼날을 깎여서 불꽃이 튀었다.
먼 간격에서 이어지는 공격에 잇키의 양팔이 삐걱거렸다.
"잘한다아아아! 없애버려, 쿠라우도오오오오오오!"
"너덜너덜 걸레로 만들어버려!!"
우세에 열광하는 쿠라우도 쪽 관중.
한편 방어전을 강요받는 잇키 쪽 응원객인 아야세는 이 전개에 표정이 파래졌다.
"이대로라면 방어를 떨쳐버릴 거야! 쿠로가네, 일단 거리를 둬!"
"안 돼. 거리를 둬봤자 상대편에서 '오로치마루'를 그만큼 늘여오면 의미가 없어. 오히려 잇키의 간격이 멀어져서 반대로 불리해질 뿐이야."
"큭, 상황이 악화된다는 거야?"
"응. 그렇지만…… 이 정도 일로 얌전해질 남자가 아니야. 잇키는!"
강하게 단언하는 '홍련의 황녀'의 말은 적중했다.
당연했다.
'워스트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녀였기에.
부득이하게 먼 간격에서 버티는 방어전을 하던 잇키가 앞으로 기울어진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그대로 다리 힘으로 온몸을 앞으로 처넣었다.
당연하게 쿠라우도 역시 쉽사리 접근을 허용하지는 않았다.
이 간격이라면 쿠라우도의 원사이드 게임이었다.
잇키가 어찌할 재간이 없었다.
이 거리를 못 박기 위해 맞받아 치는 칼을 휘둘렸다.
허공을 가르며 잇키에게 덮쳐드는 칼은 뱀.
그 뱀은 잇키의 두개골을 가르려고 이빨을 드러냈다.
그러나 잇키는──그 일격을 더욱 깊게 앞으로 기울이며 잽싸게 빠져나갔다.
마치 기어가는 것만 같은 대시.
잇키의 잘 단련된 몸이기에 가능한 초인기술이었다.
'워스트원'은 낮은 자세로 달려서 검을 빠져나가더니 쓰러뜨려야 할 적을 목표로 달렸다.
"해냈다…………!"
훌륭한 회피에 시합을 지켜보던 아야세가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하핫."
일격을 피했다고 해서 접근을 허용할 정도로 '소드 이터'는 무르지 않았다!
순간 표적을 잃어버린 '오로치마루'의 칼끝이 스스로 의지를 가진 뱀의 머리처럼, 자신을 재빠르게 빠져나간 잇키의 등을 노리며 목을 쳐들고 따라왔다.
"저, 저 검은 늘어나기만 하는 게 아닌가?!"
아야세가 비명을 질렀다.
그랬다, '오로치마루'의 진면목은 '검신의 신축'이 아니었다.
주인의 의지대로 '검신을 움직이는'것이었다.
마치 검 그 자체가 살아 있는 것처럼 '꾸무럭' 몸을 뒤집으며 다시 잇키를 덮쳐왔다.
잇키는 칼을 잽싸게 빠져나갔다고 확신해 '오로치마루'의 칼끝에 등을 보이고 있었다.
따라서 꼬챙이에 꿰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아아. 쿠라시키라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
그저 한 가지, 그 추적을 읽어낸 경우를 제외하고는.
"뭐!"
잇키는 최저한의 사이드 스텝으로 등 뒤에서 잇키를 찔러 죽이려했던 칼끝을 피했다.
그랬다, 잇키는 그저 방어전만을 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런 얌전한 인간이 아니었다.
이 남자의 방어전에는 반드시 능글능글한 의도가 있었다.
잇키는 쿠라우도의 연속 공격을 간신히 막으면서, 쿠라우도의 행동 방식과 조합 양식을 훔치고는 그를 토대로 쿠라시키 쿠라우도라는 남자의 밑바탕을 파헤친 것이었다.
'퍼펙트 비전(완전 장악)'.
보고 인식할 수조차 없는 '사냥꾼'을 붙잡았던 '워스트원' 의 조마경은, 발톱을 휘두르는 짐승의 사고를 읽어내어 반격의 기회를 끌어냈다.
쿠라우도의 기습을 읽어내고서 펼친 카운터는 일본도를 이용한 가장 빠른 공격수단──찌르기.
교복에서 엿보는 해골의 미간을 꿰뚫는 가장 빠른 일격.
기습을 허탕 친 쿠라우도는 완전히 빈틈투성이.
검을 되돌리기는 물론이거니와 이 상황에서 회피운동으로 옮길 수도 없으리라.
그것은 인간에게 가능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따라서 필중.
검의 칼끝은 쿠라우도의 가슴을 찔러 꿰뚫는다!
그럴 터였던 찰나──표적인 해골이 잇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헛?!'
어찌된 일인가.
이 타이밍에 어째서 표적을 놓친 건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로 안개처럼 쿠라우도는 사라져 버린 것일까.
아니, 그것은 아니었다.
잇키의 심장이 욱신거릴 만큼 빠르게 치는 경종을 울렸다.
위험, 위험, 위험, 위험────!!
'아래인가!!'
육감의 번뜩임이 잇키에게 적의 위치를 가리켰다.
쿠라우도는 '음철'이 가슴을 꿰뚫는 찰나에 상체를 지면과 병행이 될 정도로 힘껏 눕혀 내지른 칼을 피한 것이었다.
그리고 쿠라우도는 허공을 찌른 '음철'을 바로 아래에서 비웃듯이 올려다보며,
"하────하앗!!"
상체를 누인 채 칼을 잇키에게 휘둘렀다.
"욱!"
간발의 차이로 목을 치러 온 칼을 '음철'로 받았다.
아슬아슬한 방어였던 탓에 충격을 제대로 분산시키지 못해 어깨가 빠질 뻔하자 잇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그러나 잇키의 표정이 험악해진 이유는 불안정한 자세 때문도, 약해지지 않는 그 공격력 때문도 아니었다.
'이 남자…… 역시…….'
동요하는 잇키에게 검을 쳐내는 기세로 몸을 일으킨 쿠라우도는 세 번 마구잡이 공격을 걸어왔다.
잇키의 호흡은 아까 전에 승부를 걸었던 찌르기가 빗나간 탓에 흐트러졌다.
이 상황에서 무리는 금물이었다.
방어에 주력한다.
그렇게 자세를 잡고 내리치는 야태도를 받으려고 머리 위로 '음철'을 들었다.
그러나 칼이 교차하는 그 순간──.
아지랑이처럼 쿠라우도의 야태도가 사라졌다.
이것은──
'──큰일이다아아!!'
잇키는 자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온 힘을 다해 뒤로 던졌다.
그 찰나, 잇키가 지금까지 서 있었던 공간에 바람을 가르는 한 줄기 섬광이 내달렸다.
"윽!"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뒤로 몸을 날린 탓에 잇키는 자세를 무너뜨리며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지만, 비틀거리면서도 간신히 버티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 두 사람의 공방을 도장의 벽가에 서서 지켜보고 있던 스텔라와 아야세는 그런 잇키의 모습을 보고서 숨을 삼켰다.
잇키의 교복…… 그 배 부위가 크게 찢어졌기 때문이었다.
옷에 남은 칼의 흔적이 그때 잇키가 뒤로 몸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그의 장기가 쏟아져 나왔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하핫. 지금 공격을 처음 보고서 피하다니, 제법이구만."
"……뭐, 뭐야, 지금 그건……?!"
"쿠로가네……."
"조금만 더 들어갔으면 두 동강이 났을 텐데에에에에에!!"
"그렇지만 역시 쿠라우도! 저런 녀석은 적수가 아니야!"
"해치워버려어어어어어어어!!"
동요와 곤혹.
기대와 흥분.
양쪽 응원단의 열기에 명확한 차이가 나타났다.
그러나 잇키는 그런 분위기를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과연. 그런 건가."
잇키는 깨닫고 만 것이었다.
맨 처음 카운터를 말도 안 되는 타이밍에 회피했을 때부터 머리 한구석에 있었던 지극히 비상식적인 하나의 가능성.
그것이 불행하게도 현실이라는 사실을.
"이것이 '라스트 사무라이'를 쓰러뜨린 네 진정한 힘이라는 건가."
◆
"아야츠지 선배에게서 2년 전 벌어졌던 카이토 씨와 쿠라시키의 싸움에 대해 듣고서,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었어. 어째서 카이토 씨가 그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당했는지. 병들어 쇠약해졌다고는 해도, 일찍이 검의 세계에서 영광을 한껏 누리며 '라스트 사무라이'라고까지 불렸던 검객. 자신의 영역에서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거기에는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을 거야."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쿠라우도를 강자로 만드는 요소라고 잇키는 생각했다.
"지금, 그게 뭔지 확신 했어."
절대 막을 수 없을 타이밍에 행해지는 방어와 회피.
안개처럼 사라져 전혀 다른 각도에서 덮쳐오는 베기 공격.
그런 움직임은 모두 같은 한 가지 힘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었다.
"그게 뭐야?! 혹시 무언가 속임수야?!"
장외에서 아야세가 몸을 들이밀며 화제에 끼어들었다.
아야세로서도 카이토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일방적으로 깨졌는지 줄곧 의문이었으리라.
무언가 속임수를 이용하지는 않았을까 하고.
그러나 잇키는 그 추측을 고개를 내저으며 부정했다.
"아니, 속임수도 트릭도 아니야."
"하핫. 아무래도 눈치챈 모양이구만. ……말해봐. 답을 알려주지."
한쪽 입가를 올리며 씨익 웃는 쿠라우도에게 잇키는 자신이 간파한 그 힘의 정체를 고했다.
"쿠라시키의 강인함을 밑바닥에서 지지하는 힘. 그것은 ──'반사신경'이야."
"반사, 신경……."
"잇키, 그 말은…… 우리들에게도 다들 있는, 그 반사신경?"
"반은 그렇고 반은 아니야. 단어 그대로의 의미라면 그 말이 맞아. 그렇지만 그 성능, 반사 속도가 차원이 달라. 반사신경이란 인간의 행동 '지각하고, 이해하고, 대응한다' 이 행동 과정의 속도를 뜻해. 대체로 평범한 인간이 0.3초. 일류 스프린터가 0.1초라고들 해. 그리고 이 임펄스(전달신호)의 속도는, 아무리 단련해도 0.1초를 뛰어 넘는 일은 없어. 그것이 상식. ……그렇지만 지금 벌인 공방으로 재어보니, 쿠라시키의 반사 속도는 0.05초를 끊었어."
""────윽?!""
그 사실에 스텔라와 아야세가 할 말을 잃었다.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잇키와 스텔라조차 이 반사신경은 0.13초 정도.
이미 쿠라우도의 반사신경은 인류의 영역을 초월했다.
그 말은 즉 쿠라우도는 잇키와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행동을 하려고 들기 전에, 두 개 내지 세 개의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기에.
"그리고 그 상식을 초월한 반사 속도를 가지고 있으면,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회피할 수 없을 터인 공격을 피하거나 전력으로 내려치기에 칼과 칼이 부딪히는 순간 궤도에 수정을 가해 전혀 다른 각도에서 공격해온다──그런 상식을 벗어난 동작도 가능케 돼. 칼이 도중에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이유도 그 때문이야."
"하핫, 하하핫하하하! 정답이다!!"
잇키의 대답에 쿠로가네는 웃으면서 동그라미를 쳤다.
그랬다.
쿠라우도의 검에 기술 같은 것은 없었다.
있는 것은 노골적인 폭력뿐.
그 폭력만으로…… '소드 이터'는 모든 것을 유린할 수 있었다.
어째서냐 하면 반사 속도는 모든 운동의 근본을 다스리는 속도이기에.
아무리 몸을 단련해도, 아무리 형태를 다듬어도, 임기응변을 익혀도──모든 것이 처음 속도에서 뒤처지면 무의미 했다.
아무리 뛰어난 임기응변의 끝에 기습을 한다 해도, 쿠라우도는 보고 나서 대응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조잡한 때리기라고 해도 쿠라우도는 상대방의 방어를 보고나서 때려 넣는 위치를 바꿀 수 있었다.
그처럼 마치 나중에 낸 가위바위보 같은 부당함이야말로 '소드 이터'의 진가.
기술도 경험도, 책략도 임기응변도, 모든 것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악몽 같은 기프트(천성).
초인의 영역에 달한 반응 속도와 그 반응 속도를 살릴 수 있는 행동 속도.
두 가지의 신속을 가지고 행하는 노블 아츠────'마지널 카운터(신속 반사)'였다.
"내 '마지널 카운터'를 처음 보고 간파한 녀석은 네놈이 처음이다! 칭찬해주지, '워스트원'! 역시 네놈은 대단해. 그렇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냐?! 원리를 알았다고 해서 어쩔 수 있나?"
"…………."
그 물음에 잇키는 표정을 흐렸다.
그랬다.
'퍼펙트 비전'은 나중에 낸 가위바위보 앞에서는 무력했다.
'일도수라'는 어디까지나 신체 능력 강화이지, 뇌의 임펄스 속도를 올리는 힘은 아니었다.
즉, 쿠라우도가 말한 대로 잇키에게는 '마지널 카운터'를 깰 수단이 없는 것이다.
"하핫. 어쩔 수 없겠지. 내 '마지널 카운터'는 '기술'이 아니야. 그저 특성일 뿐이지. 공략법 따위는 없다고. ……그리고 '마지널 카운터'의 최고 속도는 이 정도가 아니라고!!"
으르렁거리듯이 고하고서 쿠라우도는 잇키와의 거리를 메웠다.
그리고 잇키를 노리며 펼친 기술은 아까 전보다도 빠른 순간 두 군데 동시 공격!!
"'뱀 물기'!!!!"
오른손 하나로 펼친 끼워 넣는 듯한 좌우 동시 베기 공격.
그런 비현실적인 환상조차 보여줄 정도의 기백과 속도로 반복되는 방어 불능의 2연참.
한쪽을 방어해도 동시에 또 한쪽의 톱날이 잇키의 몸을 가르리라.
그렇다면 잇키가 취할 행동은 하나뿐이었다.
몸을 혼신의 힘으로 뒤로 쳐 넣어서 동시 회피를 시도한다.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면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은 순간 2연참이든지 뭐든지 관계없다.
그러나 상대는 간격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소드 이터'!
"두 번이나 같은 방법이 통할 것 같으냐아아아아아!!!!"
'오로치마루'의 날이 주르륵 그 검신을 뻗어 등 뒤로 몸을 날린 잇키를 쫓았다.
이미 거리를 두어 피할 수도 없었다.
톱날의 단두대가 좌우에서 덮쳐들어 잇키의 몸을 둘로 쪼갠다.
──그 찰나에 잇키가 행동을 보였다.
철컹, 칼과 칼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펴지고 마력이 깃든 불꽃이 흩어졌다.
잇키가 오른손에 든 '음철'로 오른쪽에서 덮쳐오는 '오로치마루'의 제1격을 튕겨낸 것이었다.
그러나──그렇지만 그것은 악수!
잇키의 반사 속도로는 왼쪽에서 오는 제2격을 막을 수 없다!
왼쪽에서 오는 톱날이 잇키의 몸통을 도려낸다.
톱날에 그대로 내어준 살덩이가 하늘을 날고 피보라가 쇠퇴한 도장을 적신다.
──그럴 터였다.
"뭐야?!"
그러나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흩어진 것은 선혈이 아니라 불꽃.
어째서인가.
──그 답은 '뱀 물기'를 막았던 잇키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쿠라우도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잇키는──음철의 칼자루가 아니라 칼 뿌리를 잡고, 스스로 사정거리를 줄였던 것이었다.
"그런가, 단검술……! 과연 잇키야!"
"쿠로가네가 단검술도 쓸 수 있어?!
"단검 형태 디바이스를 가진 시즈쿠에게 검을 가르칠 정도인걸. 당연히 쓸 수 있지!"
스텔라는 다른 사람에게 잘못된 것을 가르치기를 극단적으로 꺼리는 잇키의 성질을 비추어 그 사실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았다.
잇키가 몸에 익힌 무예는 검술뿐만이 아니었다.
무예 전반, 궁술과 격투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었다.
무언가 조금이라도 자신의 힘으로 삼으려고, 잇키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서 자신에게 허락된 모든 시간을 써서 그것을 죽을힘을 다해서 몸에 익혀왔다.
자신이 누구보다도 약하다는 사실을 자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때 몸에 익힌 모든 기술을 잇키는 확실하게 기억해서 자신의 공격 수단으로 삼았다.
'사냥꾼'의 보이지 않는 화살이 자신을 찔렸던 힘이나 각도를 통해 상대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었던 이유도 전부 이 쌓아 올린 경험에 기인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공방을 버텨낸 것도 또한 그랬다.
단검은 일본도와 다르게 사정거리가 짧은 만큼 공격력이 떨어지지만, 손놀림을 이용한 회전이 빨라져 방어력이 크게 상승한다.
그에 따라 속도를 벌어, 잇키는 쿠라우도의 신속을 막아내 보인 것이었다.
"사정거리를 조정할 수 있는 것은 너만이 아니란 뜻이야."
잇키는 짧게 겨눈 '음철'로 쿠라우도의 '뱀 물기'를 버텨 내고 그 자리에서 뛰어들어 반격을 가했다.
"하핫."
압도적인 속도 차이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지지 않겠다고 덤벼드는 잇키의 모습에 쿠라우도는 웃음을 흘렸다.
이 스위치(전환) 하나를 보아도 마법에 의존하는 학생 기사로서는 평생을 가도 도달할 수 없는 판단이었다.
쿠라우도는 잇키의 필사적인 대응에 상찬을 보냈다.
그러나,
'그렇지만 말이지, 그래서야 이길 수 없어. 이길 수 없다고.'
단검술로의 스위치는 분명히 묘안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고작 잔재주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가르쳐주마.
전국 베스트 8.
칠성의 높은 정점에 사는 자로서 얻은 단 하나뿐인 지극히 당연한 답.
강함이란, 눈을 빼앗는 화려한 기술이 아니다.
강함이란, 친구를 위해 싸움을 관철하는 마음이 아니다.
더더욱 단순하고, 더더욱 추악한,
──부당할 정도의 폭력이라고.
"핫하아아아────!!!!"
"뭐──!!"
순간, 잇키는 물론이거니와 멀리 떨어져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스텔라와 아야세도 할 말을 잃었다.
반격을 걸고자 간격에 뛰어든 잇키에게 달려든 뱀은──머리가 네 개!
상상도 못했던 순간 4연참!!
'더, 빨라지는 건가────!'
완전한 기습.
그러나 잇키는 그래도 아슬이슬하게 자신의 목을 단숨에 베러 온 가로 베기와 왼쪽 옆구리를 도려 내러 온 베어 올리기를 단검술로 방어했다.
그러나 부족했다.
쿠라우도가 잇키의 행동 1회분의 시간에 펼친 베기 공격은 네 번.
남은 두 번이 잇키의 가슴을 십자로 베어냈다.
"그,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잇키!"
"쿠로가네!"
"……괜찮아! 아직 할 수 있어…………."
토해내는 피의 양이 많았다.
아마 상처는 가슴뼈까지 다다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잇키는 땅에 떨어질 뻔했던 무릎에 힘을 실어서 쓰러지기를 거부했다.
눈앞의 적을 계속해서 응시했다.
"흥. 제1격과 제2격을 막아낸 충격으로 몸을 뒤로 비켜 내 치명상을 막았나. 정말이지 약아빠진 녀석이야. 그렇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아아!!"
떨어진 간격에서 쿠라우도는 잇키의 선혈로 물든 '오로치마루'를 채찍처럼 늘어뜨리더니,
"이 거리에서는 네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회를 쳐주겠다아아!!!!"
쿠라우도만이 공격할 수 있는 간격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잇키에게 연달아 공격했다.
◆
맨 처음, 아야세는 잇키가 쿠라우도의 휘어지는 공격 '사골인'을 피해 품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해냈다고 생각했다.
'뱀 물기'를 단검술로 막았을 때는 됐다!
하고──.
그러나 그럴 때마다 '소드 이터'는 더욱더 위로 올라갔다.
이쪽이 한 상정을 아득히 높게 뛰어넘어 갔다.
마치 악몽 같았다.
지금 와서는 하군 학원의 칠성검무제 유력 후보 중 한 사람이라고 까지 칭송받게 된 잇키가, 크로스 레인지에서는 비길 데 없는 강함을 보여주며 '홍련의 황녀'조차 상처 없이 격퇴해 보였던 '어나더원'이──.
'자신의 영역인 크로스 레인지에서 ……무엇 하나 할 수 없어!'
'퍼펙트 비전'은 '마지널 카운터' 앞에서는 무의미해졌다.
'일도수라'도 '마지널 카운터'가 모든 행동의 개시 속도에서 잇키를 앞서는 이상 사용해도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섣불리 경계를 받아 수세에 몰린다면 치명적이었다.
'일도수라'는 잇키의 '결의'와 '각오'에 의해 유지되는 기술이었다.
배수의 진, 결사의 각오에 의해 스스로의 저력을 모두 불태우는 기술이었다.
도중에 멈출 수도 없거니와 힘을 조절해 1분보다도 길게 늘이거나 하는 세세한 조정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쪽이 한 번 움직이는 사이에 두 번도 세 번도 행동을 해오는 다른 차원의 속도를 지닌 상대방에게 완전히 수세로 몰리면, 무너뜨리는 데에 1분이라는 시간제한은 너무 짧았다.
'아무런…… 수단이 없어…………!'
지금도 깊은 상처를 입고 자신의 피가 고인 피 웅덩이 위에서 필사적으로 '사골인'과 '뱀 물기'의 마구잡이 공격을 막고 있을 뿐.
완전한 방어 일전.
아야세는 이를 드러내고 잇키에게 덮쳐드는 쿠라우도를 바라보며 꿀꺽 침을 삼켰다.
'……강해! 이 남자, 역시 손을 쓸 수 없어!'
이것이 전국 레벨!
작년의 칠성검무제 베스트 '소드 이터'의 진정한 실력.
'칠성의 정점에 가까워지면 이런 터무니없는 괴물이 있는 건가……!'
승산이 보이지 않았다.
활로가 보이지 않았다.
온갖 수단이나 기술을 비웃으며 짓밟는 압도적인 폭력.
그것을 앞에 두고 순식간에 잇키가 상처입어 갔다.
가슴의 출혈은 멎지 않은 채, '사골인'과 '뱀 물기'를 미리 읽기와 단검술을 병행해 아슬아슬한 타이밍으로 계속 쳐내는 검의 속도도 점점 떨어져서 막지 못하는 베기 공격이 늘어갔다.
그때마다 톱날이 잇키의 팔이나 넓적다리를 스쳐서 살점을 긁어냈다.
문득 떠오른 불길한 기시감.
회쳐지면서도 그 자리에서 계속 단념하기를 거부하는 잇키의 등이, 그때의 카이토의 것과 겹쳐졌다.
"으으으으으으!"
아야세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버밀리온 양! 시합을 멈추자! 이대로는 쿠로가네가 망가질 거야!!"
"지금 멈추면 도장은 되돌아오지 않아."
"이제 그런 건 됐어! 쿠로가네의 몸이 더 중요해!"
"그렇구나. ……그래도 안 돼."
팔짱을 끼고 잘게 썰리는 연인을 바라보면서 믿을 수 없는 말을 토해내는 스텔라의 모습에 아야세는 기가 막혔다.
"어째서! 버밀리온 양은 쿠로가네의 연인이잖아! 그런데 어째서! 설마 앞으로 무언가 역전의 수단이라도 있어?!"
"──없네. 나라면 화력으로 꺾어 누를 수 있지만 잇키에게는 그게 없어. 잇키에게는 아웃 레인지인 지금의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없어. 더불어 유일한 무기인 검술을 활용할 수 있는 크로스 레인지의 공방조차 당해낼 수 없다면, 더 이상…… 상당히 힘들 거야. 솔직히 상정 외야. 저 해골남이 이렇게까지 괴물이었을 줄은."
대답하는 스텔라의 음성은 평온 그 자체였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팔짱을 낀 스텔라의 팔에는 손톱이 박혀서 하얀 천의 교복에 피의 반점이 촉촉이 번져 있었다.
참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당장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전국 레벨의 간판은 거짓이 아니야. 여기까지 오면 인정 할 수밖에 없겠어. 저 남자는 강해. 이대로는 이길 수 없어."
"모르겠어……, 거기까지 알면서 왜 막지 않는 거야?!"
"어떻게 막겠어."
"어째서!!"
"왜냐하면──잇키가, 저렇게나 즐거워 보이는걸."
"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생각하며 아야세는 피보라 속에 선 잇키의 표정에 눈을 향했다.
그리고 어안이 벙벙했다.
'……웃고 있, 어…………!'
잇키는 웃고 있었다.
그것도 항상 아야세와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다정하고 소박한 웃음은 아니었다.
이를 드러내는 사나운 웃음으로.
"내 '칼사리티오 살라만드라(하늘과 땅을 불사르는 용왕의 불길)'를 앞에 두었을 때도, 그러고 보니 잇키는 웃었던가."
"어째, 서.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저렇게 피가, 나오는데…… 어째서."
"그런 거, 즐겁기 때문인 게 뻔하잖아."
아야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야세는 아직…… 그런 경지에는 다다르지 않았기에.
그렇지만 스텔라는 알았다.
그리고──어쩌면 아야세의 아버지 카이토 역시.
"……있잖아, 선배. 나랑 잇키는 말이지,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아무래도 단 한 가지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있었어."
"납득이 가지 않는 점?"
"'라스트 사무라이'는 정말로 원통함에 잠겼을까."
"…………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거, 당연하잖아!"
아야세는 스텔라의 너무도 갑작스러운 말에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저 녀석만, 저 녀석만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들은 줄곧 행복한 상태로 지낼 수 있었어! 아빠가 의식 불명이 되는 일도! 도장이 사라지는 일도! 문하생이 다치는 일도 없었어!! 녀석이 우리들의 행복한 일상을 부순 거야! 그런 거, 원통할 게 뻔하지!"
"그렇지만 그 생각은 선배의 주관일 뿐이지."
"뭐?"
"그렇지만 생각해봐. 일찍이 검의 세계에서 영광을 한껏 누리며 '라스트 사무라이'라고 까지 칭해졌던 남자가, 그런 정점에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향상심을 지닌 검객이 …… 검을 들지조차 못하고 그저 검객으로서 썩어 들어갈 뿐인 나날을 보내다니, 정말로 행복한 일이었을까? 줄곧 이어가고 싶을 만족스러운 나날이었을까? ──나라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
"확실히 싸움에 이르게 된 경위에는 문제가 있었을지도 몰라. 그 해골남이 취한 수단은 도무지 칭찬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던 것도 사실이야.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썩어 가기만 하던 자신에게 도전해오는 사람이 있다니……. 그건 검객으로서 굉장히 행복한 일이 아니었을까."
설마.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항상 웃고 있었다.
제자들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검을 후진에게 전하는 일을 생의 보람으로──.
『내 결투다! 방해하지 마아!!』
"────으으으으윽!!!!"
그때 아야세 안에서 무언가가, 줄곧 어긋났던 무언가가 철컥 소리를 내며 맞물렸다.
그리고 아야세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 싸움을 도중에 막으려 들었던 아야세에게 카이토가 여태껏 본 적 없는 무서운 형상으로, 여태껏 들어 본 적 없는 호랑이의 포효와 같은 목소리로 호통을 쳤던 이유.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승패가 명확했던 승부를 계속 했던 이유.
몇 번이고 두들겨 맞아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깨달을 수 없었던 카이토의 진정한 마음을.
지금까지 줄곧 아버지는 쿠라우도 탓에 원하지 않았던 승부를 받아들여 원통함에 잠겼다고만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니었다.
그 생각은 틀렸다!
분명히 상처 입은 제자들을 위해 싸우려는 마음은 있었으리라.
딸에게 남길 도장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마음도 있었으리라.
그러나──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때의 카이토를 지탱하고 있었던 것은, 그때의 카이토를 움직이고 있었던 것은──.
예절이나 도덕, 그런 것보다도 좀 더 단순하고 순수한 감정.
싸우고 싶다.
눈앞에 있는 적과 싸우고 싶다.
눈앞에 있는 굉장한 녀석을──이기고 싶다!
그렇게 그저 순수한, 굶주린 늑대와 같은 전투본능이었다!!
왜냐하면 그 싸움은 병에 걸려 삶의 보람을 빼앗긴 카이토가 애타게 기다리던 순간.
혼을 다 불태운다고 해도 후회가 없을 정도로 애타게 기다려온 정열의 한때였기에──.
'…………아아, 그런가.'
──미안하다.
'그 말은 우리들에게 했던 말이 아니었구나.'
지금이라면 알 수 있었다.
카이토의 말은 아야세와 제자들이 아니라 쿠라우도를 향해 한 말이었던 것이었다.
어떤 이유이든, 어떤 방식이든 병에 썩어 들어가기만 하던 자신에게 누구보다도 뛰어난 가치를 찾아내주고 상황에 관계없이 싸우기를 바라준 소년에게, '아야츠지 일도류' 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줄 수 없었던 자신이라 미안하다고 그렇게 그는 사죄한 것이었다.
'──정말이지, 지독한 아버지야.'
생애 마지막 말이 될지도 모르는 한마디를 하필이면 적에게 보낼 줄이야.
자신의 아버지는 좀 더 이성적이고 이상적인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어떤가.
이 무슨 엄청난 에고이스트인가.
마치…… 지기 싫어하는 소년 같았다.
그렇지만, 아아, 그래도──.
'……그렇다면 아빠는, 행복했던 것, 일까………….'
순간──챙! 하고 한층 더 큰 칼 소리가 도장에 울려 퍼졌다.
◆
그때까지 한숨도 쉬지 않고 울리던 칼 소리가 그치고 도장에 정적이 드리워졌다.
"하아, 하아! 하앗!"
그 정적 속에서 잇키가 거친 숨결을 흘렸다.
수많은 부상께서 오는 출혈과다가 급격하게 잇키의 체력을 빼앗아갔다.
그러나──거친 숨소리를 흘리는 사람은 잇키뿐만이 아니었다.
"헉, 윽, 하앗, 핫."
상처를 입지 않았을 터인 쿠라우도도 역시 얼굴을 붉히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싸움을 일방적으로 이끌어왔는데 어째서 상처를 입은 잇키와 마찬가지로 지친 것일까.
그 답을 스텔라는 금세 깨달았다.
"과연! 이게 '마지널 카운터'의 약점이구나……!"
"어, 무슨 소리야, 버밀리온 양?!"
"해골남의 얼굴을 잘 보라고. 그럼 알 거야."
그 말을 듣고 아야세는 쿠라우도의 얼굴을 주시했다.
쿠라우도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는데, 그것은 턱 선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그렇구나. 체력인가!"
"그래. 단순한 이야기야. 상식을 뛰어 넘은 압도적인 행동 속도를 자랑하는 '마지널 카운터'는 행동이 많은 만큼 체력의 소비가 심해. 잇키는 곧바로 그 약점을 간파하고, 공격을 당하면서도 그 남자의 체력을 깎아내렸던 거야!"
그 사실을 인정한다는 듯이 쿠라우도는 험악한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제법 약삭빠른 짓을 하다니……! 이쪽의 페이스로 시합을 끌고 나갔을 텐데, 어느새 녀석의 '지구전'이라는 필드로 끌려 들어갔어!'
거의 다 죽어가는 상태이면서도, 칼조차 닿지 않는 거리에 몸을 두면서도, 잇키는 즉각 '마지널 카운터'의 약점을 꿰뚫어보고 자신의 영역으로 쿠라우도를 끌고 들어가 그 체력을 모조리 빼앗았다.
그랬다, 스텔라가 말한 대로 잇키는 얌전하게 방어전만을 하는 채로 있을 남자는 아니었다.
잇키가 가진 패에는 수비하면서 상대를 무너뜨리는 방법이 몇 개나 존재했다.
'마치 요술사 같군. ……무서운 놈이다.'
단순한 맞베기에 머무르지 않는 잇키의 다양한 패에 쿠라우도는 한기마저 느꼈다.
한편으로 아야세는 감탄했다.
"과연 쿠로가네야. 검도 닿지 않는 장소에서 상대를 깎아내다니! 이거라면 이길지도 몰라……!"
그러나 아야세가 역전의 징조에 주먹을 쥐는 옆에서 스텔라는 딱딱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어떠려나."
"어? 무슨 소리야?"
"지구전은 잇키로서도 고육지책이야. 자신의 거리인 크로스 레인지를 완전히 제압당해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 그저 그뿐. 게다가 지친 것은 잇키도 마찬가지야. 지나치게 소모했어. 이 지구전은 잇키의 승리라기보다는 무승부에 가까워."
절망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무승부까지 끌고 간 것은 역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에 우열이 갈린 상황이 아니었다.
한 가지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어느 쪽이 이기든지, ……다음 일격이 마지막이 될 거야."
그 사실 하나뿐이었다.
"……네 이놈, 끈질긴 것도 한도란 게 있어…………."
"하아, 하아, ……공교롭게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게다가…… 이렇게까지 칼싸움으로 압도당하기는 오랜만이라서……, 아무래도 즐거워서 말이지. 끝내기가 아쉬웠어."
"하핫, ……하아, 앗, 즐거운, 가, 하핫하하하핫. 네놈도 어지간히 맛이 갔구나."
"피차일반이겠지………… 그건."
"……아아, 그렇지만, 이제 그것도 끝이다…………!"
쿠라우도가 느릿하게 숨을 가다듬더니 등을 쫙 폈다,
그리고 '오로치마루'를 머리 위로 높이 쳐들어──.
"다음 공격으로, 처리하겠다."
눈앞에 서서 피를 흘리는 사무라이에게 선고했다.
다음 공격으로──죽이겠다고.
그 죽음의 선고를 받고 잇키는 즐겁다는 기색으로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아아, 그렇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참이야."
검은 칼을 정안 자세로.
칼끝은 똑바로 쿠라우도의 미간을 향해 겨누었다.
두 사람의 기사는 서로의 필살을 맹세하며 대치하고──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물어봐도 되겠어?"
"뭐냐."
싸움이 끝나기 전에 한 가지, 꼭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물었다.
"우리들이 동경했던 그 위대한 검객은, ……지금의 우리들처럼 웃고 있었어?"
그 물음에 쿠라우도는 일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핫, 시시한 소리 묻지 마."
내뱉듯이 답했다.
"이런 뜨거운 '사투'를 즐기지 못하는 얼간이가 '라스트 사무라이'라고 불릴 리 없잖나."
"…………그런가."
그 점이 알고 싶었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래서 잇키는──.
"고마워."
이빨을 드러낸 짐승을 향해 달려 나갔다.
◆
겹겹이 새겨진 베인 상처에서 피보라를 흩뿌리면서 잇키는 낮은 자세로 뛰어들었다.
붉게 물드는 온몸은 반생반사.
그렇지만 그 발놀림의 속도는 첫수에서 일절 기세가 꺾이지 않아 질풍과 같았다.
'대단한 녀석이다!'
쿠라우도 역시 눈앞의 적에게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아낄 필요는 없었다.
다음 일격으로 온 힘을 다 쏟으리라고 뜻을 굳히고, '오로치마루'의 사정거리를 한손검 정도까지 줄였다.
사정거리를 버리고 속도를 최우선한다.
쏘아내는 공격은 자신의 모든 힘이자 모든 속도.
'마지널 카운터'를 가지고 행하는 이 세상에서 '소드 이터'만이 해낼 수 있는 초인의 노블 아츠──!!
"'야마타노오로치'────!!"
혼신.
휘두르는 것은 완전히 같은 순간에 펼쳐지는 8연참.
뼈처럼 광택 없는 여덟 개 머리의 흰 뱀이 이를 드러내고 검은 머리카락의 검사에게 덮쳐들었다.
4연참에도 대응할 수 없었던 잇키에게 이 공격을 막을 재간은 없었다.
불만 없이 참살을 당한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말이다.
'워스트원'은 멈추지 않았다.
다가오는 여덟 개 머리의 이빨에 겁먹지 않고 앞으로.
날을 정안 자세로 고정하고 칼끝을 쿠라우도를 향한 채로, 방어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으며 앞으로 뛰어들었다.
자포자기인가.
혹은 뜻을 정한 자살행위인가.
──아니다.
'…………아니야! 이 녀석은.'
정안 자세로 겨눈 칼끝에서.
그 안에서 날카로운 빛을 뿜는 두 눈에서.
쿠라우도는 몸을 베는 한기를 느꼈다.
알고 있었다.
그는 이 감각을 과거에 단 한 번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아야츠지 카이토와의 싸움.
그 최후의 순간이었다.
그때 반죽음 상태의 카이토는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
지금의 잇키와 마찬가지로, 검을 정안 자세로 겨누고 방어를 포기한 채 뛰어 들어왔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오늘까지 쿠라우도는 모르고 끝났다.
그러나 그 순간 확실히 그는 느꼈던 것이었다.
위험하다고.
반생반사의 남자에게, 밀면 쓰러질 것만 같던 남자에게 뼛속부터 떨림이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지금도──그렇기에!
'재미있어어어어!!!!'
쿠라우도는 검을 휘두르는 베기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쿠라우도의 '마지널 카운터'라면 이 순간부터라도 회피로 바꾸는 일도 가능했다.
그래도, 굳이 간다!
쿠라우도는 줄곧, 줄곧 이 기술이 보고 싶어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그 결투의 뒤가 보고 싶어서,
어쩌면 카이토가 회복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야세가 카이토와 같은 검을 익혀서 자신에게 도전해올지도 모른다.
그런 미약한 희망에 기대를 걸고 줄곧 이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래서 멈추지 않는다.
멈출 이유가 없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군! 2년 동안──────!!"
순간, 두 사람의 혼신이 교차해──선혈이 허공에 흩어졌다.
◆
도장의 높은 천장을 더럽힐 정도의 기세로 흩어진 선혈 방울은──쿠라우도의 몸에서 내뿜어진 것이었다.
일러
쿠라우도는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에 걸쳐서 대각선으로 베이고 그 거대한 몸을 기우뚱 기울였다.
한편으로 잇키는 전혀 상처가 없었다.
어째서인가.
'야마타노오로치'는 회피도, 방어도 허용하지 않는 신속 8연속 공격.
사실, 잇키는 여덟 개 머리의 이빨을 그 몸에 받았다.
그런데──부상은 없었다.
그 이유를 아야세만은 이해했다.
'……트, 틀림, 없어………….'
일찍이 단 한 번, 아야세는 이 '기술'을 본 적이 있었다.
하군에 진학하기로 결정된 자신에게 카이토가 스스로 고안해낸 아야츠지 일도류의 오의를 전수했던 때였다.
카이토가 재촉하는 대로 전력으로 카이토를 베려한 '히즈메'는 확실의 그의 몸을 붙들었다.
그러나 벨 수 없었다.
돌아온 감각은 마치 허공에 나부끼는 꽃잎을 벤 것만 같은 공허한 느낌.
그때 카이토는 말했다.
──'방어 후 선공'을 취하려고 받아넘기기로 검을 쓰면 아무래도 반응이 늦어진다.
상대의 칼을 흘린 만큼 자신의 칼 또한 공격 위치에서 멀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빠른 카운터에 이르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카이토는 답을 냈다.
그렇다면 칼을 공격위치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칼을 쓰지 말고 적의 칼날을 흘려 넘기면 된다고.
그것이 이 오의.
삼라만상 모든 것의 혼을 흩트리고, 모든 것을 느끼는 것으로 근소하게 몸놀림만으로 적의 칼날을 받아넘기는 무쌍의 자세.
"아야츠지 일도류 최종 오의──────'천의무봉'!"
그렇지만 어째서 그 기술을 쿠로가네 잇키가 아는 것일까.
카이토 본인이 한 번도 남들 앞에서 쓴 적이 없었던 비전의 오의를 어째서──.
"…………아."
그 의문이 생겼을 때 아야세의 뇌리에 언젠가 레스토랑에서 들었던 한마디가 스쳐 지나갔다.
『모든 건 아야츠지 선배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야. 게다가 아야츠지 선배라면 혼자서라도 머지않아 깨달았을 거고, 그 오의에도 언젠가 다다랐을 거야.』
잇키는 결코 확신이 없는 말은 하지 않는 남자였다.
잇키의 성실함은 직접 그에게 지도를 받았던 아야세가 잘 이해했다.
"설마, 그때 이미…………!"
"'블레이드 스틸(모방 검기)'."
"어?"
"상대방의 검을 보고 그 오의까지도 간파하는 잇키의 검술이야. 나도 당했어."
그랬다, 잇키는 그때 이미 벌써 간파했던 것이었다.
아버지를 동경하고, 모방하고, 계속 좇았던 아야세의 미숙한 검이 다다랐을──도달점을.
그 사실을 확신하고 스텔라는 즐겁다는 표정으로 싱글 벙글 웃었다.
스텔라는 알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잇키의 진정한 무서움이라는 사실을.
이 정도의 힘을, 기술을 지니고도 만족하지 않는다.
잠시 동안의 교제나 해후에서조차 한층 더 힘을 쌓고 구사하며 더욱더 높은 경지로 나아간다.
그런 멈출 줄 모르는 향상심이야말로 '워스트원'을 '어나더원'으로 만드는 요인이자, '홍련의 황녀'가 사랑하는 쿠로가네 잇키의 본질인 것이었다.
"……정말이지. 따라가는 보람이 있는 등이로구나. 진짜로. "
스텔라는 기가 막힌다는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던 그 순간,
"────윽, 아아아아아아!!!!"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명백히 치명상을 입은 쿠라우도가, 거의 다 쓰러져가던 몸을 포효를 지르면서 지탱하며 쓰러지기를 거부한 것이었다.
뚝뚝 흐르는 엄청난 양의 피가 그의 발아래에 피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래도 쿠라우도는 무릎을 꺾지 않고 패배의 가장자리에서 버텼다.
'아직 쓰러지지 않는 건가.'
이 모습에는 아무리 잇키라고 해도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과연. 이게 꼰대가 그때 내놓으려 했던 건가."
버티고 선 쿠라우도의 눈동자에 더 이상 전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핫…… 제법이구만…………."
그저 일찍이 이곳에서 벌어졌던 싸움을 그리워하듯이 중얼거리며 즐거운 미소를 흘렸다.
그리고 쿠라우도는 선혈에 물든 몸을 일으켜 등을 쭉 펴더니 다시 잇키에게 시선을 향했다.
"'워스트원'──네놈의 이름은?"
"쿠로가네 잇키."
"쿠로가네…………. 이다음은 칠성검무제에서 하자."
그렇게 말하고 나서 발길을 돌렸다.
향하는 곳은 도장의 출구였다.
아무래도 쿠라우도에게는 더 이상 이 자리에서 싸울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 사실을 헤아리고 잇키는 멀어져가는 등을 향해 물었다.
"쿠라시키, 이 도장은──."
"멋대로 해. ──더 이상 가지고 있을 의미도 없으니…………."
그것이 답이었다.
"기, 기다려, 쿠라우도!"
"이봐, 너희들도 가자!"
"으, 응!"
쿠라우도를 따라서 그의 추종자들도 황급히 도장을 뒤로 했다.
그리고 전원의 모습이 도장 안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우와! 저, 정신 차려, 쿠라우도오오!!"
"이런, 완전히 정신을 잃었어!"
"빨리 구급차를!"
"언제 기다리냐! 내 차로 학원까지 옮겨!"
"쿠라우도오! 정신 차려어!"
멀리에서 그렇게 당황해서 부산을 떠는 소리가 들려왔다.
잇키는 이것 참 하고 감탄 어린 한숨을 흘리더니 '음철' 을 거두었다.
"약해진 모습은 적에게 보이지 않는 건가……. 고집이 센 사람이야."
"그건 너도 그렇잖아."
"우왓!"
갑작스럽게 다리를 꺾여 잇키는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 뭐 하는 거야, 스텔라."
"더 이상 설 수도 없는 주제에 잘난 척 말하지 마."
"윽."
확실히 잇키는 더 이상 걷기는커녕 다시 일어설 수도 없을 만큼 힘을 소모했다.
그 사실을 간파당하고 난처한 듯이 얼굴을 피했다.
"눈치했구나……."
"당연하지. 정말이지 매일매일 너덜너덜해져서는! 그런 숨겨둔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좀 더 빨리 쓰라고!"
"무모한 소리 하지 마. 다름 아닌 '라스트 사무라이'의 기술이야. 아무리 뭐라고 해도 연습 없이 바로 완벽하게 다룰 수 있을 리가 없어. 쿠라시키를 지치게 만들어서 칼 솜씨가 무뎌진 뒤가 아니었다면 잘게 포가 떠졌을 거야."
"그럼 하다못해 좀 더 다치지 않게끔 싸우라고. 정말이지 참……."
한숨을 쉬고 나서 스텔라는 가지고 온 가방을 아야세에게 넘겼다.
"선배. 일단 구급세트는 가져 왔으니까, 이걸 사용해서 지혈만이라도 해주겠어? 이런 거, 도장집 딸인 선배 쪽이 잘할 거고. 나는 그 사이에 선생님을 불러서 데리러 와달라고 할게. 이런 피투성이 상태로 전철에는 탈 수 없을 거고."
"으, 응! 알았어!"
스텔라가 재촉하자 아야세는 가방을 받아들었다.
가방 안에는 붕대와 소독약을 비롯한 응급 용품이 얼추 갖추어져 있었다.
스텔라가 학생 수첩으로 학원에서 차를 부르는 사이 대강의 처치는 할 수 있으리라.
아야세는 익숙한 태도로 잇키의 상처를 치료하면서,
"쿠로가네. …………고마워."
잇키의 손을 강하게 잡으며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덕분에, 간신히 아빠의 본심을 알 수 있었어. ……아빠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이해 하지 못했구나. 나는."
"그렇지 않아."
"어……?"
"오늘 내가 이긴 것은 아야츠지 선배가 카이토 씨의 검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억해주었기 때문이야. 아야츠지 선배 이상으로 카이토 씨에 대해서 이해하는 사람은 없어. 아야츠지 선배야말로 '라스트 사무라이'의 후계자야."
정말로 그럴까.
그 점은 모르겠다.
그러나 아야세는 확실히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좀 더 강해져야겠구나. 가슴을 펴고 후계자를 자처할 수 있도록. 그야말로, ……자신의 힘으로 그 남자에게 이길 만큼."
중얼거리는 아야세의 눈동자에 이미 망설임은 사라졌다.
아야세는 이제 두 번 다시 길을 잃지 않으리라.
그녀는 자기 자신의 긍지가 깃든 곳을 발견했기에.
그런 아야세의 모습에 잇키는 안도의 미소를 떠올리고는,
"그렇게 될 날을 기대할게."
아야세가 말하는 미래가 현실이 되도록 바람을 담아 말했던 것이었다.
벽신문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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