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오쿠타마의 괴이
도쿄 도 신주쿠 구.
늘어선 마천루 안에 '국제 마도 기사 연맹 일본 지부'의 30층 높이로 지어진 고층 빌딩이 우뚝 솟아있었다.
그 최상층에 있는 지부장실에서, 일본 지부장 쿠로가네 이츠키는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를 집어 들면서 이마에 깊은 주름을 새겼다.
"그런가. 시즈쿠는 진 건가."
한숨이 밤인데도 조명을 밝히지 않은 방에 몹시 크게 울렸다.
『상대가 그 '뇌절'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난고 선생이 키운 비장의 아이였던가."
『예. 시즈쿠 양도 운이 없었습니다. 선발전 같은 쓸데없는 방침이 없었더라면, 무난하게 대표 선발에 들었을 텐데요.』
"…………."
쓸데없다.
수화기 너머의 남자가 한 말에 확실히 그렇다고 생각하며, 이츠키는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싸움을 거쳐 대표를 선발한다.
신 이사장 신구지 쿠로노의 그 방법은 이츠키의 생각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꺼려해야 마땅한 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잇키 쪽은 어떻게 됐나?"
『……'워스트원'은 아직 전승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하군의 학생들도 한심스럽군요. F랭크의 낙제생에게 이렇게까지 좋을 대로 당할 줄이야.』
"대표 선발에 들어갈 것 같나."
『유감스럽습니다만, 그 낙제생은 이미 '홍련의 황녀'와 교내 서열 3위인 '러너즈 하이(속도 중독)'를 쓰러뜨렸습니다. 이렇게까지 하군 녀석들이 한심할 줄이야, '뇌절'이나 '샤를라하 프라우(진홍의 숙녀)' 중 어느 쪽에 걸리지 않는 한은…… 전국에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건 용납할 수 없다."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사태.
그것이 현실이 되려고 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이츠키의 목소리가 납처럼 무거워졌다.
『예, 예! 말씀하시는 대로입니다!』
"어떻게 안 되겠나."
『차라리 장관의 권한으로 그에게서 '학생 기사'의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게 가능하다면 벌써 그렇게 했어. 그렇지만 '마도 기사'도 '학생 기사'도, 그 자격을 관리하는 것은 '국제 마도 기사 연맹'의 '흰 수염 공'──즉, 본부 권한이야. 지부에서는 박탈 요청을 할 수 있어도 박탈 자체를 할 수 없어. 그 요청도 무슨 근거가 없으면 설득력을 잃지."
1년 전, 그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 '사냥꾼'을 선동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잇키는 완강히 발목을 잡히지 않았다.
'사냥꾼'이 빈사 상태에까지 몰아넣어도 회피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잇키는 회피하면 그것이 전투 행위로 간주된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츠키가 할 수 있었던 조치는 '유급'까지.
학생 기사로서의 자격을 빼앗는 '퇴학 처분'에는 '추방 처분'이라는 전 단계를 밟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츠키의 권한 하나만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영역의 이야기였다.
그것을 이루려면, 그 권한을 가진 사람들을 납득시킬만한 근거가 필요했다.
"어쨌거나, 칠성검무제가 시작되기 전에 무언가 수를 써야──."
그때였다──.
"문제의 쿠로가네 잇키에 관해서, 제게 한 가지 묘안이 있습니다."
어둠에 익살스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는 방의 입구에서 전해졌다.
이츠키가 나른하게 눈길을 보내자, 마치 방에 가득 찬 어둠에서 배어나온 것처럼 에비스 같은 얼굴을 한 비만인 중년 남성이 서있었다.
이츠키는 그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카자인가."
"오랜만에 뵙습니다, 당주님. 음훗후."
중년 남성은 아카자 마모루.
쿠로가네 분가 혈통의 사람이었다.
"……묘안이 있다고 말했나."
이츠키는 그렇게 물으며 수화기에 양해를 구하지 않고서 전화를 끊었다.
이미 그의 흥미는 아카자가 한 말에만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채고서, 아카자는 감사하다는 얼굴로 수상쩍은 웃음을 붙이며 목을 울렸다.
"음훗후. 네 실은 말입니다아. 어떤 소식통으로부터 조금 재미있는 정보가 들어와서요. 잘 이용하면, 당주님의 우려를 떨쳐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
다음 일요일.
쿠로가네 잇키와 스텔라 버밀리온 두 사람은 학생회 멤버와 함께 사이조가 운전하는 밴을 타고서, 오쿠타마의 산 속에 있는 하군 학원의 합숙소로 찾아왔다.
오쿠타마의 괴이.
소문으로 떠도는 거인의 정체를 밝혀 내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고작 일곱 명이서 수색하기란 블레이저라고는 해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쨌거나, 일단은 배를 채우고서 영기를 보충 해야 일이 진행된다.
그래서 잇키 일행은 사이조와 토토쿠바라 두 사람에게 관리인의 사정 청취를 맡기고, 남은 멤버끼리 점심 식사로 카레를 만들기로 했다.
각각 역할을 분담해 합숙소에서 빌린 조리 도구와 토카가 가지고 온 식재료를 합숙소 옆에 있는 캠프장까지 날랐다.
합숙소 식당을 빌릴 수도 있었지만, 모처럼 산에 왔으니 캠프 카레로 하자는 흐름을 타게 된 것이었다.
"음~. 공기가 신선해. 게다가 시원해서 기분 좋아."
실어 온 부엌칼이나 도마 등의 조리 도구를 벽돌로 만든 취사장에 놓고서, 스텔라는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스팔트가 적으니까, 공기가 적당히 식는 거겠지."
"일본은 여기도 저기도 콘크리트로 지나치게 굳혔어. 더운 열기로 견딜 수 없어."
"뭐, 이미 이 나라는 거의 아열대니까……."
스텔라의 고향 버밀리온 황국은 유럽의 북쪽에 위치한 나라였다.
일본보다도 훨씬 기온이 낮았고 공기는 건조했다.
그런 나라에서 자란 스텔라에게 처음으로 체험하는 일본의 여름은 솔직히 지내기에 고약했다.
사실, 요 근래 잇키는 스텔라가 밤잠에 괴로운 듯이 신음하는 소리를 귀로 들었다.
뭐, 사람 역시 더위로 죽는 것이 일본의 여름이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저기 있잖아, 스텔라! 함께 배드민턴 치자!"
갑자기 스텔라보다도 한발 앞서 조리 도구를 다 나른 렌렌이 라켓을 한손에 들고서 스텔라를 불렀다.
"그거 좋네! 그렇지만 나는 강하다고?"
"무슨 소리를?! 나 역시 발놀림으로는 지지 않는다고! 덤벼라아!"
"후흥♪ 이 몸에게 승부를 도전한 일, 후회하게 해주겠어!"
렌렌의 권유에 흔쾌히 따라가는 스텔라.
"아, 스텔라……."
잇키가 불러 세우려고 했지만 스텔라는 이미 달려가 버리고 말았다.
"이것 참, 지금부터 식사를 만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한숨을 쉰 잇키에게 슈퍼 봉지 가득히 식재료를 날라 온 토카는 온화한 웃음을 띠웠다.
"딱히 상관없어요. 카레라서 그렇게 사람 수가 많이 필요하지 않고요. 두 분에게는 나중에 뒷정리를 시키도록 하죠."
"그렇군요. ……아, 그렇지, 재료비는 얼마였습니까? 자기 몫은 지불하겠습니다."
"후후후.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쿠로가네 군과 스텔라 양은 도우미로 와준거니까요. 식사 정도는 대접하겠어요. 그렇다기보다 대접해드리지 않으면 아무래도 제가 민망해요."
살짝 곤란한 듯이 어깨를 으쓱이는 토카.
확실히 잇키가 토카의 입장이라도 마찬가지로 면목 없이 느끼리라.
이 이상 사양하면 오히려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호의를 받아들여서 잘 먹도록 하겠습니다."
"토카의 카레는 비밀리에 전해지는 자가제 카레 루로 만드니까, 엄청 맛있어."
"네. 부디 기대하세요."
"그렇지만 준비를 돕는 것 정도는 하겠습니다."
"그럼 쿠로가네 군에게는 감자와 당근 껍질 벗기기를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우타 군은 밥을 준비해주시겠어요?"
"저 카레를 만든다는 건 말이지, 밥도 물론 '그거'겠지?"
"맞아요. 제대로 캘리포니아 쌀을 사왔으니까, 잘 부탁해요."
"후후, 좀이 쑤신다아."
"…………?"
우타카타와 토카가 무언가를 눈빛으로 주고받았다.
옆에서 보고 있는 잇키로서는 무슨 일인지 전혀 몰랐지만, 두 사람의 깊은 사이만큼은 어쩐지 이해할 수 있었다.
◆◇◆◇◆
집에서 나오고 난 지 벌써 4년.
그만큼 오랫동안 혼자서 자취를 하면, 일정한 가사 기술은 자연스럽게 몸에 익힌다.
그래서 잇키는 무척이나 솜씨 좋게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수행했다.
일단은 감자 껍질을 벗기고 물에 담갔다.
익힐 때 뭉그러지는 것을 방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감자를 물에 담가 두는 사이에 당근 껍질을 벗긴 다음, 채소를 전부 한입 크기로 썰어서 토카가 있는 곳으로 가지고 갔다.
그 도중, 문득 잇키의 발걸음이 멎었다.
"…………."
자신의 얼굴을 떼어서 나누어주는 국민적 영웅 만화의 주제가를 흥얼거리면서, 훌륭한 손놀림으로 고기와 양파를 썰고 있는 앞치마 차림의 토카.
어린데도 모성마저 느끼게 만드는 서있는 모습에 시선이 빨려 들어갔다.
그 모습이 한 장의 그림처럼, 완성된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기에.
"응? 왜 그러시죠?"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뒤돌아본 토카가 말을 걸자, 잇키는 퍼뜩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왜 그러는 걸까, 나는. ……지금, 토카 선배의 분위기에 잡아먹혔어.'
시즈쿠를 압도적인 강한 힘으로 쓰러뜨린 '뇌절'을 본 순간에도 이만한 감각은 느끼지 않았는데.
잇키는 이를 신기하게 여기면서도, 어쨌거나 그 의문을 머리 한구석으로 몰아내고서 가지고 온 채소를 토카에게 건넸다.
"이거 감자랑 당근입니다. 감자는 물에 담가두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와아, 무척이나 깨끗하게 깎았네요. 게다가 채소를 큼직하게 썬 것도 좋아요."
"모처럼 야외에서 먹는 거니까. 시골 카레 쪽이 좋을까 생각해서요."
"동그라미 백점 만점이에요. 쿠로가네 후배님은 칼뿐만 아니라 식칼 다루기도 질하는군요."
"하하, 혼자 자취한 생활이 길었으니까요. 그 밖에 무언가 도울 일은 있습니까?"
"아니요. 남은 건 냄비 하나로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쉬고 계셔도 괜찮아요."
확실히 하나의 냄비에 두 사람이 붙으면 방해가 될 뿐이다.
잇키는 토카의 호의를 받아들여서 한 걸음 앞서서 취사장을 빠져나왔다.
그 도중──..
"훗훗후. 왜 그러지, 후배. 토카의 커다란 엉덩이에 넋이 나간 걸까."
아까 전에 토카를 바라보며 잠시 멀거니 서있었던 것을, 반합으로 밥을 짓고 있는 우타카타에게 추궁 당했다.
"아, 아뇨. 그게 아닙니다!"
잇키는 즉시 부정을 했다.
확실히 토카의 엉덩이는 동그랗고 부드러워 보여서 남자로서 매력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런 게 아니라,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렇게, 눈길을 빼앗겼습니다. 토도 선배가 취사장에 선 모습에. 뭐라고 해야 할까, 그 모습에 시선을 돌리면 안 되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여겨져서요."
"흐응…………."
그런 잇키의 대답에 우타카타는 뭔가 흥미 깊은 듯이 신음했다.
"시선을 돌리면 안 되는 무언가라. 응. 한 눈에 그걸 깨닫다니, 후배는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무슨 뜻입니까?"
"저 서 있는 모습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느꼈잖아? 그 감각은 올바르다는 뜻이야. 저 모습이야말로 토카의 핵심, 그녀가 지닌 강인함의 원천 같은 거니까 말이지."
"강인함의 원천?"
"그래, 예전부터 토카를 봐온 나는 그걸 잘 알아."
'예전부터──.'
아까 전의 눈짓도 그렇고, 우타카타와 토카의 사이에는 무언가 오랜 인연이 느껴졌다.
잇키는 솔직하게 그 깨달음을 입에 올렸다.
"미소기 선배는 토도 선배를 예전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응? 그래. 알고 있어. 어쨌거나 나와 토카는 같은 보육 시설 출신이니까."
"어…………."
"토토쿠바라 재단이 전개하고 있는 사회 복지 사업 중 하나에 '새싹의 집'이라는 게 있는데 말이지. 오갈 데 없는 아이를 떠맡아서 키우고 있어. 나랑 토카는 둘 다 그 시설에 있었어. 카나타도 예전부터 곧잘 그 시설에 드나들어서 그 무렵부터 잘 알았지. 세 사람이서 어울려서 이것저것 하곤 했어."
"그랬, 습니까."
우타카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지만, 잇키는 아주 조금 반응하기 곤란했다.
소꿉친구까지는 예상했지만 같은 시설 출신이라는 사실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이 이상 이 화제를 건드려야 하나 그렇지 않은가.
잇키는 저울질 한 것이었다.
그러나,
'……토도 선배가 지닌 강인함의 원천.'
예전부터 그녀를 보아온 우타카타의 말이 아무래도 흥미를 끌었다.
토도 토카가 어떤 여성인가.
그래서 잇키는 큰맘 먹고 그에게 물었다.
"저기, 괜찮으시다면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미소기 선배가 말하는 토도 선배가 지닌 강인함의 원천이 뭔지를."
그 물음에 우타카타는 잠시 입을 다물고 난 다음 말을 자아냈다.
"……후배는 보육 시설이란 어떤 장소라고 생각해?"
"오갈 데를 잃은 아이들이 사는 시설……이겠죠."
"뭐,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그 '오갈 데를 잃은 방식'도 뭐 다양하겠지. 사고나 재해로 부모를 잃은 아이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 그런 건 그나마 나은 편이고, 부모에게 살해당할 뻔해서 행정 처분으로 갈라놓은 아이들이라든가, 뭐 각양각색이지."
"부모에게 말입니까."
"응, 그래서 우리 시설은 당시, 그런 상당히 복잡한 사정을 가진 이들이 있기도 해서, 뭐라고 해야 할까, 분위기가 나빴거든. 비슷한 처지에 놓인 무리 사이에서 사소한 일로 서로 상처 입히거나 서로 매도하거나 하며, ……다들 괴로워했어. 그렇지만 그런 가운데 토카는 그 모두를 웃는 얼굴로 만들려고 노력했어. 자신도 같은 처지인데. 작은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거나, 원장 선생님을 대신해서 맛있는 밥을 만들어주거나 하면서 말이지. ……원장 선생 님은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지만, 요리만은 정말이지 맛없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니까. 그 일은 정말 다들 크게 기뻐했어. 아하하."
"주변을 잘 보살펴주는 사람이었군요."
"예전부터 그랬어, 남을 돌봐줘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야. ……그 부모에게 살해당할 뻔한 녀석도 그래. 그 녀석은 정말이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난폭해서, 어찌 할 도리도 없을 만큼 망가져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토카를 상처 입혔지만, 그래도 토카는 단 한 번도 그 녀석을 버리지 않았어. 그 덕분에, 그 녀석도 다시 한 번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 인간다운 감정을 되찾을 수 있었어. 그래서 그 녀석은 지금도 토카에게 감사하고, 토카를 정말로 좋아해."
눈을 내리깔고서 더듬더듬 예전의 정경을 입에 담는 우타카타.
그 이야기를 하는 말투는 군데군데 일인칭이었다.
아마도, ……그 부모에게 살해당할 뻔한 아이란 우타카타 자신의 일이리라.
"그런 그 녀석이 말이지, 언젠가 토카에게 물은 적이 있어. 어째서 토카는 그렇게 강한가 하고. 정말이지 신경 쓰였어. 토카도 부모를 잃은 자신들과 같은 처지를 겪은 같은 아이일 텐데, 어째서 그렇게 남을 사랑할 수 있는지가. 그랬더니 토카는 말했어.
'자신은 양친에게 듬뿍 사랑 받았다. 그것은 보통 가정에 비하면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웃음과 애정을 받았다. 그 추억은 양친이 세상을 떠난 지금도 자신을 지탱해준다. 그래서 자신도, 다른 아이들을 웃는 얼굴로 만들고 싶다. 다들 지지대가 될 만한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다. 자신의 양친이 자신에게 그렇게 해주었던 것처럼. 남을 사랑하는 일은 양친이 자신에게 가르쳐준 소중하고 정말 좋아하는 일이니까'……라고 말이야."
그리고──.
"그 말대로 토카는 시설을 나온 지금도 줄곧 '새싹의 집'의 모두에게 웃음과 용기를 주고 있어. 부모 없는 자신들이라도 굉장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어. 전국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실력파 학생 기사 '뇌절'로서 계속해서 활약함으로써 말이지."
거기까지 말을 듣고서 잇키도 이해했다.
아까 전 우타카타가 늘어놓은 '그녀가 지닌 강인함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그것은──'선의'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삼자를 위해서 비할 데 없는 힘을 발휘한다.
토도 토카는 그런 정신의 존재 방식을 취하는 소녀인 것 이었다.
그 단편을, 잇키는 잇키 일행에게 대접할 요리를 만드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엿보고서 눈길을 빼앗겼다.
그녀가 지닌 강인함의 근간을 이루는 그 마음의 자세를, 놓쳐서는 안 되는 정보라고 인식했기 때문에.
"──후배. 너는 강해. 솔직히 예상 이상이었어. 나 정도로는 당해낼 수 없을 거고, 카나타조차 위태로울 거야. 그렇지만 그런 너라도 토카를 이길 수 없어. 토카의 강인함은 격이 달라. 어째서냐하면 그 아이는 자신이 진다는 게 어떤 일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슬픔을 주는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질 수 없어. 그래서 꺾일 수 없어. 그 아이와 너는 짊어진 것의 무게가 달라."
"…………."
그렇게 고한 말에 잇키는 응답을 되돌리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우타카타에게서 즐거운 듯이 요리를 만드는 토카에게로 돌리고서 생각했다.
그 가느다란 양 어깨에 짊어진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바람에 대해서.
그리고 그에 응하려고 하는 토카의 강인함에 대해서.
'……확실히, 나에게 그런 건 없어.'
잇키는 자기 자신의 가치를 믿는다는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서,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이 이상으로 삼는 자신이 되기 위해서.
따라서 잇키의 검에는 우타카타가 말한 무게가 깃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깃들지 않았다.
그 사실은 마치 검은 연기 같은 막연한 형태를 취해서 잇키의 마음에 들러붙었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네 가벼운 검은 그녀를 쓰러뜨릴 수 있는가──하고.
◆◇◆◇◆
점심 식사는 하얀 쌀 대신 갈릭라이스를 쓴 카레였다.
듣자하니 그 카레는 '새싹의 집'에 있을 무렵에, 그다지 돈을 들이지 않고서 모두가 기뻐할만한 음식을 만들 수 없나하는 생각에 토카와 우타카타, 그리고 카나타 세 사람이서 시행착오를 거듭해 만든 요리인 모양이었다.
토카가 통에 넣어서 가지고 온 자가제 카레 루에는 쇠심줄의 감칠맛이 잔뜩 녹아들어있었는데, 그것이 향기로운 냄새의 갈릭라이스와 합쳐지면 맛없을 리가 없었다.
잇키도 이렇게까지 맛있는 카레는 먹어본 적이 없었기에 무의식중에 욕심내서 너무 먹어버렸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평소에 남들보다 네 배는 먹는 스텔라는 그다지 먹지 않았다.
그녀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점심 식사 후, 어느 정도 뱃속이 진정될 때를 가늠해 토카가 산책을 위해서 팀 가르기를 했다.
제아무리 블레이저라고는 해도 혼자서 산 속을 걷기란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팀은 토카·우타카타 반.
사이조·렌렌 반.
그리고 잇키·스텔라 반 세 개.
긴급 상황에 대비해 카나타만이 거점이 되는 합숙소의 건물에 남았고, 일행은 마침내 산행에 나섰다.
목적은 거인의 수색과 그 확보였다.
잇키·스텔라 반은 자신들이 담당을 맡은 서쪽 산림으로 발을 들였다.
이 장소는 등산자 등이 왕래하는 보통의 산과는 달리 블레이저 훈련용 시설이었다.
따라서 길은 전혀 닦이지 않아서 여기저기 초목이 울창하게 우거져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비탈의 경사도 심해, 상당히 험한 길이었다.
아니, 단순히 험하기만 할 뿐이라면 평소부터 몸을 단련하는 잇키나 스텔라에게는 딱히 별문제 없는 일이겠지만──.
바스락거리며 수풀 속에서 튀어나오는 그림자를 잇키가 왼손으로 붙잡았다.
그것은 송곳니를 드러낸 살무사였다.
이로써 벌써 세 번째였다.
험한 길은 어쨌거나, 이런 기습이 이어지는 것은 다소 성가셨다.
잇키는 손목의 스냅만으로 움켜준 살무사를 먼 곳으로 던지고서, 일단 뒤에 있는 스텔라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 부근은 아무래도 독뱀이 많은 것 같아. 딱히 물려도 죽을만한 종류는 아니지만, 스텔라도 일단 조심해."
"…………응."
그런 스텔라의 대답에는 기운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야 할지 지금의 스텔라에게는 언뜻 보기에도 패기가 없었다.
이전에 학생회실에서 보였던 텐션이라면, 그녀야말로 대열의 선두에 서서 수풀을 헤쳤으리라.
그런데도 지금의 스텔라는 어깨를 늘어뜨리고 등을 굽히며 꾸물꾸물 잇키의 뒤를 따라올 뿐이었다.
"왜 그래? 기운 없어 보이는데, 배드민턴으로 진 게 그렇게나 충격이었어?"
렌렌과 한 배드민턴은 스텔라의 완패로 끝난 모양이었다.
스텔라가 스매시의 힘 조절을 잘못해서 코트 아웃을 연발한 끝의 자멸했다던가.
철썩 같이 그 일로 뾰로통해있나 하고 생각했지만,
"별로 그런 게 아니야……."
스텔라는 부정의 뜻을 돌려주었다.
대답하면서도 아무래도 그 말투는 미적지근했다.
마치 본인으로서도 자신이 기운 없는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
'정말로 어떻게 된 거지?'
잇키는 평소와 다른 연인의 상태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이때, 그는 그 변화를 그다지 크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금, 익숙지 않은 산길에 지친 걸까.'
"제대로 떨어지지 않게끔 따라와."
그렇게 말하고서 잇키는 스텔라가 지나가기 쉽도록 수풀을 고르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실책이었다.
이러한 스텔라의 변화는 무시해도 좋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
길 없는 길을 걸은 지 짐짓 두 시간쯤 지났을 무렵──.
'어쩐지 구름의 움직임이 이상해졌는데.'
잇키는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하늘을 주시했다.
아까 전까지 눈부실 정도의 푸름이 펼쳐졌던 하늘은 이제 와서 그 흔적을 찾이볼 수 없을 만큼 회색으로 탁해졌다.
당장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색이었다.
산의 날씨는 변하기 쉽다고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게다가 고도가 높아졌기 때문인지 싸늘함도 느꼈다.
'혹시나 한바탕 비가 오려나.'
"응?"
문득 하늘에서 되돌린 시선 끝에서, 잇키는 묘한 것을 찾아냈다.
쓰러진 나무.
그것도 한 그루나 두 그루가 아니었다.
몇십 그루나 되는 나무들이 쓰러져서 산림이 트여있었던 것이었다.
그 원인은 지면.
그곳의 지면은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기어 나온 것처럼, 황토색의 지면이 파헤쳐져서 색이 진한 흙이 드러나 있었다.
그곳에 서있었을 나무도 뿌리째 내팽개쳐져 있었다.
도려내진 부분의 크기는 직경으로 5미터 정도.
그리고 그 가까이 다소 질척거리는 지면에 새겨진 50센티미터는 될까 싶은 '발자국'이 있었다.
"이건……!"
그 형태는 짐승의 발굽이 아니라 사람의 발모양과 지독히 흡사했다.
그러나 이렇게 거대한 인간은 없다.
따라서 이 발자국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아마도 소문의 거인.
"저기, 스텔라, 이건──."
잇키는 자신의 발견을 뒤에 있는 스텔라에게도 전하려고 말을 걸자──.
"하아, 하아……읏."
스텔라가 거친 숨을 내쉬면서 나무에 기대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텔라? 혹시나 지쳤──……윽?!"
산길 때문에 지쳐서 나무에 기대있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아니었다.
잇키는 그 사실을 스텔라의 얼굴을 보고서 깨달았다.
대기의 온도는 싸늘할 지경인데, 스텔라의 얼굴은 새빨개졌고 이마에는 흠뻑 땀방울이 맺혀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보통 양이 아니었다.
이 상태는 아무리 뭐라 해도 이상했다.
"스텔라?! 어떻게 된 거야, 그 땀은?!"
"모, 모르겠어……. 그저, 아까 전부터 어쩐지 몸이 굉장히 나른해서…… 구역질이 멈추지 않고, 현기증이 나고……. 있잖아, 잇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스텔라는 빨개진 얼굴을 나른하게 들어 을리고서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을 띠웠다.
그 표정은 정말로 어떤 종류의 결의마저 깃든 듯이 진지해서, 그녀가 물으려고 하는 말이 무척이나 중대한 무언가라는 사실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대체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잇키는 꿀꺽 침을 삼키고 마음을 굳히고서 재촉했다.
"뭐야?"
그리고──.
"키스로도 임신하는 걸까?"
힘이 빠진 나머지 그 자리에 무릎을 댈 뻔했다.
"……아니, 그런 일은 없어."
자신이 키스로 여지를 임신시킬 만한 무서운 인간이라고는 여기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스텔라. 그건 혹시나 '감기'라는 병이 아닐까."
"사랑의 병……?"
"아니야. 그게 그러니까, 영어권이라면 cold였나? 아니, fever라고 하나?"
"아, 아아…… 어쩐지 알겠어."
잇키가 더듬더듬 말하는 영어를 통해, 스텔라는 그럭저럭 그가 전하려고 하는 뉘앙스를 짐작해 이해했다.
"그렇구나. 이게…… 소문으로 듣던 '감기'로구나."
"스텔라, 감기 걸린 적 없어?"
"한 번도 없어……. 그래, 이게……. 어린 시절, 학교를 쉴 수 있는 게 부러웠지만, 부러워할만한 게 아니었구나, 이거."
그렇게 말하고서 쓴웃음을 띠우는 스텔라.
그녀에게 자신의 몸이 이렇게까지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그래서 여태껏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나쁜 상태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일본의 고온다습한 기후에 몸이 익숙해지지 않아서 면역력이 떨어진 것이리라.
"어쨌거나 이 상태라면 조사를 계속하기란 무리겠어. 지금 당장 철수하자."
"자, 잠깐 기다려……. 모처럼 실마리를 찾아냈으니까……."
"그렇게 말을 해도 스텔라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잖아?"
"그렇지 않아. 이 정도쯤……. 어, 어라?"
"스텔라!"
기대 있던 나무에서 떨어지려고 한 스텔라의 몸이 비슬거리며 흔들려 지면으로 무너져 내렸다.
잇키는 그런 스텔라의 몸에 재빠르게 손을 둘러서 아슬아슬하게 지탱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녀의 체온이 옷 너머로도 알 수 있을 만큼 이상하게 높아졌다는 사실을.
'이건 생각보다 심하네…….'
스스로도 감기라고 깨닫지 못했던 스텔라는 한계까지 감기를 악화시키고 만 것이었다.
당장 신을 내려가야 한다.
잇키는 그렇게 판단하고서 그녀의 몸을 그대로 안아 올렸다.
"싫어해도 이대로 안고서 데리고 돌아갈 거야."
"아, 우으……."
조금 불만스러워 보이는 표정을 지은 스텔라였지만, 잇키의 반박은 듣지 않겠다는 말투에 저항을 포기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스텔라의 의지는 어쨌거나 그녀의 몸에는 이미 저항할 만한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 증거로 스텔라는 거친 숨결을 내뱉으면서 축 늘어져 잇키에서 몸을 맡겼다.
'서둘러 산을 내려가서 의사에게 진찰받아야해.'
잇키의 발이라면 사람 한 명 나르면서 산을 달려 내려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산기슭까지 그리 시간을 걸리지 않으리라.
그럴 터였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 문제가 생겼다.
툭, 툭──.
빗방울이 납빛을 띤 하늘에서 잇키의 머리를 두드렸고, 이윽고 그 빗줄기는 금세 양동이를 뒤집은 것 같은 호우로 변했다.
최근 아열대화가 진행된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된 스콜(게릴라호우)이었다.
"우와, 이 타이밍에서 내리나…………!"
잇키는 어쨌거나 지금의 스텔라에게 이 비는 곤란했다.
몸이 식으면 면역력은 더욱 저하된다.
감기로 끝나는 범위 안은 그나마 나은 편인 것이었다.
이곳에서 병 상태를 악화시킬만한 일을 하면 최악의 경우 폐렴이 될 우려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대표선발전에도 영향이 간다.
그 상황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만 한다.
'──그렇지! 이곳에 오는 도중에 긴급 피난용 오두막이 있었어!'
그 사실을 떠올리고서, 잇키는 금세 방침을 변경했다.
산을 달려 내려가기를 포기하고 일단 그 오두막에서 비를 피하기로 했다.
◆◇◆◇◆
오두막까지 조금 거리가 있어서 그곳에 다다를 때까지 잇키도 스텔라도 흠뻑 젖어버리고 말았다.
그곳에서 잇키는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서 오두막의 화덕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비축되어 있던 장작으로 불을 크게 피우면서, 그는 학생 수첩의 통화 기능으로 합숙소에 대기하고 있는 카나타에게 연락을 취했다.
『스텔라 양이 쓰러진 건가요?!』
"예. 지금 그녀를 짊어지고서 근처에 있는 오두막으로 피난한 참입니다."
『그것 참……. 상태는 어떤가요?』
"아마도 질 나쁜 감기라고 생각합니다만, 의사에게 진찰 받아보지 않고서는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알겠어요. 금방 구원을 보내겠습니다.』
"살았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거인 말입니다만, 그럴듯한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그것도 거대한 무언가가 땅 속에서 나온 것 같은 흔적도요. 어쩌면 거인은 땅속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땅속…… 말인가요. 그렇게 거대한 존재가 땅속에 있다는 건 선뜻 믿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만, ……알겠습니다. 그 흔적의 조사는 이쪽에서 이어서 하겠습니다. 어쨌거나 두 분은 그 오두막에서 움직이지 말고, 안정을 취하며 구원을 기다리세요. 아마도, 한두 시간쯤이면 도착할 겁니다. 밖은 상당히 추워졌으니, 젖은 몸을 말리는 걸 잊지 마세요.』
"예. 잘 부탁드립니다."
통화를 끊고서 잇키는 마지막 장작을 불 속에 던져 넣었다.
그로 인해 실내는 상당히 따뜻해졌다.
"좋아. 이걸로 옷도 말릴 수 있어."
잇키는 흠뻑 젖은 교복을 바지만 남기고 다 벗어 화덕 옆에 펼쳤다.
그러고 나서 괴로운 듯이 벽에 둥을 기대고 거친 숨을 쉬는 스텔라에게 말을 걸었다.
"스텔라도 벗어. 부끄럽겠지만, 그대로 있으면 감기가 악화돼버려."
"…………응."
스텔라와 잇키는 연인 사이였지만, 그 관계는 요전번 간신히 키스를 할 수 있게 된 정도였다.
그런 연인의 앞에서 살결을 드러내기란 스텔라에게도 저항감이 드는 행위임에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불평하지 않았다.
순순히 흠뻑 젖은 교복의 윗옷을 벗어낸 다음 치마에도 손을 댔다.
스텔라는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은 고집을 피울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 이상 몸이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잇키도 스텔라도 지금 무척이나 중요한 시기.
여섯 명의 자리밖에 없는 칠성검무제 대표 선발전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섣불리 고집을 피워 감기를 악화 시키면 두 사람의 소중한 약속을 이룰 수 없게 된다.
칠성검무제의 결승에서 다시 만나자는 그 맹세를.
그것은 가장 있어서는 안 될 일.
스텔라는 그 정도의 우선순위를 착각할만한 소녀는 아니었다.
그러나.
"앗."
"스텔라!"
일어서서 치마를 다리에서 빼냈을 때, 스텔라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몸 상태 불량.
이를 깨닫지 못하고서 악화시킨 만큼 그 중세는 심해서, 스텔라에게는 더 이상 스스로 옷을 벗을 만큼의 힘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었다.
그 사실을 지면에 부딪치기 전에 지탱해주려고 끼어든 잇키도 인식했다.
옷 너머로 느끼는 체온이 아까 전보다도 올라있었다.
스텔라의 몸은 시시각각 나빠지고 있었다.
이 이상은 조금이라도 무리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잇키는 눈 딱 감고 스텔라에게 제안했다.
"스텔라. 그, 내가 벗겨도 되겠어?"
그 제안에 스텔라는 한 번 크게 그 붉은 색 눈을 크게 떴다.
당연했다.
스스로 살결을 드러내는 것도 부끄러운데 잇키가 옷을 벗겨주다니.
그런 것은 논외라고 해도 좋을 참이었다.
──그렇지만 스텔라는,
"……응. …………부탁해."
곧바로 끄덕,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부끄러운 것은 잇키도 마찬가지.
그렇지만 잇키는 그 감정을 억누르고 제안했다.
오로지 스텔라의 몸을 걱정해서 말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스텔라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잇키에서 몸을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잇키 또한 스텔라가 자신의 배려를 이해해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스스로 다시 강하게 경계했다.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해.'
스텔라는 자신의 걱정을 헤아려서 부끄러움을 억누르고서 제안을 받아들여주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쓸데없이 의식해서 그녀의 수치심을 부추길만한 행동을 해서는 당치도 않다.
지금 스텔라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기에.
그녀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끔 재깍재깍 사무적으로 옷을 벗긴다.
꺼림칙한 생각 따위를 해서는 안 된다.
'좋아.'
강하게 자신을 경계하고 나서, 잇키는 뜻을 굳히고 스텔라가 입은 옷에 손을 뻗었다.
일단은 살결에 달라붙은 스타킹이다.
살결에 밀착해있는 만큼 젖은 상태로 두면 불쾌하리라.
그렇게 생각하고서 잇키는 스타킹을 잇는 가터벨트의 클립을 풀고서, 넓적다리와 스타킹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 넣어 천천히 그것을 말아 내렸다.
말려 올라갔던 검은 천 아래에서, 빼꼼, 눈부실 정도로 하얀 맨 다리가 드러났다.
긴 시간 버티기 위해서 장딴지 근육이 발달해 거의 호리병 형태인 농경민족 일본인과는 다르게, 넓적다리부터 발 끝에 걸쳐서 쓱, 바늘처럼 가늘어져가는 수렵민족 특유의 형태.
그 형상이 스텔라의 긴 다리를 한층 더 길고 낭창낭창해 보이게 만들어서, 잇키는 그 각선미에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 하얗고 아름다운 맨다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의 손가락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의식하게 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스텔라의 예쁘게 다듬어진 발톱이 늘어선 발가락 끝에서 젖은 스타킹을 빼내는 순간, 잇키는 자신의 등줄기와 뇌에 강렬한 마비가 퍼지는 감각을 느끼고서 자신의 계획이 안이했음을 통감했다.
'……이런 거, 사무적으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것이 다른 여자였다면 잇키도 선을 그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상대방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여자다.
그런 가장 사랑하는 소녀의 의복을 자신의 손으로 한 장 한 장 벗겨간다.
이만큼 관능적인 행위도 좀처럼 없다.
게다가 스텔라의 살결이 조금씩 드러날 때마다, 그녀의 맨살에서 피어오르는 달콤한 향기가 콧구멍을 간질이는 것이었다.
양다리의 스타킹을 벗기기만 했는데, 잇키는 심장이 파열할 만큼 벌렁벌렁 강한 고동이 새겨질 것 같았다.
이런 상태로 셔츠를 벗기는 일 따위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잇키는 흘낏 스텔라의 표정을 엿보았다.
스텔라의 안색은 당장이라도 불이 뿜어져 나올 만큼 새빨겠다.
눈동자가 젖어있는 이유는 틀림없이 몸을 침식하는 열병 탓만이 아니리라.
'지금의 스텔라에게 미덥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 없어.'
"스텔라. 좀 더 마음을 편히 먹어."
잇키는 이 이상 스텔라의 수치심을 부추기지 않게끔 미소 지으면서 말을 걸었다.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스텔라에게서 딱딱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야 당연했다.
옷을 벗기는 쪽인 잇키조차 이렇게나 부끄러웠다.
마음을 편히 먹어라, 그런 소리야말로 무리한 이야기이리라.
그렇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조금이라도 빨리 스텔라를 이 상황에서 해방시키는 것뿐.
그렇게 깨닫고서 잇키는 스텔라가 입은 셔츠의 단추에 손을 댔다.
그리고 목 언저리부터 하나씩, 살결에 지나치게 닿지 않도록 단추를 풀러갔다.
흥건히 빗물을 빨아들인 셔츠는 스텔라의 둥글고 풍만한 유방의 형태가 뚜렷이 드러날 정도로 몸에 딱 들러붙어 있었기 때문에 단추를 집어 올리기도 고생스러웠지만, 결코 엉성하지 않게끔 신중하고 정성스럽게, 스텔라의 가슴께를 풀러갔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아래에 있는 단추를 풀고, 잇키는 셔츠의 목가에 손을 대──.
그것을 좌우로 벌렸다.
셔츠는 축축해져 저항을 드러내면서도 스텔라의 어깨를 미끄러져내려, 스텔라의 살결을 감추는 베일이 벗겨졌다.
그녀의 호흡과 함께 고혹적으로 움직이는 목덜미가.
레이스 천으로 된 브래지어에 단단히 눌려서 갑갑해 보이는 큼직한 유방이.
잘 단련된, 그러나 여성으로서의 부드러움을 잃지 않은 하얀 배 위에서 호흡할 때마다 빠끔빠끔 원하는 듯이 벌름거리는 오므라짐이.
빗물과 열병의 식은땀으로 끈적끈적 빛나는 스텔라의 몸 전부가 드러났다.
그 관능적인 반짝임은,
"…………윽."
바지직, 하고 잇키의 뇌의 무언가를 태웠다.
목이 한순간에 바짝 말라버리는 감각.
잇키는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달콤하게 향기 나는 부드러운 살점에 키스를 하고, 혀로 기어가고, 때로는 부드럽게 깨물며, 그 물방울 지는 물기로 목을 축이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그렇지만 잇키는 그 모든 욕망을 이성으로 억눌렀다.
소중한 스텔라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에 무슨 생각하고 있는 것이냐고 생각하며, 내심으로 꾸역꾸역 솟아오르는 충동을 후려치고 자제심을 총동원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감정이 폭발할 것 같았다.
그런 상황인데도,
"저기, 잇키…………브래지어를, 풀어, 주었으면 해…………."
속옷차림의 스텔라가 터무니 없는 말을 해왔다.
"어……?! 저기, 지금. 뭐라고?"
"숨, 굉장히 답답해……. 후크를 풀기만 해도 되니까…………."
할딱할딱 거친 숨을 흘릴 때마다 스텔라의 가슴이 크게 들썩였다.
확실히 그것을 억누르는 형태로 존재하는 브래지어는 현재 스텔라에게는 괴로울지도 몰랐다.
가슴이 큰 그녀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푸는 건가…….'
솔직히 망설여졌다.
그렇지만 스텔라가 답답하다고 말한 이상, 싫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하겠다고 말한 사람은 자신이었고, 그녀는 그런 자신의 의도를 이해해주었으니까.
"아, 그래…… 응. 알겠어. 맡겨줘."
노력해서 평정을 가장하면서, 잇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텔라의 브래지어는 앞에서 채우는 후크.
스트랩(어깨끈)이 달려 있는 형태라서, 앞 후크를 푼다고 해봤자 브래지어가 벗겨질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괜찮아. 보이지는 않아. 괜찮아. 아슬아슬하게 괜찮아──.'
잇키는 그렇게 암시하듯이 되뇌며 앞 후크로 검지를 집어넣어,
툭, 하고 그것을 풀었다.
순간, 억누르는 힘에서 해방된 스텔라의 유방이 문자 그대로 튕겼다.
아래에서 들려 올릴 정도의 질량을 가진 두 개의 커다란 언덕이 튕기듯이 털렁 하고.
"~~~~~으으!"
그것은 끊어지려하는 잇키의 이성에 치명적인 일격을 넣는데 충분한 유혹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예측하고서 잇키는 먼저 손을 썼다.
앞 후크를 푸는 순간, 스텔라가 결코 깨닫지 않게끔 입 안으로 자신의 혀를 힘껏 깨문 것이었다.
그 격렬한 통증이 음흉한 감정을 날려 없애서 끊어질 뻔했던 이성을 붙들어놓는 것에 성공했다.
그리고 궁지에서 벗어난 그는,
'나는 대체 무엇과 싸우는 거지………….'
어쩐지 지독하게 한심한 기분이 들었다.
여자의 알몸에 하나하나 우왕좌왕해서, 그리고 그것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서 허세를 부리는 자신이.
좀 더 여자랑 놀아났더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늠름하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그런 소리를 해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지만.'
그야 그렇지만, 남자로서 최저한의 의무는 이뤘을 터였다.
마음속으로 허둥대면서도 제대로 자제심을 발휘해서, 표정을 바꾸지 않고서 냉정하게 스텔라의 옷을 다 벗겼다.
스텔라에게 주는 수치심은 분명 최소한으로 그쳤을 터.
"자, 자아. 빨리 이 담요를 둘러. 고도가 높아서 추우니까 말이지."
그렇게 말하고서 잇키는 오두막에 비축되어 있던 담요를 스텔라의 어깨에 걸쳤다.
그러자 스텔라가 모기만한 약한 목소리로 그에게 감사 인사를 늘어놓았다.
"미안, 해……. 잇키에게 폐를 끼쳐서."
"감기만은 어쩔 수 없어. 특히 스텔라에게 일본의 여름은 처음이었으니까."
"그것도, 말이지만………… 그, 아까 전부터, ……괴로워, 보였으니까…………."
"어, 무슨 말이야?"
얼굴에는 드러내지 않았을 터인데 하고 생각하며 초조해 하는 잇키.
그렇지만 스텔라의 눈길은 잇키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놀랐다고 해야 할지, 당황한 듯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 곳은 좀 더 아래──.
정확히 잇키의 허리 언저리.
──지독하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치만…… 거기, 굉장해졌고…………."
시선을 따라서 자신의 허리에 눈길을 떨어뜨린 잇키는 자신의 몸의 일부가 전혀 냉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oh."
저도 모르게 한숨이 영어로 나올 만큼 나쁜 의미로 굉장히 의욕적이었다.
'이건 유감입니다………….'
도저히 얼버무릴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야 할지, 아래는 이런 상태가 되었으면서도 얼굴은 무표정이라니 상당히 부끄러웠다.
죽고 싶었다.
"아, 아하하…… 뭐, 뭐라 해야 할까 이건 남자의 생리 현상이라서, 그세, 이성으로는 어떻게 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지금 만큼은 너그럽게 봐주신다면 이쪽으로서는 상당히 도움이 된달지……."
아무래도 겸연쩍어져서 시선을 피하면서 우물우물 변명하기 시작하는 잇키.
그러나 그런 잇키에게──.
"아니………… 사과하지 마……."
스텔라는 살며시 땀투성이의 얼굴에 미소를 띠웠다.
"……확실히, 그…… 굉장히 부끄럽지만, 그렇지만…… 전에 수영장에서 말한 것처럼, 잇키라면, 싫지 않으, 니까……. 오히려, 내게 제대로 두근거려준다는 걸 알아서, 기뻐."
'우, 아………….'
아찔, 현기증이 난 나머지 잇키는 그 자리에 엎어질 것 같아졌다.
열 탓일까. 스텔라의 상태가 평소와 달랐다.
힘없이 늘어진 눈썹과 젖은 눈동자는 무척이나 조신하고 덧없게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이런 귀여운 말을 들어서야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끌어안고서 키스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런 스텔라는 눈을 치켜뜨고 살펴보는 듯한 시선으로,
"있잖아, 잇키…………."
게다가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
"나랑, ……하고 싶어?"
"…………………………어."
한순간, 잇키는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기습적이 었기에 생긴 한순간의 착란.
그는 금세 자신이 얼마나 치명적인 소리를 들었는지 이해하고서,
"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아, 아니 잠깐, 스텔라,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
"응. ……알고 있어."
"윽."
똑바로 붉은 색의 눈동자가 잇키를 비쳤다.
그 눈동자는 다소 열기로 흐려져 있기는 했지만 매우 진지한 눈빛이었다.
농담이 아니거니와 열기에 들떠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입 밖에 낸 것도 아니었다.
스텔라는 진지하게 잇키에게 묻고 있었다.
그 사실을 잇키도 깨달았다.
"…………꿀꺽."
그러나 깨달았다고 해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속내를 입에 담아도 괜찮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잇키는 단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연히 하고 싶다.
지금에 한정짓지 않고서, 평소 키스를 할 때나 손을 잡을 때. 서로 끌어안을 때.
다양한 상황에서 잇키는 자신의 안에서 그런 충동을 느꼈다.
당연했다.
잇키는 남자이고, 스텔라는 여자였기에.
그 부분을 얼버무릴 수 있을 리도 없었고, 연인을 이성으로서 바라는 것은 당연한 마음의 흐름이었다.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문제였다.
그 마음을 말로 표현 하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말로 의지를 서로 확인하는 생물이다.
서로 확인한 의지는 두 사람 사이에서 결정사항이 된다.
만약 여기에서 잇키가 솔직하게 대답을 돌려주고, 그에 스텔라가 응한다고 한다면──.
'……그런 거, 입 밖으로 내는 것만으로는 수습되지 않아……!'
수습할 자신이 없었다.
이 자리를 수습한다고 해도, 기숙사에 돌아간 후, 스텔라의 감기가 나은 후, 그 즈음 되면 도저히 억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잇키는 생각했다. 그것은 잘못된 수순이라고.
그래서.
"미안……. 그 질문, 지금은 답할 수 없어."
진지한 붉은 색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바라보며 그렇게 대답했다.
"스텔라. 나는 말이지, 스텔라를 좋아한다고, 누구를 향해서도 가슴을 펴고서 말하고 싶어. 시즈쿠나 아리스인은 물론이고, 보지도 듣지도 못한 사람들이나…… 스텔라의 부모님께도. 이 감정은 내 안에서 가장 멋진 감정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지만…… 지금 스텔라와 그런 관계가 된다면, 분명 그건 스텔라의 부모님께 켕기는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해. 부모님을 향해서 나는 가슴을 펼 수 없게 될 거야."
스텔라도 잇키도 서로 성인이 된 몸이었다.
딱히 누구 시선을 꺼릴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면 없다.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이런 중요한 일에는 순서가 있다고 잇키는 생각했다.
스텔라는 스텔라의 양친이 소중하게 키워온 보물이었다.
그 보물에 손을 대려고 하는 것이니 최저한의 인사 정도는 하지 않으면, 그것은 너무나도 사람의 도리를 어긋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미안."
스텔라의 물음에는 답할 수 없다고 말하며, 다시 잇키는 사과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잇키는 지금 상황조차 그다지 호의적으로는 인식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자신과 스텔라의 교제를 당장이라도 공표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누구의 앞에서라도 가슴을 펴고서 스텔라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공표하면 그것은 스캔들이다.
공인인 스텔라에게 좋든지 싫든지 간에 부담이 된다.
칠성검무제라는 중요한 이벤트의 시기에 그런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그 사이에는 일선을 지켜야 마땅하다.
그것이 잇키의 생각이었다.
"낡고 딱딱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어. 얼간이라고 여겨도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변명하고 있노라니,
"그렇지, 않아."
문득, 잇키의 손에 스텔라의 손가락이 얽혀들었다.
손가락을 휘감은 스텔라는 열띤 표정으로 뚜렷한 미소를 띠우며,
"잇키가 그렇게나, 진지하게, 생각해 주는데, 이상한 소리를 해서, 곤란하게 만들어서, 미안."
잇키에게 사과를 돌려주었다.
그 표정이 열기 어리게 달아오른 이유는 병의 증상 탓만은 아니었다.
『스텔라를 좋아한다고, 누구를 향해서도 가슴을 펴고서 말하고 싶어.』
'……나를, 굉장히 소중히 여겨주었구나………….'
솔직히 스텔라는 잇키가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텔라는 눈앞에 있는 잇키밖에 보지 않았지만, 잇키는 스텔라의 등 뒤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눈길을 주고서 장래적으로 자신들이 훨씬 좋은 관계로 지낼 수 있게끔 생각을 굴려주었던 것이었다.
그것은──굉장히 기쁜 일이었다.
그만큼 자신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소중하게 여기려고 해주는 것이기에.
'그런데도……나는 뭐지?!'
조금 옷이 벗겨져 기분이 두근거린다고 해도 그렇지 절조가 없는 것도 정도가 있었다.
지금뿐만이 아니었다.
요 근래 줄곧 그랬다.
이런 처녀는 유니콘에게도 반품당할 것이 틀림없다.
'잇키 쪽이 훨씬 처녀 같잖아.'
그것을 자각하자 더욱더 아까 전 자신의 경솔함이 부끄러워졌다.
"……나, 역시 열 때문에, 이상해졌나봐. 잠시, 쉴게."
부끄러움을 병 탓으로 돌리고, 스텔라는 담요를 몸에 두르고서 누웠다.
"응. 불은 내가 보고 있을게."
잇키도 그 이상으로 지금의 화제를 건드리지 않았다.
여자에게 그렇게까지 말하게 한 데다 보류까지 했다.
그도 스텔라에게 창피를 주었다고 생각하리라.
그 배려가 다시 마음에 사무쳐서, 스텔라는 온몸을 쥐어 뜯고 싶어졌다.
'그렇지만──.'
잇키가 자신과의 관계를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해준다는 사실이 기쁜 한편으로 스텔라는,
'역시, 제대로 말로 해주었으면 했어.'
잇키의 말을 어물거린 방식을 보아하면 그가 얼버무린 답이 무엇인지는 열기로 거의 멍해진 스텔라의 머리로도 상상이 갔다.
어떤 답을 '대답할 수 없는'지는 앞뒤의 문맥을 보면 쉽게 알았다.
그렇지만──그것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잇키의 입에서, 잇키의 목소리로, 제대로 듣고 싶었다.
어떡해도 스텔라는 그리 생각하고 만다.
언젠가는 말해 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지만, 그 답을 재촉하고 마는 것은 잘못일까.
모르겠다.
그저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은,
'……나는, 음란해………….'
지금 소녀는 뚜렷하게 그 점을 자각한 것이었다.
◆◇◆◇◆
아주 조금 위태로운 문답이 오간 후, 담요로 몸을 감싼 스텔라는 금세 고른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고작 30분 정도의 시간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스텔라의 용태는 놀랄 만큼 안정되었다.
폭포 같이 흐르던 땀은 멎었고 호흡이 진정되어서인지 말수도 늘어서, 지금은 이미 몸을 일으켜서 잇키의 곁에 앉아있었다.
뺨은 여전히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이 상태라면 폐렴으로 번질 일은 없으리라.
잇키는 스텔라가 조금 기운을 되찾은 모습에 안도했다.
'이 상태라면, 잠시 이야기를 하는 정도는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잇키로서는 이제 차라리 구원이 올 때까지 자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스텔라는 가만히 있기가 거북스러운지 한가해서 그런지 그렇지 않으면 아까 전에 했던 대화의 부끄러움이 새삼스럽게 되돌아왔는지, 묘하게 수다스럽게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따위의 여러 가지의 잡다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는 것도 즐거웠지만, 잇키는 지금, 스텔라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잇키는 스텔라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기운 차렸음을 확인하고서, 한 가지 스스로 화제를 내놓았다.
"저기, 스텔라."
"응, 뭐야?"
"스텔라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셔?"
"어째서…… 그런 걸 물어?"
"아니, 그 사귄다는 사실, 언젠가는 공표할 거잖아? 그래서 공표하면 역시 인사해야 할 테니까. 만나기 전에 어떤 분인지는 알아두고 싶어서."
스텔라의 양친에게 인사하는 것.
그것은 피해 갈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기보다는 맨 먼저 밟아야할 단계였다.
늦어도 칠성검무제가 끝난 다음에는.
그렇지만 잇키로서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스텔라의 양친과 마주하게 되는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하다못해 어떤 인물인가.
그 정도의 사전 지식은 알아두고 싶었다.
그래서 스텔라에게 물었다.
그렇지만──.
"우우, 그, 그랬지……. 공표한다는 건 그런 거겠지……우우."
그 물음을 듣고 스텔라는 눈에 보이게 안색이 새파래졌다.
그것은 얼굴에 '싫다'라는 문자가 떠올라 보일 것 같을 정도로 노골적인 거절의 표정이었다.
급기야──.
"있잖아, 잇키. 제안하는 건데…… 결혼하기 직전까지 숨겨두지 않을래?"
제아무리 잇키라도 이것에는 곤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겠지……. 세간에 공표하는 건 그래도 상관없겠지만, 최소한 스텔라의 부모님께는 인사해 두어야……."
"그 부분은 이렇게, 딸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센스 있는 깜짝 이벤트☆라는 방향으로 어떻게든."
"그건 깜짝 이벤트☆ 같은 귀여운 게 아니겠지. 잘못하면 심장이 멈출 거야, 그거."
적어도 잇키는 자신이 아버지의 입장이고, 어느 날 갑자기 조간신문과 함께 딸의 결혼식 초대장이 도착하면 커피를 뿜어낼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마안……."
"그러니까…… 그렇게 나와 부모님을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아?"
핵심을 집어내자 스텔라는 신음하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우…… 어머님은 평범한 사람이야. 그렇지만 아버님은 그, 상당히 별난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나를 맹목적으로 사랑해서…… 내가 잇키와 사귄다는 말을 들으면…………."
"교제를 반대하실지도 몰라?"
"아니, 반대는 하지 않으실 거야."
"그렇다면 별 문제 없는 게──."
"찬성 반대 이전에, 인사하러 온 잇키가 버밀리온에 있는 사이에 모든 것을 어둠 속에 묻어버리실 거야."
전혀 문제없지 않았다.
"뭐라 해야 하나 상대방이 진짜 국왕이라서 그거 농담이 안되는데……."
"왜냐하면 농담이 아닌걸."
잇키는 심한 두통을 느꼈지만 이것은 딱히 스텔라의 감기가 옮은 것이 아니리라. 틀림없이.
그러나 스텔라와 제대로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이 수순은 반드시 밟아야만 한다.
그것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 일에 한해서는 도망이 용납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어떤 존재이든지, 잇키는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힘껏, 버밀리온 국욍을 호의적으로 해석했다.
"……뭐, 뭐, 그만큼 딸을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겠지? 좋은 아버지잖아."
"자식에게서 떨어지지 못 하는 거야. 내가 유학한다고 결정했을 때에도 울면서 반대했고."
"아니, 그야 딸이 '나보다 강한 녀석을 만나러 간다'라고 말하고서 유학하려고 하면 누구든지 막을 거야."
"그때는 어머님께서 아버님을 이러쿵저러쿵해서 투옥시켜주셔서 살았지만."
"이러쿵저러쿵?! 이러쿵저러쿵해서 국왕을 투옥했다니 어찌된 상황이야?! 그보다 이야기를 들은 느낌으로 전혀 평범한 사람이 아닌데, 스텔라의 어머니!"
"아, 그렇지. 이번에도 어머님께서 아버님을 투옥해주시면……."
"아니, 아니, 아니! 괜찮아! 평범하게 만날게!"
"어? 그치만 죽을 텐데?"
"우와, 굉장히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어?!"
진지한 얼굴로 되돌아온 말에 살짝 기가 죽었다.
그렇지만 그로서도 스텔라와 사귀는 이상 각오한 바였다.
"……스텔라가 걱정해주는 건 기쁘고, 이야기를 들은 바로 굉장히 큰일일 것 같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것만큼은 도망칠 수 없어. 제대로 스텔라의 아버지를 만나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어. 그건 내가 남자로서 해야만 하는 일이야."
잇키의 음성에 강한 결의의 빛이 어렸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강한 의지가.
그 사실을 깨닫고서 스텔라는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 그럼 둘이서 버밀리온으로 두 분을 뵈러 가자."
그러고 나서……행복한 듯이 표정을 싱글벙글거리며, 잇키의 어깨에 머리를 얹고서 말했다.
"나 역시, 자랑스러운 연인을 소개하고 싶으니까."
"고마워, 스텔라."
그렇게 말하고서 스텔라의 붉은 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자, 스텔라는 기쁜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 뺨을 잇키의 어깨에 비벼댔다.
그렇지만 문득 그녀는 무언가를 떠올린 것처럼 갑자기 그 표정을 흐렸다.
"……있잖아, 잇키. 지금 한 이야기 말인데."
기묘한 태도로 잇키에게 물었다.
"나도, 잇키의 부모님에게 인사하는 편이 좋을까?"
그렇게 물어보는 스텔라의 표정은 낄끄러워 보였다.
당연했다. 그녀는 잇키의 가족 관계가 시즈쿠를 제외하고서 잘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실제로 이 물음에 잇키의 표정은 흐려졌다.
그는 모르는 것이었다.
그럴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를.
──과연, 자신은 지금도 그들의 자식인 것일까.
명령을 어기고서 집에서 뛰쳐나온 자신을, 그들은──, 아니, 아버지는 아직도 가족이라고 생각해주는 것일까, 하고.
자기 부친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잇키는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 다음,
"그렇구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칠성검무제가 끝나면, 같이 한 번 쿠로가네의 집에 와주겠어?"
잇키는 그렇게 답했다.
적어도 잇키는…… 아버지를 가족이라고 생각했다.
한 번도 자식으로서 취급받은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둘도 없는 '부친'이었다.
마음속으로는 언젠가 서로 이해하게 될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아직 가족으로서 이어져 있다고 믿고 싶었다.
"……응. 알겠어."
잇키의 대답에 스텔라는 그저 고개를 주억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때 스텔라는 이런 잇키의 답에 기우를 느꼈다.
스텔라는 잇키가 쿠로가네가에서 어떤 취급을 받아왔는지, 그것을 쿠로노나 시즈쿠, 그리고 잇키 본인에게서 들어서 알았다.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마.』
그 말이 아버지가 친자식에게 할 소리일까.
아이의 가능성을 멋대로 포기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뭉개버리려고 한다.
그 부자관계는 양친에게서 사랑받으며 자란 스텔라가 보기에 딱 잘라 말해서 이상했다.
그것은 이미 부모가 할 행동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우려하는 것이었다.
『아직 가족으로서 이어져 있다.』
그런 상황의 인식은──너무나 물러터진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무른 인식은 언젠가…… 결정적으로 잇키의 마음을 상처 입히지 않을까, 하고.
'………….'
그렇지만 그 생각을 입에 담을 수는 없었다.
너는 이미 아버지에게 자식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런 비참한 말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스텔라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잇키의 옅은 기대가 배신당하지 않기를.
──그리하여 두 사람 사이에 한때의 침묵이 찾아왔을 때였다.
"응?"
문득, 잇키와 스텔라가 둘이서 함께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눈치 챈 것이었다.
미약하게…… 지면이 흔들렸다는 사실을.
"뭘까? 지진?"
그렇지만 지진과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어째서냐 하면 두 사람이 느낀 흔들림은 '흔들린다'라기 보다도 '저린다'라는 느낌이었기에.
게다가 한 번만이 아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쿵, 쿵, 하고.
그렇다, 마치 무언가 거대한 질량을 가진 물체가 지면에 부딪히는 것 같은──.
"……혹시나 거인의 발소리가 아닐까, 이거."
잇키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30분 전에 보았던 광경.
파헤쳐진 지면.
뿌리부터 내팽개쳐진 나무들.
새겨진 거대한 발자국.
그 거대한 발자국의 주인이라면 걸을 때마다 이와 같은 땅울림이 울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잇키는 그다지 미확인 생물 따위는 믿지 않는 측이었지만, 확실한 흔적을 가까이서 찾아낸 이상 그 가능성은 높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잇키는 일어섰다.
"잠시 보고 올게. 그게 오늘 우리들이 이곳에 온 목적이기도 하고."
"나도 갈래!"
함께 일어서려고 한 스텔라.
그렇지만,
"안돼에."
잇키는 그녀의 이마를 검지로 툭 찔렀다.
그것만으로 스텔라는 털썩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 어째서야! 나도 거인, 보고 싶은데……!"
"만에 하나 정말로 거인이 있다고 치고, 만약 흉포한 생물이라면 싸워야만 할지도 몰라. 그러니 감기에 걸린 환자는 얌전히 기다리라고."
떼쟁이처럼 볼을 부풀리며 퉁퉁 부은 스텔라였지만, 그러나 잇키가 엄격한 표정으로 타이르자 마지못하면서도 따랐다.
잇키는 스텔라를 남겨두고서 오두막의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얇은 입구에 귀를 대고서 밖의 상태를 살폈다.
쿵, 쿵.
소리는 상당히 가까웠다.
발바닥에서 전해지는 진동도, 그 진동이 바로 곁에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이리 와줘, '음철'."
마력이 서린 말을 자아내, 잇키는 자신의 오른손에 까마귀처럼 검정 일색의 애도를 구현했다.
그러고 나서 한번, 깊게 호흡을 하고서 심신을 진정시키더니──.
"윽!"
문에 몸을 부딪치는 것처럼 기세 좋게 밖으로 튀어 나갔다.
튀어 나간 잇키의 의 눈에 비친 것은────격렬하게
계속해서 내리는 비와 사람 없는 숲.
그 광경은 잇키가 이곳에 스텔라를 짊어지고 왔을 때 그대로였다.
'어찌된 일이지?'
소리도, 진동도, 확실히 존재했다.
그렇지만 그것을 만들어냈을 터인 질량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잇키가 밖으로 튀어나옴과 동시에 소리도 진동도 사라져 있었다.
"……대체 뭐였지?"
마치 여우에 홀린 것 같은 기분으로 잇키는 발길을 돌렸다.
그 상황에서,
"────어."
오두막 앞에 선, 신장 5미터는 될법한 바위 거인을 보았다.
잇키는 그 너무나도 거대한 거인의 가랑이 아래를 빠져 나가서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마, 말도 안 돼…………!'
그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잇키는 저도 모르게 멀거니 섰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더욱더 터무니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기가 막히게도 그 거인은 자신의 거대한 팔을 오두막을 노려서 내려친 것이었다.
그랬다, 병에 걸린 스텔라가 있는 오두막을 노려서!
"스, 스텔라아아아아아────!!!"
순간, 오두막은 미증유의 질량 앞에 문자 그대로 으스러졌다.
◆◇◆◇◆
"윽────!"
"까아?! 뭐, 뭐아?! 대체 뭐냐고?!"
잇키의 가슴께에서 그에게 부둥켜안긴 스텔라가 비명을 질렀다.
아슬아슬했다.
잇키는 오두막이 부서지는 순간에 '일도수라'를 발동시켜, 자신의 최고 속도로 스텔라를 짓눌림에서 구해낸 것이었다.
"스텔라, 괜찮아?"
"어, 어어. 그렇지만 대체 뭐가…………."
"본 그대로야,"
그렇게 말하고서 잇키는 바위 거인에게 눈길을 주었다.
"거인은 정말로 있었어."
"뭐…………."
스텔라도 그 시선을 따라서 붕괴의 원흉을 두 눈에 담더니,
"어쩐지, 생각했던 거랑 달라아!!"
"그쪽이야?!"
그렇지만 스텔라가 하는 말은 지당했다.
나타난 거 인은 상상했던 '거대한 인간'이 아니었다.
크고 작은 다양한 바위 돌을 이어 붙여서 만든 투박한 사람 형태였다.
그 겉모습은 그것이 생물인지마저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생물이든지 그렇지 않든지, 단 한 가지 알게 된 점은 있었다.
그것은 이 바위 거인이 잇키 일행에게 명확한 적의와 해의를 품고 있다는 사실.
실제로 거인은 지금 한 번 잇키 일행에게 추가 공격을 가하려고, 그 거대한 팔을 잇키 일행을 노려서 내리쳐왔다.
"큭!"
잇키는 스텔라를 안은 채 곧바로 옆으로 뛰어내려 일격을 피했다.
뛰어간 잇키의 등 뒤에서 지면이 그 규격 외의 중량 앞에 무너졌다.
저런 공격을 받으면 블레이저라고 해도 맥을 못 출 것이다.
그렇다면──공격을 받기 전에 쓰러뜨려버릴 수밖에 없다.
"스텔라는 이곳에서 암전히 있어. 그다지 몸을 적시지 않도록 해."
잇키는 품에 안았던 스텔라를 내려주고, '음철'을 손에 들고서 바위 거인과 대치했다.
"싸울 거야? 괜찮아? 그다지 칼이 통할 거 같지 않은데?"
"괜찮아. 이런 상대방을 상대하기 위한 기술도 일단 가지고 있어."
그렇게 말하더니 잇키는 검신에 왼손을 대고서 '음철'을 쥔 오른손을 힘껏 잡아당겼다.
노골적일 정도의 '찌르기' 자세.
그러나 바위 거인은 아랑곳하지 않고서──아니, 의지 그 자체가 없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스스로의 바위 주먹을 쥐었다.
그런 완만하고 한결같은 공격이 '워스트원'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잇키는 바위 거인을 향해서, '일도수라'를 통해 한층 더 강화된 초인적 각력으로 날아올라 돌진했다.
내지른 바위 주먹의 아슬아슬한 바로 옆을 교차해서, ──한계까지 잡아당긴 오른손으로 찌르기를 반복했다.
대기의 벽을 찢고서 강철의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찌르기가 아니었다.
완력, 각력, 돌진력──, 잇키의 초인적인 바디 컨트롤(신체 제어력)에 의해 모든 힘의 벡터를 칼끝 한 점에 집약해서 스스로의 최고 공격력을 집어넣는 기술.
그것이야말로 '워스트원'이 가진 일곱 개의 비검 중에서도 최장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대물오의'──.
"제1비검 '서격'────!!"
날아올라 돌진한 잇키는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고서, 자신의 몸을 탄환으로 삼아 바위 거인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 관통의 충격은 거인의 온몸을 구타해서, 가슴에 뚫린 거대한 구멍에서 바위를 이어 붙여서 만들어진 거인이 와르르 소리를 내면서 붕괴해갔다.
이어 붙였던 바위가 떨어져 내려서 사람의 형태를 잃은 단순한 바위 돌로 돌아갔다.
"좋았어!"
그렇지만 착지한 잇키가 작은 안도를 띠운 순간,
"어!"
잇키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무너져 내린 바위 돌이 마치 자석처럼 서로 달라붙어서 다시 포개져 가는 것이었다.
부서진 거인의 잔해가 다시 사람 형태로 만들어졌다.
게다가 이번에는 거인이 아니었다.
몇십이나 되는, 잇키의 키와 엇비슷할 정도로 큰 사람 형태였다.
그리고 잇키는 그 광경 속에서 새로운 이상을 찾아 냈다.
자석처럼 서로 맞붙은 바위 돌의 사이에서 실처럼 가는 마력의 기척을.
그렇다. 이것은 바위의 괴물 따위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마력의 실을 이용해서 바위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말인즉, 그것은──.
"노블 아츠……! 적은 블레이저야! 스텔라, 주위를 경계해!"
"잇키! 뒤!"
"윽!"
스텔라의 외침에 반응해서, 잇키는 등 뒤에서 잇키를 때리려고 든 바위 인형의 바위 주먹을 베어버렸다.
카강! 하고 딱딱한 바위에 날을 부딪친 반동으로 팔이 저렸다.
한편, 바위 인형은 바위에 살짝 균열이 갔을 뿐이었다.
'역시 '서격'이어야 대응할 수 있나…………!'
그렇지만 '서격'에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그것은 돌진기이기 때문에 '모으기'를 할 틈을 만들어야 만한다는 점.
아무래도 몇십 체나 되는 바위 인형이 일제히 때리려고 덤벼서야, 그런 '모으기'를 할 틈을 만들 여유는 없었다.
"잇키!"
바위 주먹을 피해내지 못하고서 머리 부분에 맞은 잇키의 이마에서 핏방울이 튀었다.
'천의무봉'을 두르고 바위 주먹을 흘려 넘겨도, 유감스럽게도 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다 받아넘길 수 없는 공격도 나왔다.
'곤란하네…….'
필요했다고는 해도 '일도수라'를 쓸 타이밍이 너무 일렀다.
남은 시간은 30초 남짓.
이대로는 쓰러뜨릴 수 없다.
'어떻게 해야…………!'
그렇지만 적은 잇키의 생각이 정리되기를 기다리지는 않았다.
잇키를 에워싸서 뭇매를 때리는 한편, 허탕 친 다섯 체의 바위 인형이 담요를 몸에 두른 스텔라를 노려서 덮쳐든 것이었다.
"스텔라!"
바위 인형의 사이에서 그 광경을 눈으로 본 잇키는 외쳤다.
그렇지만 외치기만 할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포위는 금방 깰 수 없다.
스텔라는 쇠약해져있었다.
지금 적에게 습격당해서는 무척이나 위험──.
"에잇!!!!"
그렇게 생각한 잇키의 눈앞에서, 스텔라는 덤벼든 다섯 체의 인형을 '레바테인(비룡의 죄검)'을 한 번 휘둘러서 전부 산산조각으로 분쇄했다.
더군다나 자신에게 덮쳐온 위기뿐만이 아니라, 잇키를 에워싼 바위 인형도 강한 검으로 날려버리고 때려 부숴 그 포위를 손쉽게 깨부수고 잇키의 곁으로 달려왔다.
"……어럽쇼, 어쩐지 내가 아는 병자와 달라."
"응, 나도 조금 깜짝 놀랐어. 역시 나는 엄청 강하구나."
스스로 그런 말을 하나, 하고 생각했지만 이 활약에는 잇키도 역시 깜짝 놀랐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휴식한 덕분에 제법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어. 나도 함께 싸울래. 이 녀석들 상대라면 내 쪽이 상성이 좋겠지."
확실히.
스텔라의 초인적인 힘이라면 벨 수 없다 해도 그 힘만으로 바위 인형을 분쇄할 수 있다.
솔직히 아무리 강하더라도 병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에 무리는 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이대로 잇키가 혼자서 싸워도 끝이 날 법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는 도움을 받는 편이──, 하고 생각한 순간.
"이것 참. 병자는 무리해서는 안 된다고, 스텔라♪"
문득, 전장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경박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게, 아무런 전조도 없이, 잇키 일행의 눈앞에 나타났다.
"미소기 부회장님……!"
◆◇◆◇◆
"여어, 두 사람 다. 도우려 왔어, 후배."
"상당히 빠르네요. 도착하려면 앞으로 30분은 걸릴 거라고 들었습니다만."
"아하하☆ 뭐, 그렇지. 나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남자라서 말이지. 대단할 것 없다고♪"
그렇게 자신감 있는 얼굴로 말하는 우타카타.
그런 우타카타의 등 뒤에서──
『고오오오!』
그것은 움직이는 것 전부를 표적으로 삼고 있는 것인가.
바위 인형은 마치 풀무에서 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바위의 단단한 주먹을 우타카타의 등 뒤로 내리쳤다.
노리는 곳은 정수리.
딱딱한 주먹은 '천의무봉'을 두른 잇키이기에 타박상 정도로 끝난 것.
직접 맞으면 인간의 부드러운 머리뼈 따위, 일격으로 분쇄되리라.
"미소기 선배, 뒤!"
그 위기감에 잇키는 외쳤다.
그러나 우타카타는 얼굴에 웃음을 붙인 채, 뒤를 돌아보기는커녕 옴짝달싹 하나 하지 않고서,
──바위의 단단한 주먹이, 우타카타의 목 위를 날려버렸다.
"윽?!"
"힉……!"
그 광경에, 잇키와 스텔라는 눈을 크게 뜨고서 할 말을 잃었다.
바위 주먹은 그 강도에 위력을 발휘하여, 우타카타의 머리뼈를 마치 토마토처럼 분쇄했다.
머리 부분을 잃은 우타카타의 작은 몸은 그대로 스콜로 질퍽거리는 진흙 속에 던져져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결정적인 절명──.
"유감이었네. 트릭이야."
순간, 방금 막 숨이 끊어졌을 터인 우타카타가 그를 죽였을 터인 바위 인형의 어깨 위에 목말을 탄 형태로 앉아 있었다.
"아하☆ 한 번 해보고 싶었어, 이 말."
"…………하? 어, 어어어?!"
낄낄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웃는 우타카타.
그 광경을 보고서 스텔라가 혼란스러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소리는 지르지 않았지만, 혼란스럽기는 잇키도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지금, 그는 눈앞에서 우타카타의 머리뼈가 분쇄되는 광경을 보았다.
흩뿌려지는 붉은 색의 뇌척수액. 조금 섞인 하얀 뼈의 파편.
그로테스크한 영상은 아직까지 눈꺼풀 뒤에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틀림없이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도 없었던 일이 되었다.
인과가 비틀어졌다.
……이런 비현실적인 사상을 끌어낼 수 있는 힘은 단 하나.
"노블 아츠──. 그것도 인과 간섭계의 능력입니까."
"명답."
잇키의 말을, 우타카타는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긍정했다.
블레이저의 능력에는 몇 가지인가 계통이 존재한다.
잇키의 '일도수라' 같은 신체 강화계 능력.
스텔라의 '드레곤 브레스(비룡의 숨결)' 같은 자연 간섭계 능력.
그리고 아야츠지 아야세의 '상처를 벌린다' 같은 개념 간섭계 능력.
그 수많은 블레이저의 이능 중에서도 가장 희소하고 최강이라고 불리는 계통.
그것이 인과 간섭계 능력이었다.
"내 노블 아츠 '블랙박스(절대적 불확정)'은 사상의 결과를 조작하는 능력이야. 나에 대한 공격은 전부 '실패'해. 그런 식으로 되어 있어."
그 말을 듣고 잇키는 어떤 광경을 돌이켜 생각했다.
'피프티/피프티(관측 불능)'과 처음 얼굴을 맞대었던, 그 레스토랑의 기억이었다.
그는 그때, 건드린 것만으로 잇키의 부상을 없애버렸다.
그때는 그 너무나 놀라운 솜씨에 어떤 능력인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는 부상 입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인과를 바꿔 쓴 건가.'
그 사실을 이해하고서 잇키는 전율을 느꼈다.
다양한 이능을 보아온 잇키였지만 이 '피프티/피프티'의 이능만큼 이형인 존재는 기억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수많은 노블 아츠 중에서도 최강이라고 칭해지는 이능인가.'
어떻게 대치하면 좋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에 한해서는 이 규격 외의 강력함이 고마웠다.
그 정도의 불합리한 힘이라면, 이 궁지를 벗어나는 일도 쉬우리라.
그렇게 잇키도 스텔라도 생각했지만,
"그런 힘이 있다면 낙승이겠네! 선배도 도와줘. 이 괴물을 단숨에 처리하겠어!"
"아, 그거 무리."
딱 잘라 우타카타는 스텔라의 제안을 퇴짜 놓았다.
"어? 어, 어째서야?!"
"왜니하면 내 '블랙박스'는 어디까지나 원래 존재하는 결과를 조작하는 능력, 즉 1%라도 가능한 일이라면 반드시 성공시키는 이능이야. 뒤집어 말하자면 존재하지 않는 결과, 즉 나라는 인간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도 없는 사상에 대해서는 효과가 없어. 1%를 100%로 만드는 일은 가능해도, 0%를 1%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해. 그보다 너희들은 아까 전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바위를 검으로 때려 부수는데, 그런 배틀 만화 같은 비상식적인 일을 인간이 할 수 있을 리 없잖아. 특히, 나처럼 귀엽고 가녀린 남자아이에게는 무리야, 무리."
"그런 약점이 있습니까."
"그야 그렇지. 무엇이든지 조작할 수 있다면 나 역시 대표전에 나갔을 거야. 그렇지만 '블랙박스'가 조작할 수 있는 '결과'는 어디까지 가능성으로써 존재하는 것에 한해. 즉, 단적으로 말해버리자면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능력이란 뜻이지."
그리고 우타카타의 타인보다도 훨씬 힘없는 신체는 그 '불가능'의 범위를 더더욱 넓힌다.
그 자각이 있기에 우타카타도 칠성검무제 선발전에는 나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치면,
"그럼 당신 뭐 하러 온 거야!"
당연히 그 의문이 나왔다.
전력이 될 수 없는 사람이 늘어서야 민폐일 뿐이었다.
그런 스텔라의 당연한 의문에, 우타카타는 속내 있는 웃음을 되돌렸다.
"물론 도우러 온 거야. 그렇지만 지금 말했던 것 같은 싸움은 내 영역이 아니야. 내 역할은 어디까지나, 100% 있는 일에 시간이 맞게끔 그녀를 안내하는 일이야."
그렇게 말하더니 우타카타는 휙 바위 인형에서 뛰어 내려와,
"──그렇게 된 거야. 뒤는 맡길게, 토카."
산비탈을 우러러 보았다.
그 시선의 앞. 완만한 언덕의 위.
오두막을 세우기 위해서 살짝 개척된 장소와 산림의 경계에,
"응. 안내해줘서 고마워요, 우타군."
안경을 쓴 갈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전기를 띠어 황금빛으로 빛나는 칼을 손에 들고 서 있었다.
"토도 선배……."
"아슬아슬하지는 않았던 모양이지만, 두 분 모두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토카는 잇키와 스텔라의 모습을 보고서 살짝 눈시울을 적시면서 안도의 한숨을 푹 흘렸다.
그리고 다시 표정을 다잡더니,
"두 분은 쉬고 계세요. 이 상황은 제가 이어받겠습니다."
그 몸을 낮게 앞으로 숙여서 잇키 일행을 에워싼 바위 인형을 향해서 돌격할 자세를 취했다.
그렇지만 그런 토카를 향해서 스텔라가 제지의 목소리를 질렀다.
"기다려, 토카 선배! 이 녀석들에게 검은 통하지 않아! 이런 영문 모를 상대와 혼자서 싸우다니 무모해! 나도──."
싸우겠다. 그렇게 말하려고 한 스텔라였지만,
"괜찮아요. 그들의 약점은 알고 있으니까요."
"어…………!"
토카는 말했다.
"무기물을 마력의 실로 조종해 적을 꼬드긴다. 이것은 수많은 디바이스의 형태 중에서도 '강선 사용자'가 즐겨 쓰는 전투 방법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전투 방법에는 한 가지 시어리(철칙)이 있습니다. 동시에 복수의 인형을 조종할 경우에는 그 전부를 자기 자신이 직접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형을 조종하기 위한 인형, 즉 허브(중계 지점) 설치해 그것을 통해서 조작하는 겁니다. 이 전투 방법의 최대 장점은 '술자'가 모습을 감추면서 자신의 상처 입지 않고서 일방적으로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점에 있으니까, 탐색당하는 일은 가장 피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곁으로 이어진 실은 한없이 적은 편이 좋아요. 그렇지만……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그 허브만 파괴해버리면 '강선 사용자'는 인형을 조종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죠."
그것은 숨을 장소가 없는 링 위에서는 쓸 수 없는 전법.
즉, 학생 기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싸움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토카는 학생 기사이면서도 토토쿠바라와 함께 특별 소집이라는 형태로 몇 번이고 현장에 나가서, 실제로 테러리스트 등과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
따라서 잇키 일행이 모르는 스타일에 대해서도 숙지하고 있었다.
그 지식. 그리고 관찰안은──.
"찾아냈다."
꿈틀거리는 몇십이나 되는 바위 인형 속에서, 모든 인형과 연동해서 움직이는 단 한 체를 순식간에 폭로했다.
순간, 토카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 그렇게 보일 정도로 빠르게, 날카롭게, 적진──찾아낸 허브 곁으로 뛰어 들어간 것이었다.
'질풍신뢰'.
번개의 힘으로 근육을 자극해서 그 성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토카의 노블 아츠.
그 속도는 그야말로 전광석화.
바위 인형들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야말로 꼭두각시처럼 멀거니 서있을 뿐이었고──.
"────'뇌절'!"
찰나 속에서 모든 것이 결판났다.
섬광의 속도로 뽑아져 나온 플라즈마의 날이 한 합으로 허브를 양단했다.
뒤이어서 일어난 대기의 폭발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바위 인형을 후려 갈겨서 분쇄했고,
비구름마저 튕겨 날리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의 폭풍이 지난 다음에는, 적은 단 한 체도 남아 있지 않았다.
◆◇◆◇◆
다시 인형이 만들어질 기색은 없었다.
모습을 보이지 않는 적은 허브를 파괴당함으로써 손을 뗀 것이었다.
"굉장해…………."
스텔라가 토카의 솜씨에 감탄의 목소리를 툭 흘렸다.
"보고서 금세 상대방의 약점을 깨달은 것도 굉장하지만, 그 이상으로 토카 선배는 '이능'과 '검술'의 균형이 무척이나 좋구나."
"그러네."
잇키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뇌절' 토도 토카가 강한 이유라고 그는 확신했다.
토카는 능력 응용의 폭이 넓었다.
번개라는 공격력 높은 능력을 그저 공격하기 위해서만 이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번개를 이용한 신체 능력 강화부터 심리학 비슷한 통찰안까지 능숙하게 구사한다.
그 때문에 '검술'이 살아난다.
'이능'과 '검술' 어느 쪽이나 무척 높은 차원에서 적절한 조합으로 서로 맞물려서 서로를 향상 시킨다.
그 적절한 균형에 있어서는 극단적으로 '검술에 치우친' 잇키는 물론이거니와, 잇키의 견해로는 스텔라보다도 토카가 격이 위였다.
스텔라 스스로도 그 부분에 자신에게는 없는 토카의 힘을 감지한 것이리라.
"솔직히, 상당히 공부가 되었어."
그녀치고는 드물게 그런 기특한 말을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표정은 다소 굳어있었다.
──잇키는 그 이유를 이해했다.
그녀는 깨달은 것이었다.
현 시점에서는'홍련의 황녀'가 '뇌절'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A랭크와 B랭크.
그 평가대로 잠재 능력은 틀림없이 스텔라 쪽이 위였다.
앞으로 1년 지나면 스텔라는 확실히 '뇌절'을 앞지를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 두 사람이 싸우면…… 이기는 쪽은 십중팔구 토카다,
스텔라 스스로 그 사실을 깨달았기에 표정을 굳힌 것이리라.
그리고 그런 스텔라에게,
"스텔라 양."
인형을 처리한 토카가 달려왔다.
"쓰, 쓰러졌다고 들었는데, 몸은 괜찮으신가요?!"
마치 덤벼들 듯이 묻는 토카의 표정은 아까 전 인형을 무찌르던 때의 놈름한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병자인 스텔라보다도 안색이 새파래져서, 그녀가 얼마나 쓰러졌던 스텔라를 걱정했는지가 절실히 전해졌다.
"어, 아, 응. 잠시 쉬었더니 상당히 편해졌어."
그래서 스텔라도 토카를 안심시키려고 웃는 얼굴로 답했다.
그렇지만──.
탁.
그렇게, 토카는 스텔라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밀어붙이고서,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금세 꿰뚫어보았다.
"굉장한 열이잖아요! 이런 거 전혀 괜찮지 않아요! 그런 데도 이렇게 몸을 적시고서…… 감기가 악화되면 어쩔 건가요."
"어쩔 수 없잖아. 습격 받아서 오두막이 부서졌으니까."
그렇게 답하고 스텔라는 납작하게 찌부러진 오두막의 잔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광경을 본 토카는 곤란하다는 듯이 얼굴에 그늘이 졌다.
"우타 군. 이 근처에 다른 긴급 시 피난용 오두막은 있나요?"
"없어. 그렇지만 확실히 이곳에서 조금 북쪽으로 향한 곳에 종유동굴이 있었을 거야."
"그럼 일단 그곳으로 피난 가죠. 병자를 비 맞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데다, 쿠로가네 군도 치료해야 해요."
그렇게 말하자마자 토카는 가볍게 스텔라의 몸을 안아 들었다.
"자, 스텔라 양, 갈게요."
"와왓! 잠, 안는 건, 안는 건 그만 둬! 부끄럽다고!"
"안돼요. 병자는 얌전히 계세요."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타이르는 것처럼 다정하게, 그러나 반박을 듣지 않겠다는 압력을 머금은 말로 스텔라의 입을 다물게 하고서, 토카는 스텔라를 안아 들고서 날랐다.
그 등을 보고서, 우타카타가 잇키에게만 들릴 음성으로 툭 중얼거렸다.
"토카의 양친은 두 분 모두 병으로 돌아가셨어. 그래서 예전부터 몸 관리에 남들보다 배로 시끄러워. 저렇게 된 토카에게는 거스르지 않는 편이 좋아. 너무 떼를 쓰면 엉덩이 떼찌떼찌를 당하니까 말이지."
"미소기 부회장님도 당한 적이 있습니까."
"손목 스냅이 굉장해. 그거 일종의 천재야."
아무래도 있는 듯했다.
학생회실에서도 주고받는 말로 느꼈던, 어머니와 손이 많이 가는 아이라는 도식은 예전부터 여전한 모양이었다.
"그럼 후배는 혼자서 걸을 수 있겠어? 무리일 것 같으면 어깨를 빌려 주겠지만?"
우타카타가 잇키의 '일도수라' 사용 후에 오는 극도의 피로를 배려해서 제안했다.
그렇지만 잇키는 조용히 고개를 옆으로 내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걷는 정도는."
"그럼 됐어. 따라와 줘."
이렇게 해서 합류한 일행은, 일단 비를 피하기 위해서 가까이에 있는 종유동굴로 피난했다.
※※※
"후후후. 잠시 새로운 허브 시운전을 겸해서 시험 삼아 해볼 셈이었습니다만, 터무니없는 대갚음을 당했습니다. 이것 참."
일본 어느 곳.
아직 낮인데도 어둠이 쌓인 것 같은 깜깜한 실내.
그곳에서 키 큰 남자가 소파에 깊숙이 걸터앉으면서 반쯤 웃으며 한숨을 흘렸다.
"거 참, 과연 소문으로 듣던 '뇌절'. 꼭두각시로는 상대가 안되는군요오."
"냄새가 지독하군. 팔이 탄 건가."
그 키 큰 남자 뒤에 서서 그를 멸시하는 듯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그림자가 물었다.
"정말 노릇노릇하게요."
키 큰 남자는 물음에 스스로의 왼팔을 보였다.
바위 인형을 조종했던 남자의 왼팔은 실을 타고서 흘러 들어온 '뇌절'의 고압 전류에 의해 타들어가 살점이 타서 떨어졌다.
그 손상의 정도는 격심해서 캡술을 가지고도 완벽한 치유는 기대할 수 없으리라.
그런데도 키 큰 남자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기쁨마저 느껴지는 음성으로 노래하듯이 토카를 상찬했다.
"덕분에 이제 왼손을 쓸 수가 없겠군요오."
"'전야제' 전에 쓸데없는 일을 해서 그렇다. 어리석기는."
"대꾸할 말도 없네요오. 후후후."
"나는 그저 게스트(학생)라서 '군'의 의도 따위 알 바가 아니지만, 너는 '군' 쪽 인물이잖나. 작전 전부터 경솔한 일은 삼가는 편이 좋지 않나?"
"뭐, 그렇긴 합니다만, 유감스럽게도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즐겁지 않으니까요오. 즐겁지 않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즐겁지 않은 일이 정말 싫다고요. 왜냐하면 저는 '피에로(어릿광대)'니까요. 항상 웃어야만 해요. 선행도 악행도 웃는 얼굴로 즐기기에 '피에로'잖습니까?"
"네 말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워."
"후후후. 좋습니다. 마음속을 읽히는 '피에로' 따위는 흥이 깨지는 것도 유분수니까요."
경박함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는 목소리로 답하고, 큰 키의 남자는 오른손가락을 가볍게 '획' 움직였다.
그러자 타들어갔던 왼팔이 그 근본부터 , 날카로운 날붙이로 절단 된 것처럼, 깨끗하게 떨어졌다.
근본까지 화상을 입었기 때문인지 출혈은 없었다.
"아. 이거 필요해요? 잘 익었는데."
"필요 없다. 그 '고양이'에게라도 먹여 둬."
"후후후. '스핑크스'라고 제대로 불러주지 않으면 그녀, 또 울어 버릴 겁니다."
"접착제로 날개를 붙여본들 고양이는 고양이다."
냉담하게 답하는 등 뒤의 그림자에게 키 큰 남자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젊은데 꿈이 없구나아.
"아아, 그러고 보니 현장에 당신이 집착하는 그 '홍련의 황녀'도 있었어요. 아무래도 안색이 좋지 않았습니다만, 감기라도 걸리신 걸까요오?"
"그런 걸 내가 알 리가 없잖나."
"이런, 걱정되지 않습니까? 당신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여기에 왔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다. 내가 네놈들의 장난에 어울리는 건 그게 이유다. 그렇지만 몸 상태를 망가뜨리고서 대회에 올 수 없게 된다면, 결국 '홍련의 황녀'도 그 정도의 여자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명확하게 어둠에서도 잘 들리는 목소리로 답한 남자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그것을 감지하고서 키 큰 남자는 더더욱 자신과 이 멸시하는 그림자와의 상성이 나쁘다는 사실을 느꼈다.
정말이지, 놀리는 보람이 없는 남자였다.
"이것 참, 냉정하네요오. 오늘날에는 남자가 성실하게 굴어야 여성이 돌아박준다고요."
"농담은 거울이라도 보고 말해라, 어릿광대."
상성이 나쁘다는 사실을 느낀 것은 그림자의 남자도 또한 마찬가지인가.
그는 내뱉듯이 말하고서 그 자리를 뒤로 했다.
어둠으로 녹아들어가는 그 등을 바라보며, 키 큰 남자는 다시 한숨을 흘리고서──말했다.
"정말로 귀염성 없네요오. 조금쯤은 동생의 순박함을 보고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
그 후, 비는 생각 밖으로 오래 계속해서 내렸다.
시간으로 따지면 세 시간 정도.
그 영향으로 결국 잇키 일행이 신을 내려올 수 있었던 때는 이미 해가 저물기 시작하고 나서였다.
아까 전까지 그만큼이나 격렬하게 비를 내리던 비구름은 어느 새인가 어딘가로 사라지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어 경치는 예쁜 노을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정말이지 최근 일본의 기후는 정말로 이상해졌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합숙소까지 돌아가는 길을 나아갔다.
그 도중에 잇키의 등에 업혀있는 스텔라가 새삼스럽게 토카에게 물었다.
"저기, 토카 선배. 아까 전 바위 인형을 조종하던 녀석, 내버려둬도 괜찮아?"
결국 그 후 일행은 비를 피하기 위해서 줄곧 종유동굴의 입구에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에, 그 바위 인형을 조작해서 잇키 일행을 습격했던 보이지 않는 적의 정체는 모르는 상태였다.
스텔라는 그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했다.
그야 그 마음은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이 공유하는 감정이었다.
거인 문제의 근간을 남겨둔 채 돌아가는 길이 었으니, 찜찜함이 남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나──.
"……뭐, 붙잡을 수 있었더라면 저도 그러고 싶은 참이었습니다만, 그건 조금 무리일 것 같아서요."
"어째서?"
"허브를 파괴했을 때 '뇌절'의 전격을 실을 통해 보내서 술자가 있는 곳까지 거리를 재어보았습니다만, 붙잡으러 가기에는 너무 멀었습니다."
"그건은 대체 어느 정도야?"
"적게 어림잡아도 100킬로미터."
"우, 켈록! 켈록!"
합숙소를 뛰어넘어 도쿄 도내에 있는지도 수상쩍은 거리에, 스텔라는 저도 모르게 숨이 막혔다.
확실히 그래서야 붙잡으러 갈 수 없었다.
"하아, 그야 기절초풍하겠네. 강선 사용자란 그렇게 멀리서 인형을 조종할 수 있는 거야?"
"아니. 보통은 무리예요. 특별 소집 때 함께 팀을 짰던 마도사 중에 B랭크인 강선 사용자가 있었지만, 그 사람도 인형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거리는 500미터 정도였는걸요."
그것은 하나의 사실을 드러냈다.
즉 그때, 그 실 너머에 있었던 사람은 보통이 아닌 존재라는 점.
그 부분을 언급하고서 토카는 살짝 표정을 굳혔다.
"그래서…… 직접 대결하게 되지 않아서 산 건 제 쪽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깊게 쫓지 않는 편이 현명하겠군요."
그런 미지의 실력자를 상대로 대책 없이 쳐들어가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토카의 이야기를 듣고서, 잇키는 그녀의 판단에 이해를 표시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스텔라는 성격적으로 적을 방치해 두는 일에 불만이 있었던 모양인지 목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끝나다니, 어찐지 석연치 않아."
"토토쿠바라 양을 통해서 이사장님께 보고해두었으니,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뒤는 이사장님께서 손을 쓰실 겁니다. 게다가 일단 나름대로 상처를 입혔다고 생각하니, 이 곳에는 두 번 다시 다가오지 않겠지요."
'새삼스럽게 굉장한 소리를 하는구나, 토카 선배.'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인형을 조종하는 강선 사용자도 굉장하지만, 1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적에게 뇌격을 쳐 넣는 토카도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그 후에도 일행은 하잘 것 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해질녘의 귀로를 나아갔다.
가는 길은 비로 질척해져있었지만, 그들은 하군에서도 손꼽히는 학생 기사.
아무도 발이 빠질만한 실수는 하지 않았다.
잇키도 종유동굴에서 충분한 수면을 취했기에, '일도수라'의 피로를 질질 끄는 일도 없이, 그 발걸음은 스텔라를 등에 업고 있으면서도 가벼웠다.
따라서 행군은 상정했던 이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잇키 일행은 해가 다 저물기 전에 숙소 등의 건물이 있는 산기슭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아! 야호오! 다들! 어서 와아!"
그들의 귀환을 시설 밖에서 기다리던 렌렌과 사이조 두 사람이 맞이했다.
"스텔라, 뭔가 쓰러졌다고? 큰일이었구나아."
"폐를 끼쳐서 미안해. 감기 따위는 처음 걸려서, 스스로 감기라는 걸 잘 몰라서."
"보통 힘이 들어서 움직일 수 없게 되기 마련인데, 스텔라 엄청 힘이 넘쳤는거얼. 셔틀콕으로 지면이 파헤쳐졌고. 체력이 쏠데없이 있다고 생각했어어."
"……어쩐지 바보 취급당한 기분이 드네."
'…………역시 내가 아는 병자와는 달라.'
어째서 이 아이는 셔틀콕으로 테니○의 왕자처럼 치는 것일까.
어쩐지 이제 스텔라는 병이 들어도 아무렇지 않게 선발전을 이겨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자네도 상대방이 쓰러진데다 거인에게 습격당해서, 상당히 호된 꼴을 당한 모양이로군."
불쑥, 잇키는 사이조에게 동정의 말을 들었다.
"하하하…… 뭐 운이 나쁜 건 익숙하니까 괜찮지만."
"부상당했다고 들었는데 별일 없나?"
"살짝 혹이 난 정도니까, 응. 괜찮아."
"그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이조는 주머니에서 작은 병을 꺼내들고서 잇키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우리 본가는 약사 집안이라서 말이지. 이건 비전의 연고다. 타박상에 잘 들으니까 발라두도록 해."
"그렇구나. 응, 고마워. 나중에 쓰도록 할게."
잇키는 사이조의 친절에 웃는 얼굴로 감사 인사를 늘어 놓았다.
그 등 뒤에서 우타카타 일행의,
"호모오."
"내가 학생회실에서 팬티 한 장만 입었어도 덮치지 않았던 건 복선이었나아!"
"무무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건가요, 두 사람 모두! 저건 우정이에요! 아마도, 분명!"
"어째서 토카 선배도 후반에 불안해 보이는 거야……."
어쩐지 타박상 이상으로 머리가 아파지는 대화가 들렸다.
"우리 패거리가 소란스러워서 미안하군. 뭐, 늘상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라."
"하하하."
'사이조는 멘탈 강하네.'
이 사람 역시 고생을 떠맡는지도 모르겠다.
"하아, 그건 그렇다 쳐도 오늘은 실컷 걸어서 지쳐버렸어. 배도 고프고. 저기 있잖아, 토카, 돌아가기 전에 다 같이 바비큐라도 하자아."
"아, 좋네, 그거! 나 점심 그다지 먹지 못했으니까, 고기 먹고 싶어."
"나도 찬서엉!"
우타카타의 제안에 스텔라와 렌렌 두 사람이 찬성했다.
그러나 토카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지 않았다.
"안 됩니다. 스텔라 양은 병자예요. 의사에게 가는 게 먼저입니다."
"""에에에엣."""
"어쩐지 이미 스텔라는 완전히 쌩쌩하니 괜찮잖아아."
"응. 나, 괜찮아."
"봐, 괜찮다고 말하잖아. 이 상황에서는 선배로서, 학생회장으로서, 후배의 자주성을 존중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억지를 부려도 안 되는 건 안 돼요. 감기를 우습게보면 큰코다쳐요. 게다가 스텔라 양은 중요한 시기니까, 만일의 경우가 있어서는 큰일이에요."
"우으…………."
꼬르르르르.
그렇게 잇키의 등에 스텔라의 배가 비명을 질렀다.
아무래도 정말로 식욕이 돌아온 듯했다.
게다가 살결에서 느껴지는 열도, 오두막에 있었을 때에 비할 바가 아닐 정도로 떨어졌다.
어쩌면 이미 감기는 거의 완치되었을지도 몰랐다.
굉장히 인간과 동떨어진 회복력이었지만, 스텔라라면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토도 선배. 분명히 병원에 가야 마땅하겠지만, 공복을 느낄 때에 음식을 먹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몸에 해롭습니다. 몸이 질병에 대항하기 위한 에너지를 원하는 거니까요."
"잇키…………!"
"옷! 그래, 그래! 지금 쿠로가네가 좋은 말을 했어!"
"우, 그것도 그러네요……. ……병석에 일어나서 고기라는 선택은 솔직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만 알겠습니다. 그럼 스텔라 양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약을 받고 난 다음, 다 같이 고기 뷔페라도 가도록 하죠. 지금부터 밥을 먹으면 진료 시간에 맞지 않을 거고요."
"고마워, 토카! 야호! 고기다아!"
"미소기 선배! 비싼 고기 체인점 가자아!"
"그럼 예약은 맡겨둬어!"
"그만둬요! 고기 뷔페라고 말했잖아요오!"
'여전히 여럿이 모이면 소란스럽구나, 이 사람들.'
그러나 문득, 잇키는 한 사람 머릿수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토토쿠바라 선배는?"
"카나타 선배라면 누군가 손님이 와서 웅대하러 갔는데?"
"우, 그러고 보니 그 일을 전하는 걸 잊고 있었군. 쿠로가네. 실은 아까 전, 너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나를?"
"그래, 학교에 갔더니 이쪽에 있다는 말을 듣고 온 모양이야."
누구일까 하고 생각하며 잇키는 고개를 가웃거렸다.
일부러 오쿠타마까지 자신을 쫓아온다.
솔직히 그에게는 그렇게까지 해서 자신을 만나려고 드는 지인에게 짚이는 바가 없었다.
"사이조, 그 사람의 이름은?"
"분명히──."
사이조는 잠시 생각한 다음에 떠올렸다는 듯이,
"그래, 그렇지. '아카자'라고 이름을 댔었지."
"────────."
그가 알려준 이름을 듣고 잇키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오오, 있다, 있어. 가아~안신히 만났습니다."
끈적끈적한 남자의 목소리가 잇키에게 말을 걸었다.
시선을 향하자 그곳에는 웅대를 하고 있었을 토토쿠바라에게 이끌려서,
"오랜만이로군요오~. 잇키 군. 음훗후."
붉은 양복을 몸에 두른 비만 체형의 중년 남성이 에비스와 닮은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 있었다.
잇키는 알고 있었다.
몇 번인가, 본가에 있었을 무렵에 만난 적이 있었다.
"잇키. 누구야, 이 아저씨…………."
아마도 등 너머로 심상치 않은 무언가를 감지한 것이리라.
스텔라가 머뭇머뭇한 기색으로 잇키에게 물었다.
그에 대해 잇키는 스텔리를 등에서 내려주고 나서 답했다.
"이 사람은…… 아카자 마모루 씨. 쿠로가네가 분가의 당주님이야."
"윽──!"
그 말만 듣고서 이 인물이 어떤 존재인지 사정을 아는 스텔라에게는 전해졌다.
스텔라는 빳빳하게 위협하는 고양이처럼 솜털을 세우며 험악한 표정을 방문자에게 보냈다.
그 공기가 얼얼할 정도로 험악해서, 아카자를 안내해왔던 카나타는 당황스러워했다.
"저기, 무슨 일 있습니까?"
그렇지만 한편으로 적의를 받고 있는 0}카자 본인은,
"음훗후.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지 말아주십시요오. 저 역시 싫다고요오. 당신 같은 등신을 위해서 오쿠타마 변두리까지 발을 옮기다니 말이죠오."
전혀 주눅이 든 기색도 없이, 그 쓸데없이 진기한 얼굴에 웃음을 붙이며 공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그 노골적인 모멸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있던 사정을 모르는 학생회 사람들도 이 방문자가 잇키에게 명확한 적의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이 자는 잇키의 적이다.
그렇다면 동료를 생각하는 토카로서는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당신, 대체 뭡니까?! 그런 말투, 실례되지 않습니까?!"
그녀는 곧장 무례한 방문자에게 위협의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이거 이거 소문으로 이름 높은 '뇌절' 양. 좋은 낮입니다. 아아, 벌써 시간으로 따지면 좋은 저녁일까요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아. 잇키 군을 도우러 가주었던 모양이로군요오. 거참 주어진 임무 하나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쓸모없는 녀석이라서 면목 없습니다. 일족을 대표해서 사죄드리겠습니다. 이렇게요."
"아, 아무도 그런 일을 해달라고는──."
"정말로 면목 없습니다아."
아카자는 토카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토카의 말 따위는 전혀 듣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잇키를 깎아내리는 주장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 너무나도 노골적인 악의에 토카는 곤혹스러워서 할 말을 잃었다.
다른 학생회 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잠시 침묵이 찾아온 참에 지체 없이 아카자는 고개를 들고서,
"뭐, 일단 그 일을 제쳐두고서, 서들러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산속에는 모기가 많아서 당해낼 수 없으니까 말이죠오. 음훗후. 오늘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말이죠오, '기사 연맹 일본 지부의 윤리위원장'으로서 잇키 군에게 무우척이나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 입니다아."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표정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가늘어진 눈꺼풀 안쪽에 깃든 빛은 너무나도 거무튀튀해서, 그의 용건이 변변치 않다는 사실은 들을 것도 없이 알았다.
그렇지만 하는 말을 들어야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래서 잇키는 재촉했다.
"새삼스럽게 제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겁니까."
"음훗후. 뭐, 말보다는 이것을 봐 주시는 편이 빠르겠지요. 보세요, 보세요. 오늘자 석간신문입니다아."
건네받은 것은 여러 개의 신문기사.
대체 여기에 무엇이 쓰여 있고, 어떻게 자신과 관계가 있다는 것인가.
잇키가 묘한 불안감을 느끼면서 그 중 하나를 펼치자──.
그곳에 나무를 배경으로 입맞춤을 나누고 있는 잇키와 스텔라의 사진이 일면에 게재되어 있었다.
◆◇◆◇◆
놀란 나머지 스텔라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그 사진에 시선이 못 박혔다.
"잇키, 이, 이건…………!"
틀림없었다.
학교의, 항상 잇키 일행이 트레이닝으로 이용하는 숲속의 트인 장소.
그곳에서 입맞춤을 나눴을 때의 사진이었다.
건네받은 모든 석간신문의 일면에 그 사진이 게재되어 있었다.
그랬다──폭로당한 것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교내에 있는 누군가에게.
"자알 찍혔죠? 얼굴도 또렷하고 선명하게. 밤인데도 요즘 카메라는 무섭네요오. 음훗후. 산속이라서 모르겠지만요오? 항간에서는 지금 야단법석이라고요오. 국빈에게 손을 대다니 전대미문의 불상사니까 말이죠오."
"자, 잠깐 기다려!"
스텔라는 신문을 낚아채서 호통과도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이, 이 기사는 대체 뭐야! 뭐야, 이 엉터리는!"
그렇게 호통치고서 그녀가 가리킨 부분은 '공주의 순결을 빼앗은 남자', '버밀리온 국왕 격노', '일본과 버밀리온의 국제 문제로 발전하나?!'라고 사태의 중대함을 더더욱 부추기기라도 하려는 듯한 말이 날뛰고 있는 일면의 기사였다.
그곳에는 '쿠로가네'의 집안에서 제공했다고 하는 '쿠로가네 잇키'라는 인물의 인물평이 게재되어 있었다.
예전부터 소행이 나빠서 쿠로가네가를 곤란하게 했던 문제아이자,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이라고.
더 나아가서는 여자버릇도 굉장히 나빠서, 스텔라 말고도 여러 명의 여학생과 헤픈 교제를 행하고 있다고.
그것은 밑도 끝도 없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이 기사에는 그 새빨간 거짓말도 진실이라는 양 장황하게 쓰여 있었다.
'쿠로가네 잇키는 예전부터 꼬리표가 달렸던, 인격적으로 문제 있는 남자다'라고.
그런 내용을 보고서 스텔라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격앙하는 스텔라에게 아카자는 어디까지나 히죽히죽 거리는 웃음을 무너뜨리지 않고서,
"아뇨, 아뇨. 그건 전부 사실이랍니다아. 공주님께서 모르실 뿐이죠. 당연합니다. 자신이 변변치 않은 인간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자는 없으니까 말이죠오. 그러나 우리들은 그의 됨됨이를 예전부터 잘고 있습니다. ……집안사람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는 건 정마알로 가슴이 아플니다만, 이 작자는 예전부터 어찌할 도리도 없는 악당이라서, 상해, 절도, 공갈 따위도 있습니다. 보세요, 여기에 피해자의 코멘트가 실려 있잖습니까. 음훗후."
"이런 거 전부 꾸며낸 거잖아! 잇키가 그런 일을 할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 잇키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알아!"
"음훗후. 뭐, 공주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든지 사실은 이렇게 기사화 된 겁니다.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명백하겠지요오. 실제로 이 일보를 받고서 잇키 군의 기사로서의 자질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연맹 쪽에서도 강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긴급하게, 연맹 일본 지부 쪽에서 이 일에 관한 사문회를 열게 되었는데 말이지요. 그 자리에서 잇키 군이 지닌 기사로서의 자질을 종합적으로 검증해서 만약 자질이 부적격하다고 판단했을 경우, 일본 지부에서 연맹 본부 쪽으로 잇키 군의 '제명'을 요청하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저는 잇키 군을 그 사문회에 데려가기 위해서 찾아온 겁니다."
그런 아카자의 태도을 통해 스텔라는 확신했다.
이것은 단순한 스캔들이 아니었다.
──잇키의 본가. 쿠로가네가가 행하는 명확한 악의를 품은 공격이라고.
그들은 이 스캔들을 최대한 이용해서 잇키의 기사로서의 입장을 공격해왔다.
스캔들에 편승하는 형태로 연맹 본부가 관리하고 있는 쿠로가네 잇키의 기사로서의 자격을 취소하고 추방 처분을 내리려고 한다.
쿠로가네 본가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 낙오자를 봉쇄하기 위해서.
"이건 '윤리위원회'의 정식 소집입니다아. 응해주지 않으면, 음훗후. 뭐, 잇키 군의 입장은 무척이나 나쁜 처지에 놓이게 되어버립니다아. ……물론, 와주시겠지요오. 잇키 군. 음훗후."
아카자는 잇키의 양 어깨에 손을 얹고서 끈적끈적하게 말했다.
그에 대해서 잇키는 잠시 침묵한 뒤,
"알겠습니다."
무언가 결심한 듯이 그렇게 답했다,
똑바로, 도전하는 듯한 각오 어린 눈동자로 아카자를 마주 바라보며.
그 잇키의 눈빛을 보고 스텔라는 감지했다.
자신의 연인에게 닥쳐오는, ……일찍이 없을 정도로 강대한 악의와 시련의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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