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역경의 '워스트원'
"어어 여러분, 오늘은 바쁘신 와중, 긴급한 소집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아.
오늘 모여주신 이유는 이곳에 있는 쿠로가네 잇키 군이 관례를 치른 성인이면서도 국빈과 불순 이성 교제를 가졌다는 지극히 비상식적인 불상사를 일으킴으로써, 일본 지부 내에서 그의 성인으로서의 책임능력과 윤리관에 의문을 품은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학생 기사에게는 평범한 15세 소년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다양한 권리가 부여됩니다.
그렇기에 그 권리에 걸맞은 책임감이 요구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따라서 당 윤리위원회도 이 의견을 배려해서, 이 자리에서 한 번, 쿠로가네 잇키 군의 기사로서의 자격에 문제가 없는지, 다시 엄밀하게 자세히 조사할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바쁘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이해와 협력을 해주시기를, 잘 부탁드립니다."
'국제 마도사 연맹 일본 지부'의 고층 빌딩.
그곳의 지하 10충은 일본에 있는 학생 기사·마도사들의 '윤리'를 감독하고 필요하다면 지도나 추방 처분을 신청하는, 이른바 '헌병'이라고 해야 마땅한 '윤리위원회'가 관리 하는 구획이었다.
그 구획의 한 방에서, 윤리위원회의 위원장인 아카자는 그 자리에 모인 장년의 신사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는 정면에 선 쿠로가네 잇키를 향해 한 번 진득하게 끈적거리는 웃음을 보내며,
"──그럼. 지금부터 사문회를 열겠습니다. 여러분, 자리에 앉아주십시오."
사문회의 시작을 알리고서 자리에 앉기를 재촉했다.
그렇지만 잇키의 옆에는 의자가 없었다.
앉는 이는 신사들뿐.
……쪼잔한 괴롭히기였다.
잇키는 몇 시간이나 이어지는 사문 동안, 줄곧 계속해서 서 있기를 강요당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정도로 앓는 소리를 낼 만큼 어수룩하게 단련하지는 않았기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 쳐도, 공기가 탁한 곳이로구나.'
잇키는 조명이 거의 밝혀지지 않은 실내를 관찰했다.
실내에는 자신을 ㄷ자로 에워싸듯이 긴 책상이 늘어져 있었고, 그곳에 아카자를 필두로 한 양복 차림의 신사들이 앉아있었다.
정면에 세 사람. 좌우에 한 사람씩. 총 다섯 명이었다.
그 누구나 붉은 양복을 입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그들이 '윤리위원회'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딱딱해질 것 없어요오. 처음부터 말해 두겠습니다만, 이곳에 있는 우리들은 전원, 당신의 편이니까 말이죠오."
잇키가 '윤리위원회'의 전력을 탐색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아카자가 얼버무렸다.
"이 사문회는 당신을 규탄하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국빈과 불순 이성 교제를 가졌다는 전대미문의 불상사를 일으킨 당신의 변명을 제대로 들어주겠다고 하는, 우리들, 더 나아가서는 당신의 아버님이신 장관의 다정함에 의해서 열린 석명의 자리. 즉, 이곳에는 당신의 편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지요오, 여러분."
"그래. 이곳에 있는 전원이, 너에게 아무런 석명도 하게 하지 않고서 '추방 처분'을 하는 건 안쓰럽다고 생각해. 뭔가, 상당히 노력해서 이제 한 걸음 더 가면 칠성검무제에 출전할 정도로 온 모양이니까 말이지. 그 노력을 허사로 만들고 싶지 않아."
"…………감사합니다."
잘도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놓는구나.
어떤 의미에서 감탄했다.
"그럼, 우리들이 잇키 군의 편이라는 사실을 이해받았으니 우선 사실 확인부터 하죠. 잇키 군이 버밀리온 황국 제 2황녀, 스텔라 버밀리온 양과 남녀의 관계에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까아?"
"예. 사실입니다."
"음훗후. 정직해서 좋군요. 그 교제는 언제쯤부터 시작된 겁니까?"
"마침 칠성검무제 대표 선발전이 개시되었을 무렵입니다. 제 첫 싸움이 끝난 날 밤입니다."
딱히 거짓말을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잇키는 정직하게 그렇게 답했다.
그러나 그 답에 위원회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경멸의 표정을 띠웠다.
"호오. 만나고서 얼마 되지 않은 사이에 교제를 시작한 거로군요오."
"흥. 실로 요즘 젊은이로구만. 경거망동도 대단해."
"우리들이 젊었을 적에는, 좀 더 천천히 시간을 거쳐서 서로의 관계를 발전시켰으니 말이죠오."
"요즘 젊은이들은 마치 원숭이 같군요. 뭐였더라, 속도 위반 결혼이라든가 임신혼이라든가."
"실로 한심스러워."
마치 잇키와 스텔라가 혼전 교섭이라도 한 것 같은 말투였다.
물론 잇키는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 커플치고는 너무 플라토닉일 정도로 교제 방식을 유지해왔다.
그것은 스텔라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기에.
그녀의 공주라는 입장이 무척이나 민감한 위치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런 트집은 무척이나 화가 났다.
"실례하겠습니다만, 저희들은 신문이나 당신들이 말한 것 같은 불순한 일은 아무것도──."
"잇키 군, 잇키 군.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마안, 발언은 이쪽이 허가했을 때에만 해주십시요오. 그렇지 않으면 심증이 나쁘게 기울어버립니다아. 음훗후."
"……윽, 실례했습니다."
아카자에게 발언을 방해받아서, 잇키는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다.
그런 잇키에게 왼쪽에 앉은 눈매 사나운 턱수염의 남자가 다소 퉁명스러운 말투로 물어왔다.
"흥. 아무래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이니 질문해주겠는데, 너는 일국의 공주와 불순 이성 교제를 가졌다는 사실을 비상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건가? 국제 문제로도 번질 우려가 있는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성욕이 남아 도는 나이인 건 알겠지만, 놀아날 상대를 고르는 정도의 이성은 발휘되지 않았던 건가?"
"놀이로 스텔라와 사귄 것은 아닙니다. 저희들은 진지하게 서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흥, 역시 어린애로군."
"음훗후. 저에게도 있었지요오. 첫사랑의 여자가 생애 유일한 상대라고 생각했던 적이. 이야아, 젊음이란 좋군요오."
"말씀 드리지만, 저도 스텔라도 이미 관례를 치른 성인 입니다. 결혼할 권리도 있습니다. 서로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 지극히 평범한 일이 아닐까요."
"억지부리냐. 상당히 반항적인 태도로군,"
"너어, 이런 태도는 좋지 않아."
"심증 악화, 라고요. 음훗후."
무언가를 손가에 있는 용지에 써 넣는 아카자.
그 광경, 그리고 주위의 장년들의 이쪽의 변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태도를 보고서,
'알고는 있었지만…… 지독한 촌극이로군.'
잇키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잇키가 지닌 성인으로서의 책임능력를 물으면서, 잇키에게 있어야 마땅할 성인으로서의 법적권리는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에서만 잇키를 성인으로 취급한다.
그 윤리위원회 사람들의 태도를 통해 잇키는 확신했다.
이것은 자신이 지닌 기사로서의 자질을 자세히 조사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이 자리는 '쿠로가네 잇키에게는 기사로서의 자질이 없다'라는 결론이 있었고, 그 결과를 보강할 재료를 모으기 위한 자리.
말하자면 이단 심문인 것이라고.
'……뭐, 그런 건 그 석간신문을 보았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애당초 처음 단계에서부터 이상한 이야기였다.
일국의 공주에게 유학지에서 연인이 생겼다.
그야 확실히 스캔들이 될 만한 이야기라는 사실은 틀림없었다.
소동이 벌어지는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다음부터 잇키가 가진 기사로서의 자질을 묻는 흐름으로 빠지는 상황은 이상했다.
아까 전 잇키가 주장한 바대로, 잇키도 스텔라도 두 사람 모두 이미 어린이가 아니었다.
법적으로 결혼할 권리를 인정받은 성인 남성과 성인 여성이었다.
말하자면 두 사람의 연애는 법 아래에서 인정된다.
잇키와 스텔라의 마음이 정해진 이상, 설령 버밀리온 황국의 왕, 즉 스텔라의 아버지가 그 일에 불쾌감을 표시한다 해도, 그 일은 우선 처음으로 당사자 사이에서 대화를 가져야 마땅한 안건이었다.
그런데도 그것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외야에서 잘못되었다는 둥 불상사라는 둥 하고 외치고, 모든 지면이 발을 맞추어 잇키의 기사로서의 자질에 의문을 던지는 것은 명백히 이상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째서 그런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유는 간단했다.
이 소동에 자의적인 의도를 엮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 틀림없었다.
'여전히 번거로운 일을 하네.'
그러나 잇키도 그들이 좋아서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모든 학생 기사·마도 기사는 그 적을 국제 마도 기사 연맹 본부에 두고 있었다.
이는 전쟁 억지 외에도 초국가기 관에 기사의 적을 둠으로써 출국 수속을 간략화해 유사시에 곧장 서로 도울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나, 만일 전쟁이 발생해버렸을 경우에도 연맹의 감독 아래 원활하게 그 국가의 기사들에 의한 '관리된 대리전쟁'을 치르게끔 하기 위해서 등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이야기는 그다지 관계없었다.
중요한 것은 연맹 본부에 적을 둔 학생 기사·마도 기사의 기사 자격을 각국 정부나 각국의 지부가 독단으로 정지·박탈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일본 지부장인 쿠로가네 이츠키도, 헌병에 해당하는 윤리위원회장인 01카자도, 그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번거로운 수단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1년 전에 쿠로가네 잇키에게 '사냥꾼'을 부추긴 것처럼.
밀실에서 잇키를 추궁함으로써 잇키 자신의 입에서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취했다라는 언질을 얻는다.
그 언질을 얻을 수 없어도, 태도가 나쁘다.
자세가 나쁘다.
눈매가 나쁘다.
말투가 거칠다.
무엇이든 좋다.
어쨌거나 잇키의 심증을 나쁘게 만들 정보를 얻어서, 연맹 본부에 제출하는 '제명 신청'의 뒷받침으로 삼는다.
그것이 아카자 일당의 노림수였다.
잇키는 상황을 그렇게 읽었다.
그렇다면 이쪽의 주장을 반복하기보다 말꼬리를 잡히지 않게끔 내버려두는 편이 무난했다.
그 사실은 잇키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당신들의 심증이 좋든지 나쁘든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은 일입니다. 저는 스텔라를 진지하게 사랑하고 있고, 스텔라도 저를 진지하게 사랑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들이 잘못된 행동을 취했다고는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잘못되었다라는 말을 듣지 않겠습니다."
어디까지나 대항하는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당연했다.
잇키는 자신이 그 사랑스러운 여자아이에게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끌어안을 때, 키스를 할 때, 어떤 멋진 웃음을 띠우는지를 안다.
그렇다면 그것을 불상사라고는 말하게 내버려두지 않겠다.
잘못되었다고 말하게 내버려두지 않겠다.
그것을 우격다짐으로 잘못으로 만들려는 자가 있다면, 그 자의 앞에서 침묵을 관철하는 일 따위는 남자가 취할 행동이 아니었다.
그래서 잇키는 이 사문회에 발을 옮겼다.
'──나는 스텔라에게 말했어.'
누구의 앞에서라도 가슴을 펴고서 스텔라를 좋아한다고 말하겠다고.
그래서 물러서지 않는다.
입을 다물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남자들이 이쪽의 주장에 처음부터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다면, 그렇다 해도 크게 상관없다.
딱히 이런 패거리에게 인정받으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저, 주장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그 마음에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기에.
◆◇◆◇◆
잇키가 '윤리위원회'에 끌려가고서 그 신병을 구속당한지 사흘.
스텔라는 흡사 분화하기 직전의 화산 같은 존재였다.
항상 눈썹을 치켜 올리고서 언짢아 보이게 얼굴을 찡그리고, 머리카락에서는 불꽃처럼 빛을 흩뿌렸다.
이 스캔들에 흥미를 가지고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학생은 많았지만, 지나친 압박감에 다가가기도 건드리기도 무서워서 아무도 그녀의 주위에는 다가서지 않았다.
사람으로 붐비는 점심시간의 식당에서도, 스텔라의 주변 자리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당사자인 본인은 그런 사소한 일을 신경 쓸 수 있을만한 정신 상태가 아니었지만,
"모처럼 감기가 완치되었는데, 상당히 살기를 뿜어대네, 스텔라."
그런 스텔라에게 주눅 들지 않고서 말을 걸며 옆에 앉은 사람은 큰 키에 마른 체구를 한 미인 아리스인 나기였다.
멀리서 "아아, 나기 님, 무슨 위험한 행동을"하고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른 이는 아마도 그의 팬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조바심이 났다고 해도, 스텔라도 화풀이로 친구를 상처 입힐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다만, 아무래도 태도와 말투는 거칠어졌다.
"……당연하잖아. 그런 제멋대로 쓴 엉터리 기사를 냈는데, 웃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스텔라가 말하는 '그런'이란, 그날 보았던 석간신문의 내용이었다.
새빨간 거짓말로 잇키에 대해서 헐뜯고, 자신에 대해서 악인에게 속은 골 빈 여자처럼 써댄 정보지.
그 지면을 떠올리기만 해도 배알이 뒤틀렸다.
"지독하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 나라의 매스컴 수준이란 정말로 최저로구나."
그렇게 스텔라가 내뱉자,
"냐하하……. 귀가 따갑네에."
또 한 사람, 안경을 쓴 여학생이 겸연쩍어 보이는 얼굴을 하면서 스텔라의 옆에 걸터앉았다.
"카가미……."
"나도 함께 먹어도 될까?"
"그래.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여기만 상당히 비어있는걸."
"냐하하. 고마워."
감사 인사를 한 다음 자신의 점심 식사인 샌드위치를 얹은 쟁반을 테이블 위에 놓고서, 쿠사카베 카카미는 면목 없어 보이는 표정을 지은 채 말을 이었다.
"뭐, 스텔라가 화내는 것도 당연해. 그야 버밀리온의 공주님이 유학지에서 연인을 만들었다 라니 스캔들이잖아? 그렇지만 '고작해야 신문쟁이'가 '공주님'의 판단을 제쳐두고서, 두 사람의 교제를 '불상사' 취급을 하다니 너무 실례되는걸. 이쪽이 더 국제문제야. ……뭐, 그쯤은 알면서 보도하는 거겠지만."
"어머? 그런 거야?"
"…나, 조금 신문쟁이 바닥에 얼굴이 통해서 그 인맥을 써서 조사해왔는데, 역시 '윤리위원회'쪽에서 상당히 강한 압력이 들어왔던 것 같아. '버밀리온 황국 황녀의 스캔들'을 불상사로 보도해서 마이너스 이미지를 만들게끔 하라고. 여기에서만 하는 이야기인데, '윤리위원회'는 'KOK(King Of Knights)'을 필두로 하는 공식 기사 흥행의 속보 게재권한을 빼앗겠다고 협박해온 듯해."
"……'KOK'는 연맹이 총괄하니까 그런 협박도 가능한 건가. 과연 그렇구운."
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엔터테인먼트의 속보를 게재 할 수 없다.
그것은 정보지의 매상에 쇼크사마저 일으킬 우려가 있을 정도로 큰 타격을 주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이는 심장에 비수를 찔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어쩔 수 없다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카가미가 알려준 그 사실은 '윤리위원회'와 더 나아가서는 그 배후에 있는 쿠로가네 이츠키가 진심으로 잇키의 기사 자격을 빼앗으려고 나섰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믿을 수 없어……."
그들의 본심을 알고서, 스텔라는 그런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잇키는 고작 1학년이잖아! 그런 잇키를 몰아넣기 위해서, 잇키의 아버지는, 일본 지부의 장관은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이?!"
그것에 대체 무슨 이점이 있나?
잇키가 이런 형태로 규탄 받으면 쿠로가네라는 가문의 이름에도 흠집이 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을 무릅쓰고서라도 잇키를 몰아세우려 하는 그 이유는 무엇인가.
"친자식인데, 어째서──."
"그런 아버지니까요."
그에 답한 목소리는 학생식당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서 반대쪽.
마침 스텔라의 맞은편에서 다가왔다.
방울소리 같은 작고 가련한 음성.
그것은,
"그런 인간이니까 한다.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어요."
"시즈쿠…………."
"솔직히 말해서 아버지가 무슨 생각올 하는지, 어째서 그렇게까지 오라버니를 까닭 없이 싫어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일그러짐이 제 이해를 뛰어넘었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그렇기에 무슨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담담하게 그런 차가운 사실을 알리면서, 시즈쿠는 자신의 점심 식사인 일본풍 정식이 담긴 쟁반을 테이블 위에 두었다.
그리고 스텔라의 정면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 그녀에게 스텔라는 살짝 말하기 껄끄러워하면서도 자신이 해야할 말을 전했다.
'뇌절'과의 시합 이후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기에 할 수 없었던 말──.
"저기, 시즈쿠………… 미안해. 우리들의 일을 입 다물고 있어서."
스텔라는 시즈쿠가 얼마나 강하게 오빠를 사랑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규탄을 받아도 별 수 없었다.
스텔라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각오였다.
그러나 시즈쿠의 반응은 놀랄 만큼 산뜻했다.
"별로 상관없어요. 그렇다기보다 알고 있었고요."
"어?"
"한눈에 보고 알았어요. 오라버니의 데뷔전의 밤을 경계로 두 사람의 관계가 바뀌었다는 사실은. 그렇지, 아리스."
"후후, 뭐, 상당히 알기 쉬웠지이."
"응, 응. 뭐, 실은 나도 눈치채고 있었다고 할까~."
"우아…………."
어쩐지 묘하게 부끄러워져서 스텔라는 신음했다.
그렇게 자신들은 알기 쉽게 알콩달콩 거린 것일까.
방 안에서라든가 숲속이라든가, 일단 남들 눈은 피할 셈이었는데,
"스텔라 양에게는 입장이 있어요. 공표하면 반드시 소란스러워지죠. 칠성검무제로 바쁜 시기에 그런 소린을 피하고 싶다는 두 사람의 생각은 이해할 수 있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래서 별로 그 일을 탓할 생각은 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할까 하는 쪽이에요."
그렇게 말하고서 시즈쿠는 스텔라의 옆에 앉은 카카미에게 시선을 보냈다.
"쿠사카베 양. 아무래도 이미 이야기의 분위기로 보아 우리 집안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만."
"냐하하. 정보는 저널리스트의 라이프라인(생명줄)이니까 말이지. 뭐, 그 부근의 사정도 그럭저럭은."
"그렇다면 툭 터놓고 물어보겠습니다만, 이번 같은 케이스에서 오라버니가 '추방 처분'을 당하는 일은 있을 수 있습니까?"
시즈쿠의 물음에 대해서 카가미는 머뭇거림 없이 단언했다.
"현 상태에서는 있을 수 없어."
"어머. 그래?"
"왜냐하면 아리스. 딱히 선배도 스텔라도 나쁜 일을 한 건 아니잖아? 아까 전에도 말했지만 일개 신문쟁이 나부랭이가, 황족인 스텔라의 마음을 제쳐두고서 '불상사'라니 실례에도 정도가 있어. 이 이야기는 애당초 '버밀리온의 공주님이 유학지에서 연인을 만들었다니. 꺄아, 그건 어떤 사람일까? 와아와아'로 끝날 이야기야. 그걸 억지로 '불상사'라는 문제로 만들고 싶은 패거리가 공연히 소란을 부추기고 있어. 그런 구도라서 그 패거리 쪽에 정당성 따위 한 톨도 없어. 지금 상황에서는 그저 규모가 큰 트집일 뿐이야. 그렇다고 해도, 그 부분은 패거리 쪽도 알고 있기에 이런 인상 조작이나 사문회에서의 꼬투리잡기 따위를 하고 있는 거겠지만 말이야. 다만, 선배 역시 바보가 아니니까 좀처럼 간단하게 꼬투리 따위는 잡히지 않을 거고, 현 상태에서 동맹 본부가 '추방 처분'을 취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워. 연맹에서도 '추방 처분'이란 건 정말로 최후의 수단이니까."
"최후의 수단? 있잖아, 카가미, 그건 무슨 뜻이야?"
"연맹은 학생 기사·마도 기사 불문하고,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추방 처분'을 피하고 싶어 해. 스텔라에게도 알기 쉽게 말하자면, 봐, 돈로 학원의 쿠라시키라고 있었잖아."
"어어."
"그 사람도 상당히 꼬리표가 붙었지만, 그래도 연맹에서의 대응은 엄중 주의에 그쳤어."
"……상당히 가볍구나."
"그것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까요?"
끄덕, 카가미는 고개를 주억이며 시즈쿠의 물음에 답했다.
"'추방 처분'을 받는 기사는 대부분 범죄자가 되니까."
면허를 취득한 마도 기사는 물론이고 학생 기사 역시 이능의 힘으로 출세하려고 하는 블레이저이다.
그런 사람이 그 권리를 영구적으로 빼앗기는 '추방 처분'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답은 상당히 높은 확률로 블레이저의 능력을 위법에 사용하는 능력 범죄자가 되어 버린다.
그것은 이미 여러 번이나 한 조사에서 통계로 나온 분명한 사실이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이건 '추방 처분'이 될 만한 일을 저지른 인간성에도 크게 관계가 있는 부분이지만, 줄 없는 광견보다도 줄을 맨 광견 쪽이 안전하잖아? 그래서 연맹은 '모든 기사를 감시 아래'에 두고 싶은 거야. 그런 연맹의 의지를 받아서, 이미 거의 대부분의 연맹 가맹국은 국내의 블레이저가 전원 기사의 길을 나아가게끔 법 정비를 하고 있어. 일본은 아직 인권단체의 목소리가 커서 그렇게까지 단행하지는 않았지만."
요컨대,
"간단히 말하자면 '추방 처분'이란 건, 연맹이 스스로 범죄자를 만들어서 풀어주고 마는 방법이야. 그래서 연맹도 '추방 처분'의 결단에는 상당히 엉덩이가 무거워. 특히, 아직 배우는 입장에 있는 '학생 기사'에 대해서 '추방 처분'을 취하는 것은 상당히 희귀한 케이스야."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번에 '윤리위원회'는 상당히 진심으로 이 희귀한 케이스를 일으키려고 하고 있어. 그래서 나도 걱정이야. 선배가 지금 어떤 꼴을 당하고 있을지."
사문에 응하는 태도나 말투의 꼬투리잡기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윤리위원회'의 '심증'에 머문다.
그렇지만 잇키 본인이 '자신이 경솔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진실'이 되어버린다.
그 진실은 '추방 처분'에 대한 강력한 뒷받침이 된다.
그래서 '윤리위원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말을 얻으려고 들 것이 틀림없었다.
"""…………."""
카가미의 갸륵한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윤리위원회'의 사문은 햇빛이 닿지 않는 지하 깊숙이에서 행해진다.
그곳은 쿠로가네 이츠키의 그늘.
그리고 '윤리위원회'는 대대로 쿠로가네가의 혈통이 그 지위를 독점해온, 말하자면 성역이었다.
주위에는 쿠로가네 측의 인간뿐이다.
그런 곳에서 잇키가 제대로 된 취급을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정말로 이단 심문처럼 몸에 상처를 입힐 만한 짓은 하지 않겠지만, 사람을 몰아넣는 방법 따위는 그밖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윽.'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스텔라의 뇌리에 불길한 상상이 휘몰아쳤다.
사실, 요 사흘 동안 그녀는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눈을 감아버리면 어두운 땅속에서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 어떤 꼴을 당하고 있을지를 상상해버렸기에.
그렇지만 그것은,
'……전부, 내 탓이기도 해.'
자신이 평범한 여자아이였다면.
잇키의 적에게 이용당할만한 일도 없었을 터인데.
그런 어찌할 도리도 없는 후회가 서서히 번졌다.
자신이 잇키의 무거운 짐이 되었다.
칠성검무제의 출전권이 걸린 이 중요한 시기에 발목을 잡아당긴다.
그것이 괴롭고 괴로워서──.
"나는, 잇키와 헤어지는 편이 좋을까……."
스텔라의 입에서 불쑥 그런 약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왜냐하면…… 내 탓이잖아. 내가 보통 여자아이였다면 이런 일은──."
"스텔라!!!!"
순간, 스텔라의 귀를 꿰뚫은 것은 비명처럼 날카로운 아리스인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등골이 떨리는 전율을 느끼고, 스텔라는 화들짝 놀라 내리깐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흡사 나이트랜스(기사창)처럼 날카로운 고드름의 끝이 눈앞에 다가와 있다는 사실을!
"────윽!!!!"
스텔라는 어느새 반사적으로 '엠프레스 드레스(비룡의 날개 옷)'을 두르고서, 양손을 교차시켜서 얼음 창의 일격을 막았다.
그러나 그 일격은 빠르고 무거워서 스텔라의 몸을 지면에서 떼어내어 식당의 벽으로 박아 넣어 부수었고, 스텔라의 몸을 식당 밖으로까지 날려버렸다.
"꺄아아아아!"
"뭐, 뭐야, 갑자기!"
갑작스러운 사태에 식당은 혼란에 빠졌다.
그 소란스러운 소리 속에서 스텔라는 얼음 창을 받은 자신의 팔을 만지고,
"윽."
뼈가 아리는 아픔에 얼굴을 찡그렸다.
팔의 뼈에 금이 간 모양이었다.
총탄마저 증발시키는 스텔라의 불꽃을 가지고서도, 그 예리한 끝 부분을 둥글게 녹이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이었다.
그 정도로 뛰어난 물의 마술.
그런 것을 쓸 수 있는 인간은 이곳에 한사람뿐이었다.
"뭐, 뭐하는 거야, 시즈쿠!"
스텔라는 부상당한 팔을 감싸면서, '요이시구레'를 손에 들고서 테이블 위에 떡 버티고 선 시즈쿠에게 고함쳤다.
그에 대해서 시즈쿠는,
"당신이야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요?"
'…………!'
시즈쿠의 눈동자를 눈으로 본 스텔라의 등줄기에, 아까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율이 내달려지나갔다.
말투는 조용했고 그 표정도 평소처럼 새침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시즈쿠의 눈동자에는 일찍이 본 적 없을 만큼 차가운 빛이 깃들어서,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얼어붙은 분노를 품고 있었다.
"당신은, 오라버니가 어째서 그런 촌극에 어울리는지 모르는 건가요? 오라버니는 심문에 응하지 않고서 침묵을 관철한다는 선택지도 있었어요. 어차피 심문 따위 이름뿐인 이단 심문일 뿐이니까 말이지요. 결과가 정해진 촌극. 그 패거리는 오라버니가 무슨 말을 해본들 귀 기울이지 않아요. 그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주장하러 간 건, 당신과의 관계를 천박한 의도로 더럽힌 것이 그만큼 참을 수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당신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런 것도 이해하지 못 하고서 오라버니를 배반한다고 하면──저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겠어요."
그 차가운 격정은 스텔라에게 자신의 실언을 자각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미안. 지금 한 말은 내가 어리석었어."
스텔라는 순순히 시즈쿠에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무슨 한심한 소리를 한 걸까.'
아직까지 자신과 잇키의 관계를 '잘못되었다고 인정했다'라는 이야기는 나돌지 않았다.
그것은 잇키가 적진의 한 가운데에서 아직까지 자신과의 관계에 계속해서 가슴을 펴고 있다는 증거였다.
적의 의도는 잇키의 책임능력에 의문을 드러내서 '기사'라는 성인으로서의 입장을 빼앗는 일이었다.
따라서 잇키에게서 스텔라와의 교제에 대해서 '경솔했다', '잘못했다' 따위의 부정적인 언질을 얻으면 그것을 공표할 것이 뻔했다.
그 말은 잇키 자신이 '자신은 책임능력이 부족한 어리석은 자다'라고 인정했다는 증거가 되기에.
『누구의 앞에서도, 가슴을 펴고서 스텔라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으니까.』
잇키는 그때 한 말을 지금 그야말로 실천해주고 있었다.
그만큼 강하게 자신을 사랑해준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그의 강한 마음에, 자신은 어떻게 답하면 좋을까.
'나만이 할 수 있는, 내가 해야 마땅한, 단 한가지 일──.'
그것은──.
"정말이지 너희들 두 사람은 가볍게 교사를 파괴해 주는군."
문득, 한숨 섞인 목소리가 스텔라와 시즈쿠에게 들렸다.
다소 허스키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술렁이는 학생들 사이를 가르고서 두 사람 앞까지 걸어온 신구지 쿠로노였다.
"고치는 이쪽의 입장도 생각해주면 좋겠어."
푸념처럼 말을 홀리면서, 쿠로노는 시즈쿠가 뚫은 큰 구멍에서 밖으로 나오더니,
탁.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여기저기 흩어진 벽재의 조각이 떠올라서, 스텔라가 뚫려 나온 구멍으로 모여들어 갔다.
마치 비디오를 되감기하는 것처럼.
몇 초 후, 큰 구멍은 깔끔하게 막혔다.
"이걸로 됐어."
자신이 한 일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쿠로노는 자신의 시선을 막힌 벽에서 주저앉은 스텔라에게 향했다.
그리고,
"버밀리온. 쿠로가네의 문제로 잠시 할 이야기가 있어. 이사장실까지 따라와 주겠나."
그녀에게 자신의 일터로 오라고 말했다.
◆◇◆◇◆
담배 냄새나는 이사장실에 스텔라를 불러들인 쿠로노는 그녀를 손님용 소파에 앉혔다.
그리고 자신은 테이블을 사이에 끼고서 반대쪽에 있는 소파에 걸터앉고서,
"상당히 일이 성가시게 되어버렸구나."
미간에 주름을 새기며 한숨을 흘렸다.
피곤함이 보인 이유는 잇키와 스텔리를 같은 방으로 정한 책임자로서 역시 무언가의 추궁이 불똥 튀었기 때문이리라.
그야 이 남녀 동실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스텔라는 여전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지라, 동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지…………!'
모처럼 기회니까 상대방이 용건을 꺼내기 전에 신경 쓰였던 점을 물어 보자고 생각하고, 스텔라는 앞서서 물음을 던졌다.
"……이사장님. 잇키의 선발전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설마 부전패가 되는 건 아니겠지요?"
"그런 건 내 명예를 걸고서도 내버려두지 않아. 쿠로가네의 시합은 연맹 일본 지부의 모의전장으로 대전 상대를 파견해서 치르도록 되어있어. 물론 심판으로 본교의 교사도 한 사람 동반해. 녀석들에게 심판 따위를 맡기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깐 말이야."
"응원하러 갈 수는 없을까요?"
"아니, 그건 무리야. 심문이 끝날 때까지, 일체의 면회는 금지인 모양이야."
"완전히 감금이네요……."
그렇지만 부전패를 당하게는 하지 않는다는 쿠로노의 확실한 약속은 마음 든든했다.
역시 이 감금 상태에서 부전패 취급을 하는 것은 심하다.
한 가지 걱정거리가 줄자 스텔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이번에는 쿠로노를 재촉했다.
"그래서, 제게 무슨 용건이신가요?"
그에 대해서 쿠로노는 "이아"하고 짧게 답하고서 용건을 꺼내왔다.
"이번 일건에 대해서, 버밀리온의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듣고 싶어서 말이지."
어째서 그런 일을 쿠로노가 신경 쓰는 것일까.
그런 의문은 들었지만 딱히 숨길만한 일은 아니라서, 잇키가 끌려간 다음 전화로 통화를 했을 때 보인 양친의 반응을 스텔라는 정직하게 이야기했다.
"어머님께서는 제 판단에 이해를 표해주셨어요. 그렇지만…… 아버님 쪽은 전혀 안 돼요. 굉장히 화내고 계세요. '나에게 허락도 없이 딸에게 손을 대다니 용서 못 한다!'라고요."
"사랑받고 있구나."
"자식에게서 떨어지지 못 하는 거예요. 그렇게 험악하니, 가까운 시일에 일본으로 쳐들어올 것 같아요."
"그건 언제쯤이지?"
"3주 후쯤일까요."
"마침 선발전이 끝났을 무렵이구나. ……그게 우리들 쪽의 골이다."
"골?"
쿠로노가 중얼거린 말에 스텔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골이라니 어떤 의미일까 하고.
그런 스텔라에게 쿠로노는 스스로 중얼거린 말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버밀리온 국왕 본인이 방문해오면 아무래도 면회 거절도 사문희도 할 수 없을 테니까. '붉은 옷' 패거리도 쿠로가네를 표면에 드러낼 수밖에 없게 돼. 그리고 그곳에서 너를 포함한 당사자끼리의 대화가 이루어지게 된다면, 반드시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은 나올 거야. 지금 떠도는 쿠로가네가 '불상사'를 일으켰다는 녀석들의 논조는 당사자끼리의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동안 멋대로 불어넣었을 뿐인 억측에 지나지 않아. 버밀리온 국왕 본인이 쿠로가네를 인정하면 녀석들의 논거는 근거부터 뒤집혀.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이쪽이 녀석들을 추궁할 차례다."
"반격하는 건가요?"
"당연하지. 내 구역에서 내 학생에게 트집을 잡았어. 죽을 만큼 후회하게 만들어주지."
그 말과 쿠로노의 표정에 스텔라는 살갗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무섭구나…….'
가까이 있기만 해도 숨이 막혔다.
현역에서 물러서도 시들지 않은 이 박력은 과연 일찍이 세계에서 세 번째까지 강해졌던 기사였다.
'그렇지만, 확실히 그건 골이네.'
'붉은 옷'인 '윤리위원회'의 주장은 잇키가 국제문제로 번질 우려가 있는 경솔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버밀리온의 원수인 아버지가 잇키를 인정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문제는 그 아버지가 얌전하게 딸의 연인을 인정할까 하는 점.
"……우우, 어쩐지 자신 없어요. 내 문제가 되면 정말로 말을 잘 알아듣지를 않아서요."
여하튼 중학생 시절, 학교 행사에서 산으로 캠핑을 가게 되었을 때, 곰의 모피를 껴입고서 숲에서 슬쩍 딸을 감시했던 아버지였다.
그때는 진짜 곰이라고 생각해서 없앨 뻔했다.
아니 뭐, ……그 정체가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대로 없애줄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런 부친이라서 잇키를 환영하는 비전이 보이지 않았다.
그 문제에 스텔라가 머리를 쥐어 싸고 있노라니, 쿠로노가 그녀치고는 드물게 모성이 느껴지는 다정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괜찮아. 너처럼 올곧은 딸을 키운 분이니까. 쿠로가네의 그릇을 몰라볼 리가 없어."
"…………."
근거가 있다고는 빈말로라도 할 수 없는 논리였다.
그러나 쿠로노의 말은 스텔라의 불안을 놀랄 만큼 산뜻하게 없애주었다.
그렇다. 나쁜 부친이 아니다.
스텔라도 부친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래서 스텔라는 생각했다.
그도 자신이 사랑한 남자를 좋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되면…… 좋겠네요."
"뭐, 면회 때는 버밀리온 쪽에서도 지원을 더해줘. '기혼자'로서 하는 조언인데, 딸의 양친에게 하는 인사는 케이크에 칼을 꽂기 전보다도 먼저 하는 공동 작업이니까. 남자에게 다 맡기지는 마. 저쪽에서는 자신의 딸이 남자를 어떻게 지키려고 하는지도 보고 있을 테니까."
"노, 노력하겠습니다."
"후후, 그래. 힘내라. ……그렇지만 말이지. 솔직히 좀 더 풀이 죽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힘차 보여서 안심했어."
"조금 전에 야무진 여동생이 활기를 넣어주었어요."
금이 간 오른팔을 어루만지며, 스텔라는 작게 미소 짓고서 그 가슴속에 한 가지 결의를 품었다.
그렇다. 남자에게 다 맡겨두다니 멋진 여자가 할 행동이 아니었다.
자신 또한 싸우겠다.
『누구 앞에서도, 가슴을 펴고서 스텔라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잇키는 자신과 나누었던 말을 지금 그야말로 실천해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내 약속을 지키겠어.'
◆◇◆◇◆
연맹 일본 지부 빌딩 지하 10층.
그곳에 있는 한 방에 쿠로가네 잇키는 구금되어 있었다.
"식사는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다. 내일도 아침 여섯 시부터 심문이 있으니 어서 자라."
붙임성 없는 말을 내뱉고 혈색이 나쁜 붉은 옷은 방에 전자 록을 잠그고서 떠나갔다.
낡아서 찌든 침대와 당장에라도 다리가 부러질 것 같은 테이블과 의자가 한 세트 있을 뿐이었고,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방.
그러나 하루 종일 사문회에서 선 상태로 방치되었던 잇키에게는 그나마 감지덕지였다.
그는 피곤함을 토해내듯이 긴 한숨을 쉬고서 그 낡아 빠진 의자에 걸터앉았다.
심문은 아침 여섯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행해졌다.
윤리위원회 쪽은 의자도 있었고 하루에 네 번 교대로 얼굴이 바뀌어서 피곤한 줄 몰랐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선 채로 방치된 쪽은 아무래도 피로가 쌓여왔다.
그런 상황이 일주일이나 이어지면 평소부터 잘 단련된 잇키조차 나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피로가 쌓인 이유는 그 때문만은 아니리라.
"정말이지 흰 쌀이 그리워지네."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흘리는 잇키의 시선 끝에는 그의 저녁 식사가 놓여 있었다.
변변히 않은 휴대 식품인 바가 두 개.
뒷면에 적힌 칼로리 표를 보면 확실히 두 개로 하루치 칼로리나 영양은 섭취할 수 있는 모양이었지만, 한창 먹을 나이인데다 기사인 잇키의 몸에는 도무지 부족했다.
이곳에서 식사는 매끼 이것뿐이라서, 잇키는 만성적인 공복에 괴로워했다.
더 나아가서는,
"그리고, 여전히 마실 게 없다니."
수분의 섭취도 제한되어있었다.
어째서인지 매끼 지급될 터인 음료수가 어딘가로 분실되어버리는 듯했다.
그리고 잇키가 처넣어진 개인실은 몇 주 전부터 단수 중이라서 화장실에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참으로 쪼잔한 괴롭힘이었다.
당연히 심문 중에는 수분 따위는 주지 않기에, 샤워 시간이나 사문회장과 이 방을 오가는 짧은 시간에 화장실에 들러서 그곳에서 되도록 많은 수분을 섭취했다.
이런 생활을 하고 있으면 피로 같은 것은 가실 리가 없었다.
적 사이에 홀로 외톨이.
사면초가.
고군분투.
'그렇지만 딱히 상관없어.'
그런 상황에는 익숙했다.
줄곧 혼자서 버려왔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서,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않고서.
이런 싸움이 처음인 것은 아니었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떠올랐다.
본가의 뒷산에서, 혼자 남의 눈을 피해서 묵묵히 검을 휘둘러온 어린 시절의 정경.
잇키에게는 인생 태반이 대체로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대단한 인내도 없었다.
고독에도, 적의에도, 어지간히 익숙해졌다.
그래서 아카자 일당이 어떤 수를 써서 잇키에게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언질을 얻으려고 해도, 이런 것으로 잇키의 강인한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이 상태라면, 견딜 수 있어.'
그렇게 하면 조만간 가까운 시일 내에 버밀리온 국왕과의 면회가 이루어지리라.
소중한 딸의 일대사였다.
당사자인 남자를 스텔라의 아버지가 내버려둘 리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그날까지 성가신 외야에 대해서 자신의 자세를 관철하는 일.
그렇게 하면 조만간 아카자 일당은 이 소동에 대한 개입권을 잃게 된다.
'오히려, 그때부터 나에게는 정말로 중요한 국면이겠지.'
스텔라의 아버지에게 자신을 인정받는다.
그것은 잇키의 인생에서 일찍이 없었을 만큼 중요한 이벤트였다.
생각하기만 해도 긴장으로 가슴이 몹시 두근거렸다.
그러나 피할 수는 없었다.
이 일만은.
스텔라 버밀리온이라는 소녀를 사랑한 순간부터, 이미 피할 수 없는 결판이기에.
그래서 잇키는 이 시간에 어떤 식으로 인사를 하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지를 줄곧 생각했다.
인사는 역시 양복을 입고 가야 마땅할까.
머리카락은…… 7대3?
잠시 상상해보았다.
'……우와아. 이건 지독해.'
샐러리맨 같은 자신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겉모습보다 훨씬 중요한 점은 어떻게 자신의 성의를 상대방에게 전하는가.
역시 이것만큼은 잔꾀가 통하지 않으리라.
통하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오히려 역효과다.
성심성의껏 똑바로 마주하고서 있는 힘껏 진지함으로 호소하는 수밖에 없다.
'모처럼 시간이 있으니, 잠시 연습을 해둘까.'
잔꾀는 통하지 않지만 준비 없이 실전으로 들어가면 역시 긴장된다.
리허설은 밟아두어야 마땅하다.
그렇게 생각하고서 잇키는 눈을 감고서 정신을 집중시켰다.
눈꺼풀 안에 비치는 모습은 스텔라의 아버지 버밀리온 국왕의 얼굴.
스텔라가 한 번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어서 기억했다.
스텔라와 같은 작열의 머리카락.
2미터 가까이 되는 거대한 체구와 구레나룻에 이어진 턱 수염은 사자처럼 용맹함을 연상시켰다.
그 비전을 기억에서 퍼 올리고서 눈을 뜨자──.
눈앞에 그야말로 그 남자가 서 있었다.
물론 진짜는 아니었다.
잇키의 극한까지 연마된 집중력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이었다.
상정한 상대의 허상을 상상하며 그것과 대련을 나눈다.
무예자로서의 기본 기술.
그 응용.
그러나 잇키 정도의 달인이 되면 그 허상은 단순한 허상이 아니다.
시선, 고동, 체온, 피의 맥동까지도 들려올 정도로 압도적인 현실감을 가진다.
그 현실감은 허상을 만들어낸 잇키의 정신마저 전율시킬 정도였다.
"…………윽."
사자처럼 위엄 있는 생김새를 한 버밀리온 국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몸을 옴짝달싹 하지도 않은 채, 그저 똑바로 딸과 같은 홍련의 눈동자로 잇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잇키는 살갗의 표층부터 지글지글 타들어가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온몸에서 땀이 뿜어져 나오고, 그 대신 목이 바짝 말랐다.
그러나 허상에 집어삼켜져서야 실물과 대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잇키는 한 번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서, 자신도 똑바로 버밀리온 국왕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양 무릎을 꿇고서 바닥에 이마를 비비겠다는 양 고개를 숙이고서──.
"따님을 제게 주십시외!!!"
폐에 모은 공기 전부를 목소리로 바꾸었다.
그 순간──.
"너에게 딸은 주지 않겠다."
납처럼 무거운 거절의 목소리가 잇키의 귓불을 떨리게 만들었다.
진지함이 부족했나.
……아니, 아니, 아니, 아니, 아니, 기다려.
잠깐 기다려.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실물과도 맞먹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어차피 허상은 허상.
대답을 할 리가 없었다.
그럼 이 목소리는 뭐냐, 하는 생각에 잇키가 얼굴을 들자,
"네게 시즈쿠를 줄 수 있을 리가 없잖나."
친아버지인 쿠로가네 이츠키가 따스함 없는 회색 눈동자로 잇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아아아, 아버지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
그 후, 잇키가 감금되어 있는 방에 의자가 한 개 날라져왔다.
이츠키는 그 의자에 걸터앉아 잇키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서 마주했다.
"…………."
"…………."
마주보기를 5분.
아직까지 두 사람 사이에 대화는 없었다.
'거, 거북해………….'
잇키는 자신의 등에 묘한 땀이 샘솟는 감각을 느꼈다.
그야 무리도 아니었다.
얼굴을 마주한 것이 그런 상황이었던 탓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잇키는 다섯 살 생일 이래 아버지 이츠키와 얼굴을 마주한 적조차 없었다.
솔직히 갑자기 마주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떤 얼굴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
'그보다 애당초 이 사람은 대체 이제 와서 내게 무슨 용건이 있어서 이런 곳으로 온 걸까.'
그렇게 잇키가 이츠키의 생각을 어림짐작하고 있을 때,
"잇키."
이츠키부터 침묵을 깨고서 말을 꺼냈다.
"네, 네."
살짝 갈라진 기미의 목소리로 응하는 잇키.
등에서 나는 땀의 양이 늘었다.
가슴이 이상한 고동을 새기기 시작했다.
대체…… 이 사람은 어떤 말을 꺼낼 것인가.
'너무나도 머나먼 사람이니까, 조금도 예상이──.'
"너는, 시즈쿠를 여자로서 사랑하는 건가."
"풋!"
"근친상간은 안 된다. 윤리적으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태어날 아이의 면역력이──."
"기, 기다려, 기다려요! 그러니까 그건 스텔라의 양친에게 인사를 할 때 시뮬레이션을 했을 뿐이에요! 시즈쿠는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여동생이지 이성으로서는 아니라고요!"
"그런가. 그럼 됐다."
곤란하다.
어쩐지 굉장히 위험한 인간이라고 여겨지고 있었다.
굉장히 진지하게 설교당할 뻔했다.
'아니, 그런 장면에 맞닥뜨리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한 번 초조함에 맡겨서 외친 덕분에 살짝 딱딱함이 가셨다.
잇키는 과감하게 아버지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저, 저기 말이죠. 아버지는, 그, 어째서 여기에 온 거예요?"
"자식이 엘리베이터 하나를 타면 올 수 있는 곳에 있어. 변덕스럽게 얼굴을 보러오는 일 정도는 있겠지."
"……그렇, 군요."
그것이 본심에서 나온 말인지는 모른다.
어쨌거나 이츠키는 항상 무푹뚝한 얼굴이라서, 그 회색 눈동자에서는 전혀 불가능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마음속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본심을 모른다 해도.
'뭘까………… 이거.'
잇키는 자신의 가슴이 높게 뛰는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양 뺨에 서서히 움찔거림 같은 감각이 퍼지는 것도.
'나, 혹시나, 기뻐하는 건가?'
아버지와 하는 10년만의 대면에 스스로의 반응을 분석해 가늠하는 잇키.
그에 비해 이츠키는 그다지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말을 계속했다.
"상당히, 상태가 좋은 모양이잖나."
"무, 무슨 뜻이죠?"
"올해부터 하군이 도입한 선발전의 전적 말이다. 지금 현재 16승 무패라고 들었다."
"아, 네……. 어제 이쪽에서 한 시합 결과를 합치면 17승, 일까요."
"결코 약한 상대하고만 대전한 게 아닌 모양이로구나. ……대단하군."
"…………어."
뭘까, 지금.
혹시나 칭찬받은, 것일까?
'어쩌지. ……굉장히, 기뻐.'
순간, 잇키는 드디어 확신했다.
자신은 기쁜 것이다.
아버지와 이렇게 얼굴을 마주할 수 있어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그랬다, 쿠로가네 잇키는 아직까지 쿠로가네 이츠키를 사랑했다.
그렇기에 오두막에서 들은 스텔라의 물음에, 이츠키와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말을 되돌려주었다.
어쨌거나 그에게 이츠키는 단 하나뿐인 아버지.
설령 아무리 모질게 대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자식은 부모를 싫어할 수 없기 마련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싫어할 수는 있어도, 자식은 부모를 따를 수밖에 없다.
잇키도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이 사문도, 감금당해있는 일도, 전부 아버지가 관여되었다는 사실을 잇키 역시 알았다.
그렇다 해도, 그렇다 해도 말이다.
아버지가 자신을 보아준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준다.
그 사실이 잇키에게는 기뻐서 견딜 수 없었다.
그렇기에 생각했다.
'혹시나………….'
지금이라면, 예전과는 다른 지금의 자신이라면, 어쩌면──이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마』
마지막으로 나눈 그 말과는 다른 답을 꺼내주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잇키는 말을 꺼냈다.
"저, 저기 말이죠, 아버지."
"뭐냐."
"……저기, …………윽, 저, 저는, 노력하고 있, 습니다. 랭크는 F인 상태지만, 그렇다 해도, 강한 사람에게도 이겨 왔고, 앞으로도 질 생각은 없습니다. 이제, 예전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의 저와는 달라요. 열심히 수행해서…… 쿠로가네의 수치가 되지 않을 만큼은, 상당히 강해졌다고 생각해요. 그, 그래서…… 그러니까, ──윽."
긴장 때문에 떨리는 목으로 작게 신음하듯이 숨을 들이마시고,
"제가, 칠성검무제에서 우승한다면, 그때는 저를…… 인정해주시겠습니까?"
잇키는 아버지 이츠키에게 한껏 용기를 쥐어짜내어서 그렇게 부탁했다.
그에 대해 이츠키는 잠시 잇키를 말없이 마주보고서──.
"…………과연."
살짝 눈을 감았다.
"줄곧 몰랐지. 네가 어째서 내 곁을 떠나갔는지를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 간신히 알았다. 너는 '자신이 약해서 인정받지 못 한다'라고 생각했던 거로구나."
"네…………."
잇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그것이 본가를 나온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에 어긋남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지금 강해진 자신이라면──.
"그렇다고 치면 그건 커다란 착각이다. 나는 너를, 제대로 자식으로서 인정하고 있다."
"어…………."
예상도 하지 않았던 말을 듣고, 잇키는 눈을 휘둥그레뜨고서 굳었다.
지금, 아버지는 뭐라고 말했나.
──인정하고, 있다?
"그, 그건 거짓말이야!"
"거짓말이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러 얼굴을 보러 오겠나."
"그, 그렇지만…… 아버지는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잖아요. 블레이저로서의 능력을 쓰는 법이나, 분가의 아이도 배울만한 무예의 지도도, 아무것도."
그랬다. 잇키는 지금도 그 집의 답답함을 기억했다.
이츠키는 온갖 일로부터 잇키를 내쫓았고, 그 내쫓김을 본 다른 사람이 하나같이 잇키를 '당주에게 미움 받은 인간'이라고 여기고 박해했다.
그 아픔, 고통, 고독──, 지금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진다.
그렇기에 잇키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인정해 준다면, 어째서 나에게도, 다른 모두와 마찬가지로 접해주지 않은 거예요!"
그 물음에 이츠키는 털끝만큼도 표정을 움직이지 않고서,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았다. 그뿐이야. 재능이 없는 인간에게 어설픈 기술을 가르쳐봤자, 그것은 가르치는 쪽에서도 배우는 쪽에서도 무익한 일이니까."
참으로 당연하다는 양 그렇게 대꾸하며, "아니"라고 한 마디 고하며 말을 이었다.
"무익한 걸로 끝난다면 그나마 낫지. 최악의 경우는 지금 너처럼, 어설픈 힘으로 결과를 내는 일이다."
'…………?!'
"무, 무슨, 뜻이에요?"
자기가 들은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서 잇키는 되물었다.
그에 대해 이츠키는 한 번 눈을 감고서, 그 납처럼 무거운 목소리로 자신이 한 말의 진의를 이야기했다.
"……쿠로가네가는 마도 기사가 '사무라이'라고 불렸던 시대부터, 일본의 블레이저들을 한데 모아온 유서 깊은 집안이야. 우리들에게 이 나라의 기사들을 총괄할 책임이 있다.
그렇지만 기사를 하나의 조직 아래에서 단결시키기는 어렵지.
어째서냐 하면, 기사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초상의 힘을 가진 초인이기 때문이지.
누구나 한낱 개인의 손에는 과분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보통 인간처럼은 안 된다.
그런 자들을 조직이라는 상자 속에 넣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서열이라는 질서다.
눈에 보이는 형태로 공적인 서열을 마련하고, 개개인의 역량에 응해서 적절한 등급을 매긴다.
그에 따라서 개개인의 역할을 자각시켜서, 조직으로서의 조화를 유지하지.
이건 중요한 일이다. 조직이라는 건 크고 작은 톱니바퀴 하나하나가 각각의 적절한 역할을 자각하고, 적절한 동작을 함으로써 처음으로 정확하게 기능하는 법이니까 말이지. 위에도 아래에도 각각 적절한 역할이 존재해. 아래에 있는 자가 위에 있는 자를 내려다보며 '이 녀석보다 자신 쪽이 뛰어나다'라고 우쭐해져서 그 역할을 벗어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잇키, 너 같은 존재는 조직에서 해악인 거다.
너 같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터인 인간이 '무언가를 해 버리'면, 아래에 있는 자들이 헛된 마음을 품게 돼. 자신도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거만해져서, 자신의 역할을 벗어난 움직임을 하려고 들어. 그리고 그 태반은 톱니바퀴 스스로에게도 조직에게도 헛된 소모만을 가져다주지. 어째서냐 하면 랭크라는 건 절대적이지는 않더라도 대체적으로 올발라서, 그것을 뒤집은 예는 무척이나 드문 일이니까. 따라서 그런 헛된 일은 피해야 해. 그래서 나는 너에게 말했던 거다.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01무것도 하지 마──라고 말이지."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이츠키의 말.
이츠키라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짓는 이념이 그곳에는 했다.
잇키는 그것을 오늘 처음 눈으로 보고서, 쿠로가네 이츠키라는 인간을 이해했다.
쿠로가네라는 집안이 대대로 이어받아온 역할을 완수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강철의 규칙을 부과하는 살아 있는 질서.
그것이…… 그의 아버지, '철혈'이라는 별명을 지닌 마도 기사의 모습인 것이었다.
그러나.
"잠깐………… 기다려요…………."
그러나 그것은…….
"그럼 아버지는, 가문의 수치가 되니까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한 게 아니에요?"
"당연하지. 집안의 일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쿠로가네의 역할은 이 나라 기사들의 조화를 지키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에게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다. 잇키, 인정해 달라고 말했지. 그렇다면──지금 당장 기사를 그만둬라."
"윽!"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마. 지금도 예전에도, 내가 네게 바라는 건 그 하나뿐이다."
그 한 마디에, 잇키는 마침내 아버지가 이와 같은 말을 진심으로 한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어째서냐 하면,
'그럼 나는, 이 사람에게, 대체 뭐지…….'
아버지는 정말로 자신을 싫어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차라리…… 바라는 재능이 드러나지 않아서 미움 받는 편이 나았다.
어째서냐 하면 그것은…… 아주 조금은 기대했다라는 뜻이기에.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츠키는 잇키에게 아무런 바람도, 아무런 마음도 걸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 거…… 너무 하잖아…….'
싫어한다든가 싫어하지 않는다든가,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이나 다름없었다.
호의나 악의.
그런 감정을 품는 것조차 바보 같다.
잇키는 이츠키에게 그런 차원의 존재였던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서, 확신하고서, 잇키의 마음속에서 차가운 슬픔이 흘러넘쳤다.
"윽…………!"
"응? 뭐냐, 너. 어째서 울고 있지?"
주륵주륵, 잇키의 눈동자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그 모습을 보고서 이츠키는 의아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잇키는 그런 이츠키의 반응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는 마음의 어딘가에서, 단 하나뿐인 아버지와의 유대를 바랐다.
언젠가 다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렇지만,
'……아아, 그런가.'
이 눈물의 의미를 모를 정도로, 그 정도로,
'나와 이 사람은, 결정적으로, 끊어져 있었어………….'
순간────.
삐그덕………….
잇키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무언가가, 무척이나 소중한 무언가가, 소리를 내면서 기울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작으로…… 쿠로가네 잇키라는 정밀 기계의 모든 것이 고장 나기 시작했다.
◆◇◆◇◆
"…………."
갑자기 울기 시작한 잇키는 그 이후, 무언가를 물어도 흐느껴 울기만 할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츠키는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일단락 짓고서 방을 나왔다.
그리고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에 있는 집무실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붉은 옷을 입은 나무통 같은 체형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정말 좋은 낮입니다, 당주님. 아아, 이미 벌써 좋은 저녁이라고 해야 할까요오?"
"아카자인가."
"어땠습니까아? 그의 상태는."
"여전히 잘 모를 녀석이야. 제 형 오마 정도는 아니지만."
"성격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렇게, 몸 상태가 무너진 모습이라든가 하는 건 없었습니까?"
"무슨 뜻이지?"
"음훗후. 그게 말이죠, 그의 식사에 아주 조오금 손을 써 두었는데, 몸과 마음의 상태를 동시에 무너뜨리는 약물이 들어있습니다아."
"……헌병 시대에 이용하던 자백제인가. 상당히 직접적인 수를 썼군."
"저쪽에서 이쪽을 잘 알듯이, 그의 완고함은 저희들도 자알 알고 있습니다. 애당초 사문 정도로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문은 어디까지나 격리를 위한 구실입니다. 현재 사태는 전부 이쪽이 상정한 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남은 건 버밀리온 국왕의 방문에 맞춰서──."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돼. 대강 상상은 간다."
그렇게 말하고서, 이츠키는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한 아카자의 입을 다물게 했다.
"이 문제는 너에게 일임했다. 어떤 수단을 써도 상관없어. 좋을 대로 해라."
다만──.
"실패는 용납하지 않겠다. 반드시 잇키를 추방해라."
"예, 명심하고 있습니다. 음훗후. 뭐, 지켜보십시오."
그렇게 말하고서 아카자는 방을 나갔다.
방에 혼자 남은 이츠키는 무언가를 생각하지도 않고서, 문득 집무실의 벽에 걸린 역대 장관의 얼굴 사진에 눈길을 주었다.
그 반수 이상이 쿠로가네의 성을 가진 자였다.
사진의 수만큼 책임이 있었고, 그들은 대대로 그것을 이어받아왔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이츠키 자신 또한 그 한 사람.
그렇기에 그는 철저했다.
스스로가 그리는, 대다수를 위한 최선을.
'자신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분수에 맞는 삶. 그것이야 말로 대다수의 인간에게 행복한 삶이다.'
잇키처럼 자신의 무력함에 대항할 수 있는 인간 따위는 그리 많지는 않기에.
쓸데없는 희망이나 남에게서 받은 자신감은, 본인에게도 조직에게도 손실만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렇다면 그런 것은 필요 없다.
자신이 운영하는 조직에서는 없어야만 했다.
'그러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배제하겠다.'
설령 자신의 자식이라 해도, 자비도 용서도 없이.
'그것이 내가 짊어진 책임이다.'
모든 것은 강철의 질서를 위해서.
지금도 예전에도, 그것이 '철혈' 쿠로가네 이츠키의 단 하나뿐인 정의였다.
◆◇◆◇◆
잇키가 '윤리위원회'에 끌려간 지 열흘이 지난 그날.
연맹 일본 지부에서는 잇키의 선발전 18번째 싸움이 치러졌다.
대전 상대는 무명의 E랭크.
수행하는 사람은 담임인 오레키 유리였다.
사전에 카가미에게서 들어서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시즈쿠는 아리스인을 동반하고서 오레키가 돌아오기를 정문 앞에서 기다렸다.
해가 기울기 시작한 무렵, 오레키가 혼자서 돌아왔다.
시즈쿠와 아리스인은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가서 오늘 시합의 결과를 물었다.
"오레키 선생님. 오라버니는…… 어땠나요? 이겼나요?"
그 물음에,
"어. 아…… 응. 무사히 18승을 거두었어."
오레키는 어쩐지 애매한 말투로 대답을 해왔다.
물론 즉시 아리스인이 추궁했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는 건가요?"
오레키는 잠시 말하지 말까 생각에 잠긴 기색을 보였지만, 상대가 잇키의 혈육인 시즈쿠라는 점도 있어서 그녀는 숨김없이 그것을 전했다.
"…………실은, 쿠로가네, 어찐지 몸 상태가 나빠보였어."
"오라버니가, 말씀인가요?"
"응. 안색도 나빴고, 줄곧 괴로운 듯이 콜록거리고……."
그렇다 해도 순조롭게 이겨버린 부분은 굉장했지만, 하고 덧붙이는 오레키.
시즈쿠와 아리스인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스텔라의 감기가 옮은 걸까."
"있을 법한 이야기네요."
그렇지 않아도 잇키는 오쿠타마에서 몸이 흠뻑 젖었다 고들었다.
거기에 사문회의 피로가 겹쳐지면, 몸 상태를 나빠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시즈쿠와 아리스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니, 아마도, 그건."
병에 정통한 오레키는 깨달았다.
잇키의 용태가 단순한 몸 상태 불량이 아니리라는 사실을.
그러나,
"선생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선생님은 지금부터 이사장님이 계신 곳으로 갈게."
오레키는 그 말을 삼키고서 떠나갔다.
학생인 그들에게 말해보았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공연히 시즈쿠의 불안을 부추길 뿐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총명한 두 사람은 깨달았다.
"……오레키 선생님, 무언가 말하려다 말았지."
"선생님은 병에 훤하니까. 혹시나, 잇키의 증상에 무언가 느낀 걸지도 몰라."
"그건………… 단순한 감기가 아닌 무언가라는 뜻일까?"
"아마도 그렇겠지. 어쩌면, 잇키는 무슨 일을 당했을지 도몰라."
그 말을 듣고 시즈쿠는 등즐기가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 패거리라면, 아버지라면, 그런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라버니…… 부디 무사히…………."
모든 것은 손이 닿지 않는 지하 깊숙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그녀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기도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무척이나 답답했다.
◆◇◆◇◆
"이봐! 뭘 넋을놓고 있는 건가!!"
술을 마셔서 상기된 호통소리와 함께 얼굴에 사문원용의 음료수가 끼어 얹어지자, 잇키는 눈을 떴다.
"사문 중에 졸다니, 불성실함에도 정도가 있어!"
귓가에서 호통 치는 앞머리 옅은 둥근 안경을 쓴 중년.
그가 고함치는 소리는 무척이나 커서 좁은 방에 잘 울렸다.
그러나 그런 목소리도 지금의 잇키에게는 아스라했다.
'……그런가. 나는 또 잠들었던가.'
사문을 개시한 지 2주.
이곳에 와서 잇키의 피로는 최고조를 맞이했다.
장기간에 걸친 감금.
몇십 번이나 반복되는 같은 문답.
한 번도 들어주지 않는 주장.
어느 것이나 인간의 정신을 깎아내리는데 충분한 요소였다.
거기에 더해서 요 며칠, 잇키는 갑작스러운 고열과 기침에 시달렸다.
폐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아무리 공기를 들이마시려 해도, 그때마다 격렬한 통증이 퍼져서 제대로 숨도 쉴 수 없었다.
만성적인 산소결핍 때문에 의식이 몽롱했다.
최저라도 폐렴.
그렇다고 치면 훨씬 나쁜 상태가 되어있을지도 몰랐다.
그것은 본래대로라면 당장에라도 병원에 가야만 하는 중상이었지만, '윤리위원회'는 그런 일을 용납하지 않았다.
"흥. 불리해 지니 꾀병인가. 어린애가 할 법한 짓이야."
이미 의식도 흐릿한 잇키를 여봐란 듯이 몰아넣었다.
1분 1초도 쉬게 하지 않았다.
"그럼 이야기를 계속하겠다. 너와 신구지 이사장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밀약에 대해서. 너는 전 이사장 체제 아래 적성부족이라고 간주되어서 유급했는데, 그 사실을 무시하는 이 밀약은 명백히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우리들은 생각해서──."
그 문답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행해졌다.
전 이사장 체제에서 내려진 유급 판정은 있지도 않은 적성 수준을 세워서, 잇키를 수업에 참가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뤄진 유급이라서 정당성이 없다고.
그런 사실을…… '윤리위원회'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들이야말로 전 이사장에게 그렇게 하게끔 시킨 장본인이었기에.
그렇지만 붉은 옷들은 들어주지 않았다.
물음을 던진다.
질문을 터뜨린다.
그러나 답은 듣지 않는다.
답은 듣지 않고서, 그저 인상이 나쁘다는 둥 반항적이라는 둥 악담만 늘어놓았다.
그에 따른 피로감은 지금의 잇키에게 상당히 버거웠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는 반론을 입에 담으려고 했지만,
"…………아, 커, 콜록! 콜록콜록!!"
기침하면서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렸다.
"네놈! 뭘 멋대로 앉는 거냐! 근성이 부족하다, 나약한 놈이!"
"으……윽!"
둥근 안경에서 뒤통수를 힘껏 짓밟혀서, 잇키는 바닥에 코를 강하게 부딪쳤다.
쿡 찌르는 쇠 냄새가 콧구멍에 가득 찼고, 뚝뚝 붉은 물방울이 바닥을 더럽혔다.
'…………비참하구나.'
지금의 자신의 상태를 생각하고서, 잇키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몸 상태가 인위적인 것이라는 사실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무언가 약물에 의한 몸 상태 불량이라고.
그러나 평소의 잇키라면 조금 몸 상태가 나빠졌다 해도, 이렇게까지 무너지지는 않았으리라.
역시 결정타는 아버지 이츠키의 면회였다.
잇키는 믿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무리 멀어도, 아무리 차가워도, 어딘가에서, 미약하게, 자신과 아버지는 이어져 있다고.
줄곧 마음 어딘가에서 믿어왔다.
믿어버린 것이었다.
그 믿음이 더할 나위 없는 형태로 배반당해서, 그 사실에 정신의 안정이 무너졌다.
균형이 무너진 정신으로는 병에 침식당한 몸을 지탱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 번 무너지니 다음은 끝이 없었다.
잇키의 D]음과 몸 상태는 언덕을 굴러 내려가는 것처럼 무너져갔다.
그 몰락한 끝이 지금의 잇키였다.
"자자, 그 쯤 해서 봐주시지요."
불현듯 아카자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잇키의 머리를 짓밟고 있는 남자를 물러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늘게 뜬 눈으로 고약한 웃음을 띠우며 잇키 쪽으로 몸을 구부렸다.
"음훗후. 상당히, 괴로워 보이는군요오."
"…………."
"그야, 이만큼 사문이 길게 이어지면 무리도 아니겠지요. 그렇지만 알아주십시오. 우리들 역시 당신이 훌륭한 기사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거라고, 말이죠. …………그렇지마안, 이대로는 다소 한도 끝도 없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적성에 의문을 품고 있는 패거리가 모조리 입을 다물만한 멋진 방법을. 가르쳐 주었으면 합니까아? 가르쳐 주면 좋겠지요오?"
어차피 변변한 일이 아니다.
뻔했기에 흥미도 없었지만, 물어봐야 이야기가 진행되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뭡니까, 그건………… 윽! 콜록!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 잇키가 묻자, 아카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어했다.
"음훗후. 뭐, 딱히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아. 잇키 군도 알고 있겠죠. 자신의 운명을 검으로 개척하는 것이 기사의 관례라는 걸요. 그렇다면, 그 예부터 전해진 풍습에 따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풍습을?'
"즈윽, 잇키 군과 잇키 군의 적성에 의문을 품은 자들의 언쟁을, 내일 선발전 최종전의 승패에 맞기겠다는 뜻입니다아."
승패에 맡긴다.
그 말에 잇키는 아카자가 말하려고 하는 바를 이해했다.
"대리인을, 내세워서 하는 '결투'…………입니까."
"그 말대로입니다. '결투'에 의한 결정은 우리들 기사에게 절대적. 결코 어겨서는 안 되는 불문율입니다. 아무리 도리를 벗어난 억지이든지 무리이든지, '결투'에 의해서 결정된 일에는 따르는 것이 기사의 관례입니다. 그건 연맹에서도 마찬가지. 이 '결투'의 약속을 하고서, 더 나아가서 힘을 보여주서 승리를 거머쥐면, 그 누구도 잇키 군이 가진 기사로서의 자질에 의문을 내밀 수는 없습니다. 잇키 군에게는, 그야말로 기사회생의 역전 찬스. 할 수밖에 없겠죠? 그렇죠?"
"즉, 제가 내일 이기면, ……그러면 이제 저를 내버려둬주시는 겁니까."
"그래요, 그래. 물론이고말고요. ……다만, 현재 잇키 군의 내일 대전 상대는 랭크E의 3학년. ……솔직히 이렇게 수준 낮은 기사를 쓰러뜨려보았자, 잇키 군이 가진 힘이 증명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야 다들 납득하지 않겠지요. 이 결투에는 걸맞은 자를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차피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콜록, …………누구, 입니까. ……그, 사람은…………."
그 물음에 아카자는 더할 나위 없을 만큼 깊게 웃으며──.
"우리 '윤리위원회'는──'뇌절' 토도 토카 학생회장을 지명할 생각입니다."
그 자객의 이름을 알렸다.
그것은 잇키가 설령 만전이라고 해도 격전을 벌일 상대.
하군 학원 교내 서열 1위이자 전년도 칠성검무제 베스트 4.
지금 땅바닥에서 설설 기고 있는 잇키에게는 너무나도 짐이 무거운 적이었다.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조만간 스텔라의 아버지와 하는 면회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때까지 계속해서 견디면 모든 일의 결판이 날 것이다.
이곳에 있는 아카자 일당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애당초 이런 싸움은 끌어들여지면 토카에게도 실례되는 이야기이다.
잇키에게 받아들일 의리는 없었다.
그러나──.
"아아, 덧붙여 이 이야기는 버밀리온 국왕에게도 이미 해두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야 할까…… 다소 이쪽의 착오로 국왕에게는 이미 결투가 결정 사항이라고 전해버렸습니다. 이거어 정말이지 죄송합니다. 게다가 국왕은 무척 강한 흥미를 품으셔서 말이죠오. 그 정도의 시련도 뛰어넘을 수 없는 사내에게 딸을 못 준다! 라고 뭐 그런 태도라서 요오, 네에. 이곳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으응, 이건 상당히 심증이 좋지 않겠지요오."
아카자는 적확하게 잇키의 빠져나갈 길을 막았다.
'……그런가. 처음부터, 이런 전개로 끌고 갈 셈이었던가.'
그 상황에서 잇키는 깨달았다.
사문은 애당초 자신을 하군에서 격리하기 위한 구실.
아카자 일당도 그저 정신적인 폭력으로 잇키가 굴복하리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모든 것은 이 약속을 얻어내서, 절제절명의 결투를 잇키에게 강요하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꾸민 모략이었던 것이다.
"물론, 사나이답게 싸워주겠지요오?"
"…………."
한 번 '결투'가 되면, 이미 도리도 정의도 전부 무의미해진다.
모든 것은 싸움의 결과.
그것이 예부터 내려온 기사의 관례이다.
잇키에게 무엇 하나 잘못이 없다 해도, 결투에서 지면 그는 악이 된다.
악이 되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지독한 이야기였다.
손실은 크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굳이 말하자면, 잇키에게 본래대로라면 당연하게 주어져야 마땅할 자유가 돌아오는 정도.
정말로 지독한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알겠, 습니다. 하겠습니다."
잇키는 고뇌에 가득 찬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빠져나갈 길이 전부 끊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후, 하하, 후하하하하! 멋져요, 멋져! 그렇게 나와야지! 음훗후! 그래야 남자라고요오! 여러분도 들으셨겠죠! 지금 그가 한 말을! 이 순간, 모든 결판은 내일 치러지는 결투, 그 승패에 맡겨졌습니다! 모든 판정은 예부터 내려오는 기사의 관례에 따라서, 검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긍지 높은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없겠지요!
그럼 여기에서──사문회 종료를 선언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역경의 '워스트원'은 더욱더 절망적인 싸움에 몸을 던지게 되었다.
상대는 잇키의 특기 거리인 크로스 레인지에서 불패의 세력권을 자랑하는 '뇌절'.
그 만전의 몸 상태에서조차 위험한 상대에게, 그는 바닥을 기는 몸을 질질 끌고서 상대한다.
자신의 미래, 그 모든 것을 걸고서──.
그렇지만 그 싸움을 앞에 두고, 잇키는 언젠가 들었던 우타카타의 말을 떠올렸다.
『그 아이와 너는 젊어지고 있는 것의 무게가 달라.』
그렇다.
토카는 그 가느다란 양 어깨에, 잇키 따위에게는 상상도 가지 않을 정도의 많은 기대나 바람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시설의 아이들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전국 베스트 4라는 것은 그만큼 많은 동경을 짊어진다는 뜻이기에.
그런 긍지 높은 사람을………… 정말로 쓰러뜨릴 수 있을까?
친아버지조차 아무런 기대도 맡기지 않는, 이런 무가치하고 텅 빈 인간의 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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