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일도양단
"응. 괜찮아. 나는 건강하제. ……응.
내일 시합으로 교내전은 마지막이 되어부러.
어? 도쿄로 응원하러 온다고? 현수막 만든다고?! 다들 승질 겁나게 급해부러!
게다가 올해 칠성검무제는 오사카랑께. ……응. 그라제. 어쨌거나 이기든 지든, 선발전 끝나면 한 번 그쪽으로 얼굴 비치러 갈테니께.
응…… 그럼 끊을게. 채소, 고마워. 모두에게도 고맙다고 말혀.
엄마도, 몸조심 하랑께. ……안녕."
이별의 인사를 나누고서, 토카는 학생 수첩의 통화 기능을 껐다.
액정 화면에 땀이 들러붙었다.
표시된 통화 시간은 50분.
상당히 오래 통화를 해버린 모양이었다.
"원장 선생님은 잘 지낸대?"
학생회실의 소파에서 주먹 크기의 새빨간 토마토를 베어 물면서, 우타카타가 통화 상대에 대해서 물었다.
두 사람이 신세를 진 고아원 '새싹의 집'의 원장 선생님의 상태를.
"건강해, 건강해. 이제 완전히 원래대로 돌이왔다는 느낌이었어."
원장 선생님──, 토카는 '엄마'라고 부른 초로의 여성은 작년에 심장 발작을 일으키고서 쓰러졌다.
그때는 토카는 밤새 울어서 평소 초연한 우타카타조차 얼굴이 새파래졌지만, 지금의 수화기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듣는 한은 아무래도 완전히 용태는 안정되어서 건강을 되찾은 듯했다.
오히려 너무 건강할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벌써 현수막 만들어버렸다고?"
그것이었다.
아직 선발전의 승리도 정해지지 않아서 대표 선정도 결정되지 않았는데, 원장 선생님과 시설 아이들은 칠성검무제에 가지고 갈 현수막을 만들어버린 모양이었다.
과연 토카라고 해도 이것에는 할 말을 잃었다.
"다들 성급하다니까…… 정말로."
"그만큼 기대 받는다는 뜻이야. '새싹의 집' 아이들에게 '뇌절'은 영웅이자 희망이니까."
그렇게 말하고서 우타카타는 '새싹의 집'에서 보내온 채소가 가득 찬 상자 안에 들어 있던 사진을 토카에게 건네주었다.
그 사진의 앞면에는 진흙투성이가 되어서 채소를 수확하는 시설 들의 웃는 얼굴이, 그리고 뒷면에는 배우기 시작한 글자로 열심히 쓴 응원이 있었다.
그렇다, 그야말로 '새싹의 집' 아이들에게 토카는 영웅인 것이었다.
똑같이 부모가 없는 똑같은 시설 출신자가 이 세상의 최전선에서 당당히 싸운다.
싸워서 계속해서 이긴다.
그 모습은 '새싹의 집' 아이들의 동경이었다.
언젠가 자신도 그녀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존재가 되고 싶다.
그 꿈과 꿈에 마주 설 용기를 토카에게서 계속해서 얻고 있었다.
그리고 또한 토카 스스로도 자신이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래서 지지 않는다. 질 수 없다.
그런 기대를 압박감이 아닌 더 큰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뇌절' 토도 토카의 가장 강한 부분이었다.
'이건, 나중에 천천히 읽자.'
사진을 사랑스러운 듯이 한 번 가슴에 가져다대고서, 토카는 그것을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보내준 상자에 가득 찬 채소에 눈길을 주었다.
토마토에 가지에 오이──, 시설의 텃밭에서 딴 여름 채소를 섞어 담은 것이었다.
어느 것이나 울퉁불퉁 형태가 일정하지 않는 부분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스함을 느꼈다.
"와아, 이거 봐요, 우타 군. 이 가지, 이렇게 두껍고 튼실해요. 가지 카레 같은 것도 맛있을 지도 몰라요."
"응, 검고 두껍고 튼실하네."
"차, 참말로! 그런 아저씨 같은 소리를 해싸고!"
"하하하. 그렇지만 이렇게 많아도 썩어버릴 테니까, 내일 학생식당으로 가지고 가야겠네."
문득, 우타카타가 중얼거린 말.
그 말을 듣고서 토카는 살짝 표정을 흐렸다.
꺼림칙한 일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내일, 인가아."
아까 전, 그녀에게 한 가지 연락이 왔다.
연락해온 상대는 이사장 신구지 쿠로노.
그 내용은──내일 대전 상대의 변경.
더군다나 그 상대가 지금 세간을 들썩이는 화제의 한가운데에 있는 '워스트원'이라면──그것에 무언가의 작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토카는 그 부분을 따졌고 쿠로노는 그것을 감추지 않았다.
쿠로노의 입에서 이야기하는 잇키가 놓은 역경은, 그야말로 필설로는 다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를 둘러싼 악의는 그를 최악의 컨디션으로 몰아넣은 것으로 모자라 자신이라는 자객을 파견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토카로서도 바라던 바가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토카는, 그 '결투'의 대리인을 받아들일 거야?"
그 사실을 우타카타도 잘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표정을 흐리는 토카에게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 물음에 대해서 토카는 눈을 내리깔았다.
"나에게 결정권은 없어. 이사장님도 말했지만, 나에게는 어디까지나 선발전 최종전이니까."
그렇다, 잇키에게는 결투라고 해도 토카에게는 어디까지나 선발전이었다.
대결 상대가 바뀔 뿐이지, 자신도 승패 이외의 무언가를 걸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갑작스러운 변경은 없었지만, 대전 상대가 무언가의 사정으로 변경이 되는 일은 지금까지 몇 번 있었다.
그래서 토카도 강하게 항의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겠지?"
"응…………."
그렇다고 해서 이 가슴이 메는 듯한 불길한 느낌을 떼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토카 같은 마음 따스한 소녀라면 더욱 그랬다.
……따라서 그녀는 한 가지 손을 써두었다.
때마침 손님이 학생회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이런 시간에 누굴까?"
"내가 불렀어요. 들어와요."
"실례하겠습니다."
문을 열고서 들어온 사람은 비스크 인형을 연상시키는 작은 몸집의 소녀.
일찍이 토카와 사력을 다해서 싸웠던 '로렐라이' 쿠로가네 시즈쿠였다.
◆◇◆◇◆
"이건, 뜻밖의 손님이네."
"……저도, 이런 한밤중에 히필이면 자신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겨준 사람에게 불려올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하하. 지당한 말이네. 그래, 그렇지. 토마토 먹을래? 달아서 맛있어."
"……이미 이를 닦아버렸으니까 됐어요. 게다가, 토마토를 먹이기 위해서 저를 부른 건 아니겠지요. ──학생회장님. 제게 무슨 용건인가요?"
시즈쿠는 본론을 재촉했다.
……쫀쫀하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꿈이었던, 오빠와 함께 전국으로 가겠다는 목표를 깨부순 인간과 얼굴을 맞대고서 이야기하기는 아무래도 거북했다.
그런 마음을 토카 또한 이해했다.
그래서 그녀는 단도직 입적으로 시즈쿠를 이곳으로 불러 들인 이유를 이야기했다.
"실은 아까 전 이사장님에게서 이야기가 있었는데, ……시즈쿠 양에게도 관계없는 일이 아니라서 전해두려고 생각해서요──."
토카의 입에서 이야기한 내용은 내일 대전 편성이 갑자기 변경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싸움에 잇키가 자신의 미래 전부를 걸고서 도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하나, 하나, 악의에 가득 찬 진실을 들을 때마다, 시즈쿠의 표정이 분노로 가득 찼다.
이윽고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그녀는,
"…………윽, 비열한 놈……!"
분노로 비취빛 눈동자를 빛내면서, 그렇게 입이 걸게 이곳에 없는 자들을 매도했다.
그런 다음, 토카에게 물었다.
"……학생회장님은 싸울 겁니까. 몸 상태가 나빠진 오라버니와."
"학생회장이라고 해도 평범한 학생 한 사람일 뿐입니다. 이론을 제기해보았자 편성을 변경할 힘은 제게 없으니까요."
토카로서도 이런 싸움은 바라는 바가 아니었지만,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할 수 없기에, 토카는 시즈쿠를 이 자리에 불렀다.
"그래서 시즈쿠 양에게, 쿠로가네 군의 가족인 당신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제게요……?"
"예. ……시즈쿠 양. 쿠로가네 군에게, 기권을 권해주지 않겠습니까?"
"…………네?"
"쿠로가네 군의 몸 상태는 상당히 나쁜 모양입니다. 최저라도 폐렴. ……좀 더 상태가 나쁠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딱 잘라 말해서, 도저히 싸울 몸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고작 며칠의 교류였지만, 저는 쿠로가네 잇키라는 기사를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 감상을 통해서 말하자면, 그는 아마도 그 만신창이의 몸을 질질 끌고서라도 싸움의 자리에 올라올 겁니다. 자포자기가 아니에요. 진심으로 저를 이기기 위해서. 확실한 승산과 결의를 가슴에 품고서."
그리고──.
"그리고 저 또한, 다가오는 상대방을 봐 줄 수 없는 여자입니다. 그가 결전의 자리에 올라왔다면, 저는 온 힘을 다해서 그를 상대하겠지요. 그 결과 설령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 버린다고 해도."
"……으윽!"
순간, 시즈쿠의 온몸에 전율이 퍼져나갔다.
'이 사람………… 진심이야.'
안경 안.
그곳에 맑게 빛나는 토카의 눈빛을 보고서 시즈쿠는 확신했다.
토카는 지금 무엇 하나 허황된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라고.
그런 그녀는 잇키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경우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최악의 미래를 보고 있었기에, 그녀는 시즈쿠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부탁드립니다. 쿠로가네 군을 막아주세요.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가족인 당신뿐일 겁니다."
"…………."
시즈쿠는 당장에는 말을 되돌려 줄 수 없었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마땅할까.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가.
그것을 몰라서,
"……하룻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그렇게 쥐어짜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
시즈쿠가 방을 떠나고 나서, 토카는 가슴 속의 불안을 툭 흘렸다.
"내일, 쿠로가네 군이 기권했다고 쳐도, 싸워서 내가 이긴다고 쳐도, ──나는…… 이런 싸움으로 전국에 간 것에, 가슴을 펼 수 있을까."
떠오르는 것은 채소에 동봉되어왔던 사진의 웃는 얼굴과 응원의 메시지.
그들의 올곧은 기대와 동경에 충분한 싸움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어찌할 도리 없이 불안한 것이었다.
"토카."
불현듯 불안을 입에 담은 토카의 손이 작고 따스한 온도에 감싸여졌다.
그것은 우타카타의 손이었다.
그는 토카의 손을 잡고 그녀보다 훨씬 낮은 시점에서 그녀를 올려다보고서,
"확실히, 온갖 일이 어른의 제멋대로인 사정으로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그렇다 해도 토카는 토카야. 너는 자신에게 가슴을 펼 수 있는 싸움을 하면 돼. 우리들은 그런 너를 좋아하니까. 그리고, 아마도 후배도 그걸 바라고 있을 거야."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진실을 고했다.
주변이 무슨 생각을 하든지 관계없다.
토카가 토카답게 있어 주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그 말을 듣고 토카는 간신히 표정에 미소를 띠울 수 있었다.
"응, ……고마워요, 우타 군."
'그래. 애당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니까.'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일을 힘껏 하면 된다.
"좋았어!"
토카는 한 마디 소리를 내고서, 스스로의 뺨을 양손으로 때렸다.
날카로운 아픔이 망설임이나 주저함을 없애주었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내일 몸을 질질 끌고서라도 나를 향해온다고 한다면, 그 때는 용서하지 않아.'
자비도 용서도 없이, 한 사람의 기사로서 혼신의 힘과 경의를 품고 상대를 하겠다.
그리고 이긴다.
반드시 이긴다!
'이겨서, ──가슴을 펴고서 칠성검무제에 가겠어!'
이리하여 결전전야의 밤이 지나고──.
하군 학원은 운명의 칠성검무제 선발전 마지막 날 아침을 맞이했다.
◆◇◆◇◆
"이것 참. 다시 여름도 초입인데 올해도 더워질 것 같군."
대표 선발전 마지막 날 아침.
하군 학원에서 가장 가까운 역에서, 역장이 비질을 하면서 이마에 땀을 훔쳤다.
하늘은 시원하게 트인 맑은 하늘.
가로막히지 않고 햇빛이 쏟아지는 무더위였다.
이런 계절에 몸에 꼭 맞는 감색 제복은 다소 견디기 힘들었다.
문득, 그는 다가오는 전철의 주행소리를 깨닫고서 고개를 들었다.
홈에 각 역에 정차하는 전철이 들어온 것이었다.
전철은 천천히 홈에 정차해서 문을 열었다.
역장은 내려오는 손님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끔 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
'뭐, 이 시간에 이곳에서 내리는 사람 따위 없겠지만.'
여하튼 이 역에서 갈 수 있는 장소라고 하면 하군 학원 정도였다.
휴일, 학생들이 놀러 나갈 때라면 모를까, 평일 이 시간대에 전 기숙사제인 하군 학원의 가장 가까운 역에 들리는 자는 없다.
그럴 터였지만──.
'응?'
열린 전철의 문에서 느릿느릿 남자가 나왔다.
구불텅하게 굽은 등.
노인인가.
'별일이로군. 평일 이 시간에 사람이 오다니.'
대체 어떤 인물일까.
그런 아무렇지 않은 흥미에서 역장은 내려온 노인에게 눈길을 향했다.
그리고 말문이 막혔다.
내려온 사람은 노인이 아니었다.
아직 나이가 젊은 남자, 아니 소년이었다.
지금이 한창 건강할 나이대인 소년이 노인처럼 등을 구부리고서 전철에서 기어 나온 것이었다.
그렇지만, 역장이 말문이 막힌 이유는 남자가 소년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쿠로가네 잇키의 상태에 놀란 것이었다.
"하아………… 하아…………!"
거칠게 토해내는 숨결은 메말랐고, 안색은 창백함을 뛰어넘어서 이미 가면 같은 흰색이었다.
흐트러진 앞머리 안쪽에 있는 눈동자는 탁해질 대로 탁해져서 생기를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그 이마에서 배어나와 턱 끝에서 방울져 내리는 땀의 양이 범상치 않았다.
아무리 무더위라고 해도 전철의 차안은 에어컨이 작동했다.
그 상황에서 방울져 내릴 만큼 땀을 흘리는 것은 건강한 일반인의 반응이 아니었다.
"너, 너. 괜찮나?!"
"아뇨…… 예, 괜찮습……니다."
"아니, 괜찮게는 안 보여! 지금 구급차를, ……응, 너는…………!"
그 상황에서 역장은 잇키의 얼굴을 보고서 화들짝 놀탔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지금 버밀리온 황녀를 꾀어서 농락했다고 보도된 남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역장의 표정에 명백한 혐오감이 떠올랐다.
잇키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걱정해 주셔서, 고맙, 습니다. 그렇지만…… 죄송합니다. ……서두르는, 중이라서요."
역장을 향해서 잇키는 한 번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옆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대로 역 밖으로 나갔다.
"앗……."
비틀비틀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멀어져가는 등.
그 등을 바라보며 역장을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언론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본가에서도 애먹을 만한 꼬리표가 붙었다고 보도된 잇키였지만,
'어쩐지…… 상당히 예의 바른 아이였어.'
본인을 본 다음에는 도저히 보도된 사람과 동일인물이라고는 여길 수 없었기에.
◆◇◆◇◆
잇키는 역을 나와서 그대로 하군 학원으로 향하는 언덕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거리로 따지면 1킬로미터 정도 되는 완만한 언덕길이었다.
이른 아침에 러닝으로 항상 스텔라와 지나는 코스.
평소의 잇키라면 고되지도 않을 언덕이었지만, 지금의 잇키에게는 그 길은 터무니없이 긴 거리였다.
숨을 살짝 쉬기만 해도 터질 만큼 아픈 폐는 이미 제대로 산소를 거두어들여 주지 않았다.
'답답해………….'
하다못해 숨을 쉬고 싶었다.
헐떡이듯이 입을 열고서 산소를 들이마셨지만──.
"…………아, 으, 콜록! 콜록!"
염증이 난 폐가 가져다주는 격렬한 통증 때문에 들이마신 산소를 전부 토해내고 말았다.
혈액 속의 산소농도는 극단적으로 저하되었고, 입술은 청보랏빛으로 물들었다.
고열과 산소 결핍에 따른 몽롱함으로 잇키의 의식은 이미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몹시 약해진 잇키의 자아를 대신해, 약물에 의한 환각 작용이 나약한 생각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이런 상태로 그 '뇌절'에게 도전하는 건가………….'
그런 것은 무리다.
거의 자살이나 다름없다.
'이길 수 없어………….'
그 사실은 이미 명백했다.
애당초 자신 같은 텅 빈 인간의 텅 빈 검이, 그 소녀의 검을 타도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이제 잠들어버리고 싶어………….'
예년을 능가하는 햇살과 매미소리 속에서, 사람 없는 언덕을 단 혼자서 오르는 잇키의 뇌리에 약한 소리가 스쳤다.
지금 이곳에서 의식을 놓는다.
잇키에게 그것은 참을 수 없이 감미로운 유혹이었다.
그때였다.
"아…………."
작은, 정말로 작은 돌에 발끝을 걸려, 잇키는 낙법조차 취하지 못하고서 몸을 아스팔트에 부딪쳤다.
'안, 돼………….'
일어나야 한다.
그렇게 해야, 시합에 시간을 맞출 수 있다.
시간을 맞춰 가지 않으면, 진다.
지면………….
'어럽쇼, 어떻게 되…………더라.'
뇌가 질척질척 녹아들어가는 감각.
약물에 의한 착란과 고열에 의한 몽통함으로, 잇키는 이미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러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었다.
그리고 엉망진창이 된 의식 속에서, 잇키는 스스로의 시야에 있을 수 없는 광경을 포착했다.
'……아.'
눈이었다.
어느 새인가 하늘이 어둑해져 커다란 눈송이가 내리고 있었다.
이런 한여름에?
말도 안 된다.
그렇지만 확실히──.
'추, 워…….'
딱딱, 몸이 얼기 시작했다.
이 추위에…… 잇키는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날도 이런 눈이 내리는 날이었던가.'
신년을 축하하기 위해 친척이 모였던 그날.
견딜 수 없어서 집을 뛰쳐나왔던 그날.
아무도 데리러 와주지 않아서, 아무도 걱정하지 않아서, 오로지 홀로 눈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구나.'
대체,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 하나 바라는 이 없고,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하고, 무엇 하나, 바꿀 수 없었다.
예전도 지금도 변함없이 눈보라 속에서 웅크리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너덜너덜해져서,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모르겠다.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저 어찌할 도리도 없을 만큼 몸이 나른해서, 눈꺼풀이 무거워서──.
잇키의 의식은 차가운 어둠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
선발전 최종전.
오늘 치러지는 시합 수는 평소보다 훨씬 적었다.
시합을 하는 이가 현 시점에서 무패를 관철한 열두 명 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평소보다 한충 더 관객이 많았다.
특히 '뇌절' VS '워스트원'의 대결이 치러지는 제1훈련장의 입장객은 대단한 수였다.
구경하러 온 학생들도 여기저기서 놀라움 어린 목소리를 질렀다.
"우와아, 사람이 굉장히 많네에."
"그야 그렇겠지. '뇌절'과 '워스트원'의 대결은 다들 보고 싶었던 편성이니까."
"그보다, 어째 카메라도 들어오지 않았어?"
"보도겠지. 있잖아, 문제의 그거."
"아아, '워스트원'과 '홍련의 황녀'의 스캔들 말인가. 그렇지만 교내에서 보도는 금지 아니었나."
"이번 문제는 연맹이 꽤나 움직이는 모양이니까, 특례가 아닐까."
"저기. 너희들 있잖아, 그 기사. 믿어?"
"사귀는 건 틀림없겠지. 두 사람도 부정하지 않았고, 게다가 엄청 사이좋았고."
"그렇다고 해야 하나 '사냥꾼'과의 시합 때 '홍련의 황녀' 쪽이 대놓고 고백했고 말이지."
"그으게 아니라! 그 왜, '워스트원'의 본가에서 한 증언이라든가 뭐라든가 하고 쓰여 있었잖아. '워스트원'이 예전부터 손쓸 도리도 없는 망나니 꼬리표가 붙었고, 지금도 여자랑 놀아난다든가."
"그쪽인가."
"……나는 믿을 수 없어."
"실은 나도. 나, 디바이스가 일본도라서, 곧잘 점심시간에 그 사람에게 검 휘두르는 법이라든가 격투라든가 배우고 있어."
"아, 나도 그래. 안뜰에서 하고 있는 거잖아. 클래스메이트가 졸라서 시작했다는 거."
"맞아, 맞아. 그곳에서 그 사람을 보고 있으니까, 솔직히 신문에 쓰여 있었던 것 같은 말은 믿을 수 없다고. 왜냐하면 이 중요한 선발전 시기에, 자기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엄청 정성스럽게 가르쳐준다고. 그런 사람이 '홍련의 황녀'를 속이다니, 전혀 확 와 닿지 않아."
"그렇지만 증언하는 게 본가잖아. 그렇다면 역시 그 내용대로 아닐까? 왜냐하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가족이니까. 감싸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일은 있어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다니 말도 안 되잖아?"
"으음. 모르겠네에."
왁자지껄 사람의 떠들썩함에 섞여서, 잇키를 둘러싼 의문이 오고갔다.
그 모습을 절구 모양의 관객석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던 기모노 차림을 한 작은 몸집의 여성, 사이쿄 네네가 감탄한 듯이 옆에 선 신구지 쿠로노에게 말을 걸었다.
"흐응. 아무래도 다른 아이들도 보도를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닌 모양이네에."
"그래. 쿠로가네와 직접 면식이 있는 사람은 특히 그런 경향이 강한 모양이야."
"겉보기에는 인축에 무해한거얼, 그 애."
"그렇지만, 그 진위 따위는 이미 아무래도 좋은 일이야."
쿠로노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그 진실을 말했다.
그렇다, 이제 잇키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 진위, 옳고 그름, 선과 악, 그 모든 것은 이 결투의 승패에 맡겨지고 말았다.
따라서 잇키가 아무리 올바르든지 간에, 아카자 일당이 아무리 그릇되었든지 간에, 잇키가 자신의 정당함을 증명할 수단은 이미 승리뿐이었다.
"완전히 당했어. 대단히 빌어먹을 놈이야."
이런 전개는 쿠로노도 예상하지 못 했다.
스텔라의 아버지가 올 때까지 견디면 된다.
자신의 안이한 생각에 쿠로노는 신음했다.
그러자,
"음훗후. 칭찬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죠오."
한층 더 기쁜 듯이 끈적거리는 목소리가 두 사람의 옆쪽에서 들려왔다.
두 사람이서 나란히 목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자, 그곳에는 이마에게 뿜어져 나오는 땀을 손수건으로 닦는, 숨이 막힐 듯이 더워보이는 나무통 같은 남자가 서있었다.
"좋은 낮입니다아. 이야아, 오늘도 덥네요오."
"아카자 위원장……."
아카자의 등장에 쿠로노와 사이쿄는 하나같이 그 단정하게 생긴 얼굴을 찡그렸다.
당연했다. 환영할 수 있을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붉은 너구리가 우리들에게 무슨 용건일까."
노골적으로 가시 돋친 말투로 사이쿄가 묻자, 아카자는 "이거 참 그렇게 송곳니를 드러내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웃고서,
"아뇨, 아뇨. 저는 용건 따위 없습니다만, 요 앞에서 우연히 만난 선생님께서 두 분이 계신 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말씀하셔서요오. 아아, 이쪽입니다, 선생님."
두 사람의 곁으로 가문을 넣은 하카마 차림을 한 작은 몸집의 노인을 데리고 왔다.
"아아, 간신히 찾아냈다. 이만큼 부지가 넓으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를 잘 모르겠어서 말이지."
"켁, 영감탱이!"
그 모습에 맨 먼저 반응한 사람은 사이쿄였다.
그것도 당연했다.
노인의 이름은 '투신' 난고 토라지로.
연령 92세의 일본인 최고령의 마도 기사이자, 사이쿄의 스승이기도 한 남자였기에.
"효효효. 우리 사랑스러운 애제자는 여전히 입이 험하구먼. 뭐, 그 점이 귀엽지만 말이지?"
"귀, 귀여, ……기, 기분 나쁜 소리 하지 마아!"
"얼굴이 빨갛구나, 네네. 솔직하게 기뻐하지 그러냐."
"이, 이런 건어물 같은 영감탱이에게 그런 소리를 들어도, 기, 기쁘지 않다아고!"
그런 사이쿄의 얼굴에는 말로는 덮을 수 없는 쑥스러움이 있었다.
'정말이지 솔직하지 않은 녀석.'
그녀가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이 노인을 경애한다는 사실쯤,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자신은 이미 알고 있는 일인데.
"쿠로노도 오랜만이구먼. 요전번 만났을 때는 상당히 배가 불러있었는데, 출산 쪽은 무사히 마친 겐가?"
"네, 덕분에요."
"그거 잘됐군, 잘됐어. 그런데, 음~, 출산을 경험해서 쿠로노는 한층 더 색스러워졌구먼. 이렇게, 허리둘레가 말이지, 특히──."
"영감탱이! 뭘 하러 와서 뜬금없이 내 친구에게 추파를 던지는 거야! 쳐 죽인다!"
"효효효. 네네도 이제 나이 먹었으니까, 꽥꽥 떠들어대 지만 말고 쿠로노를 보고 배워서 어른의 색스러움을 몸에 익히지 않으면 뒤처지고 만다고?"
"난고 선생님. 걱정하지 않으셔도 이 여자는 이미 뒤쳐졌습니다."
"돼, 됐어, 뒤쳐지지 않았다고! 나는 여자로서의 자신을 최대한 즐기고 있을 뿐이고! 한 남자에게 매이다니 바보 같을 뿐이고! 그보다 어째서 쿠는 그 쪽 편인 거야?!"
'난고 선생님이 계실 때의 네네는 귀여우니까.'
무심코 놀리고 싶어지고 만다.
평소 귀엽지 않은 만큼, 더욱 더.
물론 본인에게는 말하지 않겠지만.
"그런데, 난고 선생님께서는 어째서 오늘 이곳에 오신 겁니까?"
옆에서 사이쿄가 "어이 이봐, 무시 하지 마아아!"라고 말하며 분개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무시하고서 쿠로노는 난고에게 물었다.
말하자면 이 말은 사교인사 같은 것이었다.
그가 이곳에 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쿠로노도 대강 상상이 갔다.
"그야 물론, 토카의 화려한 무대를 보러온 게지. ……뭐, 칠성검무제까지 기다려도 좋았겠지만, 상대가 '쿠로가네'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발을 옮길 수밖에 없지 않겠나?"
'역시.'
그랬다, 난고는 사이쿄의 스승임과 동시에 토카의 스승이기도 했다.
시니어 시대의 토카에게 재능을 찾아내서, 그 이후 그녀에게 자신의 검을 가르쳐왔다.
지금 토카의 대명사가 된 '뇌절'도, 원래는 이 노인의 기술인 '음절'을 토카 용으로 어레인지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상의 이유로──.
"음훗후. 난고 선생님은 그 대영웅 쿠로가네 료마 어르신과 같은 시대를 산, 생애의 라이벌이셨으니까요오. 흥미를 가지시는 것도 당연합니다아."
난고는 92세.
대영응 쿠로가네 료마와 제2차 세계대전을 함께 누빈 전우이자, 동시에 그의 라이벌이기도 했던 사내였다.
보통 교내전 선발의 편성은 외부에는 유출되지 않지만, 이번 싸움은 보도를 통해서 외부로도 흘러나가는 상태가 되었다.
자신의 애제자와 숙적의 혈족이 서로 싸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결판을 지켜보기 위해서 난고가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말이죠, 난고 선생님. 오늘은 어쩌면, 시합은 중지가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아."
불현듯 아카자가 달가운 얼굴에 기분 나쁜 웃음을 들러 붙이고서 그런 말을 했다.
"뭐라고?"
그 말에 쿠로노는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그의 음성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악의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입장해주신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토도 토카 선수 대 쿠로가네 잇키 선수의 시합 시간이 되었습니다만,
아직 쿠로가네 선수가 대기실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선발전 규정에 따라서 지금부터 10분 이내에 쿠로가네 선수가 도착하지 않을 경우,
부전패가 되오니 양해바랍니다.』
그런 안내 방송이 회장에 울려 퍼졌다.
"……분명히 쿠로가네는 아카자 위원장이 차로 데려갈 테니까 마중 올 필요는 없다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확실히 어제 아카자는 그렇게 쿠로노에게 말하며 마중 나가는 것을 거절해왔다.
그런데도──.
"음훗후. 이야아, 죄송합니다. 와아아아안전히, 잊고 있었습니다아. 정말로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연맹 지부에서 여기까지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전철을 이용하면 혼자서도 찾아올 수 있겠죠. ……뭐, 상당히 몸 상태가 나빠 보였으니까아, 도중에 쓰러지거나 하면 그렇지도 않겠지만 말이죠오? 음훗후."
'이 녀석………….'
가슴속에 치밀어 오르는 불쾌감에 쿠로노는 피가 몰려 막힐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그 떨리는 손에 작은 손이 얹어졌다.
사이쿄의 손이었다.
그녀는 눈썹을 치켜 올린 쿠로노를 을려다보고서, 입가를 부채로 가리고서 쿠로노에게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타일렀다.
"성마르게 굴면 안돼, 쿠."
"…………."
"어떤 경위건 간에 쿠로꼬마는 결투를 받아들였어. 이곳에서 우리들이 훼방 놓는 건 도리가 아니야."
"……."
"저지르는 건, 모든 게 끝난 다음이야."
화가 난 것은 사이쿄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실을 확신하고서 쿠로노는 살짝 자신의 주먹에 힘을 풀었다.
"그래, 확실히 그렇군."
그리하여 두 사람이서 결의했다.
이 싸움에서 잇키가 이기든지 지든지 간에, 이 붉은 너구리만은 이곳에서 살려서 돌려보내지 않겠다고.
한편 붉은 너구리인 아카자는 그런 두 사람의 살기는 깨닫지 못한 채, 유쾌하게 시합이 시작되지 않는 링을 보고 있었다.
여기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잇키를 연맹에서 추방하고 이 일건을 이츠키가 바라는 형태로 수습하면, 그는 '윤리위원회'에서 '홍보부장'으로 그 지위를 옮기는 것이 확실히 약속되어 있었다.
지부의 지하 깊숙한 곳이 아니었다.
좀 더 밖의, 밝은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런 더러운 역할과는 오늘로 이별입니다아.'
비밀경찰이라는 비판도 있을 법한 '윤리위원회'는 '헌병' 시대에야말로 영광스러운 부서였지만 지금은 그저 암부일 뿐이었다.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이런 부서에서 맴돌고 싶을 리가 없었다.
아카자로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죄송하지만, 잇키 군은 철저하게 무너져 주셔야겠습니다아.'
그 결과, 그가 목숨을 잃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기에.
◆◇◆◇◆
잇키의 의식은 눈보라 속에 있었다.
내리쏟아지는 눈 속에서 웅크리면서, 그는 자신의 시작을 떠올렸다.
때마침 이런, 뼛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이 추운 날이었다.
지금의 쿠로가네 잇키가 시작된 때는.
쿠로가네 료마를 만나 그에게 자신을 믿어도 된다는 말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듣고서, 그것이 굉장히 기뻤다.
료마는 그 몇 개월 후에 노쇠로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지만, 그가 해주었던 말은 아직까지 자신의 마음속에 계속해서 살아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재능이라는 벽 앞에 웅크려서 움직일 수 없게 된 누군가에게 그 말을 선사할 사람이 되자고 결심해서, 그날부터 줄곧 자신의 한계와 끊임없이 싸워왔다.
그 만남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다.
료마와의 만남은 잇키의 긍지였다.
그렇지만──.
『그 만남은, 정말로 올발랐던 것일까?』
자신을 빼닮은 목소리를 가진 무언가가 귓가에서 속삭였다.
『그 만남은, 너에게 고통과 고독만을 가져다 준 게 아닐까?』
질척질척해진 잇키의 사고에 서서히 과거의 정경이 떠올랐다.
손바닥이 훌렁 벗겨져서 피투성이가 되면서 '음철'을 계속해서 휘두른 어린 시절의 자신.
그 무렵,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올바른지, 그것으로 정말로 강해질 수 있는지도 전혀 몰랐다.
만화를 참고서로 삼아서 진지하게 읽었을 만큼, 아무것도 몰랐던 시기였다.
아무리 길이 막혀도, 아무도 그에게 가르쳐 주는 사람 따위는 없었다.
그래서 덤불에 숨어서 몰래 분가의 아이들의 단련을 훔쳐보고서는, 그 모습을 계속해서 모방했다.
그것이………… 무척이나 서글펐던 것을 잘 기억한다.
쿠로가네가에 오는 검술 교사들은 다른 아이들에게 향하는 다정함도 엄격함도, 자신에게는 결코 보내주는 일이 없다는 시실을 이의 없이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어느 도장의 광경.
중학생이 된 잇키가 무사수행 삼아서 갔던 도장 순회.
그 중 한 곳에서 있었던 광경이었다.
1대1의 승부.
그런 규칙이었을 터인데 시합 개시의 신호가 울린 순간 등 뒤에서 다른 문하생들이 동시에 때리려고 덤벼들었고, 그 자리에서 제압당했다.
『도장 격파 같은 얕보는 짓, 두 번 다시 할 수 없게끔 해주겠어.』
그렇게 말하고서, 잇키의 대전 상대였던 중년의 관장은 잇키의 손을 잡더니, 새끼손가락을 힘껏 눌러서 꺾었다.
낄낄 웃으면서, 모든 손가락을.
그곳에 있는 누구 한 사람도 잇키를 도와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정말로 즐거운 듯이 웃으면서, 한 개 한 개 손가락을 눌러서 꺾어갔다.
그 폭력을 당할 때 느낀 아픔이나 공포는 지금도 강하게 기억에 새겨져 있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정경은…… 1년 전의 것.
『이거 봐. 무저항이면 네 힘이 증명되지 않잖아? 이 '사냥꾼'이 직접 상대를 해준다고 말했어. 반격해오라고.』
키리하라의 손에 벌집이 되는 자신과 그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교사들.
그리고,
『미안, 쿠로가네. 나는 이제 너와 사이좋게 지낼 수 없어』
그의 곁에서 떠나갔던 친구의 말…….
──잇키와 닮은 목소리를 가진 무언가가 속삭였다.
『그리고 지금, 너는 또 이런 곳에서 납죽 엎드려 있어. 쿠로가네 료마의 무책임한 말에 놀아난 탓에.
네가 아버지의 말대로 분수에 맞는 생활을 보냈더라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거야.
이런 빈사의 몸을 질질 끌고서, 죽으러 가는 싸움터로 뛰어가는 일도 없었을 거야.
분수에 맞지 않는 바람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야. 사람에게는 각각 재능에 걸맞은 영역이라는 것이 있어. 그곳에서 벗어난 인간이 얻는 것은, 고통과 고독뿐. 어때? 이제 됐잖아?
이제, 허사라는 사실을 알았겠지?
그렇다면 이제 작작, 편해지라고.
죽은 망령의 농지거리에 언제까지고 얽매이지 마.
이대로 이곳에서 자고 있으면 모든 결판이 나.
이제 두 번 다시 쿠로가네 료마의 말에 괴로워할 일도 없어.
그러니까──.』
이제 쉬어.
아아, 그렇다. 이제 쉬면 된다.
이런 일을 계속해본들 괴로울 뿐이다.
이곳에서 자고 있으면 편해진다.
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알고 있다.
알고, 있는, 데──.
"아, 아아아, 아아아앗!"
곪아 문드러진 목에서 갈라진 포효를 내며, 잇키는 아스팔트에 엎어진 자신의 몸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껏 내믿는 듯한 발걸음으로 눈보라 속에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둬. 어째서 또 자신을 괴롭히는 거야?』
물어보는 목소리.
그 물음의 답은 잇키 스스로도 몰랐다.
질척질척 녹은 사고와 기억으로는 무엇 하나 생각도 떠올릴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아까 전부터 줄곧, 기억 한구석에 비치는 것이었다.
붉은………… 불꽃.
사르르 흔들리며 빛을 흩뿌리는, 불꽃같은 붉은 머리카락.
그것은 누구의 머리카락인가?
이 뒷모습은 누구의 것인가?
지금의 잇키는 그것마저 떠올릴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 모습이 언뜻언뜻 비칠 때마다 마음이 어찌할 도리가 없을 만큼 술렁였다.
그 모습이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그 머리카락이 나부끼기만 해도 얼어붙었던 몸에 열기가 붙어 기진맥진해진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제 쉬어. 너 같은 아무도 바라지 않는 자가, 그 '뇌절'을 쓰러뜨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가본들 뭘 할 수 있어? 지금의 네가 무엇을 할 수 있어?』
그런 것은 모른다.
애당초 이미 무엇을 하러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잇키는 몰랐다.
그렇지만,
'아아, 그렇지만──.'
이 가슴에 켜진 열기. 그 감각을 느끼고서, 잇키는 단 하나를 떠올렸다.
'약속이, 있었어.'
『그──, 자. ────, 기── 높──.』
그것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았지만, 소중한 사람과 맹세한 소중한 약속이.
그뿐만이 아니었다.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그렇지만, 들은 기억이 있는 몇몇의 술렁거리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등을 밀어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야 해………….'
그것이 잇키의 답이었다.
그 답에 아까 전부터 달콤한 말을 던지던 무언가가 마음 속으로 질렸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서,
『그런가. 끝까지 자신을 계속해서 괴롭히겠다는 거구나.』
검게 칠한 얼굴에 일그러진 웃음을 띠웠다.
『그렇지만── 쓸데 없는 짓이야.』
순간──.
'아………….'
마침 하군 학원의 정문까지 찾아왔을 때, 잇키의 무릎이 꺾여서 몸이 무너져 내렸다.
잇키의 의지가 어떻든지 간에 이미 몸 쪽은 한계가 온 것이었다.
이 이상은 나아갈 수 없다.
이 이상을 서 있을 수 없다.
이곳이 쿠로가네 잇키라는 인간의 한계였다.
『너는 이제, 끝이야.』
잇키의 몸은 무정하게도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져 내려서, 그 몸은 지면에 쓰러져 엎어진다.
두 번 다시 일어 설 수 없는 지면으로.
──그럴 터였다.
'…………!'
그렇지만 쓰러져 엎어지는 그 찰나.
꼭…… 하고.
따스하고 다정한 힘이 무너져 내리는 몸을 받아 안았다.
그리고 그 받아 안은 힘은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오세요, 오라버니."
그 방울처럼 가련한 음색은 흐물흐물 무너진 기억에서 한 사람의 존재의 기억을 불러 일으켰다.
잇키의 단 하나뿐인 소중한 여동생의 기억과 그 이름을──.
"시즈, 쿠…………."
◆◇◆◇◆
쓰러질 뻔한 잇키의 몸을 받아 안은 시즈쿠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어젯밤, 토카 선배에게서 이야기를 듣고서, 저는 줄곧 고민했어요."
오빠를 막아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시즈쿠의 솔직한 마음을 말하자면, 막고 싶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제 됐다.
이미 오빠는 지나치게 충분할 정도로 노력했다.
자신은 이제, 이 이상 오빠가 상처입지 말았으면 했다.
괴로운 경험을 하지 말았으면 했다.
기사 따위는 그만두고서 함께 쿠로가네가로 돌아가자.
그곳은 오빠에게 감옥 안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오빠에게는 자신이 있다.
이제 예전처럼 오빠를 의톨이로 두지 않는다.
자신이라면 어머니로서도, 여동생으로서도, 친구로서도, 연인으로서도, 오빠를 사랑해 줄 수 있다.
오빠가 바라는 것을 무엇이든지 이루어 줄 수 있다.
그러니까, 이제 오빠를 쉬게 해주자고.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는 오라버니를 막는 일을 아무래도 망설이고 말았어요. 왜냐하면, 이 학교에 있을 때의 오라버니는, 정말로 즐겁게 웃고 있었으니까요."
본가에 있을 때에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랬다, 그는 어린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준 적은 있어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웃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빠가 간신히 얻은 자기 자신을 위한 웃음.
그것을 도저히 빼앗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저는 한 가지 도박을 걸었어요. 오라버니가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왔을 때, 그때에는────최대한 응원하며 오라버니를 결전의 무대로 배웅하겠다고요."
시즈쿠의 그 말과 함께──술렁임이 일어났다.
"그래, 선배! 선배라면 분명 이길 수 있어!!"
"시합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어! 서둘러!!"
"쿠로가네! 회장까지 앞으로 조금 남았어! 힘내!!"
"잇키이이! 파이티이이이이잉!!!!"
"조금만 더 힘내! 근성을 보여어어어어!!!!"
그것은 시즈쿠가 오빠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모은 응원.
친구가, 급우가, 제자가, 일찍이 싸웠던 대전 상대가──.
수많은 학생들이 교문에서 잇키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리를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는 얼굴로 바라 보는 잇키에게 시즈쿠는 말했다.
"오라버니. 녀석들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녀석들이 어떤 식으로 오라버니를 몰아넣으려 했는지는 간단히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잊지 마세요. 오라버니는 결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걸요. 확실히 맨 처음에는 외톨이였을지도 몰라요. 그 시간은 무척이나 길고 길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만큼 많은 사람이, 오라버니를 응원해주고 있어요. 시합이 있어서 이곳에 올 수 없었던 스텔라 양과 아리스도, 오라버니의 승리를 바라고 있어요. '워스트원'은 저희들의 영웅이에요."
그러니까,
"싸우세요. 그리고 이기세요!"
◆◇◆◇◆
시즈쿠 일행의 응원.
그것은 홀로 눈보라 속에 있던 잇키의 의식에…… 확실히 전해졌다.
잇키는 흐릿한 시야로 뚜렷하게 확인했다.
"싸우세요. 그리고 이기세요!"
은색 머리카락의 여동생이 있었다.
"다음호 벽신문은 선배의 특집 기사로 갈 생각이니까! 절대로 지지 마세요!"
안경을 쓴 귀여운 클래스메이트가 있었다.
"쿠로가네, 이곳이 제일 중요한 국면이야!"
큰 키에 자세가 반듯한 옛 제자가 있었다.
"선생님은 믿고 있어요. 당신이 이 정도로 질 사람이 아니라고요."
"회장은 엄청 강하지만, 나를 이겼으니 근성을 보이라고!"
"그래. 하면 되는 거다."
"잇키! 우리들, 반드시 잇키가 이길 거라 믿고 있어!"
그 밖에도 검을 가르쳤던 학생들이나 항상 자신을 응원하러 와주었던 후배들.
함께 배우는 클래스메이트.
잇키를 학원에 들여 준 교사.
칠성검무제를 걸고서 싸웠던 옛 호적수들──.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잇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 광경은 잇키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확신을 낳았다.
'아아, 간신히 깨달았어.'
한계를 넘었던 자신의 몸을 지탱해주었던 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그들의 목소리, 그리고 마음이었다.
자신을 따르는 자.
자신을 동경하는 자.
그리고──자신에게 꿈을 빼앗긴 자.
지금 이곳에 모인 자들은 제각기 다른 무언가의 형태로 잇키에게 마음을 맡겼다.
그렇기에 그들은 잇키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마음이, 잇키의 등을 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전에 우타카타에게 '너와 토카는 짊어지고 있는 것의 무게가 달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것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자기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잇키는 간신히 그 존재를 자각했다.
자신에게도 짊어지고 있는 것은, 맡겨진 바람은 있었다.
'어느 새인가, 그런 인간이, 되어 있었어…….'
그 확신을 얻은 순간, 잇키는 자신의 마음에 불이 켜지는 감각을 느꼈다.
두근, 두근, 피를 타고서 몸속에 열기가, 힘이 돌아왔다.
무너진 사고가, 기억이, 확실한 원래의 형태를 되찾아서 의식을 흐린 안개가 개었다.
──싸우자.
당연했다.
맡겨진 마음이 있다면 멋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이곳에 없는, 그 불꽃같은 머리카락의 소녀와 한──
스텔라와의 약속이 있었다.
『그러니까 가자. 둘이서. 기사의 높은 경지로.』
지금이라면 뚜렷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소중한 약속.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런 곳에서 끝낼 수 없다!
"……고마워, 시즈쿠. 쿠사카베 양. 야츠지 선배. 토마루 양. 사이조. 오레키 선생님.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어느 새인가, 눈보라는 그쳐있었다.
감사 인사를 하고서 잇키는 시즈쿠에게서 떨어져서 자신의 발로 걷기 시작했다.
등줄기를 펴고서 모두에게서 받은 힘으로 결전의 땅까지.
더 이상 마음에 두려움은 없었다.
『너 같은 아무도 바라지 않는 자가, 그 '뇌절'을 쓰러뜨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때, 잇키의 안에 있는 나약한 자신이 했던 말.
그것에게 지금이라면 명확하게 답을 돌려줄 수 있었다.
──쓰러뜨릴 수 있다고.
같은 무게를 짊어진 대등한 기사이기에.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른다.
정말로 난적이었다.
이 몸으로 쓰러뜨릴 수 있는 상대인지 아닌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불리한 요소만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할 만큼의 일은 하자.
지금 걸어 나아갈 힘을 준 모두를 위해서, 그럴 의무가 자신에게는 있으니까.
"그럼, 다녀오겠──."
순간,
"잇키이이!!!!"
목소리가 여름 하늘에 높게 울렸다.
무척이나, 무척이나 힘 있고 아름답고──.
어떤 음악의 음색보다도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
"스텔라…………!"
"다행이다, ……시간에, 맞췄어…………!"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눈앞으로 달려온 파이어 블론드의 소녀는 헐떡헐떡 어깨를 들썩이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의 등장에 잇키의 뒤에 있던 시즈쿠가 놀라움 어린 목소리를 질렀다.
"뭐, 스, 스텔라 양! 당신, 지금 시합 중인 게…………!"
그렇다, 그것이 시즈쿠가 놀란 이유였다.
스텔라도 무패로 마지막 날까지 남은 칠성검무제 대표 후보.
이 자리에 올 수 없었던 아리스인과 마찬가지로, 지금 그야말로 시합을 치르고 있을 터인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어째서 그런 사람이 이곳에 있는가.
그 이유를 스텔라는 답하지 않았다.
답하지 않고서 행동으로 드러냈다.
스텔라는 어떤 물건을 잇키의 눈앞에 들이밀 듯이 꺼내 들고서,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잇키. 나는 약속대로, 칠성검무제 대표 선수가 되었어!"
스텔라가 꺼내 든 물건.
그것은 하군 학원 대표 선수임을 증명하는 메달.
그렇다, 그녀는 이미 시합을 마치고 온 것이었다.
자신과 같은 무패의 맹자를, 선발전에서 가장 빠른 기록, 개시 3초의 KO로.
그 모든 것은………… 이 순간에 시긴을 맞추기 위해서.
그녀는 줄곧 생각했던 것이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
외롭게 싸우는 잇키를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를.
그리고 그녀가 낸 답은 둘이서 한 맹세를 지키는 일.
지키고서 그를 맞이하는 일,
그것은 분명 그에게 용기가 될 터이기에.
그러니까──.
"그러니까, 잇키도 이겨! 그리고, 둘이서 가자! 기사의 높은 경지로!!"
그 말을 듣고 잇키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감각을 느꼈다.
정말이지, 자신의 연인은…… 이 얼마나 멋진 여자일까.
기진맥진했던 자신을 북돋아서 여기까지 데리고 와 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이렇게도 커다란 용기를 주다니, 이렇게도 든든한 힘을 주다니.
'스텔라가 좋아해 주었던 것. 그것은 내 긍지야.'
그렇다면 그럴 값어치를 하는 자신이 되자.
이 강한 소녀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긍지 높은 자신이 되자.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겠다.
그런 나약한 마음은 그녀의 목소리 하나로 잇키의 안에서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동료들에게 남기고 갈 말을 바꾸었다.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이기고 올게!"
──라고.
◆◇◆◇◆
"응. 그런가. 알겠어. 연락해줘서 고마워."
감사 인사를 하고서 우타카타는 학생 수첩에서 귀를 뗐다.
그리고 대기실의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서 집중력을 높이고 있는 토카에게 전했다.
"렌렌에게서 연락이 왔어. …………후배가 왔다고."
"…………그래요."
토카는 짧게 대답을 하고서 고개를 숙였다.
고개 숙인 앞머리에 표정이 감추어져 있어서, 우타카타는 그 미음속을 어림짐작할 수 없었다.
잇키가 이 자리에 찾아왔다.
토카로서도 피하고 싶었을 사태를 앞에 두고서, 그녀는 무엇을──.
"………………후훗."
"…………!"
순간, 우타카타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감각을 느꼈다.
토카의 입술이 희열의 형태로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직파직, 토카의 고양이 주위의 대기에 전기를 띄게 만들어서 번개를 발생시켰다.
그 광경에 우타카타는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완전히 스위치가 들어갔어.'
이런 토카의 모습을 보는 것은 작년의 칠성검무제에서 모로보시와 싸웠을 때 이래였다.
그렇다, 후배의 몸을 걱정해서 기권을 재촉한 것은 토카의 다정함이었다.
그렇지만…… 이 싸움의 세계에서, 다정함만으로는 전국 베스트 4라는 높은 경지에는 이룰 수 없다.
적을 자비도 용서도 없이 피바다로 가라앉히는 잔인함과 흉포함.
그것 역시 이 소녀가 가진 일면인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건 본래 좀처럼 보이지 않는 일면이지만──.'
그렇지만 잇키는 토카를 진심으로 만들어버렸다.
쿠로가네 잇키라는 소년의 높은 긍지가 토카에게 그를 강적이라고 인정하게 만들어버렸다.
이렇게 된 토카는 이제 결코 봐주지는 않으리라.
반죽음 상태인 '워스트원'에게 전력으로 덮쳐들 것이 틀림없었다.
이미 잇키에게는 만에 하나의 승산도 없었다.
『토도 토카 선수. 시합을 개시하겠으니 입장해주십시오.』
"……그럼, 다녀올게요, 우타 군."
의자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서, 토카가 입장 게이트로 이어지는 문을 지나갔다.
그 기력에 넘치는 뒷모습을 바라본 우타카타는 최고로 고양된 그녀와 싸워야만 하는 빈사의 적을 동정했다.
'안됐지만 이 운명을 불행이라고 생각하라고──'워스트원'.'
◆◇◆◇◆
『어어, 입장해 주신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칠성검무제 대표 선발전 마지막 시합을 개시하겠습니다!!
적 게이트에서 지금, '뇌절'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9전 19승 무패. 그 모든 경기를 상처 없이 이겨 압도적으로 강한 힘을 보여 온 우리 학생회장님. 성적 저조 기미의 하군의 안에 있어서, 끊임없이 빛나는 그 모습에 우리들은 얼마나 용기를 얻어왔을까요.
그녀야말로 우리 하군의 자랑! 찬란하게 빛나는 일등성!
영광의 길을 계속해서 걸어온 반짝이는 별이 마지막 칠성검무제에 임하기 위해서 결전의 장소로 향합니다!!
3학년 '뇌절' 토도 토카 선수!!
지금 만인의 기대를 등에 지고서, 결전의 링에 섰습니다아아아!!!!』
링에 모습을 드러낸 토카.
등을 쭉 펴고서 청 게이트를 바라보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위풍당당.
"굉장한 집중력이네. 이만큼 떨어져 있는데 살갗이 찌릿찌릿해."
멀찍이서 보는 스텔라에게도 그 기력의 충실함은 전해져 왔다.
그렇지만 한 번 '뇌절'의 강한 힘을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는 시즈쿠는 그럴 경황이 아니었다.
"…………윽."
토카가 링에 나타난 순간, 시즈쿠의 온몸에 공포의 전율이 퍼졌다.
눈을 피하고 싶어질 만큼 공포를 느꼈다.
그렇지만──시즈쿠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떨리는 어깨를 끌어안고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을 견디며 반상을 내려다보았다.
"시즈쿠, 괜찮아?"
"……솔직히 괜찮지 않지만, 오라버니가 힘내고 있으니 제가 이곳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저는 마지막까지 이 시합을 지켜보겠습니다. 설령, 어떤 결과가 되든지 간에."
『그리고 청 게이트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마찬가지로 19전 19승무패.
그렇지만 걸어온 그 길은 '뇌절'과는 정반대!
누구도 상대해 주지 않았고,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아서──.
오로지 혼자서, 땅바닥에 남겨진 한 마리 늑대.
그러나 그는 기어 올라왔습니다!
'홍련의 황녀'를! '사냥꾼'을! '러너즈 하이'를!
하군의 유명한 기사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리고서!
이제 와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자는 하군에 없습니다! 하군이 자랑하는 최강의 F랭크! 1학년 '워스트원' 쿠로가네 잇키 선수.
하늘에 송곳니를 드러낸 늑대가 지금, 별을 삼키려고 결전의 무대에 올랐습니다아아!!!!』
뒤이어 청 게이트에서 잇키가모습을 드러냈다.
반죽음이라고는 여길 수 없을 만큼 똑바른 발걸음으로 결전의 장소를 향해, 토카와 마주하는 그 늠름한 뒷모습은 평상시의 잇키 그 자체.
그러나──.
"어, 어쩐지…… 평소와 분위기가 다르지 않아?"
"아, 그래……. 표정은 같은데, 어째서일까."
"보고 있는 게, 무서운 느낌…………."
평소 그대로일 터인 그의 모습에 회장이 술렁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어도, 그 서있는 모습에서 모두 무언가를 감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인식한 자들도 있었다.
"호호오. 저게 토카의 상대인가. 과연…… 강하군."
"난고 선생님께서도 아시겠습니까?"
"알고말고. 정말이지 긴장된 표정을 하고 있어. 저 애송이, 이 자리에서 죽음도 각오하고 있다고. 그 정도의 결의로 이 자리에 임하고 있어. 관객도 그 각오에 집어삼켜진 모양이구먼. 쿠로가네에 이런 사내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건 상당히 재미있는 시합이 될 것 같구먼."
"그럴까아? 얼굴에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상당히 피로한 기색이 짙어. 쿠, 저런 상태로 토카에게 도전해서 승산 같은 게 있을까?"
"음훗후. 있든지 없든지 도전해야 하겠지요오. 여하튼 이건 결투니까요."
옆에서 끼어든 아카자의 해살을 무시하고서, 쿠로노는 고개를 숙이다시피 하며 답했다.
"……솔직히, 상당히 형세가 나빠. 아마도 만족스럽게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건 한 번이나 두 번. ……그렇지만 그렇기에 쿠로가네는 신중하게 가겠지. 저 녀석 자신도 '뇌절'을 봉쇄하는 방법은 알고 있을 테니까."
"음후? '뇌절'을 봉쇄하는 방법 같은 게 존재하는 겁니까?"
"…………."
한순간 이 말도 무시해버릴까 하고도 생각했지만, 이 지방 낀 남자가 몇 번이고 질문을 퍼붓는 것도 기분이 나쁘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쿠로노는 옆에 선 아카자에게 설명했다.
"……'뇌절'은 간단히 말하자면 발도술입니다. 즉, 칼을 수납한 상태여야 쏠 수 있는 기술. 세세한 넣고 빼기를 반복해서 압박을 걸어 토도에게 '뇌절'이든 다른 노블 아츠든 허사로 만들어 검을 뽑게 만들면 적어도 그 사이에 '뇌절'은 날아오지 않아요. 쿠로가네에게 승산이 있다고 친다면 그 순간. ……그렇지만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만신창이의 몸으로 느긋하게 지구전을 제압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리한 승부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초조하게 승부를 걸면 그것이야말로 승산은 전혀 없다.
상대는 아직까지 크로스 레인지에서 불패를 자랑하는 '뇌절'이었다.
곧바로 뛰어들면 틀림없이 전가의 보도의 먹잇감이 된다.
잇키의 '일도수라'를 이용해 수십 배 신체 강화를 해도, '뇌절'을 깨기에는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지구전이었다.
그것은 그 자리에 있는 사이교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러나──단 한 사람, 다른 견해를 가진 기사가 있었다.
"호호오. 과연. 쿠로노는 이 승부를 지구전이라고 보는 겐가."
그 사람은 난고였다.
그는 주름진 눈꺼풀 안쪽에 매의 눈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시선을 빛내며 말했다.
"나는 이 승부──첫 칼질에서 결판이 난다고 보고 있네."
외야가 등장한 두 사람의 모습에 고조되었다.
그런 와중에 링 위에서 잇키와 마주 한 토카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쿠로가네 군. 저는 당신에게 사과해야만 합니다."
"……사과한다고요?"
"저는 줄곧, 쿠로가네 군이 오늘 이 자리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서, 여동생 분께 기권을 재촉하도록 부탁마저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실컷 위선자처럼 굴어 놓고서, 저라는 여자는………… 지금, 당신을 눈앞에 두고서, 이 싸움이 기대되어서 참을 수 없어요……!"
"윽…………!"
"쿠로가네 군이 만신창이인 건 알고 있습니다. 그 피로는 알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래도 고양되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당신과 만난 순간부터 줄곧, 줄곧 생각했으니까요. ──이 사람과 싸우고 싶다고!"
그녀는 입가를 웃는 형태로 끌어올리며 자세를 벌렸다.
대기에 번개가 내달리고, 그 번개는 토카의 손에 모여서 '나루카미'의 형태를 만들었다.
이미 시합 개시를 기다릴 수 없다는 표정.
그에 대해서 쿠로가네 잇키도 또한──.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그의 애도인 검은 일본도를 오른손에 구현시켰다.
그랬다. 그도 줄곧 생각했다.
'뇌절'과 자신. 강한 자는 어느 쪽일까 하고.
자신은 이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하고.
때로는 그 일로 고뇌하고, 형태 없는 안개 같은 망설임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무척이나 똑바로 그녀가 보였다.
"이 자리에 기사로서 선 이상, 스스로에게도, 당신에게도, 그리고 제 등을 밀어 준 사람들에게도, 부끄러움이 될 만한 검은 단 한칼도 휘두를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 곳에서 맹세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서 잇키는 오른손에 든 검을 들어 올려 그 칼끝을 토카에게 들이밀더니,
"내 최약으로 당신의 불패를 깨부수겠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맹세를 했다.
당연했다. 그러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기에.
『두 영웅, 짧은 말을 나누고서, 자신의 디바이스를 손에 들고서 서로 마주합니다.
정점을 계속해서 걸어왔던 소녀와 밑바닥에서 기어 올 소년.
진정 강한 자는 어느 쪽인가. 칠성검무제 대표권을 건 마지막 싸움이 지금 시작됩니다!
자, 그럼 여러분 함께 따라 외쳐주세요. ──LET'S GO AHEAD(시합 개시)!!!!』
◆◇◆◇◆
막을 여는 신호를 보낸 순간.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시합 개시의 부저가 울림과 동시에, 잇키가 자신의 몸에서 푸른빛을 뿜으며 토카를 향해서 달려간 것이었다.
『이, 이이이런, 잇키 선수 뜬금없이 비장의 카드인 '일도 수라'를 사용해 왔습니다!! 개막 속공입니다아이아!!』
그 사실에 회장 안이 술렁였다.
잇키가 개막부터 '일도수라'를 사용 하다니 지금까지 없었던 일이었기에.
당연하다. 이 기술에는 1분 동안이라는 엄격한 시간제한이 있었다,
그 사이를 놓치기만 해도 아웃.
그렇기에 잇키도 상대의 속셈을 다 읽고서, 공략의 수순을 간파하고 나서야 사용했다.
그렇지만 지금 잇키는 그 태도를 버렸다.
사소하게 주고받으며 상대의 속셈을 읽을 만한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인가.
그 피로로 승부에 안달한 것인가.
어느 쪽이든지──.
'그 판단은 무모하다고, 쿠로가네……!'
쿠로노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이를 갈았다.
이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체력이 남은 사이에 승부를 건다.
다소의 위험은 각오한 바.
호의적으로 받아들이면 그런 작전일지도 모르겠지만,
'알고 있는 건가. 상대는 '뇌절'이라고!'
전국 베스트 4.
그런 상대에게 자포자기의 육탄 공격 따위가 통용될 리 없었다.
'뇌절'에 베여서 쓰러질까, '질풍신뢰'로 회피당할까.
어느 쪽이든지 이 선택은 잇키에게 승산은 없었다.
그 사실에 쿠로노도 그 옆에서 싸움을 보고 있던 사이쿄도 표정이 험악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시즈쿠나 아리스인 같은 학생의 실력자도 마찬가지였다.
너무나도 무모하다고.
그 표정을 비통하게 일그러뜨렸다.
그러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은──.
'정말이지. 자신의 기사로서의 일생이 걸려있는데, 너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사람이구나……. 잇키.'
작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째서 잇키가 이 선택을 했는가.
'뇌절'은 발도술.
그렇다면 칼을 뽑게 만든 상태에서 공격해 들어가면 된다.
그것만으로 '뇌절'은 봉쇄할 수 있다.
'나도 알고 있으니까, 잇키가 깨닫지 못 했을 리가 없어.'
그렇지만 잇키는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
어째서인가.
체력이 그 작전에 따라가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그런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스텔라는 그 점을 알았다.
그리고 그 견해는 정확했다.
잇키는──.
'나는, 처음부터 결정했어…………!'
토카와 만났을 때부터, 줄곧.
그녀를 쓰러뜨릴 때는 '뇌절'을 공략할 때라고.
당연했다.
초전자 발도술 '뇌절'은 토카라는 기사의 대명사가 된 기술.
그것에 도전하지 않고서, 그것을 타도하지 않고서, 승리 따위를 말할 수 있겠나.
솔직히 몸은 이미 한계였다.
마력은 충분히 남아 있으니 '일도수라'로 신체강화를 행하는 만큼은 지장이 없지만, 체력 쪽이 더 이상 따라가지 않았다.
제대로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한 합이 한계.
그러나 그것으로 됐다. 충분하다.
혼신의 일격이라면 한 합으로 충분하다.
페인트 따위는 넣지 않는다.
쓸데없는 체력 따위 쓰지 않는다.
최단거리를 일직선으로 달려가서, 지금 자신이 가진 온 힘을 이 한 합에 실어서 휘두른다!
토도 토카가 자랑하는 불패의 '뇌절'을──!
그것이 이런 비열한 음모가 소용돌이치는 싸움터에 올라와준 토카를 향해서, 자신이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이자──.
'나 자신의, 도전이다────!!!!'
어떤 악조건이든지 간에, 후회가 남을 만한 시합은 하지 않겠다.
상대방에게 한을 남길 만한 자신의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
그 기백을 가슴에 품고서 생명의 빛을 흩뿌리며, 바람을 휘감으며 잇키는 달렸다.
그 모습을 보고서──.
토도 토카는 그의 심정을 알아챘다.
『내 최약으로 당신의 불패를 깨부수겠다.』
시합 전에 했던 그 말은 거짓 없는 진심인 것이었다.
'리버스 사이트'로 전달신호를 읽을 필요까지도 없다.
다가오는 이 기백이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쿠로가네 잇키가 이 시합의 한 합을 최후의 한칼로 정했다는 사실을.
그의 노림수는 이쪽이 맞받아쳐서 쏘는 '뇌절'.
'그렇다면, 시합은 간단해.'
'뇌절'을 페인트로 쓴 다음 크게 뒤로 피해서, 그의 혼신을 헛돌게 만든다.
그리고 맥이 빠진 잇키를 아웃 레인지에서 괴롭히면 그는 무엇 하나 할 수 없다.
이 시합은 자신의 승리──그런 것,
'농담이 아니야!'
토카는 그 계획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크로스 레인지는 아직까지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는 '뇌절'이 지배하는 영토이다.
적이 쳐들어왔다고 해서 순순히 영토에서 도망칠 영주가 어디에 있나.
크로스 레인지는 토카에게도 최강의 거리.
그곳을 도망쳐서 어디에서 싸우나?
무엇보다──만신창이의 몸을 무릅쓰며,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혼신으로 이쪽의 불패에 도전하려고 하는 이 긍지 높은 기사에게서 도망쳐서, 그런 승리를 누구에게 자랑할 수 있나?!
아아, 그렇다.
'나는 하군 학원 넘버원의 자리를 지키고 싶은 게 아니야! 이 긍지 높은 기사에게 이겨서, 칠성검왕이 되러 가는 거야!'
그렇다면──,
'받아들이겠다! 불패의 '뇌절'로──!!!!'
자세를 크게 벌리고 '나루카미'를 넣은 칼집에 번개를 불어넣었다.
준비하는 것은 전가의 보도.
쏘면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베어서 떨어뜨린 불패의 일격.
그것을 발도 태세로 자세를 잡고, 토카는 바람을 휘감고서 다가오는 잇키를 맞받아친다.
자신 또한 적과 마찬가지로 이 일도에 모든 것을 걸고서!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에게 긍지가 되게끔 정정당당하게 싸운다.
그것이야말로 기사의 왕도이기에!
그리고──지금, 그 왕도에서 두 사람의 기사가 대결한다.
잇키가 내보낸 것은 자신이 가진 일곱 개의 기술 중에서도 가장 빠른 일도. '제7비검 뇌광'.
칼솜씨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휘두르는 보이지 않는 검.
그 빠르기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땅을 꿰뚫는 뇌광과도 같았다.
그렇지만 그 '뇌광'을 맞받아치는 기술의 이름은 기이하게도 '뇌절'.
떨어져 내리는 번개마저도 베어 가르는 신속의 발도술.
쌍방 '빠르기'로는 뒤지지 않는 초인의 검.
그렇다면 우열을 결정짓는 것은 그 검에 깃든 마음의 '무게'.
그들의 승리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다른 사람의 바람.
그리고 눈앞에 있는 적을 이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의 마음.
그 모든 것을 자기 혼의 검에 맡겨서,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두 사람의 기사는 혼신을 실어서, 그 일도를 휘둘렀다!
쏘아져 나간 강철의 번개.
서로 최단거리를 질주하는 일격은────'뇌절' 쪽이 아주 조금 빨랐다!
──안 된, 다!
잇키는 확신했다.
──이걸로는, 부족해!
눈앞에서 닥쳐오는 이미 색도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눈부시게 빛나는 플라즈마의 날.
그 속도와 위력을 앞에 두고서────.
──이걸로는, 닿지 않아!
자신의 패배를.
휘둘러진 '뇌절'에는 아무런 망설임도 용서도 없었다.
숨통을 끊어버릴 각오마저 하고서, 힘껏 휘둘렀다.
이 얼마나, 이 얼마나 아름다운 칼솜씨일까.
'뇌절' 토도 토카. ……이 소녀는 정말로 강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어쨌다고?!
알고 있던 바였다.
그녀의 강함도, 자신이 남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점도, 전부.
그렇지만 잇키는 그 사실에서 눈을 돌렸던가?
아니다!
그는 계속해서 싸워왔다.
그 견딜 재간이 없는 현실에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서.
그렇기에 알고 있었다.
그런 잇키이기에 이럴 때 어떻게 하면 될지 이해했다.
뒤떨어진다면, 긁어모으면 된다.
이르지 못한다면, 쥐어짜내면 된다.
1분 따위 너무 길다.
지금의 자신에게는, 1초가 있으면 충분하다!
──자, 혼을 갈고 닦아라.
시각도, 미각도, 청각도, 촉각도, 통각도, 후각도, ──지 금은 전부 필요 없다.
이 찰나 속에서는 이미 호홉마저 필요 없다.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 남은 힘을 결집시켜라.
육체라는 육체.
뼈라는 뼈.
피라는 피.
세포라는 세포, 그 모든 것에서,
자기 자신의 기력, 체력, 마력, 가능성, 가지고 있는 것 모두를 쥐어짜내서──.
──극한의 일순을 내달려라!!
"──────────!!!!"
충돌하는 강철의 번개.
날려 가는 대기.
충돌은 천리를 뒤흔드는 굉음과 섬광을 낳고, 온갖 색과 소리를 빼앗아가──.
파삭…….
그 무음 속에서 강철이 부서져 흩어지는 소리가 새되게 회장에 울렸다.
뒤이어서…… 누군가가 쓰러져 엎어지는 소리도.
눈부심에 눈을 감고 있었던 관중이 머뭇머뭇 눈을 뜨고서 링을 내려다보았다.
깨져 흩어진 것은────'나루카미'.
기사의 왕도, 그 길 한복판에서 쓰러져 엎어진 이는 '뇌절' 토도 토카였다.
◆◇◆◇◆
『부서져 흩어졌습니다아아아아아아아!!!!
이,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단 한 합의 교차, 단 일격의 뒤섞임!
그 한순간에, 토도 선수의 '나루카미'가! '뇌절'이! 분쇄되었습니다아아아이아!!!!
링에 쓰러진 채 꿈쩍도 하지 않는 토도 선수!
지금, 심판이 달려갑니다! 속행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많은 관중이 마른 침을 삼키고서 쓰러진 토카에게 다가 간 심판의 지켜보았다.
잠시 상태를 살펴보듯이 쪼그려 앉은 심판은 이윽고 일어서더니 그 양손을 교차시켜 X자를 만들었다.
『심판이 내린 판단은 속행불능!! 시합 종료오오오오!!!!
이 무슨 막 내림! 이 무슨 결판!!
서로 나눈 베기 공격은 고작 한 합! 그 한 합으로, 하군 최강의 기사를 베어 넘어뜨렸습니아아아아아아!!!!
링에 선 승자는. 1학년 '워스트원' 쿠로가네 잇키 선수입니아아아아아아!!!!』
승자의 이름이 호명된 순간, 떠나갈 듯한 환성이 회장을 흔들었다.
많은 관중은 놀라움 어린 소리를 질렀다.
"거, 거짓말, 이지…………."
"저, 정말로 이겼어! 이겨버렸다고! 그 '뇌절'을!!"
"믿을 수 없어! 회장님이, 크로스 레인지에서 지다니…………!"
"그보다 디바이스가 부서지는 모습 같은 거 처음 봤어……. 살아 있나, 회장님."
"꺄아아아!! 잇키 최고오오오오!!!!"
흥분의 도가니로 변한 장내.
그 쏟아져 내리는 환성 속에서 잇키는 질질 몸을 끌고서 링을 뒤로 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윽!"
스텔라는 곧바로 달려 나갔다.
향하는 곳은 청 게이트.
잇키를 맞이할 생각이리라.
"시즈쿠는 안 가?"
문득, 함께 관전을 하던 카가미가 은발의 소녀에게 물었다.
그렇지만 그 물음에 시즈쿠는 작게 고개를 내저었다.
"혹시나 스텔라를 배려하는 거야? 오늘쯤은 맞이하러 가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아니, 야…………."
시즈쿠는 중얼거리고서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 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서 카가미도 깨달았다.
가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허리에 힘이 빠져서 움직일 수 없는 것이었다.
가장 사랑하는 오빠가 빈사의 몸을 질질 끌고서 임한 싸움.
적은 그 오빠에게 아무런 망설임도 용서도 없이, 혼신의 일격을 휘둘러왔다.
결과적으로는 잇키가 승리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실로 아슬아슬했다.
무언가 하나라도 잘못되었다면, 그 순간에 잇키의 목은 날아갔으리라.
그 긴장감, 그리고 그것에서 해방된 안도가 시즈쿠에게서 온갖 기력을 빼앗아간 것이리라.
지금은 그저,
"……무사해서, 다행이야……. 다행이야아……!"
그 안도에 시즈쿠는 주저앉아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야 무리도 아니었다.
시즈쿠는 어젯밤부터 계속 긴장하고 있었기에.
그러나 아슬아슬한 승부라고 하는 말은──사실 달랐다.
"봤나, 네네."
"그야 물론 봤지.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녀석이야, 쿠로꼬마는."
관객석 최상충에서 링을 내려다보는 두 사람의 마도 기사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 장면을 눈으로 보았다.
'뇌광'과 '뇌절'. 두 강철의 번개가 충돌하는 순간,
──잇키가 더욱더 가속한 모습을.
"1분 동안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쓰는 '일도수라'로는 '뇌절'에게 이길 수 없어. 쿠로가네 자신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어, 그래서 그 녀석은 1분이 아니라 단 한 번 휘두르기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썼어! '최강의 1분 동안'을 더욱이 경이적인 집중력으로 응축함으로써, 신체 능력의 강화배율을 수십 배에서 수백 배까지 차 올려서, 휘두르는 속도와 힘을 추가로 올렸어……!"
통상의 '일도수라'를 100미터 달리기로 체력 모두를 다 쓰는 것이라고 가정하면, 지금 잇키가 행한 것은 100미터의 최초 1초에서 모든 체력을 다 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이미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수라도'라고 하는, 사람이 추락할 만한 정도의 길이 아니었다.
극한을 넘어선 극한.
사람을 뛰어넘은…… 귀신.
이름을 붙이자면──.
'일도나찰'.
"그렇지만, 그건 단순한 조작인 게야. 승패를 가른 것은 다른 부분이다."
"난고 선생님……."
"영감탱이, 그건 무슨 의미야?"
"토카가 쓴 '뇌절'. 그건 토카가 쿠로가네 애송이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것조차 각오하고서 휘두른 일도. 내가 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망설임 없는 최고의 단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틀림없이 저 애송이의 칼보다도 빨랐어. 그렇지만…… 저 애송이. 극한의 순간 속에서 진화했다. 이 막바지에서. 강한 토카를 이기기 위해서.
……아마도, 저 애송이는 줄곧 끊임없이 그렇게 해왔던 거겠지.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아무도 베풀어주지 않고, 끊임없는 역경 속에서, 죽음에 미쳐서 자신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믿어왔어. 계속해서 갈고 닦아왔다.
1분 전의 자신보다도 빠르게. 1초 전의 자신보다도 강하게.
요컨대, 그 차이다. 토카는 틀림없이 자신의 한계까지 힘을 다 끌어냈어. 그러나 그 애송이는 이 승부 중에 자신의 한계를 진화시켰다. ……꾸준히 자신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진화시킨 마음가짐이 이 승리를 낳은 게야."
그렇게 말하고서, 난고는 늘어진 피부로 가늘어진 눈을 더욱이 가늘게 뜨며,
"……많이 닮았어. 그 남자를."
그리운 지인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링을 떠나는 잇키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옆에서,
"마, 말도 안 돼애애애!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어딨어어!! 녀석은 반쯤 죽었다고!! 그런데도, 이런 건, 무언가의 착오인 게 뻔해! 아아, 그렇지, 착오다! 차질이야! 이런 결과를 인정할까 보냐아아!!"
아카자만은 눈앞에서 일어난 사태를 받아들이지 못 하고서 비명을 지르면서 달려 나갔다.
쿵쿵 뛰어가는 둥근 등을 흘끗 보고서 사이쿄는 물었다.
"쿠. 쫓아가지 않아도 되겠어? 변변찮은 일을 할 거라고, 저거."
변변찮은 일을 한다.
그 의견에는 쿠로노도 동의했다.
그렇지만,
"……솔직히 이것저것 저질러준 값을 치르게 해주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쿠로가네의 싸우는 모습을 보았더니 바보 같아져 버려서 말이지. 내버려둬도 상관없겠지. 어차피 더 이상 그 남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엇을 하든지 이미 늦었어. 사태는 이제 그 남자의 손을 떠났어. 전국 수준의 강호. 집안의 술책. 덮쳐드는 불합리함. 부조리한 결투. 그 모든 것을 쿠로가네 잇키는 정면으로 상대해서──철저히 일도양단했어."
이 결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자 따위는 없다.
그리고 그 광경을 회장에 들어와 있는 보도 카메라가 찍었다.
전국 베스트 4인 '뇌절'이 '워스트원'에게 패배한 순간을.
"그러니까 이제 쿠로가네가가 아무리 쿠로가네를 괴롭히려 들어도 관계없어. 이미 세상이 녀석을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이 일전을 계기로 '워스트원'──아니, '어나더원(무관의 검왕)'의 용명은, 사실상 전 세계에 울렸을 테니까."
◆◇◆◇◆
'환성이………… 아득해.'
마치 창 밖에서 들리는 빗소리 같다고 잇키는 생각했다.
자신의 의식이 육체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으면 곧바로 지면에 무너져 내리리라.
아니, 이제 무너져 내려도 되는 것이었다.
승패는 결정 났고, 잇키는 이겼기에.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는 걸어 나갔다.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전하고 싶은말이 있어. …………지금, 이 순간에.'
그렇기에 걷는다.
환성을 등에 지고서 청 게이트를 지났다.
그곳에서──.
"잇키…………!"
만나고 싶은 사람이 맞은편에서 만나러 와주었다.
'…………고맙네.'
솔직히 객석까지 걷기는 억겁이었으니까.
양손을 벌려서 잇키를 맞아들이는 스텔라.
잇키는 그녀의 기슴에 쓰러져 내렸다.
스텔라는 풍만한 가슴으로 잇키를 끌어안고서,
"수고했어…… 잇키. …………흑!"
흐느껴 울었다.
보아하니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렇게나, …………걱정, 시켰어?"
"걱정했어! 걱정하는 게 당연하잖아! 훌쩍! 갑자기 납치 당해서 몇 주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고! 돌아왔더니 돌아온 대로 반쯤 죽어가고 있고! 그런 주제에 '뇌절'에게 정면으로 승부를 도전한다는 무모한 짓을 시작하고, 정말 너는 얼마나 바보 인거야! 믿을 수 없어! 바보, 바보, 바보오!"
'하하 일부러 파고든 거, 들켰네.'
"그렇지만, ……나도 바보야."
"왜냐하면 그런 잇키를, 계속해서 도전하는 잇키의 모습을, 이렇게나 엄청 좋아하니까."
그렇게 말하고서, 스텔라는 잇키를 끌어안는 힘을 강하게 했다.
꼬옥 겹쳐진 살결에서 스텔라의 열기를 느꼈다.
'아아, 이 열기야.'
이 열기가 얼어붙었던 자신의 몸에 몇 번이고 힘을 주었다.
그때, 눈보라 속에서 쓰러졌을 때, 정말로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
몸속에 힘 따위 털끝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열기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었다.
더 이상 이름도 떠올릴 수 없게 되었는데, 그래도 늘어진 몸을 일으켜 세워주었다.
'…………고마워.'
스텔라가 없었더라면 자신은 이곳에 올 수조차 없었으리라.
아버지에게 결정적인 형태로 버려져서, 그 실의에 잠긴 채 눈보라 속에서 묻혔으리라.
그렇지만 그녀가 있었기에…… 일어설 수가 있었다.
그녀가 있었기에 계속해서 싸울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말하겠다.
결정했다.
이 싸움이 끝나면, 이 싸움에서 이기면──스텔라에게 전하자고.
"…………스텔라."
잇키는 한 번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그리고 남았던 모든 힘으로 스텔라를 끌어안고서,
"내, 가족이 되어주었으면 해."
한 마디.
자신이 느끼는 애정, 그 모든 감정을 실어서 그녀에게 전했다.
결코 입으로 하지 않았던 결정적인 말.
자신과 그녀의 관계를 더 이상 단순한 연인이 아니게 만드는 그 말을.
순간, 끌어안고 있는 스텔라의 몸이 살짝 떨렸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곧바로 스텔라는 잇키의 몸을 한층 더 강하게 끌어안고서,
"네. 저를, 잇키의 아내로 삼아주세요."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목소리로, 그렇지만 정말로 기쁜 듯이 수줍어하면서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잇키의 마음을 안도가 감싸 안아서, ──그는 마침내 그 의식을 놓았다,
"잇키……? 안 돼, 잇키! 정신 차려!"
힘을 잃고서 자신에게 축 늘어져 기대는 잇키.
호흡은 하고 있었지만 ……지독하게 약했다.
언뜻 보아도 위험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았다.
더군다나 스텔라는 깨달았다.
잇키의 온몸, 옷 아래에서 피가 배어나온다는 사실을.
수백 배의 신체 강화.
그것은 이미 인간의 몸이 견딜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서둘러 의무실로 데리고 가야해…………!'
"스토오오오옵!"
그렇지만 잇키를 의무실로 데리고 가려고 한 스텔라의 앞에, 나무통 같은 남자가 가로막아 섰다.
눈에 핏발을 세우며 얼굴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아카자 마모루였다.
그 눈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실패했다.
이대로 가면 자신은 이 실패의 책임을 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출세를 따질 상황이 아니다.
지금의 지위를 잃게 될 것은 명백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수습해야만 한다.
그 초조함이 이 중년에게서 최저한의 이성마저 빼앗아 간 것이었다.
아카자는 손도끼의 디바이스를 꺼내 들고서, 의식을 잃은 잇키에게 달려들었다,
"음훗후! 자암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공주님! 이 남자를 놔두고 가십시오! 어쨌거나 저, 지금부터 그와 '결투'를 해야만 합니다아아! 실은 그의 결투 상대는 토도 토카가 아니라 바로 저였습니다! 이건 남자 대 남자의 약속! 자, 지금 당장 그 남자를 이쪽으로──, 어럽쇼?"
순간, 아카자는 눈앞에 있었을 터인 스텔라의 모습을 놓쳤다.
아니, 달랐다.
──놓친 것이 아니라, 스텔라가 아카자의 의식의 틈새에 파고들어간 것이었다.
고류보법 '누벼 걷기'.
스텔라 수준쯤 되면 원리만 알면 재현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은 기술이었다.
그리고 스텔라는 아카자의 의식에서 벗어난 채 잇키를 안고서 그의 옆을 빠져나가,
──스쳐지나갈 때 혼신의 주먹을 뒤로 휘둘러 그 나무통 같은 몸을 때려 날렸다.
아카자의 몸은 트럭에 치인 것처럼 날려가 그대로 청 게이트를 빠져나가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고무공처럼 튕기면서 링 위까지 굴러갔다.
"우왓! 뭔가 아저씨가 날아왔어!"
"뭐야, 저 아저씨. 어딘가에서 봤다는 기분이 드는데."
"그보다 어째 등뼈가 터무니없는 각도로 구부러져 있지 않아?"
"어쩐지 엄청 경련하고 있어. 기분 나빠."
"살아 있어, 저거?"
밖이 살짝 술렁였지만 스텔라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당장 잇키를 의사에게 진찰시키기 위해서 의무실로 향했다.
이미 방금 때려 날린 인간의 얼굴 따위, 그녀의 기억 끄트머리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
시합이 종료된 지 1시간.
"…………윽."
디바이스 '나루카미'가 부서진 충격으로 산산이 날아갔던 토카의 의식이 마침내 회복되었다.
"눈을 떴어, 토카?"
"기분은 어떤가요? 어디 아픈 곳은 없나요?"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
그것을 간호하는 우타카타와 카나타.
그 광경에 토카는 확신했다.
"그런가. ……나는, 져버렸구나."
기억은 '뇌절'을 휘둘렀을 때부터 끊겨있었다.
그래서 토카는 패한 순간의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동료들의 위로하는 듯한 표정을 보면, 그것을 헤아리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 최고의 '뇌절'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난고 선생님도 그렇게 말했어."
"사부님께서? 와 계셨나요?"
"응. 그렇지, 카나타."
"네. 오늘의 시합은 공개로 치러졌으니까요. 관전하러 와주셨던 모양이에요."
"굉장히 칭찬했어. 그 '뇌절'은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고."
'…………그런가.'
"사부님께서 보셔도 그랬다면, 제 착각이 아니겠죠."
자신은 전력을 다 끌어냈다.
그리고 그것은 틀림없이 쿠로가네 잇키를 웃돌았다.
그렇지만──.
'그 순간, 쿠로가네 군은 한층 더 빨라졌어.'
그 한순간 속에서 그는 자신의 한계를 진화시킨 것이었다.
다름 아닌 자신에게 이기기 위해서.
자신도 끊임없이 계속해서 위를 향해왔지만, 그렇다 해도 잇키에 비하면 아직 안이했다.
'워스트원'은 분명, 오늘뿐만 아니라 언제나 그런 절망적인 싸움을 해온 것이리라.
그리고 그때마다 스스로를 계속해서 진화시켜온 것이리라.
'……굉장해.'
자신이 진 것은 어떤 의미에서 필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지금 이 시점에서의 이야기.'
토카의 손에는 자신이 지금 쏘아냈던 '뇌절'이 남긴 회심의 감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감각이 가르쳐주었다.
'뇌절'도 더욱더 강해질 수 있다고.
그 차이는 언젠가는 메워진다.
아니, 메워 보이겠다.
다음에 싸울 때까지는, 반드시.
쫓아가자. 온 힘을 다해.
──다음번에는 자신이 도전자니까.
"……그래서, 말인데. 토카."
"응?"
문득, 우타카타가 무언가 껄끄러워 보이는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대체 무슨 일일까 하고 생각하며 재촉하자,
"'새싹의 집'의 모두에게는, 내가 연락할까?"
'…………아아, 그랬지.'
그러고 보니 현수막까지 만들었다고 말했었나, 하고 토카도 그 일을 떠올렸다.
제대로 자신이 졌다는 사실을 전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아도 선발전이 끝나면 만나러 간다고 말했던 것이었다.
우타카타는 만약 그 사실을 스스로 입에 담기 괴롭다면 대신 하겠다고 말해주고 있지만,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그렇지만 괜찮아. 제대로 자기 입으로 말할 거예요."
"무리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렇지만 토카는 고개를 조용히 옆으로 내저었다.
무리 따위는 하지 않았다.
잇키와 혼신을 다한 승부.
토카는 지금의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끌어내었다.
잇키의 숨통을 끊어버리는 것마저 각오해서 쓴 '뇌절'은 누구에게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일도였다.
아무것도 부끄러울 것은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가슴을 펴고서 돌아가겠어요."
그리고 말하겠다.
자신은 굉장한 기사와 싸우고 왔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