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강화 합숙
7월 하순.
장마도 끝나고 푸른 하늘에 흰 적란운이 치솟는 계절.
선발전으로 내달리듯이 지나갔던 1학기가 끝나고, 하군 학원도 여름방학으로 접어들었다.
장기휴가라는 점도 있어서 귀향한 학생들도 많아 교내의 인기척은 뜸했다.
남아 있는 이는 도쿄에서 느긋하게 여름방학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든가,
학원의 호화로운 설비로 자신을 단련하고 싶은 사람이든가──.
혹은 집안과 문제가 있어서 돌아가려야 돌아갈 수 없는 자이리라.
……그러나 뜻밖에도 쿠로가네 잇키의 모습은 그곳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그의 친구나 여동생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인가──.
이유는 눈앞에 닥친 칠성검무제다.
칠성검무제는 8월 중순부터 개최된다.
그리고 이런 대회를 앞두고 어떤 스포츠든지 반드시 강화 합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군도 물론 매년 강화 합숙을 개최한다.
오쿠타마의 합숙소에서 치르는 열흘간에 걸친 집중 훈련.
이 훈련에는 KOK리그에 참가할만한 프로 마도 기사도 강사로서 불려오기에, 훈련에 참가하는 것과 안 하는 것 사이에서는 칠성검무제 당일까지의 성장에 커다란 차이가 난다.
잇키 일행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대표 선수로서 혹은 그 도우미로서 이 합숙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소는 오쿠타마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문제의 '오쿠타마 거인 소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결국 미해결인 채 미궁 속에 빠졌다.
그 이후 잇키 일행을 습격한 바위 거인이 나타났다고 하는 보고는 없었지만, 역시 충분한 안전성이 확보되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 상황에 신구지 이사장이 '쿄문 학원'에게 부탁해서, 야마가타에 있는 합숙소에서 '쿄문 학원' 대표 선수와 함께 합동 합숙을 하게 된 것이었다.
◆◇◆◇◆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
자신을 한층 더 갈고 닦기 위해서 아득히 먼 이국에서 사무라이의 나라로 건너왔던 소녀는 도쿄에서 떨어진 야마가타의 땅에서, 지금 그야말로 스스로가 바랐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윽────!"
쿄문 합숙소의 모의전용 링.
홍련의 염광과 황금의 뇌광이 격렬하게 서로 부딪쳐 불꽃을 흩날렸다.
홍련의 불꽃을 두른 거대한 검을 휘두르는 이는 스텔라였다.
파워&스피드.
비할 데 없이 강력한 단단한 힘과 압도적인 마력을 활용한 높은 기동성.
스텔라 버밀리온이라는 기사에게는 도무지 약점이라 할 약점이 없다.
유달리 공격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 부분에 주목받는 경향이 있지만, 그녀의 본질은 높은 총합력에 있다.
공격·수비·속도.
온갖 능력이, 재능이, 비상히 높은 차원에서 균형 좋게 장비되어 있다.
그렇기에 A랭크 기사──.
그렇지만 지금 그녀가 눈앞에 두고서 검을 나누는 적은 그런 스텔라의 맹공을 바로 정면에서 견뎌내고 있었다.
스텔라와 검 싸움을 나눌 수 있다는 시점에서 상대하는 적은 상당히 노련한 실력자다.
스텔라의 단단한 힘은 제대로 받으면 그것만으로 인체가 철저히 파괴되는 수준의 것이기에.
떨어져 내리는 단단한 검을 죽이는 유연한 방어.
그리고 결코 수비로만 기울지 않고, 방어에서 곧바로 반격을 펼치는 기술의 날카로움.
스텔라가 상대하는 적은 그 점을 갖추었다.
그러나 그것도 당연한 일.
어째서냐 하면 지금 스텔라가 상대하고 있는 이는 합숙에 다른 학생회 임원과 함께 자원봉사 코치로서 참가하고 있는 하군에서 으뜸가는 학생 기사──'뇌절' 토도 토카이기에
"싯!!"
찰나를 다투는 검 싸움 중, 토카가 기술을 보였다.
쌍방의 강철이 서로 불꽃을 흩뿌린 순간, 발생하는 충격을 받아넘기게끔 손목을 비틀었다.
흡사 합기도를 연상시키는 움직임에, 스텔라의 신체가 크게 기울었다.
상대방이 충격을 비끼자 스델라의 검신이 미끄러진 것이었다.
"큭!"
그렇다고는 해도 스텔라 또한 일류 기사.
검신에 영향을 받아 신체가 통째로 균형을 잃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한계까지 단련된 강인한 하반신은 스텔라의 몸을 단단히 지면에 꿰매 붙였다.
그렇지만 확실히 빈틈은 생겼다.
그 빈틈을──'뇌절'은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토카는 디바이스(고유영장) '나루카미'의 날을 허리에 매단 검은 칼집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리 폭을 넓게 잡고 칼집에 번개의 힘을 흘려 넣었다.
"윽!"
순간, 스텔라의 등줄기를 빠져나가는 전율.
이 자세에서 뿜어지는 일격이 어떤 것인가.
그녀는 알고 있다.
노블 아츠(벌도 절기)──'뇌절'.
뽑혀 나오면 적을 일격으로 베어내는, 토카가 지닌 비장의 카드였다.
한번 패했다고는 해도, '뇌절'은 크로스 레인지에 있어서 압도적인 힘을 자랑한다.
'홍련의 황녀'로서도 '뇌절'에 대항할 수 있는 기술은 없었다.
위력과 사정거리라면 '칼사리티오 살라만드라(하늘과 땅을 불사르는 용왕의 불길)'가 크게 앞서지만, 가장 중요한 속도에서 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뇌절'을 쏠 자세를 취하면 스텔라로서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쪽도 이걸 기다리고 있었다고!'
스텔라는 등을 빠져나간 전율에 거스르지 않고서, 땅을 박차 크로스 레인지에서 탈출했다.
그랬다, 아까 전까지의 검 싸움은 전부 크로스레인지에 몸을 두고서 이 '뇌절'을 유발하기 위해.
'뇌절'은 전자력을 이용해서 검신을 사출하는 초전자 발도술.
초전자력에 의해 발생하는 폭발적 추진은 토카 자신으로서도 멈출 도리가 없다.
한번 뽑아내면 휘두르는 것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는 기술인 것이다.
그렇기에 스텔라는 굳이 사정거리에 몸을 두고서, 적이 전가의 보도를 겨누는 순간에 사정거리에서 뛰어올라 '뇌절'의 헛방놓기를 유도한다.
'……그렇지만.'
그러나──전가의 보도는 뽑히지 않았다.
토카는 발도 태세 그대로 정지해 간격에서 벗어난 스텔라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사소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겠다는 안광에, 스텔라는 내심 감탄했다는 듯이 한숨을 흘렸다.
'역시, 그렇게 순순히 생각대로는 움직여주지 않는구나.'
비장의 카드인 '뇌절'을 헛되이 쏘게 만든다.
그 정도의 작전은 누구라도 생각이 미친다.
일반적인 '뇌절 대책'이다.
당연히 토카도 몇 번이고 이 작전을 이용해오는 적과 상대해왔을 터.
당연히 순순하게 낚일 리가 없다.
──그렇다면,
'나만이 쓸 수 있는 작전으로 갈 수 밖에 없겠지!'
탕! 하고 스텔라는 지면을 다시 박차 더욱 더 크게 뒷걸음질했다.
토카에게서 10미터 이상 거리를 벌렸다.
그곳은 이제 검의 간격도 창의 간격도 아니었다.
원거리.
──활이나 총, 혹은 마술의 사정거리였다.
그렇다. 스텔라는 특별히 근접전만을 특기로 하는 기사는 아니었다.
이 원거리도 또한 스텔라의 영역이었다.
그녀는 현재 확인된 기사 중에서 가장 큰 마력 보유량을 자랑하는 기사이기에.
장거리에서 벌이는 마법 접전은 마력 보유량이 많은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토카도 장거리 공격 기술은 가지고 있지만, 스텔라를 상대로 마법 접전으로 맞붙으면 그 물량에 짓눌릴 것이 뻔했다.
"윽!"
그렇기에 토카가 땅을 박차고 초조하게 간격을 좁혀왔다.
그러나 그 판단은 아주 조금 늦었다.
"하아아아!"
스텔라는 멀찍이 간격에서 벗어나 자신의 디바이스 '레바테인(비룡의 죄검)'에 두른 '드래곤 브레스(비룡의 숨결)'에 더욱 더 마력을 실었다.
마력을 먹고 한층 더 광도와 온도를 더하는 불꽃.
스텔라는 그 불꽃을 두른 칼끝을 똑바로 달려오는 토카를 향해──
"다 먹어치워라! '드래곤 팡(비룡의 큰 턱)'!"
쏘아냈다.
'레바테인'──그 칼끝에서 용솟음친 불꽃은 순식간에 어떤 생물의 형태를 이루었다.
그것은──용이었다.
뱀처럼 긴 몸을 가진 불꽃의 용.
그 불꽃의 용이 삐쭉삐죽한 이빨이 늘어선 턱을 열고서 토카를 덮쳐들었다.
토카는 가까스로 사이드 스텝을 밟아 그 불꽃의 용이 들이미는 턱을 피했지만──.
순간, 불꽃의 용은 몸을 비틀더니 옆으로 도망친 토카에게 다시 송곳니를 드러냈다.
'드래곤 팡'은 단순한 화염의 포격이 아니었다.
온갖 것을 융해시키는 송곳니로 적을 씹어 발길 때까지 어디까지고 물고 늘어지는, 추격 공격이었다.
떨쳐내기란 불가능했다.
이 공격에 대해서 토카가 취할 수단은 하나뿐이었다.
어지간한 노블 아츠로는 이 '드래곤 팡'을 없앨 수는 없다.
스텔라의 압도적 마력량을 통해 내보내는 마법은 그 모든 것이 일격 필살의 힘을 지닌다.
어중간한 공격으로 손을 대려고 하면 반격을 당할 뿐이다.
그래서 토카는──
"────'뇌절'."
덮쳐오는 불꽃의 용에게, 자신이 지닌 가장 강하고 가장 빠른 공격으로 응했다.
응한다──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야말로 스텔라의 노림수.
'걸렸다!'
플라즈마의 베기 공격이 용의 목을 쳤다.
그 순간──스텔라는 전력으로 땅을 박차 폭발하는 것 같은 속도로 토카를 향해 다가갔다.
토카는 스텔라의 책략에 걸려 '뇌절'을 사용했다.
지금, 그녀는 '뇌절'을 힘껏 휘두르는 자세──즉 완전한 무방비 상태였다.
승부를 걸려면 지금뿐이었다.
스텔라는 숨 돌릴 틈도 없는 한순간 사이에 그 폭발적인 순발력으로 간격을 좁히고 필살의 일격을 머리 위로 높이 쳐들었다.
수직으로 내리치는 베기 공격.
지금 막 필살기를 다 쓴 토카는 무엇 하나 대응할 수 없다──.
"어……엇."
할 수 없을 터였다.
스텔라의 일격을 전부 맞을 터였다.
그렇지만 찰나 동안 토카가 스텔라의 예상에 없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녀는 확실히 '뇌절'을 휘둘렀다.
──그렇지만 휘두른 자세에서 멈춰있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뇌절'의 기세로 몸을 돌려서 2회 연속 공격을……?!'
초전자 발도술에 의해 발생하는 파괴적인 추진력.
그 추진력을 이용해서 고속회전을 통한 두 번째 공격.
그랬다, 스텔라가 세웠던 작전은 전부 토카에게 간파되었다.
그래서 토카는──굳이 '뇌절'을 사용했다.
스텔라가 무방비하게 자신의 간격으로 뛰어 들어오도록 꾸미기 위해서.
그리고 그 의도는 완벽하게 걸려들었다.
기술이 다 끝날 때를 노렸던 스텔라의 복부는 '뇌절'에 의해 깊숙이 베어 넘겨져서──.
"아, 으."
'환상 형태'──육체를 상처 입히지 않고 체력을 직접 깎아내는 칼에 의한 대미지(탈력)로, 스텔라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토카는 스텔라의 목덜미에 척 '나루카미'의 날을 가져다 댔다.
그것이 이 싸움에 결판이 난 순간이었다.
"……그런 페인트 대책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 했어."
"저도 실전에서 써보기는 처음이니까요. ──적의 약점을 찌른다는 발상은 기본적으로는 올발라요, 그렇지만 전국 상위권쯤 되면 자신의 약점을 이용해서 상대를 덫에 빠뜨리는 일쯤은 아무렇지 않게 해 옵니다. 저는 물론이고 '칠성검왕' 모로보시 씨도 마찬가지. 이 클래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려면 그 수읽기를 제압하는 게 중요해요."
토카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붉은 머리의 후배에게 그녀의 패인을 고하고,
"아직 멀었네요, 스텔라 양."
참으로 여유로운 웃음을 띠웠다.
그 모습이 또한 스텔라는 분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우우으…………."
그녀는 원망스럽게 나지막한 신음을 내는 것이었다.
◆◇◆◇◆
"어머나, '홍련의 황녀'가 져버렸네?"
"어어, 거짓말."
대결을 멀리 떨어져서 보고 있던 두 사람의 소녀가 한숨을 쉬었다.
그녀들의 팔에는 각각 '신문부'라 기재된 노란색 완장이 달려있었다.
그녀들은 합숙을 취재하러 온 '분쿄쿠'의 신문부였다.
칠성검무제 전에 치르는 강화 합숙은 평소에 좀처럼 취재할 수 없는 다른 학교 선수를 취재할 수 있는 기회.
각 학교의 신문부로서도 중요한 이벤트였다.
그래서 '분쿄쿠' 소속인 두 사람도 소문의 공주 기사 스텔라 버밀리온의 기사를 쓰기 위해 규슈에서 먼 길을 찾아왔지만──,
"어쩐지 실망이야."
"그 '뇌절'에게 호쾌히 승리! 같은 거라면 분위기가 고조되었을 텐데 말이야아."
"실은 약했다! 이런 거, 기삿거리가 안 돼."
스텔라의 화제성에 편승해 기사를 쓰려고 했지만 져버려서야 지면의 비등함이 모자란다.
허탕을 쳤다며 머쓱해 하는 '분쿄쿠' 신문부.
그런 중얼거림을──마찬가지로 신문부의 노란색 완장을 찬 쿠사카베 카가미가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듣고는 어이 없다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것 참 '분쿄쿠' 기자님은 어디에 눈을 달고 있는지 원."
"정말이야. 자신이 바라는 결과에 발목이 잡혀서 눈앞의 진실을 보는 눈이 흐려지다니, 기자로서 말이 안 되네."
찬동한 사람은 카가미 곁에서 '뇌절'과 '홍련의 황녀'의 모의전을 관전하고 있던 아리스인 나기였다.
두 사람은 몇 번이고 스텔라가 싸우는 모습을 봐와서 아는 것이었다.
이 싸움의 결과를 낳은 것은, '분쿄쿠'가 말할 것처럼 스텔라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렇다고는 해도──같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해도 보는 눈이 있는 자도 있다.
그것은 카가미 일행에게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싸움을 관전하고 있던 두 사람의 남녀였다.
"이야아, 굉장한 싸움이었어어. 저건 돈을 딸 수 있겠는걸."
"올해 하군은 하나같이 상당히 우수한걸, 쿠사카베."
카가미가 다가오면서 말을 걸어온 두 사람에게 웃는 얼굴로 응대했다.
"야고코로 선배랑 코미야마 선배. 두 분도 관전하고 있었군요."
"그야 그렇지. 모의전이라고는 해도 '뇌절'과 '홍련의 황녀'의 싸움을 놓치다니, 기자의 반열에도 못 오른다고."
"그 말대로야."
그렇게 카가미가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있노라니, 뒤에서 쿡쿡 아리스인이 어깨를 찔렀다.
뭐야? 하고 뒤돌아보자, 아리스인이 카가미에게 물었다.
"카가밍. 이 두 분은 누구셔?"
그 물음에 카가미는 아리스인이 이 두 사람을 처음 만났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아, 그러고 보니 아직 소개를 안 했구나. 이 여성 쪽이 '부쿄쿠 학원' 신문부 소속인 야고코로 선배. 그리고 남성 쪽이 '돈로 학원' 신문부 소속인 코미야마 선배."
"잘 부탁드립니다. 아리스인 씨."
"잘 부탁해요."
"과연. 두 사람 모두 동업자 분들이 었구나."
"그렇지. 같은 완장을 차고 있잖아."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리스인.
그런 그에게 막 인사를 마친 야고코로가 불쑥 다가왔다.
"이야, 그렇지만 소문으로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미남이네. 당신 얼굴만으로 먹고 살 수 있겠는데?"
"야고코로, 실례야."
빤히 아리스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런 말을 무심코 입 밖으로 낸 야고코로를, 옆에 선 코미야마가 팔꿈치를 찔러서 타일렀다.
그렇지만 아리스인은 그다지 기분 나쁜 기색 없이 미소 지었다.
"아하하. 별로 상관없어. 꽃도 여자도 사랑받아야 제격인걸."
"여, 여자……?"
아리스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코미야마가 동요를 드러냈다.
코미야마는 지금 들은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아, 아리스는 이런 사람이라서요. 그다지 신경 쓰지 마세요, 코미야마 선배."
"노, 노력하지……."
"뭐야, 코미야마는 나기 씨가 이런 사람이라는 거 몰랐어? 사전 취재가 부족하구마안."
"큭. 아무리 그래도 성벽까지 파악하지는 않았어……."
그 말을 듣고 카가미는 코미야마답다고 생각했다.
역시 기자에게도 취향이 있었다.
야고코로와 카가미는 선수의 인간성 같은 요소도 엮어서 살짝 연출된 기사 쓰기를 좋아했다.
그에 비해서 코미야마는 꾸밈없고 튼실하다.
굳이 말하자면 국영 방송 같은, 사실을 사실로서 기재하고 각색하기를 꺼리는 타입이었다.
그런 기자에게 성별 같은 것은 조사할 대상에 들어가지 않았으리라.
"그렇지만 나기 씨도 대표 선수인데, 이런 곳에사 느긋하게 관전해도 돼?"
"나는 어쩐지 뽑기 운이 좋아서 우연히 남아버린 거나 마찬가지라서. 원래 그렇게 칠성검무제에 흥미도 없었고 말이지. 져버린 사람들에게는 면목없지만. 이 합숙에 온 것도 룸메이트를 따라온 거나 마찬가지고. 그래서 느긋하게 지내고 있어."
"우연히, 말이지. 20전이나 되는 연전을 우연히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데."
"그렇지만 이겨서 남았으니 어쩔 수 없잖아?"
"뭐, 시합에 임하는 자세는 사람 제각각이니까 말이지. 그런 선수가 있어도 상관없잖아."
"어머. 관용적인 남자는 취향인데?"
"조, 좀 봐줘……."
아리스인의 요염한 시선에 얼굴빛이 새파래져 뒷걸음치는 코미야마.
그 모습을 우습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카가미는 문득 신경이 쓰였던 점을 두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야고코로 선배, 코미야마 선배. 두 사람은 아까 전 시합을 어떻게 보았어요?"
"'뇌절'과 '홍련의 황녀'의 승부 말이야?"
"예."
"그렇구나. 한마디. ──터무니 없이 수준이 높아."
"그건 어느 쪽이요?"
"어느 쪽이 아니야. 두 사람 다, 야"
그 말에 카가미는 작게 웃음을 지었다.
역시, 이 두 사람은 알고 있구나, 하고.
그랬다. 야고코로와 코미야마는 그 모의전에서 스텔라가 진 이유를 올바르게 꿰뚫어보았다.
"'홍련의 황녀'의 강함은 소문으로 들은 대로 변명할 여지가 없었어. 일격 일격의 공격력, 순발력. 전부 나무랄 데 없는 초일급품이야. 이 정도의 1학년은 10년에 한 사람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로 말이지. 그래서 그 승부, 패인은 그녀의 약함에 있는 게 아니야. '홍련의 황녀'가 약한 게 아니야. ──'뇌절'이 기이할 정도로 강해."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나도 코미양도 3학년이야. 그래서 작년에 '뇌절'을 취재했는데, 기술의 날카로움도 위력도 작년과는 비교되지 않아."
"아마도 요 1년 동안, 올해야말로 '칠성검왕'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자신의 기술을 갈고 닦아왔던 거겠지. 그렇지만 그래서 아직도 믿기지 않아. 이 정도까지 강해진 '뇌절'이, '대표'가 아니라 '자원봉사 코치'로서 이 합숙에 참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A랭크 기사마저 물리쳐 보인 '뇌절'에게서 대표 자리를 빼앗은 F랭크 기사가 있다는 현실이."
그렇게 말하고서, 코미야마가 훈련장의 끄트머리로 시선을 향했다.
그곳에──'뇌절'을 쓰러뜨리고 대표의 자리를 빼앗은 사내가 있었다.
'워스트원(낙제 기사)' 쿠로가네 잇키.
F랭크라는 기사로서 최저의 힘밖에 지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줄줄이 늘어선 격이 위인 상대를 후려쳐 쓰러뜨리고, 마침내는 칠성검무제 대표 선수까지 올라간 남자였다.
"그런데 그는 저런 구석에서 뭘 하는 있는 거지?"
"모의전이 아닐까? '음철'을 겨누고 있고."
"주변에 있는 건, 나랑 같은 대표인 하구레 자매네."
"모의전이라니, 일대이로 말이야?"
"선배라면 그 정도 별거 아니니까요."
그런 카가미의 추측은 옳았다.
네 사람의 시선 끝.
그곳에서 잇키는 지금, 3학년 쌍둥이 자매 하구레 키쿄와 하구레 보탄에게 청을 받아 일대이로 모의전을 하고 있었다.
"들어갔다아아아아!"
창의 디바이스를 겨눈 하구레 키쿄가 '순간 가속'의 노블 아츠를 이용해, 아음속까지 가속한 돌격을 선보였다.
그렇지만 잇키는 무서운 속도로 찔러 들어오는 창술사를 향해 초조한 기색도 보이지 않고서,
"읏차."
──밀려오는 창끝을 발로 짓밟아 지면에 꽂았다.
"우와아아?!"
창이 지면에 박혀버린 키쿄는 장대높이뛰기를 하면서 스스로 돌격하던 기세 때문에 몸이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잇키를 뛰어넘으며,
"헤?"
잇키의 등을 노려서 쌍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던 여동생 보탄에게 힘껏 부딪쳤다.
"후갸아."
"꺄아앙!"
그리고 그대로 데굴데굴 모래 지면을 구르는 두 사람.
잇키는 두 사람을 따라가서 걱정 어린 말을 걸었다.
"괜찮습니까?"
"아야야……, 응. 나는 괜찮아. 보탄은?"
"우으으, 조금 까졌어."
"시즈쿠."
"예. 맡겨주세요, 오라버니."
잇키의 말을 듣고,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즈쿠가 치유술을 써서 보탄의 무릎에 생긴 찰과상을 막았다.
그 사이에 잇키는 하구레 자매에게,
"키쿄 선배의 속도는 무기입니다만, 창술사가 자신보다 사정거리가 짧은 상대에게 몸을 통째로 돌격해서 얻는 이점은 그다지 없습니다. 사정거리의 우위를 스스로 놓아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좀 더 '맞받아치는' 것도 전법에 넣는 편이 좋을 겁니다. 그리고 보탄 선배도 아군과 사선이 겹치는 위치에 서는 건──."
지금 치렀던 전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던 아리스인은 생각한 바를 그대로 말로 표현했다.
"모의전이라기보다도 잇키가 저 두 사람에게 훈련을 시켜주는 느낌이네."
모의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일방적이었기 때문이다.
뭐, 실제로 이 모의전은 하구레 자매로부터 잇키에게 훈련을 시켜달라고 부탁받아서 시작한 것이라 아리스인의 관점은 옳았다.
"……훈련인가. 그건 그렇고 압도적이었어. '워스트원' 쪽은 검을 휘두르지도 않았다고."
"카가미. 저 하구레 자매는 약해?"
야고코로의 물음에 카가미는 고개를 내저으며 부정을 표시했다.
"설마요. 확실히 하구레 자매는 선배나 스텔라 일행이 하군 상위권을 일제히 무릎 꿇려서 운 좋게 선택된 거라고 말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두 사람 다 자신들보다 격이 위인 학원 서열 한 자릿수의 기사를 떨어뜨리고 20전 무패를 지켜온 기사인걸요. 그야 '뇌절'이나 '러너즈 하이(속도 중독)'하고 비교하면 어느 정도 격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틀림없이 실력은 있어요."
"그걸 완전히 어린애 취급 하다니. 예상 이상으로 대단한걸."
"그건 그렇고 상당히 여유롭군. 모처럼 하는 합숙에서 다른사람의 연습에 어울려주다니."
"선배는 남 뒤치다꺼리를 하는 걸 좋아하니까, 기분 전환이 아닐까요."
"게다가 잇키는 사흘 동안에 '쿄문'이 준비해주었던 코치를 전부 쓰러뜨려 버렸고 말이지이."
중얼거리는 아리스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합숙은 오늘로 나흘째였는데, 잇키는 이미 '쿄문'에서 준비해준 프로 마도 기사 코치를 전원 모의전에서 쓰러뜨려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모의전을 하려 해도 상대가 없었다.
아마도 지금, 이 합숙소에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강한 코치일 '뇌절'에게도 실전에서 승리를 거머쥐었기에.
"뭐, 과연 그래서야 합숙의 장소를 제공한 '쿄문'의 체면이 깍이니, 급히 '워스트원'을 위해 특별한 코치를 부른 모양이지만 말이야."
"대체 누가 올까? 신구지 이사장이라든가 사이쿄 선생님은 평소였다면 곧바로 달려와 주겠지만, 지금은 칠성검무제 준비와 KOK 공식 시합 때문에 두 사람 다 오사카에 가버렸으니 무리일 거고. 그렇다고 해도 쓰러뜨려 버린 코치는 전원 내셔널(일본 국내) 리그의 랭커니까. 어지간한 마도 기사를 불러도 의미가 없을 거고."
"그 클래스를 불러야 상대가 될 법한 시점에서 이상 사태겠지."
"정말로, 올해의 '하군'은 굉장해~. 우리 '부쿄쿠'의 천하도 위험하겠어."
탄식하는 듯한 목소리로 '하군' 대표진을 상찬하는 야고코로.
그러나 카가미는 그녀를 향해서 빈정거림이 어린 쓴웃음을 띠웠다.
"정말이지 딴청부리시기는. 질 생각 같은 건 애당초 없으면서요. '부쿄쿠' 역시 설마 하던 사람을 출전시켰잖아요."
'부쿄쿠'는 요 몇 년 시상대를 계속해서 독점하는 명문 중의 명문이었다.
현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를 필두로 하는 대표진의 강함은 일본뿐만이 아니라 해외에도 그 용명을 떨치고 있었다.
그러나──출전 기간이 슬아슬해졌을 때, 그 해외까지 용명을 떨치는 대표진 중 한 사람을 밀어내고서 난데없이 부쿄쿠 대표에 이름을 올린 남자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 사람이 '바람의 검제'라는 별명을 지닌 일본인 학생 중 유일한 A랭크 기사 쿠로가네 오마였다.
"1학년, 2학년 때 어째서인지 칠성검무제에 출전하지 않았던 A랭크의 기사가 3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공식전의 자리에 얼굴을 내밀었어요. '부쿄쿠'의 대표 멤버를 처음 보았을 때는 깜짝 놀랐다니까요."
"나도 마찬가지야. 철석같이 그 남자는 올해도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지. 역시 그 남자의 출전은 '부쿄쿠'가 그만큼 이번 대회에 힘을 실었다는 뜻일까?"
이국에서 찾아온 A랭크 기사 '홍련의 황녀'.
'뇌절'을 단칼 아래 무찌른 '워스트원'.
그 밖에도 올해는 어느 학원이나 예년에 비해서 이상할 만큼의 비율로 '무명의 1학년'이 출전했다.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파란의 양상을 보이는 이번 대회.
기사로서의 수준만이라면 '칠성검왕'인 모로보시보다 격이 높인 오마를 놀려둘 수는 없다.
그런 이유에서 결정된 출전이 아닐까 하는 것이 코미야마와 카가미의 예상이었다,
그러나 그 야고코로는 고개를 옆으로 내저으며 부정했다.
"아냐, 아냐. '바람의 검제'는 학교에서 하는 말을 들을 만한 녀석이 아니라고. 애당초 평소에는 학교에 오기는커녕 연락조차 되지 않고 말이야. 이 출전은 '바람의 검제' 본인의 희망이야. 그러니까 우리도 마찬가지로 깜짝 놀랐어."
"그럼 학원의 지시 같은 게 아니구나?"
"응."
"그랬나. 뭐, 본인이 희망하면 학원으로서도 더 바랄 것이 없는 상황일 거고."
"그렇지. 그래서 갑자기 선발전 6위였던 시바타와 대결해서 이긴 쪽이 대표로 나가게 되었어."
"그래서, 오마 씨가 이겼다는 건가."
"솔직히 승부도 되지 않았어. 상대가 나빴다고 하면 그 뿐이지만."
대답하는 야고코로의 표정에는 애수의 빛이 어렸다.
시바타는 어지간히 무참한 패배를 맛보았으리라.
그렇지만──.
"시바타에게는 미안하지만 '바람의 검제'의 변덕은 '부쿄쿠'에게 있어서도 우리 '글쟁이'에게 있어서도 좋은 소식이겠지."
"정말 그래. 면면은 호화로운 편이 지면이 불타오르지."
"인터넷에서도 '홍련의 황녀'와 '바람의 검제'의 대결을 기대하는 목소리는 컸다고."
"무리도 아니지. '월드 클락(세계 시계)' 대 '야차공주' 이래의 학생 A랭크 대결은 그 누구라도 보고 싶을 거야."
그 두 사람의 싸움은 지금도 이야깃거리가 되는 명승부였다.
그 명승부와 기묘하게도 똑같은 '하군' VS '부쿄쿠'의 동서 대결이라는 구도 역시 화제에 한몫을 하고 있으리라.
"……뭐, 같은 도쿄인 우리 '돈로'로서는 주눅이 드는 이야기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제가 폭로한 '워스트원'과 얽힌 사건 일건 이래, '소드 이터(검사 살해자)'가 의욕이 생겼잖아요?"
"솔직히 그것만이 구원이야. 올해의 그에게는 우리도 기대하고 있어. 소행에는 문제가 있는 남자지만 '소드 이터'의 격투 센스는 초일급품이야. ……그렇지만 그걸 입각해도, 역시 이번 대회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건──'워스트원'이야."
같은 학교의 후배인 '소드 이터'의 활약을 기대하는 반면 이 대회의 다크호스는 그가 아니라 잇키 쪽이라고, 자신이 가진 기자로서의 감이 고한다며 코미야마는 말했다.
"그 '홍련의 황녀'와 펼친 대결 이래 은밀하게 소문이 퍼지고 '뇌절'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쥠으로써 드디어 무대 표면에 두각을 나타낸 무명의 F랭크가 전국의 강호를 상대로 어디까지 파고들 수 있을까. ……내심 누구나 기대하고 있을 거야. 실제로 아직 공표하지 않았지만 어느 키스테이션에서는 칠성검무제 전에 '워스트원'으로 특집 방송을 짜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야."
"'홍련의 황녀'를 쓰러뜨리고 '뇌절'을 단칼에 베어 넘긴 '바람의 검제'의 동생……. 뭐, 그것도 당연한 취급일지도 모르겠네."
코미야마의 의견에 납득하는 야고코로.
그 곁에서 카가미는 은밀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줄곧 주목하여 계속해서 좇아온 선수가 이렇게 누구에게서나 인정받는 존재가 되는 것은 상당히 기쁜 구석이 있었다.
자신의 안목이 정확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쿠로가네 잇키라는 기사가 얼마나 고난과 역경을 뛰어넘어 이 자리에 왔는지 그 주변 사정을 알기에 괜스레 기쁜 마음이 들고 마는 것이었다.
'뭐, 특정 선수에게 너무 빠져드는 건 좋지 않지만.'
그렇지만 카가미는 잇키에 관해서는 어떨 수 없다고 딱 잘라 결론지었다.
'왜냐하면 저렇게나 성실하고 올곧은 남자를, 여자라면 누구나 응원하고 싶어질걸.'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응.
"응?"
문득, 잇키에게 시선을 돌리려고 했을 때, 카가미는 시야의 끄트머리에 있는 인물을 찾아냈다.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멀찍이 떨어져서 잇키에게로 시선을 향하는 애시블론드의 여성.
"저건 혹시나 '쿄문'의 '얼음의 냉소' 아니야?"
"정말이네. '워스트원'을 정찰하러 온 걸까?"
"가자."
"이건 꼭 코멘트를 받아내어야──아니 이런, 코미야마 선배 벌써 갔어!"
"기다려, 코미양! 독점은 용서 못 해! 아, 나기 씨도 나중에 또 취재하러 올 테니까. 그럼!"
약삭빠르게 아리스인에게 접점을 얻어낸 다음, 야고코로도 코미야마를 쫓아서 달렸다.
그렇지만 카가미만은 그럴 수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일행인 아리스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그를 남겨두고 가기도 미안했다.
그래서 카가미는 아리스인에게 한마디 양해를 구했다.
"아리스! 나도 잠시 다녀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주겠어?!"
"…………."
그렇지만 아리스인의 대답은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리스?"
"어, 아. 미안해, 카가밍. 잠시 멍하니 있었어. 왜 그러니?"
두 번째 물음에서 간신히 반응한 아리스에게, 카가미는 '얼음의 냉소'를 취재하러 가고 싶다는 취지를 전했다.
아리스인은 곧바로 상관없다는 답을 되돌려주었다.
"괜찮아, 카가밍. 다녀와. 나는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응. 그럼 다녀올게!"
카가미는 그렇게 말하고서 먼저 간 두 사람의 뒤를 쫓아 달렸다.
도중에 문득 아리스인에 대해서 이리저리 생각했다.
대체 그는 어째서 멍하니 있었던 것일까 하고.
아직 교류를 시작한 지 몇 개월이었지만,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남의 이야기를 놓치는 일 따위는 한 번도.
'혹시나 아리스도 칠성검무제를 앞두고 신경이 예민해진 건가?'
혹은 아리스인이 침묵하기 전에 오갔던 화제──.
쿠로가네 오마의 이야기에 무언가 신경 쓰이는 점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만 카가미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뭐, 누구든지 멍해질 때쯤은 있겠지.'
'얼음의 냉소'의 곁으로 다다르기도 해서, 카가미는 곧바로 그 의문을 의식 밖으로 쫓아냈다.
카가미가 그들을 따라잡은 때는 때마침 코미야마의 인터뷰가 시작한 직후였다.
"안녕하세요. '돈로' 신문부 소속 코미야마입니다. '얼음의 냉소' 츠루야 미코토 선수, 아까 전의 모의전을 보고서 '워스트원'──아니 '어나더원(무관의 검왕)' 쿠로가네 잇키를 보고서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그는 당신들 전국 베스트 8에 통용되겠습니까?"
갑작스러운 인터뷰.
그러나 츠루야쯤 되는 실력자라면 매스컴이 매달려오는 일 따위는 익숙하리라.
그녀는 그다지 놀란 기색이나 불쾌한 표정도 보이지 않고서,
"훗, 기자님은 성급하셔서 안되겠네요."
단정한 얼굴로 다소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웠다.
"제가 그에 대해서 어떤 감상을 품었는가. 그런 걸 말로 표현해도 의미가 없잖아요? 우리 기사에게는 싸움에 따른 결과야말로 진실. 그리고 싸움의 무대는 이미 준비되어 있어요. ──그가 우리에게 통용될지 안 될지는 머지않아 조만간 밝혀질 일입니다. 그건 말보다도 훨씬 명백하고──잔혹한 형태로 말이죠."
츠루야는 그렇게 고하고서 입술을 피식 끌어올렸다.
그 어디까지나 차가운 웃음에, 인터뷰를 청한 세 사람의 기자는 등골에 한기를 느끼고 몸을 떨었다.
"후후. 그럼 실례──."
츠루야는 자신의 웃음에 몸을 움츠린 세 사람에게 그런 말을 남기고서 훈련장의 출구를 향해 갔다.
츠루야는 무엇 하나 명확한 답을 세 사람의 기자들에게 제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뒷모습은 어디까지나 당당해서 자신의 강함에 털끝만큼의 의문도 품지 않는다는 시실이 전해졌다.
"과연 베스트 8급이 되면 당당하구나."
"과연 관록 있네. 살짝 쫄았어."
감탄 어린 목소리를 흘리는 야고코로와 코미야마.
카가미도 역시 그들과 같은 마음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잇키에 대한 신뢰가 더 컸다.
어쨌거나 잇키는 같은 베스트 8인 '소드 이터'에.
격이 더 높은 베스트 4인 '뇌절'을 이긴 것이었다.
'언제까지고 여유 부릴 수는 없을걸.'
그렇지만 뭐──.
실제로 전국 베스트 8이라는 존재는 카가미가 생각하는 만큼 안이한 인간은 아니었다.
훈련장에서 나온 츠루야에게, 훈련장의 출구에서 같은 대표인 학우가 말을 걸었다.
"아, 미코. 어때, 올해의 '하군'은? 미코라면 여유롭게 이길 수 있겠어?"
그 물음에 대해서 그녀는 '얼음의 냉소'라고 불리는 까닭이기도 한 미소를 띠우며,
"절대로 무리야."
딱 잘라 단언했다.
그랬다. '얼음의 냉소' 츠루야 미코토는 카가미 일행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강했다.
그 때문에 자신과 타인의 역량을 올바르게 가늠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 자리의 세 사람보다도 까마득하게, '얼음의 냉소' 본인은 깨닫고 있었다.
자신이 '워스트원'에게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그보다 뭘 천연덕스럽게 프로 기사를 세 사람이나 깔아 뭉갠 거야. 말도 안 되잖아……."
탄식하는 목소리로 벽에 몸을 기댄 츠루야.
그런 그녀의 귀에, 지금 나온 훈련장에서 술렁이는 듯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저 사람은 난고 토라지로잖아?!"
"'워스트원'을 위해서 부른 코치란 '투신'이었나! 너무 호화스럽잖아!"
"말도 안 되잖아……."
주르륵 벽에 몸을 기댄 채 그 자리에 주저앉는 츠루야.
그녀가 바라는 바는 이미 단 하나뿐이었다.
"아아, 하다못해 1회전에서는 저런 괴물 녀석들과 맞붙지 않기를……!"
──이처럼 '워스트원'이라 멸시받았던 이단의 실력자가 지닌 힘은 이제는 널리 알려졌다.
그야말로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
A랭크 기사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
마찬가지로 A랭크 기사 '바람의 검제' 쿠로가네 오마.
칠성검무제 우승 후보라고 주목받는 자들과 나란히 이름을 올릴 정도로.
그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맹자들의 싸움에 어디까지 파고들 수 있을까.
무관의 F랭크 기사가 얼마만큼의 파란을 일으킬 수 있을까.
선수들도, 관객들도, 누구나 이 이단의 실력자가 펼칠 활약을 기대하게 되었다.
◆◇◆◇◆
'쿄문'의 강화 합숙에는 메뉴 같은 것이 없다.
불러들인 코치가 특별 수업을 열기도 하지만, 그 수업에 참가할지 말지는 본인이 선택하기 나름이다.
어째서냐 하면 블레이저(벌도자)의 능력은 십인십색.
무척이나 종류가 많아서 효과적인 수행 방법도 제각각 세세하게 나뉘기에, 커다란 틀로 메뉴를 정해버리면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개개인으로, 혹은 친구끼리 모여 자유롭게 메뉴를 결정하게 된다.
그래서 스텔라는 저녁 식사 전에 잇키에게 러닝을 권유했다.
합숙소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번화가까지 가는, 왕복 20킬로미터의 러닝이었다.
두 사람 입장에서 보면 단련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이것은 기분 전환에 가까웠다.
스텔라는 아까 전 '뇌절'에게 패해 분한 마음을 신나게 달려서 풀려고 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우우우! 아~! 역시 분해~!"
반환 지점인 번화가 쪽에 있는 공원에서, 스텔라는 잇키와 둘이서 벤치에 앉아 휴식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어린 아이처럼 분해했다.
"달려도 속이 시원하지 않았어?"
"안 시원해! 전혀 안 시원하다고!"
평소의 배가 되는 하이 페이스로 달려도, 공원의 수돗물로 얼굴을 씻어도, 스텔라의 기분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스텔라는 은연중에 느끼고는 있었던 것이었다.
오쿠타마의 사건이나 잇키와의 싸움을 보고서, 토카가 자신보다 강한 것은 아닐까 하는 예감을.
그렇지만 그것이 막상 눈에 보이는 결과가 되어 들이밀어 지자 분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보다 싸워 보고 확신했는데, 그 사람 엄청 강하네."
"토도 선배의 크로스 레인지는 거의 결계 수준이니까 말이지. 정공법으로 공략하기는 어려워."
"그렇지만 잇키는 공략했잖아."
"……뭐, 나에게는 크로스 레인지뿐이니까. 그 거리에서는 질 수 없어."
스텔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미소 짓는 연인에게 살짝 질투했다.
자신이 손쓸 엄두를 못 냈던 '뇌절'을, 이 온화한 표정으로 미소 짓는 남자는 당당하게 정면에서 격파해 보였던 것이었다.
토카와 잇키의 단칼 승부.
이 찰나의 공방은 스텔라의 뇌리에 새겨져 있었다.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동시에 무척이나 분했다.
아직 그의 영역에 다다를 수 없는 자기 자신의 미숙함이.
"그건 그렇고, 그런 사람이라도 작년에는 4위였다니, 일본은 역시 수준이 높구나."
"뭐, 토너먼트에는 아무래도 운이라는 게 있으니까, 토도 선배의 4위가 곧 위에 세 사람이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3위 결정전은 분명 '가족'이 쓰러졌다고 해서 기권했었고."
"그렇다고 내가 져도 되는 이유는 못 돼. 잇키와 지금의 '칠성검왕', 적어도 토카 선배에게 이긴 사람이 둘이나 있으니까 질 수는 없어. 내 목표는 잇키와 다른 사람 전부를 쓰러뜨리고 '칠성검왕'이 되는 거니까. 게다가──조금 신경 쓰이는 상대도 있고 말이야."
"신경 쓰이는 상대?"
"'칠성검왕'과 마찬가지로 '부쿄쿠 학원' 소속인 오마 쿠로가네."
"…………!"
스텔라가 그 이름을 입에 담은 순간, 잇키의 표정이 눈에 보이게 경직되었다.
스텔라는 그 반응을 통해 확신했다.
"역시, 잇키나 시즈쿠와 같은 '쿠로가네'로구나:'
"……응. 그 사람은 나보다 한 살 위인 형이야."
"몰랐어. 잇키에게 형이 있었다니. 아니, 애당초 일본의 학생 중에 나와 같은 A랭크 기사가 있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았어."
"어쨌거나 기사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2년 동안, 아니 중학생도 포함하면 5년 동안 행방불명 상태였으니까 말이지."
"어, 실종되었던 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가끔이긴 하지만 연락이 되었던 모양이고, 공식 자리에 모습을 보인 적도 있었던 모양이야. 그렇지만 하루나 이틀 정도면 어딘가로 가버리는 듯해. 그리고 공식전에서도 5년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 예전에는 리틀(초등학생) 리그의 챔피언이 되거나 해서 상당히 주목을 받았던 사람이지만, 아무리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도 5년이나 활동을 보이지 않으면 역시나 세간도 흥미를 잃지. 주목도로 따지자면 지금은 이미 시즈쿠 쪽이 늦을 정도라고 생각해. 그러니 스텔라가 모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야."
"과연. 5년이나 공식전에서 멀어지면, 그것도 당연할지도 모르겠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면──.
"그런 사람이 어째서 이제 와 새삼스럽게 나온 걸까. 잇키는 무언가 마음에 짚이는 데는 있어?"
스텔라는 그렇게 잇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는 고개를 옆으로 내저었다.
"아니. 전혀 모르겠어."
"자기 형인데?"
그 말에 잇키는 곤란하다는 듯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 자신이 집안에서 내놓은 사람인 데다, 오마 형도 겉 돌아서 거의 접점이 없으니 말이지. 솔직히 아버지보다 훨씬 먼 존재야. 그래서 진상에 대해서는 잘 몰라. 그저 뭐 내가 아는 내에서의 인상을 말하자면, 굉장히 금욕적인 사람이야."
"금욕적?"
"이미 사는 것=강해지는 것, 같은 사람."
"……그건 잇키잖아?"
생각한 바를 그대로 입에 담은 스텔라에게, 잇키는 고개를 옆으로 내저었다.
"나 따위와는 비교가 안 돼. 오마 형은 '강해지는 것' 말고는 정말로 아무런 흥미도 없어. 자신보다 약한 남동생에게도 흥미가 없어. 자신보다 약한 여동생에게도 흥미가 없어. 자신보다 약한 아버지에게도 흥미가 없어. ……칠성검무제 같은 공식전에 출전하지 않는 이유도 '자신이 상대할 가치가 있는 인간이 없으니까'라고 언젠가 했던 인터뷰에서도 잘라 말했어."
"그건 또, 굉장한 자신감이네."
"그렇지만 그에 걸맞을 만큼의 강한 힘도 갖추고 있어. 그리고 그렇게 '강해지는 것' 이외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 오마 형이 칠성검무제에 나왔다는 건, 역시 '강해지기 위해'라는 이유밖에 없어. 그러니까──이건 어디까지나 내 예상인데, 오마 형의 목적은 스텔라일 거야. 자신과 같은 학생 A랭크. 온 세상을 둘러봐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내가 오마 형이라면 꼭 싸워보고 싶다고 생각 할테니까."
그 말을 듣고 스텔라 역시 과연 그렇다고 받아들였다.
그녀 본인도 자신과 같은 학생 A랭크에 흥미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될 수 있으면 싸워보고 싶고말고.
상대도 그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컸다.
"덧붙여, 잇키가 보기에 그 오마의 강함은 어떤 수준이야?"
"그건 말했던 대로야."
"말했던 대로?"
"'자신이 상대할 가치가 있는 인간이 없으니까'──그 호언에 걸맞은 실력이야."
"…………!"
그렇게 말하며 어떤 종류의 긴장감을 품은 잇키의 음성을 듣고, 스텔라는 등줄기에 싸늘한 감각을 느꼈다.
요컨대 잇키는 지금 이렇게 말한 것이었다.
쿠로가네 오마는 '뇌절'은 물론이고 작년의 '칠성검왕'조차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음성에 밴 긴장감은 잇키 자신도 형의 참전에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이 소년에게 이런 말을 꺼내게 만드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적이 참전해왔다고 한다면──.
스텔라로서도 더욱더 '뇌절' 수준에게 지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결심했어! 이 합숙이 끝날 때까지 반드시 토카 선배보다 강해져 보이겠어!"
합숙은 앞으로 닷새.
하루 한 번 모의전을 도전한다고 해도, 오늘도 포함해서 총 6전.
그 대결에서 상대보다 더 많이 이긴다.
스텔라는 목소리를 크게 내어 자신에게 목표를 부과했다.
그리고 스텔라는 명확한 목표가 생기면 아무래도 좀이 쑤시는 성격이었다.
더 이상 공원에서 휴식 따위를 하고 있을 기분이 아니었다.
스텔라는 벤치에서 몸을 튕겨서 일어나더니 잇키를 재촉했다.
"잇키! 빨리 합숙소로 돌아가자! 밥을 먹으면 또 트레이닝을──."
그러나 그때──.
꼬르르르륵~.
그렇게 스텔라의 배에서 제법 귀여운 소리가 울렸다.
게다가 요즘 어린아이는 밖에서 놀거나 하지는 않는지 공원에는 거의 인적이 없어서, 그 소리가 괜스레 크게 울려──,
"하하. 제법 귀여운 소리가 났네."
잇키가 웃고 말았다.
스텔라는 부끄러움으로 사과처럼 얼굴을 붉혔다.
"어, 어쩔 수 없잖아! 오늘 하루 실컷 움직였고! 지금 밥 먹기 전이고!"
"응. 그러네. 배가 고픈 건 그만큼 스텔라가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야.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으, 그래. 알면 됐어."
"그렇지만 빈속으로 너무 지나치게 노력하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살짝 배를 채워두러 가자."
잇키는 그렇게 말하더니 일어서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 스텔라의 손을 잡았다.
"앗."
갑자기 손을 잡히자 놀라는 스텔라.
그렇지만 잇키는 신경 쓰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서,
"상점가 쪽으로 가면 뭔가 있을 테니까 따라와."
웃는 얼굴로 스텔라의 손을 이끌고서 걷기 시작했다.
◆◇◆◇◆
저녁 시간대의 상점가는 여름방학 중인 학생과 저녁 식사 거리를 사러 나온 주부로 붐볐다.
잇키와 스텔라는 그 안을 손을 잡고서 걸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소곤소곤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두 사람은 버밀리온의 공주님과 얼마 전 화제가 된 쿠로가네가의 자식 아니야?"
"그래, 공주님을 속여서 욕보였다든가 하는?"
"그건 유언비어라고 들었어."
두 사람의 교제가 폭로된 사건 이후, 스텔라뿐만 아니라 잇키의 얼굴도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얼굴뿐만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서 둘이서 걷고 있으면 싫어도 눈에 띄고 만다.
"저기 봐. 손을 잡고 있어. 역시 사귄다는 건 정말이구나."
"그보다 실제로 보니 엄청난 미인이구나. 저 공주님."
"좋겠다아. 나도 저렇게 멋진 여자와 사귀어 보고 싶다마."
"~~~~윽."
주위에서 찌르는 호기심 어린 시선에, 스텔라의 귀가 살짝 빨개졌다.
교내에서 커플로 보이는 것은 상당히 익숙해졌지만, 역시 학교 밖의 사람들에게서 연인 사이로 보이는 것은 아직 아무래도 부끄러웠다.
잇키는 그런 스텔라에게 기색을 살피듯이 말을 걸었다.
"저기, 스텔라. 부끄러우면 손 놓을까?"
스텔라가 주위의 시선을 신경 써서 뺨을 물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하는 배려였다.
그렇지만 스텔라는,
"부, 부끄럽거나, 하지, 않는데……."
그렇게 거짓말을 했다.
확실히 부끄러웠지만 이렇게 손을 잡아 주는 것은 정말 좋았기에.
"그럼 상관없지만.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마."
스텔라의 그런 미묘한 낌새를 이해했는지, 잇키는 작게 미소 짓더니 잡은 손에 힘을 조금 더 주고서 다시 스텔라를 잡아끌듯이 걷기 시작했다.
스텔라는 그런 잇키의 옆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어쩐지 잇키, 조금 변했어.'
스텔라가 아는 쿠로가네 잇키라는 소년은 빈말로라도 적극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남자였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도 누군가와 사귀는 것도 처음이라서, 무엇을 해도 두 사람이 흠칫하면서 조금씩 연인으로서의 계단을 오르는 모양새인 그런 관계였다.
그러나 최근 잇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묘하게 적극적으로 변했다.
아까 전, 공원에서 스텔라의 손을 잡았을 때도 그랬다.
손을 맞잡는 것은 이전부터 두 사람이 즐기던 스킨십이었지만, 지금까지는 어느 쪽이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손을 서로 포개어 잡는 행위였다.
그렇지만 요즈음에는 달랐다.
'이렇게……덥석, 이랄까. 꽉, 이랄까──."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것이 아니라, 잇키 쪽에서 적극적으로 잡아오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는 기색도 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평소 잇키의 진중함과 성실함이 그의 미덕이라는 점을 이해하면서도 약간 안달복달하는 때도 있었던 스텔라로서는 이 변화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하고.
그래서 스텔라는 솔직하게 잇키에게 그 점을 물어보기로 했다.
"있잖아. 어쩐지 잇키, 최근 변했네."
"내가, 변했어?"
"전보다 그……, 강경하다고나 할까, 당당하다고나 할까."
'……사내다워서, 조금 멋지다고나 할까………….'
잇키는 그런 스텔라의 물음에 한순간 놀란 표정을 보였다.
그리고 살짝 쑥스러운 듯이 뺨을 긁고 답했다.
"……역시 스텔라에게는 들키는 건가."
잇키의 대답은 그에게 이 변화에 대한 자각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안해. 어쩐지 굶주린 것 같아서."
"벼, 별로 싫다고 하지는 않았어! 그저 조금, 어쩐 일일까 하고 생각해서."
"딱히 어떻다 할 정도의 일도 아닌데."
거듭된 물음에 잇키는 그렇게 서론을 밀하고 나서,
"어쩐지, 스텔라에게 프러포즈하고 나서,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내 안에서 스텔라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버려서 말이야. 아무래도 주장하고 싶어져서 어쩔 줄을 모르겠어. 이 아이는 내 소중한 여자라고."
스텔라가 알고 싶어 하는 자신이 변화한 이유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뇌절'과의 싸움 후에 한 고백은 자신에게 무척이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고.
그때까지도 잇키는 스텔라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사랑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서로의 감정을, 강한 마음을 말로 서로 확인함으로써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점욕이 강해졌다.
이 소녀를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그 결과, 그의 안에서 한 가지 자각이 싹튼 것이었다.
자신의 여자를 지킨다는 수컷으로서의 강한 자각이.
그리고 그 자각이 잇키에게 지금까지 없었던 적극성을 부여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지금 당장 끌어안고 싶을 정도로 말이야. ……절조 없는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만 말이지."
자신의 마음속을 조금 부끄러운 듯이 이야기하는 잇키.
그런 잇키의 고백을 듣고, 스텔라는 가슴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잇키…….'
맥을 치는 고동이 가슴 안쪽에서 근질거릴 정도의 사랑스러움을 퍼 올렸다.
어째서인가.
그 이유는 뻔했다.
그녀의 연인은 지금, 말로는 모자라지만 이렇게 주장한 것이었다.
너는 내 것이다.
다른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겠다──고.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주위에도 위압을 흩뿌리고 있었다.
내 여자다. 손을 대지 마──라고.
그 사실에 스텔라는 자신의 뺨이 싱글거림을 느끼고서 고개를 숙였다.
'잇키, 귀여워…….'
솔직히 참을 수 없었다.
미성숙하면서도 있는 힘껏 자신의 여자를 독점하려고 하는 모습.
참으로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 모습을 귀엽다고 여기는 것은 잇키로서는 의도한 바가 아니리라.
그렇지만 스텔라에게 있어서 잇키의 그 모습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깜찍했다.
이에 대해서는 꼭 보답하고 싶었다.
한 사람의 여자로서, 그의 여자로서.
그래서 스텔라는──자신의 손을 잡은 잇키의 팔을 몸 통째로 매달렸다.
"스, 스텔라?"
"이러면 내가 잇키의 여자라는 걸, 좀 더 잘 알겠지?"
미소 지으면서 잇키의 팔에 뺨을 대는 스텔라.
이미 주위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일보다도 자신을 있는 힘껏 독점하려고 해주는 남자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그러나 아무래도 잇키로서는 아직 손을 잡고 걷는 것까지가 새침한 얼굴로 있을 수 있는 한계인 모양인지, 스텔라가 매달리자마자 어수선한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스스로 '주장하고 싶다'고 말을 꺼낸 만큼 부끄러우니까 떨어져 달라고도 말할 수 없으리라.
"그, 그러네. 좋은 아이디어야. 응……."
잇키는 되도록 평정을 가장하며 걸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쑥스러움으로 달아올랐고, 스텔라의 손을 움켜쥔 손바닥에는 촉촉이 땀이 배어있었다.
'후후…….'
그런 허세가 또한 스텔라에게는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어쩐지, 지금 굉장히 행복해………….'
입매를 싱글거리면서 스텔라는 자신의 모든 걸음을 잇키에게 맡겼다.
그 모습은 주위에서 보면 자못 바보 커플이라고 생각하며 어이없어할 일이리라.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않나 하고 스텔라는 정색했다.
왜냐하면 좋아하니까.
'확실히 독점해야 해. 나의 왕자님.'
부끄러워서 도저히 입 밖으로는 낼 수 없는 말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때,
"응?"
문득 갑자기, 잇키의 걸음이 멈추었다.
맨 처음에는 배를 채울 장소를 발견했나 하고 생각했다.
"────."
스텔라는 곧바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뒤를 향하는 잇키의 시선이 무척이나 험악한 빛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왜 그래?"
"……지금 지나친 사람."
잇키는 똑바로, 옆을 지나친 작업복 차림을 한 남자의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걸음걸이가 이상하지 않았어?"
"아니──."
잇키도 맨 처음에는 그런가 하고 생각했지만,
'아마도, 틀려.'
한번 얕게 숨을 들이쉬고 집중의 정도를 높였다.
멀어지는 등을 바라보며 그 키나 어깨 폭에서 대강 그 골격을 파악했다.
골격에서 예상되는 근육이 붙은 방식과 그 근육에 따른 사지의 동작을 상정하고 비교해보았다.
그러자 역시 남자의 걸음걸이는 이상했다.
좌우의 보폭에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부상 혹은 장애를 안고 있는 기색은 아니었다.
각부 관절은 통상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이물.
인체에는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가 발걸음을 어긋나게 하고 있었다.
'옷에 주름이 진 모양, 걸음걸이로 보아 오른쪽 주머니인가.'
손을 찔러 넣은 채인 허리의 오른쪽 주머니.
작업복에 주름이 진 모양을 통해 추측해보면 들어 있는 것은 손뿐만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오른손으로 쥐어서 주머니에 넣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길이가 있고 폭도 있었다.
이를테면──서바이벌 나이프 같은 것이.
'……복장으로 보면 전기공일 가능성도 있어.'
전기공이 튼튼한 케이블의 외피를 벗기기 위해서 나이프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전기 공사에 쓰는 나이프치고는 너무 크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에 관해서는 자기 자신의 지식이 부족하거나 혹은 개개인이 가진 취미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나쳤을 때, 잇키는 한순간뿐이었지만 확실히 눈으로 본 것이었다.
머리에 깊게 눌러 쓴 모자의 챙.
그 안쪽에 빛나는,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그것처럼 메마르게 핏발선 눈동자를.
"…………."
눈매가 나쁜 사람 따위는 얼마든지 있다.
핏발이 선 것도 그저 수면부족 때문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주머니에 들어있는 무언가도 단순한 작업 도구일지도 모른다.
그런 요소는 그 어느 것이나, 지금 잇키가 상상하고 있는 '최악의 가능성'보다 이득히 높은 확률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리라.
그러나, 그렇지만──,
아무래도 그 뇌리를 스친 '최악의 가능성'이 신경 쓰여서 불안함이 가시지 않았다.
"……좋아."
"아, 잇키! 어디 가는 거야!"
"잠깐만 기다려."
오른팔에 매달려 있던 스텔라를 떼어놓은 다음, 잇키는 혼자서 작업복 차림을 한 남자의 등을 향해 달려갔다.
어쨌거나 일단 말을 걸어서 주머니 속의 내용물을 어떻게 해서든 확인하자.
자신의 실례되는 착각이 었다면 그것으로 좋다.
사과하면 그만일 뿐이니까.
사과하고서 용서받지 못한다면, 뭐 다소 험한 꼴을 당해도 된다.
그것으로 뇌리를 스친 '최악의 가능성'을 부정할 수 있다면.
잇키는 그렇게 생각하고서 말을 걸려고 했다.
──그때였다.
문득,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멈춰 섰다.
걸음을 멈춘 곳은 상점가의 십자로.
사람이 가장 많이 왕래하는 장소의 한가운데.
어째서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멈추는가.
그 답은,
"으읏, 아파! 왜 길 한가운데서 멍청하게 우두커니 서 있는 거야, 아저씨!"
남자에게 중학생쯤 되는 소년들이 부딪친 순간, 명백해졌다.
"키히────."
기괴한, 신음이라고도 비명이라고도 할 수 없는 소리를 흘리며 작업복의 남자가 움직임을 보였다.
재빠르게 주머니에 찔러 넣은 상태였던 오른손을 빼내려고 했다.
그 찰나도 채우지 않은 한순간을, 잇키는 시간의 흐름 그 자체를 정지시킬 정도로 갈고 닦은 집중력과 동체 시력으로 주시했다.
남자의 주머니에서 아주 살짝 엿본 그것의 '반짝임'을 확실히 인식했다.
야만스럽게 번뜩 빛나는 칼.
두툼한 서바이벌 나이프.
장소는 교차점의 중심.
그런 곳에서 날붙이를 뽑으려 하는 이유는 하나.
잇키가 감지한 '최악의 가능성'은 적중했던 것이었다.
잇키는 자신의 예측이 적중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움직였다.
자신의 집중력에 의해 둔화된 세계에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땅을 박차고 오가는 사람의 흐름을 빠져나가, 잇키는 칼을 든 남자의 손을 붙잡으려고 달렸다.
남자와의 거리는 5미터 남짓.
나이프는 아직 그 검신의 절반을 주머니에서 내보인 정도라서, 남자의 정면에 선 중학생 무리도 그 존재를 깨닫지 못했다.
'할 수 있어…………!'
잇키의 속도라면 충분히 시간에 맞을 타이밍.
이대로 달려가서 등을 때려 의식을 빼앗는다.
검신을 전부 빼내기 전에 정리한다.
다소 소란스러워 질지도 모르지만 참극은 회피할 수 있으리라.
모든 것은 한순간의 스쳐 지나감에서 얻은 예감을 중요한 것이라고 감지하고 대비했던 잇키의 기지 덕분이다.
──그랬다, 여기까지는 잇키에게 있어서는 '최악'이라고는 해도 예상의 범주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예상 밖의 사태가 발생했다.
"와앗! 기다려, 기다려!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니까!"
높은, 소녀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고, 공교롭게도 잇키가 남자의 곁으로 다다르기보다도 빠르게 그 목소리의 주인이 남자의 팔에 매달린 것이었다.
'엇……!'
마직 나이프의 검신이 주머니에서 완전히 뽑히지 않았을 타이밍.
애당초 이 작업복의 남자를 경계하고 주머니를 주시하고 있었다 해도, 예사롭지 않은 반사 신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끼어들 수 있는 타이밍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잇키 수준으로 갈고닦은 신체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그래서 잇키도 이 타이밍에서의 끼어들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완전히 허를 찔린 형태.
그리고 더욱더 곤란하게도 소녀가 남자에게 매달림으로써 남자의 몸의 위치가 옆으로 어긋나서, 소녀의 몸이 잇키의 타격 궤도와 겹쳐지고 말았다.
"윽──!"
이래서야 돌격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잇키는 곧바로 자신의 몸에 속도를 줄여서 멈춰 섰다.
그 사이에도 상황은 전개되었다.
소녀는 다소 높은 목소리로, 갑작스러운 끼어들기에 경악의 표정을 띠우는 남자에게 외쳤다.
"그럼 안 돼, 아저씨! 아무리 회사에게 퇴직당해서 빚투성이라고 해도, 누군가를 물귀신처럼 끌고 들어가 자실하려는 생각 따위를 하면!"
"으읏…………?!"
그러나 외친다는 것은 그 목소리가 주위 사람에게도 들려서──.
"이, 이봐! 이, 이 아저씨 나이프를 가지고 있어!"
"어? 우와아아아!"
"꺄아아아아! 살인자다아아!"
아직 주머니에서 완전히 뽑히지 않았지만, 역시 존재를 지적하면 누구든지 눈치챈다.
남자의 오른쪽 주머니에서 엿보이는 날붙이의 반짝임에 주위는 어수선해졌다.
어떤 자는 다른 사람을 들이받으면서, 어떤 자는 넘어져서 가방의 내용물을 흩뿌리면서, 누구나 남자에게서 거리를 벌리려고 십자로에서 도망쳤다.
그런 와중, 단 한 사람 남자의 팔에 매달리면서 남은 소녀는,
"지금이라면 아직 미수로 끝날 테니까 함께 경찰에게 가자? 이런 짓을 하면 시골에 있는 어머니도 슬퍼할 거야. 괜찮아, 살아 있으면 운이 찾아오는 일도 있으니까! 응?!"
살짝 땀에 젖은 아름다운 얼굴에 미소를 띠우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남자를 달래기라도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 행동은 남자에게 통하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아아아아아아!!!!"
"우왓!"
사냥을 방해받은 남자는 포효 같은 노성과 함께 힘으로 소녀를 떨쳐냈다.
마른 몸매의 소녀는 손쉽게 떨쳐져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그런 소녀에게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귀신같은 형상으로 나이프를 내려치는 남자의 그림자가──.
'어, 어쩌지?!'
그 순간, 도망치는 사람들의 흐름 속에서 일련의 상황을 보고 있던 잇키는 자신이 취해야할 행동을 망설였다.
본래대로라면 망설이지 않고서 도와주러 가야 마땅할 장면이었다.
그러나──한 가지의 요소가 잇키에게 취해야 할 행동을 망설이게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난입한 소녀였다.
아니──소녀가 아니었다.
그렇게 오인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목소리와 생김새를 하고 있지만 달랐다.
그가 착용하고 있는 옷은──'쿄문 학원'의 남자 교복.
그리고 잇키는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맨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자세히 보니 떠오른 것이었다.
선발전이 끝난 다음, 클래스메이트인 카가미가 보여주 었던 올해 칠성검무제 대표 선수들의 일람.
그 사진 속에 그의 얼굴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름까지는 잊어버리고 말았지만 그는 칠성검무제에 나올 수준의 블레이저.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 대책 없이 뛰어들 리가 없어.'
그런 싸구려 형사 드라마 같은 대사 하나를 내뱉으러 어슬렁 어슬렁 나타날 리가 없었다.
무언가 진압할 수단──능력을 갖추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소년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이상, 섣부르게 나서면 방해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잇키에게 있어서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럼 이 자리는 그에게 맡겨야 하나.'
그렇지만 잇키가 그렇게 판단하려고 하기 무섭게, 금발의 소년은 내려쳐 지는 칼끝에 대해──.
──머리를 끌어안고서 외쳤다.
"누, 누가 도와줘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대책 없었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설마 하던 SOS에 내심 비명을 지르면서, 잇키는 곧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이미 타이밍으로 보아 달려서는 때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발아래에는 흩어져 도망친 통행인들이 떨어뜨린 물건이 굴러다녔다.
잇키는 그중 하나인 립스틱을 힘껏 발끝으로 차서, 내려쳐 지는 나이프에 맞췄다.
"그아?!"
갑작스러운 충격에 나이프는 남자의 손에서 벗어나 지면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잇키는 남자에게 달려가 남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꿰뚫었다.
"컥?!"
남자는 코피로 포물선을 그리면서 지면에 벌러덩 쓰러졌고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잇키의 주먹은 일격으로 남자의 의식을 끊은 것이었다.
옆에서 보면 그것은 실로 훌륭한 솜씨로 보였으리라.
그렇지만,
"하, 하아! 하앗! 하앗!"
당사자인 본인은 등에 흠뻑 식은땀을 흘릴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아, 위험했다……! 이 사람, 정말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서 나섰구나……!'
자신이 뛰어나오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이 소년은 숨이 끊어졌으리라.
그 정도로, 나이프가 내려쳐 진 순간에 소년은 무방비했던 것이었다.
무예를 선보이는 것도 아니었고, 블레이저인 주제에 마력으로 몸을 지키지도 않았다.
그저 겁먹고, 움츠리고, 날붙이를 상대로 웅크릴 뿐.
솔직히 묻지마 범죄자인 남자의 행동 이상으로 소년의 무모함 쪽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잇키!"
"하아…………, 스텔라. 경찰에 묻지마 범죄자를 붙잡았다고 연락해주겠어?"
"으, 응! 알겠어!"
뒤늦게 달려온 스텔라에게 경찰에게 연락할 것을 부탁하고, 잇키는 지면에 주저앉은 상태인 소년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기분 같아서는 불평 한마디라도 하고 싶은 참이었지만, 그러나 그도 나름대로 발생하게 된 참극에 맞선 것이리라.
그래서 불평은 목구멍으로 삼키고서, 잇키는 소년에게 손을 내밀면서 물었다.
"다친 곳은 없습니까?"
"……아, 응. 고마워. 살았어."
소년은 안심한 듯이 미소를 떠올리며 감사 인사를 늘어 놓으며 잇키의 손을 잡더니,
"어럽쇼?"
갑자기 잇키의 얼굴을 보고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제 얼굴에 뭔가 묻었습니까?"
"아, 아아! 너, 너는 혹시나, 쿠로가네 잇키?!"
"어, 네, 그런데, 그게──."
어떻다는 것인가, 하고 잇키가 묘하게 흥분한 기색인 소년의 물음에 긍정을 되돌린 순간이었다.
"우와아! 우와아! 진짜다, 진짜 잇키다!"
놀랍게도 소년은 몸을 일으키기가 무섭게 잇키에게 매달려왔다.
"어, 어어어어어?!"
"자, 잠깐 뭘 하는 거야, 너어어어어어어?!"
갑작스러운 포옹에 낭패 어린 소리를 지르는 잇키와 스텔라.
그렇지만 소년은 두 사람의 놀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서 잇키를 끌어안더니,
"감격이야! 기대는 했지만 난데없이 만날 줄이야, 역시 나는 운이 좋아!"
마치 10년 만에 친구와 재회한 것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몸 전체로 그 기쁨을 표현했다.
긴 속눈썹 아래에서 흔들리는 푸른 눈동자에 서린 감정은 흘러넘칠 만큼 큰 친애의 정.
소년은 진심으로 잇키와의 만남을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렇기에 잇키는 혼란스러웠다.
어째서 소년은 자신과 만난 것을 이렇게까지 기뻐하는가 하고.
"너는 대체…………."
그러나 잇키의 물음보다도 스텔라의 행동 쪽이 빨랐다.
경찰에게 전화하는 것도 잊은 채 참지 못하고 달려온 스텔라는 자신의 연인을 끌어안은 쓸데없이 귀여운 얼굴을 한 남자의 어깨에 손을 대고 힘껏 떼어냈다.
그리고 잇키를 보호하듯이 그의 앞에 섰다.
"뭐야, 너! 복장으로 보아하니 남자, 같은데, 게이야? 또 게이인 거야?! 이미 그런 캐릭터는 충분하다고!"
위협하듯이 소년을 노려보는 스텔라.
소년은 갑자기 나가떨어져서 놀라기는 했지만, 금세 자신을 밀쳐낸 상대가 잇키의 연인인 스텔라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녀가 화내는 이유를 헤아렸는지,
"아<가, 미안해 스텔라 양. 나는 딱히 게이가 아니야. 그저 잇키를 만난 게 기뻐서 무심코 흥분해 버려서."
그렇게 해명하면서, 다시 두 사람을 바라보더니 자신의 이름을 댔다.
"반가워. 나는 쿄문 학원 1학년 시노미야 아마네. 너희와 같은 칠성검무제 대표선수이고──
'어나더원'의 열렬한 팬이야!"
◆◇◆◇◆
그 후 통보를 받고서 찾아온 경찰에게 묻지마 범죄자를 인도한 잇키와 스텔라는 본래의 목적이었던 배를 채우려고 상점가 안에 있던 햄버거 체인점에 세 사람이서 들어갔다.
마지막 한 사람은 조금 전에 알게 된 잇키의 팬을 자처하는 시노미야 아마네.
위험한 상황을 도와준 사례로 한턱내고 싶다며 두 사람을 따라온 것이었다.
"으응♪ 이런 가게는 처음 들어와 봤는데, 이 감자 맛있네. 내장에 영향이 갈 것 같은 기름기와 용서 없는 짭짤함에 푹 빠져들 것 같아~."
"나도 가끔 먹는 건 상당히 좋아해. 그렇지만 정말로 한 턱내도 되겠어?"
잇키가 그렇게 맞은편에 앉은 아마네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아마네는 남에게 호감을 주는 귀엽게 웃는 얼굴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야! 잇키는 내 생명의 은인이니까, 맥로날드 쯤은 한턱내게 해줘."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은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때 잇키가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아마네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아마네의 처지에서 생각하면, 그 정도는 해야 면목이 선다는 기분이리라.
"……그럼 고맙게 받아들일게."
잇키는 그 뜻을 해아려서 아마네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신 몫의 햄버거 포장지를 벗기고 입에 가득 베어 물었다.
제법 튼실하게 영양학을 기초로 만들어지는 기숙사의 식사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자극적인 맛이 혀에 닿아 기분 좋았다.
"그런데 아마네 씨, 라고 했나."
불현듯, 이미 자신 몫의 햄버거를 처리하고서 쟁반에 흩어진 감자를 집어먹고 있던 스텔라가 아마네에게 말을 걸었다.
"아마네라고 불러. 같은 학년이고, 게다가 공주님이 존칭 붙여서 부르면 어쩐지 간지러워."
"그래. 그럼 그냥 이름으로 묻겠는데, 아마네는 '쿄문'의 대표선수랬지."
"응. 맞아."
"그렇지만 지금까지 합숙소에서 본 적 없는데, 어디에 있었어?"
그 물음을 듣고, 아마네는 "아아" 하고 한마디 사이에 두고 나서 대답했다.
"나는 합숙에는 참가하지 않아서 말이야. 이쪽에도 오늘 막 도착한 참이야. 그래서 본 적이 없는 게 당연해."
"그래. 그럼 오늘부터 참가한다는 느낌?"
"아니. 오늘도 참가한 선배들에게 부탁받은 물건을 전해주면 곧바로 돌아갈 거야."
"아까워. 모처럼 왔으니 참가하고 가면 좋을 텐데."
"아하하. ……뭐, 나는 스텔라 양과는 다르게 칠성검무제에는 그렇게 흥미가 없어서 말이야. 완력도 없어서 검술도 몸에 익히지 않은 풋내기인데, 능력이 우연히 드물다는 이유로 대표에 선발되었을 뿐이야."
칠성검무제에 흥미가 없는 학생이 대표로서 선발된다.
그 자체는 '하군'이나 '부쿄쿠' 같은 실전 선발을 취하지 않는 학원에서 그리 드문 일도 아니다.
아마네는 딱히 겸손하게 구는 것도 아니리라.
그렇다면,
"그 묻지마 범죄자를 눈치챈 것도 그 '드문 능력' 덕분이구나."
잇키는 아마네에게 그렇게 말을 걸었다.
그 말을 듣고서 아마네는 작게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
"단순한 소거법이야. 아마네의 몸집이나 묻지마 범죄자에게 습격당했을 때의 반응을 보면 무술을 몸에 익히지 않은 건 틀림없어. 그런데 너는 예사롭지 않은 타이밍에 묻지마 범죄자의 손을 잡았어. 무술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수련한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반응할 수 없는 타이밍에. 그게 무술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남는 건 블레이저로서의 능력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마네의 물음에 잇키는 자기 생각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 대답을 들은 아마네의 표정에 놀라움이 배었다.
"헤에. 과연 잇키. 그런 것을 통해서도 간파해오는구나. 소문과 다르지 않은 통찰력이네."
일부에서는 조마경이라는 말조차 듣는 '어나더원'의 통찰력.
그 일면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 기뻤는지, 아마네는 즐겁게 감탄의 말을 늘어놓았다.
"그렇지만 어떤 능력인지는 가르쳐줄 수 없어. 선생님에게서 다른 학교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거든. 미안해."
"그래, 그건 물론 상관없어. 특히 우리는 대표선수끼리니까."
자신의 능력이 적에게 알려지는 것은 백해무익하다.
그래서 딱히 잇키도 그것을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렇지만 아마네, ……네 힘이 상대를 억지할 수 없는 능력이라면, 다음부터는 조금 더 신중하게 움직이는 편이 좋아. 목숨이 걸려있으니 말이지."
그렇게 잇키는 아마네의 눈을 보며 쓴소리를 했다.
그 진지한 태도에 아마네는 면목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으, 응. 그렇구나……. 나도 참 당황해서 마력으로 몸을 지키는 것도 잊었고……. 잇키가 옆에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 정말, 운이 좋았어.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 덕분에 멋진 잇키의 모습을 실물로 볼 수 있었으니, 나로서는 파인플레이 일까아~♪ 정말로 히어로 같아서 멋 졌어어~♪"
반성하는 얼굴에서 완전히 뒤바뀌어, 소녀 같은 얼굴로 해사하게 기뻐하는 아마네.
어디까지나 촐랑거리며 낙관적인 그의 모습을 보자, 잇키는 살짝 머리가 아파졌다.
'……뭐, 뭐 나쁜 아이는 아니겠지만.'
"아, 그렇지."
불현듯 아마네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이 자신의 가방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실은, 말이야. '하군'이 이번 '쿄문'의 합숙에 합류한다는 건 사전에 알고 있어서, 혹시 어쩌면 잇키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조금 기대해서, 그, 색지를 가지고 왔어. 그러니까…… 사인, 받아도 괜찮을까?!"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상당히 고급스러운 사인 색지를 꺼내 들고서 그런 부탁을 해왔다.
"어, 내, 내 사인을 그 색지에?"
"응! 안 될까?"
"아니, 안 된다기보다……."
아마네의 부탁에 당황하는 잇키.
그는 교내에서는 스텔라와의 결투 이후 그 나름대로 인기가 있어서, 악수나 수첩에 사인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 자체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렇게 제대로 된 사인 색지를 가져온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조금 소시민적인 잇키로서는 아무래도 주눅이 들고 마는 것이었다.
이렇게 마치 연예인 같은 일을 자신이 하다니 이상하지 않나 하고.
"내 사인 따위, 그렇게 멋진 색지에 할 만한 게 아닐 텐데……."
그러나 그런 잇키에게 스텔라가 옆에서 의견을 내놓았다.
"상관없잖아. 이름만이라도 써주지그래?"
"스텔라……, 그렇지만."
"모처럼 좋아해주는걸. 그 정도 서비스는 해줘도 되잖아. 게다가 사인의 가치 같은 건 사인을 받는 쪽에서 정하는 거니까."
"우…………."
그 말은 확실히 정론이었다.
다른 사람 아닌 아마네가 이 색지에 걸맞을 만큼 가치를 찾아내어 잇키의 사인을 바라고 있으니, 그 마음에 잇키가 자신의 가치관을 끼워 넣는 행위는 도리에 어긋난 일.
그래서 잇키는 "알겠어"라고 말하며 그 멋진 색지를 받아들고,
"그렇지만 정말로 이름을 쓰는 정도밖에 할 수 없는데? 그래도 괜찮아?"
"전혀 상관없어!"
그렇게 재차 확인하고 나서, 사인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서투른 글씨로 자신의 성과 이름을 써넣었다.
"우와아! 고마워, 잇키! 액자에 넣어서 평생 소중히 간직할게!"
잇키의 사인을 받아들자, 아마네는 뛰어오르는 양 기뻐하며 그 사인을 끌어안았다.
마치 염원하던 장난감을 선물 받은 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잇키는 씁쓸하게 웃었다.
'내 이름을 액자에 넣어서 평생 장식하는 건가…….'
그렇게까지 좋아해준다는 것은 기뻐해야 마땅할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취급에 익숙지 않은 잇키에게는 아무래도 거북함이 앞서서 기묘한 땀이 배어 나왔다.
스텔라와 만나기 전까지, 칭찬받는다든가 존경받는다는 말과는 인연이 먼 인생을 보내왔으니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런 잇키의 마음과는 반대로,
"그건 그렇고, 아마네는 정말로 잇키를 좋아하는구나. 묻고 싶은데, 잇키의 어떤 점이 좋아서 팬이 되었어?"
스텔라가 그런 말을 아마네에게 묻자, 화제는 점점 더 잇키 중심으로 바뀌었다.
"싸움 방식이라든가 좋아해. 검 한 자루로 늘어선 적을 때리고 베어 가는 건 스마트해서 멋져."
"그렇지만 교내 선발의 영상은 밖으로 유출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었나."
"원래대로라면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올려주는 '신'은 어느 학교에나 제법 있어. 특히 부쿄쿠나 하군 같은, 여러 학생 앞에서 시합을 시키는 학교면 거의 유출 돼.
그래서 잇키의 주된 시합은 전부 감상했어! 학생 수첩에 다운로드해서 이미 몇백 번이나 돌려봤으니까, 대사 같은 거 전부 기억해! ──내 최약으로 당신의 불패를 깨부수겠다……!"
"풋!"
대단히 진지한 얼굴로 '뇌절'과의 결투 때 고한 말을 복창하자, 잇키는 하마터면 코에서 마시고 있던 진저에일을 뿜어낼 뻔했다.
"이 결정 대사는 최고로 짜릿했어! 아, 그렇지만 '사냥꾼'과 대전했을 때에 했던 버전도 좋아해."
"저, 저기 말이야, 이 이야기는 그만둘래? 그만하지 않을래? 그만하자고! 응?!"
"내 최약으로 네 최강을 붙잡겠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깨부수겠다는 게 아니라 '사냥꾼'을 상대로 붙잡겠다고 한 부분이 진국이야."
"잠깐, 이제 정말 봐줘! 텐션이 올라갔었습니다! 싸울 때는 어쩐지 조금 텐션이 올라가 버렸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봐줘, 부탁할게!"
지독한 '낯간지러움'에 잇키는 참지 못하고 아마네에게 매달렸다.
그 안색은 불을 뿜어낼 만큼 새빨겠다.
그러나 아마네는 그런 잇키의 제지에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어. 어째서야?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이. 그렇지, 스텔라 양."
의힘을 묻는 상대에게 스텔라는,
"어, 어어, 그렇지, 응. 잇키는 멋져. ……푸후후훗."
눈꼬리에 반쯤 눈물을 달고 입가를 억누르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스텔라, 그 말 내 눈을 보고서 말해줄 수 있을까."
"~~~~읍."
힘껏 외면하는 스텔라.
뭐, 그렇지만 잇키도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강하게 불평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하기는 했지만 잘도 이런 대사를 부끄러움 없이 뱉어냈다.
텐션이란 무섭다.
그러나 자신의 언동에 몸서리치는 잇키를 내버려두고, 그의 팬은 더욱더 계속해서 잇키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싸우는 모습도 멋지긴 해도, ……그 이상으로 나는 잇키가 싸움에 임하는 자세를 좋아해."
"잇키가 싸움에 임하는 자세?"
"응, 이런 말투는 실례될지도 모르지만, 잇키는 솔직히 블레이저로서의 자질로부터는 버림받았지. 적어도 혜택받지는 않았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잇키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아. 아무리 강한, 그야말로 자신보다 까마득하게 그 재능에 혜택을 받은 사람이 상대라 해도, 당당하게 등을 펴고 도전해. 그런 '자기 자신의 가치를 믿는 모습'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눈부시게 보여."
그리고 아마네는 그 모습이야말로 자신이 잇키에게 끌 린 이유라고 말했다.
그 고백에 잇키는 이번에는 부끄러움보다도 놀라움을 느꼈다.
'정말로 나를, 유심히 보고 있었구나.'
자기 자신의 가치를 믿는다.
아마네가 말한 싸움에 임하는 자세야말로, 틀림 없이 잇키의 안에 자리 잡은 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하하. ……어쩐지 본인을 앞에 두고서 이런 걸 말하기는 역시 부끄럽네. 조금 얼굴이 뜨거워져 버렸어."
"…………듣고 있는 쪽은 훨씬 부끄러운데."
"하하. 미안, 미안."
아마네는 얼버무리듯이 웃더니 "읏샤" 하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나는 슬슬 돌아갈게."
"어머. 어차피 이다음에 합숙소로 갈 거잖아? 그럼 함께 가자."
"나 같은 게 두 사람의 러닝 페이스에 어울리면 지금 먹은 걸 되돌리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거야."
게다가 선배에게서 부탁받은 물건도 아직 다 사지 않았으니까, 하고 아마네는 스텔라의 제안을 사양했다.
"사인해줘서 고마워. 잇키가 온갖 고난을 물리치고 칠성의 정점에 서기를, 나도 진심으로 응원할게!"
아마네는 그렇게 웃는 얼굴로 격려의 말을 했다.
칠성검무제에서 어쩌면 싸울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응원 받는다니 상당히 이상한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명확하게 호의를 주어서야 그런 딴죽을 걸기도 멋쩍었다.
'이렇게나 올곧게 나를 응원해주니까, 제대로 응해야 해.'
잇키는 자신도 웃는 얼굴로 그의 격려에 감사 인사를 하려고 해서──.
'──어, 럽쇼………….'
그 순간.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위화감을 찾아내고──할 말을 잃었다.
"잇키…………?"
"…………아, 아니, 응. 힘낼게. 고마워."
잇키는 잠시 침묵한 다음, 쥐어짜듯이 대꾸를 했다.
갑자기 입을 다문 잇키에게 아마네는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을 보였지만,
"그럼, 다음에 봐~."
잇키의 응답에 만족했는지, 아마네는 작게 미소 짓더니 혼자서 그 자리를 떠나갔다.
◆◇◆◇◆
"후후후. 잇키도 마침내 학교 밖에도 팬이 생기게 되었네. 어쩐지 맨 처음 만났을 무렵이 거짓말 같아."
아마네가 떠난 뒤, 남은 감자튀김을 씹으면서 스텔라가 기쁜 듯이 웃었다.
그 모습에 잇키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더군다나 아마네는 상당히 열을 올리는 거 같았고."
"상당히 기뻐 보이네, 스텔라."
"그래. 기뻐. 나를 쓰러뜨린 잇키의 힘이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도 기쁘지만, 그 이상으로 아마네가 그런 겉으로 드러나는 강함뿐만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게 된 잇키의 멋진 점을 제대로 깨달아준 게 기뻐. 잇키 역시 아주 싫지는 않은 거 아니야?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서 응원해주는 팬이란 좀처럼 없는걸."
"……응. 그 말대로야. …………그 말대로 일 거야."
"잇키…………?"
문득, 스텔라는 잇키의 응답에서 묘한 '앙금'을 느끼고서 그의 표정을 보았다.
"…………."
잇키는 아마네가 떠나간 가게의 입구에 눈길을 주며 어딘가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긴장하고 있다──정도가 아니었다.
잇키는……명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이 가게 안에서.
"왜 그래, 잇키. 그 땀……."
"저기, 스텔라."
스텔라의 물음을 덮듯이, 잇키는 스텔라에게 물었다.
"스텔라가 보기에, 아마네는 어떤 사람으로 보였어?"
"어떻다니……. 싹싹하고 얼굴도 귀엽고, 무엇보다 잇키를 제대로 봐주어서 상당히 느낌 좋은 사람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스텔라의 대답에,
"응……, 그렇지, 보통, 그렇게 생각하겠지…………."
잇키는 신음하는 목소리를 내고서 이마에 주름을 새겼다.
'그래. 왜냐하면, 싫어할 구석이 없어.'
시노미야 아마네.
어딘가 소녀처럼 보이는 사랑스러운 외견.
결과적으로 힘이 미치지 않았어도 참극을 막으려고, 몸을 바쳐서 묻지마 범죄자에게 맞서려고 했던 다정함.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을 따르고 존경마저 해준다.
그것은 전부, 본래 인간으로서 호감이 갈만한 일이다.
호감이 갈 터였다.
그런데──그럼에도────.
'나는, 손톱만큼도 그에게 좋은 인상을 품고 있지 않아…….'
잇키가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떠나갈 때 해준 격려에 웃는 얼굴로 감사 인사를 되돌리려고 했을 때였다.
아마네를 향해 웃는 얼굴을 띠우는 일에 자신도 놀랄 만큼 노력이 필요했다.
아마네의 말.
아마네의 표정.
아마네가 보내오는 강아지 같은 호의.
본래는 호감이 갈만한 요소.
호감이 가는 요소이리라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이, 무엇 하나 자신의 마음을 울리지 않는 현실.
영문을 모르겠다.
잇키 본인도 어째서 자신이 아마네에게 호의를 품지 않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 현실은 형용할 수 없는 꺼림칙함을 동반해, 콜타르처럼 잇키의 마음에 들러붙었다.
"…………."
아무래도 그 꺼림칙함이 신경 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잇키는 학생 수첩을 꺼내 들고서 어떤 인물에게 연락을 취해보았다.
통화는 금세 연결되었다.
『예이. 여보세요? 선배가 내게 전화를 걸다니 별일이네요오. 무슨 일 있어요?』
"아, 카가미 양. 지금 잠시 시간 돼? 조금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응. 별로 상관없어요. 지금은 아리스 일행이랑 차를 마시고 있을 뿐이라서요. 그래서, 뭘 묻고 싶은데요?』
"카가미 양은 '하군'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교의 선수에 대해서도 조사하거나 해?"
『네, 그야 물론이죠. 기본적으로 각 학교의 대표 선수는 체크해두고말고요.』
"그럼 '쿄문'의 대표 선수인 시노미야 아마네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
『어떤 사람이냐니, 이건 또 상당히 막연한 질문이네요오.』
"아, 그것도 그러네. 으음."
그 말을 들은 잇키도 아뿔싸 하고 생각했다.
확실히 질문 내용이 너무 막연했다.
그러나 이 꺼림칙함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아마네의 무엇을 알면 좋을까.
그것을 몰라서 잇키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자 잇키의 고뇌를 헤아렸는지 수화기의 카가미가 입을 열었다.
『아아, 별로 상관없어요. 시노미야 선수에 대해서는 이 쪽에서도 막연한 것밖에 모르고요.』
"그래?"
『정보가 너무 적네요. 시니어(중학생) 리그에 나왔던 선수인 것도 아니고요. 아는 건 레어 스킬인 인과 간섭계의 블레이저이고, 그 점을 높게 평가받아 대표로 추천되었다는 경위 정도밖에 몰라요. 그렇다고나 해야 하나, 실은 올해에는 그런 선수가 많네요. 시니어 경험도 없는 무명의 1학년이 대표로 선출된다는 패턴. 그래서 시노미야 선수에 대해서도 그중 한 사람이라는 인상밖에 없었는데요. ──선배가 지명해서 물어오다니 조금 흥미가 생겼어요. 시노미야 선수와 무슨 일 있었나요?』
카카미가 던진 물음에, 잇키는 자신이 느낌 꺼림칙함을 전할지 말지 망설였다.
그러나 자기 자신조차 이유를 모르는데, 다른 사람을 나쁘게 말하는 언동은 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꺼림칙함을 형용할 말도 찾아낼 수 없었기에.
"아니, 아까 전 러닝 도중에 우연히 알게 되어서 말이야. 그래서 어떤 사람일까 하는 마음이 들었을 뿐이야."
결국 잇키는 그렇게 얼버무렸다.
『헤에. 합숙에는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야마가타에 와 있는 건가요.』
"선배들에게 부탁받은 물건을 전해주러 온 모양이야."
『그럼 잠시 잠복해서 취재하도~록 할까요. 우후후』
"아하하……. 뭐, 적당히 해.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해."
『아뇨, 아뇨. 이쪽이야말로 뭔가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해요. 무언가 재미있는 걸 알게 되면 전할게요~.』
"응. 고마워. 그럼."
감사 인사를 하고 나서 통화를 끊었다.
결국, 그다지 큰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귀가 밝은 카가미조차 그다지 아는 바가 없다면, 정말로 정보가 적은 선수이리라.
"지나친 생각 아니야? 아마도 잇키과 아마네는 치명적으로 상성이 나빴던 거야. 전생에서 서로 죽이거나, 연인을 두고 다퉜거나, 어쩌면 그 양쪽이거나."
"그런 걸까."
"뭐, 누구든지 도저히 죽이 맞지 않는 사람은 있을 거라 생각해."
"…………."
죽이 맞지 않는다.
그런 말로 끝맺어도 될 위화감일까.
그러나 자기 자신도 아마네에게 꺼림칙함을 느낄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이상,
"응. ……그러네. 아마도 그런 거겠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게 되뇌듯이 납득하는 말을 늘어놓아도, 그 소리는 허무하게 울려서 마음에 들러붙은 콜타르 같은 꺼림칙함을 씻어낼 수는 없었다.
침전한다.
마음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불길한 징조가.
지독하게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아마네가 떠나간 가게의 입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자신은 지금, 무언가 터무니 없이 무서운 존재와 만나고 만 것은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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