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77)

제4장 너무 이른 결전

검은 연기를 피워 올리는 하군 학원.

그 부지 안에서 펼쳐지는 '하군 학원 학생회' 대 '아카츠키 학원'의 싸움

그 싸움은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명백할 만큼 '하군 학원 학생회'의 열세로 전개되고 있었다.

'아카츠키 학원'의 학생은 게스트인 '바람의 검제' 쿠로가네 오마를 제외한 전원이 지하 세계의 실력자.

양지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수라장을 뚫고 나온 아이들 중에서 더욱 더 추려낸 정예였다.

개개의 실력은 극히 높아서 전원이 한 학교의 에이스급이었다.

최저라도 전국 베스트 8 클래스의 힘을 가졌다.

그 실력 차이는 확실히 토카 일행을 몰아붙였다.

"큭!"

하군 학원 학생회 임원 중 한 사람.

'러너즈 하이' 토마루 렌렌은 빠른 속도 속에서 괴로운 비명을 흘렸다.

그녀의 노블 아츠 '마하 그리드'는 속도가 줄어드는 것을 무시하고 가속을 누적시키는 능력.

싸움에 패한 적은 몇 번인가 있었지만, 그 누적 속도는 지금까지 싸웠던 모든 사람을 능가해왔다.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그런데도 지금 그녀가 상대하는 적은──

"허사다, 나약한 인간이여!"

바싹 뒤따라왔다.

최고 가속의 '마하 그리드'를.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가.

그것은 적이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검고 거대한 사자.

게다가 평범한 사자가 아니었다.

그 짐승은 그렇지 않아도 인간과는 비교되지 않는 신체 능력에 더해서 마력 방출에 따른 추진력으로 렌렌의 속도에 바싹 따라오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종, 마수 '스핑크스'는 단순한 마수가 아닐지니. 나의 혈맥에 흐르는 힘, 사신주박법에 의해 혼과 피에 새겨진 사악한 성흔은 마수의 안에 잠든 암흑와 힘을 극한까지 끌어낼 수 있지. 이미 사람의 몸으로 저항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아가씨께서는 '내 '예속의 목걸이'는 목걸이를 장착한 생물을 자신의 디바이스로 만들 수 있어. 원래 인간보다 사자 쪽이 훨씬 신체는 강하니까, 마력도 쓸 수 있게 되면 정말 엄청 강하다고!'라고 말씀하십니다."

흑사자의 등에 탄 안대를 쓴 드레스 차림의 소녀 '비스트 테이머' 카자마츠리 린나가 묘하게 과장된 소리를 질렀고, 그에 뒤잇듯이 뒤에 탄 린나의 메이드 샤를로트가 과장된 말의 의미를 해석했다.

"자, 얌전하게 멸망을 받아들여라! 나약한 인간 놈!"

"아가씨께서는 '움직이면 아프게 해줄 거니까, 움직이지 말아줬으면 좋겠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웃기는 녀석들이네."

샤를로트의 긴장감이 깎이는 통역을 듣고, 렌렌은 욕지거리를 했다.

움직이지 말라는 말을 듣고서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었다.

경트럭 정도나 되는 체구의 흑사자를 상대로 정지란 곧 패배를 의미한다.

그러나 이렇게나 속도가 팽팽하게 대항하고 있으면 치고 빠지기를 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그거다!'

렌렌은 전방에 있던 야간 조명의 막대기를 눈여겨보았다.

적은 등 뒤에서 거의 비슷한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상대편이 빠르다면 그 속도를 이용해서──반격을 먹여주겠어!'

자신이 이전에 잇키에게 속도를 이용당해서 쓰러졌듯이.

이 적에게 자신의 속도에 의한 타격을 주겠다.

그렇게 결의하고서, 렌렌은 막대기의 옆을 빠져나갈 때 왼손을 막대기에 걸어 급선회했다.

속도의 벡터를 비틀어서 뒤쫓아 온 흑사자에 향해 정면에서 돌격을 걸었다.

노리는 곳은 텅 빈 이마.

느닷없는 선회로 넣는 반격.

선회로 이행하는 틈은 없다.

덧붙여 동물은 인간과는 다르게 방어의 자세를 취할 수 없다.

'이 일격으로 결정짓겠어!'

"'블랙 버드'!!!!"

일격필살의 마음을 담아서 내찌르는 주먹.

그러나──혼신의 기습에,

"후우하하하하! 세계의 진실이 보이지 않는 우매하고 어리석은 노옴!"

흑사자에 올라탄 '비스트 테이머'는 큰 웃음을 되돌렸다.

"내 옥음을 듣지 않았더냐! 사신주박법은 그저 마수를 따르게 하는 술법이 아닐지니! 보여주마, 마수 '스핑크스'의 사악한 혼 밑바닥에 잠든 암흑의 힘을!"

순간 흑사자의 두 눈에 붉은빛이 켜지고,

"위축되어라아아! '킹스 프레셔(수왕의 위압)'────!!!!"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천리를 울릴 법한 포효가 렌렌의 온몸을 세차게 내리쳤다.

그러기가 무섭게 렌렌의 몸에 이변이 일어났다.

"뭐, 어──?!"

'몸이, 움직이지 않아……?!'

공교롭게도 렌렌의 몸은 주먹을 내찌른 자세 그대로 굳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할 틈도 없었다.

"억."

경트럭 정도 되는 거대한 몸이 전혀 가속을 줄이지 않고 정지한 렌렌의 몸을 들이받아 나가떨어지게 만들었다.

본디 체중이 가벼운 렌렌은 마치 고무공처럼 수십 미터를 날아가 콘크리트 벽에 격돌했다.

지면에 무너져 내렸을 때에는 이미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말했을 거다. 나의 사신주박법은 암흑의 힘을 끌어낸다고! 그리고 이것이 '펜리……가 아니었지, '스핑크스'에게 잠든 암흑의 힘──'킹스 프레셔'! 시선을 마주친 적의 혼을 부들부들 떨리게 하는 백수의 왕만이 가진 힘이로다!"

"아가씨께서는 '디바이스로 삼았으니까, 당연히 마력뿐만 아니라 노블 아츠도 쓸 수 있어. 멋지지!'라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씀하십니다."

"토마루 양……!"

토카는 멀리서 렌렌이 패한 모습을 시야의 끝으로 확인하고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패한 이는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사이조 군. 우타 군. 그리고, 카나까지……!'

전투를 개시한 지 10분 남짓.

이미 전장에 서 있는 하군 학원 학생회 임원은 토카 한 사람뿐이었다.

"이제 포기하는 게 어떠냐?"

"……윽."

대치하는 오마가 걸어온 어이없어하는 목소리에, 토카의 표정에 분한 마음이 배어 나왔다.

다른 자들과는 달리 토카의 몸에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마와 호각으로 겨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토카는 스텔라 일행을 도망 보낸 다음 남은 멤버의 실력을 고려해 오마를 상대할 수 있는 이는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덤벼들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그런 토카의 눈앞에서, 오마는 자신의 디바이스 '류즈메'를 집어넣고 무방비 상태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자신보다 약한 게 뻔한 여자에게 칼을 겨누는 취미는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상대해주길 바란다면──한칼이라도 좋다. 이 내 몸에 상처를 입혀봐라. 그럴 수 있으면 상대를 못 해줄 것도 없지.』

그 자리에서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서 우뚝 선 것이었다.

──너 정도의 기사를 상대할 마음은 없다고.

그 행위에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그 반면, 이 거만과 방심은 토카에게 있어서 기회였다.

스텔라를 그렇게나 쉽사리 물리친 오마.

그 강함은 진짜였다.

그런 그가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로 자신의 시퍼런 칼날 앞에 몸을 드러내고 있다.

이 기회, 눈 뜨고 놓칠 수는 없다.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적 쪽에서 가장 성가신 오마를 치겠다.

토카는 망설이지 않고서 무방비한 오마에게 혼신의 '뇌절'로 달려들었다.

그것은 힘을 주는 방식. 뽑는 방식. 각도 속도. 모든 것이 완벽한 일격.

오산이 있다고 한다면 오마의 거만함이 확실한 실력 차이에 근거한 자신감이었다는 점이었다.

직격한 '뇌절'은 오마의 몸에 상처 하나 남길 수 없었다.

10분 동안.

몇 번을 반복해도 모든 결과는 마찬가지.

의복이 살짝 찢어진 정도일 뿐 그 얇은 막조차 벨 수 없었다.

칼로 칠 때마다 느껴지는 감각은 마치 산과 같았다.

거대한 산을 향해서 검을 두들겨대는 것 같은, 너무나도 중후한 감각.

'이 이상할 정도로 높은 방어력은 뭐지……?!'

블레이저의 싸움에서 이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일은 있다.

대치하는 양자의 마력량에 동떨어진 차이가 있을 경우였다.

딱 잇키와 스텔라의 첫 싸움 같은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나와 오마 씨의 마력량에는 그렇게까지 큰 차이는 없을 텐데……!'

그런데 어째서──.

그러자 그 내심의 갈등을 꿰뚫어보았다는 양 오마가 입을 열었다.

"나와 너는 단련법이 다르다. 처음부터 승부가 되지 않아. 적당히 깨달아라."

"윽! 아직 멀었어요!"

이 상황에서 토카는 도박을 걸었다.

다른 군이 전원 당해버린 이상, 아마도 적은 일제히 가세하러 오리라.

그렇게 되면 자신도 위험하다.

그러니 하다못해 한방.

'오마 씨가 공격을 포기하고 있는 사이에 한방 반격하겠어!'

토카는 뒷걸음질로 오마에게서 거리를 벌린 다음 '나루카미'의 칼끝을 오마에게 향하게 만들며 칼을 수평으로 겨누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으로 전방의 공간에 자기장을 형성했다.

자신의 육체에도 또한 '질풍신뢰'를 이용해 번개를 두르고──

"'타케미카즈치'────!!!!"

전자력의 터널로 돌진했다.

순간. 뇌광의 터널을 빠져나온 토카의 육체가 파괴적인 속도로 가속했다.

그것은 즉, 자신의 몸 그 자체를 탄환으로 삼는 레일건이었다.

너무나도 미완성이고, 너무나도 무방비하고, 너무나도 위험한 기술.

도무지 실용에 버텨낼 만한 기술이 아닌 노블 아츠.

그렇지만 가속된 찌르기로 인한 관통력이 낳는 파괴력으로 따지면 '뇌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토카는 그 공격력으로 가지고 마지막 공격에 나서서──격돌했다.

피가 내뿜어졌다.

그러나 공중에 흩날리는 피보라는 어느 것도 오마에게서 나오지는 않았다.

피를 흘린 곳은 칼을 박아 넣은 토카의 오른팔.

칼날은 오마를 꿰뚫지 못했고, 또한 오마의 몸은 '타케미카즈치'의 직격을 받았어도 칼끝이 살짝 피부를 찢어 핏방울이 맺혔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우뚝 선 산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뭐, 예요…………, 당신…………."

토카는 '타케미카즈치'의 반동으로 망가진 오른팔을 힘없이 늘어뜨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묻고는,

"……윽?!"

경악으로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그 경악은 자신의 혼신을 몸에 받아도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타케미카즈치'의 충격 때문에 벌어진 가슴께.

그곳에 새겨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상처를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벤 상처, 찢어진 상처, 찔린 상처, 갈리고 뭉개진 상처──.

오마의 몸에는 온갖 종류의 상처가 나을 틈조차 없이 반복되어 겹치듯이 새겨져 있었다.

캡슐의 기술이 발달한 지금, 웬만한 상처는 흔적조차 남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시대에 이 정도의 오랜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이상했다.

도를 뛰어넘은 이질.

이때 처음으로 토카는 쿠로가네 오마라는 존재에게 마음속으로 공포를 느꼈다.

"당신……, 리틀에서 모습을 감춘 뒤, 뭘 했어요……?"

무대 표면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5년 동안.

대체 얼마만큼의 수라장을 뚫고 나온 것일까.

그 물음에 오마는,

"자신에 대한 걸 일부러 말하는 취미는 없다."

고개를 내저으며 공백의 5년 동안을 말하려고 들지 않고서,

"아니, 애당초 말할 정도의 것 따위, 나는 갖고 있지 않아. 부모도, 아우도, 누이도, 명성도──, 전부 버리고 왔다. 내가 가진 것은 이 검과, 이 검에 맡긴 맹세뿐."

그 손에 '류즈메'를 구현시켰다.

"윽……!"

"이런 거라도 상처라고 하면 상처다. 약속대로, 상대를 해주지."

순간, '류즈메'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삼킬 것만 같은 폭풍이 거칠게 불었다.

그 현상은 아까 전 스텔라의 '칼사리티오 살라만드라'를 맞받아쳤을 때와 마찬가지──.

"'쿠사나기'."

이리하여 내리쳐진 용권의 검.

온몸에 과전류를 띤 '타케미카즈치'의 반동.

과부하 때문에 일어난 근육의 경련으로 움직임 하나 취할 수 없는 토카는 당연히 이 공격을 피할 수 없어서──.

'다들……, 미안………….'

바람을 두른 용의 발톱은 토카의 의식을 무자비하게 베어냈다.

◆◇◆◇◆

하군 학원 학생회를 일축한 다음, 아카츠키의 일원 시노미야 아마네는 한숨을 한 번 쉬고서 하늘을 보았다.

이미 저녁 해가 저물어 하늘은 남색의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후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버렸네에."

그 말을 듣고 타타라는 손에 든 체인소를 지면에 직직 끌면서 깔깔한 목소리로 쓴소리를 했다.

"기기깃. 네놈들이 꾸물꾸물 대서 그렇지 바보오. 이쪽은 속공으로 정리했는데 말이지이."

"쿡쿡쿡. 별의 순환이 편을 들었을 뿐인 주제에 큰소리 치지 마라, '부전'."

"아가씨께서는 '어쩌다가 상대랑 상성이 좋았을 뿐이면서 큰소리치지 말라고!'라고 말씀하십니다."

"뭐어? 뭣하면 여기서 네년과 내 상성도 시험해볼까?"

"재미있군."

카자마츠리는 타타라의 도발에 씨익 입매를 일그러뜨리며 자신의 오른쪽 눈을 가린 안대에 손가락을 걸었다.

"내 '황혼의 마안'이 지닌 힘을 보여주마! 후회해도 모른다! 봉인해방!"

"……왼쪽 눈이랑 같은 붉은 색인데."

"아가씨. 콘택트렌즈 끼는 걸 잊으셨어요."

"……후, 하하핫. 오늘은 MP가 다 떨어졌다. 운이 좋았군!"

"너희는 아까 전부터 뭐 하고 노는 거야."

슬슬 보다 못한 아마네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과연. 히라가 씨가 없을 때는 내가 수습하는 역할을 맡아야만 하겠네, 이 면면은.'

"아직 할 일은 남아 있어. 도망친 스텔라 양과 잇키를 쫓아가야지. ……어쨌거나 두 팀으로 나뉠까."

자신의 역할을 인식한 아마네는 그렇게 전원에게 제안했다.

그러나 그 제안에 오마는 고개를 옆으로 내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다."

"어? 그건 무슨 뜻이야. 오마 씨."

"내 아우와 누이가 향한 곳은 사지다. '외팔의 검성'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지금 그 곳에는 '그녀'가 있어."

'그녀'──그 말을 듣고서 아마네도 기억해냈다.

자신들의 진정한 모교, 도쿄 도의 한구석에 호젓이 존재하는 카츠키 학원.

그곳에 오늘, 우연히 한 사람의 손님이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고 보니 그랬지. 오늘이었구나. 그 사람이 아카츠키 학원에 묵는 거."

"그렇다. 따라서 녀석들에게는 만에 하나의 기능성도 없어. 전원이서 '홍련의 황녀'를 뒤쫓는 게 득책이다."

확실히 그 말대로라고 아마네는 납득했다.

'그녀'는 이 작전에 관계된 인물은 아니었지만 정이 있는 사람이다.

하루 먹여주고 재워준 은의에는 검을 들고서 보답해주리라.

그리고 '그녀'가 움직인다면, 지금부터 아카츠키 학원으로 향하는 것은 헛걸음도 이만저만이 아니라 할 수 있다.

"그건 그렇고, 꽤나 담담하네. 걱정되지 않아? 형이잖아?"

그렇게 묻는 아마네의 말을 듣고, 오마는 내뱉듯이 말했다.

"시시하군. 이미 오래전에 버렸다. 새삼스럽게 아쉬워할 것도 아니야."

"아하하. 잇키는 정말로 가족운이 없네에."

"마음대로 지절여라. 아마네야말로 그 녀석에게 열을 올리는 것치고는, 걱정하는 기색도 안 보이지 않나."

"내가 걱정? 아하하. 설마아."

아마네는 오마의 너무나도 과녁을 빗나간 대꾸를 듣고 깔깔 웃었다.

"걱정 따위 하지 않아. 오히려 기뻐할 지경이야.

……잇키는 말이지, 좀 더 좀 더 괴로워해야 해. 좀 더 좀 더 아파해야 해. 몸을 찢기는 것 같은 고통과, 불합리한 고난과 역경. 그런 절망을 뛰어넘어야 '워스트원'의 이야기는 빛날 테니까."

그렇다. 그러니 절망은 깊으면 깊을수록 딱 좋다.

기진맥진해져서 피를 토하면서도 운명에 저항하려고 하는 그 모습──.

"나는 말이지, 그런 잇키를 저어엉말로 좋아해! 그러니 잇키를 좀 더 좀 더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싶어!"

"기기……. 여전히 구역질이 나오게 맛이 간 모습이로군."

"우우. 심한 소리 하지 마아. 좋아하는 사람의 멋진 모습을 보고 싶은 건 팬으로서 당연한 일이잖아."

그렇게 아마네가 분개로 뺨을 부풀릴 때였다.

그의 학생 수첩이 문자 수신을 알렸다.

확인해보니 그 문자는 그들의 수습 역인 '어릿광대' 히라가 레이센에게서 온 것이었는데, 아리스인을 아카츠키의 교사 겸 감독을 맡은 발렌슈타인에게 넘겼으니 자신도 이 쪽으로 합류하겠다는 취지가 적혀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이런 문자를 건네 온다는 것은,

'역시 내가 임시 수습 역이란 뜻이구나.'

라고 인식하며, 아마네는 문자로 지금부터 토카가 도망 보낸 스텔라를 전원이서 쫓기로 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그럼, 공주님을 붙잡으러 갈까."

카츠키 일동을 이끌고서 스텔라와 하구레 자매의 추적을 개시했다.

◆◇◆◇◆

그 무렵, 움직임을 보였던 이는 하군이나 아카츠키의 학생들뿐만이 아니었다.

"제길, 운이 없네! 이런 날에 한해서 비행기가 멈춘다니 말이야!"

욕지거리한 이는 고운 기모노 차림을 한 여성.

하군 임시 교사 '야차공주' 사이쿄 네네였다.

"정말이야."

맞장구를 친 이는 그녀와 나란히 달리는 하군 이사장 '월드 클락' 신구지 쿠로노.

두 사람은 요 일주일 동안 각각의 용건으로 칠성검무제 개최지인 오사카에 있었는데, 아까 전 하군에 남아 있던 교사에게서 하군 습격의 보고를 받고 급히 도쿄로 돌아가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도쿄와 오사카 사이의 가장 빠른 교통수단인 비행기는 활주로 이상을 이유로 운행 중지했다.

어쩔 수 없이 지금 두 사람은 도카이도 신칸센의 선로 위를 달려서 도쿄로 향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능력을 사용하면, 신칸센을 타는 것보다도 달리는 쪽이 훨씬 빠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런 날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말 마아. 그런 성가신 일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

쿠로노의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짓는 사이쿄.

현시점에서 쿠로노와 사이쿄 두 사람은 제대로 된 정보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녀들이 아는 것은 각 학교의 대표 선수들이 모여서 하군을 습격해왔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 진의도 무엇도, 두 사람은 몰랐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두 사람은 느끼고 있었다.

전혀 보도될 기색이 없는 습격 사건.

난데없이 운행을 정지한 비행기.

이 갑작스러운 습격 사건에는 무척이나 커다란 의도가 얽혀있다.

그런 낌새를.

"뭐, 어쨌거나 우리가 도착하면 모든 게 명백해질 일이야. 그러기 위해서도──."

한시라도 빨리.

그렇게 말을 하고서 땅을 박차는 발에 실은 힘을 한층 더 강하게 하려고 한…… 순간이었다.

""으윽────!!!!""

1초라도 빨리 가려고 달리던 두 사람의 몸이 돌풍에 얻어맞은 것처럼 정지했다.

──실제로 바람 따위는 불지 않았다. 바다도 온화했다.

그러나 세계 레벨의 기사인 두 사람의 표정에는 명백한 동요와 낭패가 배어 나왔다.

덜덜 다리가 떨리고, 이마에는 범상치 않을 정도의 땀이 뿜어졌다.

그랬다……, 두 사람의 발을 멈추게 만든 한 것은 바람이 아니었다.

저편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상식을 벗어난 검기.

눈도 가물거릴 만큼 지평선 끝에 있는데도, 목구멍에 시퍼런 날을 들이댄 것 같은 존재감.

두 사람은 서로 탁월한 기사이기 때문에 그것을 감지했고 느꼈기 때문에 움츠러들었다.

──저쪽으로 향하면 위험하다.

그런 본능의 경종이 두 사람의 발을 멈추게 만든 한 것이었다.

"지, 지금의 검기는, 설마……."

"이, 이봐, 이봐, 이봐. 진짜냐. 적 중에 터무니없는 게 한 사람 섞여있어……!"

두 사람은 알았다.

이 범상치 않은 검기.

이런 압박감을 가진 존재는 이 세상에 한 사람뿐이었다.

"검기는 일순. 지금 건 위협인가. ……서두르자, 네네!"

"아, 알고 있다니까!"

두 사람은 얼굴이 새파래져서 몸에 걸리는 부담도 상관하지 않고서 낼 수 있는 한의 고속으로 도쿄로 향했다.

'이 검기, '그녀'가 흥미를 드러낸다고 하면, ──아마도 쿠로가네인가!'

쿠로노는 아득히 먼 지평선 너머의 현 상태를 추측하며 기도했다.

'앞서 가지 마, 쿠로가네! 그 영역은, 아직 네에게는 너무 일러!'

◆◇◆◇◆

──그 흡사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듯한 프레셔(압력)는 난데없이 찾아왔다.

시즈쿠의 길 안내에 따라서 오토바이를 몰기를 잠시.

사람이 많은 도시부를 벗어나서 산길을 빠져나와 더욱 더 안쪽.

그곳에 호젓이 존재하고 있던 아카츠키 학원 본교.

폐옥처럼 적막한 그곳에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간 그 순간이었다.

"~~~~~~~~~~~~~~~~~~~~~~~~~~~~~~~~~~~~으으으윽?!?!"

갑작스러운 압박감.

오장육부가 전부 짓눌리는 듯한 중압감에, 잇키는 타이어를 미끄러뜨리면서 오토바이를 급 정거시켰다.

"오, 오라버니?! 왜, 왜 그러세요?!"

급정거에 시즈쿠가 놀라움 어린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몰랐던 것이었다.

무인으로서 미숙한 시즈쿠는.

그러나 잇키는 이해하고 말았다.

자신이 지금──마인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을.

"…………."

그 때문에 시즈쿠의 물음에 말을 되돌릴 여유는 없었다.

그저 잇키는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듯한 공포를 억누르며 호흡을 진정시키고 나서, 오른손에 '음철'을 구현시키고 하늘을 우러렀다.

아카츠키 학원 본교사 옥상.

그 한층 더 높은 곳에 하얀빛이 있었다.

그것은 달인가. 아니다.

하얀, 밤의 어둠에 희미하게 빛나는 순백은 사람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마치 북구의 전승으로 들은 발키리 같은 차림을 한 여성이 양손에 한 쌍의 검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적?!"

잇키의 시선을 따라서, 시즈쿠 역시 그 존재를 깨달았다.

그녀는 곧바로 지면으로 뛰어내려 '요이시구레'를 겨누었다.

그렇지만──.

"────."

하얗게 빛나는 인영은, 시즈쿠에게 흥미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 아름다운 두 눈은 똑바로 잇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

잇키도 곧바로 그 사실을 깨닫고서, ……그는 결의했다.

"시즈쿠. 아리스는 이 학원 안에 있는 거지?"

"어, 아, 네. 그 말씀대로예요."

"그렇다면, 먼저 혼자서 가줘. 이곳은 나 혼자면 돼."

"아뇨, 이건 저쪽에서 걸어온 전쟁입니다. 일대일에 연연할 필요는──."

"부탁이야, 시즈쿠. 가줘."

그것은 떨쳐내는 듯한, 부정을 용납하지 않는 음성.

"오라, 버니?"

갑자기 험악해진 오빠의 말투에, 시즈쿠는 그의 표정으로 눈길을 주고서…… 숨을 삼켰다.

잇키의 표정이 본 적 없을 정도로 굳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로 강한 적, 인가요……?"

"……뭐, 그렇지."

"그렇지만 그렇다면 더더욱 두 사람이서──."

"아니."

다시 물고 늘어지는 시즈쿠를 향해서, 잇키는 고개를 옆으로 내저었다.

"말했잖아. 나는 시즈쿠의 바람에 동참하겠다고. 그럴 각오로 이곳에 왔어.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곳까지 온 의미가 없어, 아리스쪽은 서두르지 않으면 때가 늦을지도 몰라. 그러니 이곳은 맡겨줘."

어디까지나 완고한 잇키.

여기까지 문답을 거듭하면 시즈쿠도 이해가 되었다.

그 말인즉, 잇키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에 있으면, 나는 시즈쿠를 지켜낼 수 없다고.

저 순백의 여자는 그 정도로 강한 적이라고.

"……알겠어요."

시즈쿠는 그 뜻을 헤아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라버니, 이곳은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빠에게 그 자리를 맡기고 혼자서 아카츠키 학원 본교사 안으로 들어갔다.

순백의 여자는 그런 시즈쿠를 방해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까 전까지와 마찬가지로 그저 그 자리에 남은 잇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즈쿠를 그냥 보내주시는군요."

"네. 안에는 발렌슈타인 경도 계시니까요. 게다가 이곳에서 두 사람 한꺼번에 쓰러뜨리는 것도, 당신을 쓰러뜨리고 나서 뒤를 쫓는 것도, 시간으로 따지면 그다지 다르지 않아요."

되돌아온 목소리는 노래처럼 우아한 울림을 지니고 어두운 밤에 울렸다.

그에 대해서 잇키는,

"당신에게는 그렇겠죠."

신음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흘렸다.

'……큰일이네. 명목상 학원이라는 이름을 댈 정도니까, 선생님 역할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학생이 그 정도 수준이었다.

A랭크는 거의 틀림없으리라.

그렇게까지 각오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이건 예상 밖이야…….'

그랬다.

잇키는 알고 있었다.

이 순백의 발키리가 누구인지를──.

"검의 길에 뜻을 품은 자라면, 당신의 별명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신성함마저 느껴지는 순백의 차림새에 날개를 연상시키는 한쌍의 검.

너무 강한 나머지 '붙잡기'를 포기한 '세계 최악의 범죄자'.

그리고 동시에…… 모든 검의 길 끝. 그 정점에 선 '세계 최강의 검사'.

──'비익'의 에델바이스. 당신이 틀림없겠지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비익'은 내 통칭이 맞습니다."

잇키의 물음에 여자는 긍정의 끄덕임을 돌려주고, 그런 다음 살짝 의아한 표정을 잇키에게 향했다.

"그렇지만 모르겠군요. 내 정체를 알고서도 여전히, 어째서 검을 뽑는 건가요. 검을 나누어야 상대와 자신의 역량 차이를 알 정도의 검사는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그 정도로 겁먹을 리도 없습니다."

"……간파되지 않게끔 허세를 부릴 생각이었습니다만."

잇키는 겁먹은 자신의 상태를 지적당하자 내심 메마른 웃음을 흘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잇키는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그 말대로야. ……내가 지금 부리는 건 만용이야.'

안다.

탁월한 검사이기 때문에, 피아 사이에 있는 어찌해보기 어려운 실력 차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길 수 없다.

그도 그러리라. 눈앞에 있는 이는 진정한──'세계 최강'.

칠성의 정점 따위와는 격이 달랐다.

아마도 이 앞, 몇 년이고 몇십 년이고 끊임없이 쉬지 않고 단련을 이어가, 잇키가 검의 일을 계속해서 살아간 끝에 가까스로 만나야 마땅했을 적…….

결코 지금 이 자리에서, 지금의 자신이 상대해도 될 만한 차원의 상대가 아니었다.

만나는 때가 너무 일렀다.

일단 승부조차 되지 않으리라.

'비익'은──그것을 굳이 말로 하고 있었다.

물러설 기회를 주기 위해서.

잇키는 그 점을 알아차리고 생각했다.

'이 사람은 다정하구나.'

아마도 그녀는 이곳에서 잇키가 지금이라도 물러서면 그것을 눈감아 주리라.

정말로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이쪽도 '네, 실례했습니다' 하고 물러설 수는 없다고요.'

확실히 무서웠다.

그저 그 시선을 느끼기만 해도 온몸이 떨리고 등에서 식은땀이 뿜어져 나왔다.

이가 떨리고 무릎이 떨렸다.

잇키로서도 처음이었다.

이 정도로 무섭다고 생각하는 싸움은.

그렇지만 그 공포심을 능가하는 이유가 있다.

이곳에 머무를 사정이 있다! 그러니까──,

"…………이건 뜻밖이네요."

잇키는 최대한의 객기로 표정에 웃음을 띠우며,

"세계 최강의 검사나 되시는 분이, 검을 뽑은 상대에게 전의를 묻는 겁니까."

윤기 나는 칠흑빛의 칼끝을 순백의 검사에게 들이댔다.

명확한 적의와 함께.

그에 대해서, 순백의 기사는 조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군요. 이 문답은 필요 없었군요."

그것이 방아쇠가 되었다.

"나는 이 계획의 멤버도 아니거니와 당신들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빌리고 있는 숙소에 온 적을 찾아내었으니 그것을 묵인할 수도 없었습니다."

높게 우뚝 선 교사에서, 소리도 없이 순백의 기사가 땅으로 내려섰다.

마치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 내려오는 듯한 우아함으로──.

"으윽……!"

그녀가 지평에 선 순간, 잇키는 자신의 심장이 터질 만큼의 공포를 느꼈다.

온몸이, 본능이, 혼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면서 울부짖었다.

도망쳐.

도망쳐.

부탁이니까 제발 도망쳐.

그렇지 않으면 너는 이곳에서 죽는다 ──라고.

그렇지만 그는 이를 악물면서, 그 압박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리고,

"나, 아득한 정점이자 종언. 한 쌍의 검으로 천지를 가르는 자.

내 이름은 '비익'의 에델바이스.

어린 소년이여. 넓은 세상을 깨달으세요."

'워스트원' 쿠로가네 잇키와 세계 최강의 검사 '비익'의 에델바이스는 격돌했다.

◆◇◆◇◆

한편, 잇키와 에델바이스의 싸움이 시작되었을 무렵──.

"…………윽."

아리스인은 아마네의 '환상 형태'로 받은 타격으로부터 간신히 눈을 떴다.

'이곳, 은…….'

느릿한 각성의 도중, 그는 자신의 상황을 분석했다.

시야에는 높은 천장. 높은 조명. 공기가 흐르는 소리로 보아하니 무척 넓은 공간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이 계절에 몸속에 스미는 냉기는 지하일까.

"눈을 떴나."

"윽!"

그 목소리에 아리스인은 몸을 벌떡 일으키려 하다가 깨달았다.

'손발이 묶여있어……!'

그것도 평범한 밧줄이 아니었다.

피아노선처럼 가느다란 마력으로 엮어진 그것은 '어릿광대' 히라가 레이센의 '블랙 위도우'였다.

"어리석기는."

애벌레처럼 몸부림치는 아리스인에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인영이 내뱉듯이 중얼거렸다.

아리스인은 그 그림자를 올려다보며 잘 아는 장년의 얼굴을 보았다.

"발렌슈타인……!"

순간, 장년──발렌슈타인의 부츠 끝이 아리스인의 명치에 박혔다.

"그흑!"

"발렌슈타인 선생님이다."

장기를 도려내는 듯한 아픔은 아리스인에게 완전한 각성을 가져다주었다.

그 때문에 그는 확신했다.

'나는 실패했구나.'

자신의 배신은 사전에 들켰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워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했다.

꼬리를 잡힐만한 실수를 한 기억이 없었기에.

"……어째서, 내가 배신했다는 걸 알았을, 까."

"그런 게 가능한 능력자가 있었다. 그뿐이지."

"…………과연 그러네."

그 한마디로 아리스인은 이해했다.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 만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가 블레이저다.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는 않다.

'……멤버를 상세하게 파악할 수 없었던 게, 역시 뼈아팠네.'

뭐, 새삼스럽게 후회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도 맨 처음 녀석의 '예언'을 들었을 때는 귀를 의심했다. 그 멤버 안에서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누구보다도 순종적으로 우리를 섬겨온 네가, ……배신할 줄은."

"……나는 꽤나 높게 평가받았네."

"당연하다. 너를 찾아낸 건 다름 아닌 나였으니까. 거짓말이기를 바랐다. 착각이었으면 했다. 나는 너를 믿었으니까. 오늘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계속해서 믿었다. 그랬, 는데…………."

발렌슈타인의 말투가 점점 떨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격앙되었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냐!! 어째서, 이 내 기대를 배신했나!!!!"

"억! 그흑!"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분노에 몸을 맡겨서 아카츠키 학원 지하 훈련장 바다에 누워 있는 아리스인을 발로 차댔다.

"너는 알고 있을 텐데! 지겨울 정도로 이해할 텐데! 이 거짓투성이인 세계에서 무언가를 사랑하는 허무함을!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어째서 같은 실수를 반복했나! 버리지 않았더냐! 우리와 같은 진실을 깨닫지 않았더냐!"

"쿨럭, 콜록!, 커흑!"

뼈가 부서져 내장이 상처 입었나.

아리스인의 검은 피를 토해냈다.

그러나 발렌슈타인의 폭력은 멎지 않았다.

발렌슈타인은 불꽃 같은 분노를 아리스인에게 쏟아냈다.

아리스인의 과거를 알기에, 발렌슈타인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어째서 자신이 찾아낸 천재가 다시 '힘'에 저항하려고 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인지를.

"어쩔 셈이었냐. 대답해라……!"

발렌슈타인은 발로 차대는 것을 멈추고 어깨를 들썩이면서 물었다.

그 물음에 아리스인은──피를 흘리는 입술을 자조하는 양 일그러뜨렸다.

"……그래. 그렇지, 그럴 셈이었어."

아리스인은 생각했다.

자신도 유리 일행을 잃은 그때, 전부 버릴 셈이 었다고.

그러기 위해서 발렌슈타인에게 돈을 요구했다.

여동생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키우는데 충분할 만큼의 금전을 수녀에게 맡김으로써, 그 아이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기 위해서.

그렇지만──그 돈을 맡기러 갔을 때, 자신이 마피아를 모두 죽였다는 사실과 암살자로서 몸을 말았다는 사정을 전했더니, 수녀는 교회 뒤의 창고 오두막에서 그 녹색 술병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걸 가지고 가세요. 이건 오늘의 당신에게야말로 필요한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부디 떠올려 주세요.

당신과 유리가 이 술에 맹세했던 존귀한 자기 자신을──.』

그런 것을 가지고 갈 생각은 없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하고 자란, 그렇다 해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 자신과 유리의 꿈의 자취였기에.

보고 싶지도 않았다.

모든 것을 버리고 발렌슈타인의 곁으로 갈 생각이었다.

이 세상 전부를 증오하기 위해서.

"그렇지만──결국 나는 버릴 수 없었어."

아무리 사람으로서의 양식을 버리고, 암살자로 전락해도, 그 병을 손에서 놓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아리스인은 만나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가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걸고서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는 소녀와.

"시즈쿠와 만나서, 나는 간신히 떠올렸어. 자신이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는지를. 자포자기하고, 삐뚤어지고, 땅에 떨어져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의 바람을……."

그래서 아리스인은 결의한 것이었다.

설령 진정한 자신을 알게 된 시즈쿠가 두 번 다시 자신을 언니라고 불러주지 않더라도, 자신의 진정한 바람을 떠올리게 해준 그녀의 모든 것을 지키겠다고! 그 때문에──.

"그 아이의 바람은 내가 지키겠어! 당신들이 뜻대로 되게 내버려두지는 않아!"

순간, 아리스인은 자신의 구속을 풀고서 벌떡 일어났다.

그 정도의 구속, 일류 어새신(암살자)인 아리스인에게는 구속 측에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다크니스 허미트'를 구현시켜 발렌슈타인의 그림자를──

"쓰레기가."

꿰매 붙이려고 한 찰나.

발렌슈타인의 발차기가 다시 아리스인의 명치를 꿰뚫었다.

아리스인의 움직임을 예견한 듯한 재빠른 반격.

사실, 발렌슈타인은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검은 흉수'가 이 정도의 구속으로 얌전히 있지는 않으리라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기에 기선을 제압할 수 있었다.

"어, 억……!"

아리스인은 '다크니스 허미트'를 손에서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다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횡격막에 타격을 받아 숨을 쉬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제자를 내려다보며,

"네 어리석음은 잘 알았다. ……요컨대 너는 그 아이에게 정이든 건가."

발렌슈타인은…… 등골이 서늘해질 정도의 가학적인 웃음을 띠우더니,

"그렇다면, 마침 잘 됐군."

그런 말을 했다.

"어?"

마침 잘 됐군.

그 말은 무슨 뜻일까.

아리스인이 물어보려고 한 순간이었다.

지하의 훈련장.

그 천장의 일부가 소리를 내면서 허물어졌다.

동시에 그 허물어진 떨어진 구멍에서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훈련장의 지면에 떨어져 내렸다.

떨어져 내려도 여전히 둥근 형태를 무너뜨리지 않은 반 고체의 얼음덩어리.

그 안에는──

"시, 시즈쿠……?!"

은색 머리카락에 자그마한 몸집의 소녀.

'로렐라이' 쿠로가네 시즈쿠의 모습이 있었다.

◆◇◆◇◆

"간신히 찾아냈네, 아리스."

높은 천장에서 얼음덩어리를 두르고서 떨어져 내려온 시즈쿠.

그 모습을 눈으로 본 순간, 아리스인의 표정이 지금까지 없었을 정도로 창백해졌다.

"어, 어째서 여기에! 나를 버리라고 말했잖아?!"

"응. 들었어."

"그렇다면──."

"그렇지만 그걸 받아들인 기억은 없어."

"뭐……."

지나친 말투에 아리스인은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받아들여진 기억은 없었지만──.

'어째서…….'

"나는, 살인자라고. 줄곧 시즈쿠를 속여 왔는데?"

아리스인의 뇌리에 그 날의 정경이 떠올랐다.

피투성이가 된 자신을 공포로 굳은 얼굴로 바라보는 남매들의 얼굴이.

자신은 추한 살인자다.

시즈쿠가 도와줄 가치 따위는 없다.

"그런데 어째서……."

아리스인은 괴로운 표정을 띠우면서 물었다.

그 물음에, 시즈쿠는 답했다.

단 한마디──.

"그런 거. 당연히 아리스인이 나에게 소중해서 그런 거지."

똑바로, 겁먹지도 않고, 멸시하지도 않고──.

아리스인의 정체를 알기 전과 전혀 다름없는, 친밀함을 가득 담은 초록빛 눈동자로 아리스인을 바라보며 답했다.

"설령 아리스에게 어떤 비밀이 있다 해도.

설령 아리스가 과거에 얼마만큼 큰 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나에게 아리스는 멋쟁이에, 멋지고, 함께 있으면 대단히 차분해지고, 머리카락을 꾸며주는 게 능숙하고, 화장을 무척이나 잘하고, 내 고민을 항상 진지하게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주고, 격려해주고,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싸워준, 단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 그게 전부야. 그렇게 다정한 내 '언니'를 버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시즈, 쿠……."

"자기만 나를 소중하게 여긴다고 생각하지 마.

나 역시 그만큼 아리스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으니까.

──이런 녀석들에게, 끌려가게 내버려 둘 수 있겠어?"

"……윽."

시즈쿠의 흔들림 없는 결의에, 아리스인은 할 말을 잃었다.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너무 커서 말을 자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미움받으리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보았던 여동생들과 같은 눈으로 쳐다보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시즈쿠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을 따라주고 있었다.

그 사실이 아리스인의 마음속에서 어떤 강렬한 감정을 되살아나게 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바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한 가지의 욕구를──.

'시즈쿠, 나는………….'

"이야기는 거기까지다."

그렇지만 그 순간, 발렌슈타인이 발꿈치로 아리스인의 등을 내리찍었다.

"억!"

등에 박히는 충격은 내장을 꿰뚫어서 아리스인을 괴롭게 만들었다.

격렬한 기침을 하면서 몸을 둥글게 마는 아리스인.

발렌슈타인은 그런 제자의 모습을 차가운 시선으로 내려다보고는,

"너는 거기서 납죽 엎드려서 보고 있어라. 나를 배신한 대가를 말이지."

왼손에 거대한 대검을 구현시키고 천천히 시즈쿠를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이제 아리스인에게도 그가 말했던 마침 잘됐군이라는 말의 의미는 이해가 되었다.

없앨 생각이다.

시즈쿠를. ──자신의 눈앞에서.

"그, 만…………, 윽, 쿨럭."

제지하려 해도 횡격막이 경련해서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빌 수밖에 없었다.

'도망쳐, 시즈쿠……!'

겉멋으로 사제 관계가 아니었다.

아리스인은 알고 있었다.

외팔이 되었으면서도 '검성'이라고 불리는 발렌슈타인의 힘.

전투에서 공격과 수비 모두 견줄 자가 없는 '외팔의 검성'이 쓰는 노블 아츠.

'그 남자에게 네 물의 힘은 무력해! 그러니 지금 당장 도망쳐!'

그렇지만 그 필사적인 바람은 전해지지 않았다.

아니, 전해졌어도 들어주지는 않으리라.

시즈쿠 또한 각오를 다지고서 이곳으로 온 것이기에.

시즈쿠는 도망칠 기색도 보이지 않고서 걸어오는 발렌슈타인을 향해서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당신이 큰오라버니 일당의 두목이군."

"'리벨리온'의 발렌슈타인이다."

"딱히 당신의 이름 따위는 흥미 없어. 아리스를 돌려줘. 내 용건은 그뿐이야."

"돌려줄 거라 생각하나?"

"아니. 그렇지만 일단 물어보기는 해두려고. 왜냐하면 봐──

숨통을 끊어 버려도 변명할 수 있잖아?"

그렇게 말한 다음, 시즈쿠는 물 구슬 안에서 '요이시구레'를 지휘봉처럼 휘둘렀다.

그 움직임에 호응하듯이 그녀를 감싼 물 덩어리가 거대한 물의 채찍을 형성하고.

끝 부분에 한층 더 많은 양의 물을 모아서 얼렸다.

가시가 돋친 망치 같은 형상을 이루고 나서, 그 얼음 망치를 발렌슈타인에게 내리쳤다.

◆◇◆◇◆

얼음 망치는 자비도 용서도 없이 때려 박아 격렬한 모래 먼지와 굉음을 내면서 훈련장의 지면을 깨부수었다.

그러나──

"제법 좋은 성격이로군, 계집."

얼음 망치가 떨어진 곳은 발렌슈타인의 살짝 옆.

발렌슈타인은 아직 상처 없는 상태로 천천히 시즈쿠를 향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 망치가 명중하면 인간 따위는 산산조각이 난다.

입으로는 무어라 말해도, 시즈쿠도 역시나 그러기를 망설인 것인가.

──아니었다. 시즈쿠에 한해서 그럴 일은 없었다.

그녀는 틀림없이 잇키의 그룹 안에서 가장 냉혹하고 용서가 없기 때문이었다.

시즈쿠는 그야말로 본심이었다.

지금 그야말로, 진심으로 발렌슈타인을 으깰 마음으로 얼음 망치를 내리쳤다.

그런데도 얼음 망치는 빗나간 것이었다.

'피한 거야?'

발렌슈타인이 움직인 기색은 없었다.

그러나 인류 최고 수준의 마력 제어력을 지닌 자신이 표적을 잘못 겨누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무언가 능력을 사용했다는 가정이 유력한가.

거기까지 생각하고서 시즈쿠는──.

'……뭐, 아무래도 좋아.'

어떤 트릭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동토평원'."

피하는 상대에게는 피해낼 수 없을 만큼 많은 탄막을 준비하면 그만일 뿐.

시즈쿠는 그렇게 생각하고서, 우선 지면의 발 디딜 곳을 얼렸다.

상대의 기동력을 현저하게 깎아내리고 그 위에──.

"혈풍참우'."

자신을 덮고 있던 거대한 물 덩어리를 고슴도치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켜,

"일제사격."

물의 바늘을, 이미 표적조차 겨누지 않고서 기관총처럼 사방팔방으로 연사했다.

초당 수만 발, 고압으로 쏘아진 물의 탄환은 전장 전체를 꿰뚫고 깎았다.

그것은 이전, '뇌절'과 싸웠을 때에 사용한 물의 양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나 그것도 그럴 터.

'뇌절'은 번개술사.

물술사인 시즈쿠가 상대하기 위해서는 사용하는 물 전체에 순수화를 통한 절연처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한 번에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이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제약은 존재하지 않았다.

현 상태에서 시즈쿠가 할 수 있는 물의 양은 '뇌절'전의 수백 배.

아카츠키 학원 지하 훈련장의 지면, 벽면, 천장, ──모든 것을 빈틈없이 벌집으로 만들어도 남아돈다!

그야말로 비안개라 할 만한 밀도의 제압 총격.

이미 이 지하 훈련장이라는 밀폐된 공간 그 어디에도 도망칠 곳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발렌슈타인도 그 몸을 탄막의 비에 드러내지 않을 수 없을──.

시즈쿠의 노림수대로 '혈풍참우'의 탄막은 발렌슈타인에게 직격했다.

"──윽?!"

그, 런, 데도 말이다.

발렌슈타인은 멈추지 않았다.

다진 고기가 되기는커녕, 탄막 속을 느긋하게 전혀 흐트러짐 없는 보폭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랬다. 유유하게, 얼어붙은 바닥을 말이다.

'어떻게 된 거지. '동토평원'도 '혈풍참우'도 전혀 듣지를 않아?!'

주위의 일체가 잔해로 변해서 모래 먼지와 안개를 일으키는 와중.

발렌슈타인에게는 전혀 타격이 없었다.

아니, 타격은커녕 물에 젖은 흔적조차, 그가 입은 옷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대체 어째서인가.

제아무리 시즈쿠라고 해도 당황했다.

그리고 발렌슈타인은 당황하는 시즈쿠에게 나지막이 웃으며,

"아깝군.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면 귀여워해 주었을 텐데. 뭐, 이것도 운명이다."

천천히, 간격 10미터 정도 되는 위치에서 왼손에 든 거대한 검을 어깨에 짊어지듯이 들었다.

그 자세를 눈으로 본 순간, 시즈쿠의 온몸에 떨림이 퍼졌다.

틀림없었다.

저 자세는 '외팔의 검성' 발렌슈타인의 필살의 자세라고 본능이 감지했다.

'뭔가 온다!'

시즈쿠는 곧바로 '혈풍참우'의 탄막을 물리고 자신을 감싼 물의 방어를 얼렸다.

영구동토도 능가하는 강도로 성벽을 형성했다.

마치 요새라고도 말해 마땅한 수비력으로 완전 방어 태세를 구축한──

"시즈쿠────!!!! 방어하면 안 돼애애애애애애!!!!"

"윽?!"

찰나──

"'베르크 슈나이든(산 베기)'."

혼신의 방어 전부가 쉽사리 베어졌다.

◆◇◆◇◆

세계 최강의 검사. 에델바이스.

그녀와 대치한 '워스트원' 쿠로가네 잇키는 곧장,

"오오오오오오옷!"

거친 푸른 오라를 몸에 둘렀다.

노블 아츠 '일도수라'를 발동한 것이었다.

첫 합을 나누기보다도 빨리.

1분 동안이라는 엄격한 시간제한이 있는 기술을, 어째서 처음 만난 상대에게 첫수로 이용하는가.

뻔했다.

──그러지 않으면 애당초 싸움이 되지를 않는다.

다름 아닌 잇키 자신의 안력이 피아의 실력 차이를 그렇게 인정한 것이었다.

1분 동안.

그것이 자신이 이 세계 최강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한계 시간이라고.

그리고 그 판단은 옳았다.

바람을 휘감으며 공격해오는 에델바이스의 베기 공격.

상대방의 첫수를 통해, 잇키는 자신의 판단에 착오가 없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에델바이스가 양쪽 검을 휘두른 순간, 자신의 두 눈이 그 베기 공격을 놓쳤기 때문이었다.

"윽──?!"

잇키는 황급히 자신의 몸을 뒤로 날렸다.

그 찰나, 잇키의 코끝에서 대기가 찢어졌다.

터무니없이 날카로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눈앞을 스쳐 코끝을 살짝 긁었다.

떠도는 탄내로 잇키는 이해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스쳐 지나간 것은 베기 공격.

──에델바이스의 양도.

'베기 공격이, ──보이지 않아!'

너무나도 빠르고, 너무나도 날카롭기에.

좌우 양손에서 휘둘러지는 순백의 검이 그리는 잔영조차 맨눈으로 붙잡을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붙잡아낸 것은 규격 외의 속도로 검신이 스쳐 지나감에 따라 격렬해진 대기의 반짝임.

'정말로 날카롭다……!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풀면 그곳에서 목이 날아가겠어…….'

이 순간, 잇키는 일단 이 싸움에서 호흡을 포기했다.

문자 그대로, 숨 쉴 틈 따위는 없기 때문이었다.

에델바이스의 이도에서 내찔러지는 섬광 같은 베기 공격의 대처에 모든 신경을 동원했다.

자신이 지닌 기술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보이지 않는 검기.

'일도수라'를 몸에 두르고서야 비로소 사용할 수 있는 제7비검 '뇌광'의 속도로 밀려오는 베기 공격을 맞받아쳤다.

하나, 둘, 셋, 넷──.

보이지 않는 강철의 뒤섞임이 어두운 밤을 하얗게 태우는 불꽃을 낳았다.

합계 10연참.

에델바이스가 고작 한 호흡의 사이에 내찌르는 보이지 않는 연속 공격을, 잇키는 에델바이스가 보이는 신체의 움직임, 시선의 움직임으로부터 베기 공격의 궤적을 연산해서 간신히 여러 번 막아냈다.

그러나 첫수를 견뎌낸 잇키의 표정에는 명백한 경악이 서렸다.

'괴, 굉장해……!'

베기 공격을 받은 양손이 어깨까지 저렸다.

빠를뿐만이 아니라──터무니없이 무거웠다.

한쪽 팔로 내찌름에도 불구하고, 잇키의 '뇌광'보다도 까마득하게!

어째서인가.

잇키는 그 이유를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큭!"

밀려오는 에델바이스의 추가 공격을, 잇키는 다시 '뇌광'으로 응전했다.

불꽃을 흩날리는 강철의 교차 중에서, 잇키는 자신의 이해가 옳았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역시 그랬어……! 이 사람의 거동에는 일체의 '소리'가 존재하지 않아!'

발놀림에도, 베기 공격에도, 그 일체가 완전한 무음.

소리란 즉 공기의 진동으로 생기는 충격의 파동이다.

바꿔 말하자면 그것은 힘의 로스(분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약 자신의 행동으로 의해 생기는 에너지를 완전히 제어해 일체의 군더더기 없는 행동만을 소비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 모든 동작은 무음이 되어 속도도 공격력도 100%에 한없이 가까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 것은 도무지 인간의 기술은 아니지만──.

틀림없이 잇키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었다.

잇키는 그 점을 이해하고, 전율과 함께 군침을 삼켰다.

'이것이, 세계 최강의 검기……!'

발놀림 하나. 칼 놀림 하나. 어느 것을 보아도──규격 외.

파고들 틈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방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

틈새 없이 덮쳐오는 무박자의 베기 공격을 간신히 막으면서, 잇키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뇌광'으로는 가까스로 따라갈 수 있을 뿐이야! 속도도 공격력도 승부가 되지 않아! 제대로 수세로 돌리면 5초로 무너질 거야!'

그렇기에 다른 국면에서 공세로 전환해야만 한다.

공격은 최대의 방어.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생각은 없지만, 사실의 한 측면이기는 했다.

맞지 않아도, 닿지 않아도, 상대의 자세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그 공격에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잇키는 결의했다.

세계 최강의 검사를 향해서──공격해 들어갈 결의를.

내놓기를 아까워하지는 않겠다.

그럴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전부를 내던진다……!'

순간, 잇키는 결의를 행동으로 옮겼다.

에델바이스의 이도에서 내찔러지는 빠른 고속 공격.

그것을 피하듯이 잇키는 뒷걸음질했다.

에델바이스는 곧장 땅을 박차고 이도를 십자로 교차시켜 바싹 뒤따랐다.

전방에 대한 방어와 십자 베기로 이어지는 연계를 양립시키는, 공격과 수비에 있어서 빈틈없는 자세.

대면하는 상대가 추격하는데 가장 적절한 동작이자──동시에 잇키의 예견대로였다.

'갑니다!'

다가오는 에델바이스를 향해서, 잇키도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특수한 스텝을 이용해 급격한 완급을 줘서 자신의 전방에 잔상을 만들어 냈다──.

제4비검 '신기루(廳樓)'.

에델바이스는 환혹의 발놀림으로 만들어낸 잔상을 베려고 달려들었다.

교차시킨 검신을 좌우 동시에 밀어붙이는 십자 베기.

그러나 그것이 잔상인 이상, 날은 허공을 가를 뿐.

그 결과,

'가슴께가 텅 비었어!'

얻어냈다고 생각하며 잇키가 '음철'을 겨누고서 발을 내디딘──

"윽!"

찰나, 잇키는 발을 내디디려고 했던 몸을 황급히 뒤로 물렸다.

순간, 지금 막 잇키의 목이 존재했던 공간에 보이지 않는 베기 공격이 내달렸다.

'안 되겠어! 내가 발을 내딛는 것보다 칼날의 회수가 빨라! 이래서야 종국은 노릴 수 없어!'

어슬렁어슬렁 간격에 들어섰다면, 지금쯤 목과 몸통이 분리되었을 참이리라.

'그렇지만 한두 번으로 포기할까 보냐!'

속도로 못 따라간다면 힘이라고 생각하며, 잇키는 다시 공세로 전환했다.

상반신을 비틀고서 하반신의 탄력으로 힘을 모아, 자신의 모든 체중, 모든 여력, 가지고 있는 힘 전부를 칼끝 한 점에 집중시켜 돌진하는, '워스트원'이 지닌 검기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찌르기 기술──.

제1비검 '서격'.

거대한 암석조차 구멍을 내는 잇키의 최고 공격력.

그 돌진력과 돌파력이란 비할 데가 없는 것.

그토록 강한 에델바이스도 도망칠 도리밖에는 없다.

그것은──이 얼마나 안이한 생각이었나.

"뭐엇……!"

다음 순간, '서격'의 돌진력이 힘을 잃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었다.

어째서인가──답은 '서격'의 힘이 집중된 '음철'의 칼끝에 있었다.

놀랍게도 에델바이스는, 자신의 검 끝으로 '서격'의 칼끝을 받아 멈춘 것이었다.

침 끝 두께만큼도 되지 않는 칼끝 부분에,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자신의 칼끝 부분을 맞춰서, 잇키의 최고공격을 팔 하나로.

──실로 아무렇지도 않게.

"윽…………!"

마치 피아의 실력 차이를 내보이는 것 같은 행위에, 잇키의 마음에 한순간의 동요가 생겨났다.

그리고 에델바이스는 그 동요를 놓치지 않았다.

살짝 둔해진 잇키의 반응의 틈새를 찔러──

"크앗?!"

에델바이스의 베기 공격이 마침내 잇키의 살을 찢어발겼다.

발긴 곳은──이마.

더 나아가 운 나쁘게도 그곳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잇키의 양 눈에 들어갔다.

'시야가!'

물론 에델바이스는 그 치명적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내찌르는 것은 첫수에 보였던 좌우 양손에서 펼치는 순간 10연속 공격.

추격의 칼은 날쌔고 빠르게, 대기를 하얗게 태울 정도의 속도로 휘둘러져서──.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읏?!"

그러나 쿠로가네 잇키는 그 모든 공격에 대응해보였다.

떨쳐 냈다.

어느 것이나 필살의 검 열 합을, 차례차례로.

양 눈을 빼앗긴 잇키로서는 털끝만큼의 동요도 없었던 것이었다.

어째서인가.

그것은 이미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휘두르기는 보이지 않지만, 몸의 움직임으로 미루어 보아 어느 정도의 '가닥'은 간파했다!'

에델바이스의 호흡. 검 놀림.

템포, 발놀림──.

싸우면서 얻은 상대방의 정보를 통해 상대의 본질을 벌거숭이로 만드는 완전무비의 통찰력.

'퍼펙트 비전(완전 장악)'──자신이 지닌 검기 이외의 또 하나의 무기로, '워스트원'은 에델바이스의 검기를 읽어낸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시야는 필요 없다.

시야 따위가 없어도 적의 두 수 세 수 앞을 읽을 수 있기에!

"제법이로군요."

그야말로 세계 최강도 '심안'의 영역에 다다르고 있는 잇키의 감성에는 감탄의 목소리를 흘렸다.

그러나 공격하는 베기 공격의 손을 늦추지는 않았다.

바로 정면에서 이도의 절대 우위인 수단으로 공격했다.

공격을 퍼부었다.

그녀는 알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검 솜씨가 아무리 간파되었든지, 두 사람 사이에는 예측만으로는 메울 수 없을 만큼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잔재주는 필요 없다.

속도와 힘으로 누르면 그만이다.

──그것은 정말이지 옳은 판단이었다.

이대로라면 금세 눌리고 만다.

잇키도 또한 그것을 확신했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승부를 걸겠어……!'

있었다. 단 하나, 이 상황에서 흐름을 바꿀 수단이.

소리 없고 형체 없는 연속 공격을, 예측만을 의지해 처리하면서 생각하고 궁리했다.

에델바이스는 이 싸움에서 한 번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전진하면서 수비는 하지만, 단 한 번도 '회피'라는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어째서인가. 간단한 일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피할 필요 따위는 없었다.

공격하면서도 틈틈이 하는 방어로도 충분히 받아넘길 수 있었다.

잇키의 검은 그저 한칼의 예외도 없이 에델바이스의 검에 튕겨졌다.

그것은 피아의 실력 차이를 고려하면 필연.

따라서 에델바이스는 '회피'를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곳에야말로 활로가 있다.

필연이란 요컨대 그만큼 상황을 읽기 쉽다는 뜻이니까!

'그 한 점을 기점으로 그녀의 리듬을 무너뜨리겠어!'

그리고 잇키는 마지막 공세에 나섰다.

순백의 날을 살짝 강한 힘으로 튕기고, 되돌아오는 날을 늦췄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일격은 비스듬한 아래에서부터 베어 올렸다.

'음철'의 날은 지면을 스쳐──아니, 지면을 깎으면서 에델바이스에게 달려들었다.

휘두르기가 크기는 했지만, 그 날카로움은 질풍과 같았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에델바이스에게는 닿지 않으리라.

잇키의 검이 질풍이라면, 에델바이스의 검은 섬광.

틀림없이 받아낼 것이다.

그렇지만──그래도 상관없었다.

어째서냐 하면, 이 기술은 굳이 받아내는 것에 의미가 있었다.

상대가 '음철'을 막은 순간, 발치에서 손가락 끝까지의 모든 근육을 연동시켜서 근육 신축에 의한 충격파를 때려 넣는다.

인체란 그 대부분이 물로 구성된, 물이 가득 찬 살덩어리다.

따라서 진동에 대해서도 무르다.

어떤 종류의 진동은 쉽게 인체에 파문을 만들고 안쪽에서 파괴한다.

중국 권법에 존재하는 침투경 같은 것이 그 원리를 이용한 기술의 한 예이다.

요컨대 잇키가 행하는 공격은 칼을 이용한 침투경.

갑옷으로 받으면 안의 내장을.

칼로 받으면 칼자루를 쥔 양팔을.

진동은 검신을 통해서 확실히 인체에 이르러 파괴를 가져다주는, 독을 지닌 한칼──.

제6비검 '독나방의 칼'.

실력 차이를 고려해서 회피하지 않는다.

그런 에델바이스의 행동은 실로 올바르게 잇키와 자신의 실력 차이를 판별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상대에게 받게 만듦으로써 힘을 발휘하는 이 비검은 그런 상황 아래에서야말로 유효하다.

그리고 잇키의 노림수대로 에델바이스는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고서,

──독이 담긴 칼을 순백의 날로 받았다!

제아무리 세계 최강이라고 해도 에델바이스 역시 인간이다.

그 인체 구조는 잇키와 그리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하면 이 독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잇키는 에델바이스의 시퍼런 날을 노려서, 온몸의 근육을 연동시켜 생겨난 충격파를 때려 넣고,

순간, 잇키의 온몸에서 피보라가 뿜어져 나왔다.

"어."

온몸 곳곳의 피부가 찢어져 피보라가 춤추었다.

어째서.

잇키는 그 이유를 금세 이해했다.

간단한 일이었다.

에델바이스는 잇키가 지금 막 그녀에게 쓴 기술과 완전히 같은 방법을 구사한 것이었다.

──차원이 다른 속도와 파괴력으로.

그 결과, 잇키가 에델바이스에게 쳐넣은 충격파는 사라졌고 여파에 따라 반대로 잇키의 몸이 파괴되었다.

"────윽."

에델바이스의 검을 간파했다고 생각했던 잇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환상.

에델바이스가 의도해서 보여주었을 뿐.

모든 것은 에델바이스의 손바닥 위였던 것이었다.

그 사실은 으스스한 전율로 변해 잇키의 온몸을 떨리게 만들었다.

'이 정도, 인가…….'

전력을 다해서, 모든 기술을 걸고, 생각할 수 있는 한도 내의 대책을 이용해서도 여전히,

──건드릴 수조차 없다.

'세계의 정점은, 이렇게나, 높고, 까마득한 건가……?!'

자신의 척도로는 잴 수 없을 만큼 강한 힘을 앞에 두고, 잇키는 얼이 빠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결판은 찾아왔다.

모든 공격 수단을 잃은 잇키를 향해, 에델바이스는 오른쪽 검을 휘두르고.

보이지 않는 영역을 달리는 순백의 날이 '음철'의 검신과 함께 잇키를 찢어발겼다.

"아."

그 일격으로 잇키가 몸에 입은 상처는 깊지 않았다.

그러나 혼의 결정인 디바이스를 파괴당함으로써 잇키의 의식과 몸이 무너져 내렸다.

에델바이스는 더 이상 추가로 타격을 가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미 싸움은 끝났다고 생각하며 잇키에게서 시선을 떼고──.

"우,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윽?!"

그러나 잇키의 몸이 지면에 무너져 내리려고 한 그 찰나.

놀랍게도 잇키는 온갖 힘을 쥐어짜내어 그 패배를 거절했다.

부서져서 공중에 흩날리는 '음철'의 검신을 쥐자마자,

"오, 오오오오오오오오오!"

에델바이스를 다시 베려고 달려들었다.

그 날은 순백의 검에 가볍게 막히기는 했지만,

"……아직 계속할 겁니까?"

잇키의 행동은 에델바이스의 마음에 작은 동요를 주었다.

그녀는 어깨를 들썩이며 깨진 혼의 결정을 움켜쥐고,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의 앞에 선 검사에게 물었다.

"힘의 차이는 착오가 생길 여지도 없이 역력합니다.

혼의 결정인 검이 부서지고, 의식도 흐릿합니다. 더 이상 싸울 수 있는 몸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나를 가로막는 겁니까?

나는 함부로 어린아이에게 상처 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당신도 당신의 여동생도, 처음부터 죽일 마음은 없었어요.

오히려 계속해서 내 발을 묶어두면 당신의 여동생은 위험에 노출됩니다.

발렌슈타인 경은 어린아이라 해도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 사실, 당신도 알지 않습니까?"

그 물음에 잇키는 거친 숨을 쉬면서 고개를 주억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다정한 사람이란 걸."

"그렇다면 어째서."

"……그걸, 시즈쿠가 바라지 않으니까요."

잇키는 당장에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의식을 의지의 힘으로 붙들어 매, 흐릿한 시야로 올곧게 에델바이스를 마주 보면서 답했다.

자신이 이곳에서 물러설 수 없는 이유를.

"당신을 보내면……, 시즈쿠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아리스는 구할 수 없어요!"

"──그 소년은 어둠의 세계에 속한 죄인입니다. 그 말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시즈쿠는 그걸 바라지 않아요. 바라지 않으니까, 이곳에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시즈쿠의 바람에 동참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죽는다 해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그 답을 듣고, 에델바이스는 그 단정한 얼굴을 찡그렸다.

"죽어도, 말입니까. 그렇게 값싼 목숨도 아니겠죠. 검을 맞댄 나는 압니다. 당신의 안에 있는 야망과 갈망이 얼마나 강하고 큰지를. 당신에게는 꿈이 있어요. 소중한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도, 이런 곳에서 목숨을 잃어도 상관없다는 겁니까?"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의 물음에, 잇키는 옅은 웃음을 되돌려주었다.

"……처음, 이에요."

"처음?"

"네. ……처음입니다. 시즈쿠가, 제게 부탁한 건."

잇키는 자신과 시즈쿠의 관계를 돌이켜 생각하면서 말을 자아냈다.

"줄곧 걱정만을 끼쳐왔어요. 오빠다운 일 같은 건 지금까지 한 번도 해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아이는, 이런 저를 오빠라고 따르며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런 여동생이 처음으로 자신의 바람을 위해서 저를 의지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시원치 않은 오빠에게, 자신의 바람을 맡겨주었다.

"목숨을 거는 데는, 너무나 충분한 이유입니다……!"

그러니 물러서지 않는다.

이곳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

줄곧 자신을 지지해준, 과분할 정도로 됨됨이가 좋은 여동생의 단 하나뿐인 바람.

그것에 목숨을 걸지 않고서야 뭐가 오빠냐!

"내 최약으로 당신의 최강을 막아내겠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이곳을 지나갈 수 없다.

잇키는 강한 의지와 결의를 품고서 에델바이스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그리고 그 결의가 어느 정도인지는 눈동자에 깃든 빛을 통해서 에델바이스에게도 전해졌다.

'이 얼마나 강한 의지인가. 이게 막 성인식을 치른 소년의 눈이란 말인가요.'

그녀는 숨을 삼켰다.

이 정도의 힘, 이 정도의 야심.

그것을 가지고도 여전히,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내거는 그 고결한 혼.

'오랜만이로군요. 이렇게나,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자를 만나기는.'

"소년. 이름을 가르쳐주겠습니까?"

"……쿠로가네 잇키."

"쿠로가네. ──지금까지의 무례를 사과하겠습니다. 젊은 사무라이여."

에델바이스는 그렇게 말하고서 뒤로 가볍게 도약했다.

잇키와의 간격을 크게 벌리고──

"당신은 비호받아야 하는 어린아이 따위가 아닙니다.

내가 한 사람의 기사로서, 전력으로 겨루는데 걸맞은 남자입니다.

그러니, ……이 세계 최강의 검으로 당신이라는 검사를 쓰러뜨리겠습니다."

오늘 밤 처음으로, '세계 최강의 검사'가 진심이 되었다.

그 순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검기'가 에델바이스의 몸에서 용솟음쳤다.

흡사 그것은 빛의 폭풍과 같았다.

모래는 휘감겨 올라가고, 나무들은 비명을 지르고, 주위의 유리창은 전부 산산 조각나 바람에 날아갔다.

한 사람의 인간.

인체의 크기로 보아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존재감을 흩뿌리면서.

'비익'의 에델바이스는, 양손에 든 검을 날개처럼 펼치고──

"각오하세요."

날았다.

비호해야 할 어린아이가 아니라 예의를 차리고 겨루어야 할 검사라 인정한 적을 노리고.

그 적의 목숨을, 확실히 끊기 위해서──!

"윽────!!!!"

두 사람이 뒤섞이려는 찰나에, 잇키는 확실히 느꼈다.

사신의 발소리.

자신의 미래를 끊어낼 몹시 싸늘한 검날의 기운을.

막지 않으면, 죽음──.

그렇지만 상황이 아까 전과는 달랐다.

그녀가 손길을 늦추고 한 걸음 물러선 장소에서 싸웠던 아까 전까지와는 다르다.

진심이 된 에델바이스의 전진 속도는 지금까지와 비교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칼솜씨를 뛰어넘어 에델바이스의 모습 그 자체가 섬광으로 변할 정도라서──.

교차는 소리도 없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뒤늦게 어둠에 흩어지는 피안개.

쿠로가네 잇키는 목소리를 낼 사이도 없이──이번에야말로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

한순간의 판단이 늦어졌더라면 목숨은 없었다.

시즈쿠는 그 사실에 숨을 삼켰다.

'아리스의 목소리가 없었더라면, 정말로 위험했어.'

팔 하나로는 끝나지 않을 참이었다.

"크으, 윽."

위팔의 중간 정도에서 베어져 날려간 자신의 왼손.

그 베인 상처에서 저릿한 격통이 뇌수로 기어 올라왔다.

그러나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눈앞에 있는 적은 지금 시즈쿠의 얼음 요새를 전부 베어내 왼팔까지 가지고 간 베기 공격을 다시 쏠 자세였다.

"'백야결계'!!"

"윽?!"

그에 대한 시즈쿠의 판단은 적절했다.

곧바로 주위의 수분을 기화시켜서 연막으로 발렌슈타인의 시야에서 자신의 모습을 지웠다.

그리고 발렌슈타인이 자신을 놓친 틈에, 베어져 떨어진 왼팔의 상처 자리를 순간 빙결시킴으로써 출혈을 멈추고──달렸다.

발렌슈타인을 우회해서 '백야결계'의 안개를 빠져나와, '혈풍참우'로 쓴 제압 총격의 탄흔이 유일하게 존재하지 않는 장소. 아리스인의 곁으로.

어떤 수비도 쉽사리 찢어발기는 베기 공격.

어떤 탄막 속에서도 유유하게 걷는 수비력.

더불어 '동토평원'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보행.

'저 남자의 능력이 내 예상대로라면, 한없이 최강에 가까운 능력이야.'

제대로 싸울 수 없었다.

그러니 시즈쿠는 아리스인을 데리고서 도망치는 길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촐랑출랑……, 깜찍하군."

그 말과 함께 안갯속에서 발렌슈타인이 지면에 검을 박아 세우자마자, 

"으읏……?!"

시즈쿠가 땅을 박차던 발을 미끄러뜨리며 넘어졌다.

곧바로 일어서려고 해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발을 미끄러뜨리며 넘어졌다.

'일어설 수 없어……?!'

자신이 펼친 '동토평원'의 아이스 번에 발을 잡힌 것인가. 아니다.

'동토평원'은 시즈쿠 자신의 능력이었다.

그 힘으로 시즈쿠의 움직임에 지장이 생길 리는 없었다.

시즈쿠의 마력 제어력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렇다면 어째서. ──답은 하나. 그곳에 다른 힘이 작용하기 있기 때문이었다.

"이건…………!"

이제 틀림없었다.

시즈쿠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예감이 진실임을 확신하고서, 안갯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보이는 발렌슈타인에게 물었다.

"내 지면에서, '마찰'을 없앤 거로군……!"

"이해력이 빠르군. 그 말대로다."

발렌슈타인은 시즈쿠에게 천천히 걸어가면서 답했다.

"타격, 참격, 총격. 이 세계에 존재하는 온갖 힘의 작용에는 마찰이 크게 관계되어 있다. 아무리 위력이 있는 탄환이라 해도 착탄점에 마찰이 전혀 생기지 않으면 그 관통력은 작용하지 않고 대상의 위를 미끄러질 뿐. 그리고 그 힘을 공격으로 전환하면 온갖 물질의 분자 사이를 저항 없이 빠져나갈 수 있는 무쌍의 검으로 변하지."

공격하면 명검.

수비하면 신의 방패.

모든 힘의 기점인 '마찰'을 조작하는 힘.

"──그것이야말로 이 '외팔의 검성' 발렌슈타인의 능력이다."

그리고 발렌슈타인은 마침내 시즈쿠의 앞에 서서,

"시, 시즈쿠! 도망쳐어어어어어어어!!!!"

비명을 지르는 아리스인의 눈앞에서,

은발 소녀의 몸을, 허리부터 둘로 갈랐다.

"아────."

뚝, 허리부터 분리된 상반신이 얼어붙은 지면에 떨어졌다.

그 몸은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리면서 스르륵 미끄러졌다.

그 절망적인 광경에, 

"시, 싫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아리스인의 비명이 높게 울렸다.

◆◇◆◇◆

"…………."

쿠로가네 잇키를 단칼에 쓰러뜨린 에델바이스.

그 승자의 표정은…… 놀라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녀가 돌이켜 생각하는 광경은 결판이 났던 한순간.

빛의 반짝임 같은 뒤엉킴 속에서 일어난 믿을수 없는 일.

그 한순간 속에서, 세계 최강의 검을 앞에 두고 쿠로가네 잇키는,

──놀랍게도 스스로 공격해왔다.

지금까지의, 말하자면 칼날을 물리는 듯한 봐주기와는 다르게 본심이 된 세계 최강을 향해서 털끝만큼도 주눅 들지 않고서.

본심이 되어 잇키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서 한걸음 깊게 내디뎠기 때문에 생긴 바늘 끝 정도의 틈에, 자신의 모든 기운을 쏟은 한칼을 찔러 넣어 온 것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에델바이스에게 이기기 위해서.

그 날카로움이란 에델바이스로서도 한순간 완전한 수세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정도라서, 결과적으로 ──그녀의 칼은 무뎌졌다.

숨통을 끊기 위한 내딛기를, 회피의 한 걸음으로 헛되이 만들었다.

그렇기에 에델바이스는 죽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쿠로가네 잇키의 혼을.

'게다가 그 마지막에 보인 검 솜씨는 틀림없이──………….'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에델바이스는 하늘을 우러르며 쓰러진 잇키의 옆에 서서, 그 목에 순백의 날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작게 미소 지었다.

"이곳에서 쓰러진 당신에게 손을 대면, 수치를 당하는 건 제 쪽이겠군요."

그때였다.

"쿠, 쿠로가네!"

목소리를 듣고 시선을 향하자 그곳에는──.

"……저 사람은 '월드 클락'."

"에델바이스, 읏, 네 녀언──!!"

담을 뛰어넘어 달려온 '월드 클락' 신구지 쿠로노는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잇키를 목격했다.

분노한 상태로 자신의 디바이스인 백과 흑의 쌍권총을 뽑아 들고, 에델바이스에게 총구를 겨눠,

"진정하세요."

"으읏──────!!"

에델바이스의 두 눈에 꿰뚫린 순간,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이 얼어붙었다.

심장이 터질 만큼의 공포 때문에.

지면으로 내려와 가까스로 총구만은 계속해서 겨누었지만, 역시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기를, 다름 아닌 쿠로노 자신의 본능이 거절한 것이었다.

이 손가락을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 자리에서 전투가 시작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전투에서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때문에.

"괴물년……."

"오랜만에 만났는데 말씀이 심하네요."

초조로 얼굴을 물들인 쿠로노를 향해서, 에델바이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안심하세요. 그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저, 정말이냐!"

"살려둘 생각은 없었지만요."

에델바이스는 살짝 쓴웃음을 띠우면서 그렇게 말하더니 소리도 없이 도약했다.

다시, 맨 처음 서 있던 아카츠키 학원 본교사의 옥상으로 이동했다.

"어, 어딜 가?!"

"돌아가는 겁니다. 원래 저는 이 일과 관련 없는 사람이니까요."

에델바이스는 대답하고 나서 다시금 자신과 대치했던 젊은 사무라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시작될 칠성검무제에서 그가 직면하게 될 커다란 시련을 떠올렸다.

그녀는 이 계획에 직접 관계된 자는 아니었지만, 그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었기에.

'아마도, 당신 자신도 어딘가에서 느끼고 있을 테죠.'

다가올 싸움의 인과.

쿠로가네 잇키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바람의 검제'도 '홍련의 황녀'도 아니었다.

'가까운 미래, 시노미야 아마네는 반드시 당신 앞을 막아 설 겁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가혹함을 동반하리라.

아마도 자신과 벌인 싸움보다도 더.

그렇게 생각했기에,

"'월드 클락'. 쿠로가네가 눈을 뜨면 전해주세요."

에델바이스는 '워스트원'에게 말을 남겼다.

"'다음에는 호적수로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요."

그리고 역시나 소리도 없이, '세계 최강의 검사'는 남색의 어둠으로 사라져 갔다.

"확실히, 전해주지."

쿠로노는 에델바이스가 떠나간 하늘에 그렇게 대꾸한 다음 쓰러진 잇키에게 달려갔다.

확실히 호되게 당하기는 했지만…… 치명상은 아니었다.

충분히 구할 수 있다.

그 사실에 쿠로노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더할 나위 없어. 그 에델바이스와 맞붙어 살아서 돌아온 것만으로도──.'

그리고 '시간'을 조종하는 자신의 능력으로 그 상처를 막으려고 한 그때였다.

"…………엇."

쿠로노는 시야의 끝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그곳은 아까 전까지 에델바이스가 서 있었던 장소.

하얀 콘크리트의 지면.

그곳에 남은, ──붉은 반점.

고작 몇 방울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틀림없는 핏자국이었다.

잇키의 것이 아니라, 수십 초 전까지 이곳에 서 있던 자의.

그것이 가리키는 사실은 즉──.

'상처를 입혔다는 뜻인가! 성인식을 치른 지 얼마 안 된 소년이, 세계의 정점에게!'

그랬다. 닿았던 것이었다.

고작 몇 방울. 아마도 상처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얕게──.

그렇지만 확실히, '워스트원'의 검은 세계 정점에게 증거를 남긴 것이었다.

"하, 하핫. ……몇 번이고, 너에게는 항상 놀라기만 하는 구나."

지독한 환희와 놀라움에, 쿠로노는 온몸이 흥분으로 떨렸다.

"……정말이지 장래가 두려운 녀석이야."

그 후, 쿠로노는 곧바로 잇키가 입은 상처의 치료를 시작했다.

한편으로 상황을 재확인했다.

쿠로노와 사이쿄.

두 사람이 하군에 다다랐을 때에는, 정신을 잃은 하군의 학생들 말고는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쿠로노의 능력으로 과거에 그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한 다음 스텔라 일행의 구출에는 사이쿄가, 잇키 일행의 구출에는 쿠로노가 각각 향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잇키밖에 없었다.

남은 시즈쿠와 아리스인은 어디에 있을까.

쿠로노는 신경을 가다듬어서 주위의 마력을 찾았다.

그리고──깨달았다.

"이건……!"

바로 아래.

──발밑 깊숙한 지하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

'…………얼레, 나…….'

온몸에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굉장한 충격에 날아갔던 시즈쿠의 의식이 천천히 깨어났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앞을 보았다.

'아리, 스…….'

시즈쿠는 하늘을 우러르고 있었다.

시야에는 거꾸로 뒤집힌 아리스의 얼굴.

눈물을 흘리면서 필사적인 형상으로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지만, 시즈쿠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득 시즈쿠는 위화감을 느끼고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의 배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그제야 그녀는 간신히 떠올렸다.

'아아, 나……베어졌었, 던가………….'

각성에 뒤따라온 것인지, 점점 온몸의 감각이 돌아왔다.

그 때문에 느껴지는 한층 더 진한 상실감.

'하반신. 그거랑 내장 대부분이 사라졌어.'

절단면에서 흘러내려 버린 것이리라.

틀림없는 치명상이었다.

시즈쿠는 이제 몇 초 후에 올 자기 죽음을 뚜렷하게 자각할 수 있었다.

'분하다아.'

또다. 또 이기지 못했다.

'뇌절'과 싸웠을 때와 마찬가지.

거리를 두고서 벌이는 마법 접전을 휘어잡지 못하고, 결국에는 검으로 베여서 패배한다.

'나는, 약하구나아………….'

자신에게는 어느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자를 상대로 거리를 두고서 완전히 봉쇄할 힘이 없었다.

그것을 지겨울 정도로 뼈저리게 깨달아서, 시즈쿠는 답답하게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오라버니는 슬퍼하실까…….'

슬퍼하리라.

오빠뿐만이 아니라, 스텔라나 아리스인, 다른 모두도──.

지금 자신의 주변에는 다정한 사람이 많으니까.

이렇게 성격 나쁘고 귀염성 없는 자신의 죽음에도 애도 해주리라.

생생하게 그 정경이 눈에 떠올랐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건 싫다고.

'──그렇다면, 조금만 더 힘내보기로 할까.'

'뇌절'에게 패하고 나서 줄곧 생각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반드시 어딘가에서 검의 간격으로 승부가 넘어가고 만다.

그리고 그 간격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작고 무력한 몸으로는 근거리전을 제압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그리고 단 하나, 그 약점을 메울 방법이 떠올랐다.

너무나도 뜬금없고, 또한 위험도가 큰 행위이기에 지금까지 시험해볼 수도 없었지만──.

어차피 내버려두면 몇 초 후에는 숨을 거둘 몸이었다.

미련은 남기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자──.'

존경하는 오빠가 항상 그랬듯이.

자신의 힘을 믿도록 하자.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시즈쿠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

"시즈쿠우……. 시즈쿠우…………."

아리스인은 베어져 날아간 시즈쿠의 몸을 안아 올렸다.

상처 자리에서는 콸콸 소리를 내면서 피와 내장이 흘러 내려서 점점 사라져 갔다.

그녀의 무게가. 그녀의 생명이.

그 상실의 감각에 아리스인의 시야는 새까매졌다.

다시 한 번 지키겠다고, 그렇게 마음먹은 소중한 여동생을 눈앞에서 잃은 상실감에 모든 감정이 빈틈없이 덧칠해졌다.

무력한 자기 자신에 대한 울분도.

시즈쿠의 목숨을 빼앗은 남자에 대한 분노도.

아무것도, 더 이상 느끼지 않았다.

불러낼 기력도 없었다.

"이것이, 네가 외면한 현실이다."

뒤에서 발렌슈타인이 말을 걸었다.

"힘이야말로 유일한 현실. 그것을 가르치고 강자 쪽에 끌어들여 주었는데. 이래도 모르다니. 정말이지 구제할 길 없는 녀석이야."

기가 막힌 듯한 목소리.

이미 사체 이외의 무엇도 아닌 시즈쿠를, 그렇다 해도 끌어안은 자신의 제자에게 실망한 것이리라.

"표적에게 정을 주는 어새신 따위는 쓸모가 없다. 여기서 죽어라."

바람을 가리는 소리가 등 너머로 아리스인의 귀를 때렸다.

발렌슈타인이 검을 겨누는 소리이리라.

피하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편하게 만들어달라는 생각마저 했다.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점점 손안에서 시즈쿠의 무게가 사라져 갔다.

그것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기에, 그 상실의 감각을 이제 이 이상 느끼고 싶지 않았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가벼워져 가는 몸.

두근두근, 두근두근, 안아 올리는 양손이 무게마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어……?'

그제야 아리스인은 간신히 이 불가사의를 깨달았다.

무게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가볍다?

그것은 아무리 그래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피나 내장이 아무리 흘러내려도, 인체에는 살이나 뼈가 있기에.

그 위화감은 새까매진 아리스인의 시야에 빛을 깃들게 했다.

내려다보는 자신의 양손.

그곳에 안고 있던 시즈쿠의 망해가──,

옷만을 남기고 소실한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괜찮아, 아리스."

시즈쿠의 목소리가 지하 훈련장에 낭랑하게 울렸다.

"……어!"

"뭐, 뭐냐?!"

경악하는 아리스인과 발렌슈타인이 시즈쿠의 모습을 찾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렇지만 시즈쿠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니, 있기는커녕 아까 전 흩어졌을 터인 장기나 혈흔마저 사라졌다.

"뭐,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

너무나도 이해의 범주를 뛰어넘은 사태에, 발렌슈타인 이 낭패 어린 소리를 질렀다.

그런 발렌슈타인과 아리스인의 사이에──그것은 나타났다.

연기가 모여 형상을 이루듯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오체가 멀쩡한 쿠로가네 시즈쿠가.

그리고 입을 열었다.

"괜찮아. ──나는, 이길 테니까."

"시즈쿠, 살아…………있어?"

마치 유령을 보는 눈으로 시즈쿠를 바라보는 아리스인.

그는 아직 상황을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한편에서 발렌슈타인은──

"설마…………!"

역전의 감을 통해 이 사태를 가능케 하는 현상 중 하나에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그 짐작을 확인하기 위해서, 눈앞에 있는 시즈쿠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시즈쿠는 피하려고도 하지 않고서, 그 베기 공격을 몸으로 받았다.

벤다──발렌슈타인의 디바이스는 다시 시즈쿠의 몸을 둘로 갈랐다.

그러나 이번에는 피보라조차 일지 않았다.

그저 안개를 베어낸 것처럼 감각 없이, 시즈쿠의 형체가 나뉘어져 금세 원래대로 돌아올 뿐──.

그 모습을 보고서 발렌슈타인은 확신했다.

"네, 네 녀석……! 자신의 몸을 기체화시킨 거냐아아!!!!"

그 말에 흔들리는 시즈쿠의 상은 입매를 살짝 일그러뜨리며,

"쿡쿡……. 과연, 겉멋으로 나이를 먹은 게 아니네, 아저씨."

시즈쿠는 코웃음을 치는 듯한 가학적인 웃음으로 긍정했다.

그랬다. 그것이 시즈쿠가 살아있는 원리의 정체였다.

"나는 말이지, 선발전에서 '뇌절'에게 패하고 나서, 줄곧 생각했어."

──자신은 재주가 좋기는 하지만 결정력이 부족하다고.

어찌할 도리도 없이 떠밀려서 치명상을 입고 만다.

──어찌면 좋을까 하고.

"궁리하고, 궁리해서, ……그리고 문득 어떤 순간, 생각이 미쳤어. 아아. 그렇지. 육체 같은 게 있으니까 대미지가 발생하는 거라고."

그렇다면 그 전제를 없애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이 기술이었다.

물의 마술이 지닌 한 측면, 인체에 작용하는 치유술을 응용해 자신의 육체를 기체나 먼지처럼 베기 공격이나 타격의 간섭을 받지 않는 수준까지 분해해서 임의로 재구축 하는 노블 아츠──.

"'청색윤회'──문득 떠올린 것치고는 제법 굉장한 기술이지?"

살짝 자랑스럽기조차 한 표정으로 말하는 시즈쿠.

그런 시즈쿠의 모습을 보고, 발렌슈타인은 더욱더 안색이 파래졌다.

"떠올, 렸……, 다고! 너는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이해 하는 거냐?!"

발렌슈타인이 동요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째서냐 하면 '청색윤회'란 일시적으로라고는 해도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기술이기에.

"일류의 마력 제어력으로 재구축의 식을 짰다고 해도, 그게 사후에 발동하지 않으면 거기까지……! 아니, 발동했다고 쳐도, 수십 조나 되는 세포로 이루어지는 인체의 재구성을 아주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대체 어떤 장애가 발생할지 알 바가 아니야……! 그런 힘을 자신의 몸에 쓸 줄이야……! 제정신이냐, 네 녀석……?!"

확실히 물리 공격 무효화는 커다란 장점이다.

그렇지만 그러기에 필요한 기술이 너무 높다.

짊어질 위험이 너무 크다.

하지만 그렇게 낭패스러워하는 발렌슈타인에게 시즈쿠는 한마디,

"충분히 제정신이야. 나라면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믿었는걸."

아무렇지도 않은 양 그렇게 말했다.

"~~~윽!"

그 말을 듣고 발렌슈타인은 확신했다.

사전에 하군의 정보는 얻었지만, 주의해야 할 상대는 스텔라 버밀리온 한 사람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그 판단은 오산이었다.

눈앞에 있는 '로렐라이' 또한, 스텔라와 방향성은 다르지만 한계를 뛰어넘은 천재라고.

'실수했다……. 그렇지만 아직 진 것은──.'

그렇게 자세를 다잡으려고 하는 발렌슈타인.

그러나 그런 그에게,

"어머? 혹시나 아직 자신이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쿡쿡, 시즈쿠는 깔보는 듯이 웃음을 자아냈다.

"무슨 소리를 하는, ────으윽?!"

그 순간, '청색윤회'의 충격에서 회복한 발렌슈타인은 자신에게 일어난 이변을 깨달았다.

"크헉, 어, 오, 오오……, ~~~~으읍?!"

토해낸 공기가 돌아오지 않았다.

폐가 공기를 빨아들이지 않았다.

마치, 물에 빠진 것처럼──.

그랬다, 그는 그야말로 물에 빠져 있었던 것이었다.

"폐를 물풍선으로 만들면 인간은 이렇게 되는구나. 역시나 이런 기술, 같은 학교 사람에게 쓸 수는 없으니까 처음 봤어."

'청색윤회'를 사용하는 상태의 시즈쿠는, 말하자면 이곳 일대의 대기와 동일화되어 있다.

따라서 그것을 제어 아래에 둘 수 있었다.

──발렌슈타인이 호흡하는 공기 또한 마찬가지.

발렌슈타인의 '마찰'을 조종하는 능력은 확실히 외부에서 오는 충격이나 베기 공격에 대해서 비길 데 없는 강함을 자랑한다.

허나 그렇지만──.

"몸속이라면, 마찰이고 뭐고 없잖아?"

"어, 오, 꼬르륵……!"

보이지 않는 바다에 빠진 발렌슈타인은 마침내 설 수도 없어서 지면에 쓰러졌고, 땅 위로 건져 올린 물고기처럼 산소를 찾아서 눈을 부릅뜨고 입을 여닫았다.

"응? 뭐야? 뭐라고 하는 거야?"

"살, 려…………! 살려……꼬륵!"

"아아, 살려줬으면 하는 거구나."

그건 사실상의 항복 선언이었다.

발렌슈타인은 이 이상의 전투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시즈쿠에게 백기를 들었고,

"살려주지 않을 거야."

시즈쿠는 무자비한 웃음을 띠우며 손가락을 딱 울렸다.

그 순간, 발렌슈타인의 온몸에서 피보라가 뿜어져 나왔다.

"으윽~~~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체내로부터 살을 가르며, 몇십 개나 되는 얼음의 창끝이 발렌슈타인의 온몸에서 튀어나왔다.

그 일격은 철저하게 '외팔의 검성'의 의식을 끊어냈다.

발렌슈타인은 입에서 피가 섞인 물을 흘리면서 기절했다.

그리고 시즈쿠는 그런 적의 모습을 쓰레기를 보는 양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고서,

"나는 오라버니처럼 다정하지도 않거니와 스텔라 양처럼 무르지도 않으니까, 자신에게 칼을 겨눠온 적은 쳐부수어야 성에 차. ──상대가 안 좋았네."

그녀는 너덜너덜해진 발렌슈타인의 외투를 벗겨냈다.

그 옷으로 자신의 살결을 감추고 패자에게서 시선을 끊었다.

이제 흥미가 없다는 양.

이리하여 '외팔의 검성'과 '로렐라이'의 싸움은 끝을 맺었다.

◆◇◆◇◆

"해 보면 어떻게든 되는 거구나. ……나도 아직 쓸 만해."

자신의 육체를 재구성하고 그 감촉을 확인하려는 듯이 손바닥을 쥐었다 펴는 시즈쿠.

감촉에 위화감은 없었다.

재구축의 마법은 제대로 기능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전혀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머리를 너무 써서 기분 나빠."

너무나도 지나치게 고도한 마술처리에, 뇌가 비명을 질렀다.

마치 두개골 속을 헤집어대는 것 같은 고통에 시즈쿠는 자신의 미숙함을 자각했다.

한동안 남발하는 것은 삼가는 편이 좋을 듯하다고.

그렇게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는 시즈쿠에게──아리스인은 놀라움에 물든 표정으로 물었다.

"시즈쿠……, 정말로, 살아있어?"

"그만둬. 사람을 괴물인 양."

울컥하고 언짢은 표정을 짓는 시즈쿠.

그렇지만 아리스인이 묻고 싶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정도로 시즈쿠가 행한 일은 말도 안 되는 신기였기 때문에.

"그건 그렇고, '청색윤회'는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는데, 쓸 때마다 옷이 벗겨지는 건 고민거리네. 이런 경박한 모습, 오라버니께는 보일 수 없어."

하지만 어디까지나 평소대로인 시즈쿠의 모습을 보고 있는 사이에, 안도가 놀라움을 넘어섰다.

"……하핫. 그래. 정말로, 살아있구나. 다행이야."

아리스인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서 눈앞의 현실에 눈물을 흘리며 환희했다.

"정말로, 다행이야…………."

그러나 그런 아리스인에게,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시즈쿠는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이면서 다가와──주저 앉아서 높이가 낮아진 그의 머리를 끌어 안았다.

다정하게, 측은해 하는 양.

"나도…… 이미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시, 시즈쿠……."

"정말이지. 너무, 걱정시키지 마……. 언니."

시즈쿠는 살짝 목소리를 떨며 그의 무사함을 기뻐했다.

그 떨리는 목소리는,

"…………윽."

아리스인의 깊은 곳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도 머리를 스쳤던 감정이 다시 열기를 띠었다.

문득 떠오른 광경은 피투성이가 된 자신을 보는 여동생들의 겁먹은 표정.

그 모습을 보고서 자신은 이제 이곳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살인자인 자신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분명 시즈쿠 역시 그런 눈으로 자신을 보리라고, 제멋대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다름 아닌 시즈쿠 본인이, 자신이 곁에 있는 것을 바라지 않으리라고.

그렇지만, 그래도…….

만약, 아직, 이런 자신을 시즈쿠가 언니라고 불러준다면…….

"나는……아직, 시즈쿠의 곁에 있어도, 괜찮을까……."

"내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아리스를 붙들어 맬 이유가 되지 않아?"

시즈쿠에게 끌어안긴 머리를 내저었다.

그렇지 않다.

이 이상 없을 정도의 이유다.

"고마워……, 시즈쿠…………."

"이걸로 비겼어."

쿡쿡, 즐거운 듯이 웃으면서 시즈쿠가 중얼거린 말.

아리스인은 그 말의 의미를 금세 이해했다.

──그러고 보니, 이전 '뇌절'에게 패한 시즈쿠를 끌어 안아준 적이 있었던가, 하고.

"…………정말 그러네."

그런 사소한 공유가 묘하게 기뻐서, 아리스인도 미소를 되돌려주며──마음속으로 맹세했다.

두 번 다시, 그녀를 배신하지 않겠다.

이 아이가 자신을 바라는 한, 이곳에 있자.

그리고 그녀와 그녀가 사랑하는 자를 지키자.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도 사랑스러운 존재이고──

자신이 되고 싶다고 계속해서 바라온,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기에.

◆◇◆◇◆

쿠로노가 느낀 감각은 경험한 적이 없을 만큼 이상한 마력의 움직임이었다.

쿠로가네 시즈쿠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마력이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하게, 그러나 광범위하게 퍼져있다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다시 사람의 크기로 한데 모이는 상식을 벗어난 움직임.

그 움직임이 어떤 이유로 일어난 것인가.

시즈쿠의 능력을 아는 쿠로노는 금세 알아챘다.

"자기 몸을 한번 분해해서 재구성한 건가."

그것은 유사 소생술이라고 해도 좋을 신기였다.

"……정말이지. 그 오빠에 그 동생인가. 터무니없는 남매야."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리고, 쿠로노는 더욱더 정밀하게 지하의 기색을 살폈다.

마력의 반응으로 보는 한, 적은 이미 침묵하고 있는 모양이다.

주변의 경이는 사라졌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그 사실에 한순간만 안도하고──쿠로노는 서쪽 하늘을 보았다.

'이쪽은 어떻게든 되었는데, 그쪽은 어떠냐. 네네──.'

◆◇◆◇◆

"'흑도·야타가라스'──."

"'쿠사나기'──!"

밤하늘보다도 검은 번개를 한데 묶은 듯한 마력의 날과 용권의 검이 부딪쳐, 두 사람의 기사는 서로 후방으로 튕겨졌다.

산길의 자갈밭에 발을 미끄러뜨리면서, '바람의 검제' 쿠로가네 오마는 혀를 찼다.

"과연 세 발 째나 되면 위력이 떨어지는군."

한편, 오마와는 정반대 쪽으로 튕겨져 허공을 춤춘 자그마한 몸집의 기모노 차림 여성, '야차공주' 사이쿄 네네는 재주 좋게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켜 인적 없는 산속으로 몰렸던 하구레 자매의 앞에 내려섰다.

"선생님!"

"아무래도 아슬아슬하게 때에 맞은 모양이네."

"훌쩍, 살았어요……."

"아아. 잘 힘냈어. 이제 괜찮아."

사이쿄는 두 사람과 기절한 스텔라의 무사를 확인하고서 한순간 안도를 하고는,

"그으럼………… 어디."

곧바로 눈앞의 적을 향해 돌아섰다.

아카츠키 학원.

──그중에서도 유일하게 얼굴을 아는 사람에게, 사이쿄는 말을 걸었다.

"리틀 때 만난 이래 처음 보네에. 오마. 제법 컸구나."

"그쪽은 그다지 변함없군."

"쓸데없는 참견이야. ──그래서, 말이야. 당장 가르쳐주었으면 좋겠는데, 이건 무슨 취지의 바보 소동이지? 이야기이, 들려주겠지?"

사이쿄는 자신의 디바이스인 철 부채를 펼치고 입매를 가리며 오마에게 물었다.

그렇지만 말을 되돌린 이는 오마의 뒤에 서 있던 아마네였다.

그는 순진하다는 말조차 형용할 수 있는 독특한 웃음으로 사이쿄에게 질문을 되받아쳤다.

"말하는 대신 거기 있는 세 사람을 이쪽으로 넘겨준다는 교섭은, 가능할까?"

순간,

"하핫, 교섭 말이지이. ──이봐, 꼬맹이."

빠직, 하고 갈라지는 소리를 내며 공기가 얼어붙어──

"꼬마가 어른 흉내를 내지 말라고."

'중량'이 아카츠키 전원의 몸을 덮쳤다.

"우아……앗!"

아니, 아카츠키만이 아니었다.

사이쿄를 중심으로 한 반경 20미터의 공간이 눈에 보이지 않는 중량에 의해 지반과 함께 통째로 함몰했다.

그것은 '중력'을 조종하는 사이쿄의 노블 아츠 '지박진'이었다.

난데없이 통상의 열 배 중력으로 내리쳐진 아카츠키는 모두 지면에 박히듯이 쓰러졌다.

단 한 사람, 그 중력 아래에서도 눈썹 하나 꿈쩍이지 않고서 똑바로 사이쿄에게 위압을 보내는 오마 이외에는.

오마는 천천히 '류즈메'의 칼끝을 사이쿄에게 겨누었고, 사이쿄 또한 그에 응하듯이 양손에 든 철 부채에 중력이라는 순수하고 막대한 에너지에 의해 구축되는 날, '흑도·야타가라스'를 구성해──.

두 사람의 투지는 거칠어져서 충돌은 불가피하다고──그렇게 여겨진 찰나였다.

"아아, 스톱, 스톱! 잠깐 기다리세요!"

두 사람 사이에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한 '어릿광대' 히라가 레이센이 끼어들었다.

그는 아리스인을 발렌슈타인에게 넘겨준 다음 곧바로 이쪽으로 되돌아와 간신히 동료들의 곁을 따라잡아서,

"여러분. 이 상황에서는 철수하십시오. 그 세 사람은 이제 됐습니다."

아카츠키 일동에게 철수를 재촉했다.

"──괜찮은 건가."

"예. 뭐, 이미 충분하게 임팩트는 주었을 거고, 무엇보다 상대가 '야차공주'가 되면 이쪽의 위험이 너무 큽니다. '야차공주'가 진심으로 날된다면, 오마 군은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멤버가 상처 없이 끝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그리고 칠성검무제 전에 우리가 '지는' 걸 스폰서는 바라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부디 철수하시죠."

"……흥."

그 말에 오마는 시시하다는 듯이 날을 거두었다.

"'야차공주' 쪽 역시, 그래도 상관없겠죠?"

질문을 받은 사이쿄는,

"……."

잠시 침묵한 뒤, 양손에 든 철 부채를 헐렁헐렁한 기모노 소매로 숨겼다.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싸우면 자신은 둘째 치고 자신의 뒤에 있는 학생들이 무사히 끝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학생을 지키는 것이 선생의 의무.

그렇다면 이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는 충분했다.

"──내가 때마침 선생이었다는 걸 감사해라. 빌어먹을 꼬마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하여 하군 학원 습격으로부터 시작된 소동, '전야제' 는 폐막을 맞이했다.

히라가 레이센을 필두로 하는 아카츠키 일동은 더 이상 하구레 일행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산길에는 그저 산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가 울릴 뿐.

"──스폰서, 말이지이."

그런 와중에 사이쿄는 히라가의 말을 곱씹고서, 씁쓸한 표정으로 하늘을 우러렀다.

"이건 상당히 일이 성가셔질 것 같아. 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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