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전국의 강호들
오사카 중심부에서 떨어진 항만의 매립지.
그곳에 인적 없는 빌딩 촌이 존재한다.
수십 년 전의 도시개발 때 건물만 세울 만큼 세웠지만, 정작 중요한 기업 유치가 잘되지 않아서 입주를 들어오지 않은 채 새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방치된 실책의 흔적이었다.
그렇지만 평소에는 사람 하나 없는 그 회색의 고스트 타운은 지금 활기로 흘러넘쳤다.
늘어선 노점.
일본 열도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의 하늘까지 닿을 술렁거림.
어째서 그렇게까지 사람이 모여 있는가.
그 이유는 단 하나.
이틀 후. ──이 고스트 타운에 존재하는 '항만 돔'에서 1년에 한 번 찾아오는 학생 기사의 제전, 칠성검무제가 개최되기 때문이었다.
칠성검무제는 본디 프로 마도 기사의 격투 흥행 KOK(King Of Knight)보다도 국민의 주목을 모으는 일대 이벤트였다.
예년에도 티켓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는 숙박 시설의 경쟁은 무척이나 높다.
그렇지만 올해는 그 주목도에 한층 더 박차를 가해서, 하군 학원 습격의 발단이 된 국립 아카츠키 학원에 관한 소동이 얽혀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 경쟁률이 뛰어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국내외 다양한 사람들이 앞다투어 현지로 달려갔고, 회장 주변에는 개시 이틀 전부터 이상한 열기로 휩싸였다.
그리고 일찍 현지에 들어가는 이는 관객뿐만은 아니었다.
칠성검무제에 출전하는 선수들 대다수 역시 개회식보다도 빨리 현지에 모여서 제공된 선수 숙소에서 쉬고 있었다.
하군 학원 대표단 단장으로서 교기를 맡은 '워스트원(낙제 기사)' 쿠로가네 잇키 또한 그중 한 사람이었다.
"……으음. 어쩐지 굉장히 위화감이 드네."
산뜻한 일상용품이 늘어선 품위 있는 호텔의 한 방.
앤티크 풍의 전신 거울 앞에서, 잇키는 그곳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차림은 평소 입는 교복이 아니었다.
어두운 감색 연미복에 같은 색깔의 나비넥타이.
신발도 윤기 있는 가죽 구두로 갖추어 신은, 위에서 아래까지 점잔빼는 복장이었다.
물론 그 모습은 잇키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가 이런 차림을 한 데에는 사정이 있었다.
개회식을 이틀 후로 앞둔 오늘.
연맹의 칠성검무제 운영위원회가 앞서 현지에 들어온 선수들을 초대해서 입식 파티를 연다.
지금 잇키는 그 행사에 출석하기 위해 입고 갈 정장을 고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난항을 겪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평상복으로 갈 수는 없겠지만.'
그렇지만 아무래도 예복이라는 것에는 익숙지 않기 때문인지, 운영위원회에서 빌려주는 예복 중 어느 것을 입어도 어쩐지 확 와 닿지 않았다.
우스울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게 잇키는 생각하고 말았다.
'이 뾰족한 머리카락이 문제인 걸까.'
그렇게 생각해서 빗으로 항상 곤두선 머리카락을 7대3으로 정돈해 보았다.
그러고 나서 다시 전신 거울을 들여다보자,
"아, 아까 전보다는 그나마 어울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도 한순간.
빗으로 정돈한 머리카락은 '네가 하는 말 따위를 들을까 보냐. 나는 나의 길을 가겠다'라는 양 '삐쭉', '삐쭉' 기세 좋게 일어나서 다시 원래의 머리카락 모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고집 센 놈."
대체 누구를 닮았는지.
그렇게 원망스럽게 중얼거리면서, 잇키는 연미복을 벗었다.
'어쨌거나 이건 안 되겠어.'
최상급 예복이라서 어쨌거나 이 옷을 입고 가면 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나 어울리지 않으면 예절로 따져서 부끄럽지 않더라도 자신의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이모저모 고민한 끝에,
"역시 이 정도가 제일 괜찮을까……."
그렇게 잇키는 대여 의상 중 하나인 연회색 스리피스를 집었다.
무난하기는 했지만 개성을 연출할만한 센스도 기량도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파티가 시작될 때까지 남은 시간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잇키는 재빠르게 스리피스 양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오라버니, 들어가도 될까요?"
방문을 두드리고서, 밖에서 그의 여동생이자 같은 칠성검무제 대표 선수인 쿠로가네 시즈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준비하는데 너무나도 시간이 걸리니 걱정되어서 보러 온 것이리라.
여성인 시즈쿠보다도 준비가 늦을 줄이야 한심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잇키는 "들어가도 되나" 하는 시즈쿠의 물음에 전신 거울로 자신의 현재 차림을 확인했다.
하얀 와이셔츠의 단추는 아직 전부 잠그지 않았고 가슴통이나 복근이 훤히 보였지만, 아래쪽은 제대로 바지를 입었다.
상대가 이성 친구라면 조금 망설일 차림이었지만, 피가 이어진 여동생인 시즈쿠라면 문제없으리라.
잇키는 그렇게 판단하고서,
"그래, 미안. 이제 곧 준비되니까 들어와도 돼."
라고 문밖에 있는 시즈쿠에게 대꾸했다.
그 말과 동시에 문이 열리고,
"실례하겠습니다."
은색 머리카락의 소녀 시즈쿠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렇지만,
"오라버니, 이쪽의 준비는 되었어──요……."
시즈쿠는 잇키의 모습을 보자마자 말문이 도중에 막혀서 방 입구에서 못 박혀 섰다.
마치 무언가에 놀란 양, 비췻빛의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대체 무엇에 놀란 것일까 하고 잇키는 한순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금세 그의 흥미는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다른 곳이란 시즈쿠의 복장이었다.
'우와……, 굉장해.'
시즈쿠 역시 대표 선수로서 파티에 출석해야 해서 빌려 온 드레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빛에 반사되지 않는 고급스러움이 감도는 검은 천에, 정교한 레이스 천으로 된 프릴이 꽃잎처럼 곁들어진 뷔스티에.
목둘레는 양어깨가 전부 노출될 정도로 크게 벌어져, 눈처럼 하얀 살결과 의상의 대비가 눈부셨다.
자칫하면 시즈쿠의 어려 보이는 용모에는 너무 어른스러운 의상이었지만, 품위 있는 화장이 평소보다도 몇 배나 그녀를 어른스럽게 만들어 일체의 위화감을 지웠다.
아마도…… 라고 해야 할지 틀림없이, 그녀의 친구이자 룸메이트인 아리스인 나기가 꾸며준 것이리라.
그야말로 '숙녀'라 부르기에 걸맞은 여동생의 아름다운 치장을, 잇키는 솔직하게 칭찬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굉장히 예뻐, 시즈쿠."
"하우."
그 순간 시즈쿠의 안색이 새빨개지더니, '풋'하고 작은 콧구멍에서 선혈을 뿜으며 뒤로 쓰러졌다.
"시, 시즈쿠?!"
"꺄아! 큰일이야!"
뒤쪽으로 쓰러진 시즈쿠의 몸을, 아마도 방 밖에 있었을 아리스인 나기가 뛰어들어서 오른손으로 황급히 지탱하면서 반대쪽 손으로 손수건을 집은 다음 선혈이 드레스에 떨어지지 않게끔 곧바로 시즈쿠의 코를 눌렀다.
"왜, 왜 그래, 시즈쿠! 괜찮아?!"
난데없는 여동생의 이상에 잇키가 놀라서 달려가려고 했지만,
"아, 아아, 앗."
다가갈수록 시즈쿠는 부들부들 몸을 떨며 그 안색과 손수건을 더욱더 붉게 만들었다.
──뭐, 무리도 아닌 반응이었다.
쿠로가네 시즈쿠는 친오빠 쿠로가네 잇키를 한 사람의 여자로서 사랑한다.
그런 사랑하고 사랑해서 어쩔 줄 모르는 남성이 가슴께를 드러내고 흐트러진 차림으로 자신을 "예뻐"라고 말해왔으니 솔직히 참을 수 없었다.
착의 에로티시즘에 남녀 차이는 없다.
그렇다 해도 잇키 본인은 그런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서 다가오려고 했지만,
"잠깐 잇키, 이 이상 다가오지 마! 우선 가슴께를 여미도록 해!"
잇키와는 다르게 금세 시즈쿠의 마음을 눈치챈 아리스인이 잇키에게 제지를 걸었다.
"어? 어어?!"
"빨리! 드레스가 피투성이가 돼버릴 거야!"
"아, 응, 알겠어!"
잇키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깨닫지 못했지만, 아리스인에게 무척이나 험악한 태도로 내쳐져서 황급히 자신이 입은 옷을 정돈했다.
그 덕분에 시즈쿠는 간신히 차분함을 되찾았다.
"하아, 하아…….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그렇지만 오라버니……, 조금 전에는 너무나 섹시했어요……."
"뭐,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안. 뭘 입으면 될지 좀처럼 정하지를 못해서."
"마음에 안 드시나요? 지금 입은 양복 차림도 무척이나 멋진 것 같은데요."
"그, 그럴까. 나는 어쩐지 무리하게 어른을 흉내 내는 어린애 같아서 진정이 안 되는데."
"그렇지 않아. 잇키는 몸을 잘 단련해서 어깨 폭이 떡 벌어졌으니까 그런 옷도 잘 어울려."
그렇게 시즈쿠의 뒤에서 아리스인도 잇키의 옷맵시를 칭찬했다.
그렇지만 키가 크고 자세도 좋은 아리스인의 양복 차림은 보란 듯이 잘 어울려서 마치 호스트 같았다.
아니 진짜 호스트 따위는 만난 적도 없었지만, 이미지상으로.
그래서 잇키는 그런 아리스인에게 '어울린다'라는 말을 들어도 솔직히 기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야 할지 자신보다 키가 큰 친구는 정말로 한 살 연하일까.
경력을 속였다고 하니 의외로 잇키보다도 연상일지도 모른다.
내심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잇키는 아리스인의 복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리스인도 파티에 참가하는 거야?"
"설마."
그 물음에 아리스인은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부정의 뜻을 표시했다.
"나는 이제 대표 선수가 아닌걸. 다만 지금부터 카가밍이랑 함께 민간 보도인들의 파티에 출석하게 되었어."
"이제 완전히 쿠사카베 양의 조수구나."
"그만한 빚이 있는걸. 어쩔 수 없어."
시즈쿠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하는 아리스인.
그가 말하는 빚이란 얼마 전에 아카츠키 학원이 일으킨 하군 습격 사건 때 있었던 일이었다.
아리스인 나기는 본디 아카츠키 학원의 첩자라서 적 쪽의 인간이었다.
특히 카가미에게는 '환상 형태'라고는 해도 직접 손을 댄 과거가 있었다.
그 보상으로 현재 아리스인은 학원 신문부의 기자인 카가미의 오른팔로써 혹사당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것은 카가미 나름대로의 다정함이라고, 잇키는 확신하고 있었다.
아카츠키 학원이 일으킨 하군 습격은 철저하게 '환상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 이유는 그들의 배후에 존재한 이가 이 나라의 총리대신 츠키카게 바쿠가였고, 그에게 국민을 상처입힐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었지만──그러나 몸은 상처 입지 않아도 마음에 남은 공포라는 상처는 치유되기 어렵다.
실제로 같은 하군 대표로 나왔을 하구레 자매는 마음이 꺾여서 기권했고, 또 '바람의 검제'의 일격을 받은 토도 토카와 미소기 우타카타 두 사람은 혼수상태에서 아직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극도의 피로에 따른 일시적인 혼수라서 목숨에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역시 당사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아리스인은 그 내력 때문에 자신을 과도하게 비하하는 성격도 한몫해서 무척이나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아리스인을 죄책감에 몰아넣지 않기 위해서, 카가미는 보상이라는 명목을 굳이 부여한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리스인 역시 남의 마음에 기민하고 밝았다.
그는 그런 카가미의 배려를 눈치했으리라.
눈치채고서 굳이 깨닫지 못한 척을 하며 카가미에게 계속해서 보상하는 이유는,
'……카가미 양이 아리스에게 있어서, 솔직하게 어리광부릴 수 있는 상대이기 때문이겠지.'
잇키는 생각했다.
조금씩, 또다시 이전 같은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멋진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한 그때였다.
데엥, 데엥.
방에 설치된 벽시계가 무겁게 울려 퍼지는 소리를 냈다.
오후 여섯 시──파티 시간을 알리는 소리였다.
"아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그럼 갈까, 시즈쿠."
"네, 오라버니."
"아, 잠깐 기다려. 두 사람 모두."
아리스인이 시즈쿠와 나란히 회장으로 가려고 한 잇키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대체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하며 잇키가 발걸음을 멈춘 순간, 아리스인 가지고 있던 전자 학생 수첩의 카메라로 두 사람의 모습을 찍었다.
"모처럼 멋을 부렸는걸. 기념으로 한장 찍자."
그렇게 말하면서 아리스인은 재빠르게 수첩을 조작한 다음, 시즈쿠와 잇키의 투 샷을 두 사람의 수첩으로 전송했다.
그 사진을 본 시즈쿠는 흰 뺨에 홍조를 띠우며 기뻐했다.
"와아……, 고마워, 아리스, 평생 보물로 간직할게!"
'……평생이라.'
한편, 잇키의 텐션은 낮았다.
역시 아무래도 자신의 정장 차림은 위화감이 있었다.
너무 잘 어울리는 시즈쿠와 나란히 서니 더욱더 우스꽝스러웠다.
이런 것도 좀 더 어른이 되면 좋은 기념이 될까.
그런 복잡한 마음을 품으면서도,
『아카츠키는 파티에 나오지는 않으리라 생각하지만, 일단 조심해.』
"고맙게 받을게."
사진과 함께 보내진 메시지에 대한 감사 인사를 말하고 회장으로 향해 걷기 시작했다.
◆◇◆◇◆
파티는 선수 숙소인 호텔의 최상층에 있는 연회장에서 열린다.
계단으로 걸어갈 만한 거리는 아니라서, 잇키와 시즈쿠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그 도중에 시즈쿠는 시종 기분 좋은 표정으로 아까 찍은 사진을 바라보았다.
"후후."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네. 벌써 대기화면으로 설정해버렸어요."
"설정해버렸구나……."
잇키는 쓴웃음을 띠우며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다음에도 이런 파티에 초대될 기회가 생긴다면 교복으로 출석하겠다고.
앞으로 이렇게 무리하게 멋부리는 옷을 두 번 다시 입지 않겠다고.
"스텔라 양에게 자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웃음이 멈추질 않아요."
맹세하자마자 다시 한 번 억지로 입혀지는 미래가 보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스텔라를 너무 자극하지 말아줘……."
"그건 약속드릴 수 없겠네요. 애당초 이 자리에 없는 그 사람이 잘못한 거니까요."
이 자리에 없다.
그랬다, 시즈쿠가 말한 대로, 실은 스텔라는 아직 오사카에 도착하지 않았다.
본래 하군 대표는 오늘쯤에는 현지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시간이 아슬아슬할 때까지 '야차공주'와 수행을 하고 싶다고 이사장 쿠로노에게 연락이 온 모양이었다.
아카츠키 학원이 하군 학원을 습격했을 때, 스텔라는 아카츠키 학원의 '바람의 검제' 쿠로가네 오마에게 낭패를 보았다.
그것도 절대적인 자신감을 자랑하는 '힘'의 승부에서 역부족.
그 사실은 스텔라의 자신감을 크게 상처 입었다.
지금 스텔라는 그 자신감을 되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있었다.
아마도 하군 학원에서 가장 강할 '야차공주'와의 수행을 통해 무언가를 붙잡으려고,
그렇지만──.
"오라버니, 스텔라 양은 이 수행으로 강해질 거라 생각하세요?"
시즈쿠가 문득 잇키에게 던진 물음.
그 음성에는 어딘가 걱정스러운 음색이 깃들어 있었다.
"벌써 칠성검무제는 이틀 후예요. 본래대로라면 피로를 풀 시기일 테죠. 저는 그런 시기에 하는 벼락치기 수행에는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확실히 초조해 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 판단은 어리석은 선택이 아니었을까요?"
아니, 걱정스럽게는 아니었다.
시즈쿠는 진지하게 스텔라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녀가 무리한 수행을 해서 몸 상태를 무너뜨리지는 않을까 하고.
정작 중요한 칠성검무제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고.
"다정하구나, 시즈쿠는."
"엇."
그런 잇키의 말을 듣고 시즈쿠는 불이 붙은 것처럼 뺨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벼, 별로 그런 사람을 걱정하는 건 아니에요. 그저, 오라버니는 스텔라 양과 싸우기를 기대하고 계시는 모양이니까요. 그러니까 신경 쓸 뿐이에요."
뜻밖이라며 반론하는 시즈쿠였지만, 그것은 단순한 허세라는 사실이 명백했다.
평소에는 서로 으르렁거려도 두 사람 사이에는 우정이 있다는 사실을 잇키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 다정한 소녀는 그 부분을 건드리는 것을 바라지 않으리라.
그래서 잇키는,
"이렇게 아슬아슬한 때에 하는 수행으로 강해질 수 있을까, 라."
시즈쿠의 물음에 자신의 견해를 솔직하게 돌려주었다.
"그렇구나. 어려울 거야. 무엇보다 시간이 너무 없어. 쓸데없이 피로를 쌓아서 정작 중요한 칠성검무제에 임할 컨디션을 해쳐버릴 뿐이겠지."
그랬다. 잇키도 역시 스텔라의 판단에 시즈쿠와 같은 근심을 품고 있었다.
확실히 단기간의 집중 수행으로 강해지는 경우는 있다.
있기는 있다──그렇지만.
그것은 미숙할 경우뿐.
잇키는 생각했다.
무엇에 매진한다는 것은 등산과 비슷하다고.
산기슭에서 10분의 1까지의 길은 완만하다.
뛰어갈 수 있을 정도로.
그 때문에 미숙한 자는 단기적으로 극적인 힘을 붙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10분의 7, 10분의 8이 되면──달라진다.
산이 정상에 가까워짐에 따라 그 경사가 심해지는 것처림, 강함이라는 꼭대기도 역시 오르면 오를수록 그 경사가 늘어난다.
같은 한 걸음. 같은 1미터.
그렇지만 나아가는 노력은 그에 비례해서 상승한다.
무언가에 매진하는 것은 그런 과정이다.
"그리고 스텔라는 미숙과는 거리가 멀어."
그렇기에 지금 이상으로 강해지려면 그에 상응하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그것이 잇키의 생각이었다.
약 일주일 동안의 집중 수행.
그 고행은 스텔라의 실력을 고려하면…… 너무나도 짧다.
"……그렇, 겠죠."
잇키의 견해에 시즈쿠의 눈썹이 살짝 내려갔다.
자신도 무모하다고 생각했던 일.
그 생각을 신뢰하는 오빠가 뒷받침해주었으니 당연했다.
"정말이지.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이없다는 듯이, 애처로워하듯이 중얼거리는 시즈쿠. 그러나──그렇지만,
"그래도. ──그건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렇다는 이야기야."
"네?!"
잇키의 견해에는 이어지는 내용이 있었다.
확실히 무모하다.
자신이라면 이 선택을 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
거기까지는 잇키도 시즈쿠와 같은 의견이었다.
그렇지만,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의 잠재능력으로 따지자면, ……그녀의 지금 실력은 10분의 1도 채우지 않았을 거야."
"윽…………!"
잇키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재능이란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개개인의 인간이 지녔을 한계치에는 커다란 폭이 있다는 현실을.
그중에서도 스텔라는 일급품이었다.
그녀가 오를 수 있는 산의 거대함과 웅대함은 자신들과 비교되지 않는다.
그 규모는 구름을 찌를 정도로 높고 험해서, 도무지 자신들의 척도로 잴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일주일로 폭발적인 힘을 키우는 건 가능해."
누구보다도 스텔라를 사랑하고 스텔라의 가까이에 있던 잇키이기에, 그는 그 점을 확신했다.
──그녀는 반드시 돌아온다.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강한 힘을 얻고서.
"그건 분명, 이틀 후에 스텔라 자신이 증명해줄 거야."
"……그렇게 되기를 바라네요. 저도…… 그 사람과는 한 번 싸워보고 싶으니까요. 몸 상태를 무너뜨려서 사라진다면 김빠져요."
그렇게 시즈쿠가 조금 밝아진 음성으로 대답했을 때, 엘리베이터는 최상층에 도착했다.
◆◇◆◇◆
철문이 열리자 그곳에는 두 사람의 호텔 보이가 서 있었고, 잇키 일행을 거슬리지 않게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하군 학원의 쿠로가네 잇키 님과 쿠로가네 시즈쿠 님이시군요. 이 앞이 파티 회장입니다. 부디 들어가십시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말한 다음, 잇키와 시즈쿠는 연지색 카펫 위를 걸어가면서 앞쪽에 있는 문으로 향했다.
그 안쪽에서는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서로 어우러져서 술렁거림이 되어 들려왔다.
파티는 이미 시작된 것이리라.
'이 문 너머에……, 각 학교의 대표가 있는 건가.'
꿀꺽, 목울대를 울리는 잇키.
그 사실에 잇키의 가슴은 크게 뛰었다.
"기뻐 보이는 얼굴이네요, 오라버니."
"……작년에는 동경할 수밖에 없었던 무대니까."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스텔라와의 싸움도 기대되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이 문 너머에 있는 자들.
전국에서 엄선된 강호.
그 모두가 F랭크인 잇키 입장에서 보면 격이 위였다.
마음껏 자신의 힘을 시험할 상대.
그런 자들과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 없이 투지가 끓어올랐다.
미음이 앞서서 진정되지 않았다.
참가 여부가 자유로운 파티에 고역인 양복을 입으면서까지 찾아온 이유는 자신과 싸우게 될 자들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빨리, 직접 봐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뭐, 저쪽은 F랭크 따위는 안중에도 없겠지만."
무엇보다 스텔라에 오마.
A랭크가 두 사람이나 출전하는 칠성검무제였다.
그것은 별수 없다.
오히려 상황이 유리하다고 생각해야 하리라.
적은 전원이 전원, 전국에서 손꼽히는 강자.
그렇다고 해도 실력에 차이가 있었다.
'워스트원'의 싸움이란 모자라는 재능을 얼마나 잘 이용하고 대처해서 격이 높은 상대를 물리치느냐에 달려있다.
상대편에서 이쪽을 깔봐서 그 차이를 좁혀준다면 잘된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잇키는 즐거운 술렁임이 흘러나오는 문을 밀어서 열었고──.
순간, ──자신의 생각이 오산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째서냐 하면 잇키가 문을 열고서 파티 회장에 모습을 보이자마자,
모든 술렁임이 딱 그치더니 몇 겹이나 되는 시선이 잇키의 몸을 꿰뚫었기 때문이다.
"윽……?!"
충격마저 느껴질 만큼 강렬한 시선 속.
그렇다고 해도 그 주목도 침묵도 잠깐.
금세 술렁임이 돌아왔다.
그렇지만──.
"저게 '뇌절'을 쓰러뜨린 하군의 '워스트원'인가."
"과연 좋은 분위기가 감도네. 갈고닦은 검처럼 맑아서 무척이나 멋져."
"틀림없이 전국 수준……, 그것도 상당히 위쪽이로군."
"이만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면 얼핏 봐도 강하다는 사실은 알 텐데. 이런 기사를 유급시키다니 하군의 전 이사장은 진짜로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술렁거림 속에서 확실히 흘러나오는 대화는 아까 전 잇키를 꿰뚫은 시선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헤에. 과연 전국 수준쯤 되면 한눈에 오라버니의 실력을 간파해오는군요."
잇키의 옆에서 시즈쿠가 그 자리의 분위기를 헤아리고 기쁜 듯이 싱글거렸다.
그에 대해서 잇키는,
'……깔보고 있었던 건 내 쪽인가.'
시즈쿠에게는 들키지 않을 정도로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방심해줄지도 모른다.
이 얼마나 안이한 계획이 었을까.
여기에 있는 이는 전국에서 엄선된, 더군다나 아카츠키 학원이라는 거대 세력의 등장에도 겁먹지 않고서 남은 맹자들이었다.
랭크라는 등급 하나에 놀아나서 방심할만한 바보가 있을 턱이 없었다.
상대방의 실력 따위는 한 번 보면 판별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는 그럴 수 있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학원에서 치른 싸움과는 명백히 다른 분위기를 접하고, 잇키는 드디어 실감했다.
'마침내, 이곳으로 왔어.'
일본의 학생 기사, 그 정점을 정하는 씨움터에.
이곳이라면 분명히 자신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시험할 수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그런 실감에 잇키가 흥분으로 몸을 떨고 있노라니,
"앗! 오, 오라버니!"
갑자기 곁에 있던 시즈쿠가 초조한 목소리로 양복 자락을 잡아끌었다.
"왜 그래?"
"저, 저걸 보세요!"
척, 시즈쿠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파티 요리가 늘어진 테이블.
그 앞에 서서 누군가를 찾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돌아보는 여성이었다.
'저 사람은……!'
잇키도 금세 시즈쿠가 놀란 이유를 깨달았다.
그 여성의, 다양한 색의 물감이 흩뿌려지고 산발이 된 긴 금발.
여성인데도 위에는 상의실종이었고, 물감이 묻은 꾀죄죄한 앞치마만으로 커다란 유방을 가리고 있는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복장.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째서냐 하면 그 인물은 모교를 습격해온 자 중 한 사람이었기에.
"아카츠키 학원의 '피투성이 다빈치' 사라 블러드릴리 양……!"
"설마 그만한 짓을 해놓고서 파티에 올 줄은 몰랐어요."
확실히 시즈쿠가 말한 대로였다.
아카츠키 학원의 학생은 그 거의 전원이 '리벨리온'이라는 테러조직에서 파견된 뒷세계의 실력자였다.
츠키카게 총리와 일본 정부의 직접적인 정보 조작 때문에 그 사실을 아는 자는 극히 일부이기는 했지만……, 그 러나 그 점을 제하고서도 하군이라는 한 학교를 반파시키는 폭거를 저질러 놓고서 이런 행사에 얼굴을 내밀다니 대담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 사건은 하군만이 아니라 일곱 학교 모두에게 충격을 가져다주어 수많은 기권자가 나왔다.
그 때문에 하군 말고 다른 학원의 혐오도 결코 낮지 않았기에(그 사실을 뒷받침하듯이 참가자들은 다들 사라에게 다가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잇키도 아카츠키가 이 행사에 참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여유롭다고 해야할지, 간이 크다고 해야할지.'
그렇게 생각한 그때였다.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돌아보던 사라의 시선이 잇키에게 딱 멈추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엇!"
놀랍게도 사라는 잰걸음을 걸으며 일직선으로 잇키를 향해왔다.
간신히 찾아냈다고 주장하는 양.
그리고 사라는 잇키의 눈앞에서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멈춰 서더니, 말없이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뚫어져서 잇키를 바라보았다.
"빤히."
'대, 대체 뭐지?!'
"저기, 제게 무슨 용건이라도?"
갑작스러운 접근에 잇키는 곤혹스러웠다.
사라의 눈동자는 확실히 잇키만을 비추었고, 그녀가 자신에게 무슨 용건이 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그러나 자신과 사라 사이에 접점 따위는 없었고, 무슨 용건인지 전혀 예상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사라는 그렇게 동요하는 잇키의 얼굴을 바라보며────.
"………………좋아."
무표정을 유지한 채 툭 중얼거리기가 무섭게, 다음 순간 잇키의 어깨와 가슴통을 자신의 손으로 더듬더듬, 마치 소지품 검사라도 하는 양 만지기 시작했다.
"우왓, 브, 블러드릴리 양?!"
"이, 이봐요! 당신 난데없이 무슨 짓을 하는 건가요?!"
"조용히 해. 지금 집중하고 있어."
잇키와 시즈쿠의 놀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서, 사라는 옷 위에서 잇키의 신체 윤곽을 더듬었다.
상대는 테러리스트.
더군다나 한 번 송곳니를 드러냈던 적이었다.
무방비하게 몸을 건드리게 내버려두면 위험하다.
그 사실은 잇키도 알고는 있었지만──.
'굉장한 집중력이 느껴져…….'
아무래도 사라의 이 행동에서는 악의나 해의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방해하기를 망설일 정도로 진지한 감정을 느꼈다.
그래서 잇키는 사라를 억지로 떼어내지 않은 채, 망설이면서도 그녀가 무엇을 그렇게 진지하게 확인하려고 하는 지를 캐물으려고 하고──.
그 다음 순간, 사라의 손이 양복에 입고 있던 잇키의 셔츠를 힘껏 찢었다.
"어어어어엇?!"
"오, 오라버니이이?!"
아무리 그래도 이 행위에는 잇키 역시 사라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억지로 드러난 가슴통을 가리면서 강하게 물었다.
"뭘 하는 거야, 갑자기!"
그 반응에 사라는,
"……이거라면 불만 없이 합격."
다소 열기 어리게 뺨을 붉히며 그런 영문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하, 합격이라니 대체 뭐가?! 어쩐지 전혀 내용 파악이 안 되는데!"
"그날……,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한눈에 반했어. 아름다움과 다정함이 느껴지는 한편으로 확고하게 굳은 심지를 연상시키는 생김새. 올곧게 등을 뻗은 깔끔한 자세. …… 게다가 무엇보다, 이 쓸데없이 부풀지 않고 합리적으로 단련된 다부진 근육의 형태……. 전부 무척이나 멋져. 당신은 그야말로 내 이상의 남성."
"어, 어어?!"
갑자기 닭살이 돋을 것 같은 찬사를 보내오자 잇키는 곤혹스러웠다.
이것은 정말로 어떻게 된 상황일까.
혹시나 자신은 지금 고백받은 것인가?
'어, 어쩌지, 이거!'
사라가 열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자 잇키는 쩔쩔맸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어떻게 맞받아쳐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잇키에게는 스텔라가 있으니 답은 정해져 있었다.
정해져 있었지만──.
사라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진지하고 진중해서, 아무리 그녀가 '리벨리온'의 사람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올곧은 마음을 '민폐'라며 싹둑 잘라버리기는 잇키의 성격상으로 망설여져서──.
"그러니 당신은 내 누드모델에 걸맞아. 불만 없이 합격."
생각 외로 크나큰 민폐였다.
"일이 그렇게 되었으니 지금부터 내 방으로 와서 벗어주면 좋겠어."
"어떻게 된 일이야?! 싫어! 거절하겠어! 애당초 그런 오디션을 받은 기억은 없어!"
"안 돼. 거절하는 걸 거절한다."
"제멋대로냐!"
"무슨 일이 있어도 벗어주지 않겠다면, 힘을 써서라도 벗길 수밖에 없지."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사라의 온몸에서 마력의 기색이 날뛰어 양손에 디바이스(영장)인 '붓'과 '팔레트'가 구현되었다.
'지, 진심이야, 이 사람……!'
진심으로, 그런 이유를 위해서 디바이스까지 써서 자신의 옷을 벗기러 올 셈이었다.
그렇지만 이곳은 파티 회장.
전투 소동을 일으킬 수도 없어서, 잇키는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 정하지 못한 채 낭패스러워했고──.
"오라버니에게서 떨어지세요, 이 변태!!!!"
"아윽!"
순간, 시즈쿠의 드롭킥을 맞고 사라의 몸이 옆으로 날아갔다.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오빠를 덮치려고 든 변질자를 걷어차서 날리고 오빠를 보호하듯이 막아선 시즈쿠.
단순히 걷어찬 것이 아니라 신체 전체를 이용해 드롭킥을 날렸다는 점이 굉장했다.
이 얼마나 든든한 아군인가.
그녀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잇키는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대답을 돌려주었다.
"응, 괜찮아. 셔츠 단추가 뜯어진 것뿐이니까……."
"────윽!"
그러나 그 대답을 들은 순간, 오싹, 시즈쿠의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용서 못 해."
"시, 시즈쿠……?"
"나도 오라버니의 셔츠를 찢고서 밀어 넘어뜨리는 플레이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는데……!"
든든한 여동생은 잇키의 생각과는 달리 아군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살짝 미묘한 심경이 된 잇키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시즈쿠는 분노한 상태로 자신의 디바이스를 구현시켰다.
"없애주겠어!"
"우와아아! 시즈쿠, 안 된다니까! 역시 이런 곳에서 디바이스를 꺼내면 곤란하다고!"
사태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응을 망설일 상황이 아니었다.
잇키는 재빠르게 시즈쿠의 등 뒤를 확보한 다음 그녀의 어깻죽지를 붙들어 고정했다.
체중도 가벼워서 힘이 없는 시즈쿠로서는 이 구속을 풀 수가 없어서 일단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우, 어쩐지 주위의 시선이 따가워……!'
뭐, 이만큼 소란을 피웠으니 당연하겠지만.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있으니, 한 번 돌아가는 편이 나으리라.
잇키가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크크크……. 무슨 소란인가 했더니 또 너냐, '피투성이 다빈치'."
옆에서 상당히 위엄을 꾸민 듯이 과장된 억양을 붙인 소프라노 보이스가 귀에 닿았다.
◆◇◆◇◆
목소리가 들린 쪽.
시선을 향하니, 그곳에는 진홍의 드레스를 입과 안대를 쓴 소녀와 그녀의 등 뒤에 물러선 한 명의 메이드가 있었다.
잇키는 그 두 사람도 본 기억이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사라와 마찬가지로 하군 학원을 습격한 자들──.
"너는 분명히, 전 렌테이 학원 소속이었던 카자마츠리 양이었던가?"
그 물음에 안대 소녀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크크크. 그렇다고 말해두겠다. 이 이름과 이 모습은 차원관리국을 속이기 위한 일시적인 모습이지만……, 내 진명은 인간의 입으로는 발음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라서 말이지."
"아가씨께서는 '맞아. 잘 부탁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말씀드리는 게 늦었습니다만 저는 아가씨의 전속 메이드를 맡은 샤를로트 코르데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이거 참 예의 바르시군요."
카자마츠리의 뒤를 이어서 잇키와 시즈쿠에게 아름다운 몸짓으로 인사하는 샤를로트.
그 자기소개를 통해 잇키는 하군 습격 때 이 소녀만 얼굴을 본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납득했다.
무엇보다 다른 면면은 다른 학교에서 대표권을 딴 학생이라서 카가미가 사진을 보여주었지만, 애당초 샤를로트는 단순한 시녀였고 대표 선수이기는커녕 블레이저조차 아니었기에.
"나의 동포가 실례했다, '워스트원'. 이 자, '뮤즈(미의 여신)'에게 홀려 있어서 인스피레이션이 샘솟으면 멈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악의가 있어서 한 일이 아니니 용서해다오. '로렐라이(심해의 마녀)'도 검을 거두게. 승부는 이미 정해졌다."
"뭐라고요?"
카자마츠리의 말에 잇키와 시즈쿠 두 사람은 함께 날아갔던 사라 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융단 위에서 대자로 뻗은 사라의 모습이 있었다.
"혹시나, 기절한 건가……?"
"샤르, '피투성이 다빈치'를 '전생의 관'으로 옮기도록 해라."
"맡겨주십시오. ……괜찮으신가요, 사라 님? 곧바로 캡슐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뀨우~."
샤를로트가 안아 일으킨 사라는 눈이 돌아가서 정말로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드롭킥이라고는 해도 힘없는 데다 체중 역시 아마도 칠성검무제 최경량급일 시즈쿠의 한 방으로.
뒷세계의 실력자일 사람이.
그렇게 너무나도 예상 밖인 사라의 나약함에 놀란 표정을 감출 수 없는 잇키와 시즈쿠.
그런 두 사람에게 카자마츠리는 말했다.
"'피투성이 다빈치'는 예술가이지 전사가 아니다. 따라서 나약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 회장에 올 때도 지옥에서 뻗어나온 망자의 손에 발을 잡혀서, 백의의 천사들에게 운반되어왔을 정도다."
"아가씨께서는 '사라 양은 오사카에 왔을 때도 보도블록의 높이 차이에 발이 걸려 넘어져서 뼈가 부러져 구급차에 실려 왔어'라고 말씀하십니다."
"개복치냐?!"
"그 때문에 '피투성이 다빈치'라는 별명이 붙었다."
"자기 피였어?! 굉장히 꼴사나운 사실을 듣고 말았어!"
"……혹시 '리벨리온'은 인재부족인가요?"
잇키의 팔 안에서 시즈쿠가 의아하게 중얼거렸지만 잇키도 같은 심정이었다.
잘도 저러면서 칠성검무제에 나올 마음이 들었구나.
그러나 그 두 사람의 반응을──.
"크크크. ──그건 상당히 빗나간 생각이다."
'비스트 테이머(마수 조련사)' 카자마츠리 린나는 조소하듯이 웃었다.
"확실히 '피투성이 다빈치'는 무서우리만치 연약하다. 그러나 그 현실이 드러내는 점은 그녀의 나약함이 아니다. ……그 연약함을 고려해서까지 이 작전에 선택될 만한 '힘'을, 그녀가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니까."
"……윽."
"통상 '예술'이란 정밀한가 추상적인가의 차이는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저 지긋지긋한 신이 만들어낸 '현실'이라는 작품의 위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저 자의 '예술'은 예외다. '피투성이 다빈치'의 '예술'은 현실을 도태시키지. 신 따위는 저자 앞에서 삼류 예술가일 뿐이다. ……우습게 여기고 달려들지 않는 편이 몸을 사리는 길이야."
카자마츠리의 말을 듣고 잇키도 시즈쿠도 떠올렸다.
하군이 습격받았을 때 사라가 보였던 자기 기술의 한 단면.
그 아카츠키의 나무 인형은 진짜로만 보였다.
너무나도 진짜 같아서 그 정체가 간파되었을 정도로.
'……확실히, 깔볼 상대가 아니야.'
그녀의 '예술'이 어떻게 전투에 발휘되는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렇기에 꺼림칙했다.
경계는 소홀히 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특히, 나는 블러드릴리 양과 같은 블록이야.'
순조롭게 나아가면 3회전에서 싸울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렇게 사라가 보인 예상 밖의 연약함에 풀어질 뻔한 긴장을 다잡노라니,
"그렇지만 '피투성이 다빈치'도 과연 취미가 좋군. 가까이에서 보니 제법 이름답구나, '워스트원'."
폴짝.
카자마츠리가 작은 동물 같은 동작으로 낮은 시점에서 잇키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어……."
"쓸데없이 위압적이지 않은 마스크도, 그 모습에서는 상상도 가지 않을 만큼의 강한 힘도, 내 취향이다. ──이봐, 졸업하면 우리 집 집사로 들어오지 않겠나? 대우는 듬뿍 해주겠다."
"큭! 당신도 제 오라버니를 노릴 셈입니까! 허락하지 않겠어요!"
"아니, 허락해줘도 역시 테러리스트의 동료로 들어갈 마음은 없어……."
"딱히 '리벨리온'이 되라는 말은 아니다. 저택에서 내 신변의 수발을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다."
"속으시면 안 돼요, 오라버니! 이런 말은 구실일 게 뻔해요. 분명 아가씨와 집사라는 주종관계를 이용해서 엉큼한 짓을 할 생각인 게 틀림없어요. 저라면 그럴 거예요!"
'어쩌지. 내 여동생이 테러리스트보다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
뭐, 그 문제는 제쳐놓고,
"모처럼 권유했는데 미안하지만 사양하겠어. 양복 같은 건 거북해."
잇키는 카자마츠리의 권유를 그렇게 사절했다.
물론, 카자마츠리가 '리벨리온'이라는 테러 그룹의 일원이라는 사실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그 이상으로──.
"우으……, 그렇지만 네 성적으로는 제대로 된 취직을 바랄 수 없을 거다. 나의 진영 아래로 들어오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은 없는데?"
"아가씨. 억지로 강요하시면 안 됩니다. 잇키 님께서 곤란해 하십니다."
그 이상으로 지금 막 카자마츠리에게 상식적인 충고를 한 샤를로트가, 카자마츠리에게 권유받은 순간, 지금까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던 고요한 표정을 뒤바꾸어 부모의 원수를 보는 것 같은 질투심 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권유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반드시 언젠가 제거되었겠지…….'
아무리 대우가 좋아도 암살당할 위험이 있는 직장은 사양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카자마츠리 본인은 단념이 안 되는지 아쉬운 양 입술을 삐죽이며,
"우으. 알겠다. ……그렇지만 마음이 내키면 언제든지 연락을 넣도록 해라. '워스트원' 같은 유능한 인재라면 언제든지 환영하마."
잇키에게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집사가 될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자신에게 내민 명함을 퇴짜놓는 것도 실례인지라, 잇키는 그것을 받아들고서 감사 인사를 했다.
그 대화를 끝으로 카자마츠리는 샤를로트와 함께 기절한 사라를 데리고 파티 회장을 뒤로했다.
잇키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나서 받아든 명함을 보고 작게 쓴웃음을 지었다.
그곳에는 이름만이 아니라 휴대전화 번호부터 메일 주소, 더 나아가서는 주소까지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테러리스트에게서 명함을 받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네."
"확실히…… 색다른 무리네요. 범죄자인 주제에 태연하게 파티에 나오질 않나, 옷을 벗기려고 들지를 않나, 취직 알선을 해오지를 않나. ……'리벨리온'은 저런 이상한 사람들뿐인 걸까요?"
"뭐, 아리스도 상당히 별나고 말이지……."
너무나도 일반적인 '뒷사회의 자객'과는 이미지가 다른 아카츠키의 대표자들.
얼핏 본 인상으로 실력 전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해의를 입은 적도 있어서 좀 더 흉악하고 무서운 것을 상상하고 있었던 만큼, ……다소 독기가 빠진 감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품은 그런 감상에──.
"저런 바보들과 같이 취급하지 마라. 불쾌하다."
반론하는 목소리가 뒤에서 전해졌다.
다소 노기를 머금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악취미인 가면으로 눈가를 가린 긴 흑발의 소녀가 한 명 서 있었다.
◆◇◆◇◆
"정말이지,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들떠서는. 자기가 일반인이 아니라는 자각이 부족해."
오페라의 유령 같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소녀는 카자마츠리 일행이 떠나간 연회장의 입구를 보고서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시즈쿠는 이 소녀가 누구인지 금세 확 와닿지 않았지만,
"……너는 혹시나 아카츠키의 타타라 유이 양인가?"
오빠인 잇키의 말을 듣고 뒤늦게나마 그 정체를 깨달았다.
"아아, 그 여름인데도 방한복을 바보처럼 입었던 이상한 사람 말인가요."
껴입은 방한복 탓에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듣고 보니 키가 딱 일치했다.
그렇게 이해하는 시즈쿠에게 타타라는 언짢게 들리는 목소리로,
"나는 이상하지 않아. 어떻게 생각해도 공중의 면전에서 제 맨얼굴을 드러내는 암살자 쪽이 이상할 텐데."
'아카츠키 사람에게서 처음으로 바른말이……!'
가볍게 충격을 받은 시즈쿠.
아무래도 앞서 본 두 사람에 비해서, 타타라는 비교적 제대로 된 암살자(?) 같았다.
그렇지만──.
"암살자라고 인정해도 돼요? 일단 공공에는 평범한 학생이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한 바를 솔직하게 묻자, 타타라는 깔보는 듯이 목으로 웃었다.
"기기기. 너희는 이미 '검은 흉수'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겠지. 게다가 츠키카게의 정보 조작은 이 나라 안에서는 완벽하다. 너희가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세간에는 터무니 없는 말로만 들리겠지. 문제없어."
"……."
되돌아온 대답에 시즈쿠는 눈썹 끝을 살짝 끌어올렸다.
그 이유는 타타라의 말이 대꾸할 수 없는 현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아카츠키의 학생들이 테러 그룹 '리벨리온'에서 파견한 용병이라는 이야기는 쿠로노를 통해서 관련 기관으로 보고가 들어갔을 터.
그러나 그 진실은 세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정보 조작을 한 탓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기 나라의 수상이 테러리스트와 내통한다'라는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황당무계했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아카츠키의 학생들이 '리벨리온'의 테러리스트라는 사실을 알면서 이를 믿고 있는 사람은 당사자인 자신들 정도였다.
……진실을 아는 시즈쿠 일행으로서는 무척이나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적의 의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함정에 빠진 것 같은 상황이기에.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나쁜데, 왈가왈부하는듯한 말을 들으면 불쾌해지는 것도 당연한 일.
그런 시즈쿠의 표정 변화에,
"……키키. 뭐,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지 마라, 쿠로가네 여동생. 놀리는 것 같은 소리를 해서 미안하다. 이쪽 역시 오늘은 오프다. 모처럼 열린 파티니 서로 즐기도록 하자."
타타라는 테이블 위에 놓인 요리를 접시로 어느 정도 옮겨 담아 시즈쿠에게 내밀었다.
태도만 보면 우호적.
그렇지만 말끝이나 입술에는 감추려고도 들지 않는 비웃음이 어렸다.
그런 태도로 하는 말뿐인 사죄.
실로 기분이 나빴다.
그렇지만 이런 값싼 도발에 넘어가서 물고 늘어지면, 그것은 그것대로 불쾌하다.
이 상황은 휙 흘려버리자. 시즈쿠는 그렇게 판단하고서,
"고마워요──."
내밀어 진 요리를 받아들려고 한, ──그 순간이었다.
건네준 접시가 공중을 날아 대리석 지면으로 떨어지더니 소리를 내며 깨졌다.
어째서인가.
옆에 있던 잇키가 받아들려고 한 접시를 손등으로 쳐서 날렸기 때문이었다.
"오, 오라버니?"
"──."
갑작스러운 오빠의 행동에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뜨는 시즈쿠.
아니, 시즈쿠 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학생들도 다들 갑작스럽게 생긴 일에 눈을 부릅떴다.
그에 대해 잇키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고서, 사라나 카자마츠리 일행과 이야기했을 때와는 다른 사람 같은, 날카롭고 차가운 빛이 깃든 눈동자로 타타라를 노려보았다.
대체 무엇이 어떻게 된 일인가.
의문으로 여긴 시즈쿠가 내쳐져서 떨어진 요리에 눈길을 보내자──.
"이, 이건……!"
잇키가 그런 행동을 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타타라가 내민 접시 위에 있던 뼈가 붙은 닭다리살.
그 고기 속에 번뜩 빛나는 면도날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떨어졌을 때 받은 충격으로 고기를 찢고서 나온 것이리라.
이런 것이 조리 과정에서 섞여들 리가 없었다.
명백한 악의를 가지고, 누군가가 속에 집어넣은 것.
그리고 그런 짓을 할 사람은──, 눈앞에 있는 테러리스트밖에 없었다.
잇키는 그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요리를 쳐서 떨어뜨린 것이었다.
"상당히 자극적인 토핑이네, 타타라 양."
''기기기, 안타깝구만. 여러 종류의 알칼로이드를 배합 한, 한 번 핥아도 코끼리도 숨통을 끊을 수 있는 독이 들어 간 특별제였는데에."
타타라는 잇키의 찌르는 듯한 시선에 기가 죽지도 않고 어깨를 들썩이면서 웃었다.
"보이지 않게끔 넣어두었는데. 여동생과는 다르게 감이 좋은 녀석이구만."
"딱히 칭찬받을 만한 일이 아니야. 그렇게까지 '악의'를 뿌려대면 말이지."
받아치는 잇키의 말은 겸손이 아니었다.
시즈쿠는 깨닫지 못했지만, ──잇키는 처음부터 이해 했다.
이 타타라 유이라는 여자가 아까 전의 세 사람과 다르다는 사실을.
아까 전의 세 사람은 별종이기는 했지만 '악의'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타타라는 달랐다.
이 여자에게서는 무릇 '악의' 말고 다른 감정을 전혀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여자가 시즈쿠에게 건네줄 음식을 나눠 담을 때, 자신의 몸을 슬쩍 움직여서 잇키와 시즈쿠의 시선을 가로막는 장막을 만들었다.
──무슨 짓을 벌일 것이 뻔하다.
잇키는 그렇게 확신했기에 요리를 쳐서 떨어뜨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잇키의 예상대로 아니나다를까 맞아 떨어졌다.
"오늘은 오프가 아니었어?"
"기기기. 그렇고말고. 오프야. 그래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한 사람쯤 없애두려고 했지. 정말, 조금만 더 하면 됐는데에."
타타라는 주눅이 드는 기색은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고서, 오히려 자신의 흉계를 방해받은 상황에 혀를 찼다.
"정말이지 이렇게 나른한 일은 처음이라고. 학원을 습격해라. 그렇지만 한 사람도 상처 입히지 말라고? 나는 다른 바보들과는 다르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살인을 해왔지. 그런 프로에게 '죽여서는 안 됩니다' 같은 일을 넘겨주지 말란 말이다. 욕구불만으로 조바심이 나는데……! 이제 이틀도 못 기다리겠어. 지금 당장에라도 쳐 죽이고 싶다고!"
송곳니 같은 이를 드러내며 섬뜩한 웃음소리를 내는 타타라.
그 오른손에 천천히 불길한 마력이 모여서 형태를 이루었다.
상어의 이빨을 연상시키는 사나운 형태를 한 날이 몇 겹이고 이어진 체인소 형태의 디바이스였다.
"이, 이봐. 진심이냐, 저 여자……!"
"이런 곳에서 일낼 셈인가?!"
타타라의 장소를 가리지 않는 만행에 회장이 술렁임으로 가득 찼다.
그에 대해서 잇키는 아무런 말도 되돌리지 않고서 살짝 시즈쿠를 보호하듯이 앞으로 섰다.
그는 이미 이해한 것이었다.
타타라는 말을 해서 알아들을 만한 종류의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무엇보다──.
여동생에게 그런 짓을 한 인간을 용서해줄 정도로 잇키도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잇키 자신도 타타라를 격퇴하려고, '음철'을 겨누려고 해서──.
"그만둬, '어나더원(무관의 검왕)'."
"윽!"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거는 목소리에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니, 멈추어진 것이었다.
그 목소리는 호통치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히 노기를 머금은 것도 아닌 조용한 음성이었다.
그렇지만 상대를 다짜고짜 따르게 만드는 강제력과 압박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잇키는 알고 있었다.
직접 그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지만, 몇 번이나 TV 등을 통해서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그런 싸구려 싸움을 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이겨서 올라온 건 아니겠지. 안 그래?"
"……모로보시 선배!"
다른 누구도 아닌.
전 칠성검무제 패자이자 '워스트원'이 1회전에서 검을 나눌 상대──.
부쿄쿠 학원 3학년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였다.
◆◇◆◇◆
육식 동물을 연상시키는 날카롭고 위압적인 시선.
아리스인과 마찬가지로 신장 180센티미터쯤 될 키.
그리고 그 신장에 뒤처지지 않는 두툼한 근육을 갖춘, 반다나가 어울리는 대장부.
그것이 일본 학생의 정점.
모로보시 유다이였다.
그가 꺼낸 한 마디에 살벌했던 공기는 경직되었다.
보아하니 잇키 일행에게 다가온 이는 모로보시만이 아니었다.
그의 등을 뒤따르듯이 붙어 있는 남녀가 두 사람.
모두 모로보시와 마찬가지로 양복이 아니라 부쿄쿠 학원의 현대적이고 특징적인 교복을 입고 있는 두 사람을, 잇키는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있었다.
교복을 털끝만큼도 흐트러뜨리지 않고서 옷깃까지 단단히 세워 갖춰 입은 자세 좋은 안경 쓴 남자는 부쿄쿠 학원 3학년 죠가사키 뱌쿠야.
옆에 선 뺨에 반창고를 붙인, 소년처럼 짓궂은 눈동자를 한 소녀는 마찬가지로 부쿄쿠 3학년 아사기 모미지.
작년 칠성검무제의 2위와 3위였다.
그렇다, 잇키와 타타라 사이에 끼어든 사람은 작년 시상대에 올랐던 세 사람이었다.
'과연…… 몸이 경직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늘어선 세 사람은 누구도 범상치 않은 오라(분위기)가 감돌았다.
이 세 사람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 연회장 그 자체가 좁아졌다고 착각할 만큼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이런 존재감을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죽이는 둥 죽이지 않는다는 둥 위험한 여자로구만. 뭐, 칠성검무제도 코앞이니 피가 끓어오르는 건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이제 좀 진정하는 게 어때?"
아마도 조금 전까지 상황을 엿보고 있었던 것이리라.
모로보시는 잇키를 탓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은 채, 높은 시점에서 타타라를 내려다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충고했다.
그리고 그에 덧붙이듯이,
"정말 그렇습니다. 이런 장소에서 디바이스를 뽑다니, 품성이 의심됩니다. ……뭐, 천박한 디바이스의 주인은 품성도 비열하다는 뜻일까요."
뒤에 있는 죠가사키도 타타라의 행동을 공격했다.
그 반응에 그렇다 해도 타타라는 주눅이 드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서,
"품성을 따지면 싸움을 할 수 없다고, 젠체하는 꼬맹이. 뭣하면 몸으로 직접 가르쳐 줄까아?"
손에 든 체인소 형태를 한 디바이스의 엔진을 기동시켜 회전하는 날을 세 사람에게──가장 앞에 선 모로보시에게 들이밀었다.
그러나 모로보시는 그런 행동에 더더욱 차가운 시선을 보내며,
"그렇게 주제넘게 송곳니를 내비치지 마. 약한 개에 딱 어울리는구먼, 어울리네."
"……으윽!"
한숨을 쉬듯이 고해진 모멸.
그것은 애당초 천성이 거친 타타라의 감정을 끓어오르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타타라는 굳어서 옥죄어드는 것 같은 웃음소리를 내며,
"기기기, 빌어먹을 애송이가아. ……좋다. 그러면 내가 약하지 아닌지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악의' 따위로는 그치지 않는 확실한 살의를 내뿜으면서 모로보시를 향해서 걸음을 내디디고,
"──윽?!"
느닷없이,
모로보시와의 거리가 3미터쯤 떨어진 위치에서 마치 감전한 것처럼 그 걸음을 멈추었다.
그 행동에…… "호오" 하고 감탄한 듯이 한숨을 흘린 이는 모로보시였다.
"겉멋으로 우쭐거린 것도 아니었군. 그래, 거기가 내 간격의 경계야. 섣부르게 발을 내디디면……. 이 녀석으로 쾅, 이라고."
보아하니 모로보시의 손에는 어느새인가 가늘고 긴 노란 창이 쥐어져 있었다.
똑바로 뻗은 날의 근본에 호랑이의 털을 본뜬 장식이 달린 그 창이야말로 '칠성검왕'의 디바이스 '토라오'였다.
"네놈, 대체 언제 뽑았냐……!"
놀라움 어린 소리를 지르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서는 타타라.
그렇지만 놀란 사람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곁에 있던 잇키 역시 그랬다.
'굉장하다…….'
잇키의 눈으로도 언제 창을 구현시켰는지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무엇보다,
'──전혀 파고들 틈이 없어.'
창을 겨눈 자세도 아닌데 모로보시의 간격에는 사각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디에서 어떻게 파고들어도 확실히 요격당한다.
그 미래를 뚜렷하게 손에 잡힐 듯이 알 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봤어. ……이게 소문으로 듣던 '칠성검왕'의 '팔방 노려보기'인가.'
그 '뇌절'의 파고듦마저 허용하지 않았던, 절대적인 간격의 지배력.
어디에 있어도 어디에서 공격을 걸어도 똑바로 안광을 향해오는 것처럼 빈틈이 없음을 찬양해, 모로보시의 안광은 그렇게 칭해졌다.
이래서야 타타라도 파고들기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했다. 모로보시의 간격이란 즉, 일본 제일의 학생 기사가 지배하는 간격이기에.
……그리고,
"가하하하핫! 이것 참 올해 1학년은 굉장히 기세가 좋지 않나? 좋아, 좋아!"
소란스러운 소리를 우연히 듣고서 찾아온 이는 부쿄쿠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확성기라도 쓰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만큼 커다란 웃음소리와 함께 잇키 일행의 머리 위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찾아온 사람은 눈어림으로 2미터는 가볍게 넘어갈 장신과 1미터에 육박하는 가로 폭.
거기에다가 학생으로는 보이지 않는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을 갖춘 거한.
북쪽 대지 홋카이도 로쿠존 학원의 3학년.
전 대회 베스트 8 중 한 사람, '팬처 그리즐리(강철의 거친 곰)' 카가 렌지였다.
"그렇지만 먹을 것을 함부로 다루면 안 되지. 우리 농가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열심히 키운 닭이다. 맛있게 먹어야 보답 받아."
리틀(초등학생) 시절.
고작 혼자서 100핵타르, ──실로 도쿄 돔 약 20배가 되는 농지를 개간했다는 전설을 가진 카가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잇키가 바닥으로 쳐서 떨어뜨린 독 면도날이 든 치킨을 거대한 손으로 집어 올렸다.
"아, 그 치킨은……!"
잇키가 막을 틈도 없이 뼈째로 입속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강인한 턱으로 고기는 물론이거니와 뼈도 면도날마저 씹어 으깨서 한입에 삼켜 보였다.
"가하하! 코끼리는 죽일 수 있어도 나는 죽일 수 없는 모양이군! 아카츠키!"
"저, 정말로 인간이냐, 이 녀석……."
맹독을 먹어도 털끝만큼도 나쁜 징조를 보이지 않는 카가의 모습에 오히려 타타라 쪽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그렇지만 타타라의 놀라움은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음후♡"
"으윽?!?!"
뜬금없이 타타라의 귀 뒤로 내뿜어진 숨결.
그 숨결에 어루만져진 타타라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느새인가 자신이 한 여자에게 끌어안겨 있다는 사실을.
"네에. 착한 아이니까 자암시 가만히 있으렴. 지금 진찰 중이야."
"가아아!!"
만지작만지작, 자신의 몸을 더듬어대는 여자를 타타라는 팔을 힘껏 휘둘러서 뿌리쳤다.
실로 재빠른 대처──이기는 했지만, 그 안색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타타라는 '리벨리온' 내의 젊은이 중에서는 이름이 알려진 흉수였다.
물론 그 실력은 진짜였고 그녀 자신도 그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에게──어느새인가 달라붙었다.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어도 당연했다.
"저, 정체가 뭐냐, 네년은……!"
"음후후♡ 이거 참, 건강한 환자네에. 건강한 건 좋은 일이야."
초조함에 목소리를 떠는 타타라에게, 갑자기 나타난 백의의 여자는 도톰한 입술에 여유 어린 웃음을 짓고서,
"그, 렇, 지, 만. 생각했던 대로 혈압, 체온 모두 높아서 흥분 기미를 보이네. 몸도 작고 살결도 거칠어졌고,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잠시 양손을 내밀어 보렴."
그런 소리를 했다.
그 순간이었다.
"네년, 아까 전부터 무슨 소리, 를, 오, 오옷?!"
타타라의 팔이 본인의 의지를 거슬러서 체인소를 바닥에 내던졌다.
더 나아가서는 양 손바닥으로 둥근 그릇을 만들어서 백의의 여자를 향해 내밀었다.
그야말로 여자가 말한 대로.
그리고 백의의 여자는 그 양손의 그릇에,
"칼슘과 비타민C, 그리고 양질의 콜라겐을 좀 더 섭취하렴. 그리고 여기, 이건 내가 조합한 특별한 성분의 아로마 향. 수면 전에 피우고서 고양된 마음을 진정시켜야 해?"
웃는 얼굴로 부지런히 알약과 캡슐, 더 나아가서는 귀여운 리본으로 포장된 작은 꾸러미를 얹어놓았다.
물론 타타라는 그런 것이 필요 없었다.
당장에라도 바닥에 모조리 털어버리려고 했지만──.
'우, 움직일 수 없어?!'
"네년, 내 몸에 무슨 짓을 했나?!"
"응~? 음후후♡ 놀랄 게 뭐 있어? 의사가 환자의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당연하잖아~♪"
식은땀을 띠우면서 호통을 친 타타라에게, 여자는 끝까지 생글거렸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잇키는 곁에 있는 시즈쿠에게 물었다.
"시즈쿠. ……그녀에 대해서 알아?"
그 물음에 시즈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이죠. 알고 있어요."
시즈쿠는 전국의 강호를 조사할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 역시 이름도 모르는 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이 백의의 여자만은 별개였다.
학생이면서 일본 제일의 의사.
그리고 일본 제일의 의사면서 전국 레벨의 기사.
"렌테이 학원 3학년──'백의의 기사' 야쿠시 키리코."
이 나라에서 유일하게 자신보다 위에 있다고 시즈쿠마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물술사'였기에.
"1학년과 2학년 줄곧 칠성검무제에는 나오지 않아서, 올해도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요."
"그보다 말이지, 그녀가 타타라 양에게 달라붙었을 때 썼던 기술은, 혹시나──."
"네. 오라버니가 생각하신 대로예요. ……그건 틀림없이, 제 '청색윤회'와 같은 거예요. ──그렇다고는 해도 저는 자신이 입은 옷까지는 기체화할 수 없지만요."
그리고 지금 타타라의 자유를 빼앗고 있는 기술이 어떤 원리인지도 시즈쿠는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나 상대의 혈액에 무언가 간섭하는 것일까.
그런 예측 정도는 세웠지만, 자신은 아직 쓸 수 없는 기술이었다.
'이 사람과 같은 D블록이라니 조금 기가 죽네.'
같은 물술사이자 기교파.
그렇게 되면 그 기량의 우열이 그대로 승패에 반영되게 된다.
시즈쿠로서는 자신과 붙을 가능성이 있는 3회전을 치르기 전에 탈락해 주었으면 싶은 기사였다.
──그리고 소란에 이끌려서 온 전국 수준의 기사들 속에는 잇키에게 그리운 얼굴도 있었다.
"이봐, 계집. 네년, 누구에게 허락을 얻고 '워스트원'에게 손을 대려 한 거냐, 엉?"
군중을 가르고 나타나 난폭하게 타타라의 멱살을 잡아 올린 금발의 남자.
일찍이 하군 학원 3학년인 아야츠지 아야세와 얽힌 사건 때문에 검을 나누어서 '마지널 카운터(신속반사)'라는 신이 부여한 재능으로 잇키를 괴롭힌 돈로 학원의 에이스.
'소드 이터(검사 살해자)' 쿠라시키 쿠라우도였다.
"쿠라시키……. 오랜만이네."
"흥, 네놈이라면 여기까지 올 거라고 생각했지, 그때 진 빚은 깨끗하게 갚아주마."
그렇게 말하더니 쿠라우도는 자신의 손에 멱살 잡힌 타타라에게 시선을 되돌리고,
"나뿐만이 아니야. 이곳에 있는 전원이 이 녀석과 싸우길 기대해왔어. 너무 제멋대로 굴면 날려버리겠다."
위협적인 목소리로 충고했다.
그 말을 긍정하듯이 전국에서 손으로 꼽히는 강호들이 찌르는 것 같은 시선을 타타라에게 보냈다.
이 상황에는 천성이 거친 타타라도 배겨내지 못했다.
모여 있는 것은 전원이 전국 베스트 8 수준의 실력자들.
싸움을 걸기에는 너무 불리하다.
"──칫! 이거 놔!"
타타라는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는 양손이 아니라 다리로 쿠라우도를 걷어차서 그의 손을 풀었다.
그리고 입가를 씁쓸한 마음으로 일그러뜨리면서 그 자리를 뒤로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
타타라가 연회장을 떠난 뒤, 잇키는 주변에 모인 일동에게 감사 인사를 늘어놓았다.
"고맙습니다, 여러분. ……까딱하면 도발에 넘어가 버릴 뻔했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잇키의 태도에 모로보시는 아까 전까지 타타라에게 향했던 무시무시한 표정을 일변해서 붙임성 있어 보이는 표정을 띠우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자신의 여동생을 노려오면, 뚜껑 열리는 게 당연하지. 그보다, 오히려 잘도 뽑지 않았구만. 나였다면 녀석이 뽑기 전에 먼저 뽑았을 거야."
그러니 신경 쓰지 말라며 웃었다.
그런 모로보시의 옆에서 죠가사키가 못 말리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자랑할 일이 아닐 텐데요. 유는 명색이 이 나라에서 제일 가는 학생 기사, 모든 학생 기사의 모범이 되어야 할 '칠성검왕'이니까 좀 더 차분해지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하하. 홋시는 시스콤이니까아."
"누가 시스콤이냐! 그런 건 오빠라면 당연하지! 게다가 녀석들이 수작을 걸어온 건 하군 습격과 합쳐서 두 번째잖아. 부처도 세 번밖에 안 참아. 인간님이 어째서 두 번이나 참아야 하는 건데? 이봐,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쿠로가네."
"하하, 확실히, 아카츠키의 사람들에게는 심한 꼴을 당하기만 했으니까요."
잇키는 습격 사건에 대해서 언급한 모로보시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렇다고 원망만 하는 것도 아니에요."
"응? 무슨 뜻이야?"
"확실히 변변치 않은 꼴을 당해서 도무지 호의 따위는 품지 않았습니다만……, 그들의 참전 덕분에 보통이라면 검을 나눌 수 없을 세계의 블레이저와 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한 가지 점에 관해서만은 그럭저럭 감사하고 있어요."
양지뿐만이 아니라 음지도.
본래대로라면 나올 수 없을 세계의 실력자들을 섞어서 열리는 칠성검무제.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었다.
그러는 편이──순도가 높다.
이 칠성검무제라는 최강의 기사를 정하는 투쟁의 순도가.
그래서 잇키는 이 한 가지 점에만 한해서 아카츠키의 참전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런 잇키의 말을 듣고서,
"……크크, 하하하핫!"
모로보시는 커다란 목소리로 웃음소리를 냈다.
어째서냐 하면,
"벌레도 못 죽일 것 같은 얼굴로 재미있는 소리를 하는 구만. 우연이군.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랬다. 그 역시 잇키와 완전히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올해의 칠성검무제는 참가할 보람이 있다고.
어째서냐 하면 모로보시는 전부터 '바람의 검제'와의 사투를 바라고 있었기에.
그의 처지에서 보면 오마를 끌어내 준 것만으로도 아카츠키에게는 감사했다.
그렇지만,
"설마 나 말고 그런 혈기왕성한 생각을 히는 녀석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실제로 피해를 본 하군의 학생이.
보통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말인즉, 이 녀석은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야…….'
"그렇지만 보통이라면 검을 나눌 수도 없다……라는 겁니까. 역시 아카츠키가 비합법적인 세계의 용병이라는 소문은 사실이로군요."
"아까 전의 꼬맹이도 보통이 아니었고 말이야. 정말이지 제멋대로 굴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문득, 아카츠키의 비합법성을 알게 된 죠노사키와 아사기가 흘린 불만.
그것을 모로보시는 냉담하게 일축했다.
"녀석들이 뭐하는 놈들이든지, 우리가 할 일은 변함없어. 그렇지, 쿠로가네."
그런 다음, 잇키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에 대해서 잇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적에게 공정함이나 공평함을 바라는 건, 우리 '기사'가 취할 태도는 아닙니다."
남에게 호감을 주는 부드러운 웃음을 띠우면서 그렇게 답했다.
──그것은 모로보시가 바라는 답 그 자체.
그의 예상대로 잇키는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들 '학생 기사'라는 존재의 본질을.
그렇다. '학생 기사'는 스포츠맨이 아니다.
조만간 이 나라의 방위를 짊어질 전사다.
그런 인간이 상대의 비합법성에 화를 내다니 번지수를 잘못 찾는 일.
그 점을 이해할 수 없는 동안에는, 아무리 실력을 갖추더라도 어차피 스포츠맨일 뿐이다.
진짜 기사에게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 그렇지만──.
"적이란 본래 불공정한 것. 싸움이란 본래 불공평한 것. 우리 '학생 기사'의 싸움은 그 전제가 당연합니다. 그러니 그들의 정체가 무엇이고 어떤 수단으로 이 대회에 참가했든지 우리에게는 관계없습니다. 그들의 비합법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이 대회를 운영하는 어른들이 할 일. ──우리는 그저 상대하는 적을 쓰러뜨려서 이겨 나아갈 뿐입니다."
잇키는 그 점을 분간했다.
그렇기에 잇키는 아야츠지 아야세와 맞붙은 시합에서도 한 사람의 친구로서 그녀의 행동을 탄식하기는 했어도, '비겁'하다고 규탄하거나 그녀의 반칙을 고발하고 부전승을 따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잇키는 불공평이나 불공정을 싫어하기는 했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적에게 공정함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는 스포츠맨이 아니라'기사'이기에 '칠성검왕' 모로보시는 그런 잇키의 이해와 도량을 얼마 안 되는 대화를 통해 확신했다.
그리고 확신했기에 모로보시는 인정했다.
"크크……, '뇌절'이 유급생에게 쓰러졌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솔직히 유감이었어. 올해야말로 녀석의 필살기를 완벽하게 공략해서 완승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대신 상당히 재미있어 보이는 녀석이 올라왔구만."
이 남자, 상대로서 부족함 없다고──.
"이틀 후, 링에서 만나는 게 기대돼."
"그때는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오싹, 투지에 넘치며 말하는 모로보시에게 잇키 역시도 전하는 듯한 시선을 돌려보냈다.
이 해후로 상대의 도량을 헤아린 이는 모로보시 뿐만이 아니었다.
잇키 역시 모로보시와 마찬가지로 현 '칠성검왕'의 도량을 재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같은 답에 다다랐다.
──첫 싸움은 아마도 사선이 되리라.
확실한 예감.
불안과── 그것을 크게 웃도는 기대.
서로 같은 확신을 품고서 두 사내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서 서로 바라보더니──.
"아, 그건 그렇고."
불현듯 갑작스럽게 모로보시가 말투에서 긴장감을 잃고서── 잇키에게 지적했다.
"슬슬 옷을 갈아입으러 돌아가는 편이 좋지 않나? 가슴이 훤히 보여."
"윽?!"
그 말을 듣고 잇키는 간신히 떠올렸다.
자신이 지금 양복의 앞섶을 완전히 벌린 무섭도록 변태적인 차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지 않으면 자랑하는 육체를 내보이는 건가? 그런 취미야?"
"그,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아!"
놀림당한 잇키는 황급히 가슴께를 감추면서 얼굴이 새빨개져서 부정했다.
그런 잇키의 반응에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무렵에는 이미 타타라가 가져온 낄끄러운 분위기는 어딘가로 사라져서 온화한 레크레이션 시간이 돌아왔다.
◆◇◆◇◆
연회장 옆에 있는 흡연실.
그 방에서 창 너머로 타타라 일당이 일으킨 소동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었다.
어두운 색조의 붉은 양복.
색이 들어간 안경 안쪽에서 눈동자를 가늘게 뜬 그 로맨스그레이의 남자는──.
"상당히 예의범절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학생이 많이 들어왔나 보군요, 츠키카게 선생님."
그랬다. 일본 현 총리대신이자 국립 아카츠키 학원의 책임자. 츠키카게 바쿠가였다.
츠키카게는 자신의 이름을 부른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더니, 목소리를 낸 주인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기쁜 듯이 소리를 냈다.
"오오. 이게 누구야. ……타키자와 아닌가. 오랜만이구만."
타키자와.
즈키카게에게 그렇게 불린 하군 학원 이사장 신구지 쿠로노는 살짝 몸을 떨었다.
자신이 예전에 쓰던 성을 부르는 그 울림이, 그녀가 학생 시절의 츠키카게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동경했던 그 시절 그대로.
그다지 변하지 않은 은사의 모습.
쿠로노는 동요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태웠다.
그런 다음에 정정했다.
"지금은 신구지입니다, 선생님."
"아아, 그랬지. 결혼식에서 만난 이후로 처음인가아. 어떤가. 잘 지내고 있나?"
"덕분에요. 출산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건 다행이군, 다행이야. 잘된 일이야. 응."
정말로 기쁜 듯이 쿠로노의 기억보다도 다소 주름이 깊어진 얼굴을 싱글거리는 츠키카게.
그 표정은 진심으로 쿠로노의 무사를 기뻐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전혀 의심의 여지도 존재하지 않을 만큼.
그렇지만 그렇기에 쿠로노의 표정은 씁쓸한 빛으로 바뀌었다.
'──선생님은 정말로 변하지 않으셨어.'
이 다정한 목소리도, 따뜻하게 웃는 얼굴도.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
동경했던…… 그 시절 그대로.
그 사실을 깨닫자 쿠로노는 당황함과 동시에 초조함을 느꼈다.
차라리 변해버렸다면 좋았으리라.
드러내놓고 적의나 해의를 보내오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어째서 그 츠키카게 선생님이 이런 짓을, 어째서.'
'………….'
그런 의문에 괴로워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지만, 쿠로노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고서,
"저로서는…… 이런 형태로 선생님과 재회하게 되다니, 대단히 본의가 아닙니다."
굳이 자신 쪽에서 적의가 깃든 시선을 은사에게 보냈다.
그랬다.
현재 쿠로노는 이미 그의 제자는 아니었다.
하군 학원의 우두머리였다.
자신의 학생들을 상처 입힌 아카츠키의 우두머리는 쿠로노에게 미워해야 마땅한 적.
용서할 수 없는 상대.
이 사실은 이미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촌극 어린 잡담을 할 필요는 없다.
필요한 것은 확인하는 일.
어째서 그런 행위에 이르렀는가.
그 진의를 캐묻는 일.
쿠로노는 자신의 역할을 올바르게 이해했다.
그렇기에, 그러기 위해서 입장이 파악되지 않는 츠키카게를 대신해 쿠로노 자신의 태도를 뚜렷하게 주장했다.
이에 대해 츠키카게는,
"후후. 뭐, 당연하겠지. 화내는 게 당연해. 어쨌든 나는 자네의 학원을 발판으로 삼았으니까."
쿠로노가 보이는 적의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그 말인즉 자신이 취한 행동이 쿠로노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뜻.
인정하고서 행했다는 고백이기도 했다.
그 언질을 듣고 쿠로노는 다시 한 걸음 확신을 향해 간격을 좁혔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신 겁니까?"
"회견에서 말한 대로야. 블레이저는 국방의 주축. 한데 현재 일본은 그 육성의 대부분을 다른 나라의 기관에 맡기고 있어. 하물며 면허 발행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저쪽 권한. 이쪽에서는 발행은커녕 실효마저 자유롭게 할 수 없어. 그런 상태는…… 국가로서 건전하다고는 말하기 어렵지. 그렇지 않나? 그래서 나는 그것을 정정하기 위해서 행동하고 있는 거야. 이 나라를 떠맡은 자로서 말이지."
그러나 쿠로노의 내디딤에 츠키카게는 새로운 말을 되돌려주지 않았다.
어느 것이나 이전에 했던 기자회견에서 늘어놓았던 말 뿐.
그렇지만──.
"정말로, 저는 그게 전부라고 여길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아직 무언가를 숨기고 계세요."
"설마, 설마. 으음. ……부쿄쿠 학원의 방식을 받아들여서 획기적인 개혁을 추진한 신구지라면, 내 획기적인 방식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말이지이."
"유감입니다만, 선생님의 행동은 이미 제 이해의 범주를 넘어섰습니다. 확실히 부쿄쿠 학원은 마쿠노우치 이사장으로 바뀌고 나서 독자적인 교풍이나 교칙을 멋대로 늘려서, 연맹이 내건 교육방침에 없는 방법을 취해 커다란 성과를 올렸습니다. 그 때문에 '연맹 본부'에 찍힌 것 또한 사실이겠죠. 그렇지만…… 그건 모든 상식의 범주 안에서 행해진 일입니다. 선생님의 행동과는 절대 같지 않아요. 테러리스트를 고용하는, 법마저 벗어난 무법한 방식과는요."
"글쎄, 테러리스트?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내 처지로는 이렇게 말해야만 하겠지만 말이지."
쿠로노의 강한 부정에 츠키카게는 곤란해 하듯이 웃으면서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역시 직접 캐내기는 무리인가.
그렇게 쿠로노의 마음에 체념이 싹트기 시작한 때였다.
"그렇지만 말이지, '무법으로 좋은' 거야. 잘못된 법을 부수려면 무법 쪽이 나아."
츠키카게가 몸서리쳐질 만한 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윽!"
그리고 그 말만으로 충분했다.
쿠로노도 아무 생각 없이 이 자리에 온 것은 아니었다.
충분한 예측과 고찰은 세우고 왔다.
츠키카게가 이번 행위에 이르게 된 그 이유에 대해서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두고 왔다.
때문에,
"선생님, 당신, ……역시 그런 겁니까."
쿠로노는 이해하고 말았다.
지금 꺼낸 츠키카게의 말.
굳이 무법을 선택한다는 자세의 일면을 통해, 츠키카게의 진정한 목적을.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그렸던 최악의 전개를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역시라니, 무슨 소리지?"
"……애당초, 처음부터 이상한 이야기였어요. 블레이저 교육권의 탈환. 그걸 위해서 국립 학원을 설립하고, '리벨리온'의 테러리스트들을 학생으로 내세우고, 칠성검무제에서 활약시켜 국립 학원의 지위를 흔들림 없는 것으로 만든다. 이것은──'블레이저 교육권의 탈환'이라는 목적을 이루는 수단치고는 너무나도 번거롭지요."
본래 '블레이저의 교육권 탈환' 자체는 연맹 내에 놓인 일본의 입장을 고려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였다.
일본은 세계 제3위의 경제 대국.
그 경제력은 물론이거니와 가치관이 다른 종교에도 무척이나 관대해서, 다른 신을 신앙으로 삼는 다른 나라 사이를 중개하는 접착제의 역할도 완수하고 있었다.
국제 기사 연맹에서 이미 빼놓을 수 없는 나라였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교섭하면 '블레이저 교육권의 탈환' 쯤은 일단 틀림없이 통과될 것이다.
그 요구를 거절하고 연맹에서 일본을 탈퇴시키는 쪽이 더 손해이기 때문에.
그렇다──.
"'블레이저 교육 권한의 탈환'은 교섭으로 어떻게 될 범주 안에 든 요건에 지나지 않아요. 그 안건에 일국의 수상 본인이 테러리스트와 관계되어 내란 같은 소동을 일으키다니 너무나 이상하죠. 안건의 레벨에 비해서 행위가 너무 지나쳐요. ……저는 줄곧 그게 신경 쓰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하신 말씀을 듣고 확신했습니다.
생각의 순서가 반대였던 겁니다.
즉, '블레이저 교육 권한의 탈환'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무법'을 행한 게 아니라,
선생님은 '무법'을 행하기 위해서 '블레이저 교육 권한의 탈환'을 구실로 이용했어요."
"……어째서 내가 그런 짓을 하지. 무언가 이유가 있을까?"
"선생님 개인의 동기는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추측할 수 있을 만한 요소가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여기까지 오면 이 행동의 이유는 하나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연맹 측에 교섭의 자리가 만들어지는 상황을 꺼렸어요.
양보받아서 '블레이저 교육 권한의 탈환'이라는 목적을 이루어버리면, 선생님의 진정한 목적──일본과 연맹 사이를 수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갈라놓는다는 진정한 목적을 이룰 수 없을 테니까요!"
그것이야말로 츠키카게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쿠로노는 확신했다.
아카츠키 학원에 '리벨리온'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쿠로노로부터 연맹 지부를 통해서 당연히 본부까지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연맹으로서도…… 이미 교섭의 자리를 마련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게 된다.
그것은 테러리스트에 굴복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츠키카게는 알면서, 아니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굳이 강경수단을 행사한 것이었다.
그의 진정한 목적인 '일본과 연맹의 결정적인 결렬'이라는 결과로 끌고 가기 위해서.
그리고 그런 쿠로노의 확신은──.
"…………후후후, 과연 타키자와야. 자네는 예전부터 무척이나 총명했지."
놀랄 정도로 산뜻하게 긍정했다.
츠키카게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사악한 웃음을 띠우며,
"거기까지 맞히면 숨기는 쪽이 부끄럽군. 뭐, 대강 타키자와가 예상한 대로야. 응. 내 최종목표는 국제 기사 연맹과 이 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결정적으로 끊어내는 데에 있어."
"어째서 그런 짓을……! 선생님이나 되시는 분이 다른 나라에 매수라도 당하신 겁니까?!"
"설마. 나는 매수 따위는 당하지 않았어. 모든 것은 이 나라를 위해서야. …………일본은 말이지, 국제 기사 연맹 같은 약자의 모임에 속해서는 안 돼. 이 나라는 자력으로 주권을 유지해나갈 힘을 가지고 있어. 연맹에 소속해 있어도 다른 나라의 뒤치다꺼리를 하는데 동원될 뿐이지 국익으로는 이어지지 않으니까."
"…………윽!"
츠키카게의 말을 듣고 쿠로노의 표정은 한층 더 험해졌다.
그의 말은 어느 정도 진실이기도 했다.
국제 기사 연맹이란 말하자면 국가끼리의 협력 체제.
연맹에 소속하는 나라가 비연맹 가맹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았을 때, 병력이나 물자를 신속하고 원활하게 지원하기 위한 파이프였다.
그 성질은 말하자면 의료 보험에 가깝다.
그 말인즉 '전쟁'이라는 병이 발생하고 나서야 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평상시에는 오히려 다른 나라를 위해 계속 출자를 하게 된다.
베트남, 이라크, 이스라엘──.
일본은 요 반세기 동안 한 번도 다른 나라와 전쟁을 치르지 않았는데 물자 지원이나 파병은 몇 번인가 수행하고 있었다.
그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 사실을 지적하며 일본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의견은 국민에게도 뿌리가 깊었다.
'탈연맹'을 내거는 츠키카게가 이끄는 현 여당이 반세기 동안에 커다란 힘을 얻은 것도 이런 시대 배경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리라.
그래서 이런 주장은 쿠로노로서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자원도 국토도 부족한 섬나라가 중국, 러시아, 미국 같은 3대국 사이에서 일개의 대국으로써 독립을 유지해나갈 수 있으리라고, ……진심으로요?!"
쿠로노는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확실히 연맹에 자리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부담은 크다.
손해를 본다는 의견도 결코 틀리지는 않으리라.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요 반세기 동안, 이 나라가 연맹의 그늘에서 보호받아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 보호를 잃었을 때 이 나라가 어떻게 되어버릴까.
쿠로노는 상상할 수 없었다.
상상할 수 없었기에 쿠로노는 지금 이 나라, 그리고 세계의 구조를 극적으로 변화시키려고 하는 츠키카게의 방식에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그렇게 불안해하는 쿠로노와는 달리 츠키카게는 털끝만큼도 동요를 보이지 않은 채,
"그렇고말고. 나는 반드시 이 나라에, 이 나라가 지녀야 할 영광과 판도를 되찾겠어."
확신마저 깃든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고요?"
"그래. 그 말대로야. 그 말대로고말고. 그러기 위해 세운 아카츠키 학원이야. ……아카츠키 학원은 반드시 이 대회를 제압한다. 그렇게 되면 이제 민중은 국제 기사 연맹의 지배를 바라지 않게 되겠지. 내 계획은 이미 멈추지 않아."
"…………."
"후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군. 그렇지만 그래도 좋아. 별로 이해받을 생각 따위는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사상의 자유는 국민의 권리지. 비판해도 돼. 실망해도 돼.
…………그렇지만, 이 나라의 수상은 나야. 이 나라가 갈 길은 내가 정해. 아무도 방해하게 두지는 않겠다."
반석같이 단단하고 무거운 의지를 느끼게 하는 말투로 말을 매듭짓고, 츠키카게는 설치된 재떨이에 담뱃불을 비벼 껐다.
그리고 흡연실의 출구를 향하면서 한마디──.
"사안은 일개 교육자 나부랭이가 주제넘게 참견할만한 수준이 아니야. 분수를 파악하거라."
스쳐 지나갈 때, 못난 학생을 꾸짖는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쿠로노에게 말했다.
이를 통해서 쿠로노는 이해했다.
이미 길은 갈라졌다고.
츠키카게에게는 이미 머무를 의지가 없었다.
멀어져 가는 다소 딱딱한 걸음 소리가 그 사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역시, 그를 멈추게 할만한 힘이 없다──.
그렇지만──.
"확실히, 선생님의 야망은 이미 일개 교육자 정도가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겠지요."
쿠로노는 방을 나가려고 한 츠키카게에게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등을 보인 채로,
"그렇지만 그건, 이 대회에서 아카츠키가 우승하게 될 경우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러쿵저러쿵할 것도 없이 당신의 야망은 깨부숴질 겁니다. ──제 학생들 손에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확신을 말로 표현했다.
결코 커다란 목소리는 아니지만 힘 있게 울리는 말투로.
그 말에 츠키카게는 문손잡이에 손을 얹은 채 한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기대하지. ……아카츠키를 멋지게 돋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해주기를 말이야."
한마디 말을 남기고서 방을 나갔다.
이리하여 신구지 쿠로노는 츠키카게가 품은 진정한 목적을 이해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 대회의 마지막까지 지금 이 자리에서 안 사실을 잇키 일행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 이야기를 해서 이 나라의 명운을 맡기는 일은 하지 않았다.
어째서냐 하면 이런 일은 시합 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도박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녀석들은, 이런 더러운 장외에서 벌이지는 일이나 의도 따위를 몰라도 돼.'
그저 순수하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싸우면 된다.
그렇게 하면──분명히 이길 수 있다.
일찍이 이 무대를 목표로 해 정점에서 '야차공주'와 격전을 벌인 쿠로노이기에 알 수 있었다.
아카츠키가 제아무리 실력자라고 해도, 그들에게는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이 칠성검무제라는 무대에 건 정열이었다.
그런 정열을 품지 않고서 이 싸움에서 이겨 남으려 하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다.
다른 싸움의 무대라면 모를까, 칠성검무제에 한해서는 그 정열 없이 승리 따위는 있을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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