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와의 별
파티 다음 날. 즉, 칠성검무제 개최 전날.
잇키와 시즈쿠, 그리고 아리스인 세 사람은 저녁 식사를 하려고 호텔 로비로 향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칠성검무제를 앞에 둔 마지막 만찬을 밖에서 먹기로 한 것이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어제 파티 회장에서 있었던 일막.
잇키가 사라에게 찢긴 옷을 갈아입은 뒤에도 파티는 한 시간 정도 이어졌다.
그리고 연회도 마지막에 가까워졌을 무렵, 잇키와 시즈쿠에게 모로보시가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이봐, 쿠로가네. 내일 만찬 벌써 어디에서 먹을지 정했어?』
『딱히 정한 건 아닙니다만, 호텔 레스토랑에서 때울까 합니다.』
특별히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게 답하자, 모로보시는 노골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그러면 안 돼. 모처럼 멀리서 오사카까지 왔으니 그 지역의 명물을 먹어야지!』
『과연. 그렇지만 오사카의 명물이라고 하면 뭡니까?』
『뭐, 철판에 밀가루 음식이겠지. 타코야키도 좋지만 그건 굳이 따지면 간식이니까. 끼니로 먹으려면 오코노미야키야.』
『그렇지만 오라버니. 오코노미야키라면 우리 도쿄의 란게츠에서 먹은 적 있지요?』
『바보! 그건 프렌차이즈 가게에서 파는 짬뽕을 먹고서 나가사키의 짬뽕을 먹고 왔다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이란 게 있어. ……좋아, 결정했어. 내일 만찬은 오코노미야키야! 내가 오사카에서 제일 맛있는 오코노미야키 가게로 데려가 주지!』
『어, 저기.』
『그럼 저녁 다섯 시에 로비 바로 앞에서 만나자!』
──뭐, 그렇게 이런 일막이 있어서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예정을 세워지고 말았다.
"정말이지, 무섭도록 강경한 사람이었어요. 오사카 사람은 다들 저럴까요?"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나에게는 반가운 권유야. 나, 오코노미야키를 먹어본 적이 없는걸. 그래서 모처럼 오사게 왔으니 한번은 먹어보고 싶은 참이었어."
"그랬어? 그럼 말해주지 그랬어."
"아무래도 내일 시합을 앞둔 두 사람한테 같이 가자고 하기는 부담스러워어."
보통은 그러리라.
칠성검무제는 리그전이 아니라 토너먼트였다.
즉, 한 번 지면 거기서 끝.
모든 시합에 최고의 집중력으로 도전할 필요가 있었다.
그 첫 싸움을 앞둔 전날에는 대부분의 선수가 집중에 힘을 쏟는다.
놀러 가자고 청하는 일은 삼가는 것이 보통.
"그렇지만 설마, 그 시합을 앞둔 사람이 권유해올 줄은 생각도 못했어."
그것도 칠성검무제 2연패라고 하는, 잇키 일행을 비롯한 참가자와는 또 차원이 다른 압박감을 받고 있을 터인 사람이, 하필이면 내일 싸울 사람에게 말이다.
"정말로 어이없을 만큼 대담하네요. 불편하다든가 그런 감정은 안 드는 걸까요?"
"들었다면 이런 권유는 해오지 않았겠지이."
"……뭐, 저는 원래 긴장과는 인연이 없으니 아무렇지도 않지만, 오라버니는 괜찮으신가요? 오라버니는 사람이 좋아서 거절하기 어려우시면 제가 따끔하게 말해도 되는데요?"
그렇게 물어보는 시즈쿠의 목소리가 걱정스러운 이유는 잇키에게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대표 선발전의 첫 싸움.
'사냥꾼'과의 대결에서 잇키는 긴장 때문에 호되게 시작했기에.
시즈쿠로서는 오늘 하루 오빠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서, 흐트러지지 않고서, 다가올 결전까지 남은 시간을 보내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모로보시에 대해서 하는 말에 가시가 돋치는 이유도 그 부분에 기인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지만──.
"괜찮아. 확실히 억지스럽게 정해진 느낌은 있지만, 싫었으면 제대로 싫다고 말했을 거야."
잇키는 휩쓸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인의 의지로 이 권유에 응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모로보시 선배가 말한 대로 확실히 모처럼 도쿄에서 먼 오사카까지 왔으니까. 맛있는 명물은 먹어두고 싶고……, 게다가."
"게다가, 뭔가요?"
"방에서 혼자 집중을 높이기보다, '칠성검왕'과 둘러싼 식탁 쪽이 즐거울 것 같고 말이지."
잇키는 단순하게 흥미가 있었던 것이었다.
'칠성검왕' 모로보시라는 남자 개인에게.
강함만이라면, 힘만이라면, 알 수단은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일개 개인으로서의 '칠성검왕'을 알 기회 따위는 좀처럼 없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뜻을 품고서 이 길을 살아 가는가.
접해보고 싶었다.
'워스트원'은 혼자서 집중을 높이기보다도 그 흥미를 우선한 것이었다.
"……대담함으로 따지면 이쪽도 좋은 승부가 되겠네."
아리스인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남자도 역시 내일 싸울 상대와 함께하기는 조금 거북하다고 느끼는, 그런 순진한 감정과는 인연이 없었기에.
그리고 세 사람이 로비에서 호텔 밖으로 나오자,
"어이. 이쪽이야, 이쪽!"
호텔 입구, 분수 앞에서 모로보시가 이미 잇키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기다리셨습니까?"
다소 잰걸음 기미로 달려가는 잇키 일행.
그런 그들에게 모로보시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됐어, 딱 제 시각이야. 내가 성급하게 온 것뿐이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렇게 말하면서 무언가 깨달은 듯이 시선을 아리스인에게로 향했다.
"응? 그쪽에 있는 멋진 형씨는 누구야?"
아리스인은 전 대표 선수라서 일단 얼굴 사진은 나돌았지만 모로보시는 그것을 기억하지 않은 것이리라.
파티에서는 보지 않았던 새 얼굴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 모로보시에게 시즈쿠가 한 걸음 앞으로 나가서,
"이 사람은 아리스인 나기, 저희와 같은 하군 학원의 동급생이자 제 친구입니다."
아리스인의 신분을 알렸다.
"딱히 사람 수를 지정하지는 않아서 불러왔습니다만, 안 됩니까?"
"아니, 아니. 전혀 상관없어. 밥은 여럿이서 먹는 편이 맛있으니까."
모로보시는 싱글거리며 그렇게 답하고,
"뭐, 나에 대해서는 알지도 모르겠지만 인사해둘까. 부쿄쿠의 모로보시야."
아리스인에게 자신의 이름을 대고 나서 악수를 청하듯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참 정중하네. 아리스인이야."
정중한 인사였다.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아리스인도 자신의 입으로 이름을 대고서 내밀어 진 오른손에 악수를 되돌렸다.
그리고 설핏 눈을 가늘게 뜨고서.
"우후후……, 말투는 거칠지만 신사네. 그런 남자는 내 취향이야."
"하아?!"
아리스인이 보내는 끈적거리는 시선에 모로보시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뭐, 처음 대면하는 남자에게 뜬금없이 이런 소리를 듣게 되면 무리도 아니었다.
그는 다소 당황한 표정으로 아리스인에게 되물었다.
"저기 그러니까……, 미안. 어디부터 개그야?"
"어머, 진심인데? 나는 남자의 몸으로 태어난 소녀야."
"어, 어어……. 그, 그런가. 큰일이겠다……."
"후후, 과연 '칠성검왕'이구나. 손이 단단하고 다부져."
"우와아아아아오!"
쓱쓱, 길고 가는 아리스인의 손가락이 오른쪽 손등을 쓰다듬자 모로보시는 안색이 새파래져서 홱 물러섰다.
"아하하. 순진한 반응이네에. 귀여워~."
"아리스. 너무 놀리지 마."
"후후. 미안해. 괜찮아, 모로보시 씨. 농담이니까."
"어, ……아, 아하하. 그런가, 그런가. 뭐야, 농담인가. 트랜스젠더는 태어나서 처음 만났으니 깜짝 놀라서……."
"나, 노멀에게는 손을 대지 않아."
"……트랜스젠더인 건 농담이 아니구나……."
'어쩐지 내가 처음 아리스인과 만난 날이 떠오르네.'
모로보시의 반응을 몇 개월 전의 자신과 겹쳐보며, 잇키는 그리운 기분을 맛보았다.
'나는 이제 적당히 익숙해졌지만, 맨 처음에는 깜짝 놀라겠지.'
그렇지만 이런 부분에서 모로보시는 잇키보다도 적응력이 있었다.
그는 한 번 헛기침하고서,
"뭐, 뭐, 괜찮아. 트랜스젠더도 노멀도 먹는 것에 차이는 없잖아."
그 마음을 가다듬더니 시선을 잇키에게 돌리고서 물었다.
"그나저나 '홍련의 황녀'가 없는데, 아직 이쪽으로 안 온 건가?"
"응. 어쩌면 당일에 아슬아슬하게 올 셈인지도 몰라."
"그런가아. 유감이네에."
내심 유감스럽게 한숨을 쉬는 모로보시.
뭐, 그도 그러리라고 생각하며 잇키는 모로보시의 마음을 이해했다.
자신이 어제, 앞으로 싸우게 될 상대를 이 눈으로 보고 싶어서 파티 회장으로 향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A랭크 기사 '홍련의 황녀'.
'칠성검왕'으로서는 꼭 한번 만나두고 싶은 존재임이 틀림없──.
"잘 먹는 모양이니 돈을 잔뜩 써줄 거라고 생각해서 기대했는데."
"네? 모로보시 선배, 지금 뭐라고……."
"아, 나, 나하하! 아무것도 아니야~. 혼잣말이야~."
"…………?"
갑자기 눈을 굴리며 거동이 수상해진 모로보시의 모습에 잇키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지금 무슨 소리를 작게 말했던 것일까 하고.
그렇지만 모로보시는 그것을 깊게 생각하게 하지 않으려는 듯이,
"자, 이제 시간이 되었으니 슬슬 갈까? 도쿄만큼은 아니어도 이 시간대의 상점가는 사람이 많으니까, 잃어버리지 않게끔 붙어서와~."
일동에게 출발 신호를 보내고서 총총히 걷기 시작했다.
◆◇◆◇◆
회장에서 가장 가까운 역으로부터 전철을 타고 10분 남짓 걸려 도착한 역.
네 사람은 그곳에서 전철을 내린 다음 모로보시에게 이끌려서 아케이드를 지나서 상점가로 발걸음을 들였다.
그 길을 가는 내내,
"앗! 모로보시다!"
"진짜네, 바보 모로보시가 있어! 너 뭘 하는 거야! 오늘 시합 아니야?!"
"바보는 너다. 애송이! 시합은 내일이라고!"
"호시! 올해도 우승 기대할게!"
"자리는 못 잡아서 현지에서는 못 가지만, 상점가 안에 적당히 TV를 놓고서 다 함께 응원할게!"
"나하하핫! 맡겨둬, 맡겨둬!"
"유, 지금부터 타쿠 씨랑 마작 칠 건데 함께 어때?"
"안 돼. 지금 도쿄에서 온 손님을 안내하는 참이니까, 다음 기회에."
"호시! 올해도 우승하면 이번에는 참치 뱃살 초밥 만들어주마!"
"진짜냐! 아저씨 지금한 말 기억해뒀으니까! 꼭이야!"
"그 대신 지면 콧구멍에 튜브 겨자를 처넣을 테니까 각오해라!"
모로보시에게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말을 걸어왔다.
응원하는 자. 소리치는 자. 놀리는 자──.
접하는 방식은 다양했지만 그 누구나 표정에 친밀함을 띠우고 있었다.
"모로보시 씨, 굉장히 인기 있네요."
눈앞의 광경에 어안이 벙벙한 듯이 시즈쿠가 중얼거렸다.
"스텔라 양이 거리를 걸어도, 이렇게까지 소란스럽지는 않아요."
"뭐, 스텔라는 확실히 인기가 있는 기사지만 유학생이니까 말이지. 현지 인기로 따지면 역시 현역 '칠성검왕'에게는 이길 수 없어."
칠성검무제라는 전국에 방영되는 커다란 이벤트가 있는 이상, 학생 기사에게도 당연히 팬이 생긴다.
학교 안에서만 그치지 않고 학교 밖에도 말이다.
그중에서도 칠성검무제의 패자이기도 한 '칠성검왕'쯤 되면 그 수는 각별하다고 해도 좋다.
"더군다나 칠성검무제 2연패는 전대미문의 쾌거니까. 그 성과에 손을 뻗으려 하는 현지의 영웅에게 다들 기대를 거는 거겠지."
"후후, 그런 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도 전혀 주눅이 드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만큼, 그도 상당히 거물이네."
정말 그렇다고 잇키도 동의했다.
"정말로 굉장한 사람이야. ──그런 일이 있었는데, 모두에게 기대를 받으며 그 기대를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 오라버니. 그런 일이라니 뭔가요?"
"어. ……그, 그렇구나, 시즈쿠는 모르는구나……."
시즈쿠가 꺼낸 물음을 듣고 잇키는 아뿔싸 하는 생각에 얼굴을 찡그렸다.
잇키가 툭 흘린 '그런 일'이란 모로보시의 과거에 얽힌 일이었다.
유명한 에피소드라서 딱히 숨길 일은 아니었다.
시즈쿠처럼 되물어오지 않는 점을 비추어 헤아려보건대 아리스인도 알고 있으리라.
그 정도로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시즈쿠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무심하다 해도 좋을 정도로 흥미를 품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를 수도 있는 일이었다.
혹은 들은 적이 있어도 흥미가 없어서 기억하지 않는 것인가.
어느쪽이든지,
'어쩌지.'
이 이야기를 모로보시 앞에서 해도 좋을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에게는 괴로운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 모로보시는 지금 팬의 응원에 답하는 도중이었다.
그래서 잇키는 되도록 작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시즈쿠에게 모로보시의 유명한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실은, 모로보시 선배는 리틀 때 한번 '은퇴'했어."
그것은 모로보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었다.
당시부터 '나니와의 별'이라는 별명으로 전국에 그 이름을 널리 알리던 어린 영웅은 맨 마지막 결승 토너먼트 개막 전날에 운이 없게도 전차 사고에 휘말려서 큰 상처를 입은 것이었다.
"그 상처는 캡슐(재생조)를 이용해도 무거운 장애가 남을 정도였던 모양이라서, 의사에게는 두 번 다시 걸을 수 없을 거라는 소리까지 들은 모양이야."
마력으로 몸을 지킬 수 있는 블레이저는 기본적으로 이런 사고에는 강하다.
그렇지만 한도는 있다.
전철 탈선 사고 같은 규모가 큰 사고에서는 마력의 보호 따위는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연히 그런 몸으로 싸우는 건 불가능해. '나니와의 별'은 마지막 리틀 리그를 기권함과 동시에 싸움의 세계에서 몸을 뺄 수밖에 없었어."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렇지만…… 지금은 평범하게 걸을 수 있고, 싸울 수도 있지요?"
"응. 그래."
잇키 일행의 앞을 걷는 모로보시.
그 발걸음에 위태로운 기색은 없었다.
아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작년의 칠성검무제를 제패한 영웅이기에.
"즉, 그는 재기불능이라는 말을 들은 장애를 재활로 극복하고 복귀한 선수야."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는 영광의 길을 그저 똑바로 나아가기만 한 남자는 아니었다.
그러기는커녕 한번 밑바닥까지 떨어진 적이 있는 남자였다.
그리고 4년이라는 긴 세월을 들여서 이 싸움의 무대에 복귀했고, 작년에 마침내 그 정점에 올랐다.
그가 걸어온 여정은 무릇 평탄과는 거리가 멀었다.
"평범하지 않아.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확실히 그러네요. 재기불능 수준의 상처를 극복하다니……."
"아니, 그 점도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시즈쿠."
"네?"
재기불능 수준의 장애를 극복한 것도 굉장하다고 하면 굉장하지만,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굉장한 건, 이 눈앞의 광경이야."
그렇게 말하고서 잇키는 모로보시에게 웃는 얼굴로 말을 거는 현지 사람들을 한눈에 바라보았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모로보시 선배의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아. 누구 한 사람도 몸 상태는 어떠냐? 같은 걱정하는 말을 던지지는 않아. 거기에 있는 건──절대적인 신뢰야."
그들은 다들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니와의 별'이 완전히 부활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한번 재기 불능이 되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걱정조차 시키지 않을 만큼의 신뢰를 쌓았다.
"그건.똑바로 정점에 올라서기보다도 훨씬 어렵고, 굉장한 일이라고 난 생각해."
기회가 되면 한번 묻고 싶다고 잇키는 생각했다.
무엇이 모로보시를 그렇게까지 하게 만들었는가.
그를 움직이는 핵.
그 마음의 심지에 있는 원동력을.
그것은 분명 모로보시의 강인함에 직결되는 요소일 터이기에.
──그렇게 잇키가 단단히 벼르는 곁에서, 시즈쿠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리고 그 굉장한 사람이 첫 싸움 상대라는 건가요. 오라버니는 정말로 운이 없네요. 전생에 어지간한 죄라도 범한 걸까요?"
"똑 부러진 좋은 여동생과 귀여운 여자 친구를 둔 데에 운을 다 써버린 게 아닐까?"
"뭐, 그렇다면 운을 합당하게 썼다고 생각해서 받아들일 수 있으니 전혀 상관없지만 말이야. ──응?"
그때 여기에서 갑자기 잇키만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오가는 인파 속에서 목덜미에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노려보는 것 같은 강한 시선을.
그 감각에 잇키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지만 이미 그 시선은 끊어졌고, 기척은 저녁 시간대의 떠들썩함에 쓸려가 쫓을 수 없게 되었다.
"오라버니?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시즈쿠에게 그렇게 대꾸하고서, 잇키는 늦은 만큼 잰걸음으로 거리를 좁혀 세 사람에게 합류했다.
기분 탓일 리는 없었지만 쫓아갈 수 없게 된 이상 신경 써도 별수 없다.
그렇게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일행은 상점가를 빠져나와──.
"여기야, 여기. 다들 도착했어!"
목적지인 가게에 도착했다.
"여기가 오사카, 아니 일본 제일의 오코노미야키 가게, '이치방보시'야!"
◆◇◆◇◆
모로보시에게 안내받은 가게는 상점가를 똑바로 가로지른 앞에 있었다.
입구에 '이치방보시'이라고 쓰여 있는 붉은 포렴을 건, 목조 2층 구조의 오래된 민가.
아마도 잇키 일행이 태어나기도 전에, 아니 잇키 일행의 부모가 태어나기 전보다도 훨씬 오래전에 지어져 이곳에 계속 서 있는 것이리라.
거무스름해진 나무의 벽면에서는 어딘가 위엄마저 느껴졌다.
"……어쩐지 점포의 구조가 굉장히 풍격 있네."
"나하하. 낡았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돼. 뭐, 다이쇼때부터 줄곧 이어진 가게니까 겉보기에는 어쩔 수 없어. 그렇다고 해도 그 시절에는 스키야키 가게였던 모양이지만 말이야."
"그렇지만 나, 이런 낡은 일본 건물을 좋아해. 어쩐지 노스탤직해서 멋지잖아?"
"아리스는 외국인이잖아."
"아, 아마도 일본계일 테니 괜찮아! 아마도지만! ……어머나, 이건?"
문득, 아리스인이 '이치방보시'의 건물 한 군데를 응시했다.
"응? 왜 그래, 아리스?"
대체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신경이 쓰여서 잇키는 아리스인의 시선을 쫓았다.
그의 시선 끝은 입구의 옆.
그곳에 있었던 것은 녹슨 우편함과 명패였다.
그리고 명패에는──'모로보시'라는 문자.
"어, '모로보시'라니, ……그럼 혹시나 여긴 모로보시 선배 댁입니까?"
물어보는 잇키에게 모로보시는 아뿔싸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아. 들통 나버렸나. 가게에 들어갈 때까지는 비밀로 해서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그랬는데. 뭐, 그렇지만 들켰으니 어쩔 수 없지. 그래. 여긴 우리 집이야."
"그렇다는 건 자기 가게로 호객 행위를 했다는 거야? 비, 빈틈이 없네~, 당신."
"나하핫. 그야 그렇지. 나는 나니와의 상인이라고."
눈을 부릅뜬 아리스인에게 시원스럽게 웃으면서 대담하게 나오는 모로보시.
상혼이 억척스럽다는 말은 그야말로 이런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우리 오코노미야키가 제일 맛있다는 말은 진짜니까 안심해. 멀리서 일부러 찾아온 손님에게 맛없는 음식은 안 먹여. 너희는 맛있는 오코노미야키를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지. 나는 집에 돈이 들어와서 행복하지. 행복이 둘이라서 만만세잖아? 그건 멋지잖아?"
"어쩐지 무섭도록 수상쩍은 어미로 터무니없이 유리한 말을 하는데 믿어도 괜찮을까요, 이 사람? 지금이라도 다른 가게를 찾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수상쩍은 표정으로 변한 시즈쿠.
그 마음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그렇지만 달리 갈 곳도 없고. 괜찮지 않을까?"
"뭐, 오라버니가 좋으시면 저는 상관없지만요."
"그럼 빨리 들어가자. 밖에도 좋은 냄새가 떠도니까, 난 배가 고파졌어."
"그럼 결정됐네."
일동의 동의를 얻고서 네 사람은 포렴을 지나갔다.
그리고 다소 잘 안 열리는 미닫이문을 드르륵 밀어 열고서 안으로 들어가자──.
"옷."
"와아……."
물씬, 실로 향기로운 소스의 향이 콧구멍을 간질였다.
밖에서 맡는 것보다도 몇 배나 진한,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였다.
이 냄새에는 평소 그다지 먹을 것에 대한 집착을 드러내지 않는 시즈쿠도 황홀해져서 진심을 흘렸다.
"이 냄새는 먹음직스럽네요……."
"정말이네. 게다가 상당히 번성하고 있는 모양이야."
아리스인의 말대로 가게 안에는 저녁 식사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상당히 붐볐다.
거의 모든 테이블 석이 매워졌고, 여기저기에서 주문하는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이만큼 번창하고 있으니 오사카 제일인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맛없지는 않으리라.
──그렇게 잇키 일행이 가게 안에 자욱이 낀 향기로운 냄새에 마음을 빼앗기는 중에,
"저기, 어머니!"
모로보시는 떠들썩함이 소용돌이치는 가게 안에 잘 들리는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철판 앞에서 대량의 오코노미야키를 뒤집고 있던 중년 여성이 고개를 들고서 모로보시와 많이 닮은 날카로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머, 너 어째서 여기 있어? 대회가 끝날 때까지는 호텔에서 지내는 건 아니었니?"
"사랑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려고 돌아왔지."
"징그러워! 농담은 그만둬! 닭살 돋아!"
"그렇게까지 말하기야?! 진짜 효도하는 보람이 없네."
"나는 평생 현역이야. 스스로 싸지른 아이에게 신세 안 져."
"그런 지꺼분한 말투 쓰지 마! 여기 음식점이라고!"
"빌어먹을 꼬맹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그렇죠, 여러분."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에 손님들이 웃음소리를 냈다.
꾸멈 없는, 참으로 오사카 상점가다운 분위기였다.
"그래서, 정말로 뭘 하러 돌아온 거야?"
"그 호텔에서 알게 된 도쿄 사람들을 안내해 왔어. 모처럼 오사카에 와주었으니 오사카에서 제일 맛있는 오코노미야키를 먹여주고 싶어서."
그렇게 말하더니 모로보시는 엄지로 뒤에 있는 잇키 일행을 가리켰다.
"아아, 그렇게 된 거로구나."
모로보시의 어머니는 그 대화를 통해 대강 사정을 헤아린 모양이었다.
그녀는 작업하던 손을 멈추고서 땀투성이가 된 얼굴에 친밀감 있는 웃음을 지었다.
"어서 오세요. 유다이의 어머니입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어요."
"아, 말씀 감사합니다."
"오사카에서 제일 맛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줌마가 기합을 넣어서 만들 테니까 기대해요."
"네, 기대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어쩐지 엄청나게 붐비네, 오늘. 자리는 비었어?"
"아아, 마침 테이블 석이 하나 비어 있으니까, 거기에 앉도록 할까.
──코우메~. 손님을 테이블 석으로 안내하렴~."
가게 안에 지시를 내리는 모로보시의 어머니.
그 목소리에 반응해서, 일본 전통복에 앞치마를 찬 소녀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잇키 일행 곁으로 달려왔다.
점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린, 겉보기에 중학생쯤 되는 단발머리 소녀였다.
"어머, 귀여운 아이네. 혹시나 당신 여동생이야?"
"그래. 여동생인 코우메야. 나랑 다르게 블레이저는 아니지만."
아리스인의 예상을 모로보시가 긍정했다.
이쪽은 어머니와 다르게 그다지 모로보시와는 닮지 않았다.
혹시나 어쩌면 아버지를 닮은 것일지도 모른다.
"코우메. 손님들을 끝에 있는 테이블로 안내해 드려라."
어머니의 지시를 듣고 모로보시 유다이의 여동생 코우메는 끄덕 고개를 주억인 다음 잇키 일행의 앞에 나섰다.
그리고 잇키와 눈을 마주친 순간──.
"…………!"
코우메는 눈을 크게 뜨고서, 말없이 놀라움 어린 표정과 당황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응?'
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잇키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옆에서 모로보시가 도움말을 넣어왔다.
"나랑 내일 싸울 상대가 와서 깜짝 놀란 모양이야."
"아아, 과연."
그렇지만 놀라움은 한순간.
코우메는 곧바로 영업용 미소를 다시 지었다.
이런 점은 과연 장사꾼의 딸이었다.
그녀는 꾸벅 예쁜 몸짓으로 인사를 하고, 일본 전통복의 깊은 소매에서 스케치북을 꺼내 들고서,
『어서 오세요♪』
빙긋 따스하게 웃는 얼굴로 스케치북을 넘기고 그곳에 적힌 둥글고 귀여운 글자를 잇키 일행에게 보였다.
"어……."
그 예상 밖의 행동에 잇키는 물론이고 뒤에 있는 두 사람도 얼굴에 당황스러움을 띠웠다.
뭐, 무리도 아니었다.
자신의 입이 아니라 필담으로 인사를 해오는 점원 따위는 그다지 없다.
그래서 모로보시도 이 반응을 예상했는지 옆에서 재빠르게 보충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말을 좀 할 수 없을 뿐이니까."
"아아, 그래서 필담인가요……."
"그렇지. 별로 몸이 나쁜 건 아니야. 정신적인 문제인 듯해."
배려하는 것 같은 잇키의 말투에 모로보시는 별것 아니라며 밝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리고 코우메 자신도 스케치북에,
『저는 얌전해서요.』
그런 장난기 있는 말을 써왔다.
"잘도 말하는구나. 이 말괄량이가."
오빠에게 이마를 툭 손가락 끝으로 찔리자, 코우메는 즐거운 듯이 표정을 싱글거렸다.
말을 할 수 없다.
갑자기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역시나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곤혹스러웠지만──, 두 사람의 즐거워 보이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사이가 좋네요."
"뭐, 단 하나뿐인 여동생이니까. 귀엽기 마련이지."
그때, 등을 쿡쿡 찌르는 감촉.
대체 뭘까 하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자,
"단 하나뿐인 귀여운 여동생입니다."
시즈쿠가 어쩐지 영문 모를 말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어쩌라는 걸까.'
잘 몰라서 어쨌거나 모로보시를 흉내 내기로 하고 쿡 찌르자,
"~~~~으윽."
시즈쿠는 간지러운 듯이, 그렇지만 무척이나 기쁜 듯이 얼굴을 살짝 싱글거렸다.
……혹시나 모로보시 남매와 경쟁한 것일까.
시즈쿠가 생각하는 바를 읽기란 상당히 어려웠다.
"그렇지만, 뭘까.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정말 붐비네."
가게 안의 모습을 한번 둘러본 모로보시가 그런 말을 툭 흘렸다.
그 중얼거림에 코우메는 재빠르게 펜을 움직이며,
『칠성검무제를 보러 지방에서 온 사람이야. 오늘은 처음 보는 사람이 많아.』
오늘 가게의 상황을 간결하게 적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보고서 모로보시는 결단했다.
"그런가. ……으음. 이건 나도 들어가는 편이 낫겠네. 다들 안내하기만 해서 미안하지만, 잠시 바쁠 것 같으니까 어머니를 돕고 올게."
"어머, 함께 안 먹어?"
"그럴 생각으로 왔는데, 좀 사람이 많아서 말이지."
확실히 가게 안은 나름대로 넓음에도 불구하고 비어 있는 자리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철판도 구석에서 구석까지 크게 가동해서 흰 연기를 피우고 있었다.
옆에서 보기 에도 바빠 보였다.
"알겠습니다. 저희는 괜찮으니 부모님을 돕고 오세요."
모로보시와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은 조금 유감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붙들어 놓기도 마음이 불편하다.
모로보시는 그렇게 배려를 드러낸 잇키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미안. 이쪽에서 권유했는데. 주문은 코우메에게 말해주면 돼. 오늘은 내가 낼 테니까, 뭐든지 좋아하는 거 시켜도 돼."
"어머, 호객이 아니었나요?"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묻는 시즈쿠의 모습에, 모로보시는 장난을 성공한 소년처럼 웃음을 흘렸다.
"농담인 게 뻔하잖아. 간사이 사람이 웃으면서 하는 얘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안 돼."
아무래도 지금까지 한 말은 전부 농담이었고, 모로보시는 처음부터 잇키 일행에게 한턱낼 생각이었던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리 그래도 미안해요. 스스로 값을 치르겠습니다."
어제 막 만나서 거의 처음 대면하는 사람이 그렇게까지 해주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잇키는 그렇게 말하고서 피하려고 했지만,
"괜찮아. 별로 비싼 것도 아니고."
"아니, 그렇지만."
"괜찮다고 했잖아. 나는 3학년 선배니까. 선배가 하는 말은 들어야지."
그렇게…… 이러니저러니 해서 결국 강행하고 말았다.
모로보시는 다양한 부분에서 강경한 남자였다.
"그럼 코우메, 뒤를 부탁할게."
끄덕 고개를 주억이는 여동생에게 잇키 일행을 맡기고, 모로보시는 이마의 반다나를 바로 고치고는 굽는 곳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배웅하자 코우메는 잇키 일행을 향해 다시 방향을 바꾸고서,
『그럼 자리로 안내하겠습니다~.』
팔락, 스케치북을 넘기며 메시지를 표시했다.
아무래도 자주 쓰는 말은 미리 적어둔 모양이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코우메에게 가게 안쪽의 테이블로 안내받았다.
『이쪽 테이블 석에 앉으세요♪』
"고마워."
감사 인사를 하고서 잇키 일행은 자리에 앉아서 각각 적당히 주문을 했다.
그 내용을 스케치북에 쓴 다음 잘못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고 나서 주방으로 돌아가는 코우메.
그녀의 뒷모습을 배웅하고, 이제 메뉴가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세 사람이 몸을 이완시켰다.
──그때였다.
"뭐야. 그럼 진짜 키리코 양은 모로보시와 눈맞은 게 아니구나."
"그러니까 그렇다고 했잖아~. 애당초 전혀 취향이 아닌걸."
그런 대화가 뒷좌석에서 흘러나왔다.
두 여성의 목소리, 그중 하나는…… 잇키가 어제 막 들었던 목소리였다.
설마 하고 생각하며 일동이 동시에 그 테이블에 눈길을 주었다.
그러자 건너편도 또한 잇키 일행의 존재를 눈치챘는지 이쪽으로 얼굴을 향했고,
"어?"
"아──."
"어머나."
다섯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교차했다.
그곳에 있었던 사람은 예상대로──.
"야쿠시 양!"
'백의의 기사' 야쿠시 키리코와 강화 합숙할 때 찾아왔던 부쿄쿠 학원 신문부인 야고코로였다.
◆◇◆◇◆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루어진 예상치 못한 재회.
대회 회장의 옆이나 호텔 레스토랑이라면 모를까, 비슷한 밀가루 음식점이 즐비한 오사카 중심부에서 다른 학교의 칠성검무제 대표 선수를 만나게 될 줄이야. 굉장한 우연이었다.
맨 처음에 잇키 일행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야기를 듣자하니 이 상황은 우연이 아니었다.
어째서냐 하면──.
"어?! 모로보시 선배의 큰 상처를 치료한 게 야쿠시 양이었습니까?!"
"그래. 뜻밖의 인연이지."
키리코는 오코노미야키를 먹으러 왔다기보다도 모로보시를 만나러 왔기 때문이었다.
"아니, 뜻밖이라고 할지, 애당초 야쿠시 양은 모로보시 선배랑 동년배죠? ……의사면허로 따져서 그런 걸 해도 괜찮았습니까?"
"나았으니 상관없잖아?"
'그, 그런 문제일까…….'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문제를 깊게 쑤시면 터질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럼 …… 야쿠시 양은 예전에 봐주었던 환자의 얼굴을 보러 왔다는 겁니까?"
그래서 잇키는 굳이 추궁하지 않고서, 오늘 키리코가 이 자리에 버티고 있는 이유만을 물었다.
그 물음에 키리코는 긍정 반 부정 반이라는 식의 애매한 끄덕임을 돌려주었다.
"얼굴을 보러 왔다기보다는 왕진일까."
"어."
왕진. ──그 말에 잇키는 덜컥 불길한 불안감을 느꼈다.
"모로보시 선배, 완치된 게 아닙니까?"
불안함은 모로보시가 아직 장애를 안고 있을지에 대한 근심이었다.
그렇지만 잇키의 걱정을 키리코는 곧바로 부정했다.
"아아, 괜찮아. 제대로 완치는 되었어. 다만 꽤~나 무모한 치료를 했으니까. 일단 개인적인 애프터케어를 하려고. 자신이 봐준 환자에게 만에 하나의 일이 생기면 싫잖아?"
"아, ……그 말은 야쿠시 양의 개인적인 선의, 라는 뜻입니까."
"그렇지."
"그건…… 다행이네요."
키리코의 부정에 잇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모처럼 '칠성검왕'과 싸울 수 있는데, 예전 상처로 몸 상태를 무너뜨려서는 너무나도 유감스럽다.
"뭐, 그런 이유로 만에 하나를 대비해 애프터케어를 하려고 생각했는데 호텔 방에는 없지 뭐야. 그래서 죠가사키에게 물어봤더니 집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이쪽으로 온 거야. 택시를 이용해서 내 쪽이 좀 빨리 왔던 모양이지만. ……그렇지만 그게 문제였어. 쓸데없이 일찍 도착해버린 탓에 이쪽의 매스컴 종사자가 엉뚱한 의혹을 걸어왔으니까."
그렇게 말하고서 키리코는 야고코로에게 원망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들은 바에 따르면 모로보시와의 불순 이성 교제를 의심 받아서 실컷 추궁당한 모양이었다.
"하하……, 뭐라고 해야할까. 그거 참 고생하셨겠네요."
"정말 그렇다니까아."
"아니, 그렇지만 이미 완치된 예전 환자의 집으로 바지런히 찾아가다니, 완전히 의사와 환자의 연애구도잖아. 가십의 냄새가 풍풍 난다고. 의심해서 억측하지 말라고 하는 쪽이 무리야."
"농담하지 마, 그런 0|수처럼 눈매가 사나운 남자. 전혀 타입이 아니야. 나는 쿠로가네처럼 감미로운 마스크의 연하가 취향이야."
"네?!"
뜬금없이 터무니없는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자, 잇키는 놀리움 어린 소리를 질렀다.
그렇지만 그런 순진한 반응을 보이는 잇키에게,
"음후후♡ ……있잖아. 괜찮으면 이다음에 누나가 시합 전에 건강 검진을 해줄까? 잔뜩 서비스해줄게."
키리코는 핥는 것 같은 시선을 보내면서 슬쩍 몸을 비틀더니, 백의의 가슴께를 벌려서 자신의 가슴골을 내보이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이 광경은 상당히 강렬했다.
크기로는 스텔라를 당해내지 못했지만, 연상에게만 있는 관능적인 매력이 잇키의 안구를 후려쳤다.
'그보다 애당초 서비스가 붙는 건강 검진이란 게 뭐지?!'
거의 틀림없이 고혈압이라고 진단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상태로 잇키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노라니,
"실례합니다만──."
잇키를 보호하듯이, 시즈쿠가 아리스인의 옆에서 잇키의 옆으로 이동해서 두 사람 사이를 가르고 들어왔다.
그리고 유혹의 시선을 보내는 키리코를 노려보며,
"천박한 건 이미 스텔라 양으로 충분하니 됐습니다."
"좀 더 말투란 걸 신경 써야 하잖아?!"
이 자리에 스텔라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내심 안심하는 잇키.
그 옆에서…… 문득 야고코로가 아리스인에게 물었다.
"그런데 나기 씨 일행은 역시 모로보시가 이곳으로 데리고 온 거야?"
"어머. 잘도 알았네."
"역시 그랬나."
아리스인은 감출 이유도 없기에 솔직하게 긍정했다.
그러나 지금 꺼낸 어딘가 확신 어린 말투는──.
"혹시나, 이런 일이 곧잘 있습니까?"
제2장 나니와의별 115
"응. 뭐, 곧잘, 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교류전 같은 데서 다른 학교의 강한 아이가 오면 가끔은. 뭐, 멀리서 일 부러 오사카?까지 찾아와준 강적에 대한 모로보시 나름의 환영이겠지. 내가 오늘 이곳으로 온 것도 그걸 기대해서 죽치고 있었던 거야.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얻어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렇지만 하필이면 내일 단 하나뿐인 승자의 자리를 걸 고서 싸우는 상대를 데리고 올 줄이야, 예상치 못했어. 정 말 뻔뻔한 녀석이야."
"확실히, 보통은 그러지 않겠죠."
"……그 초대를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너도 대단하지만/' "하하…. 뭐, 자신이 뻔뻔하다는 건 자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F랭크로 '칠성검왕'을 노리려고 하는 생 각 따위는 안 한다.
'그렇지만 적을 환영한다라.'
그것은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호쾌해 보이는 인상이 있 는 모로보시다웠다.
그렇게 잇키가 생각하고 있노라니??.
특 하고 시즈쿠를 끼고서 옆에 앉은 키리코가,
"음후후. ……그렇지만 너희가 생각하는 것만큼, 모로보 시는 뻔뻔하기만 한 녀석은 아니야."
그런 말을 중얼거 렸다.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의 의미야. 오늘, 쿠로가네 일행을 초대한 건 확실히 환영이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그 이상으로 그의 경우에는 흑심이 있을 거야."
"흑심?"
그 불온한 울림에 같은 부쿄쿠 학원의 야고코로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혹시나 맛있는 식사로 은헤를 베풀어 싸우기 어렵게 한다든가 하는 말을 할 셈이야? 모로보시는 그런 교활한 생각을 하는 타입이 아니잖아."
"후후. 그렇지. 그런 게 아니야. ……오히려 반대지."
'반대?'
반대라니 무슨 뜻일까?
잇키는 키리코의 말에 숨은 진의에 대해서 사고를 굴리려고 했다.
그렇지만──.
"우왓! 깜짝 놀랐다! 뭔가 큰일이 벌어졌네!"
그것은 주문받은 음식을 가지고 온 모로보시의 놀라움에 지워졌다.
◆◇◆◇
5인분의 요리를 두 개의 접시에 얹어서 날라 온 모로보시는 늘어앉은 면면을 보고서 경악했다.
"선생님이 왔다는 건 코우메에게서 들었지만. 너도 있었냐, 고코로."
"실례되는 녀석이네. 소녀의 얼굴을 보고서 '우왓'이라니."
"평소 행실이 나쁜 거야. 매스컴이. 선생님이나 쿠로가네 일행에게 폐를 끼치지는 않았겠지?"
"요만큼도 끼치지 않았어."
"어."
너무나도 당당한 야고코로의 대꾸에 키리코가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사람께게만은 뻔뻔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네…….'
이미 뻔뻔함을 지나쳐 염치없었다.
"그보다 네가 남 말은 못하겠지. 시합 전날인데 다음 대결 상대를 자기 집으로 끌고 오는 건 비상식이잖아."
"별로 억지로 그런 건 아니니까 상관없잖아."
"뭘 모르네. 너 인상이 사납잖아. 거절하고 싶어도 거절 할 수 없었던 걸지도 몰라."
그 지적에 모로보시는 실소했다.
"바보 같은 소리 마. 내 얼굴에 쫄만한 녀석이 칠성검무제에 나올 수 있겠냐. 그렇지?"
"뭐, 억지로 온 게 아닌 건 틀림없어요."
잇키의 답에 "자, 보라고" 하고 말하며 만족스러워하는 모로보시.
그렇지만 그 표정은 금세 흐려졌다.
"……그렇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얼굴이 모여 있네. 나도 이곳에 앉고 싶었어. 이럴 때 일이라니 운이 없구만, 정말."
모로보시는 아쉬운 듯이 중얼거리면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두 개의 테이블에 요리를 늘어놓았다.
잇키의 앞에도 주문했던 돼지고기 오코노미야키 접시를 놓았다.
작은 피자 크기 정도 되는, 상당히 배부를 것 같은 큰 판이었다.
"자. 주문한 돼지고기 셋에 해선 디럭스 둘 포장."
"해에. 역시 굉장히 향기가 좋아. ……게다가 정말로 가다랑어포가 춤추는구나."
처음 보는 실물의 오코노미야키에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아리스인의 텐션이 올라갔다.
다른 멤버도 가다랑어포를 춤추게 하며 피어오르는 먹음직스러운 향기에 이끌려서 나무젓가락을 손에 들었다.
아까 전 키리코가 말했던 '흑심'이란 무엇일까.
잇키는 아직 살짝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미 그 이야기를 이어갈 분위기는 아니었다.
'모로보시 선배 본인에게 어떤 흑심이 있습니까? 그렇게 물어볼 수는 없고.'
그렇다면 자신도 우선은 식사를 마치도록 하자.
생각을 바뀌어 잇키도 자신의 나무젓가락을 들고서, 앞에 놓인 돼지고기 오코노미야키의 큰 판에 눈길을 주었다.
그러자 그 상황에서 사소한 위화감을 깨달았다.
이전 도쿄에서 본 오코노미야키와는 무언가가 달랐다.
'아아, 그렇구나.'
"이 가게는 테이블에 철판이 없네요."
"그래, 그걸 달면 무지막지하게 가스비를 먹는 데다 한 쪽 면을 너무 굽게 되니까 말이지. 뭐, 있는 쪽이 분위기가 나겠지만 우리 가게에서는 안 해. 모처럼 최고로 잘 구워서 마무리해 내왔으니까, 그 상태로 먹어주었으면 하는 점도 있지만."
과연. 오사카 제일을 자부하는 만큼 여러모로 고려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그 최고로 잘 구운 상태가 손상되지 않는 사이에 먹도록 하자.
그렇게 생각하고서, 잇키는 자신의 몫인 돼지고기 오코노미야키를 적당한 크기로 젓가락으로 잘라,
"그럼 잘 먹겠습니다."
한턱 내겠다고 말한 모로보시에게 한마디 인사를 하면서 입으로 날랐다.
그리고 혀 위에서 한입 씹은 순간──.
'오오……!'
잇키는 감탄으로 눈을 크게 떴다.
확실히, 이전 도쿄에서 먹은 것과는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맛있다. 차원이 다르게.
맛의 주역은 놀랍게도 소스도 돼지고기도 아니라 반죽이었다.
더군다나 반죽 안에 있는 양배추. 이 식감이 정말이지 싱싱하고 달콤했다.
더구나 나중에 남는 감칠맛도 있었다.
"우와, 이거 맛있어! 그렇지, 시즈쿠!"
"……응. 도쿄에서 먹은 것과는 전혀 달라. 그쪽 건 소스맛뿐이라서 짜기만 했는데, 이 오코노미야키는 달콤해. 반죽의 달콤함을 소스의 짭짤함이 끌어올리는 느낌이야. 나에겐 좀 양이 많은 것 같지만."
아리스인도 시즈쿠도 상당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특히, 시즈쿠는 그녀답지 않을 만큼 말이 많아졌다.
시즈쿠는 상당한 미식가여서 음식에 까다로웠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까지 칭찬하는 일은 드물었다.
다른 두 사람도 각각 만족스럽게 따끈따끈한 오코노미야키를 볼이 미어지게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서 모로보시는 실로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나하하. 그렇지. 맛있겠지~. 우리 가게엔 숨겨진 맛이 있으니까 말이야. 쿠로가네, 뭔지 알겠어?"
"숨겨진 맛, 이라고요……."
화제를 넘겨받은 잇키는 혀에 의식을 모아 음식을 씹으면서 생각했다.
두드러진 맛은 양배추의 싱싱하고 강한 달콤함과 반죽 그 자체의 부드러운 달콤함.
소스의 관맛이 이를 한데 묶어서 마무리하는 것이 이 오 코노미야키의 대략적인 특징이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라 신기하게도 '감칠맛'이 났다.
씹고 삼킨 다음에도 입에 남는 달콤함이.
이 식감은 양배추에서만 나는 달콤함은 아니리라.
양배추의 달콤함은 사르륵 목에 넘어가는 종류의 상쾌한 달콤함이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 감칠맛을 만들어내는 건 숨겨진 맛이라고 생각하지만.'
"으음, ……혹시나 치즈입니까?"
곰곰이 맛을 확인해 보니 달콤함이 남는 방식이 치즈 케이크와 소금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답하자, 모로보시는 감탄스럽다는 듯이 목소리를 흘렸다.
"헤에. 미각이 좋구만. 정답이야. 우리 오코노미야키는 숨겨진 맛에 치즈가 들어 있어."
들어 있는 양은 아주 조금.
치즈가 맛을 주장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 소량이 감칠맛과 식감을 증폭시키는 것이라고 모로보시는 말했다.
"그야말로 숨겨진 맛이라는 느낌이 드네요."
"호객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 불만이었지만 이 맛이라면 엄청나게 만족스러워. 따라오길 잘했어."
확실히 아리스인이 말한 대로였다.
도쿄에서 먹은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
전혀 다른 음식이었다.
모로보시의 말에 거짓은 없었던 것이었다.
오길 잘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했기에──잇키는 모로보시에게 물었다.
"저기, 모로보시 선배. 이렇게 맛있는 걸 정말로 대접받아도 괜찮을까요?"
"괜찮아, 괜찮아. 그보다 데려와 놓고서 돈을 뜯어내면 어머니가 내 목을 비틀 거야. 그러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일부러 먼 오사카까지 와준 라이벌에 대한 환영이야."
"그렇지만 어쩐지 받기만 해서 미안하다는 느낌이……."
'이치방보시'의 오코노미야키는 비교 대상이 없어서 오사카 제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불만 없이 맛있었다.
칠성검무제를 앞둔 전날에 자신의 시간을 쪼개서 이곳으로 데리고 와준 것만으로도 모로보시에게는 충분히 감사했다.
게다가 대접받기까지 했으니 면목 없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잇키에게 모로보시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그럼 그건 내일 시합에서 갚아주도록 해."
"시합에서요?"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서 앵무새처럼 되묻자, 모로보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맛있는 걸 잔뜩 먹으면 의욕이 나잖아. 그러니 오늘은 잔뜩 기력을 보충하고서. 내일, 최고의 컨디션으로 나와 겨루는 시합에 임해줘. 이 이상 없을 만큼 최상의 상태로 말이지. 그래 주면 나도 대접한 보람이 있어. ──그런 상대를 때려눕히고서야 자신이 강하다는 증명을 할 수 있으니까."
"──!"
그때, 잇키는 깨달았다.
찬찬히 보니, 모로보시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 아래, 그 눈동자 안쪽에──.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인, 살기와도 비등한 강한 투기를 불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숨겨진 투지를 깨달음과 동시에,
'반대라니, 그런 뜻이었나…….'
잇키는 키리코가 한 말의 진의 또한 이해했다.
그랬다. 모로보시의 흑심은 대전 상대에게 다정하게 대함으로써 싸우기 힘들게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정반대.
그는 자신이 생각에 미치는 한도 내에서 하는 최고의 환영으로, 자신이 싸우는 상대의 기력을 보충해주고──다가올 자신과의 싸움에 이 이상 없을 최고의 상태로 임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상대의 저조함이나 방심으로 건진 승리 따위는 안중에 없다.
바라는 것은 최상의 상대와 펼치는 사력을 건 결투.
그런 끝에 승리를 얻기에 의미가 있다. 가치가 있다.
그것이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의 기사도이기에.
"모처럼 최고의 무대에서 펼치는 진검 승부. 자신에게도 상대방에게도 한을 남기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내일은 서로 전력으로 마음껏 맞붙자. 어때, '어나더원'."
서로 전력으로.
그 말은 학생 기사의 정점에 선 '칠성검왕'이 F랭크 기사인 잇키를 전력으로 싸우기에 걸맞은 상대라고 인정한다는 뜻.
고마운 일이라고 잇키는 생각했다.
전력을 건 싸움 끝에 얻는 승리.
그것을 가장 좋다고 여기는 것은 잇키로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깔보는 것이 당연하다. 기껏해야 풋내기 F랭크.
그런 자신에게 한 번 정점에 섰던 남자가 진심이 되어주었다.
'오늘, 여기 오길 잘했어.'
모로보시의 진의를 알고서, 잇키는 절절히 그렇게 생각했다.
강적에게 강적이라고 인정받아서 전력을 요구받는 것, 기사에게 있어서, 무인에게 있어서, 이만한 영예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 흑심, 거절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기꺼이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내일 온 힘을 다해 원수로 갚도록 하겠습니다."
"바라는 바야."
◆◇◆◇◆
잇키 일행은 그 후 한 시간 정도를 '이치방보시'에서 지내고서 가게를 나왔다.
모로보시는 자신의 손이 빌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말해왔지만, 잇키 일행이 식시를 마친 후에도 가게의 손님 출입은 잦이들기는커녕 늘기만 했다.
모로보시도 전혀 손이 빌 기색이 보이지 않았기에 역시나 이 이상 가게의 회전을 나쁘게 하기는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후우. 이렇게 배가 부를 때까지 용서 없이 음식을 먹기는 오랜만이야아."
"확실히. 좀 힘드네."
"정말. 아리스인도 오라버니도 두 개나 먹다니 양이 너무 많았어요. 스텔라 양도 아니고."
"아니, 스텔라는 두 개로 안 끝나겠지."
'이 말도 스텔라가 들었다면 맞짱 뜨기 시작했겠지.'
그런 싸움이 상당히 그립게 여겨졌다.
스텔라가 '야차공주'의 곁으로 수행하러 간 지 고작 일주일 남짓인데.
'……오늘도 스텔라가 있었다면 좀 더 떠들썩했을 텐데.'
학원에서는 항상 함께 있었던 만큼, 막상 떨어져 보니 쓸쓸함도 한층 더했다.
그래서 잇키는 생각했다.
'이 대회가 끝나고 나서, 모로보시 선배네 가게에 오자.'
이번에는 스텔라도 데리고서.
분명 그녀도 기뻐해 줄 것이 틀림없다.
가슴속을 한순간 빠져나가는 쓸쓸함에 잇키는 그렇게 맹세를 했다.
그러고 나서 곁에서 걷는 키리코에게 아까부터 신경이 쓰였던 점을 물었다.
"그런데 야쿠시 양."
"응? 뭐야?"
"우리들과 함께 나와버렸는데, 모로보시 선배의 진찰은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겁니까?"
신경 쓰였던 점은 그것이었다.
키리코는 결국 먹을 만큼 먹기만 하고 잇키 일행과 함께 가게를 나왔기에, 본래 목적이었을 터인 모로보시의 진찰을 하지 않았다.
혹시나 잊어버리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에 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물음에 키리코는 아뿔싸 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고서,
"어머. 그거라면 이미 했는데?"
당당하게 그렇게 대꾸했다.
"네? 언제요?"
"음후후♡ 나 정도 되는 물술사에게 걸리면 피의 흐름도 림프의 흐름도, 옷 위에서라도 손에 잡힐 듯이 알 수 있어. ──그럴 마음이 들면 그 흐름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을 읽은 것도, 그 흐름에 간섭해서 몸을 빼앗는 것도 가능해."
"굉장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그런가요, 어제 타타라 양의 움직임을 봉한 건 그 기술이로군요……."
"정답이야. 원래는 환자의 재활을 돕기 위해서 짠 기술인데, 바보를 길들이는 데 쓰기에도 편리하지. ……게다가."
"게다가?"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건 굉장히 기분이 좋은걸."
대단히 환하게 웃는 얼굴로 끔찍하게 무서운 말을 하는 키리코.
잇키는 내심 그녀에게 보살핌만은 받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그래서 모로보시 선배의 진찰 결과는 어쨌습니까?"
진찰 결과를 물어보았다.
어쨌든 내일 진검승부를 할 상대였다. 당연히 신경 쓰였다.
그러자 키리코는 조금 자랑스러운 듯이 답했다.
"어이없을 정도로 건강해서 안심했어. 뭐, 과연 내가 치료한 환자라고 해야 할까."
"즉, 모로보시 선배는 최상의 상태라는 뜻입니까?"
"그렇게 되네. ……너, 1회전은 고생할 것 같아."
안됐다는 말투였지만, 물론 잇키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그래야 은혜를 원수로 갚아주는 보람이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며 불타오를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다섯 명은 상점가를 빠져나와 역에 다다랐다.
"그럼, 나는 여기서 실례할게. 나만 호텔이 아니니까."
"배웅해줄까?"
홀로 집으로 돌아가는 야고코로에게 아리스인이 배려해 주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사절했다.
"됐어. 아직 그렇게 늦은 시각은 아니고. 나도 학생 기사니까."
그리고 한 걸음 잇키 일행의 무리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더니,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아아, 그렇지. '워스트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는데."
"뭡니까? 새삼스럽게."
그렇게 되묻자 아고코로는 어이 없음이라도 쓴웃음이라고도 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을 짓더니,
"뭐, 나는 상당히 허튼 정보라도 재미있으면 기사로 쓰는데, 좀 지나치게 엉뚱한 소문이 있어서 역시나 진위를 확인해두려고."
그런 말을 꺼냈다.
이 야고코로에게 너무 지나치게 엉뚱한 소문이라고 말하게 하다니. 무섭도록 불온했다.
잇키는 어전지 묘한 땀을 흘리면서 머뭇머뭇 재촉했다.
"그건 어떤 소문입니까?"
"아아, 응. ……네가 '비익'과 싸워서 이겼다는 소문 인데, 진짜야?"
"윽────."
야고코로의 물음에 잇키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서 놀라움을 드러냈다.
'비익'──세계 최강의 검사 에델바이스와 벌인 싸움은 사람 없는 교정에서 치러진 결투였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고, 뉴스로도 보도되지 않았다.
그래서 설마 다른 사람이 그 싸움에 관해서 물어올 줄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반응을 보고서 야고코로는 앞서 말했다.
"어! 아니, 뭐야 그 반응?! 혹시나 진자야?! 진짜 이겼어?!"
"아니, 아니아니아니! 좀 진정하세요! 분명히 에델바이스 씨와 검을 나누기는 했지만──."
"지, 진짜로!"
"그러니까 진정하시라고요!"
잇키는 잡아먹을 기세로 들이대는 야고코로의 양어깨에 손을 얹고서 거침없이 달래면서 소문 내용을 정정했다.
"분명히 싸운 건 틀림없습니다만 그 소문에서 올바른 내용은 거기까지입니다. 저는 이기지 않았어요. 싸움 도중에 기절해버려서…… 정신을 차리니 병원 침대 위였습니다. 즉, 상대가 자비를 베풀어줘서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그 부분을 착각해서야 견딜 수 없다.
야고코로도 과연 이것만은 헛소문인가 하고 생각했는지 곧바로 납득했다.
"그, 그렇구나. 과연 그 부분은 헛소문인가……. 뭐, 그렇겠지. 그렇지만 싸워서 살아남았다는 게 진짜이기만 해도 큰 뉴스라고, 이건! 이, 있지! 돌아갈 때 이런 얘기해서 미안한데 잠시 싸움의 내용을 자세히 들려주지 않겠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파낸 특종에 표정을 빛내는 야고코로.
그렇지만 그런 야고코로에게 잇키는 미안한 마음을 느끼면서 대꾸했다.
"미안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 어째서?! 진 걸 비웃을만한 기사는 안 쓸 건데?!"
"아니, 그런 이유로 꺼리는 게 아니라, 말이죠. ……단순하게 잘 기억나지 않아요."
"기억나지 않아?"
"예. ……너덜너덜 당한 건 기억하지만, 그저 도중부터 이미 정신이 없었으니까, 특히 마지막 부분의 기억이 애매해서……."
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잇키가 기억하는 것은 혼신의 '독나방의 칼'을 간단하게 되받아쳐져서 '음철'이 깨진 부근까지였다.
그 뒤로 자신이 어떻게 그 '비익'을 상대로 난투를 벌였는지 그 부근의 기억이 빠져있었다.
그래서 잇키는 기억하지 않았다.
자신의 검이 세계 최강의 검사에게 반격한 순간을.
일단 구출한 쿠로노에게서 듣기는 했지만 남의 일처럼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뭐, 그런 이유로, 그저 졌다고밖에 이야길 할 수 없습니다."
"그, 그렇구나……."
잇키가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짧은 접촉을 통해 야고코로도 충분히 이해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 이상 추궁을 하지 않고서 유감스럽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과연 그래서야 기사로 쓰기에는 정보도 화제도 부족해……. 망상으로 보완해도 돼?"
"안 됩니다."
"멋지게 지게 해줄게!"
"안 됩니다."
"우우. 쪼잔해."
원망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야고코로였지만, 이 문제는 잇키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녀가 멋대로 각색하면 어떤 이야기로 변할지 알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잇키의 완고한 태도에 제아무리 야고코로라고 해도 꺾였다.
"어쩔 수 없지, 이 이야기를 기사로 쓰는 건 포기하겠어."
"그래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지만 솔직히 내 마음속에 품은 '워스트원'에 대한 기대치는 지금 이야기를 듣고서 더더욱 올라갔어. 내일 치르는 모로보시와의 시합, 엄청 기대할게! 그럼 다음에 봐!"
마지막으로 잇키에게 응원을 보내고, 혼자서 버스 정거장 쪽으로 향해가는 야고코로.
그 뒷모습을 배웅하고 나서, 시즈쿠는 일동에게 말했다.
"그럼 저희는 함께 돌아갈까요. 어차피 같은 호텔이니까요"
그렇지만 그 제안을──
"아니, 나는 전철을 타지 않고서 걸어서 돌아갈 거야."
잇키만이 사절했다.
"어째서인가요?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요?"
"아니, 그게. 두 장이나 먹다니 역시나 너무 양이 많았어. 가볍게 운동해서 소화하고 싶어."
게다가 무엇보다──.
"모로보시 선배의 투기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아서. 어쩐지 진정이 되지 않아. 몸을 좀 움직이고 싶어."
그것이 이유였다.
뭐, 전철로 10분 정도 되는 거리는 잇키에게는 별것 아니었다.
시즈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러신가요. 알겠어요. 내일 중요한 시합에 영향이 가지 않을 정도로 해두세요, 오라버니."
한마디를 하고서 받아들였다.
"물론 그 부분은 아껴둘 거야."
"잇키. 나도 함께 갈까?"
"……아니, 됐어. 아리스인은 시즈쿠를 따라가 줘."
"──그래. 알겠어."
"그럼 내일 회장에서 만나자!"
그렇게 밀하고서 야고코로가 향한 쪽과는 다른 길을 달음질로 달려가는 잇키.
그런 오빠의 모습을 본 시즈쿠는,
"오라버니. 무척이나 기뻐 보여."
살짝 기쁜듯한 음성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이에 아리스인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해 보였다.
"그래. 완전히 '칠성검왕'의 투기에 영향받은 모양이네. 뭐. '최고의 컨디션으로 싸우고 싶다' 같은 멋진 '흑심'을 보였으니까, 무리도 아니겠지만."
"되돌려준 말도 오라버니치고는 드물게 도발적이었지."
"후후. 타오르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겠지.
F랭크라고 업신여김당하고,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그렇다 해도 계속해서 믿어온 자기 자신의 가능성.
그것을 '칠성검왕'을 상대로 시험할 수 있는 기회.
그것만으로도 배틀 마니아인 잇키에게는 너무나 충분한 동기겠지만, 그 싸움을 상대도 바라주었으니까. ……기쁘고 자랑스러워서 안절부절못하는 느낌일까. ……정말로 귀엽다니까."
내일 치르는 모로보시와의 싸움.
잇키는 틀림없이 몸과 마음 다 최고의 컨디션으로 임하리라.
시즈쿠도 아리스인도, 잇키의 환한 표정을 통해 그 사실을 확신하고서──.
"그렇지만, ──그래서는 이길 수 없겠네."
"네?"
뜬금없이 나온 키리코의 말에 숨을 삼켰다.
"이길 수 없다니…… 오라버니가, 말인가요?"
"응. 그래."
"어, 어째서 그런 말을 하시는 거죠?!"
갑작스럽게 자기 오빠의 패배를 예언한 '백의의 기사'에게, 시즈쿠는 불쾌감을 드러내며 캐물었다.
그에 대해서 키리코는 설핏 눈을 가늘게 뜨며,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말하면 좋을까. 쿠로가네는 멋진 기사라고 생각해. F랭크면서도 칠성검무제까지 올라온 그 기백과 역량도 물론이거니와, 무엇보다 '칠성검왕'을 앞에 두고도 털끝만큼도 주눅을 보이지 않고서 도전하려고 하는 그 향상심은 멋지다는 한마디밖에 할 수 없어. …………그렇지만 그런 가벼운 마음가짐으로는 안 돼."
"가, 가볍……다고요?"
그 말을 오빠에 대한 모욕이라고 받아들인 것인가.
시즈쿠는 눈에 보이게 살기를 뿜어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아리스인이 그런 시즈쿠를 진정시키려고 다독이고, 그녀를 대신해서 키리코에게 반론했다.
"가볍다고 말했지만,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건 모로보시도 마찬가지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최고의 컨디션으로 씨우고 싶다'라는 말 따위는 꺼낼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해서 한 반론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아리스인의 말을 듣고, 키리코는 조용히 고개를 좌우로 내저으며 부정했다.
"……아니. 너희는 모로보시 유다이라는 남자를 크게 착각하고 있어.
그 남자가 품은 '흑심'의 안쪽에 존재하는 것, 그의 본질은 쿠로가네 같은 향상심이나 투쟁심이 아니야.
그런 미지근한 감정으로는…… 그 중상을 극복할 수 없었을 거야.
그를 지탱하는 것은 좀 더 다른 것.
그가 더욱더 강적을, 훨씬 순도 높은 승리를 바라는 이유는 좀 더 이질적인 것.
──비통할 지경인 '의무감'이야.
강한 상대와 긍지 높은 승부를 겨루고 싶다. 훨씬 더 높은 곳을 노리고 싶다.
……그렇게 어수룩한 소리를 하는 동안에는 이길 수 없어. 절대로."
◆◇◆◇◆
한편, 시즈쿠 일행과 헤어져 혼자서 도보로 귀로에 오른 잇키는 곧바로 호텔로는 향하지 않았다.
향한 곳은 번화가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공원.
밤의 떠들썩함에서 동떨어진 장소.
들리는 것은 곤충 소리뿐──.
그곳에 서서 잇키는 소리를 질렀다.
"여기라면 다소 소란스러워도 사람은 오지 않겠지. 적당히 나오는 게 어떠십니까?"
목소리를 내던지는 상대는──'이치방보시'에 들어가기 전에도 느꼈던 살기 어린 시선이었다.
같은 감각이, 아까 전부터 줄곧 목덜미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랬다. 잇키가 혼자서 돌아가기를 선택한 이유는 이 시선의 주인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칠성검왕'도 있던 와중에 다른 사람에게 깨닫게 하지 않고서 잇키 한 사람에게만 정확하게 쏘아진 살기.
그 한 가지만을 보아도 추적자의 기량이 탁월하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옳았다.
밤의 어둠 속에서 잇키의 앞에 모습을 보인 추적자의 모습을 보고서, 잇키는 숨을 삼켰다.
"……설마, 당신이었을 줄이야."
밤바람에 나부끼는 일본 전통복의 자락.
시퍼런 날의 끝 부분처럼 날카롭게 찢어진 긴 눈동자.
그리고 잇키와 닮은 용모에 그어진 십자의 상처.
그 자의 이름은,
"──오마 형."
다름 아닌 쿠로가네 잇키의 친형이자 일본인 학생 중 유일한 A급 기사.
'바람의 검제' 쿠로가네 오마였다.
"…………."
밤의 어둠에서 모습을 보인 오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그저 찌르는 듯한 시선을 잇키에게 보내고 있었다.
전혀 온화한 눈빛은 아니었다.
그곳에 깃든 것은 살기인가 적의인가──.
어느 쪽이든지 간에 시선만으로 굉장한 압박이었다.
이렇게 일대일로 마주하기에 깨닫는 오마의 압도적인 존재밀도.
자신과 그다지 키 차이가 나지 않을 터인 오마가 한 아름이고 두 아름이고 크게 보였다.
그렇지만 잇키는 그 압박에 삼켜지지 않으려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서 오마의 시선을 정면으로부터 받으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용건이야? 하군 학원에서 벌어졌던 일도 있어. 설마 형제끼리 친목을 도모하려고 온 건 아니겠지."
우선 알아야 할 점은 그것이었다.
어쨌든 용건을 들어야 일이 진행된다.
이 남자가 아무런 용건도 없이 잇키의 앞에 나타날 리 없기에.
그런 잇키의 물음에 오마도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물론이지. ──오늘 네 녀석을 만나러 온 용건은 하나. 네 녀석에게 해야 할 말이 있어서다."
"나에게 해야 할 말?"
잇키가 앵무새처럼 되묻자 오마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 고서 묵직하게, 고막이 아니라 장기에 울리는 독특한 음성으로──.
"지금 당장 칠성검무제 출전을 사퇴해라, 잇키."
반박을 듣지 않겠다는 양 강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데다 뜬금없는 명령에 잇키는 눈을 부릅떴다.
어째서 자신이 칠성검무제를 사퇴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유를 물어도 될까?"
"말해야 아는 건가. 태평하기도 하군."
잇키의 말에 오마는 노골적인 짜증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떫은 표정을 지은 채, 그는 이유를 입에 담았다.
"네 녀석의 존재가 '홍련의 황녀'의 발목을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뭐라고……?"
자신에게 고한 이유를 듣고 이번에는 잇키가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언제 스텔라의 발목을 잡아당겼다는 거야? 까닭없는 비난은 그만둬줬으면 좋겠네."
"사실이다. 네놈 같은 버러지에게 낭패를 본 탓에 '홍련의 황녀'는 네 녀석 따위와 서로 경쟁한다는 어리석은 행위로 몇 달이나 되는 시간을 허비했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네 녀석의 협잡이 원인이다."
"협잡……?"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기술. 전략. 그 전부. ──네 녀석은 협잡투성이다.
좀스러운 힘으로 속이고 속여서 승리를 주워간다. 그런 야비한 생각.
'강함'이란 그런 곳에 없다.
그런 남자의 뒤를 쫓아가 본들 강해질 리도 없다.
사실, 그 습격 때에는 실망했지. 그 여자가 나와 같은 그릇이라면, 그 실력은 그런 것일 리가 없는데."
이것도 저것도 전부 잇키라는 강자인 척하는 야바위꾼에게 현혹되었기 때문.
오마는 그렇게 단정 짓고 잇키에게 강요했다.
"그러니 사라져라. 어리석은 것. '홍련의 황녀'는 네 녀석에게는 과분한 여자다."
"……과연. 그런 건가."
그런 오마의 말을 듣고서 잇키는 작게 탄식했다.
이렇게까지 말을 다 쏟아내면, 오마가 자신의 무엇을 가리켜서 스텔라의 발목을 잡는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즉, 오마는 오마의 가치관을 토대로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강함'이란 '이기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힘'.
더욱더 강한 힘을 가진 자가 이겨서 올라가는 것이 도리였고, 그 도리를 비틀려고 하는 기술은 야바위일 뿐이었다.
'정말이지 지독한 소리야.'
정말로 심했다. 어째서냐 하면 그 말은, 오마의 주장은, F랭크면서 정점을 노리려고 하는 '워스트원'의 존재 그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뭐, 이 '강함'을 추구하는 순수함은 형답다고 하면 형다웠지만──.
당연히 잇키로서는 그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잇키는,
"형이 무슨 생각으로 내가 스텔라의 발목을 붙잡는다고 말하는지는 잘 알았어. 그렇지만…… 그런 형의 가치관에 내가 맞춰줄 이유는 없지.
게다가…… 무엇보다 설령 형의 가치관이 진실이라고 해도,
내가 정말로 야바위꾼일 뿐이었다고 해도,
그런 나를 스텔라는 사랑해주었어. 다시 한 번 싸우고 싶다고 바라주었어.
……나에게 있어서 그것이 전부야. 전부라고, 오마 형.
이 약속에 비하면, 형이 하는 말 따위는 바람에 춤추는 나뭇잎보다 가벼워.
그런 말로는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없어."
그렇게 오마의 요구를 매정하게 거절했다.
그렇지만 오마 역시 잇키가 이 요구를 유유낙낙하게 받아들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모양인지 딱히 낙담한 기색도 없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 녀석이군. 착각하지 마라. 나는 부탁하는 게 아니야. ──명령하는 거다. 말로 해서 듣지 않는다고 하면, 힘으로 따르게 하면 그만. 그저 그뿐."
그저 귀찮다는 듯이 완만한 동작으로 자신의 디바이스를 구현시켰다.
일본도보다도 한층 더 큰 야태도 형태의 디바이 스 '류즈메'를.
그 순간, 주위의 공기가 얼어붙고 공원의 나무에 앉아 있던 새가 도망쳤다.
그들은 깨달은 것이었다.
오마가 '류즈메'를 손에 든 순간, 이 공원 전부가 그의 간격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물론 잇키도 그 점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깨달았으면서도 그는 털끝만큼도 동요를 드러내지 않고서, 오히려 느긋한 웃음마저 띠우며,
"좋아. 알기 쉬운 건 싫어하지 않아."
자신의 디바이스. 흑요의 칼'음철'을 구현시켰다.
이미 각오는 되어 있었다.
오마가 이 자리에 나타났을 때부터, 이 해후가 온화하게 끝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에.
게다가 무엇보다──, 오마는 말했다.
잇키와 스텔라가 지금까지 지낸 시간을 쓸모없는 시간이라고.
잇키에게 스텔라와의 만남은, 그녀와 지낸 나날은 보물 그 자체였다.
이것만큼은…… 애매하게 웃어넘길 수 없었다.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런 자신을 사랑스럽게 여겨주는 스텔라를 위해서도──.
"스텔라가 걸려 넘어진 남자가 돌멩이인지 아닌지, 자신의 검으로 확인해보도록 해!"
"잘난 체하면서 송곳니를 드러내지 마라. 이, 반편이가!"
이리하여 쿠로가네 형제의 장외 대결이 시작되었다.
◆◇◆◇◆
'워스트원'과 '바람의 검제'──.
도시 안에서 갑작스럽게 시작된 두 사람의 싸움.
우선 선제공격을 건 사람은 '바람의 검제' 쿠로가네 오마 쪽이었다.
어둠 속에서 어스름하게 반딧불이 같은 빛이 깃든 마검 '류즈메'를 들고서,
"싯!"
오마에게 달려가려고 허리를 낮춘 잇키에게, '류즈메'를 가로 일직선으로 휘둘렀다.
아직 양쪽의 간격이 10미터는 떨어져 있을 단계에서 말이다.
물론 아무리 사정거리가 우수한 야태도라고 해도 그런 거리에서 칼날이 닿지 않는다.
닿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윽!"
잇키는 오마에게 달려가려고 숙인 몸을 허둥지둥 더욱 더 깊게 낮추고서 땅을 기었다.
순간, 잇키의 바로 위를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가 등 뒤에 늘어선 공원의 나무를 일제히 벌채했다.
그렇다. 확실히 강철의 날은 닿지 않는다.
그렇지만 바람의 날이라면 별개.
허공을 찢어서 허공과 허공에 진공의 틈새를 만들어내 날을 만든다.
'진공인'──풍술사가 쓰는 공격수단으로서 가장 유명한 노블 아츠였다.
당연히 오마가 못 쓸 리가 없었다.
"하아아!"
오마는 먼 간격에서 류즈메를 휘둘러 진공의 날을 잇키에게 날렸다.
허공을 찢으며 닥쳐오는 베기 공격.
그 위력은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이 사용하는 장거리 기술 '드래곤 팡(비룡의 큰 턱)'을 필두로 하는 화염술사의 장거리 기술에 비하면 힘이 없기는 했지만, 음속을 뛰어넘는 속도와 보이지 않아서 회피하기 어려운 탓에 무척이나 높은 살상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이렇게 흔한 기술 하나로 얌전해질 '워스트 원'이 아니었다.
"후──읏!"
잇키는 눈에 보이지 않을 터인 대기의 날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회피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도 속도를 잃지 않고서 미끄러지듯이 무색의 칼날 사이를 꿰매는 것처럼.
그 동작은 명백히 보이지 않는 '진공인'을 인식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 원리는 잇키의 시선 끝에 있었다.
그가 시점을 맞추고 있는 곳은 보이지 않는 날이 아니라 오마가 휘두르는 '류즈메'였다.
음속을 뛰어넘는 속도를 자랑하는 '진공인'은 마검이 그리는 궤적, 그 직선상을 날아온다.
그렇다면 '류즈메'의 각도만 보면 회피는 그리 어렵지 않다.
총탄을 피하는 것과 같은 요령이었다.
방아쇠를 당길 타이밍과 총구의 각도만 알면 피하기는 쉽다.
특히 잇키 정도 되는 동체 시력과 반사신경을 가지고 있으면 맞을 리가 없었다.
"…………흥."
진공의 베기 공격. 그 틈새를 누비며 달려가는 잇키.
이에 오마도 '진공인' 수준의 기술로는 힘에 겹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자신 또한 앞으로 달려갔다.
달려오는 잇키를 맞받아치기 위해서.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바람 따위가 아니라 강철의 칼을 잇키의 목덜미 쪽으로 내리쳤다.
"카아아앗!!!!"
"윽…………!"
'빠르다……!'
야태도라는 창과도 필적하는 칼날 길이의 초중량 무기를 들면서도, 오마의 베기 공격의 날카로움과 속도는 잇키의 그것을 크게 웃돌았다.
기량의 차이인가. ──아니다.
양쪽 모두 검의 기량은 대략 호각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속도의 차이는 오마의 능력에 기인한 것.
오마는 바람을 조종해서 대기의 저항을 없애는 것이었다.
아무런 장애도 없이 휘둘러지는 시퍼런 날은 당연히 허공을 헤치는 잇키의 검은 날보다도 빨랐다.
이 속도를 상대로 '일도수라' 없이 반격을 취하기는 불가능하다.
잇키는 찰나 속에서 그렇게 판단해서 일단 방어 태세를 취하고──.
사각………….
"윽?!"
다음 순간, 귓불을 치는 작은 소리에 잇키는 온몸의 혈액이 얼어붙는 것 같은 한기를 느끼고──
"오오오오오오오옷!"
방어하기를 포기하고 전력으로 뒤쪽으로 몸을 던져 오마의 베기 공격을 회피했다.
그에 따라 오마의 내리친 칼은 공원의 모래땅에 부딪혀──.
머무르는 일 없이, 대지에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벤 흔적을 새겼다.
"…………윽!"
황토색의 지면에 깊숙이 새겨진, 땅을 가르는 것처럼 벤 흔적.
그 광경에는 제아무리 잇키라고 해도 식은땀을 흘렸다.
스텔라의 땅을 뒤흔드는 베기 공격도 대단한 것이었지만, 오마의 베기 공격은 그보다 더했다.
어째서냐 하면 대지를 뒤흔든다는 현상은…… 힘의 분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힘의 집약이 완벽하지 않아 낭비가 많다는 증거.
정말로 힘이 집약된 베기 공격은 흔들림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저 그 검이 지나간 장소에 있는 모든 것을 소리도 없이 더욱더 깊게 베어 날린다.
그야말로 대지를 젤리나 무언가처럼 베어 가른 오마의 베기 공격처럼.
대체 얼마만큼의 질량이 집약되면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될까.
몇 백 킬로그램? 몇 천 킬로그램?
그 점에 대해서는 잇키도 몰랐지만, 그저 한 가지 아는 것은──.
오마의 베기 공격은 스텔라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정말로 받아낼 수조차 없는 초중량의 일격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 비상식적인 공격도, ……그 몸이라면 수긍이 가.'
"몇 년인가 안 본 사이에 상당히 변했구나, 오마 형. ……아니, 너무 변했다고 해야 하나. 대체 어떤 원리야? ──그 몸은."
"호오……. 첫수를 나누기 전에 내 이형을 깨달았나. 협잡이라고는 해도, 겉멋으로 '비익'에게 상처를 입힌 건 아니라는 뜻인가."
불현듯 잇키의 말에 오마가 송곳니를 드러내는 듯한 웃음을 보였다.
"그렇지만──, 그걸 안다 한들 네놈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내 이형은 네놈의 야바위와는 다르게, 순수한 힘이니까."
"…………."
확실히 오마의 베기 공격은 성가셨다.
이전 잇키는 스텔라가 귀신같은 힘으로 내질러서 땅을 부수는 베기 공격을 부드러운 방어로 무력화시킨 적이 있었다.
받아낼 수 없는 베기 공격을 상대하기는 처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방어는 스텔라의 미숙함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난폭하게 휘두르는 검으로는 허공을 춤추는 나뭇잎을 베어낼 수 없다.
그것과 같은 이치다.
거친 힘은 받아넘기기도 쉽다.
그렇지만 오마의 그것은 다르다.
그 칼솜씨에는 전혀 망설임도 흔들림도 없었다.
그의 검이라면 하늘을 나는 나뭇잎도 반으로 가를 수 있으리라.
'그렇게 되면 '천의무봉'도 상당히 위험한가.'
──그렇다면 이 수라의 베기 공격을 어떻게 해서 극복할까?
'일도수라'를 이용해서 순수하게 속도 차이를 좁히면 받아넘기기도 할 수 있겠지만, 1분이라는 시간제한을 짊어지기는 아직 이르다.
조금 더 적이 가진 패의 내용을 확인해야 마땅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잇키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 대처법을 생각해,
"시시한 생각을 하는 얼굴이로군."
"──!"
그 사고를 오마는 비웃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막았다.
"말했을 텐데. 네놈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조용히 밤에 울리는 목소리로 말하고서, 오마가 떨어진 간격에서 하나의 움직임을 보였다.
또 '진공인'인가?
아니었다.
그는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달을 꿰뚫는 것처럼 '류즈메'의 날끝을 하늘을 향해 치켜들고서,
"그리고 나는 네깟 녀석 따위에게 많은 시간을 내줄 생각은 없다. 쪼르르 도망 다녀도 성가시니까 제한시간을 두기로 하지."
"가두어라. ──'무공결계'."
순간, '류즈메'가 두른 초록빛 반딧불이가 그 채도를 늘리고,
폭풍이 전장을 유린했다.
"윽!"
모래 먼지를 일으켜 눈도 뜰 수 없을 지경인 폭풍은 아래에서부터 위를 향해 나선을 그리면서 불어 올라가는 상승기류였다.
잇키는 열 손가락으로 대지를 움켜쥐고 하늘로 날아올라 갈 것만 같은 상황을 버텼다.
'큭, 현기증이…….'
모래 먼지와 폭풍을 이용해 시야와 행동력을 빼앗는다.
상당히 효과적인 기술이라고 생각하며 잇키는 감탄했다.
그렇지만 다음 순간에 곧바로 자신의 안이한 인식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오마가, 이 '강함'에 순도를 추구하는 사내가, 적의 전투력을 깎기 위해서만 기술을 쓸 리가 없는 것이었다.
이 '무공결계'에는 훨씬 더 무섭고 직접적인 힘이 있었다.
그것은──.
"이건……, 으윽?!"
'수, 숨을, 쉴 수 없어…………!'
산소의 강탈.
오마는 쳐올리는 상승기류를 이용해 전장의 산소를 남김없이 하늘로 감아올린 것이었다.
잇키에게서 시간이라는 유예를 빼앗기 위해서.
"버티면 10분. 싸우면서라면 1분쯤 될까. 그게 네게 남겨진 시간이다. 그 초라한 힘, 꺼내기 아까워할 시간은 없다. 냉큼 전력으로 덤벼와라."
"…………."
'바람의 검제'의 명령하는 것 같은 말투에, '워스트원'은 각오를 다졌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쓰기를 아까워할 만한 시간은 없고, 무엇보다──.
'쓰기를 아까워할 만한 상대가 아니야.'
행방을 감춘 몇 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마는 잇키의 기억 속에 남은 모습보다 몇 단계 강해져 있었다.
원래부터 뒤처졌던 자신의 힘.
쓰기를 아까워해서 대처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서 잇키는 오마의 역량을 확인하는 공정을 파기했다.
스스로 온몸에 도는 마력, 그 전부에──불을 붙였다.
"'일도수라'."
순간, 잇키의 온몸에서 푸른 불꽃같은 빛과 검기가 치솟아 올랐다.
몸을 베는 바람처럼 날카로운 검기에 공원의 나무들이 떨렸고, 또한 파릇파릇한 잎이 흩어졌다.
많은 강적과 맞붙은 싸움을 거쳐서, 잇키의 검기는 물리적인 위압을 지닐 만큼 성장해있었다.
그렇지만 그 정도 질량을 가진 위압도 오마의 간담을 떨리게 할 수는 없었다.
"스스로 지닌 모든 힘을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출력함으로써 총량으로는 미치지 않는 적에게 순발력으로 이기려고 하는 발상인가. ……그야말로 사기의 극치로군. 보기만 해도 신물이 난다."
오마는 '일도수라'를 두른 잇키의 검기에도 아주 조금의 동요도 보이지 않은 채, 오히려 시시한 것을 봤다는 양 불쾌감을 드러내며,
"와라. 그 '돌멩이'──내가 차서 날려주마."
유유한 동작으로 '류즈메'를 겨누고 맞받아칠 자세를 취했다.
그 무슨 일에도 동요하지 않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바위산을 연상시켰다.
대지에 뿌리박힌 절대적인 존재감.
그 모습을 보자 저도 모르게 잇키 쪽이 기세에 눌릴 것 같아졌지만──.
그렇다 해도 이미 비장의 카드는 뽑고 말았다.
앞으로 1분. 잇키에게 남겨진 시간은 그뿐이었다.
이 적을 상대로 1초라도 허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아아앗!!!!"
승부를 내려고 검은 기사가 덤벼들었다.
자세는 낮게, 땅을 기는 그림자처럼.
"시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아아아아아아앗!!!!"
그에 대해서 '바람의 검제'도 움직였다.
휘두르는 검은 그야말로 질풍처럼 눈에도 머무르지 않는 속도로 땅을 기는 그림자의 목을 노렸다.
그렇지만, ──'일도수라'를 두른 잇키의 속도는 진실로 질풍보다도 더욱더 빨랐다!
'이거라면, 되겠어!'
잇키가 노리는 것은 한 합째, 너무나도 차이 나는 속도에 단념했던 반격.
오마의 검을 받아넘기고 잽싸게 빠져나가면서 몸통을 베어 넘기는 일섬.
잇키는 자신의 목을 베어 날리러 다가오는 질풍의 흰 날을 노려보며,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무서워하지 마……!'
대지에 거대한 균열을 새기는 오마의 칼.
두려워해서 어중간하게 받으면 일격으로 그 목이 날아가 버리리라.
'집중해…………!'
사신의 단두대를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은 극한의 집중.
아주 조금의 실수도 없이, 내리 떨어지는 칼을 넘기는 정밀도.
할 수 있을 터다. 해낼 수 있을 터다.
그만큼 단련을 쌓아 오지 않았나…………! 그렇다면 무서워하지 말고서──.
'가라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자신을 북돋우며, 잇키는 극한의 집중력으로 닥쳐드는 시퍼런 날을 향해 발을 들였다.
──그 순간이었다.
'……………………………………………………어?'
갑작스럽게……,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잇키의 발이 멈추었다.
◆◇◆◇◆
'뭐, 지, 이게.'
'바람의 검제'와 교차하는 찰나 속, 자신에게 생긴 갑작스러운 이변에 잇키는 눈을 부릅떴다.
그렇지만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금 바야흐로 오마의 검을 받아넘기고 품으로 뛰어들려고 집중력을 극한까지 높인 승부처.
그 승부처에서, 갑자기, 마치 뇌와 몸의 연결이 끊어진 것처럼 의식은 있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게 되었기에.
'대체, 뭐가……?!'
그렇지만 놀라고 있을 틈은 없었다.
멈춰있는 것은 잇키뿐.
이 사이에도 오마의 일섬은 잇키에게 닥쳐들고 있었기에.
'큰일이야!'
목덜미로 다가오는 일섬에, 잇키는 간신히 방어만은 제 때에 맞췄다.
그렇지만 그것은 대지에 균열을 새기는 오마의 힘을 제대로 받는다는 뜻이라──.
"으아아아악!"
잇키의 몸은 마치 대형 트럭이라도 치인 것처럼 몇십 미터를 날아가 돌담에 부딪혔다.
"커, 헉!"
내장을 내리치는 충격에 잇키의 입에서 피보라가 뿜어졌다.
어딘가의 장기를 손상당한 것이리라.
그리고 오마의 베기 공격을 제대로 받은 양팔의 뼈는 어깨까지 깨져서 부서졌다.
그러나──현재 잇키에게는 그것조차 아무래도 좋았다.
'대체 뭐야, 아까 전엔……!'
머릿속을 도는 의문은 승부처, 교차의 순간에 생긴 수수께끼의 경직.
어째서 자신의 몸은 그런 순간에 얼어붙은 것인가.
지금까지 오랫동안 검을 잡아왔지만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잇키는 자신의 몸에 생긴 수수께끼의 현상에 착란했고──.
……그런 잇키에게 오마가 어처구니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흥. 뭘 눈을 희번덕거리지? 네 녀석 설마 세계 최강의 검사와 싸워놓고서, 예전처럼 자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설령 몸이 무사하다 해도 마음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리가 없잖나."
"어……!"
"그녀의 '선물'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있는 주제에 잘도 이 몸에게 으르렁대며 덤볐군. 이 분수도 모르는 놈이──."
오마는 언짢음을 감추지 않는 음성으로 잇키를 매도하고, ──느긋하게 공격의 자세를 취했다.
팔을 올리고 칼을 수평으로──.
다음 순간, '류즈메'가 지금까지 중에 가장 강한 빛을 뿜고서 그 검신에 바람을 둘렸다.
두른 바람은 주위의 공간 그 자체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굉장한 기세로 소용돌이 쳐 대기를 삼켰다.
그렇게 형태를 만든 것은──몇 겹이고 몇 겹이고 포개진 베어진 바람에 의해 생겨난 대기의 날.
만상을 깎고 끊는 용권의 검.
그랬다, 이것은 '홍련의 황녀'와 '뇌절'을 쓰러뜨린 오마의 노블 아츠──.
"'쿠사나기(달을 쪼개 가르는 천롱의 커다란 발톱)'──네 녀석 같은 야바위꾼에게는 과분한 기술이지만, 어중간하게 처리하는 것도 기분이 나쁘지. 특별히 써줄 테니까 감사히 사라져라."
그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바람의 검제'가 자신의 위엄을 휘둘렀다.
자신이 자랑하는 최강의 일격을, 상처 입은 '워스트원'을 노려서.
'이, 이 기술을 맞으면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한다.
오마가 입에 담은 에델바이스의 '선물'이란 말의 의미.
그것이 신경 쓰였지만, 잇키는 일단 그 사고를 뇌에서 몰아내고, 아직 충격으로 받은 타격이 다 빠지지 않은 몸에 전력으로 밀려드는 위협에서 도망치려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런 잇키의 몸에 다시 아까 전의 경직이 발생했다.
머리로는 필사적으로 회피하기 위해서 몸에 신호를 보내려고 하는데, 육체가 얼어붙어서 반응하지 않았다.
'윽! 어째서……!'
타격에 따른 기능정지?
곧바로 떠오르는 가능성이었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자신의 부상 상태를 확인하고, 잇키는 무정했다.
확실히 타격은 심했지만 움직일 수 없을 정도는 아닐 터였다.
그럼 어째서?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큭!'
이대로는 직격을 맞고 만다.
어떻게든 해야──.
그렇게 유일하게 경직되지 않은 뇌를 완전히 가동해서 생각해도 타개책은 찾아내지 못한 채,
잇키의 의식은 천 겹으로 차곡차곡 포개진 바람의 날에 삼켜져서────.
"물어뜯어라아아아! '토라오'오오오오오오오!!!!"
◆◇◆◇◆
압축된 나선의 참풍.
닿는 것 전부를 작은 먼지로 잘게 써는 그 날이 '워스트 원'을 삼키려고 한 찰나──.
두 사람 사이에 황색 창을 든 남자가 끼어들었다.
──커다란 체구에 육식동물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남자. '칠성검왕' 모로보시가.
"물어뜯어라아아아! '토라오'오오오오오오오!!!!"
한마디.
대기를 뒤흔드는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모로보시는 손에 든 황색 창 '토라오'를 떨어져 내리는 용권의 날을 향해서 내찔렀다.
순간, '토라오'에서 금색의 마력광이 튀더니 창끝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뿜어져 나온 금색의 빛은 순식간에 하나의 형태를 이루었다.
그것은 거대한 턱을 벌리고 송곳니를 드러내는 호랑이의 머리였다.
그리고 마력광으로 형태를 이룬 금색의 호랑이는 벌린 턱으로 밀려드는 용권의 검, 그 검신을 물고 늘어져서──.
'홍련의 황녀'나 '뇌절'이 같은 일류 학생 기사들을 가볍게 쓰러뜨려 온, 오마가 펼친 비장의 카드 '쿠사나기'를 문자 그대로 물어뜯었다.
중간쯤부터 호랑이에게 물어뜯긴 용권의 검은 안개로 흩어져 완전히 소멸했다.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모로보시는 잇키를 보호하듯이 가로막고 서서 물었다.
"괜찮아, 쿠로가네?!"
"모, 모로보시 선배…………! 어째서 당신이──."
"놓고 간 거 전해주러 왔어."
그렇게 말하고서 모로보시가 쓰러진 잇키의 가슴을 향해 던져서 넘겨준 물건은 잇키의 학생 수첩이었다.
"선생님에게 전화했더니 혼자서 걸어서 돌아갔다고 해서 말이지. 적당히 호텔 쪽으로 향해 보니 요란한 형제 싸움의 현장을 맞닥뜨린 거야."
그리고 모로보시는 잇키에게서 시선을 끊고서 '바람의 검제'를 노려보았다.
"오랜만이구만, 오마.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마주하기는 건 리틀 때 이래 처음인가."
"……'나니와의 별', 아니 지금은 '칠성검왕'이었던가. 모로보시."
"하. 네게 '칠성검왕'이라고 불리는 건 사양하고 싶구만. 네가 없는 칠성검무제에서 우승해서 얻은 칭호 따위는 아무런 가치가 없으니까. …………뭐, 그렇지만 지금 그런 얘기는 아무래도 좋아."
같은 초등학교 리그에서 일찍이 싸웠던 적이 있는 옛 적 사이.
말을 나누는 한순간, 모로보시는 미간에 주름을 새기며 공원의 참상을 둘러보았다.
깊숙이 새겨진 크레바스 같은 균열.
폭풍에 일제히 쓰러진 나무들.
금이 간 돌담──.
"형제 싸움치고는 좀 도가 지나치잖아. 내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숨이 끊어졌을 거라고."
"……존재하는 온갖 노블 아츠를 물어뜯어서 무효화 하는 노블 아츠──'타이거 바이트(폭식)'. '쿠사나기'뿐만이 아니라 '무공결계'까지 물어뜯었나."
"그래. 즉, 네 바람의 힘은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그 점을 이해했다 치고 묻겠는데, ……이 야단법석, 아직 계속할 생각이야? 이 이상 우리 지역에서 시시한 싸움을 계속하려고 든다면, ……지금부터 나를 상대하게 될 거야."
모로보시는 무섭도록 예리한 목소리로 위협하더니 금색의 마력광──온갖 노블 아츠를 무효화하는 '타이거 바이트'의 힘을 두른 '토라오'를 오마에게 들이댔다.
그 위협에 오마는,
"……아니, 계속할 마음을 잃었다."
눈을 감고서 손에 든 '류즈메'를 소멸시켰다.
오마가 가진 기술 중에서도 최강의 위력을 자랑하는 비장의 카드를 손쉽게 소멸시켜 보인 모로보시의 '타이거 바이트'.
그 가세에 역시나 불리하다고 예상한 것일까.
아니다. ──그렇게까지 기특한 남자는 아니었다.
단순히 그의 마음속에서 전투를 계속할 이유가 소실된 것이었다.
오마는 애당초 열었던 흥미를 전부 잃었다는 양 차가운 시선으로 모로보시의 등 뒤에 쓰러져 있는 잇키를 찌르며,
"'비익'의 '선물'을 제대로 받아들여 내지 못한다면, 여기에서 처리하지 않아도 어차피 내일 네 녀석에게 패하겠지. 일부러 내가 손을 쓸 필요도 없다. 이 무능한 모습을 보면 '홍련의 황녀'도 눈을 뜨겠지."
신랄한 말을 던지기가 무섭게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걸어 나아갔다.
나타난 암흑 속으로.
그 도중──.
"그건 그렇고……, 놓고 간 물건이라. 운이 좋은 녀석이군."
마지막으로 그런 말을 남기고서.
"……생김새는 리틀 시절과 비교하면 상당히 변했지만, 붙임성이 나쁜 건 여전한가."
떠나가는 오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모로보시는 질렸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오마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모로보시는 돌담에 등을 기대고 쓰러져 있는 잇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이건 대체 뭐야. 스텔라가 어쨌다고 그랬는데, 혹시나 치정 싸움이야? 형제끼리 여자 쟁탈이야? 터○야?"
"……그만두세요. 제가 죽어버리잖습니까."
잇키는 모로보시의 가벼운 말투에 쓴웃음을 띠우면서 천천히 일어서서 감사 인사를 했다.
"그건 그렇고 정말로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학생 수첩도요."
"괜찮아, 괜찮아. 신경 쓰지 마. ……그것보다 말이지."
문득, 모로보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다소 심각한 말투로 파헤치듯이 물었다.
그가 신경 쓰는 점. 그것은 단 하나──.
"대체 왜 그래, 쿠로가네. 멀리서 봐도 아까 전 네 움직임은 이상했는데? 상처가 원인일 리도 없어 보였지만──."
'쿠사나기'를 앞에 두고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그런 것처럼 보였던 잇키의 행동이었다.
그렇지만 그 물음의 답은 잇키 자신이 누구보다도 알고 싶었다.
"솔직히, 저도 모르겠습니다. 뭐가 뭔지……."
정말로 아무런 조짐도 없었다.
몸 상태는 대회를 앞두고 만전을 기해왔을 터.
그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멀리서 보니 마치 달려드는 차 앞에서 움츠러든 고양이 같았는데."
모로보시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가 본 그대로의 감상을 비유해서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뭐, 그건 아니겠지"라고 덧붙였다.
칠성검무제에도 출전해 나올 만한 기사가 이제 와서 적의 기술에 움츠러드는 겁쟁이일 리가 없으니 당연했다.
특히, 잇키라면 더더욱 그랬다.
'워스트원'은 '홍련의 황녀'의 '칼사리티오 살라만드라(하늘과 땅을 불사르는 용왕의 불길)'를 앞에 두고서도 웃음을 띠웠을 만큼 간이 큰 남자였기에.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
모로보시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듣고 잇키의 뇌리에는 번뜩이는 것이 있었다.
『네 녀석 설마 세계 최강의 검사와 싸워놓고서, 예전처럼 자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설령 몸이 무사하다 해도 마음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리가 없잖나.』
한창 싸우던 도중에 오마가 던진 말.
그러나 듣고 보니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잇키는 세계 최강의 검사와 벌인 싸움을 거쳐서 이곳에 있었다.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지육체 멀쩡하게.
──그런 형편 좋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 정도로 사선을 헤쳐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을 만한 일이.
그것은…… 너무나도 안이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
불길한 예감이 들어 잇키의 등에서 식은땀이 뿜어져 나왔다.
──이런 싸움의 세계에서는 곧잘 있는 일이다.
이를테면 권투.
지독한 방식으로 진 선수가 상대방이 휘두르는 펀치에 극단적인 공포심을 품고, 코마 몇 초로 펀치를 주고받는 시합 중에 온몸이 움츠러들어서 몸이 경직되는 일이 있다.
이른바 '펀치 아이'라고 불리는 트라우마(심적 외상) 때문에 발생하는 정신 질환이다.
물론 이런 질환을 안고서 싸우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런 증상을 앓는 선수를 일부에서는 '망가졌다'고 표현한다.
──혹시나,
자신은 모르는 사이에………… '망가졌던' 것은 아닐까?
확실히 에델바이스전이 끝난 뒤에 받은 진찰에서는 이상은 없었다.
트레이닝에서도 평소대로 포텐셜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그것들은 모두 생명의 위험이 없는 상태에서 있었던 일.
그래서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지만, ……오마가 발한 진짜 살기를 몸에 받음으로써 그것이 드러나지는 않았을까?
……이 무서운 상상. 유감스럽지만 있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오마가 말한 대로──..
세계 최강의 검사와 목숨을 건 대결을 해놓고서 상처 없는 쪽이 부자연스러웠다.
몸이나 마음, 어느 쪽인가가 망가지는 것쯤은 당연하지 않을까?
"뭐야? 무서운 얼굴을 하고. 혹시나 짚이는 곳이 있어?"
"……………………아뇨, ……별로."
무서운 상상에 핏기가 가신 잇키의 얼굴을 보고서 물어 본 모로보시였지만, ……잇키는 자신의 상상을 입 밖으로는 내지 않았다.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일 싸우는 상대에게 약점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 점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내일, 최고의 컨디션으로 나와 겨루는 시합에 임해줘.』
자신과 벌이는 싸움을 그 정도로 바라준 모로보시에게는 입이 찢어져도 이런 말은 할 수 없었다.
"────."
자신의 마음속에 생긴 불안을 참은 잇키.
모로보시는 그런 잇키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고…….
"그런가. ……뭐. 지금은 그런 것보다도 빨리 의사를 불러야지. 잠시 앉아서 기다려."
그 이상 추궁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학생 수첩으로 구급차를 수배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감사인가, 사과인가.
자신도 모를 말을 중얼거리고서, 잇키는 자신의 가슴에 부서진 손을 가져다 댔다.
'일도수라'는 이미 풀려서 몸을 뒤덮는 감각은 내리누르는 듯한 피로감.
그 피로감 탓에 온몸의 통각이 둔화하여 타격만큼의 아픔은 느끼지 않았지만,
'어떻게 되어버린 거야……. 나는, 내 몸은………….'
그러나 마음속에 생긴 자신이 기사로서 '망가졌을' 가능성에 대한 공포는 털끝만큼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그 후, 치료를 받고서 호텔로 돌아온 후에도 잇키는 자신의 몸에 계속해서 물음을 던졌다.
의식을 내면으로 깊고 깊게 넣어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살살이 꿰뚫어보았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환부라 여겨지는 자취는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 려, 몸과 마음 모두 최상의 상태라고만 여겨졌다.
정말로 자신은 '망가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그 경직은 무엇인가.
모르겠다.
그리고 이유를 모르면 극복할 도리도 없었다.
그것은 곤란했다.
이런 영문 모를 폭탄을 안은 채, '칠성검왕'에게 도전하는 것은 무모하다.
승부처에서 몸의 움직임이 멈춘다.
그런 결함을 안은 채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극복해야──.
……그렇지만 그렇게 초조해 하는 잇키의 마음을 비웃듯이………… 그때는 왔다.
빛. ──아침 해. 모든 것이 시작되는 아침이…….
◆◇◆◇◆
『투쟁은 나쁘다고 말들 합니다. 그것은 미움을 싹 틔우기 때문에.
평화는 멋지다고 말들 합니다. 그것은 다정함을 키우기 때문에.
폭력을 죄라고 말들 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기 때문에.
협력은 선하다고 말들 합니다. 그것은 타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양식 있는 인간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일.
그러나 그렇다 해도 사람은 강함을 동경합니다!
누구보다도 강하게!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
자신의 에고를 마음대로 관철하는 절대적인 힘!
동경하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쏘냐!
이 세상에 태어나 한 번은 누구나 마음에 그렸을 꿈──.
결국에는 그 터무니 없음에 누구나 포기하는 꿈──.
그 꿈에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올해도 이 제전에 모였습니다!!!!
홋카이도 '로쿠존 학원'.
도호쿠 지방 '쿄문 학원'.
기타간토 '돈로 학원'.
미나미간토 '하군 학원'.
긴키·주부 지방 '부쿄쿠 학원'.
주고쿠·시코쿠 지방 '렌테이 학원'.
규슈·오키나와 지방 '분교쿠 학원'.
그리고──신생 '일본 국립 아카츠키 학원'.
일본 전국 총 여덟 학교에서 선발된 정예 32명!
어느 누구도 뒤떨어지지 않는 멋진 기사뿐!
그렇지만 일본 제일의 학생 기사 '칠성검왕'이 될 수 있는 이는 단 한 사람!
그렇다면──그 검으로 자웅을 정하는 것이 기사의 관례!
32명의 젊고 고결한 기사들이여.
때는 무르익었다! 이 한때만은 누구도 그대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마음대로, 바라는 대로,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다해서 경쟁해라!
그럼 지금부터, 제62회 칠성검무제를 개최하겠습니다───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