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개막·칠성검무제
장소가 떨어진 도쿄의 하군 학원.
병동에 있는 한 방에서 한 사람의 기사가 눈을 떴다.
"……으."
무거운 눈꺼풀을 뜨자 눈에 비치는 광경은 익숙하지 않은 하얀 천장.
'여기, 어디지……?'
소녀는 낯선 천장에 잠시 혼란스러워했다.
무엇보다 병원에 입원하게 될 경험 따위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별수 없었다.
뭐, ……긴 수면에 빠졌던 탓에 각성이 쫓아오지 못한 것도 원인이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소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이불이 스치는 소리에 침대의 바로 곁에 있던 금발 벽안의 소녀──토토쿠바라 카나타가 병실에 설치되었던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옮기고,
"앗! 토카! 눈을 떴군요! ……다행이에요."
안도의 한숨을 흘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카나타의 모습에 침대 위의 토카는──
"카나, 아아~~~~~?
하고 힘껏 혀를 깨물었다.
"혀가 안 도라가~……."
"몸이 둔해진 건 어쩔 수 없겠죠. 상당히 오랫동안 잠들었으니까요."
"잠들어…………."
과연. 어째서 자신은 그렇게 몸이 이렇게 무거워질 때까지 자고 있었던 것일까.
토카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려고 끊어진 기억의 실을 더듬어──.
『그럼 칠성검무제 1회전도 이제 곧 반환 지점이 되었습니다.
B블록 마지막 시합은 오늘의 편성 중에서도 주목도가 높은 조합!
하군 학원 1학년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 선수
대
쿄문 학원 3학년 '얼음의 냉소' 츠루야 미코토 선수입니다! 해설을 맡은 무로토 프로. 이 시합은 어떻게──.』
"──윽!"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온 해설의 목소리를 통해 모든 것을 떠올렸다.
자신이 아카츠키의 습격으로부터 스텔라를 지키려고, 학생회 일동을 이끌고서 아카츠키의 발을 묶으려고 맞섰던 일.
그리고 '바람의 검제' 쿠로가네 오마에게 패한 일을.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토카는 안색이 새파래져서 카나타에게 물었다.
"카나, 그, 그 뒤 어떻게 되었어?! 스텔라 양은?! 쿠로가네 군 일행은 무사해?!"
"괜찮아요. 버밀리온 양은 하구레 자매들이 끝까지 지켜주었고, 쿠로가네 군도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이미 건강해져서 현지로 들어갔어요. ……우리 쪽은 전원 '환상 형태'로 입은 부상이라서, 몸에는 특히 문제없어요. 회장님과 부회장님이 받은 타격이 커서 혼수상태가 이어지기는 했지만요."
"우타 군도?"
"네."
카나타의 시선이 토카의 뒤쪽으로 움직였다.
그 시선을 따라가자 토카는 깨달았다.
옆 침대에 아직도 우타카타가 깊은 잠 속에 있다는 사실을.
"……우타군…………."
"그렇지만 회장님도 그랬지만 극도의 피로로 의식 회복이 늦어질 뿐이라서, 부회장님도 생명에 지장은 없는 모양이에요. 아마 부회장님 쪽도 오늘 내일이라도 눈을 뜰 겁니다."
"그렇, 구나……. 하아…………."
카나타에게서 자신이 기절한 후 있었던 일의 자초지종을 듣고서, 토카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어쨌거나, 학생회장으로서 최저한의 일은 해냈을, 까.'
적어도 그 습격으로 하군이 완전히 괴멸되는 사태는 피한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리라.
모두 그때 함께 최전선에 남아준 동료들 덕분이다.
"고마워, 카나."
"……후후. 나중에 다른 여러분에게도 말해주세요. 분명 기뻐하겠죠."
"응, 그럴게."
『이런! 이건 큰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비명과도 가까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아무래도 소란스럽네요? 뭔가 문제라고 생긴 걸까요?"
"모르겠어. 어떻게 된 걸까."
자연스럽게 토카와 카나타의 시선은 텔레비전에 모였다.
화면에서는 아나운서인 안경 쓴 남성이 폭포수 같은 땀을 흘리면서,
『뜻밖에도 스텔라 버밀리온 선수가 아직 회장에 오지 않고, 시합 개시 신호에 응하지 않습니다!』
설마 하던 사태를 알리고 있었다.
"어, 어어어엇?!"
◆◇◆◇◆
'시합 개시의 신호에 응하지 않는다니…………!'
카나타에게서 스텔라도 무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이 방송은 토카를 무척이나 놀라게 했다.
"카나. 아까 쿠로가네 군은 현지에 들어갔다고 했는데, 스텔라 양은 함께 가지 않았어?"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스텔라 양은 '바람의 검제'에게 뒤처진 걸 상당히 신경 쓰고 있어서, 그 뒤에 사이쿄 선생님과 둘이서 특훈을 했어요. 그래서 어쩌면 그 관계로 함께 행동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그렇지만 사이쿄 선생님이 함께라면 어째서."
어째서 시합 개시 시간이 되어도 회장에 없다는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곤혹스러 워하는 토카와 카나타.
그런 두 사람에게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속보가 전해졌다.
『아, 지금 막 운영 위원회 쪽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스텔라 버밀리온 선수는 노선 트러블 때문에 전철이 지연되어 도착이 늦어진다고 운영 위원회 쪽에 연락이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곤란하네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끔 전전날에 선수 파티를 엽니다만.』
『그렇군요. 다른 하군의 선수와 함께 오사카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여기에서 '얼음의 냉소' 츠루야 미코토 선수가 자신의 부전승을 운영 위원회에 요구했습니다!』
"스텔라 양은 혹시나 이대로 부전패를 당하고 말까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카나타.
그런 그녀의 걱정에 토카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아니. 그건 분명 괜찮을 거야."
토카는 작년 칠성검무제에 하군 학원의 선수단장으로서 참가했다.
그때 칠성검무제의 규정은 대강 파악을 끝마쳤다.
"전전날의 현지 도착은 딱히 규정은 아니고, 칠성검무제의 규칙에서 지각한 경우, 그 시합은 뒤로 미뤄지게 되어 있으니까……."
『이런, 지금 제 쪽에 운영위원회에서 보낸 통보가 왔습니다. '대회 규칙에 따라서, B블록 제4시합은 연기──, 그에 따라서 부전승은 인정할 수 없다'라고 합니다!』
『뭐, 이것도 규정이니까 어쩔 수 없네요.』
『지각에 따른 페널티는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이번 경우, 열차 운행시간이 어긋났다는 사실은 제대로 운영위원회 측에서도 인식했으니 페널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대회 개막 이틀 전까지 선수가 현지에 도착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어주면 좋겠네요.』
칠성검무제에서는 진행상 일어난 모든 일의 판단을 운영회가 협의해서 결정한다.
이 결정은 다른 많은 격투기가 그렇듯이 한번 내려지면 설령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해도 뒤집히는 일이 없다.
그 말인즉, 이 결정에 따라 스텔라의 즉시 패퇴는 없어졌다.
그래서 카나타는 안심한 듯이 숨을 내쉬었다.
"……하아. 좀 조마조마했어요."
"그렇지만 연기된 시합 시간에 맞춰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아웃이야."
'그때까지 시간에 맞으면 좋겠는데…….'
덧붙여 이 스텔라의 시합에서 B블록의 1회전은 전부 종료되었다.
이 타이밍에서 회장에는 안내방송이 들어왔다.
『회장에 계신 여러분께 연락드립니다.
지금부터 링 정비를 위해서 10분간 휴식에 들어가겠습니다.
이어서 C블록의 1회전은 그 뒤 개시하겠습니다.』
"이제 1회전도 반환점이구나. 보는 걸 제법 놓쳤어. 충격이야. 있지, 카나타. 쿠로가네 군의 시합은 이미 끝났어?"
"아니요. 이다음 C블록의 4조가 그의 시합이에요. 그러니 지금부터예요."
"다행이다아."
어쨌든 잇키는 자신을 쓰러뜨리고 대표가 된 선수였다.
당연히 '뇌절'로서는 놓치고 싶지 않은 시합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누구야?"
"아아, 회장님은 기절해버렸으니까, 토너먼트 표를 보지 않았군요."
"응. 있지, 카나타. 쿠로가네 군의 첫 대전 상대는 누구야?"
"……회장님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울 편성이에요."
그런 토카의 물음에 카나타는 쓴웃음을 억누르는 듯한 복잡한 표정을 보였다.
어찐지 굉장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워스트원'의 1회전 상대는,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 선수예요."
그 예감은 적중했다.
"……또 1회전부터 굉장한 상대를 뽑았네, 쿠로가네 군은."
"네. 교내 선발에서도 그랬지만, 그는 도무지 행운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영웅에게는 자연스럽게 시련이 따라붙기 마련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렇고 첫 싸움부터 '칠성검왕'이라니 운이 없다.
올해 사람 수가 극단적으로 줄어서 그 조정 때문에 1회전을 면제받는 시드권이 사라졌다.
잇키는 그 확률에 직격당한 형태였다.
'마치 불행의 블랙홀 같네…….'
"'워스트원'과 '칠성검왕'──그 양쪽 모두와 싸워본 적이 있는 '뇌절'로서는 이 시합을 어떻게 보나요?"
문득, 옆에 있던 카나타가 토카에게 사전 예상을 물었다.
휴식에 맞춰서 중계방송 쪽도 광고에 들어갔기에 한가했던 것이리라.
"글쎄……."
토카는 잠시 눈을 감고서 생각한 다음 답했다.
"……6:4로 모로보시 군이 유리할까."
"6:4. 상당히 근소한 차이네요. 상대는 '칠성검왕'인데."
"확실히 두 사람의 스테이터스(사회적 지위)로 따지면 말도 안 되는 예상일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이유가 있어서야."
"그건 어떤 이유인가요?"
"쿠로가네 군은 모로보시 군을 상대로 상성이 좋아. 모로보시 군의 노블 아츠 '타이거 바이트'는 알고 있지?"
"노블 아츠를 없애는 능력이지요."
"그래. 블레이저가 초인일 수 있는 건 노블 아츠……, 즉 마술을 다룰 수 있어서야. 그래서 마술을 먹어치워 없애는 능력은 모든 블레이저를 상대로 압도적인 이점을 얻을 수 있는 힘이 돼. '로렐라이'의 물도, '홍련의 황녀'의 불꽃도, '바람의 검제'의 바람도, 전부 모로보시 군 앞에서는 통하지 않아. 모로보시 군의 '토라오'는 마술을 너덜너덜 물어 찢어버리니까."
"……확실히 회장님도 그래서 부득이하게 접근전을 하게 되었죠."
토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1년 전, '뇌절'의 전격은 차례차례 이 '타이거 바이트'의 앞에서 지워졌다.
그 때문에 장거리에서 하는 공격으로는 결말이 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근접전──받을 틈조차 주지 않는 신속의 '뇌절'에 승부를 걸었지만, 모로보시의 창술은 실로 교묘해서 결국 '뇌절'의 간격까지 좁히는 것을 이루지 못한 채 패배하고 말았다.
토카에게는 씁쓸한 패배의 기억이었다.
"다시 들으니 반칙적인 능력이네요."
"그러네. 대블레이저전에 용도는 한정되지만, 그만큼 모든 블레이저에 우세를 얻을 수 있는 터무니 없는 힘이야.
그렇지만…… 쿠로가네 군은 애당초 마술에 의존해서 싸우는 타입이 아니야.
그가 하는 싸움의 비율은 블레이저치고는 드물 정도로 '체술'에 기울어져 있어.
쿠로가네 군이 마술을 쓰는 건 이 가장 중요할 때뿐.
그리고 '타이거 바이트'는 어디까지나 적의 노블 아츠를 무효화할 뿐인 노블 아츠.
그 자체에 공격력이 있는 기술이 아니야.
그래서 모로보시 군도 공격 수단도 전부 '육체 기술', ……'창술'이야."
그 때문에 두 사람의 시합은 반드시 순수한 체술에서 승부가 난다.
뭐,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창 대 검의 사정거리라는 불리함은 남지만,
"그렇지만 사정거리의 이점만으로 그 '어나더원'을 얌전하게 만들 수는 없을 거야."
작년, '뇌절'은 이 사정거리의 이점에 봉쇄당했다.
그렇지만 잇키의 기동력이나 수읽기, 그리고 미들 레인지에서 쓸 수 있는 다양한 패는 이미 학생 수준을 초월했다.
아무리 '칠성검왕'이라고 해도, 잇키 정도 되는 수준의 검사를 자신의 간격에 계속해서 못 박아 두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터.
그렇기에,
"그럼…… 1회전에서 '칠성검왕' 패퇴한다는 예상 밖의 결과는──."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
적어도 일방적인 시합은 되지 않으리라.
토카는 '워스트원'과 '칠성검왕'──그 양쪽과 싸운 적이 있었기에 그것을 확신했다.
잇키의 근접전투 실력은 틀림없이 전국 클래스.
그것도 '칠성검왕'의 자리를 다투는 수준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뭐, 그렇다 해도 1회전부터 '칠성검왕'이라니 운이 나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지만.'
그렇지만 그의 상태가 좋다면, ……예상 밖의 결과는 분명 일어날 것이다.
"힘내요, 쿠로가네 군!"
그것을 기원하면서, 토카는 머나먼 도쿄 땅에서 오사카에 있는 잇키에게 응원을 보냈다.
◆◇◆◇◆
『──회장에 계신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링의 준비가 끝났사오니 지금부터 C블록의 1회전을 개시하겠습니다.
C블록의 선수 여러분은 대기실에 모이시기 바랍니다.』
──절구 구조의 항만 돔.
인공 잔디를 중심으로 설치된 원형 링의 정비가 완료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안내방송──.
객석 통로의 펜스에 다가가서 아까 전까지 치러졌던 시합을 관전하고 있던 잇키 일행의 귀에도 그것은 전해졌다.
"그럼, 나는 슬슬 대기실로 갈게."
안내방송을 듣고서, 잇키는 함께 관전하고 있던 시즈쿠와 아리스인에게 말했다.
잇키는 C블록의 4조.
서두를 필요는 없었지만 일부러 늦게 갈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하고 와, 잇키."
"무운을 빌겠어요, 오라버니. …………그건 그렇고, 정말이지 스텔라 양은 어쩔 수 없네요. 자신의 시합은 어쨌거나 오라버니의 시합에 지각하다니."
"보통 반대 아닐까, 그거."
"이래서야 나중에 『시어머니가 꼭 봐야 할 새댁을 구박하는 108가지 방법』으로 배운 살인기가 불을 뿜겠네요."
"하하, 적당히 해. 그럼 갈게."
오빠의 첫 시합에 응원하러 달려오지도 않는 연인에게 노여워하는 시즈쿠를 달래며, 잇키는 두 사람과 헤어져 대기실로 향했다.
잇키는 두 사람의 앞에서 시종 편안한 표정이었다.
도저히 지금부터 싸움에 임하는 남자의 표정이라고는 여길 수 없을 만큼 온화한.
그래서이리라. 잇키의 뒷모습을 배웅한 다음, 시즈쿠는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다행이다. 오라버니, 전처럼 긴장은 하지 않은 모양이네."
"후후. 뭐, 당연할지도 몰라. 잇키는 그 '비익'과 다투었는걸. 이제 와서 '칠성검왕' 정도로 겁먹지는 않겠지."
아리스인이 하는 말은 지당하다며 시즈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싸움은 오빠에게 있어서 유익하게 작용하리라.
이때 시즈쿠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야호. 어제 이후로 보네, 두 분."
문득, 그곳에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그쪽을 보니 잇키가 걸어간 방향에서 백의를 입은 여성이 손을 흔들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키리코 양……."
"어머나. 어쩐지 최근 자주 만나네."
"음후. 정말이네에. 서로 끌릴 운명일까."
"의사에게 끌리는 운명이라니 오싹한데."
확실히 그렇다고 말하는 아리스인의 가벼운 말투에 키리코는 어깨를 으쓱이고──그런 다음 잠시,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왔다.
"아까 저기에서 '워스트원'과 지나쳤어. ……그, 무슨 일 있었어?"
"무슨 뜻인가요?"
갑작스럽게 던져온 불온한 물음에 맨 처음 반응한 사람은 시즈쿠였다.
"오라버니는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던 것 같은데요."
무엇을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시즈쿠는 키리코에게 되물었다.
그에 대해서 키리코는 "그거야" 하고 시즈쿠의 말을 채며 지적했다.
"너무 평온해."
"……?"
"스쳐 지나갈 때 잠시 진찰을 해보았는데, 맥박도 체온도 땀도…… 혈액 속을 흐르는 호르몬의 균형도, 모든 것이 너무 조용해. 보통 싸움 전에는 어떤 인간이라도 다소 그런 수치에 변화가 일어나기 마련인데, '워스트원'은 무엇 하나 변동하지 않았어."
그것은 인간의 반응으로서 있을 수 없다.
사실, 어제 모로보시를 앞에 둔 잇키는 어느 정도 흥분 상태를 드러내고 있었다고 키리코는 말했다.
그리고 어제 그랬는데 오늘이 되어서 전혀 흥분을 드러 내지 않는다는 것은──.
"……그건 의도적으로 자기 자신의 몸에 과도한 이완을 강요하고 있다는 뜻이야. ……어제는 그런 기색이 없었어. 딱 적당히 전투를 치르는데 최적인 흥분상태였는데. 뭔가 불안해질 만한 일이라도 생긴 걸까."
'오라버니가………… 불안하게…………?'
"그, 그건 정말로 정말인가요?!"
"진단에 착오는 없어. 뭘 불안해하는지 그 이유까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필요 이상으로 힘을 주지 않으려고 힘을 빼고 있을 뿐 아니야?"
"그렇게 여겨지지 않아. 적당한 흥분은 전투력을 높여. ……솔직히 그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준의 기사라고는 생각 안 해. 그렇기에 신경이 쓰이는 거야아."
"…………."
키리코가 내린 불길한 진단.
그 자리에 꺼림칙한 침묵이 깔렸다.
그 침묵 속에서, 시즈쿠는 어젯밤 잇키와 헤어진 뒤 키리코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그것은 앞으로 잇키가 상대하게 될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에 관해서였다.
※※※
『비통할 지경인 의무감? 그건, 무슨 뜻인가요?』
잇키가 이길 수 없다.
그렇게 잘라 말한 키리코에게, 시즈쿠의 말투는 다소 추궁하는 듯한 기세가 되었다.
그녀의 처지에서 보면 오빠가 부당하게 모욕을 당한 것처럼 느껴졌으리라.
그렇지만 키리코도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모로보시의 여동생이 가게에 있었지. 그래서 눈치챘겠지만, 그 애. 말을 할 수 없어.』
『네. '칠성검왕'에게서 무언가 정신적인 문제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 애, 코우메가 말을 할 수 없게 된 건 말이지, 모로보시 탓이야.』
『뭐, 뭐라고요?!』
『뭐,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저 다른 사람 아닌 모로보시 자신이 그렇게 생각해.』
그다음 키리코는 이야기했다.
모로보시를 지탱하는 의무감.
그 배경을──.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에 있었던 일.
당시 '나니와의 별'이라는 통칭으로 간사이 제일의 소년 기사라 알려졌던 모로보시의 몸에 일어난 비극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휴일. 모로보시 가족이 유원지로 가기 위해서 탄 전철이 사고를 일으켰어. 전국적으로 뉴스가 된 사고니까, 두 사람도 알 것 같은데?』
시즈쿠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확실히 그 뉴스 자체는 본가에서 봤다.
『분명히 몇백 명이나 사망자가 나온 대참사였다고 기억해요. 거기에 '칠성검왕'이 휘말렸다는 사실은 오늘 오라버니에게서 들을 때까지는 몰랐지만요.』
『그래. 많은 사람이 숨은 거둔 지독한 사고였어. 목숨을 건졌다는 것만으로도 모로보시는 운이 좋은 편일지도 몰라. 그렇지만 전혀 무사히 끝나지는 않았어. 양친과 여동생 세 사람은 경상이기는 했지만, 모로보시는──두 다리를 잃는 큰 상처를 입었지.』
『잃었다고요……? 결손, 이라는 뜻인가요……?!』
『그래. 현대 의학과 의학의 정수를 집결한 캡술은 절단 된 팔이나 다리, 때에 따라서는 목조차 수복할 수 있는 기적의 상자지만, 할 수 있는 건 접합까지. 갈려서 다져진 다리를 새롭게 자라게 할 수는 없어.』
즉, 모로보시의 부상은 의학으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목숨은 건지긴 했어도, 많은 사람에게 장래를 기대받으며 '야차공주' 이후로 나온 인재라고 살고 있던 오사카에서 영웅취급을 받았던 '나니와의 별'은 리틀 리그 상위진끼리 치르는 결승 토너먼트를 앞두고…… 은퇴할 수 밖에 없었어.』
분했으리라.
견딜 재간이 없었으리라.
그렇지만 그때 모로보시는 이미 자기 혼자서는 걸을 수도 없는 몸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싸울 수 있을 리도 없었다.
그래서 '나니와의 별'은 괴로운 선택이기는 했겠지만 한 번은 그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타고난 명랑함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기사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걸으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런 모로보시와는 다르게, 마음을 고쳐먹을 수 없는 사람이 있었어.』
그것이 모로보시 코우메. ──모로보시의 여동생이었다고 키리코는 이야기했다.
어째서인가. 그것은 무척이나 잔혹한 이유──.
『……그 사고가 있었던 날, '유원지에 가고 싶다'고 조른 건 그 애였어.』
『──! 그' 그럼 코우메 양은…………!』
『그래. 코우메는…… 자신을 탓했어.』
그날, 자신이 유원지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오빠는 두 다리를, 그리고 그 무엇보다 오빠에게 약속되어 있었을 빛나는 미래를 잃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자신이 어리광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그녀는 자신을 계속해서 책망한 것이었다.
마음이 부서져 버릴 정도로 강하게.
그리고 이윽고…… 소녀는 말을 잃었다.
마치 어리광을 부린 자신을 벌주듯이.
『그런 일이 있었구나…….』
『……마음의 병이라는 건 어려워. 상처나 몸의 병과는 다르게 증상도 완치법도 개인 차이가 너무 심해. 우리 의사는 서글플 정도로 무력해. 그렇지만──그런 코우메의 병을 낫게 해주려는 남자가 있어.』
키리코가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입에 담은 의무감이란 말을 통해, 시즈쿠 일행도 그 남자의 생각은 짐작이 갔다.
『그 사람이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라는 말인가요.』
『그래. 여동생의 몸에 일어난 이변은 한 번은 기사의 길을 포기한 모로보시의 마음에 불을 붙였어.』
키리코는 말했다.
사고가 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어디에서 들었는지, 모로보시가 당시 '전신 세포를 이용한 결손 부위의 복원 마술'을 연구하고 있던 자신에게로 찾아왔다.
──선생님. 부탁할게. 나를 다시 한 번, 싸울 수 있게 해줘!
아마도 가족에게도 상담하지 않고서, 오사카에서 멀리 떨어진 히로시마까지 기어서 온 것이리라.
먼지투성이에 너덜너덜해진 몸과…… 결의 하나를 가지고.
『나는 이 부탁을 흔쾌히 승낙했어. 물론 열의에 짓눌린 게 아니야. 나에게도 모로보시의 등장은 상황이 좋았어. 마침, 연구를 위한 '실험대'를 찾고 있었으니까.
음후후, 지독한 여자지. ……그 시절의 나는 자신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뭐든지 해도 된다고 우쭐해져 있었으니까. 결손 부위를 만들어낸다는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데에도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어.』
『그럼, 현재 모로보시 씨의 다리는…….』
『그래. 내가 그의 전신 조직을 깎아내서, 한 번 분자 단위까지 조각조각 낸 그것을 주물러서 만들어 낸 의족이야.』
같은 물술사이기에, 시즈쿠는 '백의의 기사'의 기량에 할 말을 잃었다.
다른 사람이 잃은 다리를 통째로 두 개나 복원해내는 일을 할 수 있는 물 능력자는 아마도 세계에서도 세 사람도 안 된다.
더군다나 그 방법을 이용한다면 바탕이 되는 것은 전부 모로보시의 몸.
다른 사람의 장기를 이식할 때처럼 거부반응은 일어날 리가 없다.
그러나──.
『어머, 그렇지만 다리같이 인간의 절반에 가까운 조직을 전신 조직에서 다시 만들면…… 남은 몸쪽이 큰일 아니야?』
아리스인이 입에 담은 의문. 같은 생각을 시즈쿠도 했다.
그리고 그 걱정은 그야말로 적중했다.
『너 착안점이 좋네. 그 말대로 큰일이 벌어졌어.
우선 당연하겠지만 온몸의 근육량이 현저하게 감소했어. 그야말로 생명 유지조차 위태로울 수준까지 말이야. 그리고 넓적다리뼈 같은 커다랗고 단단한 뼈를 만드는 거니까, 온몸의 뼈 밀도도 급격히 줄어서 심한 골다공증이 걸렸어.』
수술받은 직후의 모로보시는 폐의 신축으로 가슴뼈가 상할 정도로 몹시 쇠약해졌다.
사고 직후조차 이 정도까지 빈사 상태가 되지는 않았으리라.
그렇지만 그런 것은 아직 서장에 지나지 않았다.
완전히 뼈와 가죽만 남은 몸을 만족스럽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근육도 다시 한 번 고쳐 붙여야만 했다.
그것도 될 수 있는 대로 신속하게.
어째서냐 하면 감소한 근육량으로 따져서, 당장에라도 근육을 붙이지 않으면 생명 활동에마저 지장이 나올 수준이었기에.
따라서 키리코는 모로보시에게 강요했다.
그 마른 나무 같은 몸으로 하는, 일류 운동선수와 같은 수준의 과격한 근육 트레이닝을,
『당연히, 그런 몸으로 그런 걸 하면 무사히 넘어가지 않아.』
구멍이 숭숭 난 삐는 몇 번이고 부서지고 강도를 잃은 근육은 찢어졌다.
부드러워진 힘줄은 일제히 터지고, 온갖 곳의 신경이 파열을 일으켰다.
그 통증에 이를 악물고, 부러진 다리로 달리고, 찢어진 팔로 아령을 들어 올렸다.
물론 '망가질' 때마다 키리코가 치유 마술로 파손 부위를 복원했지만, 그 상황은 곧 '망가지는' 아픔을 몇천 번이나 맛본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미 고문이라 해도 지장 없을 거친 행위.
구토나 실금은 일상다반사.
모로보시의 재활 광경은 그야말로 지옥도였다고 키리코는 술회했다.
그리고 마침내──.
『3개월. ……그만큼 지났을 때, 두 손을 들었어.』
『무리도 아니야. 그런 지독한…….』
『오히려 잘도 3개월이나 버렸다고 생각해요.』
너무 늦을 정도라고 시즈쿠와 아리스인은 느꼈다.
명백히 치료의 범주를 넘어선 행위였다.
그런 것을 계속하는 쪽이 이상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그 생각을─現실은 배반했다.
『둘 다 착각하고 있구나. 두 손을 든 건 내 쪽이야.』
『네……?』
『맨 처음에는 항상 모르모트에게 그랬던 것처럼 경과 관찰을 일기로 썼어. 그렇지만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는 모르모트가 아니야. 자신과 같은 '형태'를 한 생물이지. ……그런 생물이 도무지 인간의 허용을 벗어난 격통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며칠이고 몇십 일이고 계속해서 바라보면, ……제정신으로는 못 버텨. ……솔직히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았어. 꿈속에서도 모로보시의 괴로운 목소리가 들려오는걸.』
3개월이 지났을 무렵에는, 키리코는 이미 자신의 연구가 악마의 연구처럼만 여겨졌다.
이런 일은 이제 당장에라도 그만둬야 한다.
현재의 의족 기술은 굉장하다.
확실히 눈앞의 다리처럼 세세하게 움직이거나 마력을 통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선수로서 재기하는 것은 불가능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만큼 고성능인 제품이 갖춰져 있다.
그렇다면 이제 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하고서, 키리코는 모로보시에게 재활의 중지와 다리 조직을 상반신으로 돌리는 재수술을 청했다.
『그렇지만──, 모로보시는 그런 내게 말했어.』
그때 모로보시가 했던 말.
키리코는 지금도 그 내용을 한 글자 한 구절 잊지 않고 기억했다.
그는 식은땀에 젖은 얼굴로, 거친 숨을 뱉으면서──.
──있지, 선생님. 코우메가 마지막으로 한 말, 뭐라고 생각해?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면서 미안하다고 그랬어. ……그 날 이래,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어.
전부 내가 한심한 탓이야.
내가 상처 따위를 입어서, 코우메에게 쓸데없는 부담감을 짊어지게 했어.
유원지에 가고 싶다.
그런 귀여운 어리광을 죄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어.
……그러니까 이대로는 끝낼 수 없어.
내가 가르쳐줘야 해. 아무것도 사과할 필요는 없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지만 이런 한심한 몸을 한 채로는 안 돼.
내가 그 사고에서 잃은 것. 다리도, 힘도, 지위도──전부 되찾고서, 말이 아니라 결과로 '나는 이제 괜찮아'라고 드러내야, 그 애는 자신을 용서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나는 코우메가 자신을 용서하고 다시 한 번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설령 몇 번이고 뼈가 부서져도……! 살이 찢어져도……!
여동생의 앞에서 굽은 등을 두 번 다시 보일 수 없어!!!!
그게──오빠인 거야!!!!
『그렇게 말하며 모로보시는 마지막까지 재활을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어. 그만둘 수 없었어.
……그리고 몇 년 후, 그의 필사적인 노력은 결실을 보았지.
'나니와의 별' 모로보시 유다이는 무대 위로 돌아왔어. 이전과 비교해도 아무런 손색이 없는 힘을 갖추고서.』
그리고 끝까지 오른 것이었다.
일본 학생 기사의 정점 '칠성검왕'까지.
『그렇지만 그래도 아직, 모로보시는 스스로 부과한 의무를 이루지 못했어. 코우메가 말을 되찾을 그 날까지, 그는 항상 필사적이야.』
잇키와 진정한 승부가 하고 싶다고 말한 이유도 향상심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은 여동생을 위해.
지옥 밑바닥에서 기어오르는 원동력이 된 오빠로서의 의무감이라는 의지의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고서 모로보시의 안에서 계속해서 타오르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키리코는 말했다.
『그를 줄곧 지켜봐 온 내가 보증해.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는 그저 이기고 싶다, 그런 허울 좋은 향상심만으로 쓰러뜨릴 수 있을 만한 사내가 아니야. ……강해. 자신 말고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
이야기를 떠올리기만 해도 모로보시가 싸움에 건 뜻의 무시무시함에 시즈쿠는 전율을 느꼈다.
여동생의 말을 되찾는다.
그러기 위해서 모로보시는 재기불능 수준의 부상에서 다시 일어서서 복귀해온 것이었다.
고문 같은 재활을 뛰어넘고서.
그 집념. 그 결의──그 어느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모로보시 씨는 틀림없이 강해.'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도.
망설임을 품은 채 이길 수 있을 만한 상대라고는, 시즈쿠는 도저히 그렇게 여겨지지 않았다.
'오라버니……! 부디, 자신을 단단히 유지하세요!'
그래서 시즈쿠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만간 잇키가 나오게 될 링 옆의 청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시야에──.
"아…………."
시즈쿠는 청 게이트 바로 위에 있는 객석에서 작은 몸집의 단발머리 소녀를 찾아냈다.
모로보시의 여동생 코우메였다.
보아하니 코우메는 시즈쿠와 마찬가지로 조만간 오빠가 나올 적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척이나 괴로워 보이는 표정으로.
『어어. 회장에 계신 여러분께 연락드립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칠성검무제 C블록 1회전 제1조의 시합을 개시하겠습니다!』
"…………."
시합 개시를 안내하는 방송을 듣고, 시즈쿠는 한 번 코우메에게서 시선을 끊고서 시점을 링 위로 옮겼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코우메의 처지였더라면 대체 어떤 마음이 들까.
잇키가 자신 탓으로 양다리를 잃고, 그리고 자신의 말을 되찾기 위해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뛰어넘고, 지금도 또…… 상처 주고 상처 입는 세계에서 계속해서 싸우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고.
"…………윽."
그 상상이 낳은 것은 몸을 베는 듯한 아픔이었다.
◆◇◆◇◆
C블록의 진행은 B블록 같은 지각으로 인한 문제도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 사이, ……모로보시는 적당히 준비운동을 한 다음 대기실의 파이프 의자에 걸터앉아 한 장의 종이를 바라보았다.
『힘내!』
종이에는 그렇게 둥글고 귀여운 글자로 쓰여 있었다.
──어제, 모로보시는 호텔에 돌아가지는 않았다.
잇키를 구급차에 실려 보내고서 가게로 돌아온 다음에도 혼잡함이 가시지 않아서, 돌아갈 시간을 놓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종이는 오늘 아침 집에서 나올 때 코우메에게서 받은 물건이었다.
개회식에 향할 때, 모로보시에게서 부탁한 것이었다.
『있지. 평소처럼 힘내라고 말해 줄 수 있어?』
그 말은 모로보시에게 주문 같은 것이었는데, 시합 전에는 매번 부탁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바람을 들은 코우메는 항상, 한순간 복잡한 표정을 짓고──.
곧바로 웃는 얼굴로 고치고 이 메시지를 써주었다.
평소처럼──.
"……."
모로보시는 그것을 바라보면서, 코우메가 한순간 보인 표정을 떠올렸다.
미안해 보이는, 괴로워 보이는 표정.
모로보시는 알고 있었다.
여동생이 무엇을 생각해서 그런 표정을 보이는지.
그녀는 눈치채고 있었다.
모로보시가 자신을 위해서 기사의 세계로 복귀했다는 사실을.
물론, 한 번도 그런 생색내는 말을 모로보시가 코우메에게 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같은 피가 흐르는 남매.
생각하는 바는 어느 정도 상상이 간다.
그리고 그렇기에 코우메는 망설였다.
힘내라고, 자신을 위해서 싸워주는 오빠에게 남의 일처럼 응원을 보내기를.
그 진실을 꿰뚫어보고, 모로보시는…… 다정하게 웃었다.
"……바보."
'미안하게 생각할 필요 같은 건 전혀 없어, 코우메. ……너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
그러니 아무것도 마음에 두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자신의 페이스로 다시 일어서주면 된다. 몇 년, 몇십 년이 걸리든지 상관없다.
'그때까지, 나는 질 수 없어. 네가 '나에게서 빼앗은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그 사실을 깨닫고, 다시 일어서는 그 날까지, 나는 계속해서 이길 거야!'
그래서──.
'그때에는 다시 예전처럼──.'
『대기실에 계신 선수에게 알려드립니다. C블록 3조의 시합이 종료되었습니다. 지금부터 C블록 제4조의 시합을 개시하겠습니다. 하군 학원 쿠로가네 잇키 선수. 부쿄쿠 학원 모로보시 유다이 선수. ──양 선수는 입장 게이트로 나아가 주십시오.』
"……좋아! 한바탕 다 털어내 버리겠어!!!!"
'잘 보도록 해. 내 등을!'
◆◇◆◇◆
──『……어, 아까 전 C블록 1 회전 제3조의 시합에서는 죠가사키 뱌쿠야 선수가 그 실력을 내보여, 멋지게 상대를 장외 10 카운트 KO로 몰아넣어 승리했습니다. 과연 작년 준우승자였네요, 무로토 프로.』
『네. 그렇지만 역시 마도 기사의 입장에서 보자면 장외 카운트아웃은 아무래도 결말이 껍찜하네요. 선수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규칙이라는 사실은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역시 결판은 링 위에서 지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말아요. 하하』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 관객은 많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런 결판은 다음 시합에서 기대하도록 하죠! 자, 여러 분,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아마도 오늘 가장 주목도가 높은 시합, C블록 제4조의 선수가 입장하도록 하겠습니다!!!!』──
실황 중계를 맡은 이이다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입장 게이트의 울타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C블록 제4조의 선수가 입장했다.
『우선 적 게이트에서 모습을 보인 이는 전 대회우승자! 부쿄쿠 학원 3학년, 모로보시 유다이 선수입니다아!
천재적이고 초인적인 창술과 모든 블레이저의 '천적'이라 해야 마땅한 '마술을 물어뜯는' 능력으로, 작년 일본의 정점까지 오른 서쪽의 영웅! 그러나 그 여정은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리틀 리그 결승 토너먼트를 앞두고 일어난 불행한 사고.
양다리가 전부 손상되었다는 기사 생명을 끊기에 너무나도 충분한 상처를 입고서 한번은 은퇴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사나이는 돌아왔습니다! 재기불능이라 말들 했던 부상을 극복하고서, 지옥의 밑바닥에서 이 나라의 정점까지!
기사도의 영광도 좌절도, 모두 아는 불굴의 사내! '칠성 검왕' 모로보시 유다이!
지금, 역사 최초로 칠성검무제 2연패를 건 싸움의 링에 강림했습니다아아아!!!!』
그 순간, ──대지가 환성으로 흔들렸다.
""""호시!!!! 호시!!!!""""
『들어보십시오, 이 커다란 환성을! 너무나도 큰 환성에 항만 돔이 흔들립니다아아아! 과연 현지의 영웅! 굉장한 인기입니다아!』
땅 울림으로조차 들리는 환성의 비.
오늘 일본에 이만큼 인기를 끄는 학생 기사는 달리 없으리라.
그 너무나도 커다란 기대를 받고서 모로보시는──.
"샤아아아아아아아앗!!"
디바이스 '토라오'를 구현시키고, 히늘을 찌르듯이 힘껏 치켜들었다.
마치, 나에게 맡겨두라는 양의 퍼포먼스.
그 순간, 회장의 흥분은 절정에 다다랐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어찌 된 일입니까! 모로보시 선수! 대지를 흔드는 커다란 환성에 전혀 기죽지 않습니다! 위축되지 않습니다! 이만큼 많은 사람의 기대를! 마음을! 그 한 몸에 받고 다 짊어집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소년입니까! 이 얼마나 대단한 호기입니까!!!!』
『이게 모로보시 유다이의 굉장한 점이지요.』
『그 말씀은?』
『아까 이이다 씨가 말씀하신 대로, 모로보시 선수는 재기불능의 큰 상처에서 복귀해온 선수입니다. 당연히 다른 선수보다도 자신의 몸 상태에 불안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모로보시 선수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털끝만큼의 불안도 보이지 않고, 자신에게 거는 기대 전부를 짊어지고, 그리고 그에 응해왔습니다. 마치, '나는 괜찮다. 괜히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는 양.
……게다가 말이죠. 실은 저도 모로보시가 받은 복원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러고 보니 무로토 프로는 한쪽 다리가 의족이었지요.』
『네, KOK에서 사지 결손은 곧잘 있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복원 수술의 수요는 많습니다. 그렇지만 저를 포함해서 복원 수술에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어째서인지 아십니까?』
『아니요. 어째서입니까?』
『실은 말이죠, 복원 수술 자체는 거의 100% 성공합니다. 다만, 그 후의 재활에 다들 따라갈 수 없습니다. 복원 수술은 현존하는 육체에서 세포를 빼내서 손실된 부분을 재구성하는 술식입니다. 그래서 수술 후에는 심한 골다공증이 생기기도 하고, 근육감소에 따른 내장 기관의 기능 저하 때문에 다양한 합병증상이 발생합니다. ──그렇지만 근육 트레이닝을 해야 줄어든 근육이 돌아오니까, 몸을 원래대로 돌리기 위해서는 그런 몸이라도 근육 트레이닝을 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복원 수술의 재활은 몇천 번이고 몇만 번이고 살이 벗겨지고 뼈가 부러지기를 반복하면서 하게 됩니다. ……저는 이미 나이 지긋한 어른이지만 말이죠,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요. 사흘째 되는 날에는 선생님에게 울면서 '다리를 신체로 돌려달라'고 애원했지요.
그렇지만 모로보시는 그런 지옥의 재활을 뛰어넘어서 왔습니다.
이전보다도 훨씬 힘을 붙여서.
어지간한 근성이나 각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솔직히…… 저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기술·육체 전부를 고차원으로 갖추고, 이 정도의 배짱과 용기와 근성을 갖춘 이 칠성의 왕이 패배하는 상황 따위는 말이죠.』
『과연. 이로써 역사 최초의 칠성검왕 제2연패가 더욱더 기대됩니다!
그리고──그런 '칠성검왕'의 첫 싸움 상대가 지금 입장해 들어왔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에 많은 관중의 시선이 청 게이트에 모였다.
그 주목 속에서 침착하게 검은 칼을 손에 든 소년이 걸어왔다.
『이 소년의 얼굴은 아시는 분이 많겠죠! 얼마 전 '홍련의 황녀' 스텔라 공주를 둘러싼 소동에서 화제가 된 칠성검무제 사상 최초의 F랭크 출전자. 그러나 그 랭크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실력은 보장되었습니다! 교내 선발전에서는 작년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를 가장 괴롭힌 '뇌절' 토도 토카를 일격에 쓰러뜨리고, 비공식 시합에서는 A랭크 기사 스텔라 버밀리온까지 격파한 이단의 실력자! 누가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어나더원'!
최약의 마력에 최강의 검기를 갖춘 이번 대회 주목도 넘버원의 다크호스!
하군 학원 1학년 쿠로가네 잇키 선수가 전국의 링에 지금 올라섰습니다아아!!!!』
잇키의 등장에, 모로보시만큼은 아니었지만 커다란 환성이 울렸다.
모두 기대하는 것이었다.
F랭크면서 이 일본 제일을 다투는 무대에 올라온 이단의 실력자가 얼마만큼 이 대회에서 파란을 일으켜 줄지를.
그런 회장의 열광을 바라보면서 아리스인은 숨을 삼켰다.
"마침내 이때가 왔구나. ……잇키가 전국의 링에서는 때가."
그 누구에게도 평가받지 못하고 부당한 취급을 받았던 불행한 기사는 이제 누구에게서도 인정받는 실력자로서 전국의 링에 서 있다.
같은 학원에서, 교내 선발전에서 줄곧 잇키를 봐온 자로서는 감개무량한 광경이었다.
"그래……. 그렇지만 오라버니가 노리는 건 더욱 위. 이런 곳에서 질 수 없어."
시즈쿠는 딱딱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꾸하고서 옆에 앉은 키리코에게 물었다.
"키리코 양. 오라버니의 상태는 어떤가요?"
"흐음. 잠깐 기다려."
그렇게 말하더니 키리코는 왼쪽 눈을 감고서,
"'닥터 스코프(시진)'."
오른 눈에 마력을 모아서 링 위에 있는 잇키의 몸을 '진찰'했다.
그런 다음, 옅은 웃음을 지었다.
"음후후♡ 과연 지금까지 몇 번이고 수라장을 헤쳐 나온 만큼은 된다는 느낌이구나아."
"무슨 뜻인가요?"
"아까 스쳐 지나갔을 때 같은 부자연스러움은 없어. 체내의 호르몬 균형이나 혈압은 적당한 긴장감과 흥분 상태를 유지해서 완전히 전투상태로 들어갔어. 아마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자신의 마음을 정리한 거겠지. 과연. ……안심해, 시즈쿠. 네 오빠는 틀림없이, ──최상의 상태야!"
이렇게 무대는 정돈되고, 배우는 갖추어졌다. 싸움의 공은 지금────.
『그럼! 지금부터 칠성검무제 제1회전, C블록 제4조!
모로보시 유다이 대 쿠로가네 잇키 선수의 시합을 개시하겠습니다!
Let's GO AHEAD──!!!!』
◆◇◆◇◆
개시 신호가 울려 퍼진 그 순간, 잇키는 땅을 박차기가 무섭게 '칠성검왕'을 노려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쿠로가네 선수, 개시와 동시에 나왔습니다! 속공입니다아아!』
아나운서가 '칠성검왕' 상대로 속공을 건 잇키의 모습에 놀라서 소리를 질렀고, 회장에도 또한 술렁거림이 가득 찼다.
기색을 살피지도 않는 속공.
경솔. 초조. 졸속. ──그런 감정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한편에서 그 시합을 관전하고 있던 아리스인은,
"좋은 판단이야!"
잇키의 판단을 칭찬했다.
"아리스?"
"어차피 거리를 두어도 잇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잇키는 사정거리가 긴 기술이 없지. 그러니까 어떻게 '칠성검왕'의 창의 간격을 재빨리 빠져나가서 검의 간격으로 끌고 가는지가 승부의 열쇠가 될 거야."
그렇다면 이 개막 속공은 가능성이 있다.
"창이라는 무기는 장점도 단점도 그 긴 사정거리에 집약되는 무기야. 품으로 파고들면 단숨에 형세를 우세하게 끌고 갈 수 있어!"
"그렇지만, 그런 건 모로보시도 잘 알 거야. 쉽사리 품 같은 데 들여 주지는 않을 텐데?"
키리코의 말을 증명하듯이 수비하는 모로보시가 움직였다.
그는 잇키의 속공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여유로운 동작으로 디바이스 '토라오'의 창끝을 뉘어서 비스듬히 겨누는 자세를 취했다.
──그 순간,
오싹, 항만 돔에 있던 모든 사람의 등줄기에 전율이 퍼지고 피부에 닭살이 돋았다.
"으윽~~~~!"
그것은 객석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시즈쿠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무, 무슨 남자가 저래……! 자세를 취하기만 했는데 이런 압박감이라니……!"
그랬다, 전율의 정체는 자세를 취함과 동시에 모로보시가 주위 일대에 흩뿌린 위압감이었다.
그 위압감에 이미 조금 전까지의 떠들썩함은 어디로 가고 주위는 조용해졌다.
링 위에 선 단 한 사람의 남자에게 몇만 명이나 되는 관중 전원이 집어 삼켜진 것이었다.
그리고 속공을 걸려고 한 잇키 역시 그 위압감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젯밤, 타타라 유이의 발을 묶은 안광.
모로보시 유다이의 '팔방 노려보기'에 의해.
그러나──.
"────윽."
그것도 한순간.
잇키는 곧바로 멈추었던 발에 힘을 실어서 모로보시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쿠로가네 선수! 한번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만 기가 죽지 않습니다! 과감하게 앞으로 나갑니다!』
『과연 멋진 심장을 가지고 있네요. 웬만한 선수라면 '칠성검왕'의 위압만으로 몸의 움직임이 후들후들 떨리기 마련입니다만, 전혀 움직임이 둔해지지 않았습니다.』
잇키의 과감함을 상찬하는 해설 무로토 프로.
그렇지만 그의 용맹함은 모로보시 역시 알고 있었던 바였다.
그 정도로, 위압만으로 '워스트원'이 얌전해질 리가 없었다.
동요하지 않고, 잇키가 자신의 간격에 발을 들인 순간──.
"싯!"
섬광일섬.
하늘을 꿰뚫고 모로보시의 노란 창 '토라오'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잇키는 뒷걸음질로 한 번 사정 밖으로 피하기는 했지만──, 사르륵 앞머리 일부가 공중에 흩어졌다.
너무나도 빠른 창의 속도에 물러서는 타이밍이 살짝 늦은 것이었다.
이 모로보시의 응수에 회장에는 다시 환성이 가득 찼다.
『나, 날카롭습니다아아아!!!!
마치 실황 중계석까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날카로운 찌르기가 허공을 찢습니다!
쿠로가네 선수, 이 공격에는 버티지 못하고 후퇴! 단 일격으로 적의 돌격을 차단했습니다아!』
『일격이 아닙니다.』
『네?』
『'워스트원'의 가슴께를 확대해보십시오.』
무로토가 말하는 대로 아나운서인 이이다는 실황 카메라를 확대했다. 그러자──.
회장의 대형 액정화면에 잇키의 옷 사이에 난 구멍이 비쳤다.
『이, 이건……! 옷에 두 군데. 찔린 상처가 생겼습니다!』
『그래요. 머리카락까지 합치면 총 3번. 옆에서 보면 한 번 찌른 것으로만 보이는 움직임으로 세 점을 동시에 찌른 신속의 창술. ──이것이 '칠성검왕'의 창술 '삼연성'입니다. 모로보시 선수는 마술을 파괴한다는 블레이저 전투에서 최강이라고 해야 마땅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에 그 점만을 주목받기 쉽습니다만, 이 갈고닦은 창술이야말로 모로보시 유다이가 가진 최대의 무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공격을 재빨리 빠져나가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입니다. '워스트원'도 지금 공격으로 섣부르게 품으로 뛰어들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경계를 강화하겠죠.』
무로토는 자신 있다는 듯이 그렇게 해설했다.
그리고 그 의견은 정석이었다.
애당초 이쪽과 시선을 잇고 있는 창술사를 상대로 정면 돌파는 너무 무모하다.
창이란 직선 상에 선 상대에게 견줄 데 없는 강함을 자랑하는 무기이기에.
처음 기습에 허점을 찌를 수 없었던 이상, 어떻게든 해서 옆에서부터 무너뜨린다.
그것이 당연한 일.
그렇기에──다음에 일으킨 잇키의 행동에는 누구나 얼떨떨해했다.
그는 달리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닌,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긋하게 살의 없는 동작으로 모로보시와의 거리를 좁히기가 무섭게──놀랍게도 모로보시의 바로 앞 1.5미터의 지점.
검이 닿지 않고 창의 공격만이 닿는 거리에서 멈춰 선 것이었다!
『이, 이러어어어언! 이건 무슨 의도일까요, 쿠로가네 선수?! 이, 이건 마치, 찔러오라고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아나운서도 해설도 곤혹스러워했다.
확실히 의미 모를 행동이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도발로도 여겨졌다.
그리고 관객 중 일부는 그렇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호시이! 너를 얕보고 있어! 한 방 먹여줘!』
『도쿄 놈 따위가 거만한 낯짝을 하게 두지 마!』
노성이 관객석의 한구석에서 뿜어져 나왔다.
모로보시는 그 목소리에 응하듯이──.
『모로보시가 나섰습니다아아! 불손한 도전자에게 '칠성검왕'이 분노의 맹공! '삼연성'의 연타입니다아!』
잇키에게 아까 전 보였던 기술을 선보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삼연성'의 연타.
그 공격은 이미 기관총이 쏘아대는 탄막과 큰 차이가 없을 만큼의 밀도로 쏟아져 내리는 죽음의 비였다.
피할 수 없다. 피할 도리가 없다. ──그럴 터인데,
『마, 맞지 않습니다! 맞지 않아요오오! 신속을 자랑하는 '삼연성'이 스치지도 못합니다! 이 얼마나 화려한 발놀림인가요! 마치 춤추는 것처럼 우아한 행동거지로 창끝을 피합니다!』
한 호흡 동안에 세 점을 꿰뚫는 모로보시의 '삼연성'을, 그 사정거리 안에 몸을 두면서, 첫 공격처럼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세로로 스텝을 밟음으로써 잇키는 그 전부를 다 피해냈다.
잇키 역시 아무 생각도 없이 이 거리에 남은 것은 아니었다.
확실히 '삼연성'은 무시무시한 신체 기술이었다.
초인의 영역이라고 해도 좋다.
그렇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삼연성'보다도 훨씬 날카롭고 빠른 기술을.
그렇다──'소드 이터'의 '마지널 카운터'였다.
인간의 한계 반사속도마저 초월해 흡사 8연격을 전부 동시에 휘두르는 것처럼 착각하게 할 만큼 빠른 속도.
그에 비하면 '삼연성'은 아직 충분히 눈으로 쫓을 수 있는 속도였다.
8연격이 동시에 덮쳐들어 오는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환각을 보여줄 수준의 위압은 아니었다.
냉정하게 궤적을 읽으면 잇키로서는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이윽고 모로보시가 공격하고 잇키가 피하고, 그런 주거니 받거니가 10초 정도 나눠진 후.
힘에 겹다고 판단했는지, 모로보시가 크게 뒷걸음질 쳐서 간격을 벌렸다.
『모로보시 선수 버티지 못하고서 물러섰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쿠로가네 선수! 마치 맨 처음의 위압을 되갚겠다는 양, 한 번도 손을 대지 않고서 '칠성검왕'을 물러서게 만들었습니다아!』
"이, 이게 뭐야."
"거짓말이지……?!"
"어, 엄청나다아아아아! 이런 기사가 정말로 F랭크냐!"
"멋져어어어어!"
『장내에서 비명과 환성을 지릅니다. 분위기를 고조시켜줍니다, 양 선수!』
『과연 겉멋으로 '사냥꾼'과 '뇌절' 같은 작년 칠성검무제 대표선수를 무찌르고 대표로 들어온 건 아니었군요. 중간 거리에서 이렇게까지 격렬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선수는 저도 처음 보았어요. 그렇지만──, 이 싸움, 아무래도 양 선수는 아직 진심을 싸우지 않는군요.』
나직이 중얼거린 무로토의 말. 그것은 진실이었다.
잇키에게 압도되어 물러선 것처럼 보였던 모로보시가 입매를 웃음으로 끌어올리고…… 잇키에게 물었다.
"나를 준비운동에 끌어들일 줄이야 배짱 좋구만. 어때? 몸 상태는?"
"……네, 덕분에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랬다, 아까 전 펼친 공방에서 잇키도 모로보시도 서로 공격해 들어갈 마음 따위는 없었던 것이었다.
잇키가 위험한 거리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삼연성'을 굳이 계속해서 아슬아슬하게 피한 이유는 자신의 몸이 겁에 움츠러드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모로보시도 그런 잇키의 목적을 알고서 맞춰준 것이었다.
그런 모로보시의 친절함에 잇키는 감사 인시를 늘어놓았다.
어째서냐 하면, 그 덕분에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저는, 틀림없이 최상의 상태입니다."
뜀박질하는 다리의 리듬이 좋다. 몸의 날카로움이 좋다.
시야가 넓고 무척이나 깨끗하다.
아슬아슬하게 모로보시의 창을 피해도, 마음속으로는 조금도 겁이 생겨나지 않았다.
어젯밤, 오마와 상대했을 때 같은 부자연스러움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상태라면 할 수 있다. ──싸울 수 있다!
그 사실을 실감하고서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잇키가 검에 살기를 실어서 겨누었다.
그런 잇키를 보고서 모로보시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이제 서비스 타임은 끝이야. 지금부터는 이 쪽도 진심으로 가겠어."
오싹, 모로보시가 뿜어내는 위압이 한층 더 강해졌다.
마주 바라보기만 해도 숨쉬기 답답해질 지경인 압박감은 과연 '칠성검왕'이었다.
그러나── 잇키는 생각했다. 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 그렇게──.
어째서냐 하면 그는 아까 전 벌였던 공방을 통해 한 가지 진실에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모로보시 선배의 창술에는 사전에 본 비디오에서 느꼈던 대로……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
"좋은 표정을 짓고 있구나. 아무래도 쿠로가네 군은 꿰뚫어본 모양이네. '칠성검왕'의 구멍을."
히군 학원의 병실에서 텔레비전 중계를 보고 있던 토카가 두 사람의 공방을 보며 중얼거렸다.
"구멍이라고요?"
"그래. 아마도 몇 번이나 비디오를 보고서 연구를 해왔겠지. 그리고 아까 전의 공방에서 확신을 얻었을 거야."
"저는 잘 모르겠는데, 모로보시 씨의 구멍이란 어떤 건가요?"
"응. ……카나. '창'의 공격 수단은 뭐라고 생각해?"
물음을 물음으로 돌려주자, 카나타는 잠시 생각을 하고 나서 대답했다.
"그건 물론 '찌르기'겠죠."
"그렇지. 확실히 창은 찌르는 무기야. 그렇지만 ……창에는 또 하나, 그 절대적인 사정거리를 살리는 면 공격인 '후려치기'가 존재해."
창의 '날'은 끝 부분에만 달려있다.
도검 따위와 비교하면 확실히 '후려치는' 이미지는 옅으리라.
그러나 사실 이 '후려치기'는 좀처럼 우습게 여길 수 없다.
1미터를 가볍게 뛰어넘는 단단한 봉으로 휘두르는 원심력이 붙은 타격은 손쉽게 인간의 뼈를 꺾는다.
중국 창술에는 '찌르기'를 완전히 '보이기 기술', 즉 굳이 피하게 하기 위한 미끼로 사용하는 타격 위주인 '곤봉' 같은 방식으로 시용하는 유파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의 창술에는 이 '후려치기'가 전혀 존재하지 않아. 그것도 이 시합뿐만이 아니라 복귀한 이후의 시합은 줄곧 완전히 '찌르기'뿐인 구성으로 한 번도 '후려치기'를 사용하지 않았어. 물론 나와 맞붙은 시합에서도 말이지."
"어머…… 그건 눈치채지 못했어요."
카나타는 귀로 들은 사실에 살짝 품위 있는 방식으로 놀랐다.
"그렇지만 어째서 모로보시 씨는 '찌르기'밖에 쓰지 않는 거죠?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확실히 '찌르기'는 강해. 동작이 적고 공격속도가 빠른 데다 힘이 창끝 한 점에 집중하는 만큼 공격력도 높아. 특히 모로보시 군의 '삼연성'은 창을 되돌리는 틈조차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최강의 공격 수단이라고 해도 좋을 지도 몰라. ──그렇지만 상대가 잇키 군 수준의 달인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토카는 말했다.
아무리 빠르든지 날카롭든지 어차피 찌르기의 공격 범위는 점.
'후려치기' 같은 면 공격이기에 오는 제압력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게다가 지극히 간파하기 쉬운데다 찌르기를 반복한 후에는 몸이 앞으로 뻗기 때문에 반격을 받기 쉽다.
"그야말로 검도라면 '죽음에 이르는 긴 칼'이라고 불릴 정도야."
"즉, 쿠로가네 씨의 반사 신경이라면 모로보시 씨의 스타일을 공략하기는 어렵지 않다는 뜻인가요?"
"그래. ……보통이라면 말이지."
그때 토카가 그녀치고는 드물게 심술궂은 웃음을 띠웠다.
"보통이라면? 무슨 뜻이죠?"
"유감스럽게 지금 쿠로가네 군이 상대하는 남자는 보통이 아니야. 만약 쿠로가네 군 자신이 지금 내가 말한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면, ……굉장히 호된 꼴을 당할 거야. 작년의 나처럼 말이야."
그리고 토카가 그렇게 말한 그때였다.
『이러언! 여기에서 다시 쿠로가네 선수부터 갑니다아!』
먼 오사카 땅에서 시합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기 안에 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잇키는 즉시 공방 속에서 보인 모로보시의 '구멍'을 찌르기 위해서 간격을 좁혔다.
『그렇지만 모로보시 선수도 쉽게는 보내지 않습니다! 연속 공격하는 '삼연성'!』
당연히 모로보시는 그 즉시 긴 사정거리를 이용해서 하는 선제공격을 걸어왔다.
그렇지만,
'하나!'
일격째. 미간을 꿰뚫으러 내질러온 일섬은 오른쪽으로,
'둘!'
심장을 꿰뚫으러 밀려온 이격째는 왼쪽으로 스텝을 밟아서, 잇키는 이 공격을 화려하게 피했다.
한 호흡 중에 세 점을 찌르는 기술.
확실히 무시무시한 기술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이 기술은 단련을 쌓은 끝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소드 이터'의 '마지널 카운터' 같은 특수체질에 따른 초인의 기술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잇키로서는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두 개 피했어. 다음이 마지막이야! 다음 세 개째를 찌른 다음, 모로보시 선배는 한 호흡을 둘 거야!'
아마도 무호흡으로 날리는 순간 연타는 세 번이 한계이리라.
그래서 잇키는 그 마지막 세 번째를 반격할 타이밍으로 정했다.
세 번째 찌르기를 피함과 동시에 검의 간격으로 뛰어든다.
'그곳에 일격을 박아 넣어서 오프닝 히트를 얻는다! 쓰러뜨릴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주도권은 얻을 수 있어!'
그리고 겨냥한 세 번째 공격이 이번에는 잇키의 넓적다리 부분을 노리고 날아왔다.
이에 잇키는 곧바로 반격의 계획을 실행으로 옮겼다.
'셋, ──지금이다아!'
아무리 빠르고 굉장해도 어차피 찌르기는 '점' 공격.
그 점에서 1밀리미터라도 옆으로 피하면 맞을 리가 없다.
또 하나 왼쪽으로 사이드 스텝을 밟고 나서 단숨에 검의 간격으로 뛰어들어,
'스쳐 지나갈 때 몸통을 후려────.'
그 순간이었다.
사이드 스텝으로 창의 사선에서 벗어나 옆구리를 빠져 나가면서 몸통을 후려치려고 한 잇키.
그의 시야에 말도 안 되는 광경이 비쳤다.
피했을 터인 '토라오'의 창끝이 마치 도망친 사냥감을 쫓아오는 뱀처럼 '꾸불텅' 하고 급격히 구부러져, 왼쪽으로 도망친 잇키를 뒤따라 왔기 때문이었다.
"으으으으~~~~~?!?!?!"
도망친 쪽으로 쫓아온 창끝.
그 상식을 벗어난 광경에 놀라면서도, 잇키가 순간적으로 내린 판단은 적절했다.
그는 앞으로 내딛기를 포기하고서, 이번에는 다시 한 번 왼쪽으로 크게 뛰어 창의 간격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다소 이슬아슬한 회피였기 때문에…… 완전히는 피해낼 수 없었다.
『이, 이이이이이러어어언! 화려하게 삼연성을 피한 쿠로가네 선수! 방어전만 고수하는 것처럼 보였던 모로보시 선수!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쿠로가네 선수의 우세라고 보였던 공방이 한순간에 역전했습니다! 쿠로가네 선수의 귓불이 반쯤 찢어졌습니다! 오프닝 히트는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 선수가 가져갔습니다아아아아!!!!』
'칠성검왕'의 오프닝 히트에 끓어오르는 회장.
그렇지만 잇키는 흘러내리는 피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고서 그저 전율에 몸을 떨었다.
'뭐, 뭐지, 지금 찌르기는……! 이런 기술, 비디오를 봤을 때는 없었다고!'
모로보시의 비디오는 그야말로 구멍이 뚫릴 정도로 몇 번이고 보며 연구했다.
그러나 '토라오'가 이런 거동을 보인 적 따위는 한 번도 없었다.
신기술인가? 아니, 그렇다면 부자연스러운 점이 있었다.
'어째서 아나운서는 지금 기술을 언급하지 않지?'
혹시나──.
'보이지 않았던 건가?'
◆◇◆◇◆
꺾이는 찌르기가 관중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 잇키의 예측은──옳았다.
"아앙! 아까워! 좋은 느낌으로 공격해 들어갔는데…………!"
아슬아슬한 곳까지 공격해 들어가면서 그 기회를 다 살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아리스인이 분하다는 듯이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아까웠다. 조금만 더 하면 됐는데. 그렇게──.
아리스인에게는 잇키가 '삼연성' 마지막 일격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만 보였다.
그렇기에 아깝다는 말을 했다.
그 순간에 일어난 일을 이해했었다면 그런 말은 할 수 없으리라.
지금 벌어진 공방에서, 명백히 모로보시가 '찌르기'밖에 시용하지 않는 모로보시의 스타일의 약점을 찔러온 잇키에게 덫을 놓았다.
옆으로 움직이면, 사선을 벗어나면 안전하다는 대 전제를 무너뜨리는 기습을 건 장면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아리스인 말고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1.
"정말로, 아까운 걸까."
구부러지는 찌르기가 보이지는 않았어도, 시즈쿠는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무슨 뜻이야, 시즈쿠?"
"봐. 지금 오라버니의 얼굴."
멀리서 보아도 알 정도로 잇키는 동요를 보였다.
"그저 피해내지 못했을 뿐이라면 저렇게까지 경계심을 드러내지는 않을 거야. 무언가, 우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저 링 위에서 일어났어. ──그리고 그건 우선 틀림없이 모로보시 씨가 노려서 일으켰어."
한편으로 처음부터 이 전개를 예측했던 자도 있었다.
그것은 도쿄에 있는 '뇌절' 토도 토카였다.
"역시 써왔네."
그녀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당연했다.
어째서냐 하면──작년에 자신도 완전히 같은 꼴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뭐, 나는 피해내지 못해서 썩둑 옆구리를 내어줬지만."
"저기, 회장님. 지금 한 찌르기에 무언가 비밀이 있나요? 제 눈에는 그저 쿠로가네 씨가 '삼연성'의 마지막 일격을 피해내지 못한 것으로만 보였는데요."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찌르기'의 약점은 점 공격이기 때문에 피하기 쉽다는 데에 있어. 그렇지만 모로보시 군의 '찌르기'는 그 상식을 근간에서부터 뒤집지. ──그의 찌르기는 말이지, 카나. 이쪽이 피한 방향으로 꾸불텅 구부러져서 뒤를 쫓아와."
"구, 구부러지는 찌르기, 라고요?"
"그래, 모로보시 군은 이 '추적형 찌르기'를 사용함으로써 점 공격의 단점을 해소하는 거야."
"그, 그렇지만 회장님, 제 눈엔 구부러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요. 게다가…… 모로보시 씨의 능력은 사정거리의 변화와는 관계없어요. 블레이저의 능력은 한 사람에 한 종류. '소드 이터'처럼 디바이스 형상을 조종하는 노블 아츠를 모로보시 씨가 가지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구부러지는 장면이 보이지 않은 것도 어쩔 수 없어. 왜냐하면 애당초 창은 구부러지지 않았는걸. 그리고 카나가 말한 대로, 이건 노블 아츠에 의한 작용도 아니야. 즉 '삼연성'과 같은 신체기술이야."
"???"
"어쨌거나, 오프닝 히트를 따낸 이상, 이 흐름을 타고 모로보시 군은 주도권을 빼앗으러 올 거야. ……쿠로가네 군에게 있어서는 제일 중요한 국면이구나."
그리고 토카의 말대로 시합은 움직였다.
『이 상황에서 '칠성검왕'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공세로 전환했습니다!』
◆◇◆◇◆
'이쪽의 혼란이 수습되지 않는 사이에 공격해오는 건가! 과연 잘 알고 있네!'
잇키는 이 시합이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스스로 앞으로 나선 모로보시의 모습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틀림없이 이쪽의 동요를 꿰뚫어본 것이다.
"싯!"
날카롭게 내찌르는 창끝이 노리는 곳은 발치.
잇키의 기동력을 빼앗을 계산인가.
'어쨌거나, 일단 공격할 생각을 하지 말고 피하는 데 집중하자! 피해서 리듬을 다시 고치는 거야!'
잇키는 스스로 우선은 진정하라고 타이르면서, 발치를 노리는 창을 반걸음 뒤로 물러섬으로써 피하려고 했다.
찌르기에는 바람을 벨 만큼 기세가 붙어 있었다.
막기는 일단 불가능.
창은 허무하게 석판의 지면을 꿰어 찌르고, 잘하면 결정적인 틈이──.
그렇게 잇키가 생각한 순간에 그것은 일어났다.
잇키의 발치를 노려서 내질렀던 창끝이 갑자기 급부상 했다!
이번에는 얼굴을 노려서 날아온 것이었다.
'우와아아아아!'
가까스로 목을 기울여서 직격은 피했지만 뺨의 살점이 얕게 긁혔다.
'이제 틀림없어……! 모로보시 선배의 찌르기는 어떤 원리인지 모르겠지만 구부러지는 거야!'
단단하고 똑바로 뻗었을 창이 점토처럼 꾸불꾸불 굽는다.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지만 두 번이나 이어지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두 번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다.
이다음에 모로보시가 내찌르는 찌르기──그 전부가 구부러진 것이었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위로 아래로. 그야말로 변환자재!
그리고 그 전부가 잇키가 피한 방을 향해서 뒤따라왔다.
'엉망진창이야! 이런 걸 사이드 스텝으로 피하면 꼬치가 되겠어!'
아슬아슬하게 회피할 수 있을 만한 기술이 아니었다.
잇키는 어쨌거나 정신없는 상태로 창의 간격에서 완전히 벗어남으로써 피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쿠로가네 선수! 아까 전까지 보여 주었던 아름다운 회피가 거짓말 같은, 허리를 뒤로 빼는 한심한 싸움입니다! 뒤로 뒤로, 마치 일심불란으로 도망쳐 대는 것 같습니다!』
'일심분란으로 도망쳐대고 있다고요!'
아나운서의 신랄한 말에 잇키는 쓴웃음을 띠웠다.
그러나 도망치는 것과 지는 것은 다르다.
도망치는 것은 지지 않기 위한 행위. 아무리 보기 흉해도──그 노리는 끝은 승리 하나.
그리고 잇키도 무서워서 도망쳐대는 것이 아니었다.
도망치면서 모로보시를 관찰하고 지혜를 짜내어서, 확실하게 모로보시의 '추적형 찌르기'의 비밀에 다가가려고 했다.
'아나운서의 말을 통해 확실히 알겠어. 역시 다른 사람에게는 이게 보이지 않아.'
만약 추적형 찌르기가 보였다면, 이렇게 중계하지는 않을 것이다.
잇키의 허리를 뒤로 빼는 싸움을 언급하지 않고, 모로보시의 보이지 않는 기술을 상찬할 터였다.
'그렇게 되면, 이 '추적형 찌르기'의 원리는 틀림없이──.'
"왜 그래! 도망치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고! 쿠로가네!"
허공을 찢고 찌르며 펼치는 강철의 섬광.
밀려오는 은빛에 대해서 잇키는 지금까지 줄곧 그 창끝을 주목했다.
어쨌든 희한한 움직임으로 이쪽을 쫓아오는 창이었다.
아무래도 의식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건 착각이야. 의식해야 하는 건 창끝이 아니라, ──모로보시 선배의 손!'
이 순간, 잇키는 모로보시가 펼치는 추적형 찌르기의 정체에 다다랐다.
그는 놓치지 않았다.
창을 내찌르는 순간, 모로보시가 손목의 스냅과 팔꿈치의 각도를 바꿈으로써 창을 내찌르면서 궤도를 바꾸는 순간을.
'역시…… 그런 거였나!'
그랬다. 애당초 창이 구부러질 리가 없었다.
구부러지는 것처럼 보인 이유는 그 변화가 너무나도 날카로웠기 때문에 그렇게 착각했을 뿐.
찌름과 동시에 굽는다. 굽음과 동시에 꿰뚫는다.
말로 표현하면 그뿐인 일.
그렇지만 옆에서 보면 찌르기 한 번으로만 보이는 순간 삼연격을 반복하면서 펼치는 이 동작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동작은 이미 인간의 반사 속도를 뛰어넘었다.
머리를 써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다.
모로보시는──새겨넣은 것이었다.
육체에, 뼈에, 그리고 피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막대한 연습량의 끝에.
모로보시의 찌르기는 이미 뇌의 지령마저 필요로 하지 않고 적을 따라가 죽인다.
그 마법으로마저 보일 만큼 극에 달한 신체 기술.
그것이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의 창술──'혜성'이었다.
'굉장한 기술이야!'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신체 기술.
그것도 '소드 이터'처럼 타고난 센스(체질)이 아니라, 쌓아 올린 노력으로 이룩한 기적.
같은 무예의 길을 걷는 자로서 존경마저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점 공격인 '찌르기'의 피하기 쉽다는 약점을 역으로 이용해, 약점마저 전술로 짜 넣은 스타일에 잇키는 감동을 느꼈다.
칠성검무제에 오기를 잘했다.
이렇게나 굉장한 기사와 싸울 수 있으니까.
그러나──.
'싸우는 것만으로 만족할 생각은 없어!'
'혜성'이 불순물 없는 순수한 체술이라는 사실은 알았다.
그렇다면 이쪽에도 공격할 여지가 있다!
간단한 일── '혜성'의 강점은 회피 직후 무방비한 상태인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애당초 피하지 않으면 그만일 뿐!"
"윽──?!"
이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잇키가 전투 방식을 바꾸었다.
목을 노리는 '혜성'을 '음철'로 쳐서 떨어뜨리고 회피하면서 후퇴한 다음, 방어하면서 앞으로 전진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큭?!"
곧바로 모로보시는 '혜성'의 '삼연성'으로 응전했지만 피하지 않으면 평범한 찌르기였다.
제3장개술수는 이미 드러났다.
잇키는 그 공격을 모두 쳐내고 쳐서 떨어뜨리며 한 발 한 발 간격을 좁혔다.
『이러언! 이 상황에 쿠로가네 선수가 변화를 줬습니다! 회피하기를 그만두고 강경한 중앙돌파를 감행! 불꽃을 튀기면서 빗발치듯이 쏟아지는 강철의 섬광을 가르고, 착실하게 간격을 좁혀갑니다아아!!!!』
이런 잇키의 변화에 모로보시는 이 싸움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괴로운 표정을 보였다.
어지간한 상대라면 설령 '혜성'의 공략법을 이해했다고 해도, '삼연성'의 고속 연타를 해치면서 전진하는 일 따위는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잇키는 그럴 수 있었다.
'퍼펙트 비전(완전장악)'이나 '블레이드 스틸(모방 검기)'를 가능케 하는 조마경 같은 관찰안으로, 이미 모로보시 유다이의 창술의 버릇이나 경향을 어느 정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도망치는 잇키를 깊게 쫓아가서, 모로보시는 기술을 지나치게 많이 보여준 것이었다.
"하아앗!"
『모로보시 선수, 필사적인 형상으로 고속의 창술을 찔러댑니다. 그렇지만 쿠로가네 선수는 멈추지 않습니다, 멈추지 않아요! 빗발치듯이 쏟아지는 창을 해치고 나아갑니다아!』
『이래서야 '칠성검왕'은 괴롭겠네요. 창의 장점은 그 사정거리입니다. 품 안으로 들이면 그 전투력은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모로보시 선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를 밀어내야만 합니다.』
그러나 무슨 행동을 할지 예견된 이상, 아무리 수를 늘려도 잇키의 전진은 저지할 수 없다.
이미 검의 간격으로 발을 들이는 것은 시간문제.
그리고 잇키 정도 되는 검사가 한 번 간격을 잡으면 일을 그르치는 일은 거의 없다.
잇키가 모로보시의 품을 빼앗을 때, 승부는 정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잇키가 검의 간격에 앞으로 한 걸음 위치까지 공격해 들어왔다.
"빌어먹으으을!"
모로보시는 마지막 저항이라는 양 '삼연성'을 내찔러서 잇키를 저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잇키는 그의 창술을 이미 훔쳤다.
따라서 잇키는 팔꿈치의 각도, 시선의 위치를 통해 '삼연성'의 궤적을 순식간에 간파했다.
하나, 둘 가볍게 튕겨내고서 세 번째 공격을 찌르려고 창을 뒤로 뺄 때 타이밍을 맞추어서 간격으로 뛰어들었다!
『이 상황에서 마침내 쿠로가네 선수가 모로보시 선수를 검의 간격에 붙들었습니다아아!』
"호시이이이! 도망쳐어어어어!"
궁지에 몰린 '칠성검왕'의 모습에 객석에서 비명이 울렸다.
그러나 모로보시는 '삼연성' 마지막의 일격을 남겨두었다.
'삼연성'도 '혜성'과 마찬가지로 막대한 반복연습으로 그 프로세스를 육체에 배어들게 한, 사고가 끼어들 여지 없는 초속의 기술이었다.
도망치라는 말을 듣고서 도망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몸은 움직였다. 마지막 일격을, 잇키의 가슴께에 쏘기 위해서!
그러나 이미 잇키는 모로보시의 창술의 버릇도 궤적도 각도도 다 읽어냈다.
공격을 쳐서 떨어뜨리는 것에, 만에 하나의 실패도 없다!
'이 마지막 '삼연성'을 떨쳐내면 검의 간격에 들어간다! 여기에서 단숨에 승부를 걸어──.'
그렇지만 그 순간──.
'아니, 기다려!! 이건 낭패야!!!'
잇키의 뇌리에 뇌광이 내달리고──, 링 위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직전까지 모로보시를 몰아넣으러 따라붙었던 잇키가 '토라오'에 어깨를 꿰뚫려 그대로 간격 밖까지 밀려서 날아간 것이었다.
◆◇◆◇◆
『이러어언?! 이, 이건 어떻게 된 걸까요! 누가 보아도 명백히 우세하게 공격하던 쿠로가네 선수, 갑작스럽게 공격을 받았습니다! 어깨를 꿰뚫려서 단숨에 먼 간격 바깥쪽까지 밀려서 날아가버렸습니다아!』
"거짓말이야! 오라버니가 그 상태에서 실수하다니!"
예상도 하지 않았던 전개에 낭패스러워하는 시즈쿠.
그러나 옆에 있던 아리스인은 시야에 훨씬 믿을 수 없는 것을 보고서 얼굴이 새파래졌다.
"시즈쿠! 잇키의 '음철'을 봐!"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시즈쿠에게 자신이 보았던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거, 거짓말……!"
『이건! 어찌 된 일일까요! 쿠로가네 선수의 디바이스 '음철'이 이지러졌습니다! 마치 대형 짐승에게 물어뜯긴 것처럼!』
그랬다. 놀랍게도 잇키의 혼의 결정이기도 한 디바이스 '음철'의 날이 커다랗게 도려내진 것이었다.
『대체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디바이스는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부러지기는커녕 휘어지는 일조차 없을 텐데요……!』
곤혹스러워하는 아나운서.
그것도 당연한 일.
블레이저의 디바이스는 초고밀도의 마력 결정.
이이다는 오랫동안 마도 기사의 싸움을 실황 중계해 왔지만, 디바이스가 상처 입거나 이지러지는 것을 본 적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런 이이다에게 해설인 무로토가 흥분한 말투로 말했다.
『아뇨, 예외가 단 하나 존재합니다.』
『예외라고요?』
『네. ──'칠성검왕'이 든 '토라오'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무로토의 말에 회장 안의 시선이 모로보시에게 모였다.
그리고 모든 이가 깨달았다.
어느새인가 모로보시의 창이 황금빛 오리를 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창을 감싼 오라가 무엇인지는 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이, 이건, 어느샌가 '칠성검왕'이 '타이거 바이트'를 발동시켰습니다!』
어젯밤, 그 '바람의 검제'가 쓰는 노블 아츠 '쿠사나기'마저 지워버린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가 자랑하는 대블레이저 전투 최강의 능력──'타이거 바이트'였다.
『그, 그렇지만 모로보시 선수는 어째서 이 타이밍에 '타이거 바이트'를?! 쿠로가네 선수는 노블 아츠를 전혀 쓰지 않았을 텐데요…….』
그렇게 거기까지 말한 참에 이이다는 퍼뜩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서 표정을 경악으로 일그러뜨렸다.
『서, 설마…………!』
『눈치채신 모양이군요. 그렇습니다. 노블 아츠를 소멸시킨다는 말은 거기에 존재하는 마력을 소멸시킨다는 뜻. 그리고── 블레이저가 마력을 이용하는 것은 노블 아츠뿐만이 아닙니다. 블레이저의 무기인 디바이스 역시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모로보시 선수는 '칠성검왕'이 된 요 1년 동안 무서운 힘을 몸에 익힌 모양이로군요.
작년까지는 어디까지나 "타이거 바이트'는 블레이저가 자신이 지닌 마력의 일부로 만들어낸 노블 아츠를 소멸시키는 수준의 출력일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올해의 '타이거 바이트'는…… 초고밀도의 마력 결정인 디바이스 그 자체를 물어뜯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태에 먼 도쿄에서 싸움의 행방을 지켜보고 있던 토카도 숨이 막혔다.
"그럴, 수가……!"
"회장님……, 이렇게 되면 쿠로가네 씨는 상당히 힘들지 않을까요?"
"…………상당히, 정도가 아니야."
그렇다. 힘들다는 수준이 아니다.
디바이스는 블레이저의 혼 그 자체.
부서지거나 부러지기라도 하면, 그것은 통렬한 정신적 타격이 되어 블레이저의 의식을 손쉽게 끊어낸다.
'타이거 바이트'가 디바이스조차 파괴하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면──.
모로보시를 상대로 검 씨움을 하는 것은 부디 죽여달라며 심장을 들이미는 것이나 마찬가지.
다행히도 이번만은 부서질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두 번째는 없으리라.
이제 잇키는 모로보시의 '토라오'를 '음철'로 받아낼 수가 없다.
그것은 동시에──'혜성'의 공략법을 잇키가 잃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파고들 틈이 없어……!'
토카도,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카나타도, 그리고 회장에 있는 잇키의 동료들도, 모두가 '타이거 바이트'의 무서움에 전율했다.
그렇지만…… 링 위에 있는 잇키는 달랐다.
그는 그 능력 이상으로──모로보시 유다이라는 인간에게 전율했던 것이었다.
'정말로, 무서운 사람이야……!'
확실히 '타이거 바이트'는 강력한 능력이었다.
자칫하면 그 힘만으로 칠성검무제를 제패할 수 있을 만큼.
그렇지만 잇키가 대치하는 기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압도적인 힘에 취하지 않고서 용의주도한 책략으로 잇키를 붙들어 맸다.
그랬다. 맨 처음 쓴 '삼연성'부터 전부 복선이었다.
우선 '삼연성'으로 잇키를 간격으로 들어오게 꼬드기고, 그 상황에서 찌르기 기술의 약점을 역으로 이용한 '혜성'을 때려 넣는다.
당연히 잇키는 걸려들지 않았다고 생각하리라.
'삼연성'으로 보인 틈은 진짜인 '헤성'을 때려 넣기 위한 덫이라고 여기며.
그러나 잇키 또한 칠성검무제에까지 나온 강자.
곧바로 '혜성'이 피하지 않고 떨쳐내면 그만인 신체 기술이라는 사실을 간파할 터.
사실, 잇키는 그 점을 간파하고서 감쪽같이 속았다며 공격해 들어온다.
──그러나 그것은 전부, 모로보시의 시나리오대로.
'혜성'은 진짜 따위가 아니었다.
이 기술의 역할은 처음부터 최후의 일격이 아니라, 잇키가 '음철'로 '토라오'를 떨쳐내는 상황으로 유도하기 위한 미끼.
블레이저의 치명적인 약점인 디바이스에 '타이거 바이트'를 때려 넣기 위한!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면 좀 더 조잡해질 법한데…….'
결코 엉성해지지 않고서 용의주도하게 전략을 굴리며 적의 의식이 미치지 않는 사각을 찌른다.
만약 그 한순간 '노블 아츠를 소멸시킬 수 있다면 디바이스도 소멸시킬 수 있지는 않을까' 하고 우려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잇키는 '음철'을 물어 뜯겨서 졌으리라.
"아깝네. 조금 더 하면 그 무딘 칼을 통째로 삼켜줬을 텐데."
"큭…………!"
잇키의 앞에 선 모로보시는 아까 전까지 보였던 허둥대는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도전적인 웃음을 띠우며 침착하게 꿰뚫린 어깨에서 피를 흘리는 잇키를 내려다보았다.
이 상황에 이르러 잇키는 한 가지 사실을 확신했다.
지금 상대하고 있는 이 모로보시 유다이라는 남자.
겉보기나 말투의 거친 분위기를 통해 호쾌한 인상을 받지만──.
기실, 한기가 들 정도로 영악했다.
모로보시의 일거수일투족에는 항상 잇키를 옭아매는 전략의 실이 펼쳐져 있었다.
아무리 틈을 찌르려고 해도 그가 생각대로 몰려간다.
술책의 폭이 넓고 깊다.
'품이 멀어…….'
모로보시와의 거리는 고작 5미터 정도인데, 현재 잇키에게는 그것이 아득히 먼 저편으로 흐릿하게 보였다.
'이것이 '칠성검왕'의, 일본 제일의 간격인가……!'
◆◇◆◇◆
"이건 상당히 혹독한 전개네."
다시 거리를 벌리고 고착상태로 빠진 반상을 보며 아리스가 중얼거렸다.
모로보시가 "타이거 바이트'를 쓰기 시작한 이상, 이제 잇키는 창을 쳐내며 나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
즉──잇키는 '혜성'을 공략할 방법을 잃었다는 뜻이 된다.
'혜성'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아리스인 일행이었지만, 잇키가 회피에 애먹는 장면은 몇 번이나 보았다.
그 찌르기에 무언가 비밀이 있다는 사실은 알아챘다.
그렇기에 그런 아리스인의 중얼거림을 듣고 시즈쿠 또한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두 번, 아슬아슬할 정도까지 몰아붙였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에 역전당했다.
공격해 들어가는 쪽은 명백히 잇키인데, 모로보시는 아직 찰과상 하나도 입지 않았다.
옆에서 보아도 어느 쪽이 시합을 지배하는지는 명백했다.
"설마 오라버니를 이렇게까지 제멋대로 다룰 줄이야."
그러나 그때,
"과연 그럴까?"
시즈쿠의 약한 소리에 옆에서 이의가 들어왔다.
목소리의 주인은──양복 차림을 한 장신의 여성.
"이사장 선생님……."
하군 학원의 이사장인 신구지 쿠로노였다.
쿠로노는 시즈쿠 일행의 옆에 서서 담배를 피우면서 시즈쿠의 착각을 지적했다.
"확실히 옆에서 보면 제멋대로 취급받는 것처럼 보이지. 사실, 지금까지 시합의 주도권을 쥔 건 모로보시야. ……그렇지만 저 녀석도 생각대로 시합을 진행하고 있는 건 아니야. 지금은 여유 부리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내심 편치 않겠지."
"그 말은 무슨 뜻인가요?"
"저 '타이거 바이트'는 모로보시가 이중 삼중으로 덫을 펼쳐 승부를 결정지으려고 쓴 한 수였어. 그렇지만 결과로 보면 어떻지? 시합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쿠로가네가 아슬아슬하게 모로보시의 노림수는 처음부터 '음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몸을 방패로 써서 '음철'을 지켰기 때문이야."
이것은 모로보시에게 있어서 통한이었을 것이라고 쿠로노는 말했다.
어째서냐 하면 이 기습을 두 번은 쓸 수 없다.
이제 잇키는 결코 '토라오'를 '음철'로 받아내지는 않을 것이다.
"즉, 시합 개시 직후부터 쌓아온 모로보시의 책략은 이 잇키의 임기응변 때문에 물거품으로 변해 사라졌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승부는 원점── 아니, 솜씨를 많이 드러낸 만큼 모로보시가 불리했다.
"게다가 무엇보다, 남의 의표를 찌르기를 잘하는 건 모 로보시뿐만이 아니야."
쿠로노의 이 말은 당연히 링 위에 있는 잇키에게 들리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이때 잇키는 쿠로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과연 '칠성검왕'이로군요, 모로보시 선배. 아까 전부터 놀랄 뿐이에요."
"비겁하다고 하지는 않겠지. 틈을 유발하는 건 싸움의 전투수단이니까."
"네. 물론 그런 말은 안 해요. 그보다…… 저도 좋아해요, 그런 거."
모로보시와 말을 나누면서 잇키는 고개를 들었다.
그때 보인 잇키의 얼굴에는 마치 장난꾸러기 꼬맹이 같은 짓궂은 웃음이 떠올라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엔 제가 모로보시 선배를 깜짝 놀라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렇다. 신체 기술을 이용하는 책략이나 속임수를 특기로 하는 것은 잇키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이 속임수 대결. 일방적으로 진 상태로는 끝낼 수 없다.
놀라게 해 줘야 성이 찬다.
그리고 잇키는 이미 그 수단을 떠올렸다.
이 시합을 결정지을 수 있는, 모로보시의 의표를 찌를 페이크.
그 프로세스를.
◆◇◆◇◆
『이러언! 이 상황에서 쿠로가네 선수가 설마 하던 도발을 합니다아! 두 번이나 칠성의 정점을, 아득함을 뼈저리게 느끼고서도 아직 이 도전자는 굴하지 않습니다! 주눅이 들지 않습니다!』
"좋아, 쿠로가네! 기합으로 지지 마아!"
"잇키! 힘내!"
일방적으로 시합을 끌려가면서도 꺾이지 않는 잇키의 투지에 관객석에서 환성이 울렸다.
그 환성을 흘려들으면서, 모로보시는 눈앞에 있는 남자가 꺼낸 말에 담긴 그 진의를 고찰했다.
'허세……를 부릴만한 녀석이 아니야.'
그렇지만──상상은 할 수 없었다.
이제 잇키는 '혜성'을 검으로 쳐내고서 들어갈 수는 없다.
'타이거 바이트'를 전개한 '토라오'에 그것은 자살행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일도수라'를 쓰는 것 또한 마찬가지.
'토라오'의 '타이거 바이트'는 '쿠사나기'조차 쉽사리 삼키는 대식가이다.
잇키 수준의 마력 따위는 그야말로 한 입 거리도 안 된다.
마력을 소멸시키는 기술을 가진 모로보시를 상대로 시간제한을 짊어지는 '일도수라'는 간단히 쓸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런 잇키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모로보시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재미있네.'
씨익, 모로보시는 입매를 희열로 일그러뜨렸다.
"깜짝 놀라게 해주시지."
모처럼 자신이 상상도 가지 않는 방법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렇다면──보지 않으면 손해인 법.
모로보시는 잇키가 무슨 짓을 해와도 대응할 수 있게끔, 어깨의 힘을 빼고서 창끝을 잇키를 향해 겨누었다.
"그렇지만 시시한 걸 보여주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 오사카 사람은 시시한 걸 정말 싫어하니까."
"그건 보고서 즐기도록 하시죠."
그렇게 말하더니 잇키는 깊게 허리를 숙이고서 땅을 박차는 다리에 힘을 모아──.
"그럼, ……갑니다!"
석판의 링에 발을 굴러 부술 기세로 모로보시를 향해서 돌격했다.
『쿠로가네 선수가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빠, 빠릅니다! 이 속도는 시합 개시 때부터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이미 두 번 격퇴한 칠성의 정점! 도발을 넣고서 세 번째! 세 번째는 제대로 될까요?!』
기대에 목소리가 날카로워진 이이다 아나운서.
관객 또한 잇키의 도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대에 들끓었다.
그렇지만──.
『아니, 확실히 빠르기는 빠릅니다만, 이건…………!』
프로 마도 기사인 무로토는 의문을 품었다.
잇키의 움직임이 아까 전까지와 아무런 차이 없이, 그저 맷돼지처럼 똑바로 돌격할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로보시도 같은 불만을 느꼈다.
'질리지도 않고 똑바로 파고들어 온다고……?!'
게다가 '일도수라'도 없이.
맨몸으로 '혜성'을 돌파할 수 없다는 사실은 실컷 실증했다.
그런데도 세 번이나 같은 공격을 걸어오다니 너무나도 재주가 없다.
"쿠로가네. 말했을 텐데. 시시한 걸 보여주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말이지!"
당연히 모로보시는 이 공격을 받아쳤다.
쏘는 것은 잇키를 실컷 괴롭혔던 추적형 찌르기──'혜성'이었다. 거기에──.
"물어뜯어라아아! '타이거 바이트'────!!!!"
마력 파괴의 능력을 써서, '혜성'은 회피도 방어도 불가능한 일섬으로 화했다.
잇키는 다가오는 창끝을 오른쪽으로 피하려고 시도해보았지만, 그것도 이미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보였던 행동이었다.
'혜성'은 그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모로보시 시점에서 왼쪽으로 궤도를 바꾸었다.
옆으로 피한 잇키를 쫓아서 이번에야말로 목을 꿰뚫었다.
그렇지만 그 순간, ──확실히 붙잡았을 터인 잇키가 환상처럼 사라졌다.
'허?!'
치명상을 주었을 터인 적이 갑자기 소멸했다.
영문 모를 사태에 모로보시는 저도 모르게 할 말을 잃고──동시에 깨달았다.
왼쪽으로 창을 찌른 자신의 오른쪽으로 돌아들어와 검의 간격으로 발을 들인 잇키의 모습을.
'뭐, 뭐라고오오?!'
『여기에서 모로보시 선수 통한의 실수우! 놀랍게도 찌르기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아! 이 실수는 큽니다! 너무 크게 실수를 범했습니다아!』
그렇지 않았다. 이것은 모로보시의 미스가 아니라 잇키의 파인플레이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이는 이전에도 한 번 이 기술을 보았던 시즈쿠였다.
"시즈쿠, 지금 건──."
"응! 틀림없어. 아야츠지 선배와의 시합에서 썼던 '신기랑'!"
그랬다. 잇키가 가진 일곱 자작 검기 중 하나. 제4비검──'신기랑'.
특수하게 완급을 붙인 스템을 밟아서 자신의 전방에 잔상을 만들어내 적의 헛공격을 유도하는 기술이었다.
잇키는 이번에 이 '신기랑'을 '전후'가 아니라 '좌우'로 이용해서 '칠성검왕'을 속인 것이었다.
'제기랄! 잔상을 붙잡았어!'
그렇지만 모로보시 또한 일류의 학생 기사.
자신의 무엇을 당했고 적이 무엇을 해왔는지 곧바로 분석해서 가장 좋은 반격을 선택했다.
창을 되돌릴 시간도 털어낼 시간도 없다.
그렇다면 창날의 반대쪽.
창 자루의 물미로 찌르기를 세게 내질렀다.
그 선택은 확실히 가장 좋은 반격이었지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제때에 맞지 않았다.
모로보시 스스로 그 사실을 이해했다.
'혜성'은 상대의 뒤를 추격한다는 전제에서 생겨난 모로보시의 사각을 찌른다는 잇키의 전략 때문에 완전히 의표를 찔려서, 검의 간격으로 잇키를 들였다.
이 상황은 치명적이었다.
가장 좋은 반격을 해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틀림없이 잇키의 베기 공격 쪽이 빠르게 닿는다.
그것은 이미 피할 도리가 없다.
이 순간, 모로보시는 확실히 자신의 패배를 각오했고,
그렇기에,
다음 순간에 되돌아온 물미가 잇키의 이마를 때려 맞은 상대방이 나가떨어지는 감촉에 경악했다.
『이러언! 이건 모로보시 선수가 잘 대처합니다! 빗맞혔다는 걸 알자마자 즉시 물미로 역치기! 왼쪽으로 돌아들어 간 쿠로가네 선수를 때려쳐서 간격으로부터 튕겨냈습니다아아! 쿠로가네 선수, 또다시 검의 간격으로 끌고 들어가는 것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칠성검왕' 관록의 디펜스입니다아아아!!!!』
세 번, 잇키의 공격을 격퇴한 모로보시에게 갈채가 쏟아졌다.
그렇지만 모로보시의 귀에는 그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니야……. 지금 건 내 파인플레이가 아니야!'
모로보시는 알고 있었다.
그 순간,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자신의 반격이 먼저 닿는 일 따위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야말로 잇키가 승부를 결정짓는 극한의 한순간 속에서 치명적인 착오를 일으키지 않는 한은.
'설마──.'
당황스러움이 모로보시의 마음을 흔들었다.
떠오르는 기억은──물론 어젯밤에 있었던 일.
오마의 앞에, 마치 움츠러들 듯이 움직임을 멈추었던 잇키의 모습.
'역시, 어딘가 이상한가?! 쿠로가네……!'
그리고 그런 모로보시의 짐작은 ……나쁘게도 적중했다.
◆◇◆◇◆
물미로 얻어맞은 충격은 두개골을 꿰뚫고서 잇키의 의식을 격렬하게 흔들었다.
두개골 속에서 뇌수가 미친 듯이 춤추고, 시야가 질척질척 녹았다.
그렇지만──현재 잇키는 그것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또, 야…………!'
여태껏 잠잠했던, 어젯밤 오마와의 싸움에서 발현한 수수께끼의 증상.
신체가 뜬금없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는 사태가 그야말로 승부처의 한순간, 잇키가 극한까지 집중을 높여서 모로보시를 쓰러뜨리러 간 순간에 다시 발현한 것이었다.
'제길. 정말로 어떻게 된 거야, 내 몸은……!'
『네 녀석 설마 세계 최강의 검사와 싸워놓고서, 예전처럼 자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설령 몸이 무사하다 해도 마음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리가 없잖나.』
'정말로, 망가졌나……!'
에델바이스의 공포가 저도 모르는 사이 치명상이 되어 있었던 것인가.
자각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저조함에 최악의 사태가 머릿속을 스쳤고 등에서 식은땀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이런 잇키의 이변은 그의 동료들에게도 전해졌다.
"어떻게 된 거지? 지금 확실히 끝장을 낼 수 있는 타이밍이었는데, 잇키의 움직임이 급격히 둔해진 것처럼 보였어."
"실제로 둔해졌어. 모로보시의 반격이 신속해서 눈치채기 어려웠지만, 명백히 속도를 잃었어."
아리스인의 말에 키리코도 동의를 드러냈다.
"여, 역시 오라버니, 긴장해서……."
그에 대해 키리코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아니. 그건 아니야. 그랬다면 좀 더 빠른 단계에서 경직이 나왔을 거고, 무엇보다 네 오빠는 긴장으로 몸의 움직임이 둔해질 레벨의 기사가 아니야. 저조할 때는 저조할 때 나름대로 움직이는 방식을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만, 그렇기에, 그런 만큼 이 상태는 심각할지도 몰라."
"시, 심각하다니 무슨 뜻인가요?! 오라버니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적어도 외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확실해. 내가 진찰했으니까 틀림없어. 그의 몸은 만전이었고, 이 시합에서 받은 타격도…… 그렇게까지 크지 않아. 그러니까 아마도 문제를 안고 있는 건 마음 쪽일 거야. ……정신질환은 전문이 아니라서 명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격투기를 하는 선수가 걸리는 정신질환 중에 '펀치 아이'라는 게 있어. 적의 공격에 극단적인 공포심을 품고 몸이 위축되어서 움직이지 않게 되는, 공포를 새겨 넣은 선수가 앓는 선수 생명을 끊을 수준의 심각한 질환이야."
"오라버니가, 그렇다는 말씀이에요?!"
오빠의 몸에 범상치 않은 무언가가 일어났다.
시즈쿠도 어렴풋이 그 사실을 느끼고 있으리라.
그녀는 비명 같은 소리를 지르며 키리코를 추궁했다.
"진정해. 말한 대로 나는 그쪽 방면에 전문이 아니야. 그래서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이야기야. 그렇지만 확실히 그는 그 세계 최강의 검사 '비익'의 에델바이스와 전투해서 패배했지?"
"…………!"
키리코의 말을 듣고 시즈쿠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시즈쿠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잇키는 강하다.
그렇지만 진정한 세계 최강을 상대로 겨룰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사지육체 멀쩡하게 돌아온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 무언가의 상처를 입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그, 그럴 수가……!"
"확실히, 키리코 양이 말한 대로 일지도 모르겠네. ……게다가, 설령 '펀치 아이'가 아니었다고 해도, 어차피 그 타이밍에서 움직임이 둔해지다니 보통 일이 아니야. 잇키의 표정에도 그 점이 드러나."
잇키의 표정은 멀리에서 보아도 동요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을 억누르기 위해 애써 표정을 바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알아챌 수 있는 만큼 사태는 심각했다.
꾸미는 것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동요하고 있다는 뜻이기에.
그렇지만──.
"…………."
세 사람의 굴레에서 제법 바깥쪽에 선 신구지 쿠로노는 이 이상 사태에 대해서 홀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펀치 아이' 같은 PTSD(심적 외상)가 아니로군.'
그녀는 얼핏 보아 잇키 자신도 깨닫지 못한 잇키의 저조함, 그 원인을 간파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도──.
그녀는 미리 이 사태를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잇키와 에델바이스가 한 싸움의 결말을 알았을 때부터.
그래서 안다.
잇키의 저조한 상태가 '펀치 아이' 같은 그의 선수 생명에 관여될만한 질환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나──.
'움직임이 둔해지는 현상에는 변함없어. 그리고 이 이상은 아마 모로보시도 깨달았겠지. ……그렇다면 이 상황은 상당히 심각해.'
링 위. 마주 보는 잇키의 안색을 보고 모로보시는 확신했다.
'……필사적으로 냉정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어젯밤과 같은 얼굴이야.'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께 당황스러워하는 표정.
틀림없이 어젯밤에 나타났던 이상이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그 사실에 모로보시는 내심 작게 탄식했다.
최상의 상태인 '어나더원'에게 이긴다.
그것을 해내고서야 비로소 코우메에게 자신의 강함을 알릴 수 있기에.
'그렇지만, ──여기는 링 위야.'
링 위에서 적의 약점을 찾아내고서 찌르지 않는 것은 승부에 대한 모독일 뿐이다.
아쉬운 기분이 들었지만 봐주지는 않는다.
'네가 보여준 치명적인 구멍. 사양하지 않고 이용해주겠어!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모로보시는 망설이지 않고 단 하나의 승리를 빼앗기 위해서 공세로 전환했다.
『타격으로 받은 충격 일까요, 아직 비틀비틀 발치가 불안한 쿠로가네 선수에게 모로보시 선수가 덮쳐듭니다아! 이, 이건 절체절명입니다! 극복해낼 수 있을까요, '어나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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