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77)

제4장 결판·;어나더원' Vs '칠성검왕'

『물미로 친 통한의 일격부터 시합은 일방적인 전개로 바뀌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명백히 쿠로가네 선수의 움직임이 둔해졌습니다! 모로보시 선수의 찌르기를 피해내지 못하는 장면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링 위에서는 이미 여기저기 피의 꽃이 피어서 처참한 상황! 이제 슬슬 심판 정지가 걸릴까요?!』

싸움이 치러지는 항만 돔 밖.

원래대로라면 사람 하나 없을 고스트 타운에 있는 그곳에서는, 회장에 다 들어가지 못했던 관객들이 모여 각각 자신의 휴대 단말로 칠성검무제의 실황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툭 중얼거렸다.

"이거 이제 결판났네……."

일반인의 눈으로 보아도 '워스트원'의 열세는 명백했다.

주변에 있는 자들도 그 의견에 맞장구를 쳤다.

"그래. 처음에는 '워스트원'도 움직임이 좋았지만 완전히 속도가 줄었어. 이제 도망치는 게 고작이라는 느낌이야."

"역시 강하네, 모로보시는……."

"하하. 그야 그렇지. 뭐라 해도 모로보시는 '칠성검왕'이니까! F랭크의 별종 따위에게 지겠냐!"

그렇지만 그런 와중,

"아니, 이기는 건 잇키야."

단 한 사람,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와 다른 의견을 말하는 자가 있었다.

"어?"

대체 누구인가 하는 생각에 전원이 여자의 목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보았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눈에 힘을 주자 불꽃 같은 붉은 머리카락을 나부끼면서 돔 안으로 사라져 가는 뒷모습이 있었다.

"어럽쇼……, 지금 저 사람………… 설마!"

◆◇◆◇◆

그 무렵, 하군 학원 병동──.

『이런! 쿠로가네 선수, 마침내 제대로 된 찌르기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넓적다리 부분입니다아아!』

『좋지 않군요. 이로써 '워스트원'의 속도는 훨씬 더 떨어질 겁니다. 심판은 이제 멈추는 편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일방적으로 밀려가는 잇키의 모습이 비치는 TY 화면을 바라보며,

"이상하네……."

문득, '뇌절' 토도 토카가 의문의 목소리를 흘렸다.

"그렇군요.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까지 쿠로가네 씨의 움직임이 나빠진 걸까요."

"……아니. 그것도 확실히 신경 쓰이지만 그 이상으로 이상한 건 모로보시 군이야."

"네? 무슨 뜻인가요?"

되돌아온 물음에 토카는 답했다.

"……내가 세어본 한 세 번. 확실히 쿠로가네 군을 끝장 낼 기회가 있었는데, 모로보시 군은 승부를 내러 가지 않았어."

그것은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설마, 가지고 노는 걸까요?"

"그런 짓을 할 선수가 아니야. 그렇지만 그렇기에 이상해."

토카가 흘낏 화면에 비친 모로보시의 표정을 보고서 생각했다.

마치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라고.

'대체, 모로보시 군에게는 뭐가 보이는 거지?'

그리고 그런 토카의 의문을 뒷받침하듯이 화면에서 하나의 커다란 움직임이 있었다.

도망 다니던 잇키가 자빠진 것이었다.

◆◇◆◇◆

"아, 윽!"

『우와아! 모로보시 선수에게서 도망 다니던 쿠로가네 선수! 이 상황에 놀랍게도 자신이 만든 피 웅덩이에 발이 미끄러져 넘어졌습니다! 이건 모로보시 선수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기회입니다! 여기에서 승부가 결정될까요?!』

잇키는 아뿔싸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일어나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허사였다.

이 수준의 기사끼리 하는 대결에서, 이 실수는 돌이킬 수가 없다.

승부는 판가름이 난다.

그럴 터였다. 그렇지만,

『이런? 어째서인지 모로보시 선수가 공격해 들어가지 않습니다! 쓰러진 적에게 추격을 가하지는 않겠다, 이런 뜻일까요?』

그 행동을 '칠성검왕'다운 당당한 페어플레이라고 받아 들였을까.

객석이 끓어올랐다.

"좋아, 호시이! 그래야 일본 최강의 사무라이지!"

"그렇지만 이제 편안하게 해줘! 보는 쪽이 괴로워지기 시작했어!"

"해치워버려, 모로보시~~~~!"

그렇지만 고조되는 자신의 응원단과는 정반대로 모로보시는 식은땀을 흘렸다.

'──지금까지 다섯 번째.'

다섯 번이나 확실하게 잇키에게 결정타를 날릴 기회를 붙잡았으면서, 모로보시는 그 전부를 지나쳤다.

어째서인가, 그 이유는──, 사실, 모로보시 자신도 몰랐다.

그저──.

'뭐지, 이 느낌……, 묘해………….'

공격할 때마다, 몰아넣을 때마다, 눈앞의 반생반사의 기사에게서 느끼는 '압박감'이 강해졌다.

그 '압박감'이 모로보시에게 공격해 들어가기를 주저하게 했던 것이었다.

그렇다, 마치 흡사………….

이 이상 발을 들이면 호랑이 따위보다 훨씬 무서운 귀신의 꼬리를 밟게 된다.

그런 예감──.

"…………윽!"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이 겁쟁이가……! 봐, 녀석의 눈을!'

정체불명의 이상 사태에 시달려 온몸을 피로 물들이면서도 여전히, '워스트원' 쿠로가네 잇키의 눈에 깃든 투지의 빛은 아주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다.

싸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밀어붙이는 자신이 씨움을 포기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그런 뒷모습을 코우메에게 보여서, 어쩌자는 거야?!'

그런 모습은 '칠성검왕'으로서, 무엇보다도 오빠로서 용납되지 않는다.

그 자부가, 긍지가, 모로보시의 등을 떠밀었다.

모로보시는 꾸욱 하고 오늘 자신의 시합 중에서 가장 깊게 허리를 숙이고서,

"간다아아! 쿠로가네에에에에!!!!"

날카로운 기합이 깃든 목소리와 함께, 이 싸움을 끝내려고 잇키에게 덮쳐들었다.

◆◇◆◇◆

모로보시가 지금까지 보인 움직임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돌진하면서 내찌르는 기술은 '삼연성'.

노리는 곳은 미간, 목, 관자놀이를 꿰뚫는 필살의 궤도였다.

틀림없이, 모로보시는 이 한수로 승부를 낼 셈이었다.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에 더해서 넓적다리 부분의 부상.

이 '삼연성'은 일단 피해야만 하리라.

잇키는 그 점을 확신하고서,

'…………윽.'

괴로운 기분으로 이를 악물었다.

『이 은혜는 내일 온 힘을 다해 원수로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했는데, 자신은 그것을 이룰 수 없었다고.

자신에게 전력을 바라준 긍지 높은 기사를 상대로 예를 다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잇키는 분했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는 마지막까지 승부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그것은 자신이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

'그러니 이 상황에서 '일도수라'는 쓸 수 없어.'

그런 영문 모를 저조함을 안은 상태로, 1분이라는 시간 제한이 있는 비장의 카드를 쓰는 것은 자포자기나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승리의 싹을 꺾는 행위.

그래서는 안 된다.

이 승부에서 의식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승리를 포기하지 않고서 싸우겠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무모하다고 해도.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잇키는 모로보시의 공격을 맞받아치려고 칼끝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다가오는 절대적인 패배에 만신창이의 몸으로 칼을 겨누었다.

그 상황은 찰나 속에서 잇키의 뇌리에 하나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이런 느낌이었어.'

그것은 아카츠키 학원의 교정에서 치렀던, 에델바이스와 벌였던 사투의 기억이었다.

시야를 빼앗기고 머리를 쓸 틈도 없을 만큼 필사적이었기 때문에 잘 떠올릴 수 없었던 싸움의 기억.

그때와 연결되는 자신의 너덜너덜한 꼬락서니에 어렴풋 했던 그 기억이 선명해져 갔다.

'그때, 나는 어쨌더라.'

생각해보니 그 기억은 놀랄 정도로 매끄럽게 찾아낼 수 있었다.

다가오는 세계 최강에게 잇키는──.

'아아, 그래. 분명히 훔쳤던 에델바이스 씨의 검기를 써 보았어.'

에델바이스의 검은 너무 빨라서 그 잔상을 붙들 수조차 없었지만, 몸의 움직이는 방식으로 간신히 그 얼개만은 알아챌 수 있었다.

잇키는 기억한다.

그녀가 휘두르는 검의 눈으로도 볼 수 없는 압도적인 속도, 그 비밀은 가속이 없다는 점에 있다는 사실을.

통상, 검을 그저 휘두르려 해도 그 처음 속도는 느리다.

검 끝이 최고속도에 이르려면 어느 정도 가속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에델바이스의 행동에는 모두…… 전혀 가속이 존재하지 않았다.

발을 내딛는 걸음은 발꿈치를 든 순간부터 최고속도에 달했고, 휘두르는 검은 처음 속도가 최고속이 되었다.

0부터 100까지 오가는 극단적인 스톱&고.

그러나 이것이 무척이나 강력했다.

급격한 완급은 그 속도를 몇 배나 빠르게 보일 수 있다.

천천히 움직이는 '처음 속도'가 존재하지 않아서 눈의 초점을 맞추기가 지극히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잇키는 그 전투 중에 거기까지는 간파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그것을 '블레이드 스틸'로 재현하려고 시험해 본 것이었다.

흉내 낼 수 있다는 확증 따위는 없었다.

그저 그것이 자신이 아는 한 최강의 검술이었기에, 써야 하는 것은 이 검술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장소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도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도저히 지금 상태로는 재현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검기가 자신이 아는 한 최강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하다못해──.

그렇게 생각한 잇키는 에델바이스전에서 느꼈던 감각을 돌이키면서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에 지시를 내렸다.

세계 최강의 검기. 그 방식은 분명히────, 분명히────.

"이렇게."

순간.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꿰뚫는 '삼연성'의 틈새를 바람처럼 빠르게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스쳐 지나가는 순간 모로보시의 옆구리를 깊게 후려쳤다.

──지금까지 보였던 저조함이 거짓인 것처럼. '일도수라'도 이럴까 싶을 만큼 빠른 속도로.

교차는 섬광처럼 한순간에 생긴 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피보라를 뿌리며 기세 좋게 지면에 가라앉는 모로보시.

"어…………."

잇키는 그 전부가 자신의 손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데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고,

"""뭐, 뭐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역전극에 회장은 절규로 휩싸였다.

◆◇◆◇◆

『무, 무무무무슨 일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모로보시 선수가 승부를 냈나 생각한 순간, 오히려 모로보시 선수가 링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아아! 교차할 때에 쿠로가네 선수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겠습니다만, ……그, 그렇지만 부끄럽게도 저는 너무도 빨라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아!!!!』

갈라진 목소리로 이이다가 외쳤다.

그랬다. 원거리에 있는 실황 중계석에서 보고 있는 그들조차 현재 잇키의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었다.

갑자기 잇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정신 차리고 보니 모로보시를 스쳐 지나갈 때 베어 넘어뜨렸다.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지금까지 보였던 쿠로가네 선수의 움직임과는 명백히 다릅니다!』

믿을 수 없다는 양 눈을 부릅뜨고 놀라기만 하는 이이다.

그러나 옆에 있는 마도 기사 무로토의 놀라움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마, 말도 안 돼! 그런 설마, 아니, 그렇지만……, 그것밖에 있을 수 없어……!』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잇키가 사용한 검술이, 발놀림이, 누구의 것인지를.

그 기색을 눈치 채고 이이다가 물고 늘어지듯이 물었다.

『무로토 프로. 뭔가 알고 계십니까?! 설마, 이게 소문으로 듣던 '워스트원'의 '일도수라'입니까?!』

『아, 아뇨, '일도수라'가 아닙니다. 쿠로가네 선수의 마력에 변화가 보이지 않으니까요. 이건………… 순수한 검기입니다! 그리고 이도류와 일도류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 동체 시력이 쫓아가지 못할 만큼 빠른 순간 가속과 눈에 비치지 않을 만큼 날카로운 베기 공격을, 저는 이전에 단 한 번 눈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그건 대체, 어디에서. 서, 설마, A급 리그는 아니겠지요?!』

무로토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그런 곳에서는 일단 볼 수 없습니다. 어째서냐 하면…… 이 검기는,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붙잡기를 포기한 사상 최악의 범죄자이자 세계 최강의 검사──

'비익'의 에델바이스가 쓰는 검기니까요…………!』

그 무로토의 말을 듣고 항만 돔은 오늘 가장 큰 혼란과 절규에 휩싸였다.

"뭐, 뭐라고오오오오오?!"

"'비익'이라니, 그 '비익' 말이야?! 그렇지만 어째서 '워스트원'이 '비익'의 검기를 쓸 수 있는 거야!"

"아니, 그렇지만 들은 적이 있어! '워스트원'은 적의 검술을 훔친다고!"

여기저기에서 높아지는 비명 같은 놀라움 어린 목소리.

그리고 잇키의 동료들도 지금만큼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얼이 빠졌다.

쿠로가네 잇키라는 남자가 상당히 상식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그들이었지만, 무로토의 말이 진실이라고 한다면──이번에 선보인 이 검술은 지금까지와 비교할 수 없었다.

"오, 오라버니……! 서, 설마…………!"

"'비익'과 싸워서 살아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강의 검기를 훔쳤다는 거야?!"

"거, 거짓말이야!"

아리스인의 말에 떨리는 목소리로 이의를 제기한 이는 키리코였다.

그녀는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어째서냐 하면,

"그렇다면, 어째서 맨 처음부터 쓰지 않은 거야?!"

그것은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키리코의 의문에 쿠로노는 부정의 답을 돌려주었다.

"쓰지 않았던 게 아니야. 그저 단순히 본인도 기억하지 못해서 쓸 수 없었을 뿐이지."

"아…………!"

그 말을 듣고 키리코도 떠올렸다.

어제 헤어질 때, 잇키와 야고코로가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을.

"그리고 그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 저조함의 원인이기도 했어."

"이사장 선생님, 그건 무슨 뜻이죠?"

"에델바이스의 검기는 보통이 아니야. 통상, 인간의 온갖 행동은 근육의 연동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렇지만 그걸로는 에델바이스의 검기를 다룰 수 없어. 0부터 100을 오가는 극한의 정동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연동하는 근육을 순간에 모두 동시에 움직여 찰나 속에 모든 근육의 힘을 집약할 필요가 있지. 그리고 그걸 이루려면 인간이 순간에 발할 수 있는 뇌 신호량으로는 부족해."

모든 근육에 지령을 다 내릴 수 없다.

"이걸 가능케 하려면, ──뇌의 전달 신호 그 자체를 바꿀 수밖에 없어."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래 인간에게 갖춰진 신호와는 전혀 다른, 훨씬 짧고 훨씬 정보 밀도 높은 '전투용의 신호'를.

그 신호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없다면, 인간이라는 복잡한 구조의 생물에게 갖춰진 근육을 동일한 한순간에 전력 가동하는 일 따위는 불가능하기에.

"쿠로가네는 이 기술을 에델바이스와의 눈 깜빡임조차 허용되지 않는 고속전투 속에서, 에델바이스의 검을 접하면서 습득했겠지. 쿠로가네 자신의 기억이 흐릿해졌어도 뇌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어."

그리고 잇키 수준쯤 되는 검사가 한 번 뛰어난 검술을 받아들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따라하고 만다.

"그렇기에…… 집중력이 극한까지 높아진 승부처에서 뇌는 그 '전투용 신호'를 이용하고 말았어. ──그렇지만 쿠로가네 자신과 마찬가지로, 쿠로가네의 몸은 그걸 잊었지. 잊었기 때문에 원래의 것과는 전혀 다른 신호를 이해 할 수 없었어."

"이해할 수 없어서 반응할 수 없었다는 뜻인가요?"

시즈쿠의 확인에 쿠로노는 고개를 세로로 끄덕여 긍정을 되돌렸다.

"그래. 즉, 쿠로가네는 에델바이스의 손에 망가진 게 아니야. 오히려── 반대지. 에델바이스전에서 그 녀석은 폭발적으로 진화했어. 그야말로 자기 자신의 육체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그렇지만 그것도 아까 전까지의 일."

패배의 위기에 직면해서 잇키의 몸이 간신히 자신이 에델바이스전에서 획득한 새로운 힘을, 태어나서 16년을 이어온 것과는 전혀 다르게 몸의 움직이는 방식을 떠올렸다.

"최고 속도로 헛돌던 엔진(뇌)과 차체(육체)의 클러치가 이제야 간신히 이어졌어. 이렇게 된 이상, 이 시합의 결말은 훤히 보여. 모로보시 유다이는 요 10년 동안의 '칠성검왕' 중에서도 최강이라 해도 좋을 실력자지만 상대가 너무 나빠. 쿠로가네는 졌다고는 해도 진짜 세계 제일의 검기와 사투를 벌임으로써, 그 높은 학습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이미 학생 기사 수준은 크게 벗어난 기술을 손에 넣었어."

그 실력은 이 대회에 나와야 할 수준을 크게 초월했다.

"지금, 모로보시의 앞에 선 남자는──진짜 괴물이야."

그래서 쿠로노는 생각했다.

1회전의 편성. 운이 없었던 사람은 오히려 모로보시 쪽이었다고──.

◆◇◆◇◆

"커, 흑…………!"

모로보시는 뺨을 스치는 차가움에 눈을 떴다.

뺨에 닿은 것은 석판으로 된 링이었다.

'뭐, 지. 어째서, 내가 자빠진 거야………….'

너무나도 순간적으로 의식이 끊어졌기 때문에 모로보시는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잇키에게 공격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어쨌거나, 일어나야지.'

쓰러져 있다는 무방비한 자세에서 즉시 일어나려고 하는 것은 무인의 본능이다.

설령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어도 그 행위만은 반사적으로 몸이 행했다.

그래서 모로보시는 의식을 되찾자마자 즉시 일어나, 그 순간──.

"으, 아아, 아아아아악!"

옆구리를 인두로 지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모로보시 선수가 일어났습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게 심각한 대미지! 출혈이 심합니다! 양 무릎이 떨립니다!』

자신의 상태를 해설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그리고 옆구리의 격렬한 통증에, 모로보시는 간신히 깨달았다.

자신이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뭐야, 이게?! 나는, 베인 건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착란하는 모로보시. 그런 모로보시의 귀에──.

"아아, 간신히 깨달았어……."

툭, 상대 선수의 입에서 흘러나온 작은 중얼거림이 전해졌다.

"쿠로, 가네……, 너── 대체 무슨 짓을 했어……?!"

무엇을 이해했다는 것일까.

이해했기 때문에 그 속도를 냈나.

그렇게 묻는 모로보시에게 잇키는──

"모로보시 선배.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작게 사죄를 돌려주었다.

"죄송, 하다고?"

"네. ……드디어 됐습니다. 드디어 전부 이어졌어요."

잇키가 말하는 것은 당연히──어제 했던 약속에 대해서였다.

전력을 다한다. 온 힘을 다해서 은혜를 원수로 갚겠다.

모로보시 유다이라는 긍지 높은 기사와 나눈 사나이의 약속.

지금, 잇키는 마침내 그것을 다 이룰 수 있다는 확실을 얻었다.

그래서.

"이제 약속대로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진짜로 전력을 다하는 쿠로가네 잇키의 모습을!"

"…………으윽!"

그렇게 말한 순간, 모로보시의 시야에서 잇키의 모습이 소실되었다.

'사라……!'

──진 것은 아니었다.

발꿈치를 든 순간부터 최고 출력을 얻는 가속의 공정을 폐기한 로켓 스타트에, 모로보시의 동체 시력이 따라가지 못했을 뿐이었다.

잇키는 모로보시의 왼쪽으로 돌아들어 가듯이 커브를 그리면서 질주했다.

쉽사리 세 번 튕겨낸 창의 틈새를 재빠르게 빠져나더니 검의 간격에 다다라──.

"으아아아아아!"

모로보시의 옆을 검은 바람이 되어 달려 지나가면서 한 방을 먹였다.

썩둑, 오른손이 찢어진 모로보시는,

"이런 제기라아아아아아아알!"

곧바로 방향을 틀어서 반격했다.

타들어 가는 통증을 통해 잇키의 위치를 간파하고 꿰뚫는 '삼연성'을 찔렀다.

그렇지만 그 전부가 그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찌를 뿐.

돌아본 곳에 잇키의 모습은 없었던 것이었다.

'이. 이미 없다니…………!'

너무나도 빠른 속도에 아연해 하는 모로보시.

그렇지만 놀랄 틈도 주지 않겠다는 양 이번에는 등에 베기 공격이 떨어져 내렸다.

"아아아아악!"

『아아! 또다시 공격받고 말았습니다! 모로보시 선수! 쉽사리 검의 간격으로 침입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완전히 쿠로가네 선수의 움직임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아아! '삼연성'이 다시 엉뚱한 방향의 허공을 찌릅니다아!』

『어쩔 수 없습니다……! 원거리에서 보는 저희조차 자칫하면 놓쳐버릴 만큼 급격한 정동과 압도적인 속도입니다. 이런 속도로 눈앞에서 움직이면……, 도저히 눈으로 따라가기란 불가능합니다! 아마도 '칠성검왕'에게는 이미 '워스트원'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겠죠……!』

무로토가 한 해설. ──그것은 진실을 맞추었다.

'제, 기랄…………!'

모로보시의 시야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몇 번이고 내리쏟아지는 베기 공격.

무시무시한 속도로 자신의 주위를 이동하는 발걸음 소리.

적이 바로 곁에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는데──, 그런데──.

'이제 뭐야, 이게 뭐냐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아무리 움직여봐도, 시야에는 아무도 비치치 않았다.

그저 자신 말고 아무도 없는 링이 펼쳐질 뿐.

말이 되나.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나. 이런 일이!

직경 100미터 정도 되는 평평한 원 위의 링.

차폐물도 무엇도 없는 그 좁은 공간에서,

──숨결 소리마저 들릴 만큼 가까이에 있을 터인 적의 모습을, 완전히 놓치는 일이!

'아, 안 돼…………!'

모로보시는 베기 공격이 다시 내리 떨어지는 기척을 느꼈다.

이 이상 계속해서 공격받으면 곤란했다.

그렇지만 이렇게까지 빠른 속도로 공격을 펼쳐서야 창으로 방어하기도 이미 불가능했다.

그 상황에서 모로보시가 취한 결단은──.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팔을 교차해서 급소를 막았다.

뒤이어서 '타이거 바이트'를 해제해서 전 마력을 방출함으로써 몸을 감싸는 갑옷을 만드는 일이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그 '칠성검왕'이! 일본에서 가장 강하고 긍지 높은 기사가! 고집도 허세도 버리고서 완전 방어 태세입니다아아아아!!!!』

모로보시의 마력은 스텔라의 그것만큼 높지는 않다.

따라서 설령 F랭크인 디바이스라고 해도, 그녀처럼 완전히 무효화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전 마력을 방출한다면, '음철'의 베기 공격을 단순한 타격 수준으로 약하게 만드는 정도는 할 수 있다.

급소인 머리 부분을 팔로 지키면, 일격 이격으로는 치명상에 이르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 자세는 공격할 의지를 완전히 포기한, 수비밖에 할 수 없는 자세.

당연히 잇키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발을 들여놓았다!

『쿠로가네 선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아! 나는 것처럼 달려서 빠져나가면서, 사방팔방에서 속도를 실은 베기 공격을 때려 넣습니다! 마구 칩니다아아아! 모로보시 선수, 손을 쓰지 않습니다! 전의를 상실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칠성검왕'은 '워스트원'의 모습을 완전히 놓쳤습니다. 그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몸을 굳히고 방어에 전념하는 것뿐. 그는 지금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사력을 다해서 싸우고 있습니다!』

무로토는 그렇게 끝까지 시합을 포기하지 않는 모로보시의 마음가짐에 감복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시합은 이제 멈춰야 합니다!』

『그런! 모로보시 선수의 역전은 절대 없다는 겁니까?!』

그 물음에 무로토는 고개를 끄덕 임으로써 답했다.

『없습니다. 두 사람의 기량이 너무 차이가 납니다. 승부가 되지 않을 정도로요!』

무로토는 일찍이 KOK의 A급 리그까지 올라간 적이 있는 국내에서 손가락으로 꼽히는 마도 기사였다.

그런 그이기에 깨닫고 말았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기량의 차이가 손쓰기 어려울 만큼 크다는 사실을.

무로토의 이 해설을 듣고 모로보시의 응원단이 격노했다.

"뭐라 씨부렁거리는 거야, 빌어먹을 해설!"

"호시이이! 포기하면 안 돼~~~~!"

현지 팬들의 비통한 외침. 그렇지만──.

『검은 바람이 불 때마다 모로보시 선수를 지키는 마력의 갑옷이 흩어져갑니다! 무너져갑니다! 깨져갑니다아! 설마, 이대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 작년 이 대회를 제압하고서 전대미문의 칠성검무제 2연패를 기대받은 '나니와의 별'! 이대로, 아무것도 못 하는 채로 끝나고 마는 것일까요오오?!』

갑작스러운 역전극. 그다음부터 펼쳐진 믿을 수 없을 만큼 일방적인 시합.

예상도 하지 못했던 전개를 보이는 C블록 1회전 제4조의 시합이 만들어 내는 흥분과 혼란으로 뒤섞인 도가니의 안 가운데에서──.

응원석의 시즈쿠는 문득, 시야에 회장에서 떠나가는 코우메의 작은 뒷모습을 보았다.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코우메 양…….'

그 모습에 시즈쿠는 떠올렸다.

어제, 잇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코우메가 보였던 복잡한 표정을.

그리고 오늘, 시합을 줄곧 아픔을 견디는 것 같은 괴로워 보이는 얼굴로 관전하고 있던 코우메의 모습을.

'────.'

마찬가지로 싸우는 삶을 사는 오빠를 둔 시즈쿠는 코우메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코우메를 괴롭히는 아픔의 원인도.

그리고──그 착각마저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즈쿠의 다리는 코우메를 따라서 달리기 시작했다.

"있잖아. ……전에도 말했지만, 시즈쿠의 그런 점, 나는 무척이나 좋아해."

자리를 뜰 때 자신을 향해 중얼거린, 모든 것을 헤아린 아리스인의 말을 듣고 살짝 귀를 붉히면서──.

◆◇◆◇◆

항만 돔의 관객석에서 방화문 한 개를 빠져나간 길의 끝에 있는 바깥쪽.

완만한 커브를 그리며 한쪽 면 전체를 유리로 끼운 창을 통해 오사카 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벤치에, 모로보시 코우메는 앉아 있었다.

오빠 모로보시 유다이가 싸우는 회장을 등지고서.

'……오빠…………이제, 됐어.'

이제 그만두었으면 했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더 이상 이런 일은………….

모로보시는 단 한마디도 코우메에게 자신이 코우메의 말을 되찾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코우메는 밀하지 않아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괴로웠다. 힘들었다.

자신 탓에 상처 입고 피 흘리는 오빠의 모습을 보는 것을──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도망쳐 나온 것이었다.

그런 코우메에게,

"시합은 보지 않는 건가요?"

말을 건 사람은 그녀를 따라서 나온 쿠로가네 시즈쿠였다.

코우메는 갑자기 자신을 향해서 말하는 목소리에 다소 놀라면서 뒤를 돌아보고는, 자신과 거의 키가 비슷한 시즈쿠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떠올렸다.

'아,어제 가게로 와줬던…… 분명히.'

지금 오빠와 싸우고 있는 기사의 여동생이었을 터였다.

어째서 그녀가 이런 곳에 있는 것일까.

지금 바야흐로 그녀의 오빠가 자신의 오빠를 쓰러뜨리고 승리하려고 하는 장면인데.

그렇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코우메의 표정을 통해 의문을 읽어낸 것일까.

시즈쿠는 살짝 곤란하다는 양 웃음을 띠우며 자신이 이곳으로 온 이유를 전했다.

"……좀 내버려 둘 수 없었어요. 같은 오빠를 가진 여동 생으로서, ……코우메 양의 괴로운 마음을 깨닫고 말았으니까요."

"!"

어째서 그런 것을 알까.

코우메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시즈쿠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시즈쿠는──.

"키리코 양에게서 모로보시 씨가 어째서 재기를 했는지. 그 이유를 들었어요."

코우메의 곁에 걸터앉으면서 자신이 모로보시 남매의 사이에 존재하는 사정을 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에 코우메는 납득했다.

과연. 확실히 키리코라면 자신들의 사정을 전부 아는 것도 당연했다.

"……코우메 양의 마음. 저는 잘 알아요. 저도 오빠를 정말로 좋아하니까요. 그런 오빠가 상처 입고,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는 건 괴로운 일이지요. 하물며──, 그게 자신을 위해서이기라도 하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질 거예요."

"……………………."

그런 시즈쿠의 말은 바로 코우메의 심경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맞추니 코우메도 새삼스럽게 감추려고 하지 않고 침묵하는 채로 작게 고개를 주억였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만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죠."

코우메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하는 남성에게 무거운 짐이 되다니 견딜 수 없겠죠."

코우메는 고개를 끄덕──.

"?!?!"

눈앞의 여자가 터무니없는 말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새빨개져서 고개를 붕붕 흔들며 부정했다.

자신과 오빠는 결코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

"어? 아니에요? 그런 사랑이 아닌가요? ……그렇군요."

'어, 어째서 유감스러워 보이는 거지…….'

모르는 사랑의 형태를 접하고서 살짝 당황하는 코우메.

"뭐, ……그렇게까지 깊은 관계가 아니라 해도, 자신의 말을 되찾기 위해서 싸워주는 오빠를 향해 남의 일처럼 응원하기는 꺼림칙하겠지요."

"…………"

시즈쿠가 더듬더듬, 마치 위로하는 듯한 말투로 중얼거린 말은 틀림없이 코우메의 마음속을 적확하게 표현했다.

그렇다. 코우메 역시 사실은 응원하고 싶었다.

예전에는 그랬다.

훨씬 더 오래전. 모로보시가 리틀 리그에서 싸웠던 시절.

코우메는 항상 응원석에서 작은 몸으로 있는 힘껏 소리를 질러서 응원했다.

누구보다도 강하고 멋진 자랑스러운 오빠.

그런 오빠를 응원하기를 좋아했다. 즐거웠다.

그렇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 사고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고 말았다.

지금 모로보시가 싸우는 이유는 코우메의 말을 되찾기 위해서.

그런 오빠로서의 의무감이었다.

그래서 도저히 응원할 수 없었다.

언제까지고 시간이 지나도 오빠의 헌신에 응할 수 없는 자신에게 오빠를 응원할 자격 따위는 없었다.

──너는 대체 어디까지 오빠에게 어리광을 부릴 셈이야.

그런 생각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코우메는 그 사고 이후로, 진심으로 오빠를 응원 할 수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미안한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이곳으로 도망쳤다.

'……그걸, 이 사람은 전부 알고 있어.'

코우메는 그 점이 살짝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그런 자신의 마음속을 이해하고 위로의 말을 걸어주기 위해서 와준 시즈쿠에게, 코우메는 확실한 친밀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고마워요'라고 시즈쿠에게 감사 인사를 늘어놓으려고 했다.

그랬지만──.

"그렇지만 별로 상관없잖아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아도."

"……?!"

이어지는 시즈쿠의 말을 듣고 코우메의 손가락이 굳었다.

그리고 놀란 표정으로 시즈쿠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당연했다. 그렇게까지 코우메의 심경을 이해하면서, 시즈쿠는 그녀가 줄곧 고민했던 고민을 온 힘을 다해 내던졌으니까.

그러나 물론 이 말에는 시즈쿠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괜찮잖아요. 아무리 어리광부려도. 당신은, ……아니, 우리는 그게 허용될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의 여동생이고 그들은 우리의 오빠니까요."

"…………."

오빠나 형은 여동생이나 남동생을 지키기 마련.

여동생이나 남동생은 오빠나 형에게 기대기 마련.

그것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 대다수에게 적용할 수 있는 약속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그 누구에게 허용되지 않더라도, 우리만은 그들에게 응석을 부려도 돼요."

자신들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그러니까 저는 응석을 부려요. 설령 오빠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럼으로써 오빠를 아무리 곤란하게 만들어도, 저는 오빠를 사랑하는 걸 포기할 생각은 없어요. …………이렇게 제멋대로 구는 저에 비한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말을 못 하는 건 제쳐놓고서, 모로보시 씨를 응원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코우메 양의 고집은 무척이나 귀엽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시즈쿠가 했던 말의 이유.

그리고 그녀가 이곳으로 온 이유였다.

보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제대로 오빠에게 어리광을 부리지 못하고, 혼자서 죄악감에 짓눌리는 코우메의 모습을.

그리고 시즈쿠가 전하고 싶은 말을 다 마친 딱 그때.

등 뒤의 시합 회장에서 커다란 술렁임이 일어났다.

『쿠로가네 선수, 여기에서 더욱더 기어를 한 단계 더 올립니다! 러시, 러시! 모로보시 선수의 마력 가드를 부지런히 깎아댑니다! 돌파는 시간문제입니다아!』

"시합이 끝날 모양이네요. 슬슬 돌아가겠어요."

그렇게 말하고서 시즈쿠는 벤치에서 일어나──.

"당신은 어떻게 하실래요? 아니,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

"…………."

그렇게 물어오자 코우메는 망설임을 띠웠다.

시즈쿠의 말이 이해가 되긴 했다.

그렇지만 오빠에게 사고를 당하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멋대로 말을 잃어서 걱정까지 끼치는 자신이 이 이상 오빠에게 어리광부려도 될까.

줄곧 고민했던 그 의문을 금세 버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서 코우메는 그저 당혹스러웠다.

그렇지만──,

『아앗! 마침내 모로보시 선수의 마력 가드가 날아갔습니다아아! 모로보시 선수, 절체절명의 위기이이!』

'오빠……!'

세세한 고민을 제쳐놓고서 다리는 자연스럽게 오빠의 곁으로 향하는 것을 선택했다.

◆◇◆◇◆

한편, 링 위. 시합의 추세는 거의 정해져 있었다.

『모로보시 선수, 뒷걸음질로 거리를 벌──.

아아! 쿠로가네 선수가 미리 수를 읽었습니다! 도망칠 수 없습니다!

바싹 뒤따르는 적에게 맞받아치는 '삼연성'! 맞지 않습니다!

창을 내찌르는 속도보다도 쿠로가네 선수가 발을 들이는 속도가 빠릅니다!

셋, 넷, 반대로 베기 공격을 받고 맙니다! 뿜어져 나오는 피가 하얀 링에 쏟아집니다!

쿠로가네 선수의 베기 공격은 전부 맞는데, 모로보시 선수의 찌르기는 더 이상 생채기도 내지 못합니다!

너무나도 일방적인 싸움에 쥐 죽은 듯이 고요한 현지 대응원단!

실례됩니다만, 저로서도 더는 이제부터 모로보시 선수의 역전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힘의 차이가 너무 납니다! 기량의 차이가 너무 납니다!』

몸을 지키는 마력도 다 써서 '타이거 바이트'를 발동할 여력도 잃어버린 모로보시는 억척같이 창을 찔러서 응전했다.

그렇지만 이미 그는 잇키의 그림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런 꼬락서니로는 당연히 적을 꿰뚫는 일이 불가능했다.

모로보시의 창은 허무하게 허공을 찌르고, 그저 아무것도 못 한 채 베기 공격을 그 몸으로 받았다.

──승부가 되지 않았다.

이미 누구의 눈으로 보아도 모로보시의 패배는 명확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렇다 해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 링 중앙에 떡 버티고 서 있습니다아아!!!!』

모로보시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승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질 수 없어…………!'

그것은──코우메를 위해서?

아니었다.

맨 처음에는…… 확실히 오빠로서의 의무감뿐이었다.

자신이 약한 뒷모습을 보인 탓에 상처 입어서 잃어버린 코우메의 말.

그것을 되찾아야만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장소, 이 싸움의 링 위에 막상 돌아오고 나니 모로보시의 마음속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떠올린 것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이 싸움의 세계를 사랑했었는지를.

그리고 그렇기에 강하게 바라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강하게.

그저 말을 되찾을 뿐만이 아니라──.

소중한 여동생에게 응원받고 싶었다.

싸우는 자신이 있고, 응원하는 코우메가 있고──.

그 그리운 시절처럼, 기사의 싸움을 통해 누리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사내답지 못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야.'

그렇기에 그 바람이 이루어질 때까지,

"왜 그러지, 쿠로가네! 나는 아직 서 있다고! 덤벼라아아아!!!!"

코우메가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게 될 만한 강한 오빠로 계속 있도록 하자.

그 긍지가, 바람이, 모로보시 유다이라는 남자에게 불굴의 투지를 주었다.

◆◇◆◇◆

"굉장한 정신력이네……, 아직 꺾이지 않는다니……."

문자 그대로 손도 발도 못 쓴 채 피범벅이 되면서도 잇키를 도발하는 모로보시의 태도를 보고, 원래의 장소로 돌아온 시즈쿠가 전율 어린 목소리를 냈다.

무서울 만큼 강렬한 전투본능이었다.

그 감상에는 쿠로노도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동의를 표시했다.

"과연 재기불능에서 다시 일어선 불굴의 남자로군. 이 녀석의 마음을 꺾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이미 육체 쪽이 한계야. 마력은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고 '타이거 바이트'도 사라졌어. 저 용맹한 도발도 단순히 더 이상 다리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야. 현재의 모로보시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어. 그건 잇키도 알고 있지. 그러니 다음에 결판을 내러 갈 거야."

그리고 반상은 쿠로노가 말했던 대로의 전개를 보였다.

잇키의 몸에서 청색 마력이 뿜어진 것이었다.

온몸을 둘러싸는 불꽃같은 마력광.

그것은 틀림없이 지금 이 싸움을 결판내겠다.

그런 잇키의 결의 표명이었다.

『여, 여기에서 승리를 굳히는 '일도수라'입니다아아아아아!!!! 쿠로가네 선수! '사냥꾼', '뇌절', '홍련의 황녀'와 수많은 이름 있는 강호를 격파해온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아아!』

『'워스트원'──무서우리만치 대단한 승부사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타이밍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이용해 옵니다! 안 그래도 그의 속도에 대응할 수 없는 '칠성검왕'에게는, 이로써 만에 하나의 승산이 사라졌다 해도 좋습니다…………!』

무로토가 말한 대로였다.

평소 상태에서 쓰는 칼싸움조차 대응할 수 없었던 모로보시였다.

신체능력을 몇십 배나 끌어 올린 '일도수라' 상태의 잇키를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잇키는 이 한 수로 모로보시의 승산을 완전히 꺾어──.

"내 최약으로 '칠성검왕'을 쓰러뜨리겠다. ──승부입니다, 모로보시 선배!"

길게 이어진 이 시합을 결정지으려고 최후의 공세를 걸었다.

쿵 하고 몸이 깊게 숙이고 땅을 박차는 발에 실은 힘은 찰나 속에 보이는 전력.

발꿈치를 띄움과 동시에 최고속도에 이르는 파고들기로, ──잇키는 그야말로 날아오르는 것처럼 모로보시를 노려서 달리기 시작했다.

『쿠로가네 선수가 승부를 결정지으러 갑니다아아! '칠성 검왕'절체절며어어엉!!!!』

이 상황이 마지막 절정이라고 보았나.

아나운서인 이이다는 오늘 가장 큰 목소리로 외쳤다.

많은 관중이 '칠성검왕' 설마 하던 1회전 패퇴의 대단한 엇나감에 끓어올랐다.

그 대지가 흔들릴 만큼 강한 흥분과 절규 속에서──.

──코우메는 떠올렸다.

지금 막 패하려고 하는 오빠의 모습을 보고서,

오늘 아침, 모로보시를 배웅할 때에, 그가 코우메에게 했던 말을.

『있지. 힘내라고 말해 줄 수 있어?』

'아아……, 그래………….'

자신만이 아니었다.

오빠 역시, 예전처럼 자신에게 응원받기를 바라주었던 것이었다.

그 사소한 바람에──자신은 무엇을 돌려주었나? 종이에 응원하는 말을 적어서 모로보시에게 건넸다.

──그게 아니잖아?

그가 원하는 것은 그런 종이쪼가리 따위가 아니었다. 그가 바라던 것은──,

『당신은 어떻게 하실래요? 아니,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

그리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힘내애애애애! 오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가슴속에서 흘러넘치는 그대로 코우메는 외쳤다.

사실은 줄곧, 줄곧 하고 싶었던 말을.

오빠에게서 삶의 보람을 빼앗은 자신이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참고 있었던 말을.

몇 년 동안 쓰지 않아서 녹이 슨 목으로 내는 목소리는 말로 나오지 않아서, 그 음량도 스칠 정도로 작았다.

그렇지만──.

'…………아아.'

대지가 흔들릴 만큼 거센 소음 속에서, 그 말은 확실히 오빠 모로보시 유다이의 귀에 닿았다.

당연했다.

그는 이 한마디만을, 몇 년이고 몇 년이고, 계속해서 기다려왔으니까!

"맡겨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순간, 회장 안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로 고함을 지른 모로보시가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전원의 간을 떨어지게 할 믿을 수 없는 일을 해 보였다.

"꿰뚫어라아아아아!! '토라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오!!!!"

반격할 수 없는 몸인 모로보시를 향해 '일도수라'까지 써서 자신의 최고속도로 돌격해오는 잇키.

그런 잇키의 미간을 노려서 모로보시는 남은 모든 힘을 쥐어짜 내 '토라오'를 내던진 것이었다!

모로보시는 이 시합을 통틀어서 시종일관 '창의 간격'으로 싸워왔다.

이제 와서 처음으로 보이는 '투척'이라는 장거리 공격.

이 막판에서 보인 모로보시의 변화에 쿠로노는 소리를 지르면서 놀랐다.

"크, 큰일이야!!!!"

어째서인가.

확실히 투척은 의외였다.

모로보시답게 의식의 사각을 치는 공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장거리에서 펼치는 창의 투척.

──그런 공격은 잇키 수준의 기사에게 맞을 리가 없었다.

그랬다. 맞을 턱이 없는 것이었다. 보통이라면!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별개!

'에델바이스의 검기는 0에서 100을 오가는 급격한 스톱 앤드 고야말로 강점! 그러나 그건 동시에 급격한 감속이나 방향 전환을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

당연하다. 움직일 때는 항상 톱기어이기에.

공격할 때는 견줄 데 없는 공격력을 자랑하는 세계 최강의 검술.

그러나 사실 이 검술은 급격한 상황 변화, 즉──기습에 극히 취약하다!

더군다나 잇키는 '일도수라'마저 쓰고 있었다.

에델바이스의 검기를 쓰지 않았다고 해도 급정지나 급 선회를 할 수 없는 수준의 속도.

'그 말인즉 지금 이 한순간에 한해서는 창의 투척이라는 본래 쿠로가네에게 통할 리가 없는 공격이 떡 하니 꽂힐 거야!'

이에 대한 대처법은 검으로 쳐서 떨어뜨리는 것뿐.

그렇지만──그럴 수는 없었다.

어째서냐 하면 비상하는 '토라오'는 금색의 빛──'타이거 바이트'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로보시의 마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을 터.

그런데 어째서 '타이거 바이트'를 쓸 수 있는 것인가?

그 이유는 '토라오'에 있었다.

'토라오'의 긴 자루.

그 절반이 소멸해서 짧은 창 정도쯤 되는 크기로 줄어 있었다.

모로보시는 디바이스라는 마력의 혼을 분해함으로써 '타이거 바이트' 한 발 분량의 마력을 짜낸 것이었다.

즉, 이 투척을──.

잇키는 받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모로보시, 이 녀석……! 틀림없이 노렸어!'

그랬다. 모로보시는 놀랍게도 얼핏 보고서 이 에델바이스의 검기가 지닌 결점을 간파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그는 덫을 놓았다.

잇키가 '일도수라'를 써서 스스로 제어 불가능할 속도로 공격해 들어오게 하려고.

살점을 깎고, 뼈를 깎고, 혼을 꺾아서 만들어 낸 것이었다.

자신이 잇키의 급격한 변화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다고 꾸며낸 사실.

──피로 물든 허위를!

그리고 그 허위는 진실로 이 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속여 보였다.

관객은 물론이고 쿠로노급의 기사마저!

'쿠로가네는 이미 최고속도에 들어갔어! 이 투척은 피할 수 없어!'

쿠로노는 전율했다.

자신의 예상을 뒤집고 모든 것을 속인 모로보시의 헤아릴 수 없는 전투 감각에.

그것은 곁에 있던 아리스인이나 시즈쿠도 마찬가지였다.

'놀아났다는 거야?! 이 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것이……'칠성검왕'!'

그들인 뼈저리게 깨달았다.

칠성의 정점. '칠성검왕'의 이름을 짊어진 사내의──일본의 정점이 지닌 저력을!

──그러나 이다음 순간, 회장에 있는 모든 사람은 한 층 더 놀라움에 얼어붙었다.

허공을 질주하는 '토라오'의 창끝이 잇키의 이마를 꿰뚫은 순간,

그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사라진 것이었다.

'뭐……, 라고…….'

할 말을 잃는 모로보시.

그런 그에게 위에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올려다보니 그곳에는 태양을 등지며 상공에서 검을 내려치는 검은 검사의 모습이 있었다.

아까 전 '혜성'을 피해 보였던 '워스트원'의 일곱 비검 중 하나──'신기랑'이었다.

잇키는 이번에 '신기랑'을 앞뒤로도 좌우로도가 아니라, 위아래로 이용한 것이었다.

아래에 자신의 잔상을 남기고 강화한 다리 힘을 써서 위로 비상함으로써.

모로보시가 창을 던진 것은 맨 처음부터 잔상이었다.

즉, ──잇키는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모로보시가 지금 이 순간에야말로 송곳니를 드러내리라는 사실을.

어째서인가? 그 이유를,

'…………아아, 그렇구나…….'

모로보시는 칼날을 내리치는 잇키의 표정을 보고서 이해했다.

그의 표정에는 자신의 속임수에 걸려든 모로보시를 비웃는 듯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곳에 있는 감정은──부끄러워질 만큼 올곧은 존경이었다.

'너는, 믿어주었던 거로구나………….'

지금까지 이중 삼중 자신을 덫으로 붙들어 묶어 괴롭혀 온 '칠성검왕'.

그 위대한 왕이 쉽사리 자기 생각대로 패할 리가 없다고.

요컨대 그것이 패인.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모로보시 본인보다도, 쿠로가네 잇키가 모로보시 유다이라는 기사를 존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장 모든 사람을 속인 피에 물든 허위도,

단 한 사람, 이 눈앞에 있는 기사만을 속일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자웅은 정해졌다.

잇키는 낙하하는 기세에 몸을 맡겨 검을 휘둘렀다.

지금 했던 기습에 모든 것을 걸었던 모로보시는 더 이상 무기도 마력도 피할 만큼의 체력도 남아 있지 않아서──, 잇키의 검은 모로보시를 한쪽 어깨에서부터 비스듬하게 깊숙이 찢었다.

선혈이 춤추고 모로보시의 양 무릎이 털썩 무너져 내렸다.

그 도중이었다.

모로보시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 내서, ──손을 뻗더니 잇키의 양어깨를 붙들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자신을 넘어서 가는 기사에게.

자신을 마지막까지 강자라고 믿어준 적에게.

"…………지지 마."

자신의 바람을 맡기듯이.

그리고……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는 마침내 지면으로 무너져 내렸고, 그와 동시에 심판이 시합종료의 신호를 내려서 싸움은 결판을 맞이했다.

◆◇◆◇◆

『시합 종료오오오오오오오!!!

역전에 이은 역전! 숨 쉴 틈도 없는 파란의 C블록 1회전 제4조!

사투를 제압한 사람은 '어나더원' 쿠로가네 잇키 선수입니다──아아!!!!

전대미문! 칠성검무제 2연패를 건 '칠성검왕'이 설마 하던 1회전 패퇴를 당했습니다!

커다란 이변이 일어나버렸습니다아아아!!!!』

시합이 끝난 순간에 의료반이 달려와서 쓰러진 모로보시를 들것에 실었다.

기력을 다 써서 자신의 다리로 링을 내려올 수도 없는 모로보시.

그런 모로보시에게──, 그를 위해서 달려온 응원단은 박수를 보냈다.

"수고했어! 잘했다! 너는 잘했어!"

"우리는 은퇴 전부터 줄곧 너를 응원했지만……, 오늘 네 모습이 가장 멋졌어!"

『의식을 잃어서 들것으로 퇴장하는 현지 영웅에게 박수가 쏟아져 내립니다. 재기불능이라는 말을 들었던 상처에서 다시 일어서서, 여태껏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정점에 계속해서 섰던 불굴의 사내. '나니와의 별' 모로보시 유다이. 패했다고는 해도 마지막에 보였던 그 의지는 일본 최강의 학생 기사에게만 선사되는 '칠성검왕'이라는 유일무이한 별명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멋진 모습이 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승자인 잇키는 실려 가는 모로보시를 배웅하면서,

"네. 지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모로보시가 한 마지막 말에 강한 마음을 실어서 대답을 하고서, 발걸음을 돌려서 링을 내려왔다.

『그리고 지금, 전년도 칠성검무제 패자를 쓰러뜨리고 당당하게 2회전 진출을 결정한 '어나더원'이 링을 뒤로합니다. 최약의 마력에 최강의 검기. 그 평가에 거짓은 없습니다! 이 승리를 목격한 모든 사람은 확신했을 겁니다!

이 소년은──진짜라고!

평범한 F랭크가 아닙니다. 틀림없이, 강호가 북적이는 제62회 칠성검무제의 정점을 다툴 힘을 갖춘 기사라고!』

"엄청나게 굉장했어! 도쿄에서 온 형씨!"

"잇키, 최고오!"

"이 기세로 우승해! 너라면 할 수 있어어!"

돌아가는 길에 내리쏟아지는 박수의 비.

"…………."

잇키는 그에 조금 쑥스러운 마음이 들면서도,

'고맙습니다.'

마음속으로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말하며, 자신이 나온 게이트를 향해 되돌아갔다.

그 발걸음은 '일도수라'의 반동과 익숙지 않은 움직임을 한 탓에 피로로 무거웠다.

그렇지만 그의 등은 조급도 굽지 않았다.

자랑스러웠던 것이었다.

──그 강한 기사를 이길 수 있었던 자기 자신이.

불안이 많은 승부였다.

대기실을 나올 때 무서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렇지만──이겼다. 이겨냈다. 칠성검무제 귀문의 1회전을!

이로써 앞으로 네 번.

네 번을 이기면 다다를 수 있다.

줄곧 목표로 해왔던 장소, 동경하는 장소──.

'칠성의 정점은…… 이제 결코 멀지 않아!'

그 실감과 함께 잇키는 게이트를 지나 퇴장하려고 했다.

그러자──게이트 안쪽에서,

짝짝짝…….

그렇게 박수를 치면서 한 사람의 인영이 걸어왔다.

"봐, 역시 이겼어."

대기실에서 게이트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조명이 없다.

따라서 게이트 안은 새까맸다.

그래서 아직 거리가 떨어진 인영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잇키에게 볼 필요 따위는 없었다.

그 목소리만으로 누구인지를 알아차리기는 충분했기에.

그렇다, 게이트에서 걸어 나온 사람은──.

"뭐, 당연하겠지. 왜냐하면, '어나더원'을 쓰러뜨릴 사람은 나인걸."

타오르는 것 같은 홍련의 머리카락과 루비 같은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소녀.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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