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마
이전에 세워진 도시 계획의 실패에 의해, 개발이 반 정도 진행되다 버려진, 오사카 만안도시. 평소라면 사람의 모습이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유령도시이지만, 지금은 그 폐허의 상징이라고도 불리는 만안 돔에,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꽉 차들어 있었다.
일본에 존재하는 학생기사들의 축제, 칠성검무제를 보기 위하여.
'사대 일이라는 큰소리 뻥뻥 쳐 놨으니 재밌는 걸 보여 달라고! '홍련의 황녀'!'
'아카츠키 쪽도 실력 좀 보도록 할까?'
'미코토! 지지 마!!!!'
이미 시합 개시 신호가 떨어진 B조 제 4시합.
그 이변에 대한 흥분에 의해 회장은 순식간에 끓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객석만의 이야기.
그 열광의 도가니의 중심인 링 위에 있는 아카츠키 학원의, 타타라 유이의 속에선 흥분과는 다른 감정이 일고 있었다.
그건.... 분노였다.
'사람 깔보고 있어...'
물론, 스텔라에 대한 분노였다.
사대 일의 싸움을 신청한다. 그건 즉...... 스텔라가 자신들을, 사람 수에 차이가 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전부 쓰러뜨릴 수 있다, 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납득하고 받아들인 스텔라의 원래 상대였던 '얼음의 냉소' 츠루야 미코토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 자리에 끌려나온 타타라에게 있어선, 정말이지 화가 치미는 상황일 것이다. 그게 칠성검무제를 제패한다는 목적을 둔 자신들에게 있어 이익이 되는 전개가 된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깔보이는 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건방진 태도, 후회하게 해주지...'
"야, 히라가. 이건 공식전이잖아. 죽여버린다 하더라도 사고로 끝난다, 확실히 그랬지?"
"후후후. 네, 당연하죠. 당연하고 말고요. 클라이언트도 그건 이해해줄 거에요. 츠키카게도 또한 기사이니까요."
"키기긱.. 그렇다면 자제할 필요 따윈 없다 이거군!"
타타라는 이 작전의 감독을 맡고 있는 히라가의 승락을 받자 마자, 송곳니를 드러내듯 웃으며
"이번엔 참을 필요 없어! 배부르게 잡아먹어 보자고! '땅을 기는 지네'!"
그 흉악한 미소를 띄우며, 자신의 전기톱 형태의 디바이스 '땅을 기는 지네'의 시동줄을 힘껏 잡아당겼따. 사령의 단말마 같은 소리를 내는 톱날을 땅에 질질 끌어 링 바닥을 파내며, 스텔라에게 선제 돌격을 가했다.
'아카츠키 학원, 타타라 선수가 돌진!!! 힘찬 도약과 함께 주저 없는 돌격!!!! 한 편 스텔라 선순.... 아앗!?'
거기서 갑자기, 실황의 목소리가 바뀌었다.
그 이유는, 스텔라의 양손에 있었다.
'스텔라 선수, 시합이 시작되었음에도 아직 디바이스조차 꺼내들지 않았습니다! 이건 대체 무슨 일인가!?!?'
'뭐, 뭐 하는 거야! 빨리 디바이스 꺼내!'
'잠깐, 벌써 개시 신호는 나왔잖아! 혹시 일본어를 못알아들은 거 아냐!?'
'아니, 신호는 영어로 나왔잖아. 그런데.. 왜 준비조차 안 하는 거야!?'
적을 앞에 두고 무기조차 꺼내지 않는다.
스텔라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장에 퍼진 질문 따윈 괘념치 않고, 상황은 진행되어 나아갔다. 검은 머리를 뱀처럼 휘날리며, 낮은 자세로 스텔라에게 파고든 타타라는
"샤아아아앗!!!!!!!!"
무방비스러운 스텔라의 목덜미를 노리고, 후려치듯 '땅을 기는 지네'의 톱날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건 너무도 큰 동작이고 직선적인 공격이었다. 이런 공격은,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닌 스텔라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질 않는다.
최저한의 스웨이 백스텝으로 단말마를 내지르는 톱날을 피했다.
하지만......
"캬갸갸갸갹!!!!!!"
타타라는 그런 건 상관 없다는 듯, 완력만으로 계속해서 전기톱을 휘둘렀다. 기술도, 우아함도 없는, 마치 아이들의 칼싸움 놀이 같은 휘두르기.
하지만, 그 무기가 전기톱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마력으로 구동되고 있는 톱날은, 기술 따윈 필요가 없었다.
그저 스치는 것만으로도 링 위의 특수석판을 으깨고 깎아내 나가며, 스텔라에게 쇄도하고 있었다.
'타타라 선수! 엄청난 맹공입니다! 방어 따윈 도외시!! 완력만으로 전기톱을 휘두르며 질보단 양으로 공격! 또 공격!!'
아무리 조잡한 칼질이라 해도 이렇게 많은 횟수를 계속해서 휘둘러 오면 계속해서 피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검격에 의한 응전이 필요했다.
그런데...
스텔라는 아직도 '비룡의 죄검'을 꺼내지 않았다.
'타타라 선수, 완전히 시동이 걸린 것일까요!? 숨도 쉬지 않는 연격으로 스텔라 선수를 몰아넣고 있습니다! 마치 폭풍 같습니다! 엄청난 수의 톱질! 하지만, 그에 응전하는 스텔라 선수의 양손은 아직 비어 있습니다! 타타라 선수의 공격은 상당히 난잡하기 때문에 반격의 기회가 있다고 한다면 있긴 합니다만...'
'우와앗! 지금 타이밍, 진짜 아슬아슬했어!'
'타타라 쪽이 서서히 우세에 들어가고 있는 거 아냐!?'
'더는 못 보겠어! 빨리 검을 뽑아 줘!'
시합 개시 신호가 떨어지고, 적이 이빨을 드러내 공격해 오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검을 뽑지 않고 있는 스텔라의 행동에, 회장은 기묘한 술렁임에 가득찼다.
대체, 이 소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하지만 그 질문에, 해설 자리에 앉아 있는 전 KOK A급 리그 선수, 무로토가 답했다.
'아마도 공격할 타이밍을 재고 있을 겁니다.'
'공격할 타이밍.. 말인가요?'
'네. 오전에 열린 B조 제 3시합. 거기서 타타라 선수는 렌테이 학원의 니도메 선수의 배틀 액스에 의한 일격을 보이지 않는 힘으로 튕겨낸 뒤, 크게 몸이 젖혀진 니도메 선수를 공격해 격파했지요. 타타라 선수의 능력은 틀림없이 공격을 '반사'하는 능력. 전투에 있어선 상당히 강력한 능력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공격했다간 큰 틈을 만들어 자멸하게 될 테지요. ......아니, 스텔라 선수의 공격력을 생각해 보면, 틈이 만들어지는 정도론 끝나지 않을 겁니다.'
왜냐면, 충격이나 데미지를 상대에게 돌려 주는 타타라의 노블 아츠 '완전반사'는, 상대의 공격력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술의 위력도 증가되기 때문에.
스텔라의 초인적인 공격력이 반사된다면, 팔이 산산조각이 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타타라 선수같은 '반사 능력자'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일단 그 '반사'의 프로세스를 통과해내야 할 필요가 있죠. 그러니 디바이스를 일부러 뽑지 않은 채로, 상대를 공격할 의사조차 보이지 않은 채 타이밍을 재고 있는 건, 좋은 작전이라 볼 수 있겠군요.'
'즉, 아슬아슬한 데까지 자신의 이빨을 숨기고 능력을 발동시킬 틈도 주지 않는 빠른 속도의 공격으로 상대를 쓰러뜨린다, 그게 스텔라 선수의 작전이라는 말씀인가요?'
'제겐 그렇게 보이는군요.'
그 무로토의 해설에, 객관석에서 시합을 관전하고 있는 스텔라의 친구, 아리스인 나기는 한 광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쩐지, 그 때의 잇키 같네. 시즈쿠, 기억하고 있어?"
"오라버니에 대한 걸 잊다니, 내겐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쇼핑몰에서 '해방군'과 싸웠을 때의 일 말이죠?"
교내 선발전이 막 시작되었을 즘의 일이다. 4명이서 들렀던 쇼핑몰이 '해방군'의 약탈부대에 의해 습격을 받은 것이다. 그 약탈부대를 통솔하고 있던 비쇼우라 불리는 남자가, 마침 딱 타타라와 같은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스텔라 씨는 오라버니의 바로 옆에 있었어요. 당연히 그 공략법도 직접 봤으니 잘 알고 있을 거에요."
잇키는 그 때, 비쇼우의 동체시력을 뛰어넘는 속도로 참격을 가해, '검의 궤도를 사라지게' 만들어 비쇼우의 '반사'를 돌파했다.
'반사 능력자'의 반응속도를 뛰어넘는 초고속 공격으로 '반사'를 회피한다.
확실히 그건 효과적... 아니, '반사' 능력의 소유자를 상대하는 데에 있어서 정공법인 것이다. 그러니 스텔라가 그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전술을 선택하는 건 틀린 판단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 스텔라가 잇키의 전술을 따라하는 데에 있어선 한 가지 문제점이 있어."
"문제?"
그리 물어 온 건, 아리스인 일행과 함께 모로보시와 잇키의 시합을 관전하고, 그 뒤에도 여기에 남아 있는 '백의의 기사' 야쿠시 키리코다.
그 물음에 아리스인은 간소히 답만을 말했다.
"속도야. 스텔라의 검은 확실히 비교할 수 없는 파괴력을 자랑하는 강검이지만, 속도 자체는 잇키의 '뇌광'에 비교하면 현저히 느려. 거기다 스텔라의 무장은 몸 길이에 버금가는 대검. 어떻게 공격을 해도 칼을 휘두르는 데에 큰 동작이 나와 버리지. 그런 무기로 '뇌광'에 필적하는 속도를 낼 수 있을지 어떨지.."
'아니, 설령 해낼 수 있다 하더라도, 과연 그걸로 '해방군' 중에서도 유명한 흉수인 저 '완벽'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
'검은 흉수'로서 '해방군'에 몸을 담은 적이 있던 아리스인은 아무래도 그 사실이 너무도 불안했다. 그리고, 이 아리스인의 불안은 불행하게도 적중했다. 도망치던 스텔라를 따라붙으며 전기톱을 휘두르던 타타라는 '핫' 하고 작게 내뱉듯 웃으며
'.....이 멍청한 년....!'
눈 앞의 적의 멍청함에, 그 우둔함에 조소를 내비쳤다.
'그래, 확실히 인식하기 전에 날 쓰러뜨릴 공격을 하면 능력을 발동시킬 틈조차 없어지겠지.'
그 생각은 옳다.
그러나..
'날 비쇼우 같은 허접한 새끼랑 같은 취급 하지 말라고. 이쪽은 '해방군'의 흉수 자리를 맡는 집에서 태어난, 어디 내놔도 손색 없는 암살자라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악한 길로 빠져든 비쇼우와는 다르다.
선도 악도 없는, 태어날 때부터 암살자가 되기 위해 키워진, 순수한 흉수. 그 교육은 참으로 장절한 것이었다. 3살 생일을 맞을 때엔, 언제 어느 때나 '완전반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루 종일 친아버지에게서 목숨을 위협받았다.
언제 어디서 흉탄이 날아올지 모를, 잠도 편히 못 잘 일상.
그런 매일매일이 10년간 이어지고, 눈 밑의 음영이 반영구적으로 빠지지 않게 됐을 즘, 타타라는 비가 내리는 날의 빗물방울 하나하나를 시야로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동체시력과 집중력을 갖게 되었다.
총탄을, 폭탄을, 참격을, 블레이저가 구사한 마술을...
셀 수 없는 해의를 튕겨내뭐, 한 발짝의 주저도 없이 표적을 추격하여, 섬멸한다. 그 전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 '완벽'이라는 별명이었다. 그녀의 시력이라면, 방금 전 대결에서 보인 에델바이스의 검기조차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완벽한 흉수'의 눈을 속도로 이긴다는 것은, 일단 불가능했다. 언제까지나 살기를 죽이고, 반격의 기회를 노린다고 해도, 그 기회는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기회를 계속 기다리고 있는 적 녀석에게 언제까지고 어울려 줄 이유 따윈 없다고!!'
"린나! 죽여버려!!!!!"
쉰 목소리로 타타라가 외쳤다.
이름을 불린 사람은, 스텔라가 타타라의 난격을 회피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틈에, 그녀의 등 뒤에 위치를 잡았던 검은 사자에 올라탄 소녀.
'마수 조련사', 카자마츠리 린나다.
"이 몸에게 명령하지 마!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네!'
린나는 그리 내뱉으며, 타타라가 말하지 않았던 행동을 취했다.
그건, 카자마츠리의 디바이스, '예속의 목걸이'에 의한 노블 아츠를 구사하려던 사자에 의한, '정지'의 개념을 조종하는 이능력....
"굴복하라! '수왕의 위압'!!!!!!!!!'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윽..."
등 뒤라는 사각에서 날아오는 소리의 포탄.
타타라에게 정신이 팔려 있던 스텔라는, 피할 겨를조차 없었다. 검은 사자의 크게 벌어진 털에서 쏘아진 소리의 압력은, 스텔라의 온몸을 덮쳐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 있던 움직임 자체를 빼앗아버렸다.
'아아앗!! 이건 위험합니다! 스텔라 선수! 1회전에서 분쿄쿠 학원 대표인 코마시로 선수의 움직임을 빼앗았던 '마수 조련사'의 노블 아츠 '수왕의 위압'에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그리고 타라라 선수는 이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지 않고!!"
"검을 뽑기 전에 처리해 주지! 겁먹은 채로 뒈져버려!!!!!!"
수평 일섬.
찢는 비명을 내지르는 톱날이, 스텔라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에 대해 스텔라는 '수왕의 위압'에 의한 회피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따라서, '땅을 기는 지네'의 톱날은, 완전히 비어 버린 스텔라의 복부에 파고들어.....
"으라아아아앗!!!!!!"
완력만으로 휘둘러진 전기의 톱날을 받아내는 듯한 동작으로, 스텔라의 몸이 크게 튀었다.
거기에...
"'수왕의 행진'!"
결정타를 맺는 일격이 날아왔다.
인간을 극히 넘어서는 강인한 근력과 질량을 가진 사자, 거기에 마력에 의한 가속도가 동반된 돌진. 당연하게도 소녀의 체중을 갖고 있던 스텔라의 몸은 고무공처럼 튕겨나갔고, 몇 번 링 바닥에 바운드되며 장외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기세 그대로 절구 모양으로 만들어진 객관석 아래의 벽에 부딪혀, 굉음과 먼지를 흩뿌리며 벽 일부를 붕괴시켰다.
'토.. 통렬합니다!! 카자마츠리 선수와 타타라 선수, 두 선수의 연계 공격이 클린 힛트!! 스텔라 선수, 장외까지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 데미지는 큽니다!!!!!'
'우와... 끔찍한 장면을 봐 버렸네.'
'....이거, 죽은 거 아이가?'
사람이 포탄과도 같은 속도로 날아가 벽에 부딪힌다는, 어떻게 보면 유혈사태보다 더욱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할 말을 잃은 객관석.
그런 기묘한 침묵 속에서, 주심의 장외 카운트 소리만이 울려퍼졌다. 이 카운트가 10까지 세어지기 전에 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면, 스텔라의 장외패가 확정되지만..
'스텔라 선수의 모습은.. 아직 먼지와 벽의 와해에 묻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받은 피해의 통렬함은, 저 전차포의 직격에도 버틸 수 있는 특수 석재의 벽면이 무너진 걸 봐도 명백히 알 수 있지요. 과연 10초 이내에 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어이! 제대로 좀 하라고!'
'유명한 '홍련의 황녀'의 실력이 어떤지 기대하고 왔는데 말야.'
'사대 일은 역시 무리였다고! 저렇게 쉽게 뒤를 잡히고 말야.'
'객관석에서 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겠지요. 우승 후보라는 기대를 받았던 '홍련의 황녀'가 이렇게 쉽게 패배 위기를 맞게 될 것을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하지만, 그 실황 중계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무로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딱히 그리 의외로운 일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정도는 당연하겠지요.'
'무, 무슨 말씀인가요, 무로토 프로!?'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상대한다는 건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숫자만으로 따져 보면 사대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공격 빈도, 사고나 능력의 다양성에서 행해져 오는 전술의 폭을 고려해보면, 그 전력의 차이는 사대 일이라는 숫자만으로 따질 수 없게 되지요. 다섯 배, 열 배로 증폭되어 버립니다. 확실히 '홍련의 황녀'의 실력은 세계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수준입니다만, 그래도 이 핸디캡은 가볍지 않지요. 저렇게 쉽게 등 뒤를 내어준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거기에.... 여긴 '필드'가 좋지 않아요.'
'필드.. 말인가요?'
'네. 보시는 바와 같이, 칠성검무제의 링은 차폐물이 존재하지 않는 평지입니다. 몸을 숨길 장소도, 행동을 막을 장애물도 없지요. 이런 장소에선 머릿수의 유리함이 유감 없이 발휘됩니다. 그것까지 고려한다면, 방금 말씀드렸던 전력의 차이는 더욱 벌어지게 되겠죠.'
'그러니 이 결과는 당연하다, 란 말씀인가요?'
무로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사대 일이라는 건 너무도 무모했습니다. 확실히 버밀리온 선수는 A급 랭크로 취급되는 우수한 기사입니다만, 그 상대들도 또한 평범한 기사들이 아니니까요.'
'홍련의 황녀는' 다수전의 무서움을 너무 가볍게 여겼다. 그 무로토의 해설을 들으며, 벌레를 씹은 듯한 표정을 지은 건 객관석에 앉아 있던 시즈쿠였다.
"대체..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저 여자는!!"
"시즈쿠..."
"꽤나 자신만만하게 사대 일 같은 말을 꺼내 놓더니.. 사이쿄 선생님의 수행을 받고 얼마나 강해졌을지 기대한 내가 바보였어! 아무리 자신을 갖게 되건 그게 방심으로 이어져 버려서야 죽도 밥도 안 되잖아!"
"확실히.. 저렇게까지 간단하게 뒤를 내어준 건 너무 방심한 것 같네."
"그러게나 말이야..!"
뱃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 탓에, 참지 못하고 말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분노는, 시즈쿠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했다. 오빠의 연인이라는, 자신의 되고 싶었던 유일무이한 입장을 손에 넣은 데다, 오빠에게 말도 없이 어딘가로 사라지고, 사람을 잔뜩 걱정시켜 놓은 결과가 이런 꼴이라니.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이 결과를 만든 원인은, 사대 일이라는 변칙 룰을 제안해 온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스텔라 자신이다.
잇키와 결승전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음에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오빠는, 그걸 위해 싸우고, 난적에 맞서 이겨 냈는데..
"혹시 이대로 져 버린다면.. 오라버니와의 약속을 배신하게 된다면... 링에 난입해서 남은 숨을 끊어 버리겠어.."
작게 쥔 주먹을 분노로 떨며, 험한 말을 내뱉는 시즈쿠.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진심 같아서, 옆에 있던 쿠로노는 무심코 쓴웃음을 흘렸다.
'적어도 교사인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건 관둬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뭐, 쿠로노는 시즈쿠가 얼마나 그녀의 오빠, 잇키를 사랑하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그녀가 그녀의 오빠의 한심한 애인에 대해 품고 있는 분노는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만으로 끝나는 거라면 질책할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버밀리온을 너무 그렇게 질책하지는 마."
".....어째서인가요. 이런 추태를 피로한 여자한테.."
"이번 과실이 누구에게 있냐고 따져 보면, 그녀를 가르친 사람한테 있으니까."
"가르친 사람이요?"
자신이 제안한 사대 일의 불리함에 대응해내지 못하고, 꼴사납게 치명타를 맞은 그 과실의 책임은, 스텔라가 아닌 사이쿄에게 있다.
그 쿠로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시즈쿠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말씀은.. 사이쿄 선생님이 잘못 가르쳤다, 라는 말씀이신가요?"
그 말에 대해 쿠로노는 약간 쓴웃음... 아니, 어딘가 재밌다는 듯한 장난스런 웃음을 띠며
"그 여자의 '게을른' 면까지 전수받았다면, 그렇게 되겠지. 왜냐면 방금 연계 공격은, 허를 찔린 탓에 당한 게 아닌
버밀리온 자신이, 피하는 걸 귀찮아한 것 뿐이니까."
"네?"
그 순간, 그 일이 벌어졌다.
쾅!!!
회장 전체에 울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스텔라를 깔아뭉개고 있던, 1톤은 나갈 법한 벽의 잔해가 하늘로 날아가듯 수직으로 튀어오른 것이다.
"뭣...!?"
그 소리에 놀란 시즈쿠는 시선을 링으로 되돌렸다.
잔해를 튀어오르게 만든 건, 당연히 그 아래에 묻혀 있던 스텔라였다. 그녀는 오른주먹을 하늘로 내뻗어 자신을 깔고 있던 잔해를 치워낸 뒤, 가벼운 발돋움으로 도약했다.
카운트가 8까지 세어짐과 동시에 링 위로 돌아왔다.
배가 찢겨나간 상처도, 몸에 타박상조차도 없었다.
아무런 부상이 없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한 마디를.
"....흐응. 이 정도구나."
납득한 듯이 중얼거렸다.
'무, 무... 무슨 일인가요!?!? '땅을 기는 지네'와 '수왕의 행진'을 직격타로 맞고, 장외로 날아간 스텔라 선수! 카운트 8만에 담담히 링 위로 복귀!! 거, 거기다.. 그 몸엔.. 여기저기 옷이 찢어진 부분이 있지만, 생채기 하나 없습니다! 이건 대체 무슨 일인가요!?!?'
실황도, 관객도, 상처 하나 없는 스텔라의 모습에 혼란스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스텔라를 공격한 본인인 타타라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방금 전, 무방비한 스텔라의 배에 전기톱날을 휘둘렀을 때, 손에는 살을 찢는 감촉이 조금도 전해져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땅을 기는 지네'의 회전하는 톱날은, 스텔라의 옷을 약간 찢어놓긴 했지만, 그 아래에 있는 피부에는 닿지 않았던 것이다.
어째서?
그 이유는, 마력이다.
방금 열린 '워스트 원' 대 '칠성검왕'의 시합에서,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가 자신의 마력을 펼쳐 갑옷으로 만든 것과 같이, 마력에는 충격에 대한 배리어 같은 성질도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배리어의 강도는, 각자 보유하고 있는 마력량에 비례하고.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의 마력 보유량은 세계 최고급.
그 강도는, 타타라와 린나의 혼신의 일격을 받는다 하더라도, 거의 모든 데미지를 상쇄해 버릴 정도.
피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에.
그 사실은, 타타라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 자식... 어디까지 사람 깔보는 짓거리를.."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 마. 어쩔 수 없잖아? 이 쪽은 막 어제까지 환태평양권 최강의 기사를 상대한 참이니까."
그에 대해 스텔라는 숨기는 내색 없이 말했다. 뭐, 실제로 스텔라에겐 적을 조롱할 악의가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무래도 상대가 되질 않는다 생각했을 뿐.
그도 그럴 것이, 스텔라가 1주일간 받은 특훈,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자인 '야차 공주'의 특훈이다. 마음만 먹으면 대기권 밖에서 제 2우주 속도로 운석을 낙하시키는, 규격 외 급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중력 능력자'의 공격에 버텨낸 것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눈 앞의 적에 위험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위험성을 느끼지 않았기에, 피하는 것 자체가 귀찮아졌을 뿐이다.
쿠로노가 과실의 책임이 사이쿄에게 있다고 한 건,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그건 이유 중 하나에 불과했다.
스텔라가 일부러 저항하지 않고, 타타라 팀의 공격을 받은 건, 다른 더 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거기에, 이 쪽이 공격하기 전에, 확인해두고 싶은 게 있어서 말야."
"확인하고 싶은 거라고?"
"응. 너희들이 어느 정도의 기사인지를 말야."
이건 스텔라에게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공정. 왜냐면..
"그도 그럴 게,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온 힘을 다해 너희를 공격하면, 너흰 다 죽어버리거든."
"윽...!"
그렇다. 스텔라는 자신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있다. 그녀가 갖고 있는 능력은, 인간을 상대로 구사하기엔 너무도 큰 폭력이다.
그건, 손쉽게 다른 사람의 생명을 재로 만들어버릴 정도.
그러니, 그녀는 언제나 신경쓰고 있다.
눈 앞의, 자신과 싸우는 상대를.
자신의 힘으로 불태워 죽여버리지 않도록.
그것이, 설령 자신의 친구를 다치게 만든 적이라 할지라도.
"확실히 너희들, 아카츠키에겐 빚이 있어. 돌려주지 않고서야 개운치가 않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여버리는 건 내가 바라는 게 아냐."
뒷맛이 껄끄러우니까.
그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왜냐고? ....난 너희들에게 그만큼의 가치를 느끼지 않거든. 너희들은 엄청나게 살기등등해 있지만, 내게 있어서 기사로서 상대할 가치가 있는 건.... 나의 온 힘을 다 바쳐 싸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상대는... 단 한 사람밖에 없어."
스텔라에게 있어 강자의 의무를 버리고,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하여 상대.
그만큼 특별한 존재.
그 감정은, 그 정열은, 단 한 사람을 위해 아껴 두고 싶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확인해 두고 싶었어. 너희들이 어느 정도의 인물인지를. 어느 정도까지라면 '죽이지 않고 망가뜨려 버릴 수 있을지'를 말이지.'
.....그리고, 지금 그 정도를 파악했다.
뭐, 기어를 3개 정도 내리면 딱 맞지 않을까.
라고.
그러니 스텔라는, 자신의 능력을 의식적으로 하향시켜
"이제부턴, 나도 공격하겠어."
....그제야 '비룡의 죄검'을 뽑아들었다.
그 순간, 스텔라의 주위에 있던 대기가 열기를 띠었고, 주변이 일그러졌다. 여름의 태양빛이 쬐이는 듯한, 일개 기사와는 확실하게 다른, 압도적인 존재감.
하지만... 타타라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재밌구만.. 해 볼수 있으면 해 보라고!!!!!"
그리 외치며, 타타라는 혼신의 힘으로 땅을 박차 다시금 스텔라를 공격했다.
자신의 공격은 유효타를 주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머리에 열이 올라, 그것조차 잊어버린 것일까.
그렇지 않다.
타타라는 훈련을 받은 완벽한 흉수.
감정이 들끓으면 들끓을 수록, 사고가 냉정해지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확실히 자신의 클린 힛트가 생채기 하나 만들어내지 못한 사태엔 놀랐다. 하지만, 그런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블레이저의 세계.
정공법으로 데미지를 주지 못하는 블레이저 따위, 흔하다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타타라 자신도 그 부류이니까.
.....공략법은, 있다.
그걸 타타라는,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내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해도, 네 공격은 어떨까!?'
그렇다면, 되돌려주면 된다.
그녀 자신이 자랑하는 규격 외의 마력을 이용한 강력한 공격, 그 모든 것을.
그녀의 혼신의 일격을 반사한다면, 아무리 그 '홍련의 황녀'라 할지라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틀림없이 양팔은 사용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거기까지 부상을 낸다면, 그 뒤엔 얼마든지 요리가 가능하다.
그걸 위해선 먼저 스텔라의 공격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그러니 타타라는, 일부러 똑바로 달려들었다. 스텔라의 혼신의 일격을 유도해내기 위해.
그런 비장의 수를 숨겨 둔 타타라를 바라보며
"그럼, 사양 않고."
....스텔라는, 똑바로 영격해 나아갔다.
쇄도해 오는 타타라를 향해 달려들며,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오른손에 들린 '비룡의 죄검'을 휘둘러, 타타라를 비스듬히 베어내는 방향으로 만들어낸 참격을 가했다.
그 참격은 완벽히, 타타라의 의도대로의 응수.
그 참격을 '완전반사'로 반사해 내어, 스텔라는 자신의 공격에 의해 데미지를 입게 될 것이다.
....그럴 터였다.
'아?'
마침 타타라가 '완전반사'를 발동시키려 한 그 찰나.
역전의 흉수인 타타라의 후각이, 어떠한 위화감을 느끼게 되었다.
'땅을 기는 지네'에 의한 공격이 통하지 않는 이상, 타타라가 '반사'를 이용해 상대에게 데미지를 주는 수를 노리는 건, 당연히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상대는 어째서 저렇게 똑바로 검을 휘둘러 오는가?
이유는 하나. 이건 함정이다.
귀를 기울여 보니,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가벼웠다.
스텔라의 저 공격은, 속도는 빨랐지만 전혀 힘이 담겨있지 않았다. 애초에, 스텔라의 무기는 대검이다. 그걸 오른손 하나로 휘두르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이런 걸 반사한다고 해서 데미지로 이어지진 않는다. 기껏 해봐야 몸이 튕겨나가는 정도.
'오른 손이 나와 있다는 건... 진짜 공격은 왼손인가!'
타타라의 관찰안과 순간 통찰력이, 이 모든것을 읽어냈다. 내려쳐 들어오는 칼날. 거기서 만들어지는 왼손의 존재감을 알아챘다.
타타라가 '완전반사'로 이 내려쳐 들어오는 참격을 반사했을 경우, 당연히 스텔라의 우반신은 뒤로 크게 젖혀질 것이다. 그 반동... 우반신이 뒤로 젖혀지는 동작에 운동을 가해, 좌반신을 앞으로 내밀어 타타라의 옆구리에 주먹을 꽂아 넣는 수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타타라의 능력, 그 작용까지 고려한, 스텔라의 '완전반사' 파훼법.
.....하지만
'생각은 잘 했다만, 눈치채이면 거기서 끝이라고!!'
기습은 간파해낸 순간부터, 역으로 기습을 가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변한다. 타타라는 그대로, 스텔라가 노린 행동 그대로를 일부러 선택했다. 스텔라의 참격이 직격하는 찰나, 몸 외부의 '반사'의 개념을 가진 결계를 전개. 참격의 벡터가 뒤바뀌어, 뒤로 크게 튕겨나갔다.
그 순간.. 스텔라는 타타라가 상정해 뒀던 행동을 취했다.
참격을 '반사'한 순간에 찾아오는 방심. 그 틈을 찔러 리버 블로우로 기습. 하지만, 스텔라에게 타타라의 허를 찔렀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혼신의 힘을 다해 내지른 그 주먹에, 타타라는 조준을 좁혀 '완전반사'를 재발동시켰다.
'완전반사'에 의해 튕겨나간 우반신의 반동까지도 몸의 회전력에 가담시켜 공격력으로 전환해 낸 혼신의 리버블로우.
당연히, 그걸 반사시킨다면 왼 주먹, 아니. 왼팔이 통째로 파괴될 것이다.
하지만, 타타라의 허를 찔렀다고 생각한 스텔라는 그 주먹을 거두지 않았고...
모든 건 계획대로,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모든 계획을 성공시킨 타타라가 어두운 환희에 사로잡혀 입술을 일그러뜨린 순간
뿌드득!!
살이 우그러들고 뼈가 부서지는 생생한 소리.
"커...헉....."
스텔라의 왼주먹이, 타타라의 옆구리에 깊이 꽂혔다.
확실하게, 반사시켰을 그 주먹이...
"일단, 한 명 째."
옆구리에 스텔라의 리버 블로우를 받은 타타라의 몸은, 세로가 아닌 '가로로' 꺾여버렸다. 그리고 토사물과 피를 흩뿌리며, 링 돌바닥에 무너져내렸다.
'강렬한 리버 블로우가 직격!! 타타라 선수, 머리를 박으며 링 위에 쓰러져버렸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일어설 수 없습니다! 완전히 실신해 버렸습니다!! 스텔라 선수, 단 일격으로 타타라 선수를 지면에 가라앉혔다!!!!!'
'우와!! 지금 소리 엄청나지 않았어?'
'몸이 이상한 부분에서 90도로 꺾여 버렸잖아... 대체 무슨 완력을 갖고 있는 거야, 저 애는?"
'객관석에서도 너무나도 강렬한 스텔라 선수의 철권에 전율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의아함이 남는데요. 실황석에서 본 타타라 선수는 스텔라 선수의 미끼였던 참격을 읽어내, 숨겨둔 기습이었던 왼주먹을 향해 '완전반사'를 확실하게 발동시킨 듯이 보였습니다만... 스텔라 선수는 어떻게 타타라 선수의 '완전반사'를 파훼한 것일까요?'
'파훼한 게 아닙니다.'
'네?'
''홍련의 황녀'의 왼팔을 보세요.'
'.......이, 이건....!'
무로토의 말에 스텔라의 왼손을 본 실황이, 말도 안 된다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이, 이건 끔찍하군요! 스텔라 선수의 왼팔이, 마치 스크류에 휘말린 듯 너덜너덜해졌습니다!! 그, 그렇다는 건 설마...!'
'그렇습니다. '홍련의 황녀'는 '완전반사'를 파훼한 게 아닙니다. 타타라 선수의 노림수대로, '완전반사'는 확실히 '홍련의 황녀'의 팔을 갈기갈기 찢어놨지요. 완전히 그녀의 계획대로. 노린 그대로. .......하지만, 딱 하나, 타타라 선수는 예측해내지 못했습니다. '홍련의 황녀'가, 자신의 부상 따윈 신경쓰지 않고 부서진 팔로 공격을 가해 오는 것까지는.. 예측해내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이란, 역시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돌아가는 순간, 가장 큰 방심을 내비치는 법이다. 타타라도 또한, 거기에 예외는 아니었다. 자신의 계획대로 스텔라의 팔을 파괴하고, 꼴 좋다는 풍으로 웃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게 치명적이었다.
스텔라는 그 순간을 노리고 있던 것이었다.
발목을 크게 굽혀, 망가진 주먹에 더욱 힘을 넣어 억지로 '완전반사'를 뚫고 타타라의 몸에 혼신의 일격을 꽂아넣은 것이다.
기술도, 우아함도, 아무것도 없는. 그저 힘만을 가한 강행돌파.
하지만, 이 정도로 팔이 끔찍하게 너덜너덜해짐에도 불구하고, 스텔라는 타타라의 의식을, 일격만에 무너뜨려 버린 것이다.
'어이가 없어....!'
그 시작부터 끝을 같은 링 위에서 보고 있던 '얼음의 냉소' 쿄몬 학원 3학년, 츠루야 미코토는 전율에 몸을 떨고 있었다.
'너무 강해...!'
타타라의 기량, 전술, 그 모든 것을 굴복하게 만드는... 전략 급의 완력.
무엇보다 자신의 부상에 의한 고통을 겁내지 않는 강인함.
신체의 강함도, 정신의 강함도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강인한 몸, 강인한 정신. 그리고 그걸 살려내는 급이 다른 재능.
.....마치 보석 같았다.
'나랑은 급이 달라...'
하지만, 이겨야 한다.
칠성검무제는 토너먼트제. 1패도 용납치 않는다.
그것이, 하늘의 무심함에 의해, 하필이면 최악의 상성의 적과 1회전에서 만났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츠루야는 수치도, 들려오는 비난들도 무시하며 아카츠키의 힘을 빌린 것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패배를 한다니, 그럴 순 없다.
무엇보다도, 츠루야 자신의 자존심이 그걸 용납치 않는다.
'거기에, 이 고난만 넘는다면 난 B조의 유일한 생존자가 될 수도 있어..!'
그런 자부심이 있기에, 츠루야는 필승을 바라는 자신의 마음을 향해 속으로 외쳤다.
그런데, 그런 츠루야에게
"괜찮아요. 이길 수 있습니다."
뒤에서 사람의 목소리라고 하기엔 너무도 미지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을 한 건... 삐에로 분장을 한 음침한 남자.
아카츠키 학원의 '어릿광대' 히라가 레이센이다.
"....무슨 대책이라도 있어? 상대는 디바이스로 직격탄을 맞아도 상처 하나 나지 않는 괴물이라고."
그에 대해 츠루야의 대답은 어딘가 가시가 돋혀 있었다. 이 히라가 레이센이라는 남자가 뿜어 내는 수상쩍은 분위기가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히라가는 별로 신경쓰찌 않는다는 듯, 목을 울리며 웃었다.
"후후. 확실히 타타라 씨의 '땅을 기는 지네'의 직격을 받아도 꿈쩍 않은 것에 대해선 놀랐습니다만, ....뭐, 툭 터놓고 말하면 그저 마력 작용에 의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요. '홍련의 황녀'는 방어 쪽의 능력자가 아니니, 이기는 건 간단합니다. 제 비장의 수를 쓴다면 그야말로 단숨에 마무리를 지을 수 있어요."
"그럼 지금 당장 써 주면 고맙겠는데."
하지만, 히라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 노블 아츠를 발동시키는 데엔 좀 시간이 걸려서 말이지요."
"정말 못 써먹겠네."
"후후, 면목없군요. 하지만, 그 시간 제약만 클리어해낸다면 제 비장의 수는 '홍련의 황녀'를 순식간에 분쇄해버릴 겁니다. 그건 틀림없어요. 그러니... 부탁입니다만, 제가 능력을 구사할 때까지의 시간을 벌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저흰 아카츠키의 눈엣가시인 '홍련의 황녀'를 해치울 수 있죠. 그리고 당신은 첫 난문인 1회전을 돌파할 수 있고요.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여기선 협력하도록 하지요. 마침 우리들은 같은 팀이니까요."
"........"
침묵으로 답한 츠루야의 미간에 불쾌감을 나타내는 주름이 생겼다.
이 히라가라는 남자의 목소리.
마치 모든 것을 조소하는 듯한 말투가, 발음 하나하나에 새겨진 듯한 말소리.
실로 불쾌했다.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혐오감이 생겼다.
하지만... 한 편 이 남자가 한 말도 실로 온당했다.
지금 우리는 같은 팀으로서 싸우고 있다. 그렇다면, 협력하는 것이 가장 효율이 좋다.
그리고 뭣보다
'이 남자는 스텔라를 쓰러뜨릴 수 있다고 했어. 하지만, 내겐 그녀를 쓰러뜨릴 수 있는 수단이 없어.'
그 하나만으로도, 이 제안에 협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알았어. 하지만.. 성과는 보증할 수 없어."
"자신이 없으시군요."
"자신이 있다면 당신 같은 수상쩍은 무리에게 협력을 구하지도 않았어."
그리 내뱉으며, 츠루야는 자신의 오른눈에 왼손바닥을 대고, 마찰시키듯 옆으로 휘둘렀다. 그 다음 순간, 그녀의 오른눈엔 어느 새엔가 외안경이 걸쳐져 있었다.
그렇다. 그것이 '얼음의 냉소' 츠루야 미코토의 디바이스다.
"엄청 길게 쑥덕거리더니, 상담은 다 끝났어?"
전투 태세에 들어간 츠루야의 외안경, 그 너머에 있는 그녀의 시야 속에서.
빨간 머리에서 빛을 내뿜는 불꽃의 기사가, 천천히 비색 시선을 던져왔다.
"일부러 기다려 준 거야?"
"그래. 지각한 것과, 동의를 구했다 하더라도 내 화풀이에 휘말리게 만든 것에 대해선,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거든. 그래서 당신에겐 상냥한 태도인 거야."
그 말과 함께, 스텔라는 살짝 입술을 뒤틀어 위압적인 미소를 보내 왔다.
"착하네. 그 상냥함을 이용해 내게 승리를 양보해주지 않겠어?"
"후후. 그런 츠루야 양의 목적을 위해선 사양 없는 태도, 싫진 않아. 하지만, 그건 안 돼. 이 대회의 승리는 내게 있어서도 소중한 거니까."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네."
"응. 그러니 서비스도 여기까지야. 이번엔 내 쪽에서 공격할 거라구? 항복할 거라면 지금 빨리 하는 게 좋을 거야. 내 검은.. 한 번 휘두르기 시작하면 거둘 수가 없거든!!"
그 말을 끝으로, 스텔라는 말 그대로, 링을 박차 츠루야를 향해 달려들었다.
"윽...!"
팔이 너덜너덜해짐에도, 타타라를 일격에 침몰시킨 폭력의 화신.
그 화신이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남은 오른손에 검을 들고 달려오고 있다.
저런 일격, 한 방이라도 먹었다간 멀쩡히 끝나진 않을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느낀 고통이 간지럽다고 느낄 정도의 격통일 것이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
심장을 찌를 정도의 공포감에, 츠루야의 뇌가 마비되어갔다.
하지만..
...그래도 츠루야는 작년 전국 베스트 8.
일본에서 손꼽는 학생기사다. 겁을 먹고 위축되고만 있진 않았다.
츠루야는 바로 자신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외안경 형태의 드문 형태를 한 디바이스에서 발동된 마술은, 시야의 집정, 그 곳을 중심으로 일정 범위의 온도를 순식간에 절대영도로 내려버리는 능력.
"'사신의 마안'"
냉기를 띠어 차갑게 빛나는 안광이, 외안경을 통해 쏘아졌다.
이 마술의 가장 큰 장점은, 시야의 집점이 생김과 동시에 발동된다는 점이다.
즉, 마술의 도달 속도는 빛의 속도와 동등하다.
순간조차 되지 않는 시간만에, 스텔라의 주위의 기온이 순식간에 빙점보다 아래로, 절대영도까지 내려갔다.
물체를 순간적으로 얼리는 것으로 유명한 액체질소조차 그 온도는 영하 200도. 그보다 더 낮은 온도인 절대영도까지 내려간 대기 속에서, 사람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뼛속까지 얼리고, 순식간에 심장까지 정지시킨다.
발동속도. 사정거리. 대인 제압력. 이 모든 것이 일급인 능력이다.
이 칠성검무제에 참가한 맹자들과 대등히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그렇다.
단 한명을 빼고.
''비룡의 날개옷''
세계 최고의 불꽃 능력자, 이 한 사람을 제외하고.
스텔라는 절대영도의 대기, 그 안에 담긴 모든 수분을 고열의 증기로 변환시켜, 소멸시켰다.
'비룡의 날개옷' 불타오르는 화염의 깃옷으로.
".....역시, 이렇게 되는구나."
솔직히, 츠루야는 이 결말로 이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신의 마안'은 간단히 말해서, 기온을 조작하는 마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불꽃 능력자는, 그 기온을 상승시키는 탓에 마술을 구사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상반되는 두 능력이 맞부딪힐 때, 그 우열은 마력의 정도에 따라 갈리게 된다.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의 마력은 세계 최고.
처음부터 이길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주 약간, 눈을 깜빡일 정도의 찰나였지만, 확실하게 스텔라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내 역할은, 이걸로 충분해!'
"내 적을 깨물어 부숴버려라! 스핑크스!!"
"크아아아아아아!!!!!"
스텔라의 동작이 살짝 둔해진 순간, 지금까지 스텔라와 떨어진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던 카자마츠리가 츠루야의 옆에서 뛰쳐나와 '수왕의 위압'을 구사했다.
그렇다.
이 그 한 순간만으로도 충분하다.
조금만이라도 동작을 늦출 수 있다면, 카자마츠리가 '수왕의 위압'을 확실하게 가할 수 있다. 그렇게만 한다면, 이제 스텔라는 움직일 수 없다.
그 사자는 바로 스텔라를 향해 뛰쳐들어 추격을 가하려 했다.
노리는 곳은, 목덜미.
방금 전의 태클은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그건, 백수의 왕이라 불리는 그의 자존심을 해쳤을 것이다.
사자는, 카자마츠리의 명령 없이도 그 턱을 크게 벌려, 그 안에 있는 송곳니로 스텔라의 목을 찢어발기려 했다.
아무리 그 스텔라라 해도, 코끼리 정도의 거대함을 지닌 맹수의, 거기에 마력으로 보조를 받는 깨물기 공격엔 멀쩡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승부가 갈릴 것인가.
그렇게, 츠루야가 살짝 기대를 품은 순가..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갑자기, 스텔라가 하늘을 뒤흔들 정도의 포효를 내질렀다.
그 포효를 받은 상대는, '마수 조련사'가 데리고 다니는, 검은 사자.
"~~~~~~~~~!?!?"
그 순간, 스텔라를 깨물어 짓이겨 버리려 했던 사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렇다. 마치 '수왕의 위압'을 바든 것처럼.
"스, 스핑크스!? 무슨 일이냐!? 어째서 멈추는 것이냐!?"
갑자기 명령을 듣지 않게 된 사자를 질타하는 카자마츠리.
하지만, 그래도 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간단하다. 야생동물은 사람보다도 월등한, 죽음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약육강식. 이 사자도, 카자마츠리가 데려오기 전까진 그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인식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소녀의 등 뒤에 떠오른, 환영.
한 쌍의 날개를 가진, 하늘에 닿을 정도로 거대한 용의 모습을.
눈 앞에 있는 빨간 머리의 소녀는, 자신보다도 높은 '포식자'다.
이 소녀를 자신의 위압으로 굴복시키는 건 불가능.
당연하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겁먹는 '용'은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명백히 전력의 차가 느껴지는 '포식자'와 만났을 때, 야생동물이 취할 행동은 하나밖에 없다.
...도망치는 것.
"끄, 끄으으으응~!"
"엣!? 꺄앗!?"
'아앗!! 이게 무슨 일이죠! '마수 조련사'의 '예속의 목걸이'로 인해 그녀를 따르고 있었을 터인 사자가 스텔라 선수의 위압에 꺾여, 주인이 떨어지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 그대로 꼬리를 말고 도망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방비해진 카자마츠리 선수를 향해 스텔라 선수가 돌격!!'
스텔라가 가한 공격은, 체중을 실어 오른손 하나로 휘두르는, 사선 베기였다. 체중을 실었기 때문에 상당히 동작이 컸지만, 카자마츠리는 지금, 사자의 등에서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은 상태.
당연히 회피는 불가능..
타타라를 일격에 침몰시킨 스텔라의 완력에서 나온 무거운 참격은, 카자마츠리를 베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링 일부를 함몰시켰다.
문답무용의 치명상. 하지만...
"......"
스텔라는, 두 명째를 카운트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링 바닥이 분쇄됨에 따라 일어난 먼지 안에서 들려왔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붉은 공주여. 이 여흥 따위에 내 칠흑의 오른팔, 암흑의 힘, 사왕주박법의 은혜를 받아, 죄에 물들은 어두운 각인의 기사의 힘을 피로하게 될 줄이야!"
"아가씨는 '살았어! 고마워, 샤를로트!'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니요, 대단치도 않은 일입니다. 전 아가씨의 전속 메이드이고, '검' 이면서 '방패'이기도 하니까요."
먼지가 바람에 휩쓸려나가, 시야가 트이고, 그제야 상황이 명백해졌다.
스텔라의 검은 카자마츠리를 베지 못했다. 카자마츠리와 스텔라, 두 사람 사이에 껴들은, 에이프런을 두른 소녀, 샤를롯트 콜데가, 자신의 발치에 있는 링 바닥이 부서져 나가고 있었지만 왼손 검지손가락 하나로 '비룡의 죄검'의 칼날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요! 객석에 있던 블레이저가 시합에 난입! 카자마츠리 선수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저 애, 카자마츠리 선수랑 언제나 같이 있던 메이드 아냐?'
'반칙이다! 심판! 기권패 시켜!'
갑자기 링 안에 난입해 온 차가운 표정을 지은 메이드를 향해, 돔 전체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런 때는, 일단 주심이 시합을 중지시키고 운영위원회의 판정을 기다리는 것이 통례이지만..
'이, 이건 무슨 일인가요!? 주심, 시합을 중지시키지 않습니다!!'
사태가 이해되지 않는지 큰 목소리를 내는 실황.
하지만, 거기엔 물론 이유가 있었다.
'당연합니다. 딱히 반칙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무로토 프로,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그녀의 목을 보세요.'
그의 말과 동시에, 회장의 모든 카메라가 샤를로트의 목덜미를 확대해 보여줬다. 그리고 그 영상은 회장에 걸린 거대 모니터에 비춰졌고, 회장의 모든 사람이 무로토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저, 저건.. 확실히 '마수 조련사'가 타고 있던 사자와 같은, '예속의 목걸이'! 그, 그렇다는건..'
'그렇습니다. 그녀도 그녀의 사자와 같은, '마수 조련사'의 능력인 다른 사람을 조종하는 블레이저의 디바이스, 라는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시합을 중지시킬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 그렇군요.. 주심도 그 부분을 잘 봤군요.'
'뭐, 심판 자리도 경력을 쌓은 마도기사가 맡을 수 있는 자리니까요. 그런 실수는 잘 벌어지지 않지요.'
애초에, 블레이저에겐 그런 종류의 물건이 두르고 있는 마력을 어느정도 눈으로 보고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블레이저가 아닌 샤를로트가 두르고 있는 마력은 방금 그 사자와 같은, 카자마츠리의 마력이다. 그러니 스텔라도 목걸이를 볼 필요도 없이, 그녀가 '마수 조련사'의 수하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 단순한 시녀가 아닐 것이란 생각은 했었는데, 네가 린나의 진짜 디바이스. '마지막 관문'이란 거군."
"샤를로트 콜데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샤를로트는 '비룡의 죄검'을 검지손가락으로 튕겨낸 뒤, 에이프런의 끝자락을 잡아 들어올리며 가볍게 인사를 해 왔다.
아주 멋들어진 동작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스텔라는
"정중한 인사! 고맙게 받아들이겠어!"
거기에 답하지도 않고, 튕겨나간 '비룡의 죄검'을 다시금 온 힘을 다해 샤를로트에게 휘둘렀다.
하지만..
"피어나라. '일륜순화'"
키이이잉!! 하는 딱딱한 소리를 내며, 샤를로트의 손에 의해 칼날이 가로막혔다.
그녀의 손은 철로 만들어져 있는 것인가.
아니다. 이건, 마력에 의한 작용.
동물이나 블레이저가 아닌 사람을 블레이저로 바꾸는 '마수 조련사' 카자마츠리 린나의 디바이스 '예속의 목걸이'에 의해, 샤를로트가 발현한 능력의 효과이다.
그리고 스텔라는, 단 두 합만에 그 정체를 간파해냈다.
"읏.. 마치 강철을 내리치는 듯한 감촉이야. 손으로 받아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잘 보면 손과 칼날 사이에 1mm정도의 공간이 나 있어. .....그렇구나, 네가 린나의 디바이스의 영향을 받아 구사할 수 있게 된 능력은, 배리어를 치는 방어 계통의 능력이군."
"명답입니다."
훌륭하군요, 하고. 자신의 능력을 맞춘 스텔라에게, 샤를로트는 숨김 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와 동시에, 손과 칼날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이 복숭아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건, 꽃 모양을 한 방패였다.
"뛰어난 혜안이군요. '홍련의 황녀'. 고작 두 합만에 제 능력을 간파해 내다니. ....하지만, 당신은 하나 착각하고 있는 점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야?"
"제 '일륜순화'은 방어에만 특화되어 있다고 말씀하신 점입니다."
그 순간, 샤를로트는 '일륜순화'으로 막아내고 있던 스텔라의 검을 튕겨낸 뒤
"'화검 용설란'."
그 양손에 얇게 빛나는, 그야말로 검과 같은 형태를 한 배리어를 만들어내어 스텔라를 향해 휘둘렀다.
"윽!"
검이 튕겨져 나가 자세가 무너진 스텔라.
보통이라면 피할 수 없는 참경이다. 하지만, 스텔라는 기전을 발휘하여 뒤로 튕겨나가 무너진 자세에서 다시 일어나는 게 아닌, 더욱 크게 몸을 젖혀 뒤로 백스핀을 가해 샤를로트의 참격을 피해 냈다.
하지만... 약간 늦은 탓에, 뺨이 살짝 베였다.
전기톱 형태의 디바이스인 '땅을 기는 지네'로도 상처 하나 내지 못했던 스텔라의 피부가.
그리고, 샤를로트의 공격은 그 일격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뒤로 물러난 스텔라를 추격하기 위해, 사냥개와도 같이 돌진했다. 그에 대해, 스텔라는 오른손 하나로 대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추격을 해 오는 샤를로트를 영격해 내기 위해서.
샤를로트가 이 영격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둘.
하나는 발을 멈추고, 추격을 포기하고 옆으로 피하는 것
또 하나는 발을 멈추고, '일륜순화'으로 영격을 막는 것.
어느 쪽이건, 추격을 멈출 수 있다. 스텔라에게 있어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샤를로트가 취한 행동은, 스텔라의 예상을 말 그대로 '뛰어넘었'다.
말 그대로, 샤를로트는 위로 날아오른 것이다.
뛰어오른 게 아니다. 발치에 '일륜순화'을 피워, 허공을 날아오른 것이다. 그리고 스텔라의 바로 위로 날아오른 뒤, 이번엔 오른발 자체를 '일륜순화'의 꽃잎으로 감싸, 빙글빙글 몸을 회전시켜 스텔라의 정수리를 향해 우아한 폼으로 내리찍는 공격을 가해 왔다.
상황은 좋지 않게도, 칼을 허공에 휘두른 탓에, 스텔라의 오른손은 완전히 앞으로 나와 있었다.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타이밍. 따라서 스텔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뼈가 산산조각 난 왼팔을 어깨의 힘으로 들어올려, 팔꿈치 아래보다는 비교적 손상 정도가 가벼운 상박으로 이 공격을 받아냈다.
....그 감촉은 경험해 본 적 없을 정도로 딱딱한 감촉이었고, 상박의 뼈가 손쉽게 으스러졌다.
"큭...!"
"아시겠습니까. 보시는 바처럼, 당신의 참격을 정면에서 받아내도 금 하나 가지 않는 강도는, 얇게 펴면 강력한 칼날이 되고, 타격에 사용하면 강철보다도 단단한 둔기가 되지요."
따라서, 전 카자마츠리의 검이자 방패입니다.
뼈가 삐걱거리는 고통에 얼굴을 찡그린 스텔라에게,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살짝 자랑스러워 하는 말투로 말하는 샤를로트.
하지만, 스텔라는 뼈 한두개 정도가 부러진다고 얌전해지는, 그런 조신한 여자가 아니었다.
"'비룡의 날개옷'!"
꽤 강력한 타격을 가하긴 했지만, 샤를로트의 수단은 착오였다. 스텔라를 상대로 직접 몸에 닿는 타격행위는, 그야말로 자살행위. 스텔라는 자신이 두른 불꽃의 깃털옷의 출력을 최대로 올렸다.
당연히, 불타오르는 화염은 스텔라의 상박을 통해 샤를로트의 발꿈치로 전해졌고, 그녀의 온몸을 집어삼켰다.
스텔라의 화염은 일반적인 불이 아닌, 마술로 만들어낸 불.
따라서, 스텔라가 죽거나 기절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힘으로 꺼뜨리지 않는 한, 꺼지지 않는 불인 것이다.
이 공격을 허용한 시점에서 적은 결정적인 위기에 빠질 것이다.
그럴 터였다.
'...먹히질 않는다고!?'
샤를로트는 그 통례에 해당되지 않는 자였다.
불타오르는 화염에 휩싸인 채로, 샤를로트는 약간의 표정 변화조차 없었다.
그녀의 배리어가 막아주는 건, 충격만이 아니다.
열이나 전격에 대해서도, 강한 저항을 갖고 있다.
그 배리어를 온몸에 둘러, 샤를로트는 '비룡의 날개옷'의 온도를 차단한 것이다.
그리고
"아아, 그리고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샤를로트는 스텔라의 반격을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더욱 추격을 가했다.
발치에 있던 스텔라의 왼팔 위에서 도약을 해 몸을 위로 띄운 뒤
"'총'도 될 수 있답니다."
얇게, 한없이 얇게 편 '일륜순화'을 양손에 수십 장 정도를 부채 형태로 들고, 스텔라를 향해 내던졌다.
'배리어를 마치 수리검처럼....!'
샤를로트의 배리어의 예리도는 이미 알고 있다.
저기에 맞으면 골치가 아파진다고 생각한 스텔라는
"이야아아아아압!"
'비룡의 죄검'의 칼날을 세로로 세워, 혼신의 힘으로 옆으로 휘둘러 정면의 대기 채로 '일륜순화'으로 만들어진 수리검을 날려버렸다.
엄청난 완력. 그리고 감탄할 만한 관록이라 봐도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스텔라에게 있어서도 상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튕겨낸 '일륜순화'. 그 중 10장이 관객석 방향으로 날아간 것이다.
"우, 우와아아악!! 위험해!!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어!!"
"모두 도망쳐!!"
날아오는 칼날에 수많은 관객들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건 당연한 행동이다.
강력한 마력에 보호받는 스텔라의 피부조차 찢어내는 저 '일륜순화'의 예리도.
마력을 보유하지 않은 인간인 관객이 저기에 맞는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도록. 움직이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테니까요."
반대 따윈 허용치 않는다는 강제력이 느껴지는 뉘앙스로 날아온 충고가,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의 움직임을 멈추게 만들었다.
......칠성검무제는 상식을 뛰어넘는 기술을 구사하는 현대 마술사끼리의 대결 축제. 도망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관객석의 안전을 확보할 수단은 이미 갖춰져 있다. 객석으로 날아온 눈먼 총알을 격추해내기 위해, 회장 곳곳에 강한 힘을 가진 성인 마술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일륜순화'이 날아온 구역은
스텔라가 소속한 하군 학원의 이사장이면서, A급 마도기사 '세계시계' 신구지 쿠로노의 담당구역이었다.
쿠로노는 소리도 없이 자신의 오른손에 들린 백은의 총을 꺼내, 날아오는 십 수 장의 '일륜순화'을 향해 총구를 들이댔다.
그리고..
"'clock draw'"
팡, 하고 총성이 한 발 울렸다.
그렇다. 단 한 발.
하지만, 그 한 발에, 십 수 장 정도 되었던 '일륜순화'은, 단 한 장도 객석으로 날아들지 않은 채,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엣!? 뭐, 뭐야.. 지금 건!?"
"'세계시계'의 특기야! 순간적으로 시간을 멈추고, 표적이 정지되어 있는 틈에 모든 표적을 향해 총탄을 쏴 놓는 '클록 드로우'! '세계시계'의 발치를 함 봐라!'
"우와, 진짜다! 약협이 저렇게나 많이.."
"끝내준다!!"
쿠로노의 멋들어진 일 처리에 객석에서 환성과 박수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환성 안에서..
"역시 전 KOK 세계 랭킹 3위네요."
쿠로노가 아주 잘 아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로 고개를 돌리자, 살짝 박수를 치며 쿠로노 일행 쪽으로 다가오는 흑발의 소년이 있었다.
'워스트 원', 쿠로가네 잇키였다.
"현역 시절과 비교해도 전혀 녹슬지 않았어요."
"......뭐, 둔해질 수가 없어서 그런 것 뿐이야. 이런 것도 우리 교사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니까."
그리고, 쿠로노가 그리 답하고 난 뒤, 주변에 앉아 있던 잇키의 친구들이 그의 귀환을 알게 되었다.
"잇키!"
"오, 오라버니! 다친 데는 괜찮으세요!?"
"응, 괜찮아. 시즈쿠. 방금 의무실에 있는 선생님이 마술로 상처가 난 곳은 막아 주셨으니까."
"캡슐이 아니고 치료술을 가한 거야? 그럼 나한테 말해 주지 그랬어. 내가 당장에 치료해 줬을 텐데."
"아무리 그래도 조금 후에 있을 시합에 대기하고 있는 야쿠시 씨에게 부탁하는 건 좀.."
약간 삐친 듯 입술을 삐죽이는 '백의의 기사' 키리코를 보고, 잇키는 살짝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키리코가 기사보다 의사의 입장을 중히 여긴다 할지라도, 시합 전의 기사에게 사사로운 일로 마력을 쓰게 만드는 건, 너무도 비상식적인 일이니까.
"하지만 오라버니. 그 시합에서 '일도수라'를 쓰셨잖아요? 서 있는 것도 괴로운 상태가 아니신가요?"
".....뭐,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그보다 더 이 시합을 보고 싶어서, 잠기가 확 달아나 버렸지 뭐야."
그리 말하고, 잇키는 쿠로노 옆으로 이동해 링을 내려다봤다. 결승에서의 대결을 약속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애인의 시합. 보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건, 당연한 심리일 것이다.
그건 시즈쿠도 이해를 했는지, 그녀는 잇키의 몸을 걱정하면서도 그 이상은 제지의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쿠로가네. 지금까지의 경위를 포함하여 이 시합을 어떻게 보고 있지?"
".....뭐, 지금까지는 순조롭네요. '얼음의 냉소'는 상성적으로 처음부터 적수가 되질 않으 테고, '반사 능력자'는 확실히 힘 타입인 스텔라에게 있어서 상성이 나쁜 상대였습니다만, 그래도 스텔라는 그런 것 하나로 단방에 침묵해버릴 기사가 아니었죠. ......단."
쿠로노를 향해 답하면서, 잇키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 시선 너머엔... 아까부터 링 바깥쪽, 스텔라에게서 떨어진 곳에 위치한, 불길할 정도로 움직이지 않는 '어릿광대' 히라가 레이센이 있었다.
"이 다음은 전개에 따라 좀 힘들어질 것 같군요. 아무래도 불길한 느낌을 뿜어내고 있는 남자가 한 명 있어서요.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보고 넘길 수 없을 정도의 집중력이 느껴져요. 그의 노림수가 성취되기 전에, 얼른 시합을 마무리짓는 편이 좋겠군요."
잇키의 의견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속으로 수긍했다.
그건 누구나가 히라가가 내뿜고 있던 불길한 느낌을 느꼈기 때문이겠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링 위에서 내려다보면, 링 전체의 움직임이 손쉽게 파악된다.
'얼음의 냉소'가 가담한 아카츠키 진영이, 히라가를 지키려는 듯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틀림없이, 상대의 비장의 수는 저 남자.
그렇다면.. 그들이 노리는 수를 될 수 있으면 빨리 해치우는 것이 좋다.
그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공통적인 인식이었고, 스텔라 자신도 그 생각은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무리 봐도 어려울 것 같군."
"이사장 선생님, 그게 무슨 의미이죠?"
"저걸 봐."
아리스인의 물음에, 쿠로노는 손가락질로 답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객관석 끝.
거기엔.. 빛을 발하는 무언가가 꽂혀 있었다.
"사람이 없는 곳에 격추시키긴 했지만, 저걸 봐. 깨지긴 커녕 흠집 하나도 없어. 강도가 보통내기가 아냐. A급 리그에서도 이렇게 강한 '배리어 능력자'는 본 적이 없어. 버밀리온이라고 해도, 오른손 하나로 이걸 돌파해내긴 어려울 것 같군. ....어쩌면 저 메이드, 버밀리온의 최대 화력인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까지 막아낼 수도 있어.
그리고 이 쿠로노의 불안은, 멋들어지게 적중했다.
'스텔라 선수의 3번에 걸친 어택! 하지만 그 노력도 허무하게, '마수 조련사' 카자마츠리 린나의 숨겨둔 비장의 무기, 샤를로트 콜데의 무서울 정도로 견고한 방어를 돌파해낼 수 없었다아앗!!!!! 오히려 샤를로트 양의 반격을 받아 조금씩, 그래도 확실하게 소모되어 가고 있습니다!!!'
'왼팔이 건재했다면, 저 배리어를 상대로 싸울 수 있을지도 몰랐겠지만, 저런 팔로는 이제 칼조차 들 수 없겠지요. '홍련의 황녀'에겐 힘든 전개가 되어 가고 있군요.'
실황과 해설의 말대로, 스텔라의 공격은 '일륜순화'의 앞에 막혀 나갔다. 시합의 우세는, 누가 봐도 스텔라가 나쁜 편이었다.
".....이거 참,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단하네. 이만큼 베어도 흠집 하나 안 난다니. 역시 팔 하나로 당해낼 순 없을 것 같아."
이 무모한 행위로 소모되어 가는 건, 몸 쪽보다 마음 쪽이었다.
그리고 피로해진 마음은 몸에서 힘을 빼앗아간다.
스텔라의 약한 마음을 토로해내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 그 말을 듣고, 샤를로트는 확실한 느낌을 받았다.
조금만 더. 이 기사는 조금만 더 있으면 끝난다.
'어릿광대'의 노블 아츠의 완성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당연하지요. 아가씨를 지키는 일. 그것이 제 존재의의. '검'으로서의 힘도, '방패로서의 힘도, 모두 그걸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홍련의 황녀', 당신의 검은 아가씨에겐 닿지 않을 겁니다. 제가 있는 한, 이 목숨이 살아있는 한, 아가씨에겐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을 겁니다."
"엄청난 충성심이네, 그런 거 싫지 않아."
그 스텔라의 찬사에, 샤를로트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알고 있던 것이다.
자신의 충성심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과 견주어도 지지 않을 감정이란 것을.
당연하다.
그 쓰레기더미에서 구원을 받은 이후, 샤를로트는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카자마츠리 린나. 이 사랑스러운 소녀를 위해 살아가자고.
머리카락 끝에서부터 손톱 끝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그녀에게 바치자고.
그렇게,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아왔다.
어떤 때라도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수없이 닥쳐 온 위기를 이겨냈다. 카자마츠리가 고양이를 갖고 싶다고 했을 땐 고양이가 되어 주었고, 개가 갖고 싶다고 했을 땐 개가 되어 주었다.
그만큼 노력했음에도 그녀가 '스핑크스'를 기르기 시작했을 땐, 너무도 분했다.
분하고, 너무도 분해서, 저녁에 만들 스튜 재료로 만들어버릴까, 하고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때 아가씨는 제게 이렇게 말해 주었죠.'
'너는 사람의 모습 그대로 살도록. 내 오른팔이 고양이여서야 곤란하기 짝이 없지. 그러니 기어다니면서 고양이 사료를 먹는 짓은 그만두도록.'
그리 말하고, 고양이가 될 때 벗은 옷을 주워서 내게 건네주었다.
'아아, 아가씨! 아가씨! 이 얼마나 자상하신 분이신지.. 아가씨!'
이런, 주변에 기어다니는 개나 고양이와 다를 바 없는 하등한 출신인 나를 그렇게까지 소중하게 여겨 주시다니..
그렇다면, 그 기대에 나의 모든 것을 바쳐 응하리라.
이 정도의 충성심을 지닌 자신이 질 리가 없다.
이 금강석보다도 단단하고, 무엇보다 강한 충성심에 패배를 맞을 요소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샤를로트는 그런 확실한 자부심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단... 미안하지만, 네게는 무리야."
갑자기, 샤를로트와 대치하고 있던 진홍의 기사가 그런 말을 흘렸다.
마치, 그렇다. 동정하는 듯한 목소리로.
"뭐가, 무리라는 겁니까?"
"넌 주인을 지켜낼 수 없어."
그리 말을 꺼낸 스텔라의 말에, 샤를로트는 실소를 흘렸다.
"그것 참 이상한 말씀을. 제 '일륜순화' 앞에 독안에 든 쥐가 된 당신이, 말은 참 잘 하는군요. 방금 당신의 입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당해낼 수 없다, 고. 그런 주제에 지금 와서 근거도 없는 허세를 부리시는 겁니까? 꼴사납기 짝이 없군요."
"어머나. 메이드 씨. 지금 뭔가 중요한 걸 잊어버리고 있는데?"
".......?"
"'팔 하나'라면 그랬다고, 방금 난 그렇게 말했었는데?"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스텔라를 감싸고 있던 불꽃의 갑옷 '비룡의 날개옷'이, 이상한 거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스텔라의 온몸을 감싸고 있던 불꽃이 한 곳에 집중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곳은... 타타라의 '완전반사'에 의해 너덜너덜해진, 움직이지 않게 된 왼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샤를로트는 그 스텔라의 행동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뒤에 바로, 그녀의 이해를 더욱 넘어선 사태가 발생했다.
놀랍게도, 고온의 굉염 속에서, 산산히 부서졌을 터인 왼팔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뭣!?"
부러진 팔이 직선 모양을 되찾았고, 뭉개진 손가락이 천천히 주먹을 쥐락펴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비룡의 날개옷'의 화염이 꺼지고, 스텔라는 완전히 망가졌을 터인 왼손으로 '비룡의 죄검'을 쥐었다.
엄청난 중량이 나갈 터인 저 대검을, 양손으로 쥐는, 원래의 자세를 취한 것이다.
부러진 팔로는 불가능한 행동.
그걸 해냈다는 건, 스텔라의 팔이 치료되었다는 것.
하지만, 불꽃 능력자인 스텔라에게 치료 마술은 쓸 수 없다.
대체 어떻게.....
".....!!"
하지만, 다음 순간, 샤를로트의 뇌를에 한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번뜩였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그 가능성이.....!
"서, 설마.. 당신...... 자신의 불꽃으로 부서진 뼈를 용접시킨 거야....!?"
그 비명과도 가까운 물음에, 스텔라는 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고, 웃었다.
마치 승리를 자신하는 듯.
그 웃음이 나타내고 있었다.
샤를로트가 낸 생각이, 정답이라는 것을.
그렇다. 스텔라는 자신의 불꽃으로, 산산히 부서진 칼슘을 녹여 재접합시킨 것이다. 그리고 양팔을 되찾은 스텔라에겐 이제 당해낼 수 없...
"창천을 꿰뚫는, 연옥의 불이여..."
검을 높이 하늘로 치켜올린 '홍련의 황녀'는, 자신이 가진 최강의 노블 아츠를 발동시켰다.
'비룡의 죄검'에서 적색 불기둥이 뿜어져나와, 하늘을 불태웠다.
그 불기둥은 서서히 온도가 높아져, 청색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뜨거워지는 그 작열은... 끝내는 색조차 없어져, 빛이 되었다.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소각해버리는, 도신 길이 50미터의 빛의 검으로.
"자, 어떡할래, 메이드 씨? 난 이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으로 지금부터 네 뒤에 있는 네 주인을 불태워 버릴 건데. 당신은 선수가 아니야. 도망치면 쫓지는 않을 거라구?"
"큭.....!"
삐걱.
스텔라가 그 말과 함께 뿜어낸 위압에, 샤를로트의 등골이 삐걱거렸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금 말은 스텔라의 최후통찹이란 것을.
여기서 도망치지 않으면, '홍련의 황려'는 용서 없이, 이 규격 외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빛의 성검을 내리칠 것이다.
이런 것에 당한다면, 손쓸 도리조차 없어져버릴 것이다.
하지만..
"어리석은.. 질문이군요."
샤를로트는 도망치지 않았다.
등 뒤로 카자마츠리를 보호하는 위치에 선 뒤, 자신의 각오를 단언했다.
"전 말했을 겁니다! 손가락 하나 못 댄다고!"
"GREAT!!"
그 순간, 두 사람은 마치 서부극에 나오는 건맨처럼, 동시에 모션을 취했다.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
"피어 흩날려라! '천변순화'!!!'"
스텔라는 샤를로트를, 그리고 그 등 뒤에 있는 카자마츠리를 한꺼번에 양단하듯, 광열의 검을 내리쳤다. 그에 대해 샤를로트는 자신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일륜순화'의 천 배의 강도를 자랑하는 방패에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 최강의 방패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두 사람의 혼신의 충돌.
회장 전체 그 자체가 날아가버릴 듯한 빛의 폭풍이 불어닥쳤다.
"하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지금까지 세 번에 걸쳐 날아온 스텔라 선수의 참격을 막아 온 샤를로트 선수의 방패, 그리고 스텔라 선수가 모든 힘을 쏟아내 만들어낸 최강의 노블 아츠가 링 중앙에서 격돌!!!! 엄청난 마력이 회장 안에 불어닥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일 정도로 강력한 마력의 범류!! 힘겨루기에 들어간 둘!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습니다! 최강의 창과 최강의 방패의 격돌!! 승부의 저울은 아직 기울어지지 않았다아아아아앗!!'
하지만, 이 세상에 모순이란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뚫을 수 있는 창과, 모든 것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
반드시, 결착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걸 배신하듯, 빛의 폭발을 흩뿌리던 힘의 충돌의 길항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거워.....! 그리고 뜨거워....!'
밀리기 시작한 건, 샤를로트였다.
천 겹의 꽃잎을 겹쳐 만든 '천변순화'.
그 빛의 방패가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의 힘에 밀려, 시들며 꽃잎을 흩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서서히 방패로서의 힘을 잃기 시작해,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의 방열을 막을 수 없게 되어 가고 있었다.
부글부글.
발치의 링이 녹아, 거품을 내기 시작했다.
솜털이 타들어가고, 피부가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저 빛의 검, 그 도신 자체를 막아냈음에도 불구하고, 내뿜어지는 힘만으로도 이 정도의 위력이다.
엄청난 힘이었다.
'이대로는....!'
무너진다.
그러니, 샤를로트는 주인을 지키기 위해 소리질렀다.
"아가씨! 제게서 떨어지세요!"
하지만...
"거절하겠어."
그녀의 주인, '마수 조련사' 카자마츠리 린나는 도망치기는 커녕 샤를로트의 허리에 손을 얹어, 그녀의 등에 몸을 기대어 왔다.
"엣!? 아, 아가씨!? 뭘 하시는 겁니까!?"
주인의 생각지 못한 행동에, 샤를로트의 표정이 낭패의 빛을 띠며 무너져갔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카자마츠리는 여유조차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거절한다고 말했다. 짐의 충신이여. 도망갈 필요 따윈 조금도 없지. 지금 이 몸 앞에서, 짐에게 충의를 바치고 있는 건, 짐의 최고의 충신이자, 칠흑의 오른팔. 샤를로트 콜데다. 이 몸의 검은, 이 몸의 방패는... '나의' 기사는, 절대로 지지 않아... 그렇지?"
한 층 강하게, 자신의 몸을 샤를로트의 등에 밀어붙였다.
그 몸을 통해 전해져 오는 건, 주인의 따스함, 그리고 자신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
그건....
"...Yes, My Lord!"
샤를로트의 혼에서, 한 층 더 강한 힘을 불러냈다.
통곡과도 같은 소리와 함께, 무너져가던 '천변순화'에 빛이 돌아왔다. 광염에 메말라 시들어가던 꽃잎은, 마치 물을 머금은 것처럼 피어나, 불꽃의 열기를 튕겨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너덜너덜해졌지만, 샤를로트의 '천변순화'는 '홍련의 황녀'의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을 막아냈다.
'이겨낸 쪽은... '천변순화'다!! '천변순화'가 최강의 검을, A급 기사 스텔라 버밀리온의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을 간신히 막아냈습니다!!!!!!'
"윽..."
링 바닥에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샤를로트는 무너지려 하는 자신의 몸을 무릎에 손을 대 일으켰다. 타들어간 머리카락, 그리고 어깨로 힘겹게 숨을 들이내쉬는 모습을 보면, 명백히 한계가 보였다.
하지만, 그래도...
'난... 지켜냈어.'
그렇다. 샤를로트는 지켜낸 것이다.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의 필살기.
그 필살기의 직격으로부터, 주인을 지켜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체온에, 고동에, 무심코 미소가 흘렀다. 사랑하는 주인이 원하는 것을 해낸다. 이 이상의 기쁨이 어디에 있겠는가.
가슴을 꽉 채운 달성감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홍색의 행복감.
그건.....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
다음 순간, 새카만 절망으로 바뀌었다.
"거짓...말...."
샤를로트는 보았다.
눈 앞의 적발의 기사가, 호흡조차 가다듬지 않고, 방금과 다를 바 없는 압도적인 마력을 내포한 광염의 칼날을 다시 만들어내어, 내리치는 광경을.
'이런 공격을.... 아무런 딜레이 없이 연발로 해낼 수 있다고...!?'
"그러니까 말했잖아. 네게는 무리라고."
실제로, 스텔라는 처음부터 샤를로트의 방어를 한 번에 깨트리기엔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어쩄다는 건가.
한 번에 깨트릴 수 없다면, 두 번, 세 번. 틈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하면 된다.
'홍련의 황녀'는 도합 12번 정도는, 이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을 숨도 쉬지 않고 연발로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한 편, 샤를로트에겐 이제 더 이상 짜낼 마력이 남아있지 않았고....
"샤를로트!!!!!!"
"아가..ㅆ..."
샤를로트는 저항하지도 못한 채, 용염의 일섬에 삼켜져버렸다.
'지, 직겨어어어억!!! 간신히 첫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을 막아낸 샤를로트 양! 하지만 역시나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의 연발 공격엔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마수 조련사'와 함께 스텔라 선수 앞에, 힘없이 무너져버렸습니다!!'
'이건... 다시 재기하는 건 불가능하겠군요. 설령 일어난다 하더라도 둘 다 싸울 수 있는 상태는 아닐 겁니다. 첫 공격을 막아낸 단계에서, 몸도 마음도 모두 다 소모해버렸을 테니까요.'
"....이걸로 두 명 째."
샤를로트의 최강의 방패를 뚫은 스텔라는, 담담한 말투로 카운트를 센 뒤 남은 둘, ‘얼음의 냉소’와 ‘어릿광대’에게 의식을 돌렸다.
이제 스텔라의 공격에서 이 둘을 보호할 방패는 존재하지 않았다.
도망칠 곳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 저 구석에서 몰래 기분 나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는 '어릿광대'를 처리하면, 사실상 이 시합은 끝났다고 봐도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늦은 것 같네."
그 말에, '어릿광대' 히라가 레이센은 히죽, 하고 뺨이 찢어진 듯한 미소를 지었다."
"네. 콜데 양이 아주 일을 잘 해내 주었어요. 그 덕에, 지금 막 모든 준비가 끝났거든요."
그 순간. 그 일은 벌어졌다.
광대한 만안 돔 전역에, 하늘 위에서부터 그늘이 드리워진 것이다.
'어라? 갑자기 날이 흐려졌네?'
'말도 안돼~ 우산도 안 갖고 왔는데..... 어? 어어?? 저게 뭐야??'
갑자기 드리워진 그늘에 하늘을 올려다본 관객들이 차례차례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왜냐면, 하늘엔 구름 따윈 보이지 않았고, 그 그늘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잔해들로 인해 만들어진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잔해는, 마치 무언가에 빨려들어 오듯, 링 위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링 위에 건물 잔해에 차, 거기에 전철까지!! 차례대로 모든 물건들이 낙하하기 시작했습니다! 태풍 같은 것에 휘말려 날아온 걸까요!?'
그렇지 않다.
확실히 잔해의 양과 그 내용은 일반 태풍에 휘말릴 수 있는 정도의 내용물이었다. 하지만 자연현상이라면, 객석엔 단 하나도 떨어지지 않고, 링에만 집중적으로 떨어진다는 부자연스런 현상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이건, 인위적인 현상.
그리고 그 범인은, 소란에 휩싸인 회장 그 모든 것을 조소하고 있는 듯 웃고 있는 삐에로.
'어릿광대' 히라가 레이센 외엔 그 누구도 아니었다.
그는 실을 회장 밖으로 뻗어, 만안 구역 내에 철거된 폐허 건물이나 무인 열차, 폐기 자동차 등을 링으로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뭘 위해서?
그건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이게 뭡니까! 하늘에서 떨어진 잔해의 산더미가, 서서히 합체하고 있습니다! 이 형태는... 사람!? 사람입니다! 대량의 잔해가, 마치 자석에 빨려들어 붙듯 결합하여, 거대한 인형을 만들고 있습니다!!!!!'
'저건.....!!'
객석에 앉아 있던 쿠로가네 잇키는, 그리고 링 위에 서 있던 스텔라 버밀리온은 알고 있었다.
이걸 본 적이 있다.
그 태풍이 일던 오쿠타마에서!
무기물을 실로 결합하여, 거대한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어내는 노블 아츠..
'기계를 다루는 신'.... 후후, 거대 로봇 같아서 정말 멋지죠?'
이윽고 만들어진, 신장 50미터 정도 되는 잔해 인형.
그것이야말로, '어릿광대'.... 아니, '인형사' 히라가 레이센의 비장의 수였다.
링에 나타난 잔해 거인을 올려다보며, 스텔라는 혀를 찼다.
".....역시, 합숙장에서 벌어진 그 사건은 네가 범인이었구나. 타이밍이 걸려서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말야."
"후후후, 그 때 제 인형들 참 신세를 졌습니다."
그 히라가의 목소리는 잔해 거인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잔해가 합체한 단계에서, 거인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내부에서 조종하는 인형. 그야말로 거대 로봇 자체였다.
그리고.....
"그 땐 '뇌절'에게 멋들어지게 당해 버렸지요. 하지만... 이 '기계를 다루는 신'은 그 때의 흙덩어리와는 차원이 다르다고요 이 질량에서 나오는 무거운 공격! 아무리 그 '홍련의 황녀'라 할지라도, 맞으면 위험할 겁니다!"
형태가 완성된 히라가의 인형이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듯, 스텔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휘둘러진 건, 콘크리트나 쇠파이프 등의 잔해로 구성된 왼팔이 들고 있는, 열차 차체였다. 여덟 량으로 구성된 차체가, 그야말로 채찍처럼 변하여 링 위의 붉은 기사를 공격했다. 그 위력은 사람 하나를 공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링을 부수고, 회장 전체를 흔들었다.
'강렬합니다!!!!!!! '기계를 다루는 신'의 전철 채찍이, 링을 폭쇄!!! 링의 4분의 1이 산산히 가루가 되어 버렸습니다!!! 엄청난 흙먼지가 일고 있습니다! 스텔라 선수는 무사할까요!?'
무사할 리가 없었다.
열차는 스테인레스제로 되어 있어 비교적 가볍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열차의 중량은 톤 단위를 자랑한다.
그런 걸 채찍처럼 휘두르는 공격을 받는다면, 일반적인 사람 따윈 곤죽이 되어 버릴 것이다.
원형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확실히, 이런 공격을 받았다간 그냥 상처 하나로 끝나진 않겠지만, 이런 허접하고 느린 채찍에 내가 맞을 리가 없잖아!"
그 순간, 주변을 뒤덮고 있던 토사 먼지를 뚫고, 붉은 섬광이 쇄도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화염을 두른 기사,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이었다. 그녀는 열차 채찍을 가볍게 피한 뒤, 그 충격으로 일어난 먼지를 등뒤로 상승. 크게 도약하여 열차를 휘두른 '기계를 다루는 신'의 오른팔에 착지한 뒤, 단숨에 거인의 어깨까지 달려 올라가 대형 트럭을 중심으로 한 잔해더미로 만들어진 목을 쳤다.
통째로 떨어져나간 목이 지면에 떨어지고, 유리컵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사방팔방으로 퍼졌다. 트럭의 차체나 신호기, 끝내는 프로판 가스통 등이 드르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굴러갔다.
그 무참히 흩어진 잔해의 중심에, 스텔라가 착지한 뒤
"나와 그 메이드가 싸우고 있을 때, 꽤 시간 들여서 만들어 낸 인형 같은데. 안됐네. 1분만에 폐기물로 만들어주겠어."
힘찬 미소와 함께 선언했다.
자신의 승리를.
.....하지만.
"후후, 후후후..."
그런 스텔라를, '어릿광대'는 조소했다.
"뭐가 그리 웃겨?"
"아뇨아뇨. 아무래도 당신은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하군요. 이 '기계를 다루는 신'은, 당신이 콜데 양과 싸우기 시작한 순간부터 준비되어 있던 거랍니다. 제가 시간을 들여 준비한 건, 주로 또 다른 인형 쪽이거든요."
".......윽!?"
그 순간,
오싹.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스텔라의 등이, 쇄도해 오는 압력에 의해 전율했다.
'기계를 다루는 신'의 안에 있는 '어릿광대'의 압박감인가?
아니. 그렇지 않았다. 이 전율은 정면이 아닌, 등 뒤에서 느껴진 것이다.
'뭐야... 이 느낌은...'
뭔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위험해..!'
스텔라는 직감에 몸을 맡기고 힘껏 땅을 박찼다. 그리고 낙법도 뭣도 없이, 말 그대로 자신의 몸을 날려버렸다.
그 순간... 스텔라가 지금 방금 도약한 지면이, 아니, 그녀가 서 있던 공간 그 자체가
얼어붙었다.
"이 힘은...."
지면에 핀 얼음기둥의 꽃.
대기 중의 수분을 모두 얼리는 능력.
이런 게 가능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사신의 마안', '얼음의 냉소'....!'
스텔라는 전율이 느껴진 방향으로 시선을 향했다.
거기엔 그녀의 말대로, '얼음의 냉소' 츠루야 미코토가 서 있었다. 사신의 눈동자에, 방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청백색 마력을 띠고.
츠루야의 눈에 담겨진 빛은 바로 마술로 변화했다.
시선과 함께 날아가는 절대영도의 냉기가 츠루야에게서 스텔라로 전해지는 순간,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얼어붙어 칼의 빙산을 쌓으며 스텔라를 공격했다.
'여기에 '얼음의 냉소' 츠루야 미코토 선수가 다시금 공세에 가담했습니다!! 스텔라 선수를 향하여 '사신의 마안'을 연타! 연타!!! 그에 대해 스텔라 선수, 츠루야 선수의 시야에 들지 않도록 계속해서 도망치고 있습니다!! 공격력만이 아닌, 기동력도 초 일류인 '홍련의 황녀'! 하지만, '사신의 마안'는 방금 '비룡의 날개옷'에 의해 간단히 공략당한 기술입니다! 대체 스텔라 선수는 어째서 이렇게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는 걸까요!?'
'....방금과 같은 기술이 아닌 겁니다. 기술의 위력이 차원이 다르게 상승했어요. 저걸 보십시오. 제가 알고 있는 '얼음의 냉소'는 시야의 집정, 그 곳을 중심으로 직경 3미터 정도의 원형 공간 형태로 대기를 절대영도로 내려버리는 힘 외엔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시야에 담겨 있는 모든 것들을 동결시키고 있어요... 노블 아츠 그 자체의 위력이 차원이 다르게 올라간 겁니다. 설마 이런 수를 숨겨두고 있었을 줄이야... 놀랐습니다! 이 정도의 위력을 지닌 노블 아츠라면 '홍련의 황녀'의 불꽃까지도 얼어붙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무로토가 말한 것과 동시에 츠루야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다. 링 위를 빠른 스텝으로 도망치고 있던 스텔라, 아무리 그녀라 하더라도 빛의 속도와 견줄 만한 속도로 쇄도해 오는 노블 아츠를 계속해서 피할 수는 없었다.
필사적으로 시선에 들지 않으려 노력한 나머지, 주변을 향한 주의가 산만하게 되었고, '사신의 마안'에 의해 얼어붙은 공간이 만들어낸 얼음기둥에 포위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말하자마자 스텔라 선수가 막다른 곳에 내몰렸습니다! 사면초가인 것인가!!!!'
당연, 츠루야는 도망갈 길을 잃은 스텔라를 시야에 두고, 절대영도의 안광을 쏘아냈다.
하지만, 거기에 끝날 정도로 스텔라는 무르지 않았다.
스텔라는 '비룡의 죄검'에 '비룡의 날개옷'의 모든 불꽃을 감아 불의 검을 만들어내어..
"하아아아앗!!"
사신의 안광을 베어냈다.
'거, 검으로 베어 냈다!!!!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홍련의 황녀'!'
'하지만 보십시오, 그녀의 디바이스를..!'
'에...?'
무로토의 말에 이끌려 시선을 '비룡의 죄검'을 향한 실황과 관중이, 숨을 꿀꺽 삼켰다.
'이, 이건...! 무슨 일입니까! 스텔라 선수의 디바이스 '비룡의 죄검'이... 어,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진짜로 얼어붙어 버린 거야!?'
경악의 소리가 가득한 만안 돔.
불꽃 능력자의 디바이스는, 말하자면 태양의 중심과도 같은 것. 가장 높은 열을 내는 부위를 얼어붙게 만들다니, 여간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엔, 스텔라 자신도 상당히 동요하고 있었다.
'농담이지...?'
바로 불꽃을 '비룡의 죄검'에 결집시켜 녹여 보려 했지만..
'노, 녹지 않습니다! 스텔라 선수의 불꽃에도 조금도 녹지 않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힘인가요!!'
'내 불로도 녹지 않다니...!'
스텔라는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눈 앞의 사신을 노려봤다.
"생각지도 못하게 짓궂은 사람이없네, 츠루야 양. 이런 힘을 숨겨두고 있었다니."
"........."
스텔라의 얄궂은 말에 담긴 칭찬에도, 츠루야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적의 칭찬 따윈 필요 없다는 것일까.
....스텔라는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
츠루야의 표정을 보고, 스텔라는 위화감을 느꼈다.
자신의 실력을 간파해내지 못한 멍청한 적을 향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눈에 빛이 없었다.
몸에도 힘이 없었다.
분위기에... 생기가 없었다.
그건, 그래.
마치, 인형 같이.
'제가 시간을 들여 준비한 건, 주로 또 다른 인형 쪽이거든요.'
"크윽...!!"
그 순간, 스텔라는 어떤, 한 가지 무서운 가능성에 착안했다.
"히라가, 당신, 설마...!"
그리고 그 가능성은..
"우후후후, 네. 그 설마가 설마랍니다."
현실이었다.
그렇다. 히라가 레이센이 방금 말한 한 인형.
그는 스텔라의 주의가 샤를로트를 향해 있을 때, 츠루야 본인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틈에 귀를 통해 자신의 디바이스를 넣아 뇌에, 그리고 신경에 침입.
츠루야의 몸의 조작권을 빼앗아, 자신의 꼭두각시 인형으로 만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인형사' 히라가 레이센의 진정한 능력..
"'꼭두각시 인형'. 딱히 이렇다 할 특징은 없는 기술입니다만, 역시 정석적인 기술이 가장 강력한 법이지요."
그리고 이 '꼭두각시 인형'은, 그 기술에 걸린 사람을 불쌍한 인형으로 만들어 버리는데에 그치지 않는다. 뇌에 직접 침입하여, 그 전기신호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히라가는, 손쉽게 떼어내 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방어 본능을.
그리고, 억지로 이끌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그 사람의, 진짜 한계를.
그것이, '얼음의 냉소'의 갑작스런 파워 업의 이유였다.
하지만..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람의 몸은 자신의 전력에 버틸 수 있게 만들어지지 않았지요."
히라가가 그리 말한 순간
주륵...
츠루야의 안구에서 진흙 같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츠루야 양...!"
"공주님게서 이 이상 쓸데없이 발버둥을 치신다면.. 안구가 파열되어 버릴지도 모른다구요? 뭐, 그것만이라면 손쉽게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제 실은 이미 그녀의 뇌 깊숙히 침투해 있지요. 불쌍하다고 생각지 않으신가요? 이 여성은 저희 아카츠키나 당신의 복수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완전한 부외자인데 말이죠... 거기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인데, 남은 여생을 자아도 없는 식물인간으로 보내야 한다니 말이죠."
"날.. 협박하고 있는 거야?"
"네. 그거에요."
".....네 동료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와 정정당당히 싸웠어. 긍지를 가지고 싸웠다고. 그런데 넌... 제대로 싸울 마음조차 갖고 있지 않다는 거야...!?"
"예이~ 없습니다아~~"
"크윽...!!"
빠득!
스텔라는 자신의 어금니를 부서질듯 악물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이 남자는, 히라가 레이센은, 타타라와 다른 사람들 같은 악인이 아니다.
사악 그 자체.
스텔라는 황족이라는 입장에 서 있기에, 이 세상의 선악이 얼마나 쉽게 물들 수 있는지를 알고 있다. 다른 각도로 보면, 블레이저의 이상향을 만들어내려 하는 '해방군'도 손쉽게 선한 쪽으로 돌아설 수 있는 것이다. 악인이란 건 쉽게 말해서, 그런 정도의 존재.
하지만..... 이 삐에로는 다르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기뻐하며, 괴로운 모습을 보는 데에 희열을 느끼는, 진정한 사악.
절대악이다.
"착각하고 계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만, 저희의 목적은 이 싸움에서 얻는 명예가 아니랍니다. 승리, 그것 하나 뿐이지요. 수단에 얽매이는 건 2류들이나 할 법한 짓이에요. 의뢰를 달성해내는 것이 바로 프로란 것이니까요. 그러니 전 망설임이 없죠. 주저함도 없죠. 그리고, 용서도 하지 않아요. 그건 확실하게 알아 주셨으면 좋겠군요. '홍련의 황녀'님. 자. 어 떡 하 시 겠 습 니 까?"
귓가에서 들리는 듯한 어두운 희열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 그 목소리에, 오장육부가 전부 타들어갈 정도의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어떡할 방법도 없는 스텔라에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 쓰레기...!"
스텔라는 모멸의 말을 내뱉으며, 망설임 없이 '비룡의 죄검'을 내던졌다.
카랑, 하는 소리와 함께 '비룡의 죄검'이 링 위에 떨어진 순간
"히이이이아아아아아앗!!!!!!!!!!!"
이번에야말로, '기계를 다루는 신'의 채찍이 스텔라를 내리쳤다.
'시나리오 대로, 된 느낌이군요.'
열차 채찍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아무런 방어 없이 서 있는 스텔라를 향해 내리치며 '기계를 다루는 신'의 안에 있는 '어릿광대' 히라가 레이센은 승리를 확신했다.
아니, 확신 자체는 이 시합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갖고 있었다.
스텔라가 말도 안 되는 페널티를 제시하고, 아카츠키의 모든 인원을 링 위로 끌어냈을 때, 히라가는 곧바로 그 목적이 이전의 하군 학원 습격자들을 향한 복수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상처를 입은 친구들의 복수를 갚기 위해, 불리함을 받아들이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싸움에 도전한다, 라. 후후, 실로 아름답습니다. 인간으로서 존경을 받아 마땅한 마음가짐을 가진 소녀에요.'
그리고 그런 고결한 혼, 아름다운 마음은..
'너무나도, 집어삼키기 쉽단 말이죠.'
실 따위 필요 없이, 말만으로도 재밌을 정도로 의도대로 움직여주고 있다.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아무런 관계가 없는 츠루야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자신의 길을 나아갈 리가 없다.
츠루야를 인질로 삼아, 그녀에게 검을 버리게 하고, 전의를 상실시킨다.
이 싸움의 시나리오는, 시합 개시 때부터 히라가의 손바닥 안에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계략은 완전히 스텔라를 집어삼켰다.
''기계를 다루는 신'이 내리치는 열차 채찍이 계속해서 지면을 내리치고 있습니다! 스텔라 선수는 무사한 걸까요? 일어나는 먼지 때문에 링의 상태가 실황석에선 전혀 보이고 있질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히라가 선수가 공격을 가하기 직전, 스텔라 선수가 자신의 디바이스인 '비룡의 죄검'을 내던진 점입니다! 대체 스텔라 선수는 무슨 생각으로 싸우는 도중 자신의 무기를 내던진 것일까요!?'
'....어떤 의도가 있건 간에, 이 상황은 위험합니다.'
그 인식은 링 위에 있던 주심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는 시합을 중지시킬 타이밍을 엿보고 있었다.
그런 주위의 상황을 보고, 히라가는 일단 채찍을 내리치던 손을 멈췄다.
잔해의 거인의 세부에 붙어 있던 실을 통해, 열차로 '고기'를 다지는 확실한 감촉이 느껴졌다. 아까 같은, 피했다는 결과는 나올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충분하다.
딱히 그녀를 절명시키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부터 지면에 처박힌 채로 쓰러진 스텔라의 모습을 보면, 주심이 시합을 중지시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히라가가 손을 멈춘 탓에 주변에 일던 먼지가 서서히 옅어져갔다.
'일어오른 먼지가 옅어져 갑니다. 스텔라 선수는 과연.... 헉!?'
무사한 것일까, 하고 말하려던 실황의 목소리가 막혔다.
이어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관중들조차도 숨쉬는 걸 잊고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흙먼지가 사라지고 여기저기 부서진 링 중앙에, 엄청난 양의 피웅덩이가 생겼기 때문.
이 아니었다.
그 피웅덩이 위에, 머리에서부터 대량의 피를 흘리면서도 조금도 무릎을 굽히지 않고, 똑바로 우뚝 선 채 '기계를 다루는 신'을 노려보고 있는 스텔라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미, 믿기질 않습니다! 스텔라 선수! 그 맹공을 피하지도, 막지도 않고 직립부동의 자세로 받아냈습니다! 이 무슨 인간을 넘어선 내구력이란 말인가!!!!!'
링 바닥이 산산히 부서지고, 그 바닥 아래에 있는 적토가 파내어질 정도의 타격을 받고도, 자세 하나 무너뜨리지 않을 정도의 스텔라의 내구력. 이 상황엔 히라가조차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어이없을 정도로 단단하시네요. 벌써 승부는 났습니다. 얌전히 잠드셨으면 편할 텐데 말이죠."
살짝 지겹다는 투로 말하는 히라가.
하지만, 그 말에 대해 스텔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승부가 났다고?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당신이야말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당신 손으로 검을 내던져 놓고 말이죠."
그렇다. 그 시점에서 시합의 결착은 이미 나 있다.
스텔라는 츠루야가 인질로 사로잡혀 있는 이상,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다.
그것이 시나리오였을 터이다.
하지만... 그건 히라가가 제멋대로 스텔라 버밀리온이라는 기사를 두고 계산해버린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스텔라는 살짝 가만히 있다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 뒤...
"멍~청하긴"
피투성이가 된 얼굴에, 진심으로 히라가를 조소하는 듯한 웃음을 띠었다.
그렇다. 그녀가 검을 내던진 건, 인질을 방패로 삼은 히라가의 협박에 굴한 것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검을 내던진 건 말야. 너같은 쓰레기를 기사의 혼이라고 할 수 있는 검으로 베고 싶지 않았던 것 뿐이라구. 기사의 검은 긍지가 걸린 싸움을 위한 것. 그걸 너같은 놈을 위해 쓰다니, 내 혼이 용납 못해..!"
"윽....!"
"사실은 이런 '다른 사람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기술' 같은 거, 별로 쓰고 싶진 않은 데 말야. 네겐 특별히 보여줄게."
스텔라가 그리 고한 순간, 그녀와 대치하고 있던 히라가는 물론, 회장에 있는 모두가 '그것'을 보았다. 스텔라의 등 뒤에 떠오른, 잔해 거인보다도 큰, 홍련의 염룡의 모습을. 물론, 그 용은 실존하지 않는, 그녀의 위압감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하지만 위압감만으로 이런 환상을 보이는 스텔라의 고양되고 있는 마력은, 보통의 양이 아닐 것이다.
"츠루야 양이 있으니 '환상 형태' 정도의 자비는 베풀어 주겠어. 그러니까.. 안심하고 나자빠져 있으라구."
그리 말하고, 스읍.. 하고 크게 숨을 들이쉬는 스텔라.
그 동작에, 히라가의 심장이 크게 튀어올랐다.
.....위험하다.
이 소녀에게 이 이상 무슨 행동을 취하게 놔두면 안 된다, 고.
음지의 세계에서 생존해 온 히라가의 본능이 호소하고 있었다.
그는 그 본능에 주저 없이 따랐다.
"'꼭두각시 인형'...!"
츠루야의 뇌에 침입시켜 둔 '지옥 거미의 실'에, '사신의 마안'을 사용하도록 지령을 내렸다.
그 행동은 신속했다.
그리고 조종당하고 있는 '얼음의 냉소'의 눈동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스텔라를 사로잡아 동결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용의 고동은 멈추지 않았다.
공간 채로 동결된 얼음관 속에서, 그 비색 눈동자에 분노가 깃들고
용이, 포효했다.
"'폭룡의 포효'"
그 말과 함께, 세상의 색깔이 사라졌다.
색을 없앤 건, 색채의 인식조차 느낄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빛의 폭풍.
작열의 폭풍.
스텔라의 온몸에서 방출된 지향성 없는 그 폭풍은, 그녀를 주변으로 뿜어져 나가, 순식간에 '기계를 다루는 신'을, 조종당하고 있던 '얼음의 냉소'를, 링 위의 모든 것들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관객석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듯 말 듯한 곳에서,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듯 정지한 뒤, 위로 상승했다.
거대한 빛의 기둥이 되어, 하늘을 꿰뚫었다.
그리고 나서 20초 쯤 지났을까.
그 직시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눈부신 고열의 빛이 사라진 뒤엔, 아무 것도 남아 잇지 않았다. 관객석의 아래에 있는 링은 모두 융해되었고, 주변을 뒤덮고 있던 잔디는 모두 재가 되어 날아갔고, 흙은 까맣게 타들어 있었다. 마치, 원시의 지구를 떠올리게 만드는 황폐 그 자체였다.
당연히, 그런 정도의 폭풍을 지근거리에서 받은 '기계를 다루는 신'이 무사할 리는 없었다. 겉을 감싸고 있던 콘크리트는 전부 녹아내렸고, 드러난 철골 골조만이 남은 '기계를 다루는 신'는 그 자리에서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이거 원... 이건, 실패...군요."
불타 무너지는 잔해와 함께 지면에 낙하한 히라가는, 마음 속 깊이 자신의 생각의 얕음을 후회했다. 방금 그 힘. 링 위의 모든 곳을 뒤덮는 포효.
그걸 처음부터 사용했다면, 그 시점에서 시합은 끝이 나 있었을 것이다.
즉, 스텔라는 마음만 먹으면 이 시합을 일방적으로 끝낼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이유는 하나.
'폭룡의 포효'의 위력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그 사정거리는 직경 100미터 정도의 링 정도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 만안 돔은 물론, 주변의 유령도시 전체를 통째로 집어삼킬 위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능력은, '환상 형태'라고 해도 실내 시합에서 쓸 만한 능력이 아니다. '환상 형태'가 해를 끼치지 않는 건 어디까지나 인체에만 국한된 것이니, 스텔라도 제어할 수 없는 이 작열의 힘은 주변의 시설을 전부 파괴해버리기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이 '칠성검무제' 대회 자체가 소멸되어 버릴 수도 있는 힘.
만약 사용하게 될 때엔, 방금 스텔라가 말했듯 누군가의 보조가 필요하다. 스텔라의 힘을 링 내에만 국한될 수 있도록 억누르는, 주변의 보조가 말이다.
처음부터 제삼자의 협력을 구해야만 쓸 수 있는 기술.
그런 걸, 기사끼리의 명예로운 일대 일 대결에서 사용하는 건, 스텔라의 유의에 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이 기술을 쓰려 하지 않았다.
타인의 힘을 능동적으로 빌릴 필요가 없는 범위로 대결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어릿광대' 히라가 레이센은 자신의 손으로 스텔라의 유의를 건드렸다.
'꼭두각시 인형'을 이용해 그녀를 협박하여, 선을 넘어 버린 것이다. 그 순간, 스텔라에게 있어 이 시합은 결투가 아닌, 청소로 변해 버린 것이다.
'해선 안 될 짓이었군요. 그녀를.. 승부라는 울타리 속에서 꺼내 버리는 짓은.. 절대로 말이죠."
그것이 자신의 패인이라고, 히라가는 통감했다.
그리고, 그런 히라가에게 그늘이 드리워졌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이 걷혀 맑게 개인 여름날 하늘에 검게 오려붙여 놓은 듯, 위에서 히라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쓰레기를 보는, 혐오감이 깃든 눈으로.
그 이유에 대해, 히라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질려 버린 것이다.
히라가의 몸을 보고.
지면에 쓰러져 있는 히라가의 몸은...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었다.
철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기계인형.
그렇다. '어릿광대' 히라가 레이센이라는 인간은, 이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하고 있지 않았다. 하긴,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 거리낌없이 인질을 잡는 남자가, 정정당당히 승부를 해올 리가 없을 것이다. 손수 싸움터로 나설 리가 없다. 스텔라도 그 점은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를 내려다보는 눈엔 놀람이 아닌, 그저 역겹다는 빛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당신은 제 손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인형'이었나 보군요. 이 승부, 당신의 승.."
그런 입발린 칭찬을 히라가가 말하려던 순간, 스텔라는 주저없이 불타버린 히라가의 안면을 밟아 부숴버렸다.
나눌 말도 없고, 말을 들어 줄 의사도 없었다.
그저, 빈 캔을 밟아 찌그러뜨리듯, 난잡하게.
그 정도로, 스텔라에게 있어 히라가 레이센이라는 남자는 어찌 되든 상관없는 남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링에 서 있는 사람은 한 명이 되었고, 스텔라의 패널티 선언에서 시작된 B조 제 4시합은 막을 내렸다.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검을 내던진 스텔라 선수, 히라가 선수의 난타를 받아 거의 패배할 것이라 여겼던 순간! 그녀에게서 방출된 빛이 링 위를 말 그대로 불태워버렸습니다!! 링 위에 서 있는 건 스텔라 선수 한 명......! 주심조차 그 빛에 휘말려 실신해 버린 것 같습니다! 설마 이 정도의 힘을 숨겨 두고 있었다니..'
'아뇨, 숨기고 있었다, 라고 보긴 힘들군요. 그저 쓰고 싶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의미인가요?'
'지금 기술, '폭룡의 포효'을 보면, 마력의 순간 방출량을 제한된 양의 끝까지 긁어모아 온 힘을 다해 방출하는 것 뿐... 블레이저가 아닌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단순히 큰 소리를 내지르는 것뿐인 간단한 마술입니다.
그렇기에, 발동이 터무니없이 빠르고, 위력도 높지요. 하지만, 그런 만큼 제어가 불가능합니다. 주심이 저기에 휘말린 것이 바로 그걸 증명해주고 있고, 객석에 대기하고 있는 마도기사 분들이 재빨리 링 주변에 배리어를 치지 않았다면 객관석도.. 아니, 자칫 잘못했다간 이 만안 돔 그 자체가 날아가 버렸을 겁니다. 실로 위험한 기술이에요. 이런 관계없는 제삼자를 휘말리게 만들 가능성이 있는 노블 아츠를 사용하는 걸 꺼리는 건, 기사로서 당연한 상식입니다. 기사의 본분인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지킨다'라는 신의에도 반하게 되니까요.'
'그, 그렇군요.. 즉, 그런 기술을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위기였다, 란 말씀이신 거죠?'
'....아니요.. 아마 그것도 아닐 겁니다.'
고개를 저으며, 무로토는 검게 타들어 버린 대지에 서 있는 승자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엔, 두려움마저 깃들어있었다.
어째서일까.
그건, 그녀가.. 스텔라가 방금 쏘아 낸 '폭룡의 포효'에 담긴 진의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마, 지금 기술 하나로 측정을 했을 겁니다.'
'측정? 대체 무엇을 측정했단 말씀입니까?'
'이 대회를 운영하는 자들의 실력을, 말이죠. 자신이 온 힘을 다해 날뛸 때에도 붕괴해버리지 않는 대회인지 아닌지를. 그걸 지금 막 확인해 본 참이겠지요. 정말.... 엄청난 소녀입니다. 운영 측을 시험하려 들다니, 전 본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무로토의 생각은 진실이었다.
상대나 주변을 신경쓰며 무의식 중에 힘을 비축해 둔다. 스텔라는 과도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그런 버릇이 있었다. 그걸 눈치챈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가, 그녀를 배웅할 때 충고를 한 것이다.
이 대화에서, 한 번이라도 좋으니 이른 단계에서, 그런 버릇을 버려 보라고.
'이번 칠성검무제엔 쿠도 있어. 꼬맹이들이 자기 힘에 신경 쓰다 겁을 먹게 만들 정도로 허접한 방어는 펼치고 있지 않을 거라구.'
그 사이쿄의 말대로, 스텔라가 순간적이라곤 해도 온 힘을 다해 방출한 '폭룡의 포효'는, 아슬아슬하게나마 객석에 피해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스텔라가 '폭룡의 포효'를 사용한 순간, 수많은 블레이저가 행동에 나서, 몇 겹이나 되는 방어망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신속한 행동에 스텔라는, 자신의 '배려'가 불필요한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다소 과도한 힘을 쓴다 하더라도 잘 막아 줄 것이다. 역시 연맹 중에서도 내노라 할 강함을 자랑하는 일본의 기사들이다.
하지만, 하나 의외였던 것이..
"하지만 설마, 당신이 가장 먼저 움직일줄은 몰랐어, ........오우마."
몇 겹이나 되는 방어망.
그 중 가장 빠르게 전개되어 스텔라의 '폭룡의 포효'를 하늘로 튕겨낸 바람의 벽은, '바람의 검제' 쿠로가네 오우마에 의해 전개된 배리어였다.
대체 무슨 의도일까. 그건 스텔라도 알 수 없었지만, 별로 유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에게 도움을 받은 것.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능력이 완벽히 막힌 것.
그러니, 스텔라는 객관석 중 가장 높은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오우마를 한 번 쳐다본 뒤
'뭐, 어떤 형태건 결과는 결과니까 말야.'
바로 시선을 떼고, 붉은 머리카락을 화염처럼 나부끼며, 홀연히 흔적을 감춘 링을 떠났다.
"수고했네. 그런 힘을 받아내다니, 역시 우리 나라가 자랑하는 A급 기사야. 실로 훌륭해. 자네 같은 젊은이의 존재는 한없이 믿음직스럽지."
객관석 중 한 곳.
VIP 룸 최상층.
거기서, 시함을 관전하고 있던 일본 총리 대신이면서, 아카츠키 학원의 이사장이기도 한 츠키카게 바쿠가가, 동저고리 차림을 한 채 곁에 서 있는 소년, 쿠로가네 오우마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 박수는 물론, 그가 관중들을 스텔라의 불꽃에서 지켜낸 것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선수인 자네가 움직이지 않아도 신구지나 다른 블레이저들이 대처했을 거라 생각하네만. 힘을 보존해둘 때인 게 아닌가?"
그에 대해, 오우마는 츠키카게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로만 대답했다.
"만에 하나란 사태가 벌어지게 되면 곤란하니까 말이지. 쓸데 없이 자기 힘에 겁을 먹어 힘을 보존하게 만들면 재미없으니까."
오우마의 베여나간 듯한 날카로운 눈매는, 자기 아래에 있는 붉은 기사를 똑바로 직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그 때 스텔라도 오우마 쪽을 바라보게 되어, 시선이 교차했다.
날카로운, 칼날 끄트머리 같은 살기를 담은 시선.
그 뼈저린 패배를 맛보게 만들었던 오우마에 대한 공포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눈동자엔 자신과 기력에 가득한, 늠름한 패기가 빛나고 있었다. 그런 스텔라의 눈을 바라보며, 오우마는 그답잖게 웃음을 띠고 있었다.
".....두근거리는군."
이전에 만났을 때와는 느껴지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로부터 약 1주일. 충실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내게 이기기 위해서.'
그거면 됐다.
'홍련의 황녀'가 나아가야 할 곳은 그 정도의 길.
'워스트 원' 같은, 허접한 차원의 상대와 맞서고 있어 봐야 그 재능을 살릴 순 없다.
그래서야, 오우마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날 바라봐라. 날 향해 달려와라. 그겟이 널 위한 길이기도 할 터이니..'
이렇게 스텔라의 제안에서 시작된 사대 일 B조 제 4시합은, 아카츠키 학원 세 명을 팀으로 짠 '얼음의 냉소'를 무찌른 스텔라의 승리로 결착이 났다.
주심까지 스텔라의 그 압도적인 힘에 휘말려, 기절해버린 탓에 승자의 이름이 불려지진 않았지만, 혼자서, 새카맣게 불탄 대지를 밟으며 게이트를 향해 나아가는 스텔라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회장의 모든 사람이 납득했다.
이 싸움의 승자가 누군지를.
그리고, 확신했다.
B조를 제압하는 건, 저 '홍련의 황녀'일 것이라고.
당연하다. 스텔라는 자신 이외의 B조 멤버를 한꺼번에 상대하여, 남김없이 쓰러뜨렸으니까. 이 대결은 1회전 제 4시합에 지나지 않았지만, B조 제패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 확신은, 이윽고 현실이 되었다.
2회전 B조 제 2시합에서 스텔라와 싸우게 된 타타라 유이가 닥터 스톱, B조 제 1시합 중 한 명인 카자마츠리 린나가 자신의 의사로 기권을 선언했고, 유일하게 남은 히라가 레이센은 본인이 링 위에 오르지 않았다는 반칙에 의해 실격 처리를 당하게 되어,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은 대회에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겨우 1승만에 칠성검무제 준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