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검무제 2회전 · 개시
시합 수 조정을 위한 3회전 반복.
그 알림이 현장에 가져다 준 혼란은 실로 대단했다.
특히 2회 연속 진출에 해당하는 선수에겐 정말로 큰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통례로는, 칠성검무제는 하루 1회전이 원칙이었다. 그 전제가 갑자기 깨지고, 연속 전투를 강제당하게 된 것이니까.
일단 2회전은 9시부터. 그리고 3회전은 10시부터 열린다고 했으니, 사이에 휴식시간은 좀 있긴 했지만 이 정도의 시간은 간의 기별조차 오지 않는다고 봐도 될 것이다.
당연히 항의가 일었다.
선수 관계자는 물론, 이미 마지막 날 예약석을 구매해 둔 관객이나, 칠성검무제의 집객 효과에 편승해 장사를 하고 있던 본토의 상인회까지 항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운영의원회는 별다른 설명조차 하지 않은 채, 이 단축을 강행했다.
혼란과 함께 제 62회 칠성검무제 2회전이 개시되었다.
대체 운영위원회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 사정을 잇키가 알게 된 건, 마침 A조 2회전이 '바람의 검제' 쿠로가네 오우마와 '강철의 사나운 곰' 카가 렌지가 승자로 끝난 뒤, 하군 학원 신문부 · 쿠사카베 카가미와 합류한 때였다.
"앗! 저기 있다! 야호~ 얘들아~~"
"어머나, 카가미 아냐?"
"안녕하세요. 쿠사카베 양."
선수석에 있던 잇키 일행을 본 카가미는 모두의 앞까지 달려온 뒤 큰 소리로 말했다.
"아~ 모두들 1회전 돌파 축하해~! 설마 하군 학원 대표 모두가 1회전을 돌파하다니 말야! 기나긴 하군 역사 중에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야! 쾌거라구, 쾌거! 사실 축하한다는 말은 어제 하고 싶었는데 학원으로 보낼 원고 데이터를 정리하는 데에 필사적이어서, 정리가 다 되고 나니 해가 뜨고 있었지 뭐야~"
"그런 것치곤 엄청 기운차네."
아리스인이 반 정도 웃으며 지적하자, 카가미는 큰 가슴을 쭉 내밀며
"당연하지! 완전한 철야 정도 따위로 기운이 빠져서야 기자 일은 못 해! 거기에 '하군 학원 대표 모두가 1회전 돌파!' 라니, 진짜 최고로 기분좋은 기삿거리 아냐? 아~~ 정말 즐겁고 기뻐서 피로 따윈 전혀 느껴지질 않아! 학원 잔류 조도 모두 밤새 승리 축하 파티 하느라 모두 다 뻗어 버렸다고 오레키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어!"
"옛날 같았으면 '교정 앞에서 뭐 하는 거니' 하고 한 소리 들을 법한 이야기네."
"아하하. 정말 그러게 말야. 그래도 좋잖아? 어젠 우리만이 아니고 모두 다 즐거워서 불타 올랐으니 말야! 특히 스텔라 덕분에! 알고 있어? 그 사대 일 시합의 순간 시청률! 82%래! KOK A급 리그 결승 리그에서도 이 정도의 숫자는 나오지 않았다구! 완전 깜짝 놀랬어! 홍백가합전 따윈 상대도 안 됐다구! ......어라?"
거기까지 말한 뒤, 카가미의 흘러가는 듯한 머신건 토크가 끊겼다.
왜냐면, 화제에 올랐던 스텔라가
"........아아~ 우으...."
등받이 앞에서 등을 둥글게 말고,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스텔라가 별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왜 그래? 혹시 '그 날'이야?"
이런 품위 없는 말을 한 카가미의 머리를, 아리스인이 탁, 하고 때렸다. 그리고 스텔라가 움츠러든 이유를 설명했다.
"어쩐지 말이지, 자기가 B조의 모두를 한 시합만에 격파해 버린 탓에, 잇키가 연속으로 대결을 해야 하는 것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카가미는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 고렇구만. ...그렇네. 선배의 능력은 연전에 있어서 상당히 불리한 점이 있으니까..."
'일도수라'나 '일도나찰' 같은, 잇키의 노블 아츠는 모두 다 한 번 발동하면 마력이 남김없이 소진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고 다시금 노블 아츠를 발동시킬 정도로 마력이 충전되려면 약 하루의 휴식이 필요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전략의 폭이 좁혀지는 상태다. 그것도 아주 크게.
"난 별로 신경쓸 일은 아니라고 말해 줬지만 말야. 연속으로 싸우는 건 나만이 아니니까. 애초에 이런 이례적인 판단을 예측하라고 하는 게 더 무리일 거고."
잇키가 말한 대로, 보통 이런 판단은 있을 수 없었다.
시합 회장 계약도, 경비 스케줄 편성도 이미 결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일수를 압축한 것이다. 이례라고 하기보다 이상할 정도였다.
학생의 시합이라곤 해도, 칠성검무제는 엄청난 인기를 가진 대회이다. 이번 운영위원회의 결정은, 이 칠성검무제를 둘러싼 수많은 사업 기획을 휴짓조각으로 만든 행위가 될 것이다.
보통, 시합 수가 부족한 정도로 이런 막무가내적인 판단을 내릴 리가 없다. 그러니 이걸 스텔라 탓으로 돌리는 건 과혹한 것이다. 오히려 잇키로선 그런 것보다 어젯밤 사라의 꼬드김에 넘어가 자신을 배신한 것에 대한 반성을 해 줬으면 하는 바램이었지만...
"....쿠사카베 양. 매스컴 관계에 정보망을 갖고 있는 당신이라면,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운영위원회가 이런 판단을 내린 이유를 말이죠."
"음~~ .....뭐.. 글쎄? 감을 잡은 게 없진 않은데 말이지.."
라고 애매한 말을 하며, 시즈쿠의 물음에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는 카가미. 그리고 살짝 곁눈질로, 아까부터 눅눅한 공기를 생산해내는 가습기로 변한 스텔라를 바라보며
"하지만 이걸 말하는 건 스텔라에게 가차없는 마지막 일격을 날리는 거니까 말하기가 좀 거북한데 말야.."
"에, 여.. 역시 내 탓이야? 내가 잘못한 거야!?"
확! 하고 뛰어오르듯 일어난 뒤, 스텔라는 새파란 얼굴을 한 채 카가미에게 다가왔다. 그에 대해 카가미는 고개를 크게 가로저어 부정했다.
"아니아니아니! 그렇진 않다구!? 스텔라는 전혀 잘못 없어! 이건 모두 어른의 세계의.. 말하자면 돈이 얽힌 문제니까. 단지.. 뭐, 거기에 '요소'로서 스텔라의 존재가 얽혀 있다는 거지."
"카가미 씨. 여기서 이야기를 끊으면 너무도 신경이 쓰일 것 같으니까.. 확실하게 얘기를 해 주지 않겠어?"
"....이거 남한테 말하면 안 된다?"
잇키의 요구에, 카가미는 한 마디 덧붙인 뒤 입을 열었다.
"칠성검무제는 학생이 출전하는 대회이고, 따라서 여기선 장사를 하면 안 되는 규칙이 있긴 하지만, 블레이저끼리의 싸움이란 결국 돈이 들기 마련이란 말이지. 회장 대여 비용. 손상된 시설 수리 비용. 교통 정비나 위원회 인건비 등등... 큰 돈이 없으면 전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부드럽게 진행이 안 되는 거야. 객석 수입이나 광고 게재료만으론 새발의 피라고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부족하다고 해. 그러니 칠성검무제의 흥행을 맡고 있는 '기사 연맹 일본 지부'는, 상영권을 경매로 내고 있어. 그리고 그 수입으로 대회에 드는 모든 경비를 내고 있지. 사실이라면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의 싸움이니까, 방송권 따위가 있어선 안 되겠지만, '연맹 본부'가 일본 정부의 기사 교육 개입을 꺼려한 탓에,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아선 안 된다'는 결정을 내린 탓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개최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린 거야. 그러니 이건 어쩔 수 없다고 해야 겠지. 하지만, 이런 관계를 만들어낸 탓에 어찌해도 이 대회의 흥행주보다도 높은 사람이 생겨나기 마련이었지."
"자금 출자자, 말이지?"
"바로 그거에요. 이번 운영 위원회가 일정을 강행적으로 압축시킨 건, 그 출자자에게서 열화와도 같은 클레임이 들어왔기 때문이야. 'B조 2회전과 3회전이 없어지다니, 난 그런 말 듣지 못했어! 계약 위반이다.' 라고 말야."
".....완전 억지네. 사람끼리 하는 시합이니 기권으로 시합 수가 줄어드는 일도 흔할 텐데 말야."
어이없어 하는 아리스인을 보고, 카가미도 수긍했다.
"그렇지. 그러니 평소라면 운영위원회도, 그들의 뒤에 있는 '일본 지부'도, 이런 클레임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었고, 애초에 이런 상식도 없는 클레임은 출자자 쪽에서도 나오지 않았어. 하지만, 올해는 좀 사정이 달라."
"사정이 다르다?"
"응. .....방금 방송권을 경매에 낸다고 했었지? 하지만 실제로는... 이거 절대로 남한테 말하면 안 될 이야기인데, 칠성검무제 방송권을 매년 순번으로 돌리자고, 키 스테이션끼리 밀약을 맺고 있어. '연맹 본부'는 그리 말하고 있지만, 한 나라의 커다란 이벤트니까 평등하게 방송을 하자는 입장으로 말야. 그러니 낙찰 가격도 매년 거의 차이가 없어. 대체로 요 10년간 50억 엔을 지키고 있지. 이게 매년 칠성검무제 운영 자금으로써 쓰이고 있는 거야. .........하지만, 올해는 달라. 올해 칠성검무제의 운영 자금... 즉, 경매로 모인 돈은..... 1천억 엔을 넘었어."
"1... 1천억 엔!?!?"
"뭐, 뭐야.. 그게? 평소의 20배나 되잖아요!? 왜 그렇게.."
너무나도 상식을 넘어선 그 금액의 증가에, 아리스인과 시즈쿠는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하지만 잇키는 바로 그 이상한 인플레이션의 이유를 알아챘다.
"....아아, 그렇군. 그래서 스텔라가 얽혀 있다는 거구나."
"눈치가 빠르네. 그런 거에요, 선배."
"에.. 에? 무, 무슨 말이야!? 왜 내가 그런 돈 이야기에 얽혀 있는 건데!?"
대화에 따라오지 못해 당혹해하는 스텔라.
그런 그녀를 향해, 카가미가 설명했다.
"그야 스텔라가 세계적인 대 스타니까 그렇지. 한 나라의 황녀이고, 기사이기도 하지. 그것만으로도 유명해질 요소는 충분해. 그런데 스텔라에겐 세계에서 가장 큰 마력량을 보유하고 있는 A급 기사라는 간판까지 달려 있어. 거기다 그런 흔한 국민적 아이돌이 흔해 보일 정도의 발군의 미모를 자랑한다면, 스앙코, 다이스시, 츠이소, 파렌챤의 4배 역이 갖춰질 정도인 거야! 스텔라가 있고 없고에 따라 칠성검무제의 흥행의 본질이 바뀌어버려. 지금까지 열렸던 칠성검무제도 확실히 인기 높은 이벤트였지만, 그래도 그건 일본 국내에 한한 이야기였어.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주목이 높은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이 출전하니, 이제 칠성검무제는 일본 한 나라의 축제가 아니게 되어 버린 거야. 연맹 산하는 물론 그렇지 않은 나라까지 참가한 이벤트가 되었어. 당연히 해외 방송국도 사정 보지 않고 큰 돈을 가지고 나와 방송권을 거머쥐려고 했지."
하지만, 그런 큰 돈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 출자자들도 마음먹고 회수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매년 협정에 의해 대충대충 돈을 내던 때와는 사정이 달랐다. 질 수 없는 대승부가 열린 것이다.
"....그런 큰 승부에서, 가장 중요한 스텔라의 시합이 두 개나 사라져버렸지. 스텔라가 등장하지 않는 칠성검무제가 이틀이나 열리는 거야. 이건 도저히 출자자 측의 입장에서는 간과할 수 없는 사태겠지. 그러니 불만을 표했어. 아니, 클레임이라는 뜨뜻미지근한 게 아니야. 금액이 금액이니까. 절규라고 해도 좋을 수준이었어. 그리고 운영위원회로서도 금액이 금액인 만큼 일방적인 강공책은 취할 수 없게 돼 버렸지."
그런 일이 벌어지면, 농담이 아닌 진짜 사망자가 나올 것이다.
그것도, 한 둘로는 끝나지 않는다.
"그러니 어젯밤부터 오늘 날이 샐 때까지, 그 부분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기탄 없는 논쟁이 벌어졌고, 최종적으로 운영위원회 측은 방송권 낙찰 금액의 5분의 1.. 즉, 1일 분의 금액을 각 국 방송국에 반환하고, 스케줄 그 자체를 하루 분 압축하는 것으로 스텔라의 등장 없는 날을 하루로 줄일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한 거야. 그리고 하루가 줄어든 만큼 원래 결승전이 열려야 했을 날은, 이전 A급 리그 소속인 마도기사들의 전시 대회가 개최되는 방향으로 조정이 이루어졌어. 아마 오늘 내로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가며 스텔라에게 그 전시 대회에 참가해 달라는 의뢰가 오게 될 거야."
"....난 몰랐어. 내가 억지를 부린 탓에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스텔라는 자신의 행동이 불러일으킨 대혼란의 실체를 듣고,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지만, 그리 말한 스텔라에게
"그렇지 않아!"
카가미가 평소와는 다른 강한 말투로 말했다.
"카, 카가미?"
"'어릿광대'의 반칙 실격은 스텔라의 탓이 아니고, 다른 아카츠키에 소속된 두 사람의 기권도 개개인의 판단에 의한 거니까 스텔라가 부담을 가질 일은 아무것도 없다구! 그 변칙 시합은 시합에 참가한 전원과 운영위원회의 승낙을 받아 정식적으로 열린 시합이니까. 거기에... 나도, 그리고 학교의 모두들도.. 엄청 기뻤으니까."
"기뻤다고...?"
"그게.. 스텔라는.. 우리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그 녀석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런 부담되는 시합에 나서 준 거잖아? 스텔라에게도 이 대회는 중요할 텐데 우리 같은.. 약하고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우리들을 위해서.. 혼자서 모든 위험을 짊어지고 싸워 준 거잖아? 우리들 있지? 그 녀석들이 스텔라한테 흠씬 두들겨 맞는 장면을 보고 엄~~~~~~~청나게 속이 시원했다구!"
카가미는 그리 말한 뒤 아무 주저 없이 스텔라를 껴안았다.
"고마워! 나 있지! 스텔라가 더욱 좋아졌어!"
"카가미... 응.. 나도 카가미가 좋아.."
카가미의 포옹에 스텔라도 응했다.
그 표정은 밝아져 있어서, 그녀가 불필요한 책임감에서 해방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행이다.
둘을 바라보며, 잇키는 마음 깊이 그리 생각했다.
애초에 학생이 스폰서 측을 배려할 필요 따윈 없을 테니까. 그런 부분을 빼놓지 않고 알려 주는 카가미는, 실로 대단하다.
정말 좋은 친구를 두었다.
'어쨌든, 카가미 씨 덕에 스텔라도 이제 괜찮은 것 같네.'
그렇다면 남은 건.. 이 일련의 혼란은, 과연 그런 과정만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봐도 좋은 것일까.
'"그러니까 말야... 응? 좀 더... 상처를 입어 줘... 더욱 피를 흘려 줘. 더더욱 자신의 모든것을 쏟아내 줘! 난 그런 잇키 군을 목이 쉴 때까지 응원해 줄 테니까.'
그 말을 떠올리고, 오싹한 공포심이 전신을 꿰뚫었다. 잇키는 알고 있었다. 이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자를.
"....오라버니, 이건 혹시.."
그 자리에 있던 시즈쿠도 같은 생각을 한 듯 했다.
경직된 표정으로 잇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며, 잇키는 수긍으로 답했다.
"응. 나도 그리 생각했어. 어제의 그라면 내가 불리한 상황을 바랄 것 같으니까."
"응? 선배? 무슨 말이에요? 꽤 의미심장한 말로 들리는데."
".....사실 어제 있던 일인데.."
"바라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능력이라니.. 뭐야, 그게? 완전 사기잖아...!"
"하지만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면 이 꺼림칙한 전적도 납득이 가네. 그렇구만.."
어제 겪은 아마네와의 일련의 대화.
그리고, '백의의 기사' 야쿠시 키리코의 신변에 일어난 불행.
그 모든 전말을 듣고, 스텔라와 카가미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기, 카가미. 이 사실을 운영위원회에 통보해서 아마네를 실격시킬 순 없는 거야? 시합 이외의 상황에서 능력을 쓴다니, 완전 금지사항을 어긴 거잖아."
"음.. 그건 어려울 것 같아. 아니, 무리겠지."
"어째서?"
"증거가 없잖아. 이번에 벌어진 돈에 관련된 이런저런 혼란과 운영위원회의 강행 결정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이례적인 사건이긴 하지만 일단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니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잖아. 거기에 그의 능력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남는 건 불가능하지. 설령 정말로 시노미야 군이 능력을 이용해 이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말야."
"애초에, 아마네 군이 정말로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면 그를 실격시키려는 행동은 모두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될 거야."
덧붙인 잇키의 말을 듣고, 스텔라는 마치 발을 동동 구를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앓는 소리를 냈다.
"우우우~! 진~~짜 열받아!! 그 녀석.. 잇키의 팬이라고 말한 주제에 잇키의 방해만 하고 있잖아...! 마침 시합도 없어졌으니 지금부터 몰래 기습이라도 해 버릴까!"
"그런 짓을 했다간 아마 당신이 실격당하게 될 걸요."
"윽..."
시즈쿠의 냉정한 말에 일침을 당해, 끙끙 앓는 스텔라.
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그런 짓을 했다간 스텔라가 실격당하게 될 것이다.
"뭐, 스텔라 양과 오라버니가 그에 대해 이런저런 신경을 쓰실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스텔라에게 한 방 먹인 시즈쿠는, 뒤이어 이런 말을 했다.
"어찌 됐건, 그는 오늘 오후부터 열릴 3회전에서 제가 해치워 버릴 거니까요."
그건, 확신이 담긴 목소리였다.
"괜찮은 거야, 시즈쿠? 뭐든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능력이라는데, 그런 거대한 스케일을 가진 능력을 싸움에서 어떻게 써 올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대책을 짰다는 거야? 거기에 방금 말한 '백의의 기사' 때처럼, 어떠한 형태로 시합에 출전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질지도.."
"어머나? 스텔라 양, 혹시 제 걱정을 해 주시는 건가요? 의외네요. 혹시 이 귀여운 절 좋아하게 된 건가요?"
그 노골적인 부채질에, 스텔라는 얼굴이 확 붉어졌다.
물론, 화가 난 것이다.
"뭣! 바,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그럴 리가 없잖아! 누가 너 같은 시누이 걱정 따윌 할까보냐! 그저 꽤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를 치고 있으니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조금 신경이 쓰인 것뿐이야!"
"근거라면 물론 있어요. 근거가 없으면 그런 말은 하지 않으니까요."
"엣!? 진짜로!?"
"네. 전 이미 '과잉한 여신의 총애'의 공략법을 찾아냈어요."
잇키는 사전에 시즈쿠가 아마네 공략법을 찾아냈다는 것을 들었기에 놀라지 않았지만, 이 말에 스텔라는 크게 경악한 표정을 보이며 바로 달려들었다.
"그, 그건 어떤.."
"안 가르쳐 줄 거에요."
그리고 완전히 달라붙은 스텔라를 향해, 시즈쿠는 이보다 더할 수 없을 정도의 짓궂은 목소리로 말하며 혀를 메롱, 하고 내밀었다.
그 순간, 스텔라의 머리카락이 곤두서며 후광이 뿜어져나왔다.
"잇키! 네 동생, 진짜 성격 나빠! 대체 어떻게 교육을 시키고 있는 거야!?"
"하하하.. 옛날엔 솔직하고 착한 애였는데 말야."
"그렇지 않아요, 오라버니. 시즈쿠가 착한 아이가 되는 건 옛날부터 오라버니 와 단 둘이 있을 때뿐인 걸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사실을 듣고, 잇키의 표정이 살짝 처졌다.
그리고, 마침 그 때
'C조 선수 분들에게 알려드립니다. 지금부터 10분 휴식과 링 청소 뒤, C조 2회전 시합을 개시하겠습니다. C조 선수 분들은 대기실로 집합하여 주십시오. 다시금 알려드립니다.'
그런 안내 방송이 회장에 울려퍼졌다. C조라고 한다면, 잇키가 등록되어 있는 조였다.
"그렇군. B조 시합이 없으니 A조 시합 뒤엔 C조 시합이 열리는 거구나. 그럼 슬슬 대기실로 가 있는 편이 좋겠네."
그리 말하고, 잇키는 그룹에게서 한 발짝을 뗐다.
그런 그를 향해, 친구들의 응원이 들려 왔다.
"오라버니. 무운을 빌겠습니다."
"오늘은 연전을 겪어야 하니까 힘 배분에 신경 써야 해?"
"힘 내요! 선배! 좋은 사진 기대하고 있을 게요!"
그 응원에 미소로 답한 뒤, 마지막으로 스텔라를 바라봤다. 스텔라는.. 역시 시합 시간이 되자 미안한 마음이 되살아났는지, 눈을 내리깔고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잇키, 그..."
과연 잇키의 부담이 되어 버린 연전의 원인 중 한 자리를 꿰차고 있는 자신이, 응원의 말 따위를 해도 괜찮은 걸까. 스텔라는 그런 갈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잇키는 그걸 알아채고, 먼저 이런 말을 꺼냈다.
"서로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찾아왔네."
"에, 행..운...?"
의외로운 그 말에, 스텔라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의 말이 전혀 이해되고 있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잇키에게 있어 이 돌발상황은 틀림없는 행운이었다.
어째서냐면..
"기다리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염원하던 결승전이, 하루나 줄어들었잖아. 이게 행운이 아니면 뭐겠어? 난 아까부터 스텔라의 얼굴을 볼 때마다 흥분돼서 참을 수가 없다구. 너도.. 그렇지 않아?"
"......"
고요히 불타오르는 푸른 불꽃 같은 투지를 눈에 담은 채, 고해져 오는 잇키의 말. 그 말을 듣고 스텔라는 한 번, 비색의 눈동자를 부릅뜬 뒤..
"그래! 물론이지!"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은 뒤, 그리 답했다. 비색의 눈동자는 더 이상 조금도 내리깔려 있지 않았다. 똑바로, 잇키를 직시하며,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컨디션을 되찾은 스텔라는 주먹을 쥔 뒤 잇키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지면 용서 안 할 거야!"
"응. 알고 있어."
그렇게 잇키는 앞으로 나아갔다.
칠성검무제, 2회전 무대로.
칠성검무제의 회장인 만안 돔엔, 적색과 청색 게이트가 서로 마주보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칠성검무제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제각각 그 게이트를 할당받고 게이트 안에 있는 대기실에서 대기한 채 입장 안내를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어느 쪽 게이트를 할당받게 될지는, 당일 아침에 위원회에게서 메일로 통지를 받게 된다.
잇키의 경우, 어제는 청색. 오늘은 적색이었다.
선수의 입장으론 매번 대기실이 바뀌는 건 다소 불편했지만, 시합 형식이 토너먼트 제인 이상 매번 방이 바뀌거나 같이 대기하게 되는 사람이 바뀌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 즉.....
'이런 일도 벌어지는 구나~......'
잇키는 살풍경한 대기실에 설치된 파이프 의자에 앉은 채, 쭈뼛거리며 조심스레 같은 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을 살펴봤다.
약 4평 정도 되는, 콘크리트만으로 만들어진 변변찮은 대기실 중심. 파이프 의자에 털썩 앉아 다리를 꼬고 있는, 단추를 풀어헤친 가슴팍에 해골 문신이 새겨진 소년... 돈로 학원 3학년 '검사 살해자' 쿠라시키 쿠라우도가 있었다. 예전에 아야츠지 아야세라는 소녀를 중심으로 벌어진 소동으로 인해 대결을 벌였고, 그에게서 이긴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2회전은 C조 1회전에서 8명 중 살아 남은 사람만이 출전하기 때문에, 한 방에 대기하는 선수가 두 선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시합을 앞에 두고 살기가 느껴지는 인연을 가진 상대와 단 둘만의 상황.
당연히 대화 같은 게 성립될 여지 따윈 없었다.
.....공기가 납처럼 무거웠다.
거기에..
'어쩐지.. 계속 이쪽을 노려보고 있어..'
쿠라우도는 잇키가 이 방에 들어선 때부터 쭉, 미간에 주름을 만든 채 잇키를 노려보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 이마에 분노의 핏대가 만들어진 듯이 보였다.
'고, 공격해 온다거나 그러진 않겠지?'
쿠라우도의 난폭함, 그리고 쿠라우도의 호감도가 확실하게 내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잇키는, 속으로 계속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진정되지 않는 시간을 체감적으로 1시간 정도 보낸 뒤
'대기실에 있는 각 선수에게 알려드립니다.
시간이 되었으니, 지금부터 C조 2회전 제 1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사라 블러드릴리 선수, 쿠라시키 쿠라우도 선수. 양 선수는 입장 게이트를 통해 링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그렇게, 입장을 재촉하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드디어 이 굶은 사자와 같은 우리 안에 갇힌 듯한 긴장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리 생각한 뒤, 잇키는 무심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하아아..."
동시에, 쿠라우도도 또한 크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드디어, 이 공간에서 해방되는 건가."
진심으로 안심한 듯한 소리를 내는 쿠라우도.
혹시, 그도 자신과 같은 생각에 주저하고 있던 게 아닐까..
그리 생각한 순간
"네 녀석의 면상을 본 순간부터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고."
'히엑~..'
실로 쿠라우도다운 이유에, 잇키의 혈색이 악화되었다.
"....참아 줘서 고마워."
"그야 당연히 참겠지. 안 참겠어? 이런 데에서 실격 같은 걸 당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겠지. ...앞으로 1승. 1승밖에 안 남았어. 1승만 한다면 네 녀석과 맞붙을 수 있지. 네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게 될 테니까...!"
"꽤나 자신만만하네. 하지만 지금은 이제부터 싸울 상대를 생각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데. 그녀.. 사라 블러드릴리는 아카츠키.. 즉 '해방군'의 테러리스트야. 보통 마음가짐으론..."
"뭔 상관인데."
시원하게, 잘라내는 듯한 말투로 쿠라우도가 말했다.
"그 여자가 뭐하는 년인지, 그딴 건 어떻든 상관없어. 난 쿠로가네, 네 녀석과의 시합 이외엔 관심조차 없다고."
"......!"
그 순간, 쿠라우도의 온몸에서, 피부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투기와 마력이 일었다.
"네 녀석과 싸우기 위해 여기까지 왔어. 네 녀석에게 빚을 갚기 위해 요 2개월간, 계속해서 수련해 왔어. 네 녀석에게 이기기 위해, 손에 넣은 힘이다..!"
온몸에서 일던 투기와 마력은, 쿠라우도의 말이 격해짐에 따라 그 채도가 늘어난 뒤, 그의 오른손에 모여 갔다. 이윽고 싸움의 의사를 담은 마력은, 결합되어 투쟁을 위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마치, 거대한 뱀의 뼈를 이어 붙인 듯한, 백골의 검.. 디바이스 '오로치마루'로.
"뭣....!?"
순간, 그의 디바이스를 본 잇키의 눈에, 말로 표현 못 할 정도의 경악이 나타났다. 그 이유는, 쿠라우도의 왼손에 있었다.
놀랍게도, 왼손과 오른손에 같은 형태의 디바이스가 쥐여져 있던 것이다.
"이, 이도류.....!"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확실히 복수의 디바이스를 전개하는 블레이저도 존재하긴 했지만, 그건 처음부터 그런 타입으로 정해진 디바이스이기 때문이었다.
'검사 살해자' 쿠라시키 쿠라우도의 디바이스 '오로치마루'는 일도류.
아리스인처럼, 복수 전개가 가능한 타입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이전에 싸웠을 때부터 이도류로 나왔을 것이다. 왜냐면 '검사 살해자'가 가진 '신속반사'는, 일도류보다 이도류로 싸우는 편이 더욱 특성을 살릴 수 있을 테니까.
거기다, 다시금 잘 보니 디바이스 형태 그 자체도 변화해 있었다. 이전에 쿠라우도의 '오로치마루'는, 검신 한 쪽에 톱날이 달린 손도끼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오로치마루'는, 마치 서양 형식의 검처럼 양쪽에 날이 달려 있었다.
....디바이스 그 자체가 바뀌었다.
그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째서냐면, 블레이저의 디바이스란 자기 자신의 혼의 형태이니까. 그 디바이스를 사용하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미의식, 인격이나 삶 그 자체의 결정이라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 걸, 변화시킬 수 있을 리가 없다. 시킬 방법 따윈 없을 것이다.
그렇다. 그건... 지금까지의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버릴 정도의, 지금까지의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 정도의, 강한 의지와 상상도 못 할 단련을 쌓지 않고서야...!
....즉, 그는 말 그대로 그런 단련을 해 온 것이다.
잇키에게 이기기 위해서.
잇키를 따라잡기 위해서.
"쿠로가네. 죽는 한이 있어도 이겨서 올라와라. 먼저 올라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리고, 네 녀석이 올라온 뒤 다시 한번 빠져 보자고. 그 최고로 즐거웠던 시합에 말이다..!"
입가가 자연스레 말려 올라갔다.
가슴이 뜨겁게 고동쳤다.
기뻤다.
자신에게 이기기 위해, 한 남자가 그렇게까지 자신을 단련해 주었다는 사실이.
그렇다면..
"....아아, 좋지. 하자. .....죽는 한이 있어도."
그 도전을 거절할 이유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하핫!"
잇키의 답을 들은 쿠라우도는 만족스레 웃은 뒤, 발을 돌렸다. 그리고, 입장 게이트로 통하는 문을 박차고 대기실을 나섰다. 멀어져가는 그 뒷모습에서 엿보이는 검기는, 예전의 불량배 시절 때의 그가 아니었다.
잘 연마된, 일류의 검객의 기운이었다.
그걸 확인하고, 잇키는 참을 수 없이 몸이 떨렸다.
"정말로.. 칠성검무제는 최고야."
그 누구도, 간단히 올라올 수 없는 곳.
그 누구도, 대충 해서 올라올 수 없는 곳.
아주 약간의 방심조차 용납되지 않는 극한의 싸움 외엔, 이 곳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모든 싸움에 전력을 다해 상대하도록 하자.
잇키는, 멀어져가는 쿠라우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리 결의했다.
'에..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지금 막 C조 2회전 제 1시합, 선수 입장이 시작되겠습니다!'
그 안내방송에, 회장에서 환성이 터져나왔다. 터질 듯한 갈채가 쏟아지는 도중, 먼저 나온 건 쿠라우도 쪽이었다.
'먼저 적색 게이트에서 모습을 보인 건, 돈로 학원 3학년 · 쿠라시키 쿠라우도 선수입니다! 일반 사람의 영역을 벗어난 천성 '신속반사'에 의한 철벽의 방어력! 자유자재로 수축하며, 마치 뱀처럼 궤도를 바꾸는 디바이스 '오로치마루'에 의한 공간 제압력! 한 쌍의 창과 방패로 수많은 승리를 쌓아 올린 그를, 사람들은 '검사 살해자'라고 부른다! 피에 굶주린 늑대의 송곳니는 오늘도 적을 찢어발길 수 있을 것인가!!'
수많은 관중의 갈채 속에서, 힘찬 발걸음으로 인공 잔디가 깔린 링 외곽을 걸어온 뒤, 링 위로 올라서는 쿠라우도. 그 모습에.. 관객석에 앉아 있던 스텔라가 갑자기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왜 그러세요, 스텔라 양?"
"....저 녀석.... 이도류였었나?"
"어라? 확실히 이상하네? 그리고 디바이스의 형태도 내가 알고 있는 정보와는 다른 것 같아."
쿠라우도의 손에 들린 한 쌍의 백골검.
하지만, 스텔라의 기억과 지금 그의 디바이스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그건, 카가미도 같았다.
그러니 둘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기분 탓 아닌가요? 디바이스의 형태가 바뀌다니, 들어 본 적도 없어요."
"어떠한 사고로 인해 기억을 잃어 기사의 디바이스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긴 한데. 뭐, 흔히 벌어지는 일은 아니지. 두 사람 다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니면 원래 이도류였지만 쓰지 않은 것뿐이라던가.."
아야츠지 아야세의 사건에 관계되지 않았던 아리스인과 시즈쿠는 그렇게 말했다.
그랬다. 보통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혼의 형태를, 자기 자신의 확고한 의지로 바꾸어낸다니. 하지만, 쿠라우도는 그걸 해냈다.
단 한 가지, 잇키에게 이긴다는 목적만을 위해서.
하지만, 그런 걸, 스텔라 일행이 알아챌 리는 없었고
"으음? 그럴려나? 그렇게 뭔가를 숨기고 싸운 듯한 느낌은 안 들었는데 말야."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스텔라는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았다. 딱히 지금 필요한 정보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링 위에 다른 한 블레이저가 모습을 나타냈다. 붓으로 칠한 듯한 짙은 다크서클과, 손질 하나 안 된 푸석푸석한 금발.
그건......
'이어서! 청색 게이트에서 입장한 선수는... 아카츠키 학원 1학년 · 사라 블러드릴리 선수!! 아, 여전히 눈 둘 데가 없는 옷차림을 하고 있군요! 조금이라도 격한 움직임을 취했다간 삐져나와 버릴 것 같습니다! 오늘 방송 코드는 괜찮은 걸까요!? 이건 일부 시청자들에겐 놓칠 수 없는 시합이 될 것 같군요!"
"뭐야, 저 중계자. 대체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거야?"
저속한 실황에 어이없어하는 목소리로 말하는 스텔라. 그에 대해 "그래도 있지~" 하고 덧붙이듯 설명했다.
"인터넷 게시판 같은 곳에선 사라의 인기는 의외로 높다구? 저 엄청나게 도발적인 옷차림 때문에 색기 면으로 인기가 높은 면도 있지만, 꾸미면 예쁠 거란 면에서도 인기가 높아."
"......어쩐지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세상의 이야기네."
그런 한심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틈에, 링에 올라선 둘이 소정의 위치에 섰고
'그럼 지금부터, 제 62회 칠성검무제 2회전, C조 제 1시합! 쿠라우도 쿠라시키 선수 대 사라 블러드릴리 선수의 시합을 개시하겠습니다!
LET's GO AHEAD!!!!!!!!!"
활기찬 시합 개시 신호가 떨어졌다.
"하핫!!"
시합 개시 신호가 떨어짐과 동시에, 먼저 움직인 건 쿠라우도 쪽이었다. 그는 시합이 개시되자 마자 상대와 20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쌍검 '오로치마루'를 휘두르며
"'사골쌍인'.....!"
그 도신을 눈 깜빡할 새조차 용납하지 않을 속도로 뻗어내, 20미터의 간격을 순식간에 죽여버렸다. 그렇다. 그의 디바이스 '오로치마루'는 자유자재로 신축이 가능하다. 이 직경 100미터의 링 모든 곳이, 그의 사정거리 내인 것이다.
한 쌍의 '오로치마루'는 그 자체가 의사를 갖고 있는 것처럼 움직여, 사라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톱날이 달린 도신을 교차시켜, 사람의 목을 치는 형태로.
하지만, 여기서 사라도 행동을 개시했다.
"'데미우르고스의 붓'"
거기서 현현한 건, 물감이 놓여 있는 파레트와 색소에 찌든 듯한 너덜너덜한 붓이었다. 그건, '피투성이 다빈치' 사라 블러드릴리의 디바이스.
'데미우르고스의 붓' 이었다.
그리고 사라는 파레트에 놓여 있는 엷은 남색 물감을 붓에 묻힌 뒤
"'색채마술' 수면의 아쿠아블루!"
사라의 발치에 있는 링이, 살짝 녹색이 곁든 청색으로 칠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첨벙, 하는 소리를 내며 사라의 몸이 바다빛 색채 속으로 잠겼다.
"윽...!?"
1초 전까지 사라의 목에 있던 공간을 헛되이 가르는 백골의 칼날. 갑작스러운 적의 소실에 의해, 쿠라우도는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그것도 한 순간.
그는 바로 뒤, 사각에서 '첨벙' 하고 무언가가 물 속에서 튀어나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사람은 물론, 방금 바닷빛 색채 속으로 사라진 사라 블러드릴리였다. 그녀는 '색채마술'응 이용해 링 속을 헤엄쳐, 쿠라우도의 사각을 점거한 것이다.
"'색채마술'... 혁염의 파이어 레드."
비색의 물감을 붓에 묻힌 뒤, 쿠라우도를 향해 팔을 휘둘러 뿌렸다. 붓으로 떠 뿌렸을 뿐인데도, 마치 페인트 통을 들어 뿌린 것처럼 보이는 양의 색채가 쿠라우도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핫!"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초인적인 반사신경 '신속반사'를 가지고 있는 쿠라우도에게, 기습 따윈 통하지 않았다. 뒤를 찔린다 하더라도, 허를 찔린다 하더라도, 쿠라우도의 회피 행동은 충분에 넘칠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뒤로 뛰어, 쏟아지는 물감을 피했다. 날아간 물감은 링에 쏟아졌다. 그리고 쏟아진 물감은 링에 닿음과 동시에 마치 마그마처럼 부글거리며 불을 내뿜었고, 링을 용해시켰다.
'이.. 이건 굉장하군요..! 시합이 개시되자마자 위험한 기술 응수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속공으로 블러드릴리 선수의 목을 치러 나선 쿠라시키 선수에게도, 그에 1회전에서 상대를 불덩어리로 만들어버린 '색채마술'로 응수한 블러드릴리 선수에게도 아무 주저가 없군요. 이건.. 주심이 끼어들 타이밍이 어려워지는 시합이 될 것 같아요.'
"저기, 카가미."
갑자기, 두 공방을 관객석에서 관전하고 있던 스텔라가 옆에 있던 카가미에게 질문했다.
"나.. 1회전은 잇키의 시합밖에 못 봐서 몰라서 그러는데, 사라의 능력은 대체 뭐야? 한 순간만에 여러 가지 행동을 보여준 것 같은데."
"음.. 그게 있지. 그녀가 로쿠존에 있었을 때의 데이터로는, 블레이저 랭크는 C. 블레이저로서의 능력은 '색채에 관련된 개념을 조종하는' 거야. 예를 들어 지금 공방으로 보자면, 아쿠아블루는 물이잖아? 그걸로 물을 만들어낸 마술이야. 그리고 파이어 레드는 불. 착색한 곳에 뜨거운 불을 만들어내는 마술이 된 거지."
이건 카가미가 로쿠존 학원 신문부와의 정보 교환을 할 때 얻은 정보이다. 상대도 자신의 학원을 배신한 아카츠키에게 양해를 구할 필요 따윈 없을 테니, 이 정보의 정확도는 상당히 높을 것이다.
"꽤나 다재다능한 능력이네."
"그렇네. 그녀는 색의 수만큼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 다채로운 능력 때문에, 그녀는 로쿠존 학원에서 이렇게 불리고 있었어.
......'만화경'이라고."
"귀찮아.. 이걸로 끝났으면 했는데 말야."
불타오르는 링을 짙은 다크서클이 깔린 눈으로 원망스레 바라보며, 사라가 말했다.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그 느낌은, 권태감.
그도 그럴 것이다.
그녀의 머릿속엔 지금, 자신이 드디어 찾아낸 이상의 피사체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좀 더 직접 만지고 살펴 알아보고 싶었다. 그 흥미로 가득해 있다.
그야말로, 다른 일은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그 집착은, 예술가의 직업을 갖고 있는 그녀의 이상을 더욱 뛰어넘고 있었다. 이제, 자기 자신만으론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사라에게 있어, 이런 시합 따윈 귀찮은 것으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요리조리, 도망치지 마..."
그러니 이 시합을 한시라도 빨리 끝내려는 듯, 사라는 다시금 혁염의 파이어레드를 쿠라우도에게 뿌렸다.
하지만 그 행위는...
"이, 이게 무슨 조잡한 공격인가요, 사라 선수! 방금 사각을 찔렀음에도 불구하고 회피를 당한 '색채마술'을, 이번엔 정면으로 뿌렸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통하지 않을 텐데요....!'
실황의 말은 옳았다.
이런 조잡한 공격은 '신속반사'가 없는 사람조차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쿠라우도에게 닿을 리는 없을 것이고, 그는 여유롭게 회피행동에 들어서...
"하핫!! 그건 들어줄 수 없는 부탁.... 윽!?"
갑자기, 옆으로 피하려 했던 자세 그대로 고꾸라졌다.
'어엇!? 이게 무슨 일인가요!? 회피하려 했던 쿠라시키 선수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어째서? 무슨 이유로 회피를 멈춘 것일까?
아니다. 멈춘게 아니다. 막힌 것이다. 그 원리를, 해설인 무로토가 가장 빨리 눈치챘다.
'이이다 씨! '검사 살해자'의 발치를 보세요!'
거길 보니, 쿠라우도의 발치엔 어느 틈엔가, 사라로부터 일직선으로 뻗어 나온 흰색 선이 그려져 있었다.
"'색채마술'... 인도(引度)의 실크 화이트."
그건, 사람을 인도하는 색의 개념.
이 위에 발을 올려놓은 자는, 색이 만들어낸 길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리고 방금 전 뿌려진 혁염의 색채는, 그 길의 폭을 전부 메울 넓이로 뿌려지고 있었다. 따라서, 쿠라우도는 이걸 회피해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 돌파해내면 그만이지!!!"
쿠라우도는 조금도 겁먹지 않았다.
자신하고 있는 반사신경과 높은 운동능력으로 고꾸라진 자세를 고치고, 그는 놀랍게도, 발치에 놓인 길을 앞으로 전진해 나아갔다!
그리고, 자신을 불태우려 쇄도해 오는 비색 물감을 향해
"'뱀 물기!'"
검을 휘둘렀다.
예전에 잇키를 위기로 몰아넣은, 쿠라우도의 아류 검술.
오른 손 하나로 좌우 동시에 참격을 내는, '신속반사'라는 천성이 있어야만 성립되는 연격.
쿠라우도는 지금 그것을, 양손으로 해내고 있다.
도합 순간 4연격.
쿠라우도를 향해 쏟아지고 있던 물감의 막이 산산히 찢어져, 물감 방울이 되어버렸다. 쿠라우도는 그 방울 하나하나를 남김없이 시야에 사로잡은 뒤, 그 모든 방울을 피해 나가며 전진하여, 손쉽게 돌파해냈다. 그리고 오히려 그 길 너머에 있는 사라를 향해 돌진했다.
"윽.....!"
사라도 혹시 이 상황을 전진해 오며 피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한 듯했다.
놀란 탓에, 사라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그 틈을, 당연히 쿠라우도는 놓치지 않았다.
하얀 선의 길을 질주해 나아가는 기세 그대로, 그는 칼을 있는 힘껏 사라에게 휘둘렀다. 그 엄청난 위력과 여력에, 사라의 몸이 지면에서 공중으로 붕 떴다. 그리고 10미터 정도 날아간 뒤 지면을 데굴데굴 굴러 날아갔다.
'쿠라시키 선수의 '오로치마루'가 드디어 사라 선수를 잡아먹었다!! 오프닝 힛트는 '검사 살해자' 쿠라시키 쿠라우도 선수닷!!! 사라 선수는 마치 교통사고에 당한 것 같은 통렬한 다운! 이건 치명타가....'
'...아니요. 잘 보세요. 일어서고 있어요.'
무로토가 말한 대로, 사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보니 그녀의 몸엔 베인 자국도, 피를 흘린 흔적조차 없었다.
어째서일까.
그 이유는, 그녀의 왼팔에 있었다.
사라의 왼팔... 쿠라우도의 참격을 받은 그 곳엔, 도료가 칠해져 있었다.
'색채마술'. 강철의 건메탈.
사라는 자신의 팔을 강철로 바꿔, 참격 데미지를 무효화시킨 것이다. 칼을 통해 돌아온, 사람의 몸으론 있을 수 없는 감촉을 통해 그걸 알아챈 쿠라우도는 혀를 찼다.
"칫.. 계속해서 이상한 기술이나 써대고 말야."
이렇게까지 다채로운 기술이라면, 역시나 공격에 애를 먹게 된다.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밀어붙인 건 쿠라우도 쪽이다. 그 사실은 쿠라우도의 자신감이 되었고, 그 자신감은 자신을 밀어 주고 있었다.
...이긴다.
"이대로 끝내 주겠어!!"
'데미지 하나 없는 적을 보고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검사 살해자'가 돌진!!'
'좋은 판단이군요. 방금 한 방을 막힌 건 뼈아프긴 하지만, 그걸 신경쓰면 안 됩니다. 한 방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끝날 때까지 공격할 뿐이죠!'
끈덕지게 공격하는 쿠라우도.
한 편 살짝 밀리고 있는 듯한 사라 블러드릴리는..
"......증나.."
중얼중얼,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사령의 메마른 입에서 흘러나오는 원망의 목소리 같았다.
".....짜증나..! 내겐 그리고 싶은 그림이 있는데.. 고작 70년 인생이 걸려도 다 그려낼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그림이 있는데...! 아까부터 방해만 하고 말야. 거슬린다고. 난 1분 1초라도 빨리 그를 그리고 싶어.. 관찰하고 싶어... 너 따윈.. 흥미라곤 없는데...!"
그 순간, 사라는 내리깔고 있던 고개를 튀어오르듯 들어올리며
"내 시간을 낭비시키지 말라고!!!!!!!!"
증오와 분노로 충혈된 눈으로 쿠라우도를 꿰뚫어보고, '데미우르고스의 붓'을 든 오른손을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움직여,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그림을 그려냈다.
마치, 아동이 크레용을 들고 낙서를 한 듯한 그림.
하지만.. 회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게 어떤 그림인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어째서나면, 그림이 완성된 순간 공중에 그려진 그림이 입체감을 가지고, 그림에서 현실로 흘러나오듯 사라의 왼손에 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들려 있는, 아니, 조준하고 있던 그것은.
'색채마술... 톰슨."
아마 세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드럼 탄창이 장착된 머신건이었다.
'이, 이게 무슨!?!? 초, 총입니다! 사라 선수,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총을 그려낸 뒤 그걸 실체화시켰습니다!! 대, 대체 뭘까요! 이 노블 아츠는! 색의 개념을 다루는 기술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만화경' 사라 블러드릴리가 이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건 자료에도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보는 숨겨둔 패입니다!!'
'잠깐, 저런 것도 가능한 거야!?'
'능력은 색에 관련된 것만이 아니었어!?'
'피투성이 다빈치' 사라 블러드릴리가 로쿠존 학원에 있을 때를 포함해 공중의 눈 앞에 처음으로 피로한 노블 아츠 '환상희화'에 놀라는 관중들.
하지만, 가장 놀란 건 쿠라우도였다.
그리고 그 쿠라우도를 향해, 사라는 톰슨 기관총을 조준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자 '환상희화'로 만들어진 톰슨은, 진짜 총과 다를 바 없는 머즐 플래쉬와 화약이 터지는 소리를 터트렸다.
"크읏!"
분 800발에 달하는 발사속도를 자랑하는 풀 오토 사격.
아무리 그 '검사 살해자'라 할지라도 여기선 발을 멈춰 공격을 버리고 완전 방어 태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공세에 들어선 탓에,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실황석까지 들려오는 엄청난 총성! 사라 선수, 지근거리에서 용서 없는 난사!! 쿠라시키 선수, 절대절명.... 이, 이럴 수가!?'
갑자기, 실황의 목소리가 튀어올랐다.
어째서나면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어, 엄청납니다! 쿠라시키 선수! 받아치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탄막을! 백골의 쌍검을 휘둘러 불꽃을 튀기며 그 모든 탄환을 쳐내고 있습니다!!!!!!!'
그렇다. 놀랍게도, 쿠라우도는 지근거리에서 날아오는 톰슨 소총의 풀 오토 사격의 모든 탄환을, 단검 길이까지 도신을 줄인 쌍검' 오로치마루'의 회전력을 살려 튕겨내고 있었다.
여기엔 해설 무로토까지도 혀를 내둘렀다.
'굉장하군요. '신속반사'라는 천성을 가진 그 외엔 해낼 수 없는 일이에요.'
그리고, 힘찬 기합소리와 함께 사라의 맹공을 받아낸 쿠라우도에게, 찬스가 찾아왔다. 갑자기 '철컥' 하는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사라의 맹공이 멎은 것이다.
'...총알이 떨어졌군!'
지금이 호기라고 생각한 쿠라우도는 순식간에 공세로 돌아섰다.
"뻗어나라! '사골인'!!!"
극한까지 줄였던 '오로치마루'의 도신을 내뻗음과 동시에 늘려, 사라의 심장을 노렸다. 사라의 운동능력은 쿠라우도처럼 좋지 않다. 방금 사라의 모든 탄환을 튕겨낼 정도의 속도로 뻗어나오는 '오로치마루'를, 그녀의 운동능력으로 피할 순 없다.
하지만..
사라의 심장에 도신의 끄트머리가 닿은 순간, '오로치마루'의 궤도가 틀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그녀의 옆에 있는 바닥에 내리꽂혔다.
"아아!?"
여기엔, 쿠라우도마저도 혼란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오로치마루'를 똑바로 내뻗고 있었을 터였다. 이런 이상한 조작을 한 기억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궤도가 바뀐 것인가..!?
하지만, 쿠라우도는 바로 그 답을 알게 되었다.
자세히 보니, '오로치마루'가 꽂힌 바닥엔 동그란 '과녁'이 그려져 있었다.
'그렇군.. '과녁'에 빨려들어가 버린 건가..!'
'과녁'이 가진, '조준점'이라는 개념을 이용해 '오로치마루'의 표적을 강제적으로 돌린 것이다.
그건, '총'이 가진 '조준'과 같은 개념이었다.
.....즉
'이 여자.. 틀림없어! 색만이 아닌, 그려낸 것 자체의 개념까지 다루고 있어..!'
현실을 덧칠하는 환상.
그 창작은, 신의 창조와도 같았다.
데미우르고스... 가짜 신의 붓. 참으로 그에 어울리는 디바이스명이었다. 그리고, 쿠라우도의 경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왜냐면...
'환상희화'..."
지금 이 순간에 그려진 다음 환상이, 그를 조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라 블러드릴리의 곁에 떠오른, 하얗고 가느다란 긴 봉 같은 그 물건.
그것은..
"....토마호크."
미사일이었다.
당연히 이런 걸 칼 두 개로 받아낼 수는 없었고, 섬광과 폭음, 그리고 작열이, 오사카 하늘 높은 곳까지 뻗어올랐다.
폭발 순간, 회장에선 아비규환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수.. 순항 미사일이 직격!! 엄청난 폭풍이 불어닥치고 있습니다! 객석 쪽은 마도기사 분들이 방어를 해 준 듯하지만, 링 위엔 불꽃과 흑연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쿠라시키 선수는 무사한 걸까요...?'
'그럴 리가 있나! 당연히 죽었겠지!'
'설령 그렇다 해도 이런 공격이라면 흔적도 안 남을끼라!"
당연하다. 애초에 토마호크는 전함이나 지상 설비를 파괴하기 위한 순항 미사일이다.
한 사람을 쓰러뜨리기 위해 쓸 화력이 아니다.
그런 걸 직격으로 맞은 것이다.
고깃조각 하나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에...?'
회장의 환기구가 천천히 흑연을 거두고, 링 위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관객을 비롯한 실황까지도, 모두가 숨을 삼켰다.
링 위엔 쿠라우도의 모습은 없었다.
그건 당연하다. 예상했던 일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저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쿠라우도가 서 있던 곳에 있던, 하얀 '고치' 같은 것은..
모두가 그리 의아하게 여기고 있던 다음 순간, 그 질문의 답이 밝혀졌다. 갑자기 링 위에 나타난 고치가, 천천히 풀려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몇 겹이나 겹쳐져 있던 하얀 리본 같은 것이 술술 풀려나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고치를 구성하고 있던 리본은, 칼날이었다.
빛조차 반사하지 않는 백골 같은 하얀 칼날.
그리고, 그 고치 속에서 나타난 건, 상처 하나 없는 '검사 살해자' 쿠라시키 쿠라우도였다.
'노, 놀랍습니다!! 쿠라시키 선수, 순항 미사일 직격을 받았음에도 아무런 데미지가 없습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요!?'
'아무래도 순식간에 신축이 자유로운 자신의 디바이스인 '오로치마루'를 몸에 감싸 폭발을 버텨낸 듯하군요. 디바이스란 어지간해서는 깨지거나 부러지거나 하지 않는 물건이니, 방패로 삼기엔 안성맞춤이지요.'
그렇다. 무로토가 말한 그대로였다.
쿠라우도는 순항 미사일을 검으로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뒤, '오로치마루'를 한계치까지 늘려, 그 칼날로 즉석 방공호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쿠라우도의 '신속반사'가 있기에 가능한 행동.
실로 눈 깜짝할 새도 없는 타이밍이었던 것이다.
"....정말 어이없는 짓거리를 하는군."
쿠라우도는, 피어오르는 흑연 너머에 있는 사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용서 없이 상대의 목숨을 노리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사라에겐 힘조절이란 개념이 없었다. 사람 하나를 죽이는 데에 이런 엄청난 화력을 쏟아붓다니.
그리고, 쿠라우도가 그렇게 내뱉듯 말했을 때.
눈 앞의 흑연이 바람에 휩쓸려 날아간 뒤, 그는 보게 되었다.
자신에게 군용 기관총을 들이대고 있는, 백을 넘는 해골 병사 집단의 모습을.
"'환상희화'... 사령군대'
"정말.. 너무한 거 아니냐고, 이 녀석 말야!"
그 순간, 백 개가 넘는 포문에서 발사되는, 방금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의 밀도와 속도의 납탄 폭풍이 불어닥쳤다.
그 모든 총탄이 쿠라우도의 몸에 직격하여, 그를 벌집으로 만들었다.
"뭣....!"
정렬한 채 늘어선 총구. 거기서 일제히 발사된 납탄 폭풍이 쿠라우도를 삼키는 광경을 대기실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목격한 잇키는, 그 충격에 파이프 의자를 쓰러뜨리며 벌떡 일어났다.
그건, 처참한 쿠라우도의 처참한 마지막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서, 설마..."
떨리는 입술에서 흘러나온 건, 경악.
탄환은 확실하게 직격했다.
이 정도의 밀도의 탄막이라면, 사람 따윈 벌집을 넘어서 한 조각 고기로 변해버리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라우도는 그 납탄 폭풍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었다.
'이, 이 무슨... 이건!? 저희들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요...!? 사령 군대가 쏘아내는 탄막에 삼켜졌을 터인 쿠라우도 선수..! 하지만, 그는 서 있습니다! 아니! 서 있기는 커녕... 걷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납탄 소나기 속에서! 홀연히.. 사라 선수를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
그 광경엔, 사라도 명백한 동요를 보였다.
이해할 수 없다.
도망칠 틈조차 없을 정도의 탄막.
톰슨 소총의 풀 오토 사격을 쌍검으로 막아낸 쿠라우도라 할지라도, 대처할 수 있는 수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지금.. 쿠라우도는 검을 휘두르지도 않고 있었다.
'오로치마루'는 양손에 들린 그대로였다.
즉, 그는 무방비한 상태로 백 개가 넘는 머신건의 사격을 받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서 있다. 오히려,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이유를.....
".......윽!"
대기실에 있던 쿠로가네 잇키만이, 그 사실을 이해했다. 확실히 쿠라우도는 지금 보는 것처럼, 일절의 회피행동조차 취하지 않고 있었다. 탄막에 무방비하게 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도 총탄이 그를 꿰뚫지 못하고 있는 건... 총알이 빗겨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쿠라우도에게 닿는 순간, 모든 총알이 옷 위를 스쳐지나가, 그를 상처입히지 않고 그대로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아니... 피하고 있는 것이었다.
'....쿠라시키 군이 검술을 배우고 있다는 건 은연히 알고 있었어. 그의 능력엔 이도류가 적임이라는 걸 알고, 지적한 사람이 있을 거고, 무엇보다 방금 이 대기실을 나갈 때 보여준 기백의 날카로움은, 이전의 그와는 전혀 달랐어. ....그건 수련을 통해 갈고닦은, 검객이 가진 검기였으니까. 하지만 설마.... 설마....... 쿠라시키 군의 뒤에 서 있던 사람이... 당신이었을 줄은..!'
잇키는 알고 있었다. 삼라만상 모든 흐름을 간파하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모든 공격을 받아내는, 어떠한 검술의 천재가 반생애에 걸쳐 만들어낸 수비의 극의.
아야츠지 일도류 오의... '천의무봉'
'그러고 보니 아야츠지 씨가 말했었지. 여름방학동안은 아버지의 재활 치료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그렇군. 하고 납득이 갔다.
이런 제자가 있다는 게 들킨다면, 즉각 가정 내 재판이 열려 사형이 확정될 테니까. 자신을 반죽음으로 만든 남자를 제자로 삼다니, '최후의 사무라이'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그 심정까지 알아낼 순 없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굉..장해...."
쿠라우도의 역량에, 잇키는 감탄의 말을 흘렸다.
도저히 흉내낼 수가 없었다.
잇키의 '천의무봉'으로는, 이런 수의 탄환을 받아낼 수 없었다. 사실 그는 이전 합숙장에서 '어릿광대'가 조종하고 있던 바위 골렘과 싸웠을 때, 복수의 골렘에게 둘러싸여 그 공격을 전부 받아내지 못하고 공격을 받았다.
하지만, 쿠라우도는 구 수백 배나 되는 공격의 모든 것들을 흘리고 있었다.
이건, 그의 '신속반사'가 있기에 가능한 기술이다.
'천의무봉'은 '신속반사'와 무서울 정도로 상성이 좋았다. 이제 보통 공격으로는, 쿠라우도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을 것이다.
"나 참... 미사일에 이어 군대?? 계속해서 아주 그냥.. 니가 무슨 도라○몽이냐? 그 덕에 그 녀석하고 싸울 때까지 숨겨두려 했던 비장의 패까지 내 버렸잖아."
탄막 소나기 속을 홀연히 걸어나가며, 쿠라우도는 원망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의식불명에 빠진 것에 대한 빚을 갚으려고밖에 보이지 않는, 사람을 죽이려는 게 뻔히 보이는 그 특훈에, 피토를 하며, 혈뇨를 눠가면서까지, 죽음에 다다를 정도의 특훈 끝에 획득한 오의.
이건 가능하다면 잇키와의 싸움에서 처음 선보여 그를 놀라게 해 주고 싶었던 건데, 하고.
그런 그에 대해, 사라의 군대는 탄막 밀도를 더욱 높였다.
하지만.. 역시 모든 총알은 뒤로 날아갈 뿐이었고, 쿠라우도의 피부를 찢을 것조차 불가능했다.
"소용없어! 소용없다고! 이런 똑바로 날아올 뿐인 납탄 따위, 아무리 수를 늘린다고 해 봤자 별 노력 없이 피할 수 있지... 내 전진은 이딴 걸로는 막을 수 없다고!!!"
"윽...!"
'천의무봉'을 획득한 검사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주기 위해선, 달인의 경지에 다다른 일류의 참격으로 상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라는 화가였다. 당연히 검술 따위를 쓸 수 있을 리는 없었고, 따라서 쿠라우도의 전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야, 너 방금 아주 재밌는 말을 하던데? 나 따위에겐 흥미가 없다. 방해된다고 말야. 거 우연인데. 나도 같거든. 나도 네 년 뒤에 있는 남자밖엔 흥미가 없어. 네 년 따위는 내 안중에 조금도 없다고! 그러니까... 얼른 내 길에서 꺼져!!!"
그 포효와 함께, 쿠라우도가 돌진했다.
몸을 앞으로 내던져, 해골 군대의 뒤에 있던 사라를 향해 나아갔다. 당연히 그걸 막기 위해 사령군대가 총검을 장착한 채 달려왔지만...
"거슬린다고, 이 새끼들아!!!!!"
쿠라우도는 '오로치마루'의 도신을 길게 뻗어 모든 사령들을 한 방에 베어냈다. 가로로 한 방. 한꺼번에 양단된 해골들은, 찢어진 종이가 되어 하늘에 흩날렸다. 링 위에 남은 적은, 이제 사라 한 명 뿐.
"이걸로, 끝이다!!!!!!"
쿠라우도는 한 번 내뻗은 칼의 도신을 더욱 늘려, 마지막 적의 목을 노렸다.
그에 대해, 사라도 멍하니 서 있진 않았다.
다시금, 팔이 섬광으로 보일 정도로 '데미우르고스의 붓'을 움직여, 무언가를 그려냈다. 하지만, 어떻든 상관없었다. 지금 와서 전차가 나오건, 전투기가 나오건, 거대 로봇이 나오건, 쿠라우도의 적수가 되진 않는다.
무엇이 나오건, 한꺼번에 베어 주겠어!
그 기개로, 쿠라우도는 혼신의 힘을 담아 '오로치마루'를 휘둘렀다.
하지만..
키잉!!
무거운 금속음과 함께, 백골의 칼날이 하늘로 튀어올랐다.
"뭣....!"
그 순간, 쿠라우도의 표정은 경악으로 얼어붙었다. 혼신의 일격을 막힌 것 때문일까.
아니었다.
그 정도는, 흔한 일이다.
거기다 저 한계를 모를 능력을 지닌 '만화경' 사라 블러드릴리라면.
지금 와서 쿠라우도가 그 정도에 혼란하거나, 굳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놀란 나머지 호흡조차 잊고 있는 이유는.
쿠라우도의 혼신의 일격을 받아낸 게, 칙칙하게 빛나는 흑도를 손에 든, 흑발의 소년이었기 때문이었다.
'환상희화... 어나더 원.'
사라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싸우고 싶다면... 마음껏 싸워 보지 그래."
그 순간, '오로치마루'를 튕겨낸 '어나더 원'이 허리를 낮춘 뒤
'이런....'
"'일도수라'"
창색 빛을 두르고, 대기조차 갈라낼 속도로 거리를 좁힌 뒤, 도신조차 보이지 않을 일섬으로 쿠라우도의 가슴팍을 깊이 갈랐다.
"크... 아아아아아아악!!!!!!!!"
드러난 해골 문신을 사선으로 베는 참격. 허를 찔린 그 일격에, 쿠라우도는 피보라를 흩뿌리며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 동작엔, 참격에 의한 데미지보다 놀란 탓이 더 컸다. 눈 앞에 믿기지 않는 현실에 쿠라우도는 눈을 부릅뜨고, 말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광경에 놀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뭐, 뭡니까. 이게!?!? 갑자기 대기실에 있었을 터인 쿠로가네 선수가 링 위에 나타나 쿠라시키 선수를 공격했습니다!!'
'서, 설마 '환상희화'는 다른 블레이저를 재현해내는 것까지 가능한 건가!?'
실황도, 해설도, 그리고 관객도, 모든 사람들이 사라의 블레이저를 포함해 그 노블 아츠까지도 재현해내는, 믿을 수 없는 능력에 경악을 넘어서 경직되어버렸다.
그 호기를, '환상희화'에 의해 만들어진 '어나더 원'은 놓치지 않았다. 그야말로 잇키의 검술로밖에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참격으로, 다시금 쇄도했다. 그에 대해 쿠라우도는 그 엄청난 맹공에 반격조차 하지 못했고..
'쿠라시키 선수, 방어에 전념! 공격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 쓰러지고 말 것인가..!'
'이건 쿠라시키 선수에겐 혹한 상황이군요. 그의 '신속반사'의 강점은, 인체의 규격을 벗어난 반응속도와 그에 따라 행동할 뿐인 행동속도, 이 두 속도에 의해 여러 국면에서 뒤늦게 공격을 내도 먼저 공격하게 되는 점에 있지요. 원래라면 '일도수라'를 사용한 '어나더 원'을 상대한다 하더라도 호각으로 다툴 수 있을 것이고, 1분간이라는 시간을 방어해낼 순 있을 겁니다. 하지만... '비익의 검'은 너무도 강하군요. 반응속도로는 아직 '어나더 원'을 상회하고 있습니다만, '비익의 검'의 순간최대가속에 의한 행동속도에 '신속반사'가 전혀 따라가질 못하고 있어요. ....이대로라면..'
패배한다. 그리 무로토가 말하려던 것보다도 빠르게, 상황이 움직이고 있었다. 검은 섬광과도 같은 '어나더 원'의 검이 쿠라우도의 이도류에 의한 방어를 돌파해내고, 참격이 그를 갈라내기 시작하고 있던 것이다.
"~~~~~~~~크윽!!!"
링 중앙, 흩날리는 선혈.
'어나더 원'이 '일도수라'를 사용한 지 아직 20초가 막 지난 때다.
이대 가면, 도저히 넘어설 수 없었다.
"망할......!"
그 현실에, 쿠라우도는 어금니가 삐걱일 정도로 악물었다.
'난 아직... 이길 수 없는 것인가.'
피토를 하며, 혈뇨를 눌 때까지 몸을 혹사해도. 혼의 형태를 바꿀 정도의 결의를 가지고 노력을 했음에도
'난... 이 녀석에게.. 이길 수 없는 거냐고.....!!'
분한 마음에 모든 것이 꺾일 것만 같았다.
'어나더 원'의 참격 하나하나를 받을 때마다, 뼈만이 아닌 마음까지 삐걱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쿠로우도의 뇌리에, 한 남자가 스쳐지나갔다.
그건...
'넌, 어째서 그렇게까지 쿠로가네 군과의 재대결에 고집하고 있지?'
아야츠지의 도장에서 카이토를 기다린 뒤, 마침내 나타난 카이토를 향해 오체투지를 하며 제자로 받아줄 것을 간원했을 때, 그가 했던 말이다.
카이토는 그가 남에게 고개를 숙일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그는 물은 것이다.
그 물음에, 쿠라우도는 이렇게 답했다.
'...당신과 같아.'
그리고 시선을 카이토가 들고 있던 물건으로 향했다.
'이제 겨우 퇴원을 한 참인데, 거기다 남은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들은 주제에, 이런 밤늦은 시간에 진검 같은 위험한 물건을 들고 찾아오다니 말야. ....보아하니 당신, 나한테 지고만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래.'
'나도 같아. 진 채로 있는 건 용납치 못해. 이 끓어오르는 속을 억누를 수가 없다고...! 당하고만 있어서야 성미에 맞질 않는다고!!!'
"......."
그랬다.
바로 그거였다.
당하기만 해선 기분이 나쁘다.
그러니, 이기고 싶었다.
잇키에게 이기기 위해, 그것만을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렇다면
".....웃, 기지 마....."
질 수는 없다.
이런 허접한 가짜 따위에게 질 수는 없다.
그 어디까지나 똑바르고 올곧은 남자는, 1초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멀리, 앞으로 나아간다.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멀어져간다.
그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저렇게 되고 싶다,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낀..
처음으로 동경하게 된 남자의 등을.
"내가 질까 보냐!! 너같은 가짜 따위에게!!!!!!"
피를 토하는 듯한 고함과 함께, 좌우 동시 공격, '뱀 물기'를 내뻗었다. 하지만, 반격으로 내기엔, 쿠라우도는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리고 있었고...
챙!!
쿠로우도의 반격은 모두 튕겨져나갔고, 오히려 그의 몸이 깊게 베여나갔다.
뿜어져나오는 피보라. 명백한 치명타였다.
무릎이 꺾이고, 허리가 굽혀졌다.
그리고, 모든 신체가 링 위로 떨어질, 그 찰나.
"포기하지 마!!!!!! 쿠라우도!!!!!!!!!!!!!!!!!"
"으윽.....!?"
필사적인 성원이, 귓가를 때렸다.
그건, 쿠라우도도 잘 알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목소리.
그 쪽을 바라보니, 역시 있었다.
적색 게이트 아래. 대기실에서 달려온 진짜 쿠로가네 잇키의 모습이.
그렇다. 그는 여기까지 달려나온 것이다. 지금 당장 무너져내릴 것 같은 쿠라우도를 조금이라도 지탱할 수 있을 수 있다면, 하고.
그리고, 그 성원은 확실히 쿠라우도에게 들렸고.
뚝.
그의 관자놀이 주변에서 무언가가 끊어지고, 마음에, 불타오를 정도의 격한 증오의 불꽃이 붙었다.
.....어째서냐.
어째서 네 녀석이 여기에 있어.
왜 날 응원하는 거야.
거기다, 그렇게 필사적인 표정으로.
어째서...
....그렇게, 믿음직하지 못했나. 이... 내가!!
"깔보지 마라!! 쿠로가네!!!!!!!!!"
엄청난 분노에, 쿠라우도의 시야가 새빨개졌다. 온몸에 산소를 운반하던 혈액은, 예전에 없던 속도로 온 힘을 다해 움직이며, 지금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몸에 무쌍의 활력을 깃들게 했다. 무너질 것 같은 발은 다시금 쿠라우도의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한계 정점을 넘은, 기적의 한 순간.
한 순간만에 끝나 버릴, 물거품으로 돌아갈 꿈과 같은 무쌍의 찰나.
하지만, 쿠라우도에겐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 한 순간 쿠라우도가 '어나더 원'을 향해 내뻗은 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혼신의 일격..
"으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신속의 몸을 이용한, 순간 8연속 참격을 만들어내는 아류 검술의 도달점.
아류 검기 '야마타노오로치'
그걸, 쿠라우도는 이도류로 쓰고 있었다.
즉, 도합 16연속 참격!
그 위력도 이전과는 다른, 카이토에게 단련을 받아 달인 급으로 연마된 참격이었다. 그건, '신속반사'라는 천성을 가지고 태어난 전투의 천재가 만들어낸, 극한의 현재. 이전처럼 '천의무봉'으로 이걸 받아낼 수는 없었고, 그리고 어떠한 세계 최강의 검이라 할지라도 동시에 날아오는 16번의 참격을 방어해낼 순 없을 것이다.
'어나더 원'의 몸은, 말 그대로 잘게 잘려나갔다.
그리고, 사람의 형태를 잃은 환상은 찢어진 종이가 되어 바람에 흩날렸고..
푸욱, 하고 두 자루의 검이 쿠라우도의 몸을 꿰뚫었다.
"..............................."
쿠라우도는 메마른 눈을 부릅떴다.
눈 앞엔, 자신을 꿰뚫은, 창색 빛을 두른 두 '어나더 원'이.
'마음껏 싸워 보지 그래.'
쿠라우도는 방금 사라가 한 말의 의미를,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그건 도발도, 비꼬는 말도 아니었다.
그 말, 그대로의 의미.
사라 블러드릴리는, 가능한 것이다.
몇 명, 수십 명, 쿠라우도가 쓰러질 때까지 '어나더 원'을 그려내는 것이.
".........아."
쿨럭, 하고 쿠라우도의 입에서 핏덩어리가 흘러나왔다.
캉, 하고 메마른 소리를 내며, 백골의 쌍검이 악력을 잃은 손에서 떨어졌다.
.....싸움이란 언제나 비정하다.
아무리 강한 염원을 가슴에 담고 있어도, 링 위의 승자는 한명 뿐. 패자들의 염원 따윈 누구에게도 닿지 않은 채...
"제기....랄....."
지금 여기서, 한 남자를 쫓아간다는, 그를 넘어서겠다는 한 남자의 꿈이 끝을 맺었다.
'쿠라시키 선수가 링 위에 쓰러짐과 동시에 시합을 중지! 시합 종료!! 승자는 사라 블러드릴리 선수입니다!!'
실황에 의해, 승자의 이름이 올랐다. 하지만, 평소라면 흥분과 축복에 가득했을 객석엔, 그저 당황함과 술렁임만이 가득해 있었다.
사라 블러드릴리의 너무나도 압도적인 실력에.
'싸움이 끝났음에도, 회장은 숨죽은 듯 고요함만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저 숨을 삼킨 채, 아연히 링에 서 있는 승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사라 선수의 이 실력.. 도저히 C랭크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힘을 숨기고 있던 거군요.'
'무로토 프로.. 역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네. 극히 흔하게 있는 일입니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블레이저가 상대가 자신을 경계해 대책을 세워 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칠성검무제 대표 당선 확정이 아슬아슬할 정도로 힘을 억눌러 능력을 숨기는 일은 말이죠.'
그렇다. 그건 흔히 있는 일이다.
일류 기사일수록 자신의 실력은 밝히지 않는다.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가 '폭식'으로 디바이스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숨겨온 것도, 그 중 일례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실력은... 이상하군요.'
그리 중얼거리던 무로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이전 KOK A급 리그에 서 본 적이 있는 무로토이기에, 알 수 있었다.
사라의 능력, 그 이상함이.
'색만이 아닌 그림의 개념을 조종해 실체화하는 능력..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강하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블러드릴리 선수는 블레이저를, 그 블레이저의 노블 아츠까지도 재현해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블레이저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좀 더 말하자면, 사각이 없다. 그녀를 이길 방법이 보이질 않는다.
'거기다 수많은 병기와 군세, 블레이저를 재현해냈음에도 마력이 고갈되어 가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지요. ...사라 블러드릴리 선수의 랭크를 지금 바로 갱신해야 할 필요가 있겠군요. 그녀는 틀림없이 '홍련의 황녀'나 '바람의 검제'에 필적하는, A급에 상당하는 블레이저입니다!'
"......."
장내엔 곤혹해하는 침묵이 내리깔렸다.
잇키의 옆으로, 모든 힘을 쏟아내 의식을 잃은 쿠라우도가 들린 들것이 지나가고 있었다.
....'검사 살해자'는 강했다.
이전 자신이 싸웠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쌓고 있었다. 요 단기간만에 이도류와 '천의무봉'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그 재능. 그리고, 그 싸움 도중에 보였던, 뛰어난 전투 센스.
.....하지만 그게 온 힘을 다해도, 이길 수 없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다.
결국 이 싸움에서, 사라는 데미지 하나 입지 않았으니까.
"'피투성이 다빈치' 사라 블러드릴리...."
잇키는 게이트를 통해 멀어져가는 사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그랬다. 이전에 '마수 조련사'가 사라를 얕보지 말라고 말한 이유가 납득이 갔다. 틀림없이, 이 대회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실력을 갖고 있었다.
'난.. 저런 괴물을 상대로 연전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그 사실이, 지금까지 겪어본 적 없는 무게가 되어 잇키의 어깨를 짓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