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전
"하~! 이거 참. 스텔라한티 떡이 될만치 두들겨 맞고 좀 얌전해지나 싶더니.. 어이없는 녀석이 남아있었고만!"
쿠라우도의 시합. 그 모든 것을 청색 게이트 대기실에서 관전하고 있던 모로보시 유다이가 어이없어하는 말을 흘렸다. '어나더 원'과 실제로 싸워 본 모로보시이기에, 알 수 있었다.
저 가짜는, 진짜라고.
기술의 위력, 예리함, 국면을 읽는 통찰력까지, 어느 것 하나 진짜와 다를 바 없었다. 자신을 이긴 기사와 완전히 동급인 존재를, 저렇게 손쉽게 휙휙 그려내다니. 악몽과도 같았다.
"쿠로가네에게 이긴다 카더라도 3회전에서 저런 괴물이 기다리고 있으니, 니도 참 운이 없네!"
하하핫! 하고 웃으며 모로보시는 파이프 의자에 앉은 채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던 뱌쿠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런 모로보시를 바라보며, 뱌쿠야는 쓴소리를 했다.
"유우.. 격려를 하러 온 겁니까, 아니면 중압감을 주러 온 겁니까?"
"찬물 끼얹어주려 왔지."
"돌아가."
"머 어때서 그렇노? 격려가 필요한 성격도 아닌 주제에~"
태연히 말하는 모로보시.
하지만, 이건 기나긴 사귐에 따른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모로보시가 자신이 신경 쓰여, 상태를 보러 온 것을 알 수 있기에 뱌쿠야도 진심으로 내쫓으려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건 그렇고 여전히 증말로 이상한 녀석이란 말이다, 시로는. 나중에 치고박고 할지도 모르는 상대의 시합은 보지도 않고, 준비운동도 하지 않은 채로 뚫어지라 장기말만 쳐다보고 있으니까는!"
휙, 하고 설치된 테이블 위에 뱌쿠야가 늘어놓은 장기말을 들여다보는 모로보시.
"이게 제 나름대로의 웜업이니까요."
"격투기와 두뇌 경기 따윈 물과 기름 아이가?"
그 말에, 뱌쿠야는 재밌다는 듯 살짝 웃었다. 야성의 감성에 따른 임기응변으로 전술을 구축해내는 모로보시다운 생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제게 있어서 쾌투란 격투기가 아닌 두뇌 경기에요. 싸움이란 상대의 수를 읽고, 그 움직임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되죠. 그리고 거기에 상대가 만들어낸 행동원리를 뒤흔드는 걸로, 한 수 두 수를 앞서 읽는 거에요. ....하지만, 그건 초보 중의 초보나 하는 짓. 상대의 몸의 구조는 물론, 성격을 포함한 지금까지 겪은 시합에서 나온 사고의 흐름. 그 기술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경향. 연계 패턴. 시선의 움직임을 포함한 예비 동작의 상세한 부분. 상대가 내뱉는 숨결, 모든 것을 분석하여 정보로서 정제하고, 또 정제해내서, 극한의 경지에 달하게 된다면... 싸우기 전에 종국을 볼 수 있게 되지요."
"호오.. 그럼 시로는 이미 이 순간에 '체크메이트'의 수를 읽고 있다는 거가?"
그 물음에, 뱌쿠야는 모로보시를 쳐다보지 않은 채 입가에 미소만을 띠고 있었다.
"23수 째. ......'어나더 원'이 '신기루'를 이용해 오른쪽으로 회피할 때, 이 싸움은 제 승리로 끝날 겁니다. 틀림없이요."
".....너 그다지 니 맘대로 그 남자가 움직여줄 거란 생각은 안 하는게 좋데이. 능력의 폭은 별 차이가 없지만, 그 녀석이 쓰는 기술은 다채로워. 아직 뭔가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충고에, 뱌쿠야는 그렇군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로보시의 용건은 이것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급우인 자신을 응원해주고 있는 듯했다. 그 친구의 감정을, 뱌쿠야는 고맙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한 편..
"....확실히 유우가 말한 대로, 그는 그 능력만을 보면 위력적이지 않은 기사이지만, 실로 다채로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트릭스터에요. 그의 행동, 그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파악해내는 건 어렵겠죠. 하지만, 이 다음에 있을 시합만은 이야기가 달라요."
모로보시의 걱정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강한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뭔 소리고?"
"이 다음 시합에 한해, 그의 행동은 아주 예측하기 쉬워집니다. 왜냐면 '어나더 원'에겐, 극복해내기 어려운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까요."
극복해내기 어려운 치명적인 약점.
뱌쿠야의 그 말에, 모로보시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를 알아챘다.
".....그건, 그 녀석의 능력에 제한이 있는 점?"
"네. 바로 그거에요. 그의 능력은 초인적인 집중력을 이용해 단시간만에 자신의 모든 것을 짜내는 기술. 그리고, 그런 집중력을 이용해 능력을 펼치고 있는 이상, 도중에 그 집중력을 풀 수는 없을 거고, 거기에 다시 사용하기 위해선 하루라는 휴식시간이 필요하다는, 임기응변이 불가능한 기술입니다. .....즉, 2회 연전이 될 이번 시합에서 그가 가벼이 그 능력을 쓸 리는 없겠지요."
"장담할 순 없는 거 아이가? 2전 중 한 번은 당연히 쓸 거잖아? 그게 니 시합이 될지도 모르고?"
이 모로보시의 말에, 뱌쿠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그건 아닐 거라 장담합니다. 사라 블러드릴리는 '일도수라'를 사용하는 그의 그림을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게 가능했으니, 그런 그녀를 그 기술을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상대하는 건 기피하고 싶어할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겐 정점에 서야만 하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이유...?"
"그는 '칠성검왕'이 되지 않는 한, 졸업 증명서, 즉 '마도기사' 면허를 받을 수 없는 입장이에요."
"뭐라꼬!?"
뱌쿠야의 그 말에, 모로보시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왜 일이 고따구로 돼 있는데!?"
"그의 실가에서 그렇게 규제를 뒀다 하더군요. 자신의 집에서 F랭크라는 못난이를 배출해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다고요. 그러니 그들을 납득시킬 만한 자격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이럴 수가.."
다른 학교에 다니는 그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잇키에게 붙어 있던, 조건의 존재를. 하지만, 뱌쿠야는 잇키를 철저하게 조사한 탓에, 그가 짊어지고 있던 것, 복잡한 가정환경에서 온 부조리한 약속까지 알아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확신할 수 있다.
잇키는 다음에 있을 자신과의 시합에서 '일도수라'를 쓰지 않을 것이라고.
"확실히 전국의 강호를 상대로 조금이라도 활약하고 싶다면, 제 시합에서 비장의 패를 꺼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는 언제나 정점을 눈에 두고 있는 몸. 그래야만 하는 입장인 사람입니다. 그런 입장에 서 있는 이상, .....자기 자신을 재현해내는 적 앞에서 그 비장의 수를 못 쓰게 만들어버릴 리는 없겠죠. 마지막까지 이겨나가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거기까지 말한 순간 잇키와 뱌쿠야를 부르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뱌쿠야는 거기에 따라 모로보시를 향해 "그럼 다녀올게요" 하고 말한 뒤 바로 대기실을 나섰다. 그리고, 링을 향해 좁고 어두운 길을 나아가 관중이 지켜보고 있는 링 위로 올라섰다.
나타난 뱌쿠야의 모습에, 회장은 환성을 보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뱌쿠야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중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그에게, 관중의 소리 따윈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불필요한 정보는 인식할 가치조차 없다, 고 뇌가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그에겐 관중의 소리는커녕, 외계의 경치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지금 뱌쿠야의 눈 앞에 펼쳐져있는 건, 새하얀 정적의 세계.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고동소리를 새기고 있는 건, 쿠로가네 잇키 한 사람 뿐.
뱌쿠야는 안경 너머에 있는 눈을 가늘게 떠, 적을 관찰했다.
잇키는,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뱌쿠야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눈동자엔 긴장감이나 겁 따위는 보이지 않았고, 이 정적을 뒤흔들고 있는 고동소리도 아주 차분했다.
그리 집중하고 있으면서도, 차분함을 잃고 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싸움에 임한 자의 이상적인 심신상태였다.
그걸 본 뱌쿠야는, 아주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곤란하지. 라고.
최고의 정신상태로 나서지 않고서야..
모든 지혜의 끝을 짜 내어 맞서지 않으면..
'이 모든 23수의 지고한 기보는, 완성되지 않을 테니까.'
그건 뱌쿠야에게 있어 승리와도 같은 중요한 점이다. 그저 싸우고, 승부가 갈리는 것만으로는 뱌쿠야의 미학에 반한다. 그가 원하는 건, 야만한 격투 따위가 아니다. 치졸한 기술 겨루기도 아니다.
더욱 높은 차원의 이성과 이성, 지성과 지성의 교착.
쿠로가네 잇키... 이 소년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이 정적 속에서, 서로의 한 수 한 수를 교착시켜, 자신의 '생각'의 모든 것을 경쟁하는 것..
그런 전류가 튈 정도의, 아슬아슬한 싸움이.
그리고, 그 모든 23수의 공방은, 오랫동안 몇 년이고 구전될 아름다운 싸움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니..
'그럼 지금부터, C조 2회전 제 2시합을 개시하겠습니다! LET's GO AHEAD!'
....자! 너와 나 둘이서, 이 전장에서 지고의 기보를 그려 나가 보자고!!
..........'천안' 죠가사키 뱌쿠야의 기억은, 여기서 끊어졌다.
그야말로, TV 코드를 단숨에 뽑아낸 듯, 갑작스럽게.
뒤에 남은 건 빛 없는 어둠 뿐.
그리고 의식이 완전히 어둠에 빠지기 전에 들은
'일도나찰'
이라는 잔향뿐이었다.
작가 후기
몬스터헌터 하고 싶어어어어어!!!!
마음의 절규부터 튀어나와서 죄송합니다. 미소라 리쿠입니다. 일이 너무 바빠서 몬스터헌터를 전혀 할 수가 없어요! 몬스터헌터.. 하고 싶어요!
네? 전권에서 예고한 고양이에 대한 건 어쨌냐고요?
죄송합니다. 그거 거짓말이었어요.
.......아직 사 오질 않았거든요.
대신이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새롭게 이사를 온 뒤 엄청나게 나타나고 있는, 거의 애완동물이나 다름없는 바퀴벌레에 대한 이야기라도 괜찮으시다면(검문)
자, 잡담은 이만하고 이번 권에선 칠성검무제 1회전이 끝나고, 2회전으로 돌입! 의외로운 인물이 의외롭게도 페이지를 가득 채웠네요. 작자도 깜짝 놀랐어요(퍼엉)
그리고 스텔라가 점점 히로인으로선 나아가설 안 될 영역으로..
자신의 팔을 용접하는 히로인 같은 거, 본 적 없다고요?
거 참 우연이네요. 저도 그래요.
어쩔 수 없잖아요? 이 아이는 히로인임과 동시에 결승전에서 잇키와 재대결을 약속한 라스트 보스니까요. 소중한 애인과 나눈 약속을 위해, 가련한 소녀로 있을 수만은 없는 거라구요. 뭐, 실제로 라스트보스가 될지, 아니면 잇키가 결승전에 도달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이 둘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달려 있는 거지만 말이에요.
그러니 다음 권에도 둘의 모습을 지켜봐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낙제기사가 만화책이 되어 단행본이 발매될 거라 하더군요. 만화책에 나온 스텔라는 엄청 귀엽다고 하니, 그 쪽도 부디 봐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다음 권 작가 후기에서 만나뵙도록 하죠!
6권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자 후기 : WD-40은 세계 제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