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77)

제 8장

소란스러운 의무실

시합 뒤, 잇키는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회장에 설치된 캡슐에 들어갔다.

캡슐을 사용한다면, 근섬유가 끊어지는 부작용부터 일어나는 '일도나찰'의 반동 부상 정도는 몇 분만에 완치시킬 수 있다. 다음 시합에 영향을 줄 일은 없을 것이다.

부상을 치료한 잇키는, 그 뒤 침대에 누운 채로 의무실로 옮겨져, 옅은 잠을 자고 있었다.

캡슐에 들어갈 때, 심도가 얕은 전신마취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자고 있는 의무실에 설치된 모니터엔, 지금 막 회장에서 벌어진 시합을 비춰주고 있었다.

싸우고 있던 건... 그의 여동생, '심해의 마녀' 쿠로가네 시즈쿠와, 작년 3위인 아사기 모미지였다.

'D조 제 2시합, 아사기 모미지 선수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집니다! 이거 굉장하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수뢰탄'의 탄막을 가볍게 피하며, 계속해서 간격을 좁히고 있습니다! 모미지 선수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저 스피드에, 시즈쿠 선수! 조준이 계속해서 엇나가고 있습니다!

'빠른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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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이시죠?'

'모미지 선수는 지금 '누벼 걷기'라는, 그녀의 스승인 '투신' 난고 토라지로가 특기로 삼고 있는 독특한 보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상대의 인식하지 못하게 미끄러지듯 들어오는 저 보법은, 어느 정도 무도에 정통해 있고, 자기 자신의 몸이나 집중을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지 않는 이상 파훼하기가 어려운 기술이에요. 완전히 마법에 특화되어 있는 시즈쿠 선수에게 있어선 대응하기 어려워진 상황이군요.'

야오토메가 말한 대로, 영상 속의 시즈쿠는 모미지의 움직임을 잡지 못해 공격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그 사이에 모미지는 시즈쿠와의 거리를 답파하여, '누벼 걷기'를 이용해 시즈쿠의 등 뒤로 돌아갔다.

'아앗!! 시즈쿠 선수, 완전히 뒤를 잡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디바이스인 일본도 형태의 디바이스에 비색 불꽃을 감싸 내리쳤다.

여기에 시즈쿠는 반응할 수 없었다.

'뇌절'과의 대결에서 한 번 맛본 기술이라고 해도, 이걸 파훼하기 위해선 자신의 뇌를, 그리;고 몸을, 본능과 반사신경을 무시하고 능동적으로 제어해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건, 수많은 수련을 쌓은 끝에 몸에 익힐 수 있는 기술.

하루아침만에 익힐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 소녀는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모미지의 흰 칼날이 시즈쿠의 등 뒤를 갈라내려 쇄도한 순간, 얼음의 벽이 시즈쿠의 발치에서 솟아나, 그걸 가로막았다. 갑작스런, 그리고 예상치 못한 시즈쿠의 반응에 모미지는 당황했다.

그리고, 그 한 순간이 승패를 갈랐다.

경악에 움직임이 둔해진 모미지에게, 시즈쿠의 노블 아츠 '수뢰탄'이 착탄했다.

'이, 이게 무슨!? 완전히 뒤를 잡은 것처럼 보인 모미지 선수를, 뒤돌아보지도 않고 영격!! 모미지 선수, '수뢰탄'에 잡혀 버렸습니다! 착탄한 '수뢰탄'은 바로 모미지 선수의 몸을 기어올라, 기도를 막습니다!! 모미지 선수, 필사적으로 뗴어내려 하지만 상대는 액체! 잡아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 그런데 시즈쿠 선수는 어떻게 모미지 선수의 위치를 알아낸 걸까요!?'

'.....그렇군요. 상당히 영악해요. 그녀는.'

'야오토메 프로. 무언가 알아낸 건가요?'

'네. 그녀는 아무래도 '수뢰탄'을 눈속임 용도로 쓰면서, 이 회장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틈에 링 위 전역에 얇은 수막을 펼쳐놨어요. 즉, 눈으로 보지 않아도 물의 흔들림, 파문의 위치로 모미지 선수의 위치를 알아낸 것 같습니다.'

이거라면 시각으로 인식할 수 있건 없건 상관없다.

이것만으로 눈을 감고 있어도 시즈쿠에겐 모미지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낼 수 있으니까.

'아앗!! 여기서 모미지 선수의 무릎이 꺾입니다! 동시에 주심이 시합 종료 신호! D조 2회전 제 2시합의 승자는 '심해의 마녀' 쿠로가네 시즈쿠 선수로 결정되었습니다!! 회장에선 커다란 한숨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황금세대라고까지 불렸던 본토의 학교, 부쿄쿠 학원의 상위 세 명이 여기서 전원 탈락하고 말았으니까요! 하지만, 한 편, 하군 학원은 시합에 나온 세 명 모두가 삼회전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룹니다! 신생 아차크치 학원도 그들처럼 세 명이 남아 그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8시부터 열릴 3회전도 놓칠 수 없는 대회가 될 것 같군요!'

"훗. 뭐.. 역시 같은 기술에 두 번이나 당할 정도로 착한 녀석은 아니었나 보네."

살짝 기쁜 듯 코웃음을 치며, 잇키가 잠들어 있는 침대 옆의 파이프 의자에 앉아 있던 스텔라는, 모니터를 껐다. 

그리고, 지금 대회의 상황을 다시금 머릿속으로 그려나갔다. 방금 시즈쿠의 시합으로 이번 대회의 베스트 8이 결정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텔라는 1승으로 준결승에 진출하게 되었으니 7명이라 해야 할까.

그 7명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맹자(猛者)들 뿐.

먼저 스텔라 자신과, 그녀의 학우인 잇키, 그리고 시즈쿠 세 명.

잇키 일행 신세대들과, 아카츠키라는 신 세력의 등장으로 유력한 선수가 계속해서 탈락해 나가는 도중,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로쿠존 학원의 '강철의 사나운 곰' 카가 렌지.

스텔라와 등급을 나란히 하는, 유일한 A급 기사. '바람의 검제' 쿠로가네 오우마.

그리고 정체 모를 능력으로 2회전까지도 부전승으로 끝낸 '흉운' 시노미야 아마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건... 이 변태라.."

스텔라가 지긋이 노려보듯 바라보고 있던 발치엔, 붕대로 몸이 둘둘 묶인 푸석푸석한 금발의 소녀, 2회전을 말 그대로 '만화경'과도 같은 변환자재의 노블아츠로 압승한, 사라 블러드릴리의 모습이 있었다.

잇키를 누드 모델로 삼겠다는 목적이 있던 사라는 '일도나찰'의 반동으로 잇키가 캡슐을 이용할 것이라 예측하고 의무실로 찾아왔지만, 옷에 손을 댄 순간, 이 사태를 예측해 의무실로 찾아온 스텔라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짓까지 해 놓고도, 사라는 스텔라의 말투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변태가 아냐. 아티스트라고 불러 줬으면 좋겠어."

"너 따윈 에로티스트로 충분해! 정말.. 방심할 틈조차 없다니까!"

"어째서... 어제는 협력해 줬으면서.."

사라의 말에 스텔라는 "윽.." 하고 숨이 막힌 듯 쓴 표정을 지었다.

"화, 확실히 어제는 황궁에 나와 잇키의 그림을 그려 준다는 악마의 속삭임에 부끄럽게도 마음이 빼앗겨 버렸지만.. 하루동안 머리가 식었어. 확실히 당신 정도 급의 화가가 잇키와 내 초상화를 그려준 다는 건 솔직히 마음이 끌리긴 하지만, 역시 잇키가 싫어하는 한 그런 건 절대로 안 돼!"

"싫어하니까 자는 틈에 해 두려고.."

"그게 더 나빠!!"

스텔라는 눈을 부릅뜨며 발치에 있던 사라의 등을 밟았다.

"아얏.. 아야야야야...! 부러져.. 부러져버려...!"

별로 힘을 주지도 않았음에도, 사라는 진심으로 괴롭다는 듯 비명을 흘리고 있었다.

규격 외 급으로 강한 능력을 가진 탓에 아카츠키 학원의 멤버로서 선출된 사라였지만, 그녀는 애초에 전투 요원이 아니다 보니, 평소의 영양 부족과 운동 부족, 거리고 더 나아가서 선천적인 빈약 체질이 합쳐져 몸이 그다지 강하지 못했다.

"이 정도로 앓는 소리를 내다니, 진짜 약하네."

"난 화가니까 부러진 뼈를 용접하는 암컷 고릴라와는 달리 섬세해."

"말은 조심해서 하는 게 좋을 거야. 난 잇키와 관련된 일 이전에 너에겐 빚이 있으니까. 계속 그렇게 까불다간 뭘 할지 모른다고오???"

"뀨우우우우우~~~~~~~!?!?"

스텔라는 이마에 분노의 핏대를 만들어내며 사라를, 마치 가공해놓은 햄처럼 묶여 있던 붕대를 힘껏 잡아당겼다. 규격 외 급의 완력으로 조여 오는 붕대는 용서 없이 피부에 파고들었고, 뼈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선천적으로 약한 '피투성이 다빈치'에게, 이 고통은 견딜 수 없었다.

뭐, 그래도 스텔라 쪽도 설령 상대가 그 아카츠키 학원의 멤버라 할지라도, 대회 참가자를 링 밖에서 부상을 입힐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하고 손을 놓은 뒤,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애초에 왜 그렇게까지 잇키의 누드에 매달리는 거야? 내 기억으로는 '마리오 로소'의 작풍은 좀 더 폭이 넓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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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화도 있지만, 풍경화부터 종교화까지. 묘사의 방법도 곡상화에서 사실화까지, 형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화가. 그것이 스텔라가 알고 있는 '마리오 로소'였다.

그런에도 어째서 그렇게까지 남성의, 그것도 알몸의 그림에 매달리는 것인가.

그 질문에, 사라는 잠시 침묵한 뒤, 중얼거리듯 답했다.

".....어떻게 해서든 완성해내고 싶은 그림이 있어."

"그림?"

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이 평생을 걸쳐 그려낸.. 그래도 결국 완성하지 못한 메시아의 구세를 그려낸 그림. 그걸 완성해내기 위해선... 그의 협력이 필요해. 내 감성이 그리 소리치고 있어."

"그러니까, 그 미완성 그림에 잇키를 모델로 삼아 그려 넣어 완성시키겠다는 거야?"

"응."

"그럼 오우마 같은 사람한테 부탁해 보면 되잖아. 얼굴도 닮았고, 체형은 그 쪽이 더 좋잖아? 누드화를 그릴 거면 그 쪽이 더 그림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오우마는.. 아니야. 확실히 외견은 닮았지만, 그에겐 부드러움이 없어. 있는 건 상궤를 벗어날 정도로 단련된 강함 뿐. 그건.... 그 그림의 공백... 중심을 장식할 메시아의 모습에 어울리지 않아. ......당신도, 이 대회에서 우승을 목표로 삼고 있으니 준우승으론 납득할 수 없을 테지."

".....뭐, 그건 그렇지."

"그것과 같아. ......그 그림을 완성시키는 건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야. 타협 따윈 불가능해. 할 생각도 없어. 당신들이 싸움에 목숨을 거는 것과 같아. 나도... 그림에 목숨을 걸고 있으니....까."

뚝뚝 끊기는 나오는 사라의 말.

목소리의 톤도 낮았고, 그 억양도 낮았지만, 그녀의 말엔 단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그 허약한 몸에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강철 같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 심지가 느껴졌다.

거기에 스텔라는... 다소의 호감을 느꼈다.

솔직히, 싫진 않았다.

이런.. 자신의 목표를 향해 똑바로 나아가는 사람은.

".......당신이 보통내기가 아닌 열의로 그림에 몰두하고 있다는 건 잘 알았어. 에로티스트라고 말한 것도 취소할게. 하지만 역시 다름아닌 잇키가 싫다고 하니까 안 돼. 어떻게든 그리고 싶다면, 먼저 잇키를 어떻게든 설득해내야 할.....?"

말하고 있는 도중, 문득 스텔라는 알아챘다.

발치의 사라가 조금씩 떨고 있는 것을.

이제 붕대를 당기던 손은 완전히 놓았을 텐데..

"왜 그래? 왠지 떨고 있는데?"

".....이거 풀어 줘."

"안 돼. 풀어 주면 또 잇키한테 달라붙을 거잖아?"

"알았어... 그럼 안 풀어도 되니까.."

"되니까?"

"요강을 가져다 줘."

"그걸 먼저 말해!!!!!!!!"

"그리고 팬티도 벗겨 줘."

"그대로 일 볼 걸 전제로 이야기 진행시키지 말라구!? 여자로서 그 선은 넘으면 안 되잖아!"

"딱히.. 이런 건 아틀리에에서 밤샘 작업을 할 땐 언제나..."

"그 이상 쓸데없는 말 했다간 입을 꿰매 버릴 거야!! 잠깐 기다려 봐! 지금 풀 테니까...!"

스텔라는 쓸데 없이 냉정한 상태인 사라를 보고 오히려 당황해하면서, 사라를 묶고 있ㄲ는 붕대를 풀려 했다.

하지만..

'어, 어라....? 이거.. 어떻게 묶었었더라?'

생각도 않고 칭칭 동여맸기 때문에, 어디를 어떻게 하면 풀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민하고 있을 시간 따윈 없었다.

"여, 여기인가..?"

일단 감에 맡겨 붕대를 당겨 봤다.

그러자

"꺄읏!?"

붕대의 압박이 '꾸우우우욱' 하고 힘이 더해져, 사라의 커다란 가슴을 짜내려는 듯 파고들었다.

"....괴, 괴로 워...... 꾸우..."

폐가 압박되어, 사라는 눈에 눈물을 맺은 채 괴로운 듯 신음소리를 흘렸다.

"미, 미안! 잘못 당겼어! 에에... 그럼 이건가!?"

그 뒤에도, 스텔라는 닥치는대로 사라를 묶고 있던 붕대를 잡아당겨 봤지만, 전부 다 꽝이었다. 스텔라가 잘못된 붕대를 당길 때마다, 붕대는 '꾸우우욱' 하고 한 층 더 강하게 사라의 몸에 파고들어, 끝내는 사라의 가슴을 가리고 있던 앞치마를 훌렁 들어올리는 꼴이 되어 버렸다.

이젠 유두에 언저리에 걸쳐 아슬아슬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의, 정말 심한 꼴이 되어 있었다.

"뭐, 뭔가 엄청난 꼴이 되어 버렸네.."

".........그, 그렇게 조이면... 정말로.... 터져 버려......"

"안 돼애에에에엣!! 터지는 건 안 돼! 정말 수습 불가능한 사태가 되어 버린다구, 그랬다간!!"

가속도적으로 악화되어가는 이 사태에 혼란에 빠져 비명을 내지르는 스텔라.

그 목소리는 돔 내의 의무실에 크게 울렸고..

'.....으응..'

옆에서 자고 있던 쿠로가네 잇키의 의식을 깨우게 만들어버렸다. 그는 잠에 취한 눈을 부비적거리며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난 뒤

"으음.... 어라? 스텔라.. 여기서 뭐 해?"

그의 시야는 괴로운 듯한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는 사라와, 그녀의 풍만한 몸을 붕대로 묶고 있는 연인의 모습을 사로잡게 되었다.

"으엑!? 진짜로 뭐 하는 거야!?"

"이, 잇키!?"

눈을 뜬 잇키를 본 스텔라의 표정에 초조함이 더욱 짙어졌다. 이 엽기적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 것인가, 하고. 하지만, 지금은 이 쪽이 말 그대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스텔라는 사태 설명을 뒤로하고, 지금의 상황만을 설명했다.

"크, 큰일 났어! 사라가 터질 것 같다는데 이 붕대가 안 풀려!"

"지금 이 상황에 대해 어디부터 짚고 넘어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붕대를 풀면 되는 거지? 것보다 풀리지 않으면 그냥 잘라 버리면 되지 않아?"

"그, 그거야!"

너무 초조해 한 나머지 그런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한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며, 스텔라는 '비룡의 죄검'을 붕대와 스텔라의 피부 사이에 끼워넣은 뒤, 붕대를 잘라내고 사라를 의무실에서 쫓아냈다.

"자, 빨리! 다 풀렸으니까 빨리 갔다 와!"

"응...."

그리고 아슬아슬한 발걸음으로 화장실로 향하는 사라를 보고, 그녀는 다시금 잇키를 바라봤다.

"고마워, 잇키. 덕분에 최악의 사태를 면했어."

"그래, 그랬구나.. 그거 다행이네."

".....자, 눈 앞의 문제가 해결된 참이니 왜 그런 상황이 되어 버렸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게 해 줬으면 좋겠는데.."

"아냐, 됐어. 어쩐지 알게 됐으니까."

"에? 정말로?"

"방금은 잠에 취해서 머리가 혼란해서 그랬지만, 상황을 보면 일목요연했어. 거기에 다른 누구도 아닌 스텔라니까. 이심전심이라고까진 할 수 없어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지."

그리 말하며 미소짓는 잇키.

그 잇키의 반응에, 스텔라는 휴유,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꽤나 특수한 상황이었던 탓에, 이상한 오해를 사게 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참이니까.

"그, 그래.. 그럼 다행이네."

스텔라는 이해력이 좋은 애인에게 감사하며, 얼굴에 기쁜 미소를 만들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하는 둘 사이의 관계가 기뻤으니까. 그런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스텔라의 손을, 잇키는 살짝 부드럽게 쥔 뒤 어디까지나 성실한 자애에 가득한 눈을 향하며 말했다.

"응. 그러니... 스텔라. 그런 건 애인 끼리만 하기로 하자. 난 스텔라가 어떤 애호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싫어하거나 하진 않을 테니까."

"전혀 안 전해 졌잖아아아아아!?"

표정의 일변.

쥐여진 손을 힘껏 뿌리치며 스텔라는 절규했다.

역시 이 오해는, 꽃다운 소녀로서 버틸 수가 없었다.

"잇키! 그게 아냐! 오해라구! 난 여자애를 묶어 대며 기뻐하는 그런 취미는 없어! 그건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해야 할까, 오후에 있을 시합을 생각해 보면 '환상 형태'로 체력을 깎는 것도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이 붕대를 이용한 것뿐이고, 딱히 내가 좋아서 한 게...!"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말하다 혀를 깨물 것 같았지만, 그래도 스텔라는 필사적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런 스텔라를 보고, "하하" 하고 잇키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농담이야. 알고 있어. 날 사라에게서 지켜 준 거겠지?"

"뭣! 아, 알고 있었으면서 날 놀린 거야!? 잇키, 너무해!"

잇키가 일부러 짓궂은 말을 했다.

그 사실에, 스텔라가 삐친 표정으로 뺨을 부풀렸다. 그에 대해 잇키는, 살짝 짓궂은 표정을 짓고 부풀어오른 그녀의 뺨을 찌르며

"어제 내 방에서 쫓겨난 답례."

"우.."

그 말을 들은 스텔라는, 할 말이 없어졌다. 거기다 화가 난 기분은 순식간에 날아가고, 불안해졌다. 어쩌면, 자신의 경솔함이, 스텔라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잇키의 미움을 산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스텔라는 불안한 듯한 눈으로 물어 왔다.

"........혹시.. 많이 화났어?"

"아냐. 스텔라가 부풀린 뺨을 찌르고 있는 게 재밌어서, 이제 신경 안 써."

"그게 뭐야, 정말.."

휴우, 하고 안도하는 듯한 한숨을 내쉬는 스텔라는, 자신 쪽에서 잇키의 손가락을 향해 자신의 뺨을 콕콕 가져다댔다. 반성하고 있어요, 라는 뜻의 바디 랭귀지인 듯했다.

잇키는 그녀의 살짝 복숭아빛으로 물든 뺨의 부드러운 감촉을 즐긴 뒤, 손가락이 아닌, 손바닥으로 그녀의 매끄러운 뺨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피부는 어딜 만져도 매끈했고, 손가락에 걸리는 부분 따윈 아무 데도 없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의 피부처럼 감촉이 좋았다. 그러니 자신도 모르게 언제나, 잇키는 스텔라의 피부를 만지는 데에 푹 빠져버렸다.

하지만, 스텔라도 그 행위가 마음에 드는 듯, 기분좋은 듯 눈을 감은 채, 애무를 재촉하듯 잇키의 손바닥에 뺨을 비벼댔다.

"스텔라, 마치 고양이 같아."

"냐아~♥"

달콤한 목소리로, 잇키에게 장난 섞인 소리를 내는 스텔라.

사랑하는 연인과 단 둘의 시간. 이런 짧고 사소한 시간마저, 둘에게 있어선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의무실 문이 열리며, 사람이 들어오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갑작스런 방문자에 움찔, 하고 어깨를 떠는 둘.

한 편,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은 스텔라의 뺨에 손을 얹은 채 굳어 있는 잇키를 바라보며

"......아무래도 난 언제나 등장하는 타이밍이 나쁜 것 같군."

억양이 적은, 하지만 묵직한 울림이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 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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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말로 답할 상태가 아니었다.

너무나도 놀란 탓에, 사고가 일시적으로 쇼트 상태에 놓여 있었으니까.

어째서냐면,, 지금 이 둘 앞에 나타난 건

"거, 거짓말...!"

"아, 아버..지..!"

쿠로가네 잇키의 친아버지이자, '철혈'이라는 별명을 지닌 마도기사.

쿠로가네 이츠키였으니까.

"회, 회장에 와 있었구나? 몰랐어.."

"나라 전체가 나서는 이벤트다. 일본 지부의 우두머리인 내가 있는 건 당연하지. 거기에, 자신의 아이가 3명이나 출전하고 있으니 더욱 당연하지."

"그, 그건 그렇구나. 아, 아하하.."

갑자기 나타난 자신의 아버지에게 응대하는 잇키.

하지만, 그 반응은 너무도 어색했고, 미소짓는 얼굴도 어딘가 경직되어 있었다. 그것도 그럴 터였다. 애인과 나누던 사랑의 밀회를 들켜버렸으니까.

그 부끄러움은 진짜 장난이 아니었다.

남자인 잇키가 그렇게 느낄 정도였다.

.......잇키 옆의 파이프 의자에 앉아 있던 스텔라의 안색은, 정말 엄청난 꼴이 되어 있었다.

"~~~~~~~~~~~~으읏.."

작은 양주먹을 무릎 위에 둥글게 말아쥔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스텔라. 그 얼굴은, 귓구멍에서 불이 뿜어져나올 정도로 새빨갰다. 엄청난 수치심으로 인해 머리가 삶은 듯 뜨거웠고, 눈이 돌아갈 것만 같았다.

잇키와 처음 만났을 때, 옷을 갈아입던 모습을 보였을 때에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냐구..!'

타인이라면 몰라도, 하필이면.. 아직 인사도 못한 연인의 부친에게 그런 한심한 꼴을 보여 버리다니.

몇 분 전의 '냐아~' 라는 말을 지껄인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아마도, 아니. 틀림없이 멍청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첫인상으로는 최악의 부류에 속하는 것이다.

'우아아...!'

솔직히 잇키의 부친에겐 악감정밖엔 없었다. 그가 잇키에게 벌여 온 수많은 처사. 그 어느 하나도 스텔라는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애인의 부친이다. 더불어 기사연맹 일본 지부의 장관이기도 하다. 잇키의 여자친구로서, 그리고 버밀리온의 제 2황녀로서도 이대로 멍청한 여자라는 이미지를 심어놓은 채로는 안 된다.

어떻게든 면회해야만 한다.

하지만 어떻게?

푹 익은 머리론 사고가 제대로 돌지 않았다.

그렇게 혼란스러워 하는 스텔라를 향해, 이츠키가 말을 걸었다.

"스텔라 공주님."

"아, 예엣!?"

튀어오르듯 고개를 들며, 스텔라는 이츠키를 바라봤다."

그 순간, 이츠키가 그녀를 향해 깊이 머리를 숙이며

"처음 뵙겠습니다. 스텔라 공주님. 전 쿠로가네 잇키의 아버지 되는, 쿠로가네 이츠키라고 합니다. 제 아들이 언제나 신세를 지고 있음에도 이렇게 늦게 인사를 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버님이 먼저 인사를 하게 해 버렸어!!!'

애인의 부모님이 먼저 인사를 하게 만드는 여자.

면회는 커녕, 대실책이었다.

그게, 완전한 마무리가 되었다.

계속되는 실책에, 스텔라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팡! 하는 터지는 소리가 났고, 푸쉬쉬.. 하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 이럴 때.. 일본의 예의 작법으론 어떻게 말하는 거였더라!?'

에에.. 으음.. 하고, 필사적으로 손윗사람에 대한 경의와 성의를 나타내는 방법을 생각해내려 하는 스텔라. 하지만, 실책에 이은 실책 탓에 찾아오는 부끄러움과, 애인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한다는 미지의 압박감에, 여전히 푹 삶은 머리로는 잘 생각이 돌지 않았고

"스텔라 버밀리온입니다! 하찮은 녀석이지만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쩐지, 이상한 일본어를 써 가며 그 자리에서 깊이 오체투지를 할 기세로 절을 해 버렸다.

"....스, 스텔라? 거기선 하찮은 녀석이 아니고, 미거한 저라던가,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 그리고 그 절은 좀 너무 지나친 것 같은 느낌이.."

"아......"

잇키의 귀엣말과 함께 날아온 지적에, 스텔라의 현기증이 한 층 더 격해졌다.

더불어 그 기묘한 인사에

".......후.."

이츠키의 입술에서, 작지만 확실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좁고 고요한 의무실 속에서, 그 소리는 당연히 스텔라의 귀에도 들렸고

"~~~~~~~~~~~~~~~~~~으읏!!"

스텔라의 어깨가 떨렸다. 너무도 한심한 자신의 모습에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았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스텔라의 어깨에

"......스텔라. 그렇게 신경 안 써도 돼."

잇키는 부드럽게 손을 두르고, 그녀를 위로하며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아버지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스텔라는 갑자기 아버지랑 만나서 긴장하고 있어. 그걸 비웃는 건 좀 심한 거 아냐?"

이 잇키의 반응에, 이츠키는 솔직하게 사죄로 답했다.

"아아, 미안하군. 딱히 비웃거나 그런 건 아니야. 그저... 이전에 지부에 구류되었을 때, 네가 스텔라 공주님의 아버지 분과 인사를 하기 위해, 오체투지 절의 연습을 하고 있던 걸 떠올려서 말이지. 그게 좀 웃겼기에. 훗.. 정말이지 사이가 좋구나."

"윽!? 잠깐, 아버지!?"

".....잇키도, 나랑 같은 걸 했었어?"

"~~~~~으윽!"

갑자기 부끄러운 과거가 들춰진 잇키는, 겸연쩍은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 태도가 스텔라의 물음에 긍정을 표시하고 있었다.

'잇키도...'

"하핫.."

늠름하고 멋진 표정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던 이 남자가, 자신이 모르는 데에서 몰래 자신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스텔라의 뺨에 미소가 지어졌다.

무겁게 내리깔렸던 긴장감이 완전히 풀렸다.

그 타이밍을 재고 있던 건지, 이츠키는 다시금

"정중한 인사 감사드립니다. 잇키와 계속해서 사이좋게 지내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 말하고 스텔라에게 악수를 요청했다.

그 악수에, 스텔라도 튀어오르듯 응했다.

"아, 넷!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이츠키의 커다란 손을 쥔 순간, 생각했다.

거칠고 큰 손이, 잇키와 닮았다, 고.

그리고 은은히 배어나오는 따스함도.

'어쩐지.. 이미지랑 달라...'

좀 더 바위 같은, 무기질적이고 차가운 손을... 그런 남자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아들에게 그런 심한 처우를 내릴 정도의 인물이었으니까. 상상과 현실의 차이에, 스텔라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한 편, 애인 앞에서 예기치 못한 부끄러운 과거를 들춰내어져버린 잇키는, 아직은 살짝 수치심이 남아 있는 말투로

"그래서, 아버지는 오늘 뭐 하러 여기에 온 거야? 혹시 컨디션이라도 안 좋아진 거야?"

이츠키를 향해, 살짝 걱정스럽다는 말투로 물었다.

여기는 의무실이다.

여기로 왔다는 이유라면, 컨디션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 말에 이츠키는 스텔라와 나누었던 악수를 푼 다음, 부정했다.

"아니. 네게 용무가 있어서 왔다."

"내게..?"

"그래. 쿠로가네 잇키에게, 쿠로가네 가문의 당주로서의 용건이다."

그 말에 잇키는 물론, 스텔라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나타났다. 지금까지의 이츠키의.. 쿠로가네 가문이 벌여 온 행동 중 잇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따라서 스텔라는, 잇키의 팔 가까이 몸을 가져가, 그를 지탱해주려는 듯 자리에 섰다.

쿠로가네 당주로서의 용건.

즉 그건, 잇키의 가정사였다.

한 순간, 부외자인 자신은 방에서 나가는 게 좋을까, 하는 상식적인 생각을 했지만

'이제... 부외자 같은 게 아니니까...!'

스텔라는 그 생각을 내던졌다.

자신은 잇키의 연인... 아니, 가족이다.

'뇌절'과의 대결 후, 그런 관계가 되었다.

그렇다면, 쿠로가네 가문이 무슨 짓을 해 오건, 이번엔 자신이 잇키를 지키겠다.

이 이상 그를 상처입히게 놔두진 않겠다.

그런 의사표현을 하듯, 그의 곁에 남아 이츠키를 견제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츠키도 또한 그런 스텔라의 의사를 타오르는 눈동자에서 읽어낸 뒤, 퇴출을 권유하지 않은 채 용건을 고했다.

독특한, 마치 납 같이 무겁게 울리는 목소리로.

"잇키. 난, 너와 가족의 인연을 끊으려 생각하고 있다."

잇키와 쿠로가네 가문이 관련된 모든 문제에, 결정적인 결착을 지을 제안을.

"뭣.......!"

제시되어 온 그 절연 제안에, 스텔라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잠깐, 왜 그런 일을...!"

"칠성검무제 제 2회전을 돌파하고... '워스트 원', 아니지. '어나더 원'이라는 이름은 전국 베스트 8이라는, 한 종류의 권위를 갖게 되었어. 이제 나라는 F랭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이런 존재를 숨기기엔 쿠로가네 가문의 힘으로도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연을 끊어 버리자, 그런 생각인 거지. 아버지?"

한 편 잇키는 스텔라보다 꽤나 냉정한 목소리로 그 이유를 물어왔다.

거기에, 이츠키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대부분 틀린 점은 없군. 쿠로가네는 사무라이 시대부터 이 나라의 블레이저의 질서로서 존재해 온 가문이다. 이 가문에, 자신이 솔선하여 서례라는 질서의 기준을 부수려는 자가 있으면 곤란하다. 이대로 널 놔두면, 수많은 자들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려 하겠지. 널 동경하고, 널 목표로 삼는 자들이 나타날 테지. 네 맹위로운 결투를 하는 모습은, 그걸 유발하는 위험한 매력을, 유혹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무모한 도전이나 욕망이 가져다줄 결말은 어느 쪽이건, 개인에게도, 조직에게도 이득이 안 돼. 알겠나? 너라는 존재는 이미, 쿠로가네 가문에 있어서 단순한 '무익'한 자가 아니게 됐어... '어나더 원' 쿠로가네 잇키는, 질서에 '유해'한 존재인 것이다."

"헛소리하지 마!!!!!"

그 순간, 카앙! 하고 파이프 의자를 쓰러뜨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스텔라가, 불타오르는 듯한 머리칼에서 빛을 내뿜으며 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두 눈에 분노의 불꽃을 일렁이며, 멱살을 잡을 기세로 소리쳤다.

"내가 바보였어..!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통할 것 같은 사람일 거라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고! 당신, 그러면서 사람 부모라고 할 수 있어!?"

스텔라의 안광은 충혈된 맹견의 눈보다도 사나웠고, 위압적이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면 그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도 열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상대도 기사연맹 일본 지부의 장관을 맡는 남자이다. 이츠키는 스텔라의 안광을 받고도 목소리 하나 바뀌는 일 없이 답했다.

"조용히. .....하지만 그 이전에, 전 이 나라의 질서를 맡는 자입니다, 공주님. 그걸 뒤흔드는 건 그냥 두고볼 수 없고, 그걸 뒤흔드는 자도 결단코 용서치 못하죠. '철혈'이라는 이 별명과, 제 아버지에게서 받은 '이츠키(嚴)'라는 이름을 걸고, 전 엄격한 질서를 지키는 수호자로서 있어야만 합니다."

사납게 일렁이는 불꽃 같은 스텔라와는 대조적으로, 묵직하게 빛나는 회색 눈. 그러나, 그 안쪽에 깃들어 있는 의사의 강도는, 강철 그 자체였다.

그 의사의 경도는, 스텔라에게 대화 따윈 무의미하다는 걸 이해시키기엔 충분했다.

"이게...!"

"스텔라."

화를 참지 못해 멱살을 잡으려는 기세로 달려들려 한 스텔라를, 잇키가 제지했다.

"그만 해, 스텔라."

"하지만!"

"고마워. 날 위해서 그렇게까지 화내 줘서. 하지만... 여기선 좀 참아 줬으면 해."

"~~~~~~~크윽!"

다른 누구도 아닌 잇키가 말린다면, 스텔라도 그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갈 곳을 잃은 분노를 담아 벽을 주먹으로 후려치며, 이츠키에게 등을 돌렸다. 이 이상 저 남자를 보고 있다간, 자신을 억누를 수 없게 되어 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런 스텔라를 보고, 잇키는 다시금 작게 "고마워" 하고 말한 뒤, 이츠키를 돌아봤다.

"......농담으로 하는 말은 아니지?"

"물론이지. .....네게 있어서도 우리들의 영향 아래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기회이지. 절연한 사람의 진로를 계속해서 막고 있을 정도로 난 한가롭지도, 이상한 취향을 가진 것도 아니야. 둘 다에게 이익이 되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만."

이츠키의 목소리는, 어디까지나 진심이었다.

실제로, 이츠키가 말한 대로 이 제안은 잇키에게 있어서도 이점이 있었다. 이젠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것조차 이루어지지 않을 상대. 연을 뚝 끊어버리는 편이, 서로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 이런 이야기를 그래, 알았어. 하고 바로 답할 수는 없잖아."

잇키는 이 자리에서 즉답을 피했다.

거기에, 이츠키는 이해한다는 뜻을 밝혔다.

"알았다. 재촉할 마음은 없어. 나중에, 다시 찾아오도록 하지."

그리 말한 뒤, 이츠키는 의자에서 일어난 뒤 의무실을 나섰다.

납처럼 무거운 공기를 남기고.

"아! 진짜 열받아! 대체 뭐냐고, 저 녀석은!"

그리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 소리치면서, 이츠키가 닫고 나간 문을 향해 베개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분노로 충혈된 눈으로 잇키를 노려보았다.

"잇키! 저거, 진짜 너네 아빠 맞아!? 사실은 다른 애인의 아이라던가, 그런 복잡한 설정 같은 거 있는 거 아냐!?"

"하지만 얼굴은 쏙 빼닮았으니까, 혈연은 있을 거라 생각해. 아마도, 응. 그럴 거야."

지금까지 자신에 대한 취급을 떠올리면 자신이 없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뭐, 아버지의 말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야. 아버지는 일본에 있는 모든 기사를 통솔하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니, 그 모두가 나처럼 날뛴다면 큰일이 나겠지."

분노에 날뛰는 스텔라를 향해, 아버지 대신 변명을 해 주는 듯한 말을 하는 잇키. 거기에, 스텔라는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뭐야, 잇키. 꽤나 냉정하잖아. 연을 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그 말에, 잇키는 사랑스러운 감정을 억누른 눈빛으로 스텔라를 바라보며 답했다.

"뭐, 그렇지. 이전이라면 당장에 풀이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겐 이제.. 내 가족이 되어 준다고 말해 준 여자애가 있잖아."

그렇다. 이제 그는 이전의 '윤리 위원회'에 납치되었을 때와는 다르다. 설령 아버지와의 연을 끊는다고 하더라도, 그에겐 가족이 되어 줄 거라 약속한 상대가 있다. 그러니 이츠키의 제안을 듣고 놀라긴 했지만, 이성을 잃지는 않았다. 옆에 서 있는 이 소녀의 곁이, 바로 내가 있을 장소다, 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우으~~~~읏!"

한 편, 스텔라는 그 올곧은 신뢰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자신이 지금 얼마나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을지 자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스텔라를 미소짓고 바라보며, 잇키는 말했다.

"거기에, 솔직히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 .....아니지, 원래라면 이런 이야기는 쿠로가네의 집을 뛰쳐나온 내가 아버지에게 먼저 꺼내야 할 화제였어. 이건 내게 있어서도 언제까지나 피하고만 있을 수 없는, 아니. 피해선 안 될 문제이니까."

그게 쿠로가네의 모든 것에 반발하고, 자신의 길을 나아가기로 결심한 자신이 매듭지어야 할 일이다, 고.

"......잇키는 그 남자와 연을 끊을 거야?"

"그럴 생각이었어."

"이었어?"

애매한 그 말에, 스텔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각오도 해 뒀었어. .....하지만 아버지한테 그 말을 들으니까.."

즉답할 수가 없었다. 이 외에는 답이 없다고, 알고 있음에도.

그리 말한 잇키는, 자조하는 표정을 띠었다.

"어째서일까... 지금 이 상황이 되고서도 난.. 그 사람을 진심으로 싫어할 수 없어. 이런 걸 부모님에게서 졸업하지 못하는 아이라고 부르는 걸까?"

"잇키..."

"하지만 괜찮아. 머지않아 답을 해 줄 생각이야. ......아니, 답은 이미 나와 있어. 남은 건 그 답을 전해줄 뿐. 나와 아버지의 길은, 결코 교차하지 않아. 어디까지 나아가도 평행선인 채일 테니, 제대로 결착을 지어야겠지."

"과연 그럴까?"

" "??" "

그 제 3자의 목소리는, 스텔라가 던진 베게의 충격으로 반 정도 열려 있던 문 틈으로 들려왔다. 거기엔 방금 의무실을 나간, 단정한 용모를 완전히 망치는 복장을 한 소녀, 사라 블러드릴리가 서 있었다.

"너, 여기로 돌아온 거야?"

"어쩐지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그 상식을 좀 자신의 TPO에 써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상반신 누드에 앞치마라는, 상식을 벗어난 사라의 옷차림을 한 번 흘겨본 뒤, 스텔라는 어이없어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라 씨. 방금 뭔가 말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별로."

잇키의 물음에, 사야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실히 그녀는 '과연 그럴까?'라는 말을, 문을 열며 말했다. 그건 틀림없이, 잇키의 사정에 그녀 나름의 견해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껴들어 올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잇키도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자신의 사정에 대해 의견을 구할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니고, 그만큼 마음을 연 사이도 아니니까.

아니, 그것보다...

"그런 것보다, '어나더 원'."

"거절할게요."

"아,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말하지 않아도 눈을 보면 다 알아요!"

얼굴은 인형과도 같은 무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는 욕망과 호기심에 번뜩이고 있었다. 그 눈은 어제, 그리고 파티에서 마났을 때와 같은 야수의 눈빛이었다. 따라서 잇키는 사라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의 말을 거절로 침묵시켰다. 기선제압을 당해 말문이 막힌 사라.

하지만, 그녀도 흥미본위로 잇키를 찾아오고 있는 건 아니다.

그녀에겐 그녀의, 물러설 수 없는 사정이 있다. 그러니 바로 마음을 바로잡고

"사실 모델은 이제 안 해도 된다고 말하려고 했어. 하지만 넌 그걸 거절했지. 그렇다면..."

"초등학생이나 생각할 법한 논리를 들고 나와도 안 되는 건 안 돼요!"

하지만 잇키도 물러서지 않았다.

아니, 물러설 수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고명한 화가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 앞에서 벌거벗은 몸이 되는 건 너무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건이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전 절대로 누드 모델 같은 건 안 할 거에요!"

"..........우우~"

"원망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봐도 안 돼요!"

"우~ 우~"

"더욱 그렇게 바라봐도 안 돼요!"

그런 잇키의 철저한 거절에, 사라는 어깨를 툭, 하고 떨궜다.

".....알았어."

"드디어 포기해 주시는 건가요?"

"잠들었을 때 다시 올게."

"알긴 뭘 알아요! 그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어!"

잇키는 반 정도 비명으로 들리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싸맸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

저 사라는 문을 잠그고 있다 하더라도, 아니... 그걸 넘어서 사방에 콘크리트를 발라 굳힌 블럭 안에 있다 하더라도, 문을 만들어 들어올 수 있는 능력자이다. 그런 상대가 야습을 노리고 있다면, 이 중요한 대회에서 밤에 편히 잠들 수가 없을 것이다.

아버지인 이츠키와의 관계도 그렇지만, 이 소녀와의 기묘한 관계도 얼른 매듭을 지어야 할 과제가 된 것이다. 가능한 한 빨리, 포기를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 잇키는 '다시 찾아오기' 위해 의무실을 나서려 하던 사라의 어깨를 움켜잡고, 그녀의 발길을 돌렸다.

"잠깐만오, 사라 씨! 몇 번을 온다 하더라도 저는..."

하지만

".........에?"

다음에 이어진 말은 얼어붙어 있었다.

어째서냐면, 사라의 몸을 돌린 순간, 사라가 유일하게 위에 걸치고 있던 앞치마 끈이 주륵, 하고 흘러내려

출렁

두 메론 같은 거대하고 하얀 가슴이 완전히 피로되었다.

"이, 잇키!! 무, 무무무무무무슨 짓이야!?"

"아, 아니야!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게다가 내가 한 게 아니야! 어깨를 잡았는데 제멋대로...!"

"아~ 앞치마 끈, 끊어졌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소란스럽게 떠드는 둘의 옆에서, 사라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떨어진 앞치마를 주워든 뒤 그리 중얼거렸다. 자세히 보니 앞치마의 끈 부분이 끊어져 있었다.

"아마 바금 당신이 여러모로 잡아당기다가 끊어진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 당신 탓이야."

"윽. 그, 그러고보니 어쩐지 그런 끈을 잡아당긴 것 같은 기억이.."

그럼 자신의 탓인 것일까.

아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끈 하나가 끊어지는 정도로 완전히 벗겨져버리는 옷을 입고 있는 저 변태가 가장 잘못이 크다. 하지만 지금은 거기에 불만을 표할 상황이 아니라고 스텔라는 판단했다.

"일단 이 이불이라도 두르고 있어! 그리고 네 방 열쇠 이리 줘! 내 탓인 것도 있으니 대신 옷 가져다줄 테니까!"

일러스트

"없어."

"잃어버린 거야? 그럼 프론트에 사정을 얘기하고 방 번호를..."

"그 쪽이 아니고, 옷이 없어."

"대체 왜냐고!?!?!?!? 이상하잖아, 여자로서!!"

"빠는 게 귀찮으니까."

"여자로서 아웃인 정도를 넘어섰잖아!? 섬세 같은 소리하고 있네! 네 쪽이 더 고릴라잖아! 아, 정말!! 그럼 변상하는 셈 치고 내 옷 하나 줄 테니까, 그걸 입어!"

"이런 걸레짝 같은 앞치마에 대한 변상으로 옷을 받다니, 어쩐지 수전노 같은 여자로 보이는 것 같아서 부끄러우니 필요 없어."

"좀 더 다른 데에 부끄러워 할 여지가 산더미처럼 있잖아!!!! 애초에 그런 꼴로는 다음 시합에 나가지도 못한다구! 완전히 방송사고 감이잖아!"

"괜찮아. 끈이 끊어진 것뿐이니 묶어서 응급처치를 하면 아직 쓸 수 있어."

그리 말하고, 사라는 조잡한 손놀림으로 끊어진 끈을 묶어 이은 뒤, 그 앞치마를 둘렀다.

"....내 말 맞지?"

그리고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쭐한 표정을 지어 스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스텔라는 격한 두통을 느꼈다.

'아, 안 되겠어...! 이 여자.. 뭔가 중요한 부분이 결정적으로 엇나가 있어...!'

문제인 건, 그 너덜너덜한 앞치마가 아직 입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게 아니었다. 이런 사소한 일로 방송사고가 나 버릴 법한 이 복장이 문제인 것이다. 이 여자는 그런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아무렇지도 않게 이 끈이 끊어진 앞치마를 입은 채 잇키와의 시합에 나가게 될 것이다.

거기서, 격한 운동을 하게 된다면?

당연히, 조잡스러운 응급처치 정도밖엔 못 해둔 앞치마가 그 운동을 버텨낼 리가 없었다.

일단, 틀림없이 다시 끊어져 흘러내릴 것이다.

그것만이라면 상관 없다.

이 여자의 치태가 전국에 방송되건 말건, 스텔라의 입장에선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혹시, 혹시 만에 하나라도.. 시합 중에 앞치마가 흘러내린 탓에 잇키의 검이 둔해지고, 그게 결과로서 시합의 우세를 좌우하고.. 패배해 버린다면...

'이런 얼빠진 결말 따위, 죽어도 싫다구!?'

농담으로라도 싫었다.

안 그래도 자신이 원인이 되어 잇키에게 불리한 3회전이 열리게 되었다. 이 이상 불안 요소를 늘릴 수는 없었다.

그러니

"결정했어... 지금부터 나와 잇키가 저지를 가져다줄 테니 넌 그걸 입도록 해. 그리고, 그걸 입고 백화점에 갈 거야."

"백화점? 나와 당신이?"

"그리고 또 다른 패션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는 내 친구도 데려갈 거야. 거기서, 네 옷을 사는 거지."

"??? 어째서? 이제 다 고쳤으니 필요 없....."

그 순간, 훙! 하는, 장난이라고 볼 수 없는 풍절음과 함께, 거대한 질량을 가진 무언가가 사라의 귓가를 스쳐, 복도 벽에 꽂혔다.

'비룡의 죄검'이었다.

갑작스런 해의에 놀란 뒤, 얼어붙은 사라.

스텔라는 그런 그녀를 보고, 극상의 미소를 보냈다.

"이런 걸레짝을 입고 이리저리 튀어오르고 하다간 또다른 무언가가 여러 모로 튀어오르게 되겠지~? 뭐, 네가 어떻게 해서든.. 내가 이렇게나 부탁하는데, 어~~~~~떻게 해서든 그런 어이없는 복장을 하고 잇키와의 시합을 하고 싶다면, 만에 하나라도 방송사고가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네 피부와 앞치마를 벗겨지지 않도록 접착시키기 위해 널 지져줄 건데, 그러는 쪽이 좋은 거야?"

그리 고하는 스텔라의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사라는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필사적으로 고개를 붕붕붕붕!! 하고 가로저었다.

"좋아.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야 해? 내 미소는 예쁘니까 알 수 없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 상당히 기분이 나쁘니까, 도망치면 무슨 짓 할지 모른다? 알았지?"

끄덕끄덕끄덕끄덕!

새파랗게 질린 채 고개를 끄덕이는 사라.

스텔라는 그걸 확인한 뒤, 스텔라의 박력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던 잇키와 함께 의무실을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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