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77)

일러스트

"입 닥쳐."

"윽......!?"

그 항의는, 고요한.... 그러나 결코 반대를 용납치 않는 스텔라의 목소리에 가로막혔다. 스텔라는 아마네를 돌아보지 않은 채, 담담히 고했다.

"내 눈 앞에서 이 이상 시즈쿠의 마음을 더럽히기만 해 봐. 그 땐 시합이고 대회고 내 알 바 아냐. 두 번 다시 쓸데없는 입을 놀리지 못하도록 이 자리에서 널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겠어."

아니, 돌아보지 않은 게 아니고, 돌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혹시, 아마네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어 버린다면───

......입술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억누른 분노가, 더는 억누를 수 없게 되어 버릴 것 같았으니까.

'스텔라.....양........'

눈물에 희미해진 시야 속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스텔라의 그 표정을 보고, 시즈쿠는 생각했다. 아마네가 말한 대로, 자신의 욕망대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그 사람을 빼앗아 간 이 여자를 부럽게 여기고, 원망을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했을까.

혹시, 혹시... 그녀가 아주 약간이라도 이보다 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여자였다면...

이렇게나, 이 소녀를 좋아하게 되지 않아도 됐을 것을..

오빠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는 여자로서의 감정과, 오빠가 이 소녀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가족으로서의 감정. 상반되는, 하지만 어느 쪽도 결코 거짓 없는 두 감정에,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고마, 워..... 요............."

스텔라의 손에 의해, 아마네의 구속에서 해방된 시즈쿠.

스텔라가 그 무너지는 몸을 들어안은 순간, 시즈쿠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 인사는 확실하게 말로 나왔을까.

그건, 시즈쿠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대로, 그녀의 의식은 빛 없는 어둠에 잠겼다.

◆◇◆◇◆

그 뒤, 위원회에 의해 감시 영상 체크가 진행되었고, 대기실에서의 소동의 모든 내용은 명백해졌다. .....이상하게도, 음성 데이터가 파손되어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영상엔 쿠로가네 시즈쿠가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노미야 아마네에게 불의의 습격을 가한 순간이 기록되어 있었기에, 아마네의 설명이 옳았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이에 의해 시즈쿠는 극히 악질적인 반칙을 범한 이유로 실격.

시노미야 아마네의 준결승 진출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시즈쿠와 공모자였던 아리스인의 처분은 다행히 '3개월간 공식 시합 출전 금지와 반성문 제출'로 그쳤고, '퇴학'까지는 당하지 않았다.

운영위원회나 교사, 연맹의 직원들도 아마네의 상궤를 벗어난 연전 부전승에 강한 의심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애초에 의심을 한다고 해도, 누구도 그 인과 관계를 입증할 수는 없겠지만.

.....어찌 됐건 이렇게 대기실 소동은 종식되었다.

파란의 3회전은 막을 내렸고, 준결승에 진출할 본 대회 베스트 4가 결정된 것이다.

◆◇◆◇◆

그리고 그 날 밤.

쿠로가네 잇키는 아직 혼수상태에서 눈을 뜨지 못한 쿠로가네 시즈쿠와 아리스인의 병문안을 간 뒤, 호텔 소유의 공원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항목은 극히 간단.

지면에 세워 둔 각목을 절단하는 것뿐.

잇키는 호흡을 정돈하고, 무기를 휘둘렀다.

밤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풍절음.

그 때마다, 각목은 마치 검도의 시범 베기를 할 때처럼 절단되었다. 이윽고 자신의 키 정도의 길이였던 각목이 허리춤 정도까지 짧아졌을 때, 잇키는 손을 멈췄다.

"후우.... 허억..."

그와 동시에, 잇키의 이마에서 폭포 같은 땀이 쏟아졌다. 방금 행한 참격에, 그는 그 정도의 집중력을 쏟아부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할 것이다.

잇키가 손에 들고 있는 무기는..... 디바이스가 아니었다.

평범한, 한 장의 종이.

어디에서나 팔고 있는, 복사용지였으니까.

그렇게, 그는 연약한 종이를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옆면의 선을 세운 채 날카롭게 휘둘러 칼날로 만들어, 종이보다도 훨씬 단단한 강도를 지닌 목재를 절단해낸 것이다.

거기다, 그의 훈련은 이것만으론 끝나지 않았다.

잇키는 땀을 닦고, 호흡을 정돈한 뒤, 다음은 각목이 아닌 쇠파이프를 지면에 꽂고,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종이로, 쇠를 자른다.

그 비상식을, 초인의 영역에 달한 몸으로 이 세상에 허용시켰다.

하지만, 이건 잇키 정도로 자신의 몸을 단련한 자에게도 어려웠는지

"아.."

다음 순간, 아주 약간, 정말로 아주 약간, 밤바람이 강해진 탓에 쇠파이프를 가운데 쯔맊지 잘라낸 지점에서 찌익, 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종이가 찢어져버렸다.

종이의 칼날을 쓰다듬고 지나간 밤바람에 대한 반응이 늦은 탓에, 종이의 칼날이 흐트러져 버린 것이다. 그 실패에 잇키는 한숨을 내쉬고,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안 되겠어. 자신의 몸을 컨트롤하는 데에만 너무 신경을 쏟았어. 외적 요인의 변화에도 신경을 써야겠군."

그런데, 그 때.

"꽤 별난 훈련법이네."

문득, 뒷덜미에 언제나 듣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가로등 빛 아래에서,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연인이 이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스텔라...."

"그거, 무슨 훈련이야?"

"자신의 몸을 정확하게 컨트롤하는 훈련이야. 에델바이스 씨의 검기를 모방한 덕에, 내 전력도 상당히 올랐어. 하지만.... 난 아직 그 검기를 완전히 써내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건 자신의 온갖 동작에 의해 발생하는 에너지를, 한 치의 낭비도 없이 행동이나 공격에 전환시키는 것으로, 주변의 대기를 조금도 진동시키지 않는, 그야말로 신기에 가까운 기술이다.

하지만 아직 잇키의 《모방검기》는 아직 그 영역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의 움직임엔 아직 낭비나 흔들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 훈련은, 더욱 육체를 정밀히 동작시켜, 그런 낭비나 흔들림을 없애기 위한 훈련이야. 에델바이스 씨의 검기를 완전히 써낼 수 있다면, 종이로 쇠를 자르는 것 정도는 간단하게 해내야 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자신의 몸을 아무리 정확하게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외적 요인을 먼저 읽어두고 대응하지 못한다면 결국 낭비가 발생되어 버리니까. 그러니......"

말을 끊은 뒤, 잇키는 발치에 놓여 있던 복사용지 다발에서 종이 한 장을 집어들고, 손가락 사이에 끼운 뒤 마치 수리검처럼 투척했다.

투척된 복사용지는 수평으로 하늘을 날아, 지면에 꽂혀 있던 쇠파이프에 1cm정도 박혀들어간 뒤 구겨져버렸다.

"최종적으론, 자신의 손을 떠나간 물체에도 흔들림 없는 에너지를 실어, 물체를 양단해낼 수 있게 된다면..... 내 검에서도 소리가 사라질 거야."

"정말 어이없는 신기에 가까운 기술이네.."

"응. 굉장해. 에델바이스 씨는 말야. ......좀처럼 따라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현 시점에서도 충분히 놀라운 능력인데 말이지, 하고 생각한 스텔라는, 그 잇키의 말에 답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에 대해 잇키는 그런 스텔라에게

"방금은 고마웠어."

훈련을 멈추고, 고맙다는 인사를 해 왔다.

거기에, 스텔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이라니?"

"시즈쿠를 도와 준 것 말야. 내가 먼저 거기로 달려갔다면, 분명히 손이 나가 버렸을 테니까."

"아아, 그렇구나. 딱히 고맙다고 할 건 없어. ......나도 용서할 수 없었으니까."

잇키를 저기로 먼저 보내면 큰 트러블이 발생할 테니까라는, 그런 사소한 건 그 순간의 스텔라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단순히, 1초라도 빨리 저 남자의 입을 다물게 만들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 무신경하고 제멋대로인 망언을 내뱉던 남자의 입을.

스텔라는.. 시즈쿠와는 결코 원만한 관계가 아니었다.

일상적으로, 충동할 때도 많았다.

같은 남자를 좋아하고 있었으니, 그건 어느 의미론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알 수 있는 것도 있었다.

그건, 그녀가 얼마나 잇키를 깊이 생각해 주고 있는가를.

그러니───

"...저기, 잇키. 시즈쿠는 그 녀석이 한 말 같은 건...."

스텔라는 아마네의 말은 망언이었다고, 그녀를 변호해 주려 했다.

하지만, 잇키는 그걸 제지했다.

"괜찮아. 알고 있었으니까."

"에..."

"....그렇게까지 똑바로 대해 준다면, 이런 나라고 해도 알 수 있어. 시즈쿠가 내게, 동생으로서가 아닌, 이성으로서의 애정을 가져 주고 있다는 것은 말이지.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어. 시즈쿠는 더 많은 걸 내게 주고 있다는 걸 말야."

그건 아마네가 말한, 이성으로서의 애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좀 더 많은, 좀 더 큰, 이 쪽이 면목없을 정도로 수많은 애정이다.

동생이 주는, 친구가 주는, 어머니가 주는, 아버지가 주는, 그리고 이성이 주는...

그녀 혼자서, 잇키가 받지 못했던 모든 애정을, 그녀는 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내겐 아까울 정도의 멋진 애야."

자랑스러운, 그리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동생이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나 자신은 어떠한 짓이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있었다.

"그런 시즈쿠에게, 아마네 군은 상처를 줬어."

그건, 도저히 용서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빚은 반드시 갚아 주겠어. ......내 손으로, 반드시.....!"

눈동자에 푸른 불꽃 같은 고요한 분노를 깃들게 한 채, 잇키는 다시금 새 복사용지를 손에 들고 던졌다. 그건 방금보다도 깊게, 쇠파이프에 박혔다.

"그래..... 그럼 됐어. 잇키가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걸로 좋아."

잇키의 말을 듣고, 오해가 없다는 걸 알게 된 스텔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스텔라를 바라보며 잇키는 따스하게 미소지었다.

"정말 착하구나. 스텔라는."

여기에 스텔라는 뺨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자, 장래에 동생이 될 애를 신경 써주는 건 의붓언니로서 당연한 거잖아!"

평소에 그렇게 투닥거리고 있는 탓에, 순순히 시즈쿠를 향한 호의를 인정하는 건 겸연쩍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솔직하지 못한 상냥함도, 잇키에겐 사랑스럽게 보였기에, 다시금 미소가 흘러나왔다.

"에, 에이, 정말.. 그럼 난 돌아갈게. 이 이상 훈련을 방해하는 것도 미안하고, 내일은 나도 시합이 있으니까."

"알았어. 내일은 드디어 준결승전이네."

"응. 드디어 여기까지 왔어."

그렇다.

드디어.

이제 조금만 있으면, 그 날의 약속은 현실로서 다가올 것이다.

"스텔라나 나나, 내일은 가장 큰 고비가 될 거야. 어느 쪽의 상대라도 보통내기가 아니겠지."

"흥. 딱 좋지 뭐. 그 날의 빚은, 이자를 듬뿍 쳐 줘서 갚아 줄 테니까."

"......오우마 형은 강해. 아마 지금까지 스텔라가 싸워 온 상대 중에서 가장 강할 거야."

"그렇겠지. 하지만───"

말을 끊은 뒤, 스텔라는 잇키의 발치에 있던 복사용지 윗면을 콱 움켜쥐어 들어올린 뒤, 손 안에서 구겨 공을 만들었다.

그리고───

"난, 그보다 더 강해졌어."

그리 고한 뒤─── 전신에 마력을 담았다.

뿜어져 나오는 후광과 열풍.

그 화염의 폭풍 속에서, 잇키는 스텔라의 등에 떠 있던 것을 보았다.

───거대한, 용의 환영을.

'이...건...'

그 직후, 스텔라는 구겨 놓은 종이 공을 지면에 세워 놓은 쇠파이프를 향해 던졌다.

종이 공이 착탄된 순간, 쇠파이프는 찢어지듯 양단되었고, 그래도 기세가 죽지 않은 공은 쇠파이프 뒤에 있던 공원의 콘크리트 벽에 처박혔다.

여기엔 그 잇키라 해도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엄청나네....."

종이를 말아 만든 공의 질량 정도의 물체.

대체 어느 정도의 힘으로 그 공을 던져야 이런 현실이 벌어지는 것일까.

잇키에겐 도저히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그렇게 놀라고 있던 잇키를 바라보며 스텔라는

".....내일은 내 시합이 먼저네. 한 발 먼저 결승에서 기다리고 있겠어. 잇키."

투지에 불타오르는 진홍색 눈으로 한 번 바라본 뒤, 공원을 뒤로 했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엔, 확실한 자신감이 있었다.

스텔라는 사이쿄 네네와의 특훈에서, 틀림없이 큰 힘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잇키는 이전에 상대했을 때, 오우마의 힘을 알게 되었다. 그의 강함을 증명해주는 힘도 또한, 상식의 범주를 넘어서 초연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번 대회의 우승후보.

희대의 A랭크 기사끼리의 괴물 대결은, 틀럼없이 엄청나게 치열할 것이다. 그렇다면, 스텔라가 지니고 있는 강한 힘의 근간도 또한, 밝혀질지도 모른다.

───정말 기대된다.

하지만....

"저기, 스텔라? 멋지게 이 자리에서 퇴장하려는 때에 말하기 좀 그렇지만.... 여기, 공공장소로 쓰는 공원이니까.. 멋대로 파괴하는 건 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내, 내일 시설 사무소에 전화해서 자수해 둘게.."

저질러 버렸다는 걸 본인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돌아보진 않았지만 스텔라의 귓불은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뭐, 던진 종이의 힘이 죽지 않았던 것뿐이고 일부러 벽을 노린 게 아니었던 데다, 호텔 주변의 이 공원을 포함한 수많은 시설은, 대회 기간 중 선수의 자주 훈련장으로서 한정적으로 마력 사용도 허가되어 있으니 질책받는 일은 없겠지만.

"자아.. 난 훈련을 재개해 볼까. 어차피 오늘은..... 이제 호텔로 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

스텔라가 떠나간 뒤, 잇키는 마음가짐을 바꾸고 각목 하나를 더 땅에 박았다.

그런데, 그 때였다.

"이것 참 대단하군. 나도 참 오래 살아왔긴 하네만 종이를 뭉쳐 만든 공을 콘크리트 벽에 처박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처음 봤어. 그것도 던져서 말이지. 실로 무서워."

부드러운 인상이 느껴지는, 그러면서도 확실한 심지가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

그 목소리를, 잇키는 알고 있었다.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지만..... 몇 번이고 들었던 적이 있다.

그것도 당연하다. 그 목소리는───

이 나라의, 총리 대신의 목소리였으니까.

◆◇◆◇◆

"츠, 츠키카게 총리...!"

스텔라가 떠난 방향의 반대 방향에서 모습을 나타난 츠키카게 바쿠가.

일본 총리 대신이며, 인연이 있는 상대인 아카츠키 학원의 최고 책임자.

하물며 이런 곳에서 만날 거라 생각지도 못한 상대의 등장에, 잇키는 동요감을 내비쳤다.

그에 대해 츠키카게는

"상당히 많이 자랐구나. 잇키 군."

잇키에게 다가 오면서 그리 말하고, 미소지었다.

"....어딘가에서, 면식이 있었나요?"

"기억을 못 하는 것도 당연하겠군. 아직 료마 씨가 살아있을 시절, 이츠키 군이 중원 선거 출마에 대해 상담을 하고 있을 때 한 번 스쳐 지나가듯 만났던 것뿐이었으니."

그 말에 그렇군, 하고 잇키도 납득했다.

국립 아카츠키 학원 설립을 둘러싼 배경에 자신의 아버지, 이츠키가 관련되어 있는 건 자신의 형 오우마에게서 들었던 적이 있다. 그렇다면, 츠키카게가 쿠로가네 본가를 방문하는 일이 있어도 이상치 않을 것이다.

"그랬군요..... 그건 죄송하네요."

기억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사과를 하면서, 잇키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며 빈틈없는 시선으로 츠키카게를 경계했다.

여기에 대해 츠키카게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하. ....그리 경계하지 않아도 나 같은 늙어버린 비 전투계 블레이저가 자넬 해친다거나 할 순 없다고."

확실히 척 보기에 츠키카게에선 전투력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마력은 제법 높아 보였지만, 위협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경계하지 말라는 건, 무리입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있어 원수의 우두머리이니까요. ......거기에 이런 시간, 이런 곳에서 얼굴을 마주쳤다는 것은, 우연이라 볼 수 없어요. 스텔라가 떠나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점을 포함해서 말이죠."

이 잇키의 말에, 츠키카게는 깊이 수긍했다.

"음, 확실히 우연은 아니지. ......사실은 자네와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어서 말이야."

"저와요...?"

"그래. 조금.. 시간을 할애해 줬으면 하네만. 그리 긴 이야기는 아니라네."

"거절하겠습니다."

"즉답이라. 매정하구만~"

"당신도 알고 계시잖습니까. 내일 제 대전 상대인 아마네 군의 힘은. .....그의 《과잉한 여신의 총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제게 어떻게 작용될지 몰라요. 그런 상황에서 적 진영의 우두머리의 권유에 넘어갈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츠키카게 혼자서 자신을 습격해 온다고 해도 물리치는 건 간단할 것이다. 하지만, 잇키는 준결승에서 아마네와의 대전이 결정된 이후, 그의 《과잉한 여신의 총애》를 쭉 경계하고 있었다.

당연하다. 왜냐면 아마네와 싸운다는 건 일단, 《과잉한 여신의 총애》의 인과 개변을 뚫고, 준결승 링 위에 도달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어떠한 예측 불허의 사태에도 대처가 가능하도록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니 잇키는 오늘, 잠을 자지 않고 아침까지 버틸 생각이었다.

공원에 온 것도 훈련을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고, 시야를 넓게 가질 수 있는 곳이 돌발사태에 대처하기 쉽다는 이유에서, 그리고 지진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생매장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에서였다.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는데, 지금 와서 거기에 리스크를 가할 행동을 취할 이유 따윈 없다.

이 잇키의 답에 츠키카게는, 감탄한 목소리를 흘렸다.

"그렇군. 좋은 답이야. 단련도 완벽, 싸움도 완벽, 그리고 생각도 완벽해. ....자네 같은 학생을 두어서 신구지도 행복할 게야."

그는 그리 잇키를 칭찬했다. 하지만,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걱정은 필요 없어. ....그 이유는, 자네가 시노미야 군과 싸운다는 건 이대로 가다간 성립될 수 없을 일이 되어버리니까."

"─────에?"

츠키카게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잇키는 되물었다.

"그건.. 제가 부전패를 당할 거란 말씀이십니까?"

거기에, 츠키카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게 아냐. 그런 정도가 아니라고. 그는 자네를 부전패만으로 끝내지 않을 거야. 그 정도로 끝내지 않을 거란 말이지.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시노미야 군의 증오는 깊으니까. 그리고.... 내 이야기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시노미야 군에 대한 이야기야. 어때? 조금은 흥미가 생겼지? 응?"

"........─────"

이 순간, 잇키는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 이제 선택지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는 것을.

교섭이란 건, 탁자 앞에 둘러앉은 뒤에 하는 건 아니다.

탁자에 앉기 전에 끝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산전수전을 겪은 정치가인 츠키카게 바쿠가는 그걸 알고 있었다.

잇키는, 이제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하죠."

"고맙네."

벽신문 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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