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4화 (44/77)

표지

일러

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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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장

고양되는 혼

칠성검무제 준결승 제 23시합 종료 후, 쿠로가네 잇키는 대기실에서 쓰러졌다. 발견된 단계에서 심정지를 일으킨 상태였고, 그 사태는 그의 가족만이 아닌 대회 관계자들, 그리고 대회를 관전하러 온 일반인들에게도 엄청난 충격과 불안을 안겨주었다.

최악의 결과를 상상한 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사실, 대회 관계자들은 '그런 전개'를 예상에 넣어둔 채, 다음 날 스케줄을 조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 걱정은, 이 나라 최고의 의사의 힘에 의해 기우로 끝나게 되었다.

쿠로가네 잇키는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결승전 개시 시간까지 눈을 뜨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어떻단 말인가.

《워스트 원》 쿠로가네 잇키가 살아 있다면, 하루 정도가 아깝겠는가.

모두의 마음은 같았다.

쿠로가네 잇키와, 스텔라 버밀리온.

과거에 걸쳐서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제 62회 칠성검무제. 그 싸움을 끝까지 이겨내 결승까지 진출한 두 기사. 그들의 대결을 보지도 못하고 이 대회를 끝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시합 종료 후의 공격.

거기다 그 공격에서 심판을 보호하려다 맞은 죽음의 공격.

그런 사고로 인한 결말로, 이 축제의 막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니 그들은 기다렸다.

쿠로가네 잇키가, 싸움의 무대로 올라올 것을.

그걸 위하여, 모두가 온 힘을 다했다.

모든 관계자들이 머리를 숙여 가며, 예정해 둔 마지막 날 관전 시합을 모두 취소했고, 보도 관계자들도 거기에 따라 특집을 조정, 그리고 여기에 모인 관중들은 그 어느 누구도 불평 없이 그 변경을 받아들였고, ───한 소년을 위해 수만 명이라는 사람들이 온 힘을 다했다.

그리고..... 그는 왔다.

이미 해가 다 저문 시각.

흐트러진 옷매무새로, 그리고 잠결에 뻗친 머리를 한 채로.

그래도, 확실히 이 링 위로 올라온 뒤, ────보여준 것이다.

싸움에 임할 것이란 강한 의지를.

선수들이 바라던 것도, 관계자들이 바라던 것도, 그리고 관객들의 마음도, 모두 같았다.

───그렇다면 이미, 장해 따윈 없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지원과 선의, 그리고 본인들의 강한 의지 하에, 결승전 무대가 갖춰졌다.

그리고...... 드디어, 밤이 밝았다.

하얗게 타들어가는 서광과 함께, 동쪽 하늘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만 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칠성검무제 마지막 날의 아침이────

◆◇◆◇◆

"우와~ 사람좀 봐~ 아직 이렇게 이른 아침인데 모두들 열심이네~"

아침 9시. 신칸센 조조편에 타 오사카까지 달려온 하군 학원 학생회 임원, 토마루 렌렌은 칠성검무제가 열리는 만안 돔에서 가장 가까운 역의 플랫폼에 내린 순간, 눈에 보이는 혼잡함에 감탄과 질린 듯한 투가 섞인 말을 흘렸다.

역의 홈도, 개찰구도, 그 밖에서부터 돔까지 이어지는 길까지.

그 모든 곳이 셀 수 없을 정도의 관중으로 메워져 있던 것이다.

당연히, 그들의 목적은 하나.

칠성검무제 결승전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들어갈 수 있을까?"

"모두가 돔에 들어갈 순 없을 테지. 마지막 날은 외야 모니터도 증설해 둔다고 했으니."

렌렌의 질문에 답한 건, 그녀와 함께 오사카에 온 하군 학원 학생회 임원 중 한 명.

우락부락한 바위 같은 체구의 거한. 사이조 이카즈치였다. 그의 지적대로,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회장 밖에서 그 대결을 관전하게 될 것이다.

평소에도 꽤 많은 사람이 모이긴 하지만, 결승전이 되니 역시 준결승까지의 인원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게 인류 최대의 마력을 자랑한다고 알려진 A랭크 기사 《홍련의 황녀》와, 블레이저로서 최저 평가인 F랭크 기사이면서, 《칠성검왕》을 시작으로 그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강적들을 무찌르고, 마침내 결승까지 진출한 《워스트 원》의 대결이 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더불어, 이 과거에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인 탓에, 장사를 하려는 장사꾼들도 엄청나게 많이 모여 있었다.

턱에 걸터 앉아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자.

저글링이나 마술 따위로 개인기를 피로하는 퍼포머.

그리고, 본토 상회가 열어 놓은 가판대들.

아직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만안 돔 주변은 이미 축제로 한창이었다. 그 광경에, 렌렌 일행을 따라 온 또 다른 한 사람, 학생회 부회장인 미소기 우타카타가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입가를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왠지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분이 안 좋아졌어.."

"괜찮아, 부회장??"

"안 괜찮아.. 더워...... 죽겠어........ 피곤해................... 이제 싫어어어.............."

"그럼 학교에 있었으면 될 것을."

"이상한 말 하지 마. 모두들 놀러 나갔는데 나 혼자 일 하고 있으면 바보 같잖아. 됐으니까 빨리 호텔이나 가자~~ 계속 이런 데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간 뇌가 녹아서 귀로 흘러나올 것 같아.."

사이죠의 옷소매를 꾹꾹 잡아당기며 떼를 부리는 우타카타. 뭐, 뇌가 녹을 리는 없겠지만 계속해서 서 있다간 일사병을 일으킬 것 같기도 했다.

도쿄에서 2시간 반이나 걸려서 찾아왔는데, 시합을 보는 곳이 병실 안이라니, 농담으로라도 못할 말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사람이 많아서야 카나타 선배를 찾는 것도 고생───"

"아니, 그렇진 않은 것 같군."

그리 말한 뒤 사이조가 혼잡한 인파 한 곳을 가리켰다.

거기엔

"여러분~ 여기에요."

반팔 옷에 반바지, 멋을 부리려 입었다 해도 고작 얇은 가디건 정도밖에 입지 않은 인파들 속에서, 손가락 끝조차 노출되어있지 않은, 완전무장의 하얀 드레스를 입은, 조금 잘못했다간 용의자로서 잡혀 버릴 듯한 옷차림을 한 토토쿠바라 카나타의 모습이 보였다.

"쓸데없는 걱정이었군."

"카나타 선배, 안 더워요?"

"근성만 있으면 괜찮아요."

"근성으로 버티고 있던 거구나.... 왜 거기서 참는 건지...."

종교상의 이유라도 있는 건가, 하고 곤혹해하는 렌렌. 그 뒤에서 우타카타는 '글쎄?' 하고 고개를 갸웃한 뒤, 카나타를 향해 물었다.

"어라? 카나타. 토카는 어디 갔어?"

그렇다, 틀림없이 같이 행동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던 하군 학생 학생회 회장 토도 토카의 모습이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토카라면 오늘 아침 급한 일이 있어서 잠시 다른 곳으로 갔어요."

"급한 일?"

"후후. 네. 급한 일이요."

카나타는 그게 어떠한 건지는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았지만,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좋지 않은 안건은 아니라는 것만은 전해졌다.

그렇다면, 구태여 추궁할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하고 우타카타는 "흐음~" 하는 말로 이 화제를 끝냈다.

"뭐, 시합까지는 돌아올 것 같으니 결승전은 모두 함께 보자, 그렇게 말하고 갔답니다."

"그렇구나."

"그건 그렇고 결승전이라. .......한 때는 어떻게 될지 걱정했지만, 이렇게 확실히 개최되어서 정말 다행이네. 시합이 끝난 뒤의 돌발사태, 거기다 다른 사람을 감싸려다 당한 것에 부전패를 당해서야, 쿠로가네 군이 너무 불쌍하잖아."

"운영위원회 분들도 그런 점을 배려해주신 거겠죠. 이런 특별대우는 지금까지 전혀 없었던 이례적인 일이니까요. ......토토쿠바라에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이 연장전을 위해 그 츠키카게 총리가 상당히 크게 활약했다고 해요."

"우리들을 그런 꼴에 빠지게 만든 그 총리가?"

".....그건 또 참, 의외로운 이야기군."

"아무리 그래도, 역시 한 학생을 위해 일정 그 자체를 연장시켰을 리는 없어. 마침 스텔라가 대활약해준 덕에 대회가 하루 짧아진 것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네. ......운에는 전혀 인연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후배 군도 악운이 강한 남자였나 봐."

그것도 그렇다고 렌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리고 뒤에 있던 사이조를 올려다보며, 동급생끼리 나눌 법한 가벼운 말투로 질문을 했다.

"저기, 사이조. 어느 쪽이 이길 것 같아?"

이 말에, 사이조는 턱에 손을 댄 채 잠시 묵고한 뒤,

"......어느 쪽이든 교내 선발전 때보다 비약적으로 실력이 늘어나 있어. 하지만, 준결승 싸움을 보면, 역시 버밀리온 쪽이 힘으론 이길 것 같군. 그 용의 힘을 기술만으로 이겨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아. 따라서 난 버밀리온이 이길 거라 예상하고 있어."

이 답에, 렌렌은 오호~ 하고 납득했다.

스텔라가 준결승전에서 보여 준 진정한 힘. 그걸 이끌어낸 노블 아츠, 《용신빙의》

그건 아직도 상당히 강렬하고 선명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사이조가 그리 판단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렌렌의 생각은 달랐다.

"확실히 스텔라의 진짜 능력, 용이라는 개념을 체현해 내는 힘은 엄청났어. 그건 이미 사람 한 명의 힘으로 어떻게 당해낼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규격 외급의 능력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런 엄청난 힘들을 꺾어 왔기에, 쿠로가네 군은 오늘 밤 결승전 링에 설 수 있게 된 거야."

".....토마루는 쿠로가네가 승리할 거라고 생각하나?"

렌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싸워 본 난 알 수 있어. 확실히 스텔라의 '폭력'도 상식 밖의 수준이지만, 쿠로가네 군의 '기술'도 신기라 할 수 있는 수준의 상궤를 벗어난 영역에 달해 있어. 기억 나? 교내 선발전에서 날 쓰러뜨릴 때, 쿠로가네 군이 무엇을 했는지."

일러

"확실히.. 네 초음속 돌진공격인 《블랙 버드》를 피한 뒤, 교차할 때 옷깃을 잡아 링 위에 메쳤었던가."

"그래. 그런 짓을 했다간 보통 팔이 빠져 버릴 거야. 그런데도 쿠로가네 군은 그 충격을 '흘려내며' 반대로 날 지면에 메칠 힘으로 바꿔 냈어. 그 기술은 틀림없이 스텔라의 '폭력'에도 통용할 거야."

".....그 의견도 모를 정도는 아니다만, 버밀리온에 대한 인식이 살짝 약하군. 그녀는 내 《크레센트 액스》, 그 최대 중량의 참격을 가볍게 받아냈어. 《용신빙의》에 의해 그 완료도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있겠지. 그 공격력은.. 기술만으로 받아낼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야. 짓이겨지고 말겠지."

"쿠로가네 군은 그걸 피해 낼 속도를 가지고 있다구. 난 다 보여. 쿠로가네 군의 스피드에 눈이 뱅뱅 도는 스텔라의 모습이!"

"환각이다. 싸움은 힘이 강한 자가 이기기 마련."

"망언이야! 근대전은 스피드가 최강의 능력치라구!"

"네 녀석... 결국 자신을 이긴 상대가 이겼으면 하는 것 뿐이잖나."

"너도 그렇잖아!"

"우우웃....!"

"우우~~~~!"

"자~ 자~ 둘 다 거기까지 해."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의 기온 속에서, 파직파직 불똥을 튀기는 둘.

그런 그들을 보다 못한 우타카타가, 사이에 껴들어 둘을 떼어놓았다.

"그런 후덥지근한 이야기는 에어컨 돌아가는 곳에서 하자고. 이 이상 이런 데에 서 있다간 일사병에 쓰러져버릴 거야."

"그건 그렇네요. 그럼 여러분, 호텔로 이동하도록 하죠. 식사도 준비되어 있으니 나머지 이야기는 거기서 하도록 해요."

카나타도 우타카타와 같은 의견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바로 그들을 토토쿠바라 계열사 호텔로 안내하기 위해, 선두를 걸어나갔다.

"에? 밥? 야호~ 밥이다 밥~~"

".....미안하군. 나도 꼴사납게 흥분해 버렸어."

"아니, 이카즈치의 외모는 상당히 후덥지근하게 보이니 별로 꼴사나울 정도로 안 어울리진 않다고 보는데 말야."

"!?!?"

경악의 표정을 지으며 굳어 버린 사이조를 남겨 놓고.

◆◇◆◇◆

"후하하~. 봐라! 사람이 개미새끼처럼 보이는군!"

"뭘 하고 있는 거냐, 넌..."

역에서 만안 돔까지 뻗어 있는, 길게 늘어선 줄.

그걸 호텔 테라스에서 바라보며, 묘하게 만들어낸 듯 들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사이쿄 네네에게, 신구지 쿠로노는 소파에 앉은 채 어이없어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아니, 그게~ 높은 곳에서 저런 인파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왠지 이런 말을 하고 싶어지지 않아? 본능적으로~"

"아니."

"진짜~? 쿠우는 진짜 일본인 맞아?"

"국적에 관련될 정도의 일인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하며, 쿠로노는 양복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뒤, 사이쿄를 향해 말했다.

"마지막 날 해설은 맡지 않았다고 들었어. 꽤 짭짤한 일자리였을 것 같은데."

"뭐, 그렇긴 하지. 하지만 사랑스런 제자의 결승전이니 바로 옆에서 보고 싶은 거 아니겠어?"

"겨우 1주일밖에 안 맡아 놓고 무슨 말을.. 이라고 말해 주고 싶은 참이다만, .....상당히 괴물로 길러낸 모양이더군."

"나도 깜짝 놀랐어. 다소 거친 방법으로 건드려주긴 했는데, 설마 이런 괴물이 잠들어있을 줄이야~"

"생각해 보니 체격에 걸맞지 않는 그 먹는 양도, 용의 힘이 영향을 주고 있던 걸지도 모르겠군."

그리 말한 뒤 쿠로노는 테이블 위로 시선을 가져갔다.

거기엔, 룸서비스의 잔해가 산더미같이 쌓여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침대에서, 이 잔해를 만들어낸 진홍색 머리의 소녀....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이, 마치 태아처럼 몸을 둥글게 만 채 잠들어 있었다.

"......네네. 오늘 결승전, 넌 어떻게 보고 있지?"

"멋진 승부가 되겠지. 둘 다 방향성은 달라도 뛰어난 힘을 가진 기사들이니까, 어느 쪽도 쉽게 당하진 않을 거야. 상당한 고수준의 혼전이 되겠지."

"혼전이라."

"그야 당연하지. 애인끼리의 싸움인걸. 아주 어질어질하게 말야~~"

"그런 흐뭇한 싸움이 되어 버린다면, 보고 있는 쪽도 기가 다 빠져 버리겠군."

사이쿄의 농담에 메마른 웃음을 지었다. 그 뒤 쿠로노는 담배를 한 모금 빤 뒤 연기를 내뱉으며

".....아마 그렇게는 안 될 거야. 이 둘에 한해선."

살짝 긴장감을 띤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에, 사이쿄도 살짝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렇겠지. 자칫 잘못했다간 둘 중 한명이 죽을 거야. 나랑 쿠우의 시합 때처럼."

농담하듯 말하는 사이쿄였지만, 그 눈엔 쿠로노와 같은 긴장감이 깃들어 있었다. 그녀가 떠올리고 있는 건, 자신과 쿠로노가 학생 시절에 열렸던 칠성검무제. 거기서 쿠로노와 대결을 벌였을 때 느꼈던, 자신의 감정.

───그 때, 자신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 녀석에게 이길 수 있다면, 목숨 따윈 필요없다, 고.

그 정도로, ......타키자와 쿠로노라는 여자에게 빠져 있었다.

그건 틀림없이, 쿠로노도 같을 것이라 사이쿄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의 자신들과 같은 감정을, 이 둘도 또한────

"하지만..... 위험한 건 역시 쿠로 꼬마 쪽이겠지."

"《야차 공주》는 《홍련의 황녀》가 유리하다고 보는 건가."

"그도 그럴 게 상상이 안 가는 걸. 이 공주님이 진다는 장면이."

사이쿄는 살짝, 침대 위에 잠들어 있는 스텔라를 흘러가듯 바라봤다. 상당히 깊게 잠든 건지, 스텔라는 잠을 자고 있다는 숨소리조차 내고 있지 않았다.

힘을 비축하고 있는 것이다.

눈을 뜨고 있는 노력조차 아까워하며, 몸 안에 힘을 쌓아두고 있다.

자신의 모든 것들을, 오늘 밤 결승전에서 폭발시키기 위해.

"────"

그 모습에, 둘은 거대한 몸을 뉘여 놓은 용의 환영을 겹쳐보게 되었다. 쿠로노는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 밤, 이 괴물과 상대하게 될 또 다른 한 기사의 지금을.

'쿠로가네, 넌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지?'

그녀처럼, 힘을 비축해두고 있을까?

아니면, 고양감에 취한 탓에 잠도 자지 못하고, 결전의 때를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면───

"......어느 쪽이건, 이 시합은 주변 사람들도 목숨을 걸게 될 것 같군. 어지간한 기사에겐 맡길 수 없어. 만일의 경우가 벌어졌을 경우엔 나와 네가 막는 거다. ......그 때의 난고 선생님과 쿠로가네 선생님의 때처럼."

"알고 있어. 당연한 거지."

쿠로노의 말에, 사이쿄는 싫어하는 내색 하나 비치지 않고 동의했다.

애초에 그런 험악한 일이 벌어질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관전에 집중하기 위해 일을 맡지 않은 거였으니까.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것보다도───, 하고 사이쿄는 진지한 표정으로 쿠로노에게 말했다.

"그건 그렇고, 쿠우?"

"응? 뭐지?"

"여기 금연인데?"

".....................다음부턴 불을 붙이기 전에 주의를 해 줬으면 좋겠군."

"선처할게~"

겸연쩍은 듯 귀를 붉게 물들이는 쿠로노를 보고, 사이쿄는 히죽거리며 짓궂은 미소를 띠었다.

◆◇◆◇◆

스텔라가 한계치까지 자신의 몸에 힘을 비축하고 있을 때.

그녀의 대전 상대인 쿠로가네 잇키는, 만안 돔 가까운 데에 있는 내셔널 리그 소유의 훈련장에 있었다.

칠성검무제 기간중, 이 훈련장은 선수에게 개방되어 있는 곳이다. 잇키는 그 시설 안에 있는 링 위에서, 모의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의 상대로 나선 사람은, 미목수려하고 여윈 장신의 남자.

그의 친구이기도 한, 《검은 가시》 아리스인 나기였다.

"─────훗!"

퓽! 하는,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가속과 함께 아리스인에게 돌격하는 잇키. 그에 대해 아리스인은 중심을 뒤로 두고, 후퇴 자세를 취하며

"《조수희화》───!"

단도 형태의 디바이스 《검은 은둔자》를 지면을 향해 세 자루 투척해 꽂았다.

그 순간, 꽂힌 《검은 은둔자》가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며, 링 위에 물웅덩이 같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그림자에서 검은 물보라가 튀어오르며, 2마리의 거대한 호랑이와 1마리의 곰이 뛰쳐나와 달려오는 잇키를 향해 쇄도했다.

하지만, 잇키는 이 맹수들을 보고 동요한 내색 하나 없이 땅을 박찬 뒤, 그를 가로막는 세 마리의 맹수에게 돌진.

일직선으로 잇키의 머리를 물어뜯으려 하는 그림자 호랑이를, 입에서 꼬리까지 일도양단했고, 정수리를 내리치려 쇄도하는 곰의 손톱을 살짝 피해낸 뒤 스쳐 지나갈 타이밍에 몸통을 베었다. 그리고 두 마리를 베어낼 때 자세가 흐트러진 틈을 타 덮쳐 들어오는 마지막 남은 호랑이의 모든 행동을, 최속의 비검 《뇌광》으로 양단.

한 치의 위기도 없이 《조수희화》를 검은 안개로 만들어 흩뿌려버렸다.

하지만, 아리스인도 처음부터 《조수희화》정도로 잇키의 발을 멈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이건 속임수.

쓰러진 《조수희화》들이 만들어낸 검은 안개가 잇키의 시야를 차단한 찰나,

───그림자에서 그림자로 이동하는 《그늘길》을 이용해, 잇키의 그림자로 이동하기 위한 속임수다!

그리고 이 의도는 그의 생각대로 진행되었고, 아리스인은 자신의 그림자에서 잇키의 그림자로 이동. 링을 밝혀 주는 빛에 의해, 뒤로 뻗어 있는 잇키의 그림자에서 뛰쳐나오며

'끝이다...!!'

이쪽에 등을 향한 채 서 있는 잇키의 목을 베기 위해, 《검은 은둔자》를 휘둘렀다.

하지만, 그 순간───

"윽!?"

아리스인이 잇키의 목을 베는 것보다 빠르게, 잇키의 디바이스 《음철》의 칠흑색 끄트머리가 잇키의 옆구리 아래를 통해, 뒤로 돌아선 아리스인의 미간을 향해 쇄도해 들어오고 있었다, 잇키의  아리스인의 미간에 쇄도하고 있었다. 잇키는 앞을 바라본 채, 아리스인이 자신의 등 뒤를 노릴 것을 예측하고 찌르기 공격을 낸 것이다.

"윽!"

아리스인은 순식간에 내리치려던 나이프를 돌려, 그 찌르기 공격에 가드 자세를 취했다. 그 행동으로 가까스로 꼬치 신세가 되는 것을 면할 수 있었지만, 한 박자, 행동이 멈춰버렸다.

그건, 쿠로가네 잇키를 상대하는 자로서는 치명적인 틈이었다.

"────커, 허억!!"

쿵! 하는 무거운 타격음이, 링이 설치된 실내에 울렸다. 잇키가 뻗은 뒷차기가 아리스인의 복부를 가격한 소리다.

복부가 꿰뚫린 충격에 아리스인은 3미터정도 날아간 뒤 링을 구르며, 괴로운듯 기침을 냈다.

"콜록! 콜록!! 너, 너무해에~ 꽃다운 소녀의 배를 차다니, 경악할 정도로 도덕심이 결여되어 있는 거 아냐?"

"미, 미안..?"

"왜 의문형인 거야?"

"의문밖에 없으니까."

그 잇키의 답에 아리스인은 기침을 하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후후, 뭐..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하루종일 잠들어 있었지만 몸은 잠에서 다 깨어난 것 같네, 잇키. 안심했어."

"아리스가 컨디션 조정에 어울려 준 덕분이야."

감사를 하며 잇키는 '음철'의 끄트머리를 땅으로 떨궜다. 지면에 누워 있던 아리스인은 이미 싸울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하루 종일 잠을 잔 탓에 둔해진 잇키의 몸 컨디션을 조정하기 위한 모의전.

전세가 이만큼 기울어졌으면, 추가로 공격에 나설 필요는 없다.

그리고 대전을 멈춘 둘을 향해, 또박또박, 작은 보폭으로 몸집이 작은 소녀가 다가오고 있었다. 은색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그 소녀는, 쿠로가네 잇키의 여동생인 쿠로가네 시즈쿠였다.

그녀는 잇키의 옆까지 다가간 뒤, 살짝 질린 표정으로 쓴소리를 했다.

"정말... 오늘 밤에 결승전에 나서실 몸인데 모의전을 하시다니. 너무 무리하신다구요."

"하하, 미안. 하지만 계속 잠들어 있었으니 몸상태를 확인해두고 싶었거든."

"뭐.. 그 기분도 이해는 갑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조금 힘을 아껴 두시지 않으면 컨디션이 무너져버릴 거라구요. 이거 봐요. 이렇게나 땀을 흘리시고............에?"

문득, 잇키의 얼굴에 잔뜩 난 땀을 타올로 닦고 있던 시즈쿠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째서냐면, 그가 흘리던 땀이.... 마치 겨울철 흐르는 강물처럼 차가웠기 때문이었다.

"오라버니, 이건...."

".....들켰구나."

쓴웃음을 짓고, 잇키는 시즈쿠에게서 타올을 받아들며

"힘들어서 이렇게 땀을 흘리고 있는 게 아냐. 무서워. ....스텔라와 싸우는 것이."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렇다. 이건 운동에 의한 땀이 아니다.

긴장, 불안, 위축.... 그런 오한이라 불러도 좋을 감정에 의해 배어나오는 땀이었다.

잇키는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다.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을.

하지만, 그것도 당연할 것이다.

1회전, 《얼음의 냉소》 츠루야 미코토와의 변칙 시합에서 보여준 여유를 보고 그에 상응하는 실력 상승을 갖췄을 것이라 잇키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준결승전에서 보여준 그녀의 힘은 그 예상을 아득히 상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그녀는 이전에 싸웠던 그녀가 아니야. 지금까지 스텔라는 용이 내뱉는 불꽃으로밖에 싸우고 있지 않았어. 하지만.. 그녀는 이제 자신이 무엇인가를 자각하고 있어.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몸을 달구어 온 용의 힘을 자유자재로 써낼 수 있을 기술까지 갖췄어. 지금의 그녀는, 불꽃 능력자가 아니야. 기술도, 힘도, 임기응변도... 모든 것을 굴복시키는 폭력의 화신, 절대 강자로서의 자부를 갖고 있는 괴물이야."

그리고 자신은, 오늘 밤 그런 괴물을 상대해야만 하는 것이다.

더불어 지금의 스텔라는, 쿠로가네 잇키라는 남자의 정보를 모두 꿰차고 있다. 이전에 그녀를 쓰러뜨렸을 때처럼, 정보 차이에 의한 기습으로 이기는 것 따윈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다.

패전으로 인한 백전연마. 쿠로가네 잇키의 싸움을, 스텔라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이 결전, 스텔라의 마음엔 약간의 흔들림도 없을 것이다. 그런 스텔라를 상대로,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는 링 위에서, 정면충돌을 하여 이겨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1분, 1초도 아까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1분 전보다도 날카롭게, 1초의 시간만이라도 더 강하게.

아슬아슬한 상태까지 자신을 연마해놓은 뒤, 링 위로 나선다.

"그게 내, 최상의 컨디션이야."

"오라버니....."

그렇게, 평소엔 못 보던 오빠의 표정에 시즈쿠가 불안스럽게 말을 건, 그 때였다.

"오~ 잘 하고 있네~"

자주 들었던 관서 사투리가 들어간 그 목소리가, 일동의 귀에 들어왔다.

셋이 함께 목소리가 들린 입구 쪽을 바라보자

"어머, 당신들은.."

"모로보시 씨! 거기에.. 토도 선배까지! 와 주셨군요!"

열린 방화문 앞에, 잇키가 칠성검무제 첫 싸움에서 꺾은 이전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와, 잇키가 교내 선발전 최종전에서 꺾은 또 한 사람, 《뇌절》 토도 토카가 서 있었다.

그런 예기치 못한 손님의 방문에, 시즈쿠는 당황함을 내비쳤다.

"어째서 학생회장님과 유다이 씨가..?"

그에 대해, 토카는 어딘가 기쁜 듯 미소지으며 답했다.

"오늘 아침에 컨디션 조정을 도와달라는 쿠로가네 군의 문자를 받았거든요."

"오라버니에게서요?"

"그런 기다. 머, 어차피 시간이 남아돌아서 심심해 죽어삘 지경이었으니깐. 글고.. 내랑 같이 호텔에서 심심해 죽어가던 패배자 넘들도 불러왔제."

그리 말한 뒤, 모로보시는 엄지손가락으로 문이 열린 뒤쪽을 가리켰다.

그러자

"누가 패배자야! 쓸데없이 한 마디 더 많아, 홋시~!!"

"뭐, 실제로 그 말대로이긴 하지만.."

"가하핫! 뭐 지금 와서 아닌 척 해봐야 소용 없는거 아니겄어~"

"우리들은 칠성검무제에 참가 안 했으니 패배하지도 않았다구."

".....합숙 때 둘이 한꺼번에 덤볐다가 완전히 당해버렸던 적은 있지만."

누구나 면식이 있던 사람들이 둘에 이어 줄줄이 실내로 들어왔다. 모로보시와 같은 부쿄쿠 학원 대표, 《천안(天眼)》 죠가사키 뱌쿠야와 《도깨비불》 아사기 모미지. 그리고 좁다는 듯 문을 빠져나오는 그 거체는, 로쿠존 학원 대표 《강철의 사나운 곰》 카가 렌지.

그리고 칠성검무제를 기권했던 이전 하군 학원 대표생, 하구레 키쿄우와 하구레 보탄이었다.

그들의 등장에, 잇키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그, 그럼.. 다른 모든 분들도 절 위해 와주신 건가요? 하구레 선배님들도요?"

"헤헷. 뭐,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심심했었거든."

"....합숙 때 우리 훈련하는 것도 도와 줬으니까, 그 답례로."

"최단기간에 KO를 당한 녀석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실은 그 선샘도 부를라 캤다. 그치만 니 수술해 주느라고 체력 엄청나게 썼을테니깐 아무래도 내키지 않드라. .....하지만 여기 있는 녀석들도 모두 칠성검무제에 나올 만한 수준의 녀석들이다. 조정 상대로선 알맞겠제?"

그 모로보시의 말에, 잇키는 크게 고개를 흔들었다.

"알맞다니요, 당치도 않아요!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에이, 됐다. 내도 그 소문의 《워스트 원》하고는 한 번 싸워보고 싶었데이."

"그럼 어떡할래요? 저희 오기 전부터 모의전을 하고 있던 모양이던데. 좀 쉬고 나서 할래요?"

"아니요."

토카의 배려를, 잇키는 그 한마디로 사양한 뒤 《음철》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전의에 불타오르는 눈으로 일동을 바라봤다.

"지금 바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열기는, 바로 그들에게도 전파되었고.

" " "그래!!" " "

잇키의 전의에 응하듯, 그들도 제각각 디바이스를 현현시켰다.

◆◇◆◇◆

"크아앗!! 이, 이건......! 독!? 암살인가! 네 이놈... 《황혼의 십자군》 놈들....! 비겁한 짓거리를....!"

"아가씨는 '이거 뭐야! 되게 써~!!!!'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쓴 걸 못 마시면 커피 같은 거 주문하지 마."

회장으로 이어지는 혼잡한 인파 속에서 약간 외진 곳에 있는 카페.

그곳의 테라스 자리에서 차가운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사라 블러드릴리는, 입가에서 커피를 흘리고 있는 카자마츠리 린나를 향해 어이없어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 린나의 입가를 손수건으로 닦아주고 있던 건, 그녀의 시녀인 샤를로트 콜데다.

그리고, 세 소녀가 앉아 있는 테이블엔, 그녀들 외에도 다른 한 명이 있었다.

양복을 입은 초로의 남성.

일본의 총리 대신이며, 그녀들이 소속해 있는 아카츠키 학원의 이사장, 츠키카게 바쿠가였다.

"그건 그렇고, 사라의 《색채마술》은 정말 편리하군.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 중 아무도 우리 모습을 보고 있지 않다니. 나도 그런 편리한 능력을 갖고 싶었는데."

"능력 같은 걸 쓰지 않아도 비슷한 건 해낼 수 있어."

"정말인가?"

"잇키는 해냈어."

"......더더욱 못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

츠키카게는 얼굴에 진 고생주름을 구기며 쓴웃음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총리님. 슈거 포트를 좀 이쪽으로 건네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아. 물론이지."

샤를로트의 요청에 응하며, 슈거 포트를 린나 쪽으로 건네주었다. 여기에 린나는 쑥스럽다는 듯 뺨을 붉히며

"고, 고마워요.. 아저씨..."

평소의 억지로 내는 듯한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와 말투로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슈거 포트를 작은 손으로 받아들었다.

하지만, 거기서 린나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녀는 커피에 설탕을 넣을 생각도 않고, 손에 있는 슈거 포트에 시선을 떨군 채로

".....죄송해요."

툭하니, 갑작스럽게 츠키카게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였다.

여기에 츠키카게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왜 사과를 하는 거지?"

"우리들... 모두 져 버렸으니까...."

"아아, 그거 말인가."

린나의 사죄의 이유에, 츠키카게 총리는 납득했다. 애초에 아카츠키 학원이란, 츠키카게가 《해방군》의 《십이사도》임과 동시에, 자신과도 구면인 카자마츠리 코우조의 인맥을 구사해 칠성검무제를 이용하여 《기사 연맹》과 일본의 관계를 끊어버리기 위해 초빙한 용병단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 하군 학원의 《워스트 원》과 《홍련의 황녀》에게 패배해버렸다. 자신들을 믿고 맡겨 준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 린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츠키카게는 린나를 책망하지 않았다.

그는 미안하다는 듯 푹 숙이고 있는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며

"신경쓰지 말렴. 린나와 다른 애들은 정말 잘 해 주었어. 그건 아주 잘 알고 있지."

"하지만...."

"이런 걸로 금방 포기해 버려서야 정치가도 못해 먹을 테지. 아카츠키가 안 됐다면 또 다른 수를 생각하면 돼. ......그 때, 필요하게 된다면 다시금 힘을 빌려주겠니?"

그렇게, 린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에 린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꽃이 피어나는 듯한 미소를 보이며 "응!" 하고 끄덕였다.

───딱, 그 때였다.

"......왔어."

갑자기, 사라가 흘러 가는 인파 속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모두가 그녀의 시선을 좇았다.

그 너머에, 빈틈 따윈 전혀 없어 보이는 인파 속을, 헤집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거슬린다는 듯 피해 가는 것도 아닌, 홀연히.. 마치 아무도 없는 벌판을 걸어오는 것과 같은 보폭으로 횡단해 오는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순백색 긴 머리카락을 흔들며 똑바로 《색채마술》로 인해 누구도 볼 수 없게 됐을 터인 4명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 넷은 거기에 의아함을 품지 않았다.

그녀라면 당연할 테니까.

보이지 않아야 할 터인 자신들이 보이는 것도.

저 인파 속을 아무 어려움 없이 빠져나오고 있는 것도.

그리고, 저 많은 사람 중 그 누구도 자신의 눈앞을 스쳐지나가는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오늘, 이 자리에서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던 인물──────

"오랜만이네요. 사라. 린나. 샤를로트. 그리고.... 츠키카게 선생님도요."

세계 최강의 검사, 《비익》의 에델바이스였다.

◆◇◆◇◆

일러스트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블렌드 커피 나왔습니다."

"저 쪽에 주세요."

"고마워요."

친근감이 배어나오는 미소와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에델바이스는 슈거 포트를 자신의 쪽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츠키카게를 바라보며

"오늘은 정말 고마워요. 갑작스런 제 억지를 들어주셔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말하는 억지란, 오늘 그녀가 여기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젯밤, 츠키카게에게 에델바이스의 연락이 있었다.

.....칠성검무제 결승전을 관전하고 싶다, 고.

"설마 자네가 학생끼리의 대결 같은 것에 흥미를 갖게 될 줄은 몰랐어. 에델."

"생판 남도 아니니까요."

"후후, 확실히 우리 군대가 하군 학원을 습격하는 작전인 《화룡토벌》에 나섰을 때, 《어나더 원》과 상대를 했다고 했었지, 《전처녀》여."

"베, 베오..?"

곤혹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살짝 고개를 갸웃하던 에델바이스에게, 사라가 조언을 했다.

"깊이 생각하면 안 돼. 린나의 일상적인 병이니까."

"아가씨는 '우리들이 하군 학원을 습격했을 때, '어나더 원'하고 싸웠었지?' 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 아아.. 그런 건가요? 네. 그랬었죠."

슈거 포트에서 한 스푼 가득 설탕을 떠낸 뒤 커피에 넣으며, 에델바이스는 말했다.

"준결승전을 TV에서 봤어요. 오우마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패배한 것에도 놀랐지만, ......그보다 아마네가 그렇게 손발도 못 쓰고 당할 줄은... 전혀 예상도 못 했어요."

아마네가 살아온 인생,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잇키에 대한 집착.

그건, 에델바이스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마네의 존재는 잇키의 운명에 크나큰 장벽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마네를 식은 죽 먹기처럼 쉽게 이겼어."

아마네가 포기해 온 인생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그 모든것을 깨뜨려보였다.

"......정말 대단한 소년이에요."

"그러니 결승은 현지에서 보고 싶다는 건가?"

이 츠키카게의 물음에, 에델바이스는 다시 한 스푼, 설탕을 듬뿍 떠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홍련의 황녀》는 물론, 《어나더 원》도... 우리의 '영역'에 오르려 하고 있어요. 그가 준결승전에서 보여 준 인과에 의해 결정지어진 실패를 문제랄 것도 없이 극복한 체술, 그리고 그걸 익히기 위해 수없이 단련을 거듭해 온 의지력을 보고, 그리 확신했죠. 그렇다면..... 저도 무관심하게 있을 수만은 없어요. ───그는 언젠가 우리 곁으로 올 격동의 핵이에요. 다시금 칼을 겨루게 될지도 모르니까."

".........."

그리고 무엇보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오늘 여기에 온 녀석들이 장래의 위협을 배제하기 위해 대담한 짓을 벌이지 않으리란 법도 없으니까요."

"어?"

불온한 그 말에, 츠키카게는 세 스푼 째의 설탕을 떠올린 그녀의 손가에서 시선을 들어올렸다. 에델바이스는 츠키카게가 아닌, 인파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안광.

그 험악한 시선을 좇고, 츠키카게도 알게 되었다.

인파 속에서, 바이저 너머로 빈틈없는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존재를.

"저건...... 미국의........!"

"그만이 아니에요. 이 회장엔 이미.... 수많은 세력의 요원들이 들어와 있어요."

그 에델바이스의 말은, 츠키카게의 뇌리에 한 광경을 상기시켰다.

언젠가 보았던, 새빨갛고 검은 기억.

불꽃에 삼켜진 도쿄.

충만한, 단백질이 타들어가는 악취와, 피부에 들러붙던 인간의 지방.....

츠키카게는 두려움과 분노로 쥔 주먹을 떨며, 에델바이스에게 고했다.

"....가장 앞쪽 자리의 특등석을 준비해 놓도록 하지."

"고마워요."

그 말에 에델바이슨는 다시금 작게 고개를 숙여 답한 뒤, 네 스푼의 설탕을 넣은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맛있네."

".....쓴 걸 못 먹는다면 커피 같은 거 주문하지 마."

◆◇◆◇◆

'너무.... 강해.....!'

부쿄쿠 학원 3학년의 몸으로 작년 칠성검무제의 수상대에 올랐을 정도의 기사인 아사기 모미지는, 훈련장에서 검을 나누던 남자의 역량에 경탄하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투신》 난고 토라지로의 문하생으로서 검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싫어도 느끼게 되었다.

자신과 눈 앞의 기사, 《어나더 원》 쿠로가네 잇키와의 사이에 있는, 엄청난 실력차를.

"하앗!!"

"윽.....!"

무수한 검극. 한층 더 큰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며, 모미지의 몸이 뒤로 튕겨져나갔다. 흘러가는 시야. 모미지는 그 끝에, 허리를 떨구고 거친 숨을 내쉬고 있던 셋을 바라봤다. 그녀보다 먼저 잇키와 모의전을 벌였던 하구레 자매와, 죠가사키였다.

잇키는 모미지와 대결하기 전, 이 셋을 벌써 해치웠던 것이다.

그 몸에 어떤 공격도 받지 않은 채로.

그리고, 이대로라면 자신도───

"아사기! 의지를 보여줘야제!"

"《염막》......!"

모로보시의 질타에, 모미지는 전방에 화염의 벽을 펼쳤다. 분하지만 검술로는 승부가 되질 않는다. 그렇다면, 마 술전으로 의지를 보여주겠다.

그리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차아아아앗!!!!!"

그 의도, 그리고 덧없는 결의를, 잇키는 기합 일갈과 참격 하나로 양단해버렸다. 위로 쭉 뻗은 《음철》을 그대로 내리쳐, 그에게 다가오던 《염막》을 베어 날려버린 것이다.

그건 동시에, ───모미지의 마음도...

'.......윽!'

《염막》을 베어낸 잇키의, 마치 갈고 닦인 칼날과도 같이 빛나는 눈.

그건, 모미지의 심박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뇌와 동체, 마음과 몸, 그 모든 것들이 떨어져나갔다.

잇키는 그 한 순간을 놓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잇키는 장애물이 없어진 간격을 앞으로 달려나가 좁혔다.

───빠르다.

아주 약간이나마 몸이 움츠러들어 있었던 모미지는, 여기에 반응할 수 없었다. 이미 충돌은 불가피. 아니, 이제 그걸 회피가 가능케 해 주는 기술이 있다면, 자신의 스승인 난고에게 배운

《누벼 걷기》뿐이었지만───

'사각에 들어갈라 캐도, ───사각 같은 게 없는데 우짜란 말이고!'

대치하고 있던 모미지는, 알 수 있었다.

잇키의 안광은 그녀의 우인인 모로보시의 《팔방주시》처럼, 넓은 전장 모두를 시야 안에 두고, 적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이 눈을 가진 적을 뿌리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누벼 걷기》는 정밀도가 높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검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모미지는 마음을 굳게 먹고, 자신의 디바이스인 《히바치》에 불꽃을 둘렀다.

일격만이라도 좋다.

단 한 번만이라도 스치게 만들 수 있다면, 《히바치》의 불꽃은 뱀이 되어 잇키의 온몸을 죄어 버릴 것이다.

'단 한 공격만이라면......!?'

하지만, 그렇게 마음을 다진 찰나.

모미지는 자신의 시야에서, 잇키를 놓쳐버렸다.

"이런..."

그 순간 그녀는 이 현상이 《누벼 걷기》에 의한 작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으윽!"

그리고, 알게 된 순간엔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잇키는 그녀의 옆을 지나치며, 모미지의 몸통을 《환상 형태》로 만든 칼날로 베어버린 것이다. 그 참격은 틀림없이, 자신의 장기와 척추뼈까지도 양단해버릴 치명상이었고, 그에 상응하는 체력이 모미지의 몸에서 붉은 마력광─── 《혈광》이 되어 공중에 흩날렸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모미지의 몸이 땅에 무너져내렸다.

"허...억...!"

치명상에 상당하는 체력이 깎여나간 탓에 돌발적으로 찾아오는 피로감.

거기에 더불어 복부를 태우는 환상통에 모미지는 신음하면서도 어떻게든 고개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잇키는 깊이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방금 그 셋에게 했던 것처럼.

"헥... 그런 말 치아라. .....별로 도움도 안 된 것 같고.."

"그렇지는───"

"《철갑탄》─────!!!!!!"

"──────윽!?!?"

갑자기 그들의 대화에 껴들어온, 포음과도 같은 굵고 낮은 목소리.

그와 동시에 모미지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던 잇키의 사각, 바로 뒤에서 후두부를 향해 날아오던 건, ───《강철의 사나운 곰》 카가 렌지가 가해 오는 철의 손바닥 공격이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컨디션 조정을 위한 모의전에선 너무나도 상식 밖인 야만한 기습.

거기에, 모미지는 경직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 본인은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모미지는 그 순간, 보았다.

"───않아요."

그리 모미지에게 사양의 한 마디를 건넨 뒤, 낭패함 따위는 조금도 띠지 않고 실로 느릿한 동작으로 상반신만을 움직인 뒤, 손바닥을 들어 카가의 공격을 막아내는 잇키를.

자신의 두 배에 가까운 체구.

네 배 이상의 체중차를 자랑하는 남자의 손바닥을, 몸 하나 밀리지 않고.

───말이 되질 않는다.

이 말이 되지 않는 현상엔 숨겨진 원리가 있었다.

그 원리란, 잇키의 발치에 있었다.

손바닥을 막은 것과 동시에, 잇키의 발치 부분에서부터 링이 크게 함몰되었고, 금이 가며 파쇄되었던 것이다.

그걸 본 카가는 순간적으로 알게 되었다.

───흘렸구나, 하고.

잇키는 손바닥으로 막은 충격을 몸속에서 반향시키지 않은 채, 절묘한 중심 이동과 전신운동을 이용하여 축이 되는 발을 통해 지면 쪽으로 흘려보낸 것이다.

그야말로, 피뢰침처럼.

그리고 기습을 막히고 한 번 후퇴를 하려 한 카가의 움직임에 맞춰 잇키는 막아낸 카가의 오른팔을 '밀어'냈다.

'........윽!'

몸의 중심을 뒤로 옮긴 순간 가해진 앞에서 미는 힘. 자신의 무거운 체중 때문에 카가는 뒤로 크게 넘어지고 있었고... 그 한 순간에, 《음철》은 이미 카가의 몸을 베어내고 있었다.

"우욱..!"

카가의 큰 거체가. 무릎부터 지면에 쓰러져내렸다.

그런 카가에게

"다, 당신! 갑자기 기습을 하다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에요!"

시즈쿠가 새파란 안색을 하고 화를 냈다.

확실히 이건 믿을 수 없는 사태였다.

오늘 시합을 가질 선수를 위해 갖추게 된 조정 시합에서, 《환상 형태》라고는 해도 불의의 기습을 하다니.

하지만 정작 기습을 당한 잇키는, 화를 내며 링 위로 달려오는 시즈쿠를 제지했다.

"괜찮아. 시즈쿠."

"오, 오라버니!?"

그리고 그는 놀랍게도

"카가 씨. 감사합니다."

카가에게도 모미지와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 잇키의 대응에 카가는 한 번 눈을 크게 뜬 뒤, 호탕하게 웃었다.

"크, 하하하핫!! 아주 조금의 틈도 없고, 거기다 기습에 불만도 하나 없다는 건가! 겉보기엔 계집애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언제나 전장에 있는 사람을 보는 것 같군. 아주 좋은 마음가짐이야!"

기사는 스포츠맨이 아니다.

따라서, 시합 때만 집중력을 높이면 되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걸어 갈 때나, 자고 있을 때나, 식사를 할 때도. 언제나 신경을 날카롭게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방심하면 안 된다.

그런 느슨한 감정이 습관이 되어버리면, 반드시 중요할 때에 실수를 하게 되어버린다. 싸움의 수세란, 이따금씩 번갯불에 콩 볶아먹는 순간에 바뀔 때도 있다.

일일히 긴장감을 굳히고 풀고 해서야 죽도 밥도 안 된다.

하물며, 자신이 그렇게 손발도 못 써 가며 당했던 오우마를 그렇게 압도적으로 쓰러뜨린 기사를 상대로 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니 카가는 그걸 충언하기 위해, 잇키가 모미지에게 의식이 돌아간 틈을 찌르려 한 것이다.

───하지만

'굼벵이 앞에서 주름을 잡은 모양이구만.'

이 남자에겐, 그런 충고는 아주 쓸모없는 것이었던 듯했다. 카가는 그걸 통감하고, 동시에 확신했다.

"넌 이길 게야!"

퉁! 하고 잇키의 가슴팍을 한 번 쳐 주며, 카가는 그리 확실하게 장담했다. 확실히 스텔라는 강적이다. 특히 그 공격력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하지만, 잇키는 상대의 힘을 죽여버리는 이용법을 터득하고 있다. 이 남자의 기술도 또한, 그녀의 공격력에 버금가는 역량일 것이다.

적어도 카가는 이 모의전에서, 그걸 확신한 것이다.

그 격려에 잇키는 미소로 답했고,

"그럼 다음은 제가 상대하도록 하죠."

".......!"

그 순간, 목덜미에 내달리는 듯한 찌릿함에 표정을 경직시켰다.

잇키가 뒤돌아보자, 거기엔 검게 칠해진 칼집에 들어간 일본도를 허리에 건 채 천천히 링 위로 올라오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뇌절》 토도 토카.

하군 학원 대표 선발 최종전에서 잇키가 쓰러뜨린 적.

승부는 고작 한 합만에 났지만, 잇키의 기억엔 그 실력이 아직도 선명하고 강렬하게 남아 있다. 작년도 성적은 베스트 4였고, 순위는 죠가사키 뱌쿠야에 뒤지지만 잇키가 몸소 느끼고 있는 인상은 그 순위를 배신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모로보시와 함께 이 멤버들 중에서도 한 층 격이 높을 정도로 강할 것이다. 능력이 없이 싸우기엔 어려운 상대일 것이다.

하지만,

"어떡할래요? 아리스인 군과의 시합을 합치면 5전 째인데. 좀 쉬었다 할래요?"

"아니요. 신경쓰지 마세요."

───그렇기에, 피가 끓어오른다.

잇키는 《음철》을 쥐고 있는 손에 배어나오던 땀을 닦고, 디바이스를 고쳐쥔 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토카에게, 그 끄트머리를 향했다.

◆◇◆◇◆

잇키가 칼 끄트머리를 치켜든 그 순간, 《뇌절》이 움직였다. 직선 거리 10미터 정도의 간격에서 《나루카미》를 뽑아들고, 번개로 형성된 초승달 형태의 참격을 잇키에게 날린 것이다. 잇키를 향해 날개를 펼친 새처럼 날아들어오는 금색 번개. 그건 이전에 《심해의 마녀》와의 싸움에서도 사용한, 토카의 장거리포 공격.

노블 아츠 《뇌구》였다.

하지만 시합 개시 직후의 속공이라곤 해도, 상당한 간격에서 구사된 공격. 잇키의 간담을 싸늘하게 만들기엔 부족했고, 그는 곧바로 최적의 회피행동을 취했다.

즉, 크게 오른쪽으로 사이드 스텝을 밟은 것이다.

《모방검기》로 익힌 《비익》의 신체 조작 체술. 그로 인해 한 번의 도약으로 최고 속도에 달한 잇키의 몸은, 이 첫 공격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피해냈다.

실로, 아무런 위험 없이.

하지만 첫 공격을 회피한 잇키에게, 토카는 다시금 《뇌구》를 날렸다. 방금 손쉽게 피한 그 기술을, 계속해서. 물론 이것도 잇키에게 닿지 않았다. 잇키는 방금과 다른 방향. 왼쪽으로 몸을 날려 이것을 피했다.

역시 스치는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토카는 다시금 《뇌구》를 날렸다.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이 행동엔, 토카의 계획이 담겨있었다.

'이건.......!'

"역시 끝내주네, 토도는. 내하고 한 시합을 보고 쿠로가네의 약점을 잘 찌르고 있어."

그리 감탄한 듯 중얼거린 건, 둘의 모의전을 벽 쪽에서 관전하고 있던 모로보시였다.

"오라버니의 약점이요?"

"뭐, 정확하게 말하자믄 저 체술의 결함이라 칼수 있겠제. 내랑 시합하고 나서부터 쭉 써왔던 저 《비익》의 《모방검기》는, 몸이란 몸의 근육을 일제히 가동시켜가지고 제로백에 걸리는 시간을 아예 없애버리는 가속이 장점인기라. 그 가속은 길에 나굴러다니는 놈들은 눈으로 보지도 못한다. 그치만 저 녀석이 움직일 때, 언제나 온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나다니고 있다 카믄.."

"앗....."

거기까지 듣고, 시즈쿠도 알게 되었다.

방금 전부터 토카는, 잇키가 좌우 교차 역방향으로밖에 피할 수 없도록 《뇌구》를 좌우로 쏴대고 있다는 것을.

"니도 알긋제? 언제나 전속력을 내고 있으니 급정지, 그리고 급선회를 하기가 어려운기라. 그렇게 선회를 할 때마다 하반신엔 엄청난 부하가 걸린다. 그러니 계속 한 발씩 피하다 보면 언젠가 회피가 어려워질 끼고, 언젠간 잡혀버릴 거다."

그 모로보시의 말은, 링 위에서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 2회 정도는 여유롭게 회피해 낸 잇키였지만, 서서히 그 여유는 없어져갔고, 피부 위를 스쳐 지나가는 아슬아슬한 회피가 많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치만 쿠로가네도 그런 토도의 의도를 알고 있을끼라. 이대로 잠자코 거리가 벌어진 채로 당하고만 있을 머스마는 아닐 테니깐."

모로보시의 예측대로, 잇키가 좌우로만 구사하던 회피에, 변조를 보였다. 그는 횡방향의 회피를 멈추고, 마치 땅을 기는 사족동물처럼 몸을 낮추고, 《뇌구》 의 아래를 빠져나갔다.

"굉장해...!"

"여전히 얼탱이가 빠져버릴 것 같은 몸놀림이네. 저 사이를 빠져나간다꼬?"

"오라버니라면 가능해요!"

그리고 그 아래를 빠져나온 뒤엔───, 서로의 검이 닿는 곳.

크로스 레인지.

잇키는 거기까지 거리를 좁힌 뒤, 찌르기를 주체로 한 날카로운 연격을 구사했다. 그 어떤 공격도 검의 궤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 토카는 여기에 잘 응전해 냈지만, 도저히 납도를 할 여유를 가질 수가 없었다.

그리고 검을 칼집에 넣지 못하게 만든다면, ───토카가 자랑하는 크로스 레인지에서의 최강의 노블 아츠 《뇌절》이 날아올 일은 없다.

'이거면 됐어....!'

보편적인 《뇌절》 방지법을 준수하면서, 잇키는 그리 확신했다. 잇키는 《뇌절》의 무서움을 몸소 느끼고 있다. 《뇌절》은 《일도나찰》이라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짜내는 큰 기술로 맞서고 나서야 이길 수 있었던 기술이다.

스텔라와의 시합이 있기에 능력을 쓸 수 없는 이상, 토카에게 이기기 위해선 《뇌절》을 못 쓰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 기술이 나온다면, 그 시점에서 패배하는 것이다.

그러니, 《뇌절》을 봉쇄시킨 채, 검으로 압도하면 되는 것이다....!

'할 수 있어! 휘두르는 속도는 내가 더 위야!'

토카의 참격도 날카로웠지만, 《비익》의 검을 모방하고 있는 잇키의 차원까지 올라올 수준은 아니었다. 칼을 부딪힌 채 힘겨루기를 하게 되는 전개가 나오지 않는 한, 디바이스를 통한 감전 공격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

'이대로 공격해서 이기겠어!'

그리 결심하고, 잇키는 중심을 더욱 앞으로 몰아, 칼에 힘을 더했다. 그리고 마침내, ───비연과도 같은 연속 참격에 의해, 토카의 《나루카미》가 바깥쪽으로 크게 튕겨나갔다.

'좋았어, 무너졌다!'

지금까지의 검극으로, 토카의 스윙 속도 측정은 끝내 뒀다. 이 각도, 이 위치로 튕겨나간 검은, 자신의 추격을 쳐낼 수 없을 것이다.

다음 일격은───

'무조건 들어갈 거야! 여기서 끝이다!'

그리 확신한 잇키는, 더욱 중심을 앞으로 기울이고, 추격을 가했다────

아니, 가하려 했다.

하지만

'으윽......!?!?'

그 직후, 앞쪽 목덜미. 오른쪽 경동맥에 예리한 찌릿함이 느껴졌다.

그건, 몇 번이고 사선을 넘어 온 것으로 갈고닦은, 제 육감에 의한 경고. 그 경고에, 잇키의 몸은 수많은 전제를 무시하고 자동으로 움직였고,

───잇키의 예측보다도 훨씬 빠르게 되돌아온 토카의 칼날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이럴 수가....!'

토카의 스윙 속도로는 있을 수 없는 속도의 반격.

거기에, 잇키는 경악하며 숨을 삼켰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예기치 못한 반격에 사고를 돌리는 잇키.

하지만, 그런 잇키의 사고를, 토카는 일일히 기다려주지 않았다.

칼날끼리 맞부딪힌 상태인, 《나루카미》와 《음철》.

그 칼날의 접촉점을 통해, 토카는 잇키의 몸에 뇌격을 흘려넣었다.

"크읍.. 앗...!!"

파직!

《나루카미》와 《음철》 사이에 불똥을 튀기며, 뇌격은 잇키의 온몸을 꿰뚫었다.

《환상 형태》에서의 공격이기 때문에 피부가 타들어가진 않았지만, 감전된 근육은 격하게 경련하며 격통을 유발시켰다.

그 결과, 그의 움직임이 한 순간 정지했다.

토카는, 그 순간을 노렸다!

재빨리 《나루카미》를 위로 쳐들고, 그대로 크게 아래로 내리쳤다.

───하지만 그 공격은 잇키가 유도해낸 공격이었다.

'굳어있지 마!!'

잇키는, 토카가 칼을 내리치는 모션에 들어간 것과 동시에, 격통에 몸부림치는 자신의 온몸을 향해 일갈했다.

수련을 거듭해 온 신체 제어술로 자신의 심근을 조작하여, 말단 신경의 전달을 복구했다. 근육은 곧바로 감전에서 회복되었고, 정수리를 향해 쇄도해 들어오는 일격을 최소한의 사이드 스텝으로 회피했다.

상대가 감전을 당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승부를 결정지을 일격을 구사한다.

그 토카의 사고를 예측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행동은, 멋들어지게 토카의 공격을 피해냈다. 온 힘을 다한 종베기는 중간에 멈출 수 없었고, 그 베기는 그녀에게 큰 틈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틈은, 잇키에게 있어 찬스로 바뀌었다───

그럴 터였다.

"크윽!?!?"

하지만, 잇키의 사고는 다시금 토카의 되돌아온 칼날에 의해 저지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잇키 쪽도 칼날을 맞대지 않았다. 그녀는 칼을 되돌렸지만, 그녀도 상대가 두 번 같은 수에 걸릴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던 듯했다. 《나루카미》로 뇌격을 구사하는 게 아닌, 그대로 서로의 사정권 내에서 검극으로 나서 왔다.

여기에 잇키도 응전했고, 크로스레인지의 공방이 펼쳐졌다.

하지만, 스윙 속도는 명백히 잇키 쪽이 상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뚫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기는커녕───, 서서히 잇키 쪽이 밀리고 있었다.

그 원인은 물론

'되받아치는 기술이야..!'

잇키는 공방에 밀려나는 도중, 보았다.

그녀가 휘두르는 칼날이, 그 전설의 검기 '츠바메가에시'도 못 당해 낼 정도의 예리함을 지닌 채 이상한 속도로 잇키의 칼을 되받아치고 있었다.

그 참격은 마치, 번개와도 같은 궤흔을 그리고 있었다. 검극 사이사이에 구사되던 그 궤흔이, 잇키의 리듬을 무너뜨리고 있던 것이다.

───이것이, 토도 토카가 올해 대회를 제패하기 위해 만들어낸 기술. 크로스 레인지 사이에 특수한 자기장을 형성하여, 전자력의 인력과 척력으로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속도로 참격을 되돌려준다. 모로보시 유다이가 자랑하는 사람의 차원을 넘어선 체술 《혜성》을 공략하기 위해 만들어낸 노블 아츠─── 《번개》였다.

손목에 가해지는 부담이 엄청났기 때문에 난발은 불가능하지만, 공방 속에서 이따금씩 섞여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그 속도 차이에 의해 상대의 공격 리듬을 완전히 꼬이게 만들어놓는다. 그리고 한 번 리듬이 무너지면, ───상대의 검을 넘는 건 손쉬워진다!

"하앗!"

"큭!"

심장을 꿰뚫기 위해 쇄도하는 토카의 찌르기.

그걸 피하기 위해, 잇키는 온 힘을 다해 몸을 뒤로 빼 사정거리 밖으로 후퇴했다.

그렇다. 뒤는 생각할 것 없이 후퇴한 것이다.

"오라버니..!"

그가 가장 자신있는 거리, 크로스 레인지에서의 검극에서, 잇키가 밀린 것이다. 그 사실에 시즈쿠는 경악했고, 모로보시도 또한 표정을 경직시켰다.

당연하다. 《비익》의 검을 익힌 잇키의 크로스 레인지에서의 실력은, 이미 그도 겪어봐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런 그를 밖으로 밀어내다니.

'이 여자, 강해... 작년하곤 비교도 안 되게..!'

───그리고 토카는, 뒤로 물러나는 잇키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를 쫓아가, 계속해서 공격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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