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5/77)

일러스트

'쿠로가네 군. 당신의 검기는 확실히 굉장해요. 모로보시 씨와의 시합을 TV에서 보고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니까요. 사람의 수준이라고 생각지 못할 정도였죠. ───하지만!'

토카는 생각한다.

그 정도, 블레이저라면 당연한 것이라고!

확실히 체술 하나로 이 영역까지 온 잇키는 실로 굉장하다. 하지만, 그건 블레이저로서의 재능이 없다는, 잇키의 사정을 감안하면 그런 것이다.

딱히 자신이나 다른 사람은, 체술 하나로 그 영역에 올라갈 필요 따윈 없다. 마력을 이용하고, 능력과 함께 싸운다면, ───사람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 정도는 어려운 게 아니다.

그렇다면, 부족하다.

사람의 수준을 넘은 검극 정도로는.

'스텔라 양은커녕, 저도 넘어서지 못할 거에요...!'

"큭.....!?"

토카의 맹공에, 잇키는 방어에 전념했다.

칼을 막아낼 수 없는 이상, 어쩔 수 없이 몸을 뒤로 빼게 되는 동작이 많이 나왔고, 후퇴에 이은 후퇴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아앗...!?"

갑자기 뒤로 물러나던 잇키의 몸의 축이 흔들린 탓에, 중심이 무너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그 답은, 그의 발치에 있었다.

시즈쿠와 다른 사람들은 그걸 보고, 낭패한 빛을 띠었다.

'저건.. 카가 씨의 기술을 받아냈을 때의...!'

'안 돼! 부서진 링에 발이 걸렸어...! 공격해 올 거야, 잇키!'

'────아니야, 이건.....'

"하아아아아앗!!!!!!!!!!!!"

아리스인의 예상대로, 여기서 승기라 판단한 토카가 기합을 내지르며 공격을 가해 왔다. 부서진 링에 발이 걸린 잇키는, 몸의 축이 흔들린 상태인 탓에 그걸 막아낼 수밖에 없었고,

카앙! 하는 새된 소리와 함께, 둘은 칼날을 맞댄 상태가 되었다.

───당연히 거기서 이어지는 공격은, 토카의 뇌격.

"~~~~~~~크윽!"

작은 작렬음과 불똥을 튀기며, 《음철》을 들고 있던 잇키의 오른손과 함께 그의 상반신이 감전의 충격으로 인해 뒤로 크게 튕겨나갔다.

그 결정적인 틈에,

'지금이다...!'

토카가 자신의 비장의 기술을 꺼내들었다.

그녀는 이미 방금 잇키의 감전에서의 회복력을 한 번 봤다. 그저 베는 것만으론 피해버릴 것이다. 하지만 《뇌절》이라면 설령 피한다 하더라도, 음속을 넘어선 참격에 의한 대기의 폭쇄가 잇키의 온몸을 감싸버릴 것이다.

지근거리에서 받는 그 데미지는, 사람 한 명을 쓰러뜨리기엔 충분하다.

주저할 이유 따윈 없었다.

토카는 그리 확신하고, 《나루카미》를 칼집에 넣었다.

'엣!?!?'

아니, 정확하게는, 넣으려 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어째서인가.

그 이유는, ───《나루카미》의 칼집에 있었다.

칼집의 입구와, 거길 통해 집어넣으려 한 《나루카미》의 칼끝.

그 사이에 납도를 가로막은, ....부서진 링 바닥의 파편이 끼어 있던 것이다!

'으읏~~~~~~!!'

그 순간에서야, 토카는 겨우 알아채게 되었다.

자신이 계략에 빠졌다는 것에.

그렇다. 잇키는 부서진 링에 발이 걸린 게 아니다.

링 파편을 차올리기 위해, 일부러 균열에 발을 꽂아넣고, 감전에 몸이 튕겨나가는 자세에 맞춰 파편을 발로 차 그녀의 《나루카미》를 납도할 칼집에 끼워 놓은 것이다.

이 계략에 의해 납도는 저해되었고, 그와 동시에 토카는 치명적일 정도로 무방비해졌다....

"카.....학───"

그 순간, 감전에서 회복된 잇키의 참격이, 그녀의 목을 훑고 지나갔다.

◆◇◆◇◆

치명상을 받은 토카는 온몸의 의식이 몸과 함께 무너지는 걸 자각했다.

하지만, 강건한 정신력으로 한 쪽 무릎을 꿇는 것에 그치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잇키에게 고했다.

"....설마, 이런 방법으로 《뇌절》이 파훼돼 버리다니..."

"1회용으로밖에 못 쓸 기습이긴 하지만요."

이 말에 토카는 "겸손하긴." 이라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링 파편으로 납도를 저해하는 건 기습일 뿐이다. 두 번은 쓸 수 없다.

하지만 이 쪽의 《뇌절》을 미리 예측하고, 링이 파손된 것을 이용하는 것을 생각해내는 그 발상력. 그리고 격한 검극 도중임에도, 눈치채이지 않고 상대를 소정의 위치로 유도해내는 실행력.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계책을, 생체신호를 읽어내는 자신의 눈을 완벽히 빠져나간 채, 조금의 실마리조차 허용치 않은 기술력.

그 모든 것들은 틀림없이, 수많은 국면에서 나타난 잇키의 실력이다.

───잇키의 실력을 받쳐 주고 있는 건 검술 하나만이 아니다.

그는 그것만이 특기가 아닌 것이다.

시야를 넓게. 그리고 언제나 이기기 위한 최선의 계책을, 최고의 효율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검기에만 빠져 있던 건 아무래도 제 쪽이었던 것 같네요.'

"역시 대단해요. 조정하는 걸 도와주려 왔는데 오히려 하나를 더 배워가는 셈이 되어 버렸네요."

"공부라뇨. 전 쓸 수 있는 기술이 적으니 이런 싸움법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뿐이에요. ....토도 선배. 대결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요, 이쪽이 할 말이에요. 아주 의의 깊은 모의전이었어요. 고맙습니다."

"아뇨, 그런───"

"아~ 자자. 그렇게 지나칠 정도로 일본인스러운 인사 캐치볼은 고만 하고. 이쪽 바바라, 쿠로가네."

툭, 하고 잇키의 등을 딱딱한 무언가가 찔렀다.

그건, 모로보시의 디바이스 《호왕》의 창자루였다.

"꽤 재밌는 대결이었지만, 의외롭진 않았네. 방금 그거랑 똑같은 짓거리를 내한테 했다간 씨알도 안 맥혔을끼다."

그 말에 잇키는 토카를 향해 있던 몸을 모로보시에게 돌리고, 작게 끄덕였다.

"그렇겠죠. 당신은 저처럼 약삭빠른 사람이니까요."

"하핫. 당연하제. 내는 나니와의 상인이니깐!"

잇키의 농담에 껄껄 웃으며, 모로보시는 《호왕》을 빙 돌려 반전시켰다. 그리고, 그 창날을 잇키에게 향했다.

"마지막엔 내랑 하는기다. 오늘 시합이 있을 상대니께 《폭식》는 역시 못 쓰겠지마는, 헤헷. 딱 알맞게 지쳐 있겠제? 이 기회에 1회전에 진 빚을 이자까지 쳐서 갚아줄테니께, 각오하라카이!"

이히힛, 하고 약삭빠른 웃음을 띠는 모로보시.

하지만 사람은 표정이나 말은 자제할 수 있어도, 눈에 깃든 감정까지 제어해낼 수는 없다. 잇키는 모로보시의 눈에 깃든 따스한 감정에 깊이 감사하며, 자신의 칼끝을 들어올렸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어서 모로보시와의 모의전. 그 전개는 토카와의 모의전과는 달리 조용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할 것이다. 모로보시는 잇키와 같은 체술을 주체로 한 기사이다. 토카처럼 장거리에서 마술전을 펼치는 기사가 아닌 것이다. 기본적으론 창의 사정거리 내에 들어가지 않는 한 공격해 올 일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면서, 창을 던지는 사람이었지.'

아직 사정거리 내에 들어서진 않았어도, 조금의 방심도 용납되지 않는다. 잇키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사각형 모양 링에서 모로보시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움직였다. 그 사이에서도, 모로보시의 시선은 결코 잇키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내리고 있던 《호왕》의 창날도, 언제나 잇키의 심장에서 이어지는 연장선상에 놓고 있었다.

'다시금 상대해보니, 정말 엄청난 압박감이야.'

파고들 틈이 전혀 없었다.

'1회전 때처럼 속도로 착란시킨다는 방법은 못 쓸 것 같아.'

잇키는 알고 있었다.

칠성검무제 1회전의 승리가 얼마나 아슬아슬했는지를.

그건 실력으로 이겼다기보단, 기습에 의한 승리에 가깝다. 모로보시가 잇키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눈이 익숙해지기 전에 큰 출혈을 동반한 참상을 낼 수 있었던 것이 승리의 요인이었던 것이다.

출혈에 의한 말단신경으로 통하는 산소량이 저하. 그 결과, 시력이 저하되어, 모로보시는 잇키의 급격한 가속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로보시는 다르다.

몸은 만전의 상태이고, 무엇보다 잇키가 《비익》의 검을 사용하고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지만.

결국, 토카와의 시합과 똑같다.

아무리 위험하다 하더라도, 잇키는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너무나도 적다.

자신의 거리. 검의 사정거리 내에서 승부를 걸고, 벤다.

그 이외의 전술은, 없다.

그렇다면.

'겁먹지 마.'

모로보시의 위압감은, 확실히 강하다.

하지만 이 정도로 위축돼 버려서야, 스텔라의 사정거리까지 다가갈 수조차 없을 것이다. 적의 사정거리 내 외에 자신의 승기가 없다고 한다면

'겁먹지 않고, 가는 거야!'

자신의 마음에 채찍을 가하고, 잇키가 급가속. 모로보시를 향해 달려나갔다. 여기에 모로보시는, 한 번 심호흡을 한 뒤

"흡!"

창의 사정거리 내로 들어온 잇키에게 눈 깜빡할 새에 버금가는 찰나에 세 번, 치명적인 찌르기를 가했다.

한 번에 삼연격이 되는 찌르기.

모로보시의 고속 찌르기 《삼연성》이었다.

거기에, 잇키도 마치 전광석화처럼, 그 잔광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참격을 상대했다. 쏟아지는 강철의 유성.

그걸 갈라 나가듯 앞으로.

하지만───

'이..건.....!'

앞으로 가려 해도, 나아갈 수가 없었다.

《삼연성》을 무수히 내뻗음으로 인해 생겨나는 창격의 소나기.

그 속도와 밀도가, 이전 시합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비익》의 검기로도 쳐내는 게 고작일 정도였다.

"놀랐냐, 쿠로가네?"

"윽......!"

"1회전에선 이 《삼연성》을 《폭식》의 미끼로 뿌려버렸제. 일부러 창을 튕겨낸 뒤 내 품으로 파고들어오게끔 속도를 조정했던기라. 하지만 중간중간 《혜성》을 섞지도 않고, 《폭식》에도 의지하지 않는, 그저 속도만을 중시하고 공격한다면, 나도 이런 정도는 가능하다는 말이다. 어디 파고들 수 있음 파고들어 보그라!"

"큭..."

그 말에 충만한 자신감.

하지만, 그건 결코 과언 따위가 아니었다.

모로보시의 찌르기는, 그리 간단히 돌파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창을 회수하는 데에 생기는 틈이 거의 없어. 《삼연성》이라고 하기보단, 이건 완전히 《유성군》 수준이야.'

쉴새없이 쏟아지는 강철의 유성.

직선으로 파고드는 건 어렵다.

그렇다면.. 하고, 잇키는 여기서 자신의 기술을 이용했다.

완급을 준 고속 스텝을 이용해 좌우로 움직이며, 적을 환혹시키는 잔상을 만들어내는 체술.

제 4비검─── 《신기루》. 1회전에서 모로보시를 고난에 빠뜨린 잇키의 비검이다.

이 기술에 의해, 잇키는 모로보시에게 이지선다를....

"얕보지 말라고!"

"윽!?"

그 얕은 생각은, 잇키에게 치명적이었다.

잇키가 《신기루》를 이용해 오른쪽에 잔상을 남긴 채 왼쪽으로 움직이려던 찰나.

《호왕》이, 마치 구부러졌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창날의 방향을 바꾸어 왼쪽으로 도망간 진짜 잇키를 향해 아무 망설임 없이 쇄도해왔던 것이다.

잇키는 그걸 간발의 차이로 검을 들어 빗겨냈지만

"으라아아압!!!!!!"

"크, 윽..!"

모로보시는 《음철》에 의해 빗겨나간 《호왕》에 더욱 힘을 넣어 잇키의 몸을 링 구석까지 날려버렸다. 그리고 가까스로 낙법을 취한 잇키에게, 모로보시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고했다.

"잔상을 만들어낼 방향으로 돌아선 순간, 발끝에 더욱 힘이 들어가지. 그 기술의 예비동작은 벌써 다 간패해 냈어. 일류 기사에게 같은 방법이 두 번 통할 거라 생각하진 말라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야."

".....에? 두 번 통하지 않았었어, 보탄?"

"그건 둘째치고 그게 1회전의 패인이었지."

"즉, 이류란 거구나."

"시, 시끄럽다카이! 관객은 조용해라!"

외야에 있던 관객의 야유에 불만을 토로하는 모로보시.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잇키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걸 대단하다고 평가하는 한 편, 자신도 또한 이 정도로는 끝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잇키는 칼의 손잡이를 더욱 세게 쥐고

'창의 사정거리 내에서 낼 수 있는 카드는 아직 더 있어.....!'

다시금, 모로보시를 향해 내달렸다.

"거~ 참, 질리지도 않나보네. 뭐, 그렇다곤 해도... 그럴 수밖에 없제, 너란 녀석은 말이다!"

상대가 먼 거리에 있을 때엔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제공권 내에 들어온 순간엔 열화와도 같이 공격한다.

모로보시는 기본적으로, 그런 수동적인 창술을 특기로 삼고 있다.

───잇키는, 그 점을 노렸다.

모로보시가 접근한 자신에게 첫 찌르기를 낸 순간───

'이 영격에 《독아의 태도(太刀)》를 넣는 거야!'

사선 아랫방향에서 올려베는 일섬. 제 6비검─── 《독아의 태도》. 디바이스를 통해 상대의 몸에 진동을 때려넣어 내부를 파괴시키는 비검이다.

검을 통해 가하는 침투경.

이 기술은 《신기루》와는 달리, 아직 모로보시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따라서 이 일격은, 무조건적으로 그에게 통할 것이고───

"속았지롱~"

"윽.....!?"

그 순간, 잇키는 눈을 부릅뜨며 경악했다.

그가 구사한 《독아의 태도》가, 영격해 오던 《호왕》에 닿는 찰나.

모로보시가 창끝을 재빨리 거둔 것이다.

그리고───, 크게 허공을 베어 버린 탓에 완벽한 틈이 생긴 잇키를 향해, 다시 창을 찔러넣었다.

"그런 독 냄새가 가득한 먹이는 아무도 안 먹을 거라고!!"

"크, 오오오오오오옷!!!!!"

그 직후, 공중에 깎여나간 체력의 빛─── 《혈광》이 일었다.

모로보시의 일격이 잇키에게 명중한 것이다.

하지만, 치명상은 되지 않았다.

《호왕》의 창날은, 옆구리를 살짝 스친 것뿐.

잇키는 아슬아슬하게 《호왕》의 창날을, 《음철》을 빙 돌려 손잡이 끝으로 빗겨내 궤도를 돌린 것이다.

그리고 잇키는 재빨리 창의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났다.

"여전히 기술 하난 끝내주는 녀석이란 말이야."

".....어떻게 함정이란 걸 안 거죠? 이 기술은 모로보시 씨한테 보여준 적은 없었을 텐데."

"부자연스럽게 체중을 뒤쪽에 남겨둔 걸 봤거든.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던기라."

"───그렇군요."

이 말에 잇키는 쓴웃음을 흘렸다.

자신의 동작 체크는 구멍이 날 정도로 해 왔었지만, 아무래도 아직 부족한 점이 있었던 듯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해했다.

'상대의 미스를 기대하는 전술로는, 이 사람에게 이길 수 없어.'

모의전인 탓에 사양할 마음이 없는 건지, 모로보시의 집중력엔 빈틈이 너무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자연스레 서 있으니, 파고들 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능한 건 하나 뿐.

잇키는 그리 결심하고, 《음철》을 똑바로 든 채 모로보시를 노려봤다.

"──────"

그 잇키의 시선, 그리고 자세에

'....뭐지? 갑자기 위압감의 질이 바뀌었는데.'

백전연마의 맹자인 모로보시의 전투에 대한 감은, 바로 무언가를 감지해냈다.

'축이 되는 발이 완전히 바닥에 닿아 있어. 저래서야 속도가 붙은 도약을 할 순 없을 텐데.'

모로보시의 생각처럼, 세 번째의 잇키의 돌진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속도가 아주 느렸다.

《음철》을 똑바로 앞으로 든 채, 실로 느릿느릿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와 그라노? 그런 거북이 같은 동작으로 다가왔다간 순식간에 벌집이 되버릴낀데?"

"─────"

모로보시의 그 말에, 잇키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시하고 있다, ───라는 건 아니었다.

'단순히 듣질 않고 있어. 들리지 않는 건가.'

모로보시는 그렇게 잇키의 눈을 관찰하고, 알게 되었다.

소리에 대한 반응이 전혀 없다.

그저 똑바로 모로보시만을 응시한 채, 천천히 간격을 좁혀오고 있다.

'.....집중력이 극한을 넘어섰을 때, 주변의 소리가 들리질 않는다거나, 색을 인식할 수 없게 되기도 하지. 그 영역은 내도 경험한 적이 있긴 하지만...'

뭐, 눈앞의 남자라면 그 정도는 '의도적'으로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인 건, 그런 집중력을 구사해 가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라는 점이다.

이런 느릿한 움직임으로 대체 무슨 공격을 해 올 것인가.

그리고, 모로보시가 그리 생각하는 사이에, 둘 사이의 거리는 가까워졌고,

───그제야, 잇키의 발끝이 모로보시의 영역을 넘어 왔다.

그 순간

'칫, 뭘 허둥대노! 내가 할 것도, 상대가 하는 짓거리도 변함 없을 텐디!'

모로보시가 움직였다.

그가 구사한 건 속도만을 중시한, 폭우와도 같은 강철의 연격.

거기에, 잇키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날아들어 오는 창날을 《음철》로 튕겨냈다. 계속되는 날의 부딪히는 소리. 흩날리는 불꽃. 구도는 방금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

모로보시는 《호왕》을 쥐고 있는 손을 통해 느꼈다.

눈 앞에 있는 적이 가진, 불가사의한 무게를.

몇 번을 찔러도, 잇키는 방금처럼 뒤로 물러나질 않았다. 그리고, 옆으로 도망치지도 않았다. 똑바로 모로보시를 응시한 채, 아주 조금씩이긴 하지만, 앞으로. 또 앞으로.

"......으읏!"

그 모습에 모로보시는, 잇키의 생각을 간파했다.

'이 자슥.. 무슨 계책을 꾸미고 있는기 아니다...! 지금은 필요 없는 감각을 전부 내버리고, 몸을 움직이는 힘조차 최소한으로 줄여 가면서, 모든 집중력을 검에 집약하고 있어...! 자신의 모든 것을 검에 맡기고, 실력으로 중앙돌파를 해낼 생각인 기다..!'

어설픈 계책이나 잔재주가 통할 상대가 아니다.

그걸 느끼고, 잇키는 자신이 갈고닦아 온 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 것이다.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눈앞의 모든 요소를 자신의 승리로 이용한다.

그 영리한 생각의 반면에,

───자신의 약함을 믿는다, 이런 아주 중요한 국면에, 자신을 믿을 수 있는 그 담력.

듣기만 한다면 모순되어 있다고조차 느낄 상반되는 둘.

그걸 동반하며 지니고 있는 것이, 《워스트 원》 쿠로가네 잇키인 것이다.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약한지를.

하지만, 그는 믿고 있다.

자신이 누구보다도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걸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 왔다.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양손에 쥐여 있는 검은 칼에 깃들어 있다.

따라서, 쿠로가네 잇키는 물러나지 않는다.

도망치지도 않는다.

자신이라면, 가능하다.

그리 믿고 모로보시 유다이를 향해 최단거리로,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답파한다.

배수의 진도 아니다. 무턱대고 달려드는 특공도 아니다.

반드시 이긴다. ───그런 확고한 자신을 가지고.

그 엄청난 위압감은,

"윽!?"

확실하게 모로보시를 억눌렀고, 사각형 링 구석까지 내몰았다.

"오라버니, 굉장해요! 저 모로보시 씨를 정면으로 몰아넣고 있어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앞으로. 상대하는 쪽에 이겨낼 수 없을 정도의 위압감을 주는 방법이기도 하네."

"네. 거기에..... 쿠로가네 군의 자세도 정말 대단해요."

"무슨 말씀이세요?"

"모로보시 씨를 상대하면서, 그 어느 방향으로도 흔들림 없이, 깔끔한 중앙선을 유지하고 있어요. 이런 걸 당한다면 공격할 상대는 정말 괴롭겠죠. 그도 그럴 것이 정면으로 치켜든 도신이 상대의 중앙선을 완벽히 가드하고 있기 때문에 공격하기 어려울 거고, 무엇보다 적의 자세가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이상, 치명상을 노리다 보면 같은 곳을 같은 각도로 공격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돼 버려요. 어쩔 수 없이 같은 동작을 계속해서 취할 수밖에 없게 되어 버린다는 거죠. 그 결과───"

그 직후, 링에 빨간 빛이 흩날렸다.

잇키의 사지에서 흘러나온 《혈광》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생채기일 뿐.

그리고 그것이, 토카가 지적한 '결과'였고, 물론 그 결과는 모로보시도 알고 있었다.

'모션을 너무 많이 보여줬어! 쳐내는 힘과 각도를 최적화시켰어...!'

그렇다. 같은 공격을 계속해서 내뻗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 각도를 빠르게 간파당한다는 것과 귀결된다.

쳐내는 데에 필요한 힘, 각도, 속도, ───그 모든 것들을, 아주 자세하게.

그리고 지금, 잇키는 그걸 해석해냈고, 최적화시켰다.

결코 치명상이 되지 않을, 최저한의 동작으로 쳐 내며 방어 모션을 극한까지 단축시키고, 지금까지의 공방보다도 깊게, 모로보시를 향해 답파한다..!

앞으로.

더욱 깊게.

더욱 빠르게───

"코너를 등진 모로보시 씨는 당연히 초조해지겠죠. 그 초조한 마음이, 무리한 공격을 만들어낼 거에요....!"

그 토카의 예언은

"이런 젠장!!"

다음 순간에 적중했다.

섬광과도 같이 예리하게, 잇키의 급소를 향해 날아든 찌르기 도중 한 곳.

초조함이 깃든 탓에 팔에 힘이 너무 들어가, 《거두기》가 충분히 들어가지 않은 잡스러운 찌르기가 발생해버렸다. 의기가 깃들지 않은 탓에 생겨난, 힘이 들어가지 않은, 틈을 생기게 만드는 찌르기가.

그것을───

"────으윽!!!"

잇키는 놓치지 않았다.

"이런..."

모로보시가 자신의 실수를 눈치챈 순간엔, 이미 늦어버렸다.

잇키는 그 잡스러운 찌르기를 향해 앞으로 파고든 뒤, 자신의 어깨를 꿰뚫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자신의 몸으로 《호왕》을 봉쇄해 모로보시를 향한 반격의 기회를 잡았고,

"하아아아아앗────!!!!!!!!"

《호왕》의 날을 어깨로 잡아낸 채, 똑바로 모로보시의 품속으로 파고든 뒤, 모로보시의 심장을 꿰뚫었다.

◆◇◆◇◆

"아~ 나! 또 졌네~~!!"

심장을 꿰뚫린 모로보시는 힘이 빠져나간 채 바닥에 대자를 그리며 쓰러졌다.

"아, 증말.. 이번엔 이길 수 있을 끼라 생각했는데.."

"실제... 시합, 에선..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에요."

숨을 헐떡이며 답한 잇키의 말은, 결코 겸손 따위가 아니었다. 사실상, 지금 싸움도 모로보시는 마력이 적은 잇키를 배려해 《폭식》을 쓰지 않고 있었고, 다른 모두도 오늘 막 시합을 앞두고 있는 선수를 상대로 자신의 모든 힘을 발휘할 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가능한 한의 모든 힘을 자신에게 쏟아주었다.

칼을 섞은 잇키는, 그걸 잘 알 수 있었다.

그러니 그는 모로보시를 포함하여 새삼 여기로 모여 준 자신의 친구들에게, 다시금 감사를 표했다.

"모로보시 씨. 그리고 다른 분들도. 정말로 감사합니다. 스텔라와의 대결을 벌이기 전에,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어요."

"인사는 됐다. ───이 빚은 우승으로 갚아 달라고."

"......어쩐지 엄청난 빚이 생겨 버렸네요."

"뭐야, 자신 읎나?"

상반신을 일으키며 묻는 모로보시를 보며, 잇키는 잠시 침묵한 뒤 작게 끄덕였다.

"솔직히 이 싸움은 제 인생에 있어 가장 격한 싸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 자신이 있다고 할 순 없어요. ......하지만 제 모든 힘은 다할..."

"그람 안되제, 이 문디야."

그 순간, 모로보시가 링에 주저앉은 채, 《호왕》의 자루로 잇키의 머리를 콕 찔렀다.

그리고, 꾸짖듯 말했다.

"계속해서 꿈꿔 왔던 무대지 않나? 그런 어설픈 마음가짐으로 올라가 봐야 죽도밥도 안될끼라. 자신이 없다꼬? 그럼 억지로 짜내라! 진다는 건 말이다. 지고 나서 생각하면 그만인기라. 어차피 질 거면, 이란 생각은 그 외엔 아무런 생각도 못 하게 만들어버린다고."

"모로보시 씨....."

"어찌 해도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면 자신이 생길 때까지 함께 해주꾸마. 그니까는 그런 한심한 소리 하지 말그라."

그 모로보시의 말에, 오늘 이 자리에 잇키를 위해 모여 준 모두가 말없는 긍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로보시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헥까지 말씀해 주신다니, 사양 않고 좀 더 싸워 주실 수 있을까요?"

"헤헷, 그럼 휴식한 뒤에 한 판 더 해볼까?"

"네, 부디────"

그런데, 그 때였다.

끼이익, 하고 무거운 소리를 내며, 훈련장 방화문이 열렸고

" " "────으으윽!!!" " "

마치, 한겨울에 불어올 것 같은 몸을 에이는 차가운 바람이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바로 알게 됐다.

이건 냉기가 아닌, 한기조차 느낄 정도로 날카로운 검기라는 것을.

그리고 여기 모인 일부는 그 검기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설마...

그리 생각하고 열린 문을 바라보니, 거기엔───

"뭐냐, 너희들. 다같이 한심한 얼굴을 하고."

맹금과도 같은 날카로운 눈으로 일동을 바라보는, 장신 장발의 남자───

《바람의 검제》 쿠로가네 오우마였다.

"오, 오우마!?"

"에 니가...!?"

예기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경악을 감추지 못하는 일동.

여기에, 오우마는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자신의 사물인 마대자루를 바닥에 내던지며

"......대충 네 녀석들과 같은 이유다. 결승전을 벌이기 전에 컨디션 조정에 어울려 줄 상대가 필요하다는 문자를 받아서 말이지."

"에, 그.. 그랬어요, 오라버니?"

놀라 뒤돌아보는 시즈쿠를 바라보며, 잇키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것이 사실이었으니까.

확실히 그는 모로보시와 토카, 이 둘 이외에 오우마에게도 문자를 보냈었다.

물론 그건 안 되면 말고, 라는 느낌으로 보낸 것이었다.

오우마가 자신을 위해 나서 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설마, 정말로 와줄 줄은 몰랐으니 깜짝 놀랐어."

"결승전에 진출할 걸 상정하고 예정을 세워 뒀으니 시간이 비어 있던 것뿐이다. 거기에.... 지금의 네 실력도 한 번 봐두려고 생각했지."

"내.. 실력?"

"F랭크와 A랭크의 대결. 네 패배는 운명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지. 그러니 승패가 어떻게 갈리건 난 아무런 흥미가 없어. ........그저, 살아남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어설픈 네 힘으로, 그 《용》을 상대로 나선다고 한다면.... 죽기 전에 네 한심하기 짝이 없는 기개를 꺾어주는 것도, 어리석은 동생을 두고 있는 형이 해야 할 일이니까."

그리 말한 뒤 오우마는 자신의 온몸에 바람의 마력을 일으켰고, 그 마력을 오른손에 집속시킨 뒤, ───야태도 디바이스, 《류즈메》를 현현시켰다.

"윽.....!"

《류즈메》가 나타남과 동시에 오우마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검기의 예리함이 한 층 더 강해졌다. 그걸 불온하게 느낀 시즈쿠가 곧바로 잇키를 지키려는 듯 앞으로 나섰다.

아니───, 정확하게는 나서려 했다.

하지만, 그 행동은 잇키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어 제지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시즈쿠를 향해, 잇키는 "괜찮아." 라고 말해준 뒤, 오우마 앞으로 나섰다.

"와 줘서 고마워, 형."

"계속 얼빠진 소리하지 말고 어서 검을 들도록. 잡담에 어울려 주러 온 게 아니니까."

'여전히 붙임성이라곤 한 치도 없다니까..'

잇키는 쓴웃음을 지으며, 오우마 앞으로 나선 순간 느낀 위압감에, 다시금 눈앞의 남자에게 경외로움을 느꼈다.

'엄청나.....'

대치하고 나서 처음으로 느낀 위압감.

오우마의 몸이 두 배는 더 크게 보였다.

오우마는 명백하게, 모로보시와 토카보다도 한 등급 더 우월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손에 배어나는 축축한 땀.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방금 그 말. 오우마가 진심이라 할지라도, 전혀 문제될 게 없었기 때문이다.

어째서냐면, .....그가 말한 건 그야말로 옳았고, 그리 말하는 오우마를 물리치지도 못해서야, 스텔라에게 이길 수 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라던 바다.

스텔라를 앞에 두고 겁먹고 위축되어 있던 이 한심한 몸에 활기를 불어넣기에, ───이보다 더 좋은 상대는 없을 것이다.

잇키는 손에 난 땀을 한 번 닦아낸 뒤, 다시금 《음철》을 고쳐쥐고,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

개시를 고하는 선언과 함께 움직임을 보인 건, 오우마 쪽이었다.

일본풍 옷소매를 나부끼며, 잇키와의 최단거리를 좁혀 왔다.

거기에, 잇키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최단거리를 달려오는 오우마를 향해, 자신도 땅을 박차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물론, 그대로 똑바로 공격해 나아간다는 우를 범하진 않았다. 오우마의 그 무모한 트레이닝으로 얻은 초인적인 육체와, 거기서 나오는 여력을, 잇키는 알고 있다.

따라서───

"저건.....!"

링 밖에서 관전하고 있던 모로보시가 알아챘다.

야태도 간격에 들어서는 찰나, 잇키가 보폭을 바꾸어 전진에 급격한 완급을 가한 것을.

그는 그 동작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완급에 의해 적의 시각을 흐트러뜨리고, 자신 앞에 잔상을 만들어내는 기술.

앞뒤로 만들어내는 《신기루》다.

그리고 잇키의 노림대로, 오우마가 잔상을 베었다. 위로 완전히 치켜든 《류즈메》를 단숨에 내리치는 참격으로, 잇키를 일도양단했다.

하지만, 그가 베어낸 건 잔상이었고, ───그 결과, 뒤로 쇄도해 들어오는 진짜 잇키에게 사각을 내어준다는, 가장 무방비한 순간을 내어주고 말았다.

"먹혔어.....!"

모로보시는 일단 첫 유효타는 잇키가 가했다는 걸 확신하고, 주먹을 꾹 쥐었다.

하지만───, 그 옆에서 《뇌절》이 안경을 벗으며 눈을 가늘게 뜬 채

"아니요, 불발이에요."

그의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했다.

오우마의 온몸을 내달리고 있던 전달신호를 읽어, 그가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 지 예측한 것이다.

그 행동은

"윽!"

내리치던 검을 거둘 생각도 않은 채, 비스듬히 방향을 꺾었다. 그 자세 그대로, 오우마는 검을 들고 달려오던 잇키에게 어깨 밀치기를 시전했다.

"숄더 차지...! 《신기루》는 상대도 읽고 있었던 건가!"

잇키는 이 공격을, 내뻗으려 한 《음철》을 방패삼아 막았다. 하지만, 오우마의 몸무게는 그 외견을 크게 웃돌고 있었다.

500kg에 달하는 남자의 힘이 실린 몸통박치기의 충격은, 충분을 넘어선 흉기가 되어있었다.

"으윽......!"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소리라 할 수 없을 정도의 중저음과 함께, 잇키의 몸이 크게 뒤로 밀려났다. 이로 인해, 잇키는 밸런스가 무너져 발을 헛디디게 되었다.

거기에, 오우마가 열화와도 같이 달려들었다.

자세가 무너진 잇키에게 자세를 바로잡을 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 찌르기와 베기를 연달아 구사했다.

빠르다.

마치, 모로보시의 《삼연성》과도 같은 속도.

그걸 호흡도 없이 열, 스물, 기한도 없이 구사하고 있었다.

경이적인 회전. 그건, ───시즈쿠도 알고 있었다.

"조일일심류, 열렬함의 극한.. 《아마츠카제》.....!"

"그기 뭔디?"

"쿠로가네 가문에 대대로 전해오는 조일일심류의 오의에요. 108단에 달하는 연속 공격이죠."

첫 공격부터 108번째 공격까지, 구사하는 각도, 내뻗는 힘 같은 사소한 곳까지 정석화되어있는 효율적인 연격.

그걸 수천, 수만 번 반복하여 뼛속 깊은 곳까지 새겨놓아 자신의 모든 사고를 '닫아' 놓고, 몸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를 발휘하여 압도적인 공격수로 상대를 합살하는 오의이다.

"자세를 무너뜨린 상대를 공격하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공격이에요..!"

"하지만 잇키는 분명히 다른 사람의 검을 훔쳐내 오며 강해졌잖아? 그럼 쿠로가네 가문에 전해지는 검술이니 거기에 대한 공략법도 같이 알고 있지 않을까?"

".....모르겠어요. 제겐 너무 차원이 높은 곳에 있는 영역인걸요. 하지만..... 설령 알고 있다 하더라도 저런 공격을 받고 있어서야 아무 행동도 취할 수가 없을 거에요.."

시즈쿠가 말한대로, 잇키는 오우마의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구사하는 참격 때문에, 《음철》로 공격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오우마의 맹공을 피하거나, 받아내는 데에 모든 힘을 쏟고 있었다. 도저히 공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애초에 《아마츠카제》는 그런 상황에 구사하는 데에 주안된 오의이다. 과잉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효율화된, 그리고 고속화된 연속 공격으로 상대를 굳게 만들고, 아무 행동도 취할 수 없게 만든다.

지금, 잇키는 완전히 그 상황에 빠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보였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하지만───

'노리고 있어......'

토도 토카는 오우마의 공격에 압도되어 있는 잇키의 눈에, 예리한 빛을 포착했다. 그는 결코 굳어져 있는 것도, 압도당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 무언가란 것은, 《아마츠카제》의 빈틈이다.

아무리 오렌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기술이라 해도, 결국은 사람이 만들어낸 기술.

완벽함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탓에 생기는 조금의 틈이라 할지라도, 이 《워스트 원》의 조마경 같은 관찰안은 그걸 놓치지 않는다.

그것이 처음 보는 것이 아닌, 이 세상에서 볼 기회가 가장 많은 쿠로가네의 검술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윽!"

순간, 한 층 더 날카로운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린 뒤, 싸움의 국세가 움직였다.

그 소리가 울린 뒤, 자세가 무너진 건 오우마 쪽이었다.

잇키가 내뻗은 건, ───제 7비검 《뇌광》.

《비익》의 《모방검기》를 손에 넣기 전에도 보통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를 자랑하던 그 일격이, 순식간에 《바람의 검제》의 《아마츠카제》의 빈틈, 제 57번째 공격에서 58번째 공격으로 이어지는 틈에 파고들어, ───《류즈메》의 옆면을 쳐내 콤비네이션에 들어가는 회전을 끊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콤비네이션이 끊어져 자세가 무너진 오우마를 향해, 잇키는 혼신의 일격을 가했다.

몸의 힘까지 가하여 내리친 사선 베기.

그 동작에, ───모로보시는 알아챘다.

'저 체중을 싣는 참격은, 내랑 싸웠을 때 썼던───'

제 6비검─── 《독아의 태도》.

검으로 받든 갑옷으로 받아내든, 칼날이 닿은 곳을 통해 상대의 몸에 진동을 때려넣어 상대를 내부에서부터 파괴해내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라면, 오우마의 강철 같은 몸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오우마는 그걸 모른 채 이 잇키의 일격을 피하지도, 받아내지도 않고, 혹독한 단련으로 얻은 자신의 단단한 몸으로 받아냈고───

그야말로 물이 담긴 주머니라 할 수 있는 사람의 몸에, 내부로부터 타격이 가해졌다. 몸 안으로 들어온 충격은 오우마의 체내에서 갈 곳을 잃고 날뛰며, 내부의 살을, 뼈를, 장기를 유린했고───

"《천룡구속》"

"윽.......!"

유린했을 터인데도, 오우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독아의 태도》가 실패한 게 아니다.

확실히 칼날에 담은 독은, 오우마의 몸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오우마는 멀쩡했다.

즉, 쿠로가네 오우마의 무서운 점은 거기에 있었다.

몸을 초월한 정신력.

수많은 고통을 받아들이고, 초심을 관철해 나아가는 강철 같은 목적의식.

평범한 고통 따위, 이 남자는 간지럽게 느끼지도 않는다.

오우마는 고통에 찬 비명을 흘리기는커녕,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전신에 폭풍의 갑옷을 두르게 해 주는 노블 아츠─── 《천룡구속》을 발동.

그 직후, 오우마의 가슴팍에 닿고 있던 《음철》을 통해, 마치 때려박는 듯한 충격이 잇키를 덮쳤고, 그를 뒤쪽으로 날려버렸다.

차에 치인 듯 공중을 나는 잇키의 몸.

그 착지점을 향해, ───먼 거리에 서 있던 오우마가 《류즈메》를 옆으로 휘둘렀다. 날카로운 풍절음을 내며 칼에서 쏘아진 진공의 칼날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착지한 잇키의 목을 날려버릴 궤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잇키는 회피라는 행동을 선택하지 않았다.

"흡!"

잇키는 착지에 의해 오는 충격을 그대로 무릎을 굽히는 데에 이용해, 몸을 낮췄다. 그리고 한계까지 굽혀진 하반신의 탄력을 일제히 개방했다───!

링을 깨뜨릴 정도의 힘으로 땅을 박찬 뒤, 날아들어오는 《진공참》을 향해 《음철》의 끄트머리를 찔러나갔다.

제 1비검───《서격》.

《어나더 원》이 지닌 7개의 고유 검기 중, 가장 빠른 돌진력과 가장 강한 돌파력을 지닌 찌르기다. 그 찌르기로, 잇키는 《진공참》을 정면으로 돌파해냈고─── 그 기세 그대로 오우마를 향해 마치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그 속도는 《천룡구속》으로 사정거리를 벌린 뒤, 장거리전을 상정하고 있었던 오우마의 의도를 완전히 우롱했다. 그는 순식간에 다시금 간격을 좁혀 오는 잇키에게 대응할 수 없었다.

───그랬을 터였다!

하지만....!

'안 돼!'

관전하고 있던 토카와 다른 사람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와 동시에, 잇키도 보게 되었다.

《진공참》이 깨져 대기의 왜곡이 사라진 시야 속에서.

잇키에게 등이 보일 정도로 크게, 《류즈메》를 위로 들고 있던 오우마의 모습을.

그 자세에서 나올 검기가 무엇인지,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알고 있었다.

조일일심류, 속도의 극한───《아마테라스》.

온몸에 있는 근육의 힘으로 관절은 물론 뼈까지 구부린 채, 그 모든 것들이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반발력을 참격에 싣는 오의. 단 일격이라 해도, 잇키의 《모방검기》와는 달리, 완전히 《비익》의 영역에 달해 있는 《바람의 검제》의 최속의 일격.

그리고 《아마테라스》는 장거리 기술이 아닌 근거리 기술.

그렇다. 오우마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잇키가 《진공참》을 돌파해낸 뒤, 바로 검의 사정거리 내로 돌아올 것이란 것을.

그걸 예측하고, 힘을 모아두고 있던 것이다.

잇키에겐 최악의 전개였다.

《서격》은 돌격 기술. 첫 도약에 모든 힘을 담아, 자기 자신을 화살로 만들어 표적을 꿰뚫는 기술이다.

따라서 한 번 《서격》의 자세에 들어선다면, 도중에 멈출 수는 없다.

잇키는 이제 똑바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정거리도, 공격속도도 오우마의 《아마테라스》가 상회하고 있는 이상, 《류즈메》는 확실하게, 잇키의 칼날이 오우마에 닿기도 전에 잇키의 목을 날려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궁지 따위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해낼 수 없을 정도로, 잇키는 무른 남자가 아니었다.

" " "뭣......!?" " "

다음 순간, 관전하고 있는 사람들은 경악에 눈을 부릅떴다.

오우마의 《아마테라스》가 나오는 찰나, 잇키가 《음철》의 끄트머리를 아래로 내려, 링 바닥에 박은 것이다.

그 결과, 《서격》의 돌격은 고꾸라졌고, 마치 높이뛰기처럼 《아마테라스》의 칼날을 뛰어넘어, 잇키는 오우마의 머리 위를 날았다.

그리고,

잇키는 천정을 발로 박찬 뒤, 오우마를 향해 다시금 《서격》을 가했다.

《아마테라스》는 가장 빠른 일격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오의.

따라서 한 번 낸 뒤엔 엄청난 틈이 발생하고, 오우마는 이 《서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직격.

지근거리에서의 《서격》은 폭풍의 갑옷 《천룡구속》을 꿰뚫고, 오우마의 쇄골 위에 박혀 들어갔다. 그것도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공격을 가한 것이 아니었다. 잇키는 오우마의 움직임에서 그의 근육의 형태, 밀도를 파악하고, 그 근육 사이를 통과하듯 찌른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공격력으로 오우마의 몸을 꿰뚫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이 판단은 옳았다.

토카의 《건어뇌신》으로도 꿰뚫지 못했던 오우마의 육체를, 통상의 참격으로 베어낼 수 있는 건 아마 스텔라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 계획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음철》의 칼날은 근섬유를 찢어내는 게 아닌, 그 사이를 통과하듯 오우마의 몸을 꿰뚫었지만, 치명상이 되기 전에 오우마는 자신의 근육에 힘을 넣었고, 그 칼날을 팽창한 근육으로 끼워 버리는 형태로 막아낸 것이다.

잇키는 공격이 먹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채고, 바로 칼날을 빼려 했지만,

───여기서 그를 끝장내지 못한 대가는 컸다.

콰악.

뻗어 온 오우마의 두꺼운 팔이, 아직 착지하지 못한 잇키의 멱살을 움켜잡았고.

그대로 링 바닥으로 메쳤다.

"~~~~~~~~~~크윽!"

잇키의 몸이 크고 깊게, 딱딱한 석재 링 바닥을 함몰시켰다. 가까스로 낙법을 취해 충격은 링 위에 흘려보냈지만, 이로 인해 잇키는 땅에 한 쪽 무릎을 꿇은, 아주 불리한 자세가 되었고───,

───거기에 오우마가 모든 체중을 실은 참격을 내리쳤다.

잇키는 이 참격에 《음철》을 휘둘러 받아내려 했다.

하지만 자세가 너무 좋지 않았다.

그런 자세로 오우마의 무거운 참격을 받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고,

"오라버니!!"

오우마의 혼신의 일격이 잇키를 《음철》채로 내리쳤다.

───그렇게 보인 찰나, 누구도 믿지 못할 사상이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다음 순간에 크게 튕겨져나간 건, 오우마 쪽이었다. 오우마는 곧바로 발을 땅에 짚어 힘을 줬지만, 멈추지 않았다.

링 표면을 깎아나가며 후퇴.

《류즈메》의 칼날을 땅에 박아 멈추려 했지만, 그래도 기세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리고 기어코, 오우마는 장외로 밀려나가버렸다.

◆◇◆◇◆

실제로 잇키에게 불리했던 그 한 합.

하지만, 크게 뒤로 밀려난 건 오우마 쪽.

그 사실에, 링 밖에서 시합을 견학하고 있던 사람들은 곤혹에 빠졌다.

"뭐, 뭐냐, 지금 건..?"

"모, 모르겠어요....!"

모로보시나 토카 정도의 수준의 기사에 한해서, 상대의 대강적인 스테이터스를 잘못 계측해낼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혼란은 한 층 더 깊었다.

지금 일격은, 명백히 잇키의 최대 공격력을 아득하게 웃돌고 있었다.

지금 눈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생각해 봐도 알 수 없었고, 그저 숨을 삼킨 채 링 밖까지 밀려난 오우마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딱 한 사람. 이 사상을 이해하고 있는 자가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니다. 링 밖까지 밀려난 오우마 자신이다. 그는 팔에 느껴지는 저릿함을 통해 이 사상에 대한 구조를 이해했고, 얄밉다는 듯 잇키를 노려봤다.

"...실로 네 녀석 다운 잔재주로군."

"하지만 형은 뒤로 밀려났어."

"─────"

"내 검은 강해지기 위한 검이 아니야. 이기기 위한 검이지. 그러니 상대에게 이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걸 전부 해내는 거야. 그리고,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이기지. 설령 그게 형에게 있어 잔재주로 보일지라도, 이게 최약의 내가 찾아낸 답, 쿠로가네 잇키의 검이야. 난 거기에 한 점 부끄러움 따윈 없어."

오우마의 모멸조차 느껴지는 그 시선에, 잇키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당당히, 아무 부끄러울 것 없다는 듯 가슴을 쭉 편 채.

그 모습에, 오우마는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이것도 또한, 한 종류의 강함일 것이다, 라고.

그렇다면,

"그 약삭빠른 잔재주로 날 장외까지 날려버린 것만으로, 네 검은 만족하는 건가?"

그는 다시금 링 위로 올라선 뒤, 《류즈메》를 치켜든 뒤───

그 도신에 바람을 둘렀다.

날뛰는 소용돌이를 두른, 천룡의 손톱.

훈련장의 천정과 벽면을 깎아낼 정도의 소용돌이를 두른 검을 든 채, 오우마는 잇키에게 선언했다.

"덤벼라. 잇키. 네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선사해 주지. 어디 한 번 이용해 봐. 그리고 운명을 뒤집어 봐!"

"............"

그 말에...... 잇키는 한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 형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상대해줄 줄은 몰랐으니까.

하지만,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그 투기엔, 조금의 거짓도 없었고,

"────네!"

잇키는 거기에 깊이 감사하며, 다시금 《음철》을 들었다.

어느 틈엔가, 식은땀은 멎어 있었다.

◆◇◆◇◆

스텔라가 눈을 뜨자, 방엔 창문을 통해 주황빛 석양이 들어오고 있었다.

침대에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의식은 또렷했고, 시야가 넓어진 감각조차 들었다.

그녀는 일어선 다음, 목욕타올을 벗어던지고,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에 비춰진 건 염미한 곡선을 그리는, 균형 잡힌 하얀 몸.

그 어느 것에나 한 치의 부족함도 없었고, 흐르는 피, 세포, 모든 것들에 에너지가 충만한 것이 느껴졌다.

자기 전에 먹은 과잉한 식사를, 용의 몸은 전부 아무런 낭비 없이 에너지로 축적해두었던 것이다.

틀림없이, 예전에 없을 정도로 최고의 컨디션이었다.

몸 안에서 잿불처럼 들끓는 열을 발산하는 그 힘에, 스텔라는 확신했다.

오늘 밤, 자신은 자기 자신조차 아직 모르는 스텔라 버밀리온에 대해서 알게 될 것이라고.

자, 준비는 끝났다.

가자.

최고의 무대에서, ───최강의 적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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