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장(전)
약속의 때
여름의 긴 황혼과, 깊은 밤의 어둠이 섞여 있는, 땅거미 질 녘.
칠성검무제 회장인 만안 돔 주변엔, 백만을 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하지만, 그런 수의 사람이 모여 있음에도, 현지엔 무거운 침묵만이 깔려있었다. 누구도 한 마디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그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그 침묵 속에서, 돔의 조명이 소리 없이 꺼졌다.
어둠───
그 어둠 속에서, 이번 칠성검무제 실황을 맡고 있는 이이다가 입을 열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듯.
'여러분. 이런 주장을 알고 계신가요? 성인식이라는 고리타분한 인습을 악용하여, 아직 나이도 채 차지 않은 아이를 어른으로 다뤄 대고, 거기에 모자라서 칼을 쥐어 서로 사투를 벌이게 만든다. 이건 아주 어리석은 짓이죠. 진정한 강함이란, 그저 힘만이 아닌, 마음이 강해야 하는 것. 싸우지 않아도 강할 수 있는 것. 마음이 강하고 착한 젊은이를 키우기 위해, 어른들은 모든 힘을 다 해야 한다. ......작금에 있어,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그리고 국제 회의에서도 자주 들려 오는 이 주장. 알고 있는 분도 많으실 겁니다. 확실히, 칠성검무제는 위험한 경기죠. 그 긴 역사 속에서, 시합 중에 목숨을 잃는 학생기사도 적잖이 존재해 왔습니다. 요즘 들어선 의료 설비 진보도 충실해진 덕에, 불행한 사고가 벌어지는 일은 적어졌습니다만, 그 위험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랍니다. 이런 비판이 이는 것도 당연하겠죠. 이렇게 말하고 있는 저 자신도, 전혀 공감치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단 하나,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어리석다.
과연, 정말로 그런 걸까요? 확실히 강하다는 것은 힘만 세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싸우지 않는 것에, 진정한 강함이 있다. 그것도 또한 진실이겠지요. 하지만, 하지만───... 이 세상엔, 힘으로밖에 이뤄낼 수 없는 꿈이 있습니다. 싸우는 것으로밖에 나타낼 수 없는 프라이드가 있습니다! 그런 꿈을 위해서, 누구의 강제 없이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32명. 그들이 제각각의 꿈과 프라이드를 걸고, 사력을 다해 싸우는 이 25시합. 전 생각합니다. 그 어느 대결이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보석보다도 아름답고, 어떠한 영웅담보다도 고귀하다고요!'
그 순간, 엄청난 소리가 터져나왔다.
백만에 달하는 민중이 박수를 치는 소리.
환성 없는, 그저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는 엄숙한 박수가.
'───시대는 변하였고, 가치관은 변동했습니다. 세상의 시스템도 정착되었지요. 언젠가 칠성검무제라는 이 축제도, 인습으로서 막을 내리게 될 날이 오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잊지 않을 겁니다! 결코 잊지 않을 거에요! 자신의 꿈과 프라이드를 위해 이 축제에 모여 온 자들 중 그 누구 하나라도,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는 것을! 목숨을 걸고, 자신의 기사도를 걸어나가는, 긍지 높은 기사들이라는 것을 기억할 겁니다!!'
다시금 이는 박수.
이번엔 더욱 강하게.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강하게 일었다.
말로 나타내지 않아도, 이 자리에 모인 누구나 마음 속에 새겨두고 있는 것이다.
사력을 다하여 꿈을 쫓아가는 젊은이들. 그들의 고귀함.
단연코, 그들은 어린 아이들이 아니다. 어리석은 자들도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높은 긍지는 결코 깎여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그 인식을 공유한 뒤, ───이이다는 선언했다.
'.....그리고 오늘 밤, 극도로 치열했던 25시합을 전부 이기고, 두 기사가, 32명, 아니. 일본에 존재하는 8개의 기사학교의 정점을 걸고, 칼을 휘둘러 왔습니다. 여러분! 오래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부터───, 제 62회 칠성검무제, 결승전을 개시하겠습니다!!!!!'
''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 '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는 듯, 마치 분화하는 것처럼 뿜어져 나오는 환성과 환희를 동반한 갈채. 그것이 터져나오는 듯한 박수소리와 함께 회장에서, 그리고 그 밖에서 끓어올랐고, 지금까지의 침묵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다.
동시에 회장의 모든 조명이 붉은 빛을 띠었고, 적색 게이트를 비추었다.
그 빛에 이끌리듯, 쏟아지는 갈채 속에서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의 소녀가 나타났다.
'먼저 적색 게이트에서 하군 학원 1학년,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 선수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칠성검무제 개최 전에 갑자기 그 모습을 나타낸 새로운 세력, 국립 아카츠키 학원! 그 선수가 모여 있던 B조를, 놀랍게도 이전 대회 베스트 8에 들었던 《얼음의 냉소》 츠루미 미코토 선수까지 포함하여, 단 한 시합에 한꺼번에 쓰러뜨려 시합을 제패! 이어지는 준결승전에선 A조의 패자이면서, 그녀와 동격인 A랭크 기사, 수 년만에 일본의 공식전에 모습을 나타낸 《바람의 검제》 쿠로가네 오우마를 거의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차로 격파! 누구보다 빠르게 이 결승전에 진출하였습니다! 그 모습이란, 마치 승천하는 용과 같았습니다! 자신의 몸에 신화상의 존재인 '용'을 체현해내는 이 기사는, 과연 그 '궁극의 폭력'이라고 말할수조차 있는 힘으로 칠성의 정점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
'스텔라 씨~ 멋져요~~~~~!!'
'우리 공주님!! 이제 한 승 남았다! 힘 내라고!'
'《워스트 원》 따윈 상대도 안 될 끼다! 고냥 콱 밟아버려!!'
쏟아지는 환성 속에서, 스텔라는 늠름한 표정을 지은 채 똑바로 링을 향했다. 그 걸음에 맞춰, 꽃이 깔린 길 좌우 구석에서 홍련색 불꽃이 뿜어져나왔다. 물론 그건 스텔라의 능력이 아닌, 회장의 분위기를 더욱 달아오르게 만들기 위한 연출이다.
학생끼리의 시합이라고 해도, 칠성검무제 결승전의 주목도는 어지간한 프로 리그보다 훨씬 높다. 그러니 결승전만은 특별히, 입장에서부터 무대 연출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결승전까지 올라온 뛰어난 인재라 할지라도 결국은 아직 학생이다. 프로 리그에 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그 연출에 압도되어, 결승에 진출한 선수는 질린 듯한 웃음을 흘리는게 상례였지만...
거기에 대해선, 스텔라는 한 나라의 황족이기 때문에, 역시나 당당하게 입장하고 있었다. 큰 무대에 익숙해져 있는 것인지, 표정에 긴장감이 나타나 있었지만 굳어 있지는 않았다. 양 옆으로 뿜어져나오는 불꽃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그저 앞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모습은 동성인 여자가 봐도 아름다워서, 렌렌은 무심코 한숨을 흘렸다.
"스텔라, 진짜 멋있네~ 키도 크고 멋있어~"
"그건 그렇고 연출 진짜 엄청나네~ 프로 시합 같아."
"매년 결승전은 입장에서부터 이런 연출로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하곤 했죠."
"회장. 어떻게 느끼고 있지? 버밀리온의 상태는?"
사이조의 그 질문에, 나중에 모두와 합류한 토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답했다.
"그렇네요. 조금 더 위축된 표정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역시 그렇진 않네요. 너무 위축되지도, 그렇다고 너무 들뜨지도 않은, 정말로 좋은 기합이 들어가 있어요. 컨디션은 최고라 할 수 있겠네요."
한 편, 토카 일행과는 다른 곳에서..
관객석의 가장 높은 곳에서 스텔라를 내려다보며
"저게 《홍련의 황녀》인가요. ....실물을 보는 건 처음입니다만, 호오.... 정말 엄청난 걸물이군요. 마력량으로 치자면 저 따위는 승부도 안 될 것 같아요."
아카츠키의 관계자와 함께 돔으로 들어온 에델바이스는, 그런 감탄을 흘리고 있었다.
이 말에, 츠키카게도 경악했다.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인가요."
"네. 그녀는 틀림없이, 나중에 이 세상의 중심을 짊어질 그릇이 될 거에요."
"큭큭, 역시 나의 숙적 《진홍의 공주기사》로군"
".....그런 설정이 있었나?"
사라가 그리 말하며 고개를 갸웃한 것과 동시에, 스텔라가 빨간 빛과 함께 꽃이 깔려진 길을 지나간 뒤, 결승 링 위로 올라섰다.
동시에 갑자기 회장 내의 조명이 전부 꺼지고, 어둠에 휩싸였다.
기재에 트러블이 일어난 건가?
아니다.
다른 한 주역을 맞기 위한 연출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용'의 힘을 자유자재로 행사할 수 있게 된 《홍련의 황녀》를, 유일하게 이겨 낸 기사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은 봤던 적이 있겠지요! 인터넷을 중심으로, 온 세상을 뒤흔든 그 모의전의 동영상을! 그녀의 화려한 입국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 믿기지 않는 패배의 순간을! 그리고 오늘 밤, 《홍련의 황녀》가 상대하는 건, 자신의 빛나는 전력에 흠을 낸 그 소년! 이걸 운명이라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다시금 생각해 보면, 이 싸움은 그 순간부터 약속되어 있던 걸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다른 한 주역이 등장하겠습니다. 청색 게이트에서, 그녀와 같은 하군 학원 1학년, 《어나더 원》 쿠로가네 잇키 선수의 입장입니다!!!'
' '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 '
스텔라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큰 환성이 일었다.
그것과 동시에 회장 내의 조명이 다시금 켜지고, 이번엔 청색 빛을 띤 채 다른 쪽의 게이트를 비추었다. 그 푸른 빛이 비추는 곳에는, 발치에 구름 같이 깔린 연기와 함께 흑발의 소년이 모습을 나타냈다.
'6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칠성검무제 속에서 유일하게, F랭크로 출전한 기사! 그 《뇌절》을 쓰러뜨리고, 전국에 이름을 떨친 그 당시에, 누구나가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엄청난 녀석이 나타났다고!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도 생각했을 겁니다. 엄청난 녀석이래봤자 어차피 F랭크인데 뭘. 이라고! 그런 외줄 타기 같은 싸움으로 칠성검무제에서 살아남기란 불가능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작년도 우승자와 준우승자가 있는 죽음의 조인 C조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올라왔습니다! 《칠성검왕》 모로보시 유다이를 어렵게 쓰러뜨리고, 《천안》 죠가사키 뱌쿠야를, 대회 기록을 대폭으로 갱신하는 순살로 격파! 이어서 아카츠키 학원의 비장의 인물, A랭크 기사인 사라 블러드릴리의 반칙적인 힘에도 굴하지 않았고, 《흉운》 시노미야 아마네 선수의 너무도 악질적인 반칙에조차 굴하지 않고 싸울 의지를 보여 가며.... 드디어, 마침내! 칠성검무제 결승전 무대로 올라섰습니다.....!! 《홍련의 황녀》의 힘을 '궁극의 폭력'이라 할 수 있다면, 《어나더 원》의 검기는 그야말로 '최강의 기술'! 결코 둘 중 누군가가 밀리는 것도 아닌, 둘 다 대극의 위치에 서 있는 극한의 기사들! 탁하게, 하지만 확실히 빛이 깃든 그 검은 칼날은, 오늘 밤 용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을 것인가!'
'쿠로가네!! 애인이라고 해서 봐주지 말라고!'
'잇키 군~ 앞으로 한 번만 더 이기면 우승이야! 파이팅!!!!'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올라가 버리라고!!!!!!!!!'
청색 게이트에서 뿜어져나오는, 링으로 이어지는 꽃이 깔린 길에 마치 구름안개처럼 깔려 있는 연기. 쿠로가네 잇키는 그 구름을 밟으며, 미끄러져 나가듯 깔끔한 발걸음으로 링을 향했다. 이쪽도 스텔라와 같이, 화려한 연출이나 환성에 눈길이 이끌리지 않은 채, 그저 똑바로 앞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큰 무대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 건 아니었다.
그에겐, 이미 링 위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소녀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은땀은 다 멎은 모양이네!"
"그렇지 않고서야, 몇 시간이고 어울린 의미가 없죠. 오히려 걱정인 건 체력 쪽입니다만..."
"웜 업을 하다가 너무 체력을 많이 써서 싸울 수가 없다고 말하는, 그런 한심해 빠진 머스마가 아니니까 개않을 끼다~"
잇키의 컨디션 조정에 같이 나섰던 동급생들에게 그리 고하는 모로보시.
그의 가까운 곳엔, 아리스인과 시즈쿠도 있었다.
둘은 모로보시처럼, 링에 가장 가까운 맨 앞자리 펜스에서, 결승 링 위로 향하는 잇키를 지켜보고 있었다.
"후후, 역시 잇키야. 덥혀 놓은 몸의 기어를 더 이상 낮추지 않은 채 체력을 회복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시즈쿠."
"......그래도 걱정이야. 상대가 상대인걸.."
"헤에, 쿠로 꼬마도 하루 꼬박 잠들어 있는 것치곤 느낌이 좋은데?"
입장하는 잇키의 발걸음을 보고, 기모노를 입은 작은 몸집의 여성이 즐거운 듯 웃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하군 학원의 임시 강사. 사이쿄 네네였다. 그리고 그녀의 옆엔 하군 학원의 이사장, 신구지 쿠로노의 모습도 있었다.
"발걸음이 가볍고 아주 매끄러워. 상당히 웜 업이 잘 되어 있다구, 쿠우."
"보면 알아. 뭐, 당연한 판단이겠지. 애초에 재능의 차이가 분명하니까. 정면으로 싸운다 해서 승부가 될 상대가 아니야. 기어를 낮춰 놓은 채 링 위로 올라간다면 틀림없이 순식간에 끝나 버릴 거야. 버밀리온과 싸우기 위해선, 처음부터 끝까지 기어를 최대로 올려 놓은 상태로 싸울 수밖에 없어. 거기서 조금이라도 기어를 떨어뜨린다면───"
"그 시점에서 쿠로 꼬마의 패배, 라는 거구나. 정말 방심할 수 없는 시합이 되겠어."
"아아, 하지만 그건 우리들도 마찬가지지. 아침에 분명히 그렇게 말했을 텐데, 지금 네 완전한 휴일 모드는 대체 뭐지?"
째릿, 하고 쿠로노가 사이쿄를 노려봤다. 그녀는 양손에 LL 사이즈 팝콘 패키지를 들고 앉아 있었다.
완전히 관전객 기분을 즐기려는 듯.
"에이~ 난 오늘 진짜로 휴일인걸~ 실황 일도 거절했으니깐~"
"....네 녀석을 조금이라도 믿었던 내가 바보지."
"농담이야~ 쿠우~ 그러니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 마~~ 괜찮다니깐~ 여차할 땐 확실히 일할 거니까. .......그도 그럴 게 스텔라를 저렇게 온힘을 다해 날뛸 수 있게 만든 건 바로 나니까. 그 책임 정도는 확실하게 일해 주겠어."
"에휴....."
쿠로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까지 진심인 건지, 이 여자의 겉잡을 수 없는 태도는 학생 때부터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게 어쩐지, 자신만이 늙어 가는 듯해서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쿠로노는 무연하게 다른 쪽 다리를 올려 꼰 뒤
"어이."
"왜?"
".....조금만 줘."
"싫어."
'그리고 결승전 해설은, 칠성검무제 운영위원장, 《심판의 망치》란 별명을 지니고 있는 마도기사, 카이에다 유우조 선생님이 담당하시겠습니다. 카이에다 선생님. 결승전을 연장해주신 이 배려에, 칠성검무제의 한 팬으로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칠성검무제는 그들 학생기사를 위한 축제입니다. 그들이 바라는 싸움을 위해 우리 운영위원회가 인사를 다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모든 건, 양 선수의 강한 의지, 그리고 쿠로가네 선수를 단 하루만에 회복시킨 《백의의 기사》 야쿠시 키리코 선생님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결승전에서 상대하게 된 양 선수는 연인 사이로도 유명합니다만, 그 영향이 있을 거라 보십니까?'
'그렇게 된다면 운영위원회인 저희들도 한시름 덜겠습니다만..'
그리 답한 뒤, 카이에다는 쓴웃음을 흘리며 링 위의 둘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했다.
'양 선수의 표정을 보는 한, 정말 속 쓰린 시합이 될 것 같군요.'
안개가 깔린 꽃길을 걸어나가, 잇키는 마침내 결승전 링 위에 올라섰다.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연출을 위해 뿜어져나오던 연기와, 색이 들어간 조명이 꺼지고, 돔 전역에 언제나 켜져 있던 야간 조명이 켜졌다.
잇키의 시선에 비춰져 있는 것은, 하얀 빛에 반사된 강화 석재가 깔린 직경 100미터의 원형 링.
이미 여기서 4번을 싸웠다.
이제 슬슬 익숙해진 광경.
하지만, 희한했다.
같은 곳임에도, ───경치가 달랐다.
하얀 링, 주변에 깔린 인공 잔디, 관객이 입고 있는 옷의 색───
그 모든 색들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자신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충만해져 있다.
눈부신 무언가로.
거기서 다시금, 잇키는 실감하게 되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어."
그리고 그는, 그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한 층 더 선명한 색을 발하고 있는 소녀를 향해 말을 걸었다.
"약속의 장소야. 스텔라. 그 약속을 나눈 뒤로 쭉, 이 날을 계속해서 기다려왔어."
파란 달이 뜬 하늘, 그 아래에서 둘만의 약속을 나눈 날로부터, 이곳만을 향해 왔다.
하지만, ───그건 잇키만이 아니다.
"나도 그래. 잇키."
그렇다. 그 약속을 보고 달려온 건, 스텔라도 같다.
아니, 따져 보면 그녀 쪽이 더욱 애를 태워 왔을 것이다.
어째서냐면───
"난 있지, 잇키에게 진 그 날에, 이사장 선생님한테 이런 말을 들었어. '요 1년간, 쿠로가네의 등을 쫓아가 봐' 라고.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그저 앞만을 향해 달려나가는 잇키의 뒷모습은, 확실히 쫓아갈 보람이 있었어. 널 쫓아갔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던 거야. 하지만 있지..... 미안하게도 난 1년간이나 같은 사람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고만 있을 정도로 얌전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다. 1년동안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난 오늘 여기에서, 널 넘어서겠어!"
스텔라는 설욕을 맹세하고, 하늘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 순간, 스텔라의 오른손에 홍련빛의 불이 뿜어져나왔다.
그 홍련의 불꽃은 춤추듯 흔들리며, 검의 형태를 만들어냈다.
스텔라는 펼친 오른손을 쥐고, 그 칼자루를 움켜쥔 뒤
"섬겨라! 《비룡의 죄검》!!!"
혼을 구현화시키는 그 주문과 함께, 불꽃의 검을 지면에 꽂아 세웠다. 그 충격에 불꽃이 흩날리고, 달궈진 강철과도 같이 빛나는 칼날만이 남았다.
《홍련의 황녀》의 디바이스─── 《비룡의 죄검》이다.
스텔라는 자신의 혼의 검을 현현시키고, 전의를 나타냈다.
이 스탤라의 선서에
"그렇구나. 난 솔직히 스텔라의 앞을 달려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스텔라가 그렇게 말해 준다면 간단히 추월당할 수 있을 리는 없지. 이 날을 위해 힘을 쌓아온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잇키도 또한, 자신의 혼으로 답했다.
"와 줘. 《움철》....!"
꾹 쥔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친 뒤, 앞으로 뻗고 손을 펼쳤다.
펼쳐진 손바닥에서 푸른 불꽃이 뿜어져나온 뒤, 칼날의 형태를 그려냈다. 그 칼자루를 쥐고 나니, 잇키의 손엔 까마귀같이 새카만 강철의 칼이 쥐여 있었다.
《워스트 원》의 디바이스─── 《음철》이다.
둘의 디바이스가 나타난 뒤, 회장은 한 층 더 큰 흥분에 뒤흔들렸다.
그 이유는, 이 순간───모든 사전 준비가 끝났다는 걸 의미하니까.
남은 건, 개시 신호를 기다리는 것뿐이었고
'지금, 양 선수가 개시선에 섰습니다! 지금부터, 제 62회 칠성검무제 결승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겠습니다! 칠성의 정점을 겨루는 마지막 시합. 서로 사력을 다하여, 미련 없는 대결을 펼칠 수 있기를!!'
그리 말한 뒤, 실황 이이다가 숨을 깊이 들이마쉰 직후
' ' 'LET's GO AHEAD─────!!!!!!!' ' '
이이다와 함께,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회장의 모든 관중들이 소리쳤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칠성검무제, 그 마지막 대결이.
◆◇◆◇◆
"으읏────"
신호가 떨어진 순간, 만 명의 관중들은 쿠로가네 잇키의 모습을 눈에서 놓쳤다. 《비익》의 체술을 이용해 순간적으로 모든 가속도를 낸 잇키가 모두의 시선을 떨쳐내고 스텔라의 품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오옷! 개시 신호가 떨어진 순간, 쿠로가네 선수가 돌진!! 빠, 빠릅니다!'
'그는 사정거리가 짧은 기사입니다. 경우가 어찌 됐건 거리로 승부를 거는 건 말이 안 되죠. 이 판단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카이에다도 눈을 부릅떴다.
이 속도는 정말 예사롭지 않다고.
지금까지의 잇키의 속도보다도 훨씬 빨랐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하다.
잇키는 과도한 정도의 웜 업으로 인해, 최대 기어를 올린 상태로 링 위에 올라섰으니까.
'느낌이 좋아!'
몸이 날개처럼 가벼웠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힘을 잃지 않고 있었다.
최고의 컨디션이었다.
잇키는 자신의 지금 컨디션에, 협력해 준 모로보시와 다른 친구들에게 다시금 감사했다. 그들의 호의를 수포로 돌릴 순 없다.
'먼저 선제 공격이야! 이 싸움의 주도권을 쥐어야 해!'
스텔라는 일격으로 쓰러뜨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이 싸움은 아마 길게 이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시합의 주도권을 쥐고 있어야 한다. 기선제압을 해 낸다면, 그 호기가 절대적인 승기가 될 것이다!
그리 결의한 잇키는 《비룡의 죄검》의 사정거리 속으로 파고든 순간, 자신의 발치에 일정한 완급을 걸어 좌우로 흔들리듯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스텔라의 눈을 환혹시켰고 잔상을 만들어냈다.
"이 스텝은... 《신기루》....!"
"날쌘 도약으로 기선제압을 한 뒤, 스텝으로 현혹까지 걸어 왔어. 저 공주님은 아직 검도 제대로 쥐고 있지 않아! 주도권을 잡았어!"
이 더할 나위없는 기습에, 시즈쿠 옆에서 시합을 관전하고 있던 모로보시는 주먹을 쥐었다.
확실히, 이 잇키의 선제 공격은 최선의 선택에 가까웠다.
이건, 단순한 기습 따위가 아니다.
아침부터 열심히 자신의 컨디션을 조정하고, 첫 발걸음부터 최고 속도로 움직일 수 있도록 기어를 조작해 놓아 기선을 제압하고, 거기다 자신의 스텝으로 환혹하는 것으로 만에 하나 있을 반격의 싹까지 잘라내버리는 행동.
시합 전부터 계획해 온, 잇키의 모든 것을 다한 최선의 행동이다.
실패할 여지는 없다.
없을 것이다.
한없이 최고의 선택.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다한 최선을,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가능하기에 절대강자라 불리는 것이다!
"《용진각》!"
길고 예쁜 스텔라의 다리가 공중으로 들린 다음, 발뒤꿈치부터 링에 내리쳐졌다. 그 순간, 큰 폭쇄음과 함께 대지가 세로로 쪼개졌다.
"윽────!?!?"
'뭐, 뭐라꼬!?!?!?!?'
'꺄아아아앗!!'
'저, 저게 대체 뭔......!?!?'
객석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스텔라 선수가 링에 발을 구른 순간, 회장에 격진이 일어난 뒤 링이 스텔라 선수를 중심으로 마치 거미줄처럼 쪼개지고 있습니다!'
그 《강철의 사나운 곰》이 발을 굴렀을 때에도, 이런 파괴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이, 이런 가련한 소녀의 가느다란 다리가 일으킨 것이라고 그 누가 생각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물론, 스텔라의 이 행동은, 그저 링을 부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위험해! 지면에서 일어난 진동 때문에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어....!'
그렇다. 《용진각》은 규격 외급의 힘으로 발치의 모든 것을 흔들어 상대의 움직임을 끊어버리는 기술이다.
당연히 움직임이 끊어진다는 것은, 잔상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되고───
"하아아아아앗────!!"
일섬.
《홍련의 황녀》가 마치 하얗게 타들어가는 듯 빛나는 칼날을, 진짜 잇키를 향해 휘둘렀다.
여기에 대한 잇키의 반응은 역시나, 라는 한마디로 일축할 수 있었다.
그는 스텔라가 검을 휘두르기 전부터, 쇄도해 오는 일격의 궤도를 읽어내 《음철》로 막아냈다.
하지만, ───그 수준을 벗어난 여력을 전부 막아낼 수는 없었다.
《비룡의 죄검》이 《음철》에 닿은 순간.
잇키의 몸은 검을 통해 전해져 오는 엄청난 힘에 의해 지면에서 붕 뜬 뒤, 마치 장난감처럼 멀리 날아갔다.
"윽..."
가까스로 링 끄트머리에 아슬아슬하게 섰지만, 완전히 궤도를 읽은 뒤 더할 나위 없는 형태로 막아낸 이 일격으로, 약 50미터나 날아갔다는 사실에 잇키의 이마엔 식은땀이 배어나왔다.
'역시.. 스텔라의 검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건 절대로 안 되겠어...'
"상당히 열심히 컨디션을 조정해 온 모양이네, 잇키."
링 끝까지 날아간 잇키를 향해, 스텔라가 말을 걸었다.
"그리고 개막 직후인 참이라 모든 기어가 올라가지 않은 날 공격하려 한 거지? .....하지만, 그건 잘못 생각한 거야. 널 앞에 둔 난, 언제나 최대 기어를 올려 둔 상태니까!"
그 목소리엔, 강한 자신이 차 있었다.
그건 잇키가 아는 스텔라에게 부족했던 것.
자신이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강하다는, 절대강자의 자부심.
───스텔라는 딱히 자신에게 자신감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게 아니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스텔라의 재능을 생각해 보면, 부족하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좀 더 오만해져도 된다. 불손해져도 된다.
이건 잇키도 쭉 생각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그녀에게 말해준다면, 매사에 성실한 스텔라는 쓸데없이 자신을 더욱 경계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말할 수 없었지만───
그 점을 미루어보면, 사이쿄는 스텔라의 자부심을 상당히 잘 끌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치하고, 검을 받아 보고, 다시금 실감하게 되었다.
명백히, 이전까지의 그녀와는 다르다는 것을.
하지만───
"잘못 생각했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다. 잘못 생각했다니, 그건 큰 착각이다.
잇키는 방금 그 일격으로 탈골된 어깨를 다시 맞춘 뒤, 희열에 찬 표정을 스텔라에게 보냈다.
"내 기대대로야."
그래야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답다고.
'쿠로가네 선수, 간발의 차이로 직격을 막아냈지만, 그의 몸은 링 끄트머리까지 날아가버렸습니다! 엄청난 여력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홍련의 황녀》의, 절대강자의 검이겠지요! 스텔라 선수, 엄청난 힘으로 쿠로가네 선수를 밀쳐 내 A랭크 기사의 관록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화려한 공방에, 회장의 전압이 급상승했다.
스텔라에 대한 아낌 없는 갈채가 끓어올랐다.
그 갈채 속에서, ───미소기 우타카타는 눈 아래에 펼쳐진 광경에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우와, 저 힘좀 봐. 링을 넘어서 객석까지 금이 갔잖아!"
여기에 옆에 앉아 있던 토마루 렌렌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이래서야 사이조의 검을 콧방귀를 뀌며 막아냈다는 것도 납득이 가네."
"힘도 엄청나지만, 발상도 규격 외급이야. 발을 굴러 지반을 통째로 흔들어 쿠로가네의 움직임을 멎게 만들 줄이야..."
"하지만, 쿠로가네 군 쪽도 역시 대단해요."
그 토토쿠바라 카나타의 말에, 펜스 쪽에서 관전하고 있던 토카는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학생회 멤버 중에서도 수준을 넘어선 실력자인 토카와 카나타는, 방금 그 교착이 일어난 찰나, 잇키가 벌인 행동을 알아챈 것이다.
"검이 부딪힐 때, 일부러 자신의 어깨를 탈골시켜, 마치 발(簾)처럼 충격을 완전히 뒤로 흘려버렸어요. 뛰어난 머리회전과 발상력을 따져 보면, 그도 예사롭지 않아요."
"히에엑~ 그런 걸 했던 거구나."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관객석 아래 벽면에 날아가 꽂혀 버렸을 거야."
그 상황에서 수준을 벗어난 급의 힘으로 참격을 가한 스텔라를 폭력의 괴물이라 표현할 수 있다면, 그걸 완전히 침묵시켜 버린 잇키는 기술의 괴물. 누구라 할 것도 없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적어도 이 공방으로 아직 힘의 격은 결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하고 토카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지금의 공방으로 스텔라 양이 링 중앙을 차지하게 됐어요. 이건 위험한 상황 아닌가요, 쿠로가네 군?'
그리고 링 중앙에선, ───토카의 예감대로의 전개가 시작되었다.
"후후, 그래. 기대에 응해준 것 같아서 기쁘네."
쿡쿡, 하고 웃음을 흘리는 스텔라를 중심으로, 광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스텔라의 염발이 빛을 띠기 시작하고, 비색의 후광이 뿜어져나왔다.
"그럼, 다음은 잇키가 내 기대에 응해 줄 차례야."
"윽......!"
링 끄트머리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증폭되는 열량.
그 열에, 잇키는 얼굴이 굳어졌다.
"확인은 이미 끝났어. 널 상대로 어떡하면 얌전히 이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 따윈 하지 않겠어!"
다음 순간, 빛이 일그러질 정도로 증폭된 열량과 함께 스텔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잇키는 알게 되었다.
'이 위압감, 틀림 없어! 그게 올 거야!'
"《폭룡의 포효》───!!!!!"
그리고, 잇키가 이해함과 동시에, 스텔라의 최대 범위 공격이 불을 뿜었다.
스텔라의 몸에서 빛과 열이 사방팔방으로 뿜어져나왔다.
'이, 이건! 스텔라 선수가 1회전을 제압했던 노블 아츠다아앗!!!'
그 발동과 동시에 쿠로노를 시작으로 객석을 지키고 있던 마도기사들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당연하다. 이 노블 아츠의 유효 범위는 링 직경은커녕 돔의 모든 면적을 아득히 넘어선다. 거기다 스텔라는 그 노블 아츠를 1회전과는 달리, '환상 형태'를 갖추지 않은 채 쓴 것이다. 마도기사들이 이걸 막아내지 못한다면, 돔 채로 모든 객석이 증발해 버릴 것이다.
하지만, 상대도 또한 고르고 고른 끝에 선발된, 숙련된 마도기사들.
학생이 누굴 염려에 두지 않은 채 온 힘을 낼 수 있도록, 스텔라의 《폭룡의 포효》에도 아무 위해를 받지 않을 방어태세를, 순식간에 갖추었다.
객석은 안전했다.
───하지만, 링 위에는 도망칠 곳이 없다!
'작렬의 열파가 스텔라 선수를 중심으로 퍼지며, 링을 뒤덮고 있습니다! 쿠로가네 선수,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갑자기 절체절명의 위기인 것인가!!!'
'아니요, 저걸 보십시오!'
그리 외친 건, 해설석에 앉아 있던 카이에다였다.
그는 본 것이다.
시야를 꽉 메우듯 쇄도해 오는 광열의 쓰나미.
그걸 앞에 두고, ───잇키는 도망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선 뒤, 몸을 밑으로 푹 숙인 것을.
그리고, 한계까지 무릎을 굽힌 그 자세에서 쏘아져 나온 것은───
"《서격》.......!"
잇키는 땅에 댄 발을 박찬 뒤, 몸을 앞으로, 열파를 향해 내달렸다.
'쿠, 쿠로가네 선수! 저 《폭룡의 포효》로 직접 뛰쳐들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그 행동에, 실황이 곤혹해했다.
하지만
'아니요, 이건 옳은 판단입니다.'
'카이에다 선생님!?'
'재빠른 속도로 저 열파를 빠져나간다면, 열파에 닿는 시간이 짧아지기에 데미지를 줄일 수 있어요. 그리고, 보십시오. 쿠로가네 선수는 《폭룡의 포효》의 열파를 향해 칼끝을 세우고 수직으로 돌격하고 있어요. 그렇게 한다면 열파에 닿는 신체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지요. ───이거라면, 틀림없이 돌파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카이에다의 말대로, 잇키는 열파에 《서격》을 작렬시켰고,
그대로 뚫고 나아갔다.
교착은 한 순간. 데미지는 머리카락이 살짝 타들어간 정도의 그쳤고, 잇키의 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일직선으로 폭심지에 서 있는 스텔라를 향해 화살처럼 날아가, ───그녀의 가슴팍에 《음철》을 꽂았다!
"─────"
그 순간, 가슴팍이 꿰뚫린 스텔라의 잔상이 환상처럼 흔들리며 사라졌다.
빛을 굴절시켜 환영을 만들어내는 노블 아츠, ───《양염의 암막》이다.
스텔라도 《폭룡의 포효》같은 잡스러운 기술 하나에 잇키가 쓰러질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돌파당하는 건 이미 계산된 전개.
그녀의 전략은 《폭룡의 포효》로 시야를 한 순간 차단시킨 뒤, 그 사이에 《양염의 암막》을 전개.
그 기술로 투영해낸 환상 쪽으로 잇키를 유도해낸 뒤
"끝이다아아앗!!"
그의 뒤쪽으로, 똑같은 《양염의 암막》에 의해 보이지 않게 된 자기 자신으로 공격한다는 전술이었다!
하지만───!
'윽.....!'
잇키의 등 뒤에서 나타나 검을 내리친 스텔라는 찰나에 전율했다.
잇키가 그의 어깨 너머로, 이 상황에서도 물결 하나 치지 않는 호수면같은, 동요 없는 냉정하고 예리한 눈빛을 보내 온 것이다.
───이미 읽혔다.
이건 틀림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워스트 원》이 상대이니까. 예전의 스텔라라면 이 순간, 동요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래도 상관없어!'
전술이 간파당하고, 거기에 대한 책이 세워진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어떠한 계책이건, 힘으로 굴복시킨다.
신경을 쓸 필요 따윈 없다고 생각한 뒤, 스텔라는 검을 휘두르는 기세를 조금도 약하게 만들지 않고 그대로 내리쳤다!
하지만───
"제 3비검────《원》"
그 직후, 스텔라를 때린 충격은, 예상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었다.
"~~~~~~~~~~~~~~~~~~~~으윽!?!?!?"
이미 소리가 아닌, 폭음이라 형용해야 할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린 뒤, 이번엔 스텔라의 몸이 크게 뒤로 튕겨져나갔다. 스텔라는 양발을 바닥에 대 멈추려 했지만, 그 의사에 반해 몸은 양발로 링을 깎아나가며 미끄러지듯 후퇴했고, ───방금의 잇키처럼 링 끄트머리까지 날아가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놀랍습니다! 이번엔 쿠로가네 선수가 방금 공격의 보답이라는 듯, 스텔라 선수를 링 끝까지 날려버렸습니다!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공격!!'
절체절명의 위기라 여겨진 상태에서 상황을 뒤집어놓는, 예상치 못한 잇키의 힘찬 공격에 의한 위기 극복에, 회장의 흥분은 더욱 그 온도가 늘어났다.
그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스텔라만은 냉정했다.
그녀는 《비룡의 죄검》을 든 손에 남은 찌릿한 느낌을, 정확히 분석해내고 있었다.
'이 느낌.... 이 힘....... 이건 잇키의 것이 아니야.'
대체로 스텔라는 잇키의 스펙을 파악하고 있다.
그렇기에 알 수 있다.
'잇키의 몸'으로, 이런 공격력을 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니, 그렇기는 커녕 오우마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이런 공격력을 낼 수 있는 사람이란..
───자기 자신 외엔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잇키, 너.. 내 힘을 훔쳐간 거구나?"
어쩐지 기쁜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스텔라의 회답에, 잇키도 또한 웃음으로 답했다.
"명답이야."
그렇다. 지금 스텔라를 날린 건 다름아닌, 스텔라 자신의 힘이었다. 칼로 받아낸 적의 참격. 거기에 깃든 힘을, 마치 '원을 그리듯 몸을 돌려 순환시킨' 뒤, 자신의 공격에 실어 통째로 돌려보내는 카운터.
"그것이 내 제 3비검, 《원》의 원리야."
여러 종류의 잇키의 비검 중에서도, 엄청난 수준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검기이다. 적이 가한 참격의 위력과 타이밍을 조금이라도 잘못 계산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가해진 충격에 의해 몸이 잘못 돌아가 치명적인 틈을 만들어버린다.
잇키 정도의 실력으로도 극한의 집중 상태가 아니라면 실패 위험이 존재할 정도로 섬세한 기술.
그렇기에 그도 《속도중독》와의 대결에서 그 기술을 응용해봤을 뿐이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써 본 적은 없었지만───
"《비익》의 검을 모방한 덕에, 내 체술의 정밀도는 비약적으로 상승했어. 네가 입학했을 때엔 무리였지만, 지금이라면 네 엄청난 참격도 '정면으로' 받아낼 수 있어."
지금의 스텔라를 상대함에 있어, 《원》 없이 싸우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 생각했기에 그는, 과잉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웜 업을 해, 링에 올라서기 전의 자신을 극한상태까지 몰아세웠다.
지금의 잇키는, 그야말로 최고조이다.
그의 눈은 저 멀리 서 있는 스텔라의 솜털까지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그의 귀는 자신의 피가 흐르는 소리까지도 정확하게 분간해서 들을 수 있었고.
그의 몸은 근섬유 하나하나가 얼마나 휘어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의 피부는 몸을 스쳐 지나가는 모래먼지 하나하나의 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해져 있어, 마치 몸 속의 신경이 바깥으로 튀어나와 있는 듯했다.
이 컨디션이라면, 만에 하나라도 실수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무섭지 않아!"
◆◇◆◇◆
'링 끄트머리까지 물러난 스텔라 선수를 향해, 쿠로가네 선수가 세 번째 돌격을 행합니다! 빠릅니다! 오늘의 《어나더 원》은 평소보다 더욱 빠릅니다! 눈 깜짝할 새에 링을 횡단! 스텔라 선수에게 쇄도합니다!'
바람을 일으키며 거리르 좁혀 오는 잇키를 바라보며, 스텔라는 초조함을 느끼며 눈썹을 찡그리고
"전부 먹어치워라.....! 《연옥룡의 턱》───!!"
《비룡의 죄검》에서, 사납게 날뛰는 용을 만들어냈다.
'스텔라 선수, 쿠로가네 선수의 접근을 용납치 않으려는 듯, 《바람의 검제》와의 대결에서도 보여준 장거리 공격으로 응전!!'
밤이 드리운 전장에 새빨갛게 불타오르는 용이, 들쭉날쭉한 이빨을 들이대며 잇키를 물어뜯으려 쇄도했다. 거대한 턱을 열고 쇄도해오는, 7개의 불타오르는 목.
하지만, 그 모든 악몽 같은 광경을 앞에 두고, 잇키는 조금도 돌격의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꽤 위압적인 기술이긴 하지만, 지금 날 잡아 두기엔 좀 약하다고!'
아니다, 늦추지 않기는커녕, 7개의 턱이 그를 덮치는 찰나,
───더욱 가속했다.
직진을 해 나가며 그 모든 사이를 빠져나가듯 7마리의 용을 피한 뒤, 지나쳤다.
《연옥룡의 턱》은 오우마 전에서 한 번 보여준 기술이다.
스텔라가 이렇게 응수해 올 것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잇키는 나머지 가속을 남겨 놨던 것이다.
갑자기 가속을 가한 먹이에, 화염룡은 대응할 수 없었다.
7개의 목은 서로의 목을 물어뜯으며, 무산되었다.
잇키는 더욱 속도를 늘려, 스텔라를 향해 돌격했다.
"큭...! 이게...!!"
이 사태에, 스텔라도 《연옥룡의 턱》으론 잇키를 제지할 수 없다고 생각한 뒤, 접근전을 벌일 각오를 굳히고───
"《비룡의 깃옷》!"
전신에 불타오르는 불꽃 드레스를 두르고, 자신도 쇄도해 오는 잇키를 향해 도약했다. 불꽃이 내뿜는 방사열로 크로스 레인지에서의 싸움을 우위로 밀고 나가겠다는 계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꽃에 휩싸이지 않도록, 《비익》의 체술로 격하게 치고 빠지기를 반복한다면, 《비룡의 깃옷》은 별로 큰 위협이 아니야. 오히려 상대가 나서 준다면 더 고마운 일이지!'
잇키는 시텔라의 사고를 읽은 상태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고 간격을 좁혀 갔다.
하지만 아무리 잇키가 빠른 속도로 달려나간다 할지라도 디바이스의 사정거리 차이는 분명했다.
당연히, 선제공격을 한 건 스텔라였다.
그녀가 구사한 것은
'최단 동작으로, 일직선으로 내 목을 노릴 찌르기일 거야...!'
"윽.....!"
그 순간, 스텔라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무리도 아닐 것이다.
적이 자신의 찌르기 공격으로 낸 칼 끄트머리를, 자신의 칼 끄트머리로 막아낸다는, 곡예라고밖에 볼 수 없는 행동을 벌였으니까.
그리고 잇키는 《음철》을 통해 전해지는 충격을, 원을 그리듯 몸을 빙 돌려 순환. 그 모든 충격을 이어지는 자신의 참격에 실어 《비룡의 죄검》의 옆면을 쳐냈다. 그 위력은 실로 엄청났고, 스텔라의 디바이스를 위로 튕겨냈다.
순간적으로 무방비해진 스텔라.
잇키는 그 때를 놓치지 않았고, 모로보시의 《삼연성》도 한 수 접을 정도로 빠른 삼연격을 가했다.
'여, 여기서 《어나더 원》의 칼날이 《홍련의 황녀》에게 닿았습니다!!!'
오른어깨, 왼팔, 명치를 찌르는 공격. 그 모든 것이 클린 히트.
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치명상으로 이어질 그 공격도, 아무런 데미지를 주지 못했다.
《홍련의 황녀》가 갖고 있는 압도적인 마력이, 《음철》을 용납치 않은 것이다. 피부가 살짝 찢어지고, 충격에 상체가 젖혀지는 정도에 그쳤다.
그리고, 데미지가 없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위축될 이유 따윈 없었고───
'───그 응수는, 《비룡의 깃옷》의 출력을 높여 범위 소각 공격을 해 올 거야.'
"하아아아앗!!"
스텔라는 바로 반격에 나섰다.
《비룡의 깃옷》의 화력을 높여, 서로의 사정거리 내에 있는 잇키를 불태워 버리려 했다.
───하지만,
스텔라가 《비룡의 깃옷》에 깃든 불꽃을 들끓게 만들었을 때, 이미 잇키는 그건 간파해내고 사정거리 밖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가속을 붙여 불 속으로 뛰어든 뒤, 스쳐 지나가듯 스텔라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최고속을 이용한 재빠른 히트 앤 어웨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인다면, 불꽃에 휩싸일 일도 없다.
잇키는 세 번, 같은 참격을 반복하여 스텔라를 번롱했다.
하지만, 애초에 불꽃 속을 빠져나가며 가한 참격이다. 거기에 힘이 실릴 리는 없었고, 그녀의 피부조차 찢지 못했다.
하지만,
'스텔라의 자존심은 멀쩡할 리가 없어.'
스텔라는 그다지 참을성 있는 성격이 아니다.
낼 수 있는 패가 많은 만큼, 한 수단에만 고집하는 타입이 아니다.
당하고만 있는 상황을 계속 방치만 해둘 리는 없을 것이다.
'이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면, 공격하는 방식을 바꿀 거야. ───그 변조까지 남은 시간은, 0초!'
다음 순간, 완전히 잇키의 예측대로, 스텔라는 《비룡의 깃옷》을 해제했다.
어째서일까?
이유는 하나이다. 이 기술은 공간 제압력이 우수하지만, 동시에 단점도 있는 것이다. 타오르는 불꽃에 의해 사용하는 자의 시야마저도 극단적으로 나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크로스 레인지에서 검을 나누는 데에 있어, 그건 크나큰 핸디캡으로 작용한다.
상대가 빠르게 움직이는 타입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불꽃이 시야를 가려 상대를 눈으로 쫓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스텔라는 잇키에겐 《비룡의 깃옷》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뒤, 그걸 해제한 것이다.
《비룡의 죄검》에 한 층 더 큰 마력을 집중시켰다.
───그 순간을, 잇키가 노렸다!
"큭... 앗!"
'쿠로가네 선수! 《비룡의 깃옷》이 사라지자마자,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강한 일격이 작렬! 스텔라 선수의 머리에서 약간의 핏방울이 튀었습니다!'
그대로 빠져나가는 게 아닌, 움직임을 멈추며 체중을 실은 뒤 내리치는 무거운 일격.
《비익》의 검기에 의해 강화된 잇키의 혼신의 일격은, 스텔라의 마력제어로도 완전히 상쇄해내지 못했고, 스텔라는 처음으로 데미지라 볼 수 있는 데미지를 입게 되었다.
스텔라도 데미지에 위축된 상태로 참격을 되돌렸지만, 역시 그 참격은 허무하게 공중을 갈랐고,
'이, 이건....!'
'이거.. 꿈은 아니지?'
'거짓말....'
같은 거리에 있는데도, 잇키의 참격만이 적중되고 있다.
그 광경에, 관중들은 누구나 그 믿기 어려운 현상을 이해하게 되었다.
───압도하고 있다.
F랭크인 《워스트 원》이, A랭크인 《홍련의 황녀》를, 압도하고 있다고.
'저, 정말 놀랍습니다! 둘 다 서로의 유효 사정거리에 있을 터인데! 쿠로가네 선수의 참격만이 적중되고 있고, 스텔라 선수의 검은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있습니다! 스텔라 선수, 크로스 레인지에 서 있음에도 전혀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방적입니다! 일방적으로 쿠로가네 선수에게 밀리고 있습니다! 미, 믿기 어려운 광경입니다! 쿠로가네 선수의 크로스 레인지에서의 활약은 전부터 정평이 나 있는 점이긴 합니다만, ....설마... 이, 이렇게게까지 차이가 날 줄이야!'
'그녀는 쿠로가네 선수와 너무 가까운 존재라는 게 장해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쿠로가네 선수의 《완전장악》는 볼 수 없는 적의 행동조차 파악해내는, 조마경과도 같은 통찰력이에요. 그 상대가 연인이 된다면, 당연히 첫 시합의 대전 상대가 되었을 때랑은 비교도 할 수 없겠죠. 그 때보다 더욱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더욱 많은 걸 알았을 테니까요. 아마 지금의 쿠로가네 선수는, 스텔라 선수의 100수 앞까지의 행동은커녕, 언제 눈을 깜빡일지조차도 알고 있을 겁니다.'
'거, 거기까지.. 말인가요?'
'그 사실로서, 스텔라 선수가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도 이르게, 쿠로가네 선수가 회피 행동을 취하고 있어요. 피해내는 데에 충분하게, 하지만 1mm의 낭비도 없이 정확한 몸놀림으로요. 이래선 공격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당하겠습니까.'
카이에다는 말한 것이다.
예측의 차원이 승부가 되지 않는다고.
'하, 하지만 스텔라 선수는 그 《바람의 검제》를 압도한 《용신빙의》이라는 비장의 기술이..'
'아직 모르시겠나요? 쿠로가네 선수는 시합이 개시된 때부터 쭉 과감히 공격을 가하고 있었어요. 스텔라 선수가 《비룡의 깃옷》을 둘렀을 때조차, 그 불꽃 속으로 파고들어 공격을 계속해, 그녀에게 《용신빙의》의 동작, 자신의 가슴팍에 디바이스를 찔러넣을 여유를 주고 있지 않고 있어요. 처음부터 완전히 봉쇄시킬 생각이었던 거에요.'
'아아....'
'설령 억지로 《용신빙의》를 쓴다 하더라도, 이렇게 지근거리에 있다면 쿠로가네 선수의 《일도나찰》 쪽이 훨씬 빠르게 구사될 거에요.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해서 쿠로가네 선수의 맹공을 받아낸다 하더라도, 그 상대는 《어나더 원》. 한 공격 한 공격은 데미지로 이어지지 않지만, 언젠가 치명적인 틈을 발견해낸 뒤 《일도나찰》을 이용해 파고들 겁니다.'
공격에 나서도, 방어에 나서도 똑같은 막다른 길.
이대로 가다간───
'이대로라면 스텔라 선수는, 정말로 일방적으로 패배해 버릴 겁니다.'
백전연마의 카이에다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홍련의 황녀》가 밀리는 전개가 펼쳐질 줄은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해설하는 목소리가 긴장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한 편, 이 예기치 않은 전개에 회장 내의 관중들도 열광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그걸 해내고 있는 잇키의 모습에, 성원이 일었다.
'지, 진짜 끝내준다! 일방적으로 밀고 있잖아!'
'이대로 끝내 버려~~~!'
그리고 개중엔 당연히, 시즈쿠의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오라버니!!!! 힘 내요~~!!!'
시즈쿠는 펜스에 달라붙은 채, 자신의 한계까지 목소리르 짜내 응원했다.
"그건 그렇고 스텔라도 굉장하네. 평범한 블레이저였다면 이미 무참하게 베여나갔을 텐데, 생채기 하나 나지 않다니. 이래서야 아무리 공격해도 승부가 나지 않을 거야."
"하지만 오라버니에겐 스텔라 양의 마력 제어를 돌파해낼 무기가 있어!"
"그렇네. 잇키도 아마 그걸 쓸 타이밍을 재고 있을 거야."
그리고, 잇키가 그 기술을 구사할 때, 승부가 날 것이다.
시즈쿠도, 아리스인도, 그리고 관객도, 그걸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데, 이거.'
옆에 앉아 있던 모로보시는 눈썹을 찡그린 채였다.
그는 눈 아래에 펼쳐지는 공방에, 말로 표현치 못할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쿠로가네의 모습이, 1회전에서 싸웠던 내하고 겹치고 있다..'
그리고───
"엄청 묘한데.."
그걸 느끼고 있는 건, 모로보시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곳에서 시합을 지켜보고 있던 아카츠키의 이사장, 츠키카게도 같은 걸 느끼고 있었다.
"아저씨?"
"츠키카게 님도 느끼고 있었군요."
카자마츠리 린나의 시녀, 샤를로트의 그 말에, 츠키카게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아아. 척 보기엔 쿠로가네 군이 완전히 시합을 제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래도 내겐 어떠한 공격도 전혀 먹히질 않는 것처럼 보여."
"저도 그렇습니다. 이런 저조차 알 수 있을 범위로 이미 7번, 치명적인 타이밍이 생겨나 있었어요. 《일도수라》나 《일도나찰》을 썼다면 분명히 공격이 들어갔을 타이밍이 말이죠. 그럼에도... 그는 쓰지 않았죠."
"쓰지 못하는 것도 당연해요."
갑자기, 둘의 대화에 긴 다리를 꼰 채 관객석에 앉아 있던 에델바이스가 껴들었다.
"그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어요."
"두려워 하고 있어...?"
사라의 따라하는 듯한 묻는 말에, 에델바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본능이 말이죠."
그리고, 잇키에게 있어 실로 위험한 이 상황은...
"───그 본능의 경종은, 극히 옳게 움직이고 있죠."
◆◇◆◇◆
아리스인과 다른 사람들이 느낀 이 불온함. 위화감.
그것과 같은 것을, 그 당사자인 잇키고 느끼고 있었다.
'뭐야, 이 느낌은....'
가열차게 공격하면서, 잇키는 눈썹을 찡그리고 있었다. 시합은 명백히 자신이 압도하고 있었다. 개시 시점 때부터 시합을 자신의 계획대로 전개해, 스텔라의 비장의 기술인 《용신빙의》를 완전히 봉쇄한다는, 당초에 상정해 둔 최고의 형태로 시합을 해 왔다.
여기서 무리하게 《용신빙의》 동작으로 들어서면, 《일도나찰》의 카운터 공격으로 단숨에 끝내버릴 것이다. 이대로 계속 공격해 나간다 하더라도, 스텔라와 자신의 기량 차이로 봐선, 앞으로 12수 후 스텔라가 치명적인 틈을 보일 것이다. 거기에 《일도나찰》을 써서 시합의 막을 내린다.
그런...
'───그런 치명적인 타이밍을, 대체 몇 번이고 놓쳐 왔는지...'
그렇다. 방금부터 몇 번이고, 《일도나찰》을 써 시합을 끝낼 타이밍은 몇 번이고 봐 왔다.
그럼에도, 쓰지 못했다.
보였던 것이다.
한 발짝, 앞으로 내딛으려 마음을 굳힌 순간.
입을 쩍 벌린 채, 먹이가 뛰어들어 오는 걸 기다리는 용의 모습이.
잇키는 알고 있었다.
이건... 경종이다.
몇 번이고 불리한 사선을 넘어 온 잇키였기에 느낄수 있는, 직감.
죽음의 냄새를 맡는, 제 6감.
───그건, 틀리지 않았다.
"쿡쿡."
갑자기, 잇키의 참격을 다발 단위로 막아내고 있던 스텔라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윽!"
반격은커녕, 검을 막아내는 것조차 관두고, 잇키를 향해 양팔을 크게 벌려 왔다.
무방비.
어디 마음껏 공격해 보라는 듯.
너무나도 이상한 그 행동에, 잇키의 공격이 멎었다.
그런 잇키를 향해, 스텔라는 도발하듯 쿡쿡 웃으며, 질문을 던져 왔다.
"왜 그래, 잇키? 왜 공격해 오지 않는 거야~? 난 이렇게나 빈틈 투성이인 상태인데~~"
마치 상대를 잠자리에 유도하는 듯, 요염함조차 띤 표정으로.
하지만, 잇키는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하다.
".....빈틈 투성이? 말은 잘 하네......"
스텔라가 양팔을 벌린 순간부터 한 발짝이라도 스텔라를 향해 내딛었다간, 저 크게 벌린 용의 턱이 자신을 물어뜯어버릴 것이란 구도 외엔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잇키의 경계에, 스텔라는 유감스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네~ 이건 내 비책이었는데. ....이래서야 언제까지 기다려도 내가 생각한 대로는 움직여주지 않을 것 같네."
그리고
"그럼..... 어쩔 수 없지."
툭하니, 스텔라가 그런 말을 흘린 순간
───세상이, 뒤틀렸다.
"윽..........!"
갑자기 늘어나는 스텔라의 체온이, 머리카락에서 흩뿌려지던 불꽃의 후광이, 높은 열을 품어 주변의 대기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한 소리가 주변을 떨게 했다.
두근.
두근.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 여길 수 없는, 대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심장소리가.
그리고 그 고동소리에 맞춰, 스텔라의 온몸의 모든 뼈의 안쪽까지 깜빡이기 시작했고, 이윽고 스텔라의 가슴팍에 번져 나가듯
───깜빡이는 칼의 상흔이 발현했다.
"■■■■■■■■■■■■■■■■■■■■■■────────!!!!!!!!!!!!!!!!"
크게 입을 벌리고, 송곳니를 드러낸 채,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스텔라.
그 소리는 이미 소녀의 것이 아닌, 바다를 울리는 포효가 되어 있었다.
이미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 이건!! 이 빛! 이 상흔! 틀림 없습니다! 《바람의 검제》를 압도한 《용신빙의》다!!! 스텔라 선수! 여기서 자신의 최강의 기술을 꺼내들었습니다!'
"어떻게!? 스텔라 양은 아직 오우마 오라버니와의 시합에서 보여 준 《용신빙의》의 동작을 취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용신빙의》가 발동되었다.
그 이상사태에, 시즈쿠가 곤혹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그녀의 뒤에서, "그렇군.." 하고, 죠카사키 뱌쿠야가 신음했다.
"───아무래도, 《홍련의 황녀》가 이 시합을 위해 해 둔 준비는, 우리들의 상상을 훨씬 웃돌고 있었던 듯하군요."
"시로. 그게 무슨 말이가?"
"애초에, 검으로 자신을 찌른다는 예비 모션 따위는 필요 없었다, 라는 말입니다. 《바람의 검제》와의 시합에서 그 동작을 보여준 건, 이 결승전을 노리고 벌인 전략이었던 거에요. 그런 큰 모션이 설마 아무런 의미도 없다곤 누구도 생각지 못하겠죠. 그 인식을 이용해, 결승전에서 《어나더 원》이 《용신빙의》를 발동시킬 틈을 주지 않겠다고 무방비하게 공격해 들어올 때, 숨겨둔 저 기술을 구사해 깜짝 카운터를 선보이려 했을 겁니다."
확실히 처음 《야차 공주》와 싸움을 벌였을 때엔 자신의 몸에 검을 찔러넣어 순간적으로 자신의 혈액의 온도를 상승시켜, 강제적으로 용의 힘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한 번 사용법을 이해하면, 자신의 몸이고, 자신의 힘이 된다.
딱히 검을 찔러넣지 않아도, 혈액의 온도를 높여 발동시키면 되는 것이다.
오우마 전에서 일부러 어떤 의식처럼 그 행동을 보여준 것은, 결승전을 노리고 한 행동.
스텔라는 준결승 시점에서, 이미 잇키에게 트랩을 설치해 놓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죠가사키가 말한 것처럼 《용신빙의》를 발동시키는 데에는 검을 찔러넣는 동작이 필요하다는 것처럼 보여 주고, 그가 《일도나찰》을 발동시킨 순간 그가 상정치 못한 이 힘을 발동시켜 최대 급의 카운터를 넣기 위한 트랩을 말이다.
하지만, ───그 전략보다 잇키의 직감이 뛰어났다.
"....어쩐지 일이 너무 잘 풀려간다 싶었어."
"역시 그 불리한 사선을 넘어온 경험은 무시할 게 못 되네. 정말 대단해."
스텔라로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 계책은 《용신빙의》에 의한 일격을 가장 확실히, 그리고 치명적인 타이밍에 줄 수 있는 필승의 계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걸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간파해낸 것이다.
역시 잔재주로 이길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하필이면 네 실수가 나올 때를 기다리다니, 현실적인 생각이 아니었어."
이미 대책 따윈 없다.
잇키 정도의 수준의 기사를 이기기 위해선, 양보단 질이다.
그걸 알았기에, 스텔라는 이 계책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하지만, 그건 수포로 돌아갔다.
그럼, 어떡할 것인가?
───이제 남은 건, 고난의 가시밭길 뿐.
힘을 이용한 중앙돌파.
이 《어나더 원》이라고까지 불릴 정도의 검극의 달인을 상대로 말이다.
그건, 《용신빙의》을 쓴 자신조차도 실로 위험도가 높은 전법이다.
잇키가 전투에서 취하는 방법의 폭은, 자신의 지식이나 사고를 크게 웃돌고 있다. 어디서 판이 뒤집힐지는, 솔직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위험하다.
실로 위험한 싸움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가능하다면, 이 함정으로 시합을 끝내고 싶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없다.
"윽────!"
일섬.
스텔라가 허공을 향해 《비룡의 죄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사람의 수준을 벗어난 힘에 의해 갈라진 대기가 잇키의 몸을 덮쳤고, 그의 몸을 수 미터 뒤로 날려보냈다.
그 칼을 휘두른 것만으로 마치 폭발하는 것 같은 검압을 흩뿌리며, 스텔라는 말했다.
필승의 계책이 간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표정엔 오히려 희열을 띤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