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8화 (48/77)

일러스트

마치,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 둘의 모습에, 시즈쿠는 불쑥 입을 열었다.

"스텔라 양이 부러워...."

"시즈쿠?"

"만약 내가 상대였다면, 오라버니는 틀림없이 이렇게까지 자신의 정열을 쏟아부어 주지 않았을 거야. 틀림없이, 내가 상처입지 않도록, 부서지지 않도록, 소중히 여기며... 모든 힘을 쏟아 주시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스텔라 양은 달라. 스텔라 양에겐 자신의 모든 것을 쏟고 계셔. 그녀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받아줄 것이라고, 믿고 계실 테니까.."

시즈쿠는 생각했다.

정말, 싫은 여자라고.

자신이 조금만 오라버니에게 달라붙기라도 해도 화를 내며, 삐지고.

대체, 뭐가 불만이란 말인가.

"오라버니의 눈엔 이렇게, 그녀 한 사람밖에 비춰지고 있질 않는데..."

"시즈쿠......"

"정말 엄청나군. 버밀리온도, 쿠로가네도."

그리 감탄한 건, 시즈쿠 일행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신구지 쿠로노였다.

'칼을 부딪힐 때마다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

기술도, 힘도, 속도도, 모든 것들이.

그 광경은, 두 보석이 부딪히며, 서로를 연마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광채는 가속도적으로 아름다움이 더해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라 옆에 앉아 있던 사이쿄 네네가 말했다.

"그야 그렇겠지. 저 둘은 라이벌이니까."

"....그렇군. 그랬었지."

사이쿄의 말에 쿠로노는 납득했다.

그녀들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이다.

딱 스텔라나 잇키와 같은 나이였던 시절.

죽어도 좋으니 이기고 싶은 상대가 있었다.

그런 상대를 두고 격렬하게 싸웠던 칠성검무제 결승전.

쿠로노와 사이쿄는 그 1분 1초를, 서로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충실한 시간이었다.

이 녀석에겐, 이 녀석에게만은 지고 싶지 않다고, 사력을 다해 싸운 수십 분.

그 뒤에도, 그 나중에도, 그 순간만큼 자신의 극한을 시험했던 적은 없었다.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운 상대에게, 끌어안고 싶을 정도의 애정을 품은 정열적인 한 때.

지금, 잇키와 스텔라는 그 때의 자신들처럼, 빛나는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할 수도.

어째서냐면, 저 둘은 최강의 라이벌임과 동시에,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 사이이기도 하니까.

최강의 라이벌에게 느끼는 애정과, 연인에게 느끼는 애정.

어느 쪽이든 더할 나위 없는 정열을, 같은 사람에게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그건 대체───

"우리들 기사에게 있어, 얼마나 기쁜 일일까..."

"그야, 둘의 표정을 보면 일목요연하지."

그리 말하고, 사이쿄가 부채로 가리킨 곳엔,

이빨을 보일 듯 웃고 있는 잇키와 스텔라의 모습이 있었다.

이미 몇 번을 나눴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나눈 참격.

대체 몇 십번의 검을 휘둘렀을까.

대체 몇 십회의 혼신을 부딪혀 왔을까.

그래도, 눈 앞의 적은 물러나지 않았다.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은 채, 더욱 빠르게, 더욱 강하게, 혼의 칼날을 휘둘러온다. 그런 상대에게 이기기 위해, 자신도 더욱 빠르게, 더욱 강하게───

한없이 서로를 고양시키고, 한없이 서로를 증진시킨다. 아마 이 '적'을 만나지 못했다면, 몇 년, 몇 십 년에 걸쳐서 천천히 꽃피었을, ───자신의 가능성을.

이 순간, 둘은 같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가 보자. 둘이서. 기사의 정점으로!

그 날의 약속이 지금 그야말로 이루어지려 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아무리 멋진 시간이라도, 끝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날 때, 링에 남아 있는 승자는 한 명뿐.

정점에 올라갈 사람은 한 명뿐인 것이다.

싸움의 세계에 살아가는 둘은, 그걸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 단 한 곳의 정점을 향하여, 한 층 가속을 더했다.

" "으읏─────" "

한 층 커진 칼이 부딪히는 소리에, 회장이 흥분에 흔들렸다.

마치 둘의 정열이 전파되어 가듯, 관중들의 마음은 고양되었고, 눈동자에 열을 띠어 갔다.

그런 열광의 도가니 속에서───

단 한 명.

고통을 참고 있는 것 같은,

비탄조차 느껴지는 표정으로 링을 바라보는 여자가 있었다.

《비익》의 에델바이스였다.

'역시.. 이런 전개가 되어 버렸군요.'

그녀는 둘의 싸움을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아름다운 대결이다.

서로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짜내어 가며, 제한 없는 상승을 해 나가고 있다.

그건.... 빛날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저 둘에게 있어서도, 자신이 바란 최고의 싸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에델바이스는 알고 있었다.

───이런 전개가 되어 버린 이상, 결말은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처참하고, 잔혹한 것이라는 것을.

그 결말은, 이윽고 누구의 눈에도 명백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서로를 밀어내던 전개가 무너지고, ───《어나더 원》의 몸이 크게 뒤로 밀려난 것이다.

◆◇◆◇◆

'여기서 드디어 길항이 무너졌습니다! 쿠로가네 선수가 비틀거리듯 뒤로 물러났습니다!'

한 발짝이라도 물러난다면 패배하게 될 혼의 싸움.

거기에 지금, 명확한 우열이 가려졌다.

밀려난 잇키의 눈이 경악에 떨렸다.

그건, 이 혼의 싸움에서 자신이 졌다는 것─── 거기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었다.

'......이건...............'

잇키는 보았던 것이다.

한 순간에 갑자기 나타난, 검은 사슬───

자신의 사지를 뱀처럼 휘감아, 움직일 자유를 빼앗고 있는 무수한 강철의 사슬이.

그리고 뒤로 물러난 잇키를 향해, 스텔라가 지금이 기회라는 듯 열화와도 같은 추격을 가해 왔다.

바람의 신음을 내며 쇄도해 오는 강검.

잇키는, 이 참격에 《원》을 가하려 했지만

철그럭!

하고, 전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자신을 억눌러, 마치 산에 묶어버린 것 같은 절망적인 중량으로 그의 움직임을 억눌렀고───

'쿠, 쿠로가네 선수! 반격해내지 못했습니다! 손이 나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방어에 전념하고 있습니다아아아아!!!!!'

"오, 오라버니!?"

갑자기 밀리기 시작한 자신의 오빠의 모습에, 시즈쿠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 의아함은, 옆에 있던 아리스인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지금 갑자기 잇키의 움직임이 둔해진 것 같은...."

"설마 《일도수라》의 한계가───"

하지만

"그기 아니다."

둘의 생각을, 모로보시가 완벽히 부정했다.

전국에 손꼽는 실력자인 그에겐, 이 둘보다 많은 것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도수라》는 아직 계속되고 있어. 움직임도 둔해진기 아니다. 상대적으로 그렇게 보인 것 뿐이제."

"상대적, 이라는 것은...."

"쿠로가네 자슥이 갑자기, 저 공주님의 움직임에 따라갈 수 없게 된기라....!"

그리고 이 전개에

"드디어.. 와 버렸군요."

에델바이스가 비탄해하는 듯한 목소리를 흘렸다.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예견하고 있던 결말의 형태였던 것이다.

"알고 있는 거야? 이 길항이 무너진 이유를..."

싸우는 둘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있던 손을 멈추며 물어보는 사라를 향해, 에델바이스가 답했다.

"말하자면.... ───운명입니다."

"우, 운명...?"

"브레이저의 마력은 태어난 순간부터 그 모든 양이 정해져 있어요. 이 세상에 커다란 운명을 등지고 있는 자일수록, 그 힘은 크죠. 그 이유는, 마력이란 도리를 넘어서 이 세계를 변혁시킬 힘이니까. 그건 동시에,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이 세상에서 가능한 일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저 둘은 지금, 엄청난 속도로 서로를 성장시키고 있었죠. 이 다음 수십 년을 걸쳐 걸어 나갔어야 할 길을, 순식간에 달려나간 거에요. 그리고 그 결과.... 《어나더 원》은 도달해버린 겁니다.

자신의, ───가능성의 막다른 길에."

"........!"

그렇다. 그것이 바로, 이 길항이 무너진 이유였다.

쿠로가네 잇키는, 요 1분간, 자신의 극한에 달해 버린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가 해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끝에.

쿠로가네 잇키는, 그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에 정해진 운명이, 그를 이 이상 나아가는 것을 허용치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스텔라 버밀리온은 다르다.

그녀는 태어난 순간부터, 누구보다도 높은 곳에 나아갈 길을 허락받은 존재이다.

따라서, 아직 나아갈 수 있다.

아직 성장할 수 있다.

땅에 박힌 쇠사슬에 얽혀 있는 잇키와는 다르다.

스텔라는,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를 지니고 태어났으니까.

그렇다면, 둘의 우열은 이미 명확───

"안 됐지만... 그는 이제 《홍련의 황녀》의 뒤를 따라갈 수 없어요."

이미 기술과 노력 따위로 어떻게 할 수조차 없는, 절대적인 존재 서열.

에델바이스가 말한 대로, 그 서열의 차이가 둘의 승부를 결정지은 것이다. 가속도적으로 성장해 나아가는 스텔라에게, 잇키는 더 이상 따라갈 수 없다. 그는 이제, 자신의 가능성의 최고치까지 나아가 버린 것이다.

따라서, 스텔라의 추격에 대처해낼 수 없었고

"야아아아아아압!!!"

"윽───!"

칼날이 부딪히는 순간, 폭탄이 터지는 듯한 충격에 《음철》이 크게 튕겨져나갔다.

몸이 허공에 뜨고, 자세가 무너졌다.

거기에 스텔라는 더욱 파고들어, 어퍼컷과도 같은 보디블로를 가했다.

방금 잇키에게 명중한, 칼에서 주먹으로 이어지는 콤비네이션.

하지만, 이번엔 직격되지 않았다.

잇키가 《음철》을 되돌려, 칼자루로 아슬아슬하게 주먹을 막아냈기 때문이다.

칼날로 막아내기 늦었다면 칼자루로 막는다.

그 높은 방어 능력은, 역시나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다.

주먹을 받아낸 순간, 잇키의 양발이 지면 위로 떠올랐다.

용의 여력에 의해, 잇키의 몸이 마치 종잇조각처럼 공중에 흩날렸다.

그 순간───

"창천을 꿰뚫는, 연옥의 불꽃."

《홍련의 황녀》가, 자신의 필살의 일격으로 승부를 걸어 왔다.

그녀가 휘두른 《비룡의 죄검》에서 작열하는 불꽃이 뿜어져나왔다. 날뛰는 작열의 불꽃은, 눈 깜짝할 새에 그 온도와 광도를 상승시켰다. 그 형태가, 그저 일렁이는 것만이 아닌, 상대를 비춰 만들어지는 그림자조차 불태워버릴 빛으로 바뀌어갔다.

이윽고 만들어진 건, 하늘을 꿰뚫을 것처럼 거대해진 광열의 검.

스텔라는 그 광열의 검을───

"모든 것을 불태워라!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

공중에 떠 있는 잇키를 향해 내리쳤다.

잇키는 피할 수 없었다.

회피가 불가능했다.

당연하다. 발을 땅에 디디고 있지 못했으니까.

그에게 가능한 건, 하늘을 둘로 가를 것처럼 쇄도해 오는 빛의 칼날에, 자신의 디바이스를 들어 받아내는 것뿐.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게 가능할 리는 없었고.

모든 것을 불태우는 빛의 범류에, 그의 의식이 삼켜져갔다───

그 직후, 백색에서 흑색으로, 잇키의 세계가 암전되었다.

◆◇◆◇◆

'스텔라 선수의 필살기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가 직격───!! 공중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있던 쿠로가네 선수를, 거대 액정 모니터와 함께 덮쳐버렸습니다! 갈라진 마그마 바다 너머에, 백 스크린석에 새겨진 검은 참흔! 그 참흔 속, 불타오른 잔해의 계곡 속에, 쿠로가네 선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잔해에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이런... 가장 위험한 기술을 정통으로 맞아버렸어!'

'잇키 군....'

'이건.. 역시 끝난 거겠지?'

용해되어 검게 타들어 있는 백 스크린석의 참흔을 바라보며, 관객이 술렁였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히 치명적인 일격이었으니까.

그 술렁임 속에서, 주심의 장외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주심이 지금 장외 카운트를 세고 있습니다! 10초 이내로 쿠로가네 선수가 돌아오지 못할 경우, 스텔라 선수의 승리가 확정됩니다! 하지만, 글쎄요.. 이건 카운트를 셀 게 아니고 바로 구조에 들어서야 할 상황인 것 같습니다만.. 그도 그럴 게 저 《홍련의 황녀》의 필살기에 직격당한 거니까요...'

하지만 그런 이이다의 말에, 해설석에 앉아 있던 카이에다가 부정했다.

'...아니요, 직격당한 건 아닙니다.'

'그랬나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힘을 직격당한 게 아니다, 란 말입니다. ....이번에 스텔라 선수는 공중에 뜬 쿠로가네 선수를 베기 위해, 상당히 이르게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을 썼어요. 이 기술은 불꽃을 집속시키는 기술이니, 아무래도 그 발동엔 모을 때까지의 '발동 시간'이 필요하게 되죠. 하지만 이번엔 그 시간이 너무 빨랐어요. 그러니 《바람의 검제》와의 싸움에서 보여 준 것 같은, 바다까지 갈라 버릴 정도의 위력은 나오지 않았죠. 《일도수라》의 마력 방출에 의한, 마력 공격에 대한 방어력 항샹을 고려하면, 10초 이내로 의식을 되찾지 못할 거라고 볼 순 없습니다.'

'그, 그렇다면 아직 기회는 있다...는 말씀인가요?'

하지만 그 질문에, 카이에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유감스럽게도.. 설령 의식을 되찾는다 하더라도 이미 《일도수라》는 발동된 뒤로 1분이 지났어요. 쿠로가네 선수는 이미 모든 걸 다 소진한 상태입니다. .....눈을 뜬다 하더라도 뭔가를 해낼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따라서, 카이에다는 생각했다.

이 카운트는, 주심이 보이는 둘에 대한, 성의라는 것을.

'아, 아앗! 여기서 스텔라 선수가, 쿠로가네 선수가 묻혀 있는 백 스크린석 잔해에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녀는 확신하고 있는 겁니다! 자신의 승리를! 이제 《어나더 원》이 일어날 일은 없을 거라고!'

실황이 말한 대로, 스텔라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 싸움엔, 이 다음이 없을 거란 것을.

남은 건, 이 카운트를 끝까지 듣는 것뿐.

심판의 카운트가 10이 되었을 때, 자신은 마침내 잇키를 넘어서게 된다.

넘어선 것이다.

───그 때엔, 이 검을 하늘로 내뻗자.

자신이 정점이라는 것을,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알리기 위하여.

'3!! 4!! 5!!!!!'

그리고, 이 싸움의 결착이 났다는 것을 확신한 건 스텔라만이 아니었다.

'........이제 됐어요, 오라버니...'

잇키의 가족인 시즈쿠도 또한, 이 싸움에 다음이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잇키는 스텔라에게 패배했다.

그건, 부동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슬프다곤 느껴지지 않았다.

분하게도,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당연하다. 그녀의 자랑인 이 오빠는, 마지막까지 용감하게 싸웠으니까. 원래라면 수십 년을 천천히 걸어 나아가야 했을 이 가능성을, 모두 소진해 가면서까지.

이 싸움을 보고, 누가 자신의 오빠를 약한 사람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오라버니는, 이제 어엿한 영웅이에요....'

그 누구에게도, 《대영웅》 쿠로가네 료마가 했던 그 말을 해 준다 할지라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그리고 시즈쿠 외의 사람들도, 그녀처럼 그를 가여이 여기는 게 아닌, 동경에 찬 표정으로 붕괴한 백 스크린섭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객도, 그의 친구들도, 그리고 교사들도, 칠성의 정점을 향해 겨룬 라이벌들도.

그 누구나가.

그 누구도 '포기하지 마!' 라던가, '힘 내!' 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싸움을 가까이서 지켜본 그들은, 알 수 있었으니까.

잇키가, 정말로 모든 것을 다하여 싸웠다는 것을.

그렇기에, 누구도 그런 한심한 성원을 보내지 않았다.

그저 흘러나올 것 같은 경의를 눈에 담아둔 채, 시합의 끝을 고하는 카운트를 듣고 있었다.

잇키를 응원하고 있던 자들도, 스텔라를 응원하고 있던 자들도, 그 누구나 이 카운트가 끝났을 때, 승자에게도, 패배자에게도 박수를 보낼 것이라 결심했다.

누구나───, 그저 그 때를 기다리며, 입을 닫고 있었다.

그리고 찾아온, 찰나의 침묵.

그 정적 속에서, ───그 일이 벌어졌다.

철컥....

모든 사람의 귀에, 쇠와 쇠가 스치는 듯한 소리가 들린 것이다.

◆◇◆◇◆

"─────"

정신이 들고 보니, 잇키는 암흑 속에 있었다.

수질 동굴 속 같은, 차갑게 젖어 있는 바위에, 앞으로 숙인 채 쓰러져 있었다. 그의 사지엔 역시 검은 사슬이 휘감겨 있었고, 그의 뒤에 있는 어둠을 향해 뻗어 있었다.

───그 때.

스텔라와의 공방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검은 사슬.

그 정체는, 잇키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것을.

당연하다. 다름 아닌 자신의 운명이니까.

잘 알고 있었다.

이 빛조차 들지 않는 동굴 속같은 곳이, 자신의 막다른 길이란 것을.

그렇다. 확실히, F랭크 정도의 그릇에 어울리는, 어두운 땅속 깊은 곳이다.

이 이상 나아갈 권리 따위, 이 몸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운명의 쇠사슬이 저항할 수 없는 중량으로 그걸 막아설 것이다.

뭐, 애초에 그 이전에 그의 몸엔 한 발짝을 움직일 체력조차 남아있지 않았지만.

정말로, 모든 것을 소진했다.

기력도, 체력도, 마력도, ───그 모든 극한을 짜내였다.

모든 것을 짜내어, 그 1분간에 모든 것을 걸은 것이다.

그러니, 이제 완전히 텅 비어버렸다.

바람이 불면 날아가 버릴 정도로.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제 충분하다.

정말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으니까.

살아가는 데에 있던 힘의 모든 것들을 내던져가며, 자신의 가능성조차 소진해 가며,

───그래도 이길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쩔 수 없는 게 아닐까.

오히려, 너무 잘 해주었다.

1분간이라곤 해도, 그 《홍련의 황녀》를 상대로 정면으로 싸울 수 있었으니까.

그 기억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역사에 남을 것이다.

목표였던 우승은 해낼 수 없었지만, 그걸 누가 책망할 수 있을까.

누가 보더라도 부끄러움 없는, 납득이 가는 결말이다.

충실한, 패배다.

그런 충실───

그런 싸구려 충실감 따위, 잇키의 가슴 속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윽!!"

철컥, 하고 어둠 속에서, 쇠가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엎드려 쓰러져 있던 잇키가, 이제 한 발짝도 움직일 힘이 남아 있지 않았을 터인 남자가, 오른손을 뻗었다.

그리고, 젖은 바위를 움켜쥐었다.

"────"

강하게, 손가락에 피멍이 들 정도로 강하게 힘을 넣어, 기어가는 듯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당연히,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다.

그 몸은, 운명이라는 쇠사슬에 얽혀 있다.

찰그락,

쇠사슬이 산에 묶여 있는 것 같은, 꿈쩍도 하지 않는 중량이 그 몸을 억눌렀다.

그 중량에, 손이 미끄러졌다.

그 탓에, 손톱이 벗겨졌다.

격통. 유혈. 그저 자신을 상처입히는 행동.

하지만.

"─────오........"

거기에 괘념치 않고, 잇키는 다시금 바위를 붙잡았다.

그리고, 방금보다 강한 힘으로, 자신의 몸도 마음도 다 쏟아 낸 몸을 앞으로 끌어나갔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 거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거지?

자신의 모든 가능성조차 쏟아버린 그 몸을, 아직도 움직이게 해 주는 원동력은 대체 무엇인가?

기사로서의 자존심인가?

아니다.

그런 건 이미 재가 되어 날아가버렸다.

쿠로가네 료마에 대한 동경심?

아니다.

그런 건 이미 불타버렸다.

잇키를 움직이게 해 주는 원동력은 하나 뿐.

타올라도, 타올라도 남아 있는 감정.

1분 정도로 다 불타 없어져버릴 리가 없는 감정.

단 한 소녀에 대한, 끝없는 정열이었다!

"오오오오오─────......"

잇키는 생각했다.

스텔라와 만나지 않았다면,

스텔라와 새빨간 타인이었다면───

틀림없이, 자신은 이 자리에 있는 것에 만족했을 것이다.

자신을 가능성의 끝까지 단련해낸 것에, 충실감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은 만나 버린 것이다.

만나고, 닿고, ───사랑을 했다.

수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순식간에 거리가 가까워지고, 이따금씩 싸움도 했고, 그 때마다, 서로의 감정이 깊어져만 갔다. 그 1분 1초가, 잇키에게 있어 방금 보냈던 1분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보석 같은 시간이었다.

───난, 스텔라를 좋아한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그녀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이런 데에서 잠들어 있을 수만은 없어!!

"오오오오오────!"

무릎을 세우고, 상체를 들어올려, 온몸으로 쇠사슬을 당겪다.

쇠사슬은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온몸을 부숴버릴 듯 죄여 왔다.

피부가 벗겨지고, 살이 짓눌리고, 뼈가 삐걱였다.

그 고통이, 산에 묶여 있는 중량이, 잇키에게 고해 왔다.

쓸데없는 짓거리는 그만 둬.

너라는 남자에게, 이 다음이란 없어.

여기가 네 종착점이야. 라고.

그런 모든 말에, 잇키는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라고 내뱉듯 말했다.

이 이상 나아가는 건, 운명이 용납치 않는다고?

그게 어쨌다는 거냐.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런 건, 이 걸음을 멈춰도 좋을 이유 따윈 되지 않는다.

당연하다.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스텔라는 점점 앞으로 나아갈 테니까.

태어날 때부터 그 몸에 갖춰진 날개를 퍼덕이며, 저 멀리 앞으로, 위로.

그리고 언젠가, 만나게 될 것이다.

같은 날개를 지닌, 새로운 라이벌과.

그런 건, ───싫다.

그런 건 용납 못해.

스텔라의 마음도, 몸도, 사랑도, ────그리고 최강도!

그녀의 그 모든 것들을....

다른 녀석들에게.. 양보할 성 싶냐고!!!!!

───그러니까, 불태워!

불태울 연료는, 이 가슴에 넘쳐흐르는 무한한 '마음'.

그 '마음'의 힘으로, 한 발짝 더 앞으로 내딛는 거야.

불가능할 리가 없다.

누구보다도 운명에 순종치 않았던 잇키였기에,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운명을 결정짓는 건 재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마음'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온몸이 재가 되어버린다 할지라도, 꺾이지 않는 마음.

───재기불능이라는 말을 듣는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떨리는 고통스러운 패배를 맛본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도전하는 마음.

그런 '마음'이 있기에,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 '마음'이 1분 전의 자신보다,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그것이, 운명을 개척하는 힘일 것이다!

자, 가자.

이 가슴에, 한없이 흘러넘치는 '마음'을 손에 쥐고.

설령 여기가 깊은 땅속이라 할지라도, 이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앞으로.

설령 이 몸에 날개가 없다고 할지라도, 하늘을 달려, 네 곁으로.

언제나.

언제나.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네 앞으로.

'내 앞에선 쭉 멋진 네 모습 그대로 있어 달라고, 이 멍청아!!!!'

가장 멋진 자신으로 있고 싶으니까...!

"우오오오오오오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 순간, 잇키의 오른발이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감과 동시에, 쇠사슬이 끊어졌고,

───암흑에 가득한 세계에 빛이 차들었다.

◆◇◆◇◆

그건, 카운트가 9까지 세어진 순간 벌어졌다.

갑자기, 돔 관객 모두의 시선이 모여 있던 백 스크린석의 참흔.

거기에 쌓여 있던 잔해가 예리한 칼날에 잘게 썰리듯, 터져나가며 위로 날아간 것이다.

' ' '뭣────!!?' ' '

그리고 검게 타들어간 잔해가 위로 날아감과 동시에, 푸른 빛이 스텔라가 서 있던 섬을 향해 화살처럼 쇄도했다.

하지만, 물론 그건 화살 같은 게 아니다.

온몸에서 푸른 빛을 불꽃처럼 일렁이고 있는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워스트 원》 쿠로가네 잇키였다.

완전히 끝났을 거라 누구나가 예상한 이 승부.

그 예상은, 완전히 뒤엎어졌다.

이 사태에, 돔이 경악과 곤혹에 흔들렸다.

'이럴 수가!?!? 미, 믿을 수 없습니다! 그 상태에서.. 카운트 9에서 쿠로가네 선수가 링 위로 복귀했습니다!!! 거, 거기다... 이건.....! 온몸에 마력이 가득차 있습니다! 명백히.. 방금보다도 강한 마력이 말입니다! 《일도수라》를 쓴 탓에 마력을 전부 써 버렸을 텐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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