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2화 (5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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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후기

낙제기사의 영웅담 9권, 구독 감사드립니다!

아~ 진짜 완전히 다 방출해 버렸네요!

여러 의미로.(퍼엉)

이걸로 낙제기사의 영웅담은 완결입니다. 오랫동안 응원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라는 건 농담이고요. 이야기는 버밀리온 황국 방문 편으로 이어집니다.

단, 이 9권이 칠성검무제 결승전이라는, 지금까지 이 이야기가 향해 온 곳을 지나치고, 한 커다란 단락이 지어졌다는 것임은 틀림 없어요.

아마, 이 단락이 지어진 뒤 이 작품을 그만 두는 독자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솔직히 이 스텔라와 잇키의 결승전은 정말 아슬아슬할 때까지 고민해 가며 썼답니다. 독자 분들 중엔 이야기가 끝나 버리는 게 무서운 분도 계실 테니, 역시 이 결승전은 계속해서 어떻게든 끌고 나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요.

아직 이 작품으로 하고 싶은 게 많은데(스텔라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러 간다는 거라던가), 스텔라와 잇키의 결착을 확실하게 지어버리는 건 위험한게 아닐까, 하고요.

하지만, 칠성검무제라는 잇키 일행의 꿈의 무대를 그려나가는 것에, 작가인 저도 엄청나게 불타올랐고, 잇키나 다른 등장인물들은 이렇게나 진지하게 정점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는데, 그걸 어정쩡한 형태로 만들어버리는 건 불가능하다고도 생각했지요.

그렇기에, 이 9권은, 저도 각오를 굳히고 마지막 권을 써 나갈 생각으로 모든 것들을 쏟아부었습니다.

그 덕에, 작자인 저도 만족스러운 내용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9권을 읽어 주신 분들이 스텔라와 잇키를 더욱 좋아하게 되어 주신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또, 이 9권을 끝으로 작품을 그만두게 되시는 분들 중에서도, 즐거운 추억으로 이 작품을 기억 한 편에 남겨 주신다면, 그보다 더 기쁠 일은 없을 것 같아요.

편집부 여러분. 그리고 일러스트 담당인 온 씨. 만화화 담당 쿠우로 씨. 그리고 애니메이션 스태프 여러분.

그리고, 오늘 이 날까지 이 작품을 응원해주신 독자 여러분.

스텔라와 잇키의 소중한 약속을 확실한 형태로 그려낼 수 있었던 건, 여러분의 협력과 응원 덕입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다음 권부터는 세계로. 잇키 군은 무사히 스텔라의 부모님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츠키카게의 행동,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계속해서 낙제기사의 영웅담을 응원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10권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지요!

안녕!

다음 권에

미소라 리쿠

번역 : 팀 윤활유

일러스트 번역 :HTop

역자 후기 : 내가 왜 키보드로 유두유두 이런걸 치고 있어야 하는거야 히히 유두 쎾쓰 히히

는 장난이고 8권에서 제가 잘못 번역한게 있네요

폭룡의 포효 인데, 카타카나를 잘못 본 바람에 하울을 소울로 번역했던거같음

하긴 알게뭐야 내가 볼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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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나락의 거미

동남아시아의 어느 한 곳.

높게 뻗은 수목과 수풀이 우거진 열대우림 속.

거기엔 이끼에 뒤덮인 크메르 건축 유적이 있었다.

이제는 현지 주민들에게조차 그 존재가 잊혀진, 썩어버린 채 우두커니 서 있는 폐허.

하지만 그 폐허의 한 창문을 통해,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태양을 완전히 가리고 있는 잿빛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호우 속에서, 그 불빛은 상당히 눈에 띄었다.

불이 난 것이 아니다.

전기에 의한, 문명의 빛.

그 빛을 내고 있던 건.... 유적 내부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브라운관 모니터였다. 셀 수 없을 정도의 모니터들이 비추고 있던 건, 한결같이 같은 소녀의 모습이었다.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칼을 자랑하는, 《홍련의 황녀》스텔라 버밀리온.

이윽고 비춰지던 그 영상은, 마치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으로 카메라를 내려다보며, 주저 없이 카메라를 짓밟아버리는 스텔라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끊겨버렸다.

"굉장해... 아주 멋져...."

그와 동시에, 뜨거운 숨결이 유적의 방 안을 메웠다.

그 숨결은, 산더미 같은 모니터에 둘러 설치해 놓은 소파에 누워 있는, 작은 몸집의 한 인물이 내는 것이었다.

그 날부터 쭉, 그 자는 자나 깨나 그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곳에서 온 세상을 무대로 동시에 연기를 하고 있었던, 1762개의 꼭두각시 인형 중 하나.

《어릿광대》히라가 레이센이 부서져버린, 그 날로부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 아름다운 얼굴이.

새가 지저귀는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가.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넘쳐흐르는, 그 몸이.

무엇보다도, 타인을 위해 그런 정도까지 화를 낼 수 있는, 마음의 형태가.

그리고, 그렇기에, 그 자는 생각했다.

이 소녀를─── 갖고 싶다고.

이 소녀를 자신만의 인형으로 만들고 싶다고.

그리고, 가지고 놀고 싶다고.

이 사랑스러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목이 메말라버릴 때까지, 그 목에서 비명을 짜내고,

자신이 행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녀의 아름다운 정신에 오물을 덧발라 버리면서.

아아, 그건 틀림없이....

그래, 틀림없이..

'아주 즐거울 거야'

그리 확신하자, 몸이 가만히 있을 줄을 몰랐다.

그러니───, 가자.

이 넓은 세상에서, 그녀라는 존재와 만나게 된 기적을 곱씹으며.

그녀의 모든 것을 손에 넣기 위하여.

그녀의 모든 것을, ───부수러 가자.

제 1장

축제가 끝나고

격한 싸움에 이은 싸움으로 인해, 근년 들어 드물게도 엄청나게 분위기가 무르익었던 제 62회 칠성검무제는, 《홍련의 황녀》스텔라 버밀리온을 꺾은 《워스트 원》쿠로가네 잇키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관객들은, 결승전에 이어 그 하루 뒤에 열린 표창식이 끝난 뒤에도,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는 듯 제각각 그 두 기사들의 훌륭한 대전에 대해 말을 나누며, 각자 귀로의 길에 들어섰다.

동시에 일본 전국에서 모인 이 축제의 주역, 각 학교의 대표 선수들도 귀향을 시작했다.

칠성검무제에 편승해 가게를 열었던 노점상인들도 철수를 마쳐서, 표창식 다음 날이 되니, 시끌벅적했던 만안 매립지는 평소의 고스트 타운의 모습을 되찾았다.

축제는... 끝났다.

하지만, 쿠로가네 잇키를 시작으로 하군 학원 대표생들은, 아직 오사카에 남아 있었다.

그 이유는, 칠성검무제 1회전에서 칼을 맞댔던 호적수, 《나니와의 별》모로보시 유다이가, 자신의 실가이기도 한 오코노미야키 가게, '이치방보시'에서 잇키의 지인들끼리 모여 승리 축하 파티를 열자고 제안을 했기 때문이었다.

◆◇◆◇◆

"에에~ 그럼! 우리 모두의 친구, 쿠로가네 잇키의 《칠성검무제》우승을 축하하며, 이 불초한 저, 표창식에서 소란을 피운 탓에 내일부터 3일간의 벌칙 보충학습을 받게 된 쿠사카베 카가미가! 건배 제안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카가미는 자학 개그를 펼쳐 가며 건배 제안을 한 뒤, 손에 들고 있던 맥주잔을 들며

"선배, 축하해요~~!!!"

큰 목소리로, 여러 테이블을 이어 붙여놓은 긴 테이블의 상석에 앉아 있는 잇키를 축복해 주었다.

거기에 이어

" " "축하해~~~~~~~~~!!" " "

승리 축하 파티에 모인 잇키의 모든 지인과 친구들도 건배를 하며 축복을 보냈다. 지금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은, 같은 하군 학원 대표 멤버인 스텔라와 시즈쿠. 그의 친구인 아리스인 나기와 아야츠지 아야세. 그리고 토도 토카와 학생회 멤버들.

그 외에도, 이 장소를 제공해 준 모로보시나, 그의 친구인 죠가사키 뱌쿠야와 아사기 모미지. 잇키가 결승전을 치르는 데에 있어 결정적인 도움이 되 주었던 야쿠시 키리코에, 칠성검무제에서 잇키와 뜨거운 대전을 펼쳤던 사라 블러드릴리와, 그냥저냥 사라를 따라온 카자마츠리 린나와 그녀의 시녀인 샤를로트 콜데도 있었다.

그 모두의 축복을 받고, 잇키는 약간 쑥스러운 듯 웃으면서도

"모두들, 고마워."

자신도 맥주잔을 들며, 건배에 참가했다.

이렇게, 뒷풀이가 시작되었다.

"자아, 굽는데이! 팍팍 구워볼까! 어디 한번 주문해 보라꼬, 이 녀석들아~!!"

주방에 선 모로보시가, 금속질 주걱을 캉캉 부딪혀가며 일동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에 기다렸다는 듯, 스텔라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손을 들고 외쳤다.

"나 부타다마로 먹을래! 10장 구워줘!"

"오케이~!"

"스텔라, ....어쩐지 평소 먹는 양보다 더 늘어난 것 같은데..?"

"어, 어쩔 수 없잖아, 아리스. 《용신빙의》는 연비가 엄청 나쁜 능력이니까. 든든히 먹지 않으면 현기증이 날 정도라구?"

"뭐, 확실히 소비해낼 수 있다면 상관은 없겠지만."

"시로. 넌 뭐 먹을래?"

"전 규스지네기를 주문하도록 하죠. 모미지는 뭘로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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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우리는 이미 메뉴란 메뉴는 다 묵어봤으니깐... 멀로 할까~ 아, 맞다! 요전에 만들어줬던 나폴리탄으로 주문해도 되나?"

"아. 야키소바 나폴리탄 말이지? 그람, 가능하제! 거기 덩치 큰 형씨는?"

"음.. 그럼 나는 믹스다마로 부탁해 볼까."

"죄송함다~ 그건 다음주부터 오픈되는 메뉴에요~"

"음, 그런가.."

"오빠야, 얼빠진 거짓말 하믄 안 되제....!"

항의를 한 건, 단발머리를 한 작은 소녀였다.

모로보시 유다이의 여동생, 모로보시 코우메다.

이전엔 어떠한 사정에 의해 말을 못 하게 되었던 상태였지만, 잇키와 오빠의 대전 때 기적적으로 말을 되찾았고, 아직 목소리 톤은 안정되어 있지 않았지만 글씨로 쓰는 대화에 기대지 않고 모두와 제대로 대화를 해 가며 주문을 받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주문을 한 요리들이 완성될 때까지 생겨난 짬.

모두 함께 상석에 앉은 잇키와 스텔라 주변에 모여, 제각각 맥주잔을 들고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승 축하해, 쿠로가네 군! 정말 멋있었어! 내가 이런 굉장한 사람에게 검을 배웠다고 생각하니 엄청 기뻤어!"

"아~ 정말 대단했지. 그 상황에서 승패를 완전히 뒤집어 버리다니 말야! 내 별명인 《관측불능》도 예측해내지 못 할 정도였다고."

"난 쭉 믿고 있었다구! 쿠로가네 군이 이길 거라고! 그도 그럴 게, 이 내 《블랙 버드》를 깨뜨린 기사니깐!"

여기에, 잇키도 진심이 담긴 감사로 응했다.

"감사합니다. 모두와 만나지 못했더라면... 저 혼자서 이 정도의 실력을 손에 넣지는 못했을 거에요. 정말 감사해요."

"황녀 분도 참 아까웠지.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라 할 수 있었으니."

그 사이조 이카즈치의 위로에, 스텔라는 살짝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종이 한 장 차이라도 패배는 패배니까. 내 모든 최선을 다 한 뒤에 나온 결과인걸. 받아들여야지. 하지만───"

그리고, 한 번 말을 끊은 뒤, 손에 든 맥주잔의 맥주를 호쾌하게 마시고

"다음은 절~~~~~~~~~대로 안 질 거니까.....!"

쿵! 하고 목제 테이블을 맥주잔으로 내리치며 호언했다.

주홍색 머리칼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흩뿌리며.

그 늠름한 모습에,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멋지다~!" "그래야 스텔라지!!" 하고 박수를 보냈다.

그런 모습을, 상석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토도 토카가 낭랑한 웃음을 띠며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 다음 해의 《칠성검무제》도 정말 볼만 하겠어요. 참가할 수 없는 게 정말 아쉽네요."

"큭큭큭... 그 재대결도 또한 《검은 역사서》에 기록된 운명일 뿐.. 그대도 알게 될 때가 올 것이야.."

"아가씨는 '다음 해에도 즐겁겠네~' 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번엔 정말 너무하셨어요!"

하지만, 그런 달아오른 분위기에, 한 소녀가 쓴소리를 던졌다.

우승자, 쿠로가네 잇키의 여동생.

《심해의 마녀》쿠로가네 시즈쿠였다.

시즈쿠는 눈을 치켜뜬 채, 상석에 앉은 둘을 노려보며

"오라버니도, 스텔라 양도, 두 분은 연인 사이시니 좀 더 서로의 몸을 염려해 가며 싸우는 게 좋을 거란 생각은 안 하세요? 그런 위험천만한 시합, 두 분 중 한 분이 죽어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구요. 비상식적이라고 생각지 않으세요?"

"윽.. 미, 미안.."

시즈쿠의 말에, 둘은 어른에게 혼이 나는 아이처럼 몸둘 바를 몰라했다.

반론할 여지가 없는, 정론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결승전은 어느 누구가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대결이었다. 끊임없이 내는 참격, 그 모든 공격에 자신의 모든 것을 실었고, 둘 다 한 치도 봐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거기엔 그들도 할 말은 있었다.

"하,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우리들은 기사이니까.. 자신이 인정한 상대를 어떻게 봐줄 수 있겠어.."

그런 틈을 보여 버린다면, 그 순간 패배해 버릴 것이다.

둘의 싸움은, 그런 차원의 싸움이었던 것이다.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고, 무엇보다 상대가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건 시즈쿠도 같았다.

"정말 못 말릴 분들이라니까요.."

시즈쿠도 알고는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 사이이니, 이 둘의 인연은 무엇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그런 둘의 인연이 부럽고, 질투가 날 정도였고..

동시에 기쁘기도 했다.

"....정말,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

시즈쿠는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쉰 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그리 중얼거렸다.

"에? 시즈쿠, 지금 뭐라고───"

"왜 무릎 위에 본레스 햄이 놓여 있는 거에요? 모두한테 먹으라고 가져온 거에요?"

"이건 내 다리거든!"

◆◇◆◇◆

그리고 주방에서 다 완성된 오코노미야키와 철판 요리가 옮겨졌고, 모두 배부르게 먹었을 때쯤.

그 타이밍을 잰 뒤, 카가미가 테이블 일부를 깔끔히 정리한 뒤, 거기에 칠성검무제에서 찍은 사진을 펼쳐놨다.

거기엔, 1회전에서 결승전까지,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활약이 담겨져 있었고, 그들은 추억 이야기를 꽃피우기 시작했다.

"선배~ 선배! 이것좀 봐요! 선배가 두 번째 《일도나찰》을 썼을 때의 사진이에요! 진짜 멋있게 찍혔죠? 이거, 다음 벽신문 일면을 장식하는 데에 쓸 거라구요!"

"우와...... 이렇게 펼쳐놓고 보니 대부분 엉망이 된 사진뿐이네, 내 거는.."

"하지만 엄청 남자답고 멋있었어요. 남성이란 이 정도로 와일드한 편이 더 멋있는 법이죠."

"앗. 시로 군이 기록적으로 순살당한 때의 사진도 있네~"

"우연이네, 모미지. 나도 지금, 네가 흰 눈 부릅뜨고 쓰러진 사진을 보고 있던 참인데."

"호오, 이게 《피투성이 다빈치》의 아버지인가. 얼굴을 떠올리게 되었군그래?"

".....응. 정말 잘 됐어."

"갖고 싶은 사진이 있으면 복사해서 줄 테니까 사양 말고 말해 줘~ 참고로 내가 고른 베스트 사진은─── 이거야! 버밀리온 황국 제 2황녀, 스텔라 전하의 팬티 노출 사....!?"

그렇게, 카가미가 품 속에서 사진을 한 장 꺼내들며, 모두에게 보려주려 한 찰나.

새된 풍절음을 동반하며 발사된 스텔라의, 불꽃이 깃든 레프트 잽이, 카가미가 집어든 사진을 재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카가미의 옷 뒷덜미를 잡은 뒤

"데이터 이리 넘겨."

힘을 줘 잡아당긴 뒤, 핏발 선 눈으로 카가미를 바라보며, 명령했다.

그 순간, 카가미는 자신의 눈앞까지 다가온, 용의 턱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네, 넵! 알겠습니다!"

펜은 검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에, 에이~ 정말~~ 스텔라 '양'도 참~ 농담이 안 통하는 분이시라니까~ 아하하.."

그런 잡담을 하고 있던 일동의 모습을 바라보며, 주방에 서 있던 모로보시는 코우메를 불렀다.

"코우메. 주문도 다 일단락된 것 같으니까, 나도 저기 좀 낄게. 혼자서 할 수 있겠나?"

"괜찮아. 맡겨 둬. ....오빠야도, 수고했다."

"응!"

수고했다는 그 말에, 모로보시는 낮은 곳에 위치해 있는 코우메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고, 코우메는 "에헤헤~" 하고 미소지었다.

그리고, 모로보시는 앞치마를 벗은 뒤, 자신이 먹으려 구워 놓은 부타다마 곱배기가 담긴 접시를 든 뒤───

사진 관상회는 뒷전으로 하고, 토카의 옆자리에 앉았다.

"엿차. 앉아도 되겠나?"

그 물음에, 토카는 쿡쿡, 하고 재밌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벌써 앉으셨잖아요. ....네, 물론이죠."

"땡큐~ ......음. 역시 울 집 오코노미야키는 최고라 안카나! 오사카에서 제일가지!"

"네. 아주 맛있었어요. 다음엔 우리 가족들도 데려오도록 할게요."

"우리 가게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고! 가장 맛있는 일등성짜리 오코노미야키는 바로 여기에!"

그리 답하며, 모로보시는 다른 멤버들보다 약간 늦은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부타다마 곱배기 오코노미야키를 다 먹어치웠다.

입 안에 남은 소스의 맛을 맥주로 함께 넘겨버린 뒤

"야, 토도... 쿠로가네와의 컨디션 조정 시합에서 보여 준 전자력을 이용한 변칙 검술, 《이나즈마》라고 했나? 그건 역시, 내 《혜성》의 대책으로 만들어 놓은 기가?"

결승전 직전의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이 말을 듣고, 토카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혜성》의 대책만을 상정해 만든 노블 아츠는 아닙니다만, 물론 그 용도를 다할 수 있게 만든 기술이기도 하지요. 작년엔 처음 봤던 《혜성》을 다 피해내지 못한 탓에, 그 뒤로 페이스를 빼앗겨 버렸으니까요. ......아쉽게도 쓸 기회는 없게 되어 버렸지만요."

"역시 그렇군. 그런 게 아닐까~ 하고 보자마자 생각했으니께. 확실히 그런 기술이 있었다면, 작년처럼 돌아가진 않았을지도 몰겠네~"

《이나즈마》는, 크로스 레인지에 특수한 자기장을 만들어내어, 그 인력과 척력으로 자신의 참격을 급가속 급선회시키는 노블 아츠다.

그 순식간에 변화하는 각도와 속도의 차이는, 중거리에서의 페이스 쟁투에 있어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강함을 자랑한다.

《비익》의 검을 몸에 익힌 잇키마저,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검의 사정거리에서 밀려버렸다는 사실을 보면, 그 기술이 얼마나 강력한지 납득이 갔다.

그리고 그렇기에─── 모로보시는 아쉬웠다.

"내도 한 번 상대해 보고 싶었는디.."

칠성검무제는 토너먼트제라는 형식 상, 강한 대로의 서열이 순위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모로보시의 감각대로라면, 작년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을 최대의 난적은 토카였다.

그런 강적이, 자신을 쓰러뜨리기 위해 갈고 닦아 온 기술.

칠성검무제라는 무대에서, 그 기술을 한 번 상대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머, 당연히 이길 건 내지만서도."

히힛, 하고 도발하는 듯한 웃음을 띠고, 모로보시는 토카를 슬쩍 바라봤다.

여기에 토카도, ───만면에 웃음을 띠고 모로보시에게 답했다.

"그럴 리가 있나요. 《혜성》을 봉쇄해버리고, 올해야말로 제가 이겼을 거라구요."

"그럴 리가 있나~"

"당연히 그렇죠."

"에이~ 너도 농담 한번 잘하네~"

"무슨 말씀을. 순당하고 당연한 사실을 말한 것 뿐이니까요~"

" "으으으으~~~~~~~~!!" "

끝내는 미소를 지은 채 이마를 맞부딪힌 채 밀어내기를 시작하는 꼴이 돼버렸다.

그야말로 일촉즉발.

둘 다 이런 쪽엔 양보하지 못하는 성격을 갖고 있었기에, 당연했다.

하지만, 그건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풋.."

"하핫."

잠시간 살기를 나눈 뒤, 둘은 동시에 작게 웃음을 터트린 뒤, 살짝 빨개진 이마를 뗐다.

"그만 두도록 하죠. 실현되지 못할 싸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그제. 내랑 니 성격을 보믄 둘 다 양보할 껀덕지도 안 보일 테니께, 시간낭비라카이. 거기에... 같은 패배자끼리 으르렁대고 있어 봐야 어따 써묵겠노? 타도 쿠로가네! 니나 나나 목표는 높게 잡는 편이 좋지 않겠나?"

".....그 말을 보니, 모로보시 씨는 졸업한 뒤에도 기사를 계속하시려나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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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가?"

토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 틀림없이 가업을 이어받고 예비역으로 들어가실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뭐, 그거도 물론 생각은 해 뒀는데.."

예비역이란 《마도기사》의 면허를 갖고 있지만, 평시엔 일반인과 같이 각자 직장에서 일을 하고, 유사시에만 《연맹 지부》의 요청에 《마도기사》로서 국방이나 범죄 탐사 임무에 나서는 자들을 말한다.

모로보시처럼 실가가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이 예비역에 들어선다.

그리고 모로보시도,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긴 해도, 지금까지 쭉 듣고 싶었던 응원을 들을 수 있게 됐으니께. 내는 더 강해질끼라. 아까우니 그만 둘 수가 없더라고."

그 모로보시의 말에, 토카도 천천히,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자신의 등을 밀어 주는 사람이 있다. 그건 아주 행복한 일이니까요."

"우리는 이제 3학년 아이가. 이제 《칠성검무제》엔 참가할 수 없제, .....토도. 넌 이제 어떡할끼고?"

"일단 전, 이 여름방학 내에 스승님 곁에서, 철저하게 제 자신을 단련할 생각이에요. 쿠로가네 군과 다른 사람들의 대결을 보고, 내겐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으니까요. ......그리고 졸업과 동시에 국내 리그에 등록한 뒤, 나중엔 A급 리그로 진출할까 생각중이에요."

A급 리그란, 《국제 마도기사 연맹》이 개최하는, 블레이저끼리의 격투 흥행 KOK 톱 리그의 통칭이다.

A급 리그의 선수들은, 연맹에 가맹해 있는 각 나라에서 적은 수로 할당되어 있는 추천을 받아, 그 나라를 대표가 된 선수들이고, 그런 선발된 기사들끼리 벌이는 세계 최고봉의 싸움은, 지상의 오락으로서 온 세상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시합이기도 하다.

토카는 자신의 다음 목표는 그 곳에 있다고 정해 둔 것이다.

거기에, 모로보시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왕도 코스네."

어쩐지 거리가 느껴지는 그 답에, 토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모로보시 씨는 다른 길을 택하셨나요?"

"───어. 내는 국내 리그엔 등록하지 않을끼라. 일본의..... 아니제, 《마도 기사 연맹》 참가국의 국내 리그는 연맹의 방침 때문에 마술을 중시로 한 기사들이 많아. 그치만, 내 《폭식》은 마술 그 자체에 파괴력이 있는 타입인 능력이 아니지. 그걸 명중시킬 체술이 중요한기야. 그것이 바로 내게 있어 생명선이나 다름없어. ....그치만 내는 그 체술로 쿠로가네를 꺾지 못했지."

지금의 자신의 체술, 창술은 일류의 세상엔 통하지 않는다.

모로보시는, 그걸 잇키와의 대결을 겪고 통감했다.

따라서

"그니깐.. 체술 중시의 시합에 나가려 생각하고 있다."

"그건, 설마..!"

블레이저이면서, 체술을 중시하는 싸움.

그런 방침을 두고 열리는 대회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

일본해를 넘어, 펼쳐진 대륙.

거기서 열리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과혹한 리그.

그 명칭은───

"내는 투신 리그에 도전할끼라.....!"

"..........읏!"

모로보시의 어떤, 각오조차 느껴지는 그 목소리에, 토카는 숨을 삼켰다.

그것도 당연하다.

투신 리그란, 연맹 가맹국이 아닌 중국에서 개최되는, A급 리그와 함께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블레이저끼리의 격투 대회이다.

A급 리그보다도 수준이 높다는 의견이 대부분일 정도의 리그이다.

그 이유는, 그 대결의 과혹함에 있다.

A급 리그는 최신예의 의료 설비에, 엄격한 룰, 충분한 휴식과 보수가 약속되어 있다.

하지만, 투신 리그는 다르다.

투신 리그는 《신룡사》라는 무술사가 수행 승려들을 위해 개최하고 있는 대회이다. 애초에 여흥으로 여는 리그가 아닌 것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참가가 가능하지만, 보수도 없고, 의료 설비도 없고, 더욱 무서운 건 룰조차 없는 것에 가깝다는 점이다.

"'상재전장'..... 투사라면 언젠가 나설 전장에 나서 있다는 마음가짐을 언제나 갖추고 있어라. 그 《신룡사》의 이념을 체현해낸 투신 리그는, 다수의 인원으로 한 명을 공격하는 것도, 잠을 자고 있는 틈에 습격을 가하는 것도 허용되어 있는, 어떤 면으로는 위법 지하 격투 흥행보다도 더욱 과혹한 싸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스승님에게서 들은 적이 있어요. .....안전 쪽의 고려는 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그 때문에 A급 리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망자가 많이 나오기도 한다고..."

일본인이면서 유일하게 그 대회를 제패한 남자.

《투신》난고 토라지로에게서 투신 리그가 얼마나 과혹한지를 들은 토카는, 충고하는 듯한 말투로 모로보시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 모로보시는 "내도 안다"라며 답하고

"글킨 해도, 그런 사선에서밖에 얻을 수 없는 게 있겠제? .....쿠로가네가 《비익》과 싸워, 그 기술을 훔쳐 낸 것처럼 말이지."

"....그렇...군요."

그 말을 들은 토카도 납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잇키는 세계 최강의 검사 《비익》 에델바이스와의 싸움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스텔라와의 결승전에서도, 그는 극한 속에서 서로의 실력을 상승시켰다.

생과 사가 교착되는, 불꽃과도 같은 찰나.

그 한 순간은, ───평범하게 하루하루 수행을 해 나가길 수 년, 수십 년 반복하는 것에 필적했다.

모로보시는 그 한 순간을 손에 넣을 생각인 것이다.

더욱 과혹한 환경에 몸을 두고,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가는 것으로.

그걸 이해하고, 토카는 말리는 것을 관두고, 수라의 길을 걸어나가려 하는 벗에게 응원을 보냈다.

"투신 리그는 상금도 아무것도 없는, 그저 영예 뿐인 싸움입니다만, 그렇기에 거기서 활약을 한다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죠. A급 리그 추천도 가능할 거에요."

"글켔지. 내도 국내 리그엔 흥미 따윈 없지만, A급 리그는 다르다. 거기 참가하는 녀석들은 한 놈 한 놈이 정신이고 몸뚱아리고 극한까지 단련해 온 괴물 놈들이니께. 언젠가 도전할 생각이야."

"그럼... 우리의 재대결도 그 때에.."

"그래. 죽어도 말이제!"

약속을 나누고, 둘은 조용히 맥주잔을 들고 건배했다.

◆◇◆◇◆

미래를 두고 대화하는 모로보시와 토카.

그 둘을 먼 눈으로 바라보며, ───토토쿠바라 카나타는 자신도, 오늘 이야기를 하려 마음먹은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그 자는, 아카츠키 학원의 《마수 조련사》 카자마츠리 린나였다.

"우웅. 셔민의 음식됴 가꾸문 모글 마나구나~"

"아가씨.(쪼옥)"

"후앗!? 가, 가가가가갑자기 뭐 하는 거야, 샤를!?"

"뺨에 소스가 묻어 있었습니다."

"고, 고마... ──어흠! 잘 했다. 하, 하지만 이 《제단》에는 《부정을 정화하는 결백》이 있으니 다음부턴 그걸 쓰도록."

잇키 주변의 소란스럽고 활기찬 분위기엔 끼지 않은 채, 테이블 위에 놓은 오코노미야키를 작은 입으로 계속해서 오물거리는 린나에게, 카나타가 접근해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네요, 린나 양."

그 목소리에, 린나는 돌아보며

"아아, 토토쿠바라의.."

딱히 흥미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것도 당연하다. 이 둘은 모두 일본에서 손꼽히는 자산가인 탓에 한두 번 만나 인사를 나눈 것 정도인 사이였고, 개인적인 대화를 할 사이는 아니었으니까다.

"《하군》에 방문하셨을 때엔, 인사도 채 못 드려서 죄송했습니다."

"괘념치 말도록. 밤의 주군인 이 몸은 그러한 사소한 건 신경쓰지 않느니라. 오물오물"

"......비꼴 의도로 말한 건데 말이죠. 옆에 앉아도 괜찮을까요?"

"그허케 하됴록."

"앉으세요, 라고 아가씨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럼 실례할게요, 하고 카나타는 린나 곁에 앉았다.

"그건 그렇고 깜짝 놀랐습니다. 카자마츠리가 숨겨진 부분에 강한 인맥을 지니고 있었다는 건 토토쿠바라도 알고 있던 사실이긴 하지만, 설마 그 당주, 카자마츠리 코우조 님의 친녀이신 린나 양이 《해방군》의 활동에 종사하고 있었다니.."

"흐헌 건 하니야"

"네?"

"당주님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아가씨는 《해방군》에 소속된 몸은 아니십니다."

오코노미야키를 볼 한가득 넣고 우물거리고 있던 린나 대신 샤를로트가 설명했다. 린나의 아버지인 카자마츠리 코우조와 츠키카게 총리는 면식이 있는 사이였고, 그 때문에 린나는 츠키카게 총리와 어렸을 때부터 자주 같이 놀았기에,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린나는, 《해방군》의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던 코우조에게, 츠키카게가 이번에 벌어진 《국립 아카츠키 학원》 설립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갔을 때, 츠키카게의 힘이 되어 주기 위해 이 작전에 참가를 지원했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일단은 《해방군》에 소속된 몸으로서 참가하고 있는 사라보다도 연결점이 없었던 것이다.

오우마와 같은, 게스트 정도의 입장으로 봐도 좋을 존재였다.

그 설명을 듣고, 카나타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이번을 마지막으로 이런 활동을 하시는 것은 그만 두도록 하세요."

살짝 강하게, 부탁보다는 명령에 가까운 듯한 말투로, 린나에게 말했다.

여기에 린나는 입 안의 음식을 꿀꺽, 하고 삼킨 뒤, 질문했다.

"호오? 어떤 연유로, 그대에게 그런 것을 지시받아야 한단 말인가?"

"전장에서 제가 아는 사람이랑 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렇다. 그것이 카나타가 지금, 린나에게 말을 건 주된 이유였다.

《진홍의 숙녀》 토토쿠바라 카나타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실력자이다. 그렇기에, 학생인 몸으로 《특별소집》이라는 형태로 실전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해방군》의 거점 제압에 참가하여, 적과 교전. ──실력이 뛰어난 전투원을 살상한 경험도 있다.

각오는 이미 했었지만, 그래도 뒷맛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경험이었다. 그렇기에, 이 지옥에서 자신의 지인과 적으로 만나는 일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충고에, 린나는 조소를 보였다.

"큭큭... 그렇군. 하지만, 그 부탁은 들어줄 수 없겠어. 왜냐면, 이 《황혼의 마안》이야말로, 상세의 어둠의 근원이며, 짐은 그 마안을 지닌 자. 어둠의 세계에 사는 주민이기에 짊어지게 된 숙업이라 할 수 있지... 큭! 마안에 봉인해 둔 혼돈이 피를 갈구하며 요동치고 있어....! 큭큭큭... 오늘 밤은 어떤 녀석을 제물로 삼아 줄까....!"

그런 말을 하며, 안대를 손으로 억누르는 린나.

누가 봐도 뭐 하자는 건지 모를, 참 안쓰러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카나타는 그녀의 말, 그리고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카나타는 사전에 준비해 둔 비장의 수를 꺼내들었다.

".....하아.. 그럼 어쩔 수 없군요."

하얀 토트백에서 학생수첩을 꺼내든 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건──

"여보세요. 주간 소년 잭 편집부인 오오타하라 편집장에게 전화 부탁드립니다. 토토쿠바라라고 전해 주십시오."

그 행동에, 옆에 앉아 있던 린나가 갑자기 의자를 박찰 기세로 일어나며

"주, 주간 소년 잭!? 그, 그건 혹시.. '황혼의 마안술사'가 연재되고 있는, 그 잭!?"

그 안쓰러운 연기마저 잊은 채, 흥분한 채 카나타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이 린나의 '예상대로'의 반응에, 카나타는 방긋이 미소지었다.

"네. 쇼에이샤는 토토쿠바라 재벌의 관련 기업이니까요."

"그, 그그그그렇다면.. '황혼의 마안술사'의 작가이신 타카야나기 선생님이랑, 마, 마마마.. 말도 해 본 거야!?"

"네, 물론이죠. 마침 이곳에 오기 전에도 한 번 만나서──, 아, 실례할게요. 여보세요?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네. 그래서, 전에 상담했던 얘기 말입니다만, 네. 역시 제 설득으로는 도저히 안될 것 같군요. 네. 그렇게 됐습니다. 타카야나기 선생님에게도 말씀드렸듯이, '황혼의 마안술사'는 여기서 연재 종료를 하기로──" "잠깐 기다려어어어어어어!?!??!?"

온몸에 털이 곤두설 법한 그 대화 내용에, 린나는 무심코 큰 소리를 내지르며 카나타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에!? 뭐야, 뭐야!? 무슨 말이야!? 연재 종료라니!? 어째서!? 저번 주에 나온 잡지에 컬러 표지로 장식되어 있었을 정도였는데!?"

"....어른의 사정, 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아이를 범죄의 길로 이끌어버리는 작품을 게재하는 건, 저희 기업이 추구하는 점에 있어 문제점이 되어 버리니까요. '황혼의 마안술사'의 영향으로 인해 어둠의 세계로 발을 들이려 하는 린나 양의 마음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그대로 작품을 끝마치겠다고, 편집부와 이미 이야기를 끝내 놓은 상태였습니다."

카나타의 말에, 린나의 흥분에 의해 상기된 얼굴에서 모든 핏기가 가셨다.

자신의 가문의 계열 회사.

거기서 나오는 잡지에 연재되고 있는 작품이었기에, 카나타는 그녀를 첫눈에 보고 알아챘던 것이다. 린나가 그 작품의 캐릭터를 흉내 내고 있다는 것을.

그 정도로 사랑을 쏟고 있는 작품.

인질로선 지나칠 정도로 충분했다.

그리고──

"그, 그거 완전 횡포야! 너무하잖아! 타카야나기 선생님이 불쌍하다구!"

"물론 타카야나기 선생님에게도 직접 상담을 했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만에 하나라도, 제 작품으로 인해 범죄를 저질러 버리는 아이가 나온다면, 전 붓을 내려놓겠습니다. 그리 결정했어요.' .......정말, 훌륭한 분이세요."

"네! 린나! 갱생할래! 갱생할게요! 이미 갱생했어요! 이제 다시는 《해방군》의 일 같은 거 안 할 게요! 그러니까 그것만은 제발 하지 말아줘요오오오오~~~!!!"

린나는 너무나도 쉽게 꺾인 뒤, 카나타에게 울고불며 매달리기 시작했다.

◆◇◆◇◆

펑펑 울며 떼를 쓰는 아이처럼 카나타에게 들러붙는 린나.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시즈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시끄러워 죽겠네요."

그렇게 말할 때였다.

홀로 앉아 있던 시즈쿠에게, 장신의 미남자, 아리스인 나기가 말을 걸어왔다.

"자~ 시즈쿠."

"아리스..."

"혹시 지쳤어? 시즈쿠, 이런 시끄러운 모임은 싫어했었지?"

아리스인은 누구보다도 한 층 더 눈치가 빠른 남자이다.

자리의 분위기에 섞이지 못하는 자신에게 신경을 써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시즈쿠는 그런 친구의 배려에 감사하며, 그에 응했다.

"....딱히, 지쳐 있는 건 아니야. 그냥.. 내 예상이 틀려서 좀 실망하고 있던 것뿐이야."

"무슨 말이야?"

".....내가 오늘 여기에 온 건, 오라버니를 축하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키리코 선생님에게 제자 신청을 하기 위한 것도 있었어."

그 말에, 아리스인은 놀라지 않고, 오히려 "그렇구나" 하고 납득한 모습을 보였다.

"그건... 역시, 그 때의 일이 이유야?"

그 말에, 시즈쿠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아리스인이 말하는, 그 때.

그건 물론, 준결승전이 있던 밤을 말하는 것이다.

《흉운》 시노미야 아마네와 대전을 벌인 뒤, 그의 능력에 의해 시즈쿠의 오빠인 잇키는, 한 번 목숨을 잃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살려내려 해도, 그 몸에 새겨져버린 죽음이라는 결과가, 잇키의 혼을 연옥으로 끌고 가려 했던 것이다.

다행히 아버지인 이츠키의 요청에 의해 달려온 《백의의 기사》 야쿠시 키리코의 활약으로 인해, 잇키는 무사히 목숨을 되찾을 수 있었고, 스텔라와의 결승전에 나설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난 아무것도 해낼 수 없었어. 같은 물 능력자이면서도, 오라버니가 궁지에 몰렸을 때, 그저 울고만 있었어."

시즈쿠는 그 때를 떠올렸다.

잇키가 누워 있는 수술실 앞에서, 그저 이성을 잃고 날뛰기만 했던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격한 분노를 느꼈다.

──이 얼마나 한심하단 말인가, 하고.

같은 물 능력자인 키리코는, 그 힘으로 자신의 오라버니를 구해냈는데.

그 때만큼, 자신이 얼마나 무능력했는지를 통감시켜준 때는 없었다.

"그런 일은 이제 죽어도 없을 거야. 오라버니가 궁지에 몰렸을 때, 바보같이 울 수밖에 없었던 그 때의 느낌은... 두 번 다시 겪기 싫어. 그러니까....."

"그 여의사 분의 제자로 들어가려 한 거구나."

시즈쿠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한 뒤

".....하지만.."

살짝 짜증이 섞인 듯한 시선을, 테이블 한 쪽으로 보냈다.

아리스인도 그녀의 시선을 좇았다.

거기엔, ───《피투성이 다빈치》 사라 블러드릴리에게, 마치 문어처럼 다리와 팔을 얽어매 자유를 빼앗고, 사라의 온몸을 만지작거리는 고주망태가 된 키리코의 모습이 있었다.

"어머어머어~ 당신.. 체격이 이런 것치곤 근육량이 완져니 부죡하자나~~?"

"읏.. 태,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으니까.. 거기에, 앉아서 그림만.. 잔뜩 그렸으니까... 어쩔 수 없어."

"그럼 안대지잉~~ 그런 생활을 하면 말야, 딸꾹! 20살이 넘었을 때 순식간에 폭탄이 터져버린다구웅~ 온몸 여기저기에 똑딱거리는 시한폭탄이 말이야~ 하지만 안~심~해~ 이 키리코가아~ 사실은 요즘 지방을 근육으로 바꿔버리는 획기적인 치료술 연구를 하고 있었답니다앙~! 으음~ 키리코도 참 착하다니까안~"

"누가.. 좀 도와줘...!"

"할짝~"

"아앙...!"

원래부터 노출도가 높은 사라와, 여의사라는, 어떠한 페티시즘을 자극하는 키리코.

그런 둘이 옷매무새를 흐트러뜨리며 얽히고 있는 그 선정적인 광경에, 아리스인은 살짝 꺤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한테 이리저리 달라붙는 술버릇을 갖고 있구나, 저 여의사분.."

"저래서야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안 들어. ......아니, 저기로 다가갔다간 나까지 휘말려버릴 것 같아서, 가까이 가고 싶지가 않아. 죽어도."

"그렇네.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

"음.. 여름방학 사이에 히로시마에 직접 찾아가도록 하지 뭐."

포기한 듯 말하는 시즈쿠의 그 말에, 아리스인은 살짝 놀란 듯 물었다.

"버밀리온 황국에 따라갈 생각은 없었던 거야?"

그 말에, 시즈쿠는 살짝 삐친 듯 입술을 삐죽이며

"아무리 그래도 그런 비상식적인 짓은 안 한다구."

'비교적 비상식적인 행동은 많이 했던 것 같은데...'

그리 생각은 했지만, 아리스인은 그런 쓸데없는 말을 입 밖으로 흘릴 남자가 아니었다.

일러스트

그와 시즈쿠는 알고 있었다.

그 결승전을 계기로, 잇키와 스텔라의 관계가 크게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그런 둘이, 스텔라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버밀리온 황국을 방문한다.

거기서 이야기가 잘 풀린다면, 바로 혼약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언젠가 올 날을 위해, 시즈쿠도 마음 속으로 각오를 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시즈쿠는..... 스텔라를 아주 좋아하니까.'

그 본인은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오빠에게 접근을 허용할 리가 없으니까. 그런 기특한 시즈쿠가 사랑스러워서, 아리스인은 살짝 놀려 주듯, 약간 부풀어오른 시즈쿠의 뺨을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

여기에 시즈쿠는 화난 듯 눈을 치켜뜨고, 자신도 또한 검지손가락을 세워 아리스인의 뺨을 찔렀다.

아니, 콕 찔렀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찔러넣었다'.

실로 지는 걸 싫어하는 시즈쿠다운 그 응수에, 아리스인은 뺨을 쓰다듬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시즈쿠가 질문했다.

"그것보다 아리스는 여름방학에 무슨 예정 있어? 없으면 같이 히로시마에 가 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 권유에 아리스인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안" 하고 답했다. 그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예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여름방학에, 내 고향인 마을에 한 번 가보려던 참이었어. 지금까지 갈 수 없었던, 내 친구의 묘를 들러보기 위해서 말야."

"그래? 그럼 여름엔 각자 행동하겠네. 좀 아쉽다."

"다른 나라 먼 곳에서, 네 수행이 잘 이뤄지기를 바랄게."

◆◇◆◇◆

승리 축하 파티 개시로부터 2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

사진에 둘러앉아, 추억 이야기를 꽃피웠던 자들도 충분히 만족한 듯, 평소 죽이 맞는 자신의 친구들끼리로 이루어진 소규모 그룹으로 나뉘어 수다를 시작했다.

그 때가 되어서야, 주빈인 잇키는 겨우 인파에서 해방되었다.

"후우.."

잇키는 의자에 깊이 눌러앉아,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천정을 바라봤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받았다.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은 그 분위기에, 약간 체력을 소모해버렸다.

그것만이 아닌, 카가미의 인터뷰에도 응했기 때문에 목이 말랐다.

코우메한테 뭔가를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볼까.

그리 생각하고 있자───

"승자 인터뷰 수고했어. 《칠성검왕》씨."

툭, 하고, 차갑고 딱딱한 무언가가 뺨에 닿았다.

스텔라가 신경을 써 주어, 차갑게 식혀 놓은 보리차를 가져와 준 것이다.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잇키는 보리차가 들은 맥주잔을 들어, 반 정도를 한 번에 마셨다.

그런 잇키의 모습을, 스텔라가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그리고 갑자기, 무언가를 알아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앗, 잠깐, 잇키. 머리카락 다 흐트러졌어. 고쳐 줄게."

모로보시나 렌렌의 거친 축복 방식에, 잇키의 머리에 흐트러진 부분이 생겨난 것이다.

잇키는 자신의 외모를 꾸미는 데에 관심이 없는 성격이다 보니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앞에선,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솔직하게 "응"하고 고개를 끄덕인 뒤, 스텔라가 머리를 매만지기 쉽도록 등을 뻗어 머리를 향해주었다.

그런 잇키의 머리카락을, 그의 뒤로 돌아가 앉은 스텔라가 부드럽게 빗어주었다.

"대회, 끝나 버렸네."

그러다 갑자기, 약간 쓸쓸한 듯이 그리 중얼거렸다.

이 말에, 잇키도 동의로 답했다.

"그렇네... 완전 눈 깜짝할 새였어."

"어쩐지 좀 쓸쓸하네. .....계속해서 이 곳만을 바라보고 달려왔으니까."

그 마음은, 잇키도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그도 이 곳만을 바라보고 달려왔으니까.

졸업을 위해.

그리고, 스텔라와 나눈 약속을 위해.

그렇기에, .....잇키는 약간 불안을 느꼈다.

"혹시, 마음이 완전히 식어 버린 거야?"

하지만, 그런 잇키의 불안에, 스텔라는 "설마~" 하고 씨익 웃으며 답했다.

"다음 해에 복수전을 위해 트레이닝을 할 거야! 어젯밤에 그런 일도 있었으니까."

어젯밤.

그 말에 "──아아, 그랬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다. .......원래 이 승리 축하 파티는 표창식 직후인 어제 열렸어야 할 파티였다. 그것이 하루 늦게 열린 이유는, 그 주빈에게 급한 용무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잇키, 스텔라, 이 둘은 어제, 총리대신, 츠키카게 바쿠가에게서 밤에 만안 돔으로 나와 달라는 요청을 받았었다.

◆◇◆◇◆

오후 9시. 만안 돔 링으로 와 주도록.

그 호출은 표창식 뒤, 하군 학원 이사장인 신구지 쿠로노를 통해 둘에게 전해졌다.

무슨 일인가 하니, 쿠로노와 스텔라의 강사 자리를 맡고 있던 일본 굴지의 실력자,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를 포함한 넷에게, 츠키카게가 비밀에 부칠 할 이야기가 있다는 듯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이런 시간에 불러내다니."

"글쎄... 나도 전혀 모르겠어."

둘은 약속 시간에 돔 안으로 들어간 뒤, 아무도 없는 통로를 걸어 나가며, 링으로 향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테러리스트에 들어와 달라는 권유라도 했다간, 진짜 흠씬 두들겨 패 줄 거야."

"리사장 선생님이나 사이쿄 선생님도 같이 불렀으니까, 그런 부탁은 안 할 것 같은데.."

이윽고 둘은 이미 열려 있는 게이트를 빠져나와, 약속 장소인 링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넓고 넓은 공간에 귀가 아플 정도의 고요함이 깔려 있을 뿐이었다.

"뭐야? 불러 내 놓곤 아무도 없잖아? 잇키, 지금 이 시간이 약속 시간 맞지?"

"응. 이상하네....."

주위를 빙 둘러봐도, 결과는 같았다.

링 위는 물론, 절구 형태의 관객석에도 인기척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도 없었다.

쓰레기도 깔끔히 청소되어 있어서, 오늘 아침에까지 느껴졌던 그 열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그 적막함에, 잇키는 일말의 쓸쓸함을 느꼈다.

이 장소에서, 그들은 아주 농밀한 시간을 보냈다. 그건 고작 1주일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충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잇키는 이곳에 강한 애착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어라.....?'

그런 애착조차 느껴질 정도가 된 무대였기에 그런 것일까.

'뭘까, 이 이상한 느낌은.'

조금씩 들어오는 바닷바람이, 돔 안의 정적을 뒤흔들어놓고 있었다.

그 때마다 대기가 살짝씩 떨리며, 피부를 쓰다듬었다. 그 감촉에, 잇키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이곳의 대기는, 이렇게 흘러다니고 있었던가?

지금처럼, 피부를 쓰다듬으며?

──아니다.

'공기의 흐름이, 이상해.'

방금 주변을 둘러보며 얻은 시각정보와, 피부로 느껴지는 대기의 진동.

이 둘의 정보가 일치하지 않고 있었다.

흔들리고 있다.

시각정보에서 상정될 대기의 흔들림과, 현실의 정보가 격리되어 있었다.

그렇다.

마치.

링 위에, 자신과 스텔라 이외의 장해물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윽─────!"

그걸 인식한 직후, 잇키는 보게 되었다.

스텔라의 등 뒤.

거대한 헬버드를 들고 있는, 검은 갑주의 존재를....!

"스텔라!!!!!!!! 피해!!!!!!!"

"윽!"

이 순간의 스텔라의 반응은, 그녀가 잇키를 신뢰하고 있기에 가능했다.

스텔라는 이 때가 되어서도 아직, 등 뒤에 서 있는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갑자기 연인이 소리를 치는 데에 당혹해하는 것도, 뒤를 뒤돌아보는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잇키라는 남자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사고를 완전히 무시하고 그녀의 몸을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직후, 방금까지 스텔라가 서 있던 곳에 헬버드의 칼날이 내리쳐졌고, 굉음과 함께 링과 이곳의 정적을 깨부숴버렸다.

"뭐, 뭐야.. 넌!?"

"────"

앞으로 내던진 몸을 오른팔 하나로 띄워올린 뒤, 공중에서 선회.

습격자를 바라보며, 따지듯 물어보는 스텔라.

그녀의 부릅떠진 눈엔, 엄청난 경계심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도 당연하다.

이렇게까지 손쉽게 등 뒤를 내주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강화 석재로 만들어진 링 바닥을 저렇게 쉽게 부숴버릴 수 있는 힘.

스텔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오우마 정도의 수준을 지닌 완력이었다.

보통내기는 아니다.

그 스텔라의 물음에, 검은 감주를 입은 습격자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다시금 스텔라를 공격하기 위해 앞으로 도약했다.

그 행동엔, 명확한 전의가 깃들어 있었고

"읏!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싸우겠다면 상대해 주겠어!"

스텔라는 거기에 응했다.

바로 자신의 디바이스 《비룡의 죄검》을 현현시켜 양손으로 쥔 뒤

"창천을 꿰뚫어라! 연옥의 불꽃....!"

그 칼날에, 불꽃을 발현시켰다.

회오리치며 겹겹이 층을 이루어가는 불꽃은, 순식간에 그 온도와 광도를 상승시켜나갔다.

그리고, 희게 불타오르는 빛의 검으로 바뀌었다.

그 빛은 돔 내부의 모든 공간을, 마치 한낮처럼 비추었고,

───어둠에 녹아든 검은 갑주의 모습을 극명히 밝혀내었다.

그 모습을

'저 갑옷, 설마......!'

잇키는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

잇키가 그 사실을 알아챔과 동시에, 스텔라의 베어낸 빛의 참격이 갑주를 덮쳤다.

흠잡을 데 없을 정도의 직격이었다.

확실히 명중된 그 감촉에, 스텔라는 입술을 틀어올리며

"흥! 어떤 녀석인지는... ───읏!?"

하지만, 스텔라의 표정은 곧바로 경악에 물들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다.

그녀의 필살의 일격.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

그 빛의 범류를, 마치 산들바람을 타고 오는 것처럼 뚫고 나와, 조금의 감속도 없이 빛 속에서 검은 갑주의 기사가 스텔라의 눈앞에 나타났으니까.

그리고 검은 갑주는 다시금 헬버드를 치켜들고, 스텔라의 정수리를 노리고 힘껏 내리쳤다.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가 직격됐음을 확신했던 스텔라였기에, 여기에 회피를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스텔라아아아!!!!!!!!!!"

그 위기에서, 순식간에 달려 나온 잇키가 구해냈다.

스텔라를 옆에서 강하게 밀쳐낸 뒤, 내리쳐 쇄도해 오는 헬버드 아래를 빠져나가듯 회피한 뒤

"하아아압!"

그대로 몸을 비틀어 반전시키고, 갑주 기사에게 몸통베기를 선사했다.

헬버드를 내리치던 갑주 기사는, 여기에 응수해낼 수 없었다.

《음철》의 검은 칼날은, 마치 빨려 들어가듯 갑주의 몸통 부분을 그었다.

하지만, 잇키의 참격은 예리함에 있어서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파워는 그리 좋지 못했다.

그 참격은 갑주에 막혀버렸고, 말 그대로 공격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물론 잇키도 이미 알고 있었다.

갑주를 잘라낼 필요 따윈 없었다.

───칼날이 닿기만 한다면, 충분하다.

"윽...!"

갑주의 배 부분에 《음철》이 닿은 찰나, 잇키는 온몸의 근육을 연동시켰다.

그리고, 근육 신축을 이용해 진정한 살상력이 담긴 '두 번째 공격'을 가했다.

제 6비검───《독아의 태도》

상대의 무기나 갑옷에 대해, 한 종류의 파동을 때려넣어, 그 무구를 장비한 자의 육체 내부에 있는 수분에 파문을 그려, 모든 방어를 무시하고 적을 내부로부터 파괴시키는 기술이다.

강고함과 흡진성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파동이라는 독은, 순식간에 갑주 기사의 온몸에 퍼졌고───

갑주의 틈새 사이로 선혈이 뿜어져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윽!"

직후, 검은 갑주는 잇키에게 창으로 찌르는 것 같은 예리한 발차기를 가했다.

《독아의 태도》를 받았음에도, 전혀 데미지를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 잇키는 놀라지 않았다.

그 이유는, 잇키도 지금의 일격으로 데미지를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지금의 일격으로 확신했다.

눈앞의 갑주 기사가 누구인지를.

그리고

"잇키! 이 녀석, 혹시 그...!"

발차기에 의해 날아간 잇키에게 달려간 스텔라도, 잇키와 같이 눈치를 챘다.

그렇기에, 둘은 알게 되었다.

혼자서는 벅찬 상대이다, 라고.

"스텔라! 지원 부탁해!"

"맡겨만 달라구!"

잇키를 선두로, 둘이서 동시에 공격에 들어섰다.

여기에 갑주 기사는 거대한 헬버드 손잡이를 잡고, 머리 위에서 회전시켰다.

잇키가 사정거리 내로 들어서자, 충분한 원심력에 의해 가속이 붙은 칠흑의 헬버드는, 검은 선풍이 되어 잇키의 몸통을 잘라버렸다.

잘라버렸다.

───그랬을 터였다.

하지만, 완벽한 타이밍으로 영격에 성공했어야 할 헬버드는, 달려오던 잇키의 몸에서 몇 센티미터 떨어진 허공을 가르는 데에 그쳤다.

제 4비검── 《신기루》

특수한 발놀림을 이용해 완급을 주어 적의 눈을 환혹시키는 잇키의 체술이다.

잇키는 신기루를 이용해 자신의 전방에 잔상을 만들어내어, 갑주 기사의 사정거리 감각을 오인시킨 것이다.

그리고, 갑주 기사가 크게 허공을 공격해 생긴 순간을, 둘이서 파고들었다───!

"하아아아아아아아앗!!!!!!!!!!"

잇키의 뒤를 쫓아 달리던 스텔라가, 칼날을 역으로 뺀 채 《비룡의 죄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앞을 달리던 잇키가 도약.

이 휘둘러진 《비룡의 죄검》의 옆면을 발판삼아 착지한 뒤, 《낙제기사》가 지닌 7개의 비검 중에서도 가장 큰 파괴력을 자랑하는 제 1비검 《서격》을 구사했다.

《서격》의 돌진력과, 스텔라의 검을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대지를 뒤흔들게 만드는 힘.

그 모든 것들을 칼 끄트머리 한 점에 집중시켜 적을 꿰뚫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감각과 콤비네이션이 만들어낸, 이 둘밖에는 불가능한 합체 기술.

그 이름하여───

"《각황(角皇)》───!!!"

"《사랑의 탄환》────!!!"

기술 이름을 지어내는 감각만은 조금의 연계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둘의 힘이 합쳐진 일격은 멋들어지게, 허공을 공격한 탓에 자세가 무너진 적의 미간에 직격했고───

굉음과 불똥을 튀기며, 갑주 기사를 링 바깥까지 날려버렸다.

하지만

"뭣......!?"

링 바깥까지 날아가고, 그대로 관객석 아래에 깔린 벽에 처박힐 것이라 생각한 찰나.

갑주 기사는 빙글, 하고 몸을 돌려, 링 바깥을 빙 두른 벽에 양발로 착지.

그대로 벽이 부서지는 도약을 하여, 포탄과도 같은 기세로 잇키와 스텔라를 향해 날아가며, 둘을 한꺼번에 양단시키기 위해, 헬버드를 횡 일선으로 휘둘렀다.

그렇다고 해도, 상당한 거리와 큰 동작이 들어간 공격이었다.

둘은 아무 어려움 없이 그 공격을 피해냈다.

하지만, 그 둘의 표정엔 명백한 초조함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다.

스텔라와 잇키의 힘을 한 곳에 집중시킨 《각황》.

그걸 정통으로 맞았음에도, 눈앞의 적은 데미지를 입기는커녕, 간지러움조차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이걸로 끝내지 못했다면, 이제 그 수밖엔 없겠네."

"응. 나도 알고 있어."

빙글, 하고 헬버드를 돌려, 천천히 자세를 고쳐 잡는 갑주 기사를 상대로, 둘은 각오를 다졌다.

둘은 동시에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일도───》

"《용신───》

자신의 성능. 그 극한을 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 때였다.

"거기까지다."

" "엣!?" "

자주 들었던 목소리가, 링 위에 서 있던 셋의 사이로 껴들어 왔다.

목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니, 거기엔..

"이사장......!? 거기에───"

"네네 선생님이랑, 츠키카게 총리도!?"

오늘, 잇키와 스텔라가 이 자리에서 만나기로 한 세 사람이, 링 위로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이상은 진정한 살육전이 되어 버릴 거야. 무기를 거두도록."

갑주 기사는, ....여기에 저항할 기색조차 보이지 않고 전투태세를 푼 뒤, 헬버드 날을 땅에 내리꽂았다.

그 모습엔, 방금까지 느껴지던 전의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잇키와 스텔라도 일단 무기를 내린 뒤, ───질문했다.

"이사장 선생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지요?"

그 질문에, 쿠로노의 옆에 있던 네네가 답했다.

"뭐, 약간 여흥 같은 거라 해야겠지. 쿠로 꼬마도 스텔라도, 이 녀석이 누구인지는 잘 알고 있겠지?"

"네..."

그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독특한 풍채였기에 설마 했지만, 싸우면서 확신하게 되었다.

"사용자의 몸을 무한히 회복시키는 《불굴》의 개념. 그걸 다루는 디바이스 《무적갑주》를 입고, 작년 처음으로 KOK A리그에 등록한 뒤, 노도와도 같은 쾌진격을 거듭해 순식간에 랭킹 상위까지 올라온, 프랑스의 《A랭크 기사》──

현 세계 랭킹 4위. 《흑기사》, 아스카리드 씨죠."

"───"

그 잇키의 질문에 《흑기사》는 응답하지 않았다.

방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저 아무 말 없는 채로 서 있었다.

하지만 이 실력. 이미 두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 어째서 연맹 가맹국의 일류 기사가 자신과 스텔라를 습격한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해선, 쿠로노가 답했다.

"아스카리드가 너희들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모양이어서 말이지. 그냥 놔뒀다간 자는 사이에 기습이라도 할 것 같아서, 우리들이 보고 있을 때 공격하도록 말해 두었어."

"......공격하도록 말해 뒀다니... 저 이래봬도 일단은 국빈이거든요? 버밀리온 황국의 제 2황녀거든요! 완벽하게 국제 문제거든요!!"

쿠로노의 시치미 떼는 듯한 그 말에, 스텔라가 둘의 뒤에 서 있던 츠키카게를 째릿, 하고 노려봤다.

여기에, 츠키카게는 쓴웃음을 지었다.

"난 말렸는데 말이지.."

"우리들이 허가했어!"

"니들이 그러고도 교사냐!!"

"이 수준의 기사와 맞붙을 기화는 그리 많지 않지. 연맹 톱 클래스의 기사의 힘을 직접 느껴 보는 것도, 너희들에게 있어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벌인, 말하자면 성장하는 아이를 돌보는 부모 마음 같은 거야. 용서하도록."

"그, 그렇다고 해도 달리 방법이 있잖아요..."

질렸다는 듯 어깨를 떨구는 스텔라.

확실히 스파르타식이라 해도 정도가 있다.

그리고, 스텔라가 네네 일행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사이에, 습격자 신분인 아스카리드는 역시나 아무 말도 않은 채, 그대로 발을 돌려 링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목적을 달성하고, 이제 여기에 있을 의미 따윈 없다는 듯했다.

엄청나게 마이페이스인 남자였다.

뭐, 잇키에게 있어서도 상대가 전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딱히 쫓을 이유도 없었다. 그러니, 그는 멀어져가는 아스카리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아스카리드 씨가 습격해 온 이유는 알겠어요. 그건 이제 됐어요. 그것보다도 츠키카게 총리님. 우리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셨죠...?"

이 자리로 자신들을 부른 남자에게 용건을 돌렸다.

이 말에, 지금까지 자신들과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츠키카게가, 화제를 바꿔준 것에 대해 감사를 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오늘 자네들 둘을 부른 용건은 두 가지가 있네. 말해야만 하는 것과, 들어줬으면 하는 말, 이 두 가지가 있어서 불러낸 거야. ......먼저 전자 쪽부터 꺼내도록 하지."

진지한 말투로, 말을 꺼냈다.

"말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건 별 다를것도 없는, 잇키 군, 자네에게 일어난 일에 관해서야."

◆◇◆◇◆

"잇키의 몸에 일어난 일이라니... 그게 뭐야...?"

불온하게 들리는 그 말에 불안한 표정을 짓는 스텔라.

하지만 츠키카게는 스텔라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잇키 군은, 그게 뭘 말하는 건지 벌써 눈치채고 있지 않으려나?"

잇키에게 질문했다.

이 질문에, 잇키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몸소 겪었다는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스텔라와의 시합에서 제가 쓴, 두 번째의 《일도나찰》을 말씀하시는 게 아닐까 합니다만."

그 말에 츠키카게는 "맞았어" 라고 긍정했다.

"마력이란, 블레이저가 태어남과 동시에 지닌, 이 세상에 대한 영향력. 그렇기에, 그 총량은 운명과도 같이 정해져 있지. 하지만...... 이 세상엔 그러한 전제를 뒤집어 엎은 예외가 존재한다네. 자신의 강고한 의지로 운명의 사슬을 끊어버린 자. 사람으로서의 정신의 한계를 넘어서, 운명의 너머를 돌파해 낸 예외가.

우리들은 그 존재를 《마인》이라 부르고 있지."

츠키카게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스텔라의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에 삼켜진 순간, 잇키는 자신의 원래 운명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패배했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는 스텔라를 향한 마음을 불태우며, 그 운명을 뿌리쳤다. 이 세상에 내려진 운명이 《쿠로가네 잇키》라는 존재에게 허용해 준 한계를 초월해, 마력 상한을 끌어올린다는, 있을 수 없는 기적을 일으켜, 운명을 뒤집어버린 것이다.

"그 때, 자네는 보통 블레이저와는 다른 존재가 되어 자신의 정신의 위계를 정진시켰지. 이 각성에 달한 자는 이 별에 존재하는 운명의 축에서 벗어나, 마력의 상한조차 훈련을 함에 따라 끌어올리는 게 가능해. 내 첫 용건은, 이번에 《마인의 영역》에 발을 들이민 자네에게, 자네가 그런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하는 거였어."

"자, 잠깐만 기다려 봐!"

그런데, 거기서 츠키카게의 말에 스텔라가 껴들었다.

그녀는 표정에 강한 초조함을 내비치며

"확실히 잇키의 마력이 늘어난 순간은 나도 봤어.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잇키라면 그 정도는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츠키카게 총리. 당신의 말을 들어 보면, 당신은 이 현상의 존재를 전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

"네. 맞습니다. 물론 저만이 아닌, 연맹 본부도 이미 알고 있지요. 각성을 겪은 《마인》에게 이 영역에 대해 말해주는 건, 국제 마도기사 연맹 가맹국의 수장의 임무이기도 하니까요."

"윽───"

이 한마디에, 스텔라의 초조함은 분노로 바뀌었다.

"버밀리온 황국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어. 아바마마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구! .....애초에 왜 묵비하고 있었던 거야? 이런 건.. '태어날 때부터 마력 상한은 변화하지 않는다' 라는 세상의 상식을 통째로 뒤집어 엎어버리는 중대한 이야기잖아! 모든 연맹 가맹국에게 자세하게 말을 해 줘야 할 일 아니냐구!"

평소와는 다른 엄청나게 험악한 분위기로, 스텔라는 츠키카게에게 따졌다.

당연하다. 그녀는 일단 학생기사이기도 했지만, 버밀리온 황국의 제 2황녀이기도 한 몸이다. 한 나라의 행정 기관의 중추에 속해 있는 정계인인 것이다.

연맹이 자국에 대해 숨기는 것이 있었다는 사실에, '아, 그랬군요' 라는 말로 흘려버릴 내용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력 상한을 뛰어넘을 수 있다.

그 노하우를 일부 국가끼리 공유하고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동맹국에 대한 배임 행위가 된다.

그렇다면, 연맹 이탈도 고려할 수 있을 정도의 사건인 것이다.

하지만, 이 버밀리온 황국 제 2황녀의 분노에, 츠키카게는 연맹을 대표하여 해명했다.

"스텔라 공주님께서 화를 내시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허나..... 연맹이 버밀리온 황국을 속이고, 일부 국가끼리 《마인》의 영역에 달할 수 있는 노하우를 독점하고 있다라는 건, 오해입니다. 연맹이 《마인》의 존재를 숨기고 있던 건, ......그저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위험하다고?"

"네. 《마인》의 영역에 달하기 위해선 먼저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극한까지 갈고닦은 뒤, 그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 하는 강한 본인의 의지가 필요하지요. 그것이 각성의 절대 조건. ......그러나 이 세상에, 자신을 그 정도로 엄하게 다루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그건....."

"스텔라 고주님. 당신 정도의 기사라면 아실 겁니다. 그것이 흉내를 내려 해도 흉내 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란 것을. 하지만, 동시에 한 나라의 행정에 관련되어 있는, 황족인 당신이라면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탐욕스러운 '지도자'가 이런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떠한 비극이 벌어질 것인지를."

".......읏.."

그 순간, 스텔라는 눈을 부릅뜨며, 숨을 삼켰다.

국민에 대한 강한 권력을 지니고, 국가의 메커니즘을 잘 알고 있는 황족인 스텔라에게는, 그 경우의 끝에 기다리는 비극이 손쉽게 상상되었기 때문이었다.

"강력한 블레이저는 국가에게 있어 실로 중요한 존재이지요. 그 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입니다. 따라서 마력의 상한이 상승하는 방법이 존재한다고 세상에 퍼지게 되면, 그걸 자국의 블레이저들에게 강제로 실행시키는 자가 반드시 나타날 겁니다. 그 사람의 가능성을 억지로 극한까지 이끌어내게 만드는, 그런 살인적인 훈련을 말이죠. ......하지만 각성이란 제 3자의 손에 의해 강제로 행하여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운명을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건, 자기 자신의 의지력이니까요. 죽음에 내몰리는 듯한 가열찬 훈련을 강요받고, 억지로 그걸 해낸다 하더라도, 비극밖에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비극을 낳지 않게 하기 위해, 연맹은 《마인》의 존재를 숨겨 왔고, 연맹 산하 중에서도 《마인》을 배출시킨 국가의 일부 관계자 외에는, 그 존재를 알리지 않았던 겁니다. 딱히 버밀리온 황국에 악의를 품고 숨겨왔던 게 아니었으니, 거기에 대해선 이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츠키카게의 해명에

".....응. 그런 거라면, 뭐... 알겠어요."

스텔라는 알겠다는 뜻을 밝힌 뒤, 험악한 분위기를 거둬들였다.

그녀는 상상을 한 뒤, 그 비극을 피할 순 없었을 것이라 납득했기 때문이었다.

독재국은 물론, 민주 국가라 해도 위험하다. 목숨이 좌지우지될 무리를 강요시키기만 하면, 블레이저는 마력 상한을 넘어서 강해질 수 있다. 그런 소문이 온 세상에 퍼진다면, 절대수가 적은 편인 블레이저의 인권은 위기적인 상황으로 내몰려버릴 것이다.

블레이저를 총괄하는 연맹이 숨겨온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진정된 스텔라를 보고, 잇키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하지만, 《마인》을 배출한 국가에게만, 이라고 하셨다는 건.. 이미 일본엔 저 이외에도 그런 존재가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대화 도중에 생겨난 질문을 했다.

"일본 국적을 지닌 《마도기사》 중에선 둘 뿐이라네. 한 명은 《대영웅》 쿠로가네 료마와 같은 시대를 살아 왔던 전설의 기사 《투신》 난고 토라지로 씨.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투신》의 애제자,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 양. 일본인은 아니지만, 아스카리드 씨도 또한 연맹에 속한 《마인》 중 한 사람이지."

"네네 선생님이.."

"내가 괜히 세계 랭킹 3위라는 게 아니란 증거지~ ......각성에 겁을 먹고 당장에 은퇴해 버린 녀석과는 다르게 말이지."

"......."

째릿, 하고 비난이 담긴 시선을 향한 네네를 보고, 쿠로노는 겸연쩍다는 듯 눈을 돌렸다. 거기엔 평소 악태를 지적하며 농을 건네던 둘의 모습과는 다른, 진지한 험악함이 담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걸 눈치챈 건지, 츠키카게는 짝, 하고 손뼉을 친 뒤, 이야기를 돌렸다.

"약간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네만, 기사 연맹 가맹국의 수장이 새로운 《마인》에게 할 이야기란 즉, 지금 스텔라 공주님에게 설명했던 것과 같이, 《마인》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블레이저들의 인권을 위험하게 만드는 존재인지를 자각하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어. 이 점, 잘 이해하겠나?"

"네. 두 번째 《일도나찰》에 관해선, 어떠한 질문을 받아도 마력이 증대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니고, 그저 제 모든 걸 쏟아 부었기에 가능했다는 쪽으로 표현을 해 달라, 그런 말씀이시지요?"

"이해가 빠르니 다행이구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각성을 겪었을 때, 연맹이 추천하는 정형문을 말하지 않고서도 그 내용과 같은 이해를 하고 있는 잇키의 이해력에, 츠키카게는 만족한 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블레이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반드시 숨겨야 할 존재라고는 해도, 각성을 해 내어 운명의 너머에 서게 된 《마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운명에 얽매이지 않은 존재이지. 훈련에 따라서 마력량을 늘리는 것까지 가능한, 우수한 전력이야. 자네가 더욱 강해지는 것에는, 나도 일본국 총리대신으로서 협력을 아끼지 않겠네. 필요만 하다면, 내 인맥을 총동원해 좋은 스승을 찾아줄 수도 있네."

새로운 영역에 올라선 잇키에게, 국가가 발 벗고 나서 도우겠다는 확약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 잇키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만.."

온화한 눈동자 속에, 칼날과도 같은 방심 없는 빛을 담은 채, 츠키카게에게 말했다.

"전 아직 당신이라는 사람을 신용할 수 없어요. 우리들의 학원을 습격한 것. 그리고 《해방군》의 도움을 받아가면서까지 《국립 아카츠키 학원》을 설립하려 한 점. 그 이유에 납득이 갈 설명을 해 주시지 않는 한, 당신의 도움을 받고 싶다는 마음은 도저히 들지 않는군요."

"말 잘 했어, 쿠로 꼬마! 바로 그거야!"

"버밀리온 황국도, 테러리스트와 결탁한 사람을 신용할 수는 없지."

"선생님. 슬슬 이야기해 주시면 안 될까요? 당신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행동을 벌였는지를."

잇키의 불신에, 다른 셋도 따랐다.

모두의 시선이 츠키카게에게 모였다.

그 때를, 츠키카게는 기다렸다는 듯

"물론이지. .....그것이, 오늘 이곳에 모두를 불러 낸 두 번째 용건이니까."

양팔을 앞으로 뻗으며

"만상을 비추어라. ──《월천보주》"

달빛과도 같은 농염한 빛과 함께, 자신의 디바이스를 현현시켰다.

◆◇◆◇◆

츠키카게가 펼쳐 놓은 양손 앞에 나타난 건, 금색의 금속으로 장식된 주먹 정도 크기의 수정구.

그건, 짙은 금색의 빛을 내뿜으며 체공해 있었다.

"이것이...... 선생님의 디바이스...."

"무기라는 느낌은 안 드네. 쿠우도 처음 본 거야?"

"아아... 학원에 계셨을 때 비 전투계 블레이저라는 것은 들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야."

"내 디바이스 《월천보주》는 그 능력 때문에, 처음 발현을 시켰을 때부터 쭉 일본의 국가기밀이 되어 있었다네. 당연히 연맹에게도 상세한 정보는 숨겨놓은 상태야. 나도 이걸 남들 앞에서 피로하는 건 참 오랜만이군."

"츠키카게 총리님이 이번 행동을 벌이신 이유에, 이 디바이스가 관련되어 있는 겁니까?"

그리 묻는 잇키에게, 츠키카게는 살짝 피로감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미소지으며

"뭐,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먼저 이걸 봤으면 하네."

그리 말한 뒤, 체공해 있는 《월천보주》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러자 《월천보주》의 겉면에 파문이 생겨났고, 구체 하부에서부터 한 방울의 물방울이 강화 석재로 만들어진 링 바닥에 떨어졌다.

그 순간,

떨어진 물방울은 잇키 일행의 발치에 빛나는 파문을 만들어냈고, 암흑이 드리워진 공간의 바닥에 한 영상을 만들어냈다.

"이, 이건...!"

그 영상에, 모두가 표정을 경직시키고, 숨을 삼켰다.

츠키카게의 디바이스가 만들어낸 영상은...

───지옥이었다

일면 모두가 화염으로 뒤덮인 마을과, 산 채로 불타는 사람들.

그야말로 지옥이라고밖에 형용할 수 없는, 피와 고통에 찬 비명과 화염만이 가득한 광경이었다.

"....뭐, 뭐야... 이거...! 애, 애들이... 우욱..!"

"스텔라.....!"

건물 잔해더미에 하반신이 깔려 으스러진 것일까. 밖으로 흘러나온 장기를 바닥에 질질 끌며, 양손으로 땅을 기어가며 필사적으로 화염을 피하려 한 소년이, 그 바램과는 달리 허무하게 불꽃에 삼켜져버리는 그 광경에, 스텔라는 참지 못하고 입을 누르며 헛구역질을 했다.

잇키는 바로 스텔라에게 달려가, 굽혀진 그녀의 등을 문질러주었다. 하지만, 그의 안색도 새파래진 상태였다.

그것도 그럴 것이다.

이건 그저 만들어진 영상 같은 게 아니었다.

만들어진 영상이라면, 스텔라도 그냥 눈썹을 찡그린 정도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확실히 느꼈던 것이다.

주변을 뒤덮은 화염의 열기를.

귀를 찌르는 듯한 절규를.

사람의 살이 타들어가는 악취를.

그 모든 것을 생생하게.

그리고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느낀 감각이, 이해를 넘어서 확신을 가져다준 것이다.

이 광경은 만들어진 것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의심할 여지도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선생님.....! 이게 대체 뭡니까!?"

이해할 수 없는 츠키카게의 행동에, 쿠로노가 항의를 표했다.

하지만, 그 때였다.

"에? ......읏!? 쿠우, 저거! 저걸 봐!"

미간을 찡그리면서도 영상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던 네네가, 무언가를 알아챈 듯, 영상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가리킨 곳을 쿠로노가 쫓은 뒤...

───전율했다.

네네가 가리킨 곳에 있던 건, 비스듬히 사선으로 무너져버린 '도쿄 스카이트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렇다는 건, 이 곳은... 도쿄!?"

그 말에, 츠키카게는 "그래" 하고 고했다.

"《월천보주》는 일정 범위 내의 사람이나 장소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힘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인과를 읽어내는 힘은 때때로, 지금 현재의 인과선상에 존재하는 '미래'를, 내게 '예지몽'이라는 형태로 보여주곤 하지. ......이건 그런 힘이 내게 보여 준 미래의 기억. 별의 운명이 지금 이대로 나아가게 된다면, 언젠가 도쿄가 맞게 될 운명을 보여 주고 있는 거야. 그걸 나라는 사람의 과거에서 보여주고 있는 거지."

" " "뭣......!?" " "

이 츠키카게의 말에, 일동은 동시에 눈을 부릅떴다.

"이게.. 도쿄의 미래라는 말이야!?"

"그런....! 어, 어째서 이런 일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어나가는 스텔라의 질문.

이 질문에, 츠키카게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제 힘은 그저 '보는' 것뿐. 하지만, 지금 세계 정세를 두고 생각해 보면 경위를 알아내는 것도 가능하죠."

그리 말한 뒤, 츠키카게는 손가락을 튕겨 《월천보주》를 없애, 바닥의 영상을 꺼뜨렸다. 그 뒤, 그는 무릎을 꿇고 있던 스텔라에게 다가가, "불쾌한 것을 보여드려 죄송했습니다" 하고 사죄하며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스텔라는 여기에 험악한 표정을 지어 답한 뒤, 그의 손을 거부하고 잇키에게 기댄 채 일어서고

"사죄 따윈 필요 없으니까, 얼른 계속해..!"

그리 요구했다.

다른 셋도, 같은 의견을 시선에 담아 츠키카게에게 나타냈다.

그 네 시선이 자신에게 모인 것을 확인한 뒤, 츠키카게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스텔라 공주님은 알고 계시겠지만, 지금 이 세상엔 세 개의 세력이 맞부딪혀 평화가 유지되고 있지요. 하나는 일본도 소속되어 있는 《국제 기사연맹》. 또 하나는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대국들이 맺은 《대국동맹》.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이 세상의 어둠 속에 둥지를 틀고 있는 초거대 범죄 결사 《해방군》입니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해방군》이라는 제 3세력의 존재가, 나름 《연맹》과 《동맹》, 이 둘의 과격한 움직임을 제어하여 삼권 분립 형태를 만들어내어, 커다란 충돌을 피하고 있는 게 현재 국제 정세이지요. 하지만..... 이 길항도 그리 길게 유지되지 못할 겁니다."

"그건 어째서지요?"

"수명이야."

잇키의 질문에, 츠키카게는 간소히 답했다.

"이 세 개의 세력은 제각각, 한 명씩 아주 강력한 《마인》이 존재하고 있지. 《연맹》에는 KOK 세계 랭킹 1위이며, 연맹 본부장을 맡고 있는 기사, ───《흰수염 공》 아서 브라이드. 《동맹》에는 20대라는 젊은 나이에 미국이 내로라하는 실력을 가진 《초능력부대》의 대장을 맡고 있는 남자, ───《초인》 에이브러햄 카터. 그리고 《해방군》에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부터 어둠의 세계에 군림해 온 자들의 왕, ───맹주 《폭군》. 이 차원이 다른 힘을 지닌 《마인》들 셋이 있었기에, 이 세 세력은 서로 맞부딪히고 있었지. 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부터 역사에 이름을 남겨 온 《폭군》은, 상당히 나이가 많아. 언제 숨을 거두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나이이지. 그 때, 세계정세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말해보자면, 먼저 《해방군》의 잔당들을 데려가기 위한 경쟁이 벌어질 테지."

"어째서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거야..?"

"이미 그런 경쟁이 벌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스텔라 공주님."

"으읏...!"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같은 《동맹》에 속한 나라들은 물론, 연맹 가맹국 일부도, 독자의 루트로 《해방군》과의 접촉을 행하고 있죠. .....카자마츠리 씨도 그렇습니다만, 《해방군》에 소속된 멤버 중에는, 이 사회에서 나름 높은 위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적잖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경쟁에서 《연맹》은 《동맹》에게 크게 뒤쳐져 있는 상태이지요."

"《연맹》의 모체인 기사 연맹 본부가, 명확하게 《해방군》에 대한 적대 자세를 취하고 있었기에.. 라는 게 이유인가요?"

츠키카게는 여기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나 같은 개인 단위로는 작게나마 접점이 있긴 하지만, 조직으로서의 접점은 《동맹》 측이 더욱 깊고 강하지. 《폭군》이 죽는다면, 대다수의 전력은 《동맹》에게 흘러가 버릴 거야. 그리고, 이 잔당 흡수 경쟁 뒤엔 필연적으로, 제 3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거야."

츠키카게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을 대국이 총괄하는 분할 관리 하에 놓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동맹》과, 소국끼리 협력하여 지금의 세상을 유지하려 하는 《연맹》.

이 둘은, 같은 별 속에 살고 있음에도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조직들이라고.

《해방군》이라는 제 3세력이 사라진다면, 반드시 큰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꿈에서 본 광경이라고 난 생각하고 있다네."

"즉 선생님은, 《연맹》에게 맡겨둔 채로는 이 미래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시고, 《동맹》으로 자리를 옮기기 위해 이 일련의 행동을 취했다는 겁니까?"

"....통틀어서 그렇게 되겠군. 세계 최대의 대국인 미합중국이 만들어낸 《동맹》 중에서도 최강의 남자, 《초인》 에이브러햄 카터는 아직 젊어. 연령으로 인해 생겨날 위험성도 적고, 《동맹》이 《해방군》과 더욱 강한 접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다소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고서라도 《동맹》에 들어가는 편이, 일본을 이 멸망으로부터 구원해낼 수 있을 한 방법이라고 난 생각하고, 실행했던 거라네. 《아카츠키 학원》을 설립하여, 그 힘으로 탈 연맹 분위기를 고조시켜, 《연맹》 탈퇴를 할 때 클리어해내야 할 과제인 국민 투표에서 과반수의 찬성표를 얻기 위한 작전을 말이지."

벌써 10년보다 더 지난 날의 일.

그 악몽을 본 뒤로부터 쭉.. 츠키카게는 한결같이, 그 작전을 성공시키는 것만을 위해 살아왔다. 그것만을 위해, 단순한 교사라는, 아무런 표를 이끌어내지 못할 몸으로, 《반 연맹》이라는 슬로건만을 내걸고 유력자 사이에서 여론을 움직이고, 보수파인 구 여당을 물리치고 정권을 쥔 것이다.

전투력이 없는 츠키카게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이제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되어버렸지. 《아카츠키 학원》은 패배했고, 여론은 《연맹》의 방침을 재평가하는 쪽으로 들끓고 있어. 이 정세로는, 《연맹》을 탈퇴한다는 과감한 개혁에서, 과반수 이상의 민의를 거머쥐는 건 불가능하지. .....즉, 난 자네들에게 패배했다는 말일세."

츠키카게는 그리 말하며 어깨를 떨구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곤, 상당히 기쁜 것처럼 보이시는데요."

그의 말과, 잇키가 자신의 통찰력으로 바라본 그의 표정은, 크게 격리되어 있었다.

이 말에, 츠키카게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이 10년간 깊이 새겨진 얼굴의 주름을 한 층 더 깊이 구기며 미소짓고

".....후후. 그렇다네. 10년간, 그저 그 구원만을 믿으며 싸워 왔지. 하지만 지금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감정은, 기쁨 뿐이야."

분함 따위는 조금도 없다는 답이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자기 멋대로 낭패하고, 헛된 길을 걷고, 미래를 탄식하고 있을 때에도

"젊은이들의 힘은, 운명을 타파할 정도로 강하고 듬직하게 자라 주었으니까..."

이 칠성검무제에서, 츠키카게는 보았다.

젊은 힘이 뒤엉키고, 서로를 고양시키고, 끝내는 운명조차 깨부숴버린, 그 순간을.

자신처럼, 운명의 뒤를 밟는다는 임시방편적 발버둥과는 다르게, 정면에서, 당당히.

그 모습을 보고, 그는 알게 된 것이다.

이제, 자신이 나설 무대 따윈 없다는 것을.

"내 능력은 어디까지나 이 별에 내려진 운명을 보는 힘 뿐. 그 운명의 너머, 《마인의 영역》에 달한 자들의 과거나, 그들이 만들어낸 미래를 보는 건 불가능해. 그렇기에... 자네라면, 자네들이라면, 내가 본 절망스러운 미래와는 전혀 다른 미래로, 이 나라를 이끌어줄 수 있을 것이라 난 믿고 있다네."

그렇다면, 이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 뿐.

그걸 알고, 츠키카게는 일동을 둘러본 뒤

".......이 나라를, 이 세계를, 부탁하겠네......."

자신의 바램을, 사랑스러운 이 나라의 미래를, 젊은이들의 힘에 맡기는 것뿐.

◆◇◆◇◆

".....그 때, 츠키카게 총리.. 울고 있었지?"

"응."

어젯밤에 벌어진 일을, 그리고 츠키카게가 마지막에 보여준 표정을 떠올리고, 잇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가엔 그 때, 확실히 작은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안쓰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피로에 찌든 표정을 짓고.

하지만, 마치 구원을 받은 듯.

그건, 스텔라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 그 사람 진짜 싫었어. 어떤 이유가 있었건, 학원 애들을 다치게 만든 녀석이니, 한 방 정도 온 힘을 다해 때려주고 싶다고 생각했었어. ......그치만.."

스텔라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신은 이제, 그를 미워하지 않겠다고.

스텔라는 황족 출신이다.

정계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고 있는 스텔라에게는,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고작 10년 만에 한 나라의 행정 기관의 우두머리 자리까지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츠키카게의 얼굴엔, 그 피로의 흔적이 생생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츠키카게는 해낸 것이다.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나라를 구원해내기 위해서.

그 행동력, 의지력에, 스텔라는 같은 정계인으로서 존경심조차 들 정도였다.

증오 따위를 느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과 잇키는 의도치 않았다 하더라도, 그 바램을 짓밟아버린 것이다.

"이긴다는 건, 짊어진다는 것... 대표 멤버 발표 때 토카 선배가 했던 말인데... 우리들은 츠키카게 총리의 소원을 짊어진 것이라 생각해. 짐작도 못 할 크고 강한 소원을 말이지."

아니, 그런 게 없었다고 해도, 그런 광경을 현실로 만들어지게 내버려둘 수만은 없었다. 츠키카게의 추측. 제 3차 세계대전에서의 연맹의 패배. 그 광경이, 정말로 그 미래를 나타낸 것이라면, 같은 연맹 가맹국인 버밀리온 황국도 남의 일만은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스텔라에게 있어 일본이란 나라는 이미, 제 2의 고향 같은 나라가 되어 있었다.

이 나라엔 수많은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

지키고 싶었다.

───지켜낼 것이다.

그러니 스텔라는, 무릎 위에서 주먹을 꼭 쥐고, 고개를 숙인 자신을 향해 말하듯 강한 어투로 말했다.

"더욱, 더더욱, 강해져야 해.... 잇키처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그런 그녀를

".....스텔라."

잇키가 옆에서 어깨를 톡톡 치며 불렀고

"응? ──뮤웃!?"

스텔라가 돌아보는 위치에 손가락을 세워두고, 고개를 돌린 스텔라의 뺨을 찔렀다. 갑작스런 애들 장난 같은 그 행동에, 스텔라는 잇키의 손을 치우고 깜짝 놀라며 말했다.

"뭐, 뭐 하는 거야, 갑자기!?"

"너무 안절부절하지 마."

그 말에 잇키는, 진지한 목소리로 충고했다.

"의욕을 가진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자신을 몰아세우는 건 자신을 망치는 지름길이야. 확실히 츠키카게 총리님의 이야기는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고, 그런 광경이 현실로 나타난다는 건 절대로 용납하지 못할 사태이기도 해. .....하지만, 애초에 그런 위기에서 벗어날 힘을 가지지 못한 자들을 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우리들 《마도기사》잖아. 우리 기사들은 스포츠맨 따위가 아냐. 스텔라도 애초에, 고향 국민들을 지킨다는 기개로 네 기사도를 걸어왔을 거잖아, 아니야?"

"아..."

"그렇다면 지금와서 초조함에 자신을 내몰아버릴 필요 따윈 없잖아? 어차피 스텔라는 자신을 향한 채찍질을 무르게 할 애가 아니기도 하고.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전력으로 자신의 기사도를 걸어나가기만 하면, 언젠가.. 자신의 한계를 답파할 날이 올 거야. 그 답파가 필요하게 될 때에, 반드시 말이지."

───거기에

"츠키카게 총리님은 《마인》을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말씀하셨지만, 난 그리 생각하지 않아."

그리 말하고, 잇키는 시선을 스텔라에게서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돌린 뒤

"이 자리에 있는 모두와 싸워 온 나는 알 수 있어. 스텔라도 물론이고,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자신에게 패배할 기사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자긍심을 위해, 꿈을 위해, 누군가를 위해─── 한계 따위는 손쉽게 넘을 수 있을 거야."

강한 어조로 단언했다.

그는 마음 속 깊이 확신하고 있던 것이다.

그들의 혼과 겨뤄 왔던 잇키였기에, 느낄 수 있었던 것.

츠키카가 보여준 악몽. 그런 것이 현실로 되는 것을,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이 용납치 않을 것이란 걸.

그걸 위해서라면, 그들은 모두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한계를.

칠성검무제 결승전 때의 자신처럼.

여기 있는 모두들은, 그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니까.

"그런 모두와 힘을 합친다면, 뭐든지 해낼수 있을 거야. 반드시 말이지."

그리 말한 뒤, 잇키는 스텔라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어놓고,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강하게 쥐었다.

───네 곁엔 내가 있어.

홀로, 미래에 책임감을 가질 필요 따위는 없다고, 그렇게 말하듯이.

그 잇키의 말에

"그렇네. ....네 말이 맞아."

스텔라도, 잇키의 손을 쥐며

"여차할 때엔 의지하도록 할게, 잇키."

평소의 밝은 미소를 보이며, 포옥, 하고 잇키의 어깨에 기댔다.

거기에 위험해 보이던 초조함 같은 건 이제 없었다. 어젯밤 미래를 보고 난 뒤, 스텔라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강한 초조함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황족이라는 입장. 태어날 때부터 가진 강한 책임감.

그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서 여유를 빼앗고, 그녀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텔라는 그 미래가 그녀 혼자서나,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만의 손으로 대처해야 할 사태는 아니라는 지적을 잇키에게 받고 나서, 알게 된 것이다.

이 모습을 보니, 책임감이 앞서 무리를 하게 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잇키는 그 사실에 일단 안도한 뒤

'나로서는, 언제 닥쳐올지 모를 미래같은 것보다, 눈앞의 벽 쪽이 더 머리를 아프게 만든다구..'

서서히 다가오는 버밀리온 황국 방문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게, 이 문제는 자기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할 벽이었으니까다.

버밀리온 국왕에게서 스텔라를 빼앗는 자신.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를 말뼈다귀 같은 남자에게 딸을 빼앗기는 아버지는, 대체 어떠한 기분이 들까?

아이가 없는 잇키로선 짐작조차 되질 않았다.

모르고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우호적인 만남은 되지 않으리란 것만은 짐작이 갔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려나......'

그렇게, 잇키가 자신에게 임박해 오는 인사의 내용에 고민하고 있었을 때

"오! 진짜가? 그럼 땡큐제!"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던 모로보시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일동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야들아! 요기 근처에서 대중 목욕탕 운영하는 분이 말이제, 휴업 날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서 통 크게 전세로 열어준다 안카나! 배도 마침 딱 불렀으니깐, 다 같이 목욕탕이나 가자!"

이 제안에, 승리 축하 파티에 모인 일동들은 환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에!? 홋시, 그게 진짜가!? 이쿠라 씨네 목욕탕 맞제?"

"어머나. 그거 좋네요. 모두 함께 목욕탕에 들어가다니, '와카바의 집'에 놀러갔을 때가 떠오르네요."

"짐의 총혜스러운 오른팔이여, 대중 목욕탕이란 무엇이지?"

"서민들이 이용하는 공중 욕탕을 말하는 거랍니다. 거기선 모두가 옷을 벗고, 즉.. 저도 옷을 벗고 아가씨도 옷을 벗고 둘이서 같이 갓 태어난 것처럼 알모, 알모... 알모모모모모모모몸.."

주르르르륵(코피)

"샤를!?!?"

그리고 일본에 온 뒤 아직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스텔라도 또한, 이 제안에 강한 흥미를 보였다.

"잇키! 잇키! 일본의 대중 목욕탕이란 건, 그거 맞지! 목욕탕에 커다란 후지산 그림이 그려진 거!"

"확실히 도쿄에선 그렇긴 했지만... 여기선 어떠려나.."

"뭐, 없으면 사라한테 그려달라고 하지 뭐!"

"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가 보고 싶었어! 빨리~ 빨리 가자~"

갑자기 내던져지듯 날아온 의뢰에 당황해하는 사라를 내버려두고, 스텔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잇키의 손을 잡고, 빨리 가자고 재촉하는 아이처럼 잇키를 재촉했다.

그런 스텔라를, 시즈쿠가 곁눈질로 흘겨보며

"성대하게 음란하고 계신 중에 유감스러운 사실을 알려드리자면, 대중 목욕탕은 혼욕탕이 아니라구요."

"으, 음란을 하고 있다니, 대체 동사가 어떻게 돼 먹은 거야, 그거! 그 정도는 나도 당연히 알고 있다구!"

........이렇게, 칠성검무제는 막을 내리고, 오사카에서의 마지막 밤은 시끌벅적하게 깊어가고 있었다.

단 한 곳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서, 사력을 다해 싸워 왔던 수개월.

많은 에피소드가 생겨났고, 그 수와 같은 인연이 생겼다. 그 인연을 제각각 가슴 속에 묻어두고, 학생들은 한 때의 휴식을 즐겼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각자가 향하고 있는 미래, ───새로운 목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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