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심해의 마녀》와 《백의의 기사》
칠성검무제가 끝나고, 출장 선수들에게도 뒤늦게 여름방학이 찾아왔다.
그 날, 시즈쿠는 고향에 돌아갈 예정이었던 아리스인과 역에서 헤어진 뒤, 자가부상 열차를 타고 히로시마로 찾아갔다.
렌테이 학원 3학년, 야쿠시 키리코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물론, 상대는 언제나 일이 많은 의사였기에, 사전에 약속은 확실하게 잡아두었다.
시즈쿠의 방문은 놀랄 정도로 흔쾌히 수락되었다.
시즈쿠는 얼마간 이쪽에서 지내기 위해 짐을 담아 둔 캐리어 가방을 끌며, 야쿠시 종합병원 정면 현관을 지났다.
그리고 종합 접수라고 쓰여진 카운터에 앉아 있는 사무원에게 말했다.
"실례합니다. 도쿄에서 온 쿠로가네 시즈쿠입니다. 키리코 선생님에게서 도착하면 여기에 이름을 대라는 말을 들었는데요."
그 이름을 듣고 사무원은 "아아, 쿠로가네 시즈쿠 씨군요. 원장님에게서 이야기는 이미 들었어요." 라고 답한 뒤, 팜플렛을 한 권 꺼냈다.
"지금 선생님은 특별 병동 3층에 회진을 나가 계신데, 직접 찾아가 보시겠어요? 여기 병원 지도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즈쿠는 답례 인사를 한 뒤 그 팜플렛으 받아들고, 지도를 보며 넓은 병원을 이동했다. 그리고 두 커다란 병동의 안뜰 위치에 있는 특별 병동에 들어선 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3층까지 올라갔다.
거기서───
"에....?"
시즈쿠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당혹함을 내비쳤다.
특별 병동 3층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병원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여기가 VIP들이나 이용하는 곳처럼 인테리어가 호화스럽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
인테리어 자체는 다른 병동과는 별 다를 바가 없었지만, 거기에 있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입원한 환자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병원복을 입고 있지 않았고, 여성은 화장까지 한 채였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소파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카드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주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여기서 정말 회진을 하고 있는 게 맞나? 며, 시즈쿠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지만, 지도에는 잘못된 점이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병실을 일단 쭉 둘러보기로 했다.
───그 결과, 목적인 인물과는 3번째로 들어선 병실에서 마주쳤다.
《백의의 기사》 야쿠시 키리코는, 침대에 누워 있던 노인의 손목을 쥐고 있었다. 처음엔 맥을 짚고 있는 건가, 하고 생각했지만, 키리코의 표정에 엄청나게 집중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점과, 노인의 손목에서 희미한 하늘색 마력광이 넘쳐흐르고 있는 점을 미루어보건대, 어떠한 마술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치료술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방해를 하는 건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시즈쿠는 그녀를 부르려던 말을 삼키고, 멀리서 키리코가 일을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자. 오늘 처치는 이걸로 끝이에요. 요시오카 씨, 기분은 좀 어떠세요?"
"아아. 아프기는 커녕 날아갈 것 같아. 이걸로 할멈이랑 밥 먹으러 나갈 수도 있겠어. 고마워요. 선생"
"후후. 술은 적당히 드셔야 한다구요?"
"헤헷. 꽐라가 될 때에도 그 말을 기억할 수 있다면 말이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 노인을 보고, 키리코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것 참, 못 말릴 환자라니까."
하지만 그 표정은 화를 내고 있는 것도, 어이없어 하는 것도 아닌, 미소를 짓는 표정이었다.
'의사로서 저래도 되는 걸까..?'
그렇게, 시즈쿠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얘, 키리코! 어때? 일 다 끝났으면 같이 차라도 마시지 않을래? 요즘 맛있다고 소문난 케이크를 가족들이 사 왔거든!"
"미안해요. 사실 이 뒤에 약속이 좀 있어서... ───어머나?"
다른 침대에 누워 있던 환자의 권유를 듣고 돌아본 키리코와 시즈쿠의 눈이 마주쳤다.
"시즈쿠 양. 벌써 와 있었나 보네."
"네. 방금 도착했어요. ......어쩐지 꽤나 밝은 분위기의 병실이네요. 한 순간 직원 기숙사에 잘못 왔나, 하고 당황했어요."
"후훗. 미안해, 소란스러운 곳이라서."
키리코는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기품 있게 웃었다.
그 뒤, 약간 미안하다는 듯 눈꼬리를 내리는 표정을 지으며 시즈쿠에게 말했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겠어? 회진 시간이 좀 밀려서 아직 다 못 돌아봤거든. 이 병실 환자만 돌아보면 다 끝나."
이 말에 시즈쿠는
"부디 신경쓰지 마시길. 바쁘신 와중에 찾아온 건 제 쪽이니까요."
그리 답하고, 병실에 한 발짝 병실로 들어온 뒤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키리코의 처치를 견학했다.
회진을 할 때, 키리코는 끊임없이 환자들의 말을 받았다.
"선생님! 있지있지, 내일 엄마랑 아빠랑 불꽃놀이 할 거다~!"
"헤에. 재밌겠네. 혹시 거기에 있는 유카타는 그 때 입을 옷이니?"
"응! 그래서 있지! 선생님도 같이 불꽃놀이 하자!"
"음... 그래, 알았어. 내일 밤은 아무 예정도 없으니."
"야호~!"
"내가 아는 꼬마 애들도 불러서 같이 가도 될까?"
"응!"
연배자에서부터 작은 아이들까지.
모두가 그녀에게 향하는 미소에는, 아주 큰 감사와 신뢰가 담겨 있었다.
척 보기에도 아주 흐뭇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선생님.... 정말로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손자 얼굴까지 볼 수 있게 됐으니.. 이제 아무런 여한이 없구려.."
"에?"
키리코를 둘러앉은 환자 중 한명. 초로의 여성의 말에, 시즈쿠는 의아함을 느꼈다.
"여한이 없다니....."
딱히 그런 말을 할 정도로 연배가 있어 보이진 않은데, 대체 무슨 말씀이실까, 하고.
그 시즈쿠의 의아함에
"어이쿠, 꼬마 공주님은 모르는 겐가?"
시즈쿠에게서 가장 가까운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던 할머니 한 분이 답했다.
"이 층에 있는 환자들은 모두, 남은 여명도 얼마 없는, 그러면서도 나을 기미가 없는 환자들이 모인 곳이란다."
"에...!?"
이 사실에, 시즈쿠는 경악을 내비쳤다.
"그, 그렇다는 건, 저 조그만 아이도... 그렇다는 말씀이신가요!?"
그 질문에 할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긍정으로 답했다.
"모두가 너 나 할 것 없이, 현재 의학으로는 손 쓸 도리가 없을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지. 원래라면 짧은 여생을 침대 위에서만 보냈어야 할 인생이었어. 하지만 키리코 선생님의 능력 덕분에, 우리는 수명의 아슬아슬한 때까지 우리의 몸 상태를 속여 살아갈 수 있게 됐지. 그 덕에.. 가족과 가족과 식사를 하러 나갈 수도 있고, 멋있는 옷도 입어볼 수 있고, 놀러 나갈 수도 있는 게야. 마지막 수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인생을 즐길 수 있게 된 게지. .....그러니,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키리코 선생님에게 감사하고 있는 거란다."
'아아, 그렇구나.....'
시즈쿠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때, 키리코는 환자가 과음을 하는 것을 진지하게 경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차피 절제를 한다고 한들, 더욱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싸움을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만이 블레이저의 능력 차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만이 기사를 구분짓는 기준은 아니지. 실제로 《백의의 기사》는 다른 어떠한 위대한 기사들보다도, 우리에게 있어선 영웅인 분이야. 그러니, 잘 보고 배우도록 하렴. 《심해의 마녀》 공주님."
"절 알고 계신가요?"
"이래봬도 옜날엔 내셔널 리그 상위까지 올라갔던 블레이저니까. 칠성검무제 중계도 봤었지. 요즘 젊은 애들은 참 막나간단 말이지."
그렇게, 시즈쿠가 할머니와 대화를 하고 있는 사이, 키리코는 모든 회진을 마치고 시즈쿠가 있는 곳을 향해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기다렸지? 미안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수다 떨길 좋아해서 참.."
".....아니요.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시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에, 키리코는 신경쓰지 말라는 듯 손을 흔들며
"에이, 됐어. 나도 시즈쿠 양에겐 볼일이 있었으니까."
그런 말을 했다.
"에? 제게.. 말씀이신가요?"
"그래. .....뭐, 일단.. 장소를 좀 바꾸도록 할까? 여기선 천천히 얘기할 수도 없을 것 같으니까."
◆◇◆◇◆
시즈쿠는 키리코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특별 병동 지하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 거기엔 조명이 최소화된, 6평 정도의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콘크리트만으로 만들어진 벽에는, 척 봐도 일본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배표지의 책들이 꽉 차 있는 책장이 나열되어 있었고, 방 중심엔 철판과 쇠파이프를 이어 붙여 만들어진, 간소한 침대가 있었다.
척 보기엔 수술실 같아 보이는 공간이었지만...
"여기는?"
"내 사적인 실험실이지. 내 방 같은 곳이야."
그리 답한 키리코는, 방 구석에 놔둔 커피 메이커로 향했다.
"거기 적당히 앉아. 차는 커피면 되겠어?"
"아뇨. 신경쓰지 마세요. 담소를 나누러 온 건 아니니까요."
"음, 확실히.. 나한테 부탁이 있다고 했었지?"
시즈쿠는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 키리코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선 뒤 용건을 말했다.
"제게... 키리코 선생님의 물의 마술을.. 치유술을 가르쳐 주셨으면 해요!"
이 말에 키리코는, ".....뭐, 대충 그런 부탁일 거라 생각은 했어." 라고 말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우리의 접점 같은 건, 《물 능력》 정도밖에 없으니까."
"물론 아무 대가 없이 가르쳐 달라고는 안 하겠어요. 제가 가능한 거라면 뭐든지 하겠어요. 이상한 인체실험의 피험자 같은 것도, 말씀만 하신다면.....!"
"헤에. .....상당한 각오네. 그럼 새 술식의 실험체라도 좀 부탁해볼까? 림프에 들어가버린 암세포를 없애버리기 위해서, 림프액을 일단 한 번 몸 밖으로 전부 끄집어낸 다음 깨끗이 세정해버린다는 방식인데 말이지."
"상관 없어요."
시즈쿠는 즉답했다.
진심이었다.
왜냐면, 기사에게 있어 자신의 기술을 타인에게 말한다는 것은 아무 이점이 될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하생을 두고 있는 마도기사라면 몰라도, 같은 학생인 키리코에게 그걸 아무 대가 없이 가르쳐달라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인 것이다.
그 점을 감안하고도 부탁하고 있는 것이니, 시즈쿠에게 그 정도의 각오는 이미 있었다.
이 시즈쿠의 각오에, 키리코는 쓴웃음을 지었다.
".....훗. 농담이야. 그런 건 이미 모로보시 군의 몸으로 질리도록 했으니, 위험한 실험 같은 건 모두 내 몸으로 하고 있어. 그러니 그런 건 이미 충분히 해 봤지. 지금은 딱히 시즈쿠 양에게 부탁할 일 같은 건 없네."
그러니
"보답 같은 건 필요 없어. 공짜로 내 기술을 가르쳐 주도록 할게."
"에, 저.. 정말이신가요!?"
이 키리코의 말에, 시즈쿠는 큰 소리를 내며 깜짝 놀랐다.
"그렇게 놀랄 일이야?"
"기, 기사는 기본적으로 자기 기술을 남에게 가르쳐주고 싶어하지 않으니까요.."
"그치만 난 기사가 아닌걸?"
키리코는 별 것 아니란 말투로 말했다.
의술은 널리 전파되어야 가치가 있는 법.
아낄 이유 따위는 없다, 고.
"게다가 시즈쿠 양은 소질도 있을 것 같고, 선생님도 재밌게 가르쳐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거라면, 시즈쿠도 바라던 바였다.
그녀는 깊이 머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가, 감사합니다!"
하지만───
"......단."
거기서, 키리코가 말투를 바꾸었다.
그녀는 아직 커피가 남아 있는 컵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시즈쿠를 향해 걸어갔다.
"보상이라고 할 건 아니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조건이요?"
"수행을 하기 전, 당신한테 한 가지 처치를 해 두고 싶어. 그게, 내가 당신을 여기로 부른 용건이니까."
콕.
가볍게,
정말로 가볍게, 손가락 끝에 닿는 정도의 힘으로, 시즈쿠의 명치를 찔렀다.
"으윽!?!?!?!?"
그 순간, 시즈쿠의 체내에 번개가 생겨나, 시즈쿠의 발가락 끝에서 정수리를 타고 올라갔다.
"~~~~~~~~~~~~~~~~~~~~~~~~~~크윽!!!"
격통.
비명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의, 낙뢰가 치는 듯한 격통.
그것이, 키리코가 손가락으로 찌른 곳에서부터 생겨났던 것이다.
시즈쿠는 고통스러운 나머지 서 있을 수도 없었는지, 무릎을 꿇은 채
"대체, 무슨...!?"
배어나오는 식은땀이 흥건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키리코를 노려봤다.
그런 시즈쿠를 향해, 키리코가 답했다.
"딱히 내가 무슨 짓을 한 건 아니야. 그저 가볍게 찌른 것뿐이지.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아픈 거야. ......그건 말이지. 네 몸에 '왜곡'이 생겨나 있는 탓이야."
"왜....곡...!?"
"균열이라고 해도 되겠지. 자기 몸을 기체화시켜 물리 공격을 무효화시키는 노블 아츠..... 그건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한 번 죽은 자신을 소생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는 기술이야. 실행으로 옮기기엔 엄청난 고수준의 마력 제어력과, 인체에 대한 깊은 조예가 필요불가결하지. 네게는 이 인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그러니, 재구성을 할 때에 몸에 몇 개의 왜곡이 생겨나 버리는 거야. 지금 내가 찌른 곳은 그 중 하나고. 지금 여기서 내가 찌를 때까지 아무런 위화감을 느낄 순 없었겠지만, 방치해놓고 있다 보면 그건 반드시 네 몸에 치명적인 손괴를 가져다줄 거야. 머지 않은 날에 말이지."
"읏......"
"내 용건은, 그 왜곡을 치료해 주는 거야. 내 치료술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이건 나도 절대로 양보할 수 없어. .....뭐, 애초에 내 눈앞에서 환자가 완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진 않겠지만 말야."
그 순간, 키리코가 백의 주머니에서 작은 판 형태의 기계를 꺼내들어, 그 평면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이 방과 엘리베이터 사이에 벽이 내려왔다.
진심이었다.
시즈쿠는 느꼈다.
자신이 거절을 한다면, 그녀는 실력행사에 접어들 것이란 것을.
하지만 시즈쿠로서도, 자신을 치료해 준다는 키리코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부탁할게요."
"솔직한 환자는 참 좋다니까. 그럼, 속옷 외엔 전부 벗은 뒤에 침대 위에 눕도록 해."
이 지시에, 시즈쿠는 얌전히 따랐다.
바로 옷을 벗고, 속옷만 입은 채로 지정된 침대 위에 누웠다.
그와 동시에, 키리코가 침대 위의 무영등을 켰다.
간소한 조명 외엔 없던 방에 갑작스레 켜진 새하얀 빛에 시즈쿠는 눈을 가늘게 뜨며, 키리코에게 질문했다.
"대충,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 같으세요?"
"반나절 정도는 걸릴 거야. 하지만 안심하도록 해. 마취 마술을 걸어 둘 테니, 네게는 그냥 한 순간일 뿐이니까."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끝나 있을 거야.
그리 말하는 키리코를 향해, 시즈쿠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모처럼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만, 마취는 거두어 주실 수 있을까요?"
"뭐?"
이 부탁에, 키리코는 평소의 깊은 지성이 배어나오는 그녀의 이미지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멍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무리도 아닐 것이다.
대체 무슨 의미로 하는지 모를 부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키리코의 입장에서 봤을 때이다.
시즈쿠에게 있어서 이 부탁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
그녀는 말했다.
"일본에서 제일가는 의사인 《백의의 기사》의 치료술을 제 몸으로 직접 체험하는 거잖아요. 그런 둘도 없을 기회를 헛되이 보내버리고 싶진 않아요."
이 말에, 키리코는 살짝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말이지. 방금 겪은 그 고통을 벌써 잊어버린 거야? 지금부터 난, 겉을 살짝 찌르는 것만으로도 그만큼 아팠던 곳을, 억지로 손을 비집어 넣은 뒤에 주물럭댈 거라구? 그것도 한 곳만이 아닌 여기저기를 말이지. 정신을 유지하고 참아낼 만큼의 고통이 아니게 될 거야. 네가 날뛴다면 내 치료가 잘못되어 버릴 테니까, 그 부탁은 못 들어주게썽."
확고한 거부를 표했다.
이런 제안은, 마취 없이 하는 개복 수술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의사로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버틸 수 있어요."
시즈쿠는 물러나지 않았다.
이것만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강환 의지를 눈에 담고.
"참을 수 없었던 건..... 소중한 사람이 위기에 빠졌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거에요...!"
간절하고 필사적인 목소리로, 키리코에게 호소했다.
대체 언제 벌어진 말하는 것일까.
그건, 당사자인 키리코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때, 시즈쿠는 수술실 앞에서 낭패한 표정으로 울고만 있었을 뿐,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그리고 누구보다도 강하게, 잇키를 도와주고 싶다고 바래 왔음에도───...
가장 중요했던 때에, 도움을 줄 만한 실력이 자신에게 없었던 것이다.
운 좋게 키리코라는 명의가 달려왔기에 망정이지, 키리코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잇키는 아마 그대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잇키가 사라진 세상.
그런 건, 상상만 해도 머릿속이 어떻게 되어 버릴 것 같았다.
용납 못 해.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하나 뿐.
"강하게.... 더욱 강해지고 싶어요...! 어떠한 부상이라도 낫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어떠한 위기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오라버니를 살려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말이에요! ──1초라도 더 빨리요...!"
그건, 그의 지인 중 유일하게 치료술이 가능한 자신 외엔 불가능한 것이니까.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니까.
그 시즈쿠의 강한 결의가 담긴 표정에, ───키리코는 떠올렸다.
지금의 시즈쿠처럼 예전에, 자신이 이루어야 할 일을 이뤄내기 위해 여러 장애를 뛰어넘은 남자의 모습을.
".....하아... 정말, 너희 기사들이란 작자들은 언제나 그래. 의사의 충고 따윈 듣는 척도 안 한다니까."
키리코는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하지만... 살아가면서 자기 목숨을 소중히 아끼는 것만이 만사는 아닐 테니까.."
침대 아래에서, 환자를 묶어 두기 위한 벨트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로 시즈쿠의 사지를 침대에 묶어놓았다.
시즈쿠의 의지를 받아들인 것이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인사 따윈 됐어. 바로 죽고 싶어질 정도로 후회하게 될 테니까. 자, 이거 물고 있어."
마지막에, 키리코는 시즈쿠의 작은 입에 재갈을 물린 뒤 고정시켰다.
일러스트
이게 없으면, 분명히 혀를 깨물어 잘려나가 버릴 테니까.
그렇게, 준비를 끝낸 뒤
".....정말로 위험하다고 여겨졌을 때엔, 내 판단으로 억지로 기절시킬 거야. 그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잘 참아 보라구."
키리코는 자신의 오른손에, 치료를 위한 마술을 발동시켰다.
하늘색 마력광을 두른 손가락으로, 방금 찔렀던 복부의 왜곡이 생겨난 부분을 다시금 찌른 뒤
푸욱.
마치, 진흙 속으로 손을 찔러넣듯, 손가락 첫 마디까지 시즈쿠의 복부 속으로 찔러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