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4/77)

제 3장

버밀리온 황국

아리스인과 시즈쿠가 각자 목적지로 떠난 몇일 뒤.

잇키와 스텔라, 이 둘도 버밀리온 황국을 향해 출발했다.

학원에서 전차를 타 몇 번 환승한 끝에 공항에 도착한 뒤, 여러 수순을 밟고 VIP 전용기 쪽으로 안내를 받았다.

승무원이 총출동한 환영을 받고, 연지색 카펫이 깔린 계단을 올라 기내로 들어선 뒤, 잇키는 그 기내 모습에 다시금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기내엔 BAR에 살롱, 시어터 룸, 침실에는 킹 사이즈의 더블 침대, 거기에 끝내는 목욕탕까지 완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완전 고급 호텔 같아서, 전혀 비행기 내부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역시나 스텔라도 이런 정도의 수준을 갖춘 비행기엔 타 본적이 없는 듯, 잇키처럼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뒤, 여기저기를 흥미롭다는 듯 돌아보고 있었다.

이런 비행기에 탈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저번의 《흑기사》 습격 사건의 사죄를 겸해, 츠키카게가 준비를 해 준 덕이었다.

뭐, 약삭빠른 츠키카게다 보니, 스텔라와 잇키에게 쾌적하고 로맨틱한 공중 여행을 제공하여, 둘의 사이를 더욱 깊게 만들어 줌으로써 일본과 버밀리온 황국의 우호를 다지자는 속내도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그런 츠키카게의 의도는, 둘에게 있어 아무 상관없는 것이었다.

스텔라는 모처럼 이렇게 준비해 주었으니 한껏 즐겨 봐야지! 라는 마음가짐으로, 영화에 거품 목욕, 그리고 아로마 맛사지까지 즐기며 공중 여행을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편, 잇키는 도저히 이 여행을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스텔라와 함꼐 본 영화도 전혀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저녁으로 나온 호화스러운 경풍 카이세키 요리도, 엄청나게 맛있는 요리였지만 맛 따위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지금, 그의 사고를 꽉 채운 건, 한 가지의 고민이었다.

───다음 날로 닥쳐 온, 스텔라의 부모님에게 드릴 인사.

스텔라 왈, 모친은 스텔라의 판단을 존중하여 주고 있다는 듯했으니, 실질적으론 그녀의 부친, 즉.... 버밀리온 국왕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가 문제였는데..

'....대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살롱에 있는 소파에 몸을 깊게 묻으며, 잇키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험치라 할 것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전무했지만

'일단.. 이전에 연맹 지부 쪽에 연금되었을 때 생각해 둔 건 빼기로 하자.'

잔말 없이, 남자답게, '따님을 주십시오' 라는 말과 함께 오체투지를 하여 성의를 보이며,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성량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

그건 타이밍 나쁘게 자신이 있는 곳을 방문한 부친에게 '네게 시즈쿠는 줄 수 없어' 라며 진지한 표정과 함께 거절당한 탓에,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거기에, 아무리 헛된 말 없이 성의만을 전하다고 하더라도

'보자마자 오체투지를 시전한다는 건, 잡스러워 보이겠지. 역시..'

만사엔 수순이라는 게 있는 법.

상대가 이쪽의 성의를 받아들일 마음도 들지 않은 때에, 갑작스레 이쪽의 마음가짐을 들이대서야, 오히려 성의로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다.

단순히 자기만족이라고 해도 좋을 행위.

그래선 안 된다.

'어찌 됐든, 일단 스텔라의 부모님에게 내 성의를 받아들일 마음이 들게 만들어야 할 텐데...'

모든 건 거기서부터다.

거기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그럼, 그 시작선에 서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점이 문제인데...

그런데, 그 때였다.

"후웃~"

"으읏~~~~~~!?!?"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귓구멍 속에 불어닥친 감촉에, 잇키는 소름이 돋았다.

물론, 숨을 불은 것은 스텔라였다.

"스, 스텔라!? 에, 뭐.. 뭐 하는 거야, 갑자기!?"

여기에, 스텔라는 뾰로통하게 삐친 듯 뺨을 부풀린 채, 항의로 답했다.

"뭐 하는 거야, 가 아니라구. 아까부터 계속 말 걸었는데 멍하니 앉은 채 자꾸 대충스러운 답만 하고 말야. 잇키야말로 뭘 그리 멍하니 앉아 있는 거냐구!"

여기에, 잇키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겐 그녀가 말을 걸었다는 기억이 전혀 없었으니까.

무의식 도중에 흘려들어 버린 것 같았다.

"미, 미안... 좀 생각할 게 있어서.."

"혹시, 내일 내 부모님하고 만나게 될 테니, 긴장하고 있던 거야?"

곁에 앉은 채 물어 오는 스텔라를 향해, 잇키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으, 응.. 이 비행기에서 내리게 되면 드디어 그 때구나, 하고 생각했더니..."

"뭐, 당연히 긴장되겠지. 자기 애인의 가족에게 남편 될 입장이 되어 인사를 하는 거니까. ......나도 잇키의 아버지 분이랑 만났을 땐 완전히 긴장했었고. 그 때는 진짜 떠올리기만 해도 부끄러워 죽겠어..."

"하하. 그런 일도 있었지."

일러스트

그 말에, 잇키는 칠성검무제에 참가하던 중, 의무실에서 우연하게 잇키의 아버지, 이츠키와 딱 마주친 때의 스텔라의 행동에, 그리고 그 행동이 이전의 자신과 완전히 같았다는 것을 떠올리고 흐뭇하게 웃었다.

"그 때는 스텔라가 어떻게든 해 주었고, 이번엔 내 차례가 됐잖아. 그런데.. 어떻게 해결해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보니.."

"오체투지 절은 관두는 게 좋을 거야."

"그건 나도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어."

문제인 건, 그걸 대신할 대안이 떠오르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잇키에겐 이런 인사를 할 경험도, 상대의 정보조차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때 잇키는 아, 하고 한 가지를 알아챘다.

경험이 없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정보는 모을 수 있었다.

스텔라에게 그녀의 부친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본다면, 어떠한 실마리가 잡힐지도 모른다.

"저기, 스텔라. 스텔라의 아버님은 뭘 좋아해?"

"아바마마가 좋아하는 것?"

"응. 만나자마자 갑작스레 진짜 화제를 꺼내는 것도.. 역시 좀 무서우니까.. 뭐라 해야 하나? 좀 더 자리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페이스를 잡기 위한 잽 공격이 될 만한, 그런 수다를 떨 이야깃거리가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이 잇키의 질문에, 스텔라는 잠시 사색한 뒤, 답했다.

"....으음. 나려나?"

"혼신의 라이트 스트레이트네~........"

기대를 벗어난 탓에, 잇키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잇키에게, 스텔라가 격려를 보냈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거야. 어마마마나 우리 언니는 애초에 반대하고 있는 입장도 아니었고, 반대하고 있던 아바마마도, 좀 자기 아이를 떠나보낼 수 없는 성격이고, 고집쟁이고, 발냄새가 심하고, 수염도 엄청 많긴 하지만."

'은근히 불만이 많았었구나..'

"그래도 날 소중히 여겨 주시는 아바마마니까. 내가 사랑하게 된 잇키의 매력을 모를 리가 없어. 분명히... 이야기를 하면 알아주실 거야. 왜냐면... 내가 가장 사랑하고, 내가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잇키 이외엔 없으니까. 나도 같이 설득할 테니, 같이 힘 내자!"

스텔라는 밝은 목소리로 그리 말한 뒤, '이리 와~' 라고 부르는 듯, 자신의 허벅지를 톡톡 두들겼다.

가장 큰 국면을 맞게 될 자신에게, 그녀 나름대로 용기를 불어넣어 주려는 것 같았다.

".....고마워."

그리 답례한 뒤, 잇키는 스텔라의 호의에 따랐다.

몸을 소파 위에서 옆으로 뉘여, 매력적인 볼륨에 탄력이 가득한 허벅지에 후두부를 뉘였다.

유연한 근육에 여성 특유의 부드러운 지방질이 곁들여진 스텔라의 허벅지는, 평생을 누워 있어도 좋을 정도였다.

잇키는 눈을 감고, 그 좋은 느낌에 몸을 맡겼다.

그런 잇키의 머리의 머리를, 스텔라는 부드럽게 쓰다듬어,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헤헤' 하고 미소지었다.

둘이 있을 때만 보여주던, 행복한 표정.

진홍색 눈동자 안엔, 흘러넘칠 정도의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그걸 독점하고 있는 것이 자신이라 생각하니, 잇키는 참을 수 없는 행복감이 들었다.

이 눈빛을 받지 못하게 되는 일을, 잇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스텔라가 곁에 없는 미래라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스텔라가 말한 대로 이 인사는 확실하게 '잘 마쳐야 할 일'인 것이다.

그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마, 스텔라의 아버님을 납득시키는 건 간단하지 않을 거야.'

스텔라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리 부드럽게 진행되지는 않을 거라고 잇키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잇키와 스텔라 사이엔 메우지 못할 절대적인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쪽은 한 나라의 제 2황녀.

한 쪽은 명가 출신이라 하더라도 반 절연 상태에 놓인, 정처 없는 남자.

한 쪽은 온 세상이 그 장래를 기대하고 있는, A랭크 기사.

한 쪽은 《각성》을 겪고 나서도 E랭크의 기준에서조차 먼 상태인, F랭크 기사.

양친에게 인사를 한다는 큰 이벤트를 눈앞에 두고, 다시금 생각해 보니, 자신과 스텔라는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는 사이였다.

스텔라는 그런 집안 사정이나 재능 따위는 상관 없다고 말해 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스텔라 뿐이다.

스텔라를 소중히 여기고 있기에, 스텔라의 아버지는 상대에게 아주 많은 것을 바랄 것이다.

그리고 쿠로가네 잇키라는 한심한 남자는, 그 요구에 응하기 위한 것을 무엇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은 실로 무거웠다.

'나는.. 스텔라의 아버님의 기대에 응할 수 있을까..?'

스텔라의 아버지에게, 그의 보물일 터인 스텔라를 받아오기에 충분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소중하니까──

내줄 수 없을 정도로 소중히 여기는 마음───

불안은, 어찌 해도 가시질 않았다.

그래도 비행기는 대륙의 밤을 활공해, 한결같이 버밀리온 황국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잇키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향해 가는 이국의 땅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그의 상정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

다음날.

잇키와 스텔라가 늦은 아침을 먹고 난 때쯤.

비행기는 마침내, 버밀리온 황국 상공에 도착했다.

"잇키! 저거 봐! 이게 내 나라야. 버밀리온 황국이라구!"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에, 즐거운 듯 말을 걸어 오는 스텔라.

그녀의 시선을 좇아, 잇키도 또한 비행기 너머로 버밀리온 황국을 내려다보았다.

시야에 비춰진 건, 국토의 거의 모든 부분이 평야로 이루어진 버밀리온 황국에, 어디까지 펼쳐져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깔려 있는 선명한 녹색 카펫.

곳곳에 세워진 풍차와, 강을 따라 보이는, 몇 안 되는 작은 민가가 모인 집락.

산과 건조물이 많은, 살짝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듯한 인상이 있는 일본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었다.

그런 목가적인 광경을 바라보며, 잇키는 버밀리온 황국에 대한 지식을 떠올렸다.

버밀리온 황국.

그것은, 유럽 중 한 곳, 북해가 있는 만안 부근에 세워진, 지금 시대에는 흔치 않은 절대 군주제 국가이다.

처음엔 그 근처에 세워진 나라인 크레이델란트 왕국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수백년 전에 독립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주된 산업은 넓은 평야를 살린 축산업과 꽃꽂이 제품 수출.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살린 관광업, 천연 가스 수출 등이었다.

여기까지는 유럽 나라에 있어 별 다를 바 없는, 극히 평범한 국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버밀리온 황국엔 다른 나라엔 없는 커다란 특징이 있었다.

그건, 국가에 대한 국민의 높은 충성심이었다.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수많은 비극을 낳은 제 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의 대두에 의해, 유럽은 불바다가 되었다. 그 전화는, 버밀리온 황국까지 덮쳤고, 황도 플레어부르크는 함락되었다.

버밀리온 황국은 한 번, 국가로서의 형태를 잃어버렸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 때, 당연히 버밀리온 황국을 통치하에 놓은 나치 독일은, 버밀리온 황국의 뿌리를 근절시켜버리기 위해 나섰지만... 그건, 의도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버밀리온 황국민이 모두 하나가 되어 황족을 숨겨 주었던 것이다.

수세가 기울어, 나치 독일이 버밀리온 황국에서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벌어진, 어떠한 잔인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그리고, 제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자마자, 버밀리온 황국의 국민은 전 세계에 걸쳐 가속도적으로 퍼져나간 정치 민주화의 흐름을 완전히 무시하고, 다시금 버밀리온 황족을 유일 절대의 왕으로서 세워놓았다.

이 에피소드, 무쇠와 같은 충성심은, 버밀리온 황국 건국 역사가 크게 관계되어 있었다.

버밀리온 독립 전쟁은, 크레이델란트 왕국의 압정에 버티다 못한 민중이, 크레이델란트의 온건파 귀족의 필두였던 버밀리온 공작을 기두로 삼아 시작된 전쟁이었지만.... 이 시대의 유력한 귀족들은, 대부분 겉으로는 혼인이라는 형태로 반려자를 인질로 잡아두고 있던 시대였다.

버밀리온 공작도 예외는 아니었고, 크레이델란트 왕국은 그의 가족의 목숨을 인질삼아, 버밀리온 공작에게 반란을 중지할 것을 명했다.

하지만, 버밀리온 공작은 전쟁을 그치지 않았다.

매 주 사랑하는 가족의 몸 일부분이 보내져 온다는, 악몽 같은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가족 모두의 목숨을 맞바꿔 전쟁을 끝마친 것이다.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약한 민중을 위하여.

이 때의 버밀리온 공작───즉, 버밀리온 황국 초대 황제의 헌신을, 국민들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었다.

그건 동화로서, 역사로서, 넓게 전승되어, 강철과도 같은 굳은 충성심을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들은 한 나라이면서, 한 가족이야.'

언제였을까.

기숙사 방에서 일상과도 같은 잡담을 하고 있는 사이 버밀리온 황국에 대한 화제가 나왔을 때, 스텔라는 그렇게, 자신인 황족과 국민의 관계를 나타냈다.

국민은 모두, 황족을 사랑하고, 황족도 또한 그런 국민을 사랑하여, 선정을 펼치고 있다.

스텔라의 국방에 대한 강한 의지도, 그 애정이 근간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까지는, 잇키도 일반상식으로서 잘 알고 있는 점이었다.

평범한 국가보다도, 황족과 국민의 사이가 가깝다는, 그런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비행기를 내린 순간 펼쳐진 광경엔, 엄청나게 놀랐다.

' ' '~~~~~~~~~~~~~~~~~~~~~~~~와아아아!!!' ' '

한 발짝, 기내에서 바라봐도 눈이 어질어질할 정도의 여름햇빛이 내리쬐는 바깥으로 내려선, 그 찰나.

충격이, 잇키의 온몸을 때렸다.

한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하고 깜짝 놀라 충격이 날아온 곳을 바라본 잇키.

거기엔

'스텔라 님~! 어서 오세요~~~~~!'

'무사 수행 수고하셨어요~~~~~~!'

'꺄아~! 스텔라! 시합 진짜 멋있었어!'

사람들이 있었다.

정부 전용 공항 부지를 가득 채울 정도의 수십 만 명의 사람들이.

방금의 충격은, 그들이 외친 환성에 의한 것이었다.

"모두들~~~~~! 나 돌아왔어!!!"

이 규격 외급의 환성에, 스텔라는 별로 놀랍지 않다는 듯, 손을 흔들어 답했다.

이 모습에,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분위기가 급상승했다.

대지를 울릴 정도의 환성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군중의 흥미는 스텔라의 곁에 서 있던 잇키에게도 옮겨갔다.

'앗! 저 애! TV에서 봤던 애야!'

'스텔라 공주님한테 이긴 녀석이지!'

'그것보다 그가, 스텔라의 피앙세란 말인가!'

'어머나, 꽤 멋있잖아?'

'시합 때와는 전혀 다르게 되게 착할 것 같네.'

'약속대로 국왕님한테 인사하러 왔구나!'

'환영해요~ 버밀리온 황국에~!'

' ' '환영합니다~~~~~!!!!!!' ' '

수식 만이나 되는 성원과 시선이,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큰 무대는 칠성검무제에서도 체험했었지만, 이건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잇키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망설였지만, 일단 스텔라처럼 손을 들어 인사하기로 했다.

그러자

' ' '~~~~~~~~~~~~~~~~와아아아!!!!!!' ' '

잇키가 답한 그 반응에, 군중은 환성과 박수로 답해 주었다.

'우, 우와... 뭔가.. 엄청나게 낯부끄럽네...'

명가 출신이라곤 해도, 험한 취급을 받고 자란 잇키는 아무래도 이런 분위기엔 익숙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는다.

아무래도 자신은 그런 훌륭한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버린다.

"스텔라 님. 쿠로가네 님. 아래쪽에 마중 나온 차가 있습니다. 발치를 조심하시면서 계단 아래로 내려가 주십시오."

"고마워요. 엄청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배웅하는 승무원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둘은 출발 때와 같이 연지색 카펫이 깔린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아래엔, 순백의 고급 차량이 정차되어 있었다.

잇키의 입장에선 이 시선의 집중포화에선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고 싶었기에, 차가 있는 건 정말 고맙게 여겨졌다.

그런데, 그 때였다.

둘이 채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국빈 마중용 차량의 보조석 문이 열렸다.

그리고, 거기서 작은 몸집의, 웨이브가 들어간 롱 피치 블론드 여성이 차에서 내린 뒤 이쪽을 올려다보며

"어서 오렴, 스텔라."

아직은 어린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스텔라의 귀향을 환영해주었다.

"엣...! 마중 나와 준 거야!?"

여기에, 곁에 있던 스텔라는 깜짝 놀라며 계단을 뛰어내려간 뒤, 그녀 앞에 서서 양손을 마주잡았다.

그에, 그 여성도 스텔라의 손을 맞잡으며

"당연하지. 몇 달 만에 스텔라 얼굴을 보는 거니까~"

"고마워! 나도 만나고 싶었어!"

서로 미소를 지으며 재회를 기뻐했다.

그 소녀는, 살짝 머리에 있는 색소가 옅었지만, '헤헤~' 하고 웃는 그 미소가, 행복해하는 스텔라를 쏙 빼닮아 있었다.

상당히 어린 것처럼 보이는데... 그녀가 제 1황녀인 것일까?

사이 좋은 두 소녀의 모습에, 잇키가 그런 생각을 하며 몸 둘 바 없이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자, 스텔라가 잇키를 놔두고 달려왔다는 걸 알아채

고, 그를 향해 말했다.

"아, 미안, 잇키! 소개할게! 우리 어마마마셔!"

일러스트

"으엑!? 그 쪽이었어!?"

사이쿄 선생님과 같은 부류의 요괴 같은 것일까?

그렇게, 마음 속으로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자

"당신이 쿠로가네 잇키 씨죠? 만나서 반가워요~. 스텔라 버밀리온의 엄마 되는, 아스트레아 버밀리온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아스트레아가 느긋한 말투로 자기소개를 끝낸 뒤, 잇키를 향해 인사했다.

상대에게 먼저 머리를 숙이게 만들었다는, 자신의 실수를 느끼고, 잇키도 서둘러 인사로 답했다.

"아, 정중한 인사 감사드립니다...! 쿠로가네 잇키입니다! 오늘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름방학 동안, 신세를 지겠습니다...!"

"후후후. TV에서 본 강건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아주 예의바른 남자애네요~ 이 아줌마, 그런 애는 좋아한답니다~"

"어마마마도 중계 보고 있었던 거야?"

"응, 물론이지~ 칠성검무제 결승전, 나도 TV에서 관전했었어~ 솔직히 말하자면, 설마 스텔라가 질 거란 생각은 안 하고 있었으니 깜짝 놀랐지~ 정말 강한 분이시네요~"

"아뇨, 그렇게까지는... 정말 아슬아슬했어요, 그 시함은."

"압승이어도 아슬아슬하게 이겨도 이긴 건 이긴 거에요~"

아스트레아는 그리 답한 뒤, 잇키의 손을 꼭 쥐었다.

그 뒤, 목소리로도 느껴지는 깊은 감사를 담아

"잇키 씨. 정말로 감사드려요. 스텔라와 그렇게 싸워 주셔서. 그렇게 즐거운 듯이 싸운 스텔라는 정말 처음 봤어요. ....버밀리온이나, 저희 이웃 나라인 크레이델란트엔, 스텔라의 실력에 대등히 맞설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거든요. .....이국의 땅에 딸을 혼자 보낸 건 약간 불안했었지만, 이런 멋진 남자친구를 찾아냈으니, 일본에 보내기를 정말 잘 한 것 같네요."

잡은 손, 표정, 음성. 그 모든 것에서, 아스트레아의 표면상만이 아닌 진심이 담긴 감사란 것을, 잇키는 느꼈다.

스텔라가 말한 대로, 모친은 스텔라의 행동, 판단을 지지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점에 잇키는 안도하고, 긴장이 풀린 웃음을 지으며 자신도 또한 감사로 답했다.

"감사를 드리는 건 저도 마찬가지에요. 저도 스텔라를 만나고, 그리고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거니까요."

"후후. 그럼 서로 '배율에 배를 얹어 짜잔!' 이네요"

'지금에 와서 연배가 느껴지는 농담을...!'

"저기, 있지. 어마마마가 시합을 보고 있었다는 건, 혹시 아바마마도 같이 보고 있었어?"

"물론이지. 루나도 같이 가족 모두 함께 응원했었어~"

"다행이다! 그럼 아바마마도 잇키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겠네! 잘 됐네, 잇키. 이거면 네 랭크는 별 문제가 안 될 것 같아!"

하지만 이 스텔라의 말에

"아~..... 그건 어떠려나~..."

아스트레아는 곤란한 듯한 표정으로 회의적인 의견을 냈다.

"어떠려나, 라니.. 무슨 말이야?"

"그도 그럴 게, 네 아빠.. 그 시합을 끝까지 보질 못했으니까."

"어, 어째서!? 아, 도중에 일이 생겨서.. 같은..?"

"그게 아니구~ 그~ 중반 정도였나? 잇키 씨가 스텔라의 배를 촤악~ 하고 베어 버렸짢아~? 그거 보고 거품 물고 3일 정도 기절해 버렸거든~ 그이도 못 말린다니까~ 눈 뜨자 마자 군대를 이끌고 일본에 선전포고 하려던 걸 엄마랑 단델리온 씨가 둘이서 달래느라 얼마나 힘들었다구~"

"........"

엄청나게 납득이 가는 그 이유에, 잇키는 말과 혈색을 잃었다.

"에이, 좀 베인 것 가지고 오버하신다니까."

옆에서 스텔라가 그런 말을 하며 분개해 했지만, 그 때 베었던 감촉은 약간 베인 정도로 그치지 않을 정도였다.

고수준의 자기 재생이 가능한 스텔라가 아니었다면, 단방에 레퍼리 스톱이 들어왔을 정도의 치명상이었다.

사랑하는 딸이 그런 꼴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 졸도하는 것도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아, 그래서 있지, 지금 네 아빠 얘기를 하고 떠오른 건데, 어쩐지 아빠가 잇키 씨랑 만나기 전에, 모두 함께 가족회의를 한 번 하자고 말했었어."

"뭐? 왜?"

"스텔라한테 잇키 씨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한 번 들어보고 싶다나 뭐라나~?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얼굴을 마주쳤다간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다나 봐. ....어때요? 잇키 씨한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것 같아요. 응접실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셨으면 하는데~"

"네. 전 괜찮아요."

잇키는 즉답으로 답했다.

거절할 이유 따위는 없었으니까.

이국의 땅에서 숨을 거두고 싶지는 않았다.

"미안해, 잇키. 아바마마가 억지 부리는 탓에.."

"신경 안 써도 돼. 오히려 나한테 있어서도 갑자기 얼굴을 마주치는 것보다, 스텔라가 나에 대한 걸 어느 정도 전해드린 뒤라면 마음이 한 층 더 놓일 테니까."

"알았어! 잇키의 멋진 점을 사족은 커녕 제트 엔진까지 달아서 말해 주겠어!"

"기, 기대치가 올라가지 않을 정도로만 해 줘.."

이렇게 이야기가 정리되고, 아스트레아가 둘에게 뒷좌석에 들어와 앉을 것을 권유한 그 때였다.

지금까지 대화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침묵하고 있던 군중 속에서, 풀채 좋은 중년 여성이 나타나 셋에게 제안을 했다.

"저기, 아까부터 이야기 계속 듣고 있었거든. 신랑 분이 짬이 난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우리가 나서서 신랑 분한테 황도를 안내해 주고 싶은데, 어때? 스텔라의 달링에게 이 도시나 나라에 대한 걸 여러 모로 알려 주고 싶어서, 사실 스텔라의 귀향 날에 맞춰서 우리들도 여러 모로 준비를 해 뒀었거든. 물론 싫다면 억지로 강요는 안 하겠지만.."

이 중년 여성의 제안에, 뒤에 있던 모든 군중들도 '그거 좋네!' '찬성!' 같은, 의욕 넘치는 반응을 보였다.

그건, 스텔라도 마찬가지였다.

"야나 아줌마, 그거 진짜 멋진 아이디어에요! 그렇게 하도록 해, 잇키!"

야나, 라는 건, 중년 여성의 이름일 것이다.

이름이 바로 나온 점, 그리고 대화를 하는 말투, 그걸 미루어보면, 스텔라와도 나름 친분이 있는 사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신용해도 문제는 없을 듯했다.

잇키는 그리 판단하고

"응. 그럼 사양 않고 받아들일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야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잇키에게 있어서도 그저 멍하니 성 안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자신의 연인이 태어나 자란 곳을 돌아보는 편이 의의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가족회의가 끝나면 스텔라에게 연락해 달라고 할 테니~ 잇키 씨는 그 때까지 버밀리온 관광을 즐겨 주도록 하세요~"

"모두들! 잇키를 잘 부탁해!"

' ' '오오옷───!!!!' ' '

이렇게, 버밀리온 황비와 황녀는 잇키를 군중에게 맡기고, 먼저 성으로 떠났다.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마중을 한 뒤, 잇키는 다시금 야나와 군중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에에.. 야나 씨, 였나요? 친절한 제안 감사드립니다. 처음 들어선 성 안에서 홀로 기다리고 있었다간 이도저도 못할 상황이 되어 버렸을 텐데, 정말 살았어요."

그 말에, 야나와 군중은 히죽, 하고 만면에 미소를 띠며

"아니, 고맙다는 인사 따윈 됐어. 듣고 싶지도 않고."

"에?"

갑자기, 야나의 음성에서 따스함이 사라졌다.

그리고, 말투의 변화에 당황해하는 잇키 앞에서, 정부 공항 활주로에 모여 북적대던 군중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래와 괭이, 가지치기용 가위, 끝내는 각목에 못을 박은 물체를 꺼내들었다.

'......어?'

그들의 행동에, 잇키의 이해는 당연히 따라가질 못했다.

그런 것을 꺼내들고 대체 무엇을 할 셈이란 말인가?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아 아연히 서 있던 그에게

"그럼 바로 안내해 주도록 할 게, 신랑 씨. ───게르만 해 깊은 곳으로 말이지!"

"우와아아아아아앗!?"

자신의 머리 위로 금속 배트가 쇄도해 내리쳐지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잇키는 자신의 위기를, 그리고 자신에게 향해 오는 해의를 이해하고 회피 행동을 취했다.

까앙! 하는 소리를 내며 조준이 빗나간 금속 배트가 활주로를 분쇄했다.

'뭐, 뭐... 뭐야아아아!?!?'

───진심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그들은, 진심으로 자신을 향해 공격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 어째서!?

"잠깐.. 에..?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이게 대체 무슨 짓이에요!?"

그 질문을 잇키가 입에 담자

'뭐긴 뭐야! 이 제비족 같은 놈!'

'뻔뻔하게 애인 된 것마냥 나타나고 말야! 이런 촌구석 국가엔 소문이 안 퍼질 것 같았냐!'

'네가 일본에서도 내로라 하는 악당이란 건 이미 뉴스로 다 퍼져 있다고!'

'싸움만 해 와서 연애에 대해선 순진한 스텔라를 속여서, 노.. 노예 플레이까지 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어!'

'우리들의 소중한 공주님을 더럽히다니!'

'이 자식.. 살아서 버밀리온에서 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마!!!!'

군중들은 핏발 선 눈으로, 잇키를 압살하려는 듯 사방팔방에서 공격해 들어왔다.

이 그들의 말, 그리고 행동에, 잇키는 알아챘다.

'호, 혹시.. 그 오해가 여기선 아직 풀리지 않은 채였던 건가.....!?!?'

그건 물론, 이전에 스텔라와의 스캔들이 벌어진 때, 아카자가 흘린 잇키에 대한 헛소문이었다.

잇키는 예로부터 내로라 하는 악당이고, 스텔라를 가지고 놀고 있다는 소문.

자신이 스텔라 이외의 수많은 여학생과도 교제를 하고 있다는, 상당히 장밋빛 학원 생활을 보내고 있는 남자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잇키도 잘 알고 있었다.

일본에선 주위의 협력이나, 잇키 자신의 평소 태도도 있었던 덕에, 적어도 그의 주변 사람들에 대해선 그 오해가 이미 풀려 있었다.

하지만, 지구를 반 정도 돌은 곳에 있는 버밀리온 황국에선, 모두의 반응을 미루어보건대 오해가 아직 풀리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뭐, 그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매스컴은 기본적으로 사건을 자주 재미 본위로 부풀리긴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정보였을 경우에 대한 후처리는 거의 하질 않는 편이다. 그건,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 버리는 셈이니까.

충격적인 오보는 과잉할 정도로 퍼져 나가지만, 진실은 거의 전해지질 않는다.

그렇다면, 오해를 풀 수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지만───

'아무래도 모두의 눈빛이 위험해! 이야기가 통할 것 같은 상태가 아니야, 이건..!'

일단 여기서 도망을 치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리 판단하고, 잇키는 몸을 낮춰, 탈출 경로를 찾았다.

순식간에 냉정함을 되찾고, 주변을 살펴보는 잇키의 표정을 보고, 야나는 그거 이 자리에서 도망을 치려는 것을 알아채고, 소리쳤다.

"너희들, 절대로 놓치지 마!!"

' ' '오오오오오오오오옷─────!!!!' ' '

군중들도 한 층 더 높은 기합이 담긴 고함을 외치며, 제각각 손에 든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훗!"

' ' '헉!?' ' '

그 직후, 잇키를 향해 공격에 나선 모든 군중들이, 잇키를 놓쳤다.

휘두른 무기는 그저 허공을 가를 뿐이었고, 단단한 지면에 부딪혔다.

───사라졌다.

눈앞에서, 갑자기.

사람이.

그 사태에, 누구나가 곤혹함과 혼란을 내비쳤고

'꺄아앗!?'

'우왓!? 어, 어떻게 여기에!?'

등 뒤에서 들려온 비명에, 잇키를 공격하던 자들이 뒤돌아봤다.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북적거리던 군중들의 아주 약간의 틈새를, 지면을 기어갈 정도로 몸을 낮춘 잇키가, 마치 고양이처럼 민첩하게 달려나가는 모습을.

그렇다. 잇키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가속이라는 공정을 생략하고, 첫 속도를 최고속으로 만들어내는 몸놀림으로 공격해 오는 군중 모두의 동체시력을 넘어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속도에, 무에 대해 문외한인 군중들은 전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잇키의 특수한 움직임도 그 이유 중 하나였지만, 그보다 너무나도 밀집되어 있던 탓에, 그들 자신의 시야나 움직임에도 많은 제한이 걸려 버린 것이었다.

수가 많을 뿐인 오합지졸.

그런 것들이 아무리 많이 밀집되어 있어 봤자, 잇키에게 있어 장해가 될 수는 없었다. 허둥지둥댈 뿐인 그들의 틈새를, 잇키는 한 치의 감속도 없이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포위를 벗어난 뒤, 군중 중 누군가가 타고 온 것일 승용차에 탄 뒤

───그걸 빼앗아 공항에서 도주했다.

'미, 믿기질 않아. 뭐야, 저 녀석은!?'

'어떻게 이런 인파 속에서, 저렇게 빨리 달려댈 수 있는 거야...!?'

아연실색해 하는 군중 속에서, 야나는 혀를 차며

"그저 폼으로 스텔라를 쓰러뜨린 남자가 아니라는 거군...! 하지만, 이쪽도 그 정도는 이미 상정해 뒀다고!"

구식 폴더 핸드폰을 꺼내든 뒤, 한 인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그너드! 신랑이 차를 빼앗아 시내 쪽으로 도주했어! 차 번호 알려줄게!"

───한 편, 별 어려움 없이 버밀리온 국민의 포위를 돌파해낸 잇키는, 황도에 사는 거의 모든 국민이 공항에 모여 있는 탓에 텅 비게 된 도로를 차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목적지는, 먼 곳에 있는 황도 플레어부르크 시내 너머에 보이는, 거대한 성이었다.

지금 자신의 입으로 무슨 설명을 한들, 그들은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여기선, 일단 스텔라를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잇키의 진행에

"응?"

여름 햇살이 내리쬐는 아지랑이 너머에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차선이나 그런 것들을 모조리 무시하고, 도로를 횡으로 가득 채운 채.

마치, 물살처럼.

그건,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세계에서밖에 보지 못 했을 정도의, 차량의 무리들───

포신을 이쪽으로 향한, 전차 대군이었다.

"이게 무슨......."

그 직후, 굉음과 충격이 버밀리온 황국의 하늘에 높이 울려퍼졌다.

◆◇◆◇◆

"어머나~ 무슨 소리지~?"

멀리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를 듣고, 아스트레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무수한 전차포가 잇키가 타고 있는 승용차를 소멸시켜 버리는 소리였지만

"야나 아줌마가 여러 모로 준비를 해 뒀다고 했으니, 잇키를 위해 환영 폭죽이라도 쏘고 있는게 아닐까?"

"우후후. 나중에 모두한테 고맙다고 인사를 해 둬야겠네."

아무것도 모르는 둘은, 어디까지나 평화로웠다.

◆◇◆◇◆

한 편, 쿠로가네 잇키는 자신이 지닌 운동능력을 총동원.

전차포가 불을 뿜기 직전에, 《음철》을 현현시켰다.

차 지붕을 잘라낸 뒤, 바로 탈출.

착탄 순간, 잘라낸 차 윗면을 방패삼아 폭풍에 직격당하는 것을 벗어난 뒤, 그 방패에 가해지는 폭풍의 힘을 이용해 도약했다.

도로를 따라 서 있는 건물 위에 착지하여, 난을 벗어났다.

그렇지만───

"이, 이거.. 진짜 죽는다구!"

"죽어 주면 우리도 고맙지. 이 정도로 죽을 남자에게 스텔라 님을 맡길 수는 없으니까. 그것이, 모든 버밀리온 황국민의 뜻이다."

잇키의 비교적 진심이 담긴 항의에 냉담한 말로 답한 건, 건물 지붕 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붉은 군복을 입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지붕 위에 나타난 잇키를 포위하듯, 근처에 있던 모든 건물 지붕 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잇키에게 총을 조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

견장을 찬 묘령의 여성이, 안경 너머에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며, 잇키에게 선고했다.

"내 이름은 시그너드 일런. 버밀리온 황국 육군 대위이지. 잇키 쿠로가네. 네 녀석은 이미 버밀리온 황국 육군에 포위되어 있다."

"군대까지 동원할 일인 건가요...?"

버밀리온 황국민의 충성심이 얼마나 높은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였을 줄이야.

하지만, 이것도 모두 자신이 뿌린 씨다.

"도망치거나 날뛰지 않을 테니 한 번만이라도 제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모든 것은 오해입니다."

"오해?"

다행히 이 시그너드라는 여성은 직업이 군인이다 보니, 공항에 있던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상당히 침착한 상태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잇키는 어떻게든 대화로 설득을 하기로 했다.

"그 스캔들이 벌어졌을 때, 저에 관한 여러 정보가 나돌아 다녔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모두 헛소문들입니다. 전 제 실가와 사이가 나쁜 탓에, 절 안 좋게 보던 사람들이 흘린 거짓된 정보들이라구요!"

"호오. 그럼 네 녀석이 아무 죄도 없는 온화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가정에 쳐들어가 폭력을 휘두르는 악당이라는 사실은 거짓말이었단 말인가."

"....물, 론.... 어라?"

즉답하려 했지만, 말이 막혔다.

──이 경우, 중학생 시절에 하고 다녔던 도장깨기는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 것인가.

"스텔라 님이 옷을 갈아입고 계실 때 갑자기 쳐들어와, 네 녀석 자신도 옷을 벗어재낀다는 치한 행위를 벌이려 했던 것도 거짓이란 말인가."

".......그, 그건.. 그......"

"스텔라 님에게 패배자는 승자에게 평생 복종을 한다는 부조리한 조건을 내걸고, 결투에 패배하신 스텔라 님을 노예로 삼아 뭐든지 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말이냐!"

"........................"

'어, 어떡하지.. ! 어쩐지 모든 말들이 미묘하게 진실처럼 들려서 말을 돌려줄 수가 없어!'

마침내 찍소리도 못하게 되어 버린 잇키.

여기서 알게 된 건, 아카자가 얼마나 교묘한 사람이었는지 뿐이었다.

100%의 거짓이 아니었기에, 부정할 수조차 없었다.

잇키의 매사에 진지한 성격을, 실로 잘 이용해먹고 있었다.

그제야 어색한 미소와 함께 짜낸 잇키의 말은

"야~ 이것 참.. 뉘앙스란 무섭네요."

"망할 놈."

오물을 보는 듯한 눈으로 욕설을 들었다.

주위의 병사들이 방아쇠에 건 손가락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살기등등한 병사들을 손으로 제지하고, 시그너드가 의외로운 말을 꺼냈다.

".....뭐, 정보라는 건 어떤 경우에도 제 3자의 취지가 반영되는 법이지. 지구를 반 바퀴 돌 정도의 거리를 타고 오면서, 그 정보가 왜곡되는 것도 또한 진실일 테고. ......스텔라 님은 네 녀석을 어지간히 마음에 들어 하시기도 했고, 그 결승전에서 보여 준 모습을 보면, 네가 그저 인간쓰레기같은 놈이 아니라는 건, 우리들도 잘 알고 있어. 그러니 네 녀석에 관한 정보가 어느 정도로 정확한 건지는, 이제 별 상관 따위는 없어. 중요한 점은 그게 아니니까."

"무슨 말씀이신가요?"

"스텔라 님의 연인이라면 알고 있을 테지. 스텔라 님이 어떠한 고난을 넘어선 뒤에야 자신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는지를."

"....네, 뭐.."

그건, 스텔라 본인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능력이 발현됐을 당초, 스텔라는 용의 불꽃의 힘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몸을 불태워버렸다.

하지만, 스텔라는 소국 버밀리온에게 자신의 힘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어렸을 적부터 이해하고 있었다.

강한 블레이저는, 그 나라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주변의 반대를 뿌리치고, 결사의 각오와 함께 자신의 몸에 깃든 힘의 제어를 해낸 것이다.

모두, 이 나라의 국민들을 위해서.

......스텔라가 아직 5살 때의 이야기였다.

"스텔라의 황족으로서의 긍지엔, 저도 압도당했었지요."

"정말 자상하신 분이시지..."

시그너드는 곱씹듯 읊조리고

"하지만, 스텔라 님이 그리 생각하시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또한 스텔라 님을 지키고 싶어."

"......!"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스텔라 님을, 딸로, 동생으로, 누나로, 가족으로 사랑하고 있으니까. 소중히 여기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우리를 넘어서지 못한 채 그 연담을 매듭짓는 일 따윈, 절대로 용납할 수 없어! 결코 용서치 못해!"

다시금 잇키를 노려보며, 큰 소리로 고했다.

"잇키 쿠로가네! 버밀리온 황국민은 네 녀석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스텔라 님을 데려가고 싶다면, 기사답게 검으로 우리 모두에게 보여 봐! 네 녀석이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고, 기품있고, 그리고 자상한.. 우리가 사랑하는 소녀의 반려에 어울리는 남자인지를!"

' ' '그래! 맞아!!!' ' '

' ' '그렇지 못하면 절대로 인정 못 해!!' ' '

시그너드에 동조하며, 지붕 위에 있는 병사들과, 어느 샌가 건물 아래를 가득 메운 군인과 국민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질렀다.

그 광경을 보고, 잇키는 그제야 자신이 놓여진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별 다를 것도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나라는───

'국민이 모두 팔불출인 거였구나...!'

넘어서야 할 게 스텔라의 아버지 뿐이었다니, 아주 커다란 착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보통 이런 생각까진 못 할 테니까.

아무리 한 나라가 모두 가족이라는 말을 스텔라에게서 들었다 할지라도, 일본인인 잇키에게 있어 황족과는 먼 존재였다. 황족이 어디 사는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는 사실도, 모두 결정된 뒤에야 뉴스가 되어 보게 되는 정도.

황족의 결혼 상대를 자신들이 시험해 본다는 그런 경우는, 생각도 해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구나. 확실히 일리가 있어요."

◆◇◆◇◆

"......!"

그 순간, 국민을 대표해 잇키와 대치하고 있던 시그너드는 보았다.

잇키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띠어진 것을.

그리고

"스텔라도 전에 말했어요. 자신과 국민은 한 나라이면서 한 가족이라고. 그렇다면 당신들의 분노는 당연한 거에요. 당신들을 납득시키지 않고 스텔라를 데려간다니, 그런 걸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죠. ──이 결투, 제가 거절할 이유 따윈 없어요."

이국에서 자신들의 공주를 빼앗으러 찾아 온 이 남자는, 손에 든 흑도를 가볍게 들어올린 뒤, 내키지 않는다는 기색 하나 보이지 않고 도전을 받아들였다.

"읏....! 위세 하나는 좋군. 그렇다면───"

"단!"

하지만, 시그너드가 병사들을 제지하고 있던 손을 내리려던 찰나, 잇키는 말했다.

"단, 이쪽도 하나 조건이 있어요."

"조건?"

"당신들 모두를 쓰러뜨리는 게 아닌, 당신들 모두를 따돌리고, 스텔라가 있는 곳까지 도착한다면 제 승리로 하고 싶어요."

"승리 조건을 쉽게 만들겠다는 건가?"

그에 대해, 잇키는 "아니에요." 라고 한 마디로 답했다.

"저와 당신들이 깊이 사랑하는 소녀가, 당신들이 다치는 것을 바라지 않을 테니까에요."

"읏───!"

그 답에, 시그너드는 말문이 막혔다.

잇키가 스텔라라는 소녀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확실히 이런 제안을 뿌리치는 사람에게, 스텔라에 대한 사랑을 언급할 자격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좋아. 도망칠 수 있다면, 어디 도망쳐 봐!"

시그너드는 잇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병사들을 제지하고 있던 오른손을 밑으로 내렸다.

그 순간, 폭포와도 같은 소리가 터져나오며, 수백 발의 납탄 호우가 잇키를 향해 발사되었다.

하지만, 이 때, 잇키는 이미 행동을 마치고 있었다.

《음철》을 들고, 시그너드와 국민들의 도전을 받아들인, 그 때에 이미.

일반인은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의 찰나의 순간에

───자신의 발 밑에 있던 지붕을 절단해버린 것이다.

잇키가 가볍게 발을 굴러 지붕을 내리치자, 잘려나가 있던 지붕은 손쉽게 붕괴되었다.

깔끔히 동그랗게 잘려진 구멍 속으로, 잇키가 물에 빠지듯 사라졌다.

이래서야 당연히 총탄 따위는 맞질 않는다.

'저 녀석! 지붕을 잘라내 도망쳤어!'

"큭! 건물 문과 창문을 포위해! 나오는 틈을 놓치지 마!"

시그너드는 바로 건물 출입구에 서 있던 병사들에게 경계를 명했다.

이것이, 큰 실수였다.

왜냐면, 잇키는 구멍을 통해 그대로 건물 속으로 들어간 게 아니고,

───구멍 끄트머리를 잡고 버티고 있었으니까.

"영차!"

잇키는 시그너드의 지시에 따라 지붕의 경계가 허술해진 것을 확인한 뒤, 손가락에 힘을 주어 몸을 들어올려, 구멍에서 점프했다.

그리고

'시그너드 대위님! 저것을!'

병사가 알아채는 것보다도 빠르게, 성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 뒷모습에, 시그너드는 벌레를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런...! 페인트였나! 쫓아! 절대로 놓치지 마!"

' ' '오오오오오오오오옷!!!!' ' '

멀어져가는 잇키를 쫓으며, 병사들은 손에 든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발사되는 모든 총탄들을, 좌우로 스텝을 가하며 피했다.

발사음의 위치를 청각으로 확인.

탄속을 계산해 도달 시간을 예측하고,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로.

그 움직임은, 발치가 불안정했음에도 실로 재빨랐다.

어떻게 보면, 평지 공항을 달려나갈 때보다도.

그것도 모두, 지금에야 잇키의 심신 컨디션이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모두, 버밀리온 황국민들 덕택이었다.

그들이 진심으로 상대를 해 온 덕에, 잇키는 알게 되었다.

'스텔라의 반려로서 인정받겠어'

'스텔라를 데려가겠어'

그것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진심으로 사랑을 하고 있다면,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고 있다면.

───내주지 않을 거야.

자신이 스텔라를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버밀리온 국민들은 어디까지나 진지한 마음가짐이었고, 잇키는 알게 되었다.

그들도 또한, 자신과 같다는 것을.

그렇다면, 인정받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인정을 받으려 했던 것이 애초에 잘못이었던 것이다.

같은 소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공통점.

그 소녀를 손에 넣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하나 뿐.

스텔라의 손을 잡고, 끌어안은 뒤, 빼앗아간다.

상대보다도 더욱 강한 힘으로.

───마음으로!

'그 마음가짐의 강도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

그들에게도,

스텔라의 아버지에게도.

───결코!

그 이외에, 그들을 납득시킬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심경에 다다른 순간, 잇키는 그제야 감정을 매듭지을 수 있었다.

───인정받지 못할 지도 모른다.

바로 어제까지 잇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그런 약한 생각은 모두 무산되었고, 그는 타오르는 눈빛으로 똑바로 성을 바라보았다.

이제 두 번 다시, 인정을 받는다, 스텔라를 받아 온다라는, 약한 마음은 먹지 않겠다고.

빼앗아온 뒤, 인정받겠어...!

그것이, ───쿠로가네 잇키의 삶이었고, 스텔라가 사랑해 준 자신이었으니까.

'뭐, 뭐야.. 저 녀석! 뒤에 눈이라도 달렸나!?'

'거기에 이 불안정한 지면에서, 어떻게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 거야...!'

'대위님! 안 되겠어요! 따라붙을 수가 없습니다!'

"치잇..!"

마음에 짐이 사라지고, 한 층 가벼워진 몸놀림을 갖게 된 잇키에게, 병사들이 따라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잇키는 지붕과 지붕 사이를 도약해 나아가며, 순식간에 추격자들을 따돌렸다.

병사들은 손에 든 총을 들고 잇키를 향해 발사했지만, 그 모든 총탄은 빗나갈 뿐이었다.

병사들의 사격 실력이 나쁜 것이 아니었다.

잇키가 좌우로 스텝을 가해, 총탄을 정확하게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총탄의 속도는 이미 보았다.

그리고, 기억했다.

그렇다면, 발사음의 위치와 각도에서, 총탄이 날아올 타이밍은 대충 역산해낼 수 있다.

대충 계산해 낸 그 결과로 회피를 하면, 오차를 포함해 회피하는 건 가능하다.

여기엔, 시그너드도 혀를 내둘렀다.

그의 운동 능력의 수준은 알고 있었지만, 시그너드가 본 건 어디까지나 평평한 링 위에 서 있던 잇키였다.

주로 봤던 건 그의 검술 실력 뿐.

노블 아츠 《일도수라》의 인상도 있었기에, 그저 시합에 특화된 실력만을 지닌 기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시그너드는 뼈저리게 느꼈다.

그 검기를 지탱해주는 근간, 기반.

보통내기가 아닐 정도의 수련으로 갈고닦은, 잇키의 신체능력과 집중력. 그리고 공간 파악 능력을.

잇키는 이 모든 지형을, 그리고 이 모든 습격을 아무 어려움 없이 이겨나가고 있었다.

언제나 머리를 회전시키고, 순간순간에 최선의 행동을 선택하는, 전국을 타파해 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그 강인함,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이용하는 능력.

'───이 남자, 정규 시합보다도 전쟁에서 실력이 살아나는 타입인 건가...!'

비 블레이저인 군대 따위는 상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잇키라면 단신으로 적진에 파고들어 적장의 목을 취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스텔라같은, 대군을 단방에 무찌르는 화려함 같은 것은 없었지만, 마치 날카로운 바늘처럼, 적의 몸에 깊숙히 박히는 돌진력을 보유하고 있다.

얕보고 있었다.

저런 것을 우리만의 손으로 무찌르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들을 쉽게 따돌릴 순 없을 거야...!'

◆◇◆◇◆

'이상해..'

시그너드 무리들을 완전히 따돌리고, 홀로 버밀리온국의 건물 지붕 위를 질주하고 있던 잇키는,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추격자들은 이미 완전히 따돌린 상태라, 그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상태였음에도───

'계속해서 날 쫓고 있는 시선이 둘이나 있어.'

거기다 그 중 하나는,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대체 어디지?

오른쪽도 아니다.

왼쪽도 아니다.

앞도, 뒤도, 위도 아니다.

───그렇다면,

"───아래쪽인가!"

그 순간,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물보라를 일으키며, 잇키 바로 아래에서 세 쌍의 창날이 튀어나왔다.

잇키는 이걸 가까스로 《음철》을 이용해 막아냈다.

하지만, 그 탓에 움직임이 제지되었고

"헷, 지금이야, 밀리!"

미늘창을 손에 들고 지붕 안에서 뛰쳐나온 갈색 피부 소녀가 소리치고

"아니, 안 말해도 다 알거든요~"

그 직후, 잇키의 귀에 메마른 작렬음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대퇴부에 내달리는 벼락을 맞은 듯한 예감.

'저격인가......!'

"훗!"

"오오옷!?"

몇 번이고 사선을 넘나들며 갈고닦은 직감은, 잇키의 몸을 흐르듯이 움직이게 해 주었다. 미늘창의 긴 손잡이에 체중을 실은 발차기를 날려, 첫 습격자를 뿌리친 뒤

"차앗!"

바람을 가르며 쇄도해 들어오는 검은 총탄을,

일도양단.

베어내었다.

베어낸 탄환은 《음철》의 칼날을 타고, 잇키의 좌우로 갈라졌고───

"아핫☆"

"윽......!?"

그 직후, 좌우에서 잇키의 양쪽 다리를 향해, 반구 형태의 탄환이 급선회하여 다시금 날아들었다.

잇키는 이 탄환을 반사신경을 이용해 뒤로 도약해 피했다.

그건 적의 공격을 피했다 하더라도 방심하지 않는, 언제나 불리한 싸움만을 이겨온 잇키의 집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회피였다.

반원 형태의 탄환은 목표를 잃고 지붕에 박혔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와~ 이 사람 좀 봐~ 진짜 빠르다~ 지금 타이밍에 피하다니, 진짜 완전 짜증이거든요~"

"헤헤. 뭐, 그 정도 실력이 없어서야 우리 상대로 버틸 수도 없을 테니까."

잇키에게 발차기를 맞은 소녀는, 공중에서 몸을 빙 돌려 붉은 기와 지붕 위에 착지했다.

그녀의 곁엔, 작은 머스켓 총을 든 소녀도 있었다.

갑자기, 지붕을 부수고 나타난 것도 아닌, 마치 수면에서 뛰쳐나왔다는 점.

방금 보았던,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궤도로 이쪽을 향해 날아 온 탄환.

그로 인해, 잇키는 알게 되었다.

틀림없이 이 둘은───

".....블레이저군."

"만나서 반가워, 스텔라의 남자친구~! 난 버밀리온 국립 마도 학원 1학년, 티르밋 그레이시! 방금 반응은 상당히 좋았어!"

"어라아~? 자기소개 분위기로 가는 거야~? 그럼 나도 일단은 해 둘까. 안녕~ 버밀리온 국립 마도 학원 1학년, 밀리아리아 레이지에용~ 스텔라랑은 뭐, 어렸을 때부터 절친 같은 거랄까~?"

"쿠로가네 잇키입니다. ......당신들도 절 시험하기 위해서?"

그리 묻자, 티르밋이라 소개를 한 소녀가 껄껄 웃으며

"아~ 그건 아냐. 우린 딱히 스텔라가 어떤 놈이랑 결혼하건 신경도 안 쓴다고. 그런 건 그 녀석이 결정할 일이잖아?"

일러스트

"우리 목적은 있지, 이거야~"

그리 말하고, 밀리아리아가 한 장의 종이를 꺼내 잇키에게 보였다.

거기엔 잇키의 얼굴이 찍힌 사진과 함께───

DEAD OR ALIVE 라는 문자.

"현상수배가 되어 있다고!?!?"

"그래. 널 잡아 오면 군에서 현상금을 받을 수 있어. 그것도 100만 유리스!"

"저번 주에 엄청 예쁜 가방 보게 됐거든? 근데~ 돈이 부족해서 이 밀리, 엄~청 곤란해 하던 참이었어~ 그야말로 딱 좋은 타이밍이라 해야 하나아~?"

아무래도 수배서는 황국 육군이 마을에 배포한 모양이었다.

덧붙여 말하자면, 100만 유리스는 일본 엔화로 1억 엔.

파격적인 금액이다.

그 금액에, 잇키는 알게 되었다.

적이 얼마나 진심인지를. 그리고, 군이나 여기 있는 티르밋 일행의 뒤에 있는 존재를.

'군대라는 집단이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국민의 독단적인 판단은 아니었을거라 생각은 했지만───'

절대왕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버밀리온 황국에서 이런 금액을 국고에서 꺼내올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을 것이다.

이 소동엔, 버밀리온 국왕도 관여되어 있다.

주도를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협력하고 있는 건지, 어느 쪽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용인은 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을 완전 죽일 작정인가 보네...'

뭐, 그 시합을 보고 난 뒤라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지.

그리 생각하며, 잇키가 자신에게 향해 오는 엄청난 적의에 쓴웃음을 짓고 있자

'저기 있다! 100만 유리스다!'

'젠장! 벌써 저 문제아 콤비랑 만났어!'

'저 자식들, 이럴 때만 진짜 일손 하난 빠르다니까!'

'저 둘한테만 좋은 부분을 빼앗길 수는 없지! 가자!'

티르밋과 밀리아리아 이외에도, 상금에 눈이 이끌린 자들이 지붕을 타고 자신에게 접근해오고 있었다.

이걸 본 티르밋과 밀리아리아는

"어이쿠, 하이에나 놈들이 모이기 시작했네."

"그럼 빠르게 끝내 보도록 할까~"

다시금 전투태세를 취했다.

티르밋은 자신의 디바이스 《트리아이나》의 능력을 발동.

"《물질잠행》!"

방금처럼, 지붕이라는 물질을 자신에게만 바다로 통하도록 바꾸어내어, 그 내부로 잠수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파트너인 밀리아리아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컬러미티 바렛》──3연사!"

머스켓 총 형태의 디바이스에서, 3발의 탄환을 발사했다.

그 형태는 머스켓으로 보였지만, 그녀의 디바이스에 장전이라는 개념 따윈 없었다.

그리고, 이 탄환은 단순히 허공을 똑바로 날아오는 탄환 같은 것이 아니었다.

방금 일격을 겪고 그걸 알고 있던 잇키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그 총탄을 피하려 하지 않고, 곧바로 방향을 틀어 도주했다.

그러자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탄환은 급격히 커브를 틀어 도망을 친 잇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절대 명중이라는 개념을 지닌 밀리아리아의 디바이스, 《카스퍼》의 능력이다. 몇 번을 튕겨내건, 탄환이 양단되건, 적을 꿰뚫을 때까지 계속해서 추격하는 총탄.

실로 까다로운 능력이다.

하지만.

공략법은 이미 세워 뒀다.

잇키는 자신의 주위를 선해하며 날아들어 오는 탄환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가며, 지붕 위로 솟아오른 곳을 향하 달려나갔다.

굴뚝.

'방금처럼, 유인을 한 뒤 벽에 박히게 만들면 그만이야.'

하지만───

"하지만 여기서 깜짝 상황~!"

굴뚝에 접근한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굴뚝 측면에서 삼지창이 뻗어나왔다.

이 공격에, 잇키는 재빨리 몸을 비틀어 피부 한 끗 차이로 회피.

그리고 곧바로 굴뚝에서 벗어났다.

'벽에 다가가면 티르밋 씨가 공격해 오는 건가...!'

"계속 간다~!"

"큭.."

거기다 도망을 간 곳의 발치에서도, 계속해서 삼지창이 뻗어나오고 있었다.

이로 인해 잇키는 한 곳에 서 있는 것도, 총탄을 유인해 낸다는, 유도 쪽의 정석적인 공략법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컬러미티 바렛》의 약점을, 언제나 이렇게 능숙히 커버해주고 있는 것이다.

"아주 좋은 콤비에요...!"

"당연하지! 그도 그럴 게, 나랑 밀리는 이 나라에선 셋밖에 없는 C랭크 기사니까!"

"그렇게 칭찬해도~ 안 봐줄 거거든~"

그리 말하고, 밀리아리아는 속도가 감쇠하기 시작한 《컬러미티 바렛》의 제어를 포기.

그리고 다시 세 발의 《컬러미티 바렛》을 발사하여, 새로운 탄환으로 잇키를 무자비하게 공격하였다.

거기에 더불어, 마치 이동을 방해하려는 듯 발치로부터 불규칙적으로 뻗어 오는 삼지창.

상하좌우 전방위에서, 빈틈조차 없이 날아들어 오는 그 공격은, 그 잇키라 할지라도 방어만 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잇키는, 온 힘을 다해 지붕 끄트머리까지 달려나간 뒤, 크게 도약했다. 다른 건물로 이동하여, 《잠행》을 하고 있는 티르밋을 따돌렸다.

잇키를 추격하던 둘은, 이미 그렇게 나올 것이란 계산을 하고 있었기에, 예측하고 있었다.

이 티르밋과 밀리아리아의 연속 공격을 받는 자들은, 대부분 그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밀리아리아는 히죽, 하고 웃었다.

"아핫☆ 그러기만을 기다렸다구~!"

그 순간, 밀리아리아는 다시금 속도가 줄어든 《컬러미티 바렛》을 포기.

그리고 다시금 새로이 3발의 《컬리미티 바렛》을, 공중을 향해 도약한 잇키를 조준하여 발사했다.

그렇다. 이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이 밀리아리아와 티르밋의 콤보 공격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특수한 능력을 지닌 블레이저 외엔, 공중에서 어떠한 동작을 취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완전한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그런 자세로 방금 막 쏘아낸, 최고 속도를 지닌 《컬러미티 바렛》을 피하는 것따윈, 불가능하다.

쇄도해 들어오는 세 발의 탄환.

여기에, 잇키는 공중에서 몸을 반전시켰다.

검을 손에 들고, 영격 자세를 취했지만───

'그것도 아~무 의미 없다구~'

베어 내건, 튕겨내건, 《컬리미티 바렛》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베어 내면, 방금처럼 총알의 갯수가 늘어날 뿐.

튕겨 내면, 도탄된 힘을 이겨낸 뒤, 몇 번이고 목표를 향해 날아들어간다.

───그럴 터였다.

그렇기에, 밀리아리아와 티르밋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아앗!"

세 발의 탄환이 잇키를 꿰뚫기 위해 동시에 착탄한 순간.

잇키의 주변에 세 개의 참광이 일은 직후, 《컬리미티 바렛》은 완전한 추진력을 잃고, 중력에 의해 힘없이 지면에 떨어졌고, 잇키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밀리아리아와 티르밋이 있는 건물보다 더 낮은 건물에 착지했다.

"어라?"

예상치 못한 결말에, 밀리아리아가 혼란에 빠졌다.

쿠로가네 잇키의 능력은 신체 강화였을 터.

그런데 어떻게, 자신의 노블 아츠를 무효화시킬 수 있었던 거지? 라고.

하지만, 밀리아리아보다 좀 더 높은 체술 센스를 지닌 티르밋은, 돌로 이루어진 바다 속에서 지금의 잇키가 벌인 신기에, 전율을 느끼며 알아챘다.

'완전 상쇄인가...!'

그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잇키는 지금까지의 공방. 즉, 밀리아리아가 탄환을 새로이 두 번 쏜 것을 보고, 그녀의 능력이 확실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탄도'일 뿐, 쏘아낸 탄환을 '재가속'시키는 능력은 없다는 것을 간파해낸 뒤, 탄환에 담긴 에너지와 완전히 일치하는 운동에너지를 가하여, 앞으로도, 뒤로도 튕겨내는 것도, 그리고 베어내는 것도 아닌, 모든 운동 에너지를 상쇄시켜버린 것이다.

'밀리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탄환'일 뿐이고, '마시알'은 아니니까.. 이 점을 찌르면 우리로선 손 쓸 도리가 없어'

이런 기술을 지니고 있는 적을 상대로, 《컬러미티 바렛》은 무력하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다.

티르밋은 그리 결심하고, 물을 강하게 박차 수면을 향해 급부상.

"《부상돌격》───!!"

건물 벽에서 뛰쳐나왔다.

양 건물끼리의 거리는, 정확히 10미터.

그 거리를, 티르미트는 순식간에 날아들어 잇키에게 접근하였다.

높이가 낮은 건물에 착지한 잇키의 비스듬한 윗쪽 방향에서, 그의 머리를 향해 삼지창을 찔러 들어갔다.

그에 대해, 잇키의 움직임도 신속했다.

그는 곧바로 《음철》을 위로 들어, 티르미트의 돌진을 막아낼 자세를 취했다.

10미터의 거리에서 날아 오는 돌진을 막아내는 건, 그에게 있어 식은 죽 먹기 정도.

하지만, ───그것이 바로 함정이다.

'일단 미끼는 뿌려 뒀어..!'

첫 공격 때, 티르밋은 일단 《컬러미티 바렛》으로 쓰러뜨리지 못했을 때를 위한 포석을 깔아뒀었다.

잇키가 막아낸 첫 일격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때, 티르밋은 일부러 자신의 돌진을 잇키가 막게 만듦으로써, 한 가지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트리아이나'로 행하는 돌진 찌르기는, 막아내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하지만

'잠행이 가능한 건, 건물 속만이 아니라고!'

상대의 디바이스도, 예외는 아니다.

밀리아리아와의 연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를 대비한 비장의 수를, 지금 꺼내들었다.

'트리아이나'는, 자신의 창 끄트머리를 막기 위해 앞으로 들린 잇키의 《음철》을,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통과하여, 일직선으로 잇키의 안면을 향해 쇄도했다.

'들어갔어!'

티르밋이 그리 확신한 찰나───

"그건 너무 노골적인걸."

확실히 잇키의 이마를 찔렀을 터인 '트리아이나'가, 잇키의 매끄러운 회피 동작에 의해 피부 한 끗 차이로 빗겨나갔다.

아주 약간의 몸놀림만으로 상대의 무기를 흘려 내는 오의──《천의무봉》이었다.

그 오의로, 잇키는 티르밋의 창을 피해냈고

"후웃!"

예기치 못한 방어에 의해 공중에서 무방비 상태가 되어 있던 티르밋을 향해, 《환상형태》의 칼날로 일섬을 가했다.

"크, 아앗...."

"그 거리에서부터 돌격을 해 오는 건, '제발 공격을 정면으로 막아주세요'라고 말하는 거나 같아요. 당신의 능력의 특성을 고려해 보면, 디바이스를 통과하는 것 정도는 손쉽게 예상할 수 있으니, 반격을 당하기도 쉽죠. 지금 건 상당히 위험한 공격이니, 두 번 다시 시도하지 않도록 하시길."

진짜 전장, 그리고 진짜 적이 상대였을 경우, 지금의 경솔한 공격은 티르밋의 목숨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따라서 잇키는 그녀의 경솔함을 나무라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곱씹을 틈도 없이, 강렬한 피로에 의한 의식의 암전이 티르밋을 덮쳤고, 지붕 경사를 따라 굴러떨어졌다.

"그럼 뒤는 맡겨 둘게요!"

상쾌한 미소와 함께 모든 뒷정리를 밀리아리아에게 맡기고, 도망을 재개했다.

"꺄아~! 티르야~!!"

블레이저라고는 해도, 마력으로 몸을 방어하고 있지 않으면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 기절한 상태에서 높이 10미터는 가까이 되는 건물 지붕 위에서 떨어진다면, 보통 부상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밀리아리아는 전력질주로 지붕 위에서 도약하여, 공중에서 티르밋을 받아든 뒤 착지했다.

그 뒤 건물 지붕 위를 바라봤지만, 이미 잇키의 모습은 없었다.

◆◇◆◇◆

잇키가 티르밋과 밀리아리아를 따돌릴 때쯤.

스텔라와 아스트레아 둘은, 황도 중앙에 있는 성에 도착했다.

"으음~ 역시 내 집이 가장 편하다니까~"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넓은 복도를 걸어나가며, 스텔라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매일 정성들인 청소는 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집이라는 건 신기하게도 마음이 가라앉는 듯한 냄새가 느껴지는 법이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 놓고 있는 건 나중에 해야 할 일.

자신의 국민들이 상대를 해 주고 있다 하더라도, 잇키를 너무 기다리게 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바마마는 지금 어디서 기다리고 있어?"

"식당으로 데려와 달라고 했으니, 그 쪽이 아니려나?"

그럼 서둘러 가자는 듯, 스텔라는 시녀에게 짐을 맡긴 뒤, 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식당으로 통하는, 양 옆으로 여닫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스테에에에에에엘로아아아아아아아아!!!! 보고 싶었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수염이 짙은 중년 남성이, 스텔라의 입술을 향해 로켓과도 같은 기세로 날아들어 왔다.

"꺄아아아아아앗!!!!!"

당연하게도 주먹이 날아갔다.

혼신의 카운터.

콰악, 하는 뭔가 위험한 소리와 함께 스텔라의 주먹은 중년 남성의 안면에 꽂혔고, 그대로 날려버렸다. 날아간 거체의 중년 남성은, 이상한 방향으로 틀어진 코를 억누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스텔라에게 항의했다.

"어, 어째서냐... 난 그저.. 환영의 뽀뽀를.."

"당연히 그것 때문에 때린 거지!"

여기에 스텔라는, 화난 표정을 지으며 중년───현 국왕임과 동시에 자신의 아버지인, 시리우스 버밀리온을 향해 따지고 들었다.

"벌써 15살이나 된 딸에게 그런 폭거가 용납될거라 생각해!? 이런 건 중대안 사안이라구!"

".....훗, 그렇게 새빨간 얼굴로 부끄러워 하다니, 정말 부끄럼쟁이라니까."

"화내고 있는 거야! 진짜 섬세함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다니까!"

그리 말하고, 스텔라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몇 개월만의 부친과의 재회가 이런 형태가 될 줄이야.

그녀로서도 이렇지만은 않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때 스텔라의 옆에서

"여보오~?"

주음과도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런, 하고 스텔라가 옆을 돌아봤을 때엔, 그녀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 아스트레아는 스텔라에게 맞아 한 쪽 무릎을 꿇고 있던 시리우스의 뺨을 양손으로 감싼 뒤, 시선을 자신에게 향하게 만들고

"나라는 아내가 있는데, 딸에게 키스를 하려 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요??"

늪과도 같은 어둠을 담은 커다란 눈동자를 한계까지 부릅뜬 채, 시리우스에게 질문했다.

"다, 당신...!?"

"바람? 바람 now 상태인 건가요~? 이 엄마, 혹시 딸한테 우리 여보를 'NTR' 당하는 건가요~?? 떨어지고 나서야 처음으로 둘의 관계에 소중한 무언가가 생겨난 건가요~????"

"히익....! 그, 그럴 리가 있나! 나는 1만년하고도 2천년 전부터 쭉 우리 여보야를 사랑했다고!"

"으음~~~~~~? 그게 정마알~~~~~?"

이마에 땀이 배어난 채 해명하는 시리우스의 눈동자에, 아스트레아는 자신의 안구를 접촉시킬 정도로 가까이 댄 채, 그를 바라보았다.

시리우스도 또한,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찰나의 순간이라도 아스트레아의 눈에서 시선을 떼었다간, 어떠한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1분 정도 계속한 뒤, 아스트레아는 그제야 시리우스의 뺨에서 양손을 뗀 뒤

"다행이다아~ 이 엄마도, 1억년하고도 2천년 전부터 우리 여보를 사랑했어요~"

방긋이, 온화한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이 다음에 또 스텔라한테 이상한 짓을 했다간, 벌 줄 테니까 그리 알아요~"

"A, Aye.. mom!!"

"못 말려! 아바마마가 이상한 짓을 하면 어마마마까지 이상하게 돼 버리니까, 조심하라구!"

"으, 응.. 나도 이상해져버린 우리 여보보다 상냥하고 부드러운 여보야 쪽이 더욱 좋으니까.."

그리 말하고 시리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헛기침을 한 번 한 뒤

"잘 왔다. 스텔라."

거암 같은 굳은 인상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스텔라를 포옹해 주었다.

"....응, 다녀 왔어, 아바마마."

여기에, 스텔라도 시리우스의 두터운 몸에 팔을 둘러, 포옹으로 답해주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으면 나도 때리거나 그러진 않았을 텐데..'

정말 못 말릴 아버지였다.

뭐, 그만큼 사랑해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몸을 뗀 뒤

"그런데 아바마마. 루나 언니는 아직 안 왔어?"

아까부터 계속 신경쓰고 있던 점을 물어봤다.

식당에서 가족회의를 한다고 했는데, 자신의 언니의 모습이 없던 것이다.

여기에 시리우스는 약간 심기가 불편한 듯한 표정을 짓고

"루나는 자기 결론은 이미 내려졌으니 알아서들 하라고 말한 뒤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지. .....나 참, 가족의 중요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말야."

"어쩔 수 없죠~ 대관 준비로서 이번 '전쟁' 준비는 루나한테 다 맡겨 뒀으니, 바쁠 테니까요~ 내일도 클레이델란트로 출장 나간다고 했으니까~"

그 아스트레아의 말에, 스텔라는 납득했다.

'전쟁'은 5년에 한 번 있는 중요한 외교.

그걸 코앞에 둔 지금, 조정 업무에 쫓기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해할 순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애초에 자신의 언니인 루나아이즈 버밀리온은 매사에 자신의 행동이나 판단에 긍정적인 태도였기에, 여기에 동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텔라는 그리 판단하고

"그럼 루나 언니는 공석으로 하고, 바로 가족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자."

식당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 모처럼 이렇게 돌아와 주었는데."

"안 돼. 지금 이러고 있는 사이에도 잇키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되거늘. 그럴 필요 없이 그 녀석은 여기까지 올 수도── 어이쿠"

"아바마마?"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냐! 그, 그렇지! 네 남자친구를 계속해서 기다리게 만드는 것도 좀 미안하니, 바로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할까!"

"......?"

갑자기 순순하게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아버지를 보고, 스텔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 아버지가 이상한 건 언제나 그랬던 일이니, 바로 관심 밖으로 돌려버렸다.

하지만, 그의 아내인 아스트레아는 무언가를 알아챈 듯

"여보오~? 혹시 맨날 그랬던 것처럼 또 이상한 짓을 꾸미고 있는 건 아니겠죠~?"

째릿, 하고 수상쩍어 하는 시선을 시리우스에게 향했다.

"무, 무슨 이상한 말을! 나는 공명정대한 버밀리온 국왕이야! 이상한 짓 따위는 조금도 꾸미고 있지 않다고! 와하하하핫!"

시리우스는 그리 호쾌하게 부정했지만,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나와 있었다.

그렇다. 뭔가를 꾸미지 않을 리가 없다.

시리우스 버밀리온은 이 날을 위해, 전부터 계속 무언가를 꾸며왔다. 칠성검무제가 끝나고 인사를 하러 온다는 말을 들은, 그 날로부터.

아스트레아와 루나아이즈 몰래, 시그너드를 통해 군대와, 전직 메이드장이었던 야나를 통해 국민과 협력을 하였고, 무턱대고 엄청난 금액의 상금까지 내걸어 쿠로가네 잇키를 향한 포위망을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지금, 버밀리온 황국은 국민 모두가 손잡고 쿠로가네 잇키를 쫓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시리우스는 확신하고 있었다.

──쿠로가네 잇키가 이 성에 찾아올 일은, 영원히 없을 거란 것을.

'무엇보다 이번엔, '그 녀석들'도 움직이고 있으니까...!'

비 전투원인 국민이나 비 블레이저인 군대, 그리고 상금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자들로는, 어쩌면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A랭크 기사인 자기 딸을 두 번이나 이긴 남자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돌파해낼 수 없을 것이다.

버밀리온 황족에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고, 스텔라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충의의 '파수견'들.

일러스트

'그 녀석들'이 스텔라에게 접근하려는 자를 놓칠 리가 없다.

'부탁한다. 버밀리온 황국 황실 친위대...!'

◆◇◆◇◆

시리우스가 강한 염원을 담은 그 때.

황도 주변에 있는 성 아래쪽의 마을을 빠져나가, 고급 주택가로 통하는 다리에 도착한 쿠로가네 잇키는, 그 다리 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황실 친위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잘도 여기까지 왔군, 잇키 쿠로가네! 역시 스텔라 전하와의 싸움에서 이긴 남자다! 하지만! 네 녀석의 쾌진격도 여기까지다! 이 마을에서 귀족가로 통하는 다리는 여기를 남겨 두고 모두 무너뜨려 뒀지! 왕성으로 향하기 위해선, 이곳을 지나가야만 한다는 말이다! 허나! 보거라! 우리가 자랑하는 정예를! 우리야말로 버밀리온 황국의 방패이자, 스텔라 전하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 버밀리온 황실 친위대이다!"

"L! O! V! E! 스! 텔! 라!"

"L! O! V! E! 스! 텔! 라!"

"Lovely! Lovely! 스! 텔! 라!!!"

" " "휘유우우우우우우~~~~~~~~~~~!!!!!!" " "

'뭐, 뭐지.. 이 사람들은...!?'

붉은 핫피를 입고, 야광봉을 손에 들고 엄청난 기세로 상반신을 놀리는 50명 정도로 이루어진 집단에, 잇키는 곤혹한 나머지 나아가던 발을 멈추고 말았다.

무에 몸을 담아, 몸놀림에 있어 일가견이 있는 그였기에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몸놀림이, 엄청난 단련 끝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애초에

'이 무슨 세련되면서도 쓸데없는 움직임...!'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조차 전혀 모르겠다.

한 편, 자신들을 앞에 두고 발을 멈춘 잇키를 보고, 집단의 선두에 선 남자, 친위대장은 흡족한 듯 웃었다.

"큭큭. 녀석은 우리들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통솔과 충성심에 찍소리도 못하게 되어 버린 것 같군. 하지만, 지금 와서 겁먹고 용서를 구한다 해도 이미 늦었다! 스텔라 전하를 음흉하게 꾀고 있는 그 대죄, 우리의 검으로 단죄해 주겠다! 그걸 위해서, 지금부터 네 녀석의 죄상을 확인하도록 하겠다!"

친위대장이 그리 고하자, 그의 뒤에서 빙빙 도는 미스테리한 동작을 취하고 있던 친위대의 움직임이 뚝, 하고 멎었다.

모두들 진지한, 혹은 어딘가 절박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하다.

지금부터 할 문답은, 어떻게 보면 그들의 존재의의에도 관하게 될 테니까.

모두들 마른침을 삼키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침묵 속에서, 몇 번의 심호흡 뒤, 친위대장은 일동을 대표하여 잇키를 향해 물었다.

"네 녀석이 우리 스텔라와, 가, 가가가가... 같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정보는.. 사실인가!?"

"에, .....으음... 네. 그건 사실이에요. 이사장 선생님이 그리 하라고 지시하셨으니까요."

" " "그아아앗!!!!!!!!!!" " "

그 직후.

다리를 봉쇄하고 있던 친위대 중 반 정도의 인원이 객혈을 하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대장니이임!! 이등병들이 쓰러지고 있습니다!!"

"에잇! 빈약한 것들! 내가 그렇게 NTR 야겜을 해서 각오를 다져 두라고 말했거늘.. 준비를 게을리 했군....!!"

"그, 그리 말씀하시는 대장님도 주먹에서 피가..! 너무 굳게 쥐신 나머지 피가!!"

"침착해라! 아, 아직 같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확인한 것뿐이야! 그저 같이 생활하고 있을 뿐인 걸지도 몰라! 그럴 거야! 듣자 하니 이 남자는, 실가와의 사이가 좋지 않은 탓에, 그 때 퍼졌던 스텔라와의 스캔들도 그의 실가 쪽에서 날조하여 뿌렸다는 설도 아직 근근히 나돌아다니고 있는 실정이니까...! 그런 면으로 말해 봐! 이, 이 사진은.. 가짜인 것이냐아아아!!?!?"

그리 말하고 친위대장이 잇키에게 내민 것은, 예전에 잇키와 스텔라의 관계를 폭로해 낼 때 쓴, 월간지의 사진이었다.

다시금 보니 실로 잘 찍혀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프로의 솜씨 같았다.

그 선명하게 찍힌 사진에, 잇키는 쑥스럽다는 듯 눈을 돌리며

"아뇨, ....그건 진실이에요. 저와 스텔라는 연인 사이이니, 키스 정도는.."

" " "으갸아아아아아악~~~~~~!!!!!!!!!!" " "

그 순간, 목이 졸린 가축 같은 목소리가, 버밀리온 상공에 드높이 울려퍼졌고, 생존한 친위대원 중 거의 모두가 졸도. 처음 쓰러졌던 자들도 무의식 도중 잇키의 답을 뇌로 받아들여버린 탓에, 격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흐,흐흐허흐허흐허허둥대지 마라아아아아앗! 이, 이건 우리를 동요시키기 위햔 햐, 햠뎡이야하아!!"

"대장님! 진정하세요! 너무 동요하셔서 혀가 잘 돌질 않고 있다고요!"

"자, 잠깐만 기다리도록!"

그런데, 그 때였다.

산더미처럼 쌓인 시신(?)더미에서 깡마른 한 남자가 기어오더니

"이것만 말해 줘..! 네가 정말로 스텔라와 사귀고 있다면, .....설마.. 넌 이미 스텔라와.. 세, 세세세... 섹───"

"입 다물지 못할까, 머저리 같은 놈아!!!!!!"

"푸헤엑!?"

하지만, 깡마른 남자가 잇키에게 질문을 채 다 하기도 전에, 친위대장이 그의 말과 안면을 짓밟아버렸다.

"네, 네네네네.. 네 이놈!! 경박한 질문은 삼가도록! 너 임마! 그, 그러다가 혹시 '네, 맞아요' 라던가, 혹은 미묘한 침묵 같은 답을 해 버리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친위대를 절멸시킬 생각이냐!!"

"히익, 죄, 죄송합니다!"

그 뒤로, 친위대장은 흘린 피눈물을 닦는 듯한 큰 심호흡을 한 뒤, 전멸당한 부대원들에게 격려를 보냈다.

"너희들도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황실 친위대! 우리들은 아직 무엇 하나 확인하지 못했어! 이 남자가 허위 신고를 하고 있을 가능성도.. 아직 남아 있어! 희망을 버리지 마! 지금 문답으로 확실히 알게 된 건 하나 뿐! 단 하나 뿐이다! 그건, 이 남자의 말이 진실이건 허위이건, 우리는 이 녀석을 절대로 용서치 못한다는 것뿐이다아앗!! 모두들 검을 들어라! 썰어버려라아아앗───!!!!!!!"

" "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 "

이 친위대장의 호령은, 다리 위에서 경련하고 있던 자들까지 부활시켰다. 친위대는 그 모두가, 각자의 디바이스를 현현시킨 뒤 잇키를 향해 전력으로 돌진했다.

적의 수는 50명.

그것도, 모두가 블레이저.

넓은 곳에서의 전투를 불리하다.

그렇다면

'먼저 나선 발빠른 자들부터 정리한 뒤, 일단 골목 속으로 숨자..!'

좁은 골목길이라면, 수의 유리함을 살릴 수 없게 된다.

잘만 한다면, 최소한의 전투로 상대를 따돌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잇키는 순식간에 그리 판단하고, 작전을 세운 뒤

"하앗!"

"크학!"

먼저 달려나온 친위대 셋을 《환상형태》로 베어내 기절시킨 뒤,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으, 으오오오오오오오오오아아아아아아아앗!!!"

"윽...!"

칼에 베인 친위대는, 목에서 붉은 피 같은 마력광을 흩뿌리며 마치 도깨비 같은 형상을 짓고 다시금 일어난 뒤 달려들어왔다.

잇키는 가까스로 그들의 반격을 막아냈지만, 동요한 표정을 내비쳤다.

'《환상형태》로는 쓰러뜨릴 수 없는 건가....!'

체력을 직접 깎아버리는 《환상형태》의 데미지는, 육체적 손상을 동반하지 않는다. 팔을 베이면, 베인 팔 부분이 움직이지 않게 되지만, 실제로 손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건 모두 강한 '베였다는 생각'에 의한 일시적인 작용일 뿐이다.

원래, 이 디바이스가 가져다주는 '생각'은 인체에 강렬하게 작용하여, 어찌해도 그걸 뿌리칠 수는 없다.

치명상을 받으면, 기절한다.

그것이 보통.

하지만 극히 드물게, 이 '생각'을 의지의 힘으로 넘어서는 자들이 존재한다. 결사의 각오라는 말조차 뜨뜻미지근하게 들릴 정도의, 육체와 정신 모든 것을 초월한 기력으로 싸움에 임하는 자.

그런 자들에게, 《환상형태》의 칼날은 통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런 사람 자체가, 극히 드물었다.

드물었기에, 잇키는 경악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자신 앞에 있는 황실 근위대.

겉보기엔 정말이지 이상한 자들이었지만..

'이 강한 마음은 진짜야..!'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그들의 강한 의지에 삼켜져 버리고 말 것이다.

잇키는 그걸 확신한 뒤, 자신도 질 수 없다는 듯 달려 오는 셋을 강하게 밀쳐냈다.

그 순간

"응?"

펄럭, 하고 친위대원의 잘려나간 핫피 소매 안에서, 한 장의 종이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종이는 마치 알아서 다가오듯 잇키의 발치로 떨어졌다.

"이건..."

잇키는 거의 반사적으로 그걸 집어들었다.

그러자

"앗! 소, 손대지 마!"

떨어뜨린 친위대원은 절규에 가까운 외침으로 잇키의 행동을 제지했다.

하지만, 그건 이미 늦었고───

잇키는 보게 되었다.

엉덩이 사이에 낀 수영복을 바로잡으려는, 스텔라의 사진을.

"─────........................"

"그건 황실에 충성을 맹세한 친위대만에게 부여되는 훈장이야! 이리 내!!!!!!"

황족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도 아끼지 않는다.

그런 충성심을 대가로, 친위대장에게서 부여받을 수 있는, 비장의 희귀 사진. 그 보물에 멋대로 손을 댄 잇키를 보고 남자는 격노하여, 서양검을 내리쳤다.

그건,

아아, 그건..

──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을까.

그 이유는..

"친위대에게밖에 주지 않는다는 건 즉, 여기에 있는 '녀석들'은 전부 이걸 가지고 있다는 걸로 봐도 되겠죠?"

씨익, 하고 입으로만 웃음지으며, 지금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도 가장 화가 난 남자에게서 도망칠 마지막 찬스를 자기 손으로 내버리고 만 것이니까.

───훗날, 친위대원들은 전율하며 말한다.

자신들의 공주는, 해가 나는 나라에서 '도깨비'를 데려왔다고.

◆◇◆◇◆

'이상한데.....'

시리우스는 묘한 고동을 느끼고 있었다.

잇키가 버밀리온 황국에 온지도 벌써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국민에게도, 군에게도, 그리고 친위대에서도 잇키를 쓰러뜨렸다는 보고가 들어오지 않는 건, 무슨 이유에서란 말인가?

검 실력은 확실하다 하더라도, 고작 F랭크의 단일 전력.

군대까지 동원하였으니, 고전을 할 리는 전혀 없을 터인데───

"아바마마!"

"───읏!? 오, 오오. 무슨 일이냐, 스텔라."

"무슨 일은 무슨! 아바마마가 나한테 잇키가 어떤 사람인지 듣고 싶다고 해서 이렇게 말해 주고 있는데, 뭘 그리 멍하게 있는 거야!?"

"아, 아니! 멍하니 있진 않았다고!?"

"정말로? 확실하게 듣고 있던 거야?"

전혀 듣질 않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자기 딸이 남자친구 자랑을 하는 것 따위는 듣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말을 솔직히 입 밖으로 냈다간, 그야말로 통구이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러니 시리우스는

"아, 아아. 들으면 들을수록 기특한 젊은이라 느껴지더구나. 그야말로 사무라이라 해야 할까. 역시 내 딸이야. 남자를 보는 눈은 확실히 있다니까."

듣지 않아도, 어차피 스텔라는 그 남자에 대해 좋은 점을 자랑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쪽도 거기에 맞춰 그럴 듯한 칭찬해 준다면 납득할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떨었다.

여기에, 스텔라는 빛날 정도의 미소를 지으며

"그, 그치!? 잇키는 정말 멋지다구! 아바마마도 겨우 알아 주었구나!"

이 스텔라의 기쁜 표정에, 시리우스는 자신의 실책을 알아챘다.

'이, 이런. 분위기에 끌려 말을 맞추고 있었는데, 이대로 가다간 가족회의가 끝나 버릴 것 같군.'

아직 잇키를 쓰러뜨렸다는 보고가 들어오지 않은 채이니, 그건 좋지 않다.

최악의 경우, 스텔라가 도망다니는 잇키에게 가세할 수도 있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그럼 얼른 야나 아줌마한테 연락해서 잇키를───"

"자, 잠깐만, 스텔라!"

"에, 왜?"

핸드폰을 꺼내려던 스텔라를 제지하고, 시리우스가 말했다.

"확실히 멋진 남자이긴 하지만, 결혼을 한다면 이야기는 달리지지!"

"그,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넌 버밀리온 황국의 제 2황녀잖느냐. 당연히 그 결혼엔 필시 정치적인 이런저런, 으음.. 그런 것이 얽히기 마련이겠지. 그런 쪽의 의견이라면 차기 버밀리온 국왕이 될 루나의 의견도, 역시 인사를 하기 전에 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만..."

이 시리우스의 말에, 스텔라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지금 와서 그건 아니잖아!"

라고 항의했다.

당연하다. 그런 건 가족회의가 열리기 전에 해야 할 말이니까.

"그런 건 잇키를 부르고 나서 해도 되잖아? 루나 언니는 애초에 반대도 안 할 거구."

"하지만 찬성을 표명한 것도 아니잖느냐?"

하지만, 시리우스는 여기서 물러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루나아이즈의 의견을 요구한다는, 억지스런 말을 하고 있다는 건 자신도 잘 알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물고 늘어졌다.

"이건 버밀리온 황국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이야기다. 황족의 의견들을 확실히 정리한 뒤 진행해야 할 일인 게야. 미안하구나, 스텔라. 역시 루나를 여기로 불러 와야겠어! 루나의 의견까지 종합한 뒤, 나도 현 버밀리온 국왕으로서 취해야 할 태도를 확실히 취할 테니."

"으, 으음..."

시리우스의 주장은 타당했지만, 늦은 주장이었다.

지금부터 루나아이즈를 불러온 뒤, 다시금 회의를 벌이는 건 스텔라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두 번 수고를 들이는 일일 뿐이다.

잇키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지금, 실로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 분한 일이지만, 전혀 도리가 맞지 않는 주장도 아니었다. 현 국왕으로서, 차기 국왕과 함께 제 2황녀의 혼약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건, 확실히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스텔라는 여기서 뜻을 굽혔다.

"알았어. 그럼 지금부터 루나 언니 불러 올게. 그럼 그 뒤에 바로 잇키랑 만나보기다? 에이, 참...!"

그리 말하고, 스텔라는 조금이라도 잇키가 기다리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식당에서 달려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스트레아는 한숨을 내쉬고, 시선만으로 시리우스를 비난했다.

".....여보야도 참 끈덕지다니깐.."

"다, 당신도 참, 무슨 말을 하는지, 난 잘 모르겠구만~.....!"

여기에, 시리우스는 도망치듯 시선을 돌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요?"

"화, 화장실! 바로 돌아올 테니.."

그리고, 식당을 나서서 화장실로 달려간 뒤, 친위대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취하려 했다.

하지만───친위대 중 그 누구도 시리우스의 전화에 응하지 않았다. 핸드폰에서 들려오던 건, 언제까지나 이어지는, 무기질적인 통신음 뿐.

그 소리에, 시리우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고, 식은땀을 한 줄기 흘렸다.

'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

◆◇◆◇◆

거의 같은 시각.

'이거 위험한걸.'

쿠로가네 잇키는 드디어 수많은 장해를 돌파해낸 뒤, 성을 둘러싼 성벽 바로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건물 그늘 뒤에 숨어 몸을 숨긴 뒤, 발을 멈추고 있었다.

잇키가 친위대를 남김없이 병원행으로 만든 뒤, 사진을 처분하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던 사이, 시그너드와 야나가 통솔하는 군대와 국민 연합군이 성벽 앞으로 집결.

머릿수로 만든 철벽같은 방어진을 구축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로 정면돌파를 하기는 어렵다.

아니, 돌파 자체는 한다면 할 수 있겠지만, 상대 쪽에 수많은 피해를 가하게 되어 버릴 것이다.

《환상형태》로 베여도 고통은 느껴진다.

방금의 친위대들이라면 몰라도, 국민과 군인은 대다수가 비 블레이저.

가능한 한 교전은 피하고 싶은 것이, 잇키의 마음이었다.

따라서 그는 주위를 살피며, ───어느 한 곳을 노리고 있었다.

성벽 근처에 지어진, 파란 지붕을 한 교회였다.

'저 건물 지붕이라면 성벽으로 타고 올라갈 수 있을 거야.'

그리 결정했으니, 남은 건 행동 뿐이었다.

다행히 국민들의 경계는 위쪽으로 향해 있지 않았다.

20미터를 넘는 성벽을 뛰어넘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잇키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높이 지어진 교회의 삼각 지붕에 뛰어 착지했고

"───호호호. 역시 이 루트를 선택하시네요."

그 자와 대치했다.

"읏...!"

"소문대로, 착한 소년이군요."

그 잇키조차도, 같은 지붕 위에 설 때까지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대머리 노인은, 노화에 의해 늘어진 눈꺼풀 속에서, 날카로운 시선을 잇키에게 향한 채, 농담 섞인 듯한 말투로 질문했다.

"어땠습니까? 버밀리온 황국 관광 투어의 감상은?"

"당신은...."

"호호, 이거 실례했군요. 전 국립 마도기사 연맹 버밀리온 지부장관 겸, 버밀리온 황국 검술 교관을 맡고 있는, 다니엘 단델리온이라는 자입니다. 당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칠성검왕》쿠로가네 잇키 님."

그리 답한 노인은, 자신의 디바이스를 현현시켰다.

사자의 얼굴을 본딴 듯한 황금색 손잡이에, 백은색 칼날을 지닌 가느다란 장검이었다.

노인은 그 무기를 들고, 끄트머리를 잇키에게 향하게 들었다.

그 순간, 그에게서 뿜어나오는 검기에, 잇키는 온몸의 털이 타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강해, 이 사람.'

적의 자세에서 확실하게 느껴지는 실력을 감지하고, 잇키는 자신이 불리하다 판단했다.

적의 무기는 레이피어.

일본도보다도 가늘고 긴 도신을 지닌 무기.

더불어, 적의 자세는 찌르기를 주체로 한 펜싱 기술.

횡방향 행동이 제한되어 있는 뾰족한 삼각형 지붕 위라는 지형에서, 이런 적과 상대하는 건, 좋지 않다.

무엇보다, 적의 수준이 지금까지 자신이 쓰러뜨려 온 자들과는 다르다. 지형의 불리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싸울 수 있는 역량의 적이 아니다.

그렇기에 잇키는, 장소를 바꾸기 위해 뒤로 물러나는 도약을 했다.

그 직후, 등을 엄습한 충격에 무릎을 꿇고 경악했다.

"윽!? 이건...."

등 뒤엔 어느 샌가,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나있었다.

이 사실을 알아챈 잇키를 보고, 노인은 하얀 구름 같은 턱수염 속에 있는 입으로 미소를 그리며

"호호. 이미 당신은 제 우리 속에 갇혀 있답니다."

"노블 아츠, 인가요.."

"명답입니다. 제 디바이스 《라이온 하트》의 노블 아츠───《혈전(血戰)》. 시선이 마주친 적 한 명을 외부로부터 간섭이 불가능한 결투장으로 끌어들여, 설령 난전이 벌어진 곳 한복판이라도 일대 일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결계 형태의 능력이지요. 당신이 도망갈 길은 이미 끊어놨어요. 이 우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결투에서 승리하는 길 이외엔 없답니다."

별로 쓰기 편한 능력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어찌 해서든 결투를 벌이고 싶은 상대가 있을 때엔, 정말 편리한 능력이었다.

그 노인, 단델리온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설명한 뒤

"자, 뽑아 주시지요. 스텔라 님이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돌봐 왔던 이 몸. 이 노인을 쓰러뜨리고 가지 못하는 자에게, 스텔라 님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도망갈 수단을 빼앗긴 잇키에게, 그리 고했다.

이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자신을 쓰러뜨리고 나아가라고.

이 말에 잇키도

"알겠습니다. ───와 줘. 《음철》"

자신의 디바이스를 현현시킨 뒤, 투쟁 자세를 취했다.

.....전장은, 뾰족한 지붕 위.

아무리 잇키의 체축이 안정되어 있다고 한들, 옆으로 도약해 회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 싸움은, 그 지붕 위.

이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전장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디바이스의 리치, 그리고 찌르기 주체의 레이피어라는 무기를 지닌, 적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전장.

하지만, ───이곳은 반드시 넘어야 할 곳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갑니다...!"

싸움의 불씨가 당겨졌다.

◆◇◆◇◆

먼저 공격으로 나선 건, 쿠로가네 잇키다.

그는 단델리온을 상대로, 한 손으로 검을 들어 똑바로 치켜들고, 단델리온과 같은 찌르기를 주체로 삼은, 알롱지브라라 불리는 자세를 취했다.

상대의 리치의 우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상대의 정안, 팔상, 그 어디를 노리건, 일본도 원래의 자세로 파고들어 봤자, 적의 칼에 자기 급소를 들이대는 꼴이 될 테니, 이런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그 자세를 지은 채 대쉬가 아닌, 스텝을 밟아 가며 거리를 좁혀갔다.

'먼저 적의 역량을, 같은 발판을 밟고 있는 상태에서 가늠해 보는 거야...!'

이 잇키의 행동에, 단델리온은 그 자리에서 우뚝 선 채 수비 자세만을 취하고 있었다. 다가오는 잇키를 향해 레이피어를 치켜든 채, 《음철》의 끝이 사정거리 내로 들어온 찰나!

"───슈웃!"

"윽....!"

섬광과도 같은 연속 찌르기를 선보였다.

여기에 잇키도 연속 찌르기로 응전하여, 서로의 칼 끄트머리로 쳐 내면서, 페이스 겨루기를 벌였다.

삼각 형태의 지붕 위. 그 위에서, 흑과 은의 섬광이, 불똥을 튀기며 교착되었다. 서로 상대가 조금이라도 뒤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면, 곧바로 상대의 심장을 꿰뚫어버릴 것이다.

그런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싸움 속에서, ───쿠로가네 잇키는 냉정히 적을 분석하고 있었다.

'그렇군, 확실히 빨라. 그리고 날카로워.'

이미 전반기는 모두 지나갔을 노인의 공격이라 여겨지지 않는 검술 실력.

이쪽에게 좀처럼 파고들 틈을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난 이것보다 빠르게, 그리고 예리한 검을 얼마든지 알고 있어!'

《검사 살해자》의 《야마타노오로치》를.

《나니와의 별》의 《삼연성》을.

그리고, 《비익》의 세계 최강의 참격을───

그 모든 것들을, 어렵게나마 헤쳐 온 잇키의 경험은, 단델리온의 속도를 어렵잖게 이겨나갈 수 있게 해 주고 있었다.

"윽...!"

두터운 눈꺼풀 너머에 있던, 단델리온의 눈이 부릅떠졌다.

잇키가 찌르기에 가속을 붙여나갔기 때문이었다.

단델리온의 리치를, 그의 검이 뻗어 나오기도 전에 쳐내 봉쇄하며, 잇키는 한 발짝씩, 확실히 단델리온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압도적인 속도와 수로 쇄도해 오는 검은 참격.

단델리온은 이 신체능력으로 인해 나오는 엄청난 맹공 앞에, 후퇴를 거듭한 끝에..

───순식간에 삼각형 지붕 구석까지 몰려버렸다.

'이제 한 발짝 남았어.'

이제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음철》이 단델리온의 급소에 닿을 수 있다.

그걸 피하기 위해 단델리온이 자신의 손으로 결계를 풀어 이 자리에서 뛰쳐나간다면, 그 순간 이쪽을 묶어두던 족쇄도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금 시선이 마주치기 전에, 성벽으로 뛰쳐 올라가버리면 된다.

그리 판단하고, 잇키는 단델리온을 향해 다가가며, 계속해서 찌르기를 선보였다.

그 직후, 새파란 지붕에 붉은 핏방울이 튀겼다.

───그건, 쿠로가네 잇키의 꿰뚫린 어깨에서 뿜어나온 것이었다.

"윽!?"

잇키는 눈을 부릅뜨고,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어깨에 느껴지는 타들어가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그는, 결계가 아닌, 그 공정 자체에 곤혹해하고 있던 것이다.

'뭐, 뭐야.. 지금 건...!'

그리고, 어깨를 꿰뚫려 비틀거리며 후퇴하는 잇키에게

"후웃───!"

이번엔 단델리온이 공격에 나섰다.

알롱지브라 자세에서 앞발을 크게 내딛어, 방금까지 받았던 공격을 되돌려주는 듯, 신속한 연속 찌르기를 선보였다.

잇키는 당연히, 날아들어오는 그 칼을 쳐내기 위해 《음철》을 들었다.

하지만───

그 직후, 방금과 완전히 똑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음철》로 쳐낸 단달리온의 디바이스 《라이온 하트》의 도신이, 마치 뱀처럼 휘어져, 잇키를 향해 다시금 쇄도했던 것이다.

'또야.....!'

안면을 향해 날아오는 찌르기를, 피부 한 끗 차이로 간신히 피해낸 잇키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단델리온의 찌르기는, 튕겨내도 돌아온다는 사실을.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그렇다면, 이걸 튕겨내 막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대로 겨루기만을 해 봤자 불리해지기만 할 뿐.

여기선, 일단 한 번 상태를 가다듬을 때다.

그리 판단한 잇키는, 거리를 두려 뒤로 물러났고

"윽!?"

───그 직후, 그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크고 깊게 앞으로 도약해 들어온 단델리온에게, 가장 큰 유효거리를 점거당해 버렸다..!

'도망갈 것이라 예측당했어...!'

그리고───

"《Croix du sud》"

그 유효거리 내에서, 단델리온이 찌르기를 가했다.

그 속도,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았다.

지금까지 가했던 찌르기와는, 차원이 다른 속도.

그 찰나.

사선을 수없이 넘어서며 갈고닦은 잇키의 직감이, 피부를 찌르는 환통을 만들어냈다.

찔릴 곳은, 양 폐, 목, 심장, 단전.

그건 단델리온이 내뻗은 남십자성이란 이름에 걸맞는, 순간 5연속 찌르기가 노리고 들어올, 인체의 급소 5곳이었다.

'───이건, 위험해....!'

단 한 공격도 허용해선 안 된다.

하지만, 단델리온의 찌르기는 쳐내도 돌아오게 된다.

막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막지 않으면 패배.

따라서 잇키는, 이 단델리온의 공격을───

단델리온은 생각지도 못한 응수로 맞대응했다.

"우웃───!?"

다음 순간, 단델리온은 감탄을 표했다.

잇키가 물러나기 위해 뒤로 뺀 발로 지면을 박차, 찌르기를 가하려는 자신을 향해 돌진을 감행했으니까.

그리고 그는 오른쪽 폐를 꿰뚫는 《Croix du sud》의 첫 공격을 칼손잡이로 막아냈고, ───그대로 힘을 가해 단델리온을 튕겨내버렸다.

이로 인해, 밀려난 단델리온, 그리고 찌르기를 받아낸 잇키는 서로 뒤로 튕겨나가, 다시금 거리가 벌어지게 되었다.

그렇다. 잇키는 단델리온의 5연속 찌르기를 첫 공격부터 봉쇄해버린 뒤, 그를 튕겨내 궁지에서 벗어난 것이다.

"후우웃....!"

호흡을 가다듬는 잇키를 보며, 단델리온은 진심이 담긴 존경심을 느꼈다.

"역시, F랭크의 몸으로 스텔라 님을 쓰러뜨린 자이군요."

적의 모션이나 미세한 시선의 움직임, 그리고 방대한 실전 경험으로 얻은 직감.

이 모든 것을 동원해, 적의 검을 읽어내고, 처음 보는 기술조차 간파해내는 통찰력.

그것으로 자신의 역량으론 도저히 다 받아낼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린 뒤, 망설임 없이 상대의 첫 공격을 봉쇄하러 나선 것이다.

단델리온은 그 관찰력과 상상력, 그리고 거기에 몸을 맡길 수 있는 결단력에 아낌 없는 찬사를 보냈다.

"거기에 손잡이를 이용해 상대의 공격을 막다니, 소문처럼 참 흥미로운 검술을 쓰시는 분이시군요."

".....흥미로운 검술이란 건,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을 듣고, 잇키는 단델리온의 찬사에 쓴웃음으로 답했다.

"그 디바이스... 겉보기엔 레이피어이지만, 도신이 이상할 정도로 유연해요. 어느 쪽이냐고 따져 보자면, 플뢰레에 가까운 검이군요. 아무래도 움직임이 너무 이상하다 했어요."

플뢰레 도신은 검이라고 하기엔 부자연스러울 정도의 유연성을 지니고 있어, 잘 휘어진다. 휘어진다는 것은 아무리 상대의 검을 튕겨낸다 한들, 그 반동에 의해 다시 칼날이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도검으로서는 이질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유연성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도록 수련한다면, 맞서 오는 적을 배후에서 찌르는 《투척》이라는 절기조차 가능해진다.

"....실전에서 쓰는 건 처음 봤기에, 당황했어요."

"호호호. 그러게 말입니다. 제 《라이온 하트》는 이 유연성이 장점이어서 말이죠. 이것만은 잇키 군의 《모방검기》로도 흉내낼 수 없겠죠?"

"절 잘 알고 계시는군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특히 제 능력이 이렇다보니, 사전에 싸울 상대를 조사하는 것에 정성을 들이는 게 버릇이 되어 버려서 말이죠. 그러니... 잇키 군이 이 다음 취할 방법도 알고 있어요. 이곳에서 《신기루》를 구사할 거리는 없지요. 《독아의 태도》도, 플뢰레같은 휘어지는 도신엔 통하지 않을 거고요.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

그리 말한 뒤, 단델리온은 다시금 칼을 들어, 알롱지브라 자세를 취한 뒤

"자. 어디 한번 써 보십시오. ──제 1비검 《서격》을."

"읏......!"

이 단델리온의 말에, 잇키는 숨을 삼켰다.

그의 예상이 완전히 적중했기 때문이었다.

잇키는 그가 말했던 것처럼, 다음 일격으로 《서격》을 쓰려 했다.

그 이유는, 상대의 무기 때문이었다.

플뢰레는 유연성이라는, 유일무이한 개성을 지닌 검.

하지만, 그 개성은 사용자에게 이점만이 되는 게 아니었다.

플뢰레의 단점은, 도신이 너무 유연하기 때문에 힘을 싣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힘으로 밀어내는 방식이 효과적.

그렇기에 내린 판단.

하지만, 단델리온은 이 잇키의 선택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정말.. 잘 조사해 두었구나.'

잇키는 단델리온의 용의주도함에 감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잇키는 천천히 자세를 넓혀 가며, 허리를 낮추고, 마치 활시위를 당기듯 칼을 뒤로 뺀 뒤, 《서격》 자세를 취했다.

이 공격을 예측당한 것이 꺼림칙했지만, 《서격》이 플뢰레에 유효한 공격이라는 것도 사실.

그렇다면.

《겁먹지 마..!》

"──말씀하지 않으셔도!"

잇키는 지붕을 부술 정도로 도약하여, 혼신의 힘이 담긴 《서격》을 구사했다.

예전엔 《일도수라》가 동반되어야 쓸 수 있던 기술이었지만, 에델바이스의 검을 《모방검기》로 훔쳐내, 체득한 체술에 의해 《일도수라》가 없이도 충분한 위력을 발휘해낼 수 있게 되었다.

플뢰레처럼 유연한 도신으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럴 터였다.

"윽.....!?"

하지만, 단델리온은 그걸 막아냈다.

이전에 세계 최강의 검사 《비익》 에델바이스가 해냈던 것처럼.

《서격》의 끄트머리에, 자신의 칼 끄트머리를 맞추어서.

잇키의 돌진을 정지시킨 것이다.

이 사실에, 잇키는 전율했다.

그 에델바이스조차, 강고한 한손검으로 막아냈었는데.

'플뢰레의 마치 바늘 같은 부드러운 도신이, 조금도 휘어지지 않았어....!'

《음철》의 끄트머리를, 똑바로 뻗은 바늘 한 개라는 점에 모아 막아낸 것이다.

'이런 기술도 있는 건가....!'

"이래봬도 전 이 가느다란 도신으로 스텔라 님의 강검에 검술 지도를 했던 몸이지요. 힘을 죽이는 방법은 남들보다 한층 더 뛰어나답니다....!"

단델리온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잇키의 《서격》 따위, 그녀가 휘두르는 강검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애들 장난이나 다름없다고.

정확한 각도,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의 마력방출만 있다면, 손쉽게 막아낼 수 있다고.

───그리고, 되돌려 줄 수도 있다고.

"흐읍!"

단델리온의 마력 방출에 의해 강화된 힘에 밀려나, 잇키의 몸은 더욱 뒤로 밀려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처음 둘이 대치하고 있던 위치.

 방금 돌격으로 좁힌 거리를 순식간에 되돌려놓은 것이다.

아니, 위치관계만 놓고 보자면 처음과 같았지만, 전국은 다르다.

잇키는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기술 중 가장 큰 공격력을 자랑하는 돌진 기술 《서격》이 막힌 탓에, 한 층 더 궁지에 몰려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후훗."

"!"

"그렇죠. 확실히 스텔라의 검을 받아온 상대에게, 저 정도가 구사하는 공격력 중시의 기술이 먹혀들 리가 없겠지요."

잇키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스텔라가 부러워요. 저도 당신 같은 분에게, 검술 지도를 받아 보고 싶군요. 언젠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부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다음이고 뭐고, 오늘 이 자리에서 아주 찬찬히, 질릴 때까지 선보여 드리도록 하지요."

그리 말하고, 단델리온은 칼을 들면서, ───불온함을 느꼈다.

자신의 최강의 기술이 막혔음에도, 잇키가 보여주는 이 여유로움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짚이는 구석이 있다고 한다면───

'《일도수라》....인가. 아니면 나처럼, 마력 방출에 의한 행동 강화?'

잇키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출된 아야츠지 아야세와의 대전 영상까지도 조사했던 단델리온은, 그 가능성도 버리지 못한 채 둘 다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런 단델리온에게, 잇키는

"아뇨. 지금은 사양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제 애인의 아버지 분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야 하거든요. 그 자리에, 이보다 더 꼴사나운 모습으로 나타는 건 싫으니까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농담조로 말을 한 뒤,

자세를 낮춰, 마치 지면에 수평을 그려내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칼은 활시위를 당기듯 뒤로 당긴 뒤

"이 일격으로, 당신을 돌파해 내겠습니다. 다니엘 단델리온.....!"

지붕을 박차고, 다시금 《서격》을 구사했다.

게다가, 마력방출도, 《일도수라》도 사용치 않고.

이래서야 방금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옥쇄특공》 따위로 이 저를 돌파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그렇다면, 그건 어리석은 생각이라 단델리온은 속으로 단언했다.

──방금 한 합으로 《서격》의 속도, 거리, 타이밍. 그 모든 것들을 외워 놓았다.

그렇다면, 다음엔 명중조차 되지 않는다.

받아낼 필요 따위가 없다.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한 뒤, 통한의 카운터로 잇키의 미간을 꿰뚫는다!

"으윽!?!?"

직후, 단델리온의 의식이 얼어붙었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음철》의 칼날에 의하여.

생명이 궁지의 위기에 내몰려, 단델리온의 시간이 정지되었다.

그 정지 속에서, 그는 멍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어째서 이런, 눈앞에 갑자기 칼이 나타난 것인가.

자신의 칼날은, 아직 적에게 닿을 거리가 아닌데도.

자신보다도 리치가 짧은 적의 무기가, 어째서?

《서격》으로 인해 파고들어 왔다고 해도 너무도 빠르다.

그리고 가까웠다.

──그렇다면, 그 답은 하나 뿐.

'투척, 인가...!'

그렇다. 잇키는 《서격》 자세에서 《음철》을 단델리온을 향해 내던진 것이었다. 이 투척으로, 《서격》에 맞춰 카운터를 넣으려던 단델리온에게, 페인트를 가한 것이다.

단델리온은 이미 앞발을 내딛은 채, 그 앞발에 힘을 주어 도약함과 동시에 잇키의 미간을 꿰뚫으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멈출 수 없다.

이미, 멈출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따라서───

"우오오오오옷!!"

그래도 몸에 힘을 가해, 자신의 움직임을 억지로 멈추어 잇키의 《모방검기》를 쳐낸 단델리온의 운동능력은, 대단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꽤 좋은 기습이었지만, 그래도 한 치 부족─── 윽!?'

하지만, 다음 찰나, 단델리온은 절망을 목격하게 되었다.

눈앞에 있던 건, 무기가 튕겨나가 무방비해진 잇키.

그의 손에서 《음철》을 향해 뻗어나온, 검은 끈의 존재를.

'저건... 일본도에 감는 끈...!'

아차, 하고 단델리온은 그제야 알아챘지만, 모든 건 끝난 뒤였다.

잇키는 풀어낸 끈을 당겨 튕겨나간 《음철》을 요요처럼 다루어 다시금 손으로 받아들고───

"하아아아압!!"

《음철》을 튕겨내기 위해 플뢰레를 내뻗어 무방비해진 단델리온을, 단방에 베어버렸다. 단델리온은 "커헉" 하는 소리와 함께, 피를 뿜어내며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서 《라이온 하트》가 흩어져 사라졌고, 잇키를 구속하고 있던 능력도 사라졌다.

".....실로 고식적인 발상을 하시는군요...."

단델리온은 어떻게든 고개를 들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소년을 향해 비아냥대듯 내뱉었다.

그 말에 잇키는

"그게 무(武)라는 거니까요."

떳떳치 못한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자랑스러워하는 미소로 답했다.

여기에 단델리온도, 피로 물든 수염 속의 입으로 웃음을 지었다.

정말, 그 말이 답이다. 라고.

무라는 건,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만들어진 수단.

그렇다면, 진정한 무에 있어, 고식함이란 미덕이기도 하다.

'......적어도 《일도수라》 정도는 쓰게 만들 생각이었습니다만...'

검극의 경험 차이가 차원이 달랐다.

원래라면 이쪽에게 있어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을 리치 차이.

그것조차도, 다시금 자기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바꿔 내는 전술안.

싸움터에서 보고 있는 수준 자체가 다르다.

대체 어느 정도의 사선을 넘어야, 이 어린 나이에 저런 노회함을 지니게 될 수 있을까.

이미 자신은, 그를 잡아두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단델리온은 그걸 인정하고

"완패입니다. ......스텔라 님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딸처럼 사랑을 쏟았던 소녀의 미래를 맡겼다.

이 말에 잇키는

"네!"

힘찬 답을 돌려주고, 단델리온의 곁을 지나친 뒤, 성벽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살짝 요철이 들어간 성벽을 박차 올라선 뒤, 성 안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단델리온은 실혈로 인해 흐려지는 시야로 배웅하며, 자신의 왕에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시리우스."

전 이제, 저 소년의 적수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라고.

◆◇◆◇◆

단델리온을 격파한 잇키는, 마침내 성벽을 넘어 안으로 잠입하는 데에 성공했다. 성벽 내부엔 물론 위병들이 있었고, 침입자에 대해 눈에 핏발을 세운 채 경계를 서고 있었지만, 성벽만 넘는다면 잇키는 자신의 운동능력을 이용해 성 안으로 침입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성벽을 등반했던 것처럼, 약간의 요철들을 밟아 가며, 내부 성 벽면을 등반했다.

완전히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성 건물 안으로 침입한 뒤

"후우. 겨우 성 안으로 들어왔, 다.......?"

"──────으읏,"

침입하려 한 순간, 눈이 마주쳤다.

방 안.

갑작스레 나타난 침입자를 바라보고 눈을 한껏 부릅뜬 채 아연히 서 있는,

───속옷 차림의 여성과.

'이, 이러어어어언!?!?'

조급해 한 탓에, 방 안의 확인을 게을리 했다는 자신의 통한의 실수를 통감한 잇키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여성은 뺨을 붉게 물들인 채, 예쁜 레이스가 달린 속옷 안에 있는 자신의 가슴을 팔로 가린 채, 잇키를 노려보고 있었다.

"죄, 죄송해요! 안에 사람이 있다고 생각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확인하는 걸 잊었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창문 타고 넘어온 주제에 대체 뭔 말을 하는 건가, 하느 느낌도 있긴 하지만, 정말 불가항력이라...!"

이 상황에, 잇키는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궁색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해명을 늘어놓았지만

"읏────!"

여성은 입술을 꼭 다문 채, 잇키를 향해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 비색의 눈동자에, 창틀에 발을 디디고 있는 잇키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한껏 담은 채.

그리고 잇키의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뒤, 손을 크게 들었다.

'맞는다...!'

하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말만으로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여기선, 일단 주먹 10대 정도를 맞을 각오는 해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잇키는 그리 각오를 다지고, 눈을 감은 채, 자신의 뺨에 날아올 충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뭘 하고 있나. 다른 녀석들에게 들키기 전에 빨리 안으로 들어오도록, 이 멍청한 것."

"우왓?"

충격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잇키를 덮친 건, 옷 목덜미 부분을 잡은 채 방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힘이었다. 자신을 때리는 충격에만 대비하고 있던 탓에, 잇키는 여기에 저항할 수 없었고, 창틀에서 방 안으로 굴러떨어졌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카펫이 깔린 바닥 위에 쓰러진 잇키는 고개를 들었다.

시야에 비춰진 건, 창밖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하듯 확인한 뒤,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저, 저어..."

여성의 행동에 이해가 가질 않아, 잇키는 곤혹해했다.

그런 잇키를 보고

"풉.. 아하하하하핫!"

여성은 그 숨길 수 없는 지적인 용모를 무너뜨리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야~ 이거 원, 완전 당했군. 스텔라가 데려온 남자가 어느 정도의 인물인지, 나도 알고 싶었기에 아버님의 간계를 눈치채지 못한 척 하고 있었지만, 설마 홀로 군과 국민들을 상대했음에도, 성 안에까지 들어올 수 있었을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어. 정말 대단한걸, 애송이? 폼으로 그 뇌까지 근육으로 들어찬 것 같은 애를 애인으로 삼은 남자는 아닌 것 같군. 그 덕에 도움을 주기 위해 준비하고 있던 국영방송 준비가 완전히 헛수고가 됐지 뭐야. ......풉, 크큭.. 거, 거기다 하필이면 내가 옷을 갈아입고 있는 방에 침입할 줄이야. 네 녀석, 확실히 스텔라가 일본에 도착한 날에도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고 알고 있다만?"

'에.....'

이 여성의 말에, 잇키도 알게 되었다.

그녀의 머리칼 색이, 방금 공항에서 만난 스텔라의 어머니, 아스트레아와 같은, 옅은 핑크빛이라는 사실을.

그렇다면, 이 여성은──

"저, 혹시 당신은.... 루나아이즈 전하이십니까!?"

그 잇키의 질문에, 여성은 너무 웃은 탓에 눈가에 뜬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크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음. 바로 이 내가, 네 연인의 언니임과 동시에, 버밀리온 황국 차기 여왕. 제 1황녀, 루나아이즈 버밀리온이다. 만나서 반갑네. 잇키 쿠로가네."

다시금 자기소개를 한 뒤, 루나아이즈는 악수를 요청하는 듯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여기에 잇키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난 뒤

"아, 네.. 네! 처음 뵙겠습니다! 오, 오늘 초대해 주신 것, 저, 정말 감사드립니다!"

인사와 악수로 답했다.

하지만───그 시선은 어쩐지 붕 떠 있었다.

이유는 물론, 루나아이즈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건, 레이스가 달린 속옷 뿐.

멋대로 창문을 통해 침입해 들어온 자신의 잘못이긴 하지만, 눈 둘 데가 없다는 말로 끝날 상황이 아니었다.

이 잇키의 허둥대는 모습에

"뭘 그리 허둥지둥하고 있나? .....음?"

루나아이즈는 고개를 갸웃하고, ──그 직후, 깜짝 놀란 듯 눈을 부릅뜨고 잇키의 양팔을 잡았다.

"네 녀석, 다쳤잖나!"

그리 말한 루나아이즈가 바라본 곳은, 방금 단델리온에게 꿰뚫린 왼쪽 어깨였다.

상처가 작긴 했지만, 확실한 관통 흔적.

출혈은 나름 많았고, 하얀 교복은 이미 피로 다 젖어, 손가락을 타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여기에, 잇키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카펫이...!"

"그런 건 어떻게 됐든 상관 없으니 얼른 옷 벗어! 치료를 해 줄 테니!"

하지만 그 잇키의 쓸데 없는 걱정에 루나아이즈는 화를 내는 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의 옷을 벗기기 위해 다가갔다.

"에, 에에에엑!? 아, 잠깐! 괜찮아요! 이 정도는!"

"이 정도라고 말하고 끝날 부상이 아니잖나! 단 녀석.. 완전히 죽일 생각으로 상대를 했군 그래... 그 팔불출 녀석들은 도대체가 정도란 것을 모른다니까─── 이 녀석이 정말! 움직이지 말래도! 어린애도 아니니까 얌전히 있어!"

"알겠어요! 얌전히 있을 테니 적어도 옷은 좀 입으시고 치료를 해 주세요!"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되잖나! 맨살을 보인다고 해서 죽는 것도 아니고!"

"그, 그야 그렇긴 하지만~~!!"

잇키가 저항을 해봤지만 루나아이즈의 의지는 의외로 강해서, 떼어낼 수가 없었다.

아니, 잇키가 온 힘을 다해 뿌리치면 떼어내는 것 정도는 손쉽겠지만, 그러다 그녀를 다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에 힘을 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결국 잇키는 루나아이즈의 손길에 따라, 상의와 속옷 셔츠가 벗겨졌고...

"루나 언니! 일하는 도중에 미안한데, 좀 식당에 와 주─────................................뭐, 뭐... 대체 뭐 하는 거야, 너희드으으으으으으을!?!?"

자신의 연인과 자신의 언니가 반라 상태로 얽혀 있는 광경을 본 스텔라의 절규가, 성 지하실까지 울려퍼졌다.

◆◇◆◇◆

정말 터무니없는 상황에서 만났다지만, 잇키는 스텔라와 무사히 합류할 수 있었다. 처음 눈에 날아들어온 충격적인 광경에 엄청난 혼란을 보인 스텔라였지만, 그 오해는 루나아이즈가 보여 준 한 장의 종이에 의해 바로 풀렸다.

그렇다. 바로 마을에 뿌려진 잇키의 수배서였다.

그 뒤, 루나아이즈는 이 물적 증거와, 자신이 예측해 둔 아버지 시리우스의 행동을, 모두가 모인 식당에서 폭로했다.

이에 의해, 쿠로가네 잇키 방문 때부터 벌어진 소동은 일단락이 지어지게 되었고,

──식당에서는 대리석 바닥에 정좌한 시리우스를 둘러싼, 규탄회가 개최되었다.

"그렇구나~ 즉, 여보는 야나랑 시그너드 애들이랑 결탁하고, 국고에서 상금까지 꺼내 가면서, 모두를 부추겨서 잇키 씨를 쫓아내려 했던 거야?"

"아아. 가족회의도 그걸 의한 분단 공작이었지. 시간 벌이를 위해서 벌인 짓거리라는 거야."

"여보, 진짜에요?"

어이없어 하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아내의 눈길에, 시리우스는 한 나라의 왕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한심한 표정을 짓고 반론했다.

"으, 으윽.. 어,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내가 왜 애지중지 키운 우리 딸을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를 놈한테 줘야 하는 거냐고!"

"그런 억지 때문에 비겁하고 비열한 수에 당했음에도, 잇키는 그 모든 것들을 전부 극복해 냈다는 건가. 이거 참, 잘한 점은 무엇 하나도 없는 것 같군, 아버지."

"이 엄마, 어쩐지 엄청 실망했어요."

"으, 으으윽... 큭!"

아스트레아와 루나아이즈의 싸늘한 시선을 받은 시리우스는, 말문이 막힌 뒤, 분노가 담긴 시선으로 잇키를 노려보았다.

너만 없었다면.. 이라는 목소리가 들릴 정도의 형상으로.

잇키는 '이게 웬 날벼락이람..' 하고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때였다.

"아바마마. .....지금 이야기, 정말... 진짜 다 사실이야?"

식당에 온 뒤로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스텔라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묘하게 차분한 목소리. 앞머리에 숨겨진 눈.

잇키는 위 언저리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알아챘다.

지금 스텔라는, 무수한 신관을 박아넣은 폭약과 비슷한 상태라는 것을.

뭔가, 조금이라도.. 자칫 잘못해서 자극을 주었다간 대폭발이 일어날 것이라고.

그리고, 그건..

"스, 스텔라. 내 말을 들어 주거라. 난 그저 널 지키려고.."

"믿기질 않아..."

시리우스의 자칫 잘못 나온 그 말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바로, 폭발해버렸다.

스텔라는 방이 뒤흔들릴 정도의, 마치 폭풍과도 같은 큰 목소리로 외친 뒤, 비색 머리카락에서 임광을 내뿜으며, 분노에 불타오르는 눈을 시리우스에게 향했다.

"기뻤는데! 아바마마가 잇키 이야기를 들어 주었을 때, 우리들에 관한 걸, 아바마마도 진지하게 생각해 줬다고 생각해서.. 기뻤는데! 그런데 어째서!? 왜 이런 일을 벌인 거야!? 어!? 어떻게 이런 심한 짓을 할 수 있는 거냐고!!"

감정이 이끄는 대로 분노를 표출하며, 시리우스에게 따지는 스텔라.

내뿜어지는 열에 스텔라 주변의 빛이 일그러지는 탓에, 주변 풍경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건 위험하다고, 잇키는 느꼈다.

스텔라가 화내는 투가, 예사가 아니었다.

이성이 분노에 의해 전부 타들어 있는 듯했다.

이대로 가다간, 폭력사태가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와 같은 것을, 아스트레아도 느낀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사태를 그냥 내버려둘 순 없다고 생각한 듯, 그녀는 일단 시리우스를 변호하기로 했다.

"스텔라야. 화내는 건 당연하겠지만, 일단 좀 진정하자."

스텔라의 옆에서 말을 걸었다.

하지만.

"이걸 어떻게 진정해!"

불을 뿜을 것 같은 눈으로 아스트레아를 노려보았고───

천천히, 눈가에 큰 눈물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스, 스텔라...."

"이런 거..... 진짜 너무하잖아...! 모두 다 한통속으로 힘들게 찾아온 잇키를.. 괴롭히다니.. 이런 심한 짓을 벌였으니.. 잇키는 우리 모두가 싫어지게 됐을 거야.. 이 나라를.. 싫어하게 됐을 거라구! 나, 나... 아바마마도, 이 나라 사람 모두도.. 좋아하니까.. 흑.... 그런 모두를, 잇키도.. 좋아해 줬으면 했는데.. 그런데, 이런... 으, 흑... 흐윽... 으아아아앙!"

거기서, 스텔라의 고조된 감정이 임계점을 돌파했다.

스텔라는 그 자리에서 무너지듯 주저앉은 뒤,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 채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버지나 국민들이 벌인 행동에 대한 분노가, 슬픔이, 이미 소녀의 어린 마음으론 처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고, 오열이 되어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시리우스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얻어맞는 것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렇게 펑펑 울어버릴 줄은 생각조차 못했으니까.

"스, 스텔라...! 당신, 이럴 땐 어떡해야 좋은 거지..!?"

"....이번은 정말 손쓸 도리조차 없을 것 같아요."

일러스트

"그, 그럴 수가..!"

확실히, 손쓸 도리가 없어보였다.

자신의 가족을, 국민을,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도 좋아해 줬으만 한다.

그리 생각하고 있던 스텔라에게 있어, 이번 사건은 너무도 잔혹한 일이었다.

지금 시리우스가 무슨 말을 하건,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스텔라가 슬퍼하고 있는 건,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걸 스텔라에게 알려주기 위해, 쿠로가네 잇키는 움직였다.

"스텔라."

그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펑펑 울고 있는 스텔라의 등을 살짝 껴안으며

"뭣, 네 녀석.. 무슨 짓거리를──"

"앉아 있어."

일어나려 하던 시리우스에게 발뒤꿈치 내려찍기를 먹인 루나아이즈에게 시선만으로 감사를 보낸 뒤, 울먹이고 있는 스텔라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여주었다.

"괜찮아. 난 이 나라도, 이 나라에 사는 모두들도 미워하지 않아. 오히려.. 오늘에 있어 지금까지, 이 나라의 모두들과 싸운 덕에.. 난 이 나라를 아주 사랑하게 되었어."

"잇.....키.....?

이 말에, 스텔라는 충혈되어 붉어진 눈에 의아함을 담아 잇키에게 향했다.

스텔라는 알고 있었다.

잇키가 그저 자신을 달래기 위하여 그 자리에서 거짓말을 짜낼 남자가 아니라는 것을.

즉, 그의 말은 본심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째....서....."

처음 방문한 이국 땅에서, 이런 정도의 박해를 받았음에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말 인가.

여기에, 잇키는 스텔라의 눈물을 부드러운 솔길로 닦아준 뒤, 답했다.

"왜냐면, 내 소중한 연인을 위해서, 이렇게나 필사적으로 나서 주는 사람들이니까."

진심이 담긴, 거짓 없는 마음을.

그렇다. 미워할 리가 없었다.

확실히 너무한 느낌은 있었고, 비상식적인 행동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그들은 시험해야만 했을 것이다.

스텔라의 남편이 될 남자를.

그건 어째서일까.

그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스텔라라는 소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있기에 걱정하고, 걱정하고 있기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남자가, 자신들이 애지중지하는 보물을 앗아가기에 어울리는 그릇인지를.

그 기분을, 마음을, 애정을, 미워할 잇키가 아니었다.

스텔라가 선택한 이 남자는, 그런 기량이 좁은 남자가 아니다.

"따스하고, 상냥한 나라야. 스텔라가 지키고 싶다고 느끼는 기분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어. ........그리고, 생각했어. 지금까지는 없을 정도로 가장 강하게. 나도, ──그런 나라의, 가족 중 한 명이 되고 싶다고...!"

그리 말한 뒤 잇키는 스텔라에게서 떨어지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가족을 향해 돌아봤다.

그리고, 한 번 고요한 심호흡을 한 뒤.

"처형. 어머님, ───그리고 아버님."

"누가 아버님이라 불러도 좋다고───"

"입 다무세요."

아스트레아에 의해 귓불이 꼬집힌 시리우스를 중심으로, 셋 전원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스텔라를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 대한, 자신의 답을.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온 목적을 다하기 위하여.

"다시금 인사드리겠습니다. 스텔라 양과 교제하고 있는, 쿠로가네 잇키입니다. 전 항간에 알려진 대로, 그리 많은 걸 가진 자가 아닙니다. 블레이저로서의 재능도 우수하다고 할 수 없고, 일단 쿠로가네 가문의 차남이긴 하지만, 실가와의 사이도 나빠 반 절연 상태가 되어 있고, 사회적인 지위도 없습니다. 스텔라 양과의 교제 상대로서, 극히 모자란 자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이런 남자에게 스텔라 양을 맡길 수 있을까, 라고 걱정하시는 것도 당연하지요. 그러나─── 단 하나. 스텔라 양을 사랑하고 있다는 이 마음만은, 이 나라의 국민 분들에게도, 그리고 처형, 어머님, 아버님에게도 결코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을 영원히 관철해나갈 수 있을 거란 각오도....! 그러니, 제 각오를 직성이 풀리실 때까지 시험해 주십시오. 여러분들이 납득하실 수 있도록, 저라는 남자를 가늠해 주십시오. 전 그 모든 것들에, 제 모든 것을 쏟아부어 응하겠습니다!"

강한 힘이 필요하다면, 어떠한 적이라도 쓰러뜨려 보이겠다.

지위가 필요하다면,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손에 넣어 보이겠다.

스텔라를 사랑하고,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 자상한 사람들 중 누구 한 사람을 상대하더라도, 타협을 할 생각 따윈 없었다.

잇키는 그리 맹세하듯 선언하고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이루어진다면, 그 때는 부디.. 스텔라 양을 제게 주십시오!"

잇키는 바닥에 정좌해 있는 시리우스보다도 깊게, 몸을 낮춘 뒤 머리를 숙였다.

이 잇키의 행동에, 곁에 있던 스텔라도 뺨의 눈물과 흐른 콧물을 닦아내고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의 곁에서, 자신의 가족에게 깊이 머리를 숙여, 뜻을 밝혔다.

스텔라 버밀리온이 누구 곁에 있는 자인지를.

이 둘의 결의를 보고, 아스트레아는 자신의 딸의 성장을 느끼고 흐뭇이 미소지으며, 시리우스에게 물었다.

"어떡할래요, 여보?"

"왜, 왜 내게 물어보는 게야..! 난 인정 못 해! 뭘 하건 스텔라를 시집 보낼 생각 따윈 절대로 없으니까!"

"이렇다는데, 어떡할래. 스텔라?"

"우리한테 아빠란 사람이 있었나?"

"음, 어떠려나. 어머님?"

"어쩌면 없었을지도───"

"그래, 좋았어! 나도 남자야! 잇키 군이 그렇게 각오를 보여 줬으니, 긍정적으로 검사해 보도록 하지!"

"가, 감사합니다.."

감사를 표하면서도, 여성진의 엄청난 연대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시리우스의 모습에, 잇키는 여성이 많인 가족에서 아버지란 자리가 얼마나 불리한지를 몸소 느끼고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로 장가를 간다면, 분명히 자신도 저렇게 되어 버릴 것이다.

뭐, 어찌 됐든, 일단 이걸로 승낙은 받았다.

'남은 건, ───내 근성의 문제야.'

뭐든지 해내 보이겠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정말 큰소리를 쳤구나, 하고 뒤늦게 생각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반드시 해내 보이겠다고, 잇키는 굳게 결의했다.

그리고 그런 잇키에게, 루나아이즈가 곧바로 고했다.

"자, 뭐든지 시험해 달라고 말했었지, 잇키? 그럼 먼저 내가 과제를 내 보도록 할까."

"루, 루나 언니!? 루나 언니는 반대 안 한다고 했었잖아!"

"반대만 안 한다고 했지, 그냥 손 놓고 방관만 하겠다고 말한 기억도 없다만."

"윽.."

설마 여기서 시리우스의 허세가 진실로 나타날 줄이야, 하고 쓰디쓴 표정을 짓는 스텔라.

그 표정을 보고 루나아이즈는 "뭐, 마음 놓고 있도록 해." 하고 스텔라를 달래고, 말했다.

"그리 어려운 과제는 아닐 테니까. 잇키의 실력이라면 말이지."

"제 실력이 관계가 있는 과제입니까?"

잇키의 질문에, 루나아이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잇키. 넌 머잖아 클레이델란트와 벌이는 '전쟁'에 참가해 줬으면 해.'

"저, '전쟁'... 말씀이신가요...!?"

그 단어에서 느껴지는 불온함에 경악을 숨김 없이 내비치는 잇키.

하지만 루나아이즈는 그의 상상을 곧바로 부정했다.

"뭐. 전쟁이라고 해도 네 상상 속의 피비린내 나는 그런 느낌의 것은 아니야. 클레이델란트도 버밀리온도, 서로 《국제 마도기사 연맹 가맹국》 이니까."

《국제 마도기사 연맹》에는 규모가 작은 나라끼리 서로 도와, 큰 나라에게서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유사시 전력이나 전쟁 비용을 협조하는 조약 외에도, 연맹 가맹국끼리 벌이는 전쟁에 대한 조약도 존재한다.

그 조약이란, '연맹 가맹국끼리의 전쟁은 통상 병기나 군대를 동원하지 않고, 양국의 대표로 선출된 《마도기사》 끼리의 결투로, 그 승패를 결정한다──

라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블레이저는 힘 없는 민중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라는 연맹의 대원칙의 상징임과 동시에, 가맹국 사이의 조화를 지키기 위해선 불가결한 것이다.

가맹국 사이에 국력에 의한 상하관계가 지어져버리면, 힘없는 소국은 연맹에 남아있기 힘들게 되어버릴 테니까.

하지만 이 룰을 이용한다면, 소국이 대국을 이기는 것도 가능.

대등한 위치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연맹에 가맹되어 있어도 한 나라와 나라 사이이니, 어떻게든 정치적인 다툼이 벌어질 테지. 그건 피할 수 없어. 억지로 그 싸움을 뜯어말리기 위해 강고한 대책을 쓴다면, 조직은 유연성을 잃게 될 테고, 금이 가 붕괴되어 버릴 거야. 그렇기에, 그 가맹국 사이의 전쟁은 공평한 조건으로 열려야 해.'

연맹의 우두머리, 《흰수염 공》이 주장하여 결정된 이 룰은, 연맹 내에서도 찬반이 갈리고 있었지만, 《국제 마도기사 연맹》이라는 조직이 반세기에 걸쳐 전 세계를 둘로 나눌 정도로 거대해질 수 있었던 건, 틀림없이 이 룰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버밀리온과 클레이델란트의 전쟁도, 이 룰에 따라 벌어지게 되지. 잇키. 버밀리온이 클레이델란트에서 독립한 나라라는 건, 알고 있나?"

"네. 그 경위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 쪽으로 설명을 할 수고는 덜겠군. 그런 경위로 세워진 나라이다 보니, 당연히 영토 문제를 떠안고 있지. 지금도 국경 부근의 가스가 묻힌 곳을 두고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추세야. 이 전쟁은 그 가스 소유권을 두고, 5년에 한 번 열리는 행사지. 시합 형식은 매번 바뀌지만, 올해는 대표로 5명의 《마도기사》를 내세운 단체전. 총 5시합을 이긴 나라가 승리하는 룰로, 이미 정해졌어. .....여기까지 얘기했으니, 조건은 이미 이해했겠지?"

"그 전쟁에 버밀리온 황국의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전하여, 승리하는 것.... 인가요?"

"약간 달라. 너 혼자서 승리해서야 의미가 없어. 자신의 적에게 승리하고, 동시에 버밀리온에게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 이것이 내가 내는 과제. 제 1황녀임과 동시에 차기 여왕인 루나아이즈 버밀리온이, 제 2황녀, 스텔라 버밀리온과의 교제를 허락하는 조건이다."

그리 고한 뒤, 루나아이즈는 잇키를 가늠하는 듯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한다만. 직접 국익에 공헌할 수 있는 찬스이니까. 거기다 요 30년동안, 버밀리온 황국은 한 번도 이 전쟁에서 이겨본 적이 없지. 이 상황을 타파한 남자라면, 그 때는 스텔라와의 혼약에 이론을 제기할 사람 따윈 누구도 없을 테지. .....저 외곬인 아버지도 말야."

이 루나아이즈의 말에 시리우스는 깜짝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엑!? 자, 잠깐 기다려, 루나! 난 그러리란 말은 한 마디도───"

하지만

"저기, 루나 언니. 아까부터 신경이 쓰였는데, 저 아저씨 누구야?"

"당연하지! 이 나라에 승리를 가져다 준 사무라이라면, 버밀리온 국왕인 내가 반대할 도리 따윈 있을 리가 없지! 안심하고 스텔라를 맡길 수 있을 거야! 와하하핫!"

스텔라의 한마디에, 시리우스는 손쉽게 꺾여버렸다.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아까부터 자신을 바라보는 스텔라의 눈이 싸늘하게 식어 있다는 것을.

지금 스텔라 안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실로 위험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렇다. 여기서 아주 약간이라도 떠밀려버리면, 딸의 안중에 완전히 아웃되어 버릴 정도로.

뭐 , 자업자득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겠지만.

"어때. 내 과제, 받아들이겠나?"

그에 잇키는

"물론이죠. 그것이 스텔라의 남편으로서 요구되는 조건이라면, 전 반드시 승리해 보이겠습니다."

즉답으로 답했다.

처음에 전쟁이라는 말을 듣고 약간 놀랐지만, 자신의 검으로 갈 길을 개척한다는 건,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거절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 답을 듣고

"좋았어!"

루나아이즈는 갑자기, 발을 빙 돌려 잇키에게 등을 향했다. 그리고 홀로 식당의 커다란 창문에 다가가, 양손으로 그 창문을 열어젖힌 뒤───

"그렇다는군! 너희들도 들었지!?"

테라스에 선 뒤, 성 밖을 향해 외쳤다.

그 순간.

' '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

하고, 마치 지진 같은 갈채가, 열린 창문을 통해 식당에 쇄도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모두 함께 테라스로 나가 보니, 성 밖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군중이 모여 환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바로 이거야."

깜짝 놀라 눈을 부릅뜨는 스텔라에게, 루나아이즈는 심술궂은 소년 같은 표정을 짓고 드레스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건, 자신의 부친의 폭거를 못 본 척 하면서도, 여차할 때에 잇키에게 구원을 보내기 위해, 사전에 황도에 설치된 모든 방송 설비와 연결해 둔, 집음 마이크였다.

"지금까지 했던 대화는 전부, 국영 방송으로 밖에 방송해 뒀어. 이렇게 하면 국민 모두에게 설명을 할 수고도 줄어들 테니까."

"잠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엄청난 말을 하는 루나아이즈를 향해 잇키는 항의하려 했다. 방금 했던 그녀의 양친에 대한 인사까지도, 도시 내 모든 사람들에게 생생히 방송했으니, 이 반응도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루나아이즈는 그런 잇키를 완벽히 무시한 채, 성 밖의 사람들에게 외쳤다.

"지금 들은 대로다! 지금 이 순간, 한 약속이 맺어졌다! 버밀리온 국왕, 시리우스 버밀리온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돌아온다면, 잇키 쿠로가네를 제 2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의 남편으로 인정하겠다고! 이 약속에 이론이 있는 자는 있는가!?"

그 말에, 군중은 응했다.

'있을 리가 없지!'

'우리 모두가 한꺼번에 덤벼도, 이길 수 없었다고!'

'거기다 이런 우리들을, 저 신랑 분은 좋아하게 됐다고 말해 주었어.....!'

'이렇게 강하면서도 상냥한 남자는, 본 적이 없어!'

'스텔라를 맡길 수 있는 건 이제 당신 뿐이야! 혹시 국왕이 또 억지를 부려 약속을 어기려 했다간, 우리들은 쿠데타라도 벌여서 네 편이 되어줄 테니까!'

잇키에게 향해 온 건,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여기에 오기 전에 나눈, 결투의 약속.

국민 모두를 돌파해 낸 뒤 스텔라 곁에 도착하게 된다면, 잇키의 승리.

버밀리온 국민은, 결투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렇다면── 잇키가 해야 할 일은 하나 뿐.

"국민 일동, 네 활약을 기대하고 있겠어. 잇키."

루나아이즈의 그 말.

잇키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답했다.

"네...!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긴다는 것은, 짊어진다는 것.

패배한 자의 바램을 이어간다는 것.

그렇기에, 그는 승자로서 맹세했다.

이 거머쥔 신뢰를, 결코 배신하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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