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워스트 원》 VS 《홍련의 거친 사자》!?
시리우스 버밀리온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오랜만에 일본에서 돌아온 사랑스러운 딸, 스텔라.
그 아이의 자신을 보고 있는 눈이...... 뭐라 해야 할까, 차가웠다.
마치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
말을 걸어 봐도 무시. 끈질기게 계속 말을 걸어 봐도 대충스런 대답.
어른이 되면 아빠의 신부가 될 거야! 라고 말했던 스텔라가 말이다.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인가.
이유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모든 건... 저 애송이 탓이다.
쿠로가네 잇키....!
저 일본인이, 유학을 간 그 곳에서, 스텔라를 꼬드기고 있는 것이다.
스텔라는 그 녀석에게 속고 있다.
그러니 시리우스는, 스텔라를 지키기 위해 행동을 벌였다.
왕의 권한을 구사해, 잇키를 지명수배하여, 군대를 보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갔다. 자객으로 보낸 단달리온은 회유당하기까지 해 버렸다. 그 덕에, 자신의, 부친으로서의 위엄은 땅에 떨어져버렸다.
정말 이놈이고 저놈이고 한심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하고 시리우스는 생각했다.
이제, 아무에게도 맡겨 두지 않겠다! 라고.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힘으로, 사랑스러운 딸 스텔라를, 스텔라에게서 신뢰를 되찾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잘 들었나!? 승부는 《환상형태》를 이용한 모의전! 단판 승부다!"
시리우스는 성 안뜰에 있는 훈련용 링 위에서, 잇키를 향해 엄포했다.
잇키와 직접 싸워, 승리한다.
압도적으로.
그것이, 시리우스가 생각해 낸 기사회생의 계획이었다.
그는 확신했다.
이 일본인에게 압승하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스텔라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잘 나가는 남자라는 것을. 한 편, 이 시리우스의 말에, 안뜰로 불려 나온 잇키는 곤혹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저, 저기.. 갑자기 이게 무슨 승부인가요..?"
"난 확실히 네 놈이 우리 버밀리온에게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주기만 한다면 스텔라를 내주겠다고 인정했다만, 네 놈의 실력을 인정한 건 아니거든! 그걸 여기서 확실하게 확인해 두려는 거다! 내게 이긴다면 버밀리온의 대표로서 인정해 주지! 하지만 진다면, 얌전히 일본으로 돌아가버리도록!"
하지만 시리우스의 도전을 앞에 두고, 잇키는 주저를 내비쳤다.
"에, 에엑...!? 아, 아무리 훈련이라고 해도 한 나라의 황족에게 칼을 들이대는 건...."
하지만, 그런 잇키의 등을, 두 여성이 밀어주었다.
"괜찮아요, 잇키 씨. 그런 건 신경쓰지 않아도요~"
"본인이 하라고 했으니, 사양 없이 흠씬 두들겨 패 주라구!"
시리우스의 아내, 아스트레아 버밀리온과, 그 딸인 스텔라 버밀리온이었다.
이 둘의 모습을, 시리우스는 쓰디쓴 감정을 갖고 바라보았다. 군대를 이용한 그 작전이, 친위대나 단달리온이 못난 탓에 실패로 돌아간 이후로, 스텔라만이 아닌 사랑스러운 아내인 아스트레아의 태도까지,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차갑게 되어 버렸다. 잇키랑만 사이좋게 이야기하고 있었고, 자신과는 이야기하려 들지를 않았다. 어제도 같이 목욕탕에 같이 들어오질 않았고.
'스텔라만으로 그치지 않고, 내 아내에게까지 마수를...! 절대 용서 못 해, 쿠로가네 잇키!'
여기서 자신이 저 애송이의 콧대를 꺾어버리면, 아버지로서의 위엄도, 아내의 사랑도, 모두 되찾을 수 있다.
'꺄~ 역시 아빠는 멋져~'
'강한 여보야 진~짜 좋아! 쪽!'
이런 느낌으로 진행될 것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니,
'혼쭐을 내 주겠어..!'
"자! 얼른 링 위로 올라와! 신호가 떨어진 뒤엔 봐 달라고 하기 없기다!"
시리우스는 잇키에게 링 위로 올라오라 요구했다.
여기에, 잇키는 살짝 주저한 뒤,
".....알겠습니다. 전력을 다하도록 하죠."
시리우스의 앞에 섰다.
이렇게, 무대는 완성되었다.
"타올라라, 《혁염의 대부》!!"
"내게 와 줘, 《음철》"
두 블레이저는 각자의 혼을 현현시킨 뒤 손에 든 채, 마주했다.
그 사이에 서 있는 건, 심판을 맡은 스텔라였다.
스텔라는 두 사람이 디바이스를 들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
"준비는 다 됐지? 그럼, ...Let's GO AHEAD!!!!"
싸움의 신호를 알렸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앗!!!!!!!"
먼저 움직인 건, 《홍련의 거친 사자》라는 이명을 지닌 시리우스.
그는 혼신의 마력을 이용해 화염을 만들어낸 뒤, 자신의 디바이스 《혁염의 대부》의 날에 둘러놓았다.
그 온도는 실로 섭씨 3천도!
철조차 갈라버리는, 화염의 참격.
그걸 가족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적을 향해 내리치기 위해, 시리우스는 도끼를 치켜들었고──
"어라?"
순간, 자신의 시야에서 적의 모습이 사라졌다.
동시에,
"아흥..."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마치, 무릎 아래가 사라져버린 듯이.
“승부 끝! 잇키의 승리!”
‘에, 거짓말... 우리 왕 너무 약한 거 아냐?’
‘고작 5초정도밖에 안 지났는데... 에? 진ㅉㆍ야?’
‘것보다, 지금 대체 뭔 일이 일어난 거야?’
“.....!? , , , !?!?”
이번엔 자신들의 왕이 대체 어떤 미련한 짓을 벌이려는 지를 보기 위해 안뜰로 모인 메이드들, 그리고 시리우스 자신도 이 어이없는 결말에 눈을 끔뻑이기만 할 뿐이었다.
자신이 무엇에 당한 건지, 그것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
고개를 들은 시리우스는, 알게 되었다.
잇키가 자신의 왼쪽에 서 있다는 사실에.
'설마... 간파하고 있었던 건가...!?'
──그, 설마였다.
그건 가족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잇키는 미세한 안구의 움직임을 보고 그 사실을 간파해냈고, 첫 움직임으로 최고속에 달하게 되는 《비익》의 체술을 이용해, 시리우스의 사각으로 파고든 것이다.
시력에 핸디캡을 지고 있는 시리우스에게, 이 움직임을 간파해내는 것은 불가능.
그것을, 야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시리우스도 무인이다.
상대의 약점을 찌르는 건, 싸움에 있어 당연한 전술.
오히려, 시리우스는 전율하고 있었다.
잇키의 움직임, 그리고 통찰력에.
....척 보기엔 그저 빼빼 마른 계집애 같은 남자로밖에 보이지 않건만, 이 무슨 엄청난 달인이란 말인가.
보통 단련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그리고, 동시에 알게 되었다. 그런 남자를 타도하여 아버지로서의 위엄을 되찾으려 했던 이 생각이,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날아가려 하는 것과 같은, 폭거였다는 것을.
"정말, 우리 여보도 귀엽다니깐."
"자, 이거롤 불만은 없지, 아바마마? 잇키가 이겼으니, 잇키를 버밀리온의 대표로 인정해 달라구."
하지만,
".....후, 후후후.... 후하하하, 후~하하하하하!!! 뭐, 뭐.. 이런 젊은이한테 처음부터 진지하게 싸우는 건 꼴사납기 짝이 없지. 이 1승은 핸디캡으로 쳐 주겠어! 3전제! 이건 3전제라고! 말하는 걸 잊어먹었군! 미안하구먼~ 느하하하핫!"
시리우스도 또한, 그 정도로 꺾일 남자는 아니었다.
그는 껄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뒤, 뻔뻔스런 얼굴로 승부를 뒤집어버렸다.
그런 부친의 모습에 스텔라는 "하아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시리우스는 꺾이지 않았다.
이기면 된다. 최종적으로 이기면 그만인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딸도 자신을 다시 되돌아 볼 것임이 틀림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미 거기에 도달할 길은 생각해 두고 있다.
"저, 저기.. 다음은 무슨 승부인가요?"
"오오! 잘 물어봐 주었군! 다음은.... 팔씨름이다!!"
"팔씨름 말씀이신가요? 저기... 그게 대표 자격과 어떤 관계가..?"
"물론 있지! 힘이야말로 모든 것! 내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내 품으로 파고든 그 기술은 조금이나마 감탄했다만, 그런 잔재주뿐인 허약한 녀석에게 신용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지! 남자는 힘이 세야 하는 법! 완력이 모든 것이지! 자!"
그리 말한 뒤, 시리우스는 자신이 말하고 있는 사이 눈치가 빠른 연배 메이드가 가져온 드럼통에 팔꿈치를 얹고,
"한 번 보여 주실까. 네 녀석의 완력을 말이다!"
그렇게, 잇키를 승부에 재촉했다.
여기에, 젊은 메이드들은 쓴소리를 내뱉었다.
'우와~ 우리 왕 진짜 치사하다!'
'두 배나 체격 차이가 있는데,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어요...'
'큭큭큭.. 바로 그거지...!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어....!'
메이드들의 목소리에, 시리우스는 큭큭 웃었다.
확실히 상대는 달인. 정면으로 검술 승부를 해 봤자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보아라. 저 가냘프로 작은 몸을.
팔 두께로 치자면 두 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 검술을 자랑하는 자라 할지라도, 고작해야 동양 일본인일 뿐.
피지컬에 있어 수렵민족인 자신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이거라면 이길 수 있다.
질 리가 없다.
이기게 된다면, 스텔라도 아스트레아도, 눈을 뜨게 될 것이다.
힘이 강한 남자야말로 멋진 남자라는 것을!
"자! 왜 그러고 있는 게야! 겁이라도 먹은 게냐!"
이 시리우스의 도발에,
".....알겠습니다. 온 힘을 다하도록 하죠."
잇키는 자신도 드럼통 위에 팔꿈치를 얹고, 시리우스의 손을 잡았다.
"배짱은 좋군. 스텔라. 신호 부탁한다."
시리우스의 요청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알았어." 라고 수긍한 뒤,
"그럼 둘 다, 준비는 된 거지? 레디.... 고!"
신호를 내렸다.
그 순간──
"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리우스는 포효했다.
그야말로 그의 이명대로, 사자와도 같은, 대기를 찌릿하게 울리는 포효.
그건, 그가 가진 드높은 기합의 증거였다.
그 기합에 호응하여, 마치 통나무 같은 팔에서 생겨나는 강렬한 완력.
뼈조차도 부러뜨릴 수 있는 힘.
이걸 앞에 두고 잇키의 팔은,
'어, 어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강철 같아.....!'
시리우스가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워 가며,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힘을 넣어도, 잇키의 팔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은 채──
"오, 오... 오옷.....!?"
천천히, 시리우스의 팔을, 마치 기계처럼 막힘없이, 밀어낼 수 없는 힘으로 내리눌렀고──
턱, 하고 시리우스의 손이 드럼통 위에 눌리게 되었다.
"자. 잇키의 승리."
이미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목소리로, 스텔라가 승패를 고했다.
'대단하다! 저렇게나 체격차가 나는데 아무 어려움 없이 이겼어!?'
"와~ 잇키 씨! 체격도 그다지 크지 않은데, 정말 힘이 세구나~"
"윽...!?"
예상 외의 잇키의 압승에 구경을 나온 메이드들과 아스트레아는 박수를 보냈고, 시리우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방금 느꼈던 거스를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의 기억이 남아 있는 손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두께를 지닌 가느다란 팔.
거기서, 어떻게 그렇게나 엄청난 힘이 나오는 것인가.
시리우스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시리우스를 향해, 스텔라가 말했다.
"체격 차이 따위, 잇키에게 있어 아무 의미도 없어. 왜냐면, 잇키는 '자신의 모든 것을 1분만에 쏟아낼 수 있는' 집중력으로, 자신의 온몸을 완전히 지배하에 놓고 있으니까."
"자신의 몸을 완전히...?"
"그래. 아바마마도 무인이니까 물론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람의 몸 자신의 스펙을 풀가동시킬 수 있게 만들어져 있지 않아. 사람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져 있는 생존본능이,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매번 자신의 힘을 일정 수준만 내게 만들기 때문이야. ....하지만, 잇키는 달라. 잇키의 극한까지 다져진 집중력은, 그 한계를 자기 자신의 의지로 넘어설 수 있어. 원래라면 다룰 수조차 없는 힘을 자유자재로 끌어낼 수 있다는 말이야. ──우리들과 잇키 사이엔, 전력이라는 말의 의미가 달라. 우리들이 입에 담는 전력이란 말은 자신을 고무시키기 위한 말에 지나지 않지만, 잇키에게 있어 전력이란 말은..... 말 그대로 자신의 전부가 되니까."
"큭───!"
이 스텔라의 말에, 시리우스는 말문이 막히게 되었다.
생존본능에 의한 한계치. 사람이란 근력도, 체력도, 마력도, 이 한계치에 의해 반 정도밖에 쓸 수 없게 만들어져 있다.
그건, 시리우스도 무인인 이상 당연히 알고 있다.
유일하게 이 한계치가 해제되는 때는, 자신의 목숨에 진정한 위기가 찾아왔을 때.
흔히들 화재 현장에서 나오는 괴력이라 말하는, 죽을 위기에서 나오는 집중력.
그 한 순간에 한해, 사람은 그 한계치를 무의식 도중에 깨뜨릴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이 소년은 자신의 의지로 그 한계를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대체.....'
대체 얼마나 자신에게 혹독해야,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걸로 아바마마도 잘 알았지? 잇키는 엄청 강하다는 걸. 것보다, 잇키는 애초에 나한테 두 번이나 이겼다구. 나한테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아바마마가 잇키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윽...."
확실히, 스텔라가 말한 대로, 시리우스는 잘 알게 되었다.
무인으로서, 존경심조차 들었다.
하지만....!
"난 아직 안 졌어!!!!!"
"뭐어!? 방금 자기 입으로 3전제라고 했잖아! 잇키가 2승을 했으니 잇키가 이긴 거잖아!?"
"아니거든요~! 3번째 승부는 점수가 10배이니 역전 가능하거든요~!"
"저기 있잖아... 이제 좀 적당히 좀 하라구...!"
'우리 왕, 진짜 끈덕지다...'
'엄청 꼴사납군요~'
'아아, 어쩐지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어, 나..'
"시끄러! 누가 뭐라 하건 난 아직 안 졌어! 마음이 꺾이지 않는 한, 남자에게 패배란 두 글자는 없는 법이라고!!!"
스텔라와 메이드들이 매서운 눈으로 흘겨보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눈앞의 소년이 존경할 만한 무인이건, 그런 건 관계없다.
왜냐면 이 남자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딸을 빼앗으러 온 자이니까.
자신과 아스트레아가 만들어낸, 사랑의 결정.
어렸을 때부터 소중히, 아주 소중히 길러 온 보물.
그걸, 갑자기 나타나 통째로 빼앗아가려 한다니──
싫다.
싫어, 싫다고. 그런 건 정말, 어찌 됐든 싫었다.
생각하기만 해도 현기증이 났다.
울 것만 같았다.
──이기적이라는 건 알고 있다.
제멋대로 굴고 있다는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괴로운 마음을, 그냥 참을 수만은 없다.
그러니──
'내가 살아 있는 한, 끝까지 방해해 주겠어...!'
"쿠로가네 잇키! 이번엔 마라톤으로 승부다아아앗!!!"
수치도, 체면도 모두 내버리고 계속해서 덤벼드는 시리우스.
여기에, 잇키는 아무 불만도 없이, 질문을 했다.
"그건 괜찮습니다만, 어디를 달려야 하죠?"
거기에, 시리우스는 답했다.
"황도를 빙 둘러 설치된 간선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도로 위에 '포니 하우스' 본점이 있다! 거기에 도착한 뒤, 여기로 먼저 돌아오는 쪽이 승리다!"
"포, 포니? 그게 뭔가요?"
들은 적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잇키.
그런 그에게 아스트레아가 부연설명을 했다.
"'포니 하우스'는 버밀리온의 제과 브랜드에요. 버밀리온에 방문한 국빈을 대접할 때에, 우리들도 자주 신세를 지곤 하죠. 초콜릿이 특히 인기가 좋고, 일본 백화점에도 체인점이 있답니다."
"아아, 제과점이었군요."
그럼, 달콤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하는 잇키가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본점에는 그 가게에서밖에 팔지 않는 초콜릿 붕어빵이 있지."
"부, 붕어빵 말씀이신가요."
"혹시 모르시나요? 그 귀여운 모양이 요즘 전 세계에 인기라구요?"
"어쨌든, 도착한 뒤 돌아왔다는 증거로 그 붕어빵을 하나 사 오는 게지. 돈은 있나?"
"아, 네. 일단 조금은──"
"그럼 오케이! 자, 간다! 준비! 시작!"
그 순간, 시리우스는 잇키의 준비를 기다리지 않고, 멋대로 성 정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아, 지, 진짜! 정말 말을 안 들어먹는다니까!"
이 부친의 행동에, 스텔라는 분개해 하며,
"잇키! 됐어. 저런 거에 어울려주지 않아도 괜찮다구! 무시하자!"
그렇게 잇키를 향해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에 쓴웃음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하하... 뭐, 하지만 마음 내키실 때까지 시험해 보라고 말한 건 내 쪽이니까. 가게 위치는 핸드폰으로 확인하면 알 수 있을 테니, 다녀올게."
시리우스의 뒤를 쫓아 달려나갔다. 핸드폰 맵으로 확인해본 결과, 거리는 10킬로미터 정도. 매일 20킬로미터 러닝을 일과로 삼고 있는 잇키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잇키는 이미 먼저 달려 나아간 시리우스를 추월했다.
하지만,
'역시 날렵하군...! 허나──'
시리우스도 아무 생각 없이 마라톤이라는 승부수를 꺼내든 것이 아니었다.
비책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거지!"
시리우스는 간선도로를 따라 나아가다 급격히 방향을 꺾어, 좁은 골목에 들어섰다.
그렇다. 지름길이다.
'시가지를 비스듬하게 빠져나가 '포니 하우스'까지 최단거리로 달려가면, 거리를 반절 가까이 줄일 수 있지! GPS에도 나와 있지 않은 숨겨진 루트라고!'
핸드폰을 한 손에 들고 길을 알아 나아가는 여행객에게는 알 수 있을 리가 없는 길.
하물며, 시리우스는 이 나라의 왕.
자신의 나라에 대한 건 손바닥 안일 터.
지형의 이점은 그가 쥐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확신했다.
"이 승부, 이겼다─────아앗!!!!"
◆◇◆◇◆
그리고 10분 후──
1등으로 도착한 쿠로가네 잇키가, 붕어빵 봉지를 든 채 안뜰로 들어왔다.
"자, 잇키의 승리."
"수고했어요, 잇키 씨."
"감사합니다."
잇키의 승리를 축복해 주는 스텔라와 아스트레아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잇키가 물어봤다.
"그래서, 그... 아버님은요?"
지름길을 이용했을 터인데도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시리우스의 행방에 대해서.
여기에, 아스트레아는 답했다.
"괜찮아요. 방금 시가지 안에서 미아가 된 그이를 단달리온 씨가 보호하고 있다고 한 것 같으니까요."
그렇다. 지형의 이점을 살려,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시리우스였지만, 그 자체가 그의 과언이었던 것이다.
시리우스는 황족. 성 바로 옆이라고 해도, 뒷골목을 나다녀 본 경험 따위는 없었다. 복잡한 시가지를 빠져나가, 목적지로 향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던 것이었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그는 길을 잃었고, 어떻게 할 줄을 모르다가 아스트레아에게 전화로 SOS를 요청했고, 방금 막 보호에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은 참이었다.
"하아아~~~~~~~. 진~~~~짜 한심해! 부끄러워! 한심해!!"
이 부친의 거듭되는 추태에, 스텔라는 머리를 싸맸다.
"한심하다는 말, 두 번이나 했어.."
"두 번 정도로도 부족해! 잔뜩 반칙이나 해 놓고 죄다 져 버리다니!"
"그만큼 아버님이 스텔라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거잖아."
"그렇다고 해도 한도가 있잖아, 한도가! 아, 정말! 여기 있는 사이엔 다시는 말도 섞지 않을 거야!"
"그, 그러지 말고..."
분노가 머리 끝까지 달한 듯한 스텔라를, 잇키는 어떻게든 달래 보려 했다. 자신 때문에 부녀 사이에 균열이 가는 것도 면목이 없고, .....솔직히, 시리우스의 그 단순한 애정은, 좋은 부자 관계를 지니지 못하고 있던 잇키에게 있어, 부럽게도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잇키를 향해, 아스트레아가 말했다.
"후후. 잇키 씨는 착하네요. 그렇게나 당신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는 그이를 생각해 주다니. 하지만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 사람은 이 정도로 풀죽거나 할 사람은 아니니까. 방금도 단 씨가 전화로 '오늘은 무승부로 봐 주겠어' 라는 말을 전해 달라고도 했구요. ...그이에 대한 걸 가장 잘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 '마음 내키는 대로 시험해 달라' 라는 말은 조금 경솔했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하, 하하하..."
이젠 대체 무엇을 두고 무승부라 하는 건지조차 모를, 시리우스의 폭론.
여기엔, 잇키도 쓴웃음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 입으로 말한 거기도 하니... 게다가."
"게다가?"
"혹시 저와 스텔라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게 된다면, 전 틀림없이 그 아이를 제 목숨 같은 것보다 소중히 여기겠죠. 그런 소중한 존재를, 고작 머리 한 번 숙이고 데려간다니, 뻔뻔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몇 번을 시험당한다 할지라도, 거기에 응해 보이겠다.
그렇게 자신의 결의를 고한 잇키를 향해, 아스트레아는 미소지었다.
"스텔라는 정말 멋진 남자애를 골랐구나, 하고 느껴지네요. 그럼, 열심히 해내 주세요. 응원할 테니까~"
그리 말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어디로 가시나요?"
"그이를 배웅하고 올게요. 틀림없이 삐쳐 있을 것 같으니까."
그리 말하고, 아스트레아는 살짝 빠른 발걸음으로 안뜰을 나섰다.
그리고, 그녀의 작은 뒷모습이 사라진, ──그 때였다.
"쿠로가네 씨! 수고하셨어요!"
" " " 수고하셨어요!! " " "
수많은 목소리가, 뒤에서 날아들어왔다.
뒤돌아보니, 에이프런 드레스 차림의 꽃다운 소녀들이 모여 있었다.
"너희들은...?"
"저희들은, 성에서 일하고 있는 메이드에요!"
"우리 왕의 억지에 어울려 주신 보답으로, 차가운 음료수를 가져왔답니다."
"갈아입을 옷도 가져왔어요, 받아 주세요!"
그리 말하고, 소녀들은 페트병 음료와 스포츠 웨어를 건네 왔다.
여기에, 잇키는 "고마워. 잘 받을게." 하고 감사인사를 건넸다.
일본보다 시원한 나라라고 해도, 버밀리온도 여름철.
땀을 잔뜩 빨아들인 상의는 입고 있기가 찝찝했고, 목도 마른 참이었다.
메이드들의 호의를 받아들여, 잇키는 타이야키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땀에 젖은 상의를 벗었다.
그 순간,
" " " 꺄아아아아앗~~!!!!! " " "
갑자기, 메이드들에게서 새된 환성이 터져나왔다.
"뭐, 뭐야!?"
깜짝 놀라는 잇키. 메이드들은 눈을 반짝이며 서로 귓속말을 건넸다.
"봤어!? 봤어!?"
"봤어! 갈라진 복근!"
"잔근육 마초! 잘 생겼는데 잔근육 마초라니! 너무 완벽하잖아!"
"쿠로가네 씨! 그렇게 땀을 흘리셨으니 새로운 웨어를 입는다고 해도 금방 또 땀에 젖어 버릴 거에요! 이 근처에 있는 저희 기숙사에 샤워장이 있으니, 거기서 샤워라도 하지 않으실래요!?"
"그러면 거기에 겸해서 저희랑 오후 티타임이라도 함꼐 하시지 않겠어요? 저희, 잇키 씨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요~♪"
'아, 이 전개는...'
잇키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메이드들의 표정을 보고, 데자뷰를 느꼈다.
교내 선발전에서 《사냥꾼》을 쓰러뜨린 이후, 자주 보게 되었던 시추에이션.
자신을 응원해주고 있는 팬인 여학생들과 느낌이 같았다.
스텔라가 살고 있는 나라의 국민들의 인정을 받는다. 그 자체는 잇키도 기쁜 마음이 들었지만, ──경험상, 이 뒤의 전개는 뻔하디 뻔했다.
"이것들이~~~~~~~~!!!!!!!"
그리고 그 예상대로, 바로 옆에 있던 스텔라가 분노의 일갈을 내지르며, 잇키와 메이드 사이에 껴들어 나섰다.
그리고, 메이드들을 향해 질책을 날렸다.
"너, 너희들! 황가에서 일하는 메이드들이면서, 공주의 연인에게 추파를 던지다니, 대체 개념이 어떻게 돼먹은 거야!!!"
하지만, 이 스텔라의 질책에, 메이드들은 조금도 동하지 않았고, 오히려 여봐란 듯이 웃음으로 답했다.
"에에~ 하지만 시리우스 왕이 저러고 있으니, 결혼하는 건 무리이지 않을까요~?"
"애초에~ 혼약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잇키 씨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 " "맞아요~ " " "
이 메이드들의 반론에, 스텔라의 빨간 머리칼에 살짝 임광이 깃들기 시작했다.
"어머나, 참.... 우리 메이드들은, 정말 쓸데없이 배짱도 좋다니까... 이 《홍련의 황녀》에게 진검승부를 걸어 오다니... 기쁘기 짝이 없네....?"
떨리는 목소리. 채도가 서서히 늘어나는 염발. 잇키는 이건 좋지 않게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스, 스텔라, 좀 진정──"
하고 자제를 요청했지만, 스텔라의 귀엔 들어가지 않았다.
스텔라는, 온몸에서 불을 내뿜으며, 포효했다.
"그래, 좋아! 이 도둑고양이 군단들아!! 싸움이라면 얼마든지 받아주겠어! 한꺼번에 상대해 줄 테니 모두 다 덤벼!!"
"꺄아~! 공주님이 불을 뿜었어!"
"무식녀야! 역시 시리우스 왕과 같은, 무식파라구!"
"역시 피는 속일 수 없어요!"
"누가 무식하다는 거야! 너희들의 그 넓디넓은 배짱을 높이 사서, 이 내가 직접 상대해 주겠다는 거잖아! 야! 도망가지 마──!!"
"싫거든요~~~"
" " " 싫거든요~~~ " " "
마치 새끼거미가 도망치듯 여기저기로 퍼져 나아가며 도망치는 메이드들과, 그걸 쫓아가는 스텔라. 갑자기 발발한 자신을 둘러싼 소동에, 잇키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곤혹해 하고 있었다.
그런 잇키에게,
"아하하하핫! 인기 폭발인데그래, 남친 씨!"
"플레이보이라는 느낌?"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가 날아들어 왔다.
시원시원하고 쾌활한 목소리와, 어쩐지 애교가 섞인 목소리.
그 목소리의 주인은,
"티르밋 양에, 밀리어리아 양...! 거기에, 누님까지!"
◆◇◆◇◆
티르밋 그레이시와, 밀리어리아 레이지.
안뜰에 나타난 두 소녀는 스텔라의 동급생이고, 이전에 시리우스에 의해 잇키의 목에 내걸린 상금을 노리고 공격해 온 블레이저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둘과 만나는 건, 그 소동 이후인가?"
그리 둘과 함께 잇키가 있는 곳으로 찾아온 스텔라의 언니, 버밀리온 황국 제 1황녀 루나아이즈 버밀리온은, 잇키를 향해 물었다.
여기에, 잇키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네, 그렇네요."
"아~ 그 때는 정말 미안했어, 남친 씨. 돈이 좀 필요해서 말야."
"미안해~?"
과연, 정말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상당히 그런 의문점을 남기는 태도였지만.. 그런 둘의 사죄를, 잇키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답했다.
"아뇨. 저도 여러분 덕에 아버님께 인사를 하기 전에, 긴장이 딱 좋게 풀렸거든요. 오히려 감사를 드리고 싶을 정도에요."
"아하핫! 죽일 생각으로 추격해 댄 상대한테 감사라고? 머리 이상한 거 아냐?"
"하지만 스텔라랑은 잘 어울릴 것 같아. 그치, 루나 언니?"
"그래. 그렇군."
"모두들, 엄청 담담하게 실례되는 말씀을 늘어놓으시네요!?"
무심코 항의를 하는 잇키에게 "아니, 뭐~" 하고 티르밋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우리들은 칭찬을 하고 있는 거라구~? 자, 저거 좀 봐."
슬쩍, 메이드들을 쫓아다니는... 그렇다기보단, 메이드들에게 놀아나고 있는 듯한 스텔라를 바라보았다.
"그런 너이니, 저 스텔라를 바꿀 수 있었을 거야. ...저 녀석이 저렇게 보통 여자애처럼 다른 여자한테 질투를 하는 모습, 이쪽에 있을 시절엔 상상도 못할 모습이었으니까."
"그래, 맞아. 이쪽에 있을 때의 스텔라한테는 진짜 생각도 못 할 모습이라구."
"그런가요?"
"그래. 스텔라는, 맨날 퉁명스럽고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지냈으니까."
"자신과 겨룰 만한 상대가 없다 보니 힘을 발산할 데가 없어 짜증이 쌓여 있던 거겠지. 뭐라 해야 할까, 그 나이에 찾아오는 뭐시기 병이라고 있잖아?"
"중이병, 이라고 하든가?"
"아아, 그거."
"그러고 보니.."
그 둘의 대화에, 문득 잇키도 처음 만났을 때의 스텔라를 떠올렸다.
확실히, 처음 만났을 때의 스텔라는, 어딘가 가시가 돋혀 있는 분위기가 있었다.
자신과 처음 만난 상황이 최악이었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주위에 대한 불만이나 짜증스러움을 감추고 있지 않았다. 재능이라는 한마디로 자신의 강함을 단정짓고, 겨뤄 보려 하지도 않는 주위 사람들과 같이 지내기를 포기하고, 관계하기를 멀리하며, 고고한 자신으로 남아 있는 것을 선호하는 듯한 모습이 엿보였다.
그 때를 생각해 보면... 확실히 많이 변했다.
두르고 있는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그 변화가 자신과의 만남이 가져다 준 것이라 한다면, 그건 엄청 기쁜 일일 것이고, 잇키는──
"뭐, 그러니까 그런 중이병을 뜯어고쳐 준 것으로도 모잘라 자신의 나라를 뛰쳐나가 버린 저 야생마도, 여기 이 사무라이 님이 갖고 계신 다리 사이의 《음철》에는 이기지 못했다는 거겠지!"
피를 토할 정도로 성대한 헛기침.
"가,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티르밋 양!?"
"뭐냐니, 그러니까, 네 그 XX로 저 야생마를 길들였다는 말이잖아?"
"로데오 같은 자세로 말이지?"
"아니, 길들이다거나 그런 건 안 했다고요!!"
"에이, 또 그런다~ 새침하기는~ 건강한 남녀가, 거기다 애인끼리 같은 방에서 쭉 생활했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니, 그건 오컬트 급이라고. 불가능하잖아?"
"있잖아~ 솔직히 스텔라랑 어디까지 갔어? 솔직히 말해보라구?"
"그건가? 역시 상대는 저래 봬도 공주니까. 뒤냐? 뒤로 한 거야?"
"뒤....!?"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계쏙해서 다가오는 티르밋과 밀리어리아를 보고, 잇키는 말문이 막혔다.
이런 한창 때의 소녀들이 연애사에 열중하는 건, 만국 공통인 것이다.
하지만,
"기품 없는 화제는 그쯤 해 둬. 이 발랑 까진 꼬맹이 녀석들아."
그런 둘의 머리를 루나아이즈가 손바닥으로 가볍게 쳐, 제지했다.
"아얏!"
"부우~ 루나 언니는 신경 안 쓰여?"
"안 쓰여. 동생이 애인과 어디서 뭘 하든 알고 싶지도 않고. 거기에 머저리 스텔라 녀석은 둘째치고, 잇키는 요즘 들어 흔치 않은, 건실한 젊은이야. 그런 그가 육욕에 꺾여, 한 나라의 공주와 혼전교섭 같은 불량한 짓을 하다니, 그럴 리가 없지. 그렇지?"
"무, 물론이지요~ 아하하...."
웃어넘기며, 잇키는 위에 구멍이 뚫린 듯한 죄악감을 참아냈다.
하지만,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때엔, 정말, 뭐라 해야 할까.. 사전의 맹세나, 남자로서의 자존심, 그런 것들이 전부 어찌 되어 버리든 상관없을 정도로, 스텔라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니, 후회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잇키가 속으로 자기변호를 하고 있자, 루나아이즈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그건 그렇고, 시집도 못갈 것 같았던 그 말괄량이가, 이렇게 멋지게 성장하여 돌아오다니. 역시 애지중지하며 키운 아이는 여행을 보내 보고 나서야 아는 법인가 보군.."
동생을 향한 애정과 자애에 가득찬 표정.
그러나.
'어라...?'
어째서일까.
그 루나아이즈의 표정이.. 잇키에겐 너무도 어둡게 느껴졌다.
마치, 그늘이 드리워진 것처럼.
하지만, 그것도 한 순간의 일.
잇키가 자신의 직감에 사고를 굴리는 것보다도 빠르게,
"뭐, 그건 그렇고, 잇키."
루나아이즈는 잡담을 끝마치고, 자신이 여기에 온 이유를 화제로 꺼냈다.
"이 둘을 데리고 온 건 별다른 일도 아니야. 잇키에게 실습을 받게 하기 위해서지."
"실습, 인가요?"
"그래. 내 추측으로는 스텔라와 넌 클레이델란트에서 나올 기사 중 누구와 싸워도 이기겠지만, 다른 셋은 그게 어려워. 그러니 시합까지 가능한 한 전력강화를 해 두고 싶어."
"태그전이라면 질 거란 생각은 안 드는데 말이지~"
"일대 일이라니, 그런 걸 왜 하냐고~~ 애초에 밀리는 스나이퍼라구~"
그렇군.. 하고, 잇키는 실제로 둘과 겨루어 보고 느낀 느낌과 인상 때문에, 루나아이즈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이 둘은 동시에 상대하게 되면, 서로의 결점을 보충해 주며 싸우기 때문에 실로 까다로웠지만, 한 명의 기사로 평가하기엔, 잇키의 눈으로 봐서는 개선해야 할 점이 많았다.
거기에, 잇키 자신의 과제인, 『버밀리온을 승리로 이끄는 것』을 해내기 위해선, 이 둘의 실력 강화는 불가결할 것이다. 이 제안, 잇키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 거라면, 저도 한 손 거들어 보겠습니다."
시합까지 앞으로 1주일밖에 없기 때문에, 총합력을 상승시키는 건 어려울 테지만,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의 실력을 상회하는 실력을 가질 필요는 없다.
적은 카드로 승리를 끌어내는 것은 《워스트 원》의 18번이다.
...티르밋도, 밀리어리아도 다행히 기초는 제대로 닦여 있다. 짧은 시간밖에 없다 할지라도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비장의 수는 만들어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흔쾌히 승낙을 내리는 잇키에게, 루나아이즈는 "기대하고 있겠어" 하고 감사를 표한 뒤,
"그리고, 하나 더."
자신이 여기에 온 두 번째 용건을 언급했다.
"사실 방금 연맹 본부에서 연락이 들어와서 말이지. 아무래도 버밀리온 근교에──"
하지만, 그 때.
루나아이즈의 주머니에서, 착신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여기에 루나아이즈는 '대체 누군지 원, 분위기 읽을 줄 모르는 녀석이군' 하고 투덜거린 뒤,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표시된 착신 상대의 이름에, 살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뒤,
"실례."
잇키에게 사양 한 마디를 건넨 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그 쪽에서 이 쪽으로 전화를 주다니, 별일이군, 요한. 대체 무슨 일이지? 음... 아아, 그 이야기라면, 내 쪽에도 연락이 들어와 있었어. 지금 막...... 뭐라고.....?"
곁에서 들려 오는 대화를 듣고, 티르밋이 문득 중얼거렸다.
"이제 막 전쟁이 시작될 나라의 황족끼리 직접 통화를 하다니, 참 평화롭기도 하지~"
"전쟁, 이라는 건.. 클레이델란트의?"
속삭이는, 전화기에 들어가지 않을 낮은 톤으로 물어보는 잇키.
여기에, 티르밋은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래. 《황금의 바람》 요한 크리스토프 폰 콜브랜드. 클레이델란트의 제 1왕자이고, 상대 팀의 리더야."
"그런 상대와 사적으로 통화를 하다니..."
"뭐, 같은 연맹 가맹국이니까. 요한 오빠는 예전부터 버밀리온에 자주 놀러 왔었고."
"루나 언니랑은 대학교도 같은 곳이었지? 선배, 후배 같은 느낌~?"
그러니 뭐, 평범한 거 아니냐고 티르밋과 밀리어리아가 당연한 듯 말했지만, 그런 간단한 건 아닐 거라고 잇키는 생각했다.
연맹 가맹국끼리 다투는 나라는 수없이 많다.
그렇기에, 연맹에는 연맹 가맹국끼리 지켜야 할 전쟁 시스템이 존재한다.
버밀리온과 클레이델란트의 역사도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가스전을 둘러싼 다툼을 벌였다고 들었기에, 영락없이 지금도 불똥을 튀기며 싸우는 사이일 거라 생각했지만, 황족끼리 이렇게 친밀한 사이를 다지고 있었을 줄이야.
'내 이미지에는 팔불출 아버지의 일면밖에 없었지만..'
적잖은 인연을 지닌 근처 국가와 이렇게나 평화로운 관계를 쌓고 있는 시리우스 왕은, 정치로서 상당히 수완가일지도 모른다.
그리 잇키가 감탄하고 있자,
"........하아, 이거야 원. 대체 왜 그래? 평소랑은 다르게 상당히 억지를 부리는데그래? ....뭐, 괜찮겠지. 내가 그에게 부탁해 보도록 하지. 특례를 인정해 준 빚도 있으니까. .....음. 내일 점심 쯤에 그 쪽으로 가도록 하지. 그럼."
통화가 끝난 것인지, 루나아이즈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잇키를 바라본 뒤,
"....미안하군, 잇키. 네게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더 생겼다."
한 번 사과를 한 뒤, 이렇게 말했다.
"내일, 나와 같이 클레이델란트로 가 줄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