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장
카르디아 시가전
멀리서 천둥소리가 들려오는 흐린 날씨의 버밀리온.
지금도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 하늘 아래, 멋들어지고 낮은 석조 건물들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카르디아 시.
클레이델란트 국경과 버밀리온 황도 플레어베르그의 딱 중간에 있고, 이전엔 양국의 교통 요충지, 그리고 숙박 마을로 번영을 이루었었지만, 비행기나 철도 같은 공공 교통기관이 충실해진 현재, 딱히 이렇다 할 산업도 없었던 탓에,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어진 시골 마을이었다.
하지만, 그런 조용한 마을은 지금, 험악한 장비를 장착한 남자들에 의해 점거되어 있었다.
버밀리온 황국 육군이었다.
시리우스의 명령에 의해 철수 지시를 받은 그들은, 현지 경찰의 지휘에 의해 이미 피난을 끝내 둔 국경 주변의 주민 모두와 합류한 뒤, 그들을 데리고 황도 플레어베르그로 곧바로 후퇴를 개시했지만, 그 도중에 시리우스가 방금 내린 지시와는 다른 명령이 내려왔다.
그건, 이 곳 카르디아에 전선을 구축해 두라는 명령. 이곳에서 황도를 향해 똑바로 쳐들어 오고 있는 클레이델란트 군을 영격하여, 그들을 《괴뢰왕》의 지배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명령이었다.
그 지시에 버밀리온 군을 지휘하고 있던 시그너드 일런 대장은, 시리우스의 명령으로 먼저 카르디아에 대기하고 있던 경찰들에게 주민의 피난 유도를 맡기고, 클레이델란트 군과 시가전을 벌일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유자철선이나 철책의 배치.
건물을 폭파시킨 뒤 그 잔해를 도로에 흩뿌려 두는 것으로 인한, 진로의 저해.
그 모든 것들이 애들 장난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해 두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 모든 지휘를 내리며, 시그너드는 병사들에게 고했다.
"모두들! 장비 교체 서둘러! 이제 10분도 채 되지 않아 클레이델란트 군이 올 거라고!"
확성기로 증폭되어 있는 시그너드의 목소리에 재촉을 받으며, 병사들은 실탄이 들어 있는 총을 내려놓았다. 대신 장비한 것은, 피난민을 데려가기 위해 왔을 때 경찰이 들고 온, 고무탄이나 스턴 그레네이드, 스턴 건에 방탄 방패 등, 폭도 진압용 비 살상 무기였다.
클레이델란트 군을 돕는다.
그런 결정이 났으니, 실탄이 들어간 총 같은 걸 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이게 경찰들의 장비인가.. 구조 자체는 우리 장비랑 별 다를 바가 없지만... 야, 이것 좀 봐. 드럼통에 구멍조차 못 내잖아."
그가 발끝으로 깡깡거리며 차고 있는 드럼통은, 고무탄에 의한 시험사격으로 인해 커다랗게 패여 있었다.
크게 구부러져 있었지만, 관통은 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는, 대인 저지력을 기대할 수는 없을 터.
"믿음직하잖아? 이거라면 어디에 맞춘다 하더라도 죽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 병사의 중얼거림에, 곁에 있던 동년대 남자가 그런 농담으로 답해 주었다.
그러자,
"거기! 비켜비켜! 걸리적거린다고, 이 놈들아!"
둘을 향해 윽박이 날아왔다.
뭐야? 하고 고개를 돌려보자, 엄격한 얼굴을 한 연배의 남자가 전차 해치에서 고개를 내민 채, 둘을 향해 방해되니 길가로 비키라고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전차도 물리는 거야?"
여기에, 전차에 타고 있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포탄 크기로 쏘았다간 고무탄이라고 해도 보통 사람 따윈 곤죽이 되어 버릴 테니까. 마을 한 바탕 돌고 물러가랜다."
남자가 말한 대로, 어느 틈엔가 자신의 부대를 따라 나란히 달리고 있던 전차들은 전선 후방으로 이동해 있었다.
그 광경에, 방금 말한 중년 병사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거 재밌을 것 같은데. 조종당하고 있다곤 해도, 기관총을 휴대하고 전차를 몰고 오는 놈들한테, 이런 장난감만으로 우리들은 싸워야 하는 건가. 버밀리온하고 같은 입장인지라 대지폭격기 같은 걸 갖고 있지 않다고는 해도, 이거 너무한 거 아냐?"
이 병사의 불만에, 그걸 듣고 있던 모든 병사들이 동의했다.
"아아, 너무하다고. 너무하지. 명령을 들었을 때엔 정말 귀를 의심했다고. 정말 너무하잖아."
"그러게나 말야. 갑자기 침공을 받고, 집을 잃은 주민들의 구출과 피난 유도만으로도 눈이 돌아갈 지경인데, 클레이델란트 사람들까지 구해야 하는 거니까. 우리 왕은 대체 참 말리지도 못해먹을 바보 얼간이라고."
병사들 사이에 불평불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한 것.
자신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러 오는 상대에 대해, 일부러 장비 수준을 낮춰, 이쪽만 상대를 신경써 가며 싸워야 한다니, 전장의 병사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참 어이없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바보같은 이야기이다. 농담따먹기를 하자는 것도 아니고. 목숨 바쳐 싸우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들이니까.
불만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곤, 즐거워 보이는데, 너희들."
불평불만을 입에 담으면서도, 그들의 표정은 어딘가 시원한 느낌마저 엿보였다.
"그런 너도 말이다. 기분나쁠 정도로 히죽거리고 있다고. 방금까지... 그래, 실총을 들고 있었을 대엔 마치 이 세상의 종말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을 했으면서 말야."
"헤헷. ....어째서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고. 잘 모르겠지만, ....난 말야. 이쪽이 죽을 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목숨을 바쳐서 다른 나라의 사람들을 구해 주라는 말을 꺼내는 이 바보같은 나라의 병사로 싸우는 게, ──뭐라 해야 할까, 엄청 기쁘거든."
클레이델란트 군이 침공을 해 왔다고 들었을 땐, 정말 깜짝 놀랐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서둘러 소집에 응하라는 명령과 긴급 영격 명령이 내려왔고, 장비가 보급되었을 때, 실감하게 된 것이다.
지금부터 자신은, 클레이델란트의 사람들과, 진짜로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그 순간, 언제나 장비한 채로 연병장을 몇 바퀴나 돌았던 그 장비들이, 너무도 무겁게 느껴졌다.
손에 들고 있는 것조차 거북하게 느껴져, 내던져 버리고 싶었다.
당연하다.
양국의 유화를 다져 온 것은, 황족끼리만이 아니니까.
양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도 그들과 같이, 자신들의 왕을 따라, 조금씩 이웃 나라 사람들과 거리를 좁혀 왔다.
특히 그들의 세대는, 시리우스 정치가 들어서기 전의 클레이델란트와 버밀리온의 사이를 알고 있다. 서로의 존재를 저주하듯, 거기에 살고 있는 자들을 악귀나찰로 보도록 교육을 해 왔던 그 시절.
클레이델란트에 사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혐오를 했던, 그런 시대가 확실하게 있었다.
그건, 클레이델란트 쪽도 마찬가지일 터.
그러니, 유화 정책 시행 직후엔, 서로 시선을 마주하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작은 교류를 거듭해가는 것으로, 조금씩 상대를 알아갔고, 오랜 인습을 떨쳐내고 우정을 다져갈 수 있었다.
그런 상대와, 살육전을 벌여야 한다니.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영격 명령이 내려지고, 트럭에 실려 전장으로 향하던 도중엔, 병사라는 직종을 선택한 것에 엄청난 후회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음울한 마음을, 시리우스 왕이 일소해 주었다.
클레이델란트 군은 조종당하고 있을 뿐이고, 이쪽에게 적의가 없다고.
자신들이 쓰러뜨려야 할 적은 다른 곳에 있으니, 절대로 싸우지 말라고.
'일개 병사인 나도 알 수 있어...'
이 시리우스 왕의 결정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있을 수 없는 결정이라는 것은.
어떠한 이유이건, 클레이델란트 군은 무기를 들고 버밀리온의 영토를 침범하였다. 영격하는 것은 당연. 닥쳐오는 불씨를 내쳐버리기 위해, 병사들에게 방아쇠를 당기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 상식적인 국가가 내릴 결정인 것이다. 상대가 범죄자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도, 틀림없이 병사들에게는 알리지 않을 것이다. 모든 걸 숨긴 채, 국방에 전념시켰을 것이다.
....그 결과, 자신들의 손이 죄없는 우인의 피로 물들어버린다 할지라도.
그것이, 상식적.
그것이, 군대.
자신들의 왕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절대로 내릴 수 없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자신들의 왕이, 자신들을 향해 '우인을 죽여라' 라고 말하는 남자가 아니라는 것이.
'...시리우스 왕의 결정은, 확실히 우리들의 목숨을 위험에 내몰아버릴 거야.'
하지만, 그걸로 좋다.
버밀리온은, 이걸로 좋은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나 넓으니까 말이다. 한 곳 정도는 그런 착해빠진 이유로 전쟁을 하는 나라가 있어도 괜찮겠지."
"그러게 말이다...!"
이 병사의 마음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시그너드도, 마찬가지.
"거기! 언제까지 수다나 떨고 있을 거야! 장비 점검이 끝났으면 얼른 배치된 곳으로 가도록!"
" "Y, Yes. mom!" "
시그너드는 병사들을 그리 재촉하며, 황국 육군을 한 번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보았던 침울한 표정은, 마치 거짓말 같았다.
"알겠나, 너희들! 아무도 죽이지 마! 아무도 죽이게 만들지지 마라!! 그리고, 아무도 죽지 마!! 우리들의 왕이 직접 내린 명령이다! 황국 육군의 의지를 보여주는 거야!"
" " " 오오오오오오오오옷────────!!!!!!!!!!!!!!" " "
시그너드의 선서에, 버밀리온 육군 모두가 들끓었다.
핸디캡이 존재하는 사선. 말도 안 되는 싸움을 강요받고 있음에도.
모두의 표정엔 활력이 가득했다
자신들의 우인을 위해 싸울 것이란 의지가, 용기가 가득했다.
지금 막, 버밀리온 황국 육군의 사기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지금이라면, 어떤 궁지라고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시그너드는 확신하고,
"이쪾의 준비는 거의 완료됐어. 네가 우리들의 『눈』이야! 부탁한다, 쿠로가네!"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선 무전 마이크를 향해 고했다.
여기에, 시그너드의 시선 너머, 흐린 하늘을 날고 있는 헬기에서 몸을 내밀고 있는 쿠로가네 잇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만 주세요."
◆◇◆◇◆
'거기서, 제게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만. 들어 줄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버님?'
'────......., 말해 보거라.'
아스칼리드와 함께 황궁에 돌아온 잇키의 진언을, 시리우스는 약간의 긴 침묵 후에 받아들였다.
그 말을 듣고, 잇키는 그에게 제안했다.
세 자릿수를 넘는 오르골의 중계 역할.
이걸 현재 소유하고 있는 전력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그것은──
'제가 버밀리온 군의 눈이 되겠습니다.'
'뭐라?'
잇키가 제안하는 작전은,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중계 역할을 구별해낼 수 있는 잇키가 헬기에 올라타, 공중에서 전장을 살핀다.
넓은 시야로 수많은 수의 중계 역할을 간파해 내, 그 위치 정보를 황궁 육군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헬기로 날아다니며, 하늘 위에서 그 중계를 판별해 낸다는 말인가...!'
'네. 버밀리온과 클레이델란트는 둘 다 연맹 가맹국이지요. 대지 폭격기는 물론, 자국 영토 외의 장거리 비행이 가능한 항공전력 보유는 연맹 조약으로 인해 금지되어 있으니, 공중전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을 겁니다. 중계 역할을 판별하는 데에 전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허나, 어떻게 위치를 전할 생각인 게냐. 상대는 수만 규모의 군대야. 그 복잡한 전장에서 개인 하나하나를 판별해 낼 순 없을 거라고.'
'거기에 관해선, 밀리어리아 양의 힘을 빌린다면 해결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밀리를!?'
깜짝 놀라는 스텔라를 향해, 잇키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래. 멀리 떨어진 탄환을 정확하게 조종하는 시력과 공간 파악 능력. 그녀의 저격수로서의 실력은 초일류야. 내가 찾아낸 모든 중계 역할에 그녀가 페인트탄으로 마킹을 하는 거지. 이거라면, 모두에게 중계의 역할을 알릴 수 있을 거야.'
그리 단언하는 잇키에게,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탐탁찮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페인트탄으로 마킹을 한다면, 중계의 위치를 모든 병사에게 공유할 수 있을 것이고, 인원수가 적은 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하늘 위에서 그 작게 보이는 병사들을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누가 중계 역할이 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건가요?"
정말로 그게 가능한 것인가. 그것이 의문이었다.
사실, 아스트레아의 질문에, 연맹 내에서 4번째 실력자인 《흑기사》 아스칼리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신은 불가능하다고.
그리고, 단달리온도 마찬가지.
'제게도 무리겠군요. 헬기 위에서라면 정수리 위밖에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반응에,
'시력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잇키는 의도하여 어기를 강하게 만들고,
'몸의 상처는 아스칼리드 양의 《무적갑주》로 인해 전부 나았습니다만, 전 오르골과의 첫 접촉으로 인해 모든 것을 다 소모해 버렸습니다. 마력은 텅 비어서, 전력으로 거의 움직일 수가 없어요. 하지만, 스텔라의 고향이 궁지에 빠졌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그런 건 견딜 수가 없어요. 제게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해 주십시오...!'
똑바로, ──시리우스 버밀리온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믿어 달라고.
여기에, 시리우스는 긴 침묵으로 답했고....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건 클레이델란트와 버밀리온의 문제다. 일본에서 온 꼬마에겐 아무런 관계도 없어.'
'아, 아바마마! 아직도 그런 말을!'
부친의 거절을 스텔라가 따지고 들려 했다.
하지만, 그걸 아스트레아가 가로막았다.
'스텔라. 잠깐만.'
그 직후, 시리우스는 이어 말했다.
'허나, 네 녀석이 우리들의 한 가족이 되려 한다면, 이야기는 다르지.'
'아버님....!'
'이 전쟁에서 네 녀석이 버밀리온을 승리로 이끈다면, 나도 네 녀석을 인정하겠다. 상황은 좀 바뀌었다만, 약속은 아직 살아 있지. ....네 녀석이 입만 산 애송이 녀석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보여 봐!'
루나아이즈의 계략으로 인한 것이 아닌, 타인의 의사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말하는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의 말로, 자기 자신의 의지로, 약속했다.
쿠로가네 잇키를, 버밀리온의 대표로 인정하겠다고.
스텔라를 둔, 쿠로가네 잇키의 도전.
그것을, 한 남자로서 받아 주겠다고.
'네...! 반드시!!'
──반드시 해 내겠다.
헬기 위에서, 눈을 감고 몇 시간 전에 황궁 안에서 나눈 약속을 떠올리며, 잇키는 다시금 결의를 다졌다. 딸이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를 빼앗으려 하고 있는 자신의 도전을 받아 준 시리우스에게, 한심한 꼴을 보여줄 수는 없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정신을 예리하게.
그리고, 온몸에 흐르는 피의 맥동, 바람에 나부끼는 솜털 한 가닥 한 가닥조차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집중력이 고조되었을 때, 눈을 뜨고,
"왔어."
잇키는 보았다.
죽 늘어선 높은 건물이 육군에 의해 붕괴되어, 시야는 탁 트여 있었다.
그 끝에, 먼 언덕을 타고 넘어 다가오는, 검은 파도.
클레이델란트 군, 총 세력 5만명의 모습을.
잇키는 옆에서 무릎을 꿇고 저격총 점검을 하고 있는 소녀, 밀리어리아 레이지에게 물었다.
"밀리어리아 양. 준비는 다 되셨나요?"
여기에, 밀리어리아는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듯한 표정을 보이며,
"밀리라고 불러. 딱딱한 관계 같은 거, 밀리는 되~게 싫어하거든."
"....준비는 됐어, 밀리?"
"오키~"
그리 답하고, 밀리어리아는 페인트탄을 장전한 총을 들었다.
그 다음, 잇키는 내선 무전기를 켜, 시그너드에게 질문했다.
"북쪽 언덕에 적군을 확인했습니다! 시그너드 양! 그쪽은 어떤가요!?"
'모두를 소정의 위치에 배치해 두었어! 언제든지 시작하라고!'
그 반응과 동시에, 지상에서 돌풍과도 같은, 병사들의 함성소리가 터져나왔다.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한 사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잇키는 생각했다.
....좋은 나라야.
'스텔라의 고향이라던가, 그런 건 이제 관계없이..'
한 기사로서, ──여기 있는 이 사람들을 절대로 슬프게 만들지 않겠어.
그리고, 그 마음가짐을 전장에 모인 모두에게 고했다.
"가도록 하죠! 작전 개시입니다...!"
◆◇◆◇◆
《괴뢰왕》 오르골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클레이델란트 육군 5만은, 종렬 배치로, 마치 화살과도 같이 버밀리온에 침공하였고, 멈추는 일 없이 똑바로 버밀리온의 심장인 황도 플레어베르그를 향했다.
거기에, 버밀리온 육군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병력, 합계 3만을 동원해 그들의 진군로, 그 중간 지점인 카르디아에 방어선을 펼쳤다.
옛날엔 양국을 잇는 교역로로 번영을 이루던 카르디아엔, 클레이델란트와 비슷한 아름다운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고, 동, 서, 중앙에 양국을 잇는 3개의 길이 나란히 놓여 있다.
버밀리온은 전력을 3등분하여, 그 모든 곳을 봉쇄.
클레이델란트 군을 영격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마침 오후 5시를 지났을 때, 양군은 충돌하였다.
흐린 하늘 아래, 스콜과도 같은 발포음이 터져나왔다.
그 소음 속에서, 시그너드는 전군에 명령을 내렸다.
"무리는 하지 말도록! 기사 님들이 중계 역할을 선별해낼 때까지, 클레이델란트 군의 행동을 조금이라도 늦추기만 하면 되니까! 위험해지면 곧바로 뒤로 물러나!"
" " " Yes, mom!"
쌍방 사이엔 절대적인 장비의 차이가 있다.
조종당하고 있는 클레이델란트 군은 실탄을 사용하고 있고, 전차까지 끌고 와, 상대를 살해하는 것에 조금의 주저도 없다. 한 편 그들을 《괴뢰왕》의 지배에서 구해 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버밀리온 군의 장비는 고무탄을 장전한 폭도 진압용 장비.
클레이델란트의 장비에 비하면, 장난감이나 다름없었다.
제대로 싸우게 된다면, 승부 같은 것이 될 리가 없다.
하지만, 충돌이 벌어진 이후, 계속해서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어나가고 있는 건, 버밀리온 군 쪽이었다.
"다리야! 다리를 노려! 머리에 충격을 줘도 이동을 멈출 수는 없지만, 다리에 충격을 주면 진군은 둔해질 거야!"
"엄호 잊지 마! 언제나 하던 연습 같은 게 아니라고!!"
전쟁엔 '3:1의 법칙' 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건, 적에게 공격을 가해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선, 병력 비율이 3:1 이상일 필요가 있다는 법칙을 말한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수세에 있는 병사들은 혼자서 적세의 병사 3인분을 해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버밀리온 군은 3만, 클레이델란트 군은 5만.
단순한 수의 비교로 따져 보면 버밀리온 군이 열세이지만, 상기한 법칙을 가미하게 된다면, 수세인 버밀리온 군의 병력은 9만까지 뛰어오르게 된다.
더불어, 버밀리온 군은 클레이델란트 군이 도착하기 전에 충분한 매복 진지과, 효과적인 교전 장소 조사를 마쳐 놓았다.
이 정도로 준비를 해 둔 3만의 군세를 돌격으로 돌파해내는 건 불가능하다.
클레이델란트 군의 침공은, 카르디아에서 멎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우세도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거리가 충분히 벌어진 상태의 총격전이라면, 엄호만 철저히 된다면 실탄을 상대라도 호각으로 싸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싸움이 오래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양군의 간격은 좁아졌고, 장비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지금 막, ──엄호에 쓰고 있던 벽이나 방패들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위력을 지닌 병기를, 클레이델란트 군이 꺼내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로켓탄이야!!"
"모두 후퇴!!!!!!!!!"
세 길 중 하나, 동쪽 가도에서, 그 일이 벌어졌다.
양군의 간격이 좁아졌을 때, 지금까지 돌격총을 들고 병사의 뒤에 숨어 있던 척탄병이 앞으로 나서, 버밀리온 군을 향해 병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RPG-7.
전차의 장갑조차 손쉽게 부숴버릴 수 있는 척탄 앞에, 콘크리트 벽 따위는 무력했다.
버밀리온의 병사들은 서둘러 뒤로 물러나려 해지만, 추진 장치가 달린 척탄의 속도에, 인간의 다리 따위는 너무도 느렸다. 피난은 도저히 불가능했고, 병사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감았다. 직후, 척탄은 콘크리트 벽과 병사들을 폭쇄했다.
천둥과도 같은 굉음과, 뿜어나오는 폭염.
하지만,
"어, 어라?"
죽음을 각오하고 있던 병사들에게, 그 불꽃이 닿는 일은 없었다.
의아해하며 병사들이 눈을 뜨자,
"다, 당신은...!"
"─────"
그들이 매복 진지로 삼고 있던 콘크리트 벽의 앞.
흑연에 휩싸인 채, 그들을 지키듯 우뚝 서 있는, 검은 갑주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 불굴의 디바이스 《무적갑주》를 두른, 《흑기사》 아스칼리드가, 척탄을 몸소 받아내, 병사들을 지킨 것이다.
"괜찮아?"
뒤돌아보며, 아스칼리드는 침착한 목소리로 안부를 물었다."
"아, 응. 우리들은 괜찮은데, 기, 기사님.. 당신은 괜찮은 거야?"
"직격이었는데?"
"....별로."
걱정하는 병사들을 향해, 아스칼리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답했다.
실제로, 이 척탄의 직격에 의해 아스칼리드는 아무런 대미지도 입지 않았다.
물리 충격에 강한 내성을 지닌 블레이저라 할지라도, 척탄의 직격은 치명상이 될 수도 있지만, 아스칼리드가 입고 있는 건, 현재 확인되어 있는 디바이스 중에서도 최고의 경도와 방어력을 자랑하는 《무적갑주》. 마력을 동반하지 않는 충격이라면, 대함 미사일이라고 해도 버텨낼 수 있는 갑주이니까.
그렇기에 척탄을 직격으로 받아냈음에도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는 아스칼리드를 보고, 클레이델란트의 병사들은 집중포화를 뿜었지만, 그 모든 것들은 아스칼리드에게 위협조차 되지 않았다.
그녀는 날아들어 오는 총탄의 폭풍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천천히 전진.
적진의 한가운데에 우뚝 선 채, 빙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찾았어..."
그리 중얼거리고, 오른손에 거대한 전투도끼를 현현.
자신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는 한 병사를 향해 달려갔다.
비래하는 모든 총탄들을 튕겨내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도끼를 일섬.
병사가 손에 든 기관총을 튕겨낸 뒤, 그대로 그를 바닥에 제압했다.
그리고,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두 손을 뒤로 둘러 수갑을 채웠다.
그 직후.
그를 중심으로 주변의 병사들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고,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렇다. 지금 아스칼리드가 구속한 자가 바로, 이 주변 일대의 병사들을 컨트롤하고 있던 중계이고, 그 중계의 동작이 제한된 결과, 말단의 병사들은 적절한 중심 이동이 불가능해진 탓에, 기능불가에 빠져버린 것이다.
멋들어지게 중계 역할의 병사를 찾아내어, 주변의 병사들을 무력화시켜 보인 아스칼리드를 보고, 주변의 버밀리온 병사들이 갈채를 보냈다.
"주, 죽여주는데! 저런 집중포화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다니,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질 않아!"
"믿음직한데, 세계 4위! 지금 그대로 잘 부탁한다고!"
아스칼리드느 이 갈채에 말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답했고,
"....정말로, 하늘에서 판별해 내다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탄을 흘렸다.
그 시선 너머엔, 전장 상공을 비행하고 있는 헬기의 모습이 보였다.
◆◇◆◇◆
카르디아 상공.
약 30미터의 저공을 미끄러지듯 날아다니고 있는 헬기가 있었다.
쿠로가네 잇키와 밀리어리아 레이지를 태운 물자 운반용 중형 헬기였다.
"밀리. 다음 타겟은 45번 도로를 남하하고 있는 무리야. 보여?"
잇키는 헬기의 열린 문을 통해 몸으 내밀어, 전장의 한 곳을 가리켰다.
"그 가장 뒤를 달리고 있는, 배낭에서 안테나가 뻗어나와 있는 병사가 있지? 그를 쏴."
잇키는 클레이델란트 군을 내려다보며, 중계 역할의 위치를 판별.
곁에서 한 쪽 무릎을 꿇고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는 밀리어리아에게 지시를 내렸다.
"오~케이. 간다아~"
이 잇키의 사격 지시에 응해,
"아~ 영차!"
밀리어리아는 지정된 타겟을 향해, 페인트탄을 발사하였다.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탄환을 입체적으로 조종할 수 있는 밀리어리아의 발군의 공간 파악 능력은, 헬기 위라는 발치가 불안정한 곳이란 것도 상관없다는 듯, 손쉽게 명중시켰다.
'좋았어, 이놈들아! 다음으로 당할 불쌍한 멍청이가 정해졌다!'
'친위대! 앞으로! 전원 돌격!!!!!!'
'영차영차! 어기영차!'
버밀리온의 왕실 친위대가 방탄 방패를 든 채, 직진.
클레이델란트 군의 전선을 억지로 돌파하며,
'좋았어, 지금이야! 제압해! 부드럽게 감싸 주듯이!'
'친위대식 숙청법 그 1, 남자 곱배기 기름 지옥!!'
' ' '영~~~~~~차!!!!' ' '
핫피를 벗으며, 중계 역할로 지정된 클레이델란트 병사를 향해 뛰쳐들었고, 산더미 그 자체가 되어 움직임을 봉해버렸다.
중계가 근육의 산더미에 묻혀, 손가락 하나 깜짝할 수 없게 되자, 주변 병사들도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렸다.
'멋대로 애인을 만들어 단체 내의 조화를 어지럽힌 어리석은 자에게 벌을 내리는 숙청법! 이것이 이런 형태로 도움이 될 줄이야!'
'뼈저리게 느꼈느냐! 범죄자! 이것이, 버밀리온의 힘이다!'
"저기, 잇키. 저 나라 부끄럽게 만드는 녀석들도 같이 쏴버리면 안 돼?"
중계의 무력화에 성공하여 사기가 드높아진 친위대원들을 향해, 밀리어리아는 머나먼 공중에서 총구를 들이댄 채 잇키에게 물었다.
여기에, 잇키는 쓴웃음을 지으며
"나중에 하자."
라고 답했다.
'나중에 쏘는 건 상관없나 보네...'
누구에게나 온화한 잇키의 가시 돋친 그 대답에, 밀리어리아는 살짝 놀랐다.
저 남자들 중 누군가가 그를 화나게 할 짓이라도 벌인 것일까.
뭐, 그런 거라면 일이 다 끝난 뒤에 두, 세 발 정도 먹여 주도록 하자.
.....그건 그렇고,
'이거, 진짜 굉장한 거 아냐?'
눈 아래에 펼쳐진 전장.
쓰러진 클레이델란트의 병사들을 내려다보며, 밀리어리아는 숨을 삼켰다.
쿠로가네 잇키는 전투가 시작된 뒤로 거의 스물에 가까운 중계 역할을 찾아내, 버밀리언 군과의 연대로 그 모든 중계를 무력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시리우스에게 제안한 대로, 버밀리온 군의 눈으로서의 역할을,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해낸 것이다.
그게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곁에 앉아 있던 밀리어리아는, 누구보다도 실감하게 되었다.
왜냐면, 같은 장면을 보고 있었음에도, 밀리어리아에게는 중계 역할과 그렇지 않은 병사의 구별을 전혀 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격수로서의 프라이드에 금이 간 기분조차 들었다.
따라서,
"저기, 있잖아. 어떻게 위에서 딱 보는 것만으로도, 잇키는 중계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거야? 이런 데에선 진심 머리밖에 안 보이는데?"
밀리어리아는 그 판별 방법을 물어보았다.
여기에, 잇키는 이렇게 답했다.
"그거면 충분해. 아니, 오히려, 이번 경우엔 오히려 가까이에서 관찰할 필요 같은 게 없어."
"뭐라는 건지 도통~?"
고개를 갸웃하는 밀리어리아를 향해, 잇키는 보충설명을 했다.
"《괴뢰왕》의 《꼭두각시 인형》은 그 질도 나쁘지만, 정밀도가 상당히 높아. 요한 씨나 클레이델란트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들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 틀림없이 《괴뢰왕》은 마력의 실을 통해, 그 인간의 원래 성격이나 기억가찌 장악할 수 있는 거라고 난 보고 있어. .....애초에 표정 같은 걸로 구별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거야. 그렇다면, 상세한 정보는 오히려 방해가 되겠지. 멀리서, 넓은 시야로, 전체를 보는 편이 더욱 좋아. 전장은 비 내리는 날의 호수면 같은 거니까. 지휘관을 시점(始点)으로 《움직임》의 파문이 전장 전체로 퍼져 나아가지. 이번 경우엔 직접 구두로 지휘를 하는 게 아닌, 실제로 실을 통해 움직임을 전달하고 있는 거니, 솔직히 더 알기 쉬웠어. 그리고, 그 파문의 시점엔, 반드시 중계 역할이 있는 거고."
"...아아, 그렇구나. 미안해~ 그렇구나~ 응~"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는뎁쇼...!!'
흔들림 없는 자신을 가지고 말하는 잇키의 말에, 밀리어리아는 확신했다.
애초에, 보고 있는 차원이 다른 것이라고.
호수면을 보듯 바라보라고 해도, 눈 아래에 적병들은 이리저리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기에, 어디가 시작점인지조차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인식하고 있는 정보의 수. 그 차원 자체가 다른 것이다.
역시, 스텔라의 눈에 든 남자이다. 믿음직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의 발을 잡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능한 건 그걸 구별해내는 것뿐이야. 장거리 저격으로 정확히 타겟을 마킹하는 것이 가능한 기술은 내게 없으니까. ──고마워, 밀리. 네 덕에, 난 이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거니까."
"으읏~~~~~~~~.....!!"
잇키는 진심이 담긴 감사를 담아, 그리 인사를 했다.
그 부드러운 미소에, 밀리어리아는 자신의 가슴이 옥죄여 드는 듯한 괴로움을 느끼고,
"뭐, 뭐.. 딱히 잇키를 위해 하는 게 아니니까~ 밀리는 버밀리온의 기사니까?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 같은 거라 할까?"
쑥스러움에 그만 삐친 듯한 말투로 얼버무리며, 눈을 홱 돌렸다.
악의나 타산이 없었기 때문일까.
동안인 것도 아닌데, 잇키의 미소는 어딘가 아이의 그것처럼 순진무구해서,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이거, 스텔라가 흠뻑 빠진 이유도 잘 알겠네. 이 퓨어 바람둥이 녀석!'
진심으로 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심히 접해야겠다.
그 스텔라의 연적이 될 것이란 무서운 상상은, 하기조차도 싫었다.
목숨이 몇 개나 있어도 부족할 것이 뻔했다.
"음, 다음은.... 좀 성가신 타겟이네."
문득, 밀리어리아가 호흡을 가다듬고, 고동을 진정시키고 있는 한 편, 잇키가 옆에서 그리 말했다.
"어디어디?"
"중앙 가도를 남하하고 있는 전차가 있지? 저 해치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병사야."
호흡을 다 가다듬은 밀리어리아가 타겟의 소재를 묻자, 잇키는 가로수를 짓밟으며 막힘 없이 길가를 달려 나아가고 있는 한 대의 전차를 가리켰다.
맨몸으로 접근하기엔 어려운 상대였다.
"일단, 어떻게든 움직임을 멈춰야.."
하지만, 잇키가 사고를 굴리고 있는 것보다도 빨리, 밀리어리아는 페인트탄을 전차 해치에 쏘아 명중시켰다.
그리고,
"딱히 문제될 건 없잖아? 왜냐면 저 곳엔, ──티르가 있으니까."
'야, 야, 야! 비켜! 여긴 나한테 맡겨 두라고!!'
그 때, 상공을 날고 있는 헬기까지 다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소리치며, 한 소녀가 버밀리온 군의 전열에서 뛰쳐나왔다.
건강미 넘치게 갈색으로 탄 피부. 활발한 인상을 주는 단발.
그야말로 지금, 밀리어리아가 입에 담은 그녀의 원래 파트너. 티르밋 그레이시였다.
티르밋은 일직선으로 밀리어리아에 의해 마킹된 전차를 향해 질주했다.
하지만, 이건 너무나도 무모했다.
전차는 당연하다는 듯, 여기에 곧바로 반응.
구우웅, 하고 포탑을 돌려, 접근해 오는 티르밋에게 포문을 향했고──
직후, 무겅누 굉음과 함께 88mm 포가 포탄을 발사했다.
음속을 가볍게 넘어서는 초중량의 일격은, 그 풍압만으로도 사람을 고깃덩어리로 만들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 힘 앞에서는 블레이저이건, 블레이저가 아니건, 차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압도적인 파괴력을 앞에 두고, 티르밋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물질잠행》!"
지면을 향해 머리를 처박듯 뛰어들었다.
마치, 수면으로 다이빙을 하듯이.
그런 짓을 한다면, 보통이라면 아스팔트 도로에 얼굴을 강타할 뿐.
하지만, ──티르밋은 물질 속으로 잠수하는 이능을 보유한 기사이다.
소리와 물방울을 튀기며, 한 순간 물처럼 된 도로에 티르밋의 전신이 잠겼다.
동시에, 포탄이 도달.
대기와 함께 도로를 폭쇄해, 분진을 일으켰다.
하지만, 분진이 걷힌 파괴의 흔적엔, 인간이 휩쓸린 흔적은 없었다.
티르밋은, 포격에서 벗어난 것이다.
여기에, 인형이 되어버린 병사는 기습을 경계했는지, 전차의 차내로 들어가, 해치를 닫아버렸다.
하지만, 그건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도로이건, 전차이건,
──티르밋의 이능은, 어떠한 곳이라 해도 숨어들 수 있는 능력이니까!
직후, 전차의 차체가 가로로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해치가 내부에서부터 튕겨나듯 여렸고,
"식은 죽 먹기지!!!!"
전차 안에서, 포박된 병사의 뒷덜미를 잡은 채, 티르밋이 모습을 보였다.
그것과 동시에 주변의 클레이델란트 군이 기능불가에 빠져, 서서히 쓰러져 갔다.
이 광경을 본 버밀리온의 병사들은, 손을 들어 찬사를 보냈다.
"오오오옷! 끝내주는데, 티르밋!"
"뭐, 평소에 문제만 잔뜩 일으키느 녀석이니, 니 파트너 녀석이랑 같이 이런 비상시에라도 도움이 돼야 하지 않겠냐!"
"오~ 맡겨만 두라고! 밀리! 얼른 표적 위치를 가르쳐 줘! 어디에 있건 간에, 내가 끌고 나와 버릴 테니까!"
◆◇◆◇◆
잇키와 밀리어리아, 그리고 티르밋의 활약은 전체 통신을 통해 서쪽 가도를 지키고 있던 스텔라에게도 들어왔다.
이제와서 잇키의 엄청난 능력이나 배짱에 놀랄 일은 없었지만,
"저 둘도 배짱 한 번 대단하네."
티르밋과 밀리어리아.
둘 다 군의 예비역으로 배속된 건, 학생기사의 자격을 얻은 올해부터였다.
실전 경험은 물론 연습도 그리 많이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활약은 정말 눈여겨 볼만한 것이었다.
역시, 결코 다가가기 쉽다고는 할 수 없었던 시절의 자신과 친구가 되어 준 둘이다. 담력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자신도, 이렇게 지고 있을 수만은 없다.
"자, 스텔라 님. 이곳은 제가 맡고 있을 테니, 스텔라 님도 잇키 군이 있는 곳으로."
"아냐. 난 여기면 충분해. 단 할아버지 혼자선 힘들 거잖아?"
단달리온의 제안에, 스텔라는 거부로 답했다.
그 말엔, 살짝 화난 투가 곁들여져 있었다.
방금 작전 회의.
《흑기사》는 오르골의 중계를 구분해 낼 수 있는 사람의 후보에, 스텔라를 거론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알고 있다.
경험.
단달리온은 역전의 강자. 그 통창력의 수준은 그의 역사가 보증하고 있다.
아스칼리드도 마찬가지. 세계 4위의 강자이고, 무엇보다 그녀는 오르골의 혈연이다.
그리고, 잇키는 통찰력의 괴물이다. 같이 지낸 시간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부족한 힘으로 이겨 나아가기 위해, 언제나 자신의 집중력을 한계까지 갈고닦았고, 싸움 속에 나다니는 여러 정보들을 놓치지 않고 읽어, 이용하는 것을 상투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 각 전투의 밀도들은, 자신과는 수준이 다를 것이다.
이상의 셋에 비해, 자신의 경험은 크게 밑돈다.
하지만,
"《홍련의 황녀》를 우습게 보지 말라구..!"
스텔라는 생각했다.
확실히, 경험은 부족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몸에 깃든 재능은, 셋 중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터.
경험에 의한 통찰안이 부족해 간파해낼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쓰면 그만이다.
'상대의 수단만 알고 있다면, 얼마든지 방법은 있어!'
직후, 도로를 직진해 오는 클레이델란트 군이 발포를 개시했다.
하지만, 스텔라는 도망치는 일 없이, 탄막 앞에 서서,
"《비룡의 날개옷》"
온몸에서 작열을 내뿜어, 납탄환이 자신의 몸에 닿기도 전에 재로 바꾸어버렸다.
하지만, 스텔라의 노림수는 그저 총탄을 방어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이 《비룡의 날개옷》에는, 다른 한 노림수가 있었다.
스텔라는 자신이 두른 불꽃의 화력을 높여, 화염의 임광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서쪽 가도에 흩뿌렸다.
그리고, 그 수만을 넘는 임광에 자신의 의사를 넣어, 감각을 공유.
자신의 촉각을 광범위한 곳까지 확장시켰다.
보통 블레이저라면, 이런 정밀조작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압도적인 무력에 묻혀 잊고 있었겠지만, 스텔라는 마력 제어력도 보통내기가 아니다.
자신의 몸을 세포 단위까지 분해하여 재구성하는, 그런 경이적인 마력 제어력을 지닌 《심해의 마녀》에게조차 견줄 정도의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이 총합력의 높은 수준이야말로, 《홍련의 황녀》의 실력인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다소의 경험의 차이 따위, 장애조차 되지 않는다.
얼마든지, 대신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 임광을 산포하는 것으로 인해, 스텔라는 전역을 말 그대로 『장악』했다.
어디에 병사들이 있는지, 누가 움직이고 있는지는 물론, 거의 영체나 다름없는 마력의 실의 존재조차도.
그야말로 하늘을 드높게 날며 천리를 꿰뚫어보는 용의 눈과도 같이, 스텔라는 모든 것을 손바닥 보듯이 이해하였고──
"거기닷!"
곧바로 실의 집중점이 되어 있는 병사를 향해 달려 나아가, 쓰러뜨렸다.
그리고 수갑으로 그 몸의 움직임을 빼앗자, 주변의 클레이델란트 병사 모두가 지면에 쓰러졌다.
그건, 스텔라가 구속한 병사가, 주변을 조종하고 있는 중계 역할이라는 증거였고,
"그치? 나한테도 가능하잖아?"
스텔라는 자신의 검의 스승이기도 한 단달리온을 향해 자랑스레 말했다.
이 소녀의 성장에, 단달리온은 자신의 주름진 얼굴을 기쁨에 물들였다.
"이전의 스텔라 님이라면 자신의 능력을 다소 과소평가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습니다만... 일본에 다녀오신 뒤로, 몰라볼 정도로 강해지셨군요."
"당연하지! 난 일본에서 최고의 라이벌과 만났으니까!"
잇키는 자신이 아무리 재능에 축복받지 못한 몸이라 할지라도, 결코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아무리 불리한 전국이라 할지라도, 자신이라면 해낼 수 있다고, 언제나 믿으며 싸워 왔다.
그런 상대에게 자신의 힘에 의심을 품은 채 싸워 봤자,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자! 얼른 정리하자구!"
단달리온의 칭찬에 스텔라는 기분이 고양되어, 다음 표적으로 향했다.
그녀는 지금의 임광 산포로, 이미 남은 두 중계를 찾아냈다.
....이 스텔라의 활약, 그리고 잇키를 중심으로 한 버밀리온 군의 노도와도 같은 쾌진격은, 거거히 오르골의 중계를 행동불능으로 만들어, 전투 개시로부터 1시간이 지날 때쯤엔, 클레이델란트 군의 3분의 1을 실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 눈부신 전과의 모든 것은, 실시간으로 버밀리온 황궁에 전달되고 있었다.
전장을 통해 비춰지고 있는 영상을 통해, 아스트레아는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굉장해~ 굉장해! 순식간에 반 가까이 구해냈어! 이것도 잇키 씨가 정확하게 중계의 위치를 모두에게 전해 준 덕분이지요?"
그쵸, 여보? 하고 시선을 향하는 아스트레아에게,
"....흥! 아직 멀었어!"
시리우스의 표정은, 어디까지나 퉁명했다.
"우후후. 여보야는 솔직하지 못하네요~"
하지만 부정을 하지 않는 만큼, 시리우스의 태도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도 또한 무인이다.
입만이 아닌, 확실한 실력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는 소년에게, 언제까지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을 터.
아주 좋은 조후였다.
"이대로 만사가 잘 끝나면 좋겠지만──"
진심으로, 아스트레아는 그리 바랐다.
그런 아스트레아의 바람을,
운명은, 조소했다.
"글쎄? 그건 어떠려나? 그도 그럴게, 나쁜 일이라는 건 계속해서 닥쳐오게 되는 법이잖아. 그렇지?"
" " " 으읏────!!! " " "
갑자기 아스트레아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황궁의 방 한 곳에서부터 울려퍼지는, 들은 적 없는 여성의 목소리.
시리우스가, 아스트레아가, 그리고 경비로 나선 병사들이 돌아본 그 곳엔,
──한, 장신의 여성이 서 있었다.
물에 젖은 듯 윤기가 흐르는 흑발. 마치 꽃잎처럼 여러 곳이 트여 있는, 검은 드레스.
그건 마치, 흐드러지게 핀 칠흑의 꽃처럼 보였고──
"일단 갑작스럽게 방문하게 된 무례에 사죄하겠어요. 버밀리온 국왕님. 그리고 왕비님. 나는... 아아, 실례. 이건 임무가 아니니, 지금의 내겐 이름 같은 게 없었군요. 그렇네요. 아인, 이라고 불러 주세요."
칠흑의 꽃은 아름다운 얼굴에, 한계까지 입가를 말아올려 불길한 미소를 띠었고, 손을 뒤로 둘러 숨겨뒀던 하얀 백합 꽃다발을 시리우스 일행을 향해 내밀었다.
그리고, ──고했다.
"오늘은, 여러분의 묘소에 바칠 꽃을 들고 왔어요."
죽음의 선언을.
◆◇◆◇◆
같은 시각.
카르디아의 전장도, 큰 이변이 벌어져 있었다.
"뭐야, 이 녀석은...."
헬기에 탄 채 카르디아의 상공을 날고 있던 잇키와 밀리어리아가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는 곳.
저공비행을 하는 헬기 앞에, 신장 30미터 정도 되는, 검은 후드가 달린 코트를 입은 비만체의 거인이 잇키 일행을 우뚝 가로막고 있었다.
그건, 갑작스럽게 잇키 일행의 눈앞에 나타나,
'구흐응♪'
하얀 이를, 마치 말처럼 드러내며 웃은 뒤,
'야아아아아아악──!!!'
두 손으로, 마치 귀찮은 모기를 잡는 듯한 동작으로, 잇키와 다른 사람들이 타고 있는 헬기를 찌그러뜨렸다.
맞닿은 거인의 손 안, 찌그러진 헬기가 폭염을 내뿜었다.
그 장면에, 지상의 병사들은 눈을 부릅뜨고,
"헤, 헬기가!"
"거짓말이지.... 밀리이이이이이이───!?"
티르밋은 거기에 타고 있던 파트너의 이름을 외쳤다.
하지만, 그 때.
"잠깐만! 저걸 봐!"
병사 중 한 명이 하늘을, 폭염 아래를 가리켰다.
거기엔,
"꺄아아아아아아앗!?"
밀리어리아와 헬기 조종사로 보이는 병사의 목덜미 부분을 잡은 채, 아슬아슬하게 하늘로 몸을 내던져 난을 벗어난 잇키의 모습이 있었다.
잇키는 크게 소리쳤다.
"티르밋 양! 받아 주세요!!!!!!"
"윽! 그래, 알았다고!"
이 요청에, 티르밋은 곧바로 움직였다.
말 그대로, 떨어지는 그들을 받아드는 게 아닌, 그들의 낙하지점까지 달려가,
"《별의 대해》!"
지면에 삼지창 형태의 디바이스 《트리아이나》를 찔러, 아스팔트로 된 지면을 《바다》로 바꾸었다.
그 《바다》에, 잇키 익행이 낙하.
큰 흑색의 물기둥과 물보라가 일었다.
그리고 이윽고,
" " " 푸핫! " " "
셋 모두 《별의 대해》 위로 올라왔다.
"괜찮아, 너희들!?"
"Y, Yes.. mom...."
"가, 가가가.. 간발의 차이란 느낌...."
동료들의 손에 의해 바다 위로 끌려나오며, 헬기 조종사와 밀리어리아는 새파란 얼굴로 안부를 확인하는 시그너드에게 답했다.
일단, 잇키의 기전으로 인해 둘은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도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문제의 괴물은 아직도 의연히, 버밀리온 군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으니까.
"제기랄! 대체 뭐야, 저 괴물은!"
"이런 게 가능한 건 블레이저 정도일 텐데, 이런 녀석이 클레이델란트에 있었어!?"
낭패에 빠진 병사들의 말에, 시그너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클레이델란트에 거대화 능력을 지닌 블레이저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어...! 거기에 이 정도의 힘을 지닌 자라면 전쟁의 대표로 선발되었을 터...!"
"그렇다는 건──"
"이 소동을 일으킨 범죄자의 동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겠지...!"
그리고, 그런 거라면, 용서할 필요 따위는 없다.
시그너드는 무전을 열어, 명령을 내렸다.
"중앙 가도에 있는 전 부대에 고한다! 발치에 굴러다니고 있는 클레이델란트 군의 무장을 습득하도록! 저 거인에게 집중포화를 쏟아부어!"
이 시그너의 명령에, 중앙 가도에 전개해 있던 버밀리온 군은 재빨리 행동에 나섰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클레이델란트 군에게서 장비를 빼앗아 들어, 실탄에 의한 집중 공격을 가한 것이다.
하지만,
'아하아♪ 총~ 반짝반짝 이쁘다~~~~♪'
"제, 제기랄! 안 돼! 전혀 먹히질 않는 것 같다고!?"
그건, 너무나도 헛된 저항이었다.
애초에, 블레이저에게 통상 병기는 효과가 적다.
상대가 거인이라면, 그 효과 따윈, 나무 장난감 총이나 다름없을 터.
모든 총알은 두꺼운 지방 앞에 튕겨나가, 거인은 고통을 느끼지도 않은 채,
'나도 할래에~!'
발치에 있던 아스팔트에 손을 꽂아 넣어 부숴 주워든 뒤,
'발사아~! 콰아아앙~!!!!!'
그 잔해를 버밀리온 군을 향해 내던졌다.
마치, 아이가 지면의 흙을 던지듯.
하지만, 그 아이의 크기가 신장 30미터가 된다면....
──던져진 그 잔해는, 폭격기에 의한 공습과 같다!
" " " 으아아아아아악!!!!! " " "
그 잔해는, 일격만으로 버밀리온 군의 방어선에 구멍을 만들어냈다.
30미터의 거인이 던진 아스팔트 폭탄엔, 엄호도, 방탄 방패도 아무런 의미가 될 수 없었고, 수십 명의 병사가 순식간에 고깃덩어리로 변해버렸다.
'꺄아꺄아꺄아~!!'
그 파괴의 흔적을, 무구함조차 느껴질 법한 표정으로 기뻐하는 거인.
이걸 보고, 밀리어리아는 확신했다.
"아니아니아니, 잠깐. 이거 진짜 못 이긴다구! 안 도망치면 죽을 거라니깐!"
"나도 완전 동감이야...! 이거, 꼬리 말고 도망칠 수밖에..."
하지만, 거기에 응하던 티르밋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어라, 잇키!?"
방금까지 여기에 있던 쿠로가네 잇키의 모습이 없다는 것을.
대체 어디로.. 하고 이리저리 둘러보자, 먼 곳에 있는 거인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너, 너! 마력도 텅 비어 있는 주제에 뭘 할 생각인 거야!?"
"으윽────!"
티르밋의 목소리.
하지만, 잇키는 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거기에 답하고 있을 시간조차 아까웠다.
지금 막 한 번의 공격으로 인해, 대체 몇 명이 죽은 거야?
저런 것이 방금 그랬던 것처럼 계속해서 날뛰게 놔둘 수는 없다.
중앙 가도엔, 버밀리온 군 외에도, 의식을 잃고 쓰러진 클레이델란트의 병사들도 있으니까.
한시라도 빨리, 저 거인의 주의를 버밀리온 군에게서 돌려, 중앙 가도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잇키는 거인을 향해 달려가며, 헬기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의 구조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것밖엔 없어!'
그리 판단하고, 박차는 발에 더욱 힘을 가했다.
일직선으로 향하고 있는 곳은, 거인의 발치.
도로 곁에, 빨간 우체통같이 생긴 물건.
──소화전이었다.
"하악!"
잇키는 그 소화전을 바닥 부분까지 절단했다.
통째로 잘려나간 소화전은, 당연히 수도관의 압력을 견딜 수 없다.
소화전은 뿜어져 나오는 물기둥으로 인해 위로 튕겨 올라갔다.
그리고 쿠로가네 잇키는, ──그 소화전 위에 타고 있었다.
그는 수압으로 자신의 몸을 20미터 상공까지 올려보낸 뒤,
"제 1비검, 《서격》!!!!"
물의 기세를 발판삼아, 더욱 도약.
칠흑의 칼날의 끄트머리를, 거인의 오른쪽 안구를 향해 내뻗었다.
'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음철》의 끄트머리는 거인의 각막과 수정체를 꿰뚫어버렸고, 구멍이 뚫린 안구는 파열.
잇키의 전신에, 안구 내부의 유리체가 쏟아졌다.
여기에, 거인도 절규를 내지르며 몸부림쳤다.
"굉장해! 저 괴물을 주춤하게 만들었어...!"
이 잇키의 유효타에, 밀리어리아는 환희의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아냐, 위험해.....!!"
그녀보다 접근 전투를 더 잘 이해하고 있는 티르밋은, 소리쳤다.
왜냐면, 안구를 꿰뚫은 잇키는, 거인이 몸부림에 의해 떨궈져 나가, 공중에 떠 있던 상태였으니까.
도망칠 곳 없는, 도망칠 수 없는 공중에.
그리고,
'아아아아아아아아────!!'
거인은 그런 잇키에게, 분노에 맡겨 오른팔을 휘둘렀다.
혼신의 주먹 돌려치기.
헬기를 산산이 부수어버린 그 호완이 일격을, 잇키는 피할 수 없다.
도망칠 곳이 없으니까.
따라서, 잇키는──
'의식을 잃지 마! 이를 악물어어어!!!!!!!!!!!'
그 직후, 잇키의 몸은 거인의 주먹에 휩쓸려, 마치 먼지처럼 하늘을 날았다.
중앙 도로에 직각으로 내팽개쳐져, 지면에 격돌.
그리고 그 기세 그대로, 아스팔트 도로를 부수며 몇 번이고 바운드.
중앙 가도로부터 100미터 이상 떨어진, 마을을 달리는 철도가 놓여진 곳을 넘어서야 멈출 수 있었다.
"잇키!!"
그 너무나도 처참한 광경에, 티르밋은 얼굴이 새파래져, 길 곁에 있던 건물 지붕으로 도약.
눈을 응시해, 그의 안부를 확인했다.
지면에 쓰러진 잇키의 사지는 불가능한 방향으로 뒤틀려 있어서, 멀리서 보아도 위험한 상태라는 걸 잘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떻, 게.. 된 거냐...!? 네 눈을 망가뜨린 녀석은 아직 이렇게 팔팔하게 살아 있다고....!!"
잇키는 의식을 잃지 않고 있었다. 머리만을 철저히 지켜, 의식이 날아가는 것을 막았고, 지면에 격돌할 때에도 그 충돌 대미지를 줄이기 위해 과장될 정도로 굴러가 힘을 지면에 분산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의 전신의 뼈는 부서져버렸고, 일어설 수조차 없는 상태.
그런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인을 도발하고 있다는 건...
'자신이 미끼가 되어, 우리들에게서 저 괴물의 주의를 끌기 위한 것인가...!'
'크와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티르밋이 잇키의 진의를 알아챈 것과 동시에, 거인이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며 잇키를 향해 달려갔다.
잇키의 의도대로, 중앙 가도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위해 네가 희생된다면, 죽도밥도 아닌 거잖아!!'
티르밋이 이 잇키의 행동에, 분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중앙 가도에는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클레이델란트 병사가 쓰러져 있었다.
이런 곳에서 거인이 날뛰기라도 한다면, 대참사는 불보듯 뻔했다.
1초라도 빨리, 거인을 다른 곳으로 유도해야 하는 것이 도리이다.
도리이긴 하지만──
잇키의 목숨을 희생 삼아 살아남으면, 자신들은 어떤 얼굴로 스텔라를 맞이해야 좋단 말인가.....!
"모두들! 저 덩치를 공격해 줘! 저 녀석의 주의를 이쪽으로 끄는 거야!"
그렇기에 티르밋은 낼 수 있는 한 크게 목소리를 내 주변 사람들을 불렀다.
여기에, 버밀리온 병사들도 응하듯, 뒤를 보이고 있는 거인을 향해 총을 들었다.
하지만,
"아냐...! 잠깐!"
그들의 공격을 지휘관인 시그너드가 제지했다.
"대장!?"
티르밋이 당연히 항의를 하려 했다.
하지만,
"정말 대단한 남자야. ....거기까지 계산했다는 건가..!"
시그너드는 티르밋의 항의를 들은 체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마음 속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감탄을 흘리며, 전율에 몸을 떨고 있었다.
지휘관으로서 누구보다도 넓은 시야를 지닌 그녀는, 알아챈 것이다.
쿠로가네 잇키의 진짜 노림수를.
그렇다, ──티르밋은,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잇키는, 대참사를 막기 위해 1초라도 빨리, 거인을 중앙 가도로부터 바깥으로 유도하기 위해, 몸소 나섰던 것이지만.... 그는 그리 간단히 죽음을 받아들일 사람은 아니다. 당연하다. 끈질긴 것으로 따지자면 이 남자와 대등하게 겨룰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일 테니까.
《워스트 원》 쿠로가네 잇키의 행동은, 언제 어느 때라도, 승리를 위한 것.
그렇다. 잇키는 지금 이 순간도, 전신의 뼈가 부서져 일어날 수 없는 지금 이 순간조차──자신의 승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 똑바로, 와라...!'
고개의 힘만으로 시선을 들어올려, 분노의 형상으로 다가오는 거인을 향해, 잇키는 속으로 그리 빌었다.
그대로, 달려올 것을.
화가 난 채, 자신을 짓밟기 위해, 달려올 것을.
──자신이 이 장소로 '일부러' 날아온 것으로, 조건은 갖춰졌다.
헬기로 중계를 찾고 있던 때 살펴봐 둔 마을의 지형. 정보.
그는, 놓치지 않았다.
카르디아를 종단하는 철도.
──그 위에 설치된, 고압선의 존재를!
'갸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바!??!?'
직후, 발을 내딛어 달려가려던 거인은, 자신이 끊어 놓은 전선에서 흘러나오는 전류에 감전.
절규를 내지르며 전신을 경련시켰고, 입에서는 마치 분화와 같은, 김이 나는 거품을 물고 있었다.
아무리 거대하건, 사람은 사람인 법.
감전의 대미지에선 벗어날 수 없다.
그 몸에 수분을 포함하고 있는 이상, 전기가 흐른 것에 의한 대미지는 절대적인 법.
그리고, 잇키의 노림수대로, 고압선에 감전된 거인은 그 몸이 기우뚱 기울어졌고, 지면에 쓰러졌다.
'이걸로, 조금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럴 터였다.
'아, 아.. 아.... 아오, 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크윽──!"
하지만, 잇키의 바람은, 거기서 꺾여버렸다.
지면에 쓰러질 것이라 생각한 찰나.
거인은 건물을 밟아 부수며 그 자리에서 버텨 서서, 쓰러지는 걸 거절한 뒤,
'거어어어얼리이이이이버어어어어어어어어!!!!!!!!!!!!!!!!!'
마치 폭풍과도 같은 큰 소리로, 절규를 내질렀다.
그리고 그 직후, ──그야말로, 마치 그야말로, 악몽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농담, 치고는... 너무 과한데, 이건....."
그가 올려다 본 곳엔... 신장 300미터를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거대화한 거인의 모습이 있었다.
그 내로라 하는 잇키도, 여기엔 목구멍을 타고 나약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런 정도의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스텔라가 여기에 오지 않았다는 것은..'
그 잇키의 예감은, 유감스럽게도 적중하고 있었다.
◆◇◆◇◆
"허억, 하악! 읏, 하악..!"
카르디아 서쪽 가도.
그 넓은 길가 한가운데에서, 스텔라는 거친 호흡을 반복하고 있었다.
표정에 떠오르는 험악함. 흐르는 땀.
엄청난 긴장과 피로를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스텔라의 소모는, 싸움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왜 그러냐. 아직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그렇게 헐떡거리고 말야. 엉?"
피에 젖은 단달리온을 왼손에 늘어뜨려 잡고 있는 흑의의 남자. 갑작스레 스텔라의 눈앞에 나타나, 서쪽 가도에 진을 치고 있는 부대를 반 전멸시킨 그 남자를 노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로 소모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내가 무섭냐?"
"시끄러.. 입 닥쳐!"
"크큭, 위세가 산 건 입뿐인 것 같군."
"큭!"
남자의 조소에, 스텔라는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꿰뚫어보고 있다. 자신의 위축을.
그렇다.
스텔라는, 겁먹고 있는 것이다.
남자가 두른, 뭐라 말할 수 없는,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어질 것만 같은 여겨운 분위기에.
──대체, 이 자는 누구인가.
그리 경계하고 있는 스텔라를 향해, 피투성이가 된 단달리온이 입을 열었다.
"스텔, 라... 님.... 싸워선, 안... 됩니다..."
"단 할아버지!"
"도망, 치세요..... 이, 자는..... 그 《사막의 사신》입니다...!"
"큭! 이 녀석이...!"
《사막의 사신》
학생기사임과 동시에 정계인인 스텔라는, 그 이명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중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자신을 고용한 쪽에 반드시 승리를 가져다 준 역사 최강의 용병──
"《사막의 사신》 나짐 알 살렘...!"
"그런 네 년은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이겠지?"
그리 말한 뒤, 나짐은 선글라스 너머로 스텔라를 훑는 듯한 시선을 보낸 뒤, 이를 드러내며 야만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큭큭, 그 변태 꼬맹이 자식이 푹 빠져버린 년이 뭐하는 년인지는 여태껏 흥미 따위가 없었지만, 아주 상당히, 잘 익었는데그래. 한 명 가지곤 부족하지 않겠어? 내가 좀 놀아줄까?"
"뭣....!"
이 너무나도 불결한 말에, 스텔라는 수치에 뺨을 붉히며 가슴을 팔로 가린 다음 윽박질렀다.
"어차피 들개자식일 뿐이었네! 예절이란 게 없어! 여성에게 말을 걸 떈 좀 더 매너를 갖추고 말하도록 해! 거기에, 난 이미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가 있어. 너 따위를 눈길이나 줄 것 같아?"
거기에 나짐은,
"호오, 그러냐? 그거 다행이네. 돈도, 나라도, 여자도, 다 빼앗아버리는 게 내 신조라서 말이다."
왼손에 잡아 늘어뜨려 놓고 있던 반죽음 상태인 단달리온을 내던지고, 그의 피에 젖어 있는 왼주먹을 말아쥐었다.
"제대로 싸우면 금방 끝나 버릴 테니까. 저 녀석들하고 대등하게, ...이것 하나면 되겠지. 이거 하나로 상대해주겠어. 그러니까... 열심히 싸워 보라고. 날 심심하게 만들지 말란 말이다."
"큭....!"
오른손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채 그리 고하는 나짐.
저 녀석들, 이라는 건.. 그가 쓰러뜨린 단달리온이나 다른 병사들을 가리키는 것일 터.
이 남자는 모습을 나타낸 이후로 단 한 번도, 오른손을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았다.
건방지기 짝이 없다, 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주먹을 말아쥔 것으로, 방금보다 더욱 큰 위압을 발하는 왼손이, 스텔라에게 그러한 확신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온몸에서 땀이 배어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몸은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워져만 갔다.
싸움에 임할 때의 고양감과는 완전히 달랐다.
오르골과 대치했을 때와 같았다,
싸움조차 되지 않는다.
자신의 운명의 종막, 절대적인 죽음의 예감.
틀림없이 이 남자도, 섭리에서 벗어난 세상에서 살아가는 《마인》일 것이다.
심장이 오류를 일으킨 것처럼 두근거리며,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어서 도망치라고, 본능은 삐걱대는 소리를 내며 자신을 향해 재촉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대체 어쨌다는 거야.....!'
"모두들, 쓰러진 사람들을 데리고 어서 피난해! 휘말려버릴지도 모르니까!"
" " "아, 알겠습니다!!" " "
스텔라는 병사들을 향해 지시를 내린 뒤, ──도망치지 않고 전투자세를 취했다.
이 자리에서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자세로 드러냈다.
분명히 질 싸움이란 것은 알고 있다.
좋건 싫건, 억지로 눈을 돌리려고 해도, 알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알게 되어, 겁먹게 된다.
그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무(武)라는 것은, 호신의 기술.
아스칼리드가 말했듯, 피아의 실력차를 정확하게 가름하는 것은 무인으로서의 실력을 나타내는 증거이니까.
하지만,
'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검을 쥔 것이 아니야!'
자신 하나의 목숨을 지킬 것이라면,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텔라가 짊어지고 있는 건, 자신 혼자만의 목숨이 아니다.
소중한 나라가 있다.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든 것이다.
그렇다면, 물러날 수 없다.
물러날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지킬 것이라 결정한 모든 것들이, 이 등 뒤에 있으니까!
'이겨 보이겠어....!'
미련한 생각이라 할지라도, 지금 여기서, 자신이, 《사막의 사신》을 쓰러뜨린다.
세계 최강의 용병이 뭐 어쨌다는 것인가.
섭리를 벗어난 《마인》이 뭐 어쨌다는 것인가.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의 실력에는 버거운 것들.
그것이 버겁다는 것을, 자신은 알고 있을 터.
절망적인 싸움. 질 것이 명백한 싸움. 손 쓸 도리도 없는 힘의 차이. 자신의 운명조차──
그 모든 것들을 극복하고, 정점에 올라선 남자의 뒷모습을, 보았던 적이 있었기에.....!
"■■■■■■■■■■────!!!!!!!!!!!!!!!!!!"
순간, 스텔라는 구름이 무겁게 내리깔린 하늘을 향해 포효하여, 온몸의 피를 태워 용의 힘을 몸에 둘렀다.
"호오. 이게 그 소문으로만 듣던 용의 힘인가. 상당한 위압감인데?"
온몸에 작열을 두른 용의 모습에, 나짐은 아무런 동요를 내비치지 않았다.
나짐은,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 피아의 실력차가 뒤집어지진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건 옳았다.
옳다는 것은, 스텔라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엔 이미 조금의 움츠러듦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대신 마음에 깃든 것은, 타오르는 용기.
눈에 선명한 그 남자의 뒷모습이, 언제나 역경을 극복한 남자의 뒷모습이, 자신에게 용기를 가져다주고 있는 것이다.
자신도, 그 남자처럼──
'일단 승부에 초조해하지 말고, 상대의 실력과 어떤 방법으로 싸우는지를 확인하겠어..!'
마음속의 겁을 불식시키고, 컨디션을 되찾으려 한 스텔라는, 동시에 냉정해졌다.
고양감에 몸을 맡긴 채 공격을 퍼붓는 자신의 기질을 억누르고, 자신이 봐 온 최고의 정면교사를 따라, 검을 똑바로 치켜든 채 상대를 관찰했다.
자신이 《사막의 사신》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세계 최고의 용병이라는 평가뿐.
어떠한 능력을 쓰는지까지는 알고 있지 못했다.
일단,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렇게, 냉정하게 싸움에 대한 설계를 해 나아가던 스텔라를 향해,
"자, 간다!"
《사막의 사신》 나짐 알 살렘은 아무 대책도 없이, 경계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은 채, 앞으로 파고들었다.
적을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했기에 나온 방심.
하지만 동시에, 절대적인 실력이 뒷받침해주는 여유.
그 파고듦은──
'빨라!'
너무나도 예리했고, 너무나도 빨라서, 영격 따위는 불가능했다.
나짐은 눈 한 번 깜빡할 새에 스텔라가 치켜든 검 안으로 파고든 다음, 왼주먹을 앞으로 내질렀다.
허리까지는 들어가지 않은 모션.
어깨와 팔꿈치, 그리고 손목을 비틀어 내지른 주먹질.
잽.
대미지를 노리는 게 아닌, 견제나 자신의 공격 리듬을 정해 나아가기 위한 공격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짐은 단달리온과 다른 병사들을 유린했을 때에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오른주먹만이 아닌, 두 다리도 무기로서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디바이스는, 손에 장착한 너클더스터.
그 정도로 정보가 모인다면, 남지의 격투 스타일은 불 보듯 뻔했다.
복서 스타일. 이 가벼운 잽으로 거리와 리듬을 정하고, 호기를 노려 허리힘까지 들어간 스트레이트 펀치를 구사할 것이다. 스텔라는 그렇게 적을 분석하고, 나짐의 잽을 《비룡의 죄검》으로 막았고,
"으윽────!?!?"
그 직후, 《비룡의 죄검》을 타고 흘러들어 온 미증유의 충격에 의해, 몸이 10미터 가까이 뒤로 날아가버렸다.
"뭣..."
'뭐야, 지금 건!?'
"큭큭, 잽 정도로 뭘 그리 당황하시나."
'잽...! 지금 게...!?'
아니, 확실히 동작만을 보자면 그야말로 잽 수준이었고, 스텔라도 그건 자신의 두 눈으로 똑바로 확인했었다.
하지만, 검을 통해 느껴진 충격이, 그 인상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딱딱하고, 이상하게 묵직했다.
용의 힘으로조차 막아낼 수 없을 정도.
이렇게 날카롭고, 단단하고, 무거운 일격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그 위력은, 이전에 싸운 강적, 쿠로가네 오우마조차도 아득히 상회할 수준이었다.
'거리를 재는 것도, 리듬을 정하기 위해 내뻗은 공격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어...!'
아직도 뼈를 저릿하게 만드는 이 힘의 잔향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런 공격, 한 방이라도 맞아선 안 된다.
정통으로 맞게 되면, 일격에 머리가 산산이 부서져버리고 말 것이다...!
"자, 자! 더 간다!!!"
"윽!"
다시금 거리를 좁힌 뒤, 주먹을 내지르는 나짐.
상궤를 벗어난 파괴력을 지닌 나짐의 잽을, 스텔라는 경계하며 방어를 한 층 두텁게 세웠다.
한 방도 맞지 않기 위해, 《비룡의 죄검》을 방패로 세워 막았다.
첫 일격엔 상정 외의 파괴력이었기에 신체가 완전히 뒤로 날아가버렸지만,
'제대로 알고만 있다면, 가드할 수는 있어!'
허리를 떨구고, 디딘 발에 힘을 줘, 똑바로 막아낸다.
그리고, 기다린다.
적이 제 풀에 못 이겨 큰 기술을 내뻗는, 그 한 순간을.
그 한 순간을 찔러, 공수를 역전시킨다.
하지만, 그런 스텔라의 의도는,
"미숙하기 짝이 없다고!!"
나짐에겐 통하지 않았다.
나짐은 스텔라의 방어가 더 단단해진 것을 확인하고, 잽을 내는 거리에서 스텔라를 향해 더욱 파고들었다.
반 보 정도 거리를 좁혀 중거리로부터 근거리까지 파고든 다음, 잽을 내뻗은 주먹을 되돌린 뒤,
──왼쪽 팔꿈치를 옆구리까지 내렸다.
여기에, 스텔라는 전율했다.
'위험해! 각도가 바뀌었어!'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정면을 통해서만 날아들어 올 것이라 생각했던 충격 외엔 대비하지 않고 있던 스텔라는, 바로 아래에서 올라오는 충격에는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었다.
콰앙!
하고 무거운 소리와 함께, 스텔라의 《비룡의 죄검》이 두 팔과 함께 위로 튕겨져 올라갔다.
그리고, 나짐은 곧바로 되돌린 왼주먹을, 무방비해진 스텔라를 향해 정면으로 내질렀다.
"시잇!"
피에 젖은 주먹이 스텔라의 안면을 강타했다.
선혈을 흩뿌리며, 스텔라의 상반신이 뒤로 크게 젖혀졌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으, 크윽──!"
쓰러지지는 않았다.
도로 아스팔트를 밟아 부수며, 스텔라는 쓰러지는 것을 거절했던 것이다.
깨진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선혈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면서도, 그 두 눈에는 투지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스텔라는 목숨이, 의식이 끊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여기엔 물론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는 나짐도 잘 알고 있었다.
"큭큭, 피탄의 순간에 몸을 경직시키지 않고, 오히려 힘을 빼 뒤로 몸을 확 날려 대미지를 죽여 버리다니, 상당히 솜씨가 좋은데그래?"
딱딱한 물체일 수록 충격에는 약한 법.
충격에 대해 자세를 굳혀 버리면, 되려 큰 대미지를 입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반대로, 충격에 대비하지 않고,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버들처럼 충격에 몸을 맡기면, 대미지를 줄일 수 있다.
쿠로가네 잇키가 스텔라와 싸울 때에 몇 번이고 사용한, 탈력에 의한 대미지 회피술.
이걸, 스텔라는 반사적으로 흉내 내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뭐, 그래도, 완전히 경감시키진 못한 모양이지만 말이다."
"읏, 아....!"
비틀, 하고 스텔라의 몸이 뒤흔들렸다.
파직거리며, 눈에 불똥이 튀었다.
확실히, 어느 정도의 대미지는 경감시켰고, 치사에 다다르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잇키처럼 잘 해내진, 못한 모양이네....'
반사적으로 피탄의 순간에 힘이 들어가버리게 된다.
몸이 굳어버린다.
애초에 치사의 공격을 앞에 두고, 몸의 힘을 빼 안정시킨다는 건, 초인의 경지에 달한 체술인 것이다.
아무리 스텔라가 우수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첫 시도만에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높은 대가를 치렀지만 이번에 받은 한 공격으로 인해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나짐의 주먹은 빠르고, 무겁고, ──무엇보다도 무서울 정도로 딱딱했다.
속도, 공격력, 그 모든 것들이 규격 외급.
하지만, 그래도,
'정통으로 맞지만 않으면, 내 생명에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야...!'
클린 히트만 피한다면, 자신은 버틸 수 있다.
그렇다면, 공략법은 있다...!
"큭큭, 아직 할 수 있다는 눈깔이군. 좋아, 좋아. 그 정도는 돼야, 두들겨 패 줄 가치가 있지!!"
계속해서 전의를 보이는 스텔라를 향해, 나짐은 다시금 스텝 인.
스텔라에게 잽의 탄막을 선사했다.
"시잇!!"
"읏....!"
이 탄막에, 스텔라는 방금 했던 것처럼 철저히 방어 자세를 취했다.
방금 받은 잽의 대미지가 가실 때까지 방어를 해내겠다는 판단이었을까.
그것을
"끈질긴 년이구만!!"
나짐은 비웃듯, 방금과 같은 공격의 수순을 밟았다.
견제 잽을 때린 뒤, 동시에 반보 전진.
거리를 중거리에서 근거리로, 즉, 훅이나 어퍼컷이 들어가는 거리까지 파고든 다음, 스텔라의 가드를 튕겨내기 위해 팔꿈치를 떨궈 펀치의 각도를 바꾸었다.
그 순간을, ──스텔라는 기다리고 있었다!
"뭣?"
경악은, 나짐이 낸 것.
나짐이 옆구리 쪽으로 팔을 뺀 것에 맞춰, 스텔라는 자진해서 몸을 앞으로 내던진 것이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실패를 잘 알고 있었다.
탈력.[
한 번 써 보고 나서 안 것이지만, 이 체술의 원리는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유(柔)가 강(鋼)을 제압한다.
그 사상 자체가, 자신의 성질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싸움이란 것은, 힘에 의한 것.
힘이란 것은, 빼는 게 아닌 부여하는 것.
강을 제압하는 건, 더욱 강한 강일 뿐.
그렇다면, 더욱 강한 힘을 넣어라.
온몸의 근육에 힘을 넣어, 관절을 고정시켜, 자신을 한 거암으로 만들어──,
스텔라는 나짐이 지금 막 올려치려 한 주먹에, 박치기를 가했다.
그렇다, 이미 내지른 어퍼컷에 말이다.
어퍼컷이란, 온몸의 반동을 이용해 내지르는 펀치다.
임팩트 포인트가 비틀어진 그 주먹. 그 정도로도 스텔라의 두개골에 금을 가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목숨에 위협을 주지는 않았다.
밀어냈다.
스텔라의 박치기에 나짐의 주먹이 튕겨나갔고, 자세가 무너졌다.
그 한 순간의 틈을,
"받아라아아아아아아앗!!!!!!!!!"
스텔라는 놓치지 않았다.
가드를 포기하고, 공격의 위치, 비스듬히 땅에 세워 놓은 《비룡의 죄검》.
그걸 예리하게 올려베어, 스텔라는 《사막의 사신》 나짐 알 살렘의 왼쪽 옆구리에서부터 오른쪽 어깻죽지까지를 베어버렸다.
◆◇◆◇◆
《비룡의 죄검》은 나짐의 몸을 양단했다.
살을 찢고, 내장을 갈라, 척추를 끊어, 더할 나위 없는 파괴를 선사했다.
그럴, 터였는데.
"──에..."
스텔라는 자신의 손에 돌아온 감촉에 경악했다.
확실히 《비룡의 죄검》은 나짐의 몸을 둘로 갈라놓았을 텐데.
그의 몸이 사선으로 양단되어, 잘려나간 순간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살을 찢는 감촉도, 부드러운 내장의 반발도, 뼈를 끊는 감촉도, ──그 어느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검을 쥔 스텔라의 손에 돌아온 것은, 미세한 모래를 향해 칼을 휘두른 것 같은, 그런 감촉뿐.
그리고 나짐의 몸에선, 한 방울의 피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런, 이럴 수가!'
이럴 리 없다고, 눈앞에서 벌어진 불가사의한 현상을 부정하듯, 스텔라는 한결같이 검을 휘둘렀다.
그 칼은 나짐의 몸에 아무런 저항 없이 흘러들어갔고, 다시 빠져나왔다.
그저, 그럴 뿐이었다.
아무리 오체를 잘라내도, 자신의 손에 몸이 갈라지는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고, 피도 흘러나오지 않았고, 갈라진 몸은 마치 시간이 되돌아가듯 다시금 원래 형태로 돌아갔다.
그 현상을, ──스텔라는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
'이건, 설마───!'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스텔라의 시야가 차단되었다.
앞을 보니, 엄지에 중지가 걸린 나짐의 왼손이, 스텔라가 동요에 빠져 있는 사이에 눈앞까지 닥쳐있었던 것이었고,
'이러───'
그 직후, 스텔라는 이마에 딱밤을 맞고, 길가 옆에 있던 점포 벽에 격돌.
거기에 그치지 않고, 몇 개의 건물을 부수며 날아가 두 블럭 너머에 있는 담벼락에 처박혔다.
"크, 으윽...."
추격을 경계하여, 스텔라는 곧바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무릎을 펴려 한 순간에 몸이 무너져내리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금이 간 두개골에 가해진 딱밤은, 그녀의 뇌를 격하게 뒤흔들었다.
의식은 격하게 명멸하고 있었고, 시야가 뒤흔들려, 마치 폭풍에 휘말려 있는 것만 같았다.
상반신을 일으키는 것이 한계였다.
그런 스텔라의 앞에, 나짐이 그녀가 만든 터널을 통해 걸어와, 우뚝 섰다.
"내 펀치에 몸소 뛰어들어 뼈를 취하려는 그 배짱 하나는 높이 사 주겠지만, 오히려 뼈를 내주는 헛수고였군. 너도 봤다시피, 난 『불사신』이거든."
그리 말하고, 스텔라의 헛된 노력을 조소하는 나짐.
여기에 스텔라는 담벼락에 등을 기대,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났고,
"....뼈 같은 건, 얼마든지 내 주겠어. 너한테 이길 수만 있다면."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호오? 그 꼴로 나한테 이긴다고?"
".....그래. 네가 그렇게 여유롭게 있는 틈에도, 난 네 명줄에 확실하게 다가가고 있거든. ....적어도, 지금 걸로 네 능력은 완전하게 파악했어."
보통내기가 아닌, 단단한 주먹.
칼날을 흘리는 몸.
그 정체는,
"네 능력은 자연 간섭계── 『모래』를 다루는 힘이야."
".....!"
"주먹이 이상하게 무거웠던 건, 네 《마인》으로서의 방대한 마력에 의해 힘이 가해진 거겠지. 하지만 이상하게 딱딱했던 건? 그건 네가 내게 주먹을 가하는 순간, 딱딱하게 바위처럼 경질화시킨 모래를 주먹에 둘러놨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참격을 흘렸던 건, 베이는 순간에 자기 자신의 몸을 모래로 바꾸어 충격을 흘리고 있었던 거겠고....! 내 말이 맞지!"
스텔라는 확신을 갖고 고했다.
왜냐면, 같은 유형의 능력을 보았던 적이 있었기에.
그렇다.
쿠로가네 시즈쿠의, 《청색윤회》이다.
"『불사신』 같은 건 헛소리. 이 허접한 사기꾼아. 확실히 자신의 몸을 입자화시키는 마력 제어력은 경이로웠지만, 원리만 안다면 얼마든지──"
공격할 방법은 있다.
그렇게, 스텔라가 엄포를 놓으려 한 순간이었다.
"......큭큭큭, 하하하핫!!!!!!"
눈앞에 서 있던 나짐이, 갑자기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던 것이다.
"뭐, 뭐가 웃긴 건데...?"
이 적의 반응에 불길함을 느끼고, 스텔라는 방어 자세를 취했다.
거기에, 나짐은,
"뭐가 웃기냐고? 안 웃기고 배기겠어? 이 내 능력이 『모래』를 다루는 능력이라고? 상당히, 우습게 보였는데그래. ....이건 좀 교육해 줄 필요가 있겠어. 내가 어째서, 《사막의 사신》이라 불리는지를 말이다. 그렇지? 『토슈카틀』?"
스륵.
스텔라와 다른 사람들의 앞에 나타난 이후로 처음,
쭉 웃옷 주머니에 넣어두고 있던 오른손을 뺐다.
그 순간,
"으읏~~~~~~~~~~~~~~~~~~~~~!!!!!!!!!!"
스텔라는, ──도망쳤다.
자유를 빼앗긴 다리를 대신해 불꽃의 날개를 펼쳐, 바로 옆으로 몸을 날려 굴러가듯, 바로 앞에 있던 나짐에게서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었다.
겁먹었던 마음은, 이미 전부 극복했을 터.
지켜야 할 것들을 위해,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터.
결의했을 터.
──그런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치는 것 외엔 생각할 수 없었다.
'대체 뭐야, 저... 오른손은....!'
나짐이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꺼낸 순간, 스텔라는 알게 되었다.
이 남자가 두른 불길한 분위기.
그 정체가 무엇인가를.
────사취(死臭).
그건, 말 그대로 냄새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닦아도, 닦아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죽음의 기운.
나짐의 오른주먹엔, 그것이 눌어붙어 있었다.
그야말로, 원령처럼.
절규하고 있다.
무념을. 저주를. 고통을.
그 《괴뢰왕》 오르골조차, 이 정도의 사취를 두르고 있지는 않았다.
대체, ....대체 몇 만 명을, 아니, 몇 십만 명을 죽여야, 이 정도로 농밀한 죽음의 기운을 두를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정도의 원망을 띠게 될 수 있을까.
"하핫. 대가리는 멍청해도, 역시 자질은 일류급이군. 내가 이 『오른쪽』을 꺼낸 의미를,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
하지만, 도망쳐 봤자 의미 따위는 없어. 어디에 있어도 똑같을 테니까. ──모조리 죽여버려 주지."
그리 말한 뒤, 나짐이 오른손을 위로 높게 치켜들었다.
그 순간, 그 주먹을 중심으로 방대한 마력을 담인 모래선풍이 일었다.
그 자세를 보고 스텔라는 그가 무엇을 할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층 더 짙어진 사취가, 속이 뒤틀릴 정도로 농밀해진 죽음의 기운이,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이 남자는, 아무런 허풍도 떨고 있지 않다는 것을.
치켜든 주먹은, 확실히 『몰살』의 개념의 구현이었다.
이것이 바닥에 내리쳐지면, 수 천, 수 만의 목숨이 무참하게 약탈당할 것이다.
저기 있는, 그의 주먹에 둘러진 원념의 주인들처럼.
'막아, 야 해....!'
지금 이 남자를 막지 못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알고 있다.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은 계속해서 자신을 앞으로 내보내고 있는데, 몸이, 피가, 세포가 겁을 먹고 있다.
당연했다.
저 주먹에 새겨진, 피로 점철된 전역.
그걸 앞에 두고, 마음가짐 하나로 갖춰 둔 용기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거기에 기대기엔, 너무도 나약하고, 덧없었다.
'어떡해...! 어떡하면.......!'
그리고, 그런 스텔라의 갈등을, 나짐은 기다려줄 리가 없었다.
무자비하게.
아무런 용서도, 자비도 없이,
《사막의 사신》의 주먹은, 버밀리온의 대지에 내리쳐졌고────
◆◇◆◇◆
그 무렵, 플레어베르그의 황궁에서는,
“치, 침입자다!”
“포위해! 모두들, 녀석을 붙잡아! 절대로 왕에게 근접을 허용하지 말도록!”
갑자기 황궁 내에 나타난 검은 드레스 차림의 여성에게, 위병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하지만 여성은 여기에 별다른 동요를 내비치지 않고, 손에 든 꽃다발의 줄기 부분을 잡은 뒤, 그 꽃다발의 모든 꽃잎들을 모조리 훑어 뜯어냈다.
그 뒤, 손에 쥔 꽃잎을 주변에 흩뿌렸다.
순간,
"──컥.."
아인이라 자신을 소개한 여성을 포위하려 한 위병들이 서서히 쓰러져갔다.
"뭐, 야. 이게....."
"몸이... 마비...."
그리고, 쓰러진 건 위병들 뿐만이 아니었다.
그 방 안에서, 전장의 상황을 비춰주는 모니터를 조작하던 메이드들.
거기다 아스트레아까지, 온몸이 마비되는 느낌에 몸의 자유를 빼앗겨,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읏, ....이건, 꽃, 향기...? 하지만──"
"우후후, 우리 왕비님은 눈치채셨나 보네. 그래, 이건 단순한 백합이 아니야."
꽃향기에 위화감을 나타낸 아스트레아에게,
"내 자궁에 가득 넣어 놓은 『씨앗』의 디바이스──《아스타로테》와의 교배로 인해 만들어진 마도화 《잠든 공주님》. 꽃가루에 포함된 삭시톡신을 필두로 에어로졸화된 마비독을 품고 있고, 들이마신 사람의 몸의 자유를 빼앗지. 정말 멋진 아이지?"
그 작용은 엄청나서, 한 떨기 꽃잎만으로도 아프리카 코끼리조차 마비시켜버릴 수 있다고, 아인은 자랑스레 말했다.
그런 걸 다발로 분포하였으니, 사람이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다고.
그렇다, 그럴 터였다.
"그런데──"
"《혁염의 대부》────!!!!"
순간, 홍련의 불꽃을 둘러 내리쳐진 도끼의 일격을, 아인은 뒤로 크게 물러나 회피했다.
"무릎조차 꿇지 않다니, 역시 그 《홍련의 황녀》의 부친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아인은, 자신이 1초 전까지 서 있던 대리석 바닥을 산산이 부숴 붕괴시킨 시리우스를 향해 칭찬을 보냈다.
여기에 시리우스는 귀기 서린 형상으로 윽박질렀다.
"네 이년! 이 장난 같지도 않은 전쟁을 일으킨 그 망할 꼬맹이의 동료렷다! 무슨 생각으로 우리 터전에서 이딴 짓을 벌이는 게냐! 이 망할 계집!!"
대체 이 버밀리온에서, 클레이델란트에서, 무엇을 꾸미는 것인가.
무슨 목적으로 행동하는 것인가.
이 시리우스의 질문에,
"무슨 생각이냐고?"
아인은 살짝 고개를 갸웃하여, 잠시 생각에 빠진 듯 묵고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답을 냈다.
"그렇네... 구태여 말하자면, ──심심하니까."
"뭐, 뭐라고....?"
"난 말이지, 꽃을 좋아해. 봄에 피는 귀여운 모양의 튤립. 여름에 피는 큰 해바라기. 가을을 색칠해주는 작고 깜찍한 코스모스. 무수히 피어 겨울을 장식해주는 시네라리아. 그 모든 꽃이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분이 들지. 그리고 그 중에서도,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피는 장미꽃의 아름다움은 각별해."
"큭──!"
"인간의 생명의 결정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그 아름다움은, 날 사로잡아 놔주질 않을 정도지. 난 그 꽃에 사랑을 주고 싶어. 내 마음대로, 내킬 때까지. 《해방군》에 있었다면, 그것도 가능했을 거야. 하지만, 《해방군》이 이상에 그리던 세계를 위해 앞뒤 생각 않고 싸움에 가담했던 것도 이미 옛날 일. 지금은 완전히 기득권익에 취해 정재계에 속한, 구역질나는 계략에 능통한 사람들의 돈을 벌어주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고, 우리들 같은 암살자들에게 의뢰가 별로 날아오지 않게 되었어. 실가도 실가대로, 고용주의 말은 절대적이라고 말하는 딱딱한 머리를 가진 사람들뿐이라서 완전 질렸고. 그럴 때였어. 《괴뢰왕》에게서, 이 축제의 초대를 받은 것은. 이 세계를 더욱 유쾌하게 살아가보지 않겠냐고. 난 거기에 찬성했지.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야, ──버밀리온과 클레이델란트의 대지 일면을, 당신들의 생명을 빨아들여 핀 장미꽃밭으로 만들다니, 아주 멋지지 않아!?"
"《염마보검》───!!!!!!"
황홀함조차 띤 말투로 말하는 아인을 향해 시리우스가 돌려준 건, 화염의 참격 형태의 노블아츠였다.
"어머나, 위험해라. 남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공격해 오다니, 이 나라의 왕께선 상당히 예절이 바르질 못하네."
"입 닥쳐라! 잘 알았어! 네 년이 이야기를 할 가치도 없는 정신 나간 계집이라는 건 말이다! 그 어이없는 헛소리를 다시금 입에 담지 못하도록, 곤죽을 만들어주마!!"
아인이 이 나라의 국민으로 벌이려 하는 행동, 그 끔찍함.
시리우스의 분노는 이미 끓는점을 돌파해버렸다.
그는 대리석 바닥을 박차 부수며, 아인을 향해 쇄도했다.
그 목을 잘라, 밟아 짓뭉개, 두 번 다시 말할 수 없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여기에 아인은,
"하아... 정말, 꽃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외모 그대로의 야만인과는 대화조차 하고 싶지 않네."
어이없어하며, ──오른팔을 상완까지 뒤덮는 검은 장갑을 벗었다.
그러자, 밖으로 드러난 아인의 오른팔을 찢고, 몸 안에서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난 장미줄기가 뻗어나왔고──
"《가시채찍》"
허공을 가르는 무수한 채찍이 나와, 먼 거리에 있던 시리우스를 향해 엄습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악!!!!!!!!"
채찍 공격은 사정거리도 길고, 이리저리 휘어지는 궤도는 읽기조차 힘들어, 피하기가 버거운 공격이다.
단순한 채찍조차 그러하다.
아인의 《가시채찍》은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고, 채찍으로 변한 줄기 그 자체가 의사를 지닌 듯 이리저리 날뛰고 있어,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시리우스는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채찍에 의해 온몸을 구타당했고, 선혈을 흩뿌리며 앞으로 쓰러졌다.
"여보!"
비명을 지르는 아스트레아의 목소리에, 곧바로 일어나기 위해 양손에 힘을 주는 시리우스, 하지만 그 몸은 다시금 지면에 떨어지고 말았다.
팔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방금 채찍 공격으로, 아인은 시리우스의 팔다리의 건을 날카로운 가시로 정확하게 노려, 갈가리 찢어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움직이지 못하게 된 시리우스에게,
"당신도 두 딸을 둔 아버지라면, 꽃을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 정도는 이해해 줬으면 해."
아인은 쓴 소리를 고한 뒤, ──피학적으로 히죽 웃었다.
"하지만, 그 야만적인 외모, 싫지는 않다구? 미의 세계엔 조화라는 것이 있으니까. 추악한 조형의 화분은 장미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구는 법."
"큭.....!"
미소와 함께, 아인은 손바닥을 돌려 위로 향했다.
그러자, 그녀의 손바닥 살과 장갑을 뚫고 꽃봉오리가 튀어나왔다.
그 꽃봉오리는 마치 시간을 빨리 감아 놓은 듯 경이적인 성장속도로 개화.
한 떨기의 진홍색 장미가 피었다.
그리고 장미는 곧바로 지고, 씨앗을 남겼다.
아인은 그 씨앗을 손에 들고,
"자아, 먼저 시리우스 왕, 당신의 꽃에 사랑을 주도록 할게."
인간을 산 식목체로 삼아 그 생명과 피를 빨아들여 꽃을 피우는, 끔찍한 마도화──
"아름답게 피어라. ──《피를 빠는 여왕》"
그 씨앗을 튕겨, 시리우스를 향해 날렸다.
씨앗은 채찍으로 인해 찢겨나간 시리우스의 피부 속으로 파고들어가, 피를 빨아들여, 폭발적으로 성장.
그의 몸 안에 가시 달린 줄기를 뻗어, 몸 내부에 있는 신경을 갈가리 찢어 몸의 자유를 빼앗고, 순식간에 그를 산 식목체로 변모시킬 것이다.
그리고, 그의 생명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그렇다.
그럴 터였다.
"읏──!?"
"에.."
하지만, 씨앗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것처럼, 이상한 방향으로 튕겨나갔다.
동시에, ──아스트레아의 곁에 쓰러져 있던 메이드 중 한 명이 일어나, 명백히 일반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경이적인 속도로, 그야말로 화살과도 같이 아인을 향해 쇄도했다.
"복병이라고!? 약삭빠른 짓이나 하다니...!"
그녀도 역시나 이렇게 심한 꼴을 당할 때까지 나타나지 않는 복병의 존재는 경계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아인은 경악을 보였지만, 결코 동요에 발목이 잡히지 않은 채, 정확한 영격을 선보였다.
방금 시리우스에게 했던 것과 같은 공격을.
《가시채찍》이 의한, 타격.
아인은 다리를 노렸다.
다리를 잘라버릴 생각으로.
하지만 그 채찍은 방금 씨앗이 그랬던 것처럼, 메이드의 몸에 닿기 직전, 튕겨나갔다.
하지만,
'읏, ──아니야, 복병 같은 게 아냐. 이 능력은!'
튕겨나간 씨앗과는 달리, 팔에 이어진 《가시채찍》을 통해 들어오는 충격에,
지금 막 간격을 좁혀 들어온 메이드가 휘두르고 있는 독특한 디바이스에,
아인은, 알게 되었다.
──자신은, 이 여자를 알고 있다고.
그녀는 간발의 차이로 뒤로 도약해, 쇠 가는 소리와 함께 휘둘러진 디바이스의 참격을 피했다.
그리고,
"...어머나, 설마 너와 이 버밀리온에서 재회하게 되다니, 깜짝 놀랐는걸."
친근함조차 담긴 목소리로, 자신의 채찍을 '전기톱'으로 잘라버린 메이드를 향해 말했다.
"이런 데에서, 메이드 속에 섞여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니, 피아? ....아니, 지금 네 이름은 확실히.. 『타타라 유이』라고 했던가?"
그 말에, ──버밀리온의 메이드들 속에 숨어 있던 흑발의 소녀, 이전의 《칠성검무제》에, 아카츠키 학원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가했던 『암살자』는,. 짜증스러움을 아낌없이 드러내는, 내뱉는 듯한 말투로 아인을 향해 답했다.
"뭘 하고 있냐고? 그건 이쪽이 할 말이다. 망할 언니 년아."
◆◇◆◇◆
별로 내키지 않는 임무에서 겨우 해방되어, 일본에서 자신이 태어나 자란 실가로 돌아온 타타라는... 말문이 막혀 있었다.
부모도, 언니도, 모두가 집 안에서 참살을 당해 있었다.
그것도, 평범하게 죽은 꼴이 아니었다.
온 몸의 모든 구멍이란 구멍에서, 장미가 핀 채 죽어 있던 것이다.
거기다 썩기 시작한 사체를 샅샅이 조사해 보니, 직접적인 사인은 모두, 혀를 깨문 것에 의한 출혈사나, 자신의 의사로 머리를 기둥에 몇 번이고 처박은 것에 의한 뇌손상.
즉, 자살이었다.
그렇다. 그들은, 억지로 생을 부여받고 있었던 것이다.
몸속에서 싹튼 줄기가, 몸 내부를 갈가리 찢고, 내장을 밀어내고, 안구와 고막을 뚫고 온 몸의 모든 구멍을 통해 장미꽃이 피어난 상태 하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살아가기엔 너무도 큰 고통에, 누구라 할 것 없이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악취미적인 『살인』을 벌이는 사람은, 이 세상엔 하나밖에 없다.
하수인은, 이미 판별이 갔다.
그러니, ──타타라는 그 발자취를 좇아,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적의 사고를 먼저 읽어, 메이드 사이에 섞여 매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시채찍》이, 자신의 앞에 나타나는 것을.
"일을 시키면 타겟 이외의 사람까지 모두 말살해버리고, 일이 없을 때엔 제멋대로 사람을 죽이고 다니고, 예전부터 눈엣가시같은 행동을 벌이는 일이 많긴 했지만, ...이번엔 좀 약을 과하게 처먹고 나대고 다닌 거 아냐? 엉!?"
아인을 향해 울음소리를 내는 전기톱 디바이스 《땅을 기는 지네》를 들이대며, 타타라는 분노를 표출했다.
그 타타라를 향해, 아인은 어디까지나 표정에 여유를 지킨 채, 어깨를 으쓱했다.
"우후후. 그렇구나. 날 쫓아 온 거였구나. 흔적은 지워 놓긴 했었는데, 역시 동문 아이까지 속일 수는 없었나 보네. 그리고 날 쫓아 왔다는 건, ....내가 꽃피워 놓은 실가의 재미없는 사람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이런 정도이려나? 참 효녀기도 해라."
"아? 뭔 개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어머, 아니었어? 그 사람들한텐 정말 짜증이 치밀기 시작할 때였던지라,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죽여 줬는데 말이지. 거기에 화가 나 복수를 하러 온 게 아니었어?"
"내 알 바야? 그 자식들이 어떻게 뒈지든."
"...상당히 냉정하네."
"우리는 암살자야. 제대로 뒈질 방식을 고를 직업은 아니라는 거지. 부모도, 다른 언니들도, 확실히 일반 사람이 죽을 만한 모습으로 죽은 건 아니었지만, 그것도 인과응보. 어울리는 말로라고 할 수 있겠지."
그건, 타타라의 거짓도 뭣도 없는, 진심이었다.
자신들은, 돈으로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자들이다.
돈으로, 타인의 목숨을 멋대로 매매하는 것이다.
설령 자신이 낳은 아이에게 배신당해 처참히 살해당한다 할지라도, 동정해 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타타라의 마음속엔 죽은 부모나 언니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 따윈 추호도 없었다.
그래도, 그녀가 아인을 쫓아온 것은──
".....그저, 집안 녀석들은 알 바 아니지만, 고용주한테까지 손을 대다니, 대체 뭔 생각이야. 미쳐 날뛰는 것도 적당히 하라고....! 암살자라는 건 이 세상에서 신용이 가장 중요한 직업이야. 네 년은 우리들의.... 《검은 집》의 신용에 먹칠을 했어. 그 먹은 네 년의 피로 씻어낼 수밖에 없지. 즉, 그렇다는 거야. 나는 프로의 몸으로서 그 매듭을 지으러 온 거라고!"
《검은 집》 소속의 암살자인 자기 자신의 손으로, 《악의 꽃》을 처리한다.
그것으로, 《검은 집》의 신용을 되찾는다.
이 타타라의 행동이유에, 아인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나. 《검은 집》은 너 이외에 내가 모두 죽여 버렸는데, 그런 가문의 신용을 되찾기 위해 싸운다고? 그 울보 피아가 상당히 훌륭하게 자라났는걸? 이 언니, 정말 기뻐. 하지만──"
그렇게, 하지만, 이라는 말 다음을 끊은 아인은 살짝 미소짓고,
"과연 가능할까? 네가, 이 《악의 꽃》을 꺾는 것이."
놀리듯 고한 찰나, 아인의 온몸에서 가느다란 그림자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살기를 타타라에게 보냈다.
마치, 똬리를 튼 뱀처럼.
이것이, 《악의 꽃》의 전투 태세이다.
그걸 알고 있는 타타라는,
"그런 네 년은 아무 변함이 없군. 모든 걸 깔보고, 네 년의 의도대로 움직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말이다, 그건 큰 착각이라고."
"무슨 의미지?"
"그 의도대로는 움직이지 않을 거란 말이다! 나도, 그리고 저 녀석들도 말야!"
그리 말하고, 옆에서 계속 켜진 채로 놓인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 시선의 움직임에 이끌려, 아인도 보았다.
이 순간, 전장에서, 또 다른 크나큰 움직임이 벌어졌다.
◆◇◆◇◆
쓰러진 쿠로가네 잇키의 위에, 하늘이 붕괴해 왔다.
아니, 하늘이라 착각할 정도로 거대한, 후드를 뒤집어 쓴 남자의 발바닥이.
신장 300미터를 넘을 정도로 거대화한 남자가, 자신의 눈을 망가뜨린 잇키를 분노와 함께 짓밟으려 하고 있던 것이다.
여기에, 잇키는,
'위험, 해...!'
뭐라도 하지 않으면, 그대로 죽어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마력도 이미 고갈되어 버린 몸으론, 불가능했던 것이다.
어떻게든 상반신은 일으켰지만, 온몸의 뼈는 부서져, 팔도 다리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기어 도망치기엔, 남자의 발은 너무도 컸다.
도망칠 수가 없다.
어떡하면──
그리 생각할 틈조차, 지금의 잇키에겐 없었다.
거대한 남자는 무자비하게 잇키의 세계를 짓밟아버렸고──
"늦지 않았어."
"!"
이제 여기까지인가.. 하고 죽음조차 각오한 그 찰나.
뒤통수 바로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고, 한 눌기 바람이 잇키의 곁을 스쳐 지나간 다음, 그의 앞에 섰다.
"아──.."
검은 갑주를 몸에 두른 그 위엄 넘치는 모습을, 잇키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가, 위기상황에 달려와 준 것이다.
그리고,
"────하, 아아아아아아아아앗!!!!!!!!!"
그녀는 짓밟아 오는 남자의 발을 향해, 손에 든 도끼를 휘둘렀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담았다.
남자의 발을 밀어내기 위해서였다.
──그건, 무모했다.
하늘을 꿰뚫을 정도로 거대화한 남자.
그에 비해, 아스칼리드는 너무도 작았다.
개미가 코끼리의 발을 들어 올리려고 하는 것과 같았다.
가능할 리가 없었다.
스텔라라면 혹은 가능할지도 몰랐겠지만, 《흑기사》에게 용의 힘은 없다.
갑옷을 벗었을 때 본 체격에서 상정되는 힘. 여성 치고는 엄청나게 강한 편에 속했지만, 저 떨어지는 발바닥을 맞받아칠 수 있을 정도는 아닐 터.
불가능하다.
그렇게, 잇키조차 생각했다.
하지만,
"크, 우우!?"
'이, 이건...!'
《흑기사》 아스칼리드가 치켜든 핼버드의 충돌에, 멈출 리 없는 거인의 발바닥이 멈추었다.
개미와 코끼리 사이에, 길항이 벌어졌다.
──어째서.
그 답을, 잇키는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거인의 발을 받고 있는 《흑기사》.
그 흑요빛 갑주 틈에서, 엄청난 양의 선혈이, 그녀를 짓누르는 압력에 의해 뿜어져나오고 있던 것이다.
피부가, 살이, 뼈가, 거인의 무게에 버티지 못하고, 파괴되어 가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흑기사》의 무릎은 꺾이지 않았다.
등골은, 조금도 굽어지지 않았다.
거인의 중량은, 아스칼리드가 서 있는 바닥을 부수는 데에 그쳤다.
잇키도 도움을 받았던 《무적갑주》의 재생력이, 압력에 의한 파괴를 상회하는 속도로 그녀의 몸을 계속해서 재생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흑기사》는 결코 꺾이지 않는 것이다.
굴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붕괴되어 오는 하늘을, 아스칼리드는 말 그대로, 힘껏 밀어냈다.
핼버드가 끝까지 휘둘러졌고, 참격이 거인의 발바닥을 신발 채로 갈라, 선혈의 비를 흩뿌려졌다.
'아파! 아파아아아아아!!!'
너무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넘어지는 거인.
그건 마을에 커다란 파괴를 가져다 주었지만, 잇키가 아무도 없는 장소로 그를 유인한 덕택에, 피해가 생기는 일은 없었다.
잇키의 목숨을 포함하여.
"괜찮아?"
"....네, 덕분에요."
안부를 묻는 아스칼리드를 향해, 잇키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리고,
"당신이 불굴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지금 알게 된 것 같아요."
직접 보게 된, 그녀의 힘을 칭찬했다.
잇키는 생각했다.
그야말로, 운명의 섭리를 벗어난 《마인》을 상징하는 듯한 능력이라고.
방금 그 파괴 앞에도 꺾이지 않는 힘.
ips 재생조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재생력이었다.
아마도, 아스칼리드를 단순한 외상으로 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강하다.
이것이 《마인》이라 불리는 자들의 힘.
'아파! 아프다고!! 나 화났어어어어!!!!'
하지만, 감탄에 젖어만 있을 때는 아니었다.
거인이 온통 눈물과 침에 젖은 분노의 형상을 띠고, 다시금 일어난 것이다.
"윽! 아스칼리드 양! 다시 옵니다!"
하지만, 이 잇키의 경고에,
"괜찮아."
아스칼리드는 딱 한 마디만으로, 조금의 동요도 없이 답했고,
──손에 든 핼버드를 지면에 꽂아, 놓아 두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인 것인가.
깜짝 놀라는 잇키의 앞에서, 아스칼리드는 투구까지 벗어 안면을 드러냈고,
적색과 청색, 좌우 다른 색의 눈으로 거인을 올려다보며,
"이제 그만 해."
한 마디.
마치 어린아이를 질책하는 듯한 말투로, 그리 말했다.
'으으──!'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질책을 당한 거인이, 그 분노의 형상을 새파랗게 물들이고,
'재, 재송해요오오오!!! 으아아앙~~~!!!!'
울음을 터트리고 몸을 빙 돌려, 지진을 일으키며 도망쳐버린 것이다.
여기에, 그 내로라하는 잇키조차 의미를 알 수 없어 아연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도망, 쳤다...? 어, 어째서..?"
그 잇키의 질문에, 아스칼리드가 답했다.
"저것의 이름은 《B.B》. 정확하게는 《BIG BABY》. 몸이 크고 힘도 강하지만, 그 정체는 《해방군》이 주워 온 5살배기 아이야."
"5, 5살!?"
"그래. 그러니 매를 때리는 것보다, 말로 해서 알게 하는 편이 더 좋지."
어설프게 반격했다간, 오히려 공격을 가해 올 테니까.
그리 말하고 아스칼리드는 다시금 투구를 쓰고, 핼버드를 들었다.
그 때였다.
"에."
거인이 도망치는 것보다도, 더 놀랄 변화가 전장에 벌어졌다.
버밀리온의 하늘.
거기에 무겁게 드리워져 있던 검은 구름이, 모두 사라졌던 것이다.
"뭐, 뭐지!? 하늘이 갑자기──, ~~~~~~~~읏!?"
거기에 이어, 모래먼지를 머금은 돌풍이, 잇키 일행의 몸을 강타했다.
건물 잔해더미나 차를 손쉽게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의 강풍.
방심했다간 하늘까지 날아가버릴 것 같은, 숨도 쉴 수 없을 정도의 모래폭풍 속에서,
"....다행이다."
아스칼리드는 그 돌풍 속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안도의 목소리를 내었다.
"더할 나위 없는 조력자가 온 모양이야."
◆◇◆◇◆
'구름이, 걷혔어...!?'
갑자기 벌어진 그 기상이변은, 중앙 가도에서 떨어진 서쪽 가도에 있는 스텔라도 확인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 원인도.
'운....석!?'
그랬다.
구름을 날려버린 건, 공기저항에 의해 붉게 달아오른 거암이었던 것이다.
저녁노을이 지는 하늘을 등지고 날아오는 운석의 직경은, 어림잡아 20미터를 넘었다.
그 위압적 파괴력을 지닌 천재지변은, 똑바로 스텔라──
아니, 스텔라의 앞에 서 있는, 《사막의 사신》 나짐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런 우연이, 가능한 것인가?
스텔라는 너무나도 깜짝 놀라, 하늘을 올려다 본 채로 굳어버렸고,
나짐도 또한,
"칫!"
버밀리온의 대지를 향해 내리치려 한, 모래폭풍을 두른 주먹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전차의 포격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다.
저런 걸 정통으로 맞았다간, 블레이저라 할지라도 한 줌의 고기조각도 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회피는 불가능.
운석은 이미 최고속도에 달해 있었다.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나짐은 자신을 향해 낙하하는 운석을 올려다본 다음,
코 앞까지 쇄도한 찰나,
"《데드 엔드 블로우》───!!!!!!!!"
버밀리온의 대지를 향해 내리치려던 능력을, 운석에 내질렀다.
하늘을 뚫는, 혼신의 스트레이트를.
──이 무슨 가당찮은 발버둥이란 말인가.
낙하하는 운석을 주먹으로 때려 뭘 어쩌자는 것인가.
주먹은 순식간에 부서지고, 온몸이 짓뭉개지는 것이 필연.
뒤집을 수 없다.
뒤집을 수 없는, 힘의 상하관계.
하지만, ──운석의 낙하가 가져다주는 파괴의 충격은, 나짐을 뭉개버리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꺄아아아아앗!!"
직후, 몸을 구타하는 듯한, 모래 섞인 폭풍이 불어닥쳤다.
추락 지점 바로 옆에 있던 스텔라의 몸은, 그 충격에 의해 손쉽게 날아가버렸다.
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스텔라는 눈을 감고, 그저 힘의 범류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렸고...
겨우 몸을 때리는 듯한 충격파가 잦아든 것을 확인한 뒤, 눈을 떴다.
그리고, 보았다.
추락 지점을 중심으로 생겨난 직경 100미터 정도의 공간. 거기에 존재하던 모든 것들이, 건물이, 차가, 도로 위의 아스팔트가, 그 모든 것들이 날아가, 그저 모래만이 남은 딱딱한 대지가 되어버린 광경을.
"읏........! 대체, 무슨 일이...."
폭심지로부터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모래연기.
그걸 바라보며, 스텔라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하늘이 도운 것인가?
버밀리온의 궁지에, 우연하게도 천재지변이 자신을 도운 것인가?
"그런 우연이... 가능한 거야...?"
"아니, 그건 아무리 그래도 아니지."
"윽!"
부정의 목소리는, 스텔라의 바로 뒤에서부터 들려왔다.
깜짝 놀란 스텔라는 바로 뒤를 돌아보았고,
"야호~ 스텔라~ 상당히 꼴사나워졌는데~ 쿠로 꼬맹이한텐 도저히 보여줄 수가 없겠어~"
쿡쿡, 하고 장난스레 웃으는, 요염한 기모노 차림의 소녀를 보았다.
──아니, 소녀가 아니었다.
스텔라는, 이 작은 여성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네, 네네 선생님!?"
그렇다.
스텔라의 등 뒤에 서 있던 건, 스텔라가 유학을 간 일본의 하군 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비 상근 강사이며, 《국제 마도기사 연맹》이 주최하는 KOK·A리그에서 작년 3위라는 성적을 남긴, 세계 유수의 실력자. 스텔라 자신도 일시적이긴 하나 직접 가르침을 받은 여성,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였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스텔라는 지금 벌어진 일련의 천재지변에 납득을 하게 되었다.
《야차 공주》의 능력은 중력 조작. 그 힘을 이용해, 대기권 외부를 떠도는 우주 쓰레기를 끌고 와, 상대를 향해 낙하시키는 기술을 갖고 있다.
그 이름하야──《패도천성》
연맹에 의해 유사시 이외에서의 사용을 금지하는, 《금기지정》을 받은 노블 아츠다.
지금 이 운석은 그 힘에 의해 낙하된 것이다.
하지만,
"어, 어째서 네네 선생님이 버밀리온에!?"
"그야 버밀리온은 연맹 가맹국이잖아?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 내가 있는 건 오히려 당연하지 않겠어? 나는 선생님이나 선수이기 이전에, 《마도기사》 이니까 말야."
연맹이라는 그룹에 든다는 것은, 상부상조를 약속하는 것.
그렇다면, 버밀리온의 궁지에 연맹 소속 《마도기사》들이 비상사태 개입에 나서는 건 당연한 것.
"나만이 아니야. 이미 연맹의 《재상》은 이 사태에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마도기사》와 주변 제국의 군대를 소집하고 있어. 곧 100만 규모의 증원군이 도착할 거야."
"100만...! 그렇게나!"
"뭐, 나는 기다리는 게 성에 맞질 않으니, 운석에 올라타 가장 먼저 와버렸지만 말야."
스텔라의 질문에 답한 뒤, 네네는 동정하는 듯한 쓴웃음을 스텔라에게 향했다.
"그건 그렇고, 스텔라도 참 큰일이었네. 모처럼 이 즐거운 여름방학에 저런 귀찮은 녀석한테 휘말려 버리다니. ....누군가의 불운이 옮아 버린 거 아니야?"
".....웃지는 못할 농담인데요. 그건 그렇고,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응? 뭔 소리야? 아무도 살아나지 못했는데. 저게 이 정도로 죽어버릴 리가 없잖아?"
"──에.."
그녀가 고한 말에, 설마.. 하고 스텔라는 모래연기가 피어오르는 추락지점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모래먼지가 바람에 흩날리고, 시야가 트이기 시작한 그 중심점에,
상처 하나 없는 《사막의 사신》이 서 있었다.
"거짓말...... 운석을, 힘으로 밀어냈다고!?"
스텔라는 경악을 숨길 수가 없었다.
힘에는 스텔라 그녀도 자신이 있었으니,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야차 공주》의 《패도천성》을 정면으로 받아내 분쇄시켜 버리는 건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스텔라의 곁에서,
"뭐, 힘만으로 해낸 건 아니었지만 말야. ....단, 이걸로 완전히 끝장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상처 하나 없다니, 아무래도 자존심에 금이 가는걸. 역시 세계 최강의 전쟁광이라는 걸까."
참 터프한 녀석일세, 하고 무사한 적의 모습을 본 네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유일하게 다행인 건, 꽤 잘 생겼다는 점이려나. 저 아무렇게나 자라난 수염도 그렇고,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주제에 점잖지 못한 점이라든가, 와일드한 것도 내 취향이긴 하거든. 어때? 이런 꼬맹이를 상대할 바엔 나랑 한번 놀아 보자구."
경박한 말투로 그리 말하며, 나짐을 향해 다가가는 네네.
여기에, 나짐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야차 공주》네네인가. 소문으로 듣던 대로, 힘 조절도 모르는 멍청한 년이로군. 내가 막지 못했으면 여기 일대에 있던 나부랭이 녀석들도 모조리 뒈져 버렸을 거라고?"
"이런 싸구려 기습 하나에 얌전히 죽을 녀석은 아니잖아? 존재하지도 않을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취향이 아니라서 말이지. 둘만의 시간은 좀 더 의의 있게 쓰도록 하자구."
"큭큭. 《마도 기사》로 두기엔 아까울 정도로 정신 나간 여자로군. 싫지는 않아."
네네의 응답에 미소를 흘리며, 나짐도 네네를 향해 걸어 나아갔다.
그리고, 서로 멱살을 잡아올릴 정도의 위치까지 다가선 다음,
하지만, 하고 말한 뒤 나짐은 네네의 기모노 옷덜미를 잡아챈 다음,
──힘껏, 어깨 아래까지 내려버렸다.
그리고, 드러난 네네의, 나이에 상응하지 않는 두 언덕을 바라보며,
"미안하지만, 꼬맹이를 따먹는 취미는 없어서 말이지."
그렇게, 모멸을 날렸다.
이 너무나도 예의없는 행동에, 곁에 있던 스텔라조차 할말을 잃었다.
하지만, 한 편, 굴욕을 직접 받은 네네 본인은,
"뭐, 그렇게 쌀쌀맞게 굴지 말고~"
흐트러진 기모노의 옷매무새를 고치려 하지도 않고, 이를 드러내듯 웃은 뒤,
"나는 네 놈 같은 폼만 잡는 녀석이, 내 가랑이 아래에서 징징거리며 울어대는 걸 보는 걸 최고로 좋아하거든."
슬쩍.
마치, 솜털을 쓰다듬는 듯한 관능적인 손짓으로, 기모노를 잡고 있던 나짐의 오른팔을 애무했다.
여기에, 나짐은 오한을 느끼고, 곧바로 몸을 배려 했다.
하지만,
".......!"
움직일 수 없었다.
다시금 보니, 네네의 작은 왼손이, 나짐의 팔을 잡고 있었다.
그걸, 뿌리칠 수가 없었다.
모래가 되는 것도 불가능했다.
대체 어째서.
그걸 생각할 틈은, 없었다.
콰앙!!!!
네네의 오른다리가, 나짐의 옆구리를 후려 차버렸기 때문이었다.
순간, 나짐의 몸은 네네의 발차기를 맞고, 마치 포탄과도 같은 기세로 옆으로 날아가, 50미터 바깥에 있는, 모래폭풍을 맞아도 무사했던 건물을 관통. 계속해서 붕괴를 일으키며, 시야 밖 머나먼 곳 끝으로 사라졌다.
그 광경에 스텔라는 아연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상식 밖의 위력이 담긴 발차기,
───그런 것이 아니었다.
중력을 조종하는 네네의 능력은, 그 작은 몸집의 이미지를 크게 뒤집어놓는다.
그건 스텔라 자신이, 실제로 체험하여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그녀가 놀란 것은,
"어, 어떻게..."
모래가 되어 참격조차 흘려버리는 적에게 타격을 가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스텔라의 질문에,
"모래가 돼 산산히 흩어진다면, 굳혀 놓으면 그만이잖아?"
네네는 빛을 굴곡시켜 암흑이 되어버릴 정도의 중력장을 펼쳐놓은 자신의 왼손을 내보이며, 말했다.
여기에 스텔라는 납득하고, 동시에 알게 되었다.
굳혀 놓은 상태에서 대미지가 들어간다면, 자신의 열로도 같은 것이 가능했을 거란 걸.
그렇다. 그야말로, 닿은 순간에 '유리화'를 시켜 버릴 정도의 열을 품고 참격을 가했다면, 나짐은 자신의 참격을 회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 희망을 얻고, 스텔라는 《비룡의 죄검》에 담은 열을 한 층 높였다.
하지만 그런 스텔라에게, ──네네는 낮은 톤으로, 충고했다.
"관 둬. 지금 스텔라에게는, 저 녀석은 버거운 상대야."
"뭣..."
반론은, 말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걸 가로막듯이, 쿠우우웅.... 하는, 무겁고, 깊게, 멀리서부터 대지를 울리는 굉음이 들려왔고, 나짐이 날아온 곳에서부터 거대한 모래기둥이 피어올랐기 때문이었다.
하늘 높게 피어오르는 모래먼지.
대체 무슨 일이, ──하고 생각할 틈도 없이, 다음 변화가 발생했다.
붕괴.
모래기둥이 피어오르는 지점을 중심으로, 눈에 보이는 마을의 건조물들이 서서히 기울었고, 쓰러져갔다.
──아니, 틀렸다.
스텔라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건물이 쓰러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건물이 서 있는 지반 그 자체가, 붕괴하고 있는 것이란 걸.
지평이 가라앉아 간다.
마치, 개미지옥에 삼켜진 것처럼, 서양의 마을이, 거기에 있던 클레이델란트 군들을 한꺼번에 대지 속으로 삼켜 갔다.
"이, 이건.. 저 녀석, 뭘 하고 있는 거야!?"
"....『하부브』라는 건 말이지. 아라비아어로 《모래폭풍》이라는 의미야. 그건, 그냥 강하게 부는 바람 같은 게 아냐. 지나간 대지에 있는 모든 것들을 《사막화》시켜 가는, 대자연의 사신이지."
강한 긴장감을 띤 시선으로, 붕괴해 나아가는 마을을 바라보며 네네가 말하며,
──다리를 가볍게 털어, 신고 있던 텐구 게다를 벗었다.
바닥에 뒤집혀진 채로 떨어진 게다를 보고, 스텔라는 경악했다.
텐구 게다의 길다란 굽.
그 반 이상이, 모래도 먼지도 아닌 것이 되어, 무너져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저 녀석은 용병으로서 적대한 쪽에게도, 그리고 자신이 속한 곳에게도, 동등한 파괴를 가져다주지. 돈도, 목숨마저, 모든 것들을 약탈하여, 녀석이 지나간 곳엔 모래밖에 남지 않아. 모든 만물이 종말을 맞아, 대지엔 죽음만이 남아 펼쳐져 있는 거야. 알 수 있겠어? 즉, 그 행동을 가리켜, 녀석은 『하부브』라고 불리고 있는 거야. 『모래 능력자』 같은 하찮은 게 아니라구. 모래는 녀석의 능력의 부차적인 산물. 나짐 알 살렘의 본질은.... 『건조』. 이 별에 죽음을 가져다주는, ──사람의 형태를 한 하나의 『재해』라고."
"윽──!!"
그 말에, 스텔라는 지금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짐은 『건조』의 힘으로 카르디아 서구 일대의 지반 그 자체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란 걸.
《패도천성》을 때려 부숴버렸을 때처럼.
자신의 힘으로, 순식간에 모든 것의 수분을 빼앗아서.
모든 수분이 말라버린 지반은 모래가 되었고, 점성을 잃은 지반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려갈 뿐.
결과, 대규모적인 지반 침하가 발생하는 것이다.
즉, ──나짐 알 살렘은, '죽인' 것이다.
이 별의 일부를.
자신의 주먹으로.
대지조차 살해가 가능한 힘의 스케일에, 스텔라는 경악했다.
당연하다. ──이런 힘을 지닌 기사가, 클레이델란트와 버밀리온의 양군이 모인 이 장소에서 온 힘을 다해 날뛴다면.... 대체 몇 만 명의 희생이 발생하게 될 건지,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그건, 반드시 피해야만 한다.
하지만, 전황은 스텔라의 우려에 어디까지나 무자비했고,
"큭큭큭, ......하하하하핫! 좋아! 이렇게 눈 뜨이는 한 방을 먹은 게 대체 몇 년 만이야!?"
나짐은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엄지손가락으로 닦은 뒤, 선글라스 너머의 눈을 충혈시키며,
"맘에 들었어! 《야차 공주》....! 네 년이 바라던 대로 먹어 주도록 하지....! 네 년의 모든 피 한 방울까지, 내 『건조』로 들이마셔 주겠어!!!!"
직후, 나짐은 네네를 향해 똑바로 날려 나아갔다.
대지조차 파괴시키는 힘을, 두 주먹에 두르고.
스텔라와 싸웠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거리르 좁혀 왔다.
여기에, 스텔라는 한시라도 빨리 이 적을 쓰러뜨려야 한다고, 초조감에 내달려 검을 들었지만,
"거기서 움직이지 마."
"윽──!?"
낮게, 마치 훈계하는 듯한 위엄을 지닌 네네의 한마디에, 온몸의 움직임을 빼앗겼다.
위압, 같은 게 아니었다.
그 구속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듯한, 물리적인 압력으로 스텔라의 몸을 고정시키는 것이었다.
어떠한 《노블 아츠》인 것일까. 하지만, 네네가 어떠한 능력을 쓴 것 같은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하고 스텔라는 곤혹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스텔라를 내버려둔 채, 네네는 쇠부채 형태 디바이스 《홍색선》을 현현.
두 손에 들고, 쇄도해 오는 나짐을 향해 자신도 달려 나아갔다.
"잠까...."
기다려, 라고 말하려던 스텔라의 바람은, 그녀의 귀에 닿지 않았다.
둘 다,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마인》.
지형조차 변모시켜 버리는 힘을 지닌 기사의 충돌.
그런 싸움이 수많은 사람이 있는 이곳에서 벌어진다면, 참극을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네네도 나짐 정도의 《마인》이 온 힘을 다해 덤빈다면, 화력 조절 따위는 불가능할 터.
그렇게, 두 《마인》의 혼신의 힘이 충돌했다.
그 직전에,
" "윽───!?" "
촤앙! 하는──, 새된 풍절음과 함께 둘 사이에 모래먼지로 이루어진 벽이 피어올랐다.
지금 막 충돌하려 한 둘 사이를 가로막듯이.
그건,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참격에 의해 피어오른 먼지였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분위기 달아오른 참에 미안하지만, 싸우는 것 좀 멈춰줄 수 있겠어?"
비색에 물든 하늘.
휘황찬란한 금색 군마에 탄 금발의 청년과, 곁에 선 채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작은 소년.
잘못 볼 리가 없다.
금색의 군마는 요한 크리스토프 폰 콜브랜드의 디바이스, 《황금전차》이고,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서 있는 후드를 뒤집어쓴 소년은, ──《괴뢰왕》 오르골임이 틀림없었다.
갑자기 전장에 나타난 원적. 이 소동의 원흉의 모습.
"어, 어째서.."
하지만, 스텔라의 두 눈이 올려다본 것은 오르골도, 요한도 아니었다.
그녀가 올려다본 곳은 단 한 곳.
요한의 뒤에, 군마에 앉아 있는 피치 블론드의 여성──
"루, 루나 언니!?"
황도의 병원에 있을 터인 자신의 언니, 루나아이즈 버밀리온의 모습이었다.
◆◇◆◇◆
황금의 군마에 앉은 채 나타난 루나아이즈의 모습은, 플레어베르그 황궁의 모니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고,
"루, 루나!? 어, 어째서 루나가 저런 곳에!?"
"설마.. 납치당한 거야...!?"
그녀의 부모는 동요를 숨길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막 타타라를 향해 공격을 가하려 했던 아인도, 그 움직임을 멈추고, 제지의 말을 꺼내 온 《괴뢰왕》을 향해, 통신용 『실』을 통해 불만을 토로했다.
"정말, 뭐니? 이제부터 즐겨 볼 참이었는데."
'미안~ 이제부터 벌어질 『전쟁』에 대해 좀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 말야~'
아인의 불만에, 모니터 너머로 사죄를 해 오는 오르골.
그리고, 그 영상에──
'루나 언니를 돌려 내!!!!!!!!!!!!!!!!!'
일직선.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진홍색 빛이 비춰졌다.
──등에 용의 화염이 둘러진 날개를 구현화시킨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이었다.
스텔라는 새롭게 얻은 날개의 힘으로, 화살과도 같이 오르골을 향해 쇄도했다.
여기에, 오르골은 당황해하며,
"우와앗! 잠깐잠깐!"
"문답무용!"
제지의 목소리 따윈 귀도 기울이지 않고, 스텔라는 《비룡의 죄검》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진정해. 스텔라."
"윽.......!?"
그 목소리에, 스텔라의 돌격이 멈췄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니었다.
루나아이즈 버밀리온이었다.
자신의 언니. 어디까지나 평소대로의 위엄을 담은 목소리에, 스텔라는 경악했다.
"루, 루나 언니? 괜찮은, 거야?"
영락없이, 기절해 있거나 조종당하고 있을 걸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스텔라는 자신의 눈으로 보더라도, 실의 존재는 요한에게서밖에 확인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곤혹해하고 있는 스텔라에게, 루나아이즈는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난 사로잡혀 조종당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자신의 의사로 현 클레이델란트 국왕이 있는 곳에 찾아간 것이니까."
"에?"
"그래, 스텔라! 돌려 내라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뭐든지 남의 탓으로 돌리는 건 좋지 않다구!"
오르골의 농담 따위엔 귀도 기울이지 않고, 스텔라는 루나아이즈를 향해 되물었다.
"자, 잠깐만! 자신의 의지라니,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의 의미다. 병원에서 눈을 뜬 나는 그 뒤 곧바로 클레이델란트로 돌아가, ....클레이델란트 국왕과 협의하여, 우리들과 클레이델란트 사이에 존재하고 있던 정보 오차와 오해를 풀고 왔어."
"하...? 루, 루나 언니,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루나아이즈에게서 돌아온 말에, 스텔라의 혼란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루나아이즈가 눈을 뜬 뒤, 클레이델란트로 향했다?
시간적으로는, 차나 헬기를 이용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왜?
뭘 위해서?
아니, 애초에, 오차와 오해라는 건 뭐지?
필사적으로 생각하여, 루나아이즈의 말을 이해하려 하는 스텔라.
아마도, 시리우스나 아스트레아도 스텔라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그 노력은,
"스텔라. 내가 이번에, 버밀리온과 클레이델란트의 전쟁에 관해 전 결정권을 아버님에게서 일임을 받았다는 건, 알고 있겠지?"
"그, 그게 지금 무슨 관계가.."
다음 순간, 산산히 부서졌다.
"그 권한으로 지금 여기서 선언한다. 버밀리온은 연맹 가맹국으로서, 클레이델란트 신 정권의 선전포고를 정식적으로 수락. 연맹 규약대로, 군대에 의한 전투가 아닌, 쌍방, 현 국유 전력에 의해 선발된 《마도기사》 5명에 의한 대표전을 벌여, 전쟁의 자웅을 겨룰 것이다. 이 모든 건 규약에 의해 행해지는 정규 전쟁 권리 행사이며, 버밀리온과 클레이델란트의 영토 내에 있는 《국제 마도기사 연맹》 소속에 의한 비상 사태 개입은, 현 정부는 일절 허가치 않는다."
"뭐, 뭐라고────!?"
....그것은, 오르골에 의해 만들어진, 말 그대로 괴뢰 정권을 신 정부로 인정하는 것만이 아닌, 100만을 넘는 모든 증원군 을 포기한다는, 이해 따위는 불가능한, 있을 수 없는 성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