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2화 (62/77)

제 11장

하얀 정상

발트 위기.

그건 지금부터 15년 전. 《동맹》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러시아 제국이, 당시 《연맹》 비 가입국인 에스토니아에 침략 전쟁을 가해 왔고, 《연맹》이 《동맹》에 대한 대항심을 불태워 에스토니아의 허가도 없이 파병을 보내 제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직전까지 갔던 대사건을 통칭하는 것이다.

하지만, 양군의 충돌은 미수로 끝났다.

어째서일까.

그 진상은, 한 소녀에 의해 30만이 넘는 양군 전력이 모두 전멸했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불타오르는 듯, 옅은 빛을 반짝이는 순백의 무장을 몸에 두르고, 한 쌍의 검을 손에 들고 전장을 유린하는 전처녀.

《비익》 에델바이스. 그 전설의 시작점이었다.

이 사건에 의해, 에델바이스는 《연맹》과 《동맹》, 세계에 있어 가장 큰 두 세력에 의해 동시에 국제 지명수배를 받는 몸이 되었고, 양 세력은 《비익》을 잡는 데에 눈에 핏발이 서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이 행해 온 모든 수단들은, 그녀의 이차원적인 강함 앞에 헛수고로 돌아가버렸다. 아니, 오히려 역효과라고까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에스토니아의 파병엔 각각 양 세력에 반대 의견을 지닌 자들이 많았고, 조직 내의 연대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점도 있었지만, 이 세계 최대급이 두 세력이 한 사람의 범죄자 앞에 손발을 못 쓰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의 용명을 드높이는 효과로 이어져버리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에스토니아에서 대규모적인 정변이 벌어져 정권이 바뀌고, 에스토니아를 포함한 발트 3국이 《연맹》에 가맹하게 되었을 때,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연맹》에 가입할 때, 국내에 숨어 있는 《비익》을 어떻게 처리하실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에스토니아의 대통령은 세상 모든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가운데,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비익》은 이미 우리 나라와 무관계하다. 그 이유는, 우리 나라는 《비익》이 잠복해 있는 에델베르크 주변의 영유권을 포기할 것이니까.'

그렇다. 한 국가가, 단 한 사람을 상대로 도망쳐 버린 것이다.

수치도, 체면도, 국토까지도 버려가면서.

이미 손 쓸 도리가 없는 상대인 것이라면서.

한 나라에 비견할 검기. 국가조차 위협에 빠뜨리는 개인.

그 날을 계기로, 《비익》은 이렇게 불리게 되었다.

──세계 최강의 검사, 라고.

◆◇◆◇◆

칼디아 시가전이 벌어진 다음 날.

스텔라 일행은 에스토니아 공항에 내리고 있었다. 에스토니아도 현재는 《국제 마도기사 연맹 가맹국》이었기에, 버밀리온 황국의 신분은 현재 《연맹 본부》를 통해 파악해 두고 있었으니 비상 사태라는 것을 이유로 세세한 수속은 모두 면제되었다. 입국은 신분 증명 하나로 깔끔히 완료되었고, 일행은 미리 연락하여 준비해 둔 렌터 카에 타고 있었다.

그 다음, 에델베르크를 향해 차를 쭉 달리고 있었다. 핸들을 쥐고 있는 건,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였다. 그녀는 에델베르크를 한 번 가 본적이 있고, 길을 알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델바이스가 살고 있는 에델베르크는, 평균 고도가 낮은 에스토니아 중에서도 이상하리만큼의 고도를 자랑하고, 국토 전역에서 그 존재를 육안으로 볼 수 있었기에, 그녀가 없다 하더라도 가는 길을 헤매진 않았을 것이다.

거의 3시간 정도 차를 몰았을까, 험악한 쇠격자와 가시철조망에 의해 막아 놓은 검문소에 도착했다.

이 앞은 에스토니아가 에델바이스와의 대치를 피하기 위해 포기한 영역. 즉, 에델바이스의 국가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에델바이스는 바로 눈앞에 있다. 검문소에 간이 출국 수속을 밟고, 일행은 목적지로 향했다.

그러던 도중에

"그건 그렇고, 설마 아바마마들을 도와준 게 너일 줄이야."

스텔라는 자신과 함께 뒷좌석에 앉아 있는 흑발의 소녀, ──이전에 아카츠키 학원 소속으로 잇키와 자신 앞에 나타나 싸운, 《부전흉수》라는 이명을 지닌 블레이저, 타타라 유이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황궁에서 네 얼굴을 봤을 땐 깜짝 놀랐다니까."

이 스텔라의 경악은, 조수석에 앉아 있던 잇키도 같이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자신들이 없었을 때, 황궁이 습격당했던 것. 그리고 그 습격을 누군가가 막아준 것. 거기까진 시리우스에게 들은 사실이지만, ....설마 그게 그녀였을 줄이야.

들은 바에 의하면, 황궁을 습격한 《악의 꽃》이라 자신을 소개한 블레이저는, 타타라의 조직을 배신한 암살자이고, 타타라는 그 정리를 하기 위해 그녀를 쫓아왔다고 했다.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 때 시리우스와 다른 사람들이 목숨을 건진 건, 클레이델란트에게 있어 아무 이득도 되지 않을 행동이다. 그 하나만을 보더라도, 그녀가 오르 골 진영의 스파이일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될 것이다.

적어도, 버밀리온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랬기에

"너랑은 여러 모로 인연이 있긴 하지만.. 이번엔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 고마워."

스텔라는 그렇게 감사 인사를 건넨 뒤, 친근한 미소를 띠며 타타라에게 우호의 증거로서 악수를 요청했다.

"사라나 린나도 나쁜 애들은 아니었지만, 너도 의외로 좋은 녀석이었네."

여기에 뒷좌석 창틀에 팔꿈치를 얹고, 스틱 형태의 초콜릿 과자를 담배처럼 물고 있던 타타라는, 자신도 스텔라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흥."

팡!

하고 뭔가가 터질 정도의 힘으로 스텔라의 손바닥을 세게 후려쳤다.

"아얏!? 뭐, 뭐 하는 거야!?"

갑작스러운 폭력에 분개해 하는 스텔라에게, 타타라는 짜증스러움을 감추지 않은 목소리로 답했다.

"친한 척 말 걸지 마. 난 그 멍청한 녀석들과는 다르게 네 녀석들과 친구 놀이나 해 줄 생각은 없어. 나는 프로 암살자로서 우릴 배신한 녀석을 정리하러 온 것 뿐이야. 네 녀석들의 부모를 도운 것도, 그 과정에서 어쩌다 그렇게 된 것 뿐이고. 멋대로 착각해서 꼬리 살랑거리지 말라고. 난 너처럼 머릿속이 꽃밭으로 가득 찬 여자가 가장 싫단 말이다."

"뭣... 그럼 왜 귀찮게 날 쫓아온 건데!?"

"그야 따라가는 게 당연하지. 세상 물정도 자기 분수도 모르는 멍청한 녀석이 《비익》한테 흠씬 두들겨 맞는다는 최고의 장면을 볼 수 있잖아? 뭐, 한껏 꼴사납게 뒹굴어 다니면서 날 재밌게 해 주라고. 가장 앞자리에서 과자나 씹어먹으면서 폭소해 줄 테니까! 킥킥킥!"

"으, 으윽...."

버밀리온의 명물 '포니 하우스'의 초콜릿이 잔뜩 담긴 봉지를 들어올리며 웃는 타타라. 말려 올라간 입술. 짓궂은 안광. 그것이 타타라의 본심이라는 건 누가 봐도 명백했다. 타타라는 정말로, 스텔라가 꼴사납게 꺾여 버리는 꼴을 비웃는 것만을 위해 이 여행에 동참한 것이다.

이전의 패배를 은근히 맘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에 스텔라는 얼굴을 분노로 빨갛게 물들이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잇키에게 투정을 늘어놓았다.

"이, 잇키! 역시 이 녀석 진짜 싫어! 사이좋게 못 지낼 것 같아!"

"아, 아하하... 뭐, 뭐... 일단 은인인 건 틀림없기도 하고, 거기다 '같이 싸울 동료'이기도 하니까, 잘 지내 보자."

같이 싸울 동료.

그 말의 의미는, 지금부터 함께 《비익》이 있는 곳으로 간다는 의미

──물론 그런 의미는 아니다.

놀랍게도, 타타라는 《악의 꽃》의 숨을 끊는 것이 자신의 일이니, 목숨을 구해준 보답으로 오르 골이 통솔하는 클레이델란트의 대표들과의 전쟁에 자신을 끼워 넣도록 아스트레아와 교섭을 벌였다.

그리고, 승인을 얻어냈다.

이 아스트레아의 판단에 의해, 버밀리온 측의 대표에 남은 한 자리는 그녀가 채워넣는 형태가 되었다. 즉, 자신들은 이전의 적이었던 그녀와 협력하여, 이 전쟁에 나서게 된 것이다.

'....정말, 기연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네.'

그렇게, 그런 생각을 잇키가 하고 있는 사이

"도착했어."

아스칼리드가 평소와 같은, 감정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한 다음, 차를 정차시켰다. 길 구석에 세워 놓은 차에서 내리자, 거기엔 작은 농촌의 입구가 있었다. 영토 포기를 선포할 때 공지한, 에스토니아의 피난 권고에 따르지 않고, 아직까지 남아 생활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작은 마을.

거기서 다시금 에델베르크를 올려다보고, 잇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멀리서 봐도 정말 엄청났는데, 가까이서 보니 압권이라 할 수 있는 박력이 느껴지네."

"그러게. 꼭대기가 구름에 가려서 보이질 않을 정도야."

에델베르크의 높이는 실로 9천 미터 이상.

그건, 구름을 손쉽게 뚫고 올라갈 정도의 고도.

거기다, 경사가 엄청나게 급격한지라, 뾰족한 가시처럼 솟아 있었다.

《검봉》.

그야말로 그 이름 그대로인, 하늘을 꿰뚫는 검과도 같은 산이었다.

"이 정상에, 《비익》 에델바이스가 있는 거지."

"정확하게는, 있을지도 모른다... 겠지만. 그녀는 세계 각지에서 목격 정보가 알려지고 있다고 하고, 내가 만난 것도 일본이었으니, 그렇게 한 곳에 눌러 앉아있는 사람은 아닐 거라 생각해. 이것만은 운에 맡겨야겠지."

이 잇키의 말에

"그렇다면, 넌 운이 좋아."

아스칼리드가 그리 말했다.

"어째서 알 수 있는 거야?"

"저걸 봐."

스텔라의 질문에, 아스칼리드는 마을을 가리켰다. 그 너머로 시선을 향하자, 거기엔 평온한 농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왕래하는 사람들. 그 모든 자들이 근골이 울퉁불퉁한 남자들이었고, 손에는 《디바이스》로 여겨지는 무기를 든 채, 이상하리만큼 날 선 안광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어쩐지, 상당히 험악한 꼴을 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많네."

"골통에 우동사리 들었냐? 이런 피 냄새 나는 녀석들이 마을 사람들일 리가 있겠냐고."

타타라의 지적에 잇키도 고개를 끄덕였다.

"블레이저. 거기다 모두 한 실력 하는 사람들이야."

"《비익》의 이름은 그 자체가 세계 최고의 명성이야. 그 목을 베어 한 이름 떨치려는 녀석은 쓸어담아 버릴 정도로 많지. 그리고 그런 녀석들은 당연히 《비익》의 동향에 눈을 빛내고 있고. 즉, 그런 녀석들이 여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는 건, 《비익》이 있다는 증거겠고."

"그런 거야."

타타라와 아스칼리드의 말에 스텔라는 납득을 나타냈고

"....아무래도 운의 여신이 따르고 있나 보네."

적어도 완전 헛걸음질은 아니었다는 것에 기쁨을 나타냈다. 그리고, 에델바이스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계속해서 이런 데에 눌러앉아 있을 이유 따위는 없다.

스텔라는 안도로 풀어진 표정을 두 손으로 뺨을 가볍게 때려 긴장시키고, 에델베르크를 올려다보며

"그럼 지금 당장 출발해 보자구!"

걸어 나아갔다.

그런 그녀에게

"아, 잠깐──"

아스칼리드가 무언가를 말하려 한, ──그야말로 그 때였다. 갑자기 귀를 때리는, 클랙션 소리가 네 사람의 뒤통수를 때렸다.

거기에 이어

"어이, 꼬맹이들! 길 한가운데에서 멍하니 서 있지 말라고!"

"가일 형님의 말씀대로다! 길 비켜 임마!!"

야만스런 노성.

뒤돌아보니, 거기엔 흉폭한 개조가 들어간 바이크나 버기에 타고, 얼굴엔 기괴한 문신에 모히칸 머리를 한 십 몇 명의 집단과, 거대한 참마도를 짊어진 곰과 같은 거구의 남자가 길을 꽉 채워 달리고 있었다.

이 남자들을 앞에 두고 스텔라는

"이렇게 길이 넓은데, 피해 가면 되잖아? 애초에 마을 한가운데에서 그런 시끄러운 탈것 타고 오지 말라구. 매너가 덜 된거 아니야?"

공갈에 길을 비켜주지 않고, 오히려 되려 노려보았다. 당연히 이 행동은 남자들의 감정을 거스르게 되었다.

"아아!? 뭐라고, 이 년아!?"

"시비 터냐, 임마!?"

스텔라 일행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마치 덤벼 보라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살기를 내뿜는 남자들. 겁먹으라는 듯 액셀을 밟으며 공회전을 가하고 있는 건, 차로 치어 버려도 상관없다는 위협에서 오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잠깐."

그런 남자들을, 버기에 타고 있던 곰과도 같은 남자가 말렸다. 여기에 남자들은 "형님!? 왜 말리는 거야!" 하고 항의했지만

"그저 꼬맹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꽤 먹음직하잖아?"

부하인 것처럼 보이는 남자들을 밀어내고, 그 곰은 스텔라 앞까지 다가온 뒤, 그녀의 얼굴과 가슴을 핥듯이 바라보았다. 거기다, 그 곰의 실례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고

"맘에 들었어. 너, 이 몸의 여자가 돼라."

거대한 손으로 스텔라의 어깨를 잡고, 그런 말을 해 왔다. 당연히, 스텔라는 거기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내며

"하아? 갑자기 뭔 말을 하는 거야, 너는?"

눈을 부릅뜨고 질문을 던졌다.

거기에 그 곰은 "큭큭.. 이 몸을 모르다니, 역시 이 깡촌에 살고 있을 법하구만." 하고 껄껄 웃은 다음,

"뭐, 특별히 가르쳐 주도록 하지. 이 몸의 이름은 《노도》 가일! 능력자 용병단 《머더 엔트리》의 리더이며, 이제부터 《비익》의 목을 따 세계 최강의 검호가 될 남자다! 그리고 그런 이 몸이 네 년을 가져 주겠다는 거지. 여자로서 그보다 더 명예로운 일은 없지 않겠냐!"

" " "휘이익~! 형님 멋지다!!" " "

자신에게 날아오는 성원에, 곰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거기서, 잇키 일행은 알게 되었다.

아마 이 남자는 스텔라가 누군지를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설마 요즘 시대에, A랭크 기사인 《홍련의 황녀》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대체 얼마나 깊은 산골 촌구석에 살고 있었던 것일까. 본인이 말했던 것이 완전히 부메랑이 되어 돌아가고 있는 현실에, 언제 둘의 사이에 껴들어야 할지 타이밍을 재고 있던 잇키도 그저 쓴웃음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모처럼 권유해 준 건 고맙지만, 사양하겠어. 난 내 마음속으로 결정해 둔 남자가 있거든. 거기에.... 난 '진짜'와 만난 적은 없지만, 당신 정도 되는 사람이 《비익》을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들어."

"착각하지 마. 아무도 네 년의 의사 따윈 안 물어 봤어."

"───!"

일은 거기서 수습되지 않았다.

곰과 같은 남자──가일의 말을 신호로, 30명 정도의 부하들이 주르르 걸어나와 잇키 일행을 둘러쌌다.

"어이, 잠깐! 잘 보니 다른 년들도 꽤 맛나 보이는데!?"

"형님! 다른 여자들은 우리들이 먹어도 괜찮겠슴까!?"

"그래, 맘대로 해라. 하지만 빨간 머리 년은 이 몸의 거니까 손대면 뒈질 줄 알아라."

" " "YEAAAAAAAAAAAAH!!!!!!" " "

환성을 내지르며 자신의 《디바이스》를 현현시키는 남자들.

이 상황에 아스칼리드는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말하는 게 늦었는데, 이곳은 진짜 말 그대로 무법지대니까, 조심하지 않으면 금방 이런 꼴이 벌어져버려."

"진짜 더럽게 늦네. 야, 버밀리온. 네 손님이잖아. 니가 책임져."

"그런 말 안 해도 이미 알고 있어. .....뭐, 준비운동 정도는 되겠지."

《연맹》에도, 《동맹》에도 속하지 않은 무법지대.

그건 즉, 자신들을 속박하는 법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스텔라는 사양 없이 자신의 디바이스를 현현시키려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해 두도록. 쓸데없이 수치를 뒤집어쓰는 꼴이 될 테니까."

스텔라가 《비룡의 죄검》을 불러내려 오른손을 앞으로 뻗은 찰나. 결코 크지 않은 목소리였음에도, 확실하게 귓속으로 들어오는 굵직한 목소리가 그 자리에 있던 모두의 귓불을 때렸다.

껴들어 온 방해자에, 가일은 씹어버릴 듯한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가일. 그녀는 네가 당해낼 정도의 여성이 아니야."

"러프....! 거기에, 키바....!"

시선을 향한 곳, 마을 안에서 나온 두 남자를 보고, 가일의 표정이 새파래졌다. 붉은 라이더 슈트를 입은 근육질의 서양인과, 거무스름한 일본풍 옷에 일본도를 허리춤에 걸은 동양인. 그 중 서양인 쪽이 스텔라와 가일 사이에 선 뒤, ──스텔라에게 인사를 건넸다.

"용맹한 이름, 익히 들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홍련의 황녀》 스텔라 전하."

◆◇◆◇◆

갑자기 잇키 일행의 눈앞에 나타난 두 중년의 남성. 그 둘 중 한 명의 풍모, 그리고──

'키바.......라니, 설마!'

가일이 말한 이름을, 잇키는 알고 있었다.

"키바라니, 다, 당신은 설마.. 그 키바 요시카즈 선생님이신가요!?"

"아는 사람이야?"

그리 묻는 스텔라에게, 잇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하지만 영상으로 본 적이 있어. 《검랑》 키바 요시카즈. 15년 전에 갑자기 A급 리그에서 모습을 감춘 일본의 《마도기사》야. 확실히 마지막으로 알려진 세계 랭킹은 12위이고, 당시엔 일본에서 최고 랭크였을 거야."

그 기록 자체는 수년 전, 《세계 시계》 신구지 쿠로노에 의해 바뀌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의 드높은 이름은 일본 기사계에 아직도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그를 동경하는 젊은 기사도 많았다.

잇키도 그 중 하나였다.

마술, 무술, 두 모든 분야에 있어 우수한 기사이고, 그의 시합 기록에서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 《최후의 사무라이》와 같은, 자신의 검의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존경시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화제에 머리를 뒤로 묶은 일본풍 옷의 동양인은

"....오랜 옛 이야기이다."

딱히 흥미도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긍정을 내비쳤다.

"역시...! 대체 지금까지 어디에 계셨던 겁니까?"

".........."

하지만 키바는 그 이상 잇키의 대화에 답하지 않았다. 그것을 네게 말할 필요는 없다는 듯, 철문과도 같은 묵직하고 차가운 침묵만으로 답했다.

한 편

"응? 설마 이 기척은.. 거기 하얀 머리칼의 여성 분은, 혹시 그 《흑기사》가 아니신가요?"

키바의 옆에 서 있던 러프라 불린 금발과 하얀 이가 눈부신 산뜻한 풍모의 서양인은, 스텔라의 뒤에 서 있던 아이리스 아스칼리드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에 아스칼리드는 "......맞아." 하고 짧은 긍정으로 답했다.

"역시! 이야~ 어딘가에서 느껴 봤던 기척이었다 했더니. 미프 회담 때에 만난 뒤로 못 봤으니, 2년만인가요."

"아스칼리드 양. 아는 분 같은데, 이쪽 분은?"

잇키의 질문에 아스칼리드는 답했다.

"《붉은 전갈》 램벌트 러프 씨. USSS의 대장이야."

"미국의 시크릿 서비스라고 하면, 《블레이저》 중에서도 손꼽는 정예들이잖아!"

"우리 나라에선 《블레이저》가 아닌 《초능력자》, 라고 부르고 있지만요. 아스칼리드 양은 미프 회담 때에 프랑스 대통령의 호위 일을 맡으셔서, 그 때 알게 되었답니다. 뭐, 맨얼굴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요, ....서 있는 자세 등을 보았을 때 여성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만, 설마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셨을 줄이야. 스텔라 전하도 그렇고, 하늘은 공평하다는 말이 맞는가 봅니다."

"호, 《홍련의 황녀》에 《흑기사》라고!?"

"지, 진짜냐... 우리들, 진짜 엄청난 사람들한테 시비를 걸어버렸어..."

이 일련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가일의 부하들은 자신들이 처한 지금 입장에 새파란 안색을 했다. 역시 얼굴은 모를지언정 《홍련의 황녀》의 이름은 알고 있을 터.

하지만, 부하들이 겁먹고 있는 가운데

"개소리 집어쳐! 뭐가 《홍련의 황녀》냐! 뭐가 《흑기사》냐고! 고작 계집년일 뿐이잖아!"

가일만이 표정에 변함없이, 실로 우습다는 듯한 표정으로

"《비익》도 마찬가지야. 《연맹》과 《연합》의 군대를 고작 혼자서 괴멸시켰다, 라고!?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잖아. 이 몸이라면 몰라도, 고작 힘 없는 계집년이 그런 게 가능할 것 같아? 이딴 하품 나는 개소리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다니, 정말 모두 멍청한 것 아니냐! 대충 돈 같은 거라도 써서 매스컴에 거짓 정보를 흘렸을 게 뻔하잖아. 뭐, 돈이 아니고 몸을 썼을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런 거짓 뿐인 최강 전설도 이제 끝이야. 이 몸이 곧바로 《비익》의 정체를 밝혀 주겠어. 계집년 하나 끝장내는 것으로 돈과 명예가 전부 손에 들어오다니, 이 세상도 참 살기 편하다니까! 자, 가자! 이 놈들아! 가하하핫!"

그런 야만스런 목소리로 내뱉듯 말하고, 가일은 러프를 어깨로 밀쳐내며 에델베르크를 향해 부하들을 거느리고 가 버렸다.

.....강한 척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에델바이스를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 한 차원을 벗어난 무지함에, 스텔라는 감탄조차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세상엔 참 여러 사람이 있는 것 같아."

"하하. 뭐, 어느 때에도 기죽지 않는다는 의미로 보자면 무지한 것도 어느 의미로 강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건 그렇고 전하 분들도 지금 이 시기에 여기에 와 계시다는 건, 그처럼 《비익》을 목적으로 두고 계신 겁니까?"

숨길 것도 아니었기에 스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적인 건 나뿐이야. 그런 당신들도?"

"물론이죠. 지금 여기에 있는 자들은 모두 그렇죠. 하지만 큰일이네요. 이거 상당히 강력한 라이벌이 나타났군요."

스텔라의 긍정에, 러프는 곤란해하는 표정을 보였다.

하지만, 그건 한 순간뿐이었다.

"하지만, 저도 휴일에 레저를 즐기기 위해 여기에 온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방패가 《세계 최강》의 검을 마강낼 수 있다는 걸 나타내기 위해 온 거에요. 태양은 하늘에 두 개가 뜰 수 없는 이상.... 누가 《비익》의 목을 친다 하더라도 원망하기 없기입니다?"

쓴웃음은 곧바로 사라지고, 러프의 푸른 눈동자엔 자신과 야심의 사나운 빛이 띠었다. 산뜻한 얼굴 뒤에 감춰진, 날카로운 송곳니. 여기에 스텔라는 전신의 솜털이 타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강하다.

확실한 실력과 경험.

둘을 모두 지닌 진정한 강자만이 두를 수 있는 분위기를, 러프는 가지고 있었다.

아니, 러프뿐만이 아니었다. 뒤에 있던 키바도, 마을에 있는 거의 모든 자들도.

그리고, ──이건 경고였다.

한 번 산에 들어서면, 지금처럼 친하게 말을 걸어 오는 자는 없다.

단 하나의 정점을 향하는 자들끼리 경쟁을 벌이게 될 것이라고, 러프는 언외의 경고를 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경고를 알고도 스텔라는

"미안하지만, 당신들과 경쟁을 할 생각은 없어. 내가 일이 있는 건 《비익》 단 한 사람 뿐이니까. 다른 사람 따위를 신경 쓸 여유는 없어."

그 한마디만을.

러프 일행 따윈 안중에도 없다고 답한 뒤

"《비룡의 날개》──!!"

등에 한 쌍의 불꽃이 둘러진 날개를 현현시켰다. 그 위용에 러프와 키바, 그리고 마을에 있던 다른 도전자들은 경악에 눈을 부릅떴다.

'우옷!? 뭐야, 저게!?'

'불꽃에, 저 붉은 머리.. 설마,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인가!?'

'《홍련의 황녀》도 《비익》의 목을 노리고 있는 건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스텔라는 잇키와 다른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잇키! 아스칼리드 양! 날 꼭 잡아! 하늘을 날아서 단숨에 올라갈 거니까!"

"아, 응!"

"알았어."

이 스텔라의 권유에 응하며, 잇키와 아스칼리드는 각자 그녀의 손을 잡았다. 동시에 스텔라는 불꽃의 날개를 가볍게 펄럭여, 3미터 정도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 뒤, 지상에 남은 타타라를 내려다보며

".....싫은 녀석은 안 데려 갈 거야. 그렇게 내 꼴사나운 모습이 보고 싶으면 알아서 올라오시지? 메~롱이다!"

방금 그 일에 대한 보답이라는 듯 짓궂은 말을 던졌다.

하지만 여기에

"필요 없어."

그리 말하고, 타타라는 그 자리에서 가볍게 점프했다. 그리고 도약이 정점에 달한 순간, 아무것도 없던 공중을 박차 다시금 점프.

그걸 반복하여, 스텔라의 곁까지 올라왔다.

"하늘을 날 수 있는 건 너뿐만이 아니라고."

그녀의 능력. 온갖 충격이나 힘을 반사시키는 노블 아츠 《완전반사》의 응용이었다. 아마 단속적으로 중력을 반사시켜 발을 딛는 매개로 쓰고 있을 것이다. 이 타타라의 기술에 스텔라는 혀를 찬 뒤, 시선을 하늘로 향하고

"그럼, 간다!"

날개를 한 층 더 강하게 퍼덕여, 대기를 때리며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그야말로, 하늘을 날아오르는 용처럼.

일직선으로. 세상의 정점을 향해.

....──하늘을 향해 똑바로 올라가는 불꽃의 빛. 스텔라가 남긴 그것을 올려다보며, 용을 바라보던 러프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드래곤》의 힘이 각성되었다고 들었지만, 설마 하늘까지 날 수 있을 줄이야. 정말 재주도 좋다니까."

소문으로만 듣던 《홍련의 황녀》의 실력. 그건 진짜배기라고, 그는 확신했다. 그저 불꽃 능력자에 그치지 않는, 다양한 능력. 규격 외급의 범용성.

자신이나 다른 사람 정도와는, 태어날 때부터 자질이 다른 것이다.

"이거, 우리들도 서두르지 않으면 선수를 당할지도 모르겠는데, 키바?"

하지만, 이 러프의 말에 키바는

".....20살이나 어린 계집애에게 짓궂은 말은 삼가도록. 러프."

나무라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아니, 키바는 그 진실을, 나무라고 있던 것이다.

불가능하다고.

가능하다고 생각지도 않는 것을 입에 담는 우인을.

"다가가지도 못 할 거야. ──나나 네가 '15년 전'에 그랬듯이 말야."

◆◇◆◇◆

지상을 날아오른 뒤로 5분 정도 지났을까.

눈이 뒤덮인 백은의 세계를, 100미터 정도 상승하는 데에 10초도 걸리지 않는 경이적인 속도로 날아오르던 스텔라는

'엄청나...'

머나먼 정점에서 느껴지는 검기에 전율하고 있었다.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듯 불어오는 냉기 따위는 우습게 느껴질, 방금 러프가 내뿜은 위압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압박감.

알고 있다.

이 압박감을, 알고 있다.

잇키와 사라 블러드릴리가 싸운 칠성검무제 3회전.

아류작이라고 해도, 그 편린을 곁에서 경험했던 적이 있다.

──있다.

틀림없이, 지금 이 위에, 이 끝에.

세계 최강의 검사───《비익》 에델바이스가.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음에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눈이 녹지도 않을 기온임에도, 배어나오는 땀이 멈추질 않았다.

오르 골이나 나짐과 대치했을 때 맛보았던, 운명을 초월한 《마인》 특유의 기척. 그 배후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죽음'에, 온몸이 공포에 젖어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가야 한다.

이 공포에 맞서 싸울 힘을 손에 넣기 위해, 이곳에 온 거니까.

"구름을 뚫고 올라갈 거야. 손 꼭 잡아!"

스텔라는 잇키와 아스칼리드에게 그리 고한 다음, 산에 걸려 있던 두꺼운 구름을 뚫고 지나갔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구름 속. 온몸을 때리는 우박. 그 모든 것들을 불꽃으로 날려버리며, 한결같이 위로, 또 위로.

이윽고 그 두꺼운 구름을 뚫자, 맑게 개인 창공으로 나왔다.

고도 8천 미터를 약간 넘어 있었다.

인간의 고도 적응 한계를 아득하게 넘은, 생존권의 바깥측. 거기까지 올라오자, 스텔라는 자신의 체중이 몇 배나 무거워진 것을 느꼈다. 수증기조차 제대로 올라오지 못하는 고도. 대기는 지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고, 아무리 날갯짓을 해도 장력을 얻을 수가 없었다. 그리 오랫동안 비행을 유지할 순 없을 것 같았다. 얼른 목적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런데, 그 때.

"스텔라! 저기!"

스텔라의 팔에 매달려 있던 잇키가 소리치며, 산 한 곳을 가리켰다. 거기에 있던 건, 절벽으로 이루어진 계곡. 아주 약간의 터가 있는 곳에, 작은 석조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본 순간, 바로 알게 되었다. 방금부터 느껴진 검기가, 저기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나이스, 잇키! 가까운 곳에 착지할게! 대비하고 있어!"

스텔라는 그리 말한 뒤, 건물 곁까지 어떻게든 몸을 이끌어, 눈이 깔린 곳에 착지했다.

"후우.. 도착...!"

"너무 많이 날은 거 아냐? 고산병 걸려도 난 모른다."

"그런 나약한 심폐를 가진 사람이 이 중에 있을 리가 없잖아."

약간 늦게 도착한 타타라의 투덜거림에 답한 뒤, 스텔라는 다시금 구름바다를 아득히 밑에 두고 있는 푸른 하늘의 바다를 둘러보았다.

"이런 데에 집을 짓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확실히 경치는 더할 나위 없이 멋졌지만, 주변 산맥이 거의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발을 딛을 곳 따윈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부는 바람은 막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폭풍을 맞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주제에 대기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희박하여 숨을 쉬는 것부터가 중노동이었다.

정말,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빼앗아 갈 거면 좀 더 좋은 위치가 있었을 텐데."

그 스텔라의 질문에, 잇키는 구름을 빠져나갈 때 어깨에 묻은 눈을 털어내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좋은 위치에 집을 만들어 놨다간 매일 방문하는 손님 때문에 쉴 틈도 없지 않을까? 방금 농촌에서 본 그걸 봐도 말이지."

"확실히 그렇네. 나도 싸우는 건 좋아하지만 그런 녀석들과 하루 종일 싸워대기만 하다면 진절머리가 날 거야. 너무 유명한 것도 좋지만은 않은 것 같네. 약간 불쌍해졌어."

"'그런 녀석들' 중 한 녀석인 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긴 하냐? 그래서, 어떡할 건데. 일단 불이라도 질러서 불러내 볼까?"

"그런 실례스런 짓은 안 할 거야. 내가 너니? ....일단 정면으로 다가가서, 정정당당하게 기사의 예를 갖춰 대전을 요구할 거야."

"거절당하면?"

"불 질러야지."

"별 다를 바가 없잖아!?"

"평화적 교섭에 응하지 않는 상대에 대한 무력행사는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뭔가 정치가 같은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는데."

"난 그거나 다름없는 높은 사람이라구?"

"그러고 보니 그렇네."

뭐, 스텔라에게 있어서도 그게 너무 억지스러운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가능하다면 시원하게 대전을 받아들여 줬으면 하겠지만...

어쨌든,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서야 이야기는 진행되지 않을 터.

"그럼, 가자구."

그리 말하고, 스텔라는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여기에 잇키도 따라서──

순식간에, 스텔라를 추월해 걸어갔다.

셋은, 스텔라의 뒤를 쫓아 따라갈 생각으로 천천히 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스텔라?"

"야. 만나러 가는 거 아니었어? 아니면 이제 와서 쫄았냐?"

"아, 아니야!"

스텔라는 부정하고, 셋을 쫓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것도 그럴 터였다.

왜냐면 스텔라는, 자신이 서 있던 위치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읏──, 이건....!?"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려고 해도, 그저 발치의 눈을 박차기만 할 뿐.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이마를 박으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감각.

"어, 어째서!?"

그 스텔라의 모습에, 잇키와 다른 사람들도 그녀의 몸에 알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챘다.

"혹시,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거야?"

"그, 그래.. 뭐, 뭔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 같아서.. 혹시, 결계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닌가.

그리 말하려 했던 스텔라의 말을

"아니야."

아스칼리드가 부정했다.

"거기에 벽 같은 건 없어. 네가 나아가지 않고 있을 뿐."

"내, 가..?"

"그 이상 나아가는 것의 의미를 이해하고, 혼이 겁먹고 있는 거야."

"읏──! 그럴까.. 보냐──!"

이 아스칼리드의 낮은 톤의 지적에, 스텔라는 곧바로 반론을 내세웠다. 위압에 마음이 짓눌리는 감각은, 이미 스텔라도 알고 있다. 그리고, 검의 길의 정점에 도전한다는 것에 대한 긴장도 확실히 있었다.

하지만, 이건 명백히 물리적인 힘이 간섭하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억지로 길을 열어서라도 나아갈 수밖에──'

그렇게, 스텔라가 다리에 힘을 넣으려 한, 그 때였다.

"그만두세요. 너무 그렇게 무리하다간, 정말로 목숨을 잃을 수가 있어요."

" " "───크윽!!!" " "

넷의 귓불에, 낮은 톤의, 하지만 늠름한, 방울이 울리는 듯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투명한 목소리. 우아하다고조차 할 수 있는 억양.

넷은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들린 방향, 자신들이 나아가려 한 건물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거기에, ──그녀가 있었다.

순백의 머리칼을 푸르디 푸른 하늘에 나부끼며, 약간 곤란해하는 표정으로, 열린 건물 문에 등을 기댄 채로, 검의 길, 그 아득한 정점이자 종막에 홀로 서 있는 자.

──《비익》 에델바이스가.

◆◇◆◇◆

"밖이 묘하게 시끄러워서 좀 살펴보러 나왔더니, 이거 상당히 의외로운 분들이 찾아오셨군요."

건물 안에서 나타난 사복 차림의 묘령의 여성.

그 무기도, 투기도 없는 허점투성이의 자세에, 스텔라는 경외심을 가졌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그건 마치 방금 내린 눈처럼 반짝이는 순백의 머리카락이나, 뚜렷하고 예쁜 이목구비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었다. 자신을 향하는 회색 두 눈은, 온화하면서도 그 안에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정도의 예리한 빛을 품고 있었고, 매끈하게 뻗은 사지는 조금의 경직도 없이 어디까지나 자연체 그대로여서, 온갖 각도와 순간적으로 찾아올 유사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그 서 있는 자세에 중심이 어디에 잡혀있는지를 모른다는 점이었다. 상대의 정보를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읽어내면서, 자신의 정보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그 자세. 검도 없는 채, 화장도 옅은, 그야말로 자신의 집에 있을 때 갑작스럽게 찾아 온 손님의 대응을 하기 위해 나왔을 뿐인 모습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잇키의 완전무결한 모습도 정말 대단하지만, 그녀의 자세는 그 수준을 뛰어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완성된 자연체는, 본 적이 없었다.

'틀림없어. 이 사람이, 진짜 에델바이스....!'

서 있는 자세 하나로 자신의 실력을 이해시키는 당당한 풍격에, 스텔라는 그것을 확신했다. 에델바이스의 자연체에, 자신도 살짝 중심을 낮추어, 공방의 두 국면에 대비했다.

그렇게, 그런 스텔라와, ...그 앞에 서 있던 아스칼리드를 보고, 에델바이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그렇고, 아이리스도 당신도 이런 데에 와 있을 때가 아닐 텐데요?"

"....! 지금 세상에 무슨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계신 건가요."

"이미 연맹이 발표한 일이니까요. 버밀리온과 클레이델란트에서 벌어진 사건, 그리고 두 나라가 1주일 후, 대표 5명을 내세워 국가의 존망을 건 전쟁을 벌일 것. 둘 다 대충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될 수 있어 더욱 좋다. 스텔라는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이 에델베르크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알고 계씬대로, 지금 제 고향은 궁지에 빠져 있어요. 버밀리온을 지키기 위해, 오르 골을 쓰러뜨리기 위해, 전 더 강해져야만 해요. 그렇기에, 전 여기에 온 거에요. 자신이 알고 있는 한 가장 강한 상대와 싸우기 위해서!"

그리고

"저와 대전해 주세요...!"

자신의 디바이스 《비룡의 죄검》을 현현. 그 끄트머리를 에델바이스에게 향한 채, 결투를 신청했다. 이 젊고 용감한 도전자의 요구에, 에델바이스는

"머나먼 길을 오신 참에 죄송할 따름입니다만, 거절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단칼같이 거절을 표했다.

"어째서인가요?"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니까요. 거기에──"

그렇게, 에델바이스는 어깨에 걸쳐 있던 머리칼을 치워내며

"전 검사이니까요. 검을 쥘 필요도 없는 상대와 싸울 기분은 들지 않아요."

냉정한 눈동자로, 스텔라를 내려다보았다.

"────.."

그 직후, 주변의 대기가 타들어갔고, 그 온도가 상승되었다. 열원은 물론,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이다.

검을 쥘 필요도 없다.

지금 확실히, 에델바이스는 그렇게 말했다.

그것은──

"...그게, 무슨 의미지?"

"에두르게 말할 생각은 없어요. 말 그대로의 의미랍니다. 실례이지만 당신 정도의 수준이라면 ──시선만으로도 죽일 수 있으니까요."

검을 쓸 필요도 없다.

시선 하나로도 죽일 수 있다.

가능할 리가 없다. 명백한 허풍.

그럼에도 당연히 가능하다는 듯, 에델바이스는 말하고 있다. 그 태도는, 모욕은, ──스텔라의 투쟁심에 불을 붙였다.

"그러면... 한 번 해 보자고....!"

애초에 거절당하면 실력 행사로 나갈 생각이었다.

주저는 없었다.

스텔라는 몸의 중심을 한껏 낮춘 뒤, 땅을 박차 앞으로 힘차게 도약했다. 한 번 불이 붙었으니, 멈출 수는 없다.

떨어지는 불똥은, 치워야만 할 테니까.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발짝. 고작 한 발짝.

에델바이스를 향해 도약한, ──그 찰나.

눈보라와도 같은 차갑고 강한 직감이 스텔라의 뇌에 경종을 울렸고, 그녀는 보았다.

자신의 사지와 목이 잘려 날아가는, 순간의 직후의 필연을.

"꺄아아아아앗!?!?!?"

이미 낙법 따위를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스텔라는 앞으로 도약하려 했던 몸을 한껏 뒤로 빼, 밸런스를 잃고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광경은, 곁에서 보고 있던 사람의 입장에선 눈에 파묻힌 발이 걸려 넘어지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스텔라!? 그건!?"

곧바로 달려온 잇키의 표정은 창백해져 있었다. 그 이유를, 스텔라도 바로 알게 되었다.

"하, 읏.. 아아...! 윽~~~~~!?"

찡한 고통과 함께 배어나오는 위화감에, 스텔라는 목에 손을 가져갔다. 그 직후, 손바닥을 물들이는, 끈적하고도 뜨뜻한 촉감.

피였다.

스텔라는 자신의 목에, 한 줄기 열상이 새겨져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베였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비익》은 검을 손에 들고 있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움직이기조차 하지 않았다. 검의 간격 치고는 너무도 먼 거리.

그러기는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짐작가는 바는 있었다.

비슷한 현상을, 이전에 잇키와 사라의 시합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래.. 진공의 단층을 집 주변에 설치해 놓아 결계를 만든 거구나?"

용의 대사로 상처를 치유하며, 스텔라는 추리했다.

──그러나

"틀렸어요. 전혀 아닙니다."

"!?"

"진공의 단층을 만들어 둔 것도, 어떠한 능력을 사용한 것도 아니에요. 애초에 제 능력은 전투에 적합한 게 아니니까요. ....제가 한 거라곤, 그저 살짝 강하게 살기를 내뿜은 정도에요."

"거, 거짓말! 그저 위압만으로, 상대의 육체에 손상을 주다니,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그리 부정하는 스텔라에게, 에델바이스는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확실히, 보통 사람이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전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블레이저》. 운명을 힘으로 바꾸어내는 자. 그 가운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한계를 넘어서, 이 별을 둘러싼 인과의 고리의 바깥에 서 있는 존재이지요."

"《마인》...."

"알고 계셨군요. 《마인》이란 자신이 태어날 때 가진 재능의 한계를 넘어, 별의 인과조차 왜곡시켜, 별의 역사에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자들이지요. 그건 즉, 인과에 강한 주체성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의지로, 세계의 운명을 바꿔버리는 힘을 가진 자들이란 말이지요."

"설마───"

스텔라의 뇌리에, 오싹한 직감이 내달렸다.

그것을, 에델바이스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래요. 지금 당신을 덮친 건, 그 특성의 발로입니다. 당신과 제 사이엔 현저한 실력차가 있어요. 상대하게 된다면 그 결과는 명백하며, 그건 당신 자신이 이해하고 있겠죠. 자신은 이길 수 없다고, 마음 어딘가에서 납득하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까지 결과가 당연한 운명이라면, 이미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어요. 제가 살짝이라도 당신을 해할 '뜻'을 강하게 먹는 것만으로도, 제가 지닌 운명의 인력이 당신을 집어삼켜, 인과는... 나아가던 방향으로 이어지게 되겠죠."

"윽...!?"

《마인》이라는 특이 존재의 인력.

'뜻'을 발하는 것만으로도 행동하는 것과 다름없는 인과로 연결짓는 강제력.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망언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에델바이스의 말.

하지만, ....인과를, 운명을 힘으로 만들어내는 블레이저이기에, 였을까. 스텔라는 이 에델바이스의 말을, 자신의 몸에 일어난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인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무엇 하나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목의 상처도 그렇지만, 방금 자신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것도 그렇다.

에델바이스의, 전투를 거절한다는 의지.

그것이 스텔라가 에델바이스에게 도전한다는 의지를 넘어서고 있었기에 벌어진 현상이다. 이곳에 온 사람 중 에델바이스와 상대한다는 결의를 지니고 찾아온, 스텔라만에게 작용한 건 그것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오늘 외에도 짐작가는 바는 스텔라에게 따로 있었다.

사이쿄 네네다.

《사막의 사신》에게 돌격을 감행한 자신을 그 자리에 얽매어 버린 네네의 말. 보이지 않는 압력. 그것도 또한, 그녀의 '뜻'이 자신의 인과를 집어삼킨 결과일 것이다.

즉──

"그리고 이 인과에 대한 주체성은, 저만이 아닌 《마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특성이에요. 《괴뢰왕》이나 《사막의 사신》들과 대치한 적이 있다면, 느꼈을 테죠. 그들의 배후에 있는, 자신의 죽음이라는 운명을. 그 운명을 느끼고 있는 한, 어찌 발버둥친다 하더라도 승산은 없어요. 《마인》의 인력에 휘둘리며, 운명은 당신 자신도 상상하고 있을 그대로의 결말에 이르게 되겠죠. 이걸 넘어서기 위해선 자신도 인과를 초월한 존재, ──《마인》이 되는 방법밖엔 없어요."

지금껏 지난 시간은 고작해야 5분.

"아시겠습니까? 지금의 당신은 아직, 우리들의 영역에서 싸울 자격이 없어요."

"읏.. 하지만, 그렇기에.. 전 그 운명을 넘어서기 위해 당신과──"

"그건 알고 있어요. 방법론으로 치자면 틀린 말은 아니에요. ....하지만, 거기에 제가 어울려 드릴 이유는 없죠."

"웃...."

"《괴뢰왕》과 싸우건, 지금 저와 싸우건, 당신이 하려는 행동은 자살행위. 죽을 것이란 걸 자신도 알고 있음에도, 나락을 향해 몸을 내던지는 것과 같은 행위에요. 죄송하지만, ──자살을 도우는 건 사양하고 싶군요."

"윽......."

"...어리석은 생각은 그만 두시고, 돌아가도록 하세요. 당신이 나아가는 곳에, '길' 따위는 없으니까요. 지금은 그저, 모두의 협력을 받아, 자신이 살아남는 것에 전력을 다하시기를. 그것만이, ──당신이 가능한 최선이에요."

".............."

스텔라의 무력함. 이 싸움에 따라갈 수 없다는 현실. 그것을 용서 없이 지적하는, 에델바이스의 말.

그 말을 듣고, 반론할 수도 없이 상심할 수밖에 없던 스텔라에게, 잇키는 말했다.

"스텔라. 역시 무리야. 상대가 너무 안 좋아. ...설마 위압만으로도 상대에게 부상을 줄 수 있다니. 이전에 아카츠키 학원에서 만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검기야. ...역시 그 때는 최후의 일격조차 진심이 아니었던 거군요. 곁에서 보고 있을 뿐이었음에도, 이전보다 훨씬 높은 벽이 느껴지네요."

하지만 이 잇키의 말에 에델바이스는 고개를 가로저어 부정을 나타냈다.

"아니요. 그 때엔 제 전력을 다했었어요. ....그럼에도 이전보다 높은 벽이 느껴지신다면, 그건 당신들이 성장하고 있는 속도보다 월등하게 제가 강해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읏.....!"

누구 하나 비견할 상대가 없는, 검의 정점.

한 길의 끝에 도달했음에도,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잇키는 경의조차 느꼈다.

그건 스텔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스텔라는 그 이외에도 또 하나, 《비익》을 알게 되었다.

'너무도 강한 사람. 그리고, 너무도 상냥한 사람.'

스텔라는 살짝, 치유가 끝난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마인》이 지닌 인과에 대한 인력과, 지배력. 그 존재를 알게 된 지금이기에, 알 수 있었다.

──그녀라면, '뜻'을 가지는 것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목을 실제로 쳐낼 수 있는 게 가능했을 것이라고. 왜냐면, 그 순간에, 스텔라는 자신이 그렇게 될 것이란 걸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은 떨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녀에겐, 스텔라를 죽일 생각 따윈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목을 노리고 찾아온 무례하기 짝이 없는 손님. 그 무례한 자의 몸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충고해 주고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생각을 고치라고.

잇키가 심취해 있는 사람이었기에, 단순한 악인은 아닐 것이라 생각은 했었지만, 정말로 상냥하고, 그리고, 진정한 의미로 강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스텔라도 알고 있었다.

지금의 자신이, 무모하기 짝이 없다는 것은.

《괴뢰왕》에게조차 이길 수 없던 자신이, 어떻게 세계 최강의 검사를 이길 수 있을 것인가. 한 번 맞서 싸우게 되면, 이 산을 살아나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하지만..'

"싫어.....!"

거절의 말과 함께, 스텔라는 몸을 일으켜 일어났다. 그리고, 똑바로, 강한 각오의 빛을 담은 비색의 눈동자로 에델바이스를 쏘아보며

"《마인》의 특성이 진짜라는 것. 그런 상대와 지금의 자신이 싸우게 된다면 승산 따위는 없을 거란 것. 당신이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이라는 건 알겠어. 그리고 그걸, 당신이 진정한 선의로 충고해주고 있는 것도. 거기엔, 아주 감사하고 있어. 확실히 당신이 말한대로, 네네 선생님이나 아스칼리드 씨에게 매달려 자신의 몸을 지키는 데에 전념한다면, 이 궁지에서 목숨을 보전한 채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거기까지 알게 되셨다면──"

"하지만, 그 다음은?"

"...다음이요?"

"그 다음의 위기에 네네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버밀리온에 또 있을 거란 보장은 없어. 협력해 줄 거란 것도 알 수 없고. 그렇기는커녕 다음에 버밀리온을 침공해 올 적은, 당신일 수도 있어."

"!!"

"난 이번 사건으로, 83명이나 떠나보내고 나서, 싫을 정도로 알게 됐다구! 나쁜 일은 언제나 문답무용으로,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언제, 누가, 버밀리온을 공격해 올지 예견할 수는 없어...! 그렇다면, 난 어떡해야 하는 건데? 뭘 해야 하는 거야?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숨어 지낼까? 아니야! 또 타이밍 좋게 구세주가 나타날 것을 신에게 기도할까!? ──아니라구! 버밀리온 황국 제 2황녀, 버밀리온의 검이 되기 위해 살아온 내가──

지금 이 순간에, 누구보다도 더 강해질 수밖에 없잖아───!!!!!!!!"

"윽──! 그만 해, 스텔라!!"

스텔라의 표정, 목소리에 그녀의 뜻을 알아채고, 잇키가 제지의 목소리를 외쳤다.

하지만, 스텔라는 거기에 응하지 않았다.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다시금 검을 손에 들고 에델바이스를 향해 걸어 나아갔다.

그 순간, 피보라가 일었다.

인과의 칼날이 그녀의 몸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둘의 거리가 좁혀짐에 따라, 《비익》이 지닌 인력은 흔들리는 일 없는 종국으로 인과를 결정짓고 있었다.

그래도, 스텔라는 움츠리지 않고 전진을 계속했다. 뺨이 찢기고, 선형이 휘날려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똑바로. 《비익》 에델바이스를 노려보며.

'이대로 가다간 위험해!'

물러서지 않을 결의를 지니고 에델바이스를 향해 걸어가는 스텔라. 이루어지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음에도, 확신도 없는 채로, 그대로 앞으로.

완전히 냉정함을 잃고 있다.

칼디아에서의 싸움 뒤로 느꼈던 나쁜 예감. 그게 현실화되려 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자멸하게 된다. 잇키는 등골이 얼어붙는 전율에 등을 떠밀려 앞으로 달려갔다.

동시에, 아스칼리드도 움직였다.

스텔라를 말리기 위해.

하지만──

"나한텐 버밀리온 황족으로서의 책무가 있어! 버밀리온에 살아가고 있는 국민을 위해 사력을 다할 있어!! 그 결과가 설령 내 목숨을 잃는 것이라 하더라도, 난 자신의 책임에서 단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을 거야──!!!!"

스텔라는 그런 둘을 괘념치 않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비익》을 향해 다가갔다.

버밀리온의 검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 힘을 얻기 위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면, 여기서 죽어도 좋다. 황족으로서의 책임을 맡지 못한다면, 그 목숨에 의미는 없으리라.

그런 결사의 각오로.

하지만 이건 너무나도 무모한 행위. 그야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인과의 칼날은 당연히 용서 없이 스텔라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들었고──

".....알겠습니다. 제가 졌어요."

질렸다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에델바이스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살기가 끊어지고, 칼날은 안개가 되어 흩어졌다.

◆◇◆◇◆

온몸이 난도질당하면서까지, 자신의 죽음의 운명을 향해 똑바로 걸어나아간 스텔라. 그 모습에, 결사의 표정에, ....에델바이스는 떠올렸다.

이전에, 상대하게 된다면 죽게 될 것이란 걸 알고 있었음에도, 공포에 떨며 도망치려 하는 몸과 마음을 억누르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을 위해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던 젊은 사무라이.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의 모습을.

자신 이외의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려 하는 그 모습. 그 긍지 높은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그래선, 부족해요.'

왜냐면 그 발상 자체가, 이미 승리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니까. 운명의 고리의 바깥, 《마인》의 영역에선 '자기'의 강함을 필요로 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선, 운명이라는 인력을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목숨을 잃는다 하더라도.

그 정도의 각오로는, 고작 동반승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겨내고, 재능의 한계를 딛고 외부로 나아가기 위해선, 더욱 강한 각오가 필요하다. 수많은 불리함과 부조리함에도 결코 꺾이지 않고, 나락의 어둠보다도 어두운 절망 속에서도 조금도 흐림 없이 빛나는, '죽어도 좋다'라는 안이한 포기를 허락하지 않는, 그런 각오가.

하지만, 지금의 스텔라에겐 그런 것이 없다.

아니, 그런 게 있다 하더라도, 자신을 덮치는 위협에 마음이 초조해져서 잊고 있는 것이다. 내버려두면, 그녀는 초조함에 내달려 어설픈 각오로 인해 무모한 행위에 나서 버리게 될 것이다.

지금 막, 자신의 위압에 무방비하게 걸어 온 그 모습처럼.

자신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악의가 있는 자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상태의 스텔라를 내버려두는 건

'너무나도 꿈자리가 뒤숭숭할 것 같군요.'

그렇기에, 에델바이스는 결단했다.

"당신의 도전을 받아들이겠어요. 스텔라."

"저, 정말로!?"

되묻는 스텔라에게, 에델바이스는 끄덕였다.

"네. 하지만, 전 당신의 선생님도, 친구도 아니에요. 원래 당신에게 어울려 줄 이유 따위는 없어요. 그러니, 대가를 지불하셔야겠어요."

"대가...? 그게 뭔데? 난 뭘 하면 되는 거야...?"

"아래의 상태는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그 험악한 녀석들 말야?"

"네. 제 귀가를 알아채고 《비익》을 쓰러뜨려 명성을 떨치려는 자들이 지금, 에델베르크에 모여 있어요. 모처럼 제 집에서 느긋하게 쉬고 싶어 돌아왔는데, 이래서야 휴식이 불가능할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 실로 귀찮아요. 그러니, 대표전이 벌어질 전날인 6일 중 5일간, 엿새 째 아침까지 그들을 제 집에 들여보내지 않게 해 주어, 제게 휴일을 선물해 주세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마지막 하루를 당신을 위해 쓰도록 하겠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아래에 있는 녀석들을 모두 쓰러뜨리면 된다는 거지?"

"네. 하지만, 하나 조건이 있어요."

"조건?"

그게 뭔가, 하고 묻는 스텔라에게

"'싸움은 어디까지나 당신 혼자서. 다른 동료의 손을 빌리지 말 것'. 그리고, 다른 여러분들도 그녀가 어떠한 궁지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이번 6일간은 '결코 그녀에게 도움을 주지 말 것'. ──여기 있는 분들께 이 두 가지의 맹세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에델바이스는 그 조건의 상세 내용을 말한 뒤, 오른손을 뻗고

"제 디바이스, ──《테스타먼트》에."

따스한 백광과 함께, 오른손에 자신의 디바이스 중 한 쪽을 현현시켰다. 스텔라의 눈앞의 지면에, 그 디바이스를 박아넣었다.

검을 손에 들고, 선서하라고.

여기에, 스텔라는 망설임 없이 응했고

"알았어. 바라던 바───"

"잠깐."

하지만, 그에 응하려 했던 스텔라를, 《흑기사》 아스칼리드가 제지했다.

"조심해. 이건 그저 구두 약속이 아니야. 그녀의 능력은 이미 발동되었어. 잘 생각하고 발언하도록 해. 정말 큰일이 날 수가 있으니."

"아스칼리드 씨. 당신, 《비익》의 능력을 알고 있는 거야?"

아스칼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익》 에델바이스는 '계약'을 다루는 인과 간섭계 블레이저. 그녀의 디바이스 《테스타먼트》 앞에서 맹세를 한 사람은, 거기에 반한 행동을 할 수 없도록 심장에 쐐기가 박히게 돼. 만약 맹세를 어긴다면, 그 쐐기가 심장을 갈가리 찢어 목숨을 잃게 되어 버려. 그것이 《비익》 에델바이스가 지닌, 단 하나의 노블 아츠, ──《무결한 선서》."

그리고 이 아스칼리드의 말을, 에델바이스 본인이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아이리스가 말한 대로, 제 노블 아츠는 대상에게 계약을 지키게 만드는 절대 준수의 힘이에요. 대상이 자주적으로 선서를 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렇기에 그 구속력은 다른 것에 비할 바가 없을 정도이죠."

그야말로, 직접 심장을 찢어버릴 수가 있기 때문에.

"방금 말씀드린 조건을 당신들 모두가 선서한다면, 저도 이 검에 스텔라와의 대전을 맹세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어떡하실 건가요?"

선서하게 되면, 어떤 궁지에 빠진다 하더라도, 그렇다. 그야말로 《괴뢰왕》이 변덕을 일으켜, 이곳으로 스텔라를 쫓아온다 할지라도,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게 되어버릴 위험한 계약.

하지만, 스텔라의 마음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지면에 박은 백금의 검 《테스타먼트》의 칼자루를 쥐고

"....날 걱정해 주고 있는 모두에게, 지금의 날 믿어달라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어. 그럴 자격은, 내게는 없으니까. 그러니.... 부탁이야. 나에게, 나를 믿게 해 줘."

자신의 몸을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그리 부탁했다.

자신의 가능성에, 모든 걸 걸어달라고.

여기에 가장 먼저 응한 건, ──쿠로가네 잇키였다.

"믿을게. 스텔라라면 반드시,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입을 굳게 다물고, 무언가를 결의한, 강한 각오가 느껴지는 표정으로, 잇키는 스텔라의 손 위에 손을 얹으며 《테스타먼트》를 쥐었다.

이어서, ──《흑기사》 아스칼리드가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아스칼리드 씨.."

"난 이제, 동생 때문에 상처를 입는 사람을 보기 싫어. 그걸 위해서라도, 네가 강해진다면... 도움이 될 거야. 그러니, 열심히 해."

"고마워. 둘 다...."

자신의 바람을 들어 준 둘에게 진심이 담긴 감사로 답하고, 스텔라는 다시금 에델바이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면 되겠지?"

자신의 동료는 모두 동의해 주었으니, 불만은 없겠지, 라고.

하지만 그런 스텔라에게

"아뇨. 한 명이 부족하군요."

에델바이스는 부정으로 답했다.

그리고, 스텔라 일행의 뒤쪽, 지금까지의 모든 소동에 방관하고 있던 타타라 유이를 바라보았다.

"하? 야, 야. 남은 한 명이라니, 혹시 나 말하는 거야?"

여기에 타타라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자신이, 하필이면 저 스텔라의 동료라고 여겨질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스텔라도

"에, 에델바이스 씨. 저건 우리 동료가 아니고 그냥 질 나쁜 구경꾼이라 해야 할까, 그냥 배경을 메우기 위한 장식물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이 주변에 버려진 빈 캔 같은 거니까 신경쓰지 마."

하고 에델바이스에게 타타라와 자신의 관계를 설명했다.

하지만, 에델바이스는 납득하지 않았다.

"아니요. 그녀에게도 맹세를 받지 않으면, 계약 성립을 인정할 수 없어요."

완고하게, 타타라도 계약에 참가하지 않으면 조건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고 단언.

이렇게 됐으니, 타타라를 설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스텔라는

"저, 저기. 타타라.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애라고 생각한다면, 여기선 일단 이야기라도 맞춰 주면 안 될까?"

"헛소리 하지 마! 왜 내가 이런 소꿉놀이에 장단을 맞춰 줘야 하는 건데! 애초에 내가 네 녀석을 도울 리가 없잖아. 차라리 엉망으로 당한 꼴에 마무리를 가하는 입장이라면 모를까."

"제발 어떻게 좀...! 네가 동의해 주지 않으면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잖아!"

한 번 검에서 손을 떼고, 합장을 하며 타타라에게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그 무턱대고 나온 태도가... 좋지 않은 결과를 불렀다.

"흐음~ 뭐, 그렇네. 맞는 말이야. 모두 내 뜻 하나에 결정된다는 말이구만."

타타라는 짓궂은 미소를 띠며, 스텔라의 바로 옆까지 걸어왔다.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그냥 헛걸음질이 되어 버리겠구만~ 그거 곤란한데~"

"그, 그래. 그러니까 부탁하는 거잖아."

"성의가 부족한데."

"너, 넙죽 절이라도 할까?"

"그런 걸론 부족하다고~ 킥킥킥."

그리 웃고, 타타라는 스텔라의 눈앞에서 엄지를 들고 바닥을 가리키며

"일단 바닥을 기어다니며 돼지 흉내라도 내 봐. 그게 재밌으면 이야기 맞춰 줄 테니까."

"────"

그 순간, 탄력을 지닌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끊어지는 듯한 소리를,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들었다.

".....저기, 에델바이스 씨. 간단히 말하자면 '6일간 이 녀석이 날 절대로 돕지 않을 보장' 만 있으면 되는 거지?"

"네, 그래요."

"그럼 지금 여기서 이 녀석의 숨통을 끊어 버리면 그걸로 오케이란 거지?"

"하아!? 갑자기 뭔 개소리야, 이 녀───"

"네. 그래도 상관없어요."

"아니, 좀 둘러 말하라고! ──으악! 깜짝이야!?"

일섬.

일절의 용서도 주저도 없이, 목을 쳐버릴 궤도로 휘둘러진 검.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한 건, 틀림없이 그녀가 암살자로서 높은 실력을 가졌다는 증거가 될 터.

따라서, ──스텔라도 사양 없이

"《용신빙의》"

"아니아니! 잠깐잠깐! 뭘 그리 진지하게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야기 맞춰 주면 되잖아! 맞춰 줄 테니까 그 무서운 짓 좀 그만 해애애애애애!!!"

그 때의 타타라의 비명은, 산 아래에 있는 농촌 마을까지 들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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