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77)

제 12장

극한의 시련

“으으.. 역시 고도 6천미터나 되니 여름이라도 얼어 죽을 것 같네.”

줄줄이, 긴 줄을 만들고 에델베르크의 산길을 나아가는 수십 명 규모의 단체.

그 선두에 서 있던 남자가, 옆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조금만 더 참아. 제 5캠프지점이 멀지 않았으니까."

"캠프 설치 다 끝나면 밥이나 먹자고."

"사실 술도 가져왔지. 에델베르크는 6천미터 위부터 갑자기 경사가 심해지거든. 여기서 다 마셔버리자고."

"좋아! 그럼 오늘은 《비익》 타도 전의 파티를 열자고!"

지금 말한 것처럼, 이 집단은 국제 범죄자 《비익》 에델바이스의 목에 걸린 현상금을 목적으로 한, 한 실력 하는 블레이저 집단이다. 에델베르크에 온 건 순수한 도전자만이 아니다. 이렇게, 파티를 짜서 수로 밀어붙일 생각을 하는 자들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정말 이길 수 있을까?"

"문제 없어. 이쪽은 선봉인 우리들만 해도 50명 가까이 돼. 나중에 올 녀석들을 합치면 백 명이나 넘는다고. 거기다 모두가 마술을 쓸 수 있잖아."

"그래그래. 거기다 소문은 떠돌다 보면 여기저기 살이 붙기 마련이야. ...군대를 혼자서 괴멸시키다니, 아무리 그래도 뻥이 너무 심하잖아. 뭐, 그런 어이없는 헛소문을 만들어낼 정도로 강하다는 걸 테니, 방심할 생각은 없지만 말야. 그리고 주변을 봐. 《은여우》에 《맹우 살해자》, 《열화의 섬창》, 그레인백에 《아마존의 용자》 반죠. 《투혼 사형제》와 그 유명한 《살인 증후군》 야마다까지 와 있어. 이전에 《비익》을 포박하기 위해 군대가 동원되었다고도 했었지만, 그 모두가 블레이저는 아니었지. 이렇게나 많은 블레이저가 모인 건, 우리들이 처음이야. 일단 우리들 50명이 부딪혀 소모를 시킨 다음, 뒤이어 올 50명과 합류하여 순식간에 마무리를 짓는 거지. 작전은 완벽해. 이쪽이 방심만 하지 않으면, 수의 차이로 압살이 가능하다고."

"....그것도 그렇군."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누구나가 세상에 실력으로 이름을 알린 맹자들이다. 아무리 낮아도 연맹 기준으로 C랭크에 상당하는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 멤버들에, 불안을 흘리던 남자도 마음을 다잡고, 표정에 패기를 되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 때였다.

"응? 잠깐 기다려 봐."

선두를 나아가던 남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따르던 일행들을 손으로 제지했다.

"제 5캠프에 누군가가 있어."

"우리들보다 먼저 출발했던 녀석 아냐?"

그리 말하고 선두 집단이 그 쪽을 응시했다. 완만한 오르막길 너머. 활짝 열린 평지가 되어 있는 직경 20미터 정도의 공간.

제 5캠프 지점.

확실히, 거기에 붉은 머리칼을 지닌 여성이 혼자서, 이쪽을 향해 우뚝 서 있었다.

"....여자, 거기에 애잖아? 상당히 어린데?"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녀석 중에 저런 꼬맹이가 있었나?"

"그럼 그냥 등산객인가?"

"그런 녀석이 여기에 있겠냐? 아마 저기 아래에 있던 마을사람이겠지. 모처럼 이렇게 만났으니까, 어이! 거기!!"

그렇게, 한 남자가 손을 흔들며 다가가려 했다.

그 때

"큿! 아니! 잠깐만, 마커스!"

선두를 걸어가던 남자가, 손을 흔드는 남자의 팔을 잡고 제지시키자

"날 섬겨라. 《비룡의 죄검》!"

그 직후, 소녀가 그 손에 현현시킨 황금의 검에서 뿜어져나오는 불꽃이, 집단 앞에 불꽃의 벽을 만들어냈다. 그들이 나아갈 길을 막으려는 듯이.

"우왓!? 디바이스.....! 블레이저인가!"

"역시! 저 얼굴, 어디선가 봤나 했더니....! 저 녀석, 《홍련의 황녀》야!"

"그거, 버밀리온에 있는 그!?"

"그래! 저 빨간 머리.. 틀림없어! 나도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고!"

소녀, 스텔라의 정체를 알아챈 남자들에게, 스텔라는 소리를 쳤다.

"갑자기 이런 거친 인사를 한 점 사과할게!"

"진짜 말이다! 대체 뭐하자는 거야!"

"당신,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이지!? 한 나라의 공주님이 이런 데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여기에 올 목적 따위, 하나밖에 없잖아? 당신들과 같아. 《비익》의 목을 노리고 있어. 그리고 그녀와의 대전 조건으로 당신들을 전부 쓰러뜨리고 오라는 말을 들었지."

"뭐라고....!"

"당신들에겐 아무 원한이 없지만, 난 지금 《비익》과 어떻게 해서든 싸워야만 해....! 미안하지만 여기서 쓰러져 줘야겠어! 거기다, 날 이길 수 없으면 《비익》에겐 절대 이길 수 없어! 그 정도라면 여기서 꺾이는 게 당신들에게도 행운이겠지! ──《비룡의 턱》!!"

선전고포를 한 뒤, 상대 측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스텔라는 공격을 가해 왔다. 《비룡의 죄검》에서 뿜어져 나온 건, 용 모양의 불꽃의 포격. 거대한 턱을 벌린 채, 화염의 용은 남자들을 향해 엄습했다.

여기에, 남자들은 낯빛을 바꾸며

"진짜 공격해 왔어!"

"흥! 도전자끼리의 서바이벌은 이쪽도 상정해 두고 있었다고! 반격하자!"

"괘, 괜찮은 거야!? 한 나라의 공주님을 상대로..."

"먼저 공격해 온 건 저쪽이고, 여긴 치외법권이야! 문제없어! 해치워버려!"

갑작스런 적대에도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자신들의 디바이스를 현현시켰다. 그걸 뽑아들고, 스텔라가 쏜 《비룡의 턱》을 화염의 벽과 함께 무삼시키고, 발이 빠른 《은여우》를 필두로 한 특공부대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고, 스텔라를 향해 덤벼들었다.

깔끔한 연계. 냉정한 대처. 남자들의 고수준의 실력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뭣!?"

"나, 날았어!?"

그들의 칼날이 스텔라의 피부를 가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텔라가 불꽃의 날개를 현현시켜, 그걸로 대기를 밀어내어 공중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늘로 날아오른 스텔라는, 천공에서 남자들을 내려다보며, 《비룡의 죄검》을 높게 들어올렸다.

동시에, 그녀의 배후에 별이 생겨났다.

무수한, 불꽃의 구체 무리.

그리고

"모두 태워버려라. 《초토유격》!"

들어올린 《비룡의 죄검》이 마치 지휘도처럼 내리쳐졌고, 화염구로부터 고온의 열선이 지상을 향해 무수하게 쏟아졌다.

" " "우와아아아아아아앗!!" " "

사정거리가 닿지 않는 공중에서 우박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빛의 열선. 그것이 만들어내는 폭풍에 휘말려, 남자들의 비명이 일었다. 이 폭발로, 스텔라는 적의 수를 반 가까이 줄여버렸다.

하지만, 얌전히 당하지 않은 자들도 있었다.

"이런 젠장! 소문 그대로 어이없을 정도의 힘이야!"

"날 수 있는 녀석끼리 한 번에 덤벼! 한 명씩 덤벼 봤자 못 당해 낼 거야!"

스텔라처럼,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비상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열선의 사이를 뚫고 날아다니며, 스텔라를 향해 돌격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텔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 얼마든지 덤벼!!"

그 돌격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녀는 상대의 사정거리가 닿지 않는 먼 간격에서밖에 싸울 수 없는 겁쟁이 따위가 아니다. 접근전은 오히려 그녀가 바라던 바. 스텔라는 두 날개를 기교 있게 움직여 적의 칼날을 피했다. 그 사이에 반격으로 일섬을 날려, 방어까지 통째로 날려버리며 적을 아래로 추락시켰다.

──할 수 있어.

상대도 결코 약하지 않았지만, ....《칠성검무제》를 겪고 진화한 자신의 적은 아니다.

'이 상태로만 간다면 앞으로 5일.. 해낼 수 있어...!'

그 의기양양한 스텔라를, 높은 곳에서 지켜보는 자가 둘 있었다. 절벽 위에서 제 5캠프 지점을 내려다보던 건, 푸른색과 붉은 색. 각자 색이 다른 눈을 지닌 여성, 아이리스 아스칼리드와, 메이드복을 입고 초콜릿 과자를 먹고 있던 타타라 유이였다.

타타라는 네모 모양의 초콜릿을 이빨로 까득 부숴먹으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오~오~ 이거 참 첫날부터 멍청하게도 화려하게 날뛰고 있구만, 저 고릴라 여자. 오늘 밤까지 저 위세가 그대로 갈지 기대되는걸? 킥킥킥...!"

"......"

하지만, 이 자리에 있던 건 그녀들 둘뿐이었다. 아마 스텔라를 가장 걱정하고 있을, 잇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그는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라는 이유로 에델바이스의 자택에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

타이머 소리가 나길 기다리며, 에델바이스는 벽돌로 만든 구식 화덕의 철문을 열었다. 그리고 키친 장갑을 낀 손으로 안에 있는 '그것'을 꺼냈다.

그 순간, 달콤한 과실이 구워진 향기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음~ 잘 구워졌네요."

밝은 갈색으로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향기를 내고 있던 그것은, 애플파이였다. 그녀는 잘 구워진 파이를 접시에 담고, 잇키가 기다리고 있는 거실의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오래 기다리셨죠. 자, 드셔 보세요. 케이크에 쿠키, 갓 구운 애플파이에요. 더 있으니 사양 말고 많이 드세요."

"가, 감사합니다."

감사의 인사를 건넨 잇키의 표정은 약간 곤혹해하고 있었다.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따라와 봤는데, 설마 이런 환영을 받게 될 줄이야.

그 세계 최강의 검사가, 앞치마를 두르고 있다.

뭐지, 이건?

너무나도 현실감이 없어서, 꿈이라도 꾸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라? 혹시 단 건 싫어하시나요?"

그런 잇키의 곤혹해하는 모습을 알아챈 건지, 에델바이스가 눈치를 보는 듯한 시선을 보내 왔다. 여기에 잇키는 서둘러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으로 답했다.

"그, 그렇지는 않아요! 전부 다 맛있어 보여서 뭐부터 먹어야 할지 망설여져서요."

"후후. 그거 다행이네요. 망설이고 계시다면 여기 있는 애플파이부터 드셔보세요. 갓 구운 애플파이보다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에 없다구요?"

잇키의 변명 같은 말에 기분이 좋아진 건지, 에델바이스는 콧노래와 함께 애플파이를 잘라 앞접시에 담은 다음 잇키에게 건넸다.

"잘 먹겠습니다....  !!"

꿀색의 구워진 사과가 가득 들어간 단면.

거기서 피어오르는 농밀한 과실의 향기와, 구워진 반죽의 고소한 냄새. 냄새를 맡은 것만으로도 타액의 분비가 촉진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몸이 원하는 그대로 파이를 입에 넣었고

".....읏!"

경악에 눈을 부릅떴다.

맛있다.

그것도, 보통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맛있었다.

살짝 버터 향기가 타는 바삭바삭한 파이 반죽이, 부드러운 식감으로 이를 맞아 주고 있었고, 그 아래에 담긴 구운 사과의 달콤한 향기가 촉촉함과 함께 입안에 퍼졌다.

하지만, 그저 달콤한 것만이 아니었다.

말로 표현하자면── '두텁다'.

실로 두터운 달콤함이었다.

마치 수 천 개의 사과를 응축시킨 것 같은 달콤함.

그리고 그 달콤함 속에, 아주 깊은 곳에, 그 모든 것을 담아두고 있는 대지의 향기. 보리....만이 아니다. 이건, 흙인가? 혀를 통해 들어오는 정보량이, 자신이 알고 있는 애플파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같은 음식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이건 대체──....

"어떠세요? 입에 맞으신가요?"

에델바이스의 약간 불안해하는 목소리에, 잇키는 제정신을 되찾았다. 지금까지 느낀, 자신의 가치관을 뒤흔드는 미각의 충격에 할 말을 잊고 있었다.

그녀의 물음에, 잇키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입에 맞는다, 그런 말로는 부족했다.

"네. 달콤하긴 하지만 그저 달기만 할 뿐이 아닌, 고급스러운 달콤함이 느껴져서 아주 맛있어요. 지금까지 먹어 본 애플파이 중에 가장 맛있어요!"

이 답에 에델바이스는 밝은 미소를 보였다.

"기뻐라. 이건 제 할머니에게서 배운 애플파이에요. 특별한 조미료로 칼바도스를 넣었죠."

"칼바도스요?"

"사과로 만든 브랜디에요. 이 칼바도스의 쓴 맛과 강렬한 향이, 달콤하게 구워진 사과와 합쳐져, 그저 달기만 한 것만이 아닌, 고급스러운 달콤한 맛을 이끌어내어 주죠."

질량을 무시한 맛과 복잡한 달콤함의 뉘앙스의 정체에, 잇키는 납득했다. 그가 대지의 향기라 느낀 것은, 숙성용 통으로 쓰인 나무의 향기가 칼바도스에 배어 있었던 것이다.

"자, 여기 쿠키도 드셔 보세요. 검은 쪽은 초콜릿, 하얀 쪽은 바닐라와 오렌지 필이랍니다. 둘 다 신 맛이 강한 하와이 코나 커피와 잘 어울리죠."

"가, 감사히 먹겠습니다."

이것도, 이것도 드셔보세요. 하며 에델바이스는 계속해서 잇키에게 수제 과자를 권했다. 그 모든 것들이 아주 맛있었기에 깜짝 놀랐지만, 그것보다 잇키는 자신에게 과자를 권하는 에델바이스의 모습, 그 표정에 더 깜짝 놀라게 되었다.

도저히 검 하나로 대국들을 떨게 만들었던 검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날 밤에 만났던 때부터 쭉, 잇키에게는 그녀에게 일종의 신성함조차 품고 있었다.

결코 닿을 수 없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

혹은 우화 속에 살고 있는 전설과도 같은, 그런 신과 같은 이미지를.

그 이미지가 지금, 크게 변하려 했다. 하지만 그건 환멸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왜 그러세요, 잇키? 제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시고.... 앗! 설마 제 입에 뭐라도 묻었나요!?"

잇키의 시선을 알아채고 황급하게 입가를 가리는 에델바이스. 여기에 잇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 아뇨. 그런 게 아니고, 엄청 즐거워 보이셔서요."

라고 답했다.

그러자

"으읏~!"

이 잇키의 대답에, 에델바이스의 눈과도 같이 새하얀 뺨이 살짝 붉어졌다. 그리고 겸연쩍은 듯 움츠러든 채로, 눈치를 살피듯 잇키에게 물어보았다.

"....그, 그렇게 신나 떠드는 것처럼 보였나요?"

"아, 뭐.... 조금 정도요."

"우... 죄송해요.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네요. 사실 전 과자를 굽는 게 취미인 데다가 그 과자를 다른 사람이 먹어 주는 걸 아주 좋아해요. 하지만 손님을 집에 들여 같이 차를 마실 기회가 별로 없기에, 가끔 이런 기회가 찾아오면 너무 들떠 버리는 탓에..."

"아하하. 정말 굉장한 곳에 세워져 있으니까요. 이 집은."

고도 8천 미터를 넘는 곳.

인간이라는 종족의 생존권의 바깥쪽. 이런 곳까지 차를 마시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에, 에델바이스도 수긍하며

"산 아래에 모여 있는 그런 타입의 분들이라면 매일같이 찾아오시긴 하지만요. 거기에... 저도 살면서 검만 쥐어 왔기에,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도 적고... 거기다 이 나이에 결혼도 못하고 있고요..... 하하하......"

메마른 웃음을 흘리며,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뭘까,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쓰라리다.

이 화제를 이어가다간, 그녀의 뭔가 중요한 부분이 박박 깎여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화제를 바꿔야 해...!'

거기까지 생각하고, 뭔가 이야기를 할 거리가 없을까, 하고 잇키는 커피를 마시며 거실을 둘러보았다. 거기서 갑자기, 선반 위의 사진첩을 보게 되었다.

사진첩은 큰 것과 작은 것이 하나씩.

큰 쪽은.... 빛을 뿜을 것만 같은 하얀 머리칼의 소녀와, 몇 명의 어른이 함께 찍힌 사진.

에델바이스의 어렸을 적의 가족사진인 것일까?

그리고 다른 하나, 작은 쪽은... 의아스럽게도 선반 위에 엎어져 있었다.

──다른 조도품은 깔끔하게 나열되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물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 사진에 대해 언급하는 건 좋지 못할 터.

그랬기에

"그, 그러고 보니.. 신경쓰이는 점이 있었습니다만."

잇키는 어렸을 적의 에델바이스의 사진을 보고, 문득 떠오른 의문점을 입에 담았다.

"....에델바이스 양은 어떤 연유로 검의 길을 선택하신 건가요?"

"저 말인가요?"

"네. 큰 흥미를 갖고 있어요.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에델바이스 양이 검을 들게 된 이유에요."

그 사진의 소녀가, 대체 어떤 결의와 각오로 검의 정점에 달하게 되었는가.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긴 했지만, 잇키도 같은 검의 길을 걸어가는 자.

역시, 흥미를 숨길 수가 없었다.

반사적으로, 상상의 날개가 날갯짓을 하고 있었고──

"다이어트 때문에요."

다음 순간에 떨어져 나가버렸다.

"..........................................네?"

"다이어트 때문에요."

".....농담하시는 게 아니고요?"

"네."

──진심이다.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에델바이스에게, 잇키는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는 무엇 하나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전 어렸을 때부터 과자를 만드는 걸 좋아했었고, 제가 만든 과자를 먹는 것도 아주 좋아했었습니다만, 그... 부끄럽게도 살이 좀 쪄 버려서... 운동을 하자고 결심한 뒤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집 가까이에서 검을 가르쳐주시고 있던 일본인 선생님의 제자로 절 보내셨어요."

"아........ 네........"

"의외인가요?"

"아, 아뇨.... 아니... 네....."

아무래도 이 진실에 대한 경악은 감출 수가 없었기에, 잇키는 부정을 수정했다.

"....멋대로 품은 상상이긴 하지만, 세계 최강의 검사인 《비익》 에델바이스에겐 뭔가 더 장대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후후. 환멸하셨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그저, 깜짝 놀랐을 뿐이에요."

"딱히 특별한 건 제게 없어요. 세계 최강의 검사도, 극히 평범한 가정에 태어나, 평범하게 자란 평범한 사람이랍니다. ....제가 생각해도 대체 얼마나 엄청난 재능을 갖고 태어난 건지, 정말 사람이란 모를 일이군요."

쿡쿡, 하고 새가 지저귀듯 미소짓는 에델바이스.

하지만 문득, 그녀는 그 눈에 선망의 빛을 띠며, ──읊조렸다.

"....하지만 그랬기에, 전 잇키와 스텔라가 약간 부러워요."

"저희들이, 말씀이신가요?"

"네."

에델바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 둘은 검이 무엇을 해내기 위해 있는 것인가를 알고 있어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검을 쥐었으니까요. .....하지만 전 그걸 모르겠어요."

그녀가 하는 말은.

자신은 그저 우연히 검을 쥐고, 우연히 그 길에 필요한 모든 재능을 누구보다 우수하게 갖고 있었을 뿐.

그리고 알고 보니, 누구도 올 수 없는 곳에 혼자 서 있었다.

그것 뿐이다.

그러니──

"힘 있는 자의 책무는 다하고 있습니다만, 전 아직 제가 누구인지를 잘 모르겠어요."

《마인》의 영역에 달했음에도, 아직 그걸 알아내지 못했다. 이 세계에서, 이렇게나 큰 힘을 가지고 태어난 자신은,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자신이라는 이름의 이야기의 제목을.

"그러니 전 아직도 찾고 있는 거랍니다. 자신의 검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무엇을 이루어내기 위해 이 힘을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 자기 자신의, ──자신만의 《기사도》를."

티스푼으로 커피를 저으며, 소용돌이의 중심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에델바이스.

그 모습은..... 신화 세계 속의 주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자신의 존재, 그 가치를 찾아내기 위해 고뇌하는, 그런 어디에나 있을 법한, 한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

"잘 먹었습니다."

"조촐한 대접이었습니다. 후후, 역시 남자애네요. 꽤 많은 양을 만들었는데."

그리 말하고 에델바이스는 깔끔히 비워진 접시를 보았다.

여기에, 잇키는 살짝 부끄러운 듯 뺨을 긁적였다.

"전부 다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어서요. 죄송해요."

"아뇨,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저도 기뻐요. 조금이라도 당신에게 보답을 드리고 싶었거든요."

"보답이요...?"

"네. 사실 오늘 집에 초대한 것도, 잇키이게 보답을 하고 싶어서였어요. ....아마네, 시노미야 아마네에 대한 일로요."

"!!"

《흉운》 시노미야 아마네.

자신이 바란 모든 우연을 반드시 이루어내는 능력.

최고봉의 인과 간섭계 능력 《과잉한 여신의 총애》를 지닌, 그리고 그 능력 때문에 인생이 비뚤어져버린 소년. 이전에 잇키가 《칠성검무제》에서 상대했던 강적이다.

여기서 들을 줄은 생각도 못 했던 이름에, 잇키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에델바이스 양은 그를 알고 계셨나요?"

"네. 아마네를 《해방군》에 초대한 게 저이니까요."

"그랬었나요!? 하지만, 어째서.."

"어째서, 인가요. 그렇네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가 처음 봤을 때의 아마네는, 도저히 바깥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

이미 신내림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그 능력.

그는 그런 능력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의 가족에게도 '능력' 외엔 아무것도 사랑받지 못했다. 부친도, 모친도,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그의 배후에 있는 그의 능력 외에는 눈에 들이려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누구나가 그 모든 이유를 아마네 본인에게 향하지 않았다.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는, 망령과도 같은 인생의 종막. 모든 것에 절망한 아마네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의 붕괴를 바랐다. 에델바이스가 아마네와 만난 건, 그 때였다고 한다.

"정말, 그런 상태의 아마네 군을 향해 다가가실 수 있었네요. 그의 힘이라면 당신과 만나는 것 자체를 거절할 것 같습니다만..."

"방금 스텔라에게 말했듯 《마인》에게는 인과에 대한 강한 주체성이 있으니까요. 거기에 저 자신도 인과 간섭계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같은 계통의 능력을 어느 정도 저항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그저, 그래도 제게 가능한 건 그저 보호뿐이었어요. 그가 주위만이 아닌, 자신을 망가뜨려버리지 않게 말이죠. 그에게 살아갈 곳을, 전 주지 못했어요. 하지만, ──잇키는 그런 아마네를 구해 주었죠."

자신과 같은,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존재였음에도, 그 운명에 어디까지나 저항해 온 기사.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

그 기사를, 아마네는 증오했다.

그를 보고 있으면, 힘들게 포기한 자기 자신을 믿게 되어 버릴 것 같으니까.

그래서, 아마네는 잇키의 가능성을 자신의 운명으로 닫아 버리려 했다. 자신의 운명마저도 닫아버릴 정도의 절대적인 힘.

《과잉한 여신의 총애》를 이용해서.

하지만, 잇키는 멈추지 않았다. 아마네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은 기적의 힘. 그것조차도 극복해 내어,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뒷모습이, 아마네의 마음을 구한 것이다.

"정말, 고마웠어요."

거기에, 에델바이스는 깊이 머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여기에 잇키는 자신이 델바이스의 집에 초대받은 이유를 알게 되었고,

그랬기에..

"아니에요. 그것이 제 《기사도》 이니까요."

방금 에델바이스가 말한, 자신의 검으로 해 내야 할 일. 잇키에게 있어 그것은, 이전의 자신처럼, 자신을 포기하려 한 사람에게,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은 뭐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자신에게 가르쳐 준 쿠로가네 료마의 말을 전하는 것이다.

자신은 검에 걸은 맹세를 다한 것일 뿐.

에델바이스에게서 이렇게 다시금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일도 아니다. 그랬기에, 잇키는 온화한 표정으로 에델바이스에게 고개를 들도록 요청하며

"하지만, 혹시 그것을 제가 드린 은혜라고 생각하신다면, 저도 에델바이스 양에게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어요."

다시금 표정을 굳힌 채 고개를 들은 에델바이스의 회색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무엇인가요? 제가 가능한 것이라면."

"스텔라는 지금,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싸우고 있어요. 그렇다면 저도, 그동안 멍하니 앉은 채로 시간을 죽이기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요. 시간제한은 계속해서 찾아오고 있죠. 오르 골의 무리에게서 스텔라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저도 가능한 실력을 키워 놓지 않으면, 강해져 돌아온 스텔라를 볼 면목이 없어요."

버밀리온 군을 감싸기 위해서라고 해도, 《B.B》에게 당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수행이 필요한 건, 스텔라뿐만이 아니다. 자신도 또한, 지금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결전의 때까지, 더욱 자신의 실력을 갈고닦아 놔야 한다.

그걸 위해서라도

"그러니, 제게 검술 단련을 시켜주실 수 있겠습니까?"

자신의 검술은 《비익》의 검술을 훔쳐 만들어낸 것. 그렇다면 그 정밀도를 올리기 위해선, 원형을 좀 더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그 더할 나위 없는 기회. 이걸 놓칠 수는 없다. 그랬기에, 잇키는 에델바이스에게, 그녀의 검술을 누구보다도 가까운 곳에서 보여달라는 부탁을 한 것이다.

여기에, 에델바이스는

"....그렇군요. 그건 상관없습니다만... 그 필요는 없을 거라 생각해요."

약간 곤란해 하듯 미소지으며,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네? 어째서인가요?"

"잇키와 스텔라, 둘의 시합은 저도 그 회장에서 보았어요."

"그 자리에 계셨던 건가요!?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요..."

"그만큼 눈앞의 상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었겠죠. 평소의 잇키라면 곧바로 알아챘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멋진 시합이었어요. 그리고, 거기서 잇키의 검술을 본 바로 말씀드리자면, ──당신과 제 사이엔 그리 큰 기량의 차이는 없어요."

이 에델바이스의 말에, 잇키는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가..."

"물론 전혀 없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극적일 정도로 차이가 있는 건 아니에요. 당신의 검술도, 초인의 영역에 달해 있어요. 그리고 기술을 갈고닦으면 갈고닦을수록, 성장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고, 그 성장률이 나빠지게 되죠. 잇키가 앞에 두고 있는 《괴뢰왕》과의 싸움. 그 때까지 저와 같은 수준까지 검술을 갈고닦는다 할지라도, 그걸로 얻을 수 있는 실력의 성장은 그리 크지 않을 거에요."

거기에, 하고 에델바이스는 커피로 한 번 입을 적시고, 이어 말했다.

"잇키가 구사하는 검기는 처음엔 제 검을 모방한 것이었지만, 이미 제 검과는 완전히 다른, 당신 자신의 독자적인 원형을 완성해 나아가고 있어요. 당신만의 검기로 숙성되어 나아가고 있죠. 특히, ....결승전의 마무리를 지은 최후의 일도는 그 극치라고 할 수 있어요. 그걸 이제 와서 제 검기로 바꾸어 나가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답니다."

그렇게 된다면, 쓸데없이 완성이 될 날을 늘리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하고 에델바이스는 이어 말했다.

"그러니, .....전 잇키가 지금 단련해야 할 부분은,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곳... 검 이외.. 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잇키에겐 결정적으로 미완성된 부분이 하나 있어요.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저와 잇키 사이에 있는 절대적인 차이이죠."

"그, 그게 대체 뭔가요!?"

테이블에 손을 얹고, 몸을 앞으로 내밀며 묻는 잇키. 거기에 에델바이스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그에게 말했다.

"따라와 주세요. 제 비기의 트레이닝 장소로 안내해 드릴게요. 다음 이야기는 거기서 하도록 하죠."

◆◇◆◇◆

"따라오실 수 있겠어요?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문답무용으로 목숨을 잃을 테니까요."

"아, 알고 있어요!"

살짝 경직되어 있는 잇키의 대답.

그것도 당연했다.

둘은 지금, 안전장치도 없이 에델베르크의 정점을 향해 거의 수직으로 뻗어 있는 암벽을 등반하고 있으니까. 9천미터를 넘는 지점이 되니, 이미 어느 루트를 따라 가더라도 절벽이 되어있었다. 암벽에 살짝 나 있는 요철을 이용해, 사지를 구사하여 등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요철도 계속해서 불어닥치는 영하의 바람에 의해 얼어붙어 있었고, 붙잡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중노동이었다.

그럴 터인데

'진짜 인간인 건가, 이 사람은...!'

잇키의 앞을 나아가던 에델바이스는, 마치 사다리라도 오르는 것처럼 손쉽게 얼어붙은 암벽을 등반하고 있었다. 자신의 검의 존재의의를 고뇌하던 에델바이스에게 친근감을 느끼던 참이었는데, 그 이미지는 이미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 때였다.

"윽!"

정점을 향해 암벽 등반을 시작한 뒤로 불어온 6번째 돌풍이, 잇키와 그녀를 덮쳤다.

고도 9천 미터를 넘는 지점.

지구상의 한 점 흐림 없는 푸른 하늘을 뚫고 지나가는 그 돌풍은, 닿는 모든 것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냉기의 폭풍이었다. 얼어붙은 요철에서 조금이라도 손가락이 미끄러진다면, 그 순간 몸은 수 십 미터를 날아 산 아래로 곤두박질쳐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그 《낙제기사》.

1분간은 불어오는 폭풍을 어떻게든 이겨낸 다음, 곧바로 등정을 개시했다. 그렇게 에델바이스에게 크게 뒤처지면서도, 암벽 등반을 계속한 지 약 2시간.

잇키는 어떻게든 에델베르크의 새하얀 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윽.. 허억! 헉.. 으...윽!"

심신을 혹사시키는 환경에 소모되어, 어깨를 들썩이며 호흡을 가다듬는 잇키. 그런 그에게, 에델바이스는 살짝 기뻐하는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역시나 좀 지치셨나요?"

"아, 네.. 헉.. 뭐... 헉...."

"하지만 호흡이 흐트러지는 정도로 끝났다는 것은, 제대로 '순응'은 하고 있는 모양이네요. ──아주 좋아요. 그렇지 못해서야, 이 트레이닝은 불가능할 테니까요."

"그럼 역시, 여기가 트레이닝 장소인가요?"

"네. 에델베르크의 정점.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이곳이야말로, 당신이 미완성된 부분을 단련하는 데에 절호의 장소랍니다."

고도 9350미터. 《검봉》 에델베르크의 정점은.... 얼음 그 자체였다.

한 순간도 영하를 웃돈 적이 없는 기온과, 끊임없이 불어닥치는 냉기의 바람에 의해 예리하게 연마된 영구동토의 칼날.

그 하부를 만지작거리며, 에델바이스는 지적했다.

"방금 말씀드렸듯, 잇키의 검기는 이미 완성의 영역에 달해 있어요. 거길 집중적으로 단련해 봤자 많은 성장을 그릴 수는 없을 테죠. .....하지만, 그런 한 편 당신의 마력 사용 방식은, 아직 미숙해요. 도저히 완성이라 할 수 없어요."

"마력의 사용 방식, 인가요...?"

"이 지적은 의외였나요?"

"....네."

"그럴 거에요. ...사실 당신의 마력 제어력은 아주 대단해요. 인간의 생존본능에 의해 사용할 수 없는 마력조차 짜내는 집중력. 그걸 컨트롤하여, 원래라면 몇 배 정도의 강화 배율로 끝날 것을 수십 배, 수백 배로 끌어올리는 제어력. 너무도 적은 마력 총량을 갖고 있기에, 교육 기관에서의 측정은 물론, 학교의 단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던 몸으로, 이렇게까지 단련한 게 감탄이 나올 정도에요."

마력 제어력의 훈련과 측정으로 일본 연맹 지부가 추천하고 있는 것은, 마력을 이용한 점토 세공이다. 두 손을 쓰지 않고, 무색의 마력으로 간섭하는 것만으로, 특정한 형태를 점토로 만들어내는 것. 《심해의 마녀》 쿠로가네 시즈쿠와 같은 탁월한 마력 제어력을 지닌 기사라면, 잇키를 쏙 빼닮은 피규어를 만들어내는 것조차 가능하겠지만, 보통 기사라면 별 모양이나 삼각형 같은 단순한 도형을 만들어내는 것이 한계이다. 실력이 좋지 못한 기사라면 우메보시 같은 형태 나쁜 점토 덩어리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잇키의 성적은 그 이하였다.

왜냐면, 그의 마력 총량은 물체에 간섭을 하는 것만으로도 곧바로 고갈이 나 버릴 정도였으니까.

마력은 그 블레이저가 태어나 지닌 특질──즉, 《노블 아츠》를 이용해 사용하지 않으면 연비가 극단적으로 떨어진다. 방향성을 갖지 못한 무색의 에너지로서 마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 효율 나쁜 방식을 취할 여력은, 잇키에겐 없던 것이다. 즉, 훈련이나 측정을 끝까지 해낼 수 있는 마력조차 그에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낙제기사》는 자신이 가능한 범주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만을 하는 그런 남자가 아니었다. 학원에 평가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혼자의 힘으로, 전투에 필요한 마력의 사용 방식만은 극한으로 갈고닦아놓았던 것이다.

대전을 할 때만을 놓고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원래 강화 능력을 수백 배까지 높이는 잇키의 마력 제어는, 시즈쿠의 수준에 필적할 정도의 정밀도를 자랑한다 할 수 있다.

본인도 거기에 어느 정도 자부는 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잇키는 에델바이스의 지적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에델바이스는 잇키의 마력 제어력을 탁월한 것이라 평가한 다음

"하지만, 그래도 검기의 완성도와 비교하자면, 아직 보통내기에 지나지 않아요. 우등생의 영역에 달하지 못하고 있죠."

"!!"

"이걸 보세요."

그리 말한 뒤, 에델바이스는 에델베르크의 끄트머리의 중간 쯤 위치까지 오라간 다음, 얼음에 난 미세한 요철을 발판삼아 두 다리로 서고, ──온몸에서 하얀 불꽃 같은 마력광을 내고 있었다.

시인할 수 있을 정도로 농밀한 마력의 빛.

그것은──

"이게 당신의 《일도수라》를 마력으로 만들어낸 상태랍니다. 마력이라는 건 불꽃과 비슷해요. 척 보기엔 격하게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열이 없는 것처럼, 이 마력도 미쳐 날뛰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단한 힘은 갖고 있지 않아요. 마력이 미쳐 날뛰는 모습은, 에너지의 낭비 때문에 만들어지는 현상이죠. ──고요히 푸르게 타오르는 불꽃이야말로 큰 힘을 갖고 있다. 마력도 마찬가지에요."

"이건...!"

그리 말한 뒤, 에델바이스가 두르고 있던 마력광에 변화가 있었다. 격하게 몸 바깥으로 뿜어져 나오던 하얀 불꽃. 그 일렁임이 서서히 잦아들었고, 이윽고 전신을 뒤덮는 어렴풋한 빛처럼 바뀌었다.

두르고 있던 마력을 약하게 만들었나?

아니, 그게 아니다.

"출력은 그대로, 몸 내부로 가두었다...?"

"그래요. 원래라면 사용할 수 없는 힘까지 짜내어, 불태워버린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그 사나운 혼의 불꽃을 완벽히 제어해내어, 몸 내부에서 최대한으로 작용시키는 것이 중요해요. 잇키처럼 신체 강화 계통의 마술은 특히 더 그렇죠. 하지만 마력의 제어에 너무 정신이 팔려 동작의 정밀도를 떨어뜨려선 의미가 없죠.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세밀한 신체 조작을 행하며, 마력을 고스란히 제어한다. 이 둘을 동시에 행하는 집중력. 보통 특훈으론 6일간만으론 그 집중력을 익히는 건 불가능할 거에요. 하지만, 여기 에델베르크라면 이야기는 달라요...!"

"뭣...!"

그 경악은, 잇키의 것이었다.

그 이유는, 전신에 미쳐 날뛰던 마력을 그 몸의 내부에 담은 에델바이스가, 에델베르크의 얼음칼날 끄트머리에 검지를 얹고, 그대로 몸을 들어올려, 검지 하나만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했기 때문이다.

"《검봉》 에델베르크의 칼날은 결코 녹을 일이 없는 영구동토이며, 불어닥치는 바람에 의해 연마된, 그야말로 별의 검이라 할 수 있어요. 강철 정도는 손쉽게 양단할 수 있으니, 맨손으로 만지게 된다면 블레이저라 할지라도 무사하지는 못할 거에요. 이 끄트머리를 짚고 있는 검지에만 마력방출을 유지하며, 이따금씩 불어오는 천공의 폭풍 속에서 전신으로 균형을 잡는 것. 고도의 신체 컨트롤과 마력 컨트롤을 양립시키는 기술을 체득하는 데에, 이보다 더 좋은 훈련 방법은 없어요."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지금의 잇키에게 필요한 단련이라는 것을, 에델바이스는 고했다. 이 자세를 1시간 유지할 수 있다면, 잇키의 실력은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해 보시겠어요?"

어렵지 않게 물구나무 서기 자세에서 원래 자세로 돌아온 다음, 에델바이스는 물어보았다. 그에 대한 잇키의 답은,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었다.

◆◇◆◇◆

물론이죠.

잇키의 답을 들은 에델바이스는, 산 꼭대기를 잇키에게 맡기고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서, 꼭대기에 남은 잇키는 일단 《검봉》의 끄트머리에 손가락을 얹었다.

"....읏."

그러자, 손가락을 살짝 댄 것만으로도 피부가 찢겼다.

엄청난 예리도.

천공에서 불어오는 폭풍에 의해 연마된 별의 검.

그 형용은, 과장이고 뭐도 아니었다.

어쩌면 이 곳은, ....일종의 저주를 띤 곳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계속해서 죽이게 된 무기가, 원념을 띠게 되듯이.

사람의 입소문을 떠돌던 우상이, 축복을 띠게 되듯이.

'조금이라도 마력을 잘못 운용했다간 뼈까지 잘려나가겠어.'

마음을 다잡고, 잇키는 몸 안의 마력을 고양시켰다. 마력이란 원래, 노블 아츠──즉, 마술을 구사하기 위한 연료이다. 하지만, 무색의 에너지체로서의 특성도 가지고 있다.

현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블레이저가 지닌 물리 충격에 대한 저항력이다. 블레이저는 마력을 몸에 둘러, 마력이 담기지 않은 충격에 대한 높은 방어력을 발휘한다.

총탄을 맨몸으로 맞아도 타박상 정도로 충격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이 힘을 이용한다면, ──《검봉》 위에 올라가 있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터.

"────"

잇키는 온몸으로부터 마력을 방출.

그걸 체외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체내에 담아 두는 이미지를 강하게 가졌다. 그 상태에서, 다시금 《검봉》의 끄트머리를 매만졌다.

피부는, 찢어지지 않았다.

이거라면 해낼 수 있다. 그리 판단하고

"핫!"

잇키는 손가락 하나만을 지지대 삼아 하늘 높게, 다리를 들어올려 물구나무를 섰다. 그 순간, 그 표정에 괴로움과 초조감이 떠올랐다.

'이, 이건..... 상상했던 대로, 아니.. 상상했던 것보다 더 힘들어....!'

바람이다.

에델베르크는 지상 최고봉.

즉, 에델베르크의 위는, 아무런 장벽도 없이 계속해서 바람이 부는 폭풍권이란 말이 된다. 막아 주는 곳도 없이 사방으로부터 엄습해 오는 돌풍에 끊임없이 버티고, 중심이동을 이용해 자세를 유지한다.

이건, 아주 어려웠다.

그 난이도는 손꼽을 수 있는 잇키의 비검 중에서도 가장 섬세한 신체제어를 요구하는 《원》에 필적했다. 조금이라도 중심이 흐트러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그리고,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손가락 끝으로 마력을 제어하는 것이다. 에델베르크의 끄트머리는 엄청나게 날카로워, 마력의 방패 없이 만지는 건 아예 불가능. 그렇다고 해서 단순하게 손가락 끝으로 마력을 방출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마력에 의해 튕겨져나가 몸의 밸런스를 잡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별의 검의 예리도에 대항할 수 있을 만한 강한 마력을 유지하고, 그걸 무턱대고 방출하는 게 아닌, 몸 내부에 담아 두는 방식으로 운용해야 한다.

마음과 몸을 극한의 환경 속에서 함께 일치시킨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윽....!"

다음 순간, 갑자기 하늘 위를 불어닥치던 바람이 극단적으로 약해졌다. 바람이 바뀌면, 당연히 적절한 중심을 취하는 방법도 바뀌게 될 터. 접지면이 손가락 하나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갑작스러운 변조에 잇키는 서둘러 중심을 다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찰나

"이런..!"

자세에 너무 신경이 돌아간 탓에, 마력의 컨트롤이 살짝 엇나가 체내에 담아 뒀던 마력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당연히 몸은 머리로부터 곤두박질치게 되었다. 손을 뻗어도, 몸은 바람에 날아가 암벽에서 멀어져갔고, 잡을 수 있는 곳 따윈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지표에 처박혀서 죽는 꼴을 면할 수 없다.

하지만

"《음철》!!!"

판단은, 신속했다. 다수의 사선을 넘어 온, 《낙제기사》는 이 위기에도 냉정했고, 곧바로 최선의 방법을 찾아냈다. 즉, 자신의 디바이스 《음철》을 현현시켜 칼자루에 감아둔 끈을 풀어 암벽에 던졌다. 그리고 진자와도 같은 반동을 이용하여 암벽에 붙어 붙잡은 뒤, 잇키는 위기를 벗어났다.

하지만, 가슴 속에 느껴지는 건 안도 따위가 아니었다.

"큭...."

느끼는 건, 분함 뿐이었다.

1시간은 커녕, 1분조차 버티지 못했다.

하지만──

'하지만 확실히, 몸과 마력의 제어, 그 양립을 훈련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수행이야....!'

한 번 자기 손으로 해 본 다음, 잇키는 그것을 확신했다. 실로 합리적인 훈련이라고. 높은 하늘에 위치하는, 이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과 몸을 갈고 닦는다면, 싸움 속에서도 《일도수라》의 마력을 진정시켜 체내에 담아 두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지금까지 무산되었을 뿐인 마력을 칼끝에 담는 것도 가능할 터.

그리고 혹시, 그것이 가능해진다면──

'내 모든 노블 아츠가, 한 단계 더 진화할 거야...!"

그야말로, 《일도수라》로 《일도나찰》 정도의 강화를 얻을 수도..

"읏──!"

확실한 진화의 느낌에, 잇키는 자신의 가슴이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건 손쉬운 건 아닐 것이다. 칼날 위에 서는 것, 고작 그 정도의 작은 마력을 몸속에 담아 두는 것조차 아슬아슬한 수준. 몸의 생존본능조차 무시하는 전력을 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일도수라》를, 그 미쳐 날뛰던 마력을 안정화시킬 수준이 되는 건 꿈 속의 꿈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실현해 냈을 때의 보상은 한없이 크다...!

그렇다면──

'해 보겠어...! 대표전까지, 이 기술을.. 절대로 습득해 내 보이겠어!'

잇키는 그리 결의하고, 다시금 꼭대기를 향해 암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

에델베르크에서의 첫 날 밤이 밝았을 무렵.

제 5캠프 지점은, 구름과 돌풍이 가져온 눈보라에 뒤덮여 있었다. 강하게 쏟아지는 우박. 그 도중,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은 생각지 못한 고전에 시달리고 있었다.

"받아 보아라! 청춘, 폭발, 《투혼 스파이크》!"

"우아앗!"

일정 거리를 두고, 스텔라를 포위한 네 명의 같은 얼굴을 한 남자들. 그 중 배구 유니폼을 입은 남자 둘 중 체격이 좋은 쪽이, 자신이 마력으로 만들어낸 배구공 형태의 빛의 구체를 스텔라를 향해 스파이크로 쳐냈다.

빛의 구체는 엄청난 기세로 스텔라에게 부딪힌 다음, 수류탄 정도의 규모의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의 대미지에 비틀거리는 스텔라.

거기에 다른 한 명, 축구 유니폼을 입은 가냘픈 몸의 남자가 용서 없이 추가 공격을 가해 왔다.

"슬슬 쓰러지라고! 《그레네이드 슛》!"

"윽, 아악!"

축구공 크기의 마력 덩어리가 스텔라의 명치에 깊이 꽃혔다. 방금 날아온 배구공의 폭발 만큼은 아니지만, 그 무게는 쇠로 된 공보다 더 무거웠다.

아마 100kg은 족히 넘을 터. 자신의 마력에 질량을 부여하는 타입의 능력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읏, ....이게...!"

그러나, 거리를 둔 마술 교전은 스텔라의 장기.

당연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좀 적당히 하라고오오오!!!"

반격.

전신을 통해 혼신의 마력을 열량으로 만들어 방사하는 노블 아츠──

"《폭룡의 포효》!!!!"

찰나.

주변에 깔린 어둠을 불태우는 듯한 눈부신 폭발이 발생. 스텔라의 주변에 있던 네 남자는, 거기에 삼켜지게 되었다.

──그럴 터였다.

하지만, 열파는 남자들에게 닿는 순간에 사라져, 무산되었다. 자신의 힘이 사라져버리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곤혹해하는 스텔라를 향해, 다시금 배구 유니폼의 남자가 스파이크를 선사했다.

이걸, 스텔라는 순식간에 옆으로 뛰어 회피했다.

"어이쿠! 어딜 도망가시려고, 아가씨! 《투구 배로 되받아쳐 주기》!!"

대각선상에 위치해 있던 네 명중 한 명, 야구 유니폼을 입은 풍채 좋은 남자가, 방망이를 휘둘러 날아가던 마력구를, 피해 낸 스텔라를 향해 쳐냈다.

쳐 낸 마력구는 엄청난 가속을 얻고 스텔라와 부딪혔고, 방금보다 더 큰 폭발을 내며 그녀의 몸을 10미터 가까이 날려버렸다.

하지만

"읏, 이 정도...! 아무렇지도 않아!"

단단한 방어력은 스텔라의 장점. 날아가다 암벽에 등이 처박히기 직전.

공중에서 빙 몸을 돌려 자세를 바로잡고, 암벽에 착지했다. 그대로 벽을 박차 방망이를 든 남자를 향해 돌격. 헬멧에 보호받고 있는 미간을 향해, 《비룡의 죄검》의 끄트머리를 꽂았다.

모든 체중을 실은, 몸 채로 날아가는 찌르기 일격.

그렇다. 확실히 모든 체중을 실었다.

하지만, ──찌르기는 보이지 않는 장벽 같은 힘에 의해 튕겨나가 버렸다. 너무도 단단해, 꿰뚫을 수 없을 것이란 확신조차 느껴질 정도로 경질적인 감촉을 동반하며.

"큭... 어째서....!"

....아까부터 계속해서 겪은 일이었다.

스텔라의 참격도 마술도, 그 모든 것들이 보이지 않는 간섭에 의해 무효화되고 있었다. 대체 어째서, 하고 혼란에 빠져 있는 스텔라.

"안 통해! 안 통해! 그런 《스포츠맨십》에 반하는 행동은, 주심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넷의 용서 없는 집중공격이 가해졌다. 초중량의 마력구와, 기폭하는 마력구. 두 종류의 충격파 공격으로, 조금씩이지만 스텔라의 체력을 깎아 나아가고 있었다. 스텔라의 표정은 척 보일 정도로 피로감이 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전투의 대미지만이 원인이 아니었다.

"거 봐. 내가 말했지?"

스텔라의 고전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던 타타라는 어이없음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순응'도 않은 채 날뛰고 있으니 당연히 저 꼴이 나지."

그렇다. 스텔라의 소모의 이유.

그 태반이 전투에 의한 대미지가 아닌, 아침부터 쭉 지금껏 싸워 온 것에 의한 피로 때문이었다. 상대는 《비익》에게 도전을 하기 위해 찾아온 자들.

수는 50명 이상.

그걸 고작 혼자서 미련하게 정면으로 싸우고 있으면, 당연히 지치기 마련이다. 특히 스텔라의 마술은 그 강대한 힘을 대가로 《용의 대사》로 엄청난 칼로리를 소모하게 된다. 이 칼로리 코스트가 뼈아팠다. 거기다, 눈도 녹지 않는 극한 상태에, 희박한 산소.

그저 여기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칼로리를 소모하는 환경이니 더욱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게 된다.

"완전 바닥났군. 머리에 피가 돌질 않고 있어. 참 나, 저런 머저리 같은 꼬락서니를 한 넷의 능력이, '결계 형태를 한 능력'을 쓰고 있다는 건 딱 봐도 알 수 있을 텐데. 저렇게 잡스럽게 싸우고 있고 말야."

이 타타라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아이리스 아스칼리드도 작은 목소리로 동의했다.

"아마, '스포츠'의 영역을 넘어선 모든 행동을 제한하는 인과 간섭계 능력을 쓰고 있을 거야... '벨 수 없는' 것도, '태울 수 없는' 것도. 틀림없이 그 때문...."

"상대의 평소 스타일을 제한시키고, 혼란에 빠져 있는 틈에 '스포츠 룰'로 최적화시켜 '마력으로 폭탄을 만드는 능력', '마력에 질량을 부여하는 능력', '배의 힘으로 되받아치는 능력'으로 쓰러뜨리는 집단 전술이라는 건가. 뭐, 나름 완성되어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골통 좀 굴려 보면 공략법 따윈 딱 눈에 보이잖아."

".......응."

타타라가 말한 대로, 이 '룰 제한'을 깨는 것 자체는 어려운 게 아니다. 평소의 스텔라라면 식은 죽 먹기보다 쉽게 알아챌 것이다. 하지만, 수 시간에 걸친 싸움과 과혹한 환경, 거기에서 오는 큰 영양실조로 인해, 지금의 스텔라는 그 낌새조차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피로해 있다.

사고의 시야가 좁아져 있다.

그런 상태로 적의 공격을 계속 받는 건, 위험하다.

지금은 아직 의식이 있으니 망정이지, 이대로 가다간 언젠가 연료가 바닥나 의식이 끊어질 때가 올 것이다. 몸에 두른 마력조차도 사라져버리는 때가, 올 것이다. 그 때에, 마력에 의한 공격을 받게 된다면, 스텔라는 무사하지 못한다.

그건 위험하다고, 아스칼리드는 생각했다.

오르 골과의 결전은 6일 뒤.

지금, 큰 부상을 입게 된다면, 최악의 경우, 그녀는 생존할 수조차 없게 되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아스칼리드는 손에 칠흑의 핼버드를 현현시켰다.

"도와 줄 거냐?"

초콜릿을 입에 문 채 물어보는 타타라에게, 아스칼리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무리. 그녀에게 가세하려 한다면 반드시 《무결한 선서》가 내게 간섭해 올 거야. 하지만.... 그녀의 상대에 가세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지금의 그녀라면 뒤를 쳐서 간단히 기절시킬 수도 있어."

그 사이에, 스텔라를 버밀리온으로 데려간다.

그것이 네네에게 부탁받은 자신의 역할이니까. 라고 아스칼리드는 말했다. 이 아스칼리드의 말에 타타라는 몸을 건들거리며 비웃듯 말했다.

"즉 저 고리라는 큰소리 떵떵 쳐놓고 버밀리온을 나간 주제에, 저런 대학교 서클 같은 녀석들한테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고, 《비익》한테는 도전조차 못 해본 채 자기 집 침대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쿨쿨 나자빠져 자게 될 거라는 말이잖아? 킥킥킥, 꼴사납네. 거!"

"...웃을 일이 아니잖아."

"어떻게 웃겠어."

"에?"

예상도 못한 말에 깜짝 놀라는 아스칼리드. 그 옆에서 타타리는 빠득, 하고 물고 있던 초콜릿을 난폭하게 깨물어 부수고는

"아, 진짜!!!!!! 짜증나! 웃지 못하기는 커녕 짜증나 죽겠다고!!"

머리를 북북 긁으며 격노했다.

"뭘 저런 X밥 같은 새끼들한테 얻어 처 맞고만 있는 거야, 저 고릴라는! 니 재능이라면 저런 녀석들은 생채기 하나 없이 한 마리당 1초도 필요없이 쓸어버릴 수 있는 게 당연하잖아! 그걸 벌써 30분이라고, 30분! 진짜 미친 거 아냐? 어!?"

짜증을 내뱉으며 타타라는 생각했다.

자신이 보고 싶었던 건, 《비익》에게 엉망으로 당하는 스텔라의 모습이었다. 이전에 자신이 스텔라와의 대전에서 느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존재하던 부조리한 실력차. 그녀는 똑같이 그런 실력차에 패배하는 스텔라의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길거리 쓰레기 같은 녀석들을 상대로 저런 한심하기 짝이 없는 모습 따윈 보고 싶지 않다.

실로 짜증이 일었다.

이래선... 이런 여자에게 진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따라서, 타타라는 절벽 끝에 서서, ──외쳤다.

"야, 이 고릴라야!!!! 머리통 좀 잘 굴려 보라고!!! 스포츠란 건 공만 쓰는 걸로 한정되어 있는 게 아니잖아!!!!!!!!!"

"읏.......!"

그 목소리에, 피가 돌지 않던 스텔라의 뇌에 그제야 불이 붙었다.

"이야아아압!!!!!!!!"

"─────읏!??!?"

그 순간, 스텔라는 큰 기합소리와 함께 가장 가까이 있던 배구 유니폼의 남자, 폭발하는 스파이크를 구사하던 남자의 안면을 장권으로 날려버렸다.

디바이스를 쓰지 않고, 맨손으로.

그렇다. 즉, 그것이 이 자리에 설치되어 있는 결계의 공략법. 네 남자들이 '스포츠'의 룰을 가장한 공격을 해 온다면, 자신도 똑같이 스포츠의 부류에 속하는 공격을 가하면 그만이다.

보통 블레이저라면 디바이스와 마술을 쓸 수 없는 싸움에 고전을 면치 못하겠지만, 스텔라의 신체능력은 그런 사소한 핸디캡 따위에 발이 묶일 일은 없다.

실제로, 그녀는 그저 손 하나로 넷 중 한 명을 에델베르크 밖까지 날려버렸다.

"이, 이거 거짓말이지..."

"300미터는 날아갔다고....?"

맨손으로도 건재함을 보이는 용의 힘.

그 파괴적인 힘이 사람의 몸에 작렬한 결과를 본 나머지 셋은

"하, 항복!!! 저희가 졌어요! 졌다구요!!"

"그래그래! 공격 그만! 스포츠는 끝나게 되면 공격 끝! 이거, 국제 상식이라고!"

"자, 자! 서로의 건투를 치하하며 악수하자고!"

곧바로 백기를 들며 항복을 선언했다. 애초에 상대의 힘을 제한하여 머릿수로 포위전을 펼치는 약삭빠른 전략으로 싸우는 자들이다. 사람을 맨손으로 포탄처럼 날려버리는 괴물과, 정면으로 싸울 배짱 따위는 없었다.

거기에 스텔라는 그 뒤늦은 항복에, "알았어." 하고 경직된 표정을 풀고 그에 응했다.

그렇다. 상대의 건투를 진심으로 치하하는──혼신의 악수로.

"갸아아아아악────!!!!"

◆◇◆◇◆

에델베르크를 올라온 약 백 명의 적을 어떻게든 격퇴해 낸 스텔라. 하지만 소모가 너무 컸고, 스텔라는 숨을 헐떡이며 지면에 꽂혀 있던 《비룡의 죄검》에 기댔다.

"헉....... 헉..... 히, 힘들어....."

전투와 《용의 대사》에 의한 칼로리 소모. 그것이 상상보다 더 큰 속도로 스텔라를 소모해 나아가고 있었다.

"괜찮아?"

"아, 응... 다치지는 않았어."

"그래도 비틀거리고 있잖아. 거 꼴사납네. 저딴 잔챙이 따위가 백 마리 몰려온 정도로 다리도 못 움직일 정도가 된 거냐?"

"시, 시끄러...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타타라의 조롱에 스텔라는 거친 호흡과 함께 반박했다. 산 아래까지 뭔가 먹을 것을 조달해 오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왜냐면, 적도 보통 인간이 아닌, 블레이저니까. 밤이 드리워진 산이어도 상관없이 공격해 오는 적이 있을 수도 있다. 혹은 자신이 그랬듯, 하늘을 날아 직접 에델베르크의 꼭대기를 향해 가는 자도 있을 수 있다.

그걸 생각하자면, 땅과 하늘 모든 곳을 감시하지 않으면 대응이 늦을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상태로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6일 뒤까지 버틸 수 있냐고 물어보자면

'....솔직히 상당히 어려워.'

이미 자신의 몸을 덥힐 정도의 불꽃도 낼 수 없을 정도로 소모된 마력. 오늘 밤을 어떻게든 넘긴다 하더라도, 과연 둘째 날 밤을 넘길 수 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식량 비축 정도는 해둘 걸 그랬어...."

그렇게 스텔라는 뒤늦은 후회를 입에 담았다.

그런 그녀에게

"그러니까 말했잖아. 머리통 좀 굴려 보라고. 먹을 거라면 여기에 있잖아."

타타라는 에이프런 드레스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스텔라의 얼굴에 집어던졌다.

"윽! 뭐 하는──"

얼굴에 내던져진 물건을 반사적으로 손에 쥐고, 분노와 함께 다시금 되던지려 했다.

하지만, 그 동작은 깜짝 놀란 마음에 의해 굳어버렸다.

타타라가 던진 건, 초콜릿 바나나 맛의 휴대식량이었기 때문이다

"너, 이거...."

"얼른 처먹어. 꾸물거리고 있다간 다음 녀석이 올지도 모르니까."

이 타타라의 행동에, 스텔라는 당혹해했다. 방금 그 조언도 그렇고,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이래서야 마치, 자신을 돕고 있는 것 같은....

"고릴라는 바나나 좋아하잖아?"

하지만 타타라의 쓸데없는 한마디가, 당혹을 분노로 바꿔버렸다.

"윽... 네가 준 것 따위 필요없어!"

그리 말하고 타타라에게 휴대식량을 던져버렸다. 타타라는 그걸 어려움 없이 받아낸 다음, 어이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너 따위를 위해 준비해 왔다고 생각해? 그건 여기 올라온 녀석들에게 뺏은 거야."

"....에? ──아.."

그 말을 듣고, 스텔라도 알아채게 되었다. 주변엔 지금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도전자들이 있다. 그렇다. 식량 같은 건, 힘들게 아래로 내려가 조달하지 않아도 그들이 가져와 준 것을 빼앗으면 그만인 것이다.

"읏...>!"

마치 산적 같은 행동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정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미 자신의 연료통은 텅 비어있었고, 열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것마저도 힘든 꼴.

지금 당장 칼로리를 섭취하지 않으면, 동사해 버릴 것이다. 스텔라는 얼어붙어 떠는 몸에 채찍질을 해, 아직 기절한 채로 쓰러져 있던 자들에게서 식량을 빼앗은 뒤, 그걸 맛볼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위속에 때려넣었다.

그리 충분한 양은 아니지만, 칼로리를 보충한 스텔라는 그제야 자신의 몸을 덥힐 수 있을 정도의 열을 되찾을 수 있었다.

"후우... 어떻게든, 급한 사태는 넘겼네."

하지만, 그런 스텔라의 안도에

"하지만 다음 싸움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야."

제지를 가한 건, 역시 타타라였다.

"....!"

"그런 낭비 투성이의 방법으로 싸워 봐야, 오늘을 넘긴다 하더라도 다음 날은 힘들 거라고. 지금 녀석들은 그냥 잔챙이 녀석들의 모임에 불과했지만.... 아래에서 봤던 《붉은 전갈》이나 《검랑》 급의 녀석이 오게 된다면, 그 때야말로 연료 탱크가 완전히 바닥나 디 엔드 꼴이 되어 버릴 거란 말이다. 네 그 불쌍해 빠진 머리통으로도 그 정도는 알 수 있겠지? 응?"

이 타타라의 지적에, 스텔라는 분한 듯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말한 대로, 작은 바 형태의 식량 몇십 개 정도론 도저히 스텔라의 연비를 당해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사실을 솔직히 받아들여 자신을 조롱해 오는 이 여자를 기분 좋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스텔라는 허세를 부렸다.

"....어떻게든, 해 보겠어."

"어떻게? 뭔가 방법이라도 있어?"

"시, 시끄러! 아까부터 대체 뭐야, 너! 넌 내가 엉망으로 당하는 꼴을 즐기러 온 거잖아!? 그럼 입 다물고 그냥 보고만 있으라구!"

타타라의 집요엔 추궁에 스텔라는 거친 말을 내뱉었다.

확실히 수 따윈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너랑은 상관없잖아, 라고.

하지만, 이 스텔라의 노성에 타타라도 격노하여 답했다.

"답답해서 보고 있을 수가 없다고! 그런 보석 같은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는 '아마추어'를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단 말이다!"

"에...?"

타타라의 입에서 나온, 예상도 못한 말에 스텔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이 스텔라의 반응에

"아.... 으윽~~~~~!!"

타타라는 짜증을 못 이기고 자신도 모르게 흘린 말에, 얼굴을 붉혔다.

──정말 자신답지 않은 실언. 치욕. 굴욕.

하지만... 그 덕에 말을 할 마음이 굳어졌다. 타타라는 감정이 가는 그대로, 스텔라에게 말했다.

"어, 어쨌든! 지금의 네 녀석을 보고 있자면 내가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다 벗겨질 지경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지금부터 널 6일을 모두 이겨낼 수 있도록 실전의 싸움 방식을 가르쳐 주겠어! 고맙게 생각하라고!"

"뭐, 뭐어어!?"

타타라의 협력 선언.

여기엔, 스텔라도 깜짝 놀라 소리를 쳤다.

방금 그 전투 속의 조언도 그렇고, 식량 조달 방식을 가르쳐 준 것도 그렇고, 묘하게 호의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설마 그게 진심이었을 줄이야.

자신과 타타라 사이에 있는 인연. 방금 봤던 차내에서의 태도. 그 모든 것들을 미루어봤을 때 전혀 상상조차 못한 이 타타라의 행동에, 스텔라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가 타타라에게 있건, 이 제안에 대한 답은 불 보듯 뻔했다.

"스트레스 같은 건 나랑 상관없지만.... 그래도 안 돼. 에델바이스가 말했잖아. 이건 나 혼자서,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해 내야만 한다고. 그러니 네 도움은 빌릴 수 없어."

하지만, 여기에 타타라는 퉁명스레 대답했다.

"도와주진 않아. 말만 해 줄 뿐이니까."

"그런 어이없는 논리──"

"그래도, 난 살아있지."

"....!"

그 말을 듣고 스텔라는 알게 되었다. 확실히 그 순간, 에델바이스의 《무결한 선서》에 의한 간섭은 벌어지지 않았다.

"방금 조언으로 인해 내 심장이 찢겨나가지 않았다는 건, 그 때 맺어진 《성약》은 조력을 금지해도, 조언을 금지하지 않는다는 거겠지. 방금 그 어이없는 꼬락서니를 한 녀석들이 구사한 결계도 그렇지만, 인과 간섭계의 능력이란 건 강력하긴 하지만 그런 허점이 있을 때가 자주 있어. 그 허점을 어떤 개소리 같은 논리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빠져나가는 것이 인과 간섭계 능력을 쓰는 상대의 정공법이란 말이야. 그건 비겁한 것도 뭣도 아니야. 허점을 만든 상대가 잘못인 거지."

"그, 그치만.. 그렇다고 해서..."

타타라가 말하는 것엔 일리가 있다.

허점은, 만든 쪽이 잘못인 것이다.

검이건 마술이건,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스텔라는 어째 내키지가 않았다. 그건 스텔라가 《비익》이라는 검사의 상냥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스텔라가 6일간 에델베르크를 사수해 낸다면, 대전을 해 준다.

이런 계약은, 에델바이스에게 있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녀의 실력이라면, 그 자리에서 자신을 끝장내 버리는 것도 손쉬웠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검에 맹세해주었다. 이건, 에델바이스의 선의에 의해 주어진 찬스. 그런 찬스에, 이런 속임수 같은 방법을 써도 괜찮은 것일까. 정정당당히 계약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그녀의 앞에 설 자격이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당혹스러움을 내비치고 있던 스텔라에게, 타타라는 짜증스레 내뱉듯 질문했다.

"아앙?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제부터 바퀴벌레마냥 줄줄이 찾아올 녀석들을 자신의 힘만으로 정정당당하게 물리친다? 그딴 하찮은 자존심 따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넌 이 에델베르크로 온 거냐?"

".....읏!"

"눈앞의 감정에 쫓겨 목적과 수단을 잘못 생각하는 아마츄어. 이곳은 이제 네가 맨날 싸워 오던 시합 무대가 아닌, 전장이라고. 여기서 필요한 건 공정함도, 공평함도 아니야. 승패조차도 아니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목적을 다하는 것이겠지. 내가 틀렸냐?"

"────......"

이 타타라의 지적에, 스텔라는 반론하지 않았다.

반론할 수 없었다.

"...확실히,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타타라가 말한 대로, 자신은 이곳에 《비익》과 싸우기 위해 왔다. 《비익》과 싸워, 자신을 최고속으로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곧 있으면 찾아 올 《마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쥘 힘을 얻기 위해서.

그것이 목적.

'하지만, 이대로 가면 내 목적은 달성되지 않아...'

자신의 싸움 방식으로는, 운이 좋아 봐야 내일이 끝. 6일간 이곳을 사수하는 것 따위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자신도, 그건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은 허세나 하찮은 자존심 따위에 매달려 있을 때가 아니야!'

스텔라는 다시금 타타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질문했다.

"네 도움을 받으면, 난 6일을 버틸 수 있는 거야?"

"네 머리통이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

그 답으로, 스텔라는 결심했다. 이곳을 6일간 사수하기 위해 필요한 지혜. 자신이 지니지 못한 그 지혜를, 타타라가 갖고 있다면, 이미 주저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녀는 한 번 자세를 바로하고, ....타타레에게 살짝 머리를 숙였다.

"도움은 받지 않겠어. ──하지만 부탁할게. 내게 지혜를 빌려줘."

◆◇◆◇◆

내게 지혜를 빌려줘.

그리 말하고 똑바로 허리를 펴, 결코 가볍지 않게 머리를 숙여 온 스텔라의 모습에, 타타라는 한 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 참. 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야, 나는.'

스텔라가 어떻게 되든 내가 알 바가 아닐 텐데.

《괴뢰왕》을 쓰러뜨리기 위해, 《비익》에게 도전한다.

.....정말 쓸데없는 짓 이다.

자신의 한계 따위, 그리 쉽게 넘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쓸데없는 행위에, 자신이 나서 얽히려 하다니,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보다.

하지만.... 그녀는 '신뢰'를 중시하는 프로페셔널.

내뱉은 말을 다시 돌릴 여자가 아니었다.

한숨과 함께 후회를 내뱉고

"그럼, 방해꾼이 오기 전에 얼른 시작하자고."

타타라는 스텔라에게 지적을 시작했다.

방금까지 봤던 스텔라의 싸움.

그걸 보고 느낀, 개선해야 할 점을.

"일단.. 방금도 말했듯 네 신체 능력 자체는 엄청나. 제대로 쓰기만 한다면, 방금 같은 녀석들만 온다고 쳤을 때, 이곳을 6일동안 사수하는 건 식은 죽 먹기겠지. 하지만 지금의 넌 그게 불가능해. 그 이유는? 단순히 낭비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야."

"내 싸움 방식이, 잘못 되어 있다는 거야?"

"잘못 된 것 투성이지. 그 중에서도 크게 나눠 세 가지가 있어. 이 세 낭비가 네 발을 계속 잡아끌고 있다고. 그러니 그걸 하나씩 가르쳐 주겠어."

타타라는 자신의 방침을 일단 설명하고, 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일단 첫 번째 낭비. 그건 '칼로리' 낭비야."

"칼로리?"

"머리 짜내 가면서 생각할 건 아니잖아. 말 그대로의 의미야. .....《칠성검무제》의 결승전을 보고 느낀 한, 네 마술은 그 강렬한 파워를 대가로 《용의 대사》로서 막대한 칼로리를 소모하고 있어. 여기에 틀린 말은 없겠지?"

"....으, 응. 그 말대로야."

"그런데 넌 이 산에 온 뒤로 쭉 마술로 몸을 보온하고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말야. 이건 그냥, 연료통에 구멍이 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구멍 자체는 작을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하게 연료의 잔량이 줄어가고 있다. 보급도 제대로 불가능한 환경에서 지구전을 펼치는데, 이 방식은 좋을 리가 없다.

"지금부터 그 상태로 계속 마술을 쓰고 있으면, 아침이 될 때엔 또 기력이 바닥날 거다. 당장 그만둬."

"으, 으음~... 아, 알았어...."

이 타타라의 명령에, 스텔라는 마지못해 하면서도 따랐고, 몸을 둘러싼 열의 보호막을 없앴다. 그 순간, 고도 6천 미터에 불어닥치는 냉기의 바람을 맞고, 격하게 몸을 떨었다.

"추워..... 이, 이거면 됐어?"

떨리는 어깨를 끌어안은 채 물어보는 스텔라. 하지만, 타타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전혀 안 됐어."

"뭐, 뭐라구!? 왜!? 네가 말한 대로 마술은 안 쓰고 있잖아!?"

"그렇네. 마술은 안 쓰고 있지. 하지만, 그렇게 벌벌 떨고 있으면 쓸데없는 칼로리 낭비가 계속될 거라고. 연료통에 난 구멍은 그대로 존재한단 말이다."

"무, 무슨 말이야?"

"추운 곳에선 몸이 떨리지. 그건 '쉬버링'이라고 해서 체온이 35도 이하로 떨어졌을 때 전신의 골격근을 움직여 열에너지를 만들어내 체온을 보존하려 하는 극히 당연한 생리현상이야. 근데 이게 또 상당히 소모가 크단 말이지. 골격근이라는, 모든 근육의 약 40%를 차지하는 커다란 근육을 한꺼번에 움직이는 거니까, ...당연히 칼로리를 엄청나게 잡아먹게 돼."

"앗....."

"이래선 아무리 마술에 의한 칼로리 소모를 막았다 하더라도 별 의미가 없다고."

"하, 하지만.. 어, 어쩔 수 없잖아? 내 힘으론 제어가 불가능한 현상이니까...."

"네 눈엔 내가 지금 떨고 있는 걸로 보이냐?"

"읏....!"

그 말을 듣고, 스텔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타타라는 자신처럼 결코 옷을 두껍게 입고 있던 것이 아니었지만, 하나도 떨고 있지 않는 것을.

"....그러고 보니, 아스칼리드 양이나 잇키도 그랬어. 하지만, 너희들은 불꽃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멀쩡한 거야...?"

"프로니까 그렇지. 너나 다른 녀석 같은 실전 경험이라곤 뭣도 없는 아마추어들이 자주 착각하는 건데, 실전이라는 건 '자신'과 '적'만으로 완결되는 개념이 아니야. 전장의 환경도 중요한 요소라고. 어떠한 환경이나 상황에도 '순응'할 수 있는 능력을 몸에 익혀 놓는 건 당연한 거라고. 그리고 지금처럼 극한의 상황인데다 보급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전장에서 '쉬버링'을 계속해서 반복하게 놔두는 건 최악의 방식이지. 왜냐면 '쉬버링'이 벌어질 때는 평상시보다 5배에 가까운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니까. 그런 걸 반복하고 있다간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고갈되어 버릴 거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컨트롤을 해야 해."

"하지만, 이런 생리현상을 어떻게..."

"지금부터 그 방법을 가르쳐 주겠어."

그리 말하고 타타라는 스텔라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에? 뭐야? 안아 달라고?"

"아니야, 멍청아! 쓸데없이 키만 멀대 같이 커가지고! 몸 좀 숙여!"

눈치 나쁜 스텔라에게, 타타라는 얼굴을 치욕과 짜증에 붉게 물들이며 소리쳤다. 거기에 스텔라는 이 타타라의 행동에 무슨 의도인지를 모르겠는 채,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녀가 말한 대로 몸을 숙였다.

그걸 보고

"──꺄앗!?"

몸을 숙인 스텔라의 머리를, 타타라는 두 손으로 난폭하게 끌어안았다.

"잠깐! 갑자기 뭐야!? 호, 혹시 갑자기 착해졌다는 게 이런 걸 말하는 건가!?"

"어이없는 착각 하지 말고 좀 닥쳐 봐! ....입 다물고, 내 고동에 귀를 기울여 보라고."

"귀를...? ........앗!"

그 순간, 타타라의 품속에서 스텔라는 경악에 물든 표정을 내비쳤다. 말한 대로 귀를 기울이고, 스텔라는 알게 된 것이다.

타타라의 가슴, 그 안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심음을.

"아.. 그렇구나...! 심박수를 줄여 놓은 거야!"

이 스텔라의 깨달음에, 타타라는 긍정을 뜻하는 끄덕임으로 답했다.

"그래. '쉬버링'은 생리현상이지. 의식하여 멈추는 건 어려워. 그렇다면──거기보다 다른 곳을 줄이는 거야. 몸이 칼로리를 낭비하지 않도록, 심폐기능 그 자체를 한계치까지 떨어뜨려 에너지 공급을 막아, 생명활동의 레벨 그 자체를 떨어뜨리는 거야. 생명활동의 레벨이 떨어진다면 당연히 대사도 떨어지고, '쉬버링'을 일으킬 여유조차 없어지게 되어, 진정한 의미로 최저한의 생명 유지 기능만이 활동하게 되지."

능동적으로 육체를 반 가사상태로 놓아, 에너지를 절제한다.

말하자면, 포유류의 동면에 가까웠다.

"이것이 대사를 컨트롤하는 방법이야. 내 평소의 심박수는 대충 1분에 50번. 그걸 지금 20번까지 떨어뜨려 놓았어. 이것보다 많게 되면 대사가 활발해지고, 적어지면 체온이 크게 떨어져 동사나 기절을 할 위험이 늘어나지. 심박은 20. 체온은 33도. 이쯤이 베스트야."

이 상태에서의 대사는, 평상시의 60%정도.

그걸 유지하면,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체력을 낭비하지 않고 온존할 수 있다. 오늘 같은 꼴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일단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걸 먼저 몸에 익혀 놔. 칼로리 낭비를 없애 이 환경에 '순응'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야. 이걸 익혀놓지 못하면, 6일 동안 여기에 멍하니 서 있기만 해도 말라 죽어버릴 거라고. 하물며 계속해서 싸우게 되니 당치도 않겠지."

──그렇지만

"뭐, 하루아침에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겠지. 심박수를 컨트롤하는 데에 익숙해지는 것도 중요해. 그러니 익숙해질 때까진 내가 '리드'해 주겠어. 넌 내 고동에 자신의 고동을 맞춘다는 이미지를 강하게 가져 봐. 그렇게 심박수를 컨트롤하는 감각을 익히게 된다면, 그 때부터는 혼자서도 할 수 있────....읏!?"

혼자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이어 나오려던 타타라의 말은, 목에서 막혀버리게 되었다.

'이, 이럴 수가.... 이 녀석, 벌써....!'

잘 들어 보니, 심박수가 자신과 똑같아져 있었다. 스텔라와 타타라. 둘의 심음이, 완전히 똑같은 타이밍으로.

"끝내준다! 진짜 몸의 떨림이 멎었어! 타타라! 이거면 된 거지!?"

"아, 응..."

"하아~~~ 뭐야~? 심박수를 컨트롤해 상황에 순응된 능력을 선택한다. ...생각해 보니 이런 거, 그냥 자동차 기어 바꾸는 거랑 똑같은 거잖아? 해 보니 진짜 쉽네! 왜 말해줄 때까지 이런 걸 몰랐던 걸까? 이래서야 내가 아마추어라고 불리는 것도 당연하겠네!"

스텔라는 자신의 미숙함을 부끄러워하듯 쓴웃음을 지었다.

한 편, 자신이 어렸을 적, 설산에 방치된 채로 다른 자매들이 죽어 가는 가운데, 1개월이나 들여 겨우 체득한 기술을, 이론 하나만 듣고 실천해 낸 스텔라에게, 타타라는 아연실색해 있었다.

스텔라는 마술만이 아닌, 무예에도 능한 기사. 잇키 정도로 초인적인 건 아니지만, 자신의 육체를 이미지 그대로 움직이기 위한 기술은 이미 익혀 두고 있었다. 심박수를 흥분이나 안정으로 어느 정도 능동적으로 컨트롤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는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훈련으로 누구나 익힐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박을 생명활동의 한계까지 늦춘다.

이 행위는, 그 차원으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왜냐면, 이것은 자신의 죽음, 그 나락으로 다가가 그곳을 들여다보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오차가 벌어진다면, 체온은 자가적으로 복귀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으로 떨어져, 그대로 목숨을 잃게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너... 죽는 게 무섭지 않냐?"

참지 못하고, 질문을 입에 담았다.

하지만 여기에 스텔라는 주저 없이 이렇게 답했다.

"무섭지. 하지만 《홍련의 황녀》로서 죽지 못하는 게 더 무서워.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난 여기에 온 거야.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그러니까 가르쳐 줘, 타타라. 네게는 있고, 내게는 없는 것. 내가 모르는 것. 내가 지금, 《홍련의 황녀》로 있을 수 있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비색의 보석과도 같은 눈동자를, 강한 의지의 빛으로 반짝이며.

무심코 느낀 그 아름다움에,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킬 정도의──

'......칫!'

"'순응'이 다소 잘 됐다고 해서 건방 떨지 마. 넌 아직 낭비 투성이니까."

스텔라의 옆모습을, 고난을 앞에 두고도 도망치지 않았던 강한 의지의 빛을.

아름답다고 생각해버렸다.

그런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퉁명스레 말하는 타타라.

하지만, 여기에 스텔라는 한 층 표정을 빛내며

"아주 좋네. 즉 타타라의 조언을 듣고 난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거잖아?"

──그렇게, 그 날로부터 스텔라는 '실전 경험자' 타타라가 지닌 발상, 기술, 준비된 무대에서의 공정한 싸움밖에 경험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르는 모든 부분들을, 놀랄 정도의 속도로 흡수해 나아갔다.

"두 번째 낭비는 '시간' 낭비야. 에델베르크의 산길은 3천 미터 지점에서부터 바깥 부분을 빙글빙글 도는 형태로 돌며 오르는 일직선 길이 되어 있으니, 도보로 오르려면 이 제 5캠프를 반드시 통과하게 되지. 《비익》과 한바탕 하려고 찾아왔는데 암벽등반이나 즐길 멍청한 녀석은 일단 없을 테니, 그저 멍하니 서서 적이 오길 기다리는 건 완벽하게 멍청한 짓거리란 말이야. 시간낭비잖아.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니, ──저런 멍청이들과 싸우게 되는 거야."

그리 말하고, 타타라는 제 5캠프의 입구를 통해, 산길을 내려다보았다.

정확하게는, 그 너머에서 오는──소음의 무리.

배기가스를 뿜어대는 바이크와 버기에 탄, 농촌에서 만났던 가일 일행들이다.

'형님! 그 때 봤던 계집년들이 저런 데에 있는뎁쇼!'

'여기라면 키바 녀석들에게 방해받을 일도 없을 테니 처리해 버리죠!'

'흠, 좋아! 단 저 빨간 년은 손대지 마! 이 몸의 거니까!'

' ' '히얏하아아아아아!!!!' ' '

"저 녀석들, 바이크를 타고 여기까지 올라온 거야? 재주도 좋네."

그리 중얼거리는 스텔라의 뒷통수를, 타타라는 손바닥으로 세게 후려쳤다.

"아얏! 뭐, 뭐 하는 거야!"

"저 녀석들의 재주가 좋은 게 아냐. 네가 멍청한 거지."

"에? 내가!?"

"네가 어제 멍하니 낭비한 시간을 좀 더 유효하게 썼으면, 저런 멍청한 녀석들이 여기까지 올라올 일도 없었어. 네 승리조건은 6일간 이곳을 지키는 것. 즉, '농성전' 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그렇구나!!"

그 순간, 타타라가 하려던 말을 이해한 스텔라가 그 자리에서 다리를 높이 들어 바닥에 내리쳤다. 각력으로 대지를 뒤흔드는, 《용진각》.

그 위력은 회색 산의 지표에 균열을 만들어냈고, 그 균열은 똑바로 가일 일행을 향해 뻗어 나아간 다음, 그들의 발치의 지면. 산길을 붕괴시켰다.

' ' '갸아아아아아아아악!!!!!' ' '

순식간에 붕괴에 휘말려, 6천 미터의 급경사를 굴러떨어지는 가일 일행. 그렇다. 이것이 타타라가 말하려 했던 것이다.

"여길 지키기만 하면 되는 거라면, 애초에 '싸울' 필요가 없었던 거야! 다른 녀석들이 못 올라오도록 방해만 해도 된다는 거지!"

"그래. 전투를 벌이게 되는 시점에서 '농성전'에서 패배한 거니까."

애초에 자신 있는 곳으로 들여보내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특히 이번처럼, 일정 시간동안 지키는 것이 목적인 경우, 그 일정 시간 내의 '전투 시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가 승리로 직결될 것이다.

"산길의 요소를 파괴해 두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공격을 방해하기엔 충분해. 자, 알았으면 빨리 다 부숴 놓으라고."

"....."

하지만 그리 재촉하는 타타라의 말에 스텔라는 응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마치 숟가락으로 떠 놓은 듯 붕괴된 경사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 야. 다 말해 놓고 뭘 멍하니 서 있어?"

"아, 응. 이것도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엉?"

그 때였다.

'역시 제 5캠프에 아직 있었어! 《홍련의 황녀》야!!'

"윽!"

가일 일행과는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훤히 뚫린 고층의 대기에 울려퍼졌다. 시야 너머엔, 산 외곽을 빙 둘러 이어진 산길 끝.

그 곳에서, 노도와도 같은 기세로 달려오는 집단들.

그것은

'어제는 잘도 해주셨겠다!'

'하지만 이미 그쪽의 방식은 다 눈치챘어! 두 번은 안 통해!'

'먼저 공격해 온 건 너희들 쪽이야! 어떤 꼴을 당하더라도 후회해 봤자 늦었다고!!'

어제 스텔라가 이곳 제 5캠프에서 격퇴한 현상금 사냥꾼들의 집단이었다. 그들은 한 번 제 4캠프까지 내려간 다음, 거기서 태세를 가다듬고 다시 공격을 가해 온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지, 제 5캠프로 통하는 길은 크게 파여 붕괴되어 있었다.

똑바로 올 수는 없었다.

하늘을 날아올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발이 묶여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장점을 이용해 손쉽게 격퇴──

'어, 어라!?'

그 직후, 타타라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부릅떴다. 무너진 산길이, 깔끔하게 원래대로 돌아와 있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하고 타타라는 혼란에 빠졌다. 한 편 제 5캠프로 돌진해 오던 집단들이 붕괴된 길 위를 달려오고 있었고,

──그러려 할 찰나

"《양염의 암막》──해제."

지금 막 밟으려 했던 길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렇다. 무너진 길이, 원래대로 돌아온 괴기현상. 그건 모두 스텔라의 신기루를 만들어내는 노블 아츠 《양염의 암막》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

' '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

힘차게 발을 딛으려 한 남자드은, 가일 일행을 뒤따라 굴러떨어졌다. 서둘러 멈추려 한 후속 타자들도 그들보다 더 뒤에서 달려오던 자들에 의해 떠밀려 절벽 밑으로 떨어졌다.

"좋았어~! 깔쌈하게 슛~!"

환각에 당해 거의 대부분의 전력을 잃은 현상금 사냥꾼들은, 다시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스텔라는 그저 타타라의 말을 따를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배우고 있는 실전의 지혜. 그 본질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최선의 방식을 택한다. 그 적극성을 이용해 스텔라는 경이적인 속도로 학생끼리의 싸움에선 얻을 수 없는, '환경'이나 '지형'을 이용한 전투법을 익혀 나아갔다.

그리고, 에델베르크에 온 뒤로 3일 째──

'세 번째 낭비는 '여유'의 낭비야! 10의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상대에게 100의 힘으로 이긴다는 건 바보같은 짓이지! 특히 지구전에 그런 잡스러운 행동이 쌓이고 쌓이면 치명상이 되기 마련이야! 알겠냐! 쉽게 이기는 것과, 잡스럽게 이기는 건 다른 거야! 약한 상대에게 힘을 아무렇게나 쓰지 마! 편하게 이길 수 있는 상대에겐 편하게 이길 수 있는 방식을 취해! 거기서 만들어진 '여유'가, 가장 중요한 타이밍에 좋게 작용되기 마련이니까!'

...라고 지적하려 했던 타타라의 말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

타타라가 잠자코 내려다보는 곳.

거기엔 후미의 50명과 합류를 끝내고, 거기에 가일 일당을 합쳐 100이 넘는 엄청난 머릿수로 공격을 가해 오는 현상금 사냥꾼의 군단을 상대로, 고작 혼자서 싸워 나아가는 스텔라의 모습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싸움은 첫 날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타타라가 지적하기 전부터.

첫 날처럼 하늘을 나는 것도, 큰 불을 뿜지도 않았다.

《비룡의 죄검》에 의한 검기. 그것만으로, 스텔라는 남자들을 압도해 나아갔다. 잇키가 너무나도 뛰어났기에 인상이 옅어져 있었겠지만, 스텔라의 체술도 그 수준이 상당하다. 강완에 의한 참격은, 한 번 휘두를 때마다 5명 남짓의 적을 확실하게 쓰러뜨려 나아갔다.

이젠 한 명을 처리하는 데에 칼을 한 번 휘두르는 것조차 아까워하고 있었다. 타타라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집중력으로, 의도적으로 상대를 자신의 사정거리로 끌어들여,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전과를 내는 행동을 선택하고 있다.

"읏───!"

즉, '칼로리', '시간'. 지금까지 타타라가 지적한 방향성.

실전이라는 투쟁의 성질.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흡수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 성과──

말할 필요도 없는, 자신의 잘못을 이해하고 있는 모습.

그 잘못을, 바로잡은 것이다.

'더럽게 가르치는 보람 없는 학생이구만....'

이해하는 것이 빠르다,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은, 그야말로 이걸 두고 하는 말이다. 여기에, 타타라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대단해. 대사의 컨트롤을 이 환경에 '순응'하기 위해 쓰는 것만이 아닌, 행동이나 노블 아츠에도 응용하여 《용의 대사》에 의한 칼로리 소모조차 억제하고 있어..."

스텔라의 싸움을 타타라의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오드아이의 여성. 《흑기사》 아스칼리드가 말한 대로, 스텔라는 심폐 기능에 의한 대사 컨트롤을 이미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 환경만이 아닌 자신의 행동, 상대하고 있는 적과 상황에 따라 세세하게 구분해 자신의 신체 능력을 제어하고 있었다.

이전처럼 어떤 상대, 어떤 상황에서도 같은 양의 대사로 임하지 않고. 이것으로 스텔라는 자신의 행동, 그 모든 것들을 극한까지 절약하고 있었다. 에델베르크에 오기 전의 반 정도 수준의 칼로리 소모로, 《용의 대사》를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 있었다.

그 결과, 당연히 지구력이 향상되었다. 첫 날의 두 배나 강한 적을 상대하더라도, 숨도 하나 헐떡이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그녀가 당신의 도움을 받은 건 정답이었어."

"헛소리 집어쳐."

아스칼리드의 말을, 타타라는 코웃음과 함께 답했다. 자신이 가르쳐 준 것 따윈, 아무것도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스텔라가 원래부터 갖고 있었던 힘.

확실히 자신은 그 사용 방법을 가르쳐 주긴 했지만, 그건 그냥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다.

"내 조언 따위가 없어도, 저 녀석은 알아서 배웠을 거야."

대사의 사용 방식도, 환경을 이용한 싸움 방식도.

그걸 확신할 만한 센스가, 그녀에게 있는 것이다.

"천재야. 우리 따위와는 수준이 다를 정도로."

고작 한 시간.

첫 날의 10분의 1 정도의 시간만으로, 드디어 마지막 한 적을 쓰러뜨린 스텔라를 보며, 생각했다.

처음엔 생각도 못 한 예감.

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조금씩 가슴 속에서 부풀어오르는, ──기대.

그걸 인정하는 것을, 타타라는 이제 주저하지 않았다.

"어쩌면, 해낼 수 있을 지도 몰라."

꼴사나운 헛걸음질에 끝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이 무모한 원정.

세계 최강의 검사와의 대전.

어쩌면, 이 천재라면, 자신이 예상치 못한 결말을 거머쥘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다음날. 스텔라 일행이 에델베르크에 온 뒤로 4일 째.

3일 째의 대패로 인해 상대 그룹은 붕괴.

그 수의 절반 이하가 산을 내려갔고, 남은 자들은 마지막 특공을 감행했다. 이 때의 멤버는, 거의 대부분이 선발조였다. 첫 날 때, 스텔라와 싸운 자들이었다. 첫 날의 자신들의 우세가, 그들의 머리에서 물러나자는 생각을 둔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결국, 첫 날의 스텔라의 고전은, 그녀가 자신의 힘에 되려 짓눌려버린 부분이 더욱 컸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첫 날의 그녀가 아니었다. 자신의 혼에 둥지를 튼 용. 그 힘을 지금까지보다 더 숙련되게 쓰기 시작한 스텔라에게, 반이 괴멸된 오합지졸들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고, 이 특공도 허탈하게 실패. 헛수고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어 찾아온 5일 째.

드디어 에델베르크를 올라오는 적은, 한 명도 없어지게 되었다.

◆◇◆◇◆

"아아~~ 좋다~~~~! 오랜만에 하는 목욕~~ 살 것 같다아아~~"

에델베르크에 온 뒤로 5일 째.

이제 하루만 무사히 보내게 된다면, 에델바이스와의 계약을 다할 날까지 완수해 낸 스텔라는, 그 날 밤에 제 5캠프 구석에 있는, 바위가 모여 웅덩이진 곳에 눈을 모아 자신의 불꽃으로 녹여 따뜻한 물로 만들어냈다.

즉석 노천 목욕탕이었다.

몸을 담근 스텔라가 내뿜는 열로 물의 온도를 유지하는 구조로 만들어진 욕탕에 몸을 담근 타타라가, 스텔라의 옆에서 투덜댔다.

"뭔가 돌 냄비 전골이 된 것 같아..."

여기에 스텔라는 뺨을 부풀리며

"불만 있으면 안 들어오면 되거든요~"

"불만이 있을 만도 하지. 연비가 좀 좋아졌다고 또 이렇게 낭비해 대고 말야."

"이건 낭비가 아냐. 내일 아침엔 잇키랑 합류할 거니까. 5일간 씻지 못한 몸인 상태로 만나다니, 여자애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그러니까 이건 필요 경비라구."

"너무 신경쓰는 거 아냐? 내가 예전에 미인계로 꼬셨던 놈이 있는데, 그 녀석은 땀냄새가 좋다던가 뭔가 지껄여 댔었는데 말이지."

"내, 내, 내 잇키랑 그런 고수준 변태랑 같이 취급하지 마!"

"뭐, 그런 걸 좋아할 법한 건, 어느 쪽이냐고 하자면 네 쪽이겠군."

"아, 안 좋아하거든! 이, 잇키가 없는 틈에 잇키의 이불 속에 들어간 적도 없거든!"

뭔가 자기 입으로 털어놓기 시작한 스텔라를 곁눈질하며, 타타라는 바위에 등을 기댄 채 어깨까지 욕탕에 몸을 담갔다.

오랜만의 목욕은, 확실히 기분이 좋았다.

힘들게 절약한 마력과 칼로리를 써 가면서까지 할 건 아니었지만.

'하지만 뭐, 오늘은 적도 안 왔으니까.'

하루동안 마력을 안 쓰고 놔두는 것도, 그건 그거대로 감이 둔해질 테니 좋은 일이 아니다. 감이 둔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정도의 운동은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타타라도 그 이상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았고, 그저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을 올려다보며 생각지 못한 레저를 즐겼다.

"....저기, 타타라."

침착해진 스텔라가, 약간 우물거리며 말을 건네 왔다.

"뭔데."

답하자, 스텔라는 겸연쩍다는 듯 눈을 돌리며

".....고마워."

그렇게, 타타라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하?"

"이, 이렇게 5일을 넘길 수 있었던 건 모두 네 덕이니까. 《테스타먼트》로 인해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위험을 겪으면서까지 나한테 조언을 해 준 덕이니까. ....나 혼자선, 분명히 이렇게까지 해낼 수 없었을 거야. 그러니까, 고마워. 네가 여기 있어 주어서 정말 다행이야."

이 스텔라의 감사 인사에, 타타라는 살짝 당혹해 했다. 아스칼리드에게도 말한 거지만, 스텔라의 성장은 모두 그녀가 원래 갖고 있던 능력이다. 단 그 사용 방법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했을 뿐. 아마 자신의 조언이 없었어도, 갓난 아기가 알아서 자기 다리로 일어나듯, 요 6일만에 스텔라는 자신의 힘으로 그걸 체득했을 것이다.

그러니 타타라는, 자신이 무언가를 해 주었다는 실감 따윈 없었다.

뭐, 애초에 그걸 솔직하게 본인이 인정할 정도로 타타라의 성격은 똑바르지 못했고

"킥킥킥! 헛소리 집어쳐. 누가 너 따위를 위해서 위험한 꼴 따위를 감수할까보냐. 난 너처럼 둔탱이가 아니라고. 《테스타먼트》의 허점 따위, 《비익》의 이야기를 들은 시점에서 이미 확신하고 있었지. 위험성 따윈 조금도 없었다고. ...그래도, 뭐 네 자신이 무능하다는 건 잘 알고 있어서 참 다행이네. 이 모든 게 내 가르침이 신이 내린 기술이나 다름없었기에 이루어진 거라고! 내가 없었으면 지금쯤 넌 그 잔챙이 녀석들한테 엉망진창 얻어맞고 질질 짜며 집에나 갔을 거다. 한껏 감사하라고!"

"이전에 했던 말이랑 완전 달──푸웁."

자신과 스텔라처럼 노천탕에 몸을 담근 아스칼리드의 입을, 손으로 쏜 물총으로 막았다. 그런 그녀에게, 스텔라는 "물론 감사하고 있어." 라고 말한 뒤

"이 답례는 버밀리온에 돌아가서 반드시 갚을게. 맞다, 타타라는 초콜릿 좋아하지?"

"엉? 뭐가?"

"뭐냐니, 맨날 엄청 먹고 있잖아. 그러니까 '포니 하우스'의 초콜릿 1년분 무료 티켓 같은 건 어때?"

이 스텔라의 권유에, 타타라는 퉁명스레 답했다.

"필요 없어. 확실히 초콜릿은 좋아하지만, 무료로 먹는 초콜릿은 별로 안 좋아하니까."

"뭐야, 그게? 이상한 데를 신경쓰네?"

"신경쓴다기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밴 습관이야."

"습관?"

지금까지 했던 대화 중 어느 것과도 연결되지 않는, 의미 모를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스텔라. 여기에 타타라는 김이 피어오르는 수면을 바라보며, 머나먼 기억을 되짚으며 답했다.

"내가 태어난 곳, 《검은 집》은 가족 모두가 '암살자'로 살아가는 가문이라 말이다. 나도 그 중 하나로 태어나 자라났지."

《검은 집》.

그 역사는 천 년 이상을 자랑하고, 《해방군》과 계약을 맺은 뒤로는 그들의 흉수로서, 어둠의 세계보다 한 층 더 깊은 어둠 속에서 그들의 활동을 돕고 있었다. 당연히, 그 실력은 어둠의 세계에 있어 비교할 데가 없었고, 《검은 집》에 태어난 자, 그리고 《검은 집》의 일원이 된 자들은, 그 모두가 태어난 순간부터 일류의 암살자가 되기 위한 수행을 받게 된다.

살아 있는 교재를 이용한 암살 훈련.

자신의 소식을 감추고, 사회의 그늘 속을 걸어다니는 은밀 훈련.

고용주의 정보를 죽어도 발설하지 않는, 여러 고문에 버티는 인내 훈련.

영하의 설산 속에서 옷도 식량도 주어지지 않고, 1개월을 생존하는 순응 훈련.

그리고, 밀실에서 동고동락한 다른 자매들과 살육전을 벌여, 최후의 1인이 남는 선별전.

그런 여러 훈련들을.

"오락 따윈 아무것도 없었어. 모든 시간을, 그저 우수한 암살자가 되기 위해 쓰던 나날이었지. 그러니 우리들은 엄마의 젖의 맛도 몰라. 먹어 본 적이 없으니까. 식사는 갓난아기 때부터 모두 맛도 식감도 없는 영앙제나 프로틴으로 철저한 영양관리를 받게 돼. 거기다 그런 맛없는 식사에조차 3일에 한 번은 독이 발라져 있었으니, 진짜 죽을 맛이었지."

다시금 생각해 보니 진짜 최악의 집이었다고, 타타라는 생각했다.

"....그런 머리가 돌아 버릴 것 같은 매일 속에서, 단 하나의 오락을 꼽자면, 일이 잘 해결 됐을 때에 '포상'으로 주어진 초콜릿이었어."

단 한 알의 작은 싸구려 초콜릿.

일본의 어린 아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아무런 감개도 없이 소비하고 있는 물건.

그래도 그 때의 자신들에게 있어, 살아가는 보람이었다.

입에 퍼지는 그 달콤함만이, 지옥과도 같은 날 속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니 초콜릿은 내게 있어 일의 보수 같은 거라 해야 하나, 노동과 함께 딸려 오는 것이니, 공짜로 받아 봐야 기분 좋게 먹을 수가 없다는 말이야."

"그랬, 구나...."

자신의 이해와 상식이 닿지 않는 어둠의 세계.

그런 곳에서 살아온 자의 생생한 말에, 스텔라는 할 말을 잃었다.

그런 그녀에게, 타타라는 이어 말했다.

"나한테 답례를 하고 싶으면, 그런 것보다 내가 더 원하는 게 있어. 그걸 내게 넘겨."

"그게 뭔데?"

"《악의 꽃》의 목."

"....!"

"그 녀석은 내 타깃이야. 내가 처리하겠어."

"....확실히, 아바마마를 기습한 《악의 꽃》이란 블레이저는, 너와 같은 가문에 속한 '암살자'였었지. 하지만, 너희들의 조직을 배신하고 너 이외의 '암살자'들을 모두 죽였던.."

스텔라가 모친인 아스트레아에게서 들은 이야기.

이 말에, 타타라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래. 부모도 다른 언니들도 모두 말야. 《검은 집》의 생존자는 현재 나 뿐. 그러니, 내가 처리할 거야."

"원수를 갚는다, 라는 거구나."

"뭐? 전혀 아닌데."

"에.."

"그 녀석들이 어떻게 뒈지건 내가 알 바가 아니야. 다른 사람의 목숨을 돈장난질로 쥐락펴락하는 비열한 개새끼들의 말로 따위, 비참해도 당연한 거지. 정 따윈 요만큼도 없어. ....하지만, 그 망할 언니 년은 하필이면 우리 클라이언트에게도 손을 대버렸어. 내가 그 망할 년을 죽이려 하는 건, 《검은 집》의 '암살자'로서 책임을 지기 위해서야. 그냥 내버려두면, 《검은 집》의 신용에 금이 갈 테니까."

'암살자'는 세계에서 가장 가는 신용 가업. 그걸 훼손하는 건, 프로로서 절대로 있어선 안 되는 일. 그리 말하는 타타라에게, 스텔라는 자신의 질문을 던졌다.

"....저기, 방금 이야기를 듣는 한, 타타라는 좋아서 '암살자'가 된 게 아니지? 어느 틈엔가, 그렇게 된 것 뿐이라고.."

"그게 어쨌는데."

"그럼,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런, 초콜릿 하나라는.. 그런 조그만 행복밖에 주어지지 않은 집안인데... 이제 널 얽매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 자유롭게 살면 되잖아...."

요 며칠간을 함께 보내고, 싫은 녀석이라는 이미지는 변함이 없었지만, '사악'한 인물은 아니란 건 알 수 있었기에.

어둠 속에 살고 있지만, 오르 골 쪽의 인물들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

그렇다면, 이제 그런 어두운 일 따위는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이.

하지만 여기에 타타라는

"당연하잖아. ──프로니까."

자신의 안에 정리되어 있는 확고한 이유를 답했다.

확실히 좋아해서 고른 직업 따위는 아니었다. 사리분별이 가능하게 됐을 무렵엔, 이미 '암살자'가 되어있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정도 뭣도 없이, 그저 돈으로 거래하는, 그 비열한 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경위가 어찌 됐건 난 다른 사람의 목숨으로 번 돈으로 밥을 벌어 먹고 살아 왔어. 그런데 집안이 망했으니 그걸로 끝이라는, 그런 한심해 빠진 짓거리는 하고 싶지 않아."

그건, 비겁하다고 타타라는 생각했다. 설령 바라지 않은 길이라 할지언정, 자신이 그 하찮은, 입안에서 순식간에 녹아 없어지는 사소한 행복을 위해, 타인의 목숨을 빼앗은 건 사실이니까.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사실.

그렇다면 어떡해야 할까.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속죄의 길을 걷는 것.

하지만, 이것은 무리다.

그 이유는, 애초에 자신에겐 남을 죽이는 데에 죄악감 따위를 조금도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런 윤리 따위, 태어난 뒤로 단 한 번도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었다.

성의 없는 사죄만큼 남을 바보로 만드는 짓은 없을 터.

그렇다면──걸어갈 길은 단 하나 뿐.

"난, 개처럼 살아가다, 개처럼 처참하게 뒈져 버릴 거야. 내 목숨의 마지막까지 《검은 집》의 '암살자'로서. 그걸 끝까지 해낼 수 있으면... 이 더러운 직업에도 조금은 긍지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들어."

사람으로서의 '이름'도 없는, 살아갈 곳도 없는 존재. 그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누군가의 '이름'을 빌릴 뿐인 인생.

그렇기에, 대충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죽기 직전, 자신의 일생을 돌아봤을 때, 누구의 공감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만은 그 모든 것을 납득하고 싶다.

"그러니, 《악의 꽃》은 내가 처리하겠어. 그 누구도 방해하게 놔두진 않을 거야."

".........."

타타라의 확고한 자아. 자신의 이름을 갖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린 공허한 존재이기에, 그 이름도 없는 길을 한 가지 신념을 갖고 관철하고 싶다는, 강한 바람.

이건 선악으로 판별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이 소녀는 이미,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자신의 혼에 새겨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굽힐 수는 없다.

타인의 말 따위로 굽힐 수 있을 리가 없다.

──스텔라 버밀리온이 《홍련의 황녀》를 버릴 수 없는 것처럼.

스텔라는, 그걸 이해하고

"좋아, 결정했어!"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뭐냐?"

"네게 해 줄 보답! 이 싸움이 끝나면, 황궁에서 전승 기념 파티를 열 거야! 거기서 너한테 '포니 하우스'의 특대 초코 케이크를 만들어 줄 거구!"

"야, 너 내 이야기 듣고는 있었냐?"

"10년 전의 《연맹》 회담에서 나온, 개인은 구입도 못 할 특별 메뉴야! 진짜 엄청 크고 맛있어! 이 기회를 놓치면 '암살자' 같은 어두운 일을 하고 있는 넌 평생이 걸려도 못 먹을 걸?"

"그러니까 그게 뭐 어쨌다는 건데..."

"지지 마."

"!"

"네가 죽으면, 난 울 거야. 펑펑 울 거야. 이래도 얌전히 죽을 거냐, 라는 기세로 성대하게 국장을 치를 거야. 말해 두겠는데, 우리 나라 국장은 진짜 어이없을 정도로 시끄럽거든? 그렇게 인생을 다하면 네게 있어서도 최악 중에 최악이겠지? 그러니까── 절대로 지지 마."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비색의 두 눈동자. 한 치 흐림 없는 빛에, 타타라는 확신했다.

거짓말이 아니다. 이 여자는, 진짜로 울 것이다.

자신같은 인간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확실히

'최악의 꼬락서니로 죽는 게 되겠구만.'

'암살자'의 죽음에 누군가가 슬퍼하다니. 그런 건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몇 번이나 말하게 하지 마. 난 프로야. 그딴 아마추어 따위한테 질까보냐."

그런 최악의 죽는 꼴은 사양하고 싶다는 투로, 타타라는 이를 드러내며 웃음과 함께 맹세했다.

이 싸움의 승리를.

◆◇◆◇◆

자신의 승리르 맹세한 뒤, "그것보다 말이다." 하고 웃음을 짓궂은 투로 바꾼 다음, 말했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니 걱정이나 하지 그러냐. 넌 내일 당장 세계 최강의 검사와 싸우게 될 거라고? 설령 《비익》이 잘 봐줘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건 그 《괴뢰왕》이야. ....방금 그 특별 케이크 약속, 오히려 다른 사람한테나 제대로 해 두라고. 네가 죽는 건 내 알 바 아니지만, 멋대로 약속을 어기는 건 기분이 나쁘니까 말이다. 킥킥킥."

"그렇게 될 리는 없으니까 필요 없어."

타타라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답한 스텔라는 "아, 그러고 보니" 하고 여러 모로 바빠서 물어보지 못했던 걸 떠올리고, 아스칼리드를 바라보았다.

"아스칼리드 양. 당신은... 오르 골의 누나였지?"

"....그래."

"그리고, 지금은 적대하고 있고."

"......응."

"왜 그렇게 된 건지, 물어봐도 괜찮을까? 이후에 있을 대표전에, 등을 맞대고 싸울 동료로서 알고 싶어. 당신이 싸우는 이유를."

"....."

이 스텔라의 질문에 답하는 데에, 아스칼리드는 약간의 침묵을 필요로 했다.

각오를 굳히기 위한 시간을.

"내가 싸우는 건... 내 죄를 갚기 위해서야."

"죄를, 갚는다?"

"그래. 난 그걸 위해 지금까지 살아 왔어. 그 날로부터, 쭉...."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신의 후회의 시작. 자신의 죄의 기억을───...

◆◇◆◇◆

오르=골, 그리고 아이리스=골.

두 남매는, 프랑스의 농촌에서 작은 음식점을 경영하는 부모 사이에 태어났다.

듬직한 부친과, 자상한 모친. 특별히 풍족한 것도 아니었지만, 가난하지도 않은, 어디에나 있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거기서, 둘은 딱히 부자유스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음이 비뚤어질 여지 따윈 없는, 아무 잘못된 점 없는 교육과, 충분한 애정을 받으며.

그런 양친 덕에, 둘은 마을에서 아주 착한 남매라는 평판이 나 있었다. 특히 남동생 쪽인 오르=골은 사소한 것에도 배려가 깊은 사교적인 성격이었고, 동년배 아이들은 물론 어른과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도 잘 따랐고, 어렸을 때부터 우수한 블레이저로서의 재능을 나타낸 것까지 해서, 마을의 인기 스타였다.

약간 내성적인 아이리스에겐, 그런 동생의 모습이 너무도 눈부셨고, 동시에 자랑스럽게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잘못을 부르는 원인이 되었다.

그 이유는, 아이리스의 동생의 혼이,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악마.

교활한 악마의 그것.

악마에게 아무리 애정을 쏟는다 할지라도, 그 악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혼은 태어날 때부터, 더럽혀져 있었으니까. 오히려 양친의 교육은, 악마에게 지혜를 가져다주었을 뿐.

자신의 왜곡된 혼을 숨길 지혜를.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부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만나는 사람, 알게 된 사람, 그 모두에게 호감을 가져다주기 위해 행동하는, 그런 어린아이.

동생은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도록, 자신을 연기했을 것이다.

그렇게 악마는 자신이 배운 인간 흉내를 내며, 호시탐탐 자신의 신뢰를 쌓아 나아갔다.

더욱 큰 붕괴를 그리며, 계속해서 나무를 쌓아 나아가듯이.

약속된 종말을 향하여.

하지만, 그건 아무도 알아챌 수 없었다.

부모도, 가장 가까이 있던 누나인 자신도.

그 누구도 말이다.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자랑스러운 동생이었다.

정말, 좋아했다.

그러니, 눈치 챌 수가 없었고, ──드디어 그 날이 찾아왔다.

마을의 예배당에서 열린, 그의 생일 파티.

마을 사람들의 축복을 받은 동생은, 본 적 없던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야. 이렇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내 행복을 바라고 있으니까. 그러니, 난 결정했어.

오늘 이 날을, 내 인생 최고의 날로 정하기로──

그리고, 악마의 광연이 시작되었다.

자신의 탁월한 능력으로 마을 사람들의 모든 행동의 자유를 빼앗고, 예배당에 가둬 놓고, 부수기 시작했다.

그 방법, 수순은, 모든 사람마다 제각각 달랐다.

파괴하는 부위의 순서. 방법. 그 모든 것들이, 똑같은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마, 평소에도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흉내를 내며, 눈앞의 인간을 어떻게 파괴할 것인가. 한 사람에게 하나씩, 최대한의 절망을.

폐쇄된 예배당 속에서, 처음엔 노성이, 이어선 비명이, 이윽고 한결같이 자비를 갈구하는 기도가 이어졌다. 그 광란의 모든 것들을, 구역질이 날 정도로 생생한 냄새가 나는 피웅덩이 속에서, 오르=골은 황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까지 오르=골이 지은, 사교성 있는 애교 섞인 미소와는 달랐다.

사람의 마음에 들기 위한, 남의 호감을 사기 위한, 귀여운 미소와는 달랐다.

즐겁고, 즐거워서, 뺨이 비뚤어지는 것을 억누를 수 없는, 미소.

윤곽조차 녹아 흐트러질 것 같은, 희열에 찬 웃음.

이 때가 되어서야, 아이리스는 겨우 알 수 있었다.

사람의 것이라 생각할 수 없는 그 처절한 표정에.

이건, 사람과는 다른 존재.

태어나면서 사람과 공감할 수 없는 가치관을 지닌, ──악마라는 것을.

그렇지 않고서야, 이 지옥 속에서 그런 만족감에 가득 찬 표정을 지을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예배당 속에서 살아남은 게 우리 둘만이 되었을 때... 그제야 1주일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모두 없어진 이변을 알아챈 외부 사람이, 경찰을 이끌고 예배당에 쳐들어왔고, 광연은 막을 내렸어. 그것은 내 몸을 조종하여, 경찰관과 싸우는 틈을 타 행방을 감추고, 난 내 자신의 능력으로 내 목숨을 부지하여 정부의 보호를 받게 되었지."

아스칼리드는 스텔라와 타타라에게 자신의 몸에 일어난 참극, 너무나도 처참한 사건이었기에, 블레이저 전체의 사회적 입장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을 가능성을 염려하던 《날개의 재상》에 의해, 철저하게 은폐된 무차별 대량 학살 사건 《피에 젖은 십자가》의 전말을 털어놓고, ....상기되기 시작한 공포와 절망의 기억, 혼에 눌어붙은 각인의 고통에 벌벌 떨기 시작했다.

"마을도, 가족도, 친구도, 그 모든 것이 없어졌어. 살아남은 내게 남은 건... 후회 뿐. 좀 더 빨리, 그것의 정체를 알아챘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라. 아무도 죽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런, 이젠 돌이킬 수 없는... 너무도 늦은 후회를.."

아스칼리드는 기억하고 있다. 죽어가던 모두의 고통에 찬 표정. 자신의 손으로 죽여 버린 부모의 절망.

그 악마의 광연의 모든 것들을.

──그 모든 것들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왜, 어째서, 어째서... 알아채지 못했던 것인가.

너는, 언제나 그 악마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잖아, 라고.

....그것이 자신의 죄라고, 아스칼리드는 참회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사건이 벌어진 뒤, 그녀는 인생의 모든 것들을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데에 쓰기로 결심했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후회에 내달린 채, 어떠한 과혹한 수행이라도 극복하여, 힘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오늘 이 날이 되고서야 겨우, 그것이 모습을 나타냈어..."

지금까지 아무리 찾아 봐도, 인형밖에 찾아내지 못했던 《괴뢰왕》이.

자기 자신이, 직접 나섰다.

──천재일우의 기회이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 이 악마를 붙잡을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른다.

아니, 그렇기는 커녕 두 번 다시 잡을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반드시, 여기서 막겠어. 그 피에 젖은 밤을 끝내, 모두의 원을, 반드시 갚겠어. 그게 내가 싸우는 이유...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의 모든 것..."

떨리는 하얀 어깨를 꼭 끌어안고, 아스칼리드는 자신을 고무시키듯 읊었다. 그런 아스칼리드의 손에, 스텔라는 자신의 손을 얹고 사죄했다.

"괴로운 이야기를 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아냐. 신뢰를 얻기 위해선, 꼭 이야기해야만 했을 부분이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말에, 스텔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말해줘서 고마워."

지금 이야기로 확실하게, 아스칼리드와 자신의 목적이 일치하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러니, 스텔라는 아스칼리드의 손을 강하게 잡고, 말했다.

"힘을 모아서, 그 녀석을 쓰러뜨리자. 그런 끔찍한 짓을, 두 번 다시 못 벌이게 말야."

".....응."

여기에 아스칼리드도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추억의 공포에 창백하게 굳어 버린 표정을, 아주 약간 부드럽게 풀으며.

그런 아스칼리드의 모습을

"........."

타타라는 혼자서, 스텔라와 아스칼리드의 대화를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다.

뭔가... 당혹해하는 표정으로.

"타타라?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냐."

하지만 스텔라의 질문에 타타라는 입을 다물었고, 그 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

한 편, 같은 시각.

에델베르크의 농촌엔, 약간의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부터 10분 정도 전의 일.

스텔라라는 장해에 맞서 싸울 팀이 붕괴되어, 에델바이스 토벌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 현상금 사냥꾼 그룹이 철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뭐, 잘 됐잖아? 그런 꼬맹이한테 져 버려서야, 《비익》의 앞에 서는 건 자살행위라고. 그러니 친절하게도 너희들의 자살을 막으러 온 거야. 목숨의 은인인 전하에게 감사하도록.'

마을 술집에 있던 붉은 라이더 슈트의 남성. 카운터 자리에 앉아 있던 《붉은 전갈》 램벌트 러프의 한 마디가, 예기치 못한 방해에 의해 감정이 곤두서 있던 그들의 신경을 건드린 것이다.

'뭐라고, 이 자식이....! 산을 올라가기도 전에 쫄아 있는 겁쟁이 주제에!'

'우리들이 그딴 잔챙이인지, 직접 확인해 볼 테냐? 엉!?'

'둘러싸! 죽여 버려!!'

가일을 필두로 거친 성격의 남자들이 여기에 덤벼들고, 순식간에 소란이 벌어진 술집. 이미 투쟁의 회피는 불가능한 분위기였다. 여기에 러프의 옆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허름한 일본풍 옷의 남성, 《검랑》 키바 요시카즈는 "싸울 거면 밖에서 싸워." 라고 낮은 톤으로 말했고, 러프는 그의 말에 따라 분노에 활활 타올라 있는 일동을 데리고 혼자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술집 앞의 마을 광장에는... 러프가 데려 온 50명의 현상금 사냥꾼이, 한 명도 남김없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렇다. 러프는 단 혼자서, 첫 날의 순응의 부자유스러움이 있었다고 해도 스텔라를 반나절이나 괴롭혔던 남자들을, 고작 10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만에 정리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하다.

현상금 사냥꾼들은 러프를 산에 오르기도 전에 겁을 먹은 겁쟁이라고 야유했지만, 그건 큰 착각이다. 러프와 키바, 이 둘은 확실히 현지에 온 뒤로 10일간, 에델베르크에 오르는 일은 없었지만 겁을 먹은 것은 아니다.

일류란, 사전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는 법.

스포츠 세계에 있어서도, 최고의 육상 선수는 시합 1주일 전부터 식사나 훈련 메뉴를 세세하게 조정, 육체에 허용이 가능한 한의 에너지를 비축해 두어 시합 당일에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이걸 탄수화물 로딩이라고 한다.

둘이 하고 있던 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요 10일간, 그들에게 찾아 올 《비익》과의 결전을 대비하여, 자신의 체력, 마력, 정신의 모든 것들을 그 순간을 위해 최고조가 되도록 컨트롤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는 《비익》. 조금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다. 둘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건 그야말로, 그들이 진정한 강자라는 증거.

그리고 그들이 결전의 날로 정한 날이, ──바로 오늘이다.

즉, 지금의 러프는 자신이 지닌 신체능력을 한계치까지 쓸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고작 패주한 자들이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렇게 될 것은, 명백한 섭리라 할 수 있었다.

"헤에~ 대단한데. 저 붉은 형씨."

"도전자끼리 싸우는 건 언제나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일방적인 싸움은 본 적이 없는데."

이 싸움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일방적인 진압작업. 한밤중의 소동에 집에서 나와 구경을 하던 마을 사람들도, 러프의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에델바이스가 바로 곁에 있는 곳인 연유에, 그들은 수준 높은 싸움을 자주 봐 왔다.

그런 그들의 눈에도, 《붉은 전갈》 램벌트 러프는 자주 못 볼 강자였던 것이다.

"어머나~ 어떻게 될까, 하고 걱정했는데...강하네, 당신."

혼자 광장에 서 있던 러프에게 말을 걸어 온 것은, 술집에서 상태를 살피러 온 여주인이었다. 곁에는 러프의 우인인 키바를 데리고 있었다. 여기에 러프는 두 팔에 현현시킨, 날카롭고 긴 침이 달린 건틀릿 형태의 디바이스 《데스 스팅어》를 일단 해제한 다음, 사죄했다.

"미세스. 그리고 마을 여러부느, 밤 늦게 소란을 피워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래도 일단 정리는 끝났습니다."

"죽인 거야?"

"아니요, 미세스. 안심하시길. 반나절 정도 기절시켜 놓은 것 뿐이니까요."

"호호, 그거 다행이네. 시체 처리하는 것도 여러 모로 귀찮으니까."

"10분이라. 생각했던 것보다 더 짧게 걸렸군."

키바의 말에 러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정말 한심한 녀석들이지. 몸이 달아오르기도 전에 모두들 나뒹굴어버렸어. 이래서야 웜업 거리도 안 되는군. 하지만 뭐, 컨디션 확인은 할 수 있었어."

사전 준비는 막힘없이 완료. 몸은 날개를 단 것처럼 가벼웠지만, 나오는 힘은 마치 쇠망치처럼 묵직했다. 피부 아래에 있는 근육이, 그 깊은 곳에 있는 혼이, 비축해 둔 힘의 해방을 기다리고만 있었다.

틀림없이, 지금의 자신은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상태.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그리고, 이거라면 《비익》과 싸울 수 있다....!

"발트 위기에서의 빚을, 이제야 갚을 찬스가 왔어."

그 때엔 《연맹》과 《동맹》, 각자의 입장에서 병사로서 참전했기에, 자신도 키바도 《비익》이 지닌 인력의 힘에 저항할 수 없었지만, ....이젠 당시의 자신들이 아니다.

".....그럼, 가도록 할까."

"그래, 가자."

처음으로, 먼저 산을 지키고 있다고 들은 《홍련의 황녀》 사냥이다.

그리 결정짓고, 둘은 에델베르크를 향해 걸어가려 했고,

"무서워라! 굉장함다!"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밝은 소녀의 목소리에 발을 멈추었다.

◆◇◆◇◆

"이 50명도 그렇게 약한 '투사'가 아니었는데, 생채기 하나 없이 완봉하다니! 에델베르크에 오자마자 이런 강한 분과 만나게 될 수 있다니 시작이 좋네요~!"

갑자기 귓불을 때린 소녀의 목소리에 러프와 키바, 둘은 대체 누구인가 하고 뒤를 돌아보고

" "크윽!!" "

그 순간, 시야에 들어온 사람의 모습에, 전율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마치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 쓰이는 백색 구속복을 몸에 두르고, 맨다리에 철구가 달린 족쇄를 찬, 1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짙은 갈색 피부의 소녀였다.

이상하다. 너무나도 이상한 풍채였다.

하지만 둘이 전율한 건, 소녀의 외모 때문이 아니었다.

어디에 중심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마력이 있는지. 투쟁에 필요한 정보를 무엇 하나 적에게 주지 않는, 그 자세에 전율한 것이다.

──보통내기가 아니다.

그리고, 그 자세에서 명백하게, 이 소녀는 투쟁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모습이 엿보였다. 그랬기에, 순식간에 현재 상황을 이해한 키바는, 허리에 차고 있던 일본도 디바이스 《서릿달》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다른 한 명, 세계 최고의 첩보력을 자랑하는 대국 아메리카 합중국의 전투부대에 소속해 있는 러프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러프와는 달리 정보를 많이 알고 있었기에, 그보다 더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러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의 풍채에서, 그녀가 누구인지를.

"후 샤오 리...!?"

"큭!? 《사선(四仙)》의 《도철(??)》인가....!"

"옙! 저를 아시나요! 조금 기쁨다!"

자신을 부른 이름을, 소녀는 숨김 없이 하얀 이를 크게 드러내며, 쾌활한 미소로 긍정했다. 그 순간, 그 자리의 대기가 저릿한 긴장감을 띠었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할 터.

눈앞에 서 있는 자는, 무의 정점, 그 중화 연방이 자랑하는 《신룡사》가 개최하는 《투신 리그》. 그 곳의 패자가 되어 얻을 수 있는 《투신》이라는 칭호에 가장 걸맞는, 네 명의 《마인》이자 《사선》이라 불리는 자들 중 한 명.

《도철》 후 샤오 리라면 말이다.

"....이상한데. 넌 현재 《신룡사》의 '극고루(極苦樓)'에 유폐되어 있지 않았던가? 확실히 《신룡사》의 규율.... 《오금(五禁)》 중 셋을 어겨, 징역 300년의 형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말야."

이 러프의 말을 듣고, 샤오 리는 "아이고! 어떻게 알고 계신 거에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짝 놀라며

"《신룡사》에서 벌어진 일까지 파악하고 있다니, 깜짝 놀랐슴다! 확실히 그 말대로에요! 하지만 따분해서 그냥 탈출했지요!"

그리 답하고, 힘으로 뜯어낸 흔적이 있는, 팔을 묶은 구속구의 벨트를 살랑살랑 흔들어보였다.

"...그럼 안 되지. 그런 건 탈옥이라고 하는 거야."

"네... 그럼 안 되죠.. 그러니 돌아가면 또 혼날 거에요.."

러프의 지적에 시무룩하는 샤오 리. 하지만

"하지만 그런 데에서 평생 눌러앉아 있으면 몸이 둔해 지니까요. 거기다, ...제겐 꿈이 있으니, 그걸 위해서라면 '오금'을 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하고 자신을 북돋듯 강한 어기로 말한 뒤, 구속구의 옷소매의 어깨 부분을 잡아 찢은 다음

"거기 강하신 두 분! 부디 저와 대련을! 서로 이런 곳에 있으니 목적은 같겠죠. 그럼 도중에 어디선가 부딪히게 될 테니 여기서 미리 마무리를 지어두는 게 서로 수고를 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리 말하고, 자신의 두 팔에, 쇠사슬이 달린 건틀릿 형태의 디바이스를 현현. 러프와 키바를 향해 왼주먹과 오른손바닥을 마주쳐, 포권.

왼손의 '文'을, 오른손의 '武'를 뒤덮어, 전의를 나타냈다.

여기에

"후... 고대의 마수 《도철》인가. 재밌군."

"키바...!"

"러프. 넌 손대지 마. 내가 처리하지."

그리 말하고, 《검랑》 키바 요시카즈는 러프보다 몇 발짝 앞으로 나아간 다음,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두고 샤오 리와 대치.

그리고

"쫓아라. ──《마빙십랑진(魔氷十狼陣)》."

자신의 디바이스 《서릿달》을 뽑은 다음, 그 끄트머리를 지면에 박았다. 그 순간, 끄트머리가 박힌 부위에서 하얀 냉기의 안개가 뿜어져나와, 순식간에 전장을 뒤덮었다. 그리고 몇 초 후, 안개가 바람에 흩날려, 다시금 시야가 트인 전장에는

"아이고! 닌자의 인술! 처음 봤슴다! 전혀 구별할 수가 없어요!"

" " "간다───!" " "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던 샤오 리에게, 키바는 어디까지나 비정한 살의를 향했다. 대치하게 되고, 싫어도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건, 그저 단순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귀신. 수라. 그런 부류의 것.

그렇다면, 용서 따윈 필요 없다.

아홉 명이 된 키바와 완전히 똑같은 전투력을 지닌 '얼음의 분신'을 만들어내는 노블 아츠 《마빙십랑진》. 이 분신을 이용한 집단 검술이, 《늑대》라는 이명을 가진 키바의 전투 스타일이다.

즉, 이 전개는 키바에게 있어 가장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방심했군, 《도철》 후 샤오 리. 그 노블 아츠는 한 번 발동되면 키바의 실력이 함께 어우러져 당해내기 힘들 텐데 말야. 왜냐면 진짜를 찾아내 쓰러뜨리지 않는 한, 얼음의 분신들은 계속해서 재생되어, 아무리 쓰러뜨려도 똑같은 수로 계속해서 공격을 가해 올 테니까. 노블 아츠를 구사하기 전에 결착을 짓는 게 가장 좋았을 거라고....!'

첫 수로 탄탄한 전투 태세를 갖춘 키바는, 완전히 싸움의 흐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정말 대단해요! 한 번에 10배나 즐길 수 있다니! 저 너무 기뻐요!"

" "윽!?" "

그 순간, 키바와 러프는 눈앞의 광경에 말을 잃었다. 잔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일제히 공격을 가하는 얼음의 분신들. 그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전광석화의 참격의 폭풍을, 샤오 리는 전부 피해냈기 때문이다.

아니, 참격을 피해낸다, 그 자체는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일정의 실력을 지닌 자라면, 가능할 테니까. 러프도 그 중 한명이다.

더 깜짝 놀란 건, 샤오 리의 동작 때문이었다.

눈을 부릅뜰 만한 기술도 아니었다.

눈이 어질어질할 만한 속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샤오 리의 움직임은 모두 눈으로 쫓을 수 있는 정도. 무엇을 하는지, 다음에 무엇을 할지조차, 확실히 보였다. 그 속도는, 키바의 10분의 1이 될까 말까 할 정도──

──그럼에도, 열 명의 분신이 한 번에 낸 검격은, 닿기는커녕 스치기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그렇기는 커녕, 참격과 참격 사이에 생기는 찰나의 틈을 이용해서

손바닥으로.

주먹으로.

발차기로.

다리에 달린 철구로.

'얼음의 분신'들이 계속해서 파괴되어 나아갔다.

압도적인 속도차를 뒤집어버리는 현실. 그건 절대적인 역량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증거. 아무리 느린 속도라고 해도, ──달인의 기술은 피할 수 없다.

그 동작에, 한 치의 낭비가 없으니까.

'《사선》, 《투신》에 가장 가까운 《마인》의 힘이란, 이 정도인가!'

키바도 세상에 달인이라 알려진 검사이지만, 완전히 갓난아기가 된 수준이었다. 그 사실에, 러프는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고

'무위로는 상대가 더 강해.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키바도, 자신의 혼신의 공격을 손쉽게 피해낸 적수를 보고, 기량의 차이를 이해했다.

하지만──

'잊지 마, 《도철》. 네 녀석이 상대를 하고 있는 건 검사가 아닌, 《마도기사》이니까!'

"윽....!"

직후, 싸움의 흐름이 급변했다.

샤오 리의 권격이 '얼음의 분신'의 머리를 분쇄하기 위해 내질러진 그 순간. '얼음의 분신'이 갑자기 물로 변해, 샤오 리의 팔을 감쌌고, 다시 동결되었다. 그녀의 팔을 얼음의 수갑으로 묶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샤오 리의 움직임이 둔해진 순간, 다른 '얼음의 분신'들이 그녀를 둘러싼 다음 방금 그랬던 것처럼

"《절빙할살격(絶氷割殺擊)》───!!"

샤오 리가 사지의 움직임을 빼앗긴 순간을 노려, 《검랑》 키바가 머리로부터 내리치는 혼신의 일격을 가했다. 하지만, 상대는 《사선》 후 샤오 리.

"핫!!"

샤오 리는 키바가 내리친 칼이 정수리에 도달하기도 전에, 전신에서 기를 뿜어내 얼음의 구속구를 분쇄.

사지의 움직임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렇지. 이 정도로 붙잡아 둘 수 있는 짐승이 아닐 터!'

그건, 키바도 예측하고 있었다.

구속구가 부서질 것이란 건.

하지만, 그거면 충분하다. 한 순간, 딱 한 순간, 자신의 검의 사정거리가 닿을 때, 상대의 움직임을 빼앗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좋다.

──충분하다!

"절대영도의 일섬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키바의 마력. 그 거의 모든 것들을 담아 내리쳐진 《서릿달》을 뒤덮은 냉기는, 거기에 닿은 모든 것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절대영도의 칼날.

받아내는 것 따윈 불가능. 받아냈다간, 그 온몸이 얼어붙어 목숨을 잃을 것이다. 회피하는 것 외엔, 대처법은 없다. 하지만 한 순간이라고 해도 움직임을 빼앗겼던 샤오 리는, 이미 그 기회를 잃었다.

즉, 이 일격은 샤오 리의 목숨을 끊어 놓을 것이다!

───그럴 터였다.

"크윽~~~~~~!?"

하지만, 키바의 혼신의 검격은, 샤오 리의 칼날 잡기에 의해 막혀버렸다.

'이럴 수가! 어째서!'

"흠!!"

그리고, 예상 외의 사태에 키바가 동요한 순간, 승패는 결정났다. 샤오 리의 붕권이, 키바의 복부에 꽂혔고, 그대로 키바라는 인간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어, 주먹의 충격으로 부숴 버렸기 때문이다.

◆◇◆◇◆

"??, ?手!(대련 감사드립니다!) 좋은 경험이 되었슴다!"

말 그대로 몸이 둘로 동강난 키바를 향해, 이번엔 정식적인 포권의 예를 취하는 샤오 리. 그런 그녀의 모습, 그리고 싸움의 결착에, 곁에서 보고 있던 러프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얼음의 능력, 이라고...!?'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면, 5년 전의 이전 《투신 리그》에서, 샤오 리는 확실히 '바람'의 능력을 구사하여 싸웠을 터. 이건, 유명한 이야기였기에 키바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절대영도의 일격이 막힌 것에 동요를 감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불꽃이나 물, 탁월한 능력자라면 번개의 능력자라면, 키바의 《절빙할살격》을 막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람은 무리이다. 바람의 힘은 키바의 냉기를 오히려 증폭시킬 테니까. 능력의 상성상 불가능한 일. 원래라면, 일어나면 안 될 일.

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자! 다음은 그 쪽의 빨간 옷을 입은 분! 전 언제라도 상관없슴다!"

키바를 순식간에 처리한 샤오 리는, 뒤이어 러프를 향해 전투 자세를 취했다. 여기에 러프는 응하며

"....알았어. 싸우도록 하지. 가자, 《데스 스팅어》!"

두 손에 가느다랗고 긴 침이 박힌 건틀릿 형태의 디바이스를 다시금 현현시켰다.

"감사!"

동시에, 샤오 리가 땅을 박차고 정면으로, 최단거리로 간격을 좁혀 왔다. 이 돌격에 러프는 ──미리 손에 쥐어 둔 것을 땅에 내던졌다.

"흡!"

"아이고!?"

그 순간, 밤이 드리워진 광장에 하얀 빛이 작렬했다.

러프가 내던진 것은, 섬광탄. 능력도 뭣도 아닌, 그저 병기에 지나지 않는 것.

블레이저 (미국에선 초능력자, 중국에선 투사라고 부르는)끼리의 싸움에서, 이런 병기가 이용될 경우는 일단 없다. 기본적으로 총화기 같은 무기는 블레이저를 상대로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섬광탄은 다르다.

블레이저의 마력은 물리 충격에 대한 방어력이 있지만, 빛은 그대로 통과하게 되니까.

따라서, 당연히 눈을 멀게 만들 수 있다.

'불가능할 터인 두 가지 능력의 보유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야! 속공으로 마무리를 지어야겠어!'

섬광에 주춤한 샤오 리를 향해, 러프가 돌격했다. 똑바로 달려들어 간격을 좁히고, 자신의 디바이스, 그 끄트머리를 샤오 리의 심장을 향해 내질렀다.

"《리썰 베놈》!!!"

하지만, 상대는 '무예'의 정점, 중국의 《선인》.

《데스 스팅어》의 끄트머리는 샤오 리의 가슴에 살짝 찔렸지만, 그 시점에서 붙잡혀 치명상을 주지는 못했다.

"섬광탄으로 기습이라니, 엄청 깜짝 놀랐슴다!"

"우리 미국인들은 합리주의자니까. 초능력만으로 싸우지는 않거든."

"아주 좋아요! 이런 노골적인 싸움, 싫지는 않아요!"

그리 말하고 방긋이 웃는 샤오 리의 표정엔, 거짓 따윈 없었다. 대개로, 블레이저끼리의 싸움에서 이런 병기를 이용하게 된다면 빈축을 사기 마련이지만, 눈앞의 소녀는 진심으로 그런 준비까지 포함하여 투쟁이라 여기고, 즐기고 있는 것이다.

역시나 기습과 계략이 판치는 《투신 리그》를 재패한 네 명 중 하나인 투사다웠다.

하지만

"....즐거워 보이는 도중에 미안하지만, 이 싸움은 이미 끝났어."

"읏.."

그 순간, 샤오 리의 몸이 덜컥 무너졌다.

생리적인 강한 경련.

그것은, 생명의 단말마였다.

"내 디바이스 《데스 스팅어》의 능력은 《독》.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들을 다루는 능력이지. 상대가 《사선》의 《도철》이다 보니 이 쪽도 정도를 지키며 싸울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내가 다루는 독 중에서 가장 강력한, 나 이외엔 해독이 불가능한 치사성의 맹독을 이용했지. 미안하지만, 넌 조금 있으면 죽을 거야."

그렇다. 러프의 찌르기는 막힌 것이 아니었다. 그의 능력을 이용하면, 심장을 꿰뚫을 필요 따위는 없다. 살짝, 1mm. 그 조금만이라도 바늘이 들어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목숨을 끊을 수 있다.

승부는 이미 결착이 지어진 것이다.

"1초의 방심이 큰 결과를 낳기 마련. 자신의 방심을 후회하도록."

그리 고하고, 러프는 샤오 리의 몸에서 바늘을 뽑았다.

하지만──

"....방심? 아니에요."

"윽──!?"

바늘은, 뽑히지 않았다.

조금도 힘이 빠지지 않은 채, 호의적인 미소를 무너뜨리지 않은 채, 샤오 리가 바늘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죽은 몸, 아니. 죽어있어야 할 소녀가.

대체 어째서, 하고 혼란에 빠져 있는 러프.

그런 그에게, 샤오 리는 말했다.

"눈이 보이지 않더라도 '기척' 과 '살의'는 읽을 수 있지요. 암전된 시야 속에서, 다가오는 '살기'를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제게 다가오던 '살의'는 심장을 꿰뚫겠다는 '살의'가 없었어요. 목을 베어버리겠다는 '살의'도 없었죠. 당신의 '살의'는 어디라도 괜찮으니 스치기라도 해라. 조금이라도 닿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런 평범한 '살기'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살의'. ───그렇다면 진짜 무기는 겉으로 드러난 바늘이 아닌, 그 안에 숨겨진 《독》. 이미 다 알아챘습죠."

그리고

"《독》이라면, 《독》으로 제압하면 그만. 그러니──"

그리 말한 찰나, 샤오 리는 자신의 힘으로 바늘을 뽑아내고, 그대로 민첩하게 러프를 향해 달려든 다음

"윽, 아악!?"

그의 복부에, 새끼손가락을 '찔러넣었다'.

"이건 방심이 아니고, 여유이지요."

"큭!"

새끼손가락이 찔린 정도, 그리 큰 대미지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거리는 위험하다. 완전히 거리가 좁혀져 있다. 이곳은, 도수공권의 사정거리.

따라서, 러프는 곧바로 팔을 뿌리쳐 샤오 리를 밀쳐냈다.

아니, 밀쳐내려 했다.

하지만

"────크윽!?"

갑자기, 몸 전체에 마비되어 갔고, 온몸의 근육이 경직하기 시작하여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녀석, 설마.... 이 녀석의, 능력은..............'

사고가 몽롱해지고, 의식이 상실되었다.

결착은 났다.

"謝謝!"

러프와 키바, 이 둘을 손쉽게 쓰러뜨린 샤오 리는, 곁에 서 있던 술집 여주인에게 부탁했다.

"여주인 아줌마. 이 두 분의 치료를 부탁해도 되겠슴까?"

"....살아 있는 거야??"

"네! 이 쪽 분은 그냥 내버려 둬도 1주일 후면 눈을 뜰 거에요. 저 쪽의 닌자 아저씨는 얼어 있는 것 뿐이니 《재생조》를 이용하면 아무 문제 없이 원래대로 돌아갈 거에요."

"알았어. 그건 우리들이 하도록 하겠어."

"감사!"

샤오 리는 감사 인사를 하고, 에델베르크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럼, 잡무도 끝났으니, 좀 인사를 하겠슴다!"

한 번 숨을 깊게 들이쉰 뒤──

"하아아아앗!!!!!!!"

그 고함과 함께, 힘찬 기합을 온몸에서 뿜어냈다. 평소라면 자신의 역량을 읽을 수 없게, 일부러 숨기고 있던 모든 것들을 드러내고.

이 《도철》 후 샤오 리의 선전포고에 대기가 떨리고, 나무들은 흔들렸고, 새들이 도망갔으며, 산이 떨기 시작했고──

" " "─────  으으읏!?!?" " "

고도 6천 미터 지점. 제 5캠프에 있던 스텔라 일행도 전율했다.

"뭐, 뭐야. 지금 이 소름 돋는 살기는! 에델바이스인가!?"

"아냐. 이건...."

"읏....."

그렇다, 그게 아니다.

에델바이스의 살기를 직접 경험한 스텔라도 알 수 있었다.

이 패기는, 에델바이스의 것이 아니다.

투기의 질이 달랐다.

에델바이스의 그것은, 좀 더 섬세하고 날카로운, 마음에 꽂히는 칼 같은 검기였다. 하지만, 이건 날카롭긴 했지만, 웅장하고 사나운,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야수의 느낌이 있었다. 에델바이스와 비슷한 정도... 아니, 어쩌면 동급의 위압감을 갖고 있는, 본 적 없는 상대.

그리고, 그런 누군가가 패기를 보내 고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거기로 가겠다. 라고.

이 현실에 스텔라는 《괴뢰왕》이나 《비익》과 대치한 때처럼, 온몸이 종말로 치닫는 공포를 느꼈다. 그래도, 스텔라는 도망치지 않았다.

"....어디 한번 해 보자구...!"

《홍련의 황녀》는 다가오는 위협에 임했다.

자신이 버밀리온의 검, 《홍련의 황녀》로 있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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