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장
《신룡사》의 자객
산기슭에서 뿜어져 온 거대한 패기.
그 존재를 확인한 건 물론 스텔라 일행들만이 아니었다.
고도 8천 미터. 자신의 집앞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에델바이스가 중얼거렸다.
"....이건 약간, 곤란해졌네요."
그 패기를, 에델바이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칠성검무제 결승전에 나타난 몇 명의 《마인》. 그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인 기를 내뿜던 인물.
"역시, 당신도 나섰군요."
그리 말하고 에델바이스가 올려다본 건, 에델베르크의 꼭대기. 거기엔... 방금까지 물구나무를 서고 있던 잇키의 모습이 없었다. 그는 꼭대기 아래에 있는 암벽에, 디바이스를 박아넣고 매달려있었다. 방금 엄습한 그 패기에 밸런스가 무너진 것이다.
"아깝네요. 조금 있으면 30분동안 버틸 수 있었을 텐데요."
하지만 어제까지의 수준에 비교하자면 눈부신 진보라고, 에델바이스는 생각했다. 어제도 잇키는 에델베르크의 꼭대기에서 마력 제어 단련을 계속했지만, 고작 10분이 한계였다. 그 정도로, 굴러떨어지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목표인 한 시간엔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잇키의 마력 제어력은 20분어치나 강화되었다. 그 제어력으로 《일도수라》의 마력을 제어한다면, 이전의 배, 아니. 3배에 가까운 강화를 얻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는 이 과혹한 환경에서, 확실히 강해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건 스텔라도 같을 것이라 에델바이스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스텔라는 타타라의 조언을 듣고, 환경을 극복해냈다. 그리고 그 조언대로 실천하는 게 아닌, 자기 자신 나름대로 배운 기술을 응용하여 모든 움직임에 대한 에너지 소모를 억제하여, 지구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켰다.
역시, 세상에 이름을 떨칠 정도의 천재 기사이다.
그 단기간만에 '순응'을 익히고, 이 정도의 성장을 해낸 건, 아주 잘 했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스텔라도 또한, 이 에델베르크에 발을 들여, 전보다 훨씬 강해진 것이다.
아주 멋진 일이다.
애초에, 스텔라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 《각성》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었지만, 그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칠성검무제 결승전부터 이번 일들로 인해, 《마인》들에게 시달리다 보니 착각을 하고 있는 듯했지만, 《각성》이란 목표로 삼아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자기'.
그걸 관철하기 위해 아무런 타협 없이 살아가며, 그 결과로서 자신의 가능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적.
그 결과를 지칭하는 단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결과에만 매달려, 한결같이 사지에 뛰어들다니, 정말 어리석은 짓이다.
일단은, 확실한 힘을 기르는 것.
지금 스텔라가 해야 하는 일은 단 하나이다.
거기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자기'를 찾아낼 수 있다면, 자신의 가능성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그녀는 운명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에델바이스는 《무결한 선서》로 그녀를 이 땅에 묶어 두고, 실력을 갈고닦을 것을 강요했다.
그렇지만──
'...하필이면, 최악의 손님이 찾아온 것 같네요.'
《사선》이라 칭해지는, 중국에 있는 네 《마인》 중 한 명.
그녀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방금 느껴진 그 패기로 얼마나 큰 역량을 가진 자인지는 알 수 있었다.
...강하다.
자신의 목숨조차 위협할 힘을 보유한 적이다.
운명의 인력에 묶여 있는 스텔라로서는, 만에 하나라도 이길 수 없는 상대.
위험한 상대이다.
거기다 하필이면, 그녀의 곁에 있는 타타라와 아스칼리드도 《무결한 선서》에 의해 그녀를 도울 수 없다.
'유사시에는, 제가 나설 수밖에 없겠군요.'
에델바이스는 그리 결의하고, 잇키를 정상에 남긴 채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머나먼 산 아래. 제 5캠프 지점에서, 《홍련의 황녀》와 《도철》이 접촉했다.
◆◇◆◇◆
"읏....!"
산기슭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패기가 산을 뒤흔든 뒤로, 15분 뒤. 제 5캠프 지점에서 에델바이스가 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길을 지키고 있던 스텔라의 앞에, 절벽을 달려 올라가는 짙은 갈색 피부의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령은 자신과 비슷한 정도.
하지만, 찢어진 구속복을 입고, 발엔 철구가 달린 족쇄를 이끌고 있는 그 모습은, 너무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봐도,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보통내기도 아니다.
척 보기엔 20kg은 넘어보이는 철구를 달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나 짧은 시간만에 산기슭에서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는, 불가사의할 정도의 각력──
'이 애가, 그 흉악한 패기의 원천....'
틀림없을 것이라, 스텔라는 시선을 한층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 편, 절벽을 달려 올라가고 있던 소녀는 스텔라를 보자마자
"아이고! 어디선가 느껴 본 마력이라 했더니, 스텔라 님이시네요! 설마 이런 데에서 또 만나게 될 줄이야! 깜짝 놀랐어요!"
눈을 반짝이며, 친근하게 말을 걸어 왔다.
여기에 스텔라는 곤혹감을 내비쳤다.
"어디서 만난 적이 있던가?"
그 기억이, 스텔라에겐 없었기 때문에.
거기에, 소녀는 "그래요!" 하고 힘차게 수긍하며
"저, 《칠성검무제》의 결승전을 보러 갔었거든요! 정말, 엄청나게 흥분했습죠!"
"그랬어? 근데 미안하네. 난 당신에 대한 기억이 없거든."
"아아~ 그것도 어쩔 수 없겠죠. 그 때엔 절 쫓아오던 사람들을 따돌리기 위해 제 기척을 죽여 놨으니까요. 스텔라 님과 《낙제기사》 님의 멋진 비무에 촉발돼서 난입해 버릴까, 하고 생각했지만 두 분도 만신창이였기에 꾹 참았슴다! 《비익》 님도, 거기 계신 《흑기사》님도, 난입자가 발생하지 않게 감시하고 계셨죠!"
그리 말한 뒤, 소녀는 스텔라의 약간 뒤쪽에 서 있던 타타라와 아스칼리드를 바라보았다.
"....내가 《흑기사》란 걸, 알 수 있어?"
"네? 그야 서 있는 자세도 기척도 완전히 똑같으니까요. 갑옷을 입지 않고 있더라도 알 수 있습죠!"
".....그래. 역시 대단하네."
"아스칼리드 양. 얘 누구야?"
소녀를 알고 있는 듯한 아스칼리드에게, 스텔라가 질문을 던지자
"앗! 죄, 죄송함다! 죄송해요! 저, 자기소개를 까먹었네요!"
실례를 일단 사죄하고, 소녀는 스텔라에게 포권했다.
그리고, 자신을 소개했다.
"다시금 실례함다! 신룡사 사상권법을 물려받은 자! 《사선》 후 샤오 리라고 합니다! 이후로도 기억해 주십시오!"
"읏! 《사선》의 샤오 리....라니..."
"이 녀석이, 《도철》 후 샤오 리냐!"
"그래. 《신룡사》 사상 최연소로 《사선》..... 이쪽의 말로 《마인》이 된 천재 투사."
"....그렇구나. 전설의 마수 《도철》의 이름을 갖고 있다면, 그 엄청난 패기도 이해가 돼."
《신룡사》는 폐쇄된 곳이기에, 바깥 세상에 그다지 많은 정보가 흘러 있지 않다. 하지만 그래도 《도철》의 이름은 세계에 떨쳐져 있다. 물론, 스텔라의 귀에도 그건 들어와 있었다.
다시금, 엄청난 상대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사선》이라 알려진 투사가, 대체 누구한테서 도망치고 있었던 건데?"
"네, 《신룡사》의 우두머리이자 현 《투신》인 《대노사(大老師)》 님임다. 전 '극고루'라는, 《신룡사》의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제 멋대로 뛰쳐나왔거든요."
"'극고루'라니, 《신룡사》의 중죄인을 가둬 두는 곳이잖아."
"타타라, 알고 있어?"
"큰 죄를 범한 투사에게 죽을 때까지 지옥의 단련을 강제로 시키는 감옥. 지금까지 누구 하나도 살아 나간 사람이 없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비가 깔린 실존하는 지옥이지. 이 세상에 셋밖에 현존하지 않는, 《검은 집》조차 침입할 수 없었던 곳 중 하나야. 하지만 《사선》의 《도철》이 대체 무슨 일로 이딴 곳에..."
이 타타라의 질문에
"그건 제가 《오금》을 범했기 때문임다."
샤오 리는 셋에게 설명했다.
《신룡사》엔 모두 5개의 철의 규율이 존재한다.
하나, 무를 과시하는 용으로 써선 아니된다.
둘, 무를 이용해 금품을 갈취해선 아니된다.
셋, 무를 이용해 간음을 범해선 아니된다.
넷, 무를 이용해 살생을 해선 아니된다.
다섯, 이 모든 금기를 포함한, 의에 반하여 힘을 써선 결코 아니된다.
이 모든 《오금》에 의해, 《신룡사》에 소속하는 무승들은 사람으로서 명백하게 윤리에 반하는 행동은 물론, 힘을 과시하는 것, 즉 《투신 리그》 이외의 거의 모든 시합의 참가를 금지하고 있다.
"무기(戈)를 막다(止). 한자로 써서 무(武). 무란, 투쟁을 억누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단순하게 싸우기 위해 쓰는 것은 무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 그것이 《신룡사》의 뜻이지요."
《신룡사》의 무는 어디까지나 의를 위해 쓰여야 하는 것. 자시닝나 이웃의 생명, 그리고 존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며, 금전이나 사회적 지위, 그 외 모든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써선 안 된다.
이 사상은, 일절의 보상이 없는 《투신 리그》로 잘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신룡사》는 설령 정부의 신청이 있다 하더라도, 어지간한 일이 아닌 한 국외에서의 무력 행사를 가하지 않지요. 전 그걸 아주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슴다. 하지만, ...그걸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 세상엔 너무도 많아요!"
샤오 리는 말하고 있다.
자신의 조국은, 경시받고 있다고.
《신룡사》라는 최고봉의 무의 명문이, 무를 과시하는 걸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신룡사》의 고귀한 이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겁쟁이들이라 비하를 받고 있다고.
"전, 그걸 도저히 못 참겠어요! 그러니 결정했지요! 이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자고! 중국엔 없는 무! 중국엔 없는 기술! 중국엔 없는 사람들! 아직 제가 모르는 모든 것들과 중국 4천년의 역사를 걸고 상대하여, ──우리 조국이 무의 정점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자고!"
그걸 위해 금기를 범할 필요가 있다면, 파계승이란 낙인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그것이, 자신의 뜻.
그리고 사랑하는 조국과, 조국의 무가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라면──!
"자! 이 자리에 있다는 건, 스텔라 님의 목적도 세계 최강의 목이겠죠! 그렇다면 그 정점을 걸고 싸우게 되는 건 필연! 자, 대련해 주십시오!"
자신의 손으로 파계를 범한 이유.
싸울 동기를 고하고, 샤오 리는 자세를 취했다.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4천년의 역사.
거기에 비견할 것 따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기에, 스텔라도 온몸에서 홍련색의 임광을 띠며, 한 발짝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 쪽도,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비익》은 나랑 선약이 있어! 거기에 끼어들 거라면, 먼저 이 나를 쓰러뜨려야 할 거야!"
솔직히, 지금 여기서 《마인》과 싸우게 될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예정이 빨라졌을 뿐. 자신은 이곳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온 것이니까.
'이런 어려운 길, 바라던 바였다구...!'
"날 섬겨라! ──《비룡의 죄검》!!"
"하늘을 향해 울부짖어라! ──《만귀》!!"
이렇게, 《홍련의 황녀》와 《도철》의 싸움의 불이 켜졌다.
◆◇◆◇◆
"하앗───!"
먼저 움직인 건, 《도철》후 샤오 리였다.
탕, 하고 가볍게 발을 굴러, 스텔라와의 거리를 좁혔다. 결코 빠르진 않은 속도로, 스텔라가 바라보는 가운데, 똑바로, 최단거리를 달려들었다.
샤오 리의 디바이스는 푸른 색의 건틀릿. 전투 스타일은 《신룡사》에 전해 내려오는 사상권이라는 격투술.
'그리고 바람 능력자라는 것. 그것이 내가 《도철》에 관해 알고 있는 전부.'
《바람의 검제》 쿠로가네 오우마와 같은 종류의 힘. 그것을 이용해 그녀는 저번 《투신 리그》에서 싸웠다. 당연히 장거리전도 가능할 터. 하지만──디바이스의 형태, 유파를 미루어보면, 역시 가장 유리한 거리는 근거리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일단 자신의 사정거리까지 거리를 좁히려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구태여 어울려 줄 이유는 없다.
지금 이 거리, 사정거리의 우위는 자신에게 있어 생명줄이다.
'상대는 격투전의 달인. 파고들게 만들면 불리해.'
지금 이 순간에도 싫어도 느껴지는, 나락을 들여다보는 듯한 위압감. 자신의 미래를 뛰어넘은
《마인》의 위압감.
《괴뢰왕》이나 《사막의 사신》정도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감각은 없었지만, 지금 다가오는 적도 틀림없이 그들에 필적할 정도의 강력한 인력을 가지고 있다. 이길 수 없다는 마음에 집어삼켜져버리면, 에델바이스와 대치했을 때처럼 샤오 리가 가진 인력에 자신의 운명이 휘말려버릴 것이다.
자신이라면, 이 적에게 이길 수 있다.
그렇게 자신에 대한 신뢰, 자신의 가치를 믿어 관철하는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그걸 위해서라도, 상대가 우위에 설 상황을 철저하게 없애 놔야지...!'
그리고, 전력을 다해서.
힘도, 기술도, 전술도, 전략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 모든 것들을 구사한다. 다행히, 오늘 하루는 한 번의 전투도 겪지 않았기에, 컨디션은 최고조였다. 마력도 체력도 넘쳐흐르고 있다.
'아낌없이 가겠어...!'
"먹어치워라! 《연옥룡의 턱》!!!"
스텔라는 강하게 마음을 먹고, 샤오 리의 돌격을 장거리에서 영격했다. 적염이 피어오르는 《비룡의 죄검》에서 발사된, 일곱 목을 지닌 염룡. 그 염룡은 제각각 거대한 턱을 벌리고, 샤오 리를 삼키려 쇄도했다.
여기에 샤오 리는
"대단해요! 엄청난 박력이에요!"
일곱 목의 용이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파멸적인 광경에 눈을 빛내는 샤오 리. 하지만 스텔라를 향해 나아가는 발을 멈추지는 않았다. 첫 속도와 다를 바 없는, 가속도 완급도 없는, 느릿한 달리기. 당연히, 이 느릿한 먹잇감을 향해, 용이 쇄도했다. 사방팔방으로 거대한 턱을 벌리고, 씹어 분쇄했다.
샤오 리의 돌진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엄습했다.
일곱 개가 동시에.
그렇다면 공격이 명중하는 것은 아주 쉬울 터.
필연.
그렇다, 그럴 터인데──
'맞지를 않아.....!'
스텔라는 눈앞의 기묘한 광경에 말문을 잃고 있었다. 샤오 리는 실로 느릿한, 걸어가는 정도라 할 순 없었지만, 잇키와는 비교도 안 될, 졸립게 느껴질 수조차 있는 느릿한 속도를 유지한 채, 일곱 용의 맹공을 피했다.
방어도, 반격도 없이.
그저 그 틈을 최소한의 동작으로, 최저한의 속도로, 미끄러지듯 피했다. 그렇다. 샤오 리는 빠르게 움직일 수 없는 게 아니다.
움직일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달인은 속도에 의지하지 않는다. 상대의 움직임을 정확히 관찰하고, 상대가 만들어낸 미세한 틈에, 한 치의 낭비도 없는 동작으로 파고들어간다. 그 움직임은, 그야말로 물 흐르는 듯했다.
바위나 썩은 나무, 수많은 장해물이 있다 하더라도, 그 틈 사이를 미끄러져 흘러가 반드시 바다까지 도착하는, 물의 흐름.
이것이 무의 명문, 《신룡사》가 자랑하는 사상권.
청룡의 형태──《유수》이다.
아무리 잡으려 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보법.
느린 속도로 빠른 속도를 봉한다.
극한에 다다른 기교가 아니고서야 해낼 수 없는, 그 속도차를 뒤집어버리는 체술은, 그야말로 요술이나 다름없었다. 그 요술에 걸린 자들은, 자신의 느릿한 속도에 환혹되어, 조금만 있으면 잡을 수 있다는 환상에 휘둘려 쓸데없는 공격을 반복하다 자멸하게 된다.
하지만──
"그럼... 이렇게 하면 되지!"
"읏!?"
체술 하나로 속일 수 있을 정도로, 《홍련의 황녀》도 경험이 없는 기사가 아니었다. 이 보법을 구태여 정면으로 공략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 요술과도 같은 체술에 집중하는 게 아닌, 곧바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 다른 수를 취했다.
《연옥룡의 턱》.
쏘아 보낸, 일곱 목의 염룡.
그 일곱 개의 턱으로 씹어 부수는 게 아닌, 포위.
샤오 리의 주위를 두꺼운 몸으로 포위해, 똬리를 틀고
"잡았다!"
조였다.
전 방위에서의 압살. 이거라면, 흐르는 물도 어쩔 수 없을 터. 콘크리트 댐의 사방에 갇혀버리게 되면, 물도 바다에 도달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다.
놔두지 않는다.
이윽고 불꽃이 꺼졌을 무렵엔, 온몸이 불타오르는 샤오 리의 모습이──
없었다.
검게 타든 지면에 있던 건 그녀가 아닌, 끈적하게 녹은 깊은 구멍.
"으읏──!"
그 순간, 스텔라의 뇌리에 벼락과도 같은 직감, 위기감이 내달렸다.
그건 수많은 사투를 극복해 온 자들만이 발현시킬 수 있는, 제 6감. 그녀는 그 위기감에 몸을 맡겨, 몸을 힘껏 뒤로 비틀어, ──참격을 가했다.
거기엔, 어느 틈엔가 등 뒤로 다가온 샤오 리가 있었다.
"좋아요!"
스텔라의, 직감을 이용한 반격. 그녀 자신의 기량의 수준을 증명하는 이 응수에, 샤오 리는 호의의 미소를 띠며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비룡의 죄검》의 옆면에 손등을 댔다.
그리고 손쉽게 참격의 궤도를 바꿔낸 다음
"시잇!"
그대로 스텔라의 품에 뛰어든 다음, 스텔라의 복부를 꿰뚫었다. 단련된 복근의 사이. 단련이 불가능한 배꼽을 힘차게 내질러 체내를 직접 타격하는, 손가락으로 관통시키는 듯한 타격법이다.
"~~~~~읏, 아아악!"
그 타격은 피부를 뚫고, 내장에 직접 가해졌다. 하지만 스텔라는 이를 악물어 버텨낸 다음, 곧바로 반격을 가했다. 이 거리에서 고통에 주춤하고 있으면, 연타를 받게 된다.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스텔라의 응수는 최선책이었다.
재빠른 반격에, 추가타를 가하려 했던 샤오 리는 기회를 잃고, 일단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강한 맷집이네요...! 제 이 공격은 《신룡사》의 사범들도 엄청난 고통에 그 자리에서 나뒹굴어 버릴 정도인데 말이죠."
"어머나, 무의 정점 《신룡사》도 의외로 나약한 모양이네... 이 정도, 별 것 아니라구."
"그렇지도 않을 거에요."
"윽...!?"
멀쩡한 척 하던 스텔라에게, 샤오 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그 직후, 스텔라는 몸에 벌어진 이변을 느끼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게, 뭐야... 몸이 마비돼서....'
전신이 경련하고, 기능을 잃어나갔다. 근육이 경직되어 나아갔다.
상정치 못한 대미지.
그녀의 바람의 능력이, 어떻게 이런 대미지를 발생시킨단 말인가?
《연옥룡의 턱》을 피했을 때, 땅을 녹여버린 힘도 그랬다.
"너, 대체.. 뭘 한... 거야.....!"
그 모든 것들이, 바람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사전 정보와의 어긋남에, 곤혹함을 비쳐보이는 스텔라.
거기에 샤오 리는
"딱히 어려운 건 아님다. 전 그저 《독》을 다루는 제 능력으로, 용해성 독액을 이용해 지면을 녹여 등 뒤로 파고든 다음, 손가락을 이용해 몸을 마비시키는 독을 주입한 것 뿐이에요. 코끼리도 순식간에 뻗어버릴 강력한 독을요."
그렇게, 자신의 힘을 밝혔다.
"독, 이라고...!?"
"야, 잠깐. 《도철》은 확실히 바람 능력자라고 했었지 않았냐고!"
"...확실히, 나도 그렇게 들었어. ....어떻게 된 거야?"
이 샤오 리의 자백에 스텔라만이 아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아스칼리드와 타타라도 곤혹함을 내비쳤다.
여기에 샤오 리는
"쿡쿡, 글쎄.. 왜일까요?"
마치 장난을 즐기는 듯한 어린아이 같은, 순진무구한 미소를 보이고
"어쨌건 스텔라 님은 이제 움직일 수 없어요. 이 전국, 제 승리입니다!"
무릎을 꿇은 스텔라에게, 아무런 정도 용서도 없이 추가 공격을 가하려 달려갔다.
"빠, 빨라!!"
그 속도에, 타타라는 말문이 막혔다. 첫 돌격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상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하다.
청룡의 형태 《유수》는 수비를 중시하는 보법. 《칠성검무제》 결승전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던 샤오 리는, 당연히 스텔라의 긴 사정거리를 알고 있다. 그녀는 초근거리에서 초장거리까지, 각종 사정거리를 소화해 내는 올라운더이다. 사정거리가 짧은 자신은, 반드시 선제공격을 받고 만다.
따라서, 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텔라의 장거리포에.
하지만, 스텔라는 이제 움직이지 못한다. 지금 적절한 건, 최단거리를 최고 속도로 좁히는 것.
그걸 위한 보법이 바로
"주작의 형태──《천구(天?)》!!"
샤오 리는 눈 깜짝할 새에, 스텔라를 향해 자신의 주먹이 닿는 사정거리까지 다가갔고, 다음 순간 ──뼈가 부러지는 파괴음이, 밤이 드리워진 산속에 둔탁하게 울렸다.
◆◇◆◇◆
주작의 형태 《천구》.
사지를 지면에 대고, 허리를 들어올리는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에서 발을 박차, 가속의 방향을 한계치까지 땅과 수평으로 만들어 땅을 질주하는 보법.
그 보법으로, 샤오 리는 스텔라에게 온 힘을 실은 일격을 가하려 했다.
하지만, 검의 간격으로 들어온 찰나, 샤오 리는 그것을 보았다. 스텔라의 꺾인 무릎. 구부러진 등.
흘러내린 앞머리.
──그 붉은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예리한 안광.
'동요하고 있지 않아....!?'
순간
"하아아아아아앗──!!"
독에 의해 움직일 수 없었을 터인 스텔라가, 움직였다. 무릎을 일으켜, 몸 채로 나아가며 옆으로 휘두르는, 카운터 공격.
샤오 리는 반격을 경계하지 않고, 모든 속도를 붙인 상태. 따라서, 이 공격을 피하는 건 불가능.
하지만
"읏──!!"
스텔라의 앞머리 사이로 살짝 보이던 공격의 눈빛을 알아채고, 간신히 방어해낸 건 그녀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몸을 완전히 양단해버릴 것처럼 쇄도해 오던 칼날을, 샤오 리는 자신의 디바이스인 《만귀》로 십자 블록을 해 막아냈다.
샤오 리의 기량의 수준이 빛난, 절묘한 응수였다. 하지만, 스텔라의 강검은, 방어 따위는 괘념치 않는다는 듯 상대를 분쇄한다!
"으으윽~~~!~!!!"
《비룡의 죄검》이 《만귀》에 닿은 순간, 순식간에 두 팔이 찌그러들었다. 그리고 그런 힘을 받고 서 있을 리는 없었기에, 샤오 리의 몸은 30미터 가까이 땅에 닿지도 못한 채 날아가버렸고──제 5캠프의 끄트머리에 있는, 절벽에 있던 큰 바위에 내동댕이쳐졌다.
"크, 하악...!"
등을 통해 내장을 꿰뚫는 충격에, 샤오 리는 피를 토했고, 그 자리에 무너져내렸다. 예기치 못한 반격. 알 수 없는 영격. 샤오 리의 사고가, 혼란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생각에 빠져 있을 틈 따위, 스텔라는 주지 않았다.
"차아아아아앗!!!!!!"
"큭....!"
추격.
자신이 날려 버린 샤오 리를 《비룡의 날개》로 가속을 붙여 곧바로 추격. 작열하는 불꽃의 검을 휘둘러, 노도와도 같은 추가타를 가했다.
그 모습은, 마치 화염에 휩싸인 소용돌이와 같았다.
휘말린 모든 것들을 재로 만들어버리는, 홍련의 선풍.
여기에, 샤오 리는 곧바로 대응했다. 발군의 체술을 구사하여, 마치 사족 동물처럼 낮은 자세로 지면을 박차 도망쳤다. 그렇게 해서, 스텔라의 검격을 땅에 꽂혀버리게 만들려 한 것이다. 자신이 발을 디딘 곳은 단단한 암석. 스텔라의 힘이라면 튕겨나가지는 않겠지만, 거기에 칼이 꽂혀 버린다면 칼을 다시 뽑을 때 틈이 생겨나게 될 터!
하지만, 그 계산은 멋지게 엇나가버렸다.
"하아아아아아압!!!!!!"
"크으윽....!!"
샤오 리의 생각대로, 낮은 자세를 취한 그녀를 쫓아, 《비룡의 죄검》이 계속해서 내리꽂혔다. 그리고 그 때마다 암석의 바닥을 깊게 갈랐고, 칼날이 박혔다.
──하지만, 《홍련의 황녀》의 힘은, 거기에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았다. 마치 암석을 두부처럼, 그저 힘으로 파내고, 잘라내며, 참격의 속도를 늦추는 일이 없었다.
이 상궤를 벗어난 힘.
그리고, 마비독에도 꿈쩍 않는 터프함.
설마.. 하고, 이 순간 샤오리는 한 가지 예감을 느끼며, 소용돌이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 가며 스텔라를 관찰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역시.....!'
스텔라의 피부가, 그 안쪽이 반짝이고 있었다.
《용신빙의》.
이전에 《칠성검무제》에서 본, 자신의 능력, 용의 힘을 활성화시키는 노블 아츠. 스텔라는 이 노블 아츠로 전신의 피를 끓어오르게 만들어, 샤오 리의 독을 열소독. 그리고 용의 힘을 자신의 몸에 깃들게 한 다음, 공격에 나선 것이다.
"그렇, 군요! 전갈에 한 번 쏘인다고 해서 얌전해질 용은 없다는 거군요!"
"지금 와서 눈치채 봐야, 늦었어──!!"
그리 고하고, 낮은 자세로 도망치던 샤오리를 쫓던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다리를 허공에 똑바로 치켜든 다음, ──힘껏 지면에 내리쳤다.
"《용진각》!!"
"아이고!?"
그 순간, 에델베르크의 산맥을 타고 흐르던 격진이, 도망다니던 샤오리를 덮쳤다. 애초에 지면에 딱 달라붙어 있는 불안정한 자세로 도망다니던 샤오 리는, 여기에 버틸 수가 없었다. 밸런스를 잃고, 지면에 얼굴을 처박았다.
두 팔이 망가진 그녀로선, 낙법도 불가능했다.
그저,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필연의 한 순간에, 스텔라는 승부를 걸었다.
"이야아아아아압───!!"
내리치는 일격.
지면에 쓰러진 샤오 리를 뒤덮는, 혼신의 일격.
그건, ──지금까지 완벽한 추격을 가하고 있던 스텔라가 보인, 한 순간의 방심이었다. 승리에 내달려, 쓸데없는 힘이 들어간, 큰 동작의 내려베기.
그 약간의, 아주 약간의 틈을, 《도철》은 놓치지 않았다!
'여기서 무너뜨린다!'
"흠!"
몸이 바위에 쓰러지는 찰나, 다리로 대지를 박찼다. 그리고 경부와 어깨의 운동으로 스텔라에게서 도망치듯 몸을 세로로 회전시켜, ──발에 달린 철구로 칼을 내리치던 스텔라의 턱을 살짝 훑었다.
"으, 앗──!?"
턱 끄트머리를 살짝 스치는 타격.
타격으로 치자면 대미지라 할 순 없지만, 그 위력은 흉악했다. 턱이 흔들리면, 경추라는 이름의 지지대를 끼고 있는, 반대쪽에 있는 두개골, 그 안에 있는 뇌가 '지레'의 요령으로 격하게 흔들리게 된다.
그 결과, 뇌진탕을 일으키고 서 있을 수 없게 되어버린느 것이다. 스텔라도 용의 힘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경추의 구조는 인간과 똑같다. 당연히 뇌진탕을 일으킨 상태에서 추격을 할 수 있을 리는 없었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주, 죽여준다....!"
이 샤오 리의 응수에 관전하고 있던 타타라는 무심코 감탄을 흘렸다. 두 팔을 잃고, 스텔라의 페이스에 완전히 휘말려버린 것처럼 보인 그 찰나. 스텔라의 아주 약간의 틈을 놓치지 않고, 궁지를 벗어나 보인 것이다.
"위기상황을 벗어나는 방식의 수가 진짜 장난이 아니야. 이번 흐름에 결착을 못 지은 건 좀 뼈아프다고."
타타라는 그리 말하고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녀의 옆에 서 있던 《흑기사》 아스칼리드에겐, 그 너머에 있는 수를 보고 있었다.
"지금 궁지를 임기응변으로 벗어난 《도철》은.. 확실히 대단해. ....하지만, 스텔라 양도 상대를 놓쳐 버릴 걸 예상치 못하고 있던 건 아니야."
"뭐?"
"지금 공방으로 스텔라 양은 《도철》을 캠프 바깥, 절벽에 몸을 숨기고 있는 포지션이 아닌, 캠프의 중앙, 숨을 수 없는 완전한 평지로 이동시켰어."
그 곳은──
"그녀가 지닌 필살기를 가할, 절호의 장소."
이 아이리스의 말을 긍정하듯
"창천을 꿰뚫는, 연옥의 불꽃."
뇌진탕에서 벗어난 스텔라가, 《비룡의 죄검》을 하늘 높게 치켜들었다. 그 순간, 《비룡의 죄검》에서, 하늘을 뚫는 홍련의 불꽃의 기둥이 뿜어올랐고, 옅은 대기를 빨아들이며 광도와 열량이 증가하다가
──한 자루의 빛의 검에 집속되었다.
그렇다. 스텔라는 지금 공방으로 샤오 리를 전장의 중앙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모든 절벽에서 떨어진, 평지로.
자신이 지닌 최고 위력의 노블 아츠. 그 기술이 내뿜는, 모든 전장을 통째로 불태워버리는불꽃에서, 도망칠 수 없도록.
이 스텔라의 노림수를, 샤오 리는 그제야 알아챘다.
"다시금 이렇게 저한테 향해지니, 엄청난 위압감이네요..."
《칠성검무제》에서도 감탄했지만, 이 얼마나 웅대한 힘이란 말인가. 거기다 눈앞의 적은 더 힘들게도, 그 힘에 맡겨 잡스러운 공격을 해오지 않는다. 그 공방 속에서, 절벽 아래로 숨어 공격을 피한다는 선택지를, 샤오 리에게 빼앗은 것이다.
다시금 독으로 땅을 녹여 숨는 방법도 있겠지만, 아마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수단은 이미 한 번 상대에게 보였다. 스텔라도 당연히 예측하고 있을 것이고, 뚫은 구멍 속으로 추가 공격을 가해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도망칠 수 없다. 말 그대로, 자신의 무덤 구멍이 되어버릴 것이다.
사면초가. 실로 멋진 공격이다.
그렇다.
《도철》이, 정말로 독을 다루는 능력자라면 말이다.
"가르쳐 드립죠. 우수한 재능이 가끔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간다는 것을!"
◆◇◆◇◆
"....!?"
탕, 하고 눈바닥을 발로 구르며, 캠프 중심에서 우뚝 선 자세를 취한 샤오 리. 그 모습에, 스텔라는 느꼈다. 기척이 바뀌었다. 시선에서 느껴지는 기척이, 도망 일변도에서 자신을 향한 것이다. 이쪽이 지금부터 무엇을 할 것인지,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떠한 대응책이라도 있는 것일까.
모르겠다. ──그럼, 생각해봤자 소용없는 일.
적의 두 손을 분쇄하고, 중앙으로 내몰아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다는 최후의 도주로도 봉쇄한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지닌 최대 위력의 필살기를 선보일 절호의 찬스이니까!
그러니, 망설이지 마!
"모두 불태워버려라!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화염》───!!!!"
스텔라는 망설임을 떨치고, 빛의 검을 휘둘렀다. 거대한 광열의 검으로 전장의 전역을 횡일격으로 휘둘러, 궤도상의 모든 것들을 불태운다.
그건, 쓰나미와 같았다.
빛의 쓰나미는 전장 모든 곳을 집어삼키며, 서 있던 샤오 리에게 쇄도했고
샤오 리를 집어삼켰다.
──그 찰나
"읏!?"
스텔라의 손에, 《비룡의 죄검》에, 이상한 감촉이 돌아왔다. 마력에 의해 만들어진 마검이, 무언가 딱딱하고 묵직한 것에 부딪혀, 튕겨나오는 감각. 횡방향으로 휘둘러진 검이, 반 쯤 휘둘러진 단계에서 움직임이 멎어버렸다.
마치, 그렇다. 마치, ──수 천 톤이나 되는 거대한 쇳덩어리를 때린 듯한 느낌.
어째서, 하고 스텔라가 그곳을 응시했다.
열의 섬광 중심.
──샤오 리가 서 있었다.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화염》의 칼날을, 분쇄됐을 터인 왼손으로 받아들고 있었다.
"뭐, 뭐라고!?"
그 광경에, 스텔라는 혼란에 빠졌다. 눈앞의 현실엔, 어찌 해도 이해가 따라가지 못할 불가사의한 모습이 너무도 많았다.
어째서, 샤오 리의 팔이 움직이는 것인가.
어째서, 자신의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화염》을 막을 수 있는 것인가.
방금까지, 자신의 힘 앞에 어찌할 줄 몰라하던 그녀가.
대체, 어떻게──
하지만, 혼란의 답은 곧바로 밝혀졌다.
샤오 리는 왼손으로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화염》를 받아내며, 오른주먹을 자신의 옆구리까지 당긴 다음...
──창백색의 광열을, 자신의 디바이스 《만귀》에 깃들게 만든 것이다. 그 광열은 소용돌이치며 《만귀》를 감싸듯 모였다. 그리고, 그녀의 오른팔은 창백색 광열에 휩싸였고, ──샤오 리는 고했다.
"천지를 불태우는──"
그 주문.
그것은
'틀림없어, 이 힘은.....!'
"용왕의 불꽃───!!!"
스텔라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답, 그 모든 것을 이해한 순간, 샤오 리의 주먹에서, 푸른 빛의 열섬이 스텔라를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왔다.
"으윽~~~~~~~!!"
스텔라는 재빨리 자신의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화염》를 해제하고, 《비룡의 죄검》을 방패처럼 치켜들어 자신을 향해 쇄도해 오는 열섬을 막아냈다.
순간, 미증유의 열량과 타격이 스텔라를 덥쳤다.
《용신빙의》 상태의 스텔라조차 되받아칠 수 없는 압도적인 힘. 그리고, 순식간에 자신의 팔을 치료해낸 사실.
틀림없었다. 이건 자신과 같은──《용》의 힘.
"그런 거구나....! 당신, 《복사 능력자》였어....!"
《복사 능력자》.
그건 개념 간섭계에 속하는 능력 계통이며, 상대의 능력을 모방하는 힘을 지닌 능력자들의 총칭이다. 바람 능력자라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독의 능력을 쓴 것. 독의 능력을 쓰고 있었다고 생각했더니, 지금은 용의 힘을 쓰고 있는 것.
이 알 수 없는 문제에 대한 답은 하나 뿐.
샤오 리는 《복사》 능력으로, 전투 중에 자신의 능력을 계속해서 바꿔 나간 것이다.
그 이외에, 생각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리고
"정답임다! 제게 닿은 마력의 소유주의 능력을 얻는다. 이것이 《만귀》의 투기, 《오병대주(五兵大主)》임다!"
스텔라의 이해를, 샤오 리도 긍정했다.
"즉, 이 불꽃은 용의 불꽃! 제대로 먹으면 스텔라 님이라 해도 무사하진 못할 것임다!"
용을 토벌하려면, 용이 되어야 한다.
샤오 리는 스텔라의 마력을 《만귀》로 받아내어, 그녀의 위대한 재능, 신화의 세계의 정점 포식자를 재현해낸 힘을 손에 넣은 것이다.
자신과 같은 용의 힘을 지닌 적과의, 미증유의 싸움.
스텔라 자신의 재능이, 스텔라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그 현실을 앞에 둔 스텔라는
'그런 거라면, ──아무런 문제 없어!'
"훗!"
스텔라는 정면으로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화염》에 저항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바닥에 딛던 발에 힘을 풀고, 밀려 나아가는 힘에 맡겨, 자신의 몸을 캠프 끄트머리로 날려보냈다.
동시에, 《비룡의 날개》를 전개.
재빨리 몸을 회전시켜 푸른 열섬을 피해낸 뒤
"이야아아아아아아압!!!!!!!"
날개로 인한 초가속으로, 샤오 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반격은, 그저 용감함에 내달린 것이 아니다. 스텔라는 알고 있었다. 《복사 능력자》가 가진, 두 가지 치명적인 결함을.
확실히, 자신의 용의 힘을 상대로 하는 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하게 상대의 능력을 모방할 수 있는 《복사 능력자》라 할지라도, 복제품인 이상 상대의 능력을 상회할 수는 없다.
그건, 절대적이다.
능력의 질로 상회할 수 없다. 이것이 한 가지 결함.
아무리 완벽하게 상대의 능력을 모방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걸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이야기. 지금 내뿜은 열섬도, 모두 스텔라의 모방일 뿐. 그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스텔라를 넘어서지 못한다. 애초에, 십 년이 넘는 세월을 그 능력과 함께한 사람을, 고작 한 번의 전투로 상회하는 건 일단 불가능할 테니까.
그것이, 《복사》라는 능력이 가진, 치명적인 결함.
'지금까진 정체 모를 힘에 곤혹해 했지만──'
정체는 드러났다.
바닥이 보였다.
상대의 힘은, 자신의 조악품.
그렇다면, ──이제 두려울 것 따윈 없다!
"하아아아아압!!!!!"
스텔라는 화염의 날개에 의한 가속을 이용한 일격을, 몸채로 날리며 내리쳤다. 여기에 샤오 리는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화염》으로 인해 내뻗은 주먹을 다시금 거두고
"...자신의 능력이 모방되었다는 것에 대한 동요는 전혀 없네요. 《복사》한 능력의 위력이 더 강해질 수 없는 것, 숙련도에 있어 원래 능력자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복사 능력자》의 결함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어요. 그 인식은 확실히 맞지요."
그 스텔라의 판단을 긍정하고
"하지만── 그런 결함 능력을 갖고 있어도, 제가 《사선》이 되었다는 사실을 경시한 건, 당신의 큰 실수임다!"
내리치고 있는 스텔라의 혼신의 일격을, 한 손으로 받아냈다.
그것도, ──검지와 중지로 《비룡의 죄검》을 끼워, 아주 간단하게.
"윽...!"
이 사실에, 그리고 무엇보다, 내리치던 검에 느껴지는 감촉에, 스텔라는 경악했다. 설령 용의 힘을 《복사》하여 자신과 같은 힘을 가지게 됐다 할지라도, 그와 동격의 힘을 지녔을 터인 상대가 이렇게 쉽게 받아낼 수 있을 리는 없다.
그럴 터이다.
하지만, 샤오 리는 말 그대로, 조금도 떨지 않았다.
아주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스텔라의 혼신의 일격을 받아낸 것이다.
'뭐야, 이 힘은....!'
막힌 칼날을 거두려 해도, 똑같았다.
묵직함.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힘이, 《비룡의 죄검》을 붙잡고 있었다. 그 힘은, 자신을 아득히 초월하고 있었고
"너, 설마 나보다 용의 힘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이 스텔라의 경악에, 샤오 리는 히죽 웃으며 "설마요!" 하고 부정했다.
"복제품은 어디까지나 복제품입죠. 아무리 잘 《복사》해 내도, 진짜를 넘어설 순 없고, 능력에 대한 숙련도의 차이도 손쉽게 메워질 리는 없어요. 이 두 차이는 아주 크다구요. ....하지만, 그런 진짜와 가짜의 차이 따위는, 우리 위대한 조국, 중국 4천년의 역사 앞에선──아무것도 아니라구요!"
"윽!?!?"
직후, 불꽃의 날개로 하늘을 날던 스텔라의 몸이 바닥에 가라앉았다. 샤오 리가 오른손에 잡고 있던 《비룡의 죄검》을 잡아당긴 것이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스텔라를 잡아당기며, 고도가 낮아진 그녀의 턱을 왼손으로 쳐올렸다.
"카학!?"
"우리들은 4천년이나 되는 세월 속에서, 무를 갈고닦아온 민족. 그 지식은 수많은 차이를 메워 왔지요. 우리 투사와 당신들은, 그저 두 다리로 서 있는 것부터가 완전히 다르다구요!"
턱에 어퍼컷을 맞은 스텔라는 뇌진탕을 일으켰고, 비행능력을 상실했다. 그래도 지면에 나뒹굴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두 다리로 땅에 착지했지만, 그것뿐이었다.
방어 자세를 취하지 못한 채, 무방비하게 물구나무서기로 버티고 있을 뿐이었고
"당신들은 그저 땅 위에 놓여 있는 것뿐. 하지만, 저는 두 다리, 그 발가락으로 대지를 '악물어' 단단히 버티고 서 있지요! 그래요, 당신도 잘 아는, 용의 힘으로! 제 몸은, 이미 이 에델베르크 산의 일부나 마찬가지! 즉, 지금의 제 질량은 이 산과 동등하다는 것임다! 아무리 용이라 해도, 거대한 산은 움직일 수 없는 법! 이것이 사상권 현무의 형태──《태산》임다!!!!"
빨려들어가듯, ──샤오 리의 중단 지르기가 스텔라의 명치에 꽂혔다. 지면을 발가락으로 움켜쥐어, 강고한 지지대로 삼는 《태산》. 그것으로, 자신의 육체의 일부가 된, 에델베르크의 질량. 그 용마저도 아득히 초월하는 압도적인 질량이, 스텔라의 명치에 집중되어, 꽂힌 것이다.
"큭────~~~~~~~~커, 허억!?"
스텔라의 몸은 가볍게 수십 미터를 날아갔고, 꼭대기로 이어지는 에델베르크의 암벽에 메다꽂힌 다음, 흘러내렸다. 낙법을 취할 새도 없이, 안면에서부터.
하지만, 그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스텔라의 명치에 발생한 충격은, 블레이저가 아닌 일반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강철로 만들어진 곡괭이를 온힘을 다해 복부에 휘두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살이 꿰뚫리고, 뼈가 부서지고, 내장이 터져나갔다. 외견은 사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내부는 마치 갈아 놓은 고기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격통. 거기에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 카학! 쿨럭! 쿨럭! 으윽!!!"
곧바로 일어나지 않으면, 추격을 당해버린다. 지금 추격을 받게 된다면, 틀림없이 당하게 된다. 그걸 알고 있었음에도, 복부로부터 전신에 퍼지는, 맛본 적 없는 미증유의 격통에, 피와 토사물을 토하며 몸부림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추격이, 오지 않아.....!?'
이제 끝이라고만 생각하고 각오를 했던 시간이, 10초, 20초가 지나고, 《용의 생명력》이 지닌 엄청난 치유력이 파괴된 내장을 수복해 가고 있었지만, 샤오 리에 의한 추격은 오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스텔라가 그제야 몸을 일으켜 적의 모습을 찾았다.
"아이고야.... 살짝, 이건 좀 곤란해졌네요."
방금과 똑같은 곳에 선 채로, 샤오 리는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이해 못할 행동에, 스텔라는 기침을 하면서 두 다리로 일어선 다음, 검을 들고 말했다.
"콜록, 쿨럭.... 뭐, 가... 곤란하다는 건데....?'
그리 묻자, 샤오 리는 답했다.
"아뇨. 저도 설마 스텔라 님의 힘이 이렇게 엄청난 것이리란 건 생각지 못해서 말이죠. 이런 걸 써서 스텔라 님을 상대하다간, ──전 스텔라 님을 죽여버리게 될 거에요."
"윽!"
"무도가가 대련을 한 결과 목숨을 잃거나, 신체의 기능을 잃는 건 흔한 일. 그걸 부끄럽게 여길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일은 피하는 게 좋다고, 전 생각하고 있슴다."
그리 말한 뒤, 샤오 리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스텔라를 바라보며, 한 가지 요청을 했다.
"여기선, 일단 항복해 주시지 않겠어요?"
"큭.. 분위기 좀 좋다고 해서, 건방 떨지 말라구!!"
자신이 결착을 짓지 않아도, 알아서 그 결착을 받아들여라. 그 의미가 담긴 말에, 스텔라의 부상을 입은 몸에 분노의 힘이 불타올랐다.
하지만
"어째서 고집을 피우시는 거에요? 스텔라 님도, 제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잖슴까? 그걸 모를 정도로 기량이 얕은 분이라곤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데요."
"윽..."
고집을 피우는 아이를 달래는 어른과도 같은 표정과 함께 해 오는 말.
여기에, 스텔라는 부정할 수 없었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느끼고 있던 것이다.
《마인》과 상대할 때에 느끼는, 나락을 들여다보는 공포.
그것이, 한 층 강해졌다.
마치, 나락의 바닥에서 밤보다도 깊고 짙은 어둠이 뿜어져나와,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듯이──
하지만
"....입 다물어!"
그런 이미지를, 스텔라는 필사적으로 떨쳐내며
'괜찮아...! 이길 수 있어...! 상대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구!!'
"우아아아앗!!!"
스텔라는 계속해서 이길 수 있다는, 그 근거 없는 말로 자신을 채찍질했다.
《마인》의 인력에 지지 않기 위해. 《홍련의 황녀》로 있을 수 있기 위해. 흔들리려 하던 자신을 필사적으로 지켜내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관철하기 위해 함성을 내질러 혼의 칼날을 휘둘렀다.
있는 모든 힘으로, 있는 모든 호흡으로, 《비룡의 죄검》을 난잡하게 휘둘러댔다. 자신의 운명, 그 앞선 길에 드리워진 암운을 걷어내기 위해서, 한결같이.
거기엔, 기술도 응변도 뭣도 없었다. 평범한 검사가 휘둘렀다간, 그저 빈틈만 가득 만들어버리는 잡스러운 공격. 하지만, 그래도 스텔라 급의 초인적인 피지컬의 소유자가 하게 되면, 이야기는 달랐다.
보통 블레이저라면, 그녀의 압도적인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강철의 난기류에 휘말려버릴 것이다.
───하지만
"초조한 나머지 포기할 때도 모를 정도로 눈이 어두워져 있는 것 같군요."
스텔라가 상대하는 건, 보통 상대가 아니다.
《도철》 후 샤오 리는 이 소용돌이와도 같이 쇄도해 오는 난격을 아무 어려움 없이 모두 막아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저 오른손 하나로.
귀찮은 파리를 쫓아내듯, 받아내고, 튕겨내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그 때마다 스텔라는 팔을 통해 전해 오는 반동에, 잴 수 없을 정도의 질량이 실려 있는 것을 느꼈다. 사람 한 명으론 움직이는 건 꿈도 못 꿀, 에델베르크라는 웅대한 자연의 질량을.
그건 계속해서 칼을 휘두르고 있던 스텔라의 마음에 짙은 피로감을 가져다주고 있었고
"으윽!?!?"
갑자기, 그 엄청난 질량이 스텔라의 측두부를 강타했다. 스텔라의 몸은 가볍게 옆으로 날아갔고, 지면을 굴렀다.
"아, 으... ──윽!"
머리에 받았던 《사막의 사신》의 주먹에 필적한 충격은, 스텔라의 두개골에 금을 가게 만들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목숨을 잃었을 외상. 하지만, 스텔라는 곧바로 낙법을 취해, 자리에서 일어나며 검을 쥐었다.
《용신빙의》를 발동 중인 스텔라에게, 이 정도의 외상은 대미지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육체의 대미지는 곧바로 치료할 수 있지만, 정신의 대미지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스텔라의 비색 눈동자에 곤혹감으로 나타고 있었다.
스텔라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자신이, 무엇을 당한 것인지. 샤오 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검의 간격, 호흡이 들릴 정도의 거리에서 상대를 보고 있었기에, 틀림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난격을 막기만 할 뿐이었고, 공격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대미지는 무엇인가.
그야말로, 불가시의 타격.
이 이상사태에 스텔라는 다시금 떠올렸다.
역시, 그저 다가가는 것만으론 위험하다고.
──그렇다면
"《연옥룡의 턱》!!"
스텔라는 공격방식을 바꾸었다. 자신의 마력으로 형성된 일곱 목의 염룡을 샤오 리에게 보냈다. 장거리 마법 공격으로 활로를 찾아내려는 듯.
아니, ──그것이 아니었다.
'샤오 리는 지금, 내 용의 힘을 모방하고 있어...!'
그렇다면 자신의 화염은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화염》 정도의 집속력으로 뿜어야만 유효타가 될 터.
실제로, 이 《연옥룡의 턱》을, 샤오 리는 받아내지조차 않았다. 그저 아무 방어도 없이 받아들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 있었다.
용의 힘을 두른, 끓어오르는 작열의 피를 온몸에 보내고 있는 지금의 샤오 리에게 있어, 이런 불꽃은 그녀가 수감 중에 길게 자라난 머리칼을 살랑일 뿐인, 산들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건 스텔라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연옥룡의 턱》은, 어디까지나 포석. 불꽃으로 시야를 가로막은 사이에, 빛의 굴절로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양염의 암막》으로 배후로 다가가,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기 위한 것──
"읏───!?"
하지만, 확실히 사각을 찔러 내리친 공격은, 샤오 리에게 통하지 않았다.
막힌 것이다. 방금처럼, 손가락 두개로 끼워 잡듯이.
하지만 이번엔, ──등을 향한 채.
'어, 어떻게..'
"어떻게 알아챘지, 라는 듯한 얼굴이네요."
"윽....!"
"그 불꽃을 통해 절 쓰러뜨릴 것이란 '살의'를 느꼈기 때문임다. 그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 가짜 불꽃. 가짜 살기.그런 걸로 절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다니, 조금 유감임다."
그리 말하며, 샤오 리는 《비룡의 죄검》을 잡은 손가락에 힘을 넣었다. 스텔라에게서 검을 빼앗으려는 듯이. 여기에, 스텔라는 빼앗기지 않으려 대항하기 위해, 칼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샤오 리가 파놓은 함정이었다. 스텔라가 검을 거둔 찰나, 샤오 리는 검에서 손가락을 뗐다. 그 결과, 스텔라의 몸은 자신의 힘에 의해 뒤로 기울었고, 커다란 틈을 만들어냈다.
그 사이, 스텔라는 공격에 나섰다.
빙 회전하여, 가속을 붙인 돌려차기.
스텔라의 옆구리를 파고드는 일격을 가했다.
하지만, 스텔라도 보통내기가 아닌 운동신경의 소유자. 무너진 자세를 전신의 근육의 힘을 이용해 억지로 가다듬고, 돌려차기를 검의 손잡이로 받아냈다.
──받아냈다.
"카학!?!?"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격은 스텔라의 몸을 꿰뚫었다. 아니, 꿰뚫었다기보다는, 발차기를 받아낸 칼을 통해, 스텔라의 몸 안에 폭발하였다. 그건, 쿠로가네 잇키의 《독아의 태도》가 원리삼고 있는, 중국 권법의 묘기.
충격에 의해 상대의 육체를 내부에서부터 파괴하는, 본가의 침투경이었다.
용이 아무리 단단한 근육의 갑옷을 두르고 있다 할지라도, 그 안의 내장은 부드럽고, 연약한 법. 그런 연약한 내장을 유린하는 충격에, 스텔라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지근전에서의 공격 수단이 너무 다채로워...!'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받아내려고 해도, 모든 것이 무의미. 그 현실을 알려준 샤오 리는
"아직, 납득하지 못하셨나요?"
곤란해하는 표정으로 스텔라를 내려다보며 물어 왔다. 그건, 모멸이자, 연민이었다.
기사에게 있어 이보다 더 큰 모욕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모욕이라 나타낼 수조차 없었다.
"큭..."
어찌할 수 없는 실력차에, 이를 악물었다. 마음 속에, 포기라는 이름의 암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아직이야...!"
스텔라는 포기 속에서 계속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그만두지 않는 미숙한 적에게
"그럼, 가능한 한 빨리 깨달으시라구요."
샤오 리는 한숨을 한 번 흘리고, 어렵게 무릎을 일으킨 스텔라에게 발차기를 가했다.
◆◇◆◇◆
그 뒤로 십 몇분간.
둘의 대전은, 이미 대전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스텔라의 공격은 샤오 리에게 조금도 먹혀들지도, 거기에 동요조차 주지 못했고
"슈웃!"
"카학, 큭!"
공격이 막힐 때마다, 샤오 리의 반격만이 스텔라에게 먹히고 있었다. 깊게, 한 번도 빗나가는 일 없이.
물론, 스텔라도 그저 무모한 공격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요 십 수분 간, 그녀는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공격수단을 다해 공격했다. 장거리에서 가하는 마법전. 근거리에서의 참격전. 둘을 섞은 기교, 그 모든 것들을.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중국 4천년의 역사는 손쉽게 막아버렸다.
흘리는 것도, 충격을 죽이는 것도 아닌, ──정면으로, 그 모든 것을 받아낸다.
받아내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산을 붙잡고 있는 샤오 리의 중심은, 에델베르크의 바닥에 존재해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야말로 《태산》.
중국의 산동성에 위치한, 웅대한 산과도 같은.
그렇다. 그야말로 스텔라가 지금 하고 있는 건, 거대한 산을 칼로 양단하려 하는 행위와 같았다. 확실히, 그녀의 검은 강하다. 휘두르면 대기를 떨게 하고, 땅에 내리꽂으면 땅을 뒤흔든다.
하지만, 그건 국지적인 것에 지나지 않다.
강건한 힘은 산의 표면, 극히 일부의 바위를 깨부술 수는 있겠지만, 땅 그 자체에 뿌리박은 산을 양단할 수는 없다.
스텔라의 도전은 무엇 하나 결실을 맺지 못한 채, 헛수고로 돌아간다.
아니, 헛수고일 뿐만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지금 스텔라가 상대하고 있는 태산은, 사람의 형태를 한 채 반격을 가하고 있으니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스텔라는 뼈아픈 역습을 받아, 공중으로 몸이 날아간 다음 바위에 몸이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지금도──
공격을 받고 있는 샤오 리는 축이 되는 다리를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고, 거기에 덤비고 있는 스텔라만이 튕겨나가고만 있었다.
이 일방적인 전개에, 싸움을 지켜보던 타타라가 이를 갈았다.
"큭! 저 멍청이가! 왜 저렇게 간단히 반격을 받아 버리는 거야....!"
"간단히가 아니야."
그리 부정한 건, 곁에 서 있던 아스칼리드였다. 타타라보다 무예에 정통한 그녀에겐, 지금의 샤오 리가 구사하고 있는 고등적인 기술이 보이고 있었다.
"저건 《도철》이 뛰어난 거야. 자신의 반격이 나가는 궤도를, 스텔라 양의 검이나 팔로 가리고 있어."
"....블라인드, 인가."
그렇다. 샤오 리는 자신의 공격 모든 것들을, 참격을 가해 오는 스텔라의 팔이나 검으로 가려진 궤도를 통해 내뻗고 있던 것이다.
블라인드, ──가라데로 말하자면 '발(簾)'이라는 명칭의 기술이다. 스텔라가 '보이지 않는 공격'이라고 느낀 기술의 정체이다. 즉, 샤오 리는 쓰러져도 쓰러져도 계속해서 일어나는 스텔라에게, 살짝 짜증을 느끼면서도, 죽지 않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힘을 조절하고 있었지만, ──결코 기술에 잡티가 섞이지 않은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여 힘을 죽여 놓았다 할지라도, 마음가짐은 그 기압을 낮추고 있지 않았다. 만일의 반격에 대하여, 언제든지 전력으로 반격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틈이 너무 없어....'
무인으로서의 완성도가 너무 높았다.
이길 수 없다.
그건, 이미 불을 보는 것보다 명백하다. 다른 사람이 보아도 그걸 느낄 정도이니, 스텔라도 당연히 이해하고 있을 터.
그럼에도
"...하악, ........아아...."
측두부를 꿰뚫는 발차기를 맞고 지면을 굴러가던 스텔라는, 다시금 일어나려 했다. 《비룡의 죄검》을 지팡이 삼아, 두 다리를 덜덜 떨면서.
그 모습은, 만신창이였다.
《용의 생명력》에 의한 치유력은 이미 오래 전에 바닥나 있었고, 십 수분 동안 계속해서 받은 일방적인 타격에 의해, 전신에 부상이 나 있었다. 노출된 피부에 보이는 내출혈에 의한 멍은 이미 파란 색을 넘어 검게 물들어 있어서, 그 하부가 치명적이라 느낄 정도로 파괴되어 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스텔라의 너무나도 참혹한 그 모습에, 타타라는 참을 수 없어 소리쳤다.
"이제, 이제 됐잖아. 스텔라! 이제 좀 적당히 포기하라고!"
"......"
하지만, 스텔라는 멈추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아슬아슬한 발걸음으로, 샤오 리를 향해 다가갔다. 이미 검을 자신의 힘으로 들어 올릴 수도 없는지, 바닥에 질질 끌면서.
그 스텔라의 옆모습에, 아스칼리드와 타타라는 알아채게 되었다.
"큰일이야. 이미 의식이 없어."
"큭!"
그렇다. 스텔라의 비색 눈동자엔, 이미 의지의 힘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눈은 어둠에 혼탁해져 있었고, 빛은 이미 사라지려 했다. 그래도 일어나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던 것은, 기사로서의 본능인 것일까.
혹은, 《홍련의 황녀》로서의 긍지 때문일까.
하지만 어느 쪽이건, 이 이상 가격을 당하는 건, 아무리 조절되어 있는 위력이라 하더라도 목숨을 위협하게 된다.
"제기랄!"
따라서 타타라는 둘을 말리기 위해 앞으로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안 돼!"
그 타타라의 어깨를, 아스칼리드가 잡은 순간
"카학!?"
마치 심장을 직접 찔린 것 같은 격통이 타타라를 엄습했다. 그 엄청난 격통에, 타타라는 그 자리에서 무너진 채 신음을 흘렸다.
"뭐야, 이게...!?"
"그것이 《테스타먼트》의 힘. 우리들의 심장에는 이미 맹세의 쐐기가 박혀 있어. 그걸 어기려 하면, 심장이 갈가리 찢겨 버릴 거야.....!"
"제, 기랄....!"
식은땀을 흘리며 타타라는 욕설을 내뱉었다. 확실히 지금, 아스칼리드가 말려주지 않았다면, 자신의 심장은 보이지 않는 칼날에 의해 갈가리 찢겨버렸을 것이다.
그걸 확신케 만들 정도의 격통.
'진짜, 대체 무슨 약속을 하게 만든 거야. 저 멍청한 녀석은...!'
아주 조금이라도, 스텔라를 도우려 걸어나간 것만으로도 이 꼴이다. 이래서야, 싸움을 말리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어떡해야 할까. ──그렇게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타타라에게
"상냥하네요, 당신은."
"읏!"
자신을 향한 목소리.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니, 거기에 있던 건, 어둠을 밝히는 은은한 순백. 두 손에 한 쌍의 날개와도 같은 검을 들고, 세계 최강의 검사가 서 있었다.
"에델바이스.."
"너, 어떻게 여기에..."
깜짝 놀라는 타타라와 아스칼리드에게, 에델바이스는 말했다.
"《도철》이 올 거라 예측하지 못한 건 제 실수에요. 이 사태는 제가 수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둘 사이를 바람이 되어 지나친 다음, 싸움을 멈추려 했다. 여기에, 둘은 안도했다. 에델바이스는 '스텔라를 돕는다' 라는 서약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맹세한 건, 어디까지나 스텔라가 조건을 달성했을 때, 그녀와 대련을 하겠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에델바이스라면 스텔라를 막을 수 있다.
그녀의 무모한, 자살이나 다름없는 폭거를.
그, 찰나──
" "으읏!?!?" "
타타라와 아스칼리드의 사이를, 검은 바람이 불어닥쳤다. 그리고, 검은 바람은 엄청난 속도로 하얀 바람을 쫓아갔고
"!!"
어둠이 깔린 밤을 한 층 더 깊게 덧칠하는 칼날을, 에델바이스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
일절의 주저도 없는, 살의가 담긴 일격.
하지만, 어떤 의표를 찔린 기습이라고 해도, 세계 최강의 검사를 일격에 잠재울 수 있을 리는 없다. 에델바이스는 한 쌍의 검으로 아무 어려움 없이 그 검을 막아냈다.
하지만, 그 표정은 강한 당혹감에 물들어있었다. 그건, 기습 자체에 대한 경악이 아닌──
"──잇키."
기슴을 가해 온 사람에 대한 경악이었다.
그렇다. 스텔라를 지키려 한 에델바이스의 진행을 막은 사람. 기교 있게 위치를 바꾸어, 에델바이스가 나아갈 길을 저지하기 위해 서 있는 남자.
그것이, 예상치도 못한 그녀의 연인인,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만은 용납 못 해요. 에델바이스 양."
◆◇◆◇◆
갑자기 에델바이스를 향해 칼을 휘두르며, 길을 가로막는 잇키.
그 행동에, 타타라가 당혹감을 내비치며
"야, 야! 너 대체 뭔 짓거리야! 그 녀석은 스텔라를 도우려고.."
"그러니 막은 거에요."
"어, 어째서...!?"
스텔라의 연인인 네가 그런 짓을 하는 것인가.
그 질문에, 잇키는 답했다.
"저도 처음엔 그러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했어요. 칼디아에서의 싸움 이후로, 스텔라는 명백하게 냉정함을 잃고 있었죠. 그러니... 급하게 나아가려 하는 그녀를 제지하여, 그녀를 지키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 전 여기까지 따라왔어요.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을 위해 스텔라가 상처를 입어간다니, 그런 걸 그 나라의 사람들이 바라고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칼디아에서, 스텔라는 말했다.
자신이 죽는 한이 있어도 버밀리온의 위협을 물리칠 수 있는 힘.
그것이 없으면, 자신의 목숨 따윈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그건 아니다.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나라의 착하디착한 사람들이, 스텔라를 위해 온 나라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시련과도 같은 도전을 해 온 그들이, 그런 걸 바랄 리가 없다.
그건, 누구도 기뻐할 수 없는 행위이니까.
하지만──
"하지만.... 당신의 검에 맹세했을 때, 전 자신의 착각을 깨달았어요."
'....날 걱정해 주고 있는 모두에게, 지금의 날 믿어달라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어. 그럴 자격은, 내게는 없으니까. 그러니.... 부탁이야. 나에게, 나를 믿게 해 줘.'
스텔라는 그 때, 확실히 그리 말했다. 자신을 믿는 게 아닌, 믿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렇게, 간원했다.
그 간원에, 잇키는 알게 된 것이다. 스텔라가 지금 자신의 무모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마음 속 어딘가에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나 깊은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 그들이 《홍련의 황녀》가 아닌, 《스텔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스텔라는, 황족의 의무라든가, 버밀리온의 검이라든가, 그런 허울 좋은 변명으로 자기 자신을 속여 가면서까지 《홍련의 황녀》로 있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대체 어째서일까.
그건, 잇키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들의 뜻에 등을 돌려가면서까지 관철해 나아가는 '자기'가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스텔라가 버밀리온의 사람들을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거라면, 저도 무슨 일이 있다 하더라도 스텔라를 막았을 거에요. 하지만, 그게 아니에요. 그녀는 지금 자기 자신의, 물러날 수 없는 무언가를 위해 싸우고 있는 거에요. 포기할 수 없는 '자기'를 위해, 맞서고 있어요....!"
주변의 사람들이 아무리 무리라고 해도, 포기하라고, 현실을 들이밀어 온다 하더라도, 그 현실을 분하다고 느끼며, 그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심지.
그건 그야말로, 그녀가 사랑해 준 자기 자신의 삶과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그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자신이, 그녀를 응원해주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러니 전 당신의 검에 맹세한 거에요. 설령 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 하더라도, 스텔라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그 '포기하는 마음'과 싸워 나아가는 한, 그녀는 '자기'를 계속해서 믿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계속해서 믿어 나아갈 수 있는 이 싸움을 저지한다는, 모든 의지를 물리칠 것을...!"
설령 그 행동이 세계 모두가 비난한다 할지라도.
설령 그 행동에 의해 최악의 결말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최강의 파트너에게 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도움이라면──
"내 최약으로, 이번에야말로 당신을 막겠어....!"
검은 칼날을 상대에게 향하여, 저지하려는 잇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에델바이스는
"그런, 가요...."
자신의 결정적인 실수를 자각했다.
에델바이스에게 있어 스텔라 일행과 나눈 《무결한 선서》는, 더욱 효율적으로 스텔라를 이 땅에 묶어 둘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소년은, 자신의 목숨과 그가 가장 사랑하는 소녀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도 각오한 채, 《홍련의 황녀》의 긍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 것을 맹세한 것이다.
좋지 못한 생각이었다.
그 각오를 이끌어 내버린 것.
결국, 자신만이 그 《맹세》를 경시한 것이었다.
눈앞의 잇키의 눈엔, 지금 당장에라도 스텔라를 돕고 싶다는 강한 갈등과, 그걸 단고하게 억누르는 각오의 빛이 띠고 있었다. 이래서야, 절대로 말로 물러나게 할 수는 없었다. 물러날 상대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한 번 지켜내 보세요."
이미 문답 따위, 시간낭비였다.
에델바이스는 스텔라를 돕기 위해, 쿠로가네 잇키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여기에, 당연히 잇키고 응전. 서로 첫 속도를 최고속으로 만들어내는, 섬광과도 같은 참격의 응수가 벌어졌다.
그러나──
'역시, 약해!'
"윽....!"
길항은 벌어지지 않았다.
검은 섬광을, 백은의 섬광이 제압했다. 마치, 길에 나 있는 귀찮은 잔가지를 뿌리쳐내듯, 아주 손쉽게.
세계 최강의 검사와, 일개 검사의 역량차──그런 것이 아니었다. 며칠 전, 에델바이스 자신이 말했듯, 잇키의 검기는 이미 초인의 영역에 달해 있는 신기였다.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밀릴 정도로, 약한 남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피로 때문이었다.
잇키는 요 며칠간, 스텔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과혹한 단련을 계속해 왔다. 고도 9천 미터라는 인류의 생존권 밖에서, 육체와 정신을 극한까지 혹사해 왔다. 당연히 피로해지기 마련. 그리고, 피로는 육체만을 좀먹은 것이 아니다. 마력 또한 마찬가지였다. 즉, 지금의 잇키는 심신이 함께 한계까지 피폐해져 있는 것이다. 당연히, 《일도수라》를 쓸 수는 없을 터.
그런 상대를 제압하는 일 정도, 에델바이스에게 있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후웃!"
"읏, 아앗!?"
몇 합의 교착 후, 왼검의 올려베기에 의해 《음철》이 위로 튕겨났고, 잇키의 가드가 무너졌다. 그리고 텅 빈 몸에, 에델바이스는 오른검을 휘둘렀다.
승부를 결정짓기 위한, 몸통베기.
'당신의 각오를 경시한 건 나중에 사과하겠어요. 하지만... 《홍련의 황녀》를 이룰 이후의 이야기가, 이런 데에서 끝나 버리다니,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도와야만 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게 가능한 건 《무결한 선서》에 스텔라를 돕지 않겠다는 것을 맹세하지 않은 자신 뿐이니까. 그 결의로, 에델바이스는 검을 휘둘렀다.
잇키가 《음철》을 되돌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보통 상대라면, 자신의 특기인 변칙 가드로 막아냈겠지만, 상대는 《비익》. 자신과 같은 신속의 검기를 구사하는 자.
막을 수 없다.
섬광과도 같은 참격은, 잇키의 텅 빈 몸을 향해 똑바로 날아들었고
"으으읏────!?!?"
그 직후, 에델바이스의 표정이 경악에 얼어붙었다.
《테스타먼트》의 몸통베기는, 확실히 잇키의 옆구리에 도달해 있었다.
그렇지만── 그 이상 칼날이 나아가질 않았다.
베어내질 못했다.
그리고, 에델바이스의 칼날이 멎은 그 찰나
"──!"
검은 섬광이 찰나의 길항에 날아들었다.
그렇다. 잇키는 처음부터 방어가 아닌, 반격을 위해 《음철》을 되돌린 것이었다. 그가 노린 건, 에델바이스의 어깨부터 쇄골을 끊어버리는, 대각 베기. 상정치 못한 사태에 사고가 멎어 있던 에델바이스는, 여기에 대한 반응이 늦어버렸고
"큭!"
그럼에도, 왼검으로 방어를 해낸 건, 그녀가 세계 최강의 검사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순식간에 날아들어온 대각 베기를 막긴 했지만, 충격을 완벽히 받아내지는 못했다.
에델바이스의 몸은 뒤로 크게 튕겨났다.
그렇다. ──튕겨난 것이다.
세계 최강의 검사가,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간격에서.
"뭐, 라고....!?"
"저 거리에서, ....《비익》이 튕겨나버렸어...!?"
예상치 못한 현실에 경악을 감추지 못하는 타타라와 아스칼리드. 하지만, 그 본인인 에델바이스의 경악은 둘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그건, 자신이 싸움에서 밀려났다는 사태에 대한 경악,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검을 쥔 오른손에 돌아온, 경질적인 충격. 그 충격에, 에델바이스는 알게 된 것이다.
쿠로가네 잇키가 지금, 무엇을 했는지.
'이건... 마력 방어....!'
마력이 지닌 충격에 대한 내구력을 활용한 방어술. 그것 자체는 놀랄 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블레이저가 마력의 물리 충격에 대한 방어를 펼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스텔라도 이전에, 잇키와의 모의전 때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만으로 그의 검을 받아낸 적이 있었다. 《칠성검무제》 때엔, 모로보시가 잇키의 맹공을 감쇠시키기 위해, 전신에서 마력을 뿜어낸 적이 있었다. 그것과 현상 자체는 같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해내기 위해선, 충분한 마력을 지닌 블레이저여야 하는 것이 전제가 된다. 그의 마력은 원래, 마력을 동반하지 않는 물리 충격조차 완화시키지 못할 정도로 약하고 적었다. 그런 잇키가 이 사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한 가지 수단밖에 없다.
칼날이 닿는 곳에, 마력을 집약시키는 것.
1mm의 엇나감도 없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는, 상대의 칼날이 들어오는 방향에 따르듯 마력을 방출시키는 것. 그것도, 아예 보기조차 어려운 세계 최강이며 최속의 검사를 상대로 말이다.
보고 나서는, 이미 늦는 타이밍.
이걸 해 내기 위해선, 예측해 내야만 한다.
두 수, 세 수, 그 앞을. 몇 번의 공방을 겪고 난 미래를. 에델바이스의 순백의 칼날이 그려내는 참격의 궤도를.
그것이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순간 칼날은 순식간에 자신의 무방비해진 몸을 유린해버릴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보는 바와 같았다. 즉, 쿠로가네 잇키는 그 신기를 해낸 것이다.
"에델바이스 양의 훈련이 힌트를 주었어요. 에델베르크의 끄트머리에 물구나무서기를 했을 때처럼, 마력을 방출시키는 국소를 한계치까지 제한하여, 스텔라가 이전에 저와 모의전을 했을 때처럼, 제게도 마력을 이용한 방어가 가능한 게 아닐까, 하고 말이죠."
"정말 엄청난.... 통찰력이군요."
정말, 무서운 소년이었다.
그리 앓는 에델바이스에게, 잇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대단한 건 아니에요. 제게는 그런 것 외엔 살아 갈 길이 없었을 뿐이니까요."
"........!"
"강해지는 것.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저 그것만이, 제 존재를 지키는 방법이었어요. 쿠로가네 잇키라는 존재는, 그 집에서 누구도 바라지 않는 존재. 적어도 그 때엔 마음 속으로 그리 굳게 믿고 있었죠. ....그러니, 즉 전 이 살아가는 방식에 '매달려 있을 뿐'이었어요. 하지만, 스텔라는 아니에요."
그녀는,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다. 누구에게나, 그 존재를 희망받고 있다. 설령 그녀가 어떤 능력도 없는 보통 사람이라 할지라도, 버밀리온의 사람들은 그녀를 사랑하고, 애지중지해줄 것이다. 그들이 사랑하고 있는 건 《홍련의 황녀》가 아닌 《스텔라》이니까. 그런.... 편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스텔라는 《홍련의 황녀》를 버리지 않으려 했어요! 온몸이 타들어가도, 몇 번이나 자신의 무력함을 통감하더라도, 그리고 지금, 운명이라는 절대적인 파멸을 앞에 두고 있어도, 단 한 번도 도망치려 하지 않았죠. 편하게 도망쳐 숨을 수 있을 곳도, 아무 부자유스러울 것 없는 따스한 장소도,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언제나 자신에게 과혹한 고난을── 이상을 관철했어요. 아무 생각 없이 무턱대고 매달리는 게 아닌, 자기 자신의 결의로!"
그런 삶, 대체 누가 가능할까? 누가 흉내낼 수 있을까?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 이외에, 가능할 리가 없다. 그 정도로 긍지 높은 기사가, 자신 따위도 극복해 낸 운명 같은 것에 집어삼켜질 쏘냐. 그녀는 반드시 넘어설 것이다. 자신 속에 담아 둔 물러날 수 없는 무언가를 위해서.
그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러니
"제가 가장 사랑하는 기사를, 그렇게 가볍게 보지 말라고요...!"
그렇게 잇키가 고한 순간이었다.
마치, 그의 목소리에 응하듯, 잇키의 뒤에서, 스텔라와 샤오 리가 상대하는 전장에서, 오늘 밤 중 가장 큰 극음(戟音)이 터졌다.
◆◇◆◇◆
샤오 리가 눈앞의 이상을 알아챈 건, 잇키와 에델바이스가 충돌하기 직전이었다.
"윽.......!"
그녀는 이미 몇 십번이 될지도 모를 스텔라의 참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디바이스로 받아내며, 스텔라의 복부에 발을 꽂아넣는 예리한 발차기를 가해 왔다. 여기에 스텔라는 종잇장처럼 날아가, 낙법도 취하지 못한 채 땅을 데굴데굴 굴렀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같은 장면을 반복하는 듯한 장면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때마다 샤오 리의 표정이 험해져 갔고
'이상해요, 이거...'
싸움은 압도적으로 자신이 유리했다.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는 자신을 향해, 스텔라는 이미 외상을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소모되어 있었다. 온몸은 상처투성이었고, 피를 흘리며, 사지엔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발끝을 통해 느껴지는 건 딱딱한 복근의 감촉이 아닌, 부드러운 살의 감촉. 충격은 곧바로 내장을 헤집어놓고 있을 것이다. 적의 비색 눈동자는 검게 혼탁해져 있었고, 그 너머엔 조금의 빛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마 눈에 초점도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을 터.
그 마지막 빛을, 다음 일격으로 끝장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런 최후의 일격을, 지금까지 몇 십 번을 반복한 거죠?'
그리고 지금도, 시야 너머에선, 스텔라는 다시금 일어나려 하고 있다. 《비룡의 죄검》을 지면에 박아넣고, 무릎을 덜덜 떨며 억지로 일어나고 있었다. 눈 안에, 아주 희미한, 바늘 끝 같은 아주 작은 빛을 띠고.
──저 빛이다.
힘의 차이는 충분에 차고 넘칠 정도로 알고 있을 터.
오체는 이미 죽어 있다.
하지만
'눈 안에 있는 저 일말의 빛이.... 사라지지 않아.'
그리고 몇 번이고 도전해 오는 것이다. 이미 똑바로 걸어올 수도 없을 정도로 소모되어 있는 몸으로, 검을 질질 끌며 간격을 좁혀 온 다음, 검을 휘두를 것이다. 하지만 저런 꼴로, 날카로운 참격을 휘두를 수 있을 리는 없다. 위세도, 예리함도 무엇도 없는, 그저 검의 무게에 맡긴 채 몸 채로 휘두르는 동작.
그런 검을 받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이다.
그럴 터였다.
'그런데....!'
"~~~~~큭!"
그 순간, 디바이스로 칼을 받아낸 샤오 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괴로움이 배어나왔다. 누가 봐도 위력 따위는 담겨 있지 않은 참격.
그럼에도, ──묵직했다.
묵직한 충격에, 뼈가 삐걱거렸다. 공방을 반복할 때마다, 무거워져 가고 있었다.
'살생은 무에 있어 패배. 그러니 목숨까지는 빼앗지 않기 위해 조심했지만──'
이렇게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이 이상 같은 일을 반복했다간, 정말로 상대를 살생하기에 이를 터.
그렇다면, ──연타다.
지금 여기서, 계속되는 연타로 완전히 의식을 부숴버린다!
"하앗!!"
참격을 막은 샤오 리는, 막은 《비룡의 죄검》을 잡고 자신을 향해 끌어왔다.이로 인해 앞으로 쓰러지는 스텔라의 몸을, 샤오 리는 발차기를 가했다. 수직으로 아래턱을 올려치는, 어퍼컷 킥.
거기엔 이미 힘조절 따위는 없었다. 에델베르크를 지지대 삼는 묵직한 일격엔, 뼈를 부수는 감촉이 되돌아왔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아아아아앗!!!!"
샤오 리는 두 주먹으로 연타를 가했다. 훤히 열린 몸에, 무방비한 머리에, 폭풍우와도 같은 연타를. '두 주먹은 퍼붓는 폭풍우와도 같이, 속도는 일괘편(연발 폭죽)과도 같이'라 일컬어지는 중국이 자랑하는 번자권을 훨씬 상회하는 신속. 이미 보통 사람은 눈으로 볼 수조차 없는 속도로 육체를 타격하고, 눈 깜짝할 새에 17번의 타격음이 한 소리로 들릴 정도의 연타를 구사하고 있었다.
죽어 가는 사람에겐 너무도 과잉한 폭력.
당연히, 이 기관총과도 같은 연타를 제대로 받은 스텔라의 몸은 뒤로 크게 젖혀졌고,
그대로 쓰러지지───않았다.
뒤로 젖힌 몸을 되돌리며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으윽────!?"
몸을 일으키는 기세 그대로, 샤오 리에게 《비룡의 죄검》을 휘둘렀다. 대기를 전율시키는, 오늘 밤 들려 온 소리 중 가장 큰 극음.
그 일격의 무게는, 오늘 밤 나온 공격 중 그 어떤 참격보다 묵직했고── 놀랍게도, 지금까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던 샤오 리의 《태산》을 밀어냈다. 발가락으로 바위를 깎아내며, 수 미터나 뒤로 밀려나는 샤오 리. 참격은 《만귀》로 받아냈기에, 대미지 자체는 없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경악과 혼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렇게나 엄청난 연타를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반격해 온 적에게.
그 혼탁해진 눈, 그 깊은 곳을 계속해서 밝히던 빛에. 그건 마치, 우주라는 끝없는 심원의 어둠 속에서, 하염없이 빛나고 있는 별처럼. 만신창이의 스텔라를 계속해서 지탱해주는 이 빛, 감정.
그건, 버밀리온의 황족으로서의 긍지, 《홍련의 황녀》로서, 스텔라 버밀리온의 검으로서의 책임감.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변명'은, 이미 후 샤오 리의 주먹에 분쇄되었다. 절대강자로서 태어난 것에 대한 자존심도, 단련으로 쌓아 온 자신도, 그 모든 것들은 초연한 무에 의해 부서져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단 하나,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단 하나, 조금도 빛이 흐려지지 않는 감정이 있었다.
그건, ──감사였다.
자신의 부모, 언니, 그리고 버밀리온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 대한 감사.
'아아......... 그랬어..'
이미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눈도 보이지 않는 몽롱한 의식 속에서, 스텔라는 떠올렸다. 자신의 능력이 처음 발현한 날의 일. 그리고, 자신의 기사도를 향하겠다 결정한 날의 일을. 자신의 너무도 강한 능력에 의해 온몸에 화상을 입은 그 날, 자신은 유치원의 친구들과 수업의 일환으로, 인형극을 보고 있었다. 그 극장에서 벌어진, 갑작스런 화재. 당연히 피해는 자신 하나로 그치지 않았다. 다행히 어른들의 신속한 대응으로 인해 죽은 사람은 나오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상을 입었고, 재산을 잃었다. 능력의 발현은,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돌발적으로 벌어진다. 어린아이에게, 자신의 악의 따위는 없이 말이다.
상식으로 그리 알고 있다 할지라도, 실제로 화재를 일으킨 것에 대한 원망스런 말 하나정도는 하는 것이 당연할 터.
──하지만, 버밀리온의 국민들은, 누구도 자신을 탓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기는커녕 갑작스런 능력발현과 몸의 고통으로 인해 패닉을 일으켜 울음을 터트린 자신을 안아 주며, 괜찮다는 말과 함께 달래주었다. 유치원 선생님, 극단의 관계자, 그 화재에 휘말린 모두가, 언제 다시 화염이 발현될지 모를 그 상황에서, 자신에게 다가와 준 것이다.
그렇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 나라의 사람들이, 그 아무도 아니었던, 그저 《스텔라》를 사랑해주고 있었던 것을. 그런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해 《스텔라》가 상처입는 것을 바랄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었음에도 《스텔라》는 《홍련의 황녀》가 되는 것을 바랐다. 황족이니까, 기사이니까, 모두를 지켜야만 한다. 그런 자신과 주변 모두를 납득시킬 안성맞춤인 기만을 늘어놓으며, 《스텔라》를 위해 기사도를 걸어 나아가는 것에 반대하던 모두를 거부하고, 《홍련의 황녀》가 되는 것을 고집했다.
그건 어째서였을까.
이유는 하나 뿐.
지금이라면 알 수 있었다.
다른 모든 것들이 벗겨져서 떨어져나간 지금이었기에, 확실히.
'나는, 모두의 앞에서 그저 폼을 잡고 싶었던 거야.'
자신을 사랑해 주고, 길러 주었던 멋진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러운 자신을 내세울 수 있기 위해서, 그저 그들의 사랑에 매달릴 뿐인 겁쟁이가 아닌, 모두의 '자랑스러운 딸'이 될 수 있기 위해서.
그것이, 《홍련의 황녀》의 계기.
고향에 있는 수많은 부모들을 위한 감사의 마음을 비롯해 싹튼, 작은 고집.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멋진 자신을 보여주고 싶은. 그런 하찮은 허세.
하지만 그 '자기'만큼은, 몇 번이고 자신의 불꽃에 상처입으면서도, 주변 어른들에게 포기하라는 질책을 듣더라도, 흔들리는 일 없는.... 그리고 지금 당장에라도 꺾여버릴 것 같은 마음을 이렇게나 강하게 지탱해 주고 있었다.
이 감사만은, 어떠한 운명을 앞에 두고 있더라도 내버릴 수 없다고, 거기에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그렇다면, 나아가자.
아직 몸은 움직인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자기'를 관철하기 위해 단련해 온 자신의 몸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렇다면, 마음속에서 계속 빛나고 있는 감사를 검에 담아,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길을 가로막는 어둠을 향해 휘두르자.
황족으로서의 의무가 아닌, 버밀리온의 검이라는 책임도 아닌, 아버지, 어머니, 언니,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고, 길러 준 고향의 가족들에게.
모두가 사랑해 준 그 보잘 것 없는 겁쟁이가, 훌륭한 기사로 자라났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기 위해서...!
"창천을 꿰뚫는 연옥의 화염..."
◆◇◆◇◆
"──크윽!"
그 순간, 발을 내딛고 있던 《도철》 후 샤오 리는, 보게 되었다. 대치하고 있던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이, 느릿한 동작으로 《비룡의 죄검》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그 자세는 이미 한 번 보았다. 잘못 볼 리가 없다.
그녀 전매특허의 최대 화력을 자랑하는 노블 아츠,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화염》의 자세이다. 하지만, 검에 깃든 불꽃은 덧없었고, 살짝 홍련색의 빛을 띨 뿐이었다. 방금 본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화염》와는 천지차이였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할 터. 스텔라는 이미 받은 대미지를 회복시킬 수 없을 정도로 소모되어 있다. 만신창이. 피로곤비. 그런 꼴로 완벽한 일격 따위가 가능할 리는 없었다. 그리고 완벽한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화염》을 어려움 없이 받아낸 자신이라면, 저 공격을 두려워할 필요는 조금도 없었다.
필요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런──
그런 헛소리를, 샤오 리는 사고 속에서 제외시켰다.
당연했다.
지금 스텔라의 검에 깃든 빛은, 샤오 리도 꺼트릴 수 없었던 그녀의 눈에 깃든 빛과 똑같았으니까....!
'눈이 흐려져 있던 건, 아무래도 제 쪽이었던 모양이에요.'
목숨을 빼앗을 필요까진 없는 '약자'라고, 그리 스텔라를 깔보고 있었다. 그건, 얼마나 어리석은 착각이었을까.
저 눈을 보라.
저것이, '약자'가 가능한 표정인가.
자신도 탁월한 실력의 소유자였기에, 싫어도 알게 되어버리는 역량의 차이나, 자신이 지는 운명의 한계를 몇 번이고 넘어서 통감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눈 속에 있는, 포기와 절망이라는 어둠 속에서 계속해서 빛나는 일말의 빛은, 자신의 생명을 일직선으로 향해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녀에게는, 있는 것이다.
어떠한 궁지에 몰려 있더라 하더라도 절대로 버릴 수 없는 것.
──자신에게 있어, 조국의 긍지와 같은 무언가가.
그렇다면, 마음은 꺾이지 않는다. 마음을 꺾을 수 있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계속해서 덤벼 올 것이다. 그 혼의 불꽃이 계속 불타고 있는 한. 그리고, 그 집념은, 틀림없이 닿을 것이다.
그리 머지 않은 시간 내에,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사정을 봐 줄 상대가 아니었다.
자신도 또한, 조국을 위해 최강이 되어야 한다면──
]
'눈앞에 있는 건, 지금 여기서 확실히 쓰러뜨려야 할 '적'이야!'
"흠!!"
열백의 기합과 함께 샤오 리가 암벽에 발을 굴렀다. 그녀의 오른발에 달려 있던, 철구가 달린 족쇄가 부서졌다.
그리고
"??! 지금까지 보였던 불손한 태도, 발언, 그 모든 것을 취소하겠슴다. 당신은 제 혼신, 중국 4천 년의 모든 것을 쏟아 싸우기에 걸맞은 적. 그러니──"
보여 주겠다.
자신의 전력, 《신룡사》가 4천 년의 세월에 걸쳐 도달한, 사상권의 도달점을!
결의를 다진 샤오 리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두 손을 머리 위로 뻗어 반달을 그려낸 뒤, 숨을 들이쉬었다. 천천히, 크게, 폐를 한계까지 부풀어올린 다음, 혈액에 활력을 담았다.
그리고, 전신에 날뛰는 힘을──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압────!!!!!!!"
천지를 전율시키는 포효와 함께, 내뿜었다. 그 찰나, 샤오 리의 몸에서 푸른 빛의 기둥이 만들어져, 하늘로 솟아올랐다.
어둠을 꿰뚫는, 청백색의 빛. 날뛰는 힘의 범류는, 지금까지 보여 준 샤오 리의 힘 중 차원이 달랐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샤오 리의, 그리고 사상권의 비기.
《신룡사》의 투사 중에서도, 현 《투신》인 《대노사》와 천재 《도철》만이 다다른 궁극기.
사상권 오의, ──《기린공》.
전신을 돌아다니는 마력, 체력, 기력, 그 모든 힘을 순식간에 해방시켜, 생명의 생존본능의 한계치를 일시적으로 끊어내고, 순식간에 자신의 투기의 힘을 수십 배까지 이끌어내는 호흡법.
이 하늘을 뚫는 창염을 눈앞에 두고, 곁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잇키는, 알아채게 되었다.
'이..건....!'
그것이 그야말로, 자신의 노블 아츠인 《일도수라》와 같은, 집중의 극치라는 것을. 거기다 《기린공》에 의해 강화된 것은, 《낙제기사》의 빈약한 능력 따위가 아니었다.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의, 용의 힘.
너무나도 차원이 다른 《도철》의 저력에, 잇키의 가슴 속에 담아 둔 불안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스텔라를 지켜보는 자의 불안을, 샤오 리가 의식할 리는 없었고, 그녀는 《기린공》에 의해 강화된 용의 힘의 모든 것을 《만귀》에 깃들게 하여, 두 팔을 청백색 광열을 띤 플라즈마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푸르게 빛나는 손을 주먹으로 만들어, 힘을, 의지를, 자신이 자랑하는 중국 4천 년의 모든 것을 담아──
"간다아앗!!!"
자신을 가로막는 용을 물리치기 위해, 《도철》은 이 날 처음으로, 온 힘을 다해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
두 팔을 태양으로 만들고, 샤오 리는 검을 든 스텔라를 향해 달려갔다. 장거리에서의 마법전은 구사하지 않았다.
《마인》인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싸움이, 이미 운명의 고리의 밖, 다다른 적 없는 미답의 영역에 나아가 있는 싸움이라는 것을.
'어설픈 흉내를 내며 장거리포로 싸웠다간, 오히려 밀릴 거야.'
여기서 필요한 건, 전술이나 기량을 넘어선, 혼의 힘. 자신의 가치를 믿으며, 자신의 사상을 건 각오의 강도.
이런저런 잔재주 따위는 전혀 필요없다.
믿을 수 있는 건, 자신의 긍지, 중국 4천 년의 긍지를 말아 쥔, 이 《만귀》뿐!!
──그렇기에
'정면승부로 가는 거야!'
상대의 각오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도망칠 수도 없다.
여기서 상대의 각오에서 도망치게 된다면, 두 번 다시 자신의 주먹에, 상대의 각오를 분쇄할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각오가 상대의 각오를 분쇄한다, 그 확고한 자신을 믿어 의심치 않고, 똑바로 나아간다.
스텔라의, 검의 간격 속으로.
"────큭!"
그리고, 샤오 리가 검의 간격에 파고든 찰나.
《비룡의 죄검》이 내리쳐졌다. 검과 주먹. 선제공격은 어쩔 수 없이 스텔라가 가져가게 되었다. 샤오 리가 스텔라의 간격 속에 파고들기 위해선, 그녀의 일격을 일단 막아내야만 한다. 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샤오 리는 굳게 믿었다. 스텔라를 경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막 자신을 향해 쇄도해 오는 불꽃의 검, 척 보기엔 중력에 이끌릴 뿐인 힘없는 참격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샤오 리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을 지탱해 주는 건 중국의 4천 년.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긍지였다.
'받아내겠어! 이 《태산》으로!'
"후웃!"
샤오 리는 스텔라의 크리티컬 존에서, 대지를 쥐었다. 《기린공》으로 수십 배나 강화된 용의 힘으로, 에델베르크의 모든 중량을 담았다.
그리고, 그 강고한 지지대를 발치삼아, 자신을 향해 떨어지는 스텔라의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화염》을, 광열에 빛나는 왼팔을 휘둘렀다.
──받아낸다.
왼팔의 《만귀》로, 스텔라의 《비룡의 죄검》을.
그 직후, 홍련과 창염의 충돌에, 주변의 대기가 날뛰었고
"~~~~~~~~~~~~~~~~~크으으윽!!!!!!!"
샤오 리의 전신에 미증유의 질량이 가해졌다. 충돌의 충격만으로 주변의 대기를 날뛰게 만들고, 바닥에 깔려 있던 눈이 뒤집어 일어나는, 초중량의 일격. 그건 샤오 리의 팔을 다시금 손쉽게 분쇄. 거기에 그치지 않고, 어깨를 통해, 전신으로 퍼졌다.
압괴되는 어깨.
찌그러지는 내장.
압력에 맞서기 위해 온몸에 힘이 들어간 근육은, 순식간에 장력의 한계를 넘어 끊어졌다.
그리고, 샤오 리가 지지대로 삼던 암반에까지 균열을 만들어냈고──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지만, 그래도 《태산》은 흔들리지 않았다. 샤오 리의 척추는, 구부러지지 않았다.
그녀는, 받아낸 것이다. 스텔라의 각오, 혼의 중량, 그 모든 것들을. 그렇게, 양자 사이에 길항이 만들어진, 찰나──무언가가 부서지는 새된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발생된 건, 양자의 길항의 중심.
그건, 《홍련의 황녀》의 디바이스, 《비룡의 죄검》에, 금이 가는 소리였다. 한 번 금이 간 이상, 멈추는 일은 없었다.
《만귀》에 의해 막힌 《비룡의 죄검》에, 엄청난 균열음이 일었다.
부서져간다.
스텔라 버밀리온의, 혼의 상징이.
무리도 아니다.
지금까지 세 번이나 축적된 대미지.
그걸 억누르고, 계속해서 짜낸 최후의 혼신의 일격을 받아낸 것이다.
그 현실에, 불굴의 스텔라의 마음이 꺾인 것이다.
'이겼어.....!'
금이 가고 있는 《비룡의 죄검》을 보고, 샤오 리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남은 건 왼팔을 휘둘러, 검을 치워내고, 주먹의 간격 속으로 파고들어 공격하는 것뿐.
──용의 힘을 두른, 오른 주먹의 붕권을.
그걸로, 이 대련은 내 승리다!
그 확신에 샤오 리는 금이 간 《비룡의 죄검》을 치워냈고
'에....'
움직일 수 없었다.
힘껏.
금이 간 《비룡의 죄검》을 부숴버리기 위해 휘두른 왼팔이.
조금도.
무거웠다. ──가해지는 압력이,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도 약하지지 않았다.
어째서, 하고 경악에 찬 표정으로 샤오 리는 《비룡의 죄검》을 바라봤고
'.......윽!'
다시금 말문을 잃었다.
금이 간 《비룡의 죄검》.
다 부서진, 이제 덧없는 가루가 되어 흩날릴 운명인 검.
하지만 그 균열 내부로, 어둠을 가르는 금색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은 《비룡의 죄검》의 붕괴가 진행될 때마다 광도가 더해졌고, 마침내 직시가 불가능할 정도로 빛나며 샤오 리가 뿜어내는 푸른 불꽃을 삼켜가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샤오 리는 알게 되었다.
이건 붕괴 같은 것이 아니다. 끝 따위가 아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그렇다. 마치,
우화하는 모습───
"너, 말했었지? 너 자신은... 산과 같은 무게를 갖고 있다고."
"윽───!?"
"그렇다면, 산 채로 베어 버리겠어───!!!!!!"
그 순간, 내부에서 빛을 뿜어내던 《비룡의 죄검》이 폭발했다.
뿜어나오는 빛은, 소리도, 어둠도, 절망도──그 모든 것을 불식시키는 빛의 불꽃.
그 압도적인 열량은, 순식간에 《도철》 후 샤오 리의 의식을 세계에서 끊어버렸고, 세계 최고봉 《검봉》 에델베르크를,
───양단했다.
◆◇◆◇◆
"무.....슨....."
《비룡의 죄검》의 내부로부터 흘러나오던 금색의 빛.
그것이 검이 되어 산채로 샤오 리를 용단(溶斷)한 광원을 바라보고,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그 파괴력에 할 말을 잃고 있었다.
기나긴 침묵이 흘렀다.
제 5캠프에서부터 에델베르크의 바닥까지 새겨진 검은 참흔.
그 바닥도 보이지 않은 나락에 삼켜진 샤오 리의 반격은──오지 않았다. 이윽고,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 스텔라가 자신의 승리를 과시했다.
빛 속에서 나타난 검을, 하늘 높게 치켜들고.
"저, 검은...."
치켜든 검은, 《비룡의 죄검》과 비슷하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하고 있었다.
달궈진 철과 같은, 황금색의 양날검. 그 길이는 스텔라의 신장을 가볍게 넘어서고 있었고, 그 중심부의 두께는 사람의 팔 정도를 자랑하여, 그 완강함을 내세우고 있었다.
코끼리의 머리조차 순식간에 베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며, 세세하게 깃들어진 아름다운 장식이 용맹함과 장엄함, 그리고 기품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비룡의 죄검》이, 변화한 건가."
이 타타라의 혼잣말을, 곁에서 듣고 있던 아스칼리드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비룡의 죄검》는 블레이저의 혼의 상징. 혼의 존재의의가 바뀌게 된다면, 그 형태로 변화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도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마음에 응하기 위해, 혼이 진화한 거야. 그 강고한 마음을 받아들이는 형태로..."
주인의 마음을 받아들이듯, 더욱 크고, 강하고, 아름답게.
하지만
"앗!"
그 드높게 들어올려진 긍지 높은 스텔라의 혼이, 갑자기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 이어서, 스텔라 자신의 몸도 비틀거리며 쓰러지고 있었다. 너무나도 큰 소모에, 자신의 무게조차 버틸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자신이 만들어낸 절벽에 떨어져버리게 된다.
그 장면에, 위험하다고 느낀 타타라가 앞으로 달려나가려 했지만, ──거기에 그치게 되었다. 아마, 그녀가 검을 치켜들어 승리를 확신함과 동시에 달려갔을 쿠로가네 잇키가, 누구보다도 먼저 그녀의 곁으로 달려가 떨어지려 한 그녀를 받아든 것이었다.
"────,...잇....키......?"
"고생 많았어. 스텔라."
자신을 안고 있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연인의 격려에, 스텔라는 희미하게나마 미소를 지었다.
"....고마, 워....!? 아얏! 아야야야!!"
그리고 비명을 내질렀다. 잇키의 포옹은 너무도 강해서, 여기저기에 금이 간 몸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자, 잠깐! 지금 몸 완전 엉망진창이니까, 좀 더, 약하게.. 해 줘...!"
그리 간청하는 스텔라에게 잇키는 "싫어..." 하고 더욱 힘을 담아 답했다.
"어, 어어어어째서!?"
"싫어. 이 정도는 참아 줘야, 내가 참은 것에 대한 보답이 될 테니까."
"읏....!"
그 말을 듣고, 스텔라는 느끼게 되었다. 잇키의 몸이 조금씩 떨리고 있는 것을.
그것이, 자신을 잃을 뻔한 것에 대한 공포에 의한 것이란 걸, 말하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눈치가 나쁘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나, 걱정이었어?"
"당연하지."
"하지만, 믿어 줬지..."
"....그것도, 당연해."
"응... 고마워. ..........아."
갑자기, 눈을 들어 보고 있던 잇키의 얼굴의 윤곽이, 빛나기 시작했다. 스텔라는 그 빛의 근원을 따라 고개를 돌렸고, 보게 되었다. 고개를 돌린 시야 너머, 평지 저 너머로, 6일 째의 아침 해가 올라오고 있는 광경을.
최후의 밤이, 밝은 것이다.
여기에 맞춰, 축복의 박수가 스텔라의 귓불을 때렸다.
박수를 보낸 건, 약속을 나눈 상대. 《비익》 에델바이스였다.
"아주 훌륭했어요. 스텔라."
"에델바이스 양..."
에델바이스의 모습에, 스텔라는 잇키에게서 몸을 뗀 뒤 그의 어깨를 빌려 자신의 다리로 일어났다.
그리고 말했다.
"....약속은, 지켰어."
여기에 에델바이스도 긍정을 하며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네. 보고 있었어요. 설마... 기나긴 《신룡사》의 역사 속에서도 손꼽을 정도의 천재라 불린 《도철》후 샤오 리를 쓰러뜨리다니, ....솔직히 놀랐어요. 아무래도 저도 《도철》처럼 《홍련의 황녀》라는 무서운 기사를 잘못 보고 있었던 것 같군요."
그리고
"지금의 당신이라면, 싸울 가치가 있지요."
그리 말하고, 에델바이스는 가늘게 뜬 눈 속 깊은 곳에, 백색 칼날과도 같은 살기를 띠었다.
"────"
"척 보기엔 만신창이인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때와 장소를 가리는 경기 선수의 입장도 아니겠지요. 거기에 이건 당신이 말한 승부이니까요. ....설마, 도망치지는 않겠지요?"
자신의 살기에 몸을 굳히는 스텔라를 보고, 에델바이스는 그리 도발했다. 여기서 컨디션이 완전치 못하다는 것을 이유삼아 도망치는가, 라는 꼴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않겠지? 라며.
거기에 스텔라는, 어딘가 자신에게 매달려 있던 무언가가 떨어져나간 듯한 온화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니. 꼬리 말고 도망칠 거야."
"....어째서죠?"
"샤오 리와의 싸움 속에서 알게 되었어. 소국인 버밀리온이 주권을 지키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 이 목숨을 바꿔서라도 국민을 지킨다. ....그런 건 모두, 그저 내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난 그런 거창한 이유로 검을 쥔 게 아니었어. 날 언제나 움직이게 해주었던 건, 좀 더... 좀 더 저속한 고집에서 비롯된 거였어. 난 그저, 날 돌봐 준 그 나라의 모든 사람들에게, 강해진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뿐이었던 거야. 그리고, 그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 내가 버밀리온의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했듯이 말야."
그렇다면, 살아야 한다.
이런 꼴로 세계 최강의 검사와 싸우다니, 그런 무모한 짓은 불가능하다.
부모보다 먼저 죽는다니, 그보다 더한 불효는 없을 테니까.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 뿐. 한시라도 빨리 버밀리온으로 돌아가서, 잔뜩 먹고 잔뜩 자서, 피로와 부상을 회복시킨 다음──내 가족들을 위협한 그 망할 놈들을 흠씬 두들겨 패줄 힘을 비축하는 것. 그러니까, 도망칠 거야. 내 하찮은 자존심 따위보다 더욱 중요한 것을, 난 알게 되었으니까."
"....잘 알아채셨습니다."
이 스텔라의 대답에, 에델바이스는 진심으로 기쁜 미소를 지으며 《테스타먼트》를 거두었다.
"소중한 사람들을 목숨을 바쳐 지킨다. 확실히 멋진 일입니다만.... 그런 무언가를 내버린다는 각오로서는 고작 동귀어진에 그친 결과를 가져올 뿐. 미래를 개척할 수는 없겠지요. 운명의 인력을 끊어버리고, 미답의 미래를 개척해 나아가는 건 언제나 희망 뿐. 이렇게 만들고 싶다는 미래. 그렇게 존재하고 싶다는 미래. 그런 자신의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 강한 의지에요. 그 강한 의지를 앞에 두고, 운명 따위는 젖은 종이 정도의 장해물도 되지 않죠. 포기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무엇이든 가능하니까요. 무엇보다── 인간은 날개 없이 달까지 간 생물이라구요?"
"에..."
에델바이스의 말, 그걸 스텔라의 곁에서 듣고 있던 잇키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런 잇키의 시선에, 에델바이스는 장난을 즐기는 어린아이의 미소를 지으며, 입가에 검지를 가져다 댄 뒤
"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런 상태로는 산을 내려가는 것도 힘들겠군요. 제 집에서 식사를 준비할 테니, 양껏 드시고 돌아가도록 하세요."
"정말!?"
여기에 스텔라의 표정에 환희가 내비쳐졌다. 요 며칠간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지금 막 사선을 넘어선 그녀는, 뱃속이 완전히 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그랬기에, 스텔라는 이 초대에 감사를 나타내고
"고마워요, 에델바푸헉!?"
하지만, 감사는 끝맺지 못했다.
벌린 입에 눈덩이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고프면 눈덩이라도 처먹어, 이 돼지야."
"타타라! 뭐 하는 거야, 갑자기!"
입에 들어간 눈을 아작아작 씹어먹으며 항의하는 스텔라에게, 타타라는 어느새 만들었는지 모를 눈덩이를 품에 가득 끌어안은 채 던지며 히스테릭하게 소리질렀다.
"시끄러! 짜증이 나서 못 견디겠단 말이다! 왜 내가 너 같은 멍청이 때문에 이렇게 울컥해야 하냐고! 그대로 죽어버려!"
"뭐, 뭐어!? 뭔 영문 모를 헛소리로 화내고 난리야!? 이.... 아얏!? 잠깐, 돌! 지금 돌 넣었지!? 이제 안 봐줘! 그쪽이 그렇게 나온다면 이쪽도....!"
"《완전반사》."
"치사해애애애애!!!!!!!"
분노에 피로도 잊은 것인지, 타타라와 눈싸움을 하는 스텔라.
그런 스텔라의 모습은, 잇키는 마음 깊이 안도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때는 어떻게 될까 하고 걱정했지만.... 에델베르크에 와서 다행이었다고.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의 옆모습에, 칼디아 시에서 병사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보였던 위험한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죽는 게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싸운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진정으로 바랐던 미래의 형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렇게, 6일간에 걸친 수행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