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장
버밀리온의 검
《도철》 후 샤오 리와의 싸움 뒤.
아침 식사를 마친 스텔라 일행은, 더 있을 필요도 없다는 듯 자신의 전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을 배웅하는 사이, 에델바이스는 《도철》을 찾기 위해 나섰지만, 스텔라의 일격에 의해 깊게 새겨진 계곡 속에도, 그녀의 모습은 없었다.
그 때, 그녀는 스텔라의 용의 힘을 《오병대주》로 복사했었다. 그 용의 힘이 불타는 일격으로부터 그녀를 지켜냈고, 상처를 회복시켰을 것이다. 산기슭에 가서 물어보니, 자신의 발로 산을 내려가, 고국으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았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을 건 싸움에 패배한 이상,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은 없다고 말을 남기고.
....스텔라도 그렇고, 잇키도 그렇고, 요즘 젊은 세대의 늠름한 정도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갑자기 조용해져서, 좀 적적하네요."
몇 시간 전, 스텔라 일행이 식사를 하던 테이블에 앉은 채, 혼자서 애프터 눈 티를 준비하며, 에델바이스는 미소와 함께 한숨을 흘렸다.
자택에서 느긋이 휴식을 취하려 하자, 갑자기 찾아온 반갑잖은 손님. 처음엔 그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세대의 성장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던 요 6일간은, 지나 보니 쓸쓸하다고 느낄 정도로는 즐거운 시간이 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닥쳐 올, 미증유의 시련.
그 시련 속에서, 이 산에서 벌어진 일이 그들의 기사도를 관철하는 데에 있어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에델바이스는 마음 속 깊이 생각했다.
"최후의 휴식 속에서, 그들과 만나 다행이야."
──《괴뢰왕》 일행은 이 세계의 톱니바퀴를 망가뜨렸다. 지금, 세계는 계속해서 삐걱이며, 쓰러지기 직전까지 조금의 유예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아직 그 붕괴는 내부에 그쳐 있었지만, 이윽고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형태로 세상을 움직이게 될 것이다. 어쩌면 그건, 이전에 츠키카게가 말한 악몽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물론, 에델바이스도 잠자코 앉아 그걸 받아들이고만 있을 리는 없었다.
힘 있는 자의 책무는, 검과 함께 스승에게 배웠던 것이니까.
...휴식은, 끝이다.
에델바이스는 김이 피어오르는 홍차를 천천히 다 마신 후, 일어났다. 그리고, 선반에 있던 두 사진첩 중, 쓰러져 있던 것을 다시 세워 놓고, 그 안에 있는 어린 시절의 자신과 나란히 찍혀 있는, 멋진 수염을 기른 동양인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스승님."
◆◇◆◇◆
그 때, 스텔라 일행을 태운 비행기는 버밀리온 황도, 플레어베르크에 도착해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넷을 마중나온 건, 두 명. 저녁 노을의 비색보다도 선명한, 홍색의 기모노를 입은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와, 스텔라의 언니, 루나아이즈 버밀리온이었다. 그 중 네네가, 걸어오는 넷을 향해 자신도 걸어나갔다. 그리고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넷의 선두를 걸어가던 스텔라를 시선으로 위압했다.
──멈추라, 고.
자신이 그리는 건, 자신의 전방 10미터 정도의 라인을 가로막는, 불가시의 벽.
이 라인을 넘어서는 것을, 자신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공갈.
자신의 운명의 인력으로, 둘 사이에 교착하는 인과를 만들어낼 것을 명했다. 그건 이전에, 《사막의 사신》 나짐 알 살렘에게 도전하려 했던, 스텔라를 얽어맨 힘이다. 버밀리온을 떠났을 때의 스텔라와 똑같다면, 여기에 저항할 수가 없을 터. 네네가 발하는 의에 억눌린 채,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절대로 지나갈 수 없을 것이라 결정지은 곳에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하지만
"────"
아주 손쉽게, 커튼을 통과하는 것처럼, 스텔라는 발걸음 하나 바꾸지 않고 통과한 뒤, 네네의 앞에 섰다.
"다녀 왔어요. 네네 선생님."
"에델베르크에 간 건 쓸데없는 일이 아니었나 보네. 아주 좋아~"
스텔라의 표정에 확실한 성과를 느끼고, 네네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돌아온 대표 일동을 둘러본 뒤, 고했다.
"모두가 에델베르크에 간 사이에, 상대 쪽에서 정식적인 대표 통지가 날아왔어. 클레이델란트의 참가 선수는 《황금의 바람》 요한 크리스토프 폰 콜브랜드.
《괴뢰왕》오르 골.
《사막의 사신》 나짐 알 살렘.
《악의 꽃》 아인 업그룬트.
그리고 《B.B》, 이 다섯이야.
전쟁 회장은 클레이델란트의 수도, 뤼셸 전역. 형식은 양 진영을 팀으로 한 혼전. 내일 일몰과 함께 개전이야. 문제 있는 거 있어?"
"아뇨, 없습니다."
"《악의 꽃》은 내가 처리하겠어."
"....동생의 폭주는, 여기서 내가 막겠어. 이제 누구도, 상처입게 놔두지는 않을 거야."
"나도 문제없어. 아무도 무사히 돌려보내지 않을 거야!"
"좋은 대답이야. 그럼 이쪽의 참가 오더도 상대에게 전하고 올게. ──뭐, 나 혼자서 이길 수 있다는 말을 자신만만하게 하긴 했지만, 상대 멤버를 보자니 좀 귀찮을 것 같단 말이지. 스텔라도, 거기 쿠로 꼬마도, 보기 좋게 실력이 오른 것 같으니, 기대하고 있을게~"
그렇게 네네의 말이 끝난 뒤, 그를 대신하듯 루나아이즈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녀는 스텔라에게 말했다.
짙은 피로가 배어나오는 표정으로.
"스텔라. 돌아오자마자 미안하다만.... 좀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들어줄 수 있겠어?"
"무슨 일 있었어?"
여기에 루나아이즈는 수긍했다.
"그래. 사실, 아주 곤란한 일이 벌어져서 말이지..."
◆◇◆◇◆
루나아이즈가 말한 곤란한 일이란 무엇인가.
제도 플레어베르크의 중앙 공원으로 안내받은 일동은, 곧바로 알게 되었다.
그것은──
'거기! 나무판자 좀 비뚤어졌잖아! 대체 누구야, 이렇게 조잡하게 만든 녀석이!'
'아무나~ 거기 놓여 있는 톱 좀 갖다 줘!'
'받아라~'
'으악!? 던지면 어떡해! 사람 죽이려고 그러냐!'
'저기 있잖아. 일본의 타코야키라는 거, 이렇게 만들면 되는 거 맞아? 뭔가 반죽에서 다리가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어서 부화 직전인 에일리언처럼 보이는데, 이거..'
'그치만 문어를 넣고 굽는 거니까 잘못된 부분은 없는 거 아냐?'
'어디 보자.. 우왓! 징그럿! 스텔라, 무슨 마계에 유학 다녀 온 거야!?'
" " "하.........?" " "
거기엔,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국외로 피난시켰을 국민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거기다, 그저 모여 있을 뿐만이 아니었다.
공원 중심엔, 커다란 목조 관. 그 주위에 펼쳐져 있던 건, 색채 다양한 수많은 요리들.
이 광경에, 귀국한 일동들은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루나아이즈 누님. 확실히 국민들은 모두 준비 기간 사이에 국외로 피난시키도록 결정하지 않았나요?"
"도망치기는 커녕 더 늘어났다고, 이거."
".....축제?"
국가의 존망을 건 전쟁을 눈앞에 두고 있다곤 생각하기 어려운 이 상황에,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 잇키 일행들.
하지만 스텔라만은, 이 준비의 모습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었다.
"루나 언니, 이거 혹시... 국장 준비 아냐?"
여기에 루나아이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거대한 목조 관에 불을 붙이고, 그 불빛 아래에서 밤을 새며 떠든다. 독립 전쟁에서부터 쭉 이어진, 버밀리온의 국장이었다. 그들은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국외로 피난을 명령한 황궁의 칙령을 무시하고.
이 사태에, 루나아이즈는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나나 어머님이 몇 번이고 말해도 전혀 듣지를 않고 있어. 거기다 아버님은...."
'오~ 분위기 달아오르는구만! 수고수고! 자, 이것 좀 마시고 하라고! 황궁 술 창고에서 가져온 술이야!'
'YEAH! 역시 우리들의 왕이야! 눈치가 빠르다니까!'
'우와! '론리코 151'까지 있잖아! 가슴 다 타버릴 거라고, 이거!'
'그냥 내일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해버려도 되지 않아, 이거!?'
'좋지! 그럼 난 여보야나 불러 올 테니 그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고! ──아, 그래도 루나한테는 비밀이다? 또 나만 잔뜩 혼날 테니까!'
'루나라면 아까부터 저기서 버려진 쓰레기를 보는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데?'
'흐악!?'
지적을 받고 일동의 존재를 알아챈 시리우스는 경악에 차 버렸다. 잠시 이 상황을 어떻게 변명할까, 하고 수상한 거동으로 눈을 이리저리 피하다가, 식은땀 투성이의 표정으로 이해를 바라는 웃음과 함께 일동을 향해 달려왔다.
"아, 스텔라! 무사히 돌아왔구나! 다행이야, 다행! 아~ 이 녀석들 진짜 피난하라는 칙령도 싸그리 무시하고 칼디아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국장을 치른다고 하지 뭐냐! 정말, 무슨 무정부주의자들도 아니고, 못 말리겠다니까~"
"그렇게 술이 마시고 싶으면 나중에 귀를 통해서 뇌로 직접 퍼부어 줄 테니까 각오하고 있어."
"히익..."
루나아이즈의 분노에 타들어가는 눈에 꿰뚫리며, 작은 비명을 내지르는 시리우스.
그러나, 그런 루나아이즈에게
"아하핫! 뭐,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 말라고. 루나 공주님."
요리 준비를 하고 있던 중년 여성이 쾌활한 웃음과 함께 다가왔다. 버밀리온을 찾아온 날, 그에게 마을 안내를 핑계로 잇키를 계략에 빠뜨린, 일련의 소동의 주모자인 여성이었다.
"야나 아주머니. ....이걸 화내지 말고 참으라고요?"
"하하. 뭐, 우리들도 미안하다고는 생각하고 있다구? 하지만 버밀리온은 우리들의 집이기도 한 곳이야. 그 집을 지킨다는 싸움을 황족만에게 맡기다니, 그런 무책임한 짓은 불가능하지. 하물며... 우리들의 소중한 딸이 목숨을 걸고 싸운다잖아. 우리들만 안전한 곳에 도망치고, 그 다음에 대체 무슨 면목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러니까 몇 번이고 말했잖아요. 여기에 남아 있다 하더라도 전쟁은 대표자만이 나서는 대표전이 될 테니, 의미 같은 건 없다고요. 아니, 설령 전면전쟁 형식으로 싸운다 할지라도, 블레이저도 군인도 아닌 모두가 할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요."
이 루나아이즈의 말에, 야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확실히 우리들에겐 싸울 힘 같은 건 없어. 가능한 건 그저 응원 정도뿐이지. 하지만, 그렇기에, 그 단 하나만은 모든 힘을 다해서 해주고 싶어. 전쟁의 불길이 닿지도 않는 먼 곳에서, 자신들의 안전을 확보한 채로 '힘내라'고 하는, 그런 다른 사람에게 해 주는 말 같은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아. 괴로운 것도, 즐거운 것도, 모두 함께 공유하는 것이 가족이잖아? 그러니 도망치지 않아. 이곳에서, 우리들의 집에서, 버밀리온의 승리를 믿겠어. 스텔라나 다른 사람들의 귀환을 기다릴 거야. ──그것이, 우리들의 전쟁이니까."
"야나 아줌마의 말대로야. 루나는 우리들을 너무 과보호한다고."
"루나 님이 황족으로서 우리들을 지켜주려 하는 건 기쁘지면, 우리들도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거라구."
"그러니 이것만은 우리들도 양보 못 해!"
"읏....."
명운을 함께 걸고, 믿어 나아가는 것이 자신들의 싸움이다. 그리 말하고 물러나지 않는 야나와, 거기에 긍정하고 있는 국민들.
이건, 며칠간에 걸쳐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던 것들이다. 루나아이즈는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스텔라에게 말했다.
"널 불러온 건, 이런 연유에서야. 스텔라. 너도 모두를 좀 설득해 주지 않겠어?"
자신도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몸이지만, 살짝 버릇이 나쁜 아이만큼 많은 귀여움을 받는다는 개념은 일본에 한정된 것이 아니어서, 부친을 쏙 빼닮아 감정에 솔직한 탓에 여러 문제를 일으켰던 자신의 동생 쪽이, 국민과의 거리는 더 가까웠다.
그러니 그런 스텔라의 설득이라면.. 하고 루나아이즈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핫... 아하하하핫!!"
이 상황에, 스텔라는 어이없어하지도, 화내지도 않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구나~ 뭐,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하겠지. ....그런 모두들이니, 내가 좋아하는 거구."
"스텔라....?"
동생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해, 곤혹해하는 루나아이즈. 그런 언니에게, 스텔라는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포기하자, 루나 언니. 어차피 뭐라고 해도 안 들을 사람들이니까.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넌!?"
"그야 그런 사람들이니까 그렇지."
"뭣..."
저번에, 자신의 부친 시리우스가 했던 말을 그대로 말하는 동생을 보고, 루나아이즈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루나아이즈는 경악에 굳어버리려 했던 사고를 가까스로 되찾고
"멍청한 말 하지 마! 이건 이미 예전의 단순한 전쟁 따위가 아냐. 클레이델란트는 이미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게 되어버렸어. 잔학함만을 목적으로 둔 테러리스트 이하의 녀석이 되어버렸다고! 혹시 버밀리온이 패배했을 때, 아직 이 사람들이 국가에 남아있게 된다면.. 대체 어떤 위험한 꼴을 당하게 될지... 너도 모르고 있는 건 아니잖아!"
오르 골은 국가나 돈을 목적으로 삼는 게 아닌, 그저 오락만을 위해 이 소동을 벌인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국가 존속의 의지 따위는 없다.
그런 자들의 손에 자신의 국민이 사로잡힌다면, 어떤 비참한 꼴을 당하게 될지, 눈에 선하다. 그런 위험을 짊어지는 건, 국가에 책임을 지닌 황족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그러니, 난.... 그걸 위해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그런 거래'를 했는데──
그렇게, 말문이 막혀 있는 루나아이즈에게
"루나 언니."
스텔라는 그녀를 부른 뒤, 두 손으로 루나아이즈의 뺨을 가벼운 '찰싹' 소리가 날 정도로 감싸쥐었다. 그리고, 갑자기 두 뺨에 찾아온 저릿함에 깜짝 놀라는 언니에게, 힘차게 고했다.
"괜찮아. 우리들은 지지 않아!"
발랄함조차 느껴지는 미소로.
"────"
무엇을 근거로, 라는 답은 나오지 않았다. 확실한 어조. 자신을 바라보는 비색의 두 눈동자. 거기엔, 흔들림 없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으니까. 그건, 에델베르크로 향하기 전의 스텔라에겐 없었던 것. 적의 힘에 짓눌려, 벌어진 참극에 착란을 일으켰던 스텔라에게는 없었던, 믿음직함.
동생의 표정에, 루나아이즈는 숨을 삼켰다. 그리고 스텔라는, 그런 루나아이즈의 두 뺨을 감싸쥔 채, 타이르듯 말했다.
"저기, 루나 언니. 루나 언니가 대체 그 악마와 어떠한 거래했는지, 무엇을 대가로 모두가 피난할 유예를 벌어 왔는지, 나는 몰라. 하지만, 틀림없이 무언가, 루나 언니에게 있어 소중한 것을 지불했을 거라고 생각해. 그 악마에게서 교섭을 이끌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악마의 통화를. 버밀리온이 멸망한다 하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말야. 하지만 있지. 그런 건, ──지불하지 않아도 좋아. 그 녀석들은 반드시 내가 쓰러뜨리겠어. 이 이상 그 누구도 죽게 놔두진 않을 거니까!"
"읏!"
"그러니 루나 언니도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하지 마. 내가 《홍련의 황녀》를 포기하지 않듯이 말야. 모두가 버밀리온의 국민으로 있을 수 있기를 포기하지 않듯이. 그런 녀석들을 위해 무언가를 내버린다는, 그런 짓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거니까!"
이 스텔라의 말에, 주변의 국민들이 크게 환성을 질러 동조했다.
──하지만, 그런 건 감정론이다.
아무 희생도 없는 완전승리. 물론 그것이 최고의 이상이라는 것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에 정의가 무조건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
이상 따위, 현실의 폭력 앞엔 굴복하기 마련이니까.
굴복한 다음엔, 이미 늦는 것이다.
나라를, 국민을 통치하는 입장에 서 있는 인간이, 그런 감정론으로 움직여선 안 된다. 자신들 황족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자들이니까.
그러니, 루나아이즈는 입을 열고, 말귀를 못 듣는 스텔라와 국민들을 향해 '논리'를 말하려 했고──
"────읏, 흑..."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논리'가 아닌, 옥죄는 듯한 비명.
버밀리온 황국 제 1황녀이며, 차기 왕위 계승자.
루나아이즈는 어렸을 적부터 자신의 입장과, 거기에 동반될 책임을 이해하고, 그 모든 것을 다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논리'에 맞춰 왔었다.
현 왕 시리우스는 '무'와 카리스마성을 갖고 있었지만, 감정에 내달리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모친 아스트레아도 '논리'를 알고 있는 인간이긴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남편의 길을 따랐다.
그렇다면, 자신이 그 구멍을 메워야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렇기에, 이성이라는 이름의 콘크리트로 자신의 감정을 단단히 굳혀 왔었다.
'루나아이즈'라는 한 인간의 모든 것들을.
지금, 이 순간에도.
하지만, ──루나아이즈는 느껴버렸다.
괜찮다고, 자신의 두 뺨을 가볍게 쳐 주며, 그리 단언하는 동생의 표정.
그 실력만은 확실하지만, 어딘가 믿음직하지 못했던 그녀에게,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이라면, 해낼 수 있다.
자신의 걱정을, 모두 기우로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강한 예감을.
그 순간, 단단히 굳혀 왔던 댐에, 균열이 발생했다. 아주 작은, 주저와도 비슷한 정도의 균열이.
그리고
"부탁, 할게... 요한을.... 구해 줘......"
루나아이즈의 입술이 열리고, 흘러나왔다.
갑자기 흘러나온, 눈물과 같이.
버밀리온의 제 1황녀. 차기 왕위 계승자로서 살아가야만 한다.
그 책임감으로 억눌러 온, 황녀가 아닌 '루나아이즈'로서의 감정.
──안심해, 요한! 네가 혼자서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 때엔 내가 도와줄 테니까!
어렸을 적, 자신이 사랑하던 소꿉친구와 나눴던,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약속이.
....그것은, 그야말로 무의식 중에 나온 한 마디.
스텔라가 보인 믿음직한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나온 실언.
'논리'를 관철하는 자신을 구축하던 루나아이즈에게 있어, 통한의 실태였다.
그랬기에,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두 뺨을 감싸 쥐던 스텔라의 손을 치워내고, 방금 말을 수정하려 했다.
──그러나
"날 섬겨라! 《비룡의 죄검》───!!!"
"읏──!?"
그런 루나아이즈의 기만을, 스텔라가 자신의 혼을 구현시키는 외침과 함께 불식시켰다. 그리고 오른손에 구현된, 진화된 혼의 검을, 일섬.
그로 인해 뿜어낸 불꽃으로, 공원 중심에 캠프파이어를 위해 쌓아 둔 나무더미에 불을 붙였다. 그건, 버밀리온의 국장에 켜지는, 죽은 자를 위한 불빛. 희생된 자들 덕에, 자신들은 지금 이렇게 힘차게 웃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감사를, 머나먼 하늘로 전하기 위한 향불을 키고, 스텔라는 말했다.
"나한테 맡겨 줘! 모두들을, 루나 언니를, 나 자신을... 그리고 요한 오빠와 다른 사람들도! 모두를 지켜내 보일 테니까! 그러니 모두들, 응원해 줘! 모두가 믿어 준다면── 《홍련의 황녀》는 무적이니까!"
루나아이즈와 이 자리에 있는 국민들만이 아닌,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소중한 가족들에게까지 닿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자신을 봐 달라고.
자신에게 기대해 달라고.
그 모든 것에──응할 테니까.
이 스텔라의 흔들림 없는 각오에, 모든 기대를 받아줄 수 있다는 자신에
'아아, 그랬어....'
루나아이즈는 알게 되었다.
지금 여기에, 버밀리온을 미래로 이끌어 줄 진정한 왕이 탄생했다는 것을.
자신의 자랑스러운 동생이, 그만큼의 성장을 해냈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자신도 믿도록 하자.
자신은 이끌어낼 수 없는, 버밀리온의 이상의 미래.
《홍련의 황녀》라면, 거기로 자신들을 이끌어줄 수 있을 거란 걸.
모두와 함께, 그 장소로.
그것이 힘없는 자신이 가능한, 유일한 싸움이라면──.
작가 후기
낙제기사 12권 구독 감사드립니다.
요즘 케모노 프렌즈에 완전 푹 빠진 작가, 미소라 리쿠에요.
서벌 진짜 귀여워요. 지금 딱 10화를 봤습니다만, 이 다음에 어떻게 될지 전개를 전혀 읽을 수가 없네요. 그녀의 눈물의 의미는 과연 밝혀질까요? 다음 스토리가 기대돼서 참을 수가 없네요! 뭐, 이 책이 발매될 때쯤엔 애니메이션은 이미 완결이 나 있겠지만요. 해피엔딩이 되기를 바랄 수밖에요.
그리고 동물이라면 우리 집에도 한 마리가 더 왔습니다. 10살이 넘은 늙은 고양이를 데려왔어요. 이전에 살고 있던 고양이는 진짜 고양이다운 고양이라서 사람에게 붙임성이라곤 조금도 없었지만, 새롭게 온 이 아이는 마치 강아지처럼 친근하게 달라붙어 와 줍니다.
아니, 달라붙어 있다기보다는 완전 딱 붙어있어요.
조심조심 걸어다니지 않으면 밟을 것만 같아요. 사람하고 붙어 있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에요.(장난감엔 별로 흥미가 없는 듯)
정말, 사람처럼 고양이에게도 성격 차이가 있는 걸까요.
그럼, 근황 보고는 이쯤 하도록 하고, 언제나 신세지고 있는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언제나 멋진 삽화를 제공해 주시는 온 씨.
아슬아슬할 때까지 마감에 협력해 주시는 GA편집부 여러분들.
만화책화 작품을 지탱해 주시는 소라미치 선생님.
그리고 이러니저러니 해 가며 12권이나 만들어진 낙제기사를 애독해 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전 권에서부터 큰일에 빠져 있는 버밀리온입니다만, 물 흐르듯 《해방군》이라는 3대 세력중 하나가 붕괴되어, 버밀리온이 아닌 바깥 세계도 큰일이 벌어져 있지요.
그 점도 신경써 가며 지금까지 출연한 여러 캐릭터들의 활약도 그려나갈 생각이니, 제 이야기를 즐겨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13권에서 다시 만나요~
서장
나쁜 소식
버밀리온의 황국, 황도 플레어베르크.
그 중앙 공원에 눈부신 빛이 일고 있었다.
드높게 짜여진 관.
그 관을 둘러싼 채 타오르는 불꽃의 빛이었다. 이건, 버밀리온의 전통적인 국장에 쓰이는 화톳불이다.
이 강한 빛 아래, 《연맹》과 《버밀리온》 황국이 내린 피난 명령을 무시하고, 국내에 체류하는 것을 결정한 국민들은, 저번의 클레이델란트 군과의 충돌로 인해 나온 사망자들을 애도하는 연회를 열고 있었다.
그 연회 속엔 당연히, 이 나라의 공주인 스텔라도 있었다.
"밀리. 이건 대체 뭐지...?"
"이게 일본의 요리, 'TAKOYAKI' 라는 거라는데~"
"에? 이거 먹는 거야? 부화하기 직전의 에일리언 아냐?"
"밀리가 말하기를 영국에서 본 스타게이지 파이 이후로 제일 충격적인 비주얼이라던데."
"세계는 참 넓네..."
"잘못 만들어서 그런 거야! 누구야, 이런 마물의 알처럼 만든 사람이!"
자신의 연인의 고향에 드리워진 엉뚱한 오해에, 스텔라는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문제가 되어있는 건, 버밀리온의 국민이 일본에 유학을 간 스텔라를 위해 카더라 지식으로 만들어 준 타코야키였다.
"《칠성검무제》의 회장이었던 오사카에서 먹어보긴 했는데, 이런 건 아니었다구! 이렇게 반죽에서 꾸물거리는 다리들이 튀어나와 있진 않았어! 게다가 이거 그냥 문어 한마리 통째로 집어넣은 거잖아!"
"아~ 역시 만드는 방법이 잘못된 걸까요."
"아니, 우리들도 뭔가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었어. 일본에서 인기 폭발인 음식이란 게 '이런 거'야!? 라고 말이지."
"그렇구만.. 쓰는 건 다리 뿐이라.. 그럼 다시 만들까?"
스텔라의 지적에 주변의 국민들도 납득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스텔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본고장의 타코야키는 한 번 정도 먹어본 적이 있지만, 그런 맛있는 요리가 이런 끔찍한 비주얼의 음식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건, 칸사이 쪽 사람들에게 너무도 면목이 없다.
자, 오해가 풀리긴 했지만 남은 문제는, 이 마물의 알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 아무리 그래도 먹고 싶은 느낌은 안 드는 비주얼이야...'
작은 문어를 그대로 집어넣은 것일까. 접시에 담겨진 타코야키들은 모두 하얀 반죽 여기저기에 다리가 튀어나와 있는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어, 식욕을 통째로 앗아가고 있었다.
힘들게 만들어 주었는데 버리는 건 아깝긴 하지만, 손이 가는 건 어려울 듯했다.
그렇게, 스텔라가 주저하고 있자
"오? 스텔라~ 그거 안 먹을 거면 나 줘~"
"네네 선생님....!"
맥주잔을 한 손에 들고 나타난 사이쿄 네네가, 옆에서 나타나 마물의 알을 가져갔다.
"음음~ 맛있네, 맛있어~ 무식하게 아낌없이 문어가 들어가 있어서 푸짐하구만~ 이거 술이 술술 들어가고~"
마음에 들었는지, 네네는 접시에 담긴 마물의 알을 덥썩덥썩 집어먹었다.
"오~ 잘 먹고 잘 마시네, 아가씨!"
"역시 동양 태평양권 넘버 원으로 유명한 《야차 공주》야!"
"냐하핫! 아직 이 정도론 부족하다구~ 자~ 자! 더 갖고 와! 그리고 좋은 남자도 데려 와! 마시고 취하자~ 술이 부족하다!"
네네의 귀여운 외견에 어울리지 않는 그 호쾌함은, 버밀리온 국민들도 아주 맘에 들었는지, 그녀 주변엔 한 층 더 큰 인파가 모여있었다. 확실히 네네의 먹고 마시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동시에 스텔라는 걱정이 되었다.
"잠깐, 네네 선생님. 내일 당장 클레이델란트랑 전쟁 하러 가는데!? 그렇게 마셔도 괜찮아요!?"
그녀는 내일 대표전의 멤버인 것이다. 폭음폭식으로 행동이 불가능해지거나, 신체 능력이 떨어지게 되면 곤란하다.
그러니 스텔라는 그걸 주의했지만, 네네는 "어엉?" 하고 빨개진 얼굴로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반론했다.
"꼬맹이가 건방지게 어른 걱정 하는 거 아니야! 당연히 괜찮지~ 자기관리는 어른의 상식이다규~"
.....아무도 없는 방향을 향해서.
"누굴 향해 말하고 있는 거에요, 네네 선생님!? 그쪽엔 아무도 없거든요!?"
"아, 아아. 이쪽이 스텔라였구나. 좀 잘못 알았네그래~ ....어라? 스텔라가 원래 5명이나 있었던가?"
"역시 하나도 안 괜찮잖아!!"
비명을 내지르는 스텔라, 그리고 그 스텔라의 초조를 아는지 모르는지 껄껄 웃는 네네.
실로 시끄러웠다.
그리고, 그 소란은 네네와 스텔라 주변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회장이 되어 있는 중앙 공원엔, 국민들이 가져온 재료로 만들어진 다양한 음식들과 술이 진열되어 있었고, 여기저기서 먹고 마시며 노래를 부르느라 한바탕 난리였다.
특히 소란스러웠던 곳은, 화톳불 주변이었다.
거기선 음악대가 연주하는 즐거운 곡에 사람들이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공원 바깥에 있는, 산책로로 이어지는 계단에 앉아 내려다보고 있던 쿠로가네 잇키는 쓴웃음을 흘렸다.
"전혀 장례식이라곤 생각할 수가 없네."
그건 누구에게도 한 말이 아닌 혼잣말에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 나라의 국장이 그렇게나 신기하냐, 애송이.
계단 위의 산책로에서 목소리가 날아들어왔다. 익숙히 듣던 잇키는 깜짝 놀라 그쪽을 돌아보았다.
"아버님...!"
"누굴 보고 아버님이라는 거냐, 임마!"
그리 격노하며 붉은 수염을 휘날리는 중년은, 스텔라의 부친이며 황국의 현 국왕.
시리우스 버밀리온이었다.
시리우스는 너 따위에게 아버지라 불릴 이유 따윈 없다고 엄포를 놓은 뒤, 계단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술병 채 술을 마셨다. 그리고, 취기가 담긴 한숨을 내뱉으며
"이 국장은 건국 이래로 쭉 이어온 전통이야. 클레이델란트에서 독립을 한 그날 밤, 독립 전쟁에 희생된 왕의 가족들과 국민들, 그 모두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커다란 화톳불을 지펴 사흘 동안 밤새 요란을 떠는 것이 그 시초라 알려져 있지. 국장만이 아닌, 규모가 크건 작건 버밀리온의 장례식은 대부분 그런 느낌으로 치러지고 있어."
그렇게, 이국에서 온 잇키에게 자국의 전통을 이야기해 주었다.
"일본의 장례식과는 상당히 분위기가 다르네요."
"죽은 자를 그리는 마음은 다를 바가 없겠지. 소란의 정도 차이일 뿐이야. ....그래도, 아무리 슬프다 하더라도, 이 때만은 모두 함께 필사적으로 먹고 마시며 놀고 웃는 거지."
"...무슨 무리를 해서라도 소란을 떠는 건가요?"
"그렇지 않으면 죽은 녀석들은 보답받지 못해."
"!"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죽은 탓에 소중한 가족을 슬프게 만들었다는 짐을 짊어진 꼴이 된 거니까. 허나 이렇게 커다란 화톳불을 키고 어이없게마냥 떠들며 웃는 거지. 먼 하늘에서도 살아남은 자신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남은 자들의 행복.
그것이 바로, 죽은 자에 대한 최대한의 명복이라고, 버밀리온의 국민들은 믿고 있으니까.
이 어떻게 보면 별난 전통에
"...멋진 풍습이네요."
잇키는 진심의 감상을 담아 말했다. 딱히 타국의 풍습에 우열을 가리려 한 말은 아니다. 하지만, 혹시 자신이 죽게 된다면──
사후가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의식이 있을지 어떨지조차 상상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은 웃으며 지내는 걸 바랄 것이다.
"......흥."
그런 잇키를 곁에 두고, 시리우스는 병에 남은 술을 단숨에 다 들이키고, 입을 열었다.
──방금과는 약간 다른, 온화한 말투로
"네게는, 스텔라가 참 많은 신세를 졌군."
"에..?"
"《흑기사》에게서 들었어. 스텔라가 그 정도로 힘을 키워 온 건, 네 덕분이란 걸 말이다."
"그런 건──"
아니라고, 잇키는 부정하려 했다.
스텔라가 《각성》에 다다라, 디바이스를 진화시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건, 모두 그녀 자신의 의지의 강고함 덕분이었다고. 하지만 여기에 시리우스는 "겸손해 하지 마." 라고 말한 뒤
"난 다 알고 있어. 네 녀석이... 죽을 위기에 처한 스텔라를 도우려 했던 《비익》을 가로막아, 더욱 위기에 몰아넣은 덕분이라는 걸 말이다아아아앗!!!!!!"
'갸아아아악!!!!!'
"네 녀석.. 뭔가 유언은 없느냐.....?"
시리우스의 말투는 순식간에 바뀌었고, 눈이 충혈된 채로 손가락을 뿌득거리고 있었다. 몸에서 피어오르는 열을 띤 살기에, 잇키의 안면은 창백해졌다.
죽는다.
그리 직감한 잇키는 제지의 비명을 질렀다.
"자, 잠깐 기다려 주세요! 그건──"
"뭐냐, 오해였냐?"
"아, 아뇨.. 오, 오해라고 할 것까진 없습니다만..."
"그럼 '잠깐'은 무슨 의미냐?"
"~~~~~~으윽..."
뭐, 뭐지..?
그건, 잇키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도 당연했다.
《흑기사》가 전한 에델베르크에서 겪은 일.
《도철》에게 목숨을 잃기 직전까지 간 스텔라를 도우려 했던 《비익》 에델바이스를 방해한 건, 변명할 여지도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잇키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죄, 죄송해요!!"
"크아아아아아앗!!!!!!!!!!!!!!!!!"
그 찰나, 불을 뿜을 기세의 분노에 찬 눈동자를 이글거리며, 시리우스가 주먹을 내뻗었다. 이걸, 잇키는 피하지 않았다. 자신이 벌인 짓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짓인가.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이를 악물고 받아들이려 했다.
이건, 자신이 받아야 할 벌이다.
하지만
'어라?'
시리우스의 바위 같은 주먹은, 잇키의 코끝에서 멈춰버렸다.
".....아버님?"
무슨 일인지 하고 눈치를 살피는 잇키. 여기에 시리우스는, 스텔라와 같은 비색의 눈동자로 잇키를 똑바로 쳐다보며 질문하고 있었다.
"네 녀석은 나에게 스텔라를 사랑한다고 했었지? 그 말은 거짓인 게냐?"
"그, 그렇지 않아요!"
"그렇다면 어째서 돕지 않았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위기에 빠질 때 가장 먼저 달려가 주는 것이 남자일 텐데?"
시리우스의 시선에, 잇키는 알게 되었다. 그가 단순히 화를 내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시리우스는 지금, 쿠로가네 잇키라는 남자를 진지하게 꿰뚫어보려 하고 있다.
스텔라의 부친으로서, 처음으로.
딸이 데려온 남자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그렇기에, 잇키도 아무 발림의 말 없이
"사랑하니까, 그렇기에 도울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감정, 그대로를 전했다.
".....아앙?"
"그 때, 스텔라는 자기 자신의 자기를 관철하기 위해서, 이겨낼 수 없는 현실에 저항하고 있었어요.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 무리하지 않고 포기하기를, 그저 《스텔라》라는 소녀의 무사를 바라고 있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홍련의 황녀》로 있을 것을 고집했죠. 자신의 부족함, 그 분한 마음에 한시라도 눈을 돌리지 않기 위해서. 《홍련의 황녀》로서 존재하고 싶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잇키는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 누구보다도.
그렇기에, 자신처럼 그 외에는 길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음에도, 일부러 고된 길을 선택한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에 대한 존경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전 막을 수 없어요. 말릴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왜냐면 그 분한 마음은, 저와 스텔라가 가장 처음 공유한 감정이니까."
──포기하지 않을 거야. 크게 화상을 입었다 하더라도 내가 포기할 것 같아?
자신과 만난 날, 그리 말하며 웃은 그녀의 모습에, 자신은 반했으니까.
.....하지만
"무슨 이상한 얘기를.... 역시 네 녀석에게 스텔라는 줄 수 없어....!"
"─────"
잇키의 고백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한 그녀의 부친. 그런 이유로 딸을 내버리려 한 남자를, 어떻게 용납할 수 있단 말인가. 시리우스는 히스테릭하게 내뱉고, 발을 돌려 그 자리에서 떠나려 했다.
그 뒷모습에, 잇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야 할 말은 이미 했다.
납득해주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 포기할 수 없는 감정이라면, 그저 한결같이 자신의 성의를 다할 수밖에 없다.
설령,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다 하더라도──
"....그럼, 약속을.. 하나 해 줄수 있겠나?"
"네?"
"칼디아 시가전이 벌어지기 전에 말했듯, 이전의 약속은 아직 살아 있어. .....버밀리온 황족은 약속을 어긴다는 한심한 짓거리는 하지 않아. 네 녀석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스텔라를 얻고 싶다면, 검으로 날 납득시켜 봐라. 그 이외에, 내게서 스텔라를 빼앗아 갈 방법이 있다곤 생각하지 말도록."
살짝, 어깨 너머로 잇키를 돌아보며, 시리우스는 고했다. 이전에 루나아이즈에게 속아넘어간 형태로 맺어진 약속. 그걸 이행할 의지에 흔들림이 없다는 것을, 지금 다시 한 번 더.
잇키는, 거기서 알게 되었다.
이건, 내일 있을 싸움에 임할 자신에 대한, 시리우스 나름의 응원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명심하겠습니다."
".....흥.."
잇키의 강한 대답에, 시리우스는 살짝 짜증스레 고개를 홱 돌리고 온 길을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 때였다.
"헉.. 헉! 여보! 그리고 잇키 씨도! 여기에 있었군요...."
치마자락을 들고, 한 몸집 작은 여성이 산책로를 서둘러 달려오고 있었다. 스텔라나 시리우스의 것보다 살짝 옅은, 복숭아색 머리칼의 그녀.
스텔라의 모친, 아스트레아 버밀리온이었다.
"여보? 무슨 일인가? 그렇게 서두르고."
그리 질문한 그의 남편 시리우스에게, 아스트레아는 거친 호흡을 다듬을 시간도 아깝다는 듯
"그, 그게... 헉.. 방금 막, 《연맹 본부》에서 연락이 들어왔어요....!
그 내용을 고했다.
"뭣───!"
"뭐, 뭐라고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