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장
“달루에게 사령관님! 연맹군 전 부대, 클레이델란트의 외부에 닿는 곳까지 배치를 완료하였습니다!"
"전차 부대, 포진 완료하였습니다!"
"전투기 부대도 국도 17호선에 배치를 완료하였습니다!"
클레이델란트와 버밀리온의 대표전이 있을 전날 밤.
《흑기사》의 구원 요청을 받은 연맹군도, 요 1주일만에 주변 가맹국에서 소집한 전력 100만 병력 집결을 끝마쳐 놨다. 그리고, 그 중 약 70만의 병력으로 테러리스트의 도망을 막기 위해 클레이델란트 국경 주변에 감시망을 형성. 육로, 해로, 하늘, 그 모든 도주 루트를 봉쇄해 놓았고, 남은 약 30만의 정예와 장비, 《마도기사》를 집중 배치하여 버밀리온이 패배했을 때 클레이델란트로 쳐들어가기 위한 강행돌입 부대를 조직해 놓았다.
이 곳, 폴란드와 클레이델란트를 걸쳐 펼쳐져 있는, 초원으로 형성된 국경선상을 따라 배치해 둔 것이, 상기한 부대 중 후자의 부대이다.
그 정예들의 지휘를 맡은 폴란드의 노장 달루에게는, 그들의 신속한 전개에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흠. 비상 소집으로 모인 부대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한 움직임이군."
"평소에 행하던 고도의 합동 훈련 덕이겠지요."
"믿음직하군."
부관의 말에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답하고, 달루에게는 지시를 내렸다.
"담배는 허가하되, 술은 금지시키도록. 식사도 배급한 만큼은 허용하되, 무기는 항상 소지하고 있도록 명령하게. 제 1급 전투태세를 굳게 지키고 있도록 해야 해. 철저하게 말이야."
"겨, 결전은 내일일 텐데, 지금부터 말씀이십니까?"
"난 명령을 내렸을 터네만?"
" " "예, ───옙! 알겠습니다!" " "
지시를 받고, 전령으로 온 병사들이 물러났다. 그걸 바라보며, 달루에게는 본부 텐트 쪽에 있는 바위 위에 선 채, 전개된 군세를 바라보았다.
"총 수 30만. 블레이저만으로도 5천명의 대군인가. 이렇게 보니 장관이군, 대령."
"네. 이렇게 큰 대작전의 참모를 맡게 될 기회는 두 번 다시 없겠지요."
"그러면 아주 다행이지. 우리 같은 인간들은, 심심해지는 것이 차라리 나을 테니까."
"버밀리온은.... 이길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흑기사》는 우수한 블레이저야. 하지만, 적도 보통내기가 아니니 말일세."
《사막의 사신》 나짐 알 살렘.
그 이름이 지닌 의미, 《재해》와도 같은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는, 유럽 쪽에도 아주 잘 알려져 있었다. 더불어 상대 쪽엔 그 《괴뢰왕》까지 있다고 했다.
"너무 기대를 보내고만 있는 건 위험해. 버밀리온이 패배한 순간, 《흑기사》가 먼저 열어 둔 《창천의 문》를 이용해, 클레이델란트의 수도에 주력해 있는 블레이저 부대를 선행 파견, 동시에 전 군세를 진군시켜 압도적인 물량으로 클레이델란트를 점거하고 있는 테러리스트 녀석들을 섬멸하는 것. 우리는 이 《재상》이 세운 전략에 따라 움직여야겠지."
"하지만 사령관님. 이 포진, 아무리 신속하게 파병을 하기 위해서라지만, 국경에 좀 너무 가깝게 배치해 놓은 것 아닙니까? 이 위치에서 무력 태세를 갖고 포진하고 있으면, 국경 침범을 범하고 있지 않더라도 국제법적으로 선제 자위권 행사가 가능한 범주로 들어갈 것이라 사료됩니다만───"
다른 사람의 현관 안으로 들어가 무기를 들고 점거하고 있으면서, 적의가 없다는 말은 통하지 않을 터.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 당연한 것을
"상관없어. 이걸로."
그걸 알고도, 달루에게는 이 위치에 진을 쳐놓은 것이다.
"이쪽은 30만의 정예. 상대는 고작 네 명의 테러리스트에 지나지 않아. 총력전을 꺼려하며 대표전으로 방식을 억지로 바꾼 것만 봐도, 그 녀석들이 우리와의 정면충돌을 피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지. 그렇다면, 아무리 국경 가까이에 병력을 배치해 놓더라도 불만은 말할 수 없을 터."
그렇다면, 가능한 한 신속하게 파병할 수 있는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 좋다. 그리고 어쩌면, 클레이델란트가 연맹의 이 포위를 적대행위로 간주하고, 선제 자위권을 행사해 오더라도──
"그건 그거대로──"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
" "으윽───...!!!!!!!" "
그 찰나, 달루에게의 말을 가로막듯, 목소리가 날아들어왔다. 마치 별이 속삭이는 듯한, 넓고 묵직하게, 지평선 끝까지 닿을 것만 같은, 그런 목소리가.
──틀림없이, 어떠한 마술 행사에 의한 통화.
달루에게 연맹군은 곧바로 긴장의 끈을 팽팽히 당기고, 목소리가 난 곳을 찾았다.
그리고, 이윽고 한 병사가 외쳤다.
"저, 저기 있다!"
"저 달이 떠 있는 언덕 위야!"
클레이델란트 측. 완만한 언덕길 끝에 나 있는 언덕의 꼭대기. 만월을 등지고 자신들을 내려다며, 검은 옷의 남자가 서 있었다.
'클레이델란트의 선제 자위권의 행사를 침략 행위로 해석하여 전략을 펼친다. 당초의 예정대로 압도적인 물량을 이용해, 대표전이 끝나길 기다리지 않고 테러리스트들을 분쇄한다. 큭큭큭... 그렇구만. 어느 쪽으로 굴러가건 연맹에게 있어 이득을 볼 수 있겠어. 정말 죽여주는 포진인데그래? 응?'
초원을 훑는 바람에 흑의를 나부끼는 그 남자. 그 자의 풍모를, 달루에게와 그의 참모는 알고 있었다.
'뭐, 그 정도의 실력이 네 놈들에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짐 알 살렘!"
"곧바로 나타났군그래..."
먼 시야 너머. 거리로 치자면 1km 이상에 있을 곳에 나타난 적. 그 적에게, 달루에게는 가슴팍에 매달아 놓은 마이크를 들고, 전군에 명령을 내리기 위해 확성기로 말을 시작했다.
'....혼자서 온 게냐. 전쟁광 놈.'
여기에 나짐은 조소를 감추지 않는 말투로 답했다.
'나 이외에 누가 보이기라도 하냐, 노망 든 늙은이.'
바람을 싣고 울리는 낮은, 짐승이 으르렁대는 듯한 나짐의 목소리. 달루에게처럼 확성기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어떠한 능력을 이용해 목소리를 전파하고 있을 것 같았다. 정말로 《블레이저》는 편리하다고, 달루에게는 새삼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가 가능한 건 달루에게에게 있어서도 다행이었다.
그는 체격 좋은 몸 뒤로 손을 돌리고, 나짐이 볼 수 없는 각도로 곁에 서 있던 참모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면서, 다시금 나짐과 먼 거리에서 마주보았다.
'정말 대단한 통찰력이군. 네 놈이 말한대로다. 그래서? 우리의 의도를 거기까지 읽었으면서, 네 놈은 무엇을 하러 여기까지 온 것이지?'
'특사....라고 해야 하나? 클레이델란트 신 정권에서의 전달이다. 클레이델란트 국경 부근에 무력을 포진해 놓는 연맹의 대응에, 우리 주인님이신 클레이델란트 신왕, 요한 크리스토프 폰 콜브랜드는 불쾌감을 나타내고 있어. 관객은 얌전히 좌석에 앉아 있는 게 매너잖아? 지금 당장 군세를 물러. 이건 최후통첩이다."
'그 상담은 들어줄 수 없겠군.'
'경고를 무시하겠다는 거냐?'
'오히려 경고하는 건 우리 쪽이라네.'
'아앙?'
'이걸 보게나, 전쟁광.'
그리 말하고 달루에게는 크게 팔을 옆으로 휘둘렀다. 그렇게 나짐에게 과시한 것은, 자신의 주변에 포진해 있는 무력들이었다.
'이 쪽은 소총 따위의 통상 무장은 물론, 항공전력, 기갑사단, 마도기사 부대── 온갖 장비, 병종을 갖추고 있지. 네 놈들은 네 명, 이 쪽에 있는 건 여기만 해도 30만, 총 병력 100만이라는 군세를 보유하고 있어. 이건 무력임과 동시에, 연맹의 결의. 네 놈들 같은 악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다. 설령 네 놈들이 버밀리온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네 놈들에게 안녕이란 없어. 100만 대 4의 싸움. 그건 이미 싸움조차 될 수 없는 일방적인 섬멸. 이대로 계속 가면, 네 놈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파멸뿐이야. ──네 실력은 본국도 높이 사 주고 있다네. 현명하게 행동할 생각이라면, 이건 마지막 기회라 보네만?"
"사, 사령관님..!?"
"다, 당신 대체 무슨 말을....!"
갑자기 자신들의 표적인 《사막의 사신》을 권유하기 시작한 달루에게를 보고 주변의 참모들이 술렁였다. 그들은 버밀리온과 클레이델란트를 구하기 위해 비상소집된 다국적의 군대. 그런 군을 통솔하고 있는 사령관이, 적을 자신의 국가로 오도록 권유하고 있다니, 명백하게 비상식적인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한 편, 나짐은 달루에게의 말에 '호오..' 하고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흥미를 내비쳤다.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폴스카는 나란 놈을 얼마나 높게 보고 있지?'
거기에, 달루에게는 답했다.
"《사막의 사신》. ....지금 건 그냥 예의상 해 본 말일세."
"아?"
그 순간.
귀를 때리는 굉음이 대기를 울렸다.
포화.
그것도 한 두발이 아니었다.
달루에게가 시간을 벌고 있는 틈에 포격 각도를 재고 있던 《연맹군》의 전차 부대에서, 셀 수 없을 정도의 포격이 병사들의 전열보다 높은 곳에 있던 나짐을 향해 발포한 것이다.
국경선을 따라 넓게 전개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든 차량이 나짐을 향해 발포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 총 수는 85대.
그 모든 주포가 불을 뿜었다. 밤하늘을 타고 쇄도하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유성우. 쉴 틈도 없이 퍼붓는 철풍뇌화. 그 폭풍에, 피어오르는 모래먼지에, 나짐과 그가 서 있는 언덕은 순식간에 삼켜졌다.
그래도, 포화는 그치지 않았다.
쏠 수 있는 모든 포탄을, 전차 부대는 단 한 명의 인간에게 쏟아붓고 있었다. 이윽고, 3분이 경과했을 무렵, 전차 내의 잔탄이 고갈됐을 때였다.
"사격 중지!!"
그제야 참모가 포격을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포화가 멎었다. 굉음이 멎고, 귀에 들리는 건 바람소리 뿐.
그 누구도 말없이, 폭심지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마른침을 삼킨 채 기다리고 있었기에.
초원을 불고 지나가는 바람이 일으키는 검은 흙먼지가 걷히는 것을.
그리고, 그제야 트인 시야 속엔
...아무것도 없었다. 나짐은 물론, 그가 서 있던 높은 언덕도, 거기에 피어 있던 풀과 꽂들도,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이 파괴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죽어있었다.
존재해 있던 건, 움푹 파인 채 펼쳐져 있던 황야 뿐.
그것뿐이었다.
"훗, 직격이군요. 끝났습니다. 사령관님."
"《블레이저》는 총탄조차 튕겨낼 방어력을 자랑한다고 하지만, 고작 단단한 방탄조끼 정도. 66.7구경 20파운드 포탄의 집중포화 앞에선 그저 답없이 고깃조각이 될 뿐이야."
"하지만 사령관님, 클레이델란트는 아직 연맹 가맹국입니다. 이런 문답무용의 선제공격으로 특사를 살해하는 건, 아무래도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아주 위험하지. 내 목도 날아갈 테고. 허나, 그것뿐이라네. 그것만으로 《사막의 사신》을 끝장낼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것이야."
그리 말하고 달루에게는 전과 확인을 지시했다. 참모 대령은 달루에게의 자신을 아끼지 않는 그 각오에 존경을 느끼며, 이 명령을 전달했다. 병사들은 이 지시에 따라, 국경에 걸쳐 있는 폭심지로 향했다. 《사막의 사신》이 확실히 죽었는가.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병사들이 도착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야, 이것 봐."
병사 중 한 명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반으로 찢어진, 사람의 손바닥.
여기서 서 있던 사람은 단 한 명 뿐.
이것이 누구의 것인가, 의논할 필요도 없었다.
"틀림없어. 그 녀석의 고깃조각이야."
"헤헷, 완전히 산산조각 났구만!"
"당연하지. 《블레이저》라고 해도, 그런 포화 속에서 살아남을 리가 없잖아. 그런데도 혼자서 무방비하게 나서다니, 자기 힘을 너무 과신한 거라고, 멍청한 놈. 꼴 좋다."
무참한 적의 잔해.
그건 확실한 승리의 증표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85대의 전차에 의한 일제 포화.
그런 포화를 받게 되면, 이렇게 되는 건 당연하다. 이렇게 되는 것이 도리이다. 이 포화 속에서 만약 살아 있다면, 그런 건 인간이 아닌
'멍청한 건 네놈들이야. 개자식들아.'
──괴물이다.
" " "크으윽────!?!?!?" " "
밤하늘로 산산이 흩어져버렸을 남자의 목소리에, 들려올 리 없는 남자의 목소리에, 병사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네 놈들은 지금 누구를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네 놈들의 눈앞에 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당연? 도리? 그런 걸 깡그리 무시하고 올 수 있으니 난 《마인》인 거야.'
"이, 이건....!"
그 순간, 병사가 발견한 나짐의 잔해가 검은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 그리고 거친 황야의 대지 여기저기에서, 검은 모래가 바람에 피어올랐고, 검은 바람이 되어 소용돌이쳤다. 소용돌이치며, 집속되고, 결집되어, ──형태를 만들어냈다.
형성된 것은, 검은 옷의 인간.
그건 누가 봐도 잘못 볼 리 없는, 산산조각이 났을 《사막의 사신》 나짐 알 살렘이었다.
"이, 이럴 수가...!"
검은 바람에 다시금 형성된 나짐.
그 모스벵, 병사들은 경악에 찬 표정을 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생채기는커녕 옷가지마저 멀쩡한 나짐의 모습에, 싫어도 알아버리게 되었다.
방금의 유성우와도 같은 중포화. 대지의 형태조차 일그러뜨릴 정도의 무력의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도 없었다는 사실을.
"큭큭..... 자, 어쨌든 이렇게 싸움은 시작되었어. 네 놈들이 먼저 시작했지. 이건 네 놈들이 바란 전쟁이다. 이번엔 이쪽에서 가 주지, 개놈들. 부디 날 심심하게 만들지 말아달라고...!"
괴물이 입술을 비틀어 웃으며, 이를 드러낸 채 다가오고 있었다.
한 발짝.
한 발짝.
그 상식 외의 힘에 전율하고 있는 자신들을 향해.
별 그 자체에조차 죽음을 선사할 폭력을 휘두르기 위해. 이 악몽과도 같은 광경에, 보병 부대의 부대장들은 이미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사, 사격!!!!!!!!!!!!!"
" " "오오오오오오──────────!!!!!!!!!!!" " "
그 호령에, 병사들은 조준하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마치 자신의 심장에 지네가 기어가는 듯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총탄을 뿜었다.
이 반격에 나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하. 총도 꽤 좋은 걸 쓰고 있는데그래."
살짝 웃기만 하며, 피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방어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어, 어째서....!?"
"맞고 있어.. 맞고는 있는데.... 왜 안 뒈지는 거야!?"
나짐의 몸을 때리는 납탄.
그 모든 것들이 그의 몸을 통과하고 있었다. 확실히 명중하고, 관통하고 있는데,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있었다. 나짐이 자신의 몸을 입자화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심해의 마녀》 쿠로가네 시즈쿠의 《청색윤회》와 같은 계통의 마술. 이 상태의 나짐에게,모든 물리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병사들의 덧없는 저항을 비웃으며, 나짐은 그들과의 간격을 좁힌 다음
"《사진야금(沙塵冶金)》"
"으악!?"
대지를 분해한 모래먼지로 거대한 권총을 만들어내, 가장 가까이에 있던 병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팡! 하는 소리와 함께 두개골이 터져나갔고, 뇌수가 마치 불꽃놀이처럼 터져 주변으로 흩어졌다. 그 권총 치곤 너무 강한 위력은
"데, 데저트 이글...!"
"비 블레이저 녀석들하고 노는데, 주먹을 쓰는 건 너무 치사하잖아?"
"크헉!"
"허억!?"
나짐은 한 명씩, 손에 든 권총으로 머리를 터트려 나아갔다. 쏟아지는 탄막 속에서, 그 얼굴에 살짝 웃음을 띤 채로. 마치, 새 사냥을 즐기듯. 쏘고 있는 총탄도, 맞추고 있는 총탄도, 수로 치자면 압도적으로 자신들이 유리한데,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살해당하고 있다.
괴물에 의한 살육을, 막을 수가 없다.
"히익.. 오지 마!! 이쪽으로 오지 마!!!"
"젠장! 제기랄!! 이 괴물 새끼!!!"
"죽어!! 제기랄! 부탁이니까, 좀 죽어 줘!!"
계속해서 머리를 잃고 죽어나가는 동료들. 탄막 속에서, 조금도 걷는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걸어오는 사신. 만월 아래에서, 현세에 구현된 악몽에, 병사들은 반 광란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런 혼란 속에서
"저리 비켜! 이걸로 날려 버리겠어!"
선견대를 통솔하고 있던 대장이 전열 속으로 뛰쳐들었다. 손에 든 무기는──대전차 로켓탄이었다.
"뒈져라, 괴물 놈아!!!!!!!!!!"
대장이 당긴 방아쇠에 맞춰, 로켓탄이 나짐을 향해 발사되었다. 보통 블레이저라면, 그저 산산조각이 나버릴 위력의 병기.
──하지만, 그건 나짐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몸을 입자화시키고 있는 나짐에겐, 총탄도 전차포도 폭탄도, 그 모든 것이 통하지 않는다.
통하는 것은, 고작 해봐야 날아가버린 몸을 재구축하는 데에, 몇 초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하게 만드는 것뿐.
하지만──
"흡."
"에..."
병사들의 덧없는 저항은, 그런 고작 몇 초를 버는 것조차 해내지 못했다. 나짐이 총을 들지 않은 오른손으로, 날아들어 오는 로켓탄을 잡아버렸던 것이다.
마치 거기에 정지해 있던 물건을 집어드는 것처럼, 가볍게.
화약에 의한 추진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처럼.
그리고, 나짐은 잡은 로켓탄을 그대로 날아온 쪽으로 던졌고──
" " "───────아악!!!!!!!"
유탄의 폭발에 의해, 파견대의 전열이 날아가버렸다. 산산조각난 고기조각이 주변으로 흩어졌다. 그 파괴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던 대장도 두 다리를 잃었고
"사, 살려... 크억!?"
그 탄원도 덧없이, 나짐에 의해 머리가 날아갔다.
" " "히, 히익....!" " "
순식간에 파견대 100명이 전멸했다.
《사막의 사신》의 괴물 같은 힘에, 지원을 위해 달려온 후속 부대 수천 명의 다리가 얼어붙었다. 그런 병사들의 꼴에, 나짐은 탄식을 흘리며
'엉? 뭐냐?' 뭘 겁먹고 난리야? 아직 고작 100명 밖에 안 뒈졌다고. 이제 총 999000명이나 있잖아? 아직 네 놈들이 우세하다고. 아직 안심할 범위잖아? 그렇지? 자, 얼른 덤벼....!'
도발하며, 총구를 언덕 아래로.
다리가 굳어 있는 병사들로 향했다.
하지만, 그 때였다.
"일반 병사들은 일단 물러나! 이곳은 우리가 맡을 테니까!"
목소리와 함께, 얼어붙어 있던 보병 부대를 뛰어넘으며 검과 창, 활을 손에 든 자들이 앞으로 나섰다.
"호오, 여맹의 《마도기사단》인가."
"블레이저라고 부를 수도 없는 이 잔인한 놈! 이 이상 네 놈 멋대로 굴게 놔두진 않겠다!"
"물리적인 공격은 《입자화》로 다 흘려버릴 거야! 하지만 그건 상당한 고도의 마력제어가 필요한 기술!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터!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어버려!!"
"일제히 공격!!"
" " "오오옷!" " "
일치된 기합소리로 답하고, 연맹 소속의 《마도기사》들은 부채 형태로 전개. 순식간에 나짐을 둘러쌌다. 거기서 일제히, 자신이 가장 유리한 거리에서, 마술로 공격을 할 셈인 듯했다. 여기 있는 자들만 척 둘러봐도 300을 가볍게 넘는 《마도기사》들. 먼 곳에서 포진해 있던 자들이 합류하게 된다면, 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런 수의 공격을 계속해서 입자화로 피하는 건 어려울 터. 유효한 수단이다. 나짐으로서도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가올 수 있다면 말이지....!"
입을 말아올리며, 나짐은 손에 들고 있던 총을 내버리고 오른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금색의 마력광이 그의 오른손을 감쌌고, 흑요석 같은 광택을 지닌 검은 금속에 황금 장식이 들어간 건틀릿 형태의 디바이스── 《토슈카틀》이 현현되었다.
그는 그 오른손을 하늘로 들어올리며, 포효했다.
"날려버려라. ──《망해의 먼지바람》...!"
그 직후, 폭풍이 일었다. 칠흑의 모래폭풍이 나짐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쳤고
" " "우, 우와아아아악!!" " "
"뭐, 뭐야! 이 모래폭풍은!"
"누, 누가 좀 잡아 줘! 으악!"
칠흑의 모래폭풍의 힘은 너무도 엄청나서, 지금 막 나짐을 향해 돌격을 하려 했던 《마도기사》들은 계속해서 그 폭풍에 휩쓸려, 머나먼 상공으로 날아올라버렸다. 날아오른 《마도기사》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잘 착지했지만, 응용력이 부족한 자들은 그대로 낙하해버렸다.
그 충격에 의해 절명.
"젠장! 안 되겠어, 대장님! 이래서야 다가갈 수도 없다고!"
굉음과 함께 하늘로 피어오르는 칠흑의 모래폭풍을 앞에 두고, 《마도기사》들은 낭패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여기에 《마도기사단》들을 지휘하던 대장이 외쳤다.
"허둥대지 마! 다가갈 수 없으면 장거리 공격을 하면 되잖아! 사령관! 전차 부대와 항공 부대에도 출격 지시를 내려 줘! 다시 집중 포화를 퍼붓는 거야!"
'roger...!'
대장의 구원 요청에 달루에게 사령관은 곧바로 승인했고, 지시를 내렸다. 여기에 응하여, 포진해 있던 전차 부대의 포문이 다시금 일제히 불을 뿜었다. 그리고 이번엔 전차만이 아니었다. 국도에 긴급발진을 한 항공기에서 쏘아진 미사일.
《마도기사단》의 불꽃이나 번개 같은, 노블 아츠에 의한 장거리 공격.
그 모든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포화 공격에조차, ──나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윽....!"
포탄도, 미사일도, 노블 아츠도── 그 모든 것들이 나짐을 중심으로 피어오르는 칠흑의 모래폭풍에 닿은 순간, 궤도가 빗나가며 이상한 방향으로 날아가버렸던 것이다.
닿지 않는다. 단 한 발도. 아니, 그렇기는커녕 튕겨나간 미사일이나 포탄의 일부는 그 뒤에 포진해 있던 병사들의 전열에 날아가, 막대한 피해를 낳게 되었다.
"대, 대장님! 전혀 안 먹히고 있어...!"
"대체 어떻게 되먹은 능력이야....!"
명백하게 자신과는 다른 차원의 힘, 마술을 앞에 두고, 기사들은 낭패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통솔하는 적발의 중년은, 이 대작전의 주력인 《마도기사단》의 대장을 일임하고 있을 정도의, 수많은 전장을 겪어 온 역전의 용자.
그랬기에, 다른 기사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황하지 마. 이거면 충분해."
상황은 자신들에게 있어 나쁘지 않다고, 대장은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은 나짐의 마력과 집중력을 피폐하게 만드는, 지구전에 임하고 있었으니까.
방어 수단이 입자화에서 모래폭풍으로 바뀐 것만으로도, 상황은 자신들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강대한 노블 아츠를 계속 행사한다면
"언젠가 마력이 고갈되어 자멸할 거야...! 조금도 물러나지 마! 계속해서 공격!!!"
모든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그런 눈에 보이는 불리함에 넘어가지 않고, 작전을 속행한다. 냉정한 판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하나, 간과한 점을 빼놓고서는.
"......에?"
나짐의 힘의 본질을 잘못 보고 있었던 것이다.
"뭐, 뭐지? 몸에, 금이...!"
그 실책의 대가는 곧바로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짐을 포위한 기사들에게 나타났다. 가장 가장 먼저 이변이 벌어진 건, 용감하게 최전선에 서 있던 기사들을 지휘하고 있던 대장이었다.
가장 먼저 피부에 금이 갔고, 몸이 미이라처럼 말라 갔고, 안구가 말라 갔다.
몸의 수분이,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 나짐의 힘의 본질. 그것은 《건조》이다.
지금 나짐을 지키고 있는 이 노블 아츠 《망해의 먼지바람》도, 그 힘의 본질은 이 모래폭풍만이 아니다. 모래폭풍은 나짐이 뿜어내고 있는 마력의 흐름에 의해 벌어지는 2차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망해의 먼지바람》의 진짜 힘은, 자신의 마력이 간섭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수분을 모두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읏, 아───"
대장은 그걸 눈치채고, 위험하니 후퇴하라고 소리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목은 돌처럼 딱딱해진 채 움직이지 않았고, 그는 단말마도 지르지 못한 채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그리고, 그 이변은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다른 기사들에게도 퍼지기 시작했다.
"이건....! 모, 모두가.. 모, 모래... 모래가 되어 가고 있어!!"
"저 폭풍이야! 저 모래폭풍이 주변의 수분을 다 빼앗아가고 있는 거라고!!"
"공격하면 튕겨내고, 간격을 좁혀도 말라버린다니, 이걸 어떡하면 좋냐고!!"
"일단 다가가면 위험해! 바람이 닿지 않는 곳까지 도망쳐!!"
"우와아아아아아악!!!!!!"
"하하핫! 야, 야! 적에게 등을 돌리면 조준도 못 할 텐데? 얼른 덤벼! 이 개놈들아! 내 목숨과 간격을 더욱 위협해 보라고!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힘껏 재밌게 도망이나 다녀 보든가!!"
대장을 잃은 기사들은,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등 뒤에 있던 보병 부대와 함께, 모두 나짐에게 등을 돌린 채 도망갔다. 여기에 나짐은 《망해의 먼지바람》의 힘을 한 층 더 강하게 만들어, 그들을 쫓아 걸어갔다. 거대화된 칠흑의 모래폭풍. 그것이 주변에 가져다주는 건조의 힘에, 발이 느린 자들이 먼저 계속해서 삼켜지며, 먼지로 흩어져버렸다.
전선은 이미 무너졌다.
그리고 이대로 가다간, 본 부대도 시간문제.
그걸 알아챈 본진의 참모들이 초조감을 드러냈다.
"사, 사령관님! 이, 이대로 가다간 주변 부대가 전멸해 버립니다!"
"철수 명령을! 저런 괴물이 있다니, 듣지도 못했어요!"
"────크으윽....!"
하지만 달루에게는 그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도 설마 병사가, 병기가, 기사들이, 이렇게까지 힘을 못 쓸 줄은 예상치 못했다.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괴물이다.
하지만 그 공포를 느끼면서도, 다가오는 칠흑의 소용돌이를 바라보며, 달루에게는 철수를 지시하지 않았다.
──그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런 괴물을 상대하기 위한, 이쪽의 '비장의 카드'. 이 절망적인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들어 줄, 괴물을 쓰러뜨려 줄 영웅의 도착을.
그리고, 그 영웅은 찾아왔다.
"아?"
순간, 먼 곳에서 날아들어 온 '푸른 섬광'이, 나짐의 뺨을 스쳤다. 동시에 그를 지키고 있던 칠흑의 소용돌이가 흩어졌고, 살짝 찢어진 나짐의 뺨에서 피가 흘렀다.
오늘 밤 처음으로 입은 대미지에, 나짐의 걸음이 멈추었다. 그는 창처럼 날카로운 '섬광'이 날아온 곳을 응시했다.
거기에는, 남자가 서 있었다.
도망다니던 병사들을 등지고, 푸른 창을 든 한 남자가.
"눈에 보이는 목표는 뭐든지 집어삼킨다라. 소문대로, 아니 소문보다 더 기품 없는 남자로군. 《사막의 사신》."
"큿! 늦지 않았군! 카를로!"
달루에게의 환희의 외침에, 카를로라 불린 장신의 중년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이거 실례. 정의의 히어로와 이탈리아 신사는 뒤늦게 도착하는 것이 미덕이기에."
◆◇◆◇◆
클레이델란트와 폴란드 국경 선상.
거기에 나타난 하얀 보르살리노 모자에 재킷을 두른 신사의 모습에, 나짐은 선글라스 너머에 있던 눈을 가늘게 떠 경계를 나타냈다.
"카를로.... 그래. 네 놈이 《캄피오네》 카를로 베르토니로군."
거기에 신사는 모자의 챙을 창 손잡이로 한 번 들어올린 다음, 시선을 맞춰 긍정을 나타냈다.
"그렇다네. 만나서 반갑군, 《사막의 사신》 나짐 알 살렘."
"큭큭. 조금은 제대로 된 녀석이 나타났군."
"카를로 씨! 좋았어. 당신이 와 준다면 형세를 바꿀 수 있어! 전원! 마음을 가다듬도록 해!"
" " "오, 오옷!" " "
듬직한 원군의 등장에, 반 괴멸 상태가 되어 있던 《마도기사단》의 사기가 회복되었다. 하지만, 기세를 내던 그들에게, 카를로는 말했다.
"아니. 자네들은 일단 물러나 있도록."
"네? 어, 어째서!?"
곤혹해하는 《마도기사단》에게, 카를로는 답했다.
"저것은 수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거기에, 《금기지정》이 풀린 내 《노블 아츠》는 범위가 너무 넓다 보니, 곁에 자네들이 있으면 나도 싸우기 힘들어지거든."
그리고 동료를 물러나게 만든 다음, 카를로는 단신으로 나짐을 향해 대치했다.
"자네의 무용담은 우리 나라에도 널리 퍼져 있다네. 적대한 자도, 자신의 편에게도 동등한 파멸을 가져다주는, 역사 최강이자 최악의 용병. 모든 걸 집어삼키고, 빼앗고, 멸망시킨 국가의 수는 손가락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들었지. 돈벌이 하나는 참 화려하게 하는군그래?"
"큭큭. 뭐... 나보다 돈이 많은 놈은 이 세상에 10명도 없을 테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연맹 가맹국》에 싸움을 걸다니, 상당히 어리석은 행동을 취하는군. 분수를 알고 행동했다면, 아무 부자유스러움이 없는 생활을 보냈을 텐데 말이야. 아니면, 그렇게나 빼앗고 죽였음에도 아직도 부족하다는 건가?"
"사막의 건조함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캄피오네》?"
카를로의 질문을 어리석다는 듯, 나짐은 실소하고
"이 땅 끝까지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빼앗는 거야...!"
땅을 힘차게 박차고, 마치 당긴 활시위에서 쏘아지듯, 카를로를 향해 힘차게 쇄도했다. 말아 쥔 오른 주먹에, 검붉은 화염과도 같은 죽음의 기운을 피우며.
이전에 스텔라와 대치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위압감.
그만큼, 그는 진심인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치하고 있던 카를로는 낭패한 기색도 없이
"이거야 원. 완전히 재버워키 수준이군. .....좋아. 그렇다면 아름다운 세뇨리따에게 침대 맡에서 들려 줄 내 영웅담에, 한 가지 괴수 퇴치 에피소드를 늘려 주도록 하지...!"
들고 있던 감벽색의 창 《넵튠》을 마치 봉처럼 경쾌하게 돌린 다음, 영격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나짐의 주먹에 맞춰, 찌르기를 내질렀다.
──자신의, 발치에.
"아?"
무슨 생각인가, 하는 나짐의 곤혹.
하지만, 그것도 순간뿐이었다.
"금기─── 《제 8대해》."
다음 순간엔, 누가 보더라도 카를로의 노림수는 명백했다. 창이 꿰뚫은 대지. 거기엔 창백색 마법진이 나타났고, 거기엔 폭포를 뒤집어놓은 것 같은 방대한 양의 물이 카를로와 나짐을 삼켰다.
밤하늘에 걸친 거대한 간헐천처럼 뿜어오른 물.
그것은──
"이, 이건....!"
"하늘이, 바, 바다로...!"
병사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술렁였다. 밤하늘에, 바다가 만들어져 있었다. 별들의 빛을 은은히 투과시키며 파도치는 수면이, 하늘에 가득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제 8대해》!"
"그래.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최강의 기사이며, KOK 리그 세계 랭킹 2위. ──사상 최고의 물 능력자로 유명한 《캄피오네》 카를로 베르토니 외엔 구사할 수 없는 기적이야."
달루에게는 알고 있었다.
카를로 베르토니가 사상 최고의 물 능력자라고 알려져 이는 이유. 그것은, 그가 한 번에 만들어낼 수 있는 물의 양에 있다는 것을. 역대의 전설적인 물 능력자와 비교해도, 카를로의 그것은 이상할 정도였다. 정확한 측정이 되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블레이저로 된 테러리스트에 의해 점거된 도시를 '통째로 물로 휩쓸어버린' 활동 실적으로 미루어보면, 한 나라의 존망마저 좌우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그 거대한 힘은, 평소에 《금기지정》의 이름 하에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유사시.
《야차 공주》의 《패도천성》이 그렇듯, 카를로도 자신의 모든 힘을 구사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고, 여기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서 《사막의 사신》을 쓰러뜨릴 수 있는 건, 그뿐일 터.
그리고 그것은, 카를로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의 아군은, 도울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의 모든 힘을 쓴다. 첫 수로, 자신이 갖고 있는 최고의 카드를 낸다.
순식간에 싸움의 주도권을 쥐고, 그 기세 그대로 싸움을 결정내기 위해서.
그리고 그의 그 의도는, 멋지게 성공했다. 하늘에 펼쳐진 바다. 《제 8대해》는 나짐을 집어삼키고, 물속으로 끌어내렸다.
"잡았어. 이런 물속에 있게 되면, 네가 자랑하는 모래화로 인한 회피 마술도 쓸 수 없겠지."
아무리 상식 밖의 힘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마인》도 인간.
심장을 꿰뚫리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별이 뜬 하늘에 만들어낸 바다.
그곳은, 《캄피오네》 카를로 베르토니의 영역이다.
"후웃!"
카를로는 사로잡은 적을 향해, 물을 박차며 돌격했다. 창이 찌른 곳은, 인체의 급소 다섯 부위. 하늘의 심해에 빠져,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 나짐에게, 이걸 막을 수 있을 방법은 없을 터.
하지만
"시잇!"
"──호오?"
푸른 섬광이 되어 쇄도하는 찌르기.
그 모든 것들을, 나짐은 주먹으로 쳐냈다.
나짐은 바다 속에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모래가 되는 것만이 내 힘이라 생각했나? 머저리 자식..."
매도가 물을 통해 카를로의 귓불을 때린 순간, 나짐이 움직였다. 마력 방출에 의한 급가속으로, 카를로의 품에 뛰쳐든 것이다. 동시에 휘두른 건, 필살의 오른주먹.
《사막의 사신》의 강완은,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지금에도, 그 속도가 조금도 죽지 않았다. 그 쇄도해 오는 위협에, 대단하다며 감탄하는 카를로.
《제 8대해》에 사로잡힌 채로, 이렇게나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래도, 《제 8대해》은 나의 영역이야....!'
"《corno del narvalo》!!"
"뭣....!?"
경악은, 나짐의 것이었다.
필살의 오른주먹이, 명중하기 직전에 목표물을 잃고 허공을 가른 것이다.
피한 것이다. 그것도,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눈에 보이지 않았음에도 그걸 이해한 건, 물을 통해 전해 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고속으로 자신의 주변을 종횡무진하게 헤엄치고 있는 속도.
나짐은 그걸 포착하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카를로가 이동한 뒤에 남은 기포를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뭐야, 이 속도는...!"
"초공동현상이라는 유체 물리 현상이지."
그건 자연계에서, 일부 펭귄만이 구사하는 경악에 가까운 항행 기술.
그들은 자신의 깃털에 공기를 담아 두어, 압축된 공기의 막을 형성. 이걸 물 속에서 해방시켜, 기포로 몸을 감싸, 의사적으로 물 속에서 물이 존재하지 않는 공동을 만들어내어, 물의 저항을 극한까지 경감시키는 것으로,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속도를 얻어낸다.
이 기술은 병기에도 채용되어 있다. 초공동현상을 채용한 어뢰의 항행속도는, 아음속에 이르는 수준.
그렇다. 고작 병기마저도 아음속에 이를 수준.
사상 최고의 물 능력자의 칭호를 지닌 《캄피오네》의 속도는, 거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날 그저 촉촉하고 느끼한 남자라고 생각했나? 머저리."
카를로는 속도에 몸을 맡긴 채, 나짐을 향해 돌격했다. 나짐은 이 눈에도 보이지 않을 돌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겨우겨우 피해냈다. 수없이 넘어 온 전선의 경험. 그리고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흔치 않은 고도의 감.
그 둘을 풀가동시켜, 가까스로 꼬치 신세를 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방어 일변도만을 지키고 있어 봐야 상황은 호전되지 않는다. 카를로는 한 번 피한다 하더라도, 간격을 주지 않고 다시금 쇄도해 왔다. 그러고 있는 사이, 당연하게도 한계가 찾아왔다.
"크헉...!"
카를로의 돌격에 상박이 꿰뚫린 나짐이, 입에서 기포를 뿜어냈다.
안색이 눈에 보일 정도로 새파래졌다.
산소 결핍증.
이곳은 《제 8대해》. 바다 속이다.
카를로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질식할 일이 없었지만, 나짐은 그렇지 않다. 나짐은 산소를 마시기 위해, 마력 방출로 인한 가속으로 부상하려 했다.
하지만, 그건 의미가 없었다.
"소용 없어. 《제 8대해》는 널 중심으로 펼쳐진 물의 결계. 네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그만큼 《제 8대해》도 움직이게 되니, 탈출 따위는 불가능하지. 우리의 어머니이신 바다의 웅대함을 경시한 자신의 우둔함을 곱씹으며 죽어가도록."
첫 수로 비장의 카드를 꺼내고, 거기서 벗어날 틈조차 주지 않은 채, 나짐을 압도해 나아가는 카를로. 《캄피오네》의 멋들어진 싸움에,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 사이에서 환성이 터져나왔다.
"오, 오오오오오옷!!!!"
"저 괴물을 손발도 못쓰게 만들고 있어! 일방적이라고!"
"끝내준다! 역시 《캄피오네》야....!"
이미 전국은 불보듯 뻔했다.
나짐은 바다 깊은 곳에 빠찐 채, 숨을 쉴 수조차 없는 꼴.
여기서, 역전 따위는 불가능할 터.
그럴 터였다.
그렇기에
"후후. 《사막의 사신》. 별 볼일 없는 남자로군."
"큭큭큭... 하하하......."
"───!?"
위기에 몰린 나짐이 흘린 웃음의 이유를, 카를로는 알 수 없었다.
"뭐가, 우스운 거지?"
"그렇군... 확실히 굉장한 마술이야. 물 능력자는 수없이 죽여 왔다만, 이렇게 큰 힘을 가진 상대는 네 놈이 처음이라고. .....하지만, 모래가 되어 도망치면 물로 굳히면 그만이다, 그런 교과서에 적힌 것 같은 전술이 통할 상대라고 생각했냐?"
"후후. 잘도 짖는군. 질식 직전이면서, 그런 허세를 부리는 것이 고작인 꼴로 무엇이 가능하다는 거지?"
"도망칠 수 없다면, 전부 '마셔 버리면' 그만이지!!!!"
"우옷!?"
그 순간, 나짐이 엄청난 행동을 벌였다.
자신의 '건조' 능력.
그 힘으로, 《제 8대해》를 집어삼키기 시작한 것이다. 나짐을 중심으로 《제 8대해》에 생겨나는 해류. 조금이라도 힘을 빼면 몸이 그대로 빨려가버릴 것 같은 강렬한 흡인력에, 카를로는 할 말을 잃고 있었다.
'이, 이 녀석...! 진심으로 《제 8대해》를 마르게 만들 생각인 건가..!?'
"산소가 부족해져서 머리가 이상해진 건가! 정말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거기에, 나짐은 답했다.
"글쎄다. 난 모르겠는데."
"뭣!?"
"말했잖아. 나도 네 놈 정도의 수준의 물 능력자를 상대하는 건 처음이라고. 해 본적이 없으니 모르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난 《사막의 사신》이라고? 내가 얼마나 많은 나라를! 목숨을! 피를 빨아들여 왔다고 생각하지!? 그런 내가, 그렇게나 집어삼켜 왔음에도 아직도 굶주려 있는 이 나의 '욕망'이, 고작 이 정도의 물웅덩이 정도로 만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고!!!!!!"
"우, 우웃!?"
바다 속에서 들려오는, 포효와도 같은 목소리.
거기에 맞춰, 《제 8대해》에 소용돌이치던 해류의 기세가 더 강해졌다.
이미,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진심이었다.
나짐은 진심으로, 《제 8대해》를 집어삼켜 돌파하려 하고 있다.
'그런 바보같은... 가능할 리가 없어.....!'
확실히 《사막의 사신》의 힘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이러고 있는 순간에도, 무서운 속도로 《제 8대해》가 메말라 가고 있다.
하지만... 저 얼굴을 보라.
보라색으로 물든 입술.
핏발 선 눈.
나짐의 표정은 완전히 산소 결핍증에 의한 한계가 드러나고 있었다. 이제 몇 분 뒤면, 나짐의 의식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뇌에 산소가 돌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렇게 된다.
《마인》이라고 해도, 인간인 이상 그것이 필연.
그럼에도 불구하고
"큭... ───《giavellotto di nettuno》!!"
카를로는 눈앞의 죽어가는 적에게 느껴지는 정체 모를 초조감에 내달려 움직였다. 《제 8대해》의 일부를 빙결시켜, 자신의 등 뒤에 얼음의 창을 여러 개 만들어내어 그를 조준했다.
"얌전히.. 뒈지라고...!"
험한 말투로, 그 모든 창을 발사했다. 쾌속으로 대해를 날아가는, 얼음창.
그건 바다를 빨아들이는 해류의 힘에 의해 더욱 큰 가속을 얻고, 나짐을 향해 똑바로 날아갔다.
박힌다.
무수하게.
피어오르는 대량의 피에 의해 검게 물드는 푸른 바다.
확실한 감촉.
하지만, 카를로의 공세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아아아앗!!!"
무수한 얼음창에 꿰뚫린 나짐을 향해, 이번엔 카를로 자신이 돌격을 감행했다. 초공동현상에 의한 속도로 자신을 화살로 만들어, 적의 심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일격을──
선사했다.
디바이스 《넵튠》은 빨려들어가듯 나짐의 흉부를, 심장을 꿰뚫고 견갑골을 부수었다.
확신이 느껴지는 대미지에 초조에 굳어 있던 카를로의 뺨이 풀렸다.
하지만
"───크윽!?"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경악으로 얼어붙었다.
나짐의 팔이, 자신의 심장을 꿰뚫은 《넵튠》을 잡고 있었으니까.
".....부족해. 심장이 창에 꿰뚫리는 정도로, 뒈지는 괴수가 있을 거라 생각해?"
"크윽!"
카를로는 나짐의 몸에서 재빨리 창을 거두로 했지만, 창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짐의 팔은 이미 다 죽어 있는 사람이라 느껴지지 않을 엄청난 힘으로 《넵튠》을 잡고 있었다.
아니, 그저 손의 힘만으로 잡고 있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그의 '건조'도 거기에 그치지 않았고, 《제 8대해》는 물론 자신에게 꽂힌 수많은 얼음창조차도 전부 삼키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하늘을 전부 메우고 있던 《제 8대해》는, 이미 물웅덩이라고 불릴 정도로 작아져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제 8대해》가, 말라 버리다니...!"
"그래. 곧 있으면 이 바다도 다 말라 버릴 거야. 네 놈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하지만 넌 아직 살아 있지! 살아 있는 한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영웅이잖아! 그렇지!? 자, 괴수 퇴치도 최고조에 달했어, 《캄피오네》!! 지혜를 다해 봐! 사력을 다해 보라고! 있는 목숨을 전부 짜내어, 궁지를 벗어나 보란 말이다!!!!!!"
"히익....!"
그 순간, 카를로의 입에서 짜내는 듯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건, 이렇게나 공격을 퍼부어도 나짐에게 대미지를 주지 못한 현실 때문이 아니었다.
산소 결핍증에 의해 울혈까지 맺힌, 안쓰러울 정도의 낯빛. 전신에 난 무수한 관통의 흔적. 두 눈, 두 귀, 코── 몸의 모든 구멍에선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어, 내장이 찌부러져 피가 역류하고 있는 것이 명백했다.
모세혈관이 모조리 파열되어 새빨갛게 충혈된 두 눈은, 전부 이상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듯, 초점이 맞지 않았다.
죽어 있다.
수많은 사선을 넘어 오며, 셀 수 없는 사람의 죽음을 봐 온 카를로였기에, 알 수 있었다. 이 꼴로 살아 있는 사람은, 존재할 리가 없다는 것을.
기절한 채로, 그저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뿐.
그렇다.
그의 공격은, 나짐에게 확실한 대미지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 죽음에 이를, 당연한, 충분에 차고 넘치는 대미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적은, 《사막의 사신》은 그 모든 것을 개의치 않고 있었다. 아니, 그렇기는 커녕, 즐기고 있었다.
이 전쟁을, 투쟁을, 죽어가는 자신조차도.
핏발선 채, 이미 초점도 맞지 않는 눈에 켜 있는 살의의 불꽃은 사라지지 않았고, 이를 드러내며 웃는 입가에선 투쟁의 희열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 형상에, 카를로는 알게 된 것이다.
병사들이 그랬듯이.
자신이 대치하고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이 남자가 사람으로서, 사람처럼 죽는다.
그런 당연한, 떠올라야 할 광경이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다. 아마, 이 남자는 목이 잘려도 계속해서 싸울 것이다.
그런 모습을, 사람이라 부를 수는 없었고
"이, 이거 놔! 이 괴물 놈아!!!"
"────아아?"
카를로는 절규를 내지르며, 나짐을 향해 매도를 던짐과 동시에 그의 안면을 후려쳤다. 잡힌 창을 빼앗으며, 그 괴물에게서 도망가기 위해서.
물론, 그건 무의미했다.
전신을 꿰뚫어도 막을 수 없는 괴물을, 주먹 하나로 물러나게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 당연한 판단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카를로는 패닉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짐의, 나짐 자신이 죽는 것에조차 희열을 느끼고 있는, 이 상식 외의 '살의'에.
한 편, 이 카를로의 혼란에, 나짐의 입가에서 서서히 희열이 사라져갔고
"이거 놔.. 우읍!?"
힘차게 뻗은 검은 팔이, 카를로의 안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끝났군. 《입만 산 놈》."
결착은 한 순간.
나짐은 혼신의 여력으로, 카를로의 두개골을, 마치 토마토를 쥐어 으깨듯 부숴버렸다. 지지할 힘을 잃은 채 하늘에서 대지로 떨어진 카를로의 사해는, 무참하게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그리고 《캄피오네》의 패배는, 이 전쟁의 수세를 결정지었다.
"카, 카를로 씨가... 져, 졌다고!?"
"이럴 리 없어.... 이럴 리가───"
"후, 후퇴!! 전 군에 전달! 장비를 버려도 상관없으니 한시라도 빨리 여기서 후퇴하라!!"
비장의 카드를 잃은 강행 돌입 부대는 곧바로 철수를 개시했다.
아니, 후퇴라는, 그런 체계를 갖춘 움직임이 아니었다.
도주.
무기를 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명을 내지르는 도주.
그런 꼴사나운 돌입 부대의 모습에, 나짐은 실소를 흘리고
"《연맹》도 《동맹》도 그렇고, 네 놈들은 언제나 그래. 세계 평화의 수호자 흉내를 내는 주제에, 당해낼 수 없는 상대를 만나면 그렇게 꼬리를 말고 도망치지. 개죽음을 당할 각오도 없는 주제에, 내 전쟁에 모가지나 들이밀지 말란 말이다!!!!"
오른주먹으로 지면을 내리쳤다.
그 순간, 지진과 함께 지평이 무너졌다.
"개조차 되지 못하는 네 놈들에겐, 벌레처럼 죽는 것이 어울리겠지."
수분이 빼앗겨 유사(流沙)가 된 대지는, 연맹군의 돌입부대를 삼키기 시작했다. 등을 돌리고 도망치려 하던 자들도, 그들의 도주를 돕기 위해 포격을 재개한 전차들도.
그 모든 것들을.
그 모든 것들을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나락에 끌어들여 갔다.
마치, 거대한 개미지옥처럼.
병사들은 공포의 절규를 내지르면서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잡기 위해 손을 버둥거렸다. 붕괴의 범위 외에 있던 군대들은,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모두 무의미했다.
지반 그 자체가 가라앉고 있기에, 무언가를 잡는다 하더라도 살아날 수가 없었다. 도우려 하면, 오히려 희생이 늘어날 뿐.
아무도, 살 수 없었다.
이 일격으로, 《연맹군》은 돌입부대의 대부분과, 총 병력의 4분의 1을 잃게 되었다.
◆◇◆◇◆
"...언제 봐도 싸울 맛이 안 나는 녀석들이야."
지평 너머에서, 패주하고 있던 연맹군을 매도하며, 나짐은 입안에 있던 피를 침과 함께 내뱉었다. 이렇게 국경선상의 분쟁은, 나짐의, 그리고 클레이델란트의 승리로 끝났다.
일단 정리를 끝낸 《사막의 사신》은, 품 속에서 이미 말라 버린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 때였다.
'아~ 수고 많았어. 《사막의 사신》.'
마치 끝날 때를 기다렸다는 듯, 나짐의 귓불을 남자로도 여자로도 느껴지지 않는 중성적인 목소리가 때렸다.
《괴뢰왕》 오르 골의 목소리였다.
"《캄피오네》가 나섰을 땐 솔직히 어떻게 될까 하고 조마조마했지만, 능력의 상성차도 네 발목을 잡을 순 없었나 봐. 역시 세계 최강의 용병이라는 이름은 허울만이 아니었네. 이걸로 우리들이 연맹군의 수에 겁을 먹어 대표전을 선택했다, 라는 불쾌한 오해는 풀리지 않을까 싶어. 아하 아하"
그 말에, 나짐은 한숨과도 같은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아직 부족해. 저런 정도의 녀석들로는 부족하다고. 결국 정의나 대의 같은 이유를, 고작 이런 살육전 따위에 붙여 가며 무의미하게 죽는 것도 즐기지 못하는 녀석들 따위, 몇 트럭으로 달려 와도 부족하단 말이다."
'하하. 신랄하네.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야차 공주》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모양이던데?'
"────"
'오늘 내가 말한 것을 순순히 들어준 것도, 내일 그녀와의 싸움에 방해받기 싫어서 그런 거였지? 대체 뭐가 그렇게 맘에 든 거야? 상성 차는 둘째 치고 실력으로 보자면 《캄피오네》 쪽이 더 위잖아?'
"너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야, 망할 꼬맹이 자식아. 꼬맹이는 꼬맹이끼리 놀고 있으라고."
'흐음~? 뭐, 됐어. 난 《야차 공주》에겐 흥미가 없으니까. 버밀리온과 클레이델란트 주변의 《연맹군》은 사실상 괴멸. 지금 '한 가지 더 큰 문제'를 떠안고 있는 《연맹》으로선, 이 이상 버밀리온에 전력을 보낼 수는 없을 거야. 이제 방해받을 일은 없어. ....내일은 마음껏 즐겨 보자고, 서로 말이야.'
"말로 할 필요도 없어. 그때 한 번 더 방해를 한다면, 가장 먼저 네 놈의 골통을 부숴 놓을 거니까."
'아하, 무서워라~ 명심해 둘게.'
그럼 이만, 하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오르 골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정말, 듣는 것만으로도 불쾌해지는 목소리였다. 시원스럽게, 나짐은 한 번 깊게 담배연기를 들이마신 뒤, 꽁초를 버렸다.
모래폭풍으로 공중에 떠 있는 자신의 발 아래.
대규모적인 지반 침하에 의해 발생된, 눈 아래의 개미지옥을 향해.
거기엔 이미, 비명조차 들리지 않았다.
누구나, 모래로 된 관 속에 파묻혀 있었다.
거기엔, 묘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타인이 내건 정의에 매달리고, 거기다 정의를 위해 죽는 개조차 되지 못하는 어설픈 자들.
벌레에게 어울리는 말로이다.
──하지만
"큭크큭.. 하하하하....!"
나짐의 입가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환희의 목소리가.
《연맹》. 참 한심한 녀석들이다.
클레이델란트와 버밀리온. 두 나라를 손에 넣는 과정에서 베어낼 수고가 드는 잡초.
나짐은 그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 여자는, ──다르다.
정면으로 맞섰던 나짐은, 알 수 있었다.
재밌는 눈을 하고 있었다.
잘 아는, 자신이 잘 아는 눈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런 것'이 《연맹》 따위에 몸을 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내 먹잇감이야.'
누구에게도 양보 못해.
누구도 방해할 수 없어.
"바라던 대로 범해 주마, 《야차 공주》. 날 심심하게 만들지 말아달라고...!"
◆◇◆◇◆
밤새 열리는 버밀리온의 국장이 시작된 지 몇 시간 뒤. 밤도 깊어지고, 어린 아이들은 잠들어, 노래와 춤, 그리고 웃음소리도 잦아들기 시작할 무렵.
스텔라는 혼자서 공원 전망대에 서 있었다.
그리고 먼 평야를, ──그 끝에 있는 클레이델란트를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기도하듯.
1분 정도 그러고 있었을까.
그녀가 눈을 뜨자, 마치 잰 듯한 타이밍에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여기 있었구나, 스텔라."
".....잇키."
목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자, 살짝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잇키가 서 있었다.
....그 표정에, 그가 무엇을 말하러 온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잇키도, 스텔라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과 그녀의 표정에서, 그 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챈 듯했고
"그 표정을 보니, 《연맹군》의 일은 이미 들은 모양인가 보네."
"응."
스텔라는 역시나, 하고 생각하며 긍정으로 답했다. 방금 그녀도, 단달리온에게서 보고를 받았다. 폴란드와 클레이델란트 국경을 따라 《연맹군》의 시위 행위와 국경 침범을 이유로, 《연맹군》 강행 돌입 부대 30만과, 《사막의 사신》이 충돌.
강행 돌입 부대는 사령부와 총 병력의 4분의 1이 소멸되어, 도주했다는 사실을.
따라서, 스텔라는 빌고 있었던 것이다.
희생된 병사들의 진혼을.
"그건 그렇고 30만의 군대는 둘째 치고, 그 《캄피오네》 조차도 당해 버리다니. 정말 대단한 남자야."
그 《캄피오네》 카를로 베르토니는, 작년 KOK A급 리그에서 연전연승을 거듭하던 신진기예의 《흑기사》를 이긴, 몇 안 되는 기사이다. 그 실력은 이미 보증수표나 다름없었고, 물을 이용하는 능력은 나짐의 모래화 회피를 막는 데에 있어 우위에 서 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대참사.
스텔라는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그 남자와 대치했을 때 자신이 느낀 전율.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올바른 것이었다고.
"혹시, 무서워졌어?"
나짐에 대한 전율을 입에 담는 스텔라에게, 잇키가 물어보았다. 스텔라가 다시금 나짐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버린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한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의 나였다면, 그랬겠지."
스텔라는 여기에 명확한 부정을 답했다. 확실히, 나짐은 엄청난 힘을 갖고 있는 자이다. 지금의 자신보다도 월등히.
하지만, 그걸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면서도, ──패배할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확실히 그 녀석들은 강해. 하지만,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는 《홍련의 황녀》는 더욱 강해. 모두 다 재로 만들어버리고, 내 이름을 드높일 제물로 삼아주겠어."
스텔라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겨서 살아남을 것이란, 그것을 관철할 강한 자기가 있었기에. 그걸 그 《도철》과의 싸움에서, 확실히 찾아냈으니까. 이 스텔라의 힘찬 대답에, 잇키는 안도의 미소를 보이고
"바로 그 자신감이야. 거기에 이쪽엔 사이쿄 선생님과 아스칼리드 양까지 있어. 상대에 비해도 결코 모자라지 않은 멤버들이지. ....거기에 이 두 분과 비교하자면 부족하겠지만, 나나 타타라 양도 있어. 힘껏 되갚아 주자!"
서로를 고무시키기 위해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
"스텔라?"
스텔라는 이 잇키의 말에, 아운의 맞장구를 쳐 주지 못했다.
그녀의 표정이 흐려져 있었다.
그렇다. 확실히... 적에 대한 공포감은 없었다. 자신 안엔, 어떤 우세라 하더라도 자신을 지켜낼 것이란 심지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단 하나. 두려운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저기, 잇키는.. 정말로 싸울 거야?"
"무슨 말이야?"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잇키에게, 스텔라는 이어 말했다.
"난 이 나라의 공주이니까 당연히 싸울 거야. 네네 선생님은 연맹 소속의 《마도기사》이고, 아이리스 양이나 타타라에겐 각자의 인연이 있어. 하지만, 잇키는 아니잖아. 잇키는 아직 《학생기사》이고, 그 아바마마와의 약속이 있다 하더라도 상황이 이렇게 바뀌어 버렸으니 무효나 다름없잖아? 잇키가 이 전쟁에 참가해야만 하는 이유 같은 거...흐엣!?"
그 순간, 스텔라의 발음이 무너졌다.
잇키가 두 손으로 그녀의 뺨을 살짝 꼬집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하하. 스텔라의 뺨, 꽤 포동포동하네. 이거 기분 좋다~"
"읏!? 자, 장난 치지 말구! 나 지금 엄청 진지하게 이야기를──"
자신의 뺨을 꼬집으며 장난치는 잇키에게, 스텔라는 살짝 화난 투로 뺨을 홍조시키며 소리쳤다.
하지만
"아니, 이렇게 장난을 치지 않곤 못 배길 정도로 어이없는 말이라서 그랬어."
잇키는 쌀쌀맞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렇게 대답했다.
"조금 생각해 봐. 혹시 일본이 지금 버밀리온과 같은 상황이 되어 있다면, 스텔라는 거기서 도망칠 거야?"
"그, 그렇지는..."
"않을 거잖아? 나도 같아. 싸울 이유가 없다고? 무슨 이상한 말을. 이곳은 내 소중한 연인의 고향이고, 목숨이 위협받는 것은 그 가족들이야. 검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
잇키의 반론에, 스텔라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말한 대로였다.
혹시 자신이 잇키의 입장이었다면, 싸우지 않는다는 선택은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런 건 말하지 않아도 스텔라도 알고 있는 바였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을 했는지도.
하지만, 그래도 할 수밖에 없는 말이 있었다.
".....무서워서 그랬어."
"에?"
"혹시, 만에 하나라도 잇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했더니,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
이건 진짜 전쟁이고, 적은 진짜 악당이다. 그 위험도는 지금까지 경험해 온, 설비와 규칙 하에 치러진 시합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크다.
가능하다면, 잇키도 버밀리온 안에서 자신들을 지켜봐 주었으면 했다.
.....잇키에게 이긴 적도 없는 주제에 잘난 듯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은 스텔라 자신도 생각하고 있다.
잇키의 실력에 의심 따윈 없다. 하지만 그래도, 최악의 결말을 생각하지 않고는 못 배긴 것이다.
이 공포는, 이미 논리로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생각지 않으려 해도 피어오르는 불안감에, 스텔라는 살짝 몸을 떨었다.
──그러자
"......잇키?"
잇키는 스텔라의 떨리는 어깨에 손을 얹은 뒤, 그대로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스텔라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놀려서 미안했어. 그렇게나 걱정해 주고 있었던 거구나. 하지만, 그래도 난 이 전쟁에 참가할 거야. 스텔라의 고향이기 때문만이 아니야. 아버님에게 인정받고 싶기 때문만도 아니야. 나 자신이, 이 나라를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약속할게. 난 지지 않겠다고. 절대로 죽지 않겠다고. 만약 내가 죽으면, 스텔라와 함께 있을 수 없게 되어 버릴 테니까. 여긴 내가 있을 장소야. 이렇게 스텔라를 안아 줄 수 있는 곳을, 그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겠어."
"────"
약속할 테니, 믿어 줘.
그런 잇키의 바람에, 스텔라는 생각했다.
스텔라 버밀리온. 넌 대체 얼마나 비겁한 여자인 것인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건...... 잇키도 마찬가지로 느낀 것. 하지만, 그는 믿어 주었다.
《도철》과의 싸움. 다른 누구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던 그 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걱정을 입에 담지 않는다. 그 걱정을 생각치 않는 건 아닐 테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서로 이 전쟁에서 싸우지 않겠다는 선택지가 없는 이상, 그런 걸 입에 담는 것은 상대에게 쓸데없는 부담감을 안겨주게 될 뿐일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이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
정말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아 주는 것만으로는, 담보가 부족해."
스텔라는 잇키의 품 안에서, 그를 올려다보며 아양부리듯 말했다.
──대체 무슨 담보인가.
입에 담은 스텔라 자신도,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아마, 의미 따윈 없을 터.
그저, 어리광부리고 싶을 뿐이었다. 눈앞의, 연인 앞에서는.
다른 누구 앞에선 이런 한심한 모습은 보일 수 없다. 보이고 싶지 않았다. 멋진 《홍련의 황녀》로 보이고 싶다. 하지만, 잇키 앞에서만은.... 어떠한 자신이라도 봐 주었으면 했다.
그리고
"그렇구나. 그럼, 어쩔 수 없네."
"응. .....으음...."
그런 모든 것을 자상하게 받아들여 주는 잇키가 너무도 좋았다. 이렇게 입술을 겹치고 있으면, 어떤 공포라도, 떨림도 사라져버린다. 모든 것이 이 따스한 감정에 감싸져 갔다.
이 나라를 나서기 전엔 몰랐던 감정.
잇키와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알게 된 감정.
스텔라는 생각했다.
잇키에겐 너무도 많은 것을 받았다. 지금의 자신이 있는 건, 모두 그의 덕이다.
그 날, 그에게 패배하고, 그 뒤를 쭉 따라왔기에, 자신은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이 가장 사랑하면서도 최강의 호적수가, 함께 싸워 준다.
무섭다. 하지만, 그보다 더 믿음직한 동료가 어디에 있을까.
그렇다면,
──믿자.
아직 넘어설 수 없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 적을.
이기자. 잇키도, 자신도, 누구 한 명 잃는 일 없이, 이 궁지에서 승리를 거머쥐자.
그리고, 모두에게 축복받도록 하자.
자신과 잇키가 영원히 맺어지는, 그 날을.
.....입맞춤을 나누고, 단단한 인연을 확인하는 둘.
성대하게 마시고, 성대하게 노래를 부르고, 연회를 누구보다 즐기고 있는 사이쿄 네네.
홀로 소란에서 떨어진 장소에서 묵묵히 검을 휘두르며, 컨디션 조정을 하는 아이리스.
그런 그녀를 과자를 먹으며,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타타라.
버밀리온의 대표로 선발된 기사들은, 각자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었다.
반드시 이긴다. 그 마음만을 공유한 채.
그리고 태양이 떠올라, 하늘을 장식하며 ──결전의 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