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화 (67/77)

제 16장

왕도 개전

《국제 마도기사 연맹》은, 가맹국끼리의 트러블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각국을 대표하는 《마도기사》끼리의 싸움, ──'전쟁'을 벌여 해결하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이유는 주로 둘.

비 블레이저를 지키는 것이 《마도기사》이자 《연맹》의 도덕적 존재의의이기 때문.

다른 하나는, 가맹국 내에서의 국력 차에 의한 파워 플레이를 봉하여, 소국끼리 뭉쳐 대국에 대항하는 것으로 인한, 《연맹》의 연대감을 망가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 외에도 다른 하나, 부록적인 이유가 있다.

──그건 바로 경제다.

《연맹》은 이 국가간의 '전쟁'을, 흥행으로 삼아 방영권 판매나 스폰서 알선을 행하고 있다. 이 일을 맡음으로 인해 얻어지는 이익은, 《연맹》의 수입원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건 당사자인 양국에 있어서도,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마진을 제외한 흥행수입은, 승패에 관계없이 당사자 양국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맹국끼리의 '전쟁'은 거의 예외 없이 흥행의 개념으로 벌어지게 된다. 이번 버밀리온과 클레이델란트의 전쟁도, 예외 없이.

『HEEEEEEEEYYYYY! TV 앞에 있는 놈들!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밥은 처먹었냐!? '실황이 너무 저열해. 네 놈의 입은 똥구멍이냐' 라고 의미 모를 헛소리로 PTA의 항의를 받은, KOK에서 가장 핫한 실황, 부머라고!』

전장이 되어 있는 클레이델란트 수도, 뤼셸. 해가 떨어지고 있는 비색의 하늘을, 한 대의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방영권을 획득한 방송국의 헬리콥터였다.

『오늘은 그런 오랜만에 나타난 이 내가, 요즘 들어 위험해진 클레이델란트에서 '전쟁'의 실황 중계를 보내드리겠어! 아앙!? 이미 짤린 내가 왜 그런 걸 하냐고!? 가슴 102cm을 자랑하는 인기 여자 아나운서 '리코치'가 좋다고!? 이런 위험한 실황 장소로 올 녀석은 없단 말이다! 포기해! 그래, 이번 '전쟁'은 진짜 위험하다고! 버밀리온과 클레이델란트가 국경선을 두고 몇 년에 한 번씩 '전쟁'을 벌여 온 건 네 놈들도 알고 있겠지만, 이번엔 그런 '운동회' 같은 개념으로 열리는 게 아냐! 클레이델란트 신 정권의 왕 요한 크리스토프 폰 콜브랜드가, 선왕인 부친을 죽이고 양국의 존망을 건 진짜 '전쟁'을 선포해 왔다고! CRAZY! 거기다 이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 신 정권에 그 《사막의 사신》을 필두로 한 테러리스트 군단을 고용해 왔어! ──보라고! 저 미친 작자들의 모습을!』

헬리콥터에서 몸을 내민 실황 중계자가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무수한 드론이 뤼셸 중심의 왕성, 푸른 지붕 위로 카메라를 향했다. 그 카메라를 통해 전 세계로 흐르는 영상은, 지붕 위에 서 있는 다섯 사람.

클레이델란트의 대표진이었다.

『HOLY SHIT!! 죄다 눈이 맛 간 녀석들 뿐이라고! KOK에서 짤렸을 때에 지하 여흥업 실황으로 밥 벌어 먹고 살 때에도, 이렇게 눈이 미친 놈들은 본 적이 없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런 미친 놈들의 응원은 하고 싶지 않은데그래! 그런 고로, 오늘 실황은 버밀리온에겐 부드럽고 클레이델란트엔 엄하게 중계하는 차별 중계를 할 거니까 잘 부탁한다잉!! 그럼 바로 이 motherfucker 놈들한테 정의의 철권을 내려줄 영웅들을 소개하겠어!!』

뒤이어, 드론은 성 아래에 있는 마을의 입구로 날아갔다. 영상에 비춰진 건, 문화 유산으로 남은, 이전에 뤼셸이 성채 도시였을 무렵 만들어진, 거대한 정문.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버밀리온 대표진의 모습이었다.

『일단 니들도 알다시피, 버밀리온 황국 제 2황녀!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 그 대검을 한 번 휘두르면 산이 무너지고, 바다를 가른다! 신화 세계의 정점에 서 있는 《용》의 힘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버밀리온 황국 최강의 A랭크 기사가, 고향의 위기에 참전!! 저 녀석들이 밟은 건 호랑이의 꼬리가 아닌 용의 꼬리라는 걸 알려주라고!!』

확대되어 찍히고 있는 스텔라의 모습. 똑바로 왕성을 노려보고 있는 그 표정에, 소녀의 사랑스러움 따위는 없었다. 각오가 굳혀진, 기사의 얼굴이었다.

루나아이즈의 국외 퇴거 명령을 무시하고, 버밀리온에 남은 국민들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중앙 공원에 설치된 거대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스텔라, 우리들의 목숨, 스텔라에게 맡기겠어...!"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우린 여기서 움직이지 않을 거야!"

"끝까지, 함께 싸울 테니까!"

"힘 내...! 파이팅.....!"

모티러를 넘어 응원을 보내는 국민들.

그리고 드론은 다음 기사를 비추었다.

『뒤이어서, 척 봐도 선명한 홍색 japanese dress를 입은 기사! 소개할 필요도 없는 거물의 등장! 현 KOK A급 리그 3위!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 연맹군이 편성에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본 부대를 놔두고 혼자서 버밀리온으로 특공을 가했다고 하던데! 정말 여전히 끝내준다니까! 하지만 그 대담함이 믿음직스럽다고! 버밀리온에게 있어선, 정말 최고의 구원투수가 아닐 수 없다니까! 그리고, 믿음직한 구원투수, KOK A급 리그 출신이 또 한 명! 《흑기사》 아스칼리드────!!! 온갖 공격을 방어해내고, 온갖 상처를 순식간에 치유하는, 초 방어 특화 디바이스인 《무적갑주》, orichalcos를 가지고 작년 A급 리그에 데뷔! 파죽의 기세로 연전연승을 거듭해, 제 4위까지 올라온 신진기예의 프랑스인! 하지만 설마 그 묵직한 갑주에 싸여 있던 모습이, 설마 이런 미녀였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KOK에선 맨날 갑옷만 입고 있었으니까! 후오오오오오!!!!!! 이거, 오늘 방송으로 인해 팬이 엄청 늘어날 게 뻔하겠는데! 스폰서! 얼른 일하라고! 늦어도 난 모른다!!!!』

대표 5명 중 가장 강한 둘. 그리 말해도 손색이 없는 두 기사의 모습에, 스텔라의 모친인 아스트레아는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선생님. 그리고 아이리스 양. ....모두를, 부디 잘 부탁드려요."

그녀의 어깨는 불안과 공포로 조금씩 떨고 있었다. 그런 아스트레아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은 건, 스텔라의 부친인 시리우스. 그도 또한, 모두와 함께 이 싸움의 결말을 지켜보고, ──그리고 판별해 내려 하고 있다.

자신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딸이 데려온, 일본인의 진가를.

그리고 지금 막, 그 사무라이가 화면에 나타났다.

『자, 이어서 외모 편차치가 너무 높은 버밀리온 팀 중 부러워 죽겠는 청일점! 스텔라도 참가한 일본의 학생 기사의 정점을 가리는 싸움, 《칠성검무제》. 거기서 스텔라를 쓰러뜨리고 《칠성검왕》이 된 학생기사──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의 등장! 최약의 마력, 그리고 최강의 검기! 나도 기나긴 실황 경험 속에서, 이렇게까지 언밸런스한 녀석은 처음 봤다고! 연맹 기준 랭크로 치자면 기준치 미만인 F랭크! 다른 멤버들과 비교해봤을 때, 너무 후달린 거 아니냐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뭔 헛짓거리냐 하겠지! ──하지만 그게 재밌는 거 아니겠어! 오늘도 우리들의 '당연한 상식'을 뒤집어 달라고! 플레이 보이!』

잇키의 소개에 버밀리온 성의 안뜰에서 세찬 환성이 터져나왔다. 거기에 모여 중계를 보고 있던 건, 버밀리온의 육군이었다. 이전에 황도에서 잇키와 싸운, 그리고 칼디아 시에서 동료로서 함께 싸운 자들.

그 속에는, 스텔라의 우인인 티르밋과 밀리아리아도 있었다.

"저기, 티르. 잇키, 진짜 괜찮으려나? 엄청 장소에 안 어울리는 것 같은 느낌 드는데?"

"F랭크인 데다가 일본인이니까. 억지로 참가하지 말고 단 할아범이나 왕한테 맡기면 좋았을 텐데. 괜히 폼 잡고 말야. ....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기는."

티르밋의 질문에, 육군 대장 여성 시그너드는 비통한 표정으로 답했다.

"오늘 이 날처럼, 내가 블레이저로 태어나지 않은 자신을 저주한 날은 없었어."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낙제기사》와 같은 일본의 학생이 참전! 국립 아카츠키 학원 1학년! 《부전》 ──타타라 유이!! 《칠성검무제》 에선 1회전에서 스텔라와 싸워 한 방에 져버린 학생기사!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어서 조사해봤더니, 정보가 하나도 나오질 않더라고!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꺼림칙한 여자이지만, 버밀리온의 왕비님께서 직접 지명하여 《홍련의 거친 사자》를 대신해 출전한 거니, 기대하고 있을게, BABY!』

그리고, 모두의 소개가 끝났을 무렵, 정확하게 개전 시간이 되었다.

부머는 '여전히 완벽한 시간 배분에 완전 반해버리겠네!' 하고 자화자찬한 뒤

『자! 화장실은 다 다녀왔겠지, 아가씨들!? OK! 그럼 시작해 보자고!!

Let's GO AHEAD────!!!!!』

뤼셸 옥외 방송이 개시 부저를 울림과 동시에, 시합 개시 신호를 알렸다.

──그 찰나.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앗!?!?!?』

전 세계에 배신되고 있던 영상이 흐려졌고, 실황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

" " "───으읏!?" " "

시합 개시 신호가 내려진 순간, 잇키 일행은 보았다. 왕성의 파란 지붕에서, 성 아래 마을을 뛰어넘어, 미사일과도 같은 기세로 실황 헬리콥터 옆을 지나, 똑바로 이쪽을 향해 달려 오는 검은 그림자를.

그건

『FUUUUUCK!! 위험하잖아! 뭐 하는 거냐, 임마!? 《사막의 사신》 나짐 알 살렘이다아아아앗!! 가장 위험한 놈이 갑자기 뛰쳐나왔다고!!!!』

자칠 잘못했다간 격추될 뻔한 실황이 불만을 내뱉을 무렵엔, 나짐은 이미 잇키 일행의 지근거리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모래먼지로 이루어진 선풍이 둘러진 칠흑의 디바이스와 함께 팔을 들어, 착지함과 동시에 땅을 향해 내리꽂았다.

"날려버려라! 《망해의 먼지바람》─────!!!!!!!"

그 직후, 정문 주위의 구조물, 그 모두가 날아갔다. 문화유산인 석조 거대 정문마저. 나짐을 중심으로 발생한, 하늘까지 닿을 법한 칠흑의 소용돌이가, 모든 것을 휘감았다.

그렇다. ──잇키 일행조차도.

"스, 스텔라!"

"모, 모두가...!"

각오를 굳힐 틈도 없을 정도로 빠른 적과의 접근.

그에 의해 발생된 최악의 사태에, 시리우스와 아스트레아는 비명을 내질렀다.

『설마 했던 속공에, 버밀리온 팀이 당해버렸다아앗!!!!! 팀 워크가 제일인 배틀로얄 속에서,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피어오르는 모래폭풍에 모두들 제각각 흩어... 읏!? ───아, 아니잇!!』

하지만, 실황은 거기서 알게 되었다.

미쳐 날뛰는 검은 모래선풍의 중심.

정문도, 집도, 차도, 가로수도, 그 모든 것이 날아간 곳에.

혼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사막의 사신》과 대치해 있던 자가 있었다.

──그것은

"벌써 못 참게 된 거야? 참을 성 없는 아저씨네~"

『《야차 공주》다! 《야차 공주》만이 모래 폭풍의 중심지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다아아아앗!!』

"그렇게 재촉하지 않아도, 나는 도망가지 않는다구~?"

거대한 문조차도 나뭇잎처럼 날려버리는 소용돌이 속에서, 네네는 기모노 옷소매에서 부채 형태의 디바이스, 《홍색선》을 꺼내들었다

.

이 네네의 모습에, 나짐은 기쁜 듯 입술을 말아올렸다.

"《중력》으로 버티고 있는 건가. 그래, 그거면 충분해. 이 정도로 쓰레기마냥 날아갈 정도였으면, 김샌다는 말로 끝날 정도가 아니었을 거라고!!"

"그건 이쪽이 할 말이라구."

그리 말하고 네네는 게다 한 쪽으로, 아스팔트 바닥을 툭 내리쳤다. 그 순간, 주변의 중력이 늘어나, 하늘마저도 떨어질 정도의 중량이 일대에 드리워졌다.

노블 아츠 《지박진》.

나짐이 만들어낸 황야가, 지진을 내며 깊게 가라앉았다. 주변에 펼쳐진 압력은, 지구의 중력의 거의 100배. 이전에 《아카츠키 학원》을 제압할 때 사용한 것보다 10배가 더 큰 중력이었다.

──하지만

그런 가압 속에서, 《사막의 사신》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가슴팍 앞에서 손가락을 뚜둑거리고 있었다.

"이 정도로 개구리마냥 뻗는 조루 자식이면, 천년의 사랑도 식어 버릴 거라구."

"...즉, 서로 부족함은 없다는 거겠군."

"그렇네. 애들은 집에 다 갔어. 시작해 보자구~? 어른의 시간을 말야."

그 직후, 내딛은 발은 동시.

두 《마인》의 혼신이 충돌했다.

쇠부채와 주먹에 담긴 막대한 마력이, 충돌과 동시에 칠흑의 충격파를 만들어내 주변으로 확산. 방금의 소용돌이와 중력파와는 비교도 안 될 파괴를 주변에 흩뿌렸다.

『이, 이건! SHIT!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충격파가 너무 강해서 드론이 접근을 못 하겠어...! 카메라로 찍으려 해도 마력이 너무 강해서 빛이 통하질 않아! 아무것도 안 보여...! 이것이, 사람끼리의 싸움이냐! 마치 《묵시록의 날》 같다고!!!!!』

양자가 뿜어내는 강한 마력은, 파괴를 동반하며 세계를 뒤덮었다. 뤼셸 정문에 있던 곳엔, 검은 극광만이 존재할 뿐이었고, 카메라는 그 둘을 찍을 수조차 없었다.

──한 편.

버밀리온 대표의 다른 넷은, 나짐의 《망해의 먼지바람》에 의해 상공 1500미터까지 날아올라 있었다. 이 사태에 가장 먼저 행동을 개시한 건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이었다.

"큭! ──《비룡의 날개》!!"

『오오! 괴물 대결에 정신 빼놓고 있을 때가 아니지! 위로 날아간 버밀리온 팀의 스텔라가, 공중에서 불꽃의 날개를 만들어내 자세를 가다듬고 있다아앗!! 여전히 엄청난 범용성!!』

스텔라는 불꽃의 날개를 퍼덕여 부력을 얻어냈다. 그리고 공중에 멈춘 채, 자신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간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의 모습을 찾았다. 타타라는 《반사》의 힘으로 충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고, 아스칼리드에겐 《무적갑주》가 있다. 그러니,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잇키에겐 아무것도 없다.

이 높이에서 지면에 처박히면, 둘도 없는 즉사.

자신이 커버해야만 한다──

"잇키.....!"

이윽고, 스텔라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잇키의 모습을 찾아냈다. 그녀는 그를 쫓기 위해, 날개를 퍼덕여 가속했다. 하지만, 그 찰나, ──옆에서 황금빛이 날아들어 왔다.

아침햇살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이른 시간의 빛.

그것은

"《역제의 왕도》"

"으읏───!?"

『이건! 날 수 없는 《낙제기사》를 도우려 한 스텔라에게, 《신왕》 요한이 붙었다아앗!!! 황야도, 수면도, 공중조차 답파할 수 있는 패도의 진격! 《황금 전차》의 《역제의 왕도》다아아아아아아앗!!!!!!!!』

왕성 지붕에서 황금 군마의 질주로 하늘을 달려 돌파해 온 요한. 가속이 붙은 기사창의 일격을, 스텔라는 가까스로 《비룡의 죄검》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잇키에게 갈 수 있는 길은 막혀버렸다.

"요한 오빠.....!"

항로를 막는 요한을, 분노가 담긴 시선으로 노려봤지만

"─────..................."

요한은 거기에 응하지 않았다.

《괴뢰왕》의 인형이 된 그의 눈은, 이미 어디도 보고 있지 않았다.

메말라 버린 시선은, 그 무엇도 비추고 있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스텔라조차도.

이건 마치, .....정말로 인형이 되어 버린 것만 같았고

"으윽~~~~~!"

어렸을 적부터 자주 봐 왔던 우인의 모습에, 스텔라의 가슴에 삐걱이는 고통이 일었다. 그리고, 동시에 스텔라는 떠올렸다.

자신이 진정 해야 할 일을.

'.......그래. 잇키는, 나 따위가 지켜야 살 수 있는, 그런 남자가 아니야!'

자신이 커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위기는 혼자서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실력은,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지킬 필요 따위는 없다.

지켜 내야 하는 사람은 ──눈앞에 있다.

'부탁이야, 요한을... 구해 줘......'

"때려 눕혀서라도 데리고 돌아가겠어, 요한 오빠. 당신을, 루나 언니가 있는 곳으로.....!"

처음 본, 언니의 비통한 표정. 언제나, 언제나 믿음직했던 언니가 처음으로 해 온, 부탁.

──해 내어 보이겠어.

그 결의와 함께, 스텔라는 잇키를 쫓는 것을 그만두고, 요한과 마주했다.

『스텔라! 《낙제기사》의 구출을 포기! 《신왕》 요한과의 공중전에 들어섰다! 홍련과 황금의 유성이 뤼셸의 하늘에 교착! 그, 그건 그렇고 이 판단은 괜찮은 걸까!? 하늘을 날 수 없는 《낙제기사》! 지면을 향해 거꾸로 떨어져가고 있는데! 뭔가 수가 있는 것일까!?』

"크윽....!"

옥외 방송을 통해 들려오는 실황의 목소리에, 쿠로가네 잇키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거, 위험한데.'

지면을 향해 완전히 수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전에 칼디아에서 《B.B》의 공격을 받았을 때엔, 지면에 맞춰 몸을 굴리는 것으로 충격을 벗어났지만, 이렇게 떨어져서야 각도가 부족하다.

에델베르크의 정상에서 했던 것처럼, 《음철》의 손잡이에 묶어둔 끈을 풀어 어딘가에 매달리기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무리였다.

잇키가 떨어지고 있는 낙하점은, 뤼셸의 간선도로 중심. 도로 폭은 넓어서, 주변에 《음철》 같은 도구를 이용해 매달릴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다른 《마도기사》라면 낙하 충격을 마력으로 완화시킬 수 있겠지만, 잇키에겐 그 선택지는 없었다. 그 정도의 마력량으로는, 이 높이에서의 자유낙하에서 오는 대미지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

떨어지면 즉사. 그 이외에 길은 없었다.

상당히 절체절명인 상황이었다.

'어떡해야....'

그렇게, ──그런 잇키에게 설상가상처럼

"걸리버어어어어어어어어어!!!!!!!!!!!!!!"

"──으윽!?"

간선도로를 따라 나 있는 건물들을 부수고, 신장 300미터 정도로 거대화된, 나무통과도 같은 거구의 남자, 《B.B》가 낙하하고 있는 잇키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캬오오오오오오오!"

파아앙!! 하고, 낙하하고 있던 잇키를, 두 손으로 손뼉을 쳐 날파리를 잡듯 공격했다.

『MY GOD!!!! 《낙제기사》가 공중에서 움직일 수도 없는 타이밍에, 도로를 부수며 거대화된 《B.B》가 공격!!! 귀찮은 파리를 때려잡듯 두 손으로 납작쿵을 만들었다아아앗!! 이건 죽을 수밖에── 어라?』

하지만, 거기서 실황의 목소리가 멎었다.

어째서일까.

그 이유는

".....후우. 간발의 차이였어. 오늘의 난 평소와는 달리 운이 좋은걸."

"으읏!?!?!?"

붕괴되어 날아간 건물로 인해 피어난 분진이 걷힌 시야. 찌부러졌을 터인 쿠로가네 잇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마주친 《B.B》의 손 위에 서 있었다.

『이, 이 무슨!? 파리처럼 머리와 내장이 완전히 찌부러졌을 거라고만 생각했던 《낙제기사》가, 살아 있다니!? 대체 어떻게... ───앗!』

말하던 도중, 실황은 잇키의 한 변화를 알아챘다. 어느 샌가, 그는 하군 학원의 교복 상의를 벗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에, 실황은 알게 되었다.

『그렇군! 상의야! 《낙제기사》는 튼튼한 특수 섬유로 만들어진 학생기사의 교복을 낙하산으로 대신한 거였어!』

이 실황의 이해는, 그야말로 진실이었다.

잇키는 《B.B》가 나타난 순간, 안 되겠다고 생각하며 벗은 상의를 펼쳐 공기저항을 얻어내 낙하속도를 감쇠. 그 감쇠는 아주 약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B.B》의 손바닥 마주치기 공격의 타이밍을 엇나가게 만들기엔 충분했고, 무사히 직격을 회피했다. 더불어 그 공격을 회피하며 발생한 풍압을 이용해 낙하 기세를 더욱 죽여, 아무 어려움 없이 《B.B》의 손바닥 위로 착지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냉정하고 대담한 판단력! 패배전의 백전연마! 역시 이 F랭크는 보통내기가 아니다아아앗!!!!!!!!!』

"가아아아아아악!!"

자신이 노리던 수가 통하지 않아, 《B.B》는 짜증을 부리며 난폭하게 손을 털었다. 하지만, 이것도 잇키에게 이득이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여기에 저항하지 않고 수직이 아닌 비스듬히 튕겨나간 덕에, 지면을 구를 각도를 벌어 무사히 착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잇키는 다시금 비색 하늘에 우뚝 서 있는 적과 마주했다.

'확실히,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악행에 내세워지고 있는 어린 아이, 라고 했었지.'

이전에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B.B》, 빅 베이비의 경력을. 이 거인은 놀랍게도, 아직 5살의 어린아이이다. 칼디아 전 이후에 자세한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어떤 악질적인 테러 조직에 납치되어, 사악한 신체개조를 받은 전투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테러 조직이 《해방군》의 손에 의해 괴멸되었을 때, 그대로 《해방군》에 의해 수습되었다고도 했다.

──선악의 구별이 불가능한 나이였음에도, 제멋대로인 어른의 악의에 의해 그 인생이 비뚤어진 어린 아이.

솔직히, 검을 향하는 것에 주저가 일었다.

칼디아에서의 싸움에서, 자신은 이미 그의 눈을 하나 빼앗았다.

이 이상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잇키는

"────"

"히익....!"

강하고 험악한 기운을 시선에 담아, 《B.B》의 남은 한 눈을 노려보았다. 바늘과도 같은 날카로운 위압에, 300미터의 거인이 위축되었다.

그야말로, 어른에게 혼이 난 아이처럼.

....아니, 실제로 그는 아이이다. 공포에 맞설 방법도, 공포에 저항할 강함도 없었다. 진정한 무인의 위협 담긴 시선을 받으면, 몸이 마비되는 것도 당연하다. 역시, 이런 상대와는 싸울 수 없다. 싸워선 안 된다.

그러니

"이제 이런 일은 그만 해. 넌 그저 나쁜 사람들에게 속고 있는 것뿐이야. 거대화를 풀고, 나와 함께 가자. 괜찮아. 네게 나쁜 짓은 하지 않아. 약속할게."

잇키는 그렇게 상대를 설득하며, 시선으로 움직임을 빼앗은 《B.B》에게 다가갔다. 세계의 악의에 사로잡혀 있는 어린 아이에게, 손을 뻗어주기 위해서.

하지만

"우, 우으.. 우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

다음 순간, 《B.B》는 포효를 내지르며 잇키의 위압을 떨쳐내고, 주먹을 내리쳤다. 완만한 텔레그래핑 펀치. 잇키에게 있어 회피하는 건 식은 죽 먹기의 공격. 하지만, 주먹을 피한 잇키의 눈은 경악에 부릅떠져 있었다.

대체 어떻게, 자신의 위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자기과시를 하는 건 아니지만, 고작 아이 한 명을 제압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위압은 약하지 않을 터.

그것이 어떻게──

그렇게, 곤혹해하고 있는 잇키의 앞에서, 《B.B》는 외쳤다. 마치, 자신을 고무시키듯, 두 팔을 하늘 높게 치켜들고──

"오르 골, 내 친구! 나, 친구! 지킨다!"

이 말에, 잇키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그래. 그랬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이용당할 뿐인, 불쌍한 애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확실히, 이 어린아이는 이용당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불쌍한 애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아이는 자신의 의지로 여기에 서 있다. 자신의 의지로, 우정을 느끼는 상대를 위해, 자신을 위축시키는 공포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그런 거라면, 이야기는 다르지."

한 남자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위압만으로 제압할 수는 없을 터.

잇키는 그리 판단하고, 《음철》의 끄트머리를 《B.B》를 향해 들어올렸다.

"상대하겠어. 한 남자로서."

그리고.... 가르쳐 주어야겠다.

"친구를 골라 사귀지 않으면, 뼈아픈 꼴을 당한다는 걸 말야....!"

"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

───《낙제기사》와 《B.B》의 충돌이 시작되기 조금 전.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는 마력을 방출시켜 낙하 속도를 올려, 누구보다도 빨리 지면에 착지한 다음, 잇키가 있는 곳으로 향하기 위해 비색으로 물드는 가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이유는 스텔라와 같았다.

자신들 중 유일하게, 착지 수단을 갖추고 있지 못한 잇키를 도우기 위해서.

하지만, 갑자기 그 질주가 멈추었다.

'안 돼, 멈춰..'

"윽!?"

시합 회장이기 때문에 대표 이외엔 출입이 제한되어 있는 뤼셸의 한 곳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소녀의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스칼리드는 발을 멈추고, 설마 사람이 남아있는 건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장소는, 적막한 주택가. 목소리의 주인은, 곧바로 찾아낼 수 있었다.

'안 돼, 오빠! 아파, 아파! 자르지 마! 미쉘의 손가락, 자르지 마!'

'아니야! 미쉘... 이게, 몸이.. 멋대로...! 우아아앗!!'

'이, 건──'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채고, 아스칼리드는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사람이 아니었다.

인형이었다.

작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모습을 한, 두 펠트 인형. 남자아이 인형이 손에 든 싸구려 가위로, 여자아이 인형의 손가락을 잘라내고 있었다. 그리고, 인형은, 목소리는, 그 둘뿐만이 아니었다.

'시, 싫어! 이런 거, 먹고 싶지 않아! 먹고 싶지 않은데! 우, 우웨엑..!!'

'아, 아무것도 안 보여.. 누, 눈 돌려 줘....!'

'엄마!! 엄마아아!!!'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아이리스 언니.....'

비색으로 물들어가는 주택가.

여기저기서, 인형들이 나타났다.

나타나고, 파괴되어 간다.

팔이 잘리고, 눈이 떨어져나가고, 배가 찢겨나가, 안에 있던 털실이 바닥으로 축 늘어지면서.

모두가, 서로를 파괴하고 있었다.

서걱, 서걱, 서걱

찌익, 찌익, 찌이이익...

뚝, 뚝, 뚜욱...

"아, 아아... 아아, 아아아.............."

그 광경에, 아스칼리드는 오열과도 같은 소리를 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느 틈엔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펠트 인형들.

자신은, 이 인형들을 알고 있다.

자신은, 이 광경을 알고 있다.

이, 지옥을 알고 있다.

그것은──

'그만, 이제 그만 해.. 싫어, 이제 그만 해... ──올레루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얀 머리칼의, ──아스칼리드와 쏙 빼닮은 인형이 그리 탄원한 순간, 아스칼리드는 피를 토하듯 절규하며, 갑옷과 같은 칠흑의 핼버드를 인형들을 향해 휘둘렀다.

"하아아아아앗! 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악──!!!!!!!!!!!"

절규를 내지르며, 인형들을 모조리 휩쓸어버렸다.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악의로 인해 만들어진, 끔찍한 인형들을.

"읏, 하악... 헉! 헉!! ──우, 우욱..."

인형을 모두 베어 버린 아스칼리드는, 거친 숨을 내쉬며 세워 놓은 핼버드에 기댔다.

눈물과 구역질이 치밀어오르고 있었다.

이런 끔찍한 짓을 할 사람 따위, 이 세상에 한 명밖에 없다.

"올레루스!!!!!!!!!!!!!!!!!!!!!!!!!!!"

"아하  아하  아하  그 이름으로 날 부르는 것도, 누나 혼자가 되어버렸지. 뭐, 내 탓이지만 말야."

"읏───!"

그 목소리에, 아스칼리드는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있던 주택가. 그 중앙에 있는, 작은 광장. 그 광장을 둘러싼 건물 중 가장 큰, 교회의 지붕 위.

십자가를 등지고, 지붕 끄트머리에 앉아 있는, 자신과 같은 다른 색의 두 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일련의 소동의 모든 주범, ──《괴뢰왕》 오르 골이.

"아~아~ 힘들게 만들었는데 아깝네~ 하지만 벌써 10년이나 지났는데도, 잘 만들었지? 그도 그럴게, 나는 《해방군》에 들어간 뒤로 쭉 남의 연기를 해 왔으니, 연기력이 엄청 좋아졌거든~"

"자.... 잘도 이런 짓을!! 죽이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두의 존엄을 짓밟으면서....! 용서 못해, 너만은 절대로 용서 못해!"

평소 얌전하고 말이 없던 아스칼리드가, 그녀의 용모 단정한 얼굴을 분노에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오르 골은 겸연쩍은 투도 없이

"그럼, 어떡할 건데? 아이리스 누나."

하얀 발을 파닥이며, 순수함이라고까지 형용할 수 있는 목소리로 질문해 왔다.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답 같은 건, 이미 결정나 있다.

아이리스 골은 그걸 위해서, 오늘 이 날까지 살아 왔으니까.

"난 오늘 여기서, 널 죽이겠어...! 그리고 모든 걸 끝낼 거야! 그 날로부터 시작된 모든 것을, 여기서! 이제 그 누구라도, 너에게 짓밟히게 놔두지 않겠어!!"

분노의 외침과 함께, 아이리스의 전신에서 보라색 마력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그리고 전신을 두른 마력광은 칠흑의 갑옷으로 변했고, 그녀의 전신에 현현했다.

《무적갑주》

《불굴》의 개념을 다루는, 《연맹》에서 가자 강고한 수호의 힘.

"......헤에."

그런 그녀에게, 오르 골은 다른 색의 눈을 가늘게 뜨며

"아하  아하  이거 큰일이네, 스텔라에 루나아이즈 씨, 거기다 아이리스 누나까지! 이렇게 재미는 장난감들이 잔뜩 있으니 절로 눈이 가는걸?"

나이프로 찢어진 것처럼, 입가를 말아올리며

"그럼 해 보자, 누나. 이번엔 남매끼리, 거리낌 없이, 《피에 젖은 십자가》를 계속해 보자구."

그리고..... 최후의 한 명, 《부전흉수》 타타라 유이도 자신의 인연과 대치하고 있었다. 뤼셸의 왕성 안뜰에 있는 장미 정원. 그 정원 테이블에, 부모를 죽이고, 자매들을 죽이고, 거기다 의뢰인인 《해방군》에게까지 손을 댄 배임자. 《악의 꽃》, 아인이 앉아 있었다.

".....어머나. 아주 귀여운 드레스네. 잘 어울려, 피어."

테이블 위엔 티 포트와 컵이 둘.

피어오르는 향기로 보아하니, 티 컵에 담겨 있는 건 로즈 힙 티인 듯했다.

《검은 집》에서 배운 기술로 인해, 타타라는 곧바로 상황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 타타라에게, 아인은 칭찬을 보냈다.

"여기에 내가 있다는 걸 잘 알았네?"

"나랑 네 년은 동문이야. 흔적을 따라 쫓는 건 별 거 아니라고."

"....후훗, 그게 아닐 텐데?"

"아앙?"

"그저 같은 곳에서 배웠기 때문만은 아닐 거야. 피어는 나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으니 알 수 있는 거야. 왜냐면, 넌 날 언제나 봐 왔기 때문에. 그 지옥 속에서, 어떠한 때에도, 날 그 귀여운 눈으로 계속해서 쫓고 있었어. 그 강아지같은 귀여운 눈으로. 그래... 피어는 날 아주 좋아했으니까."

"────"

"어때? 지금이라도, 내 '진짜 동생'이 되지 않을래? 그 집의 재미없는 사람들과는 달라. 피어와 나는 아주 사이좋은 자매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나도, 아주 귀여운 피어를 사랑하니까~"

그리 말하며 아인은 자신의 대면석에 놓여 있는 컵에 로즈 힙 티를 따랐다. 그 뒤, 타타라에게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다.

"......."

이 권유에, 타타라는 권유에 따라 자리로 다가갔고,

──현현시킨 전기톱 디바이스 《땅을 기는 지네》로, 정원 테이블을 두동강냈다.

"잠꼬대 할 거면 뒈지고 나서 지옥에서나 지껄여. 개년아....!"

"어머나, 아쉬워라~"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 《부전》 타타라 유이, 둘 다 클레이델란트 측 상대와 접촉! 아무래도 둘 다 상대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대로 전투에 돌입! 것보다 모처럼 《사막의 사신》이 버밀리온 팀을 이리저리 찢어놨는데, 모두 일대 일이냐! 클레이델란트! 너희들 이게 배틀로얄 형식인 걸 잊은 건 아니겠지!?』

드론으로 모두를 따라붙은 실황이, 클레이델란트가 일대 다수의 유리함을 포기한 것에 어이없음을 나타냈다.

전술로 치자면 절대 나와선 안 될 판단.

하지만, 클레이델란트의 멤버들은 상호 이해 따윈 절대로 불가능한, 외톨이 늑대끼리의 모임. 제대로 된 팀워크가 나올 리가 없었다.

『뭐, 어찌됐건 전투 개시! 클레이델란트와 버밀리온! 먼저 탈락자가 나오는 건 어느 쪽일까! 우리의 드론으로 철저하게 따라붙어 생방송으로 보내──── 하아아아아아!?!?』

갑자기, 수많은 카메라를 통해 비춰지는 영상을 바라보다가, 실황의 목소리가 당황에 물들었다. 동시에, 그 경악의 원인이 된 카메라의 영상을, 방송을 통해 내보냈다.

거기에 비춰진 광경은

『이, 이건── 《B.B》가 이미 쓰러져 있어어어어어!?!?!?』

◆◇◆◇◆

어른이 싫었다.

언제나 무서운 얼굴로, 무서운 목소리로 겁을 주니까.

딱딱한 손으로 때리기만 한다.

자신들은 그저 즐겁게 놀고 싶을 뿐인데.

──그러니, 오르 골과도 마음이 맞았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든 불쾌한 내색 하나 비추지 않았다.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즐겁게 웃고, 같이 즐겼다.

같이 놀아 주었다.

무서운 어른들과는 다르게,

그건 틀림없이, 그도 아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우인이, 무서운 어른들에게 잡힐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러니, 도와야 한다.

《B.B》는 자신의 거대함과 상대하는 적의 작은 몸집을 보고, 확신했다.

벌레 같다고.

그리고 생각했다. 그런 상대에게 질 리가 없다고.

이전엔 거대화를 어설프게 해서, 기습을 당해 한 쪽 눈에 통렬한 찌르기를 당했지만, 이번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한다. 지면에 주먹을 내리쳐, 일격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그래, 내가 쓰러뜨리는 거야.

유일한 친구의 목숨을 위협하는 적을.

그 기백을 주먹에 담아, 《B.B》는 주먹을 내리쳤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온 힘을 다해 지면의 적을 내리쳤다.

하지만

"카, 악! 아아아악!!"

서서히, 《B.B》의 표정에서 기백이 사라져갔다. 그 대신 땀과 함께 번져나온 건, 초조와 곤혹. 어째서인가. 그 이유는, 그의 시선 너머에 있었다.

몇 번이고 계속해서 거인의 주먹을 받아, 엉망이 된 길가.

그 위에──그의 적이 늠름한 얼굴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

"어, 째서!? 어째서어어어!!!!"

이상한 광경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약삭빠르게 움직여 자신의 주먹을 피하는 거라면, 무사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적이 움직이고 있는 걸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 채.

주먹은 확실히 적을 향해 내리쳐지고 있다.

그런데, 닿지 않는다.

마치, 실체 없는 유령을 때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대체 어째서? 모르겠다. 알 수는 없었지만, 무슨 방법을 이용해 주먹을 피하고 있는 것일 터.

그리 생각한 《B.B》의 뇌리에,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다.

"앗! 우훗, 우후후후후훗.....! 좋은 생각, 떠올랐다!"

그리 말하고, 《B.B》는 그걸 실행에 옮겼다.

"뿅~~~~~~~!"

그 자리에서 크게 도약.

공중에서 몸을 지면을 향해 엎드려, 낙하.

300미터나 되는 거체에 의한 바디 프레스가 지면을 울렸다.

이거라면, 도망칠 수 없다.

그런 작은 벌레가 어떻게 움직이건,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구훗, 구후후후후후훗!! 이거로, 납작쿵! 너! 납작쿵!"

《B.B》는 승리를 확신하고, 전과를 확인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리고, 길 위에 주차된 차도, 가로수도, 건물도, 그 모든 것들이 납작해진 지면을 내려다보고

"────아에?"

경악했다.

검은 사무라이는,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늠름하게 똑바로 서 있었으니까.

"어, 어째서. 어째서어어어어어어!?!?"

부조리한 현실을 비난하듯, 감정을 드러내며 절규하는 《B.B》. 그 절규에, 잇키는 답했다.

"무엇 하나 의아해 할 필요 없어. 《B.B》. 네 거대화는 확실히 강력한 능력이야. 하지만 그래도 그 거대화가 너무 지나치면, 반대로 이점을 잃게 되는 부분도 있어. 과유불급, 이란 거야."

그리 말하며 잇키는 《B.B》에게 자신의 손바닥을 펼치며 말했다.

"인간의 몸은 손바닥 하나에도 요철이 가득 존재해.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지문, 모지구, 소지구──, 이 모든 요철이 지나친 거대화로 인해 더욱 드러나 있지. 그것이 몸 전체의 거대화라면 더욱 커지기 마련. 배꼽 사이의 틈조차 하군 학원의 기숙사보다 훨씬 넓게 느껴지던걸."

그렇다면, 그 틈사이로 도망치면 그만일 뿐.

지금, 그가 그렇게 했듯이.

불필요할 정도로 거대화된 탓에 새겨난 틈 사이로 빠져나간다. 그것이 《B.B》의 모든 공격이 헛수고로 돌아간 이유였다.

"그리고, 지나친 거대화의 불리한 점은 그것만이 아니야."

"윽!?"

그리 말하고, 싸움이 시작된 뒤로 처음으로, 잇키는 자신의 발로 《B.B》와의 간격을 좁혔다. 단련된 각력에 의한 질주로.

하지만, 일직선이 아니었다.

잇키는 《B.B》의 주변을 우회전하며 선회했다. 이 재빠른 잇키의 동작에, 《B.B》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으나, 그 동작은 너무도 느렸고

"거대화된 육체의 질량, 거기에 가해지는 중력, 동작에 동반되는 공기저항, 그 모든 것이 네게 족쇄를 채우고 있어. 그런 상태로 내 속도를 따라올 순 없지. 더 말하자면, 거대화했다고 해서── 인간의 약점은 달라지지 않아...!"

"으가아악!?"

그 직후, 《B.B》의 시선을 따돌린 잇키는, 그의 발 아래로 파고들어 두 발의 뒷쪽을 베어냈다.

그렇다, ──아킬레스건을, 말이다.

무릎 아래를 지탱하는, 종아리 근육을 축으로 담당하는 아킬레스건. 거기가 끊어지면, 당연히 서 있을 수는 없을 터였다.

《B.B》의 거체는 무릎에서부터 지면을 향해 무너졌다. 그 찰나, 잇키는 더욱 추격을 가했다. 노린 곳은 무너진 무릎, ──대퇴 사두근 건.

"아윽!!"

대퇴 사두근 건은, 대퇴부의 거의 모든 근육을 무릎과 이어주는 건이다.

그곳이 손상되면, 다리가 기능을 잃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리의 힘을 잃은 《B.B》의 몸은, 앞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팔로 버텨 앞으로 쓰러지는 것은 막은 《B.B》였지만

"이걸로 끝이야.

"으윽──!"

그 행동에, 의미는 없었다.

잇키의 진짜 노림수. 승부를 결정짓기 위한 급소.

측두부, 상대적으로 두개골이 얇은 '관자놀이'는, 이미 그의 사정거리까지 와 있었고

"제 1비검── 《서격》!!"

다음 순간, 쿠로가네 잇키의 검기 중에서도 특출난 공격력과 관통력을 자랑하는 찌르기가, 《B.B》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다.

"갸, 악! ────아, 아아......."

거대화된 《B.B》에게 있어, 《음철》은 바늘과도 같은 것. 찌르기에 의한 자상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충격은 다르다.

단단한 구조물을 파쇄하는 데에 있어 《서격》의 에너지는, 얇은 두개골 측을 손쉽게 관통했고, 깊고 예리한 바늘은 운동 중추를 담당하는 소뇌에 찔려, 《B.B》의 의식에 심각한 파괴를 가져다주었다.

'아, 어.....라.......'

의식의 붕괴와 함께, 《B.B》의 몸이 드디어 지면에 쓰러졌다. 《B.B》는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다리..... 움직, 이지 않아........ 어, 째서....?'

이미 그의 의식은 사지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리고, 뇌로도 전달되지 않음에 따라, 시야가 서서히 흐려져 갔다. 의식이, 암전되어 갔다.

그렇게 어두워져 가는 시야에, 눈 앞에, ......쿠로가네 잇키가 걸어오고 있었다.

"승부는 났네."

"윽......!"

《B.B》는 그 모습을, 눈에 한껏 힘을 줘 노려보았다. 자신이 싫어하는 어른에 대한 혐오감을 담고. 더 이상 다가오면 이로 씹어버리겠다는 듯이.

아니, 실제로 씹어버릴 생각이었다. 사지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목 위는 아직 어떻게든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쉽겠지만, 지금의 너로선 내겐 이길 수 없어. 왜냐면, 넌 아직 어린아이니까."

잇키는 그런 《B.B》의 위협에 동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언제나 아이로 남아있을 수만은 없겠지. 《B.B》. 넌 이제부터 여러 일을 알아갈 거라 생각해. 자신에 대한 것. 자신의 힘에 대한 것. 사회에 대한 것. 그리고.... 네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 모든 것과 마주했을 때, 잘 생각해 주었으면 해. 자신이 어떠한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지를. 그것이야말로, 네 진짜 인생의 출발점이 될 테니까."

그리 말하고, 그의 뺨에 손을 얹었다.

《B.B》는 물론 그를 씹어버리기 위해서, 마지막 힘을 턱에 넣었다.

"언젠가, 어른이 된 너와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아.......'

하지만, 《B.B》는 움직이지 않았다.

느꼈으니까.

자신의 뺨을 매만지는, 작은 손바닥.

거기에 깃든, 따스함을.

그건, 자신이 알고 있는 어른의 손의 어떠한 감촉과도 다른, 상냥하고 따스한, 그리고 힘찬 감촉.

──아니.

아니야. 하고, 《B.B》는 생각했다.

자신은 알고 있다.

이 따스함을, 이 자상함을.

'아하하. 이거 봐. 크고 건강한 아기야.'

'그래요. 틀림없이 키가 크고 잘 생긴 남자가 될 거에요. 당신과는 다르게.'

행복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없는 것 같기도 한 목소리.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어디선가, 이 따스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이 상냥함을 느낀 적이 있다.

그건, 알 수 있었다.

무섭고 차갑고, 딱딱한 어른의 손에 의해, 어두운 장소로 끌려가기 전에.

대체 언제였을까.

누구일까.

떠올리려 해도, 《B.B》의 의식은 이미 한계였다.

떨어진다. 뺨에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에 이끌린 채로.

이윽고 마법이 풀려, 원래 크기로 돌아간 《B.B》.

어떠한 행복한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걸까.

그 편안하게 잠든 모습은, 어린아이의 그것이었다.

◆◇◆◇◆

『이 무슨 일방적인 싸움이냐!!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 마력도 노블 아츠도 무엇 하나 쓰지 않고, 《B.B》의 거체를 다리에서부터 전부 무너뜨리게 만든 다음, '관자놀이'에 일격을 가해 피니쉬! 생채기 하나 입지 않은 퍼펙트 게임으로 클레이델란트의 대표 중 하나를 쓰러뜨렸다아아아앗!!! BRAVO!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너무 압도적이잖아! 일본의 사무라이! 카메라를 볼 틈조차 없었다고, 젠장할!』

영상을 되감고, 경위를 확인한 실황이 흥분에 뒤집어진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상을 중계로 본 버밀리온 육군들도, 박수갈채로 잇키의 실력을 칭찬했다.

"아핫☆ 그냥 살살 녹았네! 어이상실~!"

"....그렇군. 방해꾼조차 없었다면, 애초에 대미지를 입을 상대조차 아니었다는 건가."

"그렇게 말하지 마. 대장님. 개미와 코끼리 정도로 크기 차이가 있는데도 저렇게 이겼어. 쫄기는 커녕 상대의 거대함을 역으로 이용하여 공격을 무력화시켰다고."

상대의 몸이 커지면, 그만큼 틈도 많이 발생한다.

확실히, 당연한 도리이다.

날아다니던 모기를 손뼉을 쳐 잡은 줄로만 알았는데, 손가락 사이로 난 틈새 때문에 살아남아, 놓쳐버리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당연한 도리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낼 수 있는 일일까?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거대한 손바닥의 위압을 앞에 두고, 그런 냉정한 판단이 가능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티르밋의 몸은 공포에 부르르 떨렸다.

"대체 배짱이 얼마나 두둑한 거야. 정말, 스텔라 녀석.. 어이없는 놈을 데려왔어."

그리 말하는 사이, 화면 속의 잇키가 행동을 보였다. 간선 도로를 달려나가, 뤼셸 중앙으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동료를 도우려 하는 듯했다.

하지만

『《낙제기사》, 기절하여 원래 크기로 돌아간 《B.B》를 연맹의 구호반에게 맡기고, 다시금 행동 개시! 저 녀석의 칼이 향하는 다음 타겟은 누가 될 것인가! 뭐, 그것도 신경쓰이는 점이긴 하지만 남자 녀석 엉덩이면 쫓아다니는 건 비주얼적으로 NG겠지! 여기서 장면 체인지! 클레이델란트 하늘 위! 양국의 왕족의 대결이 임계점을 향해 히트 업 중이라고!!!!』

거기서 중계 화면이 바뀌고, 스텔라와 요한의 싸움을 비추었다.

『《신왕》 요한의 기동력은 지금 최고조! 《황금 전차》 의 '진로'의 능력은, 어떤 환경이건, 어떤 상황이건 상관없이 답파가 가능한 능력! 그건 발 딛을 곳이 없는 하늘, 직각의 급커브도 상관없지! 어떤 장소, 어떤 궤도이건 《황금 전차》는 고속도로를 달려가듯 노 브레이크로 질주할 수 있어! 그 궤도는, 마치 하늘을 그리는 번개! 역시 이 능력을 상대하기는 벅찬 것인가! 《홍련의 황녀》!!!』

실황의 말대로, 이 공중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요한이었다. 스텔라의 《비룡의 날개》는, 아직 습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노블 아츠여서, 숙련도가 충분하다고 하기엔 어려운 수준이다. 지면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격에 위력이 충분히 담기지 않았고, 자신이 자랑하는 공격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유는 여러 모로 있었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요한의 능력의 특성 때문이다. 요한의 '진로'의 능력은, 실황이 말했듯 어떠한 궤도, 어떠한 악로라 하더라도 평탄한 직선 길을 나아가듯 질주할 수 있다.

자신의 진로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장해가 있어도, 상관없이.

거기엔 당연, 스텔라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이 인과 간섭에 의해, 진로 상에 존재하는 스텔라의 신체능력은 대폭으로 감쇠되어 있었다. 그 결과, 하늘을 종횡무진 달리고 있는 요한의 《황금 전차》보다 한 박자 느리게 행동을 취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방어 일변도.

돌격을 막은 뒤 검을 휘둘러 반격을 하려고 해도, 요한은 돌격의 여세를 살려 검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 공격을 가할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스텔라의 기색이 나빴다.

공격에 손 쓸 도리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읏..'

수 십 번의 교차 도중, 스텔라의 뺨에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스텔라의 피, ──가 아니었다.

피를 흘리고 있던 건,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있던 요한의 것이었다.

《비룡의 죄검》의 날은, 아직 요한에게 한 번도 닿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어깨부터 손가락 끝까지, 한 줄기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기사창의 손잡이를 물들이고 있었다.

대체 어째서인가.

스텔라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이전의 《칠성검무제》의 1회전.

'히라가 레이센'의 몸으로 《칠성검무제》에 참가했던 오르 골이, 《얼음의 냉소》 츠루야 미코토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괴뢰왕》 오르 골은, 자신의 실로 타인을 조종하는 노블 아츠를 보유하고 있었다.

본인조차 쓸 수 없는 잠재능력까지 낼 수 있을 정도의 기술.

그건 즉, 본인의 의지를 완전히 무시한 《일도수라》.

문답무용으로, 억지로 체력과 혼을 한계 이상까지 혹사시키는 행동.

자비 따위는 없다.

요한은 지금 그야말로, 그 상태였다.

스텔라의 기억 속에 있는 요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마력과 기술. 원래의 요한의 실력 치고는 너무도 과한 동작. 이런 짓을 계속한다면, 머잖아 요한의 몸은 파괴되어 버릴 것이다.

──이렇게 놔두고 있을 수만은 없다.

곧바로 결착을 지어야만 한다.

'나한테 맡겨 줘! 모두들을, 루나 언니를, 나 자신을... 그리고 요한 오빠와 다른 사람들도! 모두를 지켜 내 보일 테니까!'

그렇게, 모두에게 약속했으니까.

따라서, 스텔라는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에? 뭣...! 잠깐잠깐잠깐!! 《홍련의 황녀》!! 너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스텔라.....!?"

"────!"

중계를 버밀리온에서 지켜보고 있던 스텔라의 부모들은 눈을 부릅떴다.

그 이유는

『전쟁 중에, 전투 중에, 자신의 디바이스를 거둬버렸다아아아앗!?!?』

그런 어이없는 행동을 벌였기에.

『서, 설마! 맨손으로, 《황금 전차》의 《역제의 왕도》를 받아낼 생각인 건가!? CRAZY!!!!!!!! 그거, 너무 좀 오버하는 거 아니냐!!! 맨몸으로 최고속으로 날아다니는 기병과 맞서면 어떻게 될지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늦었어!!!』

적이 자신의 무장을 내버렸다.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요한이, ──그를 조종하는 《괴뢰왕》이 놓칠 리가 없다!

"《역제의 왕도》."

"《역제의 왕도》"

『《황금 전차》가 화살과도 같이 쇄도!! 무방비해진 적에게 일직선으로 돌진!!!!』

금색의 기병이, 기사창을 적에게 뻗은 채 일직선으로, 하늘을 날아갔다. 스텔라의 심장을 향해, 똑바로.

거기에 대해, 스텔라는 아직도 검을 쥐지 않은 상태. 맨손으로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흉기를 잡아내려는 자세.

──그건 어이없는 판단. 생각해선 안 될 무모. 기병의 돌격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보병 따위,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 하물며, 요한의 능력은 '진로'. 진로 상에 존재하는 모든 장해를 걷어내고 질주하는, 패도의 힘. 그 힘은 개념이라는 형태로 인과에 간섭하여, 스텔라의 여력조차 무의미하게 만들 터.

그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상관없어....! 그런 당연하다는 것은!'

스텔라는 떠올리고 있었다.

에델베르크에서 대치했던, 작은 《마인》에 대한 것을.

《도철》 후 샤오 리.

스텔라는 그녀 자신이 탁월한 무인이었기에, 알 수 있었다. 그 적은,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수 십 번 싸워도 수 십 번 패배하는 것이 당연한 상대라는 것을. 그 정도로 자신과 상대와의 실력차는 여실했다. 그건 스텔라 자신도 아무런 반론의 여지가 불가능하다고 인정한 부분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사투에서 승리를 거머쥔 건 자신이었다. 자신들 블레이저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 운명을 바꿔낼 수 있는 존재. 강한 의지는, 강한 자기는, 이따금 그 운명을 바꿔내기도 한다. 즉, 그 운명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 블레이저의 싸움.

그렇다면, ──온갖 장해를 분쇄하고 질주하는 운명을 지닌 힘. 그것이 어느 정도의 위협이 될 것인가.

자신이라면 막을 수 있다.

요한이 지닌 운명의 힘을.

아니. 당연히 막아낼 수 있다.

그런 것.

그런 정도의 것.

왜냐면, 지금의 요한은, 요한이 아니기 때문에.

사악한 의지에 조종당하는, 그저 '꼭두각시 인형'.

거기엔 자신의 의지, 자기 따위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후우웃───!!"

그리고, 황금의 마차는 조금의 감속도 없이 스텔라를 향해 직격했고, 《황금 전차》의 끄트머리가 그녀의 심장을 향했다,

──그러나, 닿지 못했다.

조금도.

스텔라의 두 손이 기사창을 아무 어려움 없이 잡아냈고, 그 돌진을 힘으로 막아낸 것이다.

『뭣....! 마, 막았다아아아악!!!!!!!! 이게 뭐야, 《홍련의 황녀》!! 자신이 나아가는 길에 있는 장해를 전부 파괴해버리는 《황금 전차》의 《역제의 왕도》를! 진짜로, 맨손으로 막아냈어!! 이 무슨 상상초월 급의 힘이냐아아아아앗!!!!』

스텔라는 잡고 있던 기사창을 힘껏 잡아당겨, 요한을 황금의 마차에서 떨어뜨렸다.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려 하던 그의 몸을, 멱살을 잡아 들어올리고

"오한 오빠. 루나 언니가 전해 달래."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이 멍청한 녀석!! 국민의 규범이 되어야 할 왕족이, 차기 왕위 계승자인 녀석이 그 꼴이 뭐냐!! 이 악물어!!!!!"

어젯밤.

국장 도중에, 언니에게 부탁받은 전언과, 거기에 담긴 감정을 힘껏 소리치며,

──사정 봐주지 않은, 요한을 향한 따귀가 날아들었다.

◆◇◆◇◆

왼쪽 뺨에 난, 미증유의 충격.

그것은, 요한의 몸을 포탄처럼, 뤼셸의 하늘에서 근교에 있는 대지까지 날려버렸다. 이 충격적인 광경에 실황은 비명을 내질렀다. 아무리 블레이저라고 해도, 상공 수백 미터에서 지면에 추락하게 된다면, 무사할 리가 없다.

대참사였다.

일단,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통의 블레이저의 경우에 해당할 뿐.

머나먼 하늘 위로부터 지면에 추락하고, 그 여세로 집을 7채 정도 붕괴시킨 요한이었지만, 그는 살아있었다.

그 이유는, 《괴뢰왕》에 의해 억지로 짜내여지고 있는 마력 때문. 요한의 한계를 크게 상회하는 마력이 방출되어, 낙하의 충격을 완화시킨 것이다.

별다른 대미지는 없었다.

따라서, 잔해더미에 묻혀 있던 요한은 곧바로 일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잔해더미를 치워내고,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조종당하고 있는 몸은 그랬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스텔라의 따귀는, 눈물이 메말라 절망과 무기력이란 이름의 늪에 빠져 있던 요한의 자아를 일깨워준 것이다.

'그, 말은....'

기억하고 있다.

지금 막 들은 말과 똑같은 말을, 노성과 함께 들으며 얻어맞았던 추억이 있었다. 영국에 있는 대학교에 유학을 갔던 때.

언젠가 오게 될 왕위의 압박감. 거기에 동반될 중책. 그 모든 것에서 눈을 돌리고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언젠가 오게 될 것이고, 도망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적어도 지금은 자유롭게 살아가자고.

그다지 품성이 좋다고 할 수 없는 친구들과, 놀러 다녔을 때가.

하지만, 그런 어느날 밤.

어떤 파티로 향하던 도중, 그녀가 나타났다.

──루나아이즈 버밀리온.

자신과 같은, 언젠가 국가를 짊어질 때를 위해, 유학을 온 소꿉친구. 한 살 연상이며, 좀 상대하기 어려운 누나 같은 존재. 자신의 소행을 주의하러 온 것이란 건, 얼굴을 마주친 순간의 분위기로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은 말했다.

시기가 오게 되면 잘 해낼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지금을 즐기고 싶다고.

그 순간이었다.

방금 스텔라가 했던 말과 완전히 똑같은 말과 함께, 힘껏 따귀를 후려치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너나 내게 그런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나? 대체 누구의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누구의 돈으로 이런 교육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넌 클레이델란트를 위해 살고, 클레이델란트를 위해 죽어!'

그리 말한 뒤 그녀는 자신의 의사 따위는 상관없이, 자신을 데리고 돌아갔다.

....그 날의 밤이었을까. 친구들이 위법 약물 사용으로 인해 체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은.

그 때 루나아이즈가 자신의 뺨을 때린 뒤 강제로 끌고 가지 않았다면, 설령 자신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원인으로, 클레이델란트의 이미지에 큰 손상이 가, 국민이나 자신의 부모를 슬프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 때 느낀 공포는, 학생이라는 자유로운 신분에 들떠 사려 부족한 머리에, 그런 'if'를 상상시키게 해주었다.

그랬기에 그 사건 이후로, 언젠가 왕이 될 테니 지금은 그저 학생으로서 즐기며 보낸다는 생각은 없이, '왕이 된 자신'을 언제나 상상하며, 행동하게 되었다.

언젠가 짊어지게 될 책임. 그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건 그야말로.... 어렸을 때부터 그 책임을 자각하고, 어떤 때라도 늠름하게 행동했던 루나아이즈 버밀리온처럼.

자신도 또한, 그녀처럼 되기 위해서.

하지만....

'내게는 무리야....'

부친도, 모친도, 친구들도, ──모두 자신의 손으로 죽여버렸다.

살을 뚫는 감촉. 꺼져 가는 생명의 마지막의 경련. 눈에 들어온, 경악과 절망의 빛.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뇌리에 반복되고 있다.

이런 건..... 짊어질 수 없다.

이런 죄를 짊어진 채로 살아가다니, 도저히 무리다.

하물며, 왕이라니....

이제,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다.

살아가고 싶지 않다.

'....이대로, 그 녀석의 '인형'이 되어버리면, 편하게....'

그렇게, 요한은 실을 통해 몸에 흘러들어 오는 악의에 몸을 맡기려 했다.

그 때

"안 돼, 그런 건 내가 용납할 수 없어."

'윽──!?'

조종에 몸을 맡겨 잔해더미를 치워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한 요한. 그 눈앞에, 다 저물어가기 시작하는 비색의 하늘을 등지고, 그녀는 서 있었다.

버밀리온 황국 제 1황녀. 루나아이즈 버밀리온이.

◆◇◆◇◆

'어째서, 이런... 곳에.........'

지금 뤼셸은 '전장'이다.

전쟁 중이니, 출입금지가 되어 있을 터.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곤혹해하고 있는 요한에게

"기억하고 있나, 요한. 어렸을 적, 네 성 안의 장미 정원에서, 자신이 왕위를 맡을 수 있을까, 라며 약한 소리를 내뱉은 네게, 내가 한 약속을."

루나아이즈는 그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이런 때임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을 지은 채.

요한이 동경하고, 사랑한, 늠름한 그녀의 모습 그대로.

"난 기억하고 있어. 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지. 그리고 지금,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기에 왔어. 혼자 끌어안을 수 없는 무거운 짐이라면, 내가 같이 들어줄게. 혼자선 버틸 수 없는 고통이라면, 내가 같이 나눌게. 네게는 아직 내가 있어. 그러니까, ──돌아와! 요한!!!!!"

"아───....."

그 말을 듣고, 요한은 떠올렸다.

확실히 예전에, 정말로, 아주 먼 옛날에,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은 왕이 될 수 있을까.

그 고민에 빠져 있던 소년 시절의 자신에게, 루나아이즈가 격려로서 해준 말.

그런, 격려를 받은 측인 자신조차 잊고 있었던 어렸을 적의, 말로만 남은 약속을, 그녀는──

'크윽~~~~~~~~~~!!'

그 찰나── 오싹하는, 요한의 온몸에 공포가 내달렸다. 자신의 혈관에, 냉수가 흘러들어온 듯한 오한.

알고 있었다.

──그만 둬.....

이건 악의였다.

《괴뢰왕》 오르 골의 악의가, 자신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오고 있다. 악의는 피가 되어, 몸에 스며들고, 오체를 지배.

천천히, 《황금 전차》을 들어올리고, 그 끄트머리를 루나아이즈를 향해.

──제발 그만....!

루크와 자신의 친구들을 죽였을 때의 감촉이 떠오른다.

눈이 어질어질해질 정도의 절망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른다.

이 지배는 절대적.

막을 수가 없다.

필사적으로 저항해도, 아무리 절규해도.

그 때에도.

그 때에도.

그 때에도......!

하지만

"그 사람에게만은, 손대지 마!!!!!!!!!!!!!!!!!!!!!!"

그 직후, 황금의 기사창의 끄트머리가, ──루나아이즈를 꿰뚫었다.

그녀의 가냘픈 몸을, 깊숙이.

동시에, 엄청난 유혈이 잔해더미에 흩뿌려졌다.

──하지만

"하악....! 아, 윽......!!!"

그 유혈은, 루나아이즈의 것이 아니었다.

모든 건, 요한의 온몸에서 뿜어져나온 것.

복부를 기사창에 꿰뚫린 루나아이즈에게선,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렇다. 요한은 찌르기 직전, 《괴뢰왕》의 지배에서 모든 힘을 다해 벗어난 것이다. 온몸과 혼의 깊고 깊은 곳을 모두 얽어매고 있던 오르 골의 실을, 억지로 끊어내고.

《황금 전차》가 루나아이즈의 복부를 꿰뚫는 찰나, 《환상 형태》로 만들어내 창날의 살의를 억제한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전신의 피부는 아래쪽부터 갈가리 찢어졌고, 뇌나 장기에도 엄청난 손상이 발생하여, 귀나 눈을 통해 피가 흘러나왔다.

한 편 루나아이즈도, 결코 무사하지는 못했다.

당연했다. 《환상 형태》는 몸에 손상을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고통은 그대로 존재하니까. 두꺼운 기사창에 복부가 꿰뚫린 고통.

척추를 부수고, 창이 등 뒤로 튀어나오는 고통.

의식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고통이다.

──하지만

".............."

루나아이즈는,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비명 하나 지르지 않았다.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환상 형태》에 의한 고통이나 결손은, 혼에 작용하는 강력한 최면과도 같은 것.

강한 의지, 단고한 결의로 싸움에 임하는 자의 성의를 꺾는 것은 불가능하다.

루나아이즈는, 그걸 가지고 여기에 임하고 있다.

소중한.... 자신이 사랑하는 소꿉친구를 되찾기 위해서. 그가, 이 이상 어느 것도 잃을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

그걸 위해서, 루나아이즈는──걸어갔다.

복부를 꿰뚫은 기사창은 안중에 없다는 듯, 앞으로.

꿰뚫은 창을 뽑기 위해 뒤로 물러나야 할 터인데.

요한에게서 멀어지는 그 몇 발짝조차도, 루나아이즈는 아까웠던 것이다.

그리고

"어서 와, 요한."

루나아이즈는 상처투성이의 요한을 끌어안았다.

"....나, 는..... 지켜내지, 못했어.....! 무엇 하나도.... 누구도.....!"

안은 요한의 몸.

피에 흥건한 몸은, 떨고 있었다.

....요한이 무슨 짓을 당했는가.

그건, 그 악마에게서 직접 들었다.

그가 생각하는 것도, 자책의 념에 짓눌리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루나아이즈는 알고 있다.

아무것도 지켜낼 수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당연하다. 그 이유는

"무슨 말이야. 나를 지켜 주었잖아."

지금 이렇게, 자신은 살아 있으니까.

"읏.......!"

"괜찮아. 클레이델란트도 스텔라나 다른 사람들이 되찾아 줄 거야. 반드시!"

하지만

"그걸 재기시키는 건, 네가 할 일이야. 괜찮아. 너라면 할 수 있어. ....그러니, 둘이서 힘내자. 이제부터 우리가 다할 때까지, 내가 곁에서 널 지탱해 줄 테니까."

"아───......"

다할 때까지, 곁에서 지탱해준다.

그 말의 의미. 거기에 담긴 감정.

거기에 대한 질문은, 말로 나오지 못했다.

너무나도 큰 부상. 출혈. 그리고... 요 며칠간, 죄악감과 무력감에 시달려 온 탓에, 요한의 심신은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던 것이다.

디바이스가 사라진다.

몸에서 힘이 빠지고, 루나아이즈에게 쓰러지듯 기대는 요한. 그런 그의 몸을, 루나아이즈는 끌어안은 채, 서 있었다.

연맹이 참가시킨 구호반.

그들이 올 때까지.

요한의 몸이 지면에 쓰러지지 않도록, 쭉.

◆◇◆◇◆

요한이 쓰러질 때까지 벌어진 일련의 일들.

그건, 실황을 아주 곤혹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스텔라의 강렬한 따귀로 《신왕》 요한이 날아간 곳에, 갑자기 버밀리온의 제 1황녀 루나아이즈 버밀리온이 나타난 데다, 그녀를 갑자기 요한이 창으로 찔러버렸다고....! 하지만 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환상 형태로....? 하지만 요한은 갑자기 피가 확 뿜어져나오고...? 잠깐잠깐, 이거 대체 뭐야? 뭐냐고? 스텔라의 따귀는 그 전설의 북두신권이었던 것인가!?』

동요를 감추지 못하는 부머. 하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전 세계의 입장에서 보자면 요한은 쿠데타의 수모자이며, 《괴뢰왕》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소수의 관계자 뿐. 이 대표전이 결정된 경위를 그대로 공표하게 된다면, 테러리스트의 뜻을 받아들인 것에 대한 비난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맹도, 버밀리온도 마찬가지로.

그렇기에 내린 처치.

실황에 지나지 않는 부머가 알 리는 없다.

『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카메라로 보는 한 루나아이즈 아가씨가 무슨 짓을 한 것도 아닌 것 같고, 오히려 창에 찔리기까지 했으니, 반칙을 한 건 아닌 것 같지? 하지만 '전쟁 중'인 이 전역은 출입 금지라고, 루나아이즈 아가씨! 그곳은 선수 이외의 모든 것들은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죽어도 불평불만은 못 해! 위험하니까 스태프 여러분! HURRY UP! 얼른 데려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계속 끌고 가려 하지 않고, 사고를 바꿔 루나아이즈에 개입에 의한 반칙을 공정하게 가려 확인. 그 유무를 판단하고, 스태프들에게 그녀를 데리고 나갈 지시를 내렸다.

루나아이즈는 기절한 요한과 함께, 구호반의 들것에 실려 뤼셸에서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스트레아는 떠올리고 있었다.

어젯밤, 갑자기 루나아이즈가 자신을 불러낸 것을.

'루나야, 소중한 이야기라는 게 뭐니~?'

'여보야만이 아니고 나까지 불러내다니, 별일이군. 무슨 일이냐?'

연회도 막 잦아들었을, 깊은 밤. 갑자기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 온 루나아이즈의 부름을 받고, 아스트레아와 시리우스는 그녀가 지정한 약속 장소인 중앙 공원 출구까지 찾아왔다. 국장 때문에 모두가 공원 내에 모여있었기 때문에, 그곳은 둘과, 둘을 불러낸 루나아이즈 외엔 아무도 없었다.

그런 조용한 곳에 둘을 불러낸 루나아이즈는

'.....아버님, 그리고 어머님.'

둘을 향해, 갑자기 깊이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오늘 이 날까지,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 저 루나아이즈 버밀리온은, 버밀리온의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겠습니다.'

평소보다 더욱 정중하게, 격식을 차린 말투로, 그런 경악할 말을 입에 담았다.

' '뭐!?' '

당연히, 아스트레아와 시리우스는 그런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선언에 경악을 나타냈다.

'무, 무슨 말이야. 루나야!? 계승권을 포기하겠다니, 갑자기 어째서....!'

이 아스트레아의 질문에, 루나아이즈는 숙인 머리를 들고, 답했다.

'아버님도 이미 보셨겠지만, 방금 전 스텔라와 대화를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의 왕에 진정 어울리는 자가 누구인가. 그리고 국민이 원하는 왕이 누구인가를.'

스텔라와의 대화.

그건 국장에 쓰일 화톳불을 켜기 위해 만들어진 목조 관을 만들 때 벌어진 일. 국민에게 국외 퇴거를 권고를 대신해 달라고 한 루나아이즈에게, 스텔라는 그에 따르지 않고 국민이 이 나라에 남는 것을 지지했던 것. 여기에 국민들도 크게 기뻐하며 환호를 내질렀던 것.

그 일련의 일들에 대해선, 아스트레아도 시리우스에게서 들었다.

.....혹시, 그 일로 인해 국민의 지지의 차이를 신경쓰고 있는 것일까.

그리 생각한 아스트레아는

'....루나야. 확실히 스텔라는 모두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루나한테 자격이 없다든가, 스텔라보다 자신이 왕에 어울리지 않는다든가, 이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거기에 인기가 있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왕이 되기엔 부족하다고 본단다~'

루나아이즈가 다시 생각할 것을 권하기 위해, 그렇게 달래듯 말했지만

'물론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일본엔 못난 아이가 더 귀여워 보인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사, 상당히 신랄하네~....'

'극히 정당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딱히 제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던가, 그런 걸 신경쓰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저....'

'그저....?'

'이렇게 국가의 존망을 건 싸움에, 국가의 모두가 한몸이 되어 임하려 하고 있는 버밀리온의 모습을 보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제가 태어나 자란 나라는 이런 나라이고, ....저도 또한, 이런 버밀리온을 좋아한다는 것을요.'

'루나야....'

루나아이즈의 주장에, 아스트레아는 답할 말을 잃어버렸다. 루나아이즈는, 한 때의 감정이나 잘못된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할 아이가 아니다.

루나아이즈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아스트레아는 이 루나아이즈의 왕위 계승권 포기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루나아이즈만큼 버밀리온의 왕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었기에.

풍토인 건지, 아니면 현 왕 시리우스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이 나라의 국민들은 살짝 무리를 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국가가 궁지에 몰려있는 때임에도, 피난하려고도 하지 않는 것부터가 그렇다. 루나아이즈의 냉정함, 합리성은, 버밀리온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데에 있어 불가결한 것.

어떻게든 마음을 다시 다잡아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런 아스트레아의 곁에서

'그것만은, 아닐 텐데?'

'!'

계속 잠자코 루나아이즈의 말을 듣고 있던 시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나는, 방금 그 곳에 있었지. 그리고 들었어. ──요한 때문인가.'

그 말에 루나아이즈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뭔가 말을 고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얼버무림은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고, ──끓어오르는 감정의 압력으로, 곧바로 진심이 흘러나왔다.

'나는, 요한의 곁에 있고 싶어...!'

'루나야...'

'그 녀석이 가장 괴로워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그 녀석의 곁에 있어주고 싶어...! 지금 당장에라도 곁으로 달려가, 도와주고 싶어! 그런 건, 버밀리온의 제 1황녀가, 이 나라를 위해 살고, 이 나라를 위해 죽어야 할 사람이 입에 담는 것은 결코 허용되어선 안 될 일이야...! 알고는 있었어, 하지만... 한 번 말로 나오니, 이제 억누를 수가 없게 되어서....!'

'다녀 오거라.'

'에...'

'여보?'

그건 너무나도 의외로운 말이어서, 루나아이즈와 아스트레아가 둘 다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루나아이즈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렇게나 스텔라의 혼약을 반대했던 시리우스가 말이다.

둘의 시선에, 시리우스는 크게 한숨을 흘리고, 말했다.

'루나. 넌 어렸을 때부터 만사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어. 이 나라를 위해 살고, 이 나라를 위해 죽는다고? 그게 황족의 의무? 멍청하긴. 저 녀석들이 그런 걸 바랄 리가 없잖아. 너나 스텔라가 웃으며 살아가는 것. 저 녀석들에게 그 이상의 바람이 있을 리가 없지. 죄다 팔불출 부모들이라고.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졌다는 표정으로 루나아이즈의 머리에 손을 얹은 다음, 쓰다듬었다.

쓱쓱, 난폭하다고도 할 수 있는 손짓으로.

'다녀 오거라, 루나. 네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와. 너 외엔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오는 거야.'

'읏, 아버님...!'

순간, 시리웃흐의 품으로 루나아이즈가 뛰쳐들었다.

'오늘까지, 신세 많이 졌습니다... 사랑해요, 아버님....!'

그렇게 루나아이즈는 스텔라 일행과 함께 버밀리온을 떠났다. 자기 자신의 손으로, 요한을 구해내기 위해.

그렇다. 싸울 능력 따윈 아무것도 없이, 감정 하나만으로.

무모하다는 말 외엔 아무 말로도 표현하지 못할 행동. 하지만, 루나아이즈는 그걸 선택했다.

'루나도, 역시 버밀리온의 여자이구나...'

아스트레아는 생각했다.

루나아이즈는 자신을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던 듯했다. 그녀에게도 역시,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시리우스와 스텔라와 같은, 뜨거운 불꽃 같은 피가.

"....잘 됐네요. 여보."

그 뜨거운 피로, 멋지게 요한을 구해낸 루나아이즈. 그녀의 무모함이 결실을 맺은 것에 대한 기쁨을 나누기 위해, 아스트레아는 곁에 서 있던 시리우스를 바라보았다.

거기에, 시리우스는 답했다.

"잘 되긴 뭐가. 쓸쓸해서 울고 싶을 정도이구먼."

심히 구깃구깃한 얼굴로.

"....그럼 안 보냈으면 됐잖아요~ 전 어느 쪽이였냐고 말하자면 반대파였다구요~? 루나의 왕위 계승권 포기를 인정하는 걸 말이에요. 하지만 여보야가 가도 된다고 하니까... 무드 때문에 반대할 수도 없었단 말이에요~?"

"윽, 하..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루나가 어렸을 때부터 왕이 되기 위해 쭉 노력해 온 건 나도 잘 알고 있어. 그런 루나가 왕위를 포기하겠다는 말을 담는 게, 얼마나 많은 결의와 각오에 의한 행동인지를 말야. 그걸 생각해 보면, 반대의 말이 나올 리가 없지."

시리우스는 답을 한 뒤 크디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삐친 표정으로 "날 사랑한다면 버밀리온에 쭉 있으면 좋았잖아.." 하고 뭔가 불만 같은 걸 투덜투덜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런 좀 한심한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아스트레아는 시리우스의 팔에 살짝 팔짱을 끼며, 그에게 말했다.

"여보. 딸이 사랑한다는 말은, 7할 정도가 사탕발림의 말이라구요?"

"엑......."

◆◇◆◇◆

"다행이다..."

뤼셸의 상공에서 루나아이즈와 요한을 지켜보고 있던 스텔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루나아이즈 자신이 요한을 막겠다고 말했을 때엔, 무슨 무모한 말을 하는가 하고 반대했다. 하지만, 루나아이즈는 물러나지 않았다.

'방금 약간 한심한 모습을 보였다고 해서 얕보지 마. 소중한 남자가 궁지에 빠진 채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고 있어. 내가 그런 약해 빠진 공주님으로 보이나? 난... ──네 언니야.'

그리고, 멋지게 요한을 되찾아낸 것이다.

아무런 능력에 기대지 않고.

'역시, 루나 언니는 굉장해...'

언제나 생각하지만, 이 언니에겐 어떻게든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스텔라는 동경을 가슴에 품고, 요한과 함께 구호반에게 실려나가는 루나아이즈를 지켜봐 배웅했다.

그리고

"......하지만, 이제부터가 진짜야."

표정을 굳히고, 《비룡의 날개》의 출력을 올렸다. 피어오르는 불꽃에서 만들어지는 임광이, 뤼셸 길가로 내리꽂혔다. 그 임광은 스텔라의 마력이며, 그녀의 몸의 일부. 스텔라는 자신의 마력을 통하여, 뤼셸 길가를 내려다보며

'찾았어.'

거미줄보다도 가느다란 마력의 실이, 뤼셸을 기점으로 국토 전체에 뻗어있었다. 마치, 클레이델란트 전체가 거미집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거미집의 중심에, ──틀림없이 그 녀석이 있다.

"요한 오빠의 고통, 살해당안 모두의 원수. 너만은 절대로 용서 못 해!"

디바이스 《비룡의 죄검》을 다시금 현현시키고, 스텔라는 날아올랐다. 버밀리온의 검인 자신이 물리쳐야 할 적을 향해. 그런 스텔라의 뒤를, 중계 카메라가 쫓으며

『클레이델란트 팀의 리더인 《신왕》 요한을 압도적인 힘으로 물리친 스텔라! 그리고 곧바로 아군의 지원을 향해 나서는데! 아무래도 소모는 전혀 없는 것 같구만! 전투가 시작된 지 아직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적을 둘이나 분쇄한 버밀리온 팀! 거기다 적을 물리친 게 둘 다 이름을 알린 지 얼마 되지 않는 루키들이라니, 신세대에 대한 기대가 벌써부터 끝장나게 느껴진다고!! 이걸로 상황은 오대 삼! 버밀리온 팀에게 유리한 이 흐름 그대로 순식간에 전쟁이 끝날 것인가!? 다른 싸움은 어떻게 돼 있냐!? 일단 왕성의 장미 정원으로 카메라를, ────아, 이.. 이건......!!』

드론을 통해 실황 헬리콥터로 전송되는 무수한 화면 중 하나.

거기에 비춰진 광경에, 실황은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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