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77)

제 18장

질풍노도

'아스칼리드 장관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구치소의 문을 연 장신 금발의 여성의 앞에서, '그녀'의 카운셀링을 맡은 여성 직원이 기립한 뒤, 경례했다. 이 직원의 경례에 방에 들어온 장신의 여성은 인사는 필요없다는 듯 손으로 신호를 보내 답했고

"헤에. 이게 오벤의 부대 중 반을 병원행으로 만든 꼬맹이인가.'

여성의 대면에 앉아 있던, 어린 은발의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괴뢰왕》 오르 골의 첫 살인.

은닉 사건 《피에 젖은 십자가》로 부모와 이웃을 잃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린 시절의 아이리스를.

아이리스의 얼굴은, 실로 처참했다.

울음 끝에 눈은 심히 충혈되어 있었고, 눈꺼풀은 완전히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좌우 다른 색의 눈은, 마치 인형처럼 아무것도 비추고 있지 않았다.

눈앞의 광경도.

그녀 자신의 감정조차도.

마치, 눈물과 함께 모든 것이 흘러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제압할 때 빈사의 부상을 입혔다고 들었는데, 그것 치고는 상당히 멀쩡해 보이는군. 외상이라고는 하나도 안 보이는데 말이지?'

여기에, 여성 직원은 대답했다.

'그녀의 능력에 의한 재생입니다. 오벤 님 확실히 한 번, 그녀에게 빈사의 중상을 입혀 진압에 성공했습니다만, 그 뒤 곧바로 그녀는 부활하여 다시금 오벤 님의 부대를 향해 공격을 가해 왔다고 했습니다. 그 때의 그녀의 디바이스는, 처음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고한 방어력과, 받은 대미지를 곧바로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오벤 님과 부대원들의 힘으로는 조금의 손상도 줄 수 없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남매가 한번에 《각성》했다라... 재능이란 참 무섭군그래.'

'브루트...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것도 아냐. 그것보다, 그런 꼴로 오벤 녀석들이 참 잘도 진압을 해냈네.'

'공격의 수가 막혀, 어쩔 수 없이 마력 고갈을 노린 지연 전투를 벌였더니, 갑자기 실이 끊어진 것처럼 기절했다고 합니다. 아마, 주범인 소년이 그녀의 지배를 풀었거나, 혹은 지배할 수 없는 거리까지 이동한 게 아닐까 합니다만.'

'그렇군. 그런 거였어.'

납득하며 중얼거리고, 장신의 여성은 망연자실한 꼴이 되어 있는 아이리스의 대면석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안녕. 공주님. 일단 자기소개부터 해 볼까. 내 이름은 레비 아스칼리드. 《총검》이라는 이명을 지닌 《국제 마도기사 연맹》 프랑스 지부 장관이지. ....공주님의 이름은?'

'..................아이리스.................'

'아이리스. 아이리스 골이 맞는 거겠지?'

'.............'

아이리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그 대화는 모두 기계적이었고, 이미 '답'이 아닌, 단순한 '반응'이라고 보는 편이 더 가까울 정도였다.

거기에, 마음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이리스의 몸에 벌어진 사건을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피에 젖은 십자가》.

한 빈촌의 주민 거의 모두가, 마을 교회에 갇힌 채 극히 비인도적인 학대 끝에 참살당한 사건. 현장에 나간 감식으로, 아이리스의 부모는 물론 그 외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에 대한 학대 행위의 대부분이, 이 소녀의 손에 의해 행해진 것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범인 아이리스의 동생, 올레루스 골에 의해 조종당한 아이리스에 의해.

그녀는 동생의 써먹기 좋은 흉기로 이용된 것이다. 의식이 있는 채로 몸만이 조종당해, 부모와 친구, 이웃을 파괴해 나아가길 강제당한 생지옥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음이 감수성을 한계치까지 폐쇄시킨 것이다.

거기까지 이해하고, 레비는 아이리스에게 말했다.

'이것 참, 아이리스 골. 네 동생은 참 엄청난 짓을 저질러 주었다니까. 백 명이 안 된다고 해도 한 마을의 주민들을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학살해 버리다니, 전대미문의 흉악 사건이야. 자칫 잘못하다간 우리 블레이저 모두의 사회적 지위에 영향이 가겠지. 거기다 그 누나는 누나대로 동생을 감싸 연맹의 진압 부대와 전투, 부대원의 절반을 병원행으로 만들어버리며 그 정신 나간 동생을 도망가게 만들었고 말야. 정말, 남매가 세트로 굉장하기 짝이 없다니까.'

'읏!'

'잠깐.. 장관님! 이 아이는 주범인 소년의 능력에 의해 조종당했을 뿐인 피해자입니다! 그 말은 너무 심하신 것 아닌가요!'

움찔, 하고 레비의 말에 아이리스가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떨었다. 그런 그녀를 감싸며, 여성 직원이 항의를 올렸지만, 레비는 여기에 코웃음을 쳤다.

'피해자라고? 헛소리하지 마. 이 꼬맹이는 주범인 그 망할 꼬맹이의 가족이었잖아? 누구보다도 가까운 곁에 있던 누나 아니야? 그럼 알았을 건데 말이지. 이렇게 되기 전에, 이렇게 되어 버릴 어느 타이밍 속에서, 동생의 이상성을 눈치 챘을 거라고. 그걸 놓쳐버려 오늘 이 날을 불러낸 것은, 이 녀석이나 죽어버린 이 녀석의 부모의 나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야. 그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은 모두, ───전부 네 잘못 때문이야. 아이리스 골.'

'윽, 으흐윽~~~~~~~~~!!!'

'장관님!!'

누구보다도 깊은 상처를 받았을 소녀를 용서 없이 힐문하는, 레비의 무정한 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도저히 잠자코 지켜볼 수만은 없는 광경이었다. 여성 직원은 분노에 거친 목소리로 소리치며, 멱살이라도 잡을 법한 기세로 레비에게 달려들었다.

'적당히 하세요! 이 이상 계속 헛소리를 하신다면 이제부터는───, 읏!?'

하지만, 멱살을 잡을 기세로 걸어가던 직원이 우뚝 멈춰섰고, 항의는 잦아들었다.

아이리스를 향해 아무런 배려 없는 말로 힐난하던 레비.

그녀의 눈에, 가열찬 말과는 다른, 깊은 연민이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장의 꼴을 보고 곧바로 알 수 있었어. 모니터를 넘어서도, 싫을 정도로 말이지. 그 지옥을 만들어낸 녀석의 정신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야. 인간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닌, 타인의 고통이나 공포를 식량으로 삼는 악마라는 걸 말이지. 이대로 내버려두면, 네 동생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그 마을에서 벌어진 참극을 흩뿌리겠지. 넌 그래도 괜찮은 거냐?'

'─────............'

이 레비의 질문에, 아이리스는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극한 상태 속에 놓인 마음을 지키기 위해 감수성이 둔화되어 있었기에, 머잖아 찾아 올 제 2, 제 3의 참극을 상상하는 데에 시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비는 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똑바로 아아리스를 바라보며, 그녀의 이해를 기다렸다.

이윽고 몇 분 정도 지난 후, 자신의 동생이 가져다 줄 계속되는 재앙을 상상한 아이리스는 고개를 가로저어, 레비의 질문에 부정으로 답했다.

안 된다.

그런 건, 용서할 수 없다고.

여기에, 레비는 깊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래. 그런 게 용납될 리가 없지. ...넌 그 마을에서 죽을 운명을 뿌리치고 살아남았어. 넌 너 자신이 해 내야 할 일을 이해했기 때문에. 동생을 막지 못한 가족으로서, 자신만이 이 참극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런, 강한 확신이 담긴 말투로 고하며, 아이리스의 작은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내 집에 오렴. 내가 그 일을 마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네게 주겠어.'

'.......'

'아니면, 마을에서 벌어진 일도, 자신의 책임도, 동생에 대한 것도, 모두 잊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 보겠어? 그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양부모 정도는 알선해 줄 수 있는데.'

'아니요.'

이 질문에 대한 반응은 빨랐다.

자신이 살아갈 이유.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한 의미.

모든 것을 잃어 망연자실해 있던 아이리스였지만, 레비의 말로 인해 자신의 책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그 책임감은, 거의 시체가 되어 있던 그녀의 몸에 힘을, 눈에 의지의 불꽃을 가져다주었다.

'.....힘을, 주세요.'

아이리스는 자신의 왼손을 잡은 레비의 손을 오른손으로 감싸 잡고,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맹세했다.

'동생은, ....제가, 쓰러뜨리겠어요.....!'

◆◇◆◇◆

뤼셸 성 아래 마을 중 한 곳.

거기선 잔해와 분진을 일으키며, 두 사람이 교착을 벌이고 있었다.

한 쪽은 작은 몸집의 소년.

검은 외투를 널널하게 몸에 두른, 가냘픈 몸의 소년.

《괴뢰왕》오르 골.

그리고 다른 한 명.

그를 쫓는 거구의 인영.

증기와도 같은 보라색 마력광을 뿜는, 흑요석과도 같은 기사 갑주.

《무적갑주》.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였다.

보라색 불꽃이 깃든 큰 핼버드를 휘두르며, 오르 골을 향해 질주하는 아이리스. 거기에 오르 골은 한결같이 아이리스와 거리를 두듯, 성 아래 마을에 만들어진 길을, 벽을, 지붕 위를 달려가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아이리스를 향해 해의를 내뿜었다.

"────읏!"

가느다랗고 날카로운, 아무리 응시해도 반짝이는 빛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수 십 개나 되는 살의.

그것은 오르 골의 디바이스 《지옥 거미의 실》이었다.

강인하고 탄탄한 칼날과도 같은 실은, 자신과 표적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장해물들을 개의치 않았다. 전봇대도, 굴뚝도, 거대한 건물들조차, 모두 달궈진 나이프로 버터를 썰듯 손쉽게 양단.

대기조차도 찢어버리며, 카마이타치가 되어 자신을 쫓는 아이리스를 영격하고 있다.

하지만

"────!"

상대는 세계를 둘로 나누는 세력의 위에서 네 번째에 위치해 있는 《흑기사》.

강철조차 잘라버리는 수 십 가닥의 실.

여기에, 아이리스는 겁먹지 않고 앞으로 발을 딛으며, 핼버드를 한 번 휘둘러 끊어버렸다.

수 십 가닥을, 고작 한 번으로.

오르 골의 실이 카마이타치라면, 아이리스의 일격은 그야말로 폭발.

거기에 담긴 힘의 수준이 달랐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한 도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의 디바이스 《무적갑주》. 온갖 어려움을 뿌리쳐내며, 부상을 순식간에 치유해내는 《불굴》의 구현. 이 능력은 척 보기엔 과도하게 방어에 치중되어 있는 능력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무적갑주》의 방어력과 치유력은, 공격으로 바꿔낼 수도 있다.

행동의 마력 강화.

쿠로가네 잇키처럼, '신체능력'을 강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블레이저는 누구나 자신의 '행동'을 마력 추진으로 강화시켜, 속도와 힘을 얻어낼 수 있다.

아이리스의 이 '행동 강화'의 상승폭은, 다른 블레이저와는 차원이 달랐다. 《무적갑주》에 의한 강력한 치유력으로, 다른 블레이저라면 팔다리가 날아가버릴 정도의 '행동 강화'에도 버틸 수 있다. 더불어, 전차포에조차 흠집 하나 나지 않는 《무적갑주》의 어떤 것과도 비교가 불가능한 방어력으로, 적의 카운터를 고려하지 않고 언제나 최대 화력으로 공격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

공방에 아무런 틈이 없는 총합력.

그것이야말로 《흑기사》의 디바이스, 《무적갑주》의 진가이다.

그리고, 이 '행동 강화'는 적의 십중 공격을 일격에 상쇄해내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당연히, 그 강화는 속도에도 더해지기 마련.

실을 끊어낸 아이리스는, 그 직후 몸을 깊이 낮춘 뒤 지반을 파 올릴 정도의 힘을 다리에 담아 재가속. 순식간에 오르 골과의 거리를 지근거리까지 좁혀, 핼버드를 내리쳤다.

"우왓! 위험해라! 만약 맞았으면 다치는 걸로 끝나진 않았을 거라구, 지금 건!"

"............."

내리쳐진 핼버드는 오르 골의 외투를 살짝 찢었고, 아스팔트로 된 지면을 폭쇄시켰지만, 적의 목숨을 양단하지는 못했다.

오르 골은 핼버드가 지면에 박힌 그 약간의 틈을 이용해 다시금 거리를 두고, 철저히 도망을 쳤다. 여기에 다시금 아이리스가 압도적인 공격력과 돌격 속도로 추격했다. 둘의 싸움은 충돌 때부터 쭉, 이 전개가 반복되고 있었다.

공수는 완전히 고정되어 있었고, 싸움의 주도권은 언제나 아이리스가 쥐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주도권을 갖고 있던 그녀는, 아직도 치명상이 될 일격을 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있었다.

어째서인가.

그 이유는, 오르 골의 디바이스 때문이다.

《지옥 거미의 실》.

임의로 영체화와 실체화가 가능한 마력의 실을, 오르 골은 뤼셸 전체에 흩뿌려 놓았다.

그렇다. 마치, 거미집처럼.

즉, 이 곳은 오르 골만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발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차는, 실로 컸다.

아이리스의 돌격력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해도, 한 번 공중에 발이 뜬 이상 취할 수 있는 행동에는 한계가 있다. 도약할 때 다리에 담긴 힘이 크면 클수록, 벡터는 한 곳에 크게 고정되어 버리기에, 급정지나 급선회가 어려워지게 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발판을 이용하고 있는 거미는, 그 제한이 없다.

도약한 뒤, 땅에 다리가 닿기 전에, 실을 발판 삼아 재도약.

자유낙하 중에도 실을 잡아 급정지.

원래라면 움직일 수 없는 공중에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재차 도약.

완전히, 공중 모든 곳을 발판 삼아 종횡무진하게 돌아다니고 있다.

행동 범위에,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있던 것이다.

공수, 속도 모든 것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흑기사》가 공격을 가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거기에 더불어

"이제 말도 안 붙여 주는 거야? 슬프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우리 누나가 이렇게나 날 미워하다니."

"무슨 낯짝으로 그딴 말을....!"

"정말이라구? 누나뿐만이 아니야. 누나는 모두의 원수를 갚겠다고 말했지만, 난 그 마을 사람들을 아주 좋아했어. 생각해 봐.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의 이름이나 얼굴, 목소리를, 이미 몇 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기억하고 있을 리는 없잖아?"

"입 다물어...!"

"바로 옆집에 살던 미쉘과 토어. 자주 같이 놀았었지. 정육점을 하던 제라르 아저씨랑 로미 아줌마. 우리 가게에서 쓸 고기를 사러 자주 갔었지. 남 돌보기 좋아했던 일렌느 누나랑 이상한 것만 알고 있는 스테판느. 동네 골목대장이었던 갸스파와 그 애를 따랐던 베르나르와 엘릭. 갸스파랑 일렌느는 사실 사귀고 있었다구? 누나는 몰랐지? 누나는 낯을 되게 가렸으니까.  아핫  어쩐지 누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옛날 일이 여러 모로 떠오른다니까. 되게 그립네~"

"입 닥쳐!!!!!!!"

오르 골은 속삭이며, 뒤흔들고 있었다.

《무적갑주》로도 지켜낼 수 없는, 아이리스의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읏.. 어째서... 어떻게 그런 얼굴을 할 수 있는 거야...! 모두에게, 그런 짓을 해 놓고... 어떻게 그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거냐고...!"

"어떻게냐니. 모두들은 내 은인인걸. 그 생일날에, 난 모두에게서 인생을 선물받았어. 그저 주변에 맞춰 미소를 지을 뿐이었던 내게, 모두들은 내게 진정한 미소를 선물해 주었지. 그러니, 나는 모두에게 아~주 아~주 크게 감사하고 있다구?"

"크으읏~~~~~.. 아아아아아악!!!"

"우왓! 휴우~ 위험해라~ 위험해~"

"이제 싫어...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아. 이제 네 목소리따윈 듣고 싶지 않아. 지금 당장 그 모가지를 잘라내 버리겠어!"

"너무해라~"

오르 골의 속삭이는 말은, 어떤 거짓도 없는 진심이었기에, 아이리스의 마음에 더욱 큰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그 고통은 분노를 유발하였고, 분노는 힘으로 바뀌어 행동으로 나타났다.

조금씩, 아이리스의 공격의 동작이 커져 가고 있다.

하지만

'딱 좋게 열이 올라 있네.'

눈에 보일 정도의 틈이 만들어지고 있어도, 오르 골은 그 틈을 찌르지 않았다.

거미는 조용히, 그 살의의 초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알고 있던 것이다.

자신의 약점을.

'내 능력은 전투에 적합한 힘이라고는 할 수 없어.'

《해방군》에서의 주된 역할은, 실을 이용한 세계정세의 컨트롤이나, 인원수가 부족한 임무를 인형을 만들어 때워 넣는, '보조'였다는 것을 나타내듯이, 오르 골의 진가는 전투가 아니었다.

아이리스나 발렌슈타인 같은, 진정한 파이터 타입을 상대로 하기엔 정면승부는 불리하다.

그렇기에, 똑바로 상대하지 않는다.

가볍게, 공격에 들어서지는 않는다.

서서히 상대의 페이스를 흩어놓아, 자신의 영역으로, 깊게, 아주 깊게 끌어들인다.

그리고, ──기다리던 찬스가 드디어 찾아왔다.

"읏.......!?"

갑자기, 오르 골을 쫓던 아이리스의 움직임이 우뚝 멈춰버렸다.

여기에, 도망만 치고 있던 오르 골이 발을 멈추고

"내가 말했지. 누나. 그 날 밤을 계속해 보자고."

그 직후, 아이리스는 알게 되었다. 자신의 전신에 셀 수 없을 정도의 가느다란 실이 얽혀, 자신의 움직임을 빼앗고 있는 것을.

그렇다. 이곳은 거미집.

모든 구석구석에, 오르 골의 실이 펼쳐져 있다. 그 모든 것들은 평소 영체화되어 있어 물리 현상에 간섭하지 못하고 있고, 시야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그곳에 존재해 있다.

그런 곳에서 격하게 몸을 움직이면 어떻게 될지는 명백하다.

실이 얽힌다.

몇 겹이나, 몇 겹이나.

그것이 충분한 양에 도달하는 순간을 기다리고, 오르 골은 실을 실체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발동시켰다.

모든 것이 시작된 날의 밤, 《피에 젖은 십자가》로 아이리스와 마을 사람들을 얽은 사악한 노블 아츠.

《꼭두각시 인형》을.

이것으로, 아이리스의 몸의 주도권을 '다시금' 빼앗아왔다.

"또 다시 누나한테 보호받아 볼까. 아무래도 거슬리는 녀석이 너무 많으니까──"

그럴 터였다.

"어라?"

하지만, 아이리스를 조종하려 하고, 오르 골은 알게 되었다.

그녀와 이어진 실.

그걸 조작하던 손가락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던 것을.

"으읏~~~~~~~!"

그 직후, 오르 골의 시야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핼버드를 치켜들고, 돌격해 온 아이리스의 그림자가.

여기에, 오르 골은 온 힘을 다해 뒤로 뛰어, 종이 한 장 차이로 회피해낼 수 있었다.

아슬아슬한 회피.

실을 통해 그녀의 움직임을 초동에 감지해내지 못했다면, 지금 공격으로 인해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그 사실에, 오르 골은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꼭두각시 인형》이 통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혼란은 없었다.

그도 또한 《마인》.

곧바로 눈앞의 현실을 일으킨 힘을 알아챘다.

'단순한 여력에 의한 저항이 아니야. 이건, 누나의 '인력'인가...!'

블레이저끼리의 싸움은, 곧 운명의 주도권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인과의 고리에서 벗어난 《마인》끼리의 싸움이라면, 그것이 현저하게 드러난다. 아이리스는 《총검》 레비 아스칼리드에게 입양된 이후의 인생을, 이 날만을 위해 살아왔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가족과 친구들의 원수.

《괴뢰왕》 오르 골을 쓰러뜨리는 것. 그것만을 위해서.

그저 그것 하나만을 위해, 자신을 갈고닦아 온 것이다.

그 집념이, 원념이, 결의가, 일종의 저주가 되어 아이리스를 휘감고 있었다. 오르 골에게 조종당했던 일을, 《피에 젖은 십자가》의 재현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당연하다.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는 그것만을 위해 존재해 왔던 것이니!

"────후웃!"

"《살인희곡》.....!"

전신을 얽고 있는 오르 골의 악의마저 개의치 않고, 아이리스는 세 번째로 거리를 좁혔다.

상정 외의 사태에 초조감을 드러내면서도, 오르 골은 이것을 영격해냈다. 손가락을 튕겨, 자신의 주위에 펼쳐 둔 실을 해방시켰다.

그것에 의해 생겨나는 참격의 수는, 지금까지의 것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고작 수가 늘어난 것일 뿐.

"으윽!?"

적을 순식간에 잘게 썬 고깃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수 백, 수 천이나 되는 포화 공격.

그 모든 것을, 《무적갑주》가 받아내었다. 엄청난 금속음과 함께 불똥을 튀겼지만, 흑요의 광택엔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다가간다.

일직선으로.

쓰러뜨려야 할 적을 향해.

"이거라면... 어때!"

이 상황에, 오르 골은 공격 방식을 바꾸었다.

실을 이용한 참격은, 가볍다.

예리함으로 이 적의 갑주를 뚫는 것은 불가능.

그렇다면, ──무게로 승부.

《기계 구조의 신》.

주변 구조물을 실로 묶어, 거대한 인형을 만들어내는 노블 아츠.

그 기술을 응용하여, 주변에 뿌려 놓은 실을 활처럼 이용해, 구조물을 화살로 만들어 발사했다.

분수의 석상. 전봇대. 교회의 첨탑. 민가 하나를 통째로.

수 톤이나 되는 질량을, 팽팽히 당긴 실의 장력으로 탄환처럼 발사.

그 위력은, 전차포의 수십 배를 능가한다.

그럴 터인데.

"────"

《흑기사》는 멈추지 않는다.

날아드는 석상을, 전봇대를, 첨탑을, 민가를──

그 모든 잔해의 포탄을 받아내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전진. 이미 요새라고 해도 다를 바가 없는 격이 다른 방어력으로 오르 골의 공격을 모두 받아내고, 몇 번이고 공격을 감행해 왔다.

핼버드가 휘둘러진다.

오르 골은 거미집을 이용해 이것을 회피.

하지만

"히익!"

핼버드에 의해 만들어진 풍압에 피부가 찢겨나갔고, 주변 구조물이 폭쇄되었다. 이 눈앞의 광경에, 오르골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이거 위험한데. 혹시 내 공격, 전혀 안 통하는 거 아냐?'

오한을 통해 배어나오는 차가운 땀이 이마를 적셨다.

하지만, ──그도 또한 손꼽을 정도의 재능을 지닌 블레이저.

"뭐, 그럼 그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방식이 있지만 말야."

오르 골은 거미집을 발판 삼아 세 번 도약하여, 공격을 가한 아이리스의 위를 뛰어넘어 그녀의 뒤로 돌아섰다. 물론, 등 뒤로 공격을 가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공격력으로는, 그녀의 뒤를 공격한다 하더라도 대미지 따위를 줄 수는 없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도망친다. 아이리스가 돌아보는 데에 필요로 할 약간의 틈. 그 모든 것을 거리를 만들어내는 데에 주력했다.

그리고, 다시금 거리를 벌린 오르 골을 쫓기 위해, 아이리스가 돌아본, ──그 순간

"으읏......!"

몸에 난 이변을 알아챘다.

뒤를 돌아 달려 나아가려던 그 순간, 갑주의 얇은 간접부 중 하나, 경부에 강한 압박을 느낀 것이다.

물론 그건 오르 골의 디바이스, 《지옥 거미의 실》에 의한 압박이다.

그건 상관없다.

실은 이미 전신에 얽혀 있을 테니까.

하지만 《무적갑주》와 아이리스의, 오르 골을 쓰러뜨리겠다는 것만을 일념 삼아 갈고 닦은 인력 앞에선, 몸을 휘감는 연기나 다름없을 터.

그 몸을 속박할 힘 따윈 없을 것이다.

그럴 터──인데.

경부를 압박하는 힘은, 몸을 휘감은 실 중 그 무엇보다도 강했고, 안에 받쳐 입은 미늘갑옷을 넘어 깊게 파고들어 있었다.

그 압력에, 아이리스는 알게 되었다.

이건 오르 골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아하  역시 알아챈 모양이네. 그래. 그건 누나의 힘이야. 힘을 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누나는 자신의 힘으로 실이 얽히도록 내가 묶어 둔 거지."

자신의 힘으로 포박할 수 없는 상대라면, 다른 힘을 이용하면 그만. 자신의 전투능력의 수준이 수준보다 낮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오르 골은 그걸 보충할 수단을 얼마든지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질식은 《무적갑주》의 유일하고 명확한 약점.

아이리스가 작년 A급 리그에서 맛본, 손에 꼽는 패배.

그 중 하나, 《캄피오네》와의 싸움에서 그것이 드러났다.

아무리 우수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산소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 테니까.

"이거라면 아무리 누나라고 해도──"

움직일 수 없다.

그 오르 골의 확신은, ──눈 깜짝할 새의 직후에 산산이 부서졌다.

'에───'

한 순간의 방심.

단 한 번의 눈 깜짝할 새.

그 찰나의 사이에, 흑요의 날이 눈앞에 쇄도해 있었다.

대체 어째서.

간격은 이미 충분에 차고 넘칠 정도로 벌려 놨을 터.

그 답은, 투척이었다.

아이리스는 거리가 벌어진 오르 골을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핼버드를 던진 것이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여, 눈을 깜빡하는 형태로 나타난, 오르 골의 방심. 아이리스는 그 순간을 정확히 노린 것이다. 핼버드는 회전을 그리며, 똑바로 오르 골을 향해 날아갔다.

그의 가냘픈 몸을 양단시키기에 충분한, 빨려들어가며 날아갔다.

이미, 회피는 불가능했다.

무릎에 힘을 넣을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어둠의 세계 속에 《마인》으로 깊게 몸을 담고, 경험을 쌓아 온 오르 골은, 그 의기 순간에도 의식을 놓치지 않고, 취해야 할 행동에 자신의 몸을 맡겼다.

왼손의 새끼손가락.

제 1관절부터 위를 살짝 굽히는 동작.

그 순간, 오르 골의 몸이 위로 튀어올라싿.

도약──이 아니다.

자신을 묶은 실을 조작하여, 자신의 몸을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결국, 아이리스의 기습은 오르 골의 허벅지를 살짝 가르는 것에 그쳤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크, 으윽!?!?"

갑자기, 오르 골의 시야를 칠흑이 뒤덮었다.

이어서, 무엇을 사고할 틈도 없이, 충격이 안면을 강타한 것이다.

후두부까지 꿰뚫는 격통, 불똥이 튀는 의식, 눈물로 번지는 시야.

그 속에서, 오르 골은 자신을 덮친 충격의 답을 바라보았다.

아이리스의 주먹.

이곳이 이미 거미집이라는 것은 아이리스도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실을 이용해 위로 튀어오를 것이란 것도 당연히 예측할 수 있을 터.

그녀는 오르 골의 긴급 회피를 미리 예측하고, 여기에 혼신의 카운터로 영격해낸 것이다. 아래로 내리꽂는 라이트 펀치를 안면에 받은 오르 골의 몸은 지면에 처박히고, 땅을 굴렀다.

흘러나오는 눈물, 코피, 그 모든 것에 호흡과 시야를 빼앗기면서도

"카악!? 크으윽~~~~~~, 《살인희곡》!!"

하지만──그건 헛된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당연하다. 《살인희곡》이 눈앞의 적에게 통하지 않는 것은 방금 전의 일로 증명되어 있으니까.

아이리스의 추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천 개에 달하는 참격의 일섬을 튕겨내며, 지면에 드러누워 쓰러져 있던 오르 골의 오른팔을 짓밟았다.

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중간 쯤 되는 부분에서부터 팔이 마치 고무인형처럼 부러져버렸다.

"히익,────!! 이, 이게에에!!"

그리고 다시금 《살인희곡》을 가하려 들어올린 왼팔의 손목을, 아이리스가 움켜쥔 다음

힘껏 쥐어 부숴버렸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뇌를 찌르는 격통에 참지 못하고 비명을 내지르는 오르 골.

하지만, 아이리스는 그걸 용납치 않았다.

──고통에 절규를 내지를 권리조차, 이 녀석에겐 없다.

"크헉!"

고통에 몸부림치는 오르 골의 목을, 아이리스의 오른손이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기세 그대로, 오르 골의 머리를 지면에 내리쳐, 자신의 모든 체중을 이용해 졸랐다.

'어, 어떻게... 움직일....윽!?'

완전하게 아이리스에게 붙잡힌 오르 골은, 지금 이 상황에 곤혹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확실히 아이리스에게는, 그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목을 조르듯 실이 얽혀 있을 터.

이렇게나 격한 움직임은,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대체 어째서, 어떻게 아이리스는 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가.

그 질문은, ──《무적갑주》의 투구, 그 약간의 틈 사이를 통해 그의 이마로 쏟아지는 것을 보고, 풀리게 되었다.

피와 타액이 섞인 거품.

그렇다. 실은 확실히 아이리스 자신의 힘에 의해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야말로, 《무적갑주》 안에 있는 목을 찢어발기며, 안으로 파고들 정도로.

하지만, 그런 고통조차도

'상관없다는 건가.....'

"죽인다...! 죽인다! 죽이겠어! 죽어!!!!"

질식에 의해 사멸되어가는 뇌세포.

실에 절단되어가는 몸.

그 모든 것을, 아이리스는 《무적갑주》의 연속 치유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배의 바닥에 난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물을 양동이로 떠 퍼내는 것이나 마찬가지.

시간문제일 뿐, 그녀를 기다리는 건 파멸 하나뿐.

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자신이 파멸되기 전에, 이 목을 부러뜨려 버리면 되는 거니까!

"아, ───, ──컥....."

《무적갑주》의 흑요의 손가락이, 오르 고의 목에 파고들어갔다. 자신을 짓누르는 힘은 너무도 강했고, 주변의 아스팔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피의 흐름이 차단당한 오르 골의 안면은 검붉어지기 시작했고, 눈은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오르 골은 몸부림쳐 저항해보려 했지만, 이미 부서진 두 팔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가 없었다.

상황은 결정적이었다.

이제 조금만..

조금만 더 있으면 끝장낼 수 있다.

그런데도....

"────아────"

"크으윽~~~~~~~~~~~~~~~!!"

갑자기, 마운트를 취하고 있던 아이리스의 몸이, 경련을 일으킨 듯 위로 크게 튀었다. 그 찰나, 아주 약간이지만, 오르 골의 목을 조르던 힘이 약해졌다.

이 행운을, 오르 골은 놓치지 않았다!

"크읏!"

그는 맨발인 오른 발의 엄지발가락으로, 실을 잡아당겼다.

그 직후, 아이리스의 발 아래, 부서진 아스팔트가 '엇나갔다'.

갑자기 발을 딛던 곳이 옆으로 비껴나가, 아이리스의 체축이 뒤흔들렸다.

그 순간에, 오르 골은 그녀의 구속에서 빠져나와, 그대로 공중을 세 번 차 하늘로 달려나갔다.

"콜록! 쿨럭! 커헉! 헉, 히익...! 히잇..!"

목뼈에 금이 간 것일까. 숨을 들이쉴 때마다 두개골이 세로로 쪼개지는 듯한 격한 고통이 엄습했다. 오르 골은 그런 고통을 참으며, 어떻게든 숨을 들이쉬어 뇌에 산소를 보내, 다시금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확신했다.

이렇게까지 힘에 차이가 있을 줄이야.

완전히, 상정외였다.

어쨌든 지금은 부서진 팔을 치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방어도 불가능할 테니까.

그리 판단하고, 오르 골은 도망쳤다.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펼쳐 둔 실을 발판 삼아, 아이리스가 쫓아오지 못할 하늘로.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하지만, 그가 가는 곳은 이미 막혀 있었다.

희망으로 이어지는 활로는 끊기고, 그 실낱같은 의도는 분쇄되어버렸다.

타오르는 불꽃의 날개를 날갯짓하는, 비색의 검희.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에 의하여.

"아─────"

"이 세상에 죽어야 할 사람 따위는 없어. 아주 멋진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정계인이기도 한 내게 있어선 그저 동화속 헛소리에 지나지 않아. 이 세상엔, '죽어야 하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존재하니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을 수 천, 수 만명이나 불행하게 만드는 쓰레기 같은 인간이 말이지. ──너도 그 부류에 속해, 오르 골.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고, 오르 골의 갈 길을 막은 스텔라는, 빛의 검을 치켜들고

"모두 불태워버려라!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

하늘을 둘로 양단할 법한 일격을, 눈 아래의 거미를 향해 내리쳤다.

장간

뒤늦게 찾아온 마녀

클레이델란트 수도에서 양 진영의 대표가 충돌을 시작했을 무렵.

밤이 드리워진 버밀리온 수도의 항공에, 한 기의 비행기가 착륙했다.

《연맹》의 문양이 그려진 소형 제트기.

연맹 가맹국의 영공, 공항을 사전 연락 없이 오가는 데에 대한 승인이 내려져 있는, 비상시용 항공기였다. 이 항공기가 여기에 온 이유는, 물론 버밀리온에 가세하기 위하여.

전쟁은 양국의 규약에 의해 오대 오의 대표전으로 결정되어 있는 이상, 직접적인 가세는 불가능했지만, 간접적이라면 그 제한은 없다.

항공기에 타 버밀리온에 찾아온 자들은 모두, 의료 마술의 전문가들이었다. 이건 의료 마술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적은 버밀리온에 있어 실로 듬직한 원군이었다.

이기건 지건, 부상을 입은 사람은 나오기 마련일 테니까. 그것도 그 단체를 통솔하는 자가, 그 이름 높은 《백의의 기사》라면, 더욱 듬직하게 느껴질 터.

따라서 그들에게 만에 하나라도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황실 친위대와 버밀리온의 제일가는 검사임과 동시에 버밀리온 연맹 지부장인, 다니엘 단달리온이 마중을 나섰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키리코 선생님."

공항에서 합류한 뒤, 버밀리온의 친위대장이 찾아와 의사단에 인사를 건네며 감사를 표했다.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젊으시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의료 마술계의 젊은 천재, 《백의의 기사》가 도움을 주신다니, 저희로선 믿음직하기 그지없군요. 오늘은 부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곧바로 클레이델란트로 향하는 건가요?"

행정을 물어보는 소녀에게, 대장은 "아니요." 하고 부정으로 답했다.

"여러분은 버밀리온의 성에서 대기해 주시면 됩니다. 뤼셸엔 《흑기사》님이 《날개의 재상》의 '문'을 사전에 설치해 놓으셨으니, 유사시엔 저희와 함께 그것을 통해 뤼셸로 들어서게 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거기까지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밖에 차를 대기시켜 놓았으니, 따라와 주십시오."

하지만, 그리 말하고 의사단을 출구로 안내하려던 대장을

"잠깐만."

단달리온이 막았다.

"단달리온 씨?"

"그녀는 《백의의 기사》가 아니야."

"네!?"

깜짝 놀라, 소녀를 돌아보는 대장.

그런 그를 대신하여, 단달리온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곤혹해하는 표정으로 소녀를 내려다보며, 질문했다.

"어째서 그대가 여기에? 키리코 선생님은 어떻게 되신 건가요?"

그 말에, 소녀는 비취색 눈동자로 단달리온에게 시선을 돌려주며, 답했다.

"선생님은 저번에 일본에서 발생한 '탈옥 사건', 그 수습에 나서 있는 《세계시계》나 《뇌절》의 백업에 나서게 되셔서, 일본을 떠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의 제자인 제가 대리로 여기로 나설 수 있도록, 제가 설득했어요."

그 사랑스러운 얼굴에, 자신만만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에 가득찬 미소를 지으며

"안심하세요. 이 역할은 누구보다도 저, 쿠로가네 시즈쿠가 적임이니까요."

작가 후기

만멘미!

낙제기사 13권 구독, 감사드립니다.

닌텐도 switch로 드디어 오징어 모드를 데뷔한 미소라 리쿠입니다!

여러 모로 규칙이 있어 재밌네요, 이 게임. 애용하는 무기는 메뉴 바. 하지만 언젠가 차저를 짊어지고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고통과 공포를 알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에이밍 겁나게 어렵네!

자아, 이번 권엔 드라마 CD가 첨부된 특별판이 존재합니다. 내용은 낙제기사 9권의 내용을 애니메이션 성우로 캐스팅된 분들이 연기해 주시는 내용이에요. 저도 여기에 일부 녹음 현장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역시 제가 만든 캐릭터가 직접 말하는 걸 보니, 기쁘더라구요. 성우 분들의 열연, 그리고 애니메이션 본편 쪽도 시리즈를 구성해주신 야스카와 씨의 각본 덕에, 아주 좋은 작품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독자 여러분도 꼭 한 번 들어보세요.

이 작가 후기를 쓰고 있는 시점에선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니, 완성판을 듣는 것이 기대되어 죽겠어요.

그럼,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지지해주시는 분들께 감사 인사를.

온 씨. 만화화를 해주시는 소라미치 선생님. 편집부 여러분. 그리고 이번엔 드라마 CD 관계자 여러분들도. 이 작품의 열기를 띄워 주셔서,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13권이나 이 작품을 쭉 응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한 층 더 큰 감사를. 여러분의 응원 덕에, 칠성검무제 결승전에 온 힘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그 에피소드는 작자인 저로서도 많은 것이 들어있기에, 이렇게나 기쁠 수가 없네요.

잇키, 스텔라가 첫 싸움에 쾌승을 거두고, 타타라가 아인과 자폭. 그리고 아이리스가 오르 골을 압도하여 싸움의 우세는 버밀리온 쪽에 기울기 시작했습니다만, 이대로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것인가. 다음 권도 계속해서 스텔라의 고향을 지키는 싸움을 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14권에서 다시 만나요~

역자 후기

아니 작가 병신아..... 독일어로 피어는 5가 아니고 4야 시팔....

아인 쯔바이 드레이 피어 씨발 이걸 몰라? 내가 잘못본줄 알았네그냥 ㅡㅡ

식자질 안할란다~

이 텍본은 pdf 양식에 더욱 특화되어 있는 텍본입니다

장간

눈물의 비

그건, 벌써 몇 년이나 지난 장마철의 밤.

그녀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길을 반드시 지날 한 사람을.

계속해서 퍼붓는 빗속에서,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이윽고, 기다리던 사람이 왔다.

찾아온 쪽은 상대의 모습을 확인한 뒤, 같은 전봇대의 불빛 속으로 들어간 뒤

"……네네."

우산을 가볍게 들어올리며, 타키자와 쿠로노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의 목소리엔 놀란 듯한 빛은 없었고, 오히려 그녀──사이쿄 네네가 올 것을 알고 있던 듯했다.

여기에, 네네가 답했다.

"할아범한테 들었어. 쿠우, 너 드디어 타쿠랑 결혼한다면서? 축하혀~"

축복의 말엔 어울리지 않는, 분노에 불타는 눈을 향한 채로.

"……어떻게 봐도 축사를 전하로 온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결혼을 축하해 주는 마음은 진심이야. 근데……"

네네는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고 해서 KOK·A리그를 은퇴한다는 건 이해가 안 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

"입다물고 있으면 알 수가 없잖아, 쿠우. 다음 시합은 나랑 할 예정이었잖아. 그 《칠성검무제》에서 끝맺지 못했던 결착을 조금만 더 있으면 지을 수 있었을 텐데. 그것만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그런데, ……내 실력에 쫄은 거야?"

"……그래."

"큭───!"

그 순간, 네네는 불타오르는 감정을 실어 쿠로노의 양복 멱살을 움켜쥐었다.

"개소리 마! 임마!! 너가 그렇게 겁먹고 튀어 버릴 녀석이야!? 세계 랭킹 3위 《세계시계》 타키자와 쿠로노 아가씨께서 말이야! 대답해! 이유가 뭐야!!"

네네는 그 장신의 쿠로노마저도 쓰러뜨릴 기세로, 움켜 쥔 멱살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 기세에 쿠로노는 쓰고 있던 우산을 떨어뜨렸지만, 그에 대한 불만을 내뱉지는 않았다.

그저, 미안하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답했다.

"……겁먹었다는 건 거짓말이 아냐. 《야차 공주》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뭐? 뭔 헛소리야? 알 수 있게 말해 봐."

쿠로노의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네네는 짜증스레 쿠로노를 밀쳐버리듯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해방된 쿠로노는 상체를 곧게 편 채, 손으로 양복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칠성검무제》 뒤에 난고 선생님과 료마 씨에게 들은 말, 너도 기억하겠지? 우리 둘은 언젠가 혼의 한계를 뛰어넘을 때가 올 것이라고. 그리고 그 순간은 어김없이 내게 찾아왔어. 극적인 순간이 아닌, 결착도 짓지 못한 채 숙적과의 재결투를 위한 단련 중에 말야. ……커다란, 돌로 된 문 같은 이미지로 나타나서 말이지."

"…………"

"신장의 10배는 될 법한 높이. 하지만 그 문은 손을 대자 소름돋을 정도로 가벼웠고, 간단히 열렸어. 한 발짝, 계속해서 한 발짝, 문 안으로 나아가는 것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뛰어넘어, 한계를 초월한 세계로 갈 수 있게 되었지. 신기하게도 그런 확신이 들었어. 그리고 너와 싸우기 위해 그것이 필요하다고도 말야. 그러니 난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어. 망설임 없이 말야."

쿠로노가 이야기하는 정경.

네네는, 그것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당연했다. 자신도 쿠로노와의 시합을 위해 자신을 갈고 닦던 도중, 완전히 똑같은 경험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네는 그 문을 열어, 앞으로 나아갔다. 운명의 너머. 사람을 넘어선 마신의 영역으로.

하지만

"하지만…… 그 때였지. 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어."

"목소리?"

"타쿠미의 목소리였어. 언제나 같은 시간, 언제나 그랬듯 점심 식사를 갖고 와 준,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의 목소리였지. 그런 언제나의 그의 모습이, 눈물이 나올 정도로 사랑스럽게 느껴졌어. ……《각성》은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을 벗어나, 사람이 아닌 영역에 발을 딛는 행위지. 변질된 혼을 지닌 육체와 정신이, 지금 그대로의 인간으로 남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어. 타쿠미와 만난 것이 나의 사람으로서의 운명이라고 한다면, 난 그걸 버리고 싶지 않아. 버릴 수가 없어. 지금까지, 그리고……오늘 이후로부터의, 타쿠미의 아내로서 살아가는 나의 미래도."

말을 이으며, 쿠로노는 자신의 하복부를 쓰다듬었다.

자애로운 표정으로.

"사람으로서의 현재를 벗어나기 직전, 난 자신에게 있어 무엇이 가장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어. ……그걸 깨닫게 되자, 문에는 다가갈 수조차 없게 되었지."

"쿠우……"

"이것이 나의 한계야. 난 이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그리고 이 세계는, 앞으로 나아갈 것을 포기한 아마추어가 어슬렁거리고 있어도 될 세계가 아니야. 그러니, ……난 KOK를 은퇴했어. 이 결단에 후회 같은 건 없고."

그리 말한 쿠로노의 눈은, 아직도 미안하다는 듯 밑으로 내리깔려 있었다. 《칠성검무제》에서 짓지 못했던, 자타공인인 숙적의 결착. 이것을 포기하는 것에 죄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네네는 알아챘다.

그녀의 긴 속눈썹 너머엔, 어떠한 힘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강철과도 같은 의지가 빛나고 있는 것을. 쿠로노는 확실히, 자신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내린 결정에 후회는 하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 수조차 없다. 말로 따지든, 폭력을 휘두르든, 지금의 쿠로노는 그 모든 것을 참회의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눈 안에 있는 의지의 빛을 쇠하게 할 수는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은 네네에게 있어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큭, 잘못됐어! 그런 건 잘못됐다고! 쿠우!!"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목을 죄며 절규하듯 항의했다.

"그 자식의 여자가 되는 게 쿠우 네 바람이라고!? 그럴 리 있을 것 같아!? 쿠우 너도 기억하고 있을 거잖아! 우리끼리 죽을 때까지 맞붙었던 《칠성검무제 결승전》, 그 여름의 충실감을! 모른다고 말하기만 해 봐! 그렇게 즐겁게 싸워 놓고선!"

"……그래, 즐거웠었지. 눈앞의 이 녀석을 이길 수만 있다면, 내 목숨도 아깝지 않았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어도 상관없다고 말야. 그리 생각하고, 무아지경에 빠질 정도였었지. ……정말로."

"그치!? 그런 표정, 그 녀석이 짓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당연히 무리지! 쿠우 너를 그렇게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건 이 나 뿐이야! 그래! 내가! 분명히 내가 쿠우 너를 더....!"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런 결투는 할 수 없어."

"크윽───!"

"소중한 것이 생겼어. 자신의 목숨, 긍지 따위보다 더욱 소중한 것이 말야."

그리 말하고, 쿠로노는 천천히, 지나칠 정도로 정중한 동작으로 허리를 숙이며, 네네에게 머리를 숙였다.

"미안하다.."

언제나 올려다보는 위치에 있던 쿠로노의 머리. 그 날로부터 쭉, 계속해서 올려다 봐 왔던 숙적. 그걸 내려다보았을 때, 네네는 자신의 가슴에 금이 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관 둬... 나는, 흑... 나는.. 이런 모습으로 네 머리를.. 내려다보고 싶었던 게…… 흑..."

언제나 함께라고 생각했던 둘의 길.

하지만 그 길은 나뉘어지고,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게 되어버렸다.

그것이 너무도 분해서, 슬퍼서,

"…………제기랄……"

참을 수 없이 터져나온 오열과 눈물이, 악문 입술과 눈끝을 타고 장맛비가 되어 흘러내렸다.

──그 다음날.

《세계시계》 타키자와 쿠로노는, 정식적으로 KOK 은퇴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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