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77)

제 19장

마인 대결

버밀리온과 테러리스트에게 점령당한 클레이델란트의 전쟁.

《괴뢰왕》 오르=골과 버밀리온의 제 1황녀, 루나아이즈 버밀리온의 회담에 의해 개최된 클레이델란트 수도를 무대로 삼은 5대 5 배틀로얄도 종반전에 접어들 무렵.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과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가 대회 개시 초반부터 《B.B》와 《황금의 바람》요한 크리스토프 폰 콜브랜드를 쓰러뜨리고, 《부전흉수》 타타라 유이가 장절한 사투 끝에 《더러운 꽃》아인과 동귀어진을 한 결과, 싸움의 수세는 버밀리온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하지만, ──아직 결착이 난 건 아니다. 그 이유는, 클레이델란트 측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인》이 아직, 둘이나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전쟁의 발단, 모든 원흉인 《괴뢰왕》 오르=골.

그리고 최강의 용병이라는 이름을 떨치고 있는 《사막의 사신》 나짐 알 살렘, 이 둘이 아직 남아있다.

한 국가를 손쉽게 지배하에 놓을 정도의 힘.

수많은 국가를 스러뜨려 온 폭력. 그 둘 모두가 혼자서 싸움의 수세를 결정지을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보유하고 있는 와일드 카드. 이 둘이 남아 있는 한, 결착은 아직 멀다.

그러나 그런 난적이 있기도 하지만, 버밀리온 팀도 '주력'이 남아 있다. 《괴뢰왕》 오르=골을 상대하고 있는 건, KOK·A리그 세계 4위의 기사, 그리고 오르=골의 친누나이기도 한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이다. 아이리스는 자신의 디바이스──《연맹》최강의 방어력을 자랑하는 《무적갑주》로 오르=골의 공격을 모두 봉쇄하고, 그야말로 집념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의 가열찬 맹공으로 오르=골을 일방적으로 위기에 몰아넣었다. 오르=골은 펼쳐 둔 실을 교묘하게 이용해 도주하고 있지만, 잡히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명, 《사막의 사신》을 상대하고 있는 건, 요염한 홍색 기모노를 입은 어린 소녀와도 같은 풍모의 여성. KOK·A리그 3위, 동양에서 무적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일본의 마도기사──《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이다.

전쟁의 불씨가 터진 찰나, 나짐의 선제공격 《망해의 먼지바람》을 홀로 아무렇지도 않게 버텨낸 네네는, 그의 노블 아츠에 의해 황무지로 변한 그 곳에 우뚝 선 채로 나짐과 상대.

세계 최강의 용병을 상대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호각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흑도·야타가라스》"

《지박진》과 《망해의 먼지바람》

그저 거기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적을 짓뭉개고, 메마르게 해 버리는 살의를 품은 마력의 충돌. 그 둘에 의해 비산하고 있는, 외부로부터의 관측조차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의 농밀한 마력의 폭풍의 중심.

《사막의 사신》과 대치하고 있던 네네는, 주문을 외우며 자신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중력》──순수한 질량의 힘. 그 힘을, 네네는 빛조차 빨아들여버리는 칠흑의 마력광으로 발현.

그것을 자신의 디바이스, 한 쌍의 쇠부채 《홍색봉》에 칼날로 만들어 몸에 둘렀다. 만들어진 건, 천구가 들고 있는 단풍잎 모양의 부채처럼 생긴 중력의 칼날.

그건 네네가 《홍색봉》을 접자 한 곳으로 모였고, 3미터를 족히 넘을 검은 극광의 검이 되었다. 그 검을 손에 들고, 네네는 춤을 추었다. 기모노의 소매를 우아하게 나부끼며, 춤을 추는 동작으로 두 검을 《사막의 사신》에게 휘둘렀다.

예로부터 무(武)와 예능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닥에 발을 끄는 동작이나 간격 재기 등, 지금은 당연하다는 듯 쓰이고 있는 무의 기술도, 그 기원은 능락(能樂)에서 오는 것이다.

무도를 갈고닦는다는 것은 무술을 갈고닦는 것과 같고, 극에 달한 능락자가 보여주는 동작은, 검의 달인조차도 파고들 틈을 찾아낼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이 일본 예능에 숨겨진 이치와, 그 명인인 《투신》 난고 토라지로에게서 물려받은 검술의 이치. 이 두 희소한 재능을 지니고, 그 둘을 조합한 것이, 바로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의 전투 무도.

《야차 공주》는 춤으로 자신의 투쟁심을 표현한다.

때때로 우아하게, 때때로 가열차게.

자신의 영감에 맡긴 채, 무도의 형식에는 존재하지 않는 천의무봉의 검을 휘두른다.

거기에, 사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느끼는 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살의를 춤에 담아.

오우마가 보여준 《조일일도류》에 있는 《아마츠카제》라는, 108번에 걸친 연격의 형태를 몸에 새겨 넣어 사고의 개입이 없게 하여, 콤비네이션을 최고의 속도로 달하게 하는 기술이 있지만, 네네는 센스만으로 그걸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검무는 질풍과도 같이 빠르고, ──《아마츠카제》와는 달리 정해진 형태가 없기 때문에 읽어낼 수도 없다. 세계 최강의 검사 에델바이스나, 쿠로가네 잇키의 검의 기량이 '기술'의 극한이라 한다면, 네네의 춤은 그녀가 원래 지닌, 희소한 전투 센스와 미의식의 융합이 자아내는, '재능'의 극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검무에 의해 가속이 붙은 중력검으로 잘라낼 수 없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럴 터였지만,

"크하핫!!"

도합 7연속 참격. 그 모든 참격이 나짐의 몸을 베어버리기 직전, ──튕겨나가 버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마력에 의한 장벽인가.

──아니.

벽이 아니다.

《지박진》이나 《망해의 먼지바람》처럼, 넓은 범위를 장악하는 기술이라면, 마력을 둘러 영향을 완화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지금 이 둘은 실제로 그렇게 하여 '이계'라 할 수 있는 마력의 폭풍 속에 있는 것이니.

하지만, 네네가 들고 있는 중력검. 이만큼 집속된 일격은, 아무리 《사막의 사신》이라 해도 마력 장벽만으로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무엇에 튕겨나간 것인가.

그 답은, 나짐이 치켜들고 있는 왼손.

비스듬히, 네네를 향해 들고 있는 왼주먹. 어둠을 주조하여 만들어낸 듯한 검은 건틀릿 형태의 디바이스 《토슈카틀》에 보호받고 있는 그 왼손이, 네네의 중력검이 자신의 몸에 닿는 찰나에 발사되어, 참격을 영격해버린 것이다.

잽.

살짝 쥔 주먹. 힘을 뺀 채, 재빠르게 내지르고, 재빠르게 되돌린다. 나짐이 자신의 전투법으로 삼는 복싱 스타일 중 가장 기본적인 펀치. 스트레이트나 어퍼컷 같은 펀치와 비하면 파괴력은 아주 약한, 용도로 치자면 타격 그 자체보다, 견제나 자신의 리듬을 재기 위한 용도, 상대와의 거리를 재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는, 말하자면 보조적인 펀치.

하지만, 이 펀치엔 스트레이트나 어퍼컷엔 없는 무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속도이다.

잽은 모든 펀치 중에서도 가장 빠른 펀치. ──아니, 존재하는 도수공권 격투기 수 백 종류, 무기를 이용한 무술을 포함하면 수 천 종류, 그 모든 것들을 견주어 봐도 비견할 데가 없는, 그야말로 '최속'의 체술.

그걸 나짐이 쓰게 된다면, 평범한 달인 정도의 실력으로는 잔상을 눈에 사로잡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이다. 전혀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버린 것처럼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을 터.

나짐은 이 최속의 주먹으로, 네네의 참격을 어렵지 않게 영격해 낸 것이다. 아무리 《야차 공주》라도, 이걸 간단히 뚫을 수는 없을 것이다. 속도에 추월당하는 이상, 아무리 읽어낼 수 없는 천의무봉의 검이라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을 테니까.

나중에 낸다 해도 늦지 않는 공격. ……하지만, 나짐의 레프트도 무적은 아니다. 공략법은 확실히 존재한다.

그 하나는, 근접전투.

잽은 팔을 뻗어 내지른다는 특성 상, 스트레이트와 같은 중거리 블로에 해당한다. 팔을 뻗어 싸울 수 없는 초근접전으로 이끌고 간다면, 속도도 위력도 대폭으로 줄어들게 된다. 스텔라가 나짐의 팔이 모두 다 뻗어나오기 전에 몸소 그 펀치에 부딪혀 봉쇄한 것으로 봐도 그것은 명백할 터.

더불어, 네네는 몸집이 작다.

좁은 공간에서도 충분한 회전을 취할 수 있고, 스텔라보다도 훨씬 더 가까운 지근거리에서 싸울 방법이 더 많다. 실제로, A급 리그에서도 네네의 지근 전투, 그 중에서도 서로 무호흡 상태에서 주먹을 내뻗는 난투전엔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네네는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 품에 파고들어 지근전투로 이끈다는, 그 선택을 취하지 않았다. 아무리 튕겨나간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중력검을 기다랗게 유지한다. 나짐이 안으로 파고들면 그만큼 백스텝하여 거리를 지키고, 사정권 밖에서 철저하게 공격을 계속해 나아갔다.

왜일까.

선택할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이렇게나 엄청난 맹공을 퍼부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 나짐의 '오른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데드 엔드 블로》

지반을 부수고, 대지를 파괴하고, 도로를 붕괴시키고, 대기권 바깥에서 중력의 힘으로 우주 쓰레기를 처박는 큰 기술 《패도천성》조차도 일격에 분쇄시켜버린, 견줄 데가 없는 파괴력을 자랑하는 필살의 라이트. 수많은 나라를 멸망시키고, 수많은 목숨을 앗은 탓에 사취(死臭)라는 형태로 남은, 저주라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 버린 《사막의 사신》의 오른주먹이, 언제나 공격이 가능한 위치에 들려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마치,발사대에 장전되어 있는 핵탄두 미사일과도 같았다. 가벼이 파고들었다간 곧바로 발사되어, 네네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나짐도 그걸 노리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장거리 마술전도 가능하지만, 그러지 않고 오른손을 온존시켜 두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

그렇다면, 네네가 파고드는 것을 꺼리는 것도 당연했다.

대책 없이 파고들었다간, 먹잇감이 될 뿐.

따라서, 그녀는 나짐의 오른주먹이 닿지 않는 위치에서 활로를 뚫기 위해 견제를 하고 있었고, 나짐은 그 공격들을 왼손으로 쳐내며 네네를 오른손이 닿는 사정거리까지 파고들기 위해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도망치는 네네.

쫓는 나짐.

양자의 싸움은 개막한 뒤로 쭉, 그 구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격하며 백스텝으로 도망치는 네네, 그 공격들을 영격하며 앞으로 파고드는 나짐.

속도의 차는 명백했고, 불가피하게 거리가 좁혀지는 때가 오게 된다.

지금도.

"후웃!"

"읏.."

나짐이 네네의 중력검을 튕겨내며 파고든다.

거리를 깊이 침식. 네네를 왼손의 사정거리 속에 두었다. 그 찰나, 공기를 가르며 뻗어 오는, 최속의 해의.

그 속도는 네네의 동체시력으로도 첫 동작을 사로잡는 것이 고작이었다. 거기다 나짐의 잽은 그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면서도,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홍련의 황녀》의 의식을 분쇄시켜 버릴 정도의 살상력을 보유하고 있다.

네네는 스텔라만큼 맷집이 좋지 않다. 한 방이라도 직격으로 맞으면, 의식은 커녕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이 간격은 네네에게 있어 위험한 간격. 어떻게 해서든 다시 한 번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초조에 빠져 도망쳤다간 좋은 표적이 될 뿐. 네네가 후퇴하는 것보다 나짐이 전진하는 것이 빠른 이상, 반드시 거리는 좁혀질 것이고, 거기에 당황해 아무렇게나 도망쳤다간, 불안정한 자세인 채로 오른손이라는 이름의 대포를 맞게 될 테니까.

그렇게 되면, 당연히 즉사.

도망치기 위해선, 일단 나짐이 오른손을 뻗게 만들고, 그 라이트가 허공을 가르게 만든 다음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다. 이 서순을 잘못 밟아선 안 된다.

따라서, 네네는 일격을 받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르는 위험한 간격 속에서, 극한의 집중을 강요당하게 된다.

하지만.

"────"

그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백전연마의 마도기사 《야차 공주》의 굉장한 방어가 펼쳐졌다. 나짐에게 간격이 좁혀지자, 네네는 곧바로 《홍색봉》을 펼쳐 중력검의 집속을 풀어 부채 형태로 돌려내어 리치를 조정. 지근거리에서 회전속도를 올려, 나짐의 연타를 춤추듯 몸놀림만으로 민첩하게 피해냈다.

피하고, 튕겨내고, 흘려낸다. 그 동작엔 전혀 위험함이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이 최속의 펀치를 받아낼 수 있는 것인가. 네네가 나짐의 잽보다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같은 게 아니다. 이 방어는 단순히 체술이 좋아 나오는 게 아닌, 네네가 이 싸움이 시작된 뒤로 쭉 철저하게 짜 온 전략의 결실이었다.

그녀는 자신과 나짐이 대치하는 것으로 인해 만들어진 상대적인 우위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체격차이다.

네네는 여성으로 치더라도 상당히 몸집이 작은 편. 한 편 나짐은 나름 큰 키를 갖고 있다. 그런 나짐이 같은 지평 위에 서 있고, 주먹을 무기로 삼아 싸우고 있다면, 공격할 수 있는 부위는 거의 머리 쪽으로 한정되게 된다.

그렇다. 《중력사》 네네가 부유술을 쓰지 않고, 일부러 지면에 선 채 싸우고 있던 건, 이 체격차를 살려 나짐의 펀치의 궤도를 좁히기 위해서이다.

어떠한 궤도를 타고 오더라도, 도착하는 곳은 같다. 도착할 곳을 알고 있다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야차 공주》급의 기사 정도의 수준으로 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거기다, 아무리 빠른 주먹이라 하더라도 계속해서 지근거리에서 보게 된다면, 눈이 익숙해지게 된다.

그 순간이야말로, ────반격의 호기!

"──큭!?"

직후, 나짐의 선글라스 너머에 있는 눈이 경악에 부릅뜨였다. 내뻗은 잽이, 네네의 코끝에 닿기 직전, 다른 방향으로 살짝 빗나갔기 때문이다.

펀치의 궤도가 바뀌었다?

아니다.

바뀐 것은, 나짐의 펀치의 궤도가 아니다.

펀치가 지나간──공간 그 자체가.

공간 만곡.

나짐의 잽에 눈이 익숙해진 네네는, 다음에 날아올 잽의 궤도를 읽어내고, 그 공간을 중력의 작용으로 만곡. 나짐의 잽의 궤도를 왜곡시켜, 허공을 가르게 만든 것이다.

서로의 크리티컬 존에 선 채 벌이는 난투전. 그런 도중에 나오게 된 헛공격은, 단 한 번이라도 치명적이게 된다. 나짐은 곧바로 허공을 내지른 왼손을 거둬들이고, 차탄을 발사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잽이 돌아감과 동시에, 네네는 그 자리에서 아래로 쓰러지듯 파고들었다.

지면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때까지. 그리고 그 낮은 자세에서 몸을 팽이처럼 돌려, 수평으로 부채 형태의 검을 휘둘렀다.

조준은, 나짐의 발목.

그의 왼주먹은 확실히 견고한 방어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것도 왼손의 사정거리에 한한 이야기. 복싱 스타일은 상반신 방어에 정평이 나 있지만, 그 반면 펀치가 닿지 않는 하반신은 무방비에 가깝다. 그것도 당연하다. 복싱은 애초에 룰 상, 하반신에 대한 공격을 애초에 상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약점을, 네네는 찌르고 있는 것이다.

펀치가 허공을 가르는, 결정적인 틈을 찔러서.

이보다 더할 나위 없는 공격.

하지만

"────큭!?"

지면을 스치듯 수평으로 휘둘러진 네네의 중력검.

그 움직임이, 멎었다.

중력검을 두른 《홍색봉》이, 위에서 짓밟혔기 때문이었다. 열심히 펀치를 유도하고, 허공을 공격할 때를 노린 네네의 카운터. 인간이라는 생물의 반사신경의 한계를 넘은 그 찰나를 찌른 공격.

하지만, 나짐은 아무 어려움 없이 이걸 대처해 냈다. 그건, 네네에게 있어 커다란 오산. 막힐 리 없는 일격이 막히고, 이번엔 네네가 치명적인 거리에서, 치명적인 틈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걸, 《사막의 사신》은 놓치지 않았다.

"카핫!"

《홍색봉》을 짓밟는 동작과 연동하여 나짐은 이미 자신의 필살기를 내지르고 있었다.

《데드 엔드 블로》.

칼디아의 도로를 땅속으로 묻어버리고, 네네의 《패도천성》을 분쇄시킨 라이트 펀치. 자신의 능력, 건조의 힘을 담은 필살의 주먹. 그걸 몸을 반 정도 눕는 자세로 구부러트린 채, 낮은 자세를 취하고있는 네네의 턱을 더욱 낮은 위치에서 올려치는 궤도로 주먹을 뻗고 있었다.

그야말로, 야구 투수의 언더 슬로와도 같은, 초저공에서 몸을 통째로 내뻗는 어퍼컷. 내뻗는 오른손에 담긴, 지반조차 파괴시키는 그 힘은, 네네의 능력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의 왜곡조차 찢어발기며 네네의 목숨을 앗으러 쇄도하고 있었고

──내뻗는다.

그 직후, 내뻗은 주먹의 기압은, 주변의 대기를 휘말아 하늘로 발사되었다. 쏘아진 대기는 마찰에 의해 하얗게 발화되었고, 하얀 번개가 되어 하늘로 솟아올랐다.

네네의 혼과 함께.

──그럴 터였는데.

"…………"

하지만 나짐의 오른손에는, 그녀의 목숨을 앗았다는 감촉 따윈 없었다.

그것도 당연할 터.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자신의 디바이스를 내버리고, 그의 필살기를 피해낸 것이다. 그야말로, 네네의 집중력이 종이 한 장 차이의 공방에서 우위를 둔 결과였다. 보통, 공세에 나서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방어에 대한 의식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승부를 결정짓는 데에 충분한 일격을 내뻗는 공격이라면 더욱 그럴 터.

하지만, 백전연마의 《야차 공주》는 달랐다.

그녀는 나짐의 발목을 향해 공격을 내뻗는 도중에도, 언제나 '오른손'에 대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을리하지 않고, 최후의 도주로를 남겨두고 있었다. 이 경계는 멋들어지게 결실을 맺었고, 네네는 다시금 나짐과의 거리를 벌리는 데에 성공하게 되었다.

"────"

"──…………"

위험한 지근전투를 벗어난 네네는, 인력을 이용해 자신이 내버린 디바이스를 다시금 손으로 가져왔다. 거기에 나짐도 비스듬한 전투태세를 갖추고, 왼손을 들었다. 치명적인 간격 속에서 숨막히는 공방을 벌인 뒤, 양자의 싸움은 다시금 원거리전으로 바뀌었다. 이런 호각의 공방이, 첫 충돌부터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양자, 걸출한 전투 센스와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블레이저였기에, 고차원적인 공방이 맞물려지며, 서로에게 결정적인 찬스는 오지 않은 채 전국이 고착되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고착 속에서 나짐이──사나운 미소를 살짝 띠었다.

여기까지 싸워본 뒤, 그는 확신하게 된 것이다.

이 싸움, 우세에 서 있는 건, ───자신이라고.

◆◇◆◇◆

"상당히 좋은 공격이었어."

왼주먹을 들어올린 채, 나짐은 아무 어려움 없이 자신의 사정권을 빠져나간 네네에게 칭찬을 보냈다.

"내 왼주먹을 헛나가게 한 다음, 어쩔 수 없이 비게 된 내 발 아래를 간발의 차이로 공격한다. 펀치가 끝까지 뻗어나간 절대적인 틈을 타서 들어오는, 물 흐르는 듯한 콤비네이션. 평범한 녀석이라면 막을 도리조차 없었겠지. 하지만... 신기하게도 말야. 난 살아 있어. 절대적인 틈을 찔러, 생각조차 하지 않고 최속으로 휘두른 그 참격을, 아주 손쉽게 막아냈지. 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

자신만만한 미소를 띠며, 나짐은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리듬을 안정시키고, 다시금 네네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여기에, 네네는 《홍색봉》에 검은 중력검을 씌우고, 부채를 접어 집속.

다시금, 3미터가 넘는 장도를 만들어냈다.

어디까지나 거리를 지키기 위한 응전의 자세.

그런 네네에게, 나짐은 한숨을 한 번 쉬었다.

"큭큭. 재미없는 년이라니까. 아무래도 내 '오른손'을 상당히 무서워하고 있는 모양인데그래. 뭐, 그 경계 덕분에 네 년은 아직 살아있는 거니까……그렇다고 해서 '도망치며' 휘둘러 대는 허술해 빠진 검 하나 가지고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날 죽이지는 못할 거라고……!"

그 순간, 나짐은 다시금 네네를 향해 파고들었다. 그녀를 다시금 자신의 사정거리 내에 두기 위해서. 네네는 당연히 이걸 두 자루의 중력검으로 영격하려 했다.

──하지만,

"소용없어!!"

네네의 재빠른 이도류 난격을, 나짐은 어렵지 않게 빠져나갔다.

수많은 검격을 왼손으로 쳐내며, 전진. 네네는 거리를 벌리기 위해 백스텝하려 했지만,

"놓칠까보냐!"

나짐은 네네가 뒤로 빠지려 하는 동작에 맞춰, 더욱 크게 빠르고 크고 깊게 발을 내딛었다.

놓치지 않는다.

양자의 거리는 더욱 좁혀졌고, 약 2미터.

앞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다면, 네네는 다시금 나짐의 사정권 내에 사로잡히게 된다. 하지만, 이건 이미 예측한 전개. 몇 번이고 반복해 온 전개. 그걸 무방비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는 어리석지 않았다.

"────오오?"

나짐의 왼손으 중력검을 쳐낸 찰나, 벌어지게 된 일. 쳐낸 중력검이 산산이 부서졌고, 그 부서진 파편들은 검은 나비가 되었다.

노블 아츠── 《흑사첩》

나비의 모양을 한 초중력 에너지 기뢰.

척 보기엔 하늘하늘하고 가련함조차 느끼게 하는 형태를 갖고 있지만, 그 나비의 정체는 최대 질량 10톤에 달하는 질량을 지니고 있는 폭탄.

그런 흉기가, 순식간에 나짐을 포위했다. 아무리 나짐의 왼손이 고성능이라 할지라도, 이 모든 것들을 쳐낼 수는 없을 터.

하지만

"360도 모든 방위에서의 포화 공격이라. 뭐, 발상은 나쁘지 않지만──의미는 없겠구만."

《사막의 사신》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련한 《흑사첩》에 담긴 살상력을 간파했으면서도, 어디까지나 자신만만한 미소를 무너뜨리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재밌는 걸 보여 주지."

놀랍게도, 《흑사첩》에 포위당한 채로, 눈을 감은 것이다.

무슨 생각일까.

네네는, 그걸 고려할 필요 따윈 없었다. 그녀는 나짐의 어리석은 행위가 낳은 천재일우의 틈을 수포로 돌리지 않았다. 나짐의 주변을 포위한 약 200마리의 《흑사첩》.

그걸 일제히 날려보냈다.

200마리의 《흑사첩》은 앞다투어 나짐을 향해 한꺼번에 날아들었다. 충격파가 되어 나짐을 사방팔방 포위해, 폭파.

왼손 하나론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포화 공격. 거기다 모래가 되어 대미지를 없애는 나짐의 방어가 통하지 않는 중력 공격. 나짐은 탈출하지도 못한 채로 연속으로 공격을 받으며, 《흑사첩》이 터질 때 내뿜는 검은 마력의 잔광에 집어삼켜져 갔다.

이윽고 모든 《흑사첩》이 폭파되었고

"큭………!"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의 눈이 경악에 부릅뜨였다.

《흑사첩》무리에 집어삼켜진 채, 초중략의 타격을 온몸으로 두들겨 맞은 나짐이──아무렇지도 않게 폭심지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이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물론,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네네는 그 이유를 알았기에, 경악하고 있는 것이다.

"눈을 감은 채 '진짜'를 간파해 내다니. 참 재밌는 재주를 보여 주시고 있네."

"큭큭큭……"

쓴웃음을 흘리는 네네에게, 나짐은 왼손을 뻗어 흑요의 건틀릿 《토슈카틀》에 둘러싸인 주먹을 펼쳤다. 그러자, 그의 손에 쥐여 으스러진 나비의 잔해 12마리 정도가 바닥에 떨어졌다.

네네의 《흑사첩》이었다.

그 잔해는 지면에 떨어지자 약한 빛이 되어 흩어졌다.

"그 나비 무리 속에서, 내 목숨을 앗을 정도의 공격력을 지닌 녀석은 이 12마리 뿐이야. 다른 녀석들은 이 녀석들의 공격을 내게 닿게 만들기 위한 미끼. 정통으로 맞아도 조금 따끔할 뿐이었다고. 내 목숨을 앗을 정도는 아니야. 그렇다면, 피할 필요도 없겠지."

"…………"

"큭큭. 어떻게 알아챘냐는 꼬라지를 하고 있군. 뭐, 방금 네 년의 기습을 막았을 때와 같은 방식이지. 나는……미래를 볼 수 있다고."

"미래라고……?"

의아해하는 네네에게, 나짐은 자랑스레 답했다.

"평화에 빠져 사는 일본 놈들에겐 먼 이야기겠지만, 내 고향은 독재자와 반란군이 반세기나 되는 세월동안 전쟁을 계속해오던 곳이었지. 폭탄에 의해 터진 여자의 배에서 태어난 뒤로, 죽음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어. 그런 태생 때문이었겠지. 난 언제나 일종의 냄새를 맡으며 살아 왔었어. 날 죽이려 하는 녀석이 뿜어 대는 담배 연기 냄새와도 같은, 코를 찌르는 자극을 지닌──'살기'라는 이름의 냄새를 말이지."

인간은 감정을 원동력으로 삼는 생물.

인간이 행동을 벌일 때, 반드시 그 '기점'으로서 감정이 존재한다. 의식적인 사고는 물론, 무의식적인 본능조차도 이 감정을 원천으로 삼는다. 위험한 상황에 놓인 제삼자를,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도와준 정의로운 사람이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라고 답할 때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이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 싸움 속에서 행동을 이끌어내는 감정은 바로 적의, 살의. 즉, 살기이다.

"이 살기를 느끼는 감각은 훈련으로 손에 넣을 수 있지. 《야차 공주》, 네 년이라면 당연히 손에 넣은 상태이겠지? 너희 마도기사 녀석들은 이 살기의 타이밍이나 짙어지고 옅어지는 차이에 따라 상대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추측하여, 공방을 벌이고 있어. 하지만……난 틀려. 내 살기에 대한 감도는 네 녀석들처럼 어렴풋이 느끼는 감각 따위가 아니야. 내게는 말이다. 적의 머릿속에서 '기점'으로 삼는 살기가 그 녀석의 몸에 무슨 명령을 내리는지, 그 자세한 모든 것들을 본인보다 더 빠르게 알 수 있다고."

뇌의 중추에서 오는 명령을, 본인의 수용체보다 빠르게, 나짐의 수용체가 인식한다. 본인의 수용체가 명령을 받아들여, 몸으로 전달할 때쯤이면, 이미 나짐의 몸은 적의 다음 행동에 대처할 준비를 끝내 놓는 것이다.

"큭큭큭. 그렇다면 당연히 기습 따위는 통하지 않지. 무슨 짓을 할지 이미 알고 있으니 막는 것도 피하는 것도 손쉽다고. 목숨을 노리는 공격을 따로 두고 있다면 모든 공격을 일일이 피할 필요도 없어. ……이 정도 단계라면, 이미 미래를 보고 있다고 봐도 좋지 않겠어?"

그건, 길가던 사람의 헛소리나 마찬가지인 이야기이다. 타인의 뇌내신호를 타인보다 더 빠르게 수신한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인체의 구조 상, 불가능한 이야기.

불가능한, 어이없는 이야기.

하지만

"……지금의 움직임을 보면, 그냥 헛소리를 지껄이는 건 아닌 것 같네."

네네는 그 헛소리를 헛소리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헛소리로 치부할 수 없는 장면들을 봐 왔으니까. 이 현명함에 나짐은 기쁜 듯 입가를 말아올렸다.

"딱히 미스테리한 이야기도 아니라고. 1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저격수가 방아쇠를 당길 결단을 느낀다. 그 정도도 못해서야, 어떻게 오늘까지 버텨올 수 있었겠어. 그러니, 가능해. 그건 아주 당연한 도리라고. 난 능력도 없던 때부터 쭉, 이 제 6감에 몸을 맡긴 채 생존해 왔단 말이다. 지금은 미래 예지의 영역까지 진화해 있는 이 《초전쟁감도》는, 섬광탄 하나에 쓸모없게 되어버리는 시각이나 청각 따위 보다 더욱 깊이, 내 본능에 직결되어 있지. 이미 내 몸은 내 목숨을 노리는 수많은 살기에, 내 의식의 개입조차 필요없이, 적절한 방어 행동을 일으키지. 네 년의 검술이 얼마나 빠르고 예리하건, '기점'을 두고 있는 한 네 년은 날 이길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내 명줄을 끊고 싶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그건 네 년의 모든 살기를 담은 일격. 나중을 위한 후퇴 따위는 남겨두지 않은, 내 방어를 화력으로 뚫어버릴 네 년의 모든 것을 건 일격 뿐이야! 그러니, 한 번 덤벼 봐! 나를 향해 네 년의 모든 살의를 던져 봐. 혹시──"

혹시 자신의 오른손에 위축되어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아무것도 못한 채 그냥 뒈져 버려어어어어────!!!!!!!!!"

그 순간, 나짐은 강인한 각력으로 땅을 박찼다. 화살과도 같이 네네와의 거리를 좁히는 전진.

아니, 돌진.

여기에, 네네는 물론 대응했다. 원거리에서 긴 중력검을 휘둘러 응전.

하지만

"귀찮다고!!"

"……!"

이도류 중력검이 손쉽게 튕겨나갔고, 네네의 몸이 크게 뒤로 젖혀졌다.

펀치의 질이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속도 중시의 잽이었지만, 지금은 몸과 함께 내뻗는 레프트 스트레이트.

충격으로 인해 밸런스가 무너진 네네는,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이러고 있는 지금도, 나짐은 순식간에 거리를 침식. 다시금 네네를 왼손이 닿는 사정거리에 두고──주먹을 내뻗었다.

속사포의 레프트를,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네네의 머리를 향해 쏟아붓는다. 필살의 라이트를 꽂아 넣을 결정적인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물론 이 맹공에 네네는 아까 했던 것과 같이, 공간 만곡에 의한 헛공격을 유도해내려 했다.

──하지만

"하아아아아앗!!!!!"

"……!"

이 정도의 수준의 싸움 속에선, 한 번 보여 준 카드는 다시 통하지 않기 마련. 공간 만곡으로 인해 왜곡된 펀치의 궤도를, 나짐은 곧바로 다시금 수정. 주먹을 내뻗으며 궤도를 구부려, 네네를 놓치지 않았다.

추격해 오는 레프트. 네네는 어쩔 수 없이 위험한 대응을 낼 수밖에 없었다. 춤추듯 몸을 회전시켜, 《홍색봉》으로 종이 한 장 차이로 나짐의 왼손을 흘려보냈다.

작은 몸집을 살린, 멋진 방어.

하지만, 이건 네네에게 있어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짐의 왼손은 상식을 뛰어넘은 속도와 파괴력을 둘 다 지니고 있는 고성능의 펀치. 그것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중거리에서 받아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 그녀는 희소한 전투 센스로 어떻게든 받아넘기고 있지만, 그것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섣불리 앞으로 나아갔다간 아까와 같은 라이트 카운터를 맞게 될 것이다.

그 때엔, 나짐의 공격은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뒤로 물러나게 되면, 도망친 순간 가장 무방비해진 틈에 날아온 오른주먹을 받게 될 것이다. 진퇴양난의 사태. 방어할 수밖에 없다. 아까와 완전히 같은 상황──아니, 공간 만곡으로 헛공격을 유도해낼 수 없게 된 이상, 네네는 아까보다도 더욱 위험한 상황에 몰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호오. 이거 재밌는데."

그런 위기 상황에서도, 네네의 수는 아직 남아 있었다.

공방 속에서, 나짐도 그걸 알아챘다.

주먹을 통해 돌아오는 감촉이 이상해지고 있었다.

숨도 못 쉴 정도의 고속 레프트 연타를 날리는 나짐.

여기에, 한 쌍의 부채로 춤을 추며 흘려 내는 네네.

격하게 마력광을 내뿜으며 충돌하는 두 디바이스.

척 보기엔 지근거리에서 벌어지는 격한 공방이었지만, 주먹을 통해 돌아오는 느낌은 마치 비단을 때리는 느낌이었다.

힘이 작용하지 않고 있었다. 모든 힘이 빠져나가고 있다. 이 기술, 나짐은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야차 공주》. 네 년은 그 《투신》의 제자라고 했었나. 한없이 부드러운 방어로 상대의 검격을 받아내고, 춤추듯 몸을 회전시켜 여러 충격을 흘려보낸다고 했었지. 제 2차 세계대전, 격전 속에서 쌍방의 전선을 단신으로 아무 부상 없이 싸워 나아간 《투신》……아니, 《무결》 난고가 자랑하는 《검곡·검의 춤》. 소문으로만 들어 알고 있던 정도였지만, 잔챙이 상대라면 몰라도 이 나의 레프트를 이렇게까지 받아낼 줄이야, 상당히 좋은 기술인데그래……!"

나짐 치고는 솔직하게 입을 통해 나온 칭찬. 하지만, 네네는 여기에 비웃음으로 답했다.

"후후. 뭔 헛소리야. 멍청아."

"뭐?"

"정말 미적 센스라곤 쥐뿔도 없는 아재구만. 이런 미소녀의 가련한 춤과, 그런 할아방탱이의 꼴사나운 춤을 같은 취급하다니. 이건 한 수준 더 뛰어난 거라고."

"호오..."

우아함조차 느껴지는 동작으로 빙빙 도는 방어를 하며, 나짐의 왼손을 봉쇄하며 나온 말. 강하게 빛나는 눈빛과 입가에 띤 미소. 거기에 드러난 건, 확실한 자신이었다.

그도 납득이 가는 것이, 자신의 레프트를 이렇게까지 막아낸 사람은 지금껏 없었다. 그 자신감도 당연하다고, 나짐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아무리 뛰어난 방어라 하더라도, 고작 방어일 뿐.

'지금의 이 녀석에겐 『살기』가 느껴지지 않아……!'

그건 말하자면 아무런 공격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방어에 전념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실제로, 난고의 《검곡·검의 춤》은 무엇도 견줄 수 없는 방어형 검술이지만, 같은 계통의 방어기인 《천의무봉》과는 달리, 반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검술이다. 전력을 다해 수세에 들어가, 위협이 지나갈 때까지 한결같이 버틸 뿐인 기술.

그런 걸 구사해야 할 정도로, 지금의 네네는 위기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빼어난 기술로 위기 상황을 넘기고는 있지만, 얼굴엔 그리 여유가 드러나 있지 않았다. 대치하는 적의 '살기'를 본인보다 더욱 예민하게 느낄 수 있는 나짐은, 그걸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일부러 여유를 보이고 있는 건──끌어들이기 위해서.

참다못해 자신이 섣불리 오른주먹을 내뻗는 것을.

그 뻗은 오른주먹에 맞춰 다시금 도주를 하려는 속셈.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게 어느 정도인지, 한 번 감상해 주마!!!"

"큭!"

네네의 노림을 간파하고 있었지만, 나짐은 일부러 계속해서 모아 온 오른주먹을 내뻗었다.

일직선으로, 네네의 안면을 분쇄해 버리기 위해서.

하지만, 이건 나쁜 판단이었다.

《데드 엔드 블로》는 그 어느것과도 견줄 수 없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지만, 크게 휘두르는 펀치이다. 미리 그걸 경계하고 있는 상대에게 섣불리 휘두른다 해도, 명중할 리가 없다.

당연히 네네는 오른주먹의 첫 동작에 맞춰 백스텝.

《데드 엔드 블로》의 사정거리 밖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

그건, 이루어지지 않았다.

뒤로 도약한 네네의 몸이, 무언가에 부딪혔다.

아무것도 없었을 터인 등 뒤. 갑자기 나타난 그 장해물은,

"《사진야금》"

우뚝 솟아 있는 두꺼운 철벽. 《사막의 사신》 나짐이 발치로 마술을 구사하여 암반이 분해시켜, 철분만을 모아 굳혀 봉기시키는 것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것에 의해 네네의 퇴로는 막혔고, 도망은 미수로 끝나버렸다.

반대로 치명적인 틈을 드러내게 되었고──

"《데드 엔드 블로》───!!!"

네네의 머리에 혼신의 라이트 펀치가 발사되었다. 검은 모래먼지의 선풍을 두른 주먹. 단 한 번 적에게 닿기만 하더라도, 몸에 있는 모든 수분을 빼앗아 모래먼지로 만들어버리는 필살의 일격. 피할 수 없었던 네네는 재빨리 왼손에 쥐고 있던 《홍색봉》을 휘둘렀다. 똑바로 쇄도해 오는 주먹을 아래에서 쳐올리는 궤도로. 힘을 정면으로 받아내는 게 아닌, 옆에서 흘려버리듯 비켜내는, 합기도에서 쓰는 '방어'이다.

하지만

'쓸데없는 짓을──!!'

이 행동을, 나짐은 그저 무시했다. 합기도는 우수한 기술이지만, 무술에는 한계가 있는 법. 역 정거장에 서 있는 전철을 옆부분을 힘껏 민다 하더라도, 전철이 넘어질 리는 없다. 그저 민 사람이 튕겨나갈 뿐.

그것이 자명.

절대적인 힘의 범류 앞에선 저항할 수 없다.

나짐의 오른주먹은, 그야말로 그것이다. 애초에 능력으로 받아내려 했다면, 어쩌면 네네는 가능했을지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졸지에 고육지책으로 내민 방어로는 도저히 대처해낼 수 없는 공격.

그렇기에

"…………아?"

혼신의 《데드 엔드 블로》가 너무나도 손쉽게 《홍색봉》에 의해 들추어졌고, 네네의 머리 위를 스쳐 뒤에 있는 철벽을 분쇄한 현실에, 나짐의 이해가 따라가질 못했다.

대체 어째서.

내지른 주먹을 통해 전해 오는 뼈의 저릿함. 엄청난 힘으로 펀치를 명중시켰다는 증거.

네네는 숨기고 있었다. 어디에 숨겨놓았는지는 모르지만, 상쇄시킬 수는 없어도 《데드 엔드 블로》를 흘려낼 만한 어떠한 힘을.

그리고 지금, 상정하지 못한 사태에 시간조차 얼어붙어 있던 나짐의 눈앞에, 네네가 두 손에 들고 있던 《홍색봉》이, 그를 베어내려 쇄도하고 있었다.

그 첫 동작은 이미 끝나 있었다.

막힘 없는 반격의 움직임.

틀림없이,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그 살의를, 살기를, 자신은 느끼지 못한 것인가. 얼어붙은 찰나의 시간 속에서, 나짐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 불가사의함, 이해 불가능한 사태.

그건

"크,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시간이 다시 녹은 순간,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키며 내뻗은 네네의 10연속 참격이 온몸을 유린했다.

모래가 되어 도망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중력의 칼날이 오른팔과 왼다리를 잘라냈고, 몸에 담겨 있던 내장을 뼈채로 잘라내고, 머리를 사선으로 그어버렸다.

그 모든 검격이 사람을 살해하기에 충분한, 조금의 주저도 용서도 없는 살해의 참격.

그걸 지근거리에서 정통으로 맞은 나짐의 몸은, 피와 내장을 흩뿌리며 허공을 나부꼈고, 축축한 소리와 함께 자신의 능력에 의해 사막화된 대지에 스며들었다.

"타인의 살기를 가장 먼저 눈치채 움직임을 일근다. 그래, 거 참 대단하네. 하지만 말야. 감정이란 건 말하자면 마음의 움직임인 거잖아? 그렇다면 애초에 마음을 움직이게 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라고. ……그리고 말이지."

나짐을 대지에 흩뿌린 네네는, 《홍색봉》으로 입가를 가리며 말했다.

얼어붙을 듯한 차가운 눈으로 나짐을 내려다보며──

"네 놈 같은 살아있을 가치도 없는 벌레 자식 한 마리를 짓밟는 데에 일일이 마음이 동할 리가 없잖아."

◆◇◆◇◆

전역은 상공.

뤼셸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 기의 헬리콥터가 비행하고 있었다.

연맹의 룰에 기반하여 전쟁이라는 '명분'을 위해 출동한 헬리콥터였다. 그 헬리콥터 안에서, 불행하게도 이 전쟁의 실황자로 선택받은 부머는, 뤼셸에 뿌려 놓은 드론을 통한 영상을 모니터링하며, 모든 전국을 버밀리온에서 결투를 지켜보고 있는 자들에게 중계하고 있었다.

『《낙제기사》』이 《B.B》를 순식간에 격파! 《홍련의 황녀》가 엄청난 따귀로 《황금의 바람》을 일축! 그리고 수도 중앙의 왕성에서의 싸움은 《부전흉수》와 《더러운 꽃》가 서로 필살기를 얻어맞고 끝난 가운데, 현재 남은 건 버밀리온 팀 4명, 클레이델란트 팀 둘! 자, 드디어 전쟁도 막바지에 이르렀어! 이대로 버밀리온이 기세를 밀어 승리할 것인가! 클레이델란트가 버텨내 역전할 것인가! 내 입장은 이대로 버밀리온이 그냥 끝내 버렸으면 하는데 말야! 테러리스트까지 편성해서 침략해 오다니, 클레이델란트 녀석들이 하는 짓거리는 머리가 어떻게 된 짓거리니까 말야! 실황 중립 따위 엿이나 처먹으라지! 자, 그러니 《괴뢰왕》

과 《흑기사》의 싸움도 한쪽 편만 팍팍──어엇! 잠깐 기다려 봐!』

갑자기 실황이 드론이 보내 주는 영상 중 하나를 응시했다. 그건 이전에 성벽으로 둘러싸인 요새형 도시였던 뤼셸 정문을 비추던 영상이었다. 전쟁 개시 직후, 나짐의 기습으로부터 시작된 네네와의 결투. 둘이 내뿜는 마력광이 너무나도 짙은 탓에 외부로부터 관측조차 불가능했던 그 곳.

그곳의 마력광이 서서히 옅어져가기 시작한 것을 그는 알아챘다.

『드디어 정문 주변의 영상이 비춰지기 시작한 것 같은데! 정말, 중계에 시청자까지 눈에 습기가 차게 하는 녀석들이라니까! 대체 그 뒤에 어떻게 된 건지, 잠깐... 이건…… shit!!!』

마력의 잔광이 사라지고, 눈에 비춰진 참상에 실황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이거 꼬라지 한 번 보소!! 폐허란 단어로 끝날 게 아니야! 검은 빛에 뒤덮였던 곳 일대가, 직경 3킬로미터에 가까운 면적이 통째로 사막화되어 버렸다고!! 아무것도 안 남았어!』

풀 한 포기를 넘어서, 바위나 콘크리트조차 먼지가 되어, 앙상히 풍화된 철골만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모습.

'망해'였다.

그야말로 뤼셸 전체의 7분의 1이, 망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게 가능한 블레이저는 단 한 명 뿐.

『이건 그 괴물 놈 《사막의 사신》이 한 짓거리가 틀림 없어! 《야차 공주》가 당한 건가!?』

싸움의 결과를 알아보기 위해 실황은 드론을 몇 기 정도 현장으로 더 가까이 날려보냈다. 그리고 곧바로 드론 중 하나가 사막의 중심에 서 있는 한 사람을 사로잡았다.

나짐인가?

아니다.

『아, 아냐! 아니었어! 《야차 공주》야! 전장에 홀로 서 있는 건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 《사막의 사신》은 갈기갈기 찢어진 고깃조각이 돼서 사막에 흩뿌려져있어! 정문의 싸움의 승자는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다아아아앗!!!!!』

죽어 버린 대지 위에 홀로 서 있는 요염한 홍색.

네네의 모습을 본 실황은 환희의 함성을 질렀다. 그건 실황 중계를 통해 전쟁을 지켜보고 있던 버밀리온의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좋았어어어어!! 역시 세계 3위야!"

"어이쿠야, 완전 스플래터 영화네. 피는 고사하고 내장까지 흩뿌려져 있잖아."

"이건 어떻게 봐도 죽은 거지."

"끄, 끝내준다! 그 괴물한테 이긴 거야!?"

"죽여주는데, 누님……!"

불 보듯 뻔한 승패에 국민도 군인도 모두 갈채를 보냈다. 그들과 함께 전쟁을 지켜보고 있던 버밀리온 국왕 시리우스도 이 결과에 주먹을 힘껏 쥐며 환희에 몸을 떨었다.

언제쯤인가, 공항에서 스텔라 일행을 배웅한 뒤의 네네에게는 공포심조차 느꼈지만, 아군이 된다면 이보다 더 믿음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 일시적으로 피난해 있는 심판이 《사막의 사신》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으로 출발했어. 하지만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냥 저건 오버킬이야! 뒈진 거라고! 이래서야 재생조 안에 처박는다고 해도 일단 못 살아날 거라고! 이렇게 당해 놓고 살아 있을 인간이 세상에 어딨──』

인간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 남은 적은 한 명 뿐.

이번 소동의 주범, 《괴뢰왕》 오르=골 뿐.

누구나 그리 생각했다.

그렇다, 단 한명

"이거, 아직 안 끝났다고."

대치하고 있는 《야차 공주》 한 명을 제외하고.

"이제 꼬리 내빼고 숨는 짓좀 그만 하고 얼른 튀어 나오는 게 어때? 내가 그런 싱거운 수작에 걸릴 정도로 멍청하진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잖아?"

"………크큭, 하하하핫……"

네네의 목소리에 무참한 몰골로 죽어 있었을 터인 나짐의 입에서, 피와 함께 웃음소리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거 유감인데. 멍청하게 다가왔으면, 그 때야말로 네 년을 짓이겨 줬을 텐데 말야."

천천히, 피의 웅덩이가 되어 버린 나짐이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뼈가 보일 정도로 크게 베인 안면에, 웃음을 띠면서.

『J... Jejus!? 이게 뭐야! 《사막의 사신》이! 몸 속 피랑 내장이 전부 흩뿌려져서 뒈졌을 나짐이, 모, 몸을 일으키고 있어! 부, 불사신이냐. 이 녀석은!?』

믿을 수 없다는 비명을 내지르는 실황.

무리도 아니다.

목은 경추가 드러날 정도로 잘려나가 있었고, 복부엔 무수한 열상이 난 채 복압에 의해 터져 있었다.

쇼크사를 해도 당연할 부상. 설령 생존해 있다 하더라도 빈사의 상태. 그럴 터인데, 나짐은 살아 있다. 그런 부상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체 어째서인가.

그 이유를, 네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얕았어.'

제 6감을 과신한 나짐의 틈을 찌른,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알맞은 타이밍의 반격이었다. 네네 자신도 승부가 결정났을 거라 확신할 정도로.

하지만

'설마, 그런 순간에서 '왼주먹'이 나올 줄이야.'

쓴웃음을 짓고, 네네는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홍색봉》을 쥔 작은 손가락이,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제외한 손가락들이 이런저런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다.

숨겨둔 비장의 수로 《데드 엔드 블로》를 피해 내고, 품에 깊게 파고든 뒤, 네네가 검무로 동작을 잇는 사이, 나짐이 레프트를 내뻗은 것이다.

허리도 어깨도 쓰지 않은, 팔만을 이용한 레프트 잽. 하지만 네네의 가냘픈 손가락을 부러뜨려 버리는 데엔 충분한 위력을 갖고 있었다. 이 레프트 한 방이 네네의 디딘 발과 충격을 살짝 흐트러뜨려, 나짐은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적의 살기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공격명령을, 적 본인보다 빨리 감지해낼 수 있는 《초전쟁감도》. 그건 그것 나름대로 성가시지만, 신호 수신에서 생겨나는 시간차따위 0.1초보다도 더 짧은, 찰나의 차이야. 상대의 기습을 알아채 기선을 제압할 수 있는 결정적인 차이라고 하기는 어려워. 그걸 결정적인 차이로 바꿔낸 건, 수신한 신호에 대한 반응속도. 이 아재의 인간같지도 않은 운동능력이야. 정말 성가신 건 이 쪽이라니까.'

성대하게 내장을 흩뿌려놓고 있긴 했지만, 인간이란 설령 심장이 뽑혀 버린다 할지라도 수십 초 정도는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즉사하진 않는다는 말.

확실히 즉사시키기 위해선 머리를 완전히 부숴 뇌를 손상시키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머리에 가한 충격은 뼈엔 전달됐지만, 뇌까지는 전달되지 못했다. 그리고 즉사만 면할 수 있다면, 나짐은 설령 산산조각이 났다 할지라도 자신의 몸을 재생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이미 나짐의 외상은 거의 다 나아 있었다.

대미지 따윈 입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 곧바로 다시금 공격해 올 것이다. 거기에 대비하기 위해, 네네도 부러진 손가락을 꾹 쥐어, 중력의 마술로 압축성형을 가했다. 무식한 임시방편일 뿐이지만, 부러진 상태보다는 훨씬 움직이기 좋을 터. 네네는 억지로 봉합한 오른손을 쥐락펴락하여, 상태를 확인했다.

고통은 남아있지만, 문제없이 쓸 수 있다.

싸울 수 있다.

그 확신과, 나짐의 회복은 동시였다. 나짐은 검은 옷에 묻은 모래먼지를 털어내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얼굴에 난 열상은 재구성하지 않은 채, 얼굴을 피로 물들인 채 아주 즐겁다는 듯 입을 열었다.

"……깜짝 놀랐다고. 정말 놀랐어. 내 《데드 엔드 블로》를 피하다니 말야. 너무 깜짝 놀라서 한 순간 무슨 짓을 한 건지 이해가 안 갔지만, 이제는 다 알 수 있다고. 그거, 내 힘이지?"

"잘 아시네."

네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 같은 기습이 통할 수준의 상대가 아니다. 이미 트릭은 드러났다. 그렇다면, 딱히 숨길 필요 따위도 없다. 상대의 공격의 충격을 흘리는 게 아닌, 춤 속에서 순환시켜, 상대에게 돌려준다. 기술의 원리로 치자면, 쿠로가네 잇키가 칠성검무제 결승전에서 사용하여 스텔라를 고전케 했던 제 3비검 《원》과 똑같다.

하지만, 네네가 지금 쓴 테크닉은 《원》에는 없는 커다란 강점이 있다. 흡수한 충격을 곧바로 상대에게 돌려주는 것이 한계인 《원》과는 달리, 네네는 탁월한 운동능력과, 힘에 대해 극히 순수한 간섭이 가능한 《중력》의 능력을 병용하여, 흡수한 충격을 춤의 움직임 속에 담아두어, 더욱 크게 축적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 네네는 나짐의 살인적인 파괴력을 지닌 잽의 파괴력을, 통째로 훔친 것이다. 그 힘으로 원래라면 흘려낼 수조차 없는 강권을 위로 쳐낸 것이다.

"그게 그 할아범의 허접한 춤을 더울 발전시킨 노블 아츠──《야차제악(祭樂)》이지."

"굉장했다고."

공방일체의 《야차제악》.

그에 대한 것을 듣고 나짐은 위축되기는 커녕, 열상이 가 있는 얼굴에 더욱 짙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 공방의 '핵심'은 그게 아냐. 가장 깜짝 놀랄 부분은, 내 《초전쟁감도》에 아무런 살기가 감지되지 않았다는 점이지."

"딱히 대단한 것도 아니야. 단순해 빠진 바보 녀석이 순진하게 살기에 이끌려 움직인다고 자기 입으로 나불나불 불어 댔으니까. 그럼, 살기를 내지 않으면 그만인 거잖아?"

"아아, 그래. 바로 그거지. 살기 때문에 행동이 들킨다면 살기를 안 내면 그만이야. 그냥 말장난처럼 보이는 단순한 거지. 하지만, ……실제로 그걸 해내는 건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라고. 네 년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

"인간은 군체를 형성하는 사회적 동물이야. 동종을 살해하는 행동에 원시적 기피감을 느끼지. 그런 식으로 만들어져 있어. 그렇기에 그런 행동을 취할 필요가 발생했을 경우, 인간은 그 이유를 찾고 싶어하지. 인종. 국가. 종교. 긍지. 생명──그렇게 자신이 상대를 죽여도 좋은 이유를 말야. 그러한 이유를 원동력 삼아 살의를 내고, 그 감정으로 원시적 기피감을 극복해 내지."

이 녀석은 죽어도 싼 녀석이라고.

이 녀석은 쓰러뜨려야만 하는 적이라고.

그것이, 인간의 정신을 이루는 메커니즘.

따라서, 훈련에 의해 살기를 감추는 기술을 익힐 수는 있겠지만, 없어지게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없어지지 않는 이상, 나짐의 《초전쟁감도》는 결코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놓친 적 따위는 한 번도 없다. 정부군의 용병으로서, 중동에서 《비익》과 싸웠을 때조차.

그런 나짐이었기에,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치의 살기도 내지 않고 인간을 살상하는 행동을 행한다. 그렇게 자유롭게 살기를 조절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은, 원시적 기피감 따위를 애초에 느끼지 않는 사람 뿐.

정신에 대한 압박감 따위 필요로 하지 않는 인간.

"하품을 하는 정도의 기분으로 사람을 죽여버리는, 우리 같은 쓰레기 녀석들 뿐이라고!"

"……"

"《야차 공주》, 네 년은 우리와 같은 족속이야. 『생명은 존엄한 것』. 그런,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가질 윤리감조차 갖지 못한 결함품.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 쓴 괴물 년이라고……! 그리고 그런 괴물이기에, 내 목숨을 위험하게 할 수 있었겠지……!"

그 사실에, 나짐은 환희했다.

"기쁘다. 정말로 기뻐. 언제쯤 이후일까. 내 목숨에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녀석이 나타난 적이 말야!"

한 소설가가 말했다.

생명이란, 덧없는 것이기에, 존엄성이 있고, 엄히 아름답다고.

나짐도 그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마치 비눗방울과도 같은 덧없는 생명을 죽음이라는 상실로부터 지켜낸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바친다.

모든 것을 바쳐, 온 힘을 다해 살아간다.

그 죽음이 엇갈리는 장면이야말로, 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어렸을 적.

아직 능력조차 꽃피지 못했을 무렵의 매일매일은, 이 환희에 가득차 있었다.

오늘도 아직 살아 있다.

그저 그것 하나만으로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다.

충실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 강해졌다.

어떠한 요새, 전선도 일격에 붕괴시켜버리는 주먹.

어떠한 기슴에도 무의식적으로 대응해버리는, 상식을 초월하는 제 6감. 언제나 곁에 있었던 죽음은 머나먼 일이 되어버렸고, 그렇게나 눈부신 시간이었던 전쟁은, 그저 정크 푸드를 입에 던져 넣는 것이나 다름없는 소비 따위가 되어버렸다.

그는, 갈망하고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에 굶주려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오르=골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세상의 반절을 적에게 넘기게 된다면, 어쩌면 언젠가 그의 인생에서 빠져나간 죽음이라는 요소를 채워 줄 존재가 나타날 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를 가슴에 품고.

여행이란 건 해 봐야 하는 건가 보다.

이 여자라면, 자신을 데려가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하여 생과 사를 구가했던, 그 그리운 전쟁 속으로……

그러니

"지금부터가, 진짜 전쟁이다!!"

그 직후, 나짐은 믿을 수 없는 행동을 취했다. 깊게 열상이 난 자신의 안면.

그 열상에, 자신의 손을 꽂아넣고

"뭣……!?"

자신의 얼굴가죽을, 힘껏 뜯어내었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그 직후, 나짐의 입에서 대기를 진동시킬 정도의 포효가 터져나왔고, 칠흑의 마력광이 그의 온몸에서 돌풍이 되어 사방팔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어, 엄청나 마력이야! 이게 방금까지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던 녀석의 힘이라고!? 대체 이런 엄청난 마력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 생각이야! 《사막의 사신》!!』

하늘까지 뿜어져 나아간 마력에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한 실황은 드론을 몇 기 정도 전장으로 날려보냈다. 그리고 최대로 줌을 하여 마력의 범류의 중심 속으로 포커스를 맞춘, 그 때였다.

눈을 의심할 일이 벌어졌다.

태풍과도 같이 불고 있는 마력의 중심.

어렴풋이, 나짐처럼 보이는 인물의 실루엣이...

『에.. 자, 잠깐만. 이게 뭐야!? 변형했어!?』

"이거..."

지근거리에서 실황과 같은 광경을 보고 있던 네네도 숨을 삼켰다. 그리고, 변화는 육체에서 그치지 않았다. 드리워진 밤의 어둠을 농축한 듯한 칠흑의 마력.

그것이,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황금의 빛을.

그건, 끝도 없이 더욱 깊은 채도를 발하며 어둠을 불식시켜 나아갔고

"오오오오오오오오아아아아아아아악─────!!!!!!!!!!!!!"

나짐이 한 층 더 크게 포효를 내지른 직후, 불어닥치던 폭풍이 멎었다. 분진이 피어올랐고, 빛으로 가득했던 주변의 색이 돌아와, 시야가 밝아졌다.

그리고, 드러났다.

사막화한 뤼셸에 서 있는, 이형의 모습이.

『U, Unbelievable!! 대체 뭐야! 《사막의 사신》의 저 모습은!!』

그렇다. 나짐의 모습은 그야말로 이형 그 자체였다. 몸은 두 배는 더 커졌고, 전신의 근육이 흑요석과도 같은 광택을 지닌 검은빛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의상은커녕 피부조차 갈라져, 마치 암석과도 같이 팽창해 있었다. 안면은 살도 피부도 다 찢어졌고, 눈은 녹아흘러 마치 불탄 해골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런 해골과도 같은 머리에는 물소와도 같은 뿔이 돋아 있었다.

그 모습은, 이미 인간이라 할 수 없었고

『와, 완전히──악마잖아!!』

대체 이게 어떠한 《노블 아츠》인지 혼란에 빠진 실황.

하지만 네네는

'아니야……'

이 나짐의 변신이, 《노블 아츠》 같은 게 아니라는 걸 곧바로 간파해내었다.

그녀가 보고 있는 건, 이형으로 변해버린 육체, 따위가 아니었다.

안면.

안구가 사라진 눈구멍.

뻥 뚫린 두 심연.

그 너머에 빛나는 금색을.

마치 불타는 지옥의 업화를 악마의 모습을 한 초롱에 담아둔 듯한 모습. 그건 방금까지의 나짐과는 격이 다른 마력의 빛이었다. 변화한 건 모습뿐만이 아니었다. 마력의 양, 질, 그 모든 것이 대폭으로 변화해 있었다.

그런 것을 가능케 해 주는 현상은 단 하나 뿐.

《각성》──그것도, 단순한 《각성》이 아닌,

"《각성초과》……!"

눈썹을 찡그리며, 네네는 중얼거렸다.

《각성》이란, 블레이저가 자신의 운명을 답파하여, 운명이라는 이름의 속박을 뛰어 넘은 존재로 혼이 변질되는 것을 말한다.

'짐승의 혼'이라 불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영혼만이 사람을 초월한 것으로 바뀌어 버리고, 그 혼을 담는 그릇인 육체가 인간인 채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까?

……《각성초과》란 그런 《마인》들의 질문에 대한 한 가지 설이다. 《각성》을 겪고, 그 힘을 너무 많이 써 버리면, 인간이 아닌 혼의 영향이 육체를 침범하기 시작하고, 이윽고 육체가 혼의 형태에 맞춰지게 변질되어, 방대한 힘을 얻는 대신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세계 각지에 존재하는 아인이나 악마, 귀신 같은, 인간의 형태를 한 괴물의 전승은 모두 마(魔)로 변해 버린 블레이저의 정체가 아닐까.

──무엇 하나, 확인된 바는 없다.

애초에 《마인》 자체가 너무 희소하고 가치 있는 존재이다. 검증 같은 건 불가능하다.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문.

하지만

"이걸 보니, 그냥 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네. 엄청난 괴물 녀석이잖아. 모처럼 잘 생긴 얼굴이 다 망가졌다고?"

"그건, 아니지……"

이 말에, 괴물로 변해버린 나짐은 눈구멍만이 아닌 인후에서까지 황금색 불꽃을 흘리며 부정했다.

마치, 풀무가 끓는 듯한 낮고, 으르렁대는 목소리로.

"괴물이 된 게 아니야. 이것이야말로, 내 진정한 모습. 《마인》에도 '격'이란 것이 존재해. 난 인간이길 포기한 '떨거지' 놈들과는 달라……! 그리고──"

그렇게, 나짐은 네네를, 없을 터인 안구로 바라본 채, 입이 갈라져 완전히 드러난 이빨로 홍소했다.

"《야차 공주》. 네 년도, 그런 '떨거지' 들과는 달라."

"뭐?"

"말했잖아. 네 년은 나와 같은 년이야. 네 년의 눈을 처음 본 순간부터 알아챘어. ……이 여자는, 나와 같은 눈을 갖고 있는 이 여자는, 자신의 실력을 전부 쏟을 수 없는, 그런 미적지근하게 살아 가는 데에 질려 버린 년이라고 말야……!"

"……!"

"우리들이 바라는 건, 그런 미적지근한 삶 따위가 아냐! 삶의 극한. 생명의 모든 것을 갉아먹는, 업화와도 같은 죽음이지! 네 년이 갖고 있는 혼은, 지금도 그 순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 그렇지!?"

황금색 불꽃을 내뿜으며, 나짐은 동의를 요구했다. 확신에 가득찬, 단언하는 듯한 말투. 그 말에, ──네네는 한 블레이저의 모습을 떠올렸다. 긴 흑발, 기다란 팔다리, 자신을 '내려다보는' 혐오감이 담긴 두 눈.

"칫……"

네네는 혀를 차고, 그 모습을 떨쳐냈다.

"언제 봤다고 아는 척하며 지껄이고 있는 거야? 내가 그딴 절구로 빻아 놓은 것 같은 모습이 될 리가 없잖아?

부정과 함께 한 쌍의 쇠부채 《홍색봉》을 펼쳐, 다시금 전투 태세를 취했다.

실제로 인간이길 포기한 괴물을 앞에 두고, 변함 없이 전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건 어쩐지,

어쩐지, 초조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될 거야. 내가, ───지금, 이끌어내 주도록 하지!!"

그 순간, 나짐이 땅을 박찼다.

◆◇◆◇◆

『침묵을 깨고 먼저 공격을 가한 건 괴물이 되어 버린 《사막의 사신》 쪽이다아앗! 전력질주로 《야차 공주》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어! 빠, 빠르다!!』

'아니, 느려터졌어……!'

실황은 볼 수 없었기에 모르겠지만, 나짐의 돌진 속도는 척 보기에도 저하되어 있었다. 일단 틀림없이, 저 거대화된 근육의 악영향이었다. 저 악마와도 같은 몸집. 보통내기가 아닌 마력의 빛. 무서운 공격력을 지니고 있다는 건 명백했지만, 속도가 붙지 않는다면 위협은 되지 않는다.

그의 첫 속도를 보고, 네네는 그리 판단했다.

이 판단은,

──네네답지 않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크오오오오옷!!!"

땅을 박찬 나짐이 불을 내뿜을 듯한 포효를 내질렀다. 그 소리에 호응하듯, 그의 몸에 이변이 일었다. 그의 사지, 팔꿈치에서부터 끝, 그리고 무릎에서부터 끝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건 순식간에 채도와 광도를 높여, 그의 사지를 황금의 빛 그 자체로 바꾸었다.

그 빛나는 다리로, 나짐은 가속을 붙일 두 번째 발짝을 내디뎠다.

"으읏──!?"

그 순간, 대기가 폭발했다.

초스피드를 지닌 물체가 대기가 지닌 장력의 한계를 뛰어넘어 통과하여, 파열된 대기의 막이 터져 나아갔다. 통과한 건 물론 《사막의 사신》 나짐이다.

사람의 영역을 넘어선 마력에 의한 보조를 받은 도약은, 사막화된 발치의 아래, 지반조차 무너뜨려 버릴 힘으로 그의 몸을 앞으로 튕겨내어, 숨을 삼킬 틈도 없이 네네를 자신의 사정권 내에 두게 하였다.

그가 가한 공격은, 배를 꿰뚫는 창과도 같은 앞차기.

"치잇!!"

이걸 순식간에 피할 수 있었던 건, 그저 네네가 태어날 때 지닌 천성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의 속도를 잘못 판단한 사이 쇄도해 온 일격. 천부적인 재능으로 피했다고 하지만, 무리가 있었다. 너무나도 무리가 가는 동작으로 피했기에, 전신의 근육이 비명을 내질렀고, 격통에 전신이 경련했다.

뒤이어 도망에 필요한 자세가 무너져, 움직임이 멎어버렸다. 그 호기를, 나짐은 놓치지 않았다.

『급가속으로 거리를 좁혀, 《사막의 사신》이 《야차 공주》와의 거리를 좁히는 데에 성공. 불꽃과도 같은 러쉬!! 육탄전으로 싸움의 주도권을 쥐러 돌격!!!!』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주먹만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족도까지 겸한 러쉬. 주먹 밖에 사용할 수 없었던 그의 스타일은, 애초에 너무도 강해져버린 나짐이 따분해져버린 전장에서 조금이라도 자극을 얻기 위한 핸디캡. 자신의 온힘을 부딪히는 데에 걸맞은 상대. 그리 생각한 적을 앞에 두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러쉬는 나짐의 진심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발차기가 더해졌다고 해서 공격의 횟수가 더 많이 늘어났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

동작이 커다란 발차기를 더하게 되면, 콤비네이션의 회전은 어쩔 수 없이 떨어지게 된다. 더불어 나짐은 모든 펀치, 잽을 버리고, 모든 공격을 풀스윙으로 휘두르고 있다. 공격의 횟수는 변신 전의 절반, 혹은 그보다 이하.

그렇다면

『러쉬! 러쉬! 러쉬!! 맹렬히 쇄도하는 《사막의 사신》!!! 하지만, 맞지를 않아! 크리티컬 존에 서 있는 《야차 공주》! 하지만 하늘하늘, 부드럽게, 춤을 추며 저 모든 러쉬를 전부 피하고 있어! 《무결》이라 불리는 방어의 명수 난고 토라지로에게서 전수받은 《검의 춤》. 그걸 자신의 미의식을 가해 더욱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킨 《야차제악》!! 나짐에게 페이스를 거머쥘 계기 자체를 주지 않고 있어!!』

이 간격에서의 네네의 방어 능력의 수준은 보증수표가 붙은 수준. 방금보다 느린 러쉬로, 이 《야차제악》을 돌파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

그럴 터였다.

그런데──

"큭……!"

화려한  춤으로 난타를 피해 내던 네네의 표정에, 귀기 서린 긴장감이 떠올랐다. 네네는, 고전하고 있었다.

속도, 예리함, 그것들은 확실히 둔해져 있다. 하지만, 그가 가하는 모든 공격의 파워는 격이 다른 수준으로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이게 바로 이 아재가 강한 이유야……!'

이를 악물고, 네네는 빛나는 주먹을 노려보았다. 거기서 느껴지는 마력은, 연맹 가맹국 최고의 마력량을 자랑하는 《홍련의 황녀》조차 훨씬 능가했다. 더불어, 자신을 티끌로 바꾸어 공격을 피해 재구성시키는 《청색윤회》에 가까운 노블 아츠를 어렵지 않게 구사해 내는 걸로 미루어보아, 마력을 다루는 기술도 엄청난 수준이었다.

즉, 블레이저로서의 기초 능력의 수준이 엄청나게 높다는 것. 그것이 《사막의 사신》 나짐 알 살렘의 무기였던 것이다.

그 힘은 노블 아츠가 아닌, 충격에 대한 배리어나 방출하여 속도를 가속시키는 등, 마력을 무색의 에너지로 활용할 때야말로 그 진가를 발휘한다. 나짐은 지금, 자신 안에서 불타오르는 방대한 마력을, 그 발군의 제어능력으로 한 치의 낭비도 없이 공격에 작용시키고 있다. 주위에 건조의 힘을 가져다주는 《망해의 먼지바람》이 멎어, 실황의 눈에 이 싸움이 보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 간접적인 지속 대미지를 버리고, 방대한 마력의 모든 것을 주먹과 족도에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타격은, 날아올 때마다 지근거리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는 것과 같은 충격을 네네에게 느끼게 하고 있었다. 네네의 《야차제악》은 적의 공격의 파괴력을 흡수하여 춤 속에 담아 두어 축적시키는 방어일체의 노블 아츠.

강력한 노블 아츠이지만, 그 허용량은 무한하지 않다. 파괴력이 축적되어 갈 때마다, 춤에 담기는 힘은 더욱 불어나고, 네네의 몸을 이리저리 휘둘러버리게 된다.

이대로 계속해서 받아내었다간, 춤의 힘에 의해 몸이 갈가리 찢겨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으라아앗!!"

네네는 공격에 나섰다.

방금 그 잽으로는 방어 일변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 속도의 난타라면 간격을 노려 카운터를 먹일 수도 있었으니까.

나짐의, 목을 노린 하이킥을 아래로 피하며 파고든 뒤

『끝내 준다!! 러쉬의 간격을 재고, 《야차 공주》가 품에 파고들었다아앗!! 그 좁은 공간에서 《야차 공주》의 작은 몸집이 이점을 가져다주고 있어! 재빠른 회전에서 가해질 공격은──』

방금 나짐을 고깃조각으로 만들어버렸던 신속의 10연베기!

『클린 히트! 춤의 힘을 이용한 연속 참격이 《사막의 사신》』을 마구잡이로 베고 있다아아앗!!!』

불만의 여지가 없는 멋들어진 반격이 들어갔고, 실황이 흥분에 찬 소리를 쳤다.

하지만 그 고양감은

『뭐……?』

곧바로 오싹한 전율로 바뀌었다.

확실히, 네네의 연격은 들어갔다.

부채의 중력검이 나짐의 몸을 조각조각내었다. 하지만, 나짐의 검은 몸엔 생채기조차 하나 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어떠한 명도보다도 예리한 《야차 공주》의 《야타가라스》가 직격했단 말야……! 대체 무슨 트릭이 숨겨져 있는 거야……!?』

너무나도 이해하기 힘든 현상에 전율에 찬 목소리로 말하는 실황. 하지만 당사자인 네네는 그 이유를 냉정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해하였기에, ──더욱 깊은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트릭이 아니다.

그런 조잡한 것 따위가 아니었다.

언젠가, 파군 견학을 나섰을 때의 모의전.

쿠로가네 잇키의 검격을, 스텔라 버밀리온이 받고,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던 것과 똑같은 현상. 나짐이 그저 두르고 있을 뿐인 마력이, 네네의 중력검 《야타가라스》에 담긴 에너지보다도 훨씬 강했기에, 그 공격이 통하지 않은 것뿐이다.

"빌어 처먹을……!"

"큭큭큭, 하하하하하하핫!!!!"

『다시금 공수전환! 《야차 공주》의 참격을 튕겨낸 《사막의 사신》이 다시금 쇄도! 확신을 갖고 가했을 연격이 불발로 끝난 《야차 공주》는 움직임이 멎어 도망칠 수조차 없는 상태!!!』

다시금 러쉬에 직면하게 된 네네.

《야차제악》으로 피해봤지만, 곧바로 온몸이 비명을 내질렀다.

정신적인 대미지는 한 층 더 심각했다. 자신의 노블 아츠가, 세상의 운명을 덧칠할 정도의 힘이, 그저 펼쳐져 있을 뿐인 마력에 막혀버렸다.

블레이저로서 이 보다 더한 굴욕, 절망은 없을 것이다.

'쫄지 마! 누가 더 마력이 강한지 따위로 승패가 정해지는 건 아니잖아!'

하지만, 네네의 몸놀림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심신의 고통을 억누르고, 마음을 강하게 다잡았다. 다행히, 나짐의 러쉬의 속도는 떨어져 있다. 그 틈을 노려 반격에 나서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자신의 몸에 한계가 오기 전에 틈을 노려 《야차제악》의 축적 에너지를 방출시키면 된다.

괜찮다.

냉정하게 대처하면, 이길 수 있다.

대처하여, 돌파구를 찾아내자.

그렇게, 자신을 고무시키는 네네의 심경을 비웃듯, 그 일은 벌어졌다.

"큭!?"

다시금 틈을 노려, 《야차제악》에 실린 힘으로 연격을 가한 찰나, 나짐의 모습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앗! 이거 위험한데! 서로 크리티컬 존인 이 거리에서 《야차 공주》가 통한의 헛스윙을 내질러 버렸어!!! 그 틈을 파고들어 옆으로 돌아간 나짐이 이미 카운터 자세에 들어섰다아아아앗!!』

'옆으로 돌았다고!? 사이드 스텝!? 그런 어이없는……!'

네네는 착란에 빠졌다.

상대의 사지에서 눈을 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네네 정도의 체술을 보유하고 있다면, 약간의 체중 이동에서 적의 다음 동작을 읽는 것 정도는 예측이 가능하다. 나짐의 양발은 지면에 멀쩡히 달라붙어 있었고, 무릎에 힘을 모으는 동작도 보이지 않았다.

스텝을 준비하는 자세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큭! 저 꼬리인가……!'

시야 전방, 방금까지 나짐이 있던 곳의 더욱 뒷부분에 모래먼지가 피어나는 것을 확인하고, 네네는 자신의 미스를 통감했다.

그랬다. 나짐은 다리가 아닌 《각성초과》로 인해 변질된 인체의 일부, 꼬리를 내리쳐 자신의 옆으로 도약한 것이다.

인간은 불가능한 행동.

대 인간전을 상정해 두고 있던 네네의 판단에, 완전히 허를 찌른 방식.

곧바로 쇄도해 오는 반격의 주먹.

반짝이는 왼팔이 포효를 내지르며 다가왔다. 비스듬한 하단 위치에서부터 올라오는, 사나운 어퍼컷. 공격을 헛친 네네는 체중이 앞으로 쏠려 있었다. 지금부터 뒤로 피한다 하더라도 간격을 벌리는 것은 불가능. 그 한 순간 속에서, 네네의 전투 센스가 빛을 발했다.

체중이 앞으로 쏠려 있다면, 앞으로 도망치면 그만이다.

네네는 망설임 없이 땅을 박차, 앞으로 쓰러지듯 아래 방향에서 비스듬히 올라오는 카운터 펀치를 피했다. 그 판단은 멋들어지게 결시을 맺어, 네네는 스쳐 지나가듯 나짐의 카운터 펀치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하지만

"큭──"

그 직후, ──네네는 믿을 수 없는 행동을 취했다. 앞으로 쓰러지는 몸을, 전방으로 공중제비하여 자세를 되찾은 네네가, 착지하자 마자 왼손에 들고 있던 《홍색봉》으로, 나짐의 주먹에 스쳐 지나간 자신의 왼팔을 어깻죽지 부분에서부터 베어버린 것이다.

『뭣... C, Crazy!! 《야차 공주》, 대체 무슨 생각을── 큭!?』

실황의 비명에 가까운 질문은, 마지막까지 말로 맺어지지 못했다. 긴 기모노 소매에 둘러싸인, 지면에 떨어진 네네의 가냘프고 하얀 팔.

그것이 땅에 떨어진 순간, 먼지라고도 모래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입자가 되어 부서져버린 것이다.

나짐의 블레이저로서의 능력, 건조의 힘에 의한 작용이었다. 그것이, 종이 한 장 차이밖에 닿지 않았던 네네의 온몸에서 수분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네네가 한 순간이라도 팔을 절단하는 데에 주저했다면, 지금쯤 네네의 온몸은 방금 부서진 팔과 같은 꼴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Shit……! 저게 대체 어떻게 돼먹은 힘이야……!』

그는 마력을 순수한 에너지로 다루는 데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만 갖고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절대적인 수준의 기초능력, 그리고 극한의 살상력을 갖고 있는 고유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순간, 네네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연맹》에 《동맹》, 그리고 《해방군》. 세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 삼대 세력 중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떠돌이 늑대였기에 알 수 있는 것은 적지만, 이 남자는 틀림없이 이 삼대 세력을 대표하는 《마인》── 《흰수염 공》, 《초인》, 《폭군》. 이 셋에 필적하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후웃──!"

확신을 얻고, 네네는 곧바로 전략을 근본에서부터 바꾸었다. 지금까지 땅에 발을 붙이고 싸우던 전략을 버리고, 중력의 힘으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신장 차이에서 오는 우위를 살려, 나짐의 공격의 궤도를 한정시킨다. 그 당초의 방침은 그가 발차기를 가해 온 시점에서부터 이점이 사라졌고, 무엇보다 이건 《야차제악》으로 공격을 받아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둔 전략. 스치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정도로 말라 비틀어지는 무자비한 태양과도 같은 주먹을 상대로, 지상전을 펼쳤다간 리스크만 더욱 커질 뿐이다.

이제, 받아낼 수가 없다.

공중전으로 모든 것을 피한다.

그것 외엔 없었다.

'저 자식은 탁월한 마력 제어로 마력의 모래폭풍을 만들어내어 원래 '건조'의 힘과는 무관계할 터일 '비행'조차 터득했어. 거기다 저 날개. 공중전을 펼치는 데엔 어려움이 없겠지만, 그래도 중력을 다루는 내 쪽이 좀 더 유리할 거야……!'

『《야차 공주》, 접근전을 버리고 하늘로 도주! 하지만, 좋은 생각이야! 그 녀석의 주먹이 닿는 거리에 서 있는 건 너무 Dangerous하다고!』

"좋은 판단이야! 점점 더 흥분되는데!!"

일련의 판단에서 볼 수 있는 네네의 전략안을 나짐은 칭찬하며, 국지적인 지진을 일으킬 정도로 강하게 땅을 박차, 등에 난 한 쌍의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올랐다. 하늘 높게 도망친 네네를 추격하기 위해.

하지만

"……큭!?"

비행하던 도중, 상승이 멎었다.

척완의 네네가 하늘 높게 들어올린 《홍색봉》.

거기에서,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큰 기술이 올 것이다.

나짐은 강한 경계를 드러내며, 섣부른 추격을 멈추었다.

그 판단은, 옳았다.

"전부 짓이겨 버려!! 《패도천성》!!!!!"

하늘, 그 높은 곳보다 더욱 높이, 드높게 포효하고, 네네가 《홍색봉》을 자신의 아래에 있는 땅을 향해 휘둘렀다.

마치, 돌격 명령을 내릴 때 휘두르는 지휘도처럼. 아니, 그건 그저 비유만이 아닌, 그야말로 지휘도 그 자체였다.

《야차 공주》의 명령에 응해, 우주 공간을 부유하고 있던 소형 운석이 대기권을 통과했고, 새빨갛게 타오르며 네네의 등 뒤, 클레이델란트의 밤하늘에 별이 되어 나타났다.

직경 20미터 급의 유성군.

그 수는, 총 13개.

그 모든 것들은 네네의 명령에 응해, 홍염의 꼬리를 만들어내며 나짐을 향해 떨어졌다.

『이건……! 드, 드디어 나왔다!!! 대기권외에 떠다니는 우주 쓰레기를 중력의 힘으로 끌어와 적에게 내리치는 필살기! 너무나도 파괴의 규모가 큰 탓에 유사시 이외엔 사용이 금지된, 《금기》로 지정되어 있는 《야차 공주》의 비장의 카드!! 《패도천성》이다아아앗!! 나도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이거 진짜 위험한 기술이라고!!!』

고작 사람 한 명이 이런 현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실황이 비명에 가까운 경악을 내질렀다.

무리도 아니다.

네네의 《패도천성》은, 사용 여하에 따라 한 국가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기술이다.

대인전도, 대군전도 아닌, 대 국가 급의 스케일을 가진 폭력. 기술의 원리가 단순하기 때문에, 어떠한 노블 아츠와 견주어 봐도 비교가 불가능한 파괴력을 지닌 큰 기술이다.

네네는 그걸 아낌없이 퍼붓고 있다.

방어전이 불가능한 이상, 공격으로 꺾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힘을 아끼는 짓은 어리석은 행동일 터. 처음부터 최대 화력으로 나선다.

20미터 급의 《패도천성》은 이전에 《데드 엔드 블로》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그 때는 나짐의 주변에 버밀리온과 클레이델란트 측의 군인이 있었기에 힘을 조절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여기서 싸우고 있는 둘 중, 그리 간단히 죽어버릴 자는 없다.

그렇기에, 전력을 퍼붓는다. 끌어올 수 있는 최대 크기의 운석을 13개까지 끌어온다. 그야말로,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가 지닌 최대 화력을 《사막의 사신》에게 퍼붓는 것이다.

이 《패도천성》으로, 이긴다.

그런 확실한 결의를 품고.

───여기에서,

"크카칵……!"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유성이 내는 파괴적인 광경을 앞에 두고, 나짐은 도망치기는커녕 짐승이 사납게 웃듯 이를 드러내며 즐겁게 웃었다.

하늘에 뜬 채, 빛나는 두 손을 잡은 채 가슴팍 앞으로 뻗은 채로 있는 나짐. 그 직후, 가까스로 팔의 윤곽을 유지하고 있던 나짐의 빛나는 양팔이, 더욱 눈부시게 빛났다. 너무나도 강렬한 에너지에 의해, 나짐의 몸은 자가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팔에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균열은, 팔의 광도가 늘어날 때마다 온몸으로 퍼져 나아갔고, 칠흑의 이형의 육체를 내부로부터 터트리려는 듯, 빛은 사방팔방으로 뿜어져나왔다.

하지만, 나짐은 한 치의 주저도 없이, 자신의 혼을 맹렬히 해방시켰고

"《망해의 먼지바람》!!!!!!!!!!!!!!!!!!!"

몸이 붕괴할 임계점 직전에, 한계치까지 모았던 마력을 두 손을 통해 발사했다. 황금의 빛과 칠흑의 먼지바람이 상극되어 있는 이중의 나선이, 거대한 폭류가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건 떨어지고 있던 13개의 별조각, 네네의 《패도천성》을,

──한꺼번에 집어삼켰다.

"크으읏~~~~~!!!!!"

《망해의 먼지바람》에 닿은 순간, 네네의 《패도천성》은 먼지가 되어 폭류 속에 삼켜져 소멸되었다.

13개의 별, 그 모든 것들이. 약간의 길항조차도 없이.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야차 공주》의 혼신의 필살기. 그러나 그 필살기는 실제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막의 사신》 앞에서 너무나도 무력했다. 그리고 에너지의 폭포는 아직 부족하다는 듯, 《패도천성》을 집어삼킨 뒤에도 그 위세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 하늘 높이 부유하고 있던 《야차 공주》를 향해 아가리를 벌려 가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먹을!!!!!"

자신의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쇄도해 오는 거대한 폭류. 네네는 자신의 최대화력이 아무런 빛을 발하지 못한 것에 대한 동요를 진정시킬 틈도 없이, 위기에 내몰렸다.

쇄도해 오는 《망해의 먼지바람》은 너무나도 거대해, 피하는 것조차 불가능.

그 대처법으로, 중력 조작 능력을 이용해 자신의 두 쇠부채 《홍색봉》을 펼쳐, 손잡이 부분을 맞댄 채 앞으로 내뻗어, 나비 모양의 방패를 만들어냈다.

디바이스라는, 가장 순도가 높은 마력 결정을 이용한,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완전 방어 태세였다. 그 직후, 네네는 《망해의 먼지바람》에 삼켜졌다. 칠흑과 황금의 폭풍이, 네네를 유린했다. 약간 스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먼지로 바꿔버리는, 《패도천성》조차도 집어삼켜버린 《건조》의 힘이, 네네의 생명마저 메마르게 해 버릴 듯이.

네네는 사력을 다했다.

《망해의 먼지바람》의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모든 힘을 《홍색봉》에 집중시켜, 장벽을 만들어냈다.

《홍색봉》에 무수한 균열이 갔다.

피부에서 수분이 빠져나가, 먼지가 되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갈증이 너무나도 심해져, 현기증이 났다.

그래도, ───그래도 《야차 공주》는 《망해의 먼지바람》을 버텨냈다.

금이 가고, 깨져서, 지금 당장에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반투명한 디바이스. 바싹 마른 피부. 혈색을 잃은 얼굴. 언제나 물에 젖어 있는 듯 반짝이던 머리카락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목숨만은 건진 것이다.

그런 네네에게, 현실은 어디까지나 비정했다.

"─────"

누구보다도 높은 위치에 있었던 네네에게, 한 실루엣이 들이닥쳤다. 바싹 메마른, 힘없는 눈으로,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거기엔, 반짝이는 두 팔을 힘껏 들어올린 《사막의 사신》이 있었다. 네네가 사력을 다해 어떻게든 버텨낸 《망해의 먼지바람》은, 그저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진짜 공격은, 그 폭류에 정신이 빼앗긴 네네의 틈을 찌른, 지근거리에서의───

"《데드 엔드 블로》"

이미, 네네는 아무런 대책을 짤 기력조차 없었다. 그래도 전의만큼은 살아있어서, 다 부스러질 것 같은 디바이스를 방패삼아, 나짐의 필살의 라이트 블로를 받아냈다.

받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짐의 주먹은 마치 유리를 깨듯, 네네의 혼의 구현체인 《홍색봉》을 부숴버렸고

동시에, 네네의 의식도 끊어졌다.

◆◇◆◇◆

디바이스로 만들어진 방패를 부수고, 네네의 가냘픈 가슴팍에 깊이 꽂히는 나짐의 오른주먹. 그 엄청난 힘은 네네의 작고 가벼운 몸을, 멀고 먼 발 아래에 있는 지상으로 떨구었다.

아니, 내리꽂았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네네가 하늘 높은 곳에서 지표로 내리꽂힌 충격에, 사막화한 뤼셸의 모래먼지가 피어올랐다. 아래쪽 시야를 전부 뒤덮을 정도로 피어오른 대량의 모래연기. 그걸 여유롭게 바라보고 있는 《사막의 사신》의 모습에

『이건……못 이겨..』

모든 걸 목격한 실황자 부머는, 자신의 직무조차 내팽개칠 정도의 절망에 휩싸였다. A급 리그의 실황자로 오랫동안 일하고, 수많은 블레이저들을 봐 왔기에, 그는 알 수 있었다.

이길 수 없다.

네네만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모두가, 아니. 《국가 마도기사 연맹》의 총 전력을 투입해도, 이 힘에 의해 인간이기까지 포기한 남자 한 명을 상대로 이기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 자식은, 진짜.... 괴물이야……』

그는 《마인》이라는 존재를 모른다. 하지만, 우연하게도 그 표현은 적절히 알맞았다. 《마인》이란 사람의 몸에 사람의 영역을 벗어난 혼이 깃든, '사람'과 '괴물'의 경계선상에 있는 존재. 하지만 나짐은 이미, 그 경계선을 벗어나 있는 것이다.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마로 변한 괴물. 그렇기에, 사람이 아닌 혼의 힘, 그 모든 것을 다룰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몸으론 도저히 버틸 수 없는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애초에, 사람의 힘으로 대항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렇다.

대항할 수 있다면, 그건 그와 같은, 사람이기를 포기한 괴물 밖에는.

"!"

적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짙은 안개처럼 피어오른 모래먼지 속으로 파고든 나짐. 조금씩 밝아지는 시야 속에, 그는 두 다리로 대지에 서 있는 한 실루엣을 발견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건,

『야, 《야차 공주》다아앗!! 미, 믿을 수 없어! 그런 엄청난 주먹을 직격으로 얻어맞고도 《야차 공주》가 아직 서 있다니이이!!!』

확실히 결정난 것이라 생각했던 일격을 얻어맞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다리로 서 있는 네네의 모습에, 실황은 환희에 차올랐다.

『역시 저 녀석은 진짜 굉장해! 저 괴물 놈을 이길 수 있는 건, 이제 너 뿐이야! 어떻게든 버텨내서───, 에!?』

하지만, 그 환희는 순식간에 오한으로 바뀌었다. 드론 카메라를 통해 비춰진 네네의 표정.

그 입가가, ──소름끼치는 희열에 비틀려 있었던 것이다.

"크흣, 크흐흐흣... 후힛.. 캬하하하하핫!!!!"

『야, 《야차 공주》……?』

치명타를 맞고, 만신창이가 되어 있을 네네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고 있었다. 새되고, 입을 크게 벌린 채, 홍소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은, 이런 상황에서.

정신이 붕괴된 것인가.

실황은 걱정했다.

디바이스는 그 블레이저의 혼.

그것이 무참히 부서져버려, 정신이 망가져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걸, 그녀와 대치하고 있는 한 남자. 상대하고 있던 《사막의 사신》은, 이해하고 있었다.

"즐겁냐. 즐겁지? '온 힘을 다한다는' 건 말야."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게 들어간 《데드 엔드 블로》. 사람을 분쇄하기엔 충분에 차고 넘치는 일격. 하지만, 그녀는 부서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미 그건 사람이 아니다.

"역시 네 년은, 나와 같아……!"

그저 이어가기만 하는 목숨 따위엔 아무런 가치를 찾아낼 수 없다.

그저 살아가기만 할 뿐인 따분함엔, 견딜 수가 없다.

생과 사의 경계에 있는, 타들어갈 것만 같은 충실함에 매료된, 순수한 폭력 중독자. 방금까지의 일격은 '사이쿄 네네'라는 사람으로서 존재한다는 자아를 분쇄시키고, 《야차 공주》의 한 층 더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심층의식, 강한 갈망을 각성시켰다.

지금, 《야차 공주》는 의식을 잃고 있다.

그렇기에, 그 해방을 저지할 자는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야차 공주》라는 《마인》의 진짜 힘은 지금부터다.

"네 년이 뭘 위해 참아 왔는지, 뭘 위해 '인간'으로서 존재해 오려 노력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제 그럴 필요 따윈 없어. 이제 참지 않아도 된다고. 네 년이 온 힘을 다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네 년 앞에 서 있으니까 말이다!!!!"

"키킥, 히,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순간, 네네의 온몸에서 적광을 띤 칠흑의 마력이 뿜어올랐다. 그리고, 하늘을 꿰뚫을 정도로 피어오른 마력의 범류 속에서, 네네의 몸이 변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오른쪽 어깨. 잘려나간 오른팔 대신 초중력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팔이 생겨났고.

눈. 흰자가 검게 물들어갔다. 하지만 홍채는 타오르는 듯 새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머리. 이마에서 살을 찢고 한 쌍의 뿔이 돋아났다.

그 모습은 이미 인간이라기보단, '도깨비'라고 형용하는 게 더욱 걸맞았고──

"덤벼 봐……!"

"캬아아아아아아악───!!!!!"

여기서, 두 괴물의 살육전이 시작되었다.

◆◇◆◇◆

초중력의 마력을 응축시켜 생성시킨 오른주먹을 쥐고 네네가 앞으로 달려나갔다. 일직선으로, 아무런 페인트도 없이, 도약을 실은 주먹을 몸과 함께 나짐에게 처박듯이.

그에 대한 나짐도 영격에 나섰다. 끓어오르는 마력이 깃든 왼팔을, 마치 활시위를 당기듯 뒤로 쭉 당겨, 네네의 돌진에 맞춰 앞으로 내뻗었다.

동시에 뻗어 나온 둘의 오른주먹과 왼주먹. 충격이 대기를 갈라버렸다. 파열된 대기는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사막화된 일대에 쓰나미와도 같은 파문을 만들어냈다.

파도의 높이는 수십 미터를 달할 정도. 하지만, 그런 충격을 직접 받고서도, 두 《마인》은 사막의 중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다리를 뒤로 쭉 뻗어 땅에 처박고, 결코 물러나지 않은 채로──다시 주먹을 뻗었다.

"카아아아아아악!!!!!"

나짐의 오른주먹이 네네의 측두부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그 뒤, 마치 바위에 쇳덩이를 내리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방금까지의 네네였다면 이 일격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네네는 뒤로 날아가지도 않고, 나짐의 라이트 펀치를 받아낸 뒤

"쿡쿡……"

섬뜩한 미소와 함께 오른팔 아래를 파고들어, 그의 품속으로 미끄러져 나아가듯 옆구리를 향해 왼주먹을 찔러넣었다. 초중력의 마력을 두른 왼주먹이 나짐의 옆구리에 꽂혔다.

그리고 주먹을 한 층 더 비틀어넣었다.

"카하핫!"

하지만, 나짐도 흔들리지 않았다. 디딤대가 나쁠 터인 사막 위에서, 마치 뿌리내린 거목처럼 몸의 축을 유지하고,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두 주먹을 맞잡아 내리치는 공격. 너클 해머로 네네의 후두부를 내리쳤다.

방어 자세를 취하지 않은 네네는, 그 공격을 직격으로 맞았다. 뇌를 뚫는 충격에 몸이 무너졌고

"큭!?"

그래도 지면에 쓰러지지 않았다.

머리가 지면에 꽂히기 직전, 네네는 무릎을 구부려 버틴 뒤 몸을 일으켰다. 그 자세 그대로 상반신의 힘으로 상체를 들어올려, 굽힌 무릎의 모든 근력을 이용해 몸을 들어올려,

"캬하핫!"

총알처럼 몸을 날리는 점핑 니킥이 나짐의 턱을 쳐올렸다. 그 충격에, 나짐의 발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제 2격. 튀어오른 자세 그대로, 네네는 턱을 차올린 무릎의 반대쪽 다리를 휘둘러 측두부로 족도를 가했다. 무거운 소리와 함께 격한 충격파를 비산시키며 직격하는 추가타.

그것이, 손에 잡혔다.

나짐은 뇌를 십자로 꿰뚫는 충격에 움츠리지도 않고, 네네의 발목을 움켜쥐고,

"으라아아아아아앗!!!"

내리쳤다.

발치의 지면에,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하여. 모래바닥임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경질적인 소리를 내며, 네네의 몸이 지면에 내리꽂혔다. 거기에, 나짐이 전세를 굳히려는 듯 발꿈치 찍기를 가했다. 하지만 그 발꿈치가 네네의 얼굴을 꿰뚫기 직전, 네네는 자신의 작은 몸집을 살려 누워 있던 자신의 몸을 둥글게 말았다.

두 무릎을 코끝까지 당기고, 두 손으로 지면을 밀어, 쇄도해 오는 거대한 발꿈치를 두 발로 쳐냈다.

다시금, 서로의 사지가 굉음을 내며 충돌. 하지만, 이번 경합에서 이긴 것은 네네였다. 몸채로 차올린 덕택에, 나짐의 주축이 된 다리가 지면에서 떨어졌고, 몸이 하늘로 떠올랐다.

대미지는 없었다. 하지만, 그 약간의 체공시간은 네네가 몸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여유를 주었다. 그리고, 스탠딩 상태의 둘은, 다시금 주먹의 응수를 시작했다. 기술도 트릭도 없는, 순수한 힘대결. 이형으로 변해 버린 두 블레이저의, 완전히 각성해 버린 영혼이 부딪히는 여파에, 대기가 삐걱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지켜보단 실황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비명을 내질렀다.

『FXXX……! 난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어느 틈엔가 잠들어 버려서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내 대가리가 정상인 건지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고. 《사막의 사신》만이 아니고, 《야차 공주》까지 괴물로 변해 버렸어……!』

대체, 이 힘은 무엇인가. 네네의 능력은 중력을 다루는 게 아니었단 말인가. 《마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해도가 없는 그는, 알 수 없었다. 그건 이 싸움을 먼 곳, 버밀리온에서 화면 너머로 지켜보고 있던 버밀리온의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하지만, 딱 하나 확실한 게 있어. 그건 지금의 《야차 공주》가, 저렇게나 압도적이었던 《사막의 사신》과 호각으로 싸우고 있다는 거야……!』

『그래, 맞아! 그렇게 엄청난 공격을 당했는데도, 《야차 공주》는 물러서지 않고 있어!』

『저 놈만 정리되면 클레이델란트에 남은 건 그 오르 골이라는 꼬맹이 녀석 뿐이야! 이길 수 있어!!』

『힘 내요! 기모노 누나!!』

먼 곳에 있는 버밀리온 국민들은 괴물로 변해버린 네네에게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단 한 명.

"크읏………"

시리우스 버밀리온만은 응원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마에 차갑게 식은 땀을 흘리며, 이형의 싸움을 험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여보……? 왜 그래요? 안색이 나빠요."

방금까지 압도적 열세에 서 있었던 그녀가 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리우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거기에 의아함을 느낀 아스트레아가 그의 안색을 살폈다.

여기에, 시리우스는 답했다.

"……나는 한 번, 선생님의 저 모습을 본 적이 있어."

스텔라 일행을 에델베르크로 배웅한 뒤.

혼자서 폐허에서 전쟁을 앞둔 조정을 하려 한 네네에게, 훈련 시설을 빌려 주겠다고 제안했던, 그 때.

'그 누구도 여기에 가까이 오지 마'

그리 말한 네네의 표정에, 목소리에, 그리고……어렴풋이 솟아오른 이마의 뿔에, 시리우스는 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그 때의 네네는, 진심이었다.

가까이 다가갔다간, 피아 구별 없이 누구든 죽여버렸을 것이다.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기에, 그녀는 시리우스에게 그리 충고한 것이다.

그건, 그러한 힘.

그건, 그러한 존재.

그렇다면──

'《사막의 사신》을 이긴다 하더라도, ……그 뒤... 저 《도깨비》는 과연 멈출 것인가……?'

실로 오싹한 예감이, 가슴 속 깊은 곳에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불쾌한 땀이 멎질 않았다.

◆◇◆◇◆

발차기와 함께 꼬리치기로 이어지는 2연격. 익숙치 않은 콤비네이션을 복부에 얻어맞고, 네네의 몸이 뒤로 크게 튕겨나갔다.

나짐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호기. 하지만, 그걸 네네는 용납하지 않았다. 버텨 설 수 없었기에 뒤로 크게 날아간 몸을 중력으로 땅에 찍어 눌렀고, 신고 있던 게다가 벗겨져 드러난 다섯 발가락으로 지면을 박차 반격에 나섰다.

방어 따윈 하지 않는다.

한결같이, 악착스럽게 공격에 나선다.

이 악착스런 공세에 질린 나짐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응을 보였다.

"《사진야금》──!!"

발로 뿜어낸 마술로, 대지를 침식. 모래 속에 존재하는 철분으로 상대를 포위하는 창을 만들어내, 대지에서 피어난 철의 숲으로 네네의 몸을 집어삼켰다.

창의 숲의 범위는 나짐 자신의 시야 전방을 모두 뒤덮을 정도. 그 밀도는, 날로 이루어진 산더미와 같았다.

찌르고 꿰뚫는다, 정도로는 부족했다. 벌집이 되어 갈가리 찢겨버릴 밀도.

하지만

"아핫……!"

네네는 개의치 않고, 힘으로 모든 창날을 뚫고 지나가갔다. 기모노가 찢어져 드러난 피부엔, 단 한 개의 열상도 나지 않았다.

《각성초과》의 결과였다. 《각성초과》는 사람의 영역을 벗어난 혼에 이끌려, 육체까지 변질을 일으킨다. 그 변이에 의해 인간성을 대가로, 인간의 육체로는 도저히 다룰 수 없는 괴물과도 같은 혼의 마력을 완전히 다루는 것이 가능해진다.

지금, 네네와 나짐이 두르고 있는 마력의 갑옷은, 이미 간접적인 공격 수단으로도 쓸 수 있을 정도. 이 갑옷을 꿰뚫기 위해선, 그보다 더 강한 마력을 담은 일격을 직접 가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둘의 싸움은 잔재주 따위가 들어가지 않은 순수한 힘싸움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지금도.

창의 산더미를 짓밟으며 돌파한 네네가, 나짐의 지근거리까지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기세 그대로 나짐의 악마와도 같은 안면을 강타했다. 초질량의 마력 그 자체로 만들어진 오른팔로. 나짐은 이걸 양팔을 교차하여 블록. 하지만, 그래도 충격을 다 죽일 수가 없었고, 나짐의 거체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나짐도 그 정도로 얌전해질 존재가 아니었다. 불안정한 자세에서도 재빨리 왼주먹을, 나짐의 머리를 타격하기 위해 튀어오른 네네에게 내뻗었다.

하지만

"크윽……!?"

네네의 안면을 확실히 조준했을 터인 왼주먹이, 마치 천막을 후려친 듯한 감촉과 함께 미끄러졌다.

──《야차제악》.

알아챘을 때엔, 이미 늦었다.

"카악!?"

옆구리에, 네네의 돌려차기가 꽂혔다. 나짐 자신의 힘까지 더해진 일격이었다. 아무리 지금의 나짐이라고 해도 이 공격엔 버틸 수 없었고, 몸이 굽어졌다. 그 틈에, 네네는 호우와도 같은 추가타를 가했다.

'역시, 끝내줘……!'

나짐이 움츠러든 순간, 초지근거리에서 작은 몸집을 살린 러쉬를 가하는 네네. 그걸 몸을 굽혀 방어하며, 나짐은 감탄했다. 지금의 네네는 틀림없이 의식을 잃고 있다.

방금 그 《데드 엔드 블로》의 직격을 받고,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움직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수련을 쌓아 올렸기에,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그 최적의 답이, 피에, 몸에, 세포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자신처럼 전장에서 목숨을 뺏고 빼앗으며 살아온 것도 아닌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정신을 잃고 나서도 조금도 녹슬지 않은 체술에, 《각성초과》에 의한 괴물의──네네의 지금 모습을 보고 말한다면, '도깨비'의 마력이 깃들어 있다.

방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힘.

──하지만 그래도, 이기는 건 자신이다.

나짐에겐 확실한 확신이 있었다.

《각성》이란 애초에, 자신에게 주어진 인간으로서는 넘을 수 없는 영역을 앞에 두고서도,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자아를 발판 삼아, 가능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적. 나짐은 홀로, 용병으로서 국가를 넘어, 전장을 넘어 왔다. 이전에 자신을 고용했던 고용주라고 해도, 일절의 주저 없이 죽여 왔다.

당연히, 아군 따위는 없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는 《사막의 사신》이라 불렸고, 사람의 형태를 한 재악이라 불리며 두려움을 떨쳤다. 그렇게 되고 나니, 자신을 용병으로서 고용할 국가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중동의 수많은 국가가, 이 남자를 처리하기 위해 손을 맞잡았다.

그에게는, 이 세상 모든 것이 그의 적.

그에게 이 전쟁은, 세상을 향한 저항이었다.

나짐의 《각성》은, 그런 전쟁을 초월하여 얻은 힘이다.

하지만

'네 년은, 그런 경험 따위 없었겠지……!'

KOK·A급 리그라고 해도, 어차피 격투 흥행 따위일 뿐. 나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저 장난질에 지나지 않았다. 네네가 어떠한 이유로 《각성》에 이르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캄피오네》가 그 꼴이어서야, 그 수준도 알만했다.

상정해 둔 적의 수준이 다르다.

그렇다면 당연히, 《각성》으로 얻는 성장의 폭도 차이가 있을 터.

지금 이대로는──

"아직, 부족하다고……!"

네네의 러쉬에, 나짐은 전신의 마력을 한 층 더 강화시켰다. 몸에 난 균열을 통해 흘러나오는 빛이 더욱 강해졌다. 그 상태에서, 그는 가드를 풀었다.

여유로운, 당당한 자세.

네네는 여전히 러쉬를 가하고 있었다.

주먹, 족도, 발꿈치. 작은 몸을 빙빙 돌리며 숨쉴 틈도 없이 연타를 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짐은 이제 꿈쩍도 않고 있었다.

《각성초과》에 방금 이르렀을 뿐인 햇병아리. 살짝 마음만 먹는다면, 떨쳐내는 건 식은 죽 먹기.

──이 여자는 자신과 같은 피에 굶주린 괴물. 그저 살아있기만 한다는 따분함에 버티지 못하고, 업화와도 같은 죽음 속에서 자신의 극한을 해방시키는 것을 바라고 있었다.

자질은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의식의 문제.

"그러니, 날 보라고……!"

나짐은 네네의 러쉬를 받으며, 크게 오른주먹을 들었다. 금색으로 빛나는 오른팔에 둘러진 건, 검은 선풍과 금색의 마력광에 의한 이중나선.

《데드 엔드 블로》.

자신의 최고 위력을 지닌 노블 아츠를 준비한 뒤, 나짐은 네네에게 요구했다.

날 뛰어넘기 위해, 지금 여기서 강해지라고.

그렇지 않으면

"날 뛰어넘기도 전에, 죽어버릴……푸흡, 카악!?!?"

하지만, 나짐의 말은 마지막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그가 뻗은 《데드 엔드 블로》를, 네네는 살짝 뻗은 왼팔로 가볍게 위로 쳐내어 헛공격으로 만들어버렸고, 그대로 나짐의 복부에 통렬한 카운터를 꽂았기 때문이었다.

"크윽────!?"

복부에 무거운 카운터를 받고, 나짐은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 이유는, 네네의 왼팔을 통해 받은 엄청나게 무거운 충격.

또 다시 《야차제악》인가.

아니, 그건 있을 수 없다.

《야차제악》은 적의 힘을 훔칠 때, 상대에게 타격시키지 못했다는 느낌을 가져다주게 된다. 하지만 네네가 《각성초과》에 달했을 때부터, 그 허무하게 느껴지는 감촉을 느낀 건 단 한 번 뿐. 그 힘도 뒤이은 돌려차기로 소비했을 터.

──그럼 지금의 힘은, 대체 뭐지……?

"후훗, 꺄하핫……♪"

"크윽!"

하지만, 그 질문을 깊이 생각할 틈을, 네네는 주지 않았다. 어린아이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순진무구하게 웃으며, 뒤로 물러난 나짐에게 추가타를 가하려 쇄도했다. 여기에 불길함을 느낌 나짐은, 방금까지의 무방비한 자세를 거두고 반격에 전념했다.

재빠른 레프트 잽으로 네네의 안면을 구타하여 돌진을 끊었다. 움직임이 멎은 네네의 측두부에 발차기를 꽂아넣고, 한 번 더 몸을 회전. 이형의 꼬리로 측두부에 마무리 꼬리치기를 가했다. 일단 진정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넉백을 목적으로 한 타격.

하지만

"뭐, 라고!?"

네네를 떨쳐낸 발차기와 꼬리치기. 그걸 타고 돌아온 감촉이 이상했다.

조금도 물러나지 않았다.

아니,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돌아왔다. 힘에 의해 반동이 가해졌고, 오히려 공격을 가한 나짐 쪽이 밸런스가 무너졌다. 거기에 쇄도해 오는 네네의 러쉬. 나짐은 재빨리 가드를 굳혔지만

『오옷! 여기서 길항이 무너졌다! 제압하고 있는 쪽은 괴물로 변한 《야차 공주》 쪽! 러쉬!! 러쉬!!! 《사막의 사신》! 당해내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밀리고 있다아아앗!!』

가드 위라도 상관없다는 듯, 네네는 계속해서 난타를 가했다. 가드하고 있는 팔이 삐걱이기 시작했다. 네네의 주먹과 족도가 가드를 두드릴 때마다, 나짐의 전신에 난 균열이 점점 더 커져 갔고, 그 충격으로 검은 살조각이 떨어져나갔다. 여기까지 오자, 네네의 힘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나짐은 알 수 있었다.

그가 《각성초월》을 겪기 전의 네네에게 보여준 것과 같은 힘.

마력.

순수한 마력차에 의한, 일방적인 강도의 폭력.

네네가 두른 마력의 총량이, 《각성초월》을 한 뒤로 한계 없이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던 것이다.

그것이, 이제 나짐을 초월한 것뿐.

그건, 나짐을 넘어서기 위한 진화──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 치더라도 진화의 속도가 너무 빨랐다.

'설마, 처음부터 이 정도의 마력을 지니고 있었단 말이야!?'

그걸, 사람의 몸으로 다 쓰지도 못한 채 안에 남겨두고 있었단 말인가.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예감, 그 예감을 나짐은 '그럴 리가' 하고 강하게 부정했다.

자신은 세계를 상대로 싸워, 《각성》을 이끌어냈다. 어떠한 자질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연맹》이라는 온실 속에서 자란 여자의 혼이 자신보다 강할 리가 없다.

이 여자가 《각성》에 다다르게 된 이유 따위, 자신과 비교하면 가치조차 없을 정도일 터. 그렇다면, 마력의 상승폭도 그에 상응할 터이다.

그럴 터였다.

그런데....

그 현실은, 네네의 마력이 계속해서 상승, 마침내 타격의 강도는 자신이 받아낼 수 없을 정도까지 상승했고──

'네 년은, 대체... 어떤 괴물을 넘어서려고 하고 있는 거야……!?!?'

다음 순간, 네네의 타격이, 드디어 나짐의 두 팔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

"크아아아아아아악!?!?"

『부, 부숴졌다아앗!! 《사막의 사신》의 두 팔이 산산조각이 났어!!! 마치 광석처럼 부숴지고, 녹은 황금과도 같은 액체가 뿜어져 나온다앗! 아무래도 몸의 내용물 쪽도 완전히 인간이 아니게 되어 버린 것 같은데, 이거! 하지만 《야차 공주》! 놀란 모습도 없이 추가 공격!!』

"치잇!"

『《사막의 사신》! 연속차기로 응전! 하지만, 나오는 모든 발차기를 쳐내는 《야차 공주》! 아무런 움츠러든 모습 없이 계속해서 연속 공격!! 공격! 공격! 공격!!!』

"크윽~~~~!"

『조, 족도가 꽂혔다! 일격에 《사막의 사신》의 두 다리를 무릎 아래에서부터 분쇄! 《사막의 사신》! 지면에 쓰러지고 있다! 하지만, 사지가 날아가도 아직 꼬리가 남아있어! 몸을 돌려 가한 일격이 《야차 공주》의 옆구리에 꽂혀──바, 받아냈다앗!! 《야차 공주》! 옆구리에 꽂힌 꼬리 채찍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홀딩! 그대로 아연해하는 《사막의 사신》을 짓밟아서!!』

"캬아아아아아악!!!!!!!!"

『찌, 찢어버렸어!! 꼬리를 통째로! 그것도 힘만으로!! 빛나는 액체가 비산하고 있다앗! 《야차 공주》! 무자비한 모습! 하지만 방심하지 마! 그 녀석은 아무리 갈가리 찢어놓아도 모래가 되어 모믈 재구축시킨다고!』

실황이 말한대로, 나짐은 부서진 사지의 재구성에 들어갔다.

하지만

"────크윽!?"

그건, 갑자기 나짐의 온몸을 급습한, 하늘이 떨어져내린 듯한 압박감에 짓눌렸다.

《지박진》.

'아, 압력이 너무 강해서.. 재구성시킬 수가 없어……!'

《각성초과》를 겪은 불가사의한 마력에 의해 만들어진 중력의 결계가, 나짐의 재생을 가로막았다. 너무나도 큰 압력에, 몸을 세세하게 입자화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카학!"

마치 굼벵이처럼, 이미 없어진 팔다리를 파닥이던 나짐의 어깨를, 네네가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의 몸을 엎드려 있던 상태에서 드러눕는 방향으로 돌려놓고, 발로 가슴팍을 짓밟았다.

"아극! 키힉, 칵! 그, 그만……! 기익, 히…히이이익……!"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각성초과》는 육체를 '괴물'로 만들어놓는 행위. 이 상태에 달한 블레이저는, '괴물'의 결정체인 디바이스와의 합일화가 이루어져, 전신이 디바이스로 바뀌게 된다. 따라서 육체의 강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해, 디바이스와 동등해지는 수준이 된다.

네네의 발이 내리쳐질 때마다, 균열 틈으로 금빛 액체가 뿜어올랐다. 나짐의 액체, 피와 마력이 합쳐진 반 영체의 혼합물이 네네를 흠뻑 적셨다. 네네는 뺨에 비산한 액체를 낼름 핥고는,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나짐 위에 올라타, 자신이 짓밟아 금색 액체가 솟아오르는 가슴팍에 혀를 가져갔다.

황홀에 젖은 표정으로.

할짝할짝, 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허리를 관능적으로 꿈틀거리면서 나짐의 상처를 핥았다.

그 모습은 마치 썩은 고기에 달라붙은 구더기와 같았고──

"쿡, 핫,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읏.........』

실황도, 방금까지 성원을 보내고 있던 버밀리온의 국민들도, 그 네네의 변해 버린 모습에, 뒤늦게 알게 되었다. 저 악귀가, 자신들이 아는 네네와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그 사실에,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저, 새파란 얼굴로 나짐을 능욕하며 홍소를 터트리는 네네를 바라보기만 할 뿐.

그리고, 네네 본인도.

가까스로 빛 없는 어둠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몽롱한 의식 속에서, 괴물로 변해 버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

뜨겁다.

한 번 얻어맞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불똥이 파지직 튀고, 척추가 저릿해진다. 그 저릿함은 하복부에 모이기 시작하고, 참을 수 없는 쾌감을 만들어낸다.

꿀럭꿀럭, 멈추지 않고 흘러나온다.

마치, 뇌가 녹아내리는 듯했다.

기분좋은 쾌감.

"하하핫! 하앗, 아.. 응으읏!!!!!!!!"

엉망으로 짓이겨진 나짐의 안면.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섞인 혈액.

벌리고 걸터앉은 가랑이 사이를 타고 흐르는 괴로울 정도로 강한 경련.

그 모든 것에, 네네의 정신이 이상해져 버릴 정도의 흥분을 느끼고, 신음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그녀는, 취해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마음껏 타인을 파괴한다는, 폭력의 유열에. 그런 자신을 몽롱한 의식 속에서 바라보고 있던 네네는……쓴웃음을 지었다.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그런 것 정도는.

──우리들이 바라는 건, 그런 미적지근한 삶 따위가 아냐! 삶의 극한. 생명의 모든 것을 갉아먹는, 업화와도 같은 죽음이지! 네 년이 갖고 있는 혼은, 지금도 그 순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

그 나짐의 말은 어떻게든 흘려넘겼지만, 네네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과 눈앞의 남자가 같은 인간이었다는 것을. 그저 살아 있다는 지루함을 견딜 수 없다는, 그래서야 기쁨을 느낄 수 없다는 폭력중독자.

언제나, 자신 속에는 자신의 힘을 한껏 휘둘러 보고 싶다는 갈망을 갖고 있었다. 알고 있다. 그런 것쯤은.

그 날, ──의붓아버지를 때려죽인 날 이후로. 쭉.

그건, 정말로 상쾌했다.

힘껏 주먹을 말아쥐고, 온 힘을 다해 짜증나는 타인을 두들겨 패는 것. 머리는 유리 세공품처럼 손쉽게 부서졌고, 뇌수가 흩뿌려졌다.

죄의식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그저 남아있던 건,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상쾌함과, 불타오를 것 같은 고양감.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자신이, 오르=골이나 나짐처럼 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온 힘을 다해 무언가를 두들겨 팬다. 그것조차 자유로이 할 수 없는 답답한 《연맹》에 몸을 담고 있는 건 어째서일까.

이유는 단 하나.

미적지근하게 끝나 버린 그 여름날의 결착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맛본 굴욕을, 수십 배로 그 여자에게 되돌려 주기 위해서.

하지만──

'미안하다..'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쿠로노가 은퇴하고, 자동적으로 3위로 승격했지만, 쿠로노가 없는 KOK따위 볼 일은 없었다. 룰에 소박되어 온 힘을 다할 수조차 없는 이런 놀이 따위에, 더욱 위를 향하고 싶다는 마음 따윈 들지도 않았다.

그저, 빈둥빈둥 머물러 있어 봐야 욕구불만이 쌓이고 쌓일 뿐.

그렇다면……이제 상관없지 않은가.

애초에 자신같은 결함품 따위에게, 제대로 된 인생이라니. 무리였던 것이다. 지금은 운 좋게 자신의 모든 것을 부딪힐 수 있는 적이 눈앞에 나타났다. 더욱 이전, 쿠로노와 싸우기 위해 주저 없이 열어젖힌 《각성》의 문. 그저 쓸 곳도 없이 갖고만 있던 힘을 쓰는 것이 가능한──《세계시계》 타키자와 쿠로노를 대신해 줄 적이.

그렇다면, 이제 참지 않아도 되잖아?

이 남자에게 내 모든 것을 쏟아붓자.

사람이 아니게 되어 버린 영혼의 힘, 그 모든 것을.

분명히, 틀림없이 즐거울 것이다. 그 결과, '인간'으로서의 사이쿄 네네가 어떻게 되어 버릴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딱히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 그도 그럴 게, 자신은 지금 이 몸을 불태우는 충실감만을 바라 왔으니까……!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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