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77)

제 20장

버릴 수 없는 추억

온 힘을 다 모아, 주먹을 만들어낸다.

그걸 치켜들고, 몸채로 꽂아버리듯 휘둘렀다.

코를 꿰뚫는 감촉.

입술의 부드러움.

뼈를 부수는 메마른, 그러나 기분좋은 울림.

──모친의 재혼 상대는, 정말 쓰레기같은 남자였다.

일도 하지 않고, 가사도 도우지 않고, 그저 술을 퍼마시며 놀기만 할뿐. 제대로 된 취직도 불가능한 주제에, 집에선 마치 세계를 재패한 왕처럼 굴었다. 조금이라도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친 소리를 내뱉고, 술냄새 나는 숨결을 내뱉으며 폭력을 휘둘렀다.

모친은 언제나 울고 있었다.

네네도 또한, 틈만 나면 '물건을 공중에 띄우는 것만 가능해서야 돈을 벌 수가 없잖아' 라는 이유로 폭행당했다.

하지만 그건 사람을 죽음에 내몰 정도의 진심을 다한 폭력이 아니다. 모든 부분에 있어 소인배인 이 남자에겐, 도저히 그런 짓은 불가능했다.

고작, 멍이 만들어질 정도의 폭력.

블레이저인 네네에게 있어, 그다지 아프지도 않았다. 그러나 언제나 버텨낼 수 있었다.

모친이, 그래 왔으니까.

그건 언제나의 일상이었고, 정말로 당연한 매일이었고, 참아야 한다는 의식조차 사라질 정도로──

하지만…… 그 날은 정말로 배가 고팠다.

아주, 아주 배가 고팠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저녁 시간이 찾아왔다.

햄버그.

네네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그걸 먹을 수는 없었다.

뭐가 맘에 들지 않은 것인지, 이유 따윈 애초에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그랬듯 의붓아버지가 짜증을 내며 고함을 지르고, 테이블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시작되는 모친에 대한 폭력.

계속해서 사과하는 모친.

계속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부친.

그런 의부의 발이 바닥에 떨어진 햄버그를 짓밟았을 때,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네네의 속에서 끓어올랐다.

충동.

자리에서 일어나, 네네는 태어나 처음으로, 온 힘을 다해 주먹을 쥐었다. 짜증에 등을 떠밀리듯, 진심으로 사람을 후려팼다.

꿰뚫은 주먹은 의붓아버지의 안면에 파고들었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살, 뼈, 그리고 마지막으로 뇌를 분쇄했다.

목 위로 산산조각이 난 채 쓰러지는 의부.

절규를 내지르는 모친.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저질러 버린 것인가.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을 나이였다.

살인.

자신은 사람을 죽였다.

의부는 이제 두 번 다시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건, 진정한 의미로 돌이킬 수 없는 행동.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회 따위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 때, 네네의 가슴 속에 남은 감정은 단 하나.

유열.

그녀는 《중력》이라는 자신의 진짜 능력을 알게 됨과 동시에, 하나를 더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힘을, 누군가에게 거리낌 없이 발산하는 것에 대한 상쾌감을. 자신의 힘으로 눈앞의 불쾌한 현실을 깨부숴 버리는 통쾌함을.

한 번 알게 된 쾌락은, 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용서받지 못하는 행동이란 걸, 네네도 지식으로 알고 있었다. 모친에게 폐를 끼치게 될 거란 것도.

그러니, 네네는 처음엔 참고 있었다. 모친을 좋아했던 그녀였기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그 살인을 저지른 1년 뒤, 그 일이 벌어졌다.

네네의 모친이 실종된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인간을 저렇게 무참히 죽여 놓고도, 딱히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생활하는 자신의 딸의 모습. 그 인간으로서 이질적인 모습을 참지 못하고, 어디론가 떠나 버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네네의 '족쇄'도 풀리게 되었다.

학교에서, 노상에서, ──비합법적인 지하 투기장에서. 네네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자신의 몸에 담겨 있는 힘의 해방에 취해 갔다.

마음에 안 드는 녀석, 눈독에 든 녀석, 자신보다 훨씬 큰 어른.

무엇 하나, 네네의 재능에 당해낼 수 없었다. 쓰러뜨리고, 짓밟고, 마음대로 부수고, 울고불며 용서를 구하게 만들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대로 농락하다 처리해 버렸다.

충동이 이끄는 대로,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혼이 바라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간다. 그런 폭력을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에, 붙게 된 별명이 바로──《야차 공주》.

중학교에 들어설 때, 네네는 서일본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악동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중3이 되었을 때.

《마도기사》가 되기 위한 진학을 맞이할 그 해에, 네네의 이름이 서일본에 그치지 않고 전국에 알려지게 된 사건이 벌어진다.

일본을 널리 장악하고 있는 폭력배 집단이 운영하는 비합법 지하 투기장. 그 곳이 일제히 적발되어, 투사로서 소속되어 있던 네네가 체포된 것이다. 단순한 상해 사건에 그치지 않은, 반 사회성 집단과 결탁한 조직적인 범죄. 유소기에 벌인 살인을 필두로 산더미같은 전과를 갖고 있었기에 요주의 인물이기도 했어서, 블레이저를 관리하에 두기 위해 온 기사 자격 박탈을 극히 꺼려하던 《국제 마도기사 연맹 본부》도, 이번만큼은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 연맹에 가맹한 이후 처음으로 기사 자격 박탈(정확하게는 네네는 아직 기사학교에 진학하지 않았기에, 박탈이 아닌 학생기사 자격의 발행 중지 처분이 되겠지만, 의미로 치자면 같다)을 신중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

마침 그런 때였다.

딱히 목표도 없이, 주변에 자신을 이끌어 줄 어른도 없이, 정신적인 성장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퇴폐하게 살아갈 뿐인 네네의 인생에,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

그 날, 경찰서 장관 히자키는, 쿄토의 경찰병원을 방문했다.

《야차 공주》를 만나고 싶다.

그를 찾아온 한 인물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하지만

"이, 이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히자키는 안내받은 《야차 공주》의 병실의 광경에 아연실색했다. 그곳은 다친 범죄자를 수용하는 병실이 아닌, 특정의 중요 인물을 맞이하기 위한 VIP룸.

네네는 그 10평 정도 되는, 호화찬란한 조도품에 장식된, 커다란 일류 호텔의 스위트 룸 안에서, 안마의자에 깊이 몸을 뉘인 채, 콧노래와 함께 발톱의 네일아트를 받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서장! 이게 대체 뭔가!? 어째서 체포된 《야차 공주》가 경찰 병원의 VIP룸을 혼자서! 그것도 안마의자에 앉아 TV까지 보고! 그리고 저, 손톱에 바르는 저런 걸 바르고 있는 거지!?"

"장관님. 네일이라 하는 겁니다."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야! 이 상황을 설명해 봐!"

굵직한 목소리로, 히자키는 여기까지 자신을 안내한 시모가모 경찰서장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여기에 깡마른 대머리 서장은, 곤란해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려 했지만.

"아. 거기 아저씨. 내가 부탁한 거, 사 왔어?"

그 네네의 부름에 히자키에게서 시선을 떼고, 네네를 향해 돌아선 뒤

"네. 물론입니다."

사회적 미소를 띠며, 자신의 딸보다 어릴 터인 소녀에게 매끈매끈한 머리를 몇 번이고 숙였다.

"부탁하신 경복당의 킨츠바입니다. 받으십시오."

"오~ 이거지, 이거. 다과 하면 이거 아니겠어? 아침 일찍부터 줄서지 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 참 큰일이라니까. 고마워~ 아저씨도 하나 먹을래?"

"아뇨. 전 지금 단 것은 삼가고 있습니다. 지병이 있어서 말이죠……하하"

"그래? 유감이네. 하지만 건강은 신경써야지."

"그렇죠."

" " 아하하하하! " "

"뭘 태평하게 대화나 하고 앉아 있는 거야!?!?"

담소를 나누는 둘을 향해, 히자키는 분노의 일갈을 내뱉었다.

"서장! 《야차 공주》는 경찰 병원에 수송되었다고 들었네만, 이 꼴을 보아하니 저 녀석은 부상을 입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그럼 지금 당장 구치소에 처박도록 해! 저 꼬맹이는 연맹 본부가 기사 자격 발행을 중지시킬지도 모르는, 일본이 연맹에 가맹한 뒤로 한 번도 없었던 전대미문의 문제아라고! 그런 녀석에게 VIP대우를 해주고 있다는 게 세간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경찰의 권위가 실추될 걸세!"

그런 일은 있어선 안 된다.

그렇게 히자키는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설령 경찰서 장관님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따를 수는 없습니다."

서장은 이걸 거부했다.

"왜냐면, 이 명령은 저희에게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겨라'라는 명령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뭣이!?"

"장관님은 한 가지 커다란 착각을 하고 계십니다. 그녀를 체포하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그녀를 체포하여 구류한다? 저희 쿄토 부의 경찰에 그 정도의 실력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흰 그녀를 체포해 둔 게 아닙니다. 가능한 한 극진하게 대접하여, 무엇 하나 부자유스러울 게 없는 의식주 생활을 마련하고, 그녀를 '여기에 머무르게 하고 있을' 뿐이죠. 그것이 저희에게 가능한 한계이니, 더한 것은 불가능합니다."

"무, 무슨 한심한 소리를……! 일본엔 이 꼬맹이보다 강한 《마도기사》가 있을 것 아닌가! 《심판의 번개》 카이에다나 《검랑》 키바 젠이치라든가 말일세!"

"그렇네요. 그들이라면 어쩌면 그녀를 잡아둘 수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들이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몇십분이나 걸릴까요? 그녀는 마음만 먹으면 그 사이에 경찰 병원 일대를 괴멸시킬 힘을 갖고 있습니다. ……아니, 10분도 걸리지 않겠죠. 실제로 그랬으니까요."

"무, 무슨 말이야?"

되묻는 히자키에게, 서장이 답했다.

"발표한 바로는 지하 투기장에 경찰과 기사단이 일제히 돌입하여 이들을 모두 검거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저희 쿄토 부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투기장을 운영하고 있던, 일본에 널리 퍼진 폭력단과 그녀 사이에 금전적인 트러블이 일어난 결과, 그들은 그녀의 역린을 건드려 혼자서 괴멸당한 것뿐이에요. 감시 카메라 영상을 통해 녹화된 전투 시간은 1분도 채 되지 않았죠. 그녀는 고작 1분 만에 도시 한 구획을 통째로, 일본 최대의 광역 폭력단을 말 그대로 처부숴 버린 겁니다. 저희는 그 소란이 벌어진 뒤, 부러지지 않은 뼈가 없을 정도로 전신이 손상된 그들을 구속한 것 뿐이죠.

"크윽~~~~~!"

"경찰로서의 프라이드는 제게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목숨과 맞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부디 이해해 주십시오."

"으극……!"

서장의 창백한 얼굴에, 히자키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것은 지금, 쇠사슬로 묶어 두지도, 우리 속에 넣어 두지도 않은 맹수라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피아의 실력차를 판단하고 해야 할 행동을 하고 있는 서장에게, 네네는 기분 좋은 듯 웃었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나 서장 앞에 선 다음, 그의 넥타이를 꼭 쥐고, 뺨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아저씨는 솔직하고 착한 아이라니까. 마음에 들었어. 오늘 밤 한가해?"

"아, 아뇨, 저는……"

"한가하지? 응?"

긍정 외엔 인정하지 않는다.

소녀의 가늘게 뜬 눈이 발하는 날선 칼날과도 같은 안광에, 다 큰 어른이, 매끈하게 벗겨진 이마에 땀방울을 맺으며, 전신을 경직시켰다.

"아, 네…… 물론, 이죠.."

"그럼, 오늘 밤 이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서장의 순종적인 태도에, 네네는 피학적인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그 미소에서 곧바로 불쾌한 표정으로 바꾼 뒤, 시선을 방 입구에 서 있는 히자키에게 보냈다.

"……거기에 비해, 이 쪽의 아저씨는 되게 짜증나네."

"커헉!?"

그 순간, 네네의 눈에서 요염한 빨간 빛이 반짝였고, 동시에 히자키가 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히자키는 눈을 뒤집고, 착란에 빠진 채 필사적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글겅ㅆ다.

마치, 무언가를 떼어내려는 듯이.

하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음에도, ──히자키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치 목을 잡힌 채 힘으로 들어올려진 것처럼.

아니, 그건 비유법 따위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네네가 중력의 힘을 이용해 보이지 않는 팔을 만들어 히자키의 목을 조르고 있었던 것이다.

"저기, 좀 높아 보이시는 아저씨? 난 말야. 열받게 하는 녀석이 가장 싫거든? 특히 날 즐겁게 해 줄 정도의 힘도 없는 주제에 태도만 떵떵거리는 녀석은,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야. ──저기, 아저씨. 당신도 그 망할 아버지 놈처럼 핏덩이로 만들어줄까?"

"악, 히이이익……!"

히자키도 직업상 수많은 흉악 범죄자를 봐 왔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이 소녀는, 그들과 같은 눈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처럼, 인간으로서 당연한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빠져나가 있는 것을.

따라서, 단순한 협박 같은 게 아니다.

대답을 잘못 했다간 이 소녀는 곧바로 자신의 목을 꺾어 버릴 것이다. 그걸 알게 된 순간, 히자키의 온몸은 한심하게도 부들부들 떨렸고

"모, 목숨만, 은……"

키이이잉───

갑자기, 히자키의 몸이 지지대가 사라진 듯 지면에 떨어졌다. 여기에 네네는 눈을 휘둥그레하게 뜨고, 경악했다.

지금 무언가가, 마치 쇠로 된 챙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난 순간, 중력으로 만들어낸 팔이,

'잘렸어?'

"효효효. 그래~ 이게 그 소문으로만 듣던 《야차 공주》구먼~"

"읏──!"

"야차라는 성대한 별명이 붙어 있길래 어떤 괴물 같은 여자애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장난꾸러기인가 보이~"

목소리가 들려온 건, 기침을 하고 있는 히자키의 뒷쪽. 열려 있는 문 너머.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건, 지팡이를 짚은 채, 굽 높은 게다를 신고 있는, 옛날식 저고리를 입고 있는 대머리의 몸집 작은 노인.

그의 등장에, 네네는 강한 경계를 내비쳤다.

"보통내기가 아닌가 보네. 누구야, 넌."

거기에, 노인은 껄껄 웃으며, 자기 소개를 했다.

"난고 토라지로. ──귀여운 장난꾸러기구만. 오늘은 네게 좋은 이야기를 하나 해 주려 찾아왔지."

◆◇◆◇◆

난고 토라지로.

그 기사의 이름은, 네네도 알고 있었다. 이전에 벌어진 대전 속에서, 혼자 아무 부상 없이 이겨 나아갔던 《무결》의 기사.

일본인 중 유일하게 대륙의 《투신 리그》를 제압한 기사.

그리고, 대전의 영웅 · 쿠로가네 료마의 라이벌이라 칭송받은 남자.

무에 몸을 담고 살아가는 자라면, 그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고, 강한 경외심까지 느낀다. 하지만, 네네에게 그런 감정은 없었다. 네네는 네네 자신 이외에 그 누구도 존경하지 않는다.

믿지 않는다.

그러니, 그녀는 안마 의자에 다시금 깊이 앉으며, 다리를 꼰 채 내객용 소파에 앉은 노인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란게 뭔데?"

"그 전에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네만, 지금 자네 처우를 둘러싸고 국제 마도기사 연맹 본부와 일본 지부가 협의하고 있는 건 알고 있는가?"

"알고 있지. 뉴스에서 신물이 나도록 틀어 주고 있잖아. 정말 매일매일 똑같은 뉴스만 나오니, 수고도 가지가지라니까. 지하 격투 정도로 뭘 저리 오버하는지. 저런 곳은 하고 싶은 놈만 오니까 그냥 하게 놔 두면 되잖아?"

"효효. 뭐, 무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말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 반사회 세력의 자금원이 되어 있는 이상, 정부도 연맹도 무시할 수는 없어서 말이야."

하지만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하고 난고가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자네도 알고 있듯, 연맹 가맹국에 몸을 둔 블레이저는, '학생기사' 혹은 '마도기사'의 면허를 가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 존재를 인정받게 되지. 면허를 갖지 못한 자는 그 능력을 쓰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고, 평생 감시를 당하며 살아가게 된다네. 그래서야 자네도 살아가기 힘들겠지? 거기서 말일세. 자네의 신분은 내가 전투 기술 고문 스승을 맡고 있는 부쿄쿠 학원에서 책임을 지고 맡도록 하고, 그 처분을 일시 관찰에 그치게 할 수 있도록 연맹 본부에 말해 두겠네. 자네가 해야 할 건 중학교 졸업 후, 부쿄쿠 학원에 진학하여 내 밑에서 3년간 수업을 받는 것. 그것만으로 자네의 이번 사건은 없었던 일이 되고, 《마도기사》 면허도 정상적으로 교부될 게야. 자네에게 있어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니지?"

그건 즉, 이제부터 네네가 벌일 행동을 난고가 전부 책임지게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체 어째서 그런 것을?

벽면에 선 채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히자키 일행은 곤혹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네네는 그 목적을 알 수 있었다.

이 난고의 권유에, 네네는 "그렇구만.." 하고 중얼거렸다.

"즉 다시 말하자면, 《칠성검무제》를 노린 스카우트 제의구만?"

"횻효효. 이해가 빨라서 다행이구먼. 그래서, 어떡할 겐가? 이 제안을?"

난고는 부정하지 않고, 답을 요구했다.

네네는 즉답했다.

"헛소리 하지 마. 할아범."

"흠?"

난고의 제안은 한 가지 전제를 두고 있다. 그건, 사이쿄 네네가 《마도기사》의 자격을 바라고 있어야 한다는 것. 확실히 그건 태어나 처음으로 능력을 이용해 생활을 꾸려나가는 데에 있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일반 블레이저에 한한 것.

네네는 거기에 자신이 어울릴 것이란 생각은 하고 있지 않았다.

"애초에 《마도기사》 따위에 난 흥미 같은 건 없어. 내 힘이 있으면 면허 따위가 없어도, 야쿠자에서 테러리스트까지 해서, 연맹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은 대우를 하러 찾아와 줄 테니까."

그러니 이런 이야기를 받아들일 필요 따위 없다고, 그녀는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네네는 학교라는 곳이 정말 싫었다.

학생도, 교사도, 자신을 무서워하고, 거리를 두고.

하지만 그렇다고 흥미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어서,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며 험담을 한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똑바로 다가와서 정면으로 얼굴에 침이나 뱉으면 될 것을, 그런 배짱도 없이, 이쪽이 다가가면 꾸벅꾸벅 머리를 숙이며 한결같이 아부를 떤다.

그런 하찮은 녀석의 모임.

정말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기에, 지하 격투 흥행의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이다. 적어도, 그곳은 하찮은 바깥 세상보다 훨씬 자극적이었기에. 자신은 그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게 성미에 맞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걸 바라고 있을 터.

자신의 앞에서 사라져 버린 모친과도 같이.

자신이라는 괴물과 같은 세계에서 사는 것을, 그들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양자에게 이득인 것 아닌가.

그런 네네에게, ──난고는 말했다.

"그렇게 악당 녀석들의 일회용 졸개가 되어 버릴 거란 말인가? 정말 재미없는 인생을 선택하는구먼.":

"아아?"

"그런 희소한 재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본인의 머리가 거기에 따라가지 못해서야. 돼지 목에 진주구만."

그 도발로도 들릴 수 있는, 아니. 틀림없는 그 도발에, 네네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난고의 앞에 똑바로 선 채, 짓밟듯 난고의 앞에 있는 테이블을 부숴버렸다.

"……내가 일회용품 정도로 끝날 실력일지, 네놈이 직접 시험해 볼래? 할아범?"

"효효효. 무섭구먼. 요즘 꼬마 공주님들은. 이게 그 소문으로만 듣던 '불량배 마마' 라는 건가?"

"아직 애는 없거든!"

그런 나이로 보이냐? 하고 분개해 하는 네네에게, 난고는 껄껄 웃었다.

"뭐, 이런 일선에서 물러난 노인을 두들겨 팬다 할지라도 네 자랑거리는 되지도 않겠지. 하지만 세계는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멀다네. 지금 자네의 실력으로 통하는 곳은 고작 해 봐야 2류 정도. ……그도 그럴 것이, 국내의 동세대 중에서도, 자네보다 훨씬 강한 공주님이 있으니까 말일세."

이 말에, 이번엔 네네가 코웃음을 쳤다.

"핫!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어이가 없네. 동세대 중에 나보다 강한 녀석이 있다고? 리틀 전에 참가했던 적은 있었지만 그런 녀석은 한 녀석도 없었어! 뭔 녀석이건 죄다 조금만 힘을 발휘하면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녀석들 뿐이었다고. 리틀전이 그래서야 시니어전도 수준은 비슷하겠지."

"그럼 내기를 하나 해 보겠나?"

"……뭐? 내기라고?"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난고를 바라보는 네네. 대체 무슨 내기란 말인가?

거기에, 난고는 그 내용을 밝혔다.

"이 노인이 자네와 '그 아이'와의 대전을 맞춰주겠네. 거기서 모의전을 해 보고, ……자네가 진다면 얌전히 부쿄쿠에 진학하여 내 아래에서 보호관찰을 받는 게야."

"그거, 내가 이기면 어떻게 되는 건데?"

"내, 내 몸을 자유롭게 써도 괜찮아♡"

"뒈질래?"

"횻효효! 농담이네, 농담. 뭐, 이거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구먼. 그 때엔 뭐든 바라는 걸 하나 들어 주지."

당일까지 생각해 두도록 하게나.

그리 말한 난고에겐……짜증이 느껴질 정도의 자신감이 있었다. 이 내기에 자신이 질 것이란 요소 따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듯이.

그것이,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열받는다.

엄청 열받는 할아범이야.

이렇게 바보취급 당해 놓고 그냥 끝나 버려선,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거기에

"뭐, 할아범은 내가 이겼을 때, 알몸 바람으로 시조 거리에서 춤이라도 추게 하도록 하고, 그 동세대 녀석에게는 좀 흥미가 가긴 하네."

늙은 몸이 되었다 할지라도, 《투신》이라 불렸던 기사의 추천. 아무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하 투기장에서도 호적수를 찾을 수 없어 쌓여만 가던 욕구를 발산할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거기에, 어차피 달리 할 일도 없으니 여기서 빈둥빈둥 있는 것보단 훨씬 나은 심심풀이가 될 것이다.

"그래. 어차피 지하 투기장이 망해 버려서 나도 심심했던 참이니까."

"그럼, 결정이구먼."

"그래. 그 녀석이 《야차 공주》의 이름을 듣고 오줌 지리고 도망을 가게 될 정도라면…… 심심풀이로 격하게 괴롭혀 주겠어."

◆◇◆◇◆

《야차 공주》보다 강한 소녀.

난고가 그리 단언한 인물에게 보낸 연락은 당일에 연결되었고, 그녀는 난고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즉, 일본에 악명을 떨치고 있는 《야차 공주》와의 결투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게 네네는 다음 주, 내기 회장으로 지정된 도쿄로 향했다.

둘의 모의전 무대는──하군 학원.

도쿄의 마도기사 학교의 제 3훈련장을 통째로 빌려 열리게 된다. 계쩔은 봄날. 이미 종업식이 끝나 인파도 드문드문해진 학원 내를 빠져나가, 네네는 난고의 안내를 받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모의전용 링 위에서, 가볍게 웜업을 하며 상대의 도착을 기다렸다.

『저게 그 소문의 문제아인가 봐.』

『그렇네. 확실히 분위기가 있어.』

『하지만 난고 선생님은 왜 저런 문제아를 부쿄쿠에 진학시키려 하는 걸까? 뭔가 아는 게 없나, 쿠로가네 군?』

『……아뇨, 딱히 아는 건 없습니다. 하지만 《야차 공주》의 능력은 실로 탁월하지요. 그냥 놓치는 건 아쉽습니다. 일본 지부의 입장으로선 그녀가 개심하여 부디 이 나라의 마도기사로서 일을 맡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본심입니다. 그 《투신》께서 책임을 지고 돌봐 주신다고 한다면, 좋은 기회이기도 하겠지요.』

『뭐, 박탈 처분자를 내는 건 국가로서의 수치지. 우리 정부로서도 그게 가장 좋긴 하겠네만……』

『하지만 저건 판단 능력이 미발달된 유소기라고 하더라도 살인을 저지른 자이잖나. 언젠가 일본의 마도기사의 간판을 더럽히지는 않겠나?』

『그녀에게 엉망으로 당하고, 조금은 얌전해졌으면 좋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다 들려 오는 목소리. 그건 링의 구석, 멀리서 링을 바라보고 있는 양복 차림의 남자들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이 나라의, 말하자면 중진들. 국가의 요직을 맡고 있는 자들이다.

연맹 본부까지 상소된《야차 공주》의 처우는, 그들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개중엔 이전에 네네에게 심한 꼴을 당한 경찰서 장관 · 히자키의 모습도 있었다.

'상당히 신뢰받고 있는데그래.'

웜업을 하며 양복 신사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네네의 표정이 재미없다는 듯 찡그려졌다. 그건 그들의 대화가 모두, 네네의 패배를 전제로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네네가 이기는 것을 생각지 않고 있다.

"마음에 안 들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의 태도도, 자신과의 시합을 흔쾌히 승낙한 상대도. 대단한 자신감이다. 이렇게까지 낮보인 건 대체 언제 이후였을까. 대체 어떤 녀석일까.

짜증과 함께 흥미도 더욱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인물이 나타났다.

"오! 오오! 츠키카게 군! 이 쪽이네, 이 쪽!"

곁에 서 있던 난고가 갑자기 소리를 치며, 손짓을 했다. 자연히 네네도 그가 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이 향했고

"─────"

숨을 삼켰다.

큰 키를 가진 단정한 남자를 따라, 링에 올라선 소녀에게 눈이 빼앗겨 버렸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길고 윤기나는 흑발.

옷 위로도 알 수 있는 풍만한 가슴에, 쭉 뻗은 유려한 각선.

그리고, 똑바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깊은 색의 눈동자.

아름다운 소녀, 라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이 녀석인가.'

확신했다.

이 소녀가, 오늘 자신의 상대라는 것을.

《야차 공주》가 서 있는 링 위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똑바로 자신을 바라본 채로 걸어올라왔다. 시선이 교차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눈을 돌린 적 없이 똑바로 앞으로 걸어 나아가고 있었다.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언제 이후일까?'

이렇게 똑바로, 얌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본 사람을 본 것은. 그것도 이런, 머리칼도 손톱도 예쁘고, 피부도 매끈하고, 포근한 가정 속에서 자란 것 같은, 아무 고생도 하지 않아 보이는 '아가씨'가 말이다.

'……더더욱, 맘에 안 들어.'

"여어, 츠키카게 군. 갑자기 무리한 부탁을 해서 미안하네. 고맙네, 고마워."

"그러게 말입니다. 선생님. 그녀는 아직 정식적으로 하군 학원의 학생도 아닌데, 모의전이라니……"

"효효효. 뭐, 괜찮지 않나. 본인은 흔쾌하게 수락해 주었으니. 그렇지, 타키자와 군?"

"네. 다름 아닌 츠키카게 선생님과 난고 선생님이 하신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거기에 전 제 능력의 발현이 늦었기에, 시합 경험이 별로 없으니 이 모의전은 제게 있어도 좋은 공부가 될 겁니다."

타키자와라고 불린 그 좋은 곳에서 자란 소녀는 애교 있는 미소와 함께 난고에게 답한 뒤, 다시 한 번 네네를 바라보며 악수를 요청해 왔다.

"올해부터 하군 학원에 입학하게 된 타키자와 쿠로노입니다. 오늘 모의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이쿄 네네 양."

"……………"

방긋이.

아무 거리낌 없이.

여기에 네네는, 응하지 않았다.

그 뒤

"확실히 리틀 때나 시니어에선 못 본 얼굴인데. 방금 능력의 발현이 늦었다고 말했는데,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블레이저가 된 거야?"

"작년 봄 때쯤이네요. 그러니 시니어 등록도 늦었지요."

"그렇구만. 그래서야 자기 입장도 이해하지 못할 만도 하지."

그리 말하고, 네네는 발을 빙 돌려, 쿠로노를 등지고

"좋은 공부, 라. 좋아. 철없는 꼬마 공주님에게 선배님께서 공부를 시켜 주도록 하지. 네 년이 얼마나 위험한 상대에게 싸움을 걸어 왔는지를, 싫증이 날 정도로 말야."

어깨 너머로 분노에 불타오르는 눈으로 한 번 바라보고, 모의전의 초기 위치로 이동했다. 그런 네네를 보고, 쿠로노를 데리고 온 츠키카게 바쿠가는 눈썹을 찡그렸다.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인가요. 저도 교사를 맡은 지 꽤 오래 됐습니다만, 저렇게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는 처음 보았어요. 확실히 그냥 놔둘 수만은 없는 아이로군요. 저런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미성숙한 건…… 그녀 자신에게도, 그리고 그녀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불행밖에 되지 않을 거에요. 그런 그녀를 솔선하여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려 하는 그 자세, 같은 교육자로서 존경하고 있습니다."

"효효효. 그게 아니라네."

"네?"

난고의 똑바른 부정에 츠키카게가 깜짝 놀랐다.

여기에, 난고가 답했다.

"난 그렇게까지 친절한 사람이 아니고, 똑부러진 어른도 아니라네. 그저, 저 꼬마애가 날뛰는 모습을 비디오로 보고 생각한 것 뿐이라네, ……이 재능을, 내 손으로 키워내 보고 싶다고."

그리고──

"올해의 칠성검무제, 다른 사람 따윈 필요도 없이 그저 홀로 이겨 나아가, 칠성검무제 사상 최강의 학생기사라는 평가를 그저 손쉽게 거머쥐게 될 천재에게, 도전해 보고 싶다고──말이지."

두터운 눈꺼풀 너머로, 쿠로노를 노려보고 있었다.

"부디 봐주지 말고 해 주게, 타키자와 군. 효효효~"

그리 말하고 링에서 내려가는 난고.

여기에, 츠키카게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정말 곤란한 사람이라니까. 타키자와 군. 딱히 무리할 필요는 없어."

"무리요?"

"그래. 확실히 저 소녀는 어른의 입장에서 그냥 놔 둘 수 없겠지만, 그건 우리 어른이 져야 할 책임이야. 아직 학생기사인 네가 무리할 필요는 없어."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 츠키카게의 배려에 쿠로노는 상관없다고 단언했다.

왜냐면──

"무리가 필요한 상대까지는 아니니까요."

"……!"

그 말엔 아무 흔들림 없는 자신이 깃들어 있었다. 쿠로노가 블레이저의 능력에 눈을 뜬 건, 1년 전. 중학교 2학년 때이다. 상당히 늦은 개화. 따라서, 리틀이나 시니어 리그에 등록하는 데에 늦어, 일반적으로는 완전한 무명 상태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압도적인 능력은, 꽃핀 순간부터 이 나라의 중진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 나라의 장래를 짊어지게 됨이 틀림없다.

그런 커다란 기대와 함께.

그리고 그런 커다란 기대를, 이 소녀는 그 가녀린 몸으로 받고, 잘 완수해내고 있다.

믿음직했다.

난고는 《야차 공주》를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확실히 츠키카게가 봐도 《야차 공주》는 강하다. 뛰어난 수재다. 하지만, 그래도 츠키카게는 쿠로노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아니, 승리라고 하는 건 이상하다.

승리라는 건, 싸움에서 이기는 것. 그 영광.

그렇다면, 그것을 승리라고 부르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싸움이 될 리가 없을 테니까.

'그녀는 타키자와 군에게 손끝 하나 닿지 못할 거야.'

그렇게, 링 위엔 두 소녀와, 시합 개시를 선언할 심판만이 남았고

"그럼, 지금부터 모의전을 개시한다! 룰은 중학생 리그 공식 룰! 10카운트 3다운제로 시행한다! 양 측은 디바이스를 환영 상태로 전개하도록!"

"매료시켜 보자고! 《홍색봉》!!"

"영원을 새겨라. 《프로파테르》, 《엔노이아》"

두 소녀가 각각의 디바이스, 홍색의 두 부채와 흑백의 권총 두 자루를 현현시키는 것을 확인하고

"시합 개시────!"

심판이 시합 개시를 알렸다.

◆◇◆◇◆

신호와 동시에 네네는 몸을 크게 웅크렸다. 찰나의 순간에 다리에 힘을 모아, 돌격 자세로. 상대는 실전에 익숙하지 않은 루키. 자신을 앞에 두고도 겁먹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즉, 모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 주변의 어른들에 의해 괴물과 같은 우리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그 따스한 태도도 이해가 간다.

뭐, 저 노인들이 자신만만하게 저 소녀의 승리를 믿고 있는 이상, 나름 재능은 있을 터.

하지만, 상대의 실력을 간파하지도 못하는 얼간이가 이길 수 있을 만큼, 이 세상의 결투는 호락호락한 게 아니다.

──후회하게 해 주겠어.

내 앞에 서 있는 것을.

날 잘못 본 것을.

시합은 3넉다운제. 유예는 나름 충분하다.

환상 형태라고 해도, 고통은 그대로 전해진다.

그냥 울려 버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저 예쁜 얼굴이 눈물과 콧물에 범벅이 될 때까지 두들겨 패고, 실금할 때까지 능욕하여 수치를 안겨 주겠어……!

"시작부터 제대로 가 보실까!!"

혼탁하게 비뚤어진 감정을 불씨 삼아, 자신의 오체를 발화시켰다. 양손에 들린 쇠부채를 날개처럼 펼친 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무모한 적을 향해 쇄도했다.

공격을 가하려 한, 그 찰나였다.

네네는 눈앞의 적을 놓쳤다.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는데.

그 모습이,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에?"

어째서.

그리 의아하게 생각할──틈조차 없었다.

철컥.

네네의 후두부에, 딱딱한 감촉.

튕겨나갈 기세로 뒤를 돌아보는 네네.

그 눈앞엔, 백은색 총구를 들이대고 있는 쿠로노가 서 있었고.

굉음이 세 발.

몸을 꿰뚫는 영체 탄환이 네네의 머리를 꿰뚫었고, 네네의 몸은 바닥에 쓰러졌다.

◆◇◆◇◆

"다, 다운!!"

『 『 『우오, 오오오오오!!!!』 』 』

시합 개시 직후의 치명타에, 견학을 나온 양복 신사들이 크게 술렁였다.

『수, 순식간이야. 아무것도 못 한 채로 승부가 끝나 버렸어!』

『시간을 관장하는 인과 간섭계 능력. 말로는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압도적일 줄이야──』

그렇다. 시간에 대한 간섭을 행하는 능력. 그것이 바로, 타키자와 쿠로노의 능력. 최강의 계통이라 일컬어지는 인과 간섭계. 그 중에서도 한층 더 자유도가 높은, 강력한 특성이다. 그들이 쿠로노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던 것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네네의 중력을 다루는 능력도 공격력 측면에선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뛰어남을 자랑하지만, 이 세상의 시간마저도 자유자재로 다루는 쿠로노의 앞에선 불리하기 짝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능력의 강력함도 강력함이지만, 특히 그 능력을 다루는 실력도 뛰어났다.

"호오~ 강한데. 네네가 공격을 하기 위해 발차기를 깊게 찔러 넣은 순간, 《클록 업》을 가동시켜 자신의 시간을 가속. 등 뒤로 돌아가 용서 없는 기습을 가할 줄이야."

그 실력에 난고도 혀를 내둘렀다.

"아직 디바이스가 현현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싸우는 방법을 잘 알고 있군. 역시 뛰어난 지도력이야. 츠키카게 군."

"전 조언을 해 주는 정도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다 저 애의 힘이지요."

그리 답하고, 츠키카게는 눈부신 것을 바라보듯 링 위의 쿠로노를 올려다보았다. 쿠로노는 중학교 2학년 때 능력이 발현되자마자, 연맹 일본 지부에서 하군 학원에서 1년이나 더 이르게 실전적인 지도를 받도록 특별 조치를 내려주었다.

어떻게 보면 불평등한 조치라 볼 수 있겠지만, 국가에게 있어 우수한 블레이저는 재산이나 다름없다. 온 세계를 뒤져 보아도 아주 희소한 '시간'의 능력자라면, 특별 취급을 받아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즉, 타키자와 쿠로노는 국가가 인정하고, 영재 교육을 받는 초 엘리트 학생인 것이다. 그 교육은 다 큰 어른도 받기 힘든 과혹한 것이었지만, 쿠로노는 그 모든 것을 어렵지 않게 클리어해냈다.

소녀의 청춘. 그 귀중한 시간을 희생하는 것도 무릅쓰고.

츠키카게는 알고 있다. 그녀가 자신의 힘을, 거기에 동반된 '의무'가 어떤 것인지를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재능이 있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책임감도 강하다.

실전 경험이 적은 점 따위, 핸디캡도 되지 않는다. 그저 여기저기 날뛰며 힘자랑이나 하기 좋아할 뿐인 소녀 따위, 그녀의 적수가 아니다.

그렇다면, 결과는 당연하다.

그렇기에

『자, 잠깐! 저 애. 일어서는데!』

"읏!?"

츠키카게는 네네가 몸을 일으키는 것에 극히 경악했다.

"어째서…… 확실히 총알은 머리를 꿰뚫었는데."

"환상 형태에 의한 대미지는 말하자면 강한 최면과도 같은 것. 고통이나 기능부전을 현실에서 벌어진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그 모든 건 피격자가 그리 생각하는 것뿐. ──그걸 떨쳐버릴 만큼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다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지. 아직 할 수 있네, 저 아이는."

난고가 바라보는 곳. 그곳엔 네네가 마침내 무릎을 일으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카운트를 8까지 센 심판을 노려보며

"카운트 그만 해! 죽고 싶냐!"

"더 할 수 있겠나?"

"당연하지!"

힘차게 포효하는 네네. 그러나 폭포처럼 쏟아지는 식은땀과 거친 호흡은 숨길 수 없었다. 당연하다. 환상 형태는 육체에 대미지를 주지는 않지만, 고통은 그대로 느껴진다. 두개골이 삐걱이고, 의식은 흐릿하고,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두통에 척추가 비틀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래.. 시간을 조작하는 능력이라……! 저기 아재들이 여유롭게 관전하는 것도 납득이 갔어."

그런 상태임에도, 네네는 싸우기 위한 사고를 멈추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이 무슨 짓을 당했는가. 그걸 이해하고, 쿠로노의 능력을 간파했다.

여기에, 쿠로노는 깜짝 놀란 듯 눈을 부릅뜬 뒤, 미소지었다.

"네. 노블 아츠 《시간배속》. 자신의 고유 시간을 세계의 1초에 비례해 늘리는 능력이지요. 뭐, 지금 쓴 10배속이 현재 저의 한계이지만요. ……그건 그렇고, 굉장하네요. 환상 형태라고는 해도 머리가 꿰뚫렸는데, 그래도 일어서실 수 있다니."

"……크윽.."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흘러나오는 칭찬의 말이, 네네의 신경의 역린을 계속해서 건드렸다.

"잘난 듯이 처 지껄이지 말라고!!"

그 직후, 네네가 전신에서 돌풍과도 같은 마력을 뿜으며, 두 손에 든 쇠부채를 펼치고 쿠로노를 향해 쇄도했다.

거리를 좁히고, 접근전을 펼치려는 노림수.

여기에, 쿠로노는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녀의 디바이스는 권총. 접근전엔 아무런 이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시간배속》을 구사해 네네의 돌진을 허사로 만들어──

"《시간배속》……!"

"놓칠까보냐!"

"으읏!"

하지만, 쿠로노는 네네를 떨쳐낼 수 없었다. 네네는 쿠로노가 시간을 가속시켜 도망칠 방향으로 다시금 도약하여, 그녀를 계속해서 추적했다.

"타키자와 군의 《시간배속》을 따라가고 있다고!?"

경악하는 츠키카게에게, "그게 아닐세." 하고 난고가 수정했다.

"네네가 따라가고 있는 게 아닌, 링 위의 중력을 무겁게 만들어 타키자와 군의 속도를 늦춘 걸세. 처음은 기습을 받아 버렸지만, 10배 더 빨리 움직이는 정도는, 저 애라면 곧바로 대응해 낼 수 있지."

그야말로, 네네의 풍부한 전투 경험이 만들어낸 전략. 그녀는 지하 투기장에서, 평범한 중학생이라면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위험한 시합을 수도 없이 경험해 왔다. 그러던 중에, 시간을 조작하는 능력자를 만난 적은 없지만, 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적 같은 건 수도 없이 만나 왔다. 따라서, 대응해 낼 수단도 당연히 보유하고 있다.

"깔린 개구리처럼 뻗지 않은 건 칭찬해 주지! 하지만 그렇게 느릿느릿 움직여서야, 날 따돌릴 수는 없다고!!"

네네는 《지박진》에 속도가 떨어진 쿠로노를, 초질량의 중력파를 두른 《홍색봉》을 치켜들고 공격했다. 난폭하게 휘두를 뿐인, 기술도 아무것도 없는 동작이었지만, 네네의 운동능력과 전투 센스는 그 모든 것을 채워 주었다.

한 쌍의 쇠부채는 그 질량으로 링을 파괴하며, 조금씩 쿠로노와의 거리를 좁혀 가고 있었다.

"이겼어!"

마침내, 치명상이 닿을 거리까지 그녀를 추적했다.

사선으로 크게 내려 베기.

《시간배속》이 있더라도, 회피는 불가능한 타이밍. 네네는 처음 당한 기습을 돌려주고자 혼신의 공격을 가했고

"하지만 난고 선생님. 상대를 느리게 만들 수 있는 건 그쪽 뿐만이 아니랍니다."

"《시간동결》

내리치려는 자세 그대로, 갑자기 네네의 몸이 멈춰 버렸다. 마치 얼어붙은 듯이. 관성의 법칙을 무시하고, 우뚝 멈춰 버린 것이다.

그렇다. 쿠로노는 능력을 사용하는 방식을 바꿔 버린 것이다. 자신의 시간을 조작하는 게 아닌, 네네의 시간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쿠로노는 주변의 공간 채로 네네의 시간을 멈춘 채, 가볍게 백스텝.

10미터 정도 거리를 둔 뒤 흑백의 권총 두 자루를 연사. 좌우 10발씩. 네네를 향해 쇄도하는 합계 20발의 총탄은, 그녀의 전방에 있는 공중에서 우뚝 멈췄다.

그곳은 등속의 공간과 정지된 공간의 경계선이었고

"《클록 드로우》"

검은 총 《프로파테르》에서, 쿠로노가 11발째의 탄환을 발사한 순간, 유리가 깨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얼어붙은 시간이 다시금 움직였고

"카악──아, 아아아아아아악!?!?"

공중에 떠 있던 탄환이 일제히 네네의 전신을 꿰뚫었다. 회심의 일격을 가했을 거라 생각한 다음 순간 갑자기 날아온 탄막에, 네네는 방어조차 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모든 탄환에 명중당했다.

그 충격에, 네네의 작은 몸은 공중으로 날아갔고, 두 번째 다운을 맛보았다.

"다운!!!!"

"키, 키이이이이익……!"

석재 링 위에서, 네네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제기랄!! 나와 내 주변의 시간을 통째로 멈춰 버린 거냐……! 그리고 내가 멈춰 있는 사이에 총탄을 퍼부어 놓고……! 조작할 수 있는 건 자기 시간만이 아니었던 거냐고!"

저게 대체 무슨 능력인가.

공략법조차 보이질 않았다.

네네의, 열세에 몰려 있더라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 판단력과 사고력이, 반사적으로 절망을 알려 오고 있었다.

하지만

'재밌는데……'

빠득, 하고 네네는 이를 악물며 웃었다. 이전에 맛보지 못한 궁지에, 혼이 일깨워지고 있었다. 척 봐도 좋은 데에서 자라난 아가씨. 수많은 어른의 칭찬만을 받고, 신뢰만을 받고, 《야차 공주》를 앞에 두고도 눈을 돌리지 않은 녀석.

거기다, 거기에 걸맞은 강함까지 갖고 있다.

열받는다.

정말로 열받는다.

의붓아버지 이후일까.

이렇게 열받는 녀석을 만나본 건……!

'무슨 일이 있어도 이기겠어!!'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고통에 경련된 오체를 억지로 움직여, 몸을 일으켰다.

이를 악물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 아직도 일어설 수 있다고!? 괴, 굉장해……!』

『환상 형태라고 해도, 근성 하나는 끝내주는데.』

보통, 환상 형태라고 해도 치명타를 받으면 다시는 재기할 수 없다. 그런 건 시니어 리그 전체에서,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일. 하지만, 네네는 이미 두 번, 졸도하고도 남을 정신적 대미지를 받고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그 희소한 불굴의 정신에, 관전하고 있던 어른들도 무심코 감탄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상대하고 있던 쿠로노도 마찬가지.

"……잘 버티시네요. 하지만, 이제 그만하지 않겠어요? 사이쿄 양의 능력으로는 절 이길 수 없어요. 그건 사이쿄 양도 잘 알고 있지 않나요? 이 이상 쓸데없이 아픈 꼴을 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핫, 그딴.. 콩알탄 따위, 조금……도, 안 아프다고! 못생긴 년아!"

항복 권고를 악의 담긴 매도로 뿌리치며, 네네는 다시금 쿠로노를 향해 덤벼들었다. 이번엔 네네도 장거리포 공격.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쿠로노를 향해 《홍색봉》을 휘둘러, 거기에 깃들어 있던 중력파를 날려보내, 초승달 형태의 초질량 에너지탄을 발사했다.

"으라아아아아앗!"

"하아……"

그에 쿠로노는 한숨을 내쉬고, 모든 에너지탄과 함께 네네와 그녀의 주변 공간의 시간을 일단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네네의 옆까지 걸어나가, 총탄을 난사.

멈춘 시간의 경계선상에 탄막을 배치해 두었다.

이번 탄환 수는──방금의 3배인 60발.

그 광경을 등속의 시간의 공간 속에서 관전하고 있던 츠키카게는, 다시금 쿠로노의 힘에 경외감을 느꼈다.

네네는 결코 약한 소녀가 아니다. 아니, 그 힘은 명백하게 올해 일본 시니어 리그 우승자보다 위. 현 시점에서 이미 B랭크 이상의 힘을 확실히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네네조차, 쿠로노의 능력 앞에서…마치 '단순 작업'을 하듯 처리당하고 있다.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는 상대.

그리고 지금도.

담담히 나열된 탄막이, 시간의 빙해와 함께 네네를 향해 엄습했다.

이번에 다운되면 3번째 다운. 시니어 룰로 인해 넉아웃패.

승부는 났다.

난고는 네네를 쿠로노와 호적수가 될 그릇이라 보고 있었던 듯했지만, 이래서야 도저히──

"에?"

그렇게, 쿠로노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 츠키카게는, 다음 순간이 벌어진 사상에 아연실색했다. 60발의 모든 총탄의 궤도가, 부자연스런 궤도로 비틀려 네네의 옆을 빗겨나간 것이다.

"굉장한데! 공간 그 자체를 왜곡시켰어!"

옆에 있던 난고의 감탄에, 츠키카게도 지금 벌어진 불가사의한 현상의 이유를 알아챘다. 네네는 자신의 중력으로 주변 공간에 간섭을 일으켜, 시공간의 미궁을 만들어낸 것이다. 직진하던 탄환은 모두 그 미궁에 갇혀 왜곡된 시공간을 직진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정말 굉장한 아이야…!'

쿠로노의 총이라는 무장의 결점을 찌른 《클락 드로우》 파훼법. 이렇게나 완벽하게 위기에 내몰렸음에도, 한 치의 포기도 없었다.

계속해서, 쿠로노의 공격에 대응하고 있다.

기어 가는 속도로, 거리를 좁혀 가고 있다. 그 네네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포기하지 않는 그 강한 근성에, 츠키카게는 경탄을 느꼈다.

"핫──"

그리고 《클락 드로우》를 파훼한 네네는,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필중필살의 《클락 드로우》가 빗나간 상정치 못한 사태에 눈을 부릅뜨고 있던 쿠로노를 향해 도약했다.

완전히 좁힌 지근거리.

한 쌍의 쇠부채가 춤을 추었고──

"아……"

그 뒤 1초 후. 네네의 온몸이 탄환에 꿰뚫렸다.

"《클락 드로우》"

그 목소리는, 네네의 등 뒤에서.

네네의 시야에, 잔상조차 남지 않은 이동.

그것도 당연하다.

네네의 시간은 그녀가 도약한 순간부터, 다시금 얼어붙었으니까.

그리고

"공간을 왜곡시킨다면, 공간을 만들지 않으면 그만이다, 라……"

링 바깥쪽, 등속의 공간 속에서 일부 종시를 관전하고 있던 난고가 읊조렸다. 이번 《클락 드로우》를 막을 수 없었던 이유를.

그렇다. 쿠로노는 시간을 멈춘 공간의 테두리를, 네네에게 닿을 듯 말듯할 정도로 좁힌 뒤, 모든 총탄을 제로 거리에서 발사한 것이다. 네네가 지혜를 짜내, 온 힘을 다해 가한 도약을, 쿠로노는 오히려 화려하게 보일 정도로 여유롭게 뒤로 뛰어,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이 아이는, 진정한 천재야.'

싸움 속에서 얻는 영감. 상상력.

국가의 영재 교육만으론 익힐 수 없는 부분들이다.

이 재능은, 진짜다.

실전 경험이 없는 것이 유리한 점이 될 거라 난고는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도 확신하게 되었다. 지금의 네네가 무엇을 한다 하더라도,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유감이지만, 이번 결투는 여기까지───'

그렇게, 난고조차도 패배를 확신했을 찰나,

촤악!

하고, 땅에 무언가가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하고 바라보니, 네네가 쓰러지려 하던 자신의 몸을, 떨리는 다리로 버텨 선 채, 마지막 다운을 거부하고 있었다.

"크윽~~~~~~~~~~!! 헉! 허억! 하악!!"

『버, 버텨냈다!』

『저게 뭐야!? 대체 지금 몇 십발을 맞았는데!?』

"이미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치명상을 수십 번이나 당했는데……! 대체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까지……!?"

"───"

네네의 원념과도 같은 끈기에, 그녀를 여기까지 이끌고 온 난고조차도 경탄을 흘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놀란 건, 쓰러지지 않은 것보다……다운을 버텨 낸 네네의 표정이었다.

'웃고 있어……'

허세의 표정 따위가 아니었다. 이 벼랑 끝의 국면에서, 네네의 눈은 한 층 더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지, 않을……거라고! 나는, 강해. 네 년, 같은……반짝반짝 반짝이 공주님한테, 내가, 질 것 같아……!?"

"아뇨, 사이쿄 양의 패배에요."

"그딴 소리는 이기고 나서 지껄여……!!"

네네의 세 번째 쇄도.

하지만, 그 돌격에는 지금까지 보여 줬던 기세가 없었다. 딛고 있는 발은 흔들리고, 몸은 비틀거리고 있었으며, 치켜든 팔엔 조금의 힘도 담겨 있지 않았다. 이미 정신의 한계에 달해 있는 것이다.

이 이상은 위험하다.

츠키카게는 그리 판단하고, 난고에게 말했다.

"난고 선생님! 아무리 환상 형태라고 하더라도 이 이상의 가격은 정신에 심적 외상을 남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합을 중지하겠어요!"

"잠깐."

하지만, 여기에 난고가 더욱 지켜보자는 사인을 보냈다.

"읏!? 어째서입니까! 이미 저 아이는 그저 버티고만 있을 뿐이라고요!"

"그런 것 치곤 표정에 비장감이 없는데."

"에, ────으읏!?"

그 말을 듣고 네네를 바라본 뒤, 츠키카게는 숨을 삼켰다. 그도 알게 된 것이다. 네네가 웃고 있는 것을. 승산이 없는 싸움을 그저 버티고만 있는 자의 표정이 아니었다.

어째서인가.

'이 상황에서, 아직 무슨 수가 남아 있는 건가……!?'

그런 주변 관객의 예감.

그 예감을 제쳐두고──

"《클락 드로우》"

마무리 일격의 《클락 드로우》가 네네를 꿰뚫었다. 그 탄환 수는, 200발.

쿠로노도 슬슬 초조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승부가 난 것이나 다름없는 이런 쓸데없는 결투를 이 이상 지속하는 것에. 환상 형태에 의한 공격은, 굳건한 의지가 있다면 버텨낼 수 있다. 그건 쿠로노도 알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는 법.

아무리 저 아이가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여기서 끝이다.

그리 생각하고, 총탄으로 꿰뚫은 네네를 바라보고,

"크, 아악!"

"에?"

그 순간, 쿠로노는 전신의 혈액이 얼음물로 변한 것 같은 오한을 느꼈다.

그 이유는, 고통에 헛구역질을 하고 있는 네네의 발치.

그녀가 토한──엄청난 양의 혈액.

'무슨…… 확실히, 난 환상 형태로 공격했는데──'

"으읏!"

이해가 가지 않은 혼란에 빠진 사고.

쿠로노는 그것을 떨쳐버렸다.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한 치의 조절도 없이 가한 공격.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하여 실체화된 탄환을 발사했다면, 한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는 상황인 것이다.

"괘, 괜찮으신가요!?"

초조해하며, 쿠로노는 엄청난 양의 피를 토하고 있는 네네를 향해 달려갔다.

──그렇다.

아무런 경계도 없이.

무방비하게.

"아, 악!?"

그 직후, 쿠로노의 의식에 불똥의 튀었다.

축 처져 있던 네네의 머리가 위로 튀어올라, 무방비하게 다가오고 있던 쿠로노의 안면을, 턱을 후려갈긴 것이다.

◆◇◆◇◆

"아, 악!?"

네네의 후두부가 쿠로노의 턱을 올려쳤다. 이 시합이 시작된 이후로, 네네의 공격이 처음으로 쿠로노에게 들어갔다. 턱에 가해진 경질적인 타격에, 쿠로노의 무릎이 흔들렸다. 그 결정적인 순간을, 네네는 놓치지 않았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난무.

초질량의 마력을 두른 쇠부채가, 멍하니 서 있는 쿠로노를 연타.

러쉬.

네네는 호흡할 틈조차 아깝다는 듯, 가지고 있는 모든 체력을 담아 쿠로노를 마구잡이로 후려팼다. 그렇지 않아도 뇌진탕을 일으키고 있던 쿠로노는 이 대미지를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타격의 충격에 뒤로 비틀거리며, 지면에 쓰러졌다.

다운.

심판이 선언을 했다.

──하지만, 네네는 멈추지 않았다.

공중으로 뛰어올라, 다운된 쿠로노의 복부를 발로 찍어눌렀다. 그대로 마운트 자세를 취한 뒤, 접은 《홍색봉》의 손잡이로 쿠로노의 안면을 후려쳤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초질량의 마력을 두른 일격이, 쿠로노의 머리를 꿰뚫고 그 아래에 있는 링을 분쇄하기 시작했다. 그 충격에 링 여기저기에 균열이 갔고, 결국 부서져내렸다.

링에 간 금이 링 전체로 퍼졌고──

"하하하핫! 뒈져! 뒈지란 말야!! 꺄하하하핫!!"

"이런! 머리에 피가 올라서 심판의 콜이 들리질 않고 있어! 심판! 억지로 떼어 내!"

"다, 다운! 다운이다! 사이쿄! 떨어져!!"

심판이 서둘러 마운트 자세를 취한 채 쿠로노를 구타하고 있던 네네를 뗴어냈다.

그 쯤에, 네네의 머리가 겨우 식었다. 자신이 지금 싸우고 있는 룰이, 지하 격투장이 아닌 시니어 룰이라는 걸 그제야 떠올리고, 추가타를 가하려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

"퉷!"

쿠로노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달려오던 심판 옆으로, 피와 함께 무언가를 뱉어냈다.

2센티미터 정도의 고기조각.

멀리서 봐도 알 수 있는, 특징적인 형태.

그렇다. 그건 네네 자신의 혀였다.

『자, 자기 혀를 깨물어 잘라서 틈을 만들었어……!』

『엄청난 승부욕이야……!』

『환상 형태로 싸우는 모의전에서 나올 일이 아니라고……!』

"히, ……히힛!"

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까지 나오게 하는 것인가.

그런 짓까지 하게 만드는 걸까.

네네의 정신성을 이해할 수 없는 관중들은, 곤혹을 넘어서 공포심까지 느끼며 창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면에 처박힌 쿠로노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네네는 낄낄 웃으며, 피가 흐르는 것도 괘념치 않고 승리를 확신하는 홍소를 터트렸다.

"캬하하하하핫! 꼴 좋다! 멍청아!! 아~ 기분 좋구만! 포기하라고? 쓸데없다고? 그딴 잘난 개소리나 지껄이며 방심하고 있으니 그런 꼴을 당하는 거야! 꺄하하하핫!!"

"음. 확실히 그렇군요."

"아?"

하지만, 네네의 혀 짧은 새된 웃음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 틈엔가, 자신이 내려다보고 있던 쿠로노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고

"─────으읏!?!?"

네네의 후두부에, 딱딱한 충격이 터졌다. 거기에 있는 것인가, 하고 돌아봤찌만, 다음엔 오른쪽에서 복부에 약한 충격이 느껴졌다.

권총.

네네는 움츠러들면서도 거기에 있을 터인 적에게 쇠부채를 휘둘렀다.

하지만

"~~~~~크읏!"

이번엔 왼쪽. 옆구리.

이번엔 오른쪽. 측두부.

무릎.

머리. 타격. 총격. 발차기. 총격──

쿠로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도,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폭력.

《러쉬 아워》.

《시간동결》과 《시간배속》을 동시에 혼합하여 사용하는 기술.

하나만 사용해도 실용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동시에 사용하여, 피아의 시간차를 더욱 벌어지게 만들어 물리적으로 대응이 불가능할 정도의 연타를 사방팔방에서 가하는 능력.

무엇을 당하고 있는지, 이미 네네는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탄환에 꿰뚫리고, 총손잡이에 얻어맞고, 발에 차이며, 수없이 의식이 날아갔다. 그 때마다 고통에 의해 의식이 각성. 그리고 다시금 고통에 의식이 날아간다.

이런 폭력이 대체 언제까지 이어지는 것인가.

세상 속 시간에선 고작 몇 초만에 벌어지는 일이었지만, 네네에겐 몇 시간이나 이어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으붑!?"

수십 번째의 기절 뒤, 네네는 머리카락이 움켜쥐어지는 고통과, 입안에 처박힌 이물의 감촉에 다시금 정신이 들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감촉. 그건 쿠로노의 디바이스, 백은의 총 《엔노이아》였다.

"고통 없이 부드러운 방식으로 쓰러뜨려 주겠다고 생각했더니, 기어오르는 녀석도 있지. 진검 승부에서 그런 이해력이 딸리는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이쪽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내다 버리고 나서야만 했던 거군요. 정말 좋은 공부가 됐습니다."

다운시키지 않겠다는 듯, 네네의 몸을 머리카락 채로 움켜쥔 채, 입에 자신의 애총을 쑤셔 넣는 쿠로노.

말투는 별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 표정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눈썹이 치켜올라간 채, 분노와 증오에 불타오르는 눈.

그리고 드러나 있는 이빨.

이 순간, 쿠로노는 그제야 네네와 같은 '분노'를 상대에게 느끼고

──눈앞의 상대를, 적이라 인식한 것이다.

그리고

"뒈져 버려."

"──, ───, ──────"

연속으로 울리는 총성.

쿠로노는 아무 용서도, 힘조절도 없이, 네네의 입에 처박은 《엔노이아》의 방아쇠를 당겼다. 입을 통해 가랑이로 빠져나가는 충격에, 네네의 몸은 크게 경련했다.

잠시간 경련 후, 이완하는 몸.

가랑이 사이로 흘러나온 소변이, 발을 타고 링에 흘러내렸다. 그 처참한 몰골에, 쿠로노는  더욱 짙은 혐오의 표정을 지었고, 움켜쥐고 있던 네네의 머리카락을 던지듯 놓아버렸다.

저항은 없었다.

네네의 몸은 쿵, 하고 마치 '물건'처럼 지면에 쓰러졌고, 세 번째 다운을 맛보았다.

동시에, 쿠로노의 승리가 결정되었다.

◆◇◆◇◆

──그 뒤.

사이쿄 네네가 눈을 뜬 건, 반나절이 지나 해가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아.."

깨어난 네네는 멍한 시야로 주변을 둘러보았고, 자신이 의무실 같아 보이는 곳의 침대에 누워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그 승부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패배, 한 건가………"

아직 실감이 들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진 적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기억에 각인된 광경이 있을 뿐.

마지막 순간에, 쿠로노가 보여 준 표정.

명확한 적의.

그 때가 처음이었다. 쿠로노가 적의를 품고 자신을 상대한 것은. 즉, 자신은 적이라는 인식조차 주지 못한 채로 그녀를 상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크윽………!"

그 사실에, 네네는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그 때였다.

병실 바깥에서 대화소리가 들려온 것은.

두 남자의 대화소리.

한 쪽은, 네네를 이 회장에 데려 온 노인, 난고 토라지로.

다른 한 명은, 쿠로노와의 결투 전에 약간 들었던 목소리. 쿠로노를 데려 온 츠키카게의 목소리였다.

'그럼 난고 선생님. 오늘은 이쯤에서 실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뒤의 일은……'

'흐음. 맡겨 두시게. 그 아이는 내가 책임을 지고 쿄토로 데려갈 테니. 기습 같은 건 뜯어서라도 말릴 테니 안심하시게나. 뭐, 기습을 가한다 할지라도 그 천재에게 되려 당하기만 할 뿐일 테지만 말일세. 효효효."

'.........'

'음? 왜 그러나?'

갑자기 입을 다문 츠키카게에게, 난고가 물어보았다. 거기에, 츠키카게는 살짝 틈을 둔 뒤 답했다.

'저는 그녀에게 사죄해야만 합니다. ……솔직히 저는, 난고 선생님이 그녀를 육성해 타키자와 군에게 도전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건 무모하다고…내심 어이없어 했습니다. 오늘 시합도 패배할 리가 없다. 아니, 그렇기는커녕 공격이 닿지도 못한 채 끝나 버릴 거라 생각했습니다.'

'뭐, 당연하겠지. 시간을 조작하는 능력은, 그만큼이나 강력한 것이니까. 실제로 흠씬 두들겨 맞았잖나?'

'허나, 그녀는 타키자와 군에게 공격을 가했어요.'

'────'

'시간을 조작하는 능력. 아주 강력하고,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능력이죠. 저 따위로서는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능력이에요. 거기에 맞서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고 느껴질 정도이죠. 그만큼 절대적인 능력이란 말입니다. 사실, 그 아이는 그 힘 앞에서 무력하게 당하기만 할 뿐이었어요. 피아의 실력차는 명백했죠. 도저히 이길 상대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죠. 아무리 엉망진창이 되어도, 아득한 힘의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그 때마다 자신이 가능한 것, 생각해낼 수 있는 수단을 다하여 상대했고, 맞섰고, 다운까지 이끌어냈죠. ……그 아이는,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굉장한 아이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 말하고, 창문 너머의 츠키카게로 보이는 실루엣이 머리를 숙였다.

'난고 선생님. 그 아이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아이를 교육시킬 수 있는 선생님은, 난고 선생님 단 한 분밖에 없을 테니까요.'

'효효효. 그러기 위해 내기 승부를 한 걸세. 타키자와 군에겐 신세를 졌구먼. 이 난고가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목을 씻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전해주게나.'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리놀륨으로 이루어진 바닥을 밟는 구둣소리가 멀어져갔다. 잠시 후, 문이 열린 뒤 왜소한 대머리 노인, 난고가 병실에 들어왔다. 난고는 침대 위에서 이미 상반신을 일으킨 채 앉아 있는 네네를 보고

"응? 뭐야, 벌써 일어난 게야?"

그리 말하고, ──씨익. 아니, '히죽' 하고, 얼굴에 난 주름이 이보다 더 찌그러질 수 없을 정도로, 실로 심술궂게 웃었다.

"이거 참~ 그건 그렇고 아주 화려하게 얻어맞았구만! 상대가 실전 경험이 없다기에 조금은 더 분전할 줄 알았건만, 전혀 상대가 안 됐어! 졌대요~ 오줌쌌대요~ 오줌싸개래요~"

"~~~~크읏! 시끄러! 이 문어대가리 영감탱이야!"

"횻! 효옷! 호잇!"

네네는 베개, 꽃병, 체온계──가까이 있는 모든 물건을 집어던졌다.

하지만, 맞지는 않았다.

난고는 노인이라 생각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몸놀림으로 그 모든 것을 피했다.

"으그극, 약삭빠른 할아방탱이 같으니라고! 문어가 아니고 원숭이 영감탱이였어."

"우끼끼~~"

"주, 죽여버릴 거야……!"

"열 받지~"

"당연하지!"

소리치는 네네에게, 난고가 말했다.

"내가 아니야. 그 아이. ──타키자와 쿠로노를 말하는 게야."

"아?"

"자네도 알고 있을 텐데. 그 아이, 처음부터 끝까지 힘조절을 한 채로 싸웠어. 그것도 악의가 없이, 네 안배를 생각해준 거라고. 그런 상대에게, 자네는 꼼짝도 못하고 당해버렸지. 뭐, 기특하게 어떻게든 싸워 나가긴 했지만, 마지막엔 그저 번롱당할 뿐이었고. 열받지 않아?"

"읏, 그건…"

당연하다.

반사적으로 답하려 한 네네였지만

"열 받고, 화나고, 분하고, 질투나고, ────즐겁지 않았나?"

"크읏!!"

그 난고의 말에, 네네의 심장이 크게 뛰었고, 숨이 막혔다.

즐겁다.

분함이나 굴욕과는 전혀 다른 감정. 그 존재를……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모든 것이 자네 마음대로 되는 게야. 반절의 힘도 내지 않았는데 자신의 힘이 정의가 되는 게지. 그것만큼 재미없는 게 또 없어. ……즐거울 게야. 지금의 자신의 힘으로, 내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짜증스러운 상대를 마음대로 휘둘러버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좇고 또 좇아 따라잡아서, 멱살을 잡아 땅에 메다꽂아 쓰러뜨리는 건 말이야……!"

그리 말한 난고의 표정을 보고, 네네는 등골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의 장난스런 분위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입가엔 송곳니마저도 드러나는 웃음을 띤 채, 두터운 눈꺼풀에 뒤덮인 실 같은 가느다란 눈 사이로, 비합법 지하 투기장에서조차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야만스러운 안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몸이 잘려나갈 것만 같은, 야심.

그 모습에, 네네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흘렸다.

"……할아범, 너.. 그거 교육자가 지을 표정이 아니라고……!"

"효효효! 나도 자네처럼 성격이 비뚤어져 있어서 말이야! 무리라든가, 안 된다든가,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하다든가, 그런 거슬리는 말을 듣고 순순히 물러날 생각은 전혀 들질 않거든. 예나 지금이나 말이야."

어깨를 젖히고 웃으며, 난고는 물건을 집어던지는 걸 관둔 네네를 향해 다가간 뒤, ──질문을 던졌다.

"《야차 공주》여. 내기의 결과를 운운하는 건 제쳐 두고, 다시금 묻겠네. 내 아래에서, 누구도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 그 천재에게, 그 천재의 승리에───싸움을 걸어보지 않겠나? 틀림없이, 엄청나게 재밌을 거라고?"

"──────핫!"

그런 거,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이다. 이렇게나 큰 분노를 느껴본 적은. 이렇게 짜증나면서도, ……즐거운 일을 겪은 적은.

그러니

"오케이. 한 번 해 보자고, 그 싸움."

네네는 주저 없이, 그 손을 잡았다.

"해 주겠어. 이제 두 번 다시 사람 깔보는 짓은 못하게 해 주겠어. 다음엔 내가 그 잘난 척하는 년의 멱살을 잡아 흠씬 두들겨 패 주고, 마음껏 깔봐 주겠어……!"

자신이 가능한 일, 자신의 힘, 가능성. 그 모든 것들을 부딪혀서.

그런 건, 당연히 즐거울 테니까. 

──그렇게 결의를 다진 날의 기억을, 네네는 지금도 어제 일처럼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 맛본 굴욗을 되돌려 주기 위해, 네네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건 극한 과혹의 매일매일이었지만, 아주 즐거웠다. 지금까지 지내 왔던 아무런 부자유스러움 없는, 난잡한 힘으로 모든 것을 멋대로 휘둘러 온 매일매일이 따분하게 느껴질 정도로.

청춘의 모라토리움을 내던지고 행하는 과혹한 특훈의 모든 것들을, 네네는 확실히 습득해 나아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거의 교육다운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는 네네였지만, 그녀가 원래 갖고 있던 전투 센스는, 난고의 《검곡》이라 불리는 검술을, 마치 물을 빨아들이는 스폰지처럼 흡수해 나아갔고, 자신에게 더욱 어울리는 무도로 승화시켰다.

마술을 다루는 것도 폭이 넓어져, 공격 이외의 용도가 늘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맞은 재도전의 기회.

이전엔 자신을 적으로 보지도 않았던 쿠로노와 겨루고, 상대가 필사의 형상으로 자신에게 덤벼들었을 때엔,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들어서,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쿠로노도 자신이 느꼈던 것처럼 분노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이 열 받는 년을 두들겨 패 줄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을 희생해도 상관없다.

그리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다..'

그건, 네네의 착각일 뿐이었다.

쿠로노는 네네와의 결착보다도, 한 여자로서, 모친으로서의 삶을 택했다.

택하고, 네네의 앞에서 떠나갔다.

──그렇다면, 이제 충분하지 않은가.

자신은, 거절당했다.

쿠로노에게 있어 자신은, 자신과의 사력을 다한 싸움은, 그 남자에 비해 가치가 없었던 것이다. 미련이 남아 A리그에 체류해 있다 하더라도,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앞엔, 그녀를 대신하여 자신의 치켜든 주먹을 받아 줄 상대가 있다. 쿠로노를 대신하여, 자신의 힘의 모든 것을 쓰는 데에 충분한 상대가 있다.

《사막의 사신》, 나짐 알 살렘.

사력을 다하여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 여름날의 흥분을 다시 한 번 맛보여 줄 적이. 그럼, 이제 쿠로노 따위에 집착할 필요같은 건 없지 않은가. 이 적에게, 나의 모든 것을 부딪히자. 부딪힐 곳을 찾아 헤매며 억눌러 온, 몸 안에서 날뛰는 힘의 모든 것들을.

──그 결과, 설령 두 번 다시 지금까지의 사이쿄 네네로 돌아갈 수 없다 할지라도.

그건 틀림없이, 즐거울 테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만 있다면 참 편했을 텐데 말이지."

◆◇◆◇◆

"───────"

갑작스레 입을 통해 흘러나온 읊조림.

그건, 어쩐지 기뻐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네네는 그 중얼거림 뒤, 곧바로 걸터앉은 나짐 위에서 떨어졌다.

『어엇!? 이게 무슨 일이냐!? 《사막의 사신》에게 마운트 포지션을 취한 채 일방적으로 후려패던 《야차 공주》가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사막의 사신》에게서 물러났다!? 그대로 승부를 결정지을 것만 같았는데, 대체 왜!?』

"허억…… 무……, 무슨, 짓거리야.."

거친 숨을 내쉬며, 나짐이 겨우 상반신을 일으켰다. 검은 이형의 육체는, 거듭된 초중력의 타격으로 인해 여기저기 금이 가 있었고, 마력이 섞인 황금의 혈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 더 타격을 가하면, 혼과 함께 몸을 산산조각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네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건 나짐에게 있어 행운을 넘어서 불가사의한 일이었고, 그는 안에서 약해진 채 타오르는 불꽃이 길든 눈구멍을 네네에게 향하며 질문했다.

거기에, 네네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부족해. 당신 상대로는 내 온 힘을 쏟아부을 수 없어."

"뭐, 라고……?"

"그도 그럴 게, 넌 열 받는 녀석이 아니니까."

"열 받, 는다……?"

"방금 그쪽이 말했잖아? 나와 넌 같은 녀석이라고. 거기에 대해선 나도 동감이야. 자신의 남아 도는 '힘'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걸 좋아하는 폭력중독. 확실히 내 본성은, 너와 똑같은 사회 부적합자일 거라고. 하지만 그렇기에 그쪽으로는 부족한 거야. 왜냐면, 난 이미 그런 녀석이 얼마나 시시껄렁해 빠진 녀석인지 몸소 겪어 봐서 알고 있으니까."

나짐은 쿠로노를 만나기 전의 자신이다. 그저 목적도 없이 날뛰는 것만 알고 있는,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을 무렵의 자신.

그런 녀석을 상대해서야, 연민을 느끼겠지만, 분노를 느끼지는 않는다.

진심으로 싸울 수가 없다.

"내가 온 힘을 다해 후려패고 싶은 건 그쪽 같은 재미없는 상대가 아니야. 내가 사력을 다해 이기고 싶은 건, 전부터 쭉……쿠우 단 한 명뿐이라고."

지금도 아직 그녀와 만난 날의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오똑한 그 코가 열 받는다.

예쁘게 컬이 들어간 속눈썹이 열 받는다.

그녀의 길고 반짝거리는 머리카락이 열 받는다.

그것이 찰랑일 때 나는 샴푸 향기가, 고급스럽게 느껴져서 열 받는다.

좋은 걸 먹어 커다래진 가슴이 열 받는다.

귀중히 키워져, 매끈매끈한 손이나 예쁜 손톱이 열 받는다.

쭉 뻗은 기나긴 신장이 열 받는다.

그러고도 약삭빠르게 남자친구나 만드는 그 철저함이 열 받는다.

타인이 도움을 요청하고, 그걸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고귀해 보이는 모습이 열 받는다.

거기에 어울리는 실력을 갖고 있는 것도 열 받는다.

자신이 걸어갈 길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해 나아가며 당당한 모습이, 특히 더 열 받는다.

정말로 열 받는다.

열 받고, ──동경한다.

동경하고 있으니, 이기고 싶어……!

"어이, 아저씨. 당신한텐 감사해야겠어. 당신 덕에 아~주 잘 알게 됐다고. 결국, 난 아무리 필사적으로 얼버무리려 해도, 타협하려 생각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어도, 동경심을 버릴 수 없다는 걸 말야."

이젠 힘을 해방시켜 날뛰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자신이 원하는 건, 그녀와의 결착. 그것 하나 뿐. 타협도, 얼버무림도 소용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나 뿐.

잘 알고 있다.

오히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째서 알아채지 못했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로.

이제 두 번 다시 결착이 날 리 없다니,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다.

그 모의전의 마지막 때, 쿠로노가 보여 준 표정을 떠올려 봐.

칠성검무제 때의 표정을 떠올려 보라고.

그것이, 그 녀석의 본성이다.

잘난 척이나 하는 주제에 쉽게 열받고, 한 번 불이 붙으면 멈출 줄 모르는, 도를 넘을 정도로 승부욕이 강한 녀석. 그 녀석의 남편 될 놈도 모르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쿠로노의 진정한 모습.

──그렇다면, 이쪽이 애를 태우게 만들면 될 것이 아닌가.

그 때,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 녀석보다 훨씬 강해져서, 그 녀석보다 훨씬 예뻐져서. 그 녀석이 날 부럽게 느낄 정도로 멋있어져서.

"이번엔, 나를 동경하게 만들도록 해 주겠어……!"

그 직후, 네네의 이마에 난 한 쌍의 뿔이, 새된 소리와 함께 부서졌다.

『아앗! 《야차 공주》의 뿔이 부서졌, 아니! 뿔만이 아니야! 검은 역장으로 이루어진 오른팔도 사라지고, 눈의 색도 원래대로 돌아왔어……! 마치 빙의가 풀린 것처럼……!』

뿔이 부서진 것을 시작으로, 네네의 모습이 《각성초과》를 겪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각성초과》를 겪어, 사람이 아닌 육체가 되었기에 다룰 수 있는 방대한 마력의 제어가 풀리게 되어버린다. 전투력이 대폭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그건, 네네가 의도한 게 아닌, 사람의 자아의 그릇으로서 육체가 되돌아간 결과의 변화.

하지만, 네네는 이걸로 좋다고 생각했다. 한 번 《각성초과》를 겪었기에, 알 수 있는 것이다. 《각성초과》 중에 느낀, 뇌수를 불태울 정도의 흥분.

그건, 마약과 같다.

거기에 몸을 담갔다간, 이성이 녹아내리고, 자아가 붕괴되고, 그저 폭거를 휘두르며 쾌락만을 추구하는 괴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한 번 제어를 잃은 무질서한 힘은, 거듭된 파괴를 추구하며 이성 없이 날뛰게 된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그야말로, 눈앞에 있는 이 남자처럼.

'그런 꼴사나운 모습을 쿠우에게 보여줄 수 있을 리가 없지……!'

힘을 쓰는 게 아닌, 힘에 휘둘린다.

그런 모습을 보이면, 동경은커녕 한심하게 보일 뿐. 그랬다간 주객전도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어떡할 것인가.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방침은 정해졌다.

일단 가장 먼저 이 눈앞에 있는, 힘에 휘둘리고 있는 한심한 멍청이를 정리하도록 하자……!

"자, 매료시켜 보자! 《홍색봉》!!"

남은 왼손을 앞에 치켜들고, 한 번 무너진 자신의 혼의 결정을 불러냈다. 그 목소리에 그녀의 혼이 응하고, 한 자루의 부채가 되어 그녀의 손에 현현되었다.

그런 네네를

"……크큭, 하하하하하핫!"

《사막의 사신》 나짐은 조소했다.

◆◇◆◇◆

"멍청한 년……! 그대로 '힘'에 몸을 맡기면, 내게 이겼을 수도 있었을 텐데. 천재일우의 기회를 자기 손으로 내버린 그 우행! 실망이다! 《야차 공주》……! 네 년도 그 《캄피오네》와 같은, '인간'이 한계일 뿐인 시시한 녀석이었을 줄이야……!!"

금색의 불꽃과도 같은 마력광을 입에서 내뿜으며, 나짐은 천천히 일어났다.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방금까지는 꿈틀거리는 것조차 불가능했는데.

네네의 《지박진》의 힘이 《각성초과》 상태가 풀려 버린 탓에 급격히 약해져서, 그를 땅에 묶어두는 데에 충분했던 출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짓누르던 압력이 사라진 지금, 자신의 육체를 입자화시키는 것도 손쉬웠다. 나짐은 네네를 비웃으며, 산산조각나기 직전까지 타격을 받은 균열이 간 육체를 한 번 입자화시킨 후, 재구성하여 치료를 시작했다.

네네는 이걸 방해하지 않았다. 그녀의 전투력은 《각성초과》 전의 상태로 돌아가 있었기에. 그렇게, 온몸의 치료를 마친 나짐은

'위험했어……'

속으로, 깊이 안도했다.

태도로 나타내진 않았지만, 그에게도 여유는 없었다.

처음이었다.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짙게 의식했던 적은. 그건, 처음 느낀, 얼어붙는 것만 같은 공포. 지금까지 넘어 온 전장 속에서, 그 정도의 공포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어떠한 궁지에 내몰려 있더라도, 자신의 힘이라면 어떻게든 극복이 가능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고, 실제로 극복해냈다.

하지만, 방금은 진정한 의미로, 손발도 꼼짝 못하고 당할 뻔했던 것이다.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채, 그저 죽음이라는 이름의 심연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생명의 극한. 목숨을 갉아먹는 업화와도 같은 죽음. 그런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죽음이라는 건 얼음보다 차갑고, 달이 없는 밤처럼 어두컴컴한 것.

그런 걸 바라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었단 말인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벌벌 떨렸다.

그런 무서운 경험을 다시 겪는 건 죽어도 사양이었다.

'하지만, 이제 괜찮아……!'

네네는 《각성초과》의 힘을 포기했다. 거기에 어떠한 이유가 있었는지는 나짐이 알 바는 아니지만, 지금 네네의 몸은 괴물에서 인간으로 돌아왔고, 인간이 다룰 수 없는 혼의 힘을 충분히 다룰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다. 《지박진》의 힘이 느슨해진 것이 바로 그 증거.

지금의 네네는, 아무 두려울 것 없는 상대다.

나짐은 자신을 회복시킨 뒤, 검은 오른팔, 그리고 타오르는 쇠처럼 빛나는 오른주먹을 쥐고

"흥이 식었어. 지금 당장, 이 재미없는 싸움을 끝내고, ────윽!?"

남은 왼팔 하나로 나짐을 향해 부채를 펼쳐놓은 채 서 있는 네네에게 도약하려 했다. 《각성초과》를 겪어 압도적인 마력차의 폭력으로 그녀를 분쇄하기 위해.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뭐야, 그 눈은……!'

그의 다리를 바닥에 꿰어 놓은 건, 그를 상대하고 있는 네네의 안광.

자신의 힘이 떨어졌다. 그건, 네네 자신이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을 터.

지금의 절망적인 상황도 마찬가지. 그런데도, 그녀의 눈은 포기에 물든 게 아닌, 지금까지보다 더욱 강한 빛을 내고 있었다.

활활 불타는 의지의 빛.

입가는 살짝 위로 올라가 있었고, 강한 감정이 표정이 되어 나타나 있었다. 《야차 공주》는, 눈앞의 적과 아직 싸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직 무언가, 무언가 수를 남겨두고 있는 것인가?

그럴 리 없다.

나짐은 그렇게 생각했다.

인간의 모습을 한 《야차 공주》와 《각성 초과》 상태의 《사막의 사신》의 힘의 차이는, 방금 싸움으로 이미 증명되었다. 네네의 공격은 그 모든 것들이, 나짐에게 생채기 하나 내지 못했다. 지금의 네네는, 그 때보다도 더욱 마모되어 있는 상태. 한 쪽 팔이 없고, 디바이스는 힘없이 명멸하고 있어서, 지금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제대로 된 움직임조차 못 할 상태일 텐데──……

"크윽……!"

그런 반죽음 상태의 여자를 앞에 두고, 나짐의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방금까지 일방적으로 죽음의 심연 속으로 내몰렸을 때의 공포를 떠올리고.

하지만, 그건 착각일 뿐이다. 아무리 강한 혼을 가졌다 할지라도, 사람의 몸으로 쓸 수 있는 마력엔 한도가 있다.

그건 절대적인 법칙.

이제부터 네네가 역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럴 리가 없다.

지금의 자신은 처음으로 진정한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과도하게 그녀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지박진》은 이미 자신을 속박할 정도의 힘을 잃어버렸다.

《야차제악》을 출 체력도, 남아있지 않다.

《공간만곡》에 의한 회피도, 주의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무효화시킬 수 있다.

──이미, 네네에게 이 전국을 뒤집을 만한 수단 따위는 남아 있지 않다. 다음 일격, 오른주먹으로 《데드 엔드 블로》를 꽂아넣어, 이 싸움은 자신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그건 반전 따위 없는 사실이라고, 나짐은 자신을 고무시키고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공포를 느끼며 움츠러드는 자신의 몸을, 포효와 함께 일갈. 가능한 한 네네가 가해 올 반격을 상정, 그걸 모든 망상 속에서 무찔러내고, 마음에 들러붙은 지네와도 같은 망설임을 억지로 떨쳐버렸다.

그리고, 나짐이 앞으로 달려갔다.

치켜든 오른주먹에 두르고 있는, 검은색과 금색의 이중나선. 지금 저 반죽음 상태의 네네라면, 스치는 것만으로도 먼지가 되어 날아가버릴 힘.

그걸, 네네에게 메다꽂기 위한 최단거리를.

"뒈져 버려어어어어어엇!!!!!!!"

그건, ──너무나도 치졸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할 터.

척 보기엔 용맹하고 과감하게 공격해 들어간 것처럼 보였지만, 그게 아니었다. 네네와 대치하고 있는 시간을 1초도 참을 수 없어서, 일심불란히 그 불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그는 다급히 결과만을 추구해버린 것이다.

이 잡스러운 공격에,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는 마지막 공세에 나섰다.

"우읍!?"

《데드 엔드 블로》를 내뻗은 순간, 나짐의 몸이 크게 '엇나갔다'.

좌우가 아닌, 앞으로, 쓰러지는 것 같이 밸런스가 무너졌다. 그 이유를, 나짐은 곧바로 알아챘다.

'이 년, 중력을 가볍게 만들었어!'

그렇다. 네네의 능력은 중력을 조작하는 것. 무겁게 할 수도 있고, 가볍게 만들 수도 있다. 전투에 나서 적을 상대하기 위해 능력을 쓰자면, 전자 쪽이 더욱 쓰기 편하기에 능력이 한 쪽으로 기울어지기 쉽지만, 그 인식이 약이 되어 나짐의 의식에 사각을 만들어냈다.

갑자기 가벼워진 나짐의 몸은, 자신이 내뻗은 주먹의 여력에 휘둘려버렸다. 그런 힘빠진 주먹, 아무리 만신창이가 된 네네라 하더라도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네네는 충분한 여유를 두고 《데드 엔드 블로》를 피한 뒤, 나짐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미소를 띤 채, 접은 《홍색봉》의 날 부분으로 찌르기를 가했다.

"크윽───!"

완전히 당했다. 네네의 의도에 완벽하게 놀아난 것이다. 《야차 공주》는 이 공격만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에, 나짐의 온몸이 경직되었다. 대체 어떤 공격이 나올 것인가. 밸런스가 무너진 자신의 몸은, 이미 회피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니었다.

이 일격은, 먹을 수밖에 없다. 만신창이가 된 네네의 눈에 깃든, 확실한 자신. 그 근거가 될 일격을. 그 때문에, 나짐의 마음속에 네네에 의해 겪은 죽음의 공포가 떠올랐다.

'이럴 리 없어, 이럴 리 없다고오오오오오───!!'

끓어오르는 공포심에, 나짐은 필사적으로 부정하며 뚜껑을 닫아 무시하려 했다. 네네는 자신의 《각성초과》를 포기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격 따위를 갖고 있을 리가 없을 터. 이건 소프트가 아닌, 하드의 문제. 의지의 힘 하나로 어떻게 될 문제가 아니기에, 그건 분명할 것이다.

분명할, 것이다.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런 나짐의 기도를 어디까지나 무자비하게, 네네가 내뻗은 찌르기는 그의 옆구리를 찔렀고

"아………?"

그것뿐이었다.

《홍색봉》의 끄트머리는 나짐의 변질된 육체, 검은 광택을 지닌 채 다 드러난 근섬유를 꿰뚫지 못했고, 그 표면에 가볍게 닿는 것에 그쳤다.

그리고

"콜록! 커헉! 쿨럭!!"

다음 순간, 네네가 격하게 기침을 하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검은 혈액. 나짐에게서 받은 대미지. 《각성초과》에 의한 부담.

네네의 몸은 이미 한계를 넘어서 있던 것이다. 끝내는 무릎만이 아닌, 두손을 지면에 댄 채 고통에 몸부림치는 네네.

그 모습에

"──크, 크하하하하하하하핫!"

방금까지 나짐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네네에 대한 공포가 완전히 무산되었다.

'쓸데없이 놀래키기나 하고 말야……!'

그렇다. 확실히 네네는 재능을 갖고 있다. 그야말로, 자신을 뛰어넘는 폭력의 재능이. 그대로 네네가 《각성초과》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자신은 살해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 재능에 몸을 맡기지 않았다. 힘을 위해,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으로 끝.

고작 그런 정도의 여자였던 것이다.

무엇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쏘냐.

"자신만만 표정을 짓고 있어서 어떤 공격을 해오나 기대하고 있었는데, 생채기조차 하나 못 내다니, 이거 김 빠지는데그래……! 쓸데없는 저항하지 말라고오오오───!!!"

크게 웃으며, 다시금 주먹을 들었다. 그리고, 발치에 쓰러진 네네의 머리를 향해

'살았어……!!'

승릐의 환희와 함께 내리쳤다.

──그, 찰나.

"확실히, 지금의 나로서는 생채기 하나 낼 수 없겠지. '너'한테는 말야."

《야차 공주》가 궁지에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띠고 있던 미소를 더욱 짙게 만들자, ──그 다음, 그 일이 벌어졌다.

"우옷!?!?"

갑자기, 나짐의 옆구리 부근에서 빛이 뿜어져나왔다. 눈이 부실 정도로, 열량을 지니지 않은, 홍색 프리즘.

하지만, 그건 단 한 순간일 뿐. 퍼져 나아가려 하던 빛은 뿜어져 나온 한 곳으로, 넨가 《홍색봉》으로 찔렀던 한 곳으로 빨려들어가듯 집속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속하기 시작한 건 빛만이 아니었고──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나짐의 몸도, 빛과 함께 옆구리의 '점'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힘.

"카, 아아아아아악!!!"

겁을 집어먹은 듯 당황해 하던 나짐이, 네네를 향해 내리치던 주먹으로 자신의 옆구리를, 빛의 집속점을 때려 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때리는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빛을 빨아들이는 '점'으로 오른팔이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그 흡인은 계속해서 '점'의 중심으로, 나짐의 몸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중력에 짓눌리고 있는 것인가?

아니, 그건 이상하다.

왜냐면, 지금 나짐의 몸을 빨아들이고 있는 힘은, 《각성초과》 상태의 네네가 다루고 있던 힘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다.

명백히,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의 역량을 초월한 힘.

그렇다면, 이건 대체──

"이 망할 년!!! 대체 무슨 짓을!?!?!?"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온 힘을 다해 빨아들이는 힘에 저항하는 나짐이 절규했다. 거기에 네네는 엎드린 채로 상체를 일으켜, 심술궂은 미소를 펼쳐 놓은 《홍색봉》 뒤로 감추고, 답했다.

"내가 말했던 대로, 딱히 당신한테 뭔가를 한 건 아니야. 내 힘으로는 당신한테 아무 대미지도 줄 수 없으니까. 그러니──당신이란 존재가 존재하고 있는 차원공간 쪽에 흠집을 낸 거야."

"차, 차원!?"

"그래. 이 세계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4개의 차원 외에도 6개의 차원이 존재하고, 평소엔 특수한 역장에 의해 감춰진 칼라비 야우 공간이라는 '폐쇄된' 상태로 존재해 있지. 그런 차원의 연결점이 무수하게 겹쳐져, 이 세상이 존재하는 거야."

그렇다면──

"그 연결된 매듭 중 하나를 내 능력으로 느슨하게 만들면, 어떻게 될 거라 생각해?"

인간이 인지가 불가능한 6개의 차원, 그것이 고작 10의 -31승 센티미터라는 극소한 사이즈에 가려진, 칼라비 야우 공간의 역장. 그걸 미세한 중력으로 간섭하여 아주 약간이라도 약하게 만들면, 그 매듭에 갇혀 있던 차원이 풀려나와, 순간적으로 세상이 '반전'되어버린다.

하지만, 사람이 그렇듯, 우주도 자신을 수복하는 힘을 보유하고 있다. 국지적으로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거나, 블랙홀이 발생되어 차원 공간의 중력장이 어지럽혀진다 해도 우주가 붕괴하지 않는 이유는, 이 세상 자체에, 존재해야 할 길항을 구비해 놓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풀려난 칼라비 야우 공간도 마찬가지. 칼라비 야우 공간을 구성하는 차원이 보유하고 있는 중력에 의해 해방된 차원은, 다시금 원래 크기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 원래 사이즈인 10의 -31승 센티미터에서, 차원 공간 채로 뒤집혀버리는 것이다.

"자신 속에 포함된 모든 물질들을 이끌고 말이지."

"크윽~~~~~~~~~!!"

자신의 힘으론 《각성 초월》을 겪은 《사막의 사신》에게, 어떠한 대미지를 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자신의 힘 이외의 힘을 이용하면 그만인 것. 국지적으로 우주를 뒤집어버려 우주의 수복능력을 이끌어내어, 대상을 갇힌 우주, 칼라비 야우 공간에 가둬 버려, 4차원 상에서 물리적으로 추방해시켜버린다.

그것이, 이 노블 아츠──

"그 이름하야 《차원 뒤집기》. 후후,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게 몇년 만인지. 쿠우가 없어진 이후로, 동기도 없이 잡스러운 싸움만 잔뜩 해 왔는데, 당신 덕분에 엄청난 괴물을 쓰러뜨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친 그 날의 자신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고. 그 감사로 우주의 숨겨진 공간으로 초대해 주겠어."

그리 말하고, 네네는 천천히, 비틀거리며 일어난 뒤, 《홍색봉》의 끄트머리 부분을, 이미 목 아랫부분이 전부 칼라비 야우 공간에 빨려들어가버린 나짐의 이마에 쿡 찔렀다.

그 순간, 나짐의 전신에 내달린 감정은, 방금까지 느꼈던 차가운 죽음에 대한 공포 따위는 미적지근하게 느껴질 정도의 절망감이었고──

"그, 그만 둬!!! 제발 그만!! 그런 곳엔 가고 싶지 않아! 싫어!! 적어도, 적어도 죽여 줘! 날 죽이라고!!!!!"

이성이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공포에 절규를 내지르는 나짐.

성인 남성이 부끄러움도 체면도 없이 자비를 갈구했다. 그런 나짐의 한심한 꼴에, 네네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곤

──진심으로 유쾌하다는 듯 웃었다.

"미안미안~ 내가 컨트롤하고 있는 힘이 아니라서~ 조절이 불가능해~"

그럼 안뇽~ 하고 나짐의 이마에 대고 있던 부채를 잡은 손에 힘을 넣어, 꾹 눌렀다. 절벽에 매달린 사람의 손가락을 풀어놓듯이. 필사의 저항으로 4차원에 남으려 한 나짐을 빨아들이고 있는 칼라비 야우 공간에 밀어넣었다.

"안 돼, 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사막의 사신》 나짐 알 살렘은 점 속으로 사라졌고, 우주의 체적이 사람 한 명 분만큼 작아지게 되었다.

◆◇◆◇◆

『A, Amazing!! 마지막 반격도 대미지 없이 끝나 버려서 이젠 틀렸다고 생각한 직후! 갑자기 홍색 빛이 뿜어져 나와 《사막의 사신》을 빨아들여버렸다앗!! 처음엔 카메라가 녹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마력을 흩뿌리고, 그러다 그제야 카메라가 녹화가 가능했을 때, 악마와 도깨비가 해피 할로윈 짝짜꿍을 벌이고 있었고! 그리고 결착이 난 지금, 대체 어떻게 쓰러뜨렸는지 알 수조차 없어! 너 이 자식들, 나보고 일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엉!?』

너무나도 이해의 범주를 넘은 싸움의 전말에, 실황은 불평을 늘어놓았고

『그래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어! 마지막까지 전장에서 생존한 건,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라는 것이지!!!!!!!!』

헬기 위에서 전쟁을 지켜보던 사람들을 향해, 실황이 네네의 승리를 전달했다. 《각성 초과》를 겪은 《마인》끼리의 싸움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눈에 띄인 건 이전에 없던 일이었다. 본 적 없는, 상식을 뛰어넘은 싸움에, 《마인》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은 혼란과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결국 네네는 자신들이 아는 그녀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악마로 변한 나짐을 쓰러뜨렸다. 그 사실에, 실황과 버밀리온의 국민들은 함께 환희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네네도 깊은 안도에 어깨의 힘을 뺐다.

《각성초과》에 달한 적과의 진검승부는, 네네에게 있어서도 처음 경험하는 일.

《사막의 사신》의 힘은, 그녀가 여태껏 싸워 온 상대 중에서도 차원의 궤를 달리했으니까. 그렇다. 그야말로, 칠성검무제에서 싸웠던 쿠로노보다도 더. 훨씬 말이다.

하지만

"뭐, 그래도 이런 치사한 기술 따위, 쿠우라면 간단히 반격해 오겠지."

네네는 그걸 확신하고 있었다. 시간이라는, 차원에 직접 간섭하는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유리함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 이전에, 자신의 힘에 의해 쉽게 쓰러지는 쿠로노의 모습을, 네네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 칠성검무제 때처럼.

자신과 맞섰던 쿠로노는, 실력 이상의 힘을 짜낼 것이 틀림없다. 내게 지지 않겠다고. 어떠한 기술이라도 곧바로 반격해 올 것임이 틀림없다.

나 자신이, 그랬었듯이.

라이벌은 그런 것이니까.

이 녀석에게만은 지고 싶지 않다고, 위기를 극복하는 도중에 더욱 높은 곳으로 향한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그리고 그 힘은 멈출 줄을 모르고 올라가게 된다. 그 즐거움에 비유하자면, 그저 힘을 있는 그대로 휘두르고 다닐 뿐인 파괴의 쾌락 따위,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이제, 그런 걸론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불타오르는 시간을 다시 한 번 보내기 위해서라도, 그녀를 다시 한 번 내 앞에 서게 만들어야겠지.

'그딴 한심한 남자 따위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내게 빠지게 만들어서 말이지.'

그러기 위해선 일단, 이 전쟁을 끝내야 한다. 그리 생각하고, 네네는 다음 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자, 이걸로 마침내 체크메이트! 클레이델란트 팀의 생존자는 이제 《괴뢰왕》 오르=골 단 한명! 거기에 비해 버밀리온 팀은 《더러운 꽃》과 같이 탈락한 《부전》만이 빠져나갔기에, 아직 4명이 남아 있지! 이거, 이미 끝난 시합 아냐, ──잠깐! 《야차 공주》……!?』

"………칫.."

걸어 나아가려 했으나, 한 발짝 앞으로 디딘 순간, 네네의 몸은 무릎 아래에서부터 무너져, 바닥에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상궤를 벗어난 집중에 의해 과잉분비된 아드레날린의 효과가 사라져, 전신을 타고 배어나오듯 피가 흘러나왔다.

'몸에……힘이 없어………'

나짐에게서 받은 대미지.

《각성초과》의 부하.

그럼에도 마지막에 짜낸 힘.

정신력도, 체력도, 이미 한계에 달한 것이다.

'……모두 다, 내가.. 처리할 생각이었는데……말이지'

꼴사납네, 하고 네네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는 거다.

다행히, 싸움은 버밀리온 측의 압도적인 우세라 여겨지고 있고, 상대 측의 생존자는 《괴뢰왕》 단 한 명 뿐인 모양.

그렇다면, 괜찮을 것이다.

애초에 《괴뢰왕》의 능력은 실로 공격하는 게 아닌, 사람이나 물건을 조종하는 높은 범용성과, 한 나라 전체를 여유롭게 제어 하에 두는, 효과 범위가 엄청난 능력이긴 하지만, 그 능력 자체는 전투에 그리 어울리는 능력은 아니었다.

더불어 《괴뢰왕》 자신도 지금까지 무대 뒤에서 활약해 왔던 블레이저일 뿐. 그다지 전투에 익숙하진 않을 것이다. 지금 스텔라에게 있어 《괴뢰왕》은 이미 적수가 될 리가 없다. 그렇다. 네네는 에델베르크에서 돌아온 스텔라가 보여준 기력을 떠올리고

'……아직 젊으니까, 내 몫까지 일 잘 해 달라고, 스텔라.'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피로감에 몸을 맡긴 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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