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장
용서받지 못할 바람
《야차 공주》와 《사막의 사신》의 싸움에 결착이 지어지기 조금 전. 시가지에서 격돌한 《괴뢰왕》 오르=골과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의 싸움에, 커다란 움직임이 일었다. 계속해서 압도적인 실력차로 오르=골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던 아이리스가 보여준 한 순간의 틈. 그 약간의 틈을 찔러 들어온 오르=골이 그녀의 맹공에서 벗어난 뒤 그대로 도망치자, 추격을 하기 시작한 아이리스를 떨쳐내기 위해 쫓아오지 못할 공중으로 도망쳤지만, 오르=골의 조종을 받고 있던 요한을 쓰러뜨린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이 이 전투에 합류한 것이다.
"모든 것을 불태워라!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
사랑하는 국민을 살해하고, 우호국을 농락하고, 자신의 우인을 능욕한 원적 《괴뢰왕》 오르 골에게, 스텔라는 분노의 검을 내리쳤다.
"우와아아아앗!
하늘을 가르며 하늘에서 쇄도해 내려오는 거대한 화염검에, 오르=골은 꼴사나운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하늘에 펼쳐 둔 실을 발치 삼아 어떻게든 그 일격을 피해냈다. 분노의 화염을 두른 화염검이, 발아래에 있는 대도시 뤼셸을 둘로 갈라버렸다.
밤이 드리워진 대지에 새겨지는, 작열의 참흔.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의 파괴력.
하지만, 그에 동할 틈 따위, 스텔라는 주지 않았다. 이런 큰 공격이 저런 민첩한 적에게 통하지 않을 거란 건 스텔라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건, 단지 적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일 뿐.
따라서, 다음 행동은 신속하게 나왔다. 스텔라는 두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에 펼쳐 둔 실을 밟아 도망치고 있는 오르=골을 추적했다.
달리기와 비행. 그 속도차는 불 보듯 뻔했다.
오르=골은 곧바로 스텔라에게 따라잡혔다.
"《살인희곡》!!"
하지만 이 남자도 그리 간단히 당할 인물이 아니었다. 아이리스에 의해 분쇄당한 두 팔을 실로 수복하여, 전부 회복시키진 못했어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까지 회복시킨 다음, 돌진해 오는 스텔라를 향해 실에 의한 연속 참격을 가했다.
"흐읍!"
하지만, 순식간에 100번을 넘는 참격으로 상대를 고기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오르=골의 노블 아츠를 앞에 두고, 스텔라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떨쳐버렸다.
전방에서 쇄도해 오는 수많은 실을, 단 한 번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상쇄. 칼날로 실을 끊어 무효화시킨 다음
"하아아아아아앗!!!!!"
"크윽!?"
검을 휘두른 그 자세 그대로 오르=골을 향해 돌진. 어깨를 부딪히는 태클로, 오르=골을 하늘에서 지면으로 처박아버렸다. 지면에 등을 처박힌 오르=골은, 폐를 꿰뚫는 충격에 피를 울컥 토했다.
하지만 치명상은 되지 않았다. 실을 갑옷처럼 둘러 닿는 면의 충격을 완화시켰고, 공중에 펼쳐 놓은 실을 쿠션 삼아 낙하의 충격을 줄인 것이다.
오르=골은 어떻게든 자리에서 일어나, 곤혹과 초조에 물든 표정으로 불타는 날개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사를 올려다보았다.
"아, 하 아하 이전에 봤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힘이야. 고작 그 단기간만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스텔라의 엄청난 성장에, 오르=골은 당황해 하고 있었다. 1주일 전에 상대한 스텔라에게는, 이 정도의 힘은 없었다. 자신이나 나짐이 발하는 인력 앞에, 겁먹고 움츠러들 뿐이었을 터였는데.
인력이란, 별의 운명의 외곽을 걸어다니는 《마인》이 지닌, 인과에 대한 강제력의 발로. 자신의 가능성의 한계조차 뛰어넘을 정도의 강력한 의지력. 거기에 동반되는 운명에 대한 절대적인 주체성. 그 강제력을 극한까지 갈고닦으면, 과정조차 필요로 하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꺾어버릴 수 있다.
1주일 전의 스텔라가 그랬듯이.
절벽을 눈앞에 둔 사람의 다리가 힘이 풀리는 것과 같다.
나짐이나 오르=골의 인력이 이끌어버리는 절대적인 죽음의 인과에, 스텔라는 마음이 꺾여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스텔라는 오르=골의 위압, 인력, 그 모든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텨내고 있다. 망설이지 않고 절벽 너머를 향해 도약하고, 주저도 않고 뛰어넘는 것이다.
《마인》의 인력을 앞에 두고 겁먹기만 했던 계집일 뿐인 이 소녀를, 대체 무엇이 이렇게까지 바꾸어낸 것인가. 하지만, 이 스탤라의 성장도 당연하다.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은, 오늘 이 날까지 오르=골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적을 상대로, 사선을 극복해 냈으니까.
그리고 그 적과의 싸움 속에서, 스텔라는 알게 되었다. 어떠한 절망, 어떠한 열세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자기.
자신의 가슴 속에 품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소원.
──자신이라는 존재를 키워 준, 고향의 수많은 부모님들에게, 강해진 자신을 자랑하고 싶다. 그리고 자신이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듯, 자신을 그들의 자랑거리로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바람은 용기로.
용기는 힘으로 바뀐다.
자신의 가능성의 한계를 넘어선, 운명의 외곽에 존재하는 힘으로.
이제는, 인력 따위의 위압에 겁먹는 일은 없다.
하지만
"너 따위에게 답해줄 말은 아무것도 없어."
그걸 말해 줄 이유는 없다. 이딴 남자에게 자신을 이해시킬 필요 따위, 스텔라는 느끼고 있지 않았다. 말을 나누는 것조차 귀찮았다.
하지만
"하지만, 딱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스텔라는 증오와 분노에 불타는 눈으로 오르=골을 노려본 채, 질문했다.
"너, 대체 루나 언니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응?"
"칼디아에서의 양군의 전면 충돌. 루나 언니는 그걸 대표전이라는 형태로 전쟁을 마무리짓고 종전시켰어. ……하지만, 너같은 쓰레기 녀석이 이 루나 언니의 제안을 그냥 순순히 받아들일 리는 없겠지."
네네는 말했다. 악마와 거래를 하기 위해선, 악마의 통화가 필요하다고. 그 때의 루나아이즈의 비창한 각오의 표정은, 그녀가 그 통화를 지불했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너, 루나 언니에게 무슨 짓을 시킨 거야……!"
분노에 불타는 눈으로 스텔라는 다시금 오르=골에게 질문을 던졌다. 거기에, 오르=골은 "아아, 그거 말야?" 하고 손뼉을 친 뒤
"아하 그건 딱히 내가 뭘 한 건 아닌데 말이지."
답했다.
"클레이델란트 군과 버밀리온 군이 칼디아 시에서 충돌했을 때, 누나가 가져 온 《창천의 문》 덕분에 겨우 도망치는 데에 성공했는데, 루나아이즈 양은 또 그렇게 힘들게 헬기까지 타고 와서는 나에게 제안을 하더라고. '버밀리온의 입장으로서는, 국민의 희생을 내고 싶지 않으니 연맹 룰에 따라 전쟁을 하고 싶다. 그쪽도 이대로 연맹과 전면전을 펼치는 것보다는, 대표전이라는 형태로 싸우는 게 더 편할 테지' 라고 하면서 말야. 하지만 있지? 그런 교섭에 따를 이성적인 녀석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짓은 하지도 않았다고. '연맹'의 잡병들이 몇 백 명이 오든 말든, 이쪽은 아무런 상관이 없단 말이야. 뭐, 그러니 당연히 거절했지. ……그랬더니, 아하 그녀가 엄청난 제안을 해 오더라고. 혹시 제안을 받아들여 연맹 룰 하에 전쟁을 해 준다면, 클레이델란트가 버밀리온을 흡수한 뒤, 전쟁 범죄인들의 처형을 자신이 담당한다고 말이지!!"
"크읏─────!!!"
"아하 아하! 아~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 그러니까, 전쟁에 지게 되면, 자기 손으로 스텔라나 부모님들을 죽여버린다고 한 거잖아! 정말 머리 좋은 사람이라니까. 교섭이란 걸 아주 잘 알고 있더라. 그런 유쾌한 조건이 나오게 되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잖아! 아아, 진짜 기대된다~ 실로 조종해 상대의 육친이나 연인을 죽이게 시킬 때, 실을 통해 전달되는 마음의 동요도 아주 '별미'지만, 자신이 직접 그 행동을 한다고 한 뒤, 내가 강제하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손으로 그런 짓을 실행했을 때, 루나아이즈 양의 마음은 대체 어떤 식으로 동요하게 될까! 바보같은 말을 했던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떨릴까? 아니면 '이런 짓은 할 수 없어! 용서해 줘!' 하고 울고 불며 용서를 구할까? 아니면 있지. 모든 걸 억눌러 참고 그대로 실행하려나!?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분돼 버린다구!!"
"…………읏.."
오르=골이 말한, 둘의 거래 내용. 스텔라는 거기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죽인다. 그것도 강제로 시키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의지와 행동으로. 그런 상상만 해도 오싹한, 오히려 살해당하는 쪽이 훨씬 더 낫다고 볼 수도 있는 생지옥을, 루나아이즈는 이 악마와의 거래의 대가로 제시한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악마와 교섭하기 위한 통화였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래, 확실히 그건 통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악마는 아주 기쁘게 루나아이즈와의 거래에 응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지금 띠고 있는, 오한이 드는 미소로.
그리고, 루나아이즈는 그 교섭이 성립되어 기쁜 마음이 들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루나아이즈가 총명하고, 고결하고, 상냥한 인물이라는 걸, 스텔라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 외엔 방법이 없었다고 해도, 자신들의 가족의 목숨을 조건으로 내세워 거래를 하는 것에, 심히 자책했을 것이다. 그리고 찾아올지도 모를 악몽과도 같은 결말에, 잠들 수 없을 정도의 공포를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괴로움이나 공포를 억누르고, 혼자서 모든 걸 짊어지고──
그런 괴로운 경험을.
그런, 고독한 싸움을.
───내 가족에게 겪게 만든 것인가. 이 빌어먹을 자식은!!!!!
"……음, 하지만 아무래도 기색이 상당히 불리한 것 같아서 유감이야. 설마 스텔라나 다른 애들이 이렇게까지 열심히 기어올라올 줄이야. 역시 누나를 상대하며 동시에 스텔라와 함께 인형놀이를 하는 건 무리가 있었던 것 같네. 최악의 경우, 도망치는 것도 생각해 둬야──"
"그럴 필요는 없어."
스텔라는 손에 든 《비룡의 죄검》을 쥔 손에 힘을 더욱 가했다.
루나아이즈는 지금껏 충분에 넘칠 정도로 싸웠다.
여기서부터는, 자신의 차례.
루나아이즈 덕택에, 자신은 이 악마와 싸울 힘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도망칠 생각 따윈 안 해도 돼. 넌 지금부터, 이 나라에서 살아서 돌아갈 생각조차 하지 마. 물론 모두가 잠들어 있는 이 나라의 땅에 묻지도 않을 거야. 뼈조차 남김없이 전부 재로 만들어 바다에 버려주겠어!"
이 자리에서 저 남자의 숨통을 끊는다.
이 이상, 그 누구도, 무엇 하나도, ──이 악마의 손에 놀아나게 놔두지는 않겠어!
그런 결의와 각오를 다진 스텔라는, 외쳤다.
"아스칼리드 양! 내 움직임에 맞춰 줘!"
"아……! 읏, 알았어……!"
스텔라의 호령에, 아스칼리드도 배틀 액스를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두, 둘이 한꺼번에 덤비는 건 비겁하잖아!?"
새파랗게 질린 오르=골을 향해 달려나갔다.
◆◇◆◇◆
『자, 《야차 공주》의 용태가 신경쓰이긴 하지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야차 공주》는 의료반에게 맡겨 두고, 난 계속해서 전쟁을 중계해 보실까! 버밀리온 대 클레이델란트의 존망을 건 전쟁도 드디어 종반! 버밀리온 팀의 파죽의 쾌진격으로 인해, 클레이델란트의 생존자는 단 한 명! 《괴뢰왕》 오르=골! 그 망할 자식만이 남았다고! 그리고, 《흑기사》와 《괴뢰왕》이 교전하고 있던 시가지에 지금, 클레이델란트 팀의 리더, 신왕 요한을 쓰러뜨린 《홍련의 황녀》 스텔라 공주님이 가세!!!』
네네와 나짐의 싸움을 지켜본 뒤, 실황은 네네와 나짐이 싸웠던 전장에서, 타타라의 《별의 심판》에 의해 전부 폐허가 되어 버린 왕성을 둘러싸고 있는 주택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로 중계를 옮겼다.
"하아아아압!!"
"큿, 우웃!"
『러쉬! 러쉬!! 러쉬!!!!!! 《홍련의 황녀》가! 《흑기사》가 맹공! 둘이 동시에 틈을 주지 않는 연격을 가하며, 《괴뢰왕》을 점점 몰아넣는다!! 둘 다 파격의 공격력을 지닌 기사끼리의 콤비네이션! 《괴뢰왕》은 방어하기 일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꼴사납게 도망가기만 할 뿐이야!! 하지만 실을 박차 하늘로 도망치는 《괴뢰왕》! 그러나───』
"놓칠 것 같아!!"
"으아아앗!!"
『스텔라가 곧바로 떨궈버렸다!! 《괴뢰왕》이 하늘로 도망치려고 해도, 스텔라가 비행능력을 구사하여 공중을 장악! 도망 같은 건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낙하한 《괴뢰왕》의 목덜미에, 《흑기사》의 배틀 액스가 굉음을 내며 쇄도!! 《괴뢰왕》! 가까스로 회피! 하지만──거기에 스텔라의 폭격!!!』
스텔라가 펼쳐 놓은 화염의 날개. 그 깃털 하나하나가 뜨거운 섬광을 그리며, 불비가 되어 《흑기사》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는 오르=골에게 쏟아졌다.
오르=골은 도저히 이 모든 것을 피할 자세를 취할 수 없었고
『직격──────!!!! 《괴뢰왕》! 누더기가 되어 날아간닷!! 어이쿠! 지금 공격으로 다리가 부러진 걸까! 이상한 방향으로 다리가 꺾여 일어날 수가 없는 상태! 이런 다리론 도망칠 수도 없지! 그리고 도망 수단을 잃은 《괴뢰왕》에게, 상공을 통해 스텔라가, 지상을 통해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가 동시에 쇄도! 거의 린치나 다름없는 구타! 하지만, 이 전쟁의 형식은 배틀로얄! 수로 나서는 전략을 비겁하다고 할 수도 없지! 그대로 끝내버려! 두 기사 아가씨들!!』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다는 듯, 스텔라는 큰 기술을 펼쳤다.
빛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집속되는 불꽃의 검.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
닿는 모든 것들을 재로 만들어버리는 빛의 검을, 다리가 부러진 오르=골에게 내리쳤다. 하지만, 오르=골은 옆으로 도약해 이것을 피해냈다.
부러진 다리로 어떻게 뛸 수 있었을까?
답은, 바로 실이었다.
마을 여기저기에 펼쳐 놓은 실로 자신의 몸을 묶어 당겨, 지면에 몸을 쓸려 가면서까지, 치명상이 될 일격을 피해낸 것이다. 하지만, 다리가 부러진 오르=골이 실을 이용해 회피를 할 것이란 건 스텔라도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일격은 그에게 공격을 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닌, 오르=골의 행동을 제한시키기 위한 일격.
주변의 지형과 참격의 궤도.
그것을 조합해, 오르=골의 회피 행동에 쓰일 루트를 좁혔다. 가까스로 치명상을 피한 오르=골이 날아간 곳은,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의 정면.
"윽───!"
횡방향 일섬.
순수한 마력을 파괴의 힘으로 바꾸어 담은 배틀 액스가 날아왔다.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집 한 채가 손쉽게 산산조각이 나 버리는 아스칼리드의 공격. 제대로 맞게 되면, 일격에 승부가 끝날 것이다.
하지만, 이 아이리스의 추가타보다, 오르=골의 기전 쪽이 약간 더 우월했다.
"아아앗!!"
아이리스의 배틀 액스가 목을 쳐내기 직전.
오르=골이 오른손을 바닥에 내리쳤다.
그러자, 예리한 실이 돌로 된 노면을 거미줄 형태로 잘라냈고, ──오르=골의 몸을 지반 아래, 지하도로 낙하시켰다.
좌우, 그리고 위로 도망칠 것은 상정해 두고 있었지만, 설마 지면 그 자체를 무너뜨려 지하로 도망칠 줄은, 아이리스조차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거기에 재빨리 대응해내지 못한 채, 배틀 액스는 오르=골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오르=골은 다음 행동을 취했다. 헛스윙을 한 배틀 액스에 실을 감아, 아이리스의 힘을 이용해 자신의 몸을 구멍 속에서 빠져나오게 했다.
그대로 지하 하수도에 떨어지게 되면, 도망칠 곳도 없는 밀폐 공간 속에서 스텔라의 화염을 받게 될 테니까.
그걸 기피한 행동.
오르=골은 몸을 다시 지상으로 빼낸 다음, 실을 잘라 스텔라와 아이리스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그 거리가 좁혀지기 전에 부러진 다리를, 실을 이용해 움직일 수 있는 상태까지 보강하여 도망갈 수단을 되찾았다.
2대 1이라는 열세 속에서, 오르=골의 판단력이 빛을 발했다.
하지만
『칫! 바퀴벌레같이 끈질긴 녀석이야. 《괴뢰왕》 오르=골! 하지만, 저걸 보라고! 저 녀석의 꼴을! 이젠 그 소름끼치는 미소를 띨 여유조차도 없는 필사의 형상! 뻘뻘 흘리는 땀에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있고, 몸 여기저기가 쓸려 난 찰과상들! 호흡을 진정시킬 틈도 없어서 숨도 거칠어져 있다고! 체력도 정신력도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어! 그 쓸데없는 발버둥도 오래 못 갈 거라고!』
그렇다. 실황이 말한 대로, 확실히 한계가 가까워져 있었다. 애초에 스텔라와 아이리스는, 이미 일대 일씩으로 싸운다 하더라도 오르=골이 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애초에 전투 면으로 그리 특화되어 있지 않은 오르=골에게 있어, 한 명을 상대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태. 그런 기사를 둘이나 동시에 상대하다니, 무리가 있는 것이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잡혀 버릴 것이다.
금방 결착이 날 것이다.
그것이, 당연하다.
그럴 터였다.
───하지만
버틴다.
벼랑에 매달린 채로, 오르=골이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그건, 오르=골의 집념만이 문제인 것이 아니었다. 원인은,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에게 있었다.
"아스칼리드 양, 괜찮아!?"
"윽, ……괜, 찮아!"
스텔라가 염려의 말을 건넸다. 콤비네이션으로 오르=골을 위기에 내몰긴 했지만,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결정타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
그건, 이따금씩 아이리스의 공격이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방금 그 지하 하수도를 이용한 회피도 그렇다. 평소의 아이리스의 기동력이라면, 오르=골이 지면을 절단시킬 틈도 주지 않고 목을 잘라버렸을 것이다.
그 정도의 힘을 갖고 있는 기사라는 건, 스텔라 자신이 직접 상대를 해 봤기에 알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이 올 때까지 전투 속에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가, 하고 염려의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아이리스는 괜찮다고 답했다.
하지만, 자신의 과실에 의해 오르=골을 끝장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미 아이리스 자신도 눈치채고 있었다.
'어, 째서……'
투구 속에서, 이를 악물었다.
증오라는 말로도 부족한 상대. 과한 살의 탓에 공격의 동작이이 자신도 모르게 커져 버리는 것.
──그런 게 아니다.
아이리스와 오르=골 사이에 있는 실력차를 생각한다면, 다소 공격이 잡스러워진다 할지라도 끝장내는 데엔 충분에 차고 넘칠 정도였기에.
실제로, 스텔라가 오기 전, 오르=골의 '인형'을 이용한 참극의 재현이라는 도발도 있어서, 아이리스의 마음은 냉정함이란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고, 공격도 방어도 그 모든 것이 조잡해져 있었지만, 그런 상태였다 할지라도 압도적인 방어력에 의해 오르=골의 맹공을 뿌리치고 일방적으로 그를 몰아넣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이리스의 움직임은, 스텔라가 합세하기 전보다 더욱 느려져 있었다.
나빠져 있었다.
그 이유는, ───혼란.
'어째, 서…………!'
오르=골의 가냘픈 목을 움켜잡아, 부러뜨려 버리기 위해 손에 힘을 넣은 그 때.
질식에 의해 얼굴이 검붉어진 빈사 상태의 오르=골이, 입을 열었다.
그 말은, 기도가 막혀 있어 소리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입의 움직임을 보고, 아이리스는 그 말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살려, 줘………, 누, 나………'
목숨 구걸.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능욕해 온 악마의, 꼴사나운 바람.
들어 줄 이유 따윈 없다. 살아 있을 권리 따위, 이런 악마에겐 없는 것이다.
당연하다.
당연할 터.
그런데, ──그 소리조차 없는 목소리를 들은 찰나, 아이리스는 손에 힘이 풀려나가 버렸다. 그 자신의 행도엥, 아이리스는 극한 혼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자신의 실력이라면, 스텔라의 보조가 없어도 오르=골을 끝장내는 건 손쉬울 터.
그런데도, 둘이 한꺼번에 덤벼도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다.
마무리를 지으려 하는 순간마다, 몸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굳어버린다. 그의 목숨을 끊기 직전, 최후의 한 발짝. 그것이, 흐트러지게 된다.
'어째서!'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반응에, 아이리스는 이를 악물었다. 설마, 이 악마에게 동정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 없다.
오르=골이 무엇을 해 왔는가.
이 남자가 살아 있으면, 무슨 짓을 벌이게 될까.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참극 속에서, 오르=골의 꼭두각시가 되어 부모와 마을 사람들을 처참히 죽인 건, 자신의 몸이었기에.
그 지옥의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죽인 순서. 죽인 방법. 고통과 공포에 물든 단말마의 비명──
그 모든 것들이,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 마을에서 벌어진 일은 모두, 네 탓이야. 아이리스=골'
'그래…… 내, 탓이야………!'
보호 처분을 받은 아이리스에게, 국제 마도기사 연맹 프랑스 지부의 지부장, 레비 아스칼리드가 내뱉은 용서 없는 말을, 아이리스는 긍정했다. 자신은 누나로서, 누구보다도 오르=골의 곁에 가까이 있었다. 동생의 이상성을 눈치챌 기회는, 틀림없이 있었을 텐데.
혹시 눈치챌 수만 있었다면, 좀 더 다른 '현재'가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모든 건,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이상 같은 비극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막는 것이, 그것만이, 아이리스=골이 현재 살아 있는 유일한 이유이니까……!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읏───!?"
하늘이 뒤흔들릴 정도의 세찬 기합.
《무적갑주》의 틈에서 보라색의 화염 같은 마력광이 뿜어져 나왔다. 이해할 수 없는 망설임을 기합과 의무감으로 꺾어버리고, 아이리스는 다시름 오르=골을 향해 공격해 나아갔다. 이 소리에, 한 순간 오르=골의 주의가 아이리스를 향했다.
그 한 순간을, 스텔라는 놓치지 않았다.
"하아아아아아아압!"
"이런! ──크으으윽!!"
상공에서의 일직선 낙하.
그 기세에 몸을 맡겨, 《비룡의 죄검》을 내리찍었다. 주의가 돌아간 한 순간을 노린 공격에, 오르=골은 회피할 수 없었다. 곧바로 실을 만들어내 '거미집'을 방패삼아, 스텔라의 강검을 받아냈다. 가압을 분산시키는 구조로 짜여진 실의 방패는, 스텔라의 강력한 일격을 가까스로 받아내었다.
하지만,
"아이리스 양! 지금이야!!"
불꽃의 날개로 불꽃의 방패를 감싸며, 스텔라가 외쳤다.
《거미집》과 《비룡의 죄검》의 길항은 아슬아슬했다. 오르=골이 아주 약간이라도 힘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비룡의 죄검》은 《거미집》을 뚫고 그 너머에 있는 오르=골을 양단해버릴 것이다.
오르=골은 이제 도망칠 수 없다.
아이리스의 움직임이 나빠진 건, 콤비를 짜고 있는 스텔라도 잘 알고 있었지만, 움직일 수 없는 상대라면 놓칠 리가 없을 터.
그리고, 스텔라의 외침에, 아이리스는 응했다.
땅을 분쇄하는 기세로 박차, 옴짝달싹도 못 하는 오르=골을 향해 대시. 배틀 액스를 한계치까지 치켜들고, 혼신의 힘을 담아 오르=골을 향해 머리에서부터 내리쳤고
"시, 싫어어어! 싫어싫어! 죽고 싶지 않아! 살려 줘! 살려 줘, 누나아아아───!"
자신과 같은 좌우 다른 색을 갖고 있는, 공포에 부릅떠진 눈과 눈이 마주친 직후,
아이리스는, 다시는 볼 수 없을 터인 광경을 보게 되었다.
◆◇◆◇◆
갑자기 바뀌게 된 아이리스의 시야.
눈에 비춰진 광경은, 지금까지 자신이 서 있었을 터인, 밤이 드리워진 뤼셸의 시가지가 아니었다.
불이 붙어 있는 난로.
온화한 분위기의 목조 벽.
멋들어진 조도품이 나열되어 있는, 작은 동물을 본따 만든 유리 세공품.
그곳은……그녀의 집이었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지금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 집.
아이리스와 양친. 말수는 그다지 많지 않은 셋이서 살았던, 언제나 조용한 시간이 흘렀던 곳.
하지만 그 날만은, 아주 소란스러웠다.
무언가가 깨지는 듯한, 갓난 아기의 울음소리로.
'어머나, 크게도 우네. 몸집은 조금 작지만, 이렇게 힘차게 우는 걸 보면 괜찮은 것 같네.'
'다행이야…… 아주 애 썼어, 여보.'
울음을 터트리는 갓난아기를 들고 있는,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조산부와 부친이, 침대에 땀투성이가 된 채 누워 있는 모친에게 수고의 말을 건넸다.
모친은 여기에 안도의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떡였다.
'자. 아빠 될 사람의 얼굴도 보여 줘야죠.'
'아, 네.'
'아빠! 아이리스도 보고 싶어! 아이리스한테도 보여 줘!'
그런 대화를 보고 있던 당시의 자신이, 어른들만 보는 건 치사하다면서 자리에서 뿅뿅 뛰며 떼를 쓰고 있었다.
여기에, 부친이 갓난아기를 끌어안은 채 아이리스 앞에서 쭈그려 앉은 뒤
'그래. ……자, 오를레우스. 이 사람이 누나란다.'
'와아……'
그것이, 아이리스=골과 오를레우스=골이 만난 최초의 순간이었다. 가장 먼저 의식이 향한 건, 아직 채 뜨지도 못한 눈이었다.
살짝 감긴 눈꺼풀 너머로 보이는, 자신과 같은 좌우 다른 색의 홍채.
양친의 색을 한쪽씩 물려받은 눈동자.
'나랑, 똑같은 눈……'
여기에 어린 아이리스는, 자신과 피가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깊게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우, 아아~'
아이리스와 얼굴이 마주치자마자, 오를레우스가 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아이리스의 얼굴을 자세하게 보려는 것인지, 열심히 눈을 뜬 다음, 아직 만족스레 움직이지 못하는 손가락을 천천히 쥐락펴락했다.
무언가를 바라고 있는 듯이.
슬쩍 손을 뻗자, 작고 부드러운 손가락이, 아이리스의 손가락을 꼭 쥐었고──
'꺄아아~~'
'아, 웃었……어'
'후후. 누나가 마음에 든 모양이네.'
'아이리스. 넌 오늘부터 누나가 되었으니까, 오를레우스를 잘 지켜 줘야 한단다?'
모친이 말한, 누나로서의 입장. 그것이 어떠한 것인지, 아직 어렸던 자신은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이 늘어났다는 실감도 아직 잘 느껴지지 않아서, 지켜 주라는 말을 들어도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질 않았다.
하지만…열심히 자신의 손을 쥐고 있는 이 작은 손이, 그 손을 통해 전해지는 가냘프지만 확실히 자신을 원하고 있는 의지의 힘이
너무도……너무도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나는, ....!'
'────응!'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엣!?"
경악은, 오르=골을 붙잡고 있던 스텔라에게서.
그 이유는, 부릅떠진 눈을 통해 비춰진 그녀의 시선 너머.
아이리스의 배틀 액스가, 스텔라를 향해 쇄도했고
──눈 앞까지 날아왔던 것이다.
◆◇◆◇◆
"꺄아아아아아아앗!?!?"
『이, 이게 뭐야!?!?!? 《흑기사》의 배틀 액스가 《괴뢰왕》이 아닌, 《괴뢰왕》을 붙잡고 있던 스텔라를 향해 날아갔다아앗!! 야, 야! 잠깐만! 뭐 하는 거야! 너무 가까워서 조준이 빗나간 거야!? 아니면 《괴뢰왕》에게 조종당하게 되어 버린 건가!?!?』
자신의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실황이 혼란을 내비치고 있었다. 물론, 갑자기 아이리스에게서 날아온 공격을 가까스로 방어해냈지만, 뒤로 크게 날아간 스텔라도, 심히 곤혹해하며 아이리스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아, 아스칼리드 양!? 어째서!?"
설마, 오르=골의, 타인의 신체의 자유를 빼앗는 노블 아츠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것인가. 실황이 그랬듯 스텔라도 그리 생각하고, 오르=골을 노려보았지만
"누, 누나……?"
아이리스의 뒤에 있던 오르=골 본인도, 스텔라나 실황처렁 곤혹한 표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아이리스를 제어하에 두고 있다면, 이 표정을 짓는 건 이상하다.
대체 무슨 일인가, 하고 스텔라는 아이리스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그런 곤혹의 시선이 모여 있는 가운데
"아……아아아아아, 하아! 기익, 으으으으으!!!!!!"
"아스칼리드, 양……?"
《무적갑주》를 입은 아이리스가, 마치 얼어붙은 몸을 떠는 것처럼 몸을 벌벌 떨더니 갑주를 벅벅 긁었다.
투구 사이로 비통한 통곡을 흘리며.
그 보통 상태가 아닌 모습을 보고, 스텔라는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가려 했다.
그녀의 몸을 걱정해서.
하지만
"미, 안해……"
그 말에, 스텔라의 발이 멈추었다.
타오르고 있을 용의 피에, 마치 냉수가 끼얹어진 것처럼 서늘한 감각을 느꼈다.
왜 사과하는 거지?
무엇을 사과하는 거지?
오르=골에게 조종당한 자신의 실수의 사죄?
아니, 오르=골 자신도 곤혹해하고 있는 이상, 그럴 리는 없다.
오르=골은 아이리스를 조종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럼, 이 사죄의 의미는──, 설마
"지킨 거야……? 그 녀석을……"
그럴 리 없다는 듯, 스텔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럴 리는, 절대로 없다.
그렇게 부정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이 스텔라의 질문에 아이리스는 부정의 답을 내지 않았다. 곧바로 나와야 할 부정의 답이 나오기는커녕, 오르=골을 등뒤에 두고, 스텔라를 향해 배틀 액스를 치켜든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이리스 아스칼리드───!!!!!"
이 아이리스의 행동에, 스텔라는 창백한 안색이 될 정도의 분노를 드러내고, 격노에 소리쳤다. 하지만, 이 스텔라의 분노를 앞에 두고도, 아이리스는 전투 자세를 풀지 않은 채, 아무 움직임도 없이, 사죄의 말도 하지 않은 채,
등 뒤의 오르=골을 향해, 말했다.
"……도망쳐. 오를레우스."
"누, 나?"
"너에게 이미 승산은 없어. 그러니까…… 큭... 도망쳐!"
그 한마디에, 스텔라가 그랬듯 아이리스의 행동에 혼란에 빠져 있던 오르=골의 얼굴에 희열이 떠올랐다. 아이리스가 진심으로 자신을 지키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아하 응! 고마워, 누나! 역시 누나는 내 편이 되어 주는구나!"
아이리스의 행동이 어떠한 심경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위기에 내몰린 오르=골에게 있어 이건 구사일생,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고마워! 사랑해, 누나!"
그는 곧바로 공중을 박차 스텔라에게 거리를 두었다.
거기에 물론 스텔라는 "거기 서!" 라는 분노의 일갈과 함께 쫓아가려 했지만,
그 앞을, 아이리스가 가로막았다.
"크윽! 장난은 적당히 해! 진짜 화 낸다!?"
"..............."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이제 한 명만 쓰러뜨리면 될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는 싸움이라 생각했던 이 전쟁에, 엄청난 반전이 벌어졌다앗!!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의, 예상치 못한 배신! 《괴뢰왕》을 도와 《홍련의 황녀》 스텔라를 향해 공격 자세를 취하고 있다아아아앗!! 이 시점에서 《흑기사》는 룰에 의거 실격 처리되겠지만, 그녀를 제지할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어! 대체 이후로 일이 어떻게 돌아가려는 거야!? 《흑기사》는 왜 저렇게 되어 버린 거냐고!?』
이 있어선 안될 비상사태는, 격한 동요와 곤혹, 혼란을 동반하여 전 세계로 퍼졌다.
버밀리온은 물론,
파견된 연맹의 병사들은 물론──
"……빌어먹을."
《흑기사》의 고향. 프랑스 파리. 국제 마도기사 연맹 프랑스 지부의 장관 집무실에서 이 전쟁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리스의 의모, 《총검》 레비 아스칼리드에게도.
◆◇◆◇◆
"자, 장관님! 크, 큰일 났습니다! 《흑기사》가! 따님이!!"
"……그래, 알고 있어."
장관실의 모니터를 통해 비춰진 비상사태에 극한 동요를 내비치는 젊은 여성 비서에게, 안대를 찬 장신의 여성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 있다니……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실 수 있으신 거에요!"
"이게 침착한 모습으로 보여?"
"읏.."
피처럼 붉은 머리칼 너머로 자신을 노려보는 눈빛에, 비서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눈에 깃든 것은 해서는 안될 착각을 범한 부하에 대한 분노. ──같은 것이 아닌, 연맹 안에서는 맞설 자가 아무도 없는 여걸로 알려진 《총검》 레비에겐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고통을 억누른 연민의 눈빛이었다.
"……은닉 사건 《피에 젖은 십자가》가 벌어진 뒤, 진압에 나선 오벤 녀석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혹시나 했는데 말이지..."
레비는 책상에 팔꿈치를 짚고, 기도하듯 두 손을 맞잡은 채,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로, 당시의 일을 회상했다.
사건 당일. 진압에 나선 오벤 부대가 도착했을 때, 주범인 오르=골은 아직 거기에 있었고, 오벤 부대의 도착을 알게 되자, 도망치기 위해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인 자신의 누나 아이리스를 조종하여, 오벤 부대의 발을 붙잡아 놓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오르=골에 의해 조종당해 능력이 높아졌다 할지라도 아직은 어린애일 뿐. 시간 벌기는 오래가지 못했고, 오벤 부대는 아이리스에게 빈사의 중상을 입혀 진압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여기서 오벤 부대에게 있어 상정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쓰러진 아이리스가 《각성》으로 부활했고,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벤 부대가 손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강해진 탓에, 오르=골이 충분한 거리를 두어 아이리스의 조종이 끊길 때까지 발이 묶이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 보고를 받았을 때, 레비는 한 가지 의문을 느꼈다. 그건, 대체 무엇이 아이리스를 《각성》에 달하게 했는가, 하는 점이다.
《각성》은 자신의 에고를 관철하기 위해 자신의 가능성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 이것을 해내기 위해선 흔들리지 않는 에고가, 바람이 불가결하다. 재능만으로 어떻게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레비는 이 의문을, 누나로서 오르=골의 이상성을 눈치채지 못하고 참극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죄악감에 기인하여, 오르=골을 막아야만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 판단했다.
아이리스 자신도 그렇다고 말했기에.
하지만, 이것과는 또 다른 이유가, 가능성이 있었다.
있어선 안 될, 존재조차 하지 말아야 할 가능성.
레비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이리스가 그 날 《각성》에 달한 이유는, 흔들림 없는 에고란, 어쩌면──
"자신의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였던 것이 아닐까……"
"으읏……!"
오르=골을 지키기 위해, 아이리스는 자신의 한계를 초월해서라도 실을 통한 오르=골의 요구에 계속해서 응했어. 그 가능성도 확실히 있었지. 그러니……그렇기에 나는, 그 가능성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아이리스가 그걸 모르도록 거짓된 사실을 덧칠해 왔지. '네 탓이다', '넌 누나로서 동생을 죽여야 할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자각하고 있었기에, 넌 《각성》에 달할 수 있었던 거야' 라고 말야. 제대로 된 사고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피폐해져 있던 그 녀석의 정신에 더욱 채찍질을 가해, 세뇌나 다름없는 짓을 한 거야."
"어, 어째서……그런 행동을……?"
"어째서냐니."
비서의 말에, 레비는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왜냐고? 그 사실을 알게 되면, 그 녀석은 그 이상 더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양친을 살해하고, 친구를 살해하고, 모든 것을 부숴 버린 악마를.. 그래도 지키려 한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야!?"
그런 감정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하지만 부정할 수도 없는 그 무서운 감정을, 홀로 끌어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런 건, 너무 잔인하잖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용서받지 못하고, 자신에게조차 용서받지 못한 채, 이 세상 모두에게 힐난받는 삶.
그런 식으로 살지 않길 바랐다.
그렇게나 엉망이 된 아이리스가, 더욱 상처입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한 인간이 그만큼이나 고통을 받아야 할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레비는 철저히 아이리스에게 책임을 들이밀었다. 설령 아이리스의 바람이 정말로 그랬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거짓을 관철해 나아간다면, 언젠가 이쪽의 감정이 진정한 자신의 감정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에.
하지만── 그런 레비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거짓된 분노는 오르=골 본인을 눈앞에 두자, 손쉽게 떨어져 나가버렸고, 아이리스는 알게 되어 버렸다.
자신의,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할, 용서받지 못할 바람을.
"빌어먹을!!"
"장관님……"
분노에 집무실 책상을 내리치는 레비. 하지만 레비가 아무리 탄식하고 있더라도, 이제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게 되었다.
아이리스는 누가 보더라도 확실히 알 수 있는 형태로, 오르=골을 지켜냈다. 이 현실은, 이미 전세계의 사람의 눈에 들어갔고, 그 모든 사람들이 아이리스의 행동에 곤혹함을 내비쳤다.
그리고 그 곤혹은, 타오르는 듯한 분노로 바뀐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아이리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와 대치하고 있는 홍련의 기사와 같은, 분노에 불타는 눈으로.
"진심, 인거지?"
"…………"
"살해당한 사람들의 원통함을 갚기 위한 거라는 말도, 가족으로서 이 이상 동생에게 상처받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보고 싶지 않다는 것도, 모두 다.. 거짓말이었던 거야……! 처음부터, 우리들을……속여 온거지!?"
"………"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의 질문에, 아이리스는 답하지 않았다. 한 마디 사과를 던진 후엔, 그저 입을 다문 채 스텔라를 향해 배틀 액스를 치켜든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
그 행동을, 스텔라는 자신의 모든 질문에 대한 긍정이라 받아들였다.
"알았어. 그런 거라면, ……이제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않겠어."
스텔라의 목소리에 열기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눈을 한 번 감고, 다시금 뜬 눈에선, 타오르는 것만 같은 분노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분노가 식은 것인가.
스텔라는, 인식한 것이다.
아이리스가 이제부터, 자신의 적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분노를 나타낼 건 눈이 아닌, ──검.
"지금 이 자리에서, 끝장내 주겠어."
그리 말하고, 스텔라는 《비룡의 죄검》을 들었다. 여기에 반응하여, 아이리스도 자세를 더욱 크게 잡았다.
다리를 크게 벌린 자세.
스텔라의 강대한 파워를 받아내기 위한, 스텔라와 싸우기 위한 자세.
이것이, 신호가 되었다.
스텔라는 검을 한 층 더 강하게 쥐고, 자신의 적을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아니, ──돌진하려 했다.
"잠깐만 기다려 줘. 스텔라."
하지만, 적과 흑의 기사의 충돌은, 낮게, 하지만 밤공기를 찢을 정도의 예리함을 띤 한 목소리에 의해 제지되었다.
그 목소리를, 둘은 알고 있었다.
"읏, 잇키……!"
둘의 시선이 향한 곳.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한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
그는 스텔라의 곁에 선 다음, 말했다.
똑바로, 자신을 향해 무기를 든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를 바라본 채
"그녀의 상대는 내가 하겠어. 이건, 이렇게 될 가능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내 책임이야."
◆◇◆◇◆
그 일은, 결전의 날로 일자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을 무렵.
클레이델란트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충분한 수면을 취하기 위해, 밤새 국장이 이루어지고 있는 광장에서 떨어진 거리에 있는 객실로, 쿠로가네 잇키가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어라?"
돌아온 잇키는, 조명이 꺼진 복도 너머에 있는, 자신의 방문에 누군가가 등을 기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시즈쿠보다 약간 큰 키. 살짝 삐친 머리에, 칼날과도 같은 날카로운 눈매.
멀리서 보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잘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요 며칠간, 기묘한 협력 관계에 있는 소녀.
뒷세계에 몸을 담고 있는 암살자 중 하나──《부전흉수》 타타라 유이였다.
"타타라 양? 어쩐 일이신가요. 이런 곳에?"
그리 묻자, 타타라는 문에서 등을 떼고, 잇키 앞에 선 다음 답했다.
"널 기다리고 있었다고. 상당히 늦게도 오네. 내일……아니, 이젠 오늘이지. 앞으로 하루가 지나게 되면 전쟁이 벌어질 날인데, 이 시간까지 여자친구랑 야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니. 말 그대로 기운도 좋으시네. 벌레도 못 죽일 기생오래비같이 생겨가지고 내용물은 알찬가 봐?"
"별로 뭘 한 건 아니에요.. 스텔라와는 내일부터 힘내자는 그런 이야기를 한 것 뿐이고.."
"헤에? 그럼 넌 사내놈인 주제에 입에 립스틱이나 바르고 다니는 게이 자식이었냐?"
"헉!"
서둘러 입가를 닦는 잇키.
하지만, 옷소매에 립스틱이 묻어나오는 일은 없었고
"킥킥킥. 거짓말이야, 멍청아. 역시 할 일은 다 하고 다니나 봐?"
속임수에 걸렸다.
그걸 깨닫고, 잇키는 얼굴을 붉혔다.
"노, 놀리지 말아주세요! 거, 거기에 진짜 이상한 짓은 안 했다고요! 키스만 조금 한 정도이고, 타타라 양이 상상하는 그런 행동은 전혀 하질 않았다니까요!"
"뭐, 니들이 뭘 하건 아무 흥미도 없으니 상관없지만."
"흥미도 없으시다면 이상한 말 하지 좀 말아주세요.."
잇키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떨궜다. 그 뒤 기분이 상한 것을 감추지도 않은 시선을 보내며, 타타라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타타라 양은 왜 여기 계신 거에요? 절 놀리며 시간 보내시려고 힘들게 여기서 절 기다리고 있었던 거에요? 상당히 심심하신가 보네요."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렇게 놀림을 당하니 순순한 태도로 이야기를 들어 볼 마음은 싹 사라져버렸다.
여기에, 타타라는
"아아, 그거? 그건 말이다. ────하앗!"
그건, 완전히 기습적인 해의였다.
서로의 거리가 1미터 정도까지 좁혀졌고, 타타라가 전기톱 형태의 디바이스 《땅을 기는 지네》를 현현시켜, 잇키의 목을 향해 휘둘러버린 것이다.
톱날은 구동되지 않았지만, 사람의 목을 잘라버리기엔 충분한 속도로 밤의 공기를 찢었고, 어둠을 갈라, 잇키의 경동맥에서 5센티미터 정도 남은 거리에서 뚝 멈췄다.
하지만, 멈춘 건 그녀의 의지가 아니었다.
"──────빠른데."
큭큭, 하고 어쩐지 만족스럽게 웃는 타타라의 목덜미.
밤의 어둠보다도 검은 칼날이, 그녀의 목에 대여 있던 것이다.
쿠로가네 잇키의 디바이스 《음철》.
《음철》의 칼날이, 타타라의 목의 피부를 누르고 있었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칼날을 움직인다면, 목이 베여나가 버릴 아슬아슬한 힘을 준 채로.
"틀림없이 이쪽이 먼저 움직였는데도, 더 깊이 들어온 건 네 놈이 칼날이야. 아무래도 여자친구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느라 기분이 풀어졌다고 생각한 건 내 오해였던 모양이군."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네요. 가능하면 이것도 제 오해였으면 좋겠는데요."
"킥킥.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 말라고."
잇키가 노려보고 있는 전기톱을, 타타라가 내렸다. 그리고, 자신이 벌인 이 흉행의 이유를 설명했다.
"확인해 두고 싶었거든. 네 놈이 지금 당장 싸울 수 있는 상태인지를 말이지."
"지금 당장이요……?"
전쟁이 벌어지는 건 내일 뜬 해가 질 무렵.
아직 반나절 이상이나 시간이 남아있다.
그런데, 곧바로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리 질문하는 잇키에게, 타타라가 말했다.
"그래, 지금 당장 말야. 지금부터 한 녀석을 죽이러 갈 거니까. 거기에 네 힘을 좀 빌리고 싶어서 말이지."
타타라의 갑작스런, 그리고 너무나도 험악한 그 요청에, 잇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죽이다니, 대체 누구를……?"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
"으읏─────!?"
그건, 오늘 전쟁에서 함께 싸운 소중한 동료의 이름이었다. 잇키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경악했지만, 경악에 마음이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이젠, 오해라는 말로 끝날 문제가 아니에요. 대체 무슨 일인지, 납득될 때까지 설명해 주셔야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전 여기서 당신을 돌려보내지 않겠습니다."
감정이 이끄는 대로 그녀를 규탄하는 게 아닌, 이유를 물었다.
타타라는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이 잇키의 반응에 타타라는 "역시 냉정하네. 널 고른 게 정답이었어." 하고 칭찬한 뒤, 그의 요청에 응했다.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이유는 간단해. 그 녀석은 우리에게 있어 불안요소이기 때문이지."
"불안요소……?"
"그 녀석은 오르=골의 친누나야. 피가 이어진 남매. 그런 녀석과 같은 팀을 짜 싸우다니, 더럽게 위험하지 않겠어? 언제 정에 휩쓸려 배신해도 이상하지 않을 녀석인데 말야."
하지만 이 의견에, 잇키는 동의하지 않았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육친이기에 오르=골의 흉행을 막고 싶어하고 있어요. 이 싸움에 바라고 있는 그녀의 마음가짐은, 스텔라와 같을 정도로 강할 것이라 생각해요."
고개를 가로저으며 반론하는 잇키.
여기에 타타라는 답했다.
"……에델베르크에서도 같은 말을 했었지. 《흑기사》 의 고향을 말아먹게 만든 오르=골의 흉행은, 피가 이어진 동생의 악마와도 같은 정신을 알아채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라고. 그러니 자신이 그 녀석을 멈추고, 모두의 원수를 갚아야만 한다고 말야."
"그거 봐요, 역시──"
그렇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다면, 배신할 리가 없다.
그런 잇키의 신뢰를, 타타라는 전면 부정했다.
"아주 멋들어지게 끼워 맞춘 말이란 말야."
"에.."
"살의로 변할 정도의 분노란 건, 더욱 충동적인 거라고. 죽이지 않으면 수습이 안 될 정도의 증오란 것은, 좀 더 마음 속이 엉망진창이 되는, 그런 거야. 이런이런이런 일이 있었으니, 난 동생을 쓰러뜨리겠어요. ……그딴 제삼자도 더럽게 쉽게 알 수 있는 방정식에 들어맞는 물건이 아니란 말이다. 무엇보다, 그 여자가 말하는 오르=골을 죽여아만 하는 변명에는, 동생을 막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분노나, 죽어버린 녀석에 대한 죄악감, 육친으로서 비극이 반복되는 걸 막고 싶다는 의무감은 느껴진다 할지라도, 그 어디에도 오르=골의 개인에 대한 순수한 '분노'는 느껴지지 않았다고."
"크읏………!"
"그 녀석은 양친을, 친구를 죽였지. 그러니 죽여버리겠어. 용서할 수 없으니 죽인다. 모두가 당했던 것처럼 처참하게 죽여버리겠어. 무슨 일이 있어도 죽여버리겠어. ……그 녀석의 경우라면 그거면 충분했을 거야. 그게 보통이라고. 하지만 그 녀석은, 동생을 죽일 이유를 '상식'이나 '타인'에게서 찾고 있어. 어째서일까? 더욱 어울리는 '변명'을 찾지 않으면, 자신을 속일 수 없으니까."
"그, 그런 건 모르겠어요! 사람의 마음은 그리 간단한 게……"
"알 수 있어."
잇키의 반론을 단칼에 잘라내고, 타타라는 말했다.
"숨겨진 뜻은 알 수 없지만, 살의가 진짜인지에 대한 여부 정도라면 알 수 있지. 나는 그 방면에 있어서 프로니까."
타타라의 말투와 표정에는 확신과도 같은 자신이 배어 있었다. 타타라가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잇키도 알 수 있었다.
잇키는 아이리스가 자신과 오르=골 사이에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말했던 곳에 직접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 자신의 앞에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 녀석의 살의가 '감정'이 아닌, '이유'인 건, 아마 그 녀석 자신도 모르고 있을 거야. '이유'를 자신의 '감정'이라 믿고 있어. 아마 그렇게 느끼도록 만든 누군가가 있을 거야. 그 녀석이 위험한 상태라는 걸 알고 있고, 거기에 그 녀석 자신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뚜껑을 덮어 둔 누군가가 말야. 하지만……그런 건 막상 오르=골의 숨통을 끊을 때 순식간에 날아가버릴 헛된 짓거리에 지나지 않아. 피가 이어져 있다는 건 그만큼 강한 거야. 그건 나같은 년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아니야?"
"…………"
"물론 전부 내 지나친 생각일지도 몰라. 하지만, 그 녀석의 존재가 불안요소인 건 사실이야. 그것이 사실인 이상, 난 그 녀석의 살의에 신뢰를 줄 수 없어. 신뢰를 줄 수 없는 이상, 그런 불안요소를 작전에 투입하는 건 사양이야. 도중에 6대 4의 싸움을 벌일 거면, 애초에 5대 4의 싸움을 하는 게 상황으로 따져 보자면 훨씬 낫겠지. 그러니까, 오늘 밤 내에 그 여자를 죽여야 해. 넌 그걸 좀 도우면 돼. 틈을 찌른다 할지라도 나 혼자서는 버거운 녀석이라 말이지."
즉, 그것이 타타라가 밤새 잇키를 기다린 이유였던 것이다.
여기에, 잇키는 침묵으로 답했다.
침묵 이외에 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타타라의 살의에 대한 감각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타타라가 말하는 건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육친에 대한 정은 논리 따위로는 재볼 수 없는 것. 그것이 어떻게 작용될지는 미지수. 그것을 불안요소라 칭하는 타타라의 생각은 옳다.
잇키 자신도, 타타라가 상정한 최악의 사태는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정도로, 아이리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하지만……'
"……이 이야기, 저 이외에도 하신 분이 있나요?"
이 질문에, 타타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야차 공주》는 날 전혀 신용하고 있지 않으니 협력 따위는 바랄 수 없고, 그 고릴라는 아직 어린애니까 도리 같은 건 깡그리 무시하고 반대할 게 뻔하니까. 뭐, 그게 그 녀석다운 거긴 하지만."
"그런가요."
타타라의 답에 잇키는 다행이라고 살짝 안도하며, 타타라의 제안에 대한 자신의 답을 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역시 협력할 수는 없어요."
이 잇키의 답에, 타타라는 천천히 눈을 가늘게 떴다.
"……네 놈은 이 나라를, 그 여자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었나?"
"물론 그럴 생각으로 싸우고 있어요."
"날 못 믿겠는 거야?"
"아뇨. 아스칼리드 양에게 어느 정도 불안요소가 있다는 건 이해가 갔어요."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에게 협력하지 않는가.
분개해 하는 타타라에게, 잇키는 고했다.
"하지만, 전 보고 있어요."
"……보고 있다고?"
"맨 처음에, 아직 타타라 양이 합류하기 전에, 클레이델란트에서 저희를 구해 준 그녀의 모습을요."
그렇다. 잇키가 타타라의 제안에 승낙하지 않은 것은, 막연히 《흑기사》는 동료이기에 믿고 싶다는 그런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하물며, 그저 동료를 베고 싶지 않다는 보수적인 감정론도 아니었다.
그는,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텔라 일행이 자리를 떠난 순간, 자리에서 무너져내리며 공포에 몸을 떠는 아이리스의 모습을.
아이리스에게 있어 그녀의 동생 오르=골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공포와 절망의 상징. 그 때 만졌던 그녀의 어깨가 얼마나 차가웠는지, 잇키의 손은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공포에, 누나로서의 의무감과 기사로서의 정의감으로 자신을 고무시켜, 도망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싸워 온 것이다.
그건 신뢰하기에 충분한, 용감하고 고결한 그녀의 의지의 증거라고, 잇키는 생각했다.
그러니──
"확실히 타타라 양이 말한 대로, 아스칼리드 양의 존재는 우리에게 있어 확실한 이점이 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요. 그의 숨을 끊을 때가 되었을 때, 육친의 정에 휩쓸릴 가능성도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전 그 때의 그녀의 모습을 믿고 있어요."
그리 답한 잇키의 얼굴을 바라보며, 타타라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엔, 흔들리지 않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 혼자선 그 녀석을 처리할 수 없어. 달리 도움을 청할 녀석도 없으니, 네 놈이 고개를 가로저은 걸로 이 이야기는 끝이야. ……하지만, 그 판단은 너의 가장 소중한 것을 망가뜨리게 될지도 모른다고."
"……타타라 양은, 상냥하시네요."
"뭐?"
"감사합니다. 스텔라를 위해 여러 모로 생각해 주셔서."
"뭐, 뭐어어어어!? 무, 무무무무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야. 이 자식아!? 난 그저 작전에 불안요소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는, 프로의 의견을 낸 것 뿐이고, 그딴 고릴라 녀석 따위 내 알 바 아니라고! 끔찍한 착각 하지 마!"
잇키의 감사 인사에, 타타라는 귀까지 붉어진 채 소리쳤다. 그리고 어깨를 떨며 분노를 삭이고, 잇키에게 등을 돌렸다.
"켁. 이젠 나도 몰라. 멋대로 뒈지든가 해!"
"정말 감사합니다. 타타라 양."
"야, 너 진짜 적당히──!"
적당히 하지 않으면 진짜 죽여버린다.
그런 공갈은, 끝까지 맺어지지 않았다.
타타라는 영락없이 자신이 스텔라와 그의 관계를 놀린 것에 대한 복수를 하고 있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뒤돌아 본 곳에 있던 잇키의 표정은 그런 장난스런 표정이 아니었다.
피부가 찌릿할 정도의 결의가 담겨 있는 표정.
그렇다. 이 판단이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을 상처입히게 할지도 모른다.
타타라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결심한 것이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생각해 준 타타라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타타라 양 덕분에 저도 각오를 다질 수 있게 되었어요. 만약 오늘 싸움에서 타타라 양이 걱정한 일이 벌어지게 된다면, ──제가 모든 책임을 지고 그녀를 상대하겠어요."
◆◇◆◇◆
타타라 유이는 암살자로서의 감과 통찰력으로, 이 사태를 사전에 예견하고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 직접 행동까지 나서 주려 했던 것이다.
그것을 가로막은 건, 자신의 판단.
그 날 본 아이리스의 고결함을 믿으리라 결정한, 자신의 판단.
그렇다면, 그녀가 반기를 든 지금, 그녀를 막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책임이다.
그러니
"스텔라. 아스칼리드 양은 나한테 맡기고, 스텔라는 오르=골을 쫓아가 줘."
잇키는 《음철》을 현현시키며, 옆에 서 있던 스텔라에게 말했다.
하지만, 스텔라는 물러나지 않았다.
"이상한 말 하지 마. 《칠성검무제》 뒤에, 그녀와 싸웠던 때를 잊었어? 이 사람은 우리 둘이 한꺼번에 덤벼서야 맞설 수 있었을 정도의 상대야. 여기선 둘이 협공을──"
"안 돼. 그러면 늦게 돼."
하지만, 잇키는 이 제안에 거절로 답했다. 타타라와의 약속을 고집하고 있는 것뿐만이 아닌
"지금 이 자리에서 공중을 통해 도망치고 있는 오르=골을 쫓을 수 있는 건 비행 능력을 가진 스텔라 뿐이야. 오르=골을 놓치게 되면, 또 다른 곳에서 같은 비극이 벌어지게 돼. 힘 없는 사람들의 검이 되어 주는 것이 우리 기사의 존재의의라면, 그는 지금 여기서 확실히 마무리지어야 하는 적이지."
그가 《마도기사》로서 다해야 할 역할을 알고 있었기에.
"아스칼리드 양은 내가 막을게. 그러니 가 줘. ……괜찮아, 스텔라. 에델베르크에서 수행을 쌓아 강해진 건, 스텔라뿐만이 아니야. 나도 그 때의 내가 아니라구. 우린 함께 나아가는 사이잖아. 그렇지?"
"……────으읏.."
《마도기사》가 존재하는 의미.
그 존재의의를 들고 나오니, 반론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반론이라면, 그건 논리가 아닌 감정에 의한 것 외엔 없었다. KOK·A리그 4위. 세계의 정점에 한없이 가까워져 있는 《흑기사》라는 적을 앞에 두고, 자신의 연인을 혼자 남겨두고 갈 수는 없다고.
하지만, 스텔라는 그 말을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왜냐면, 이 잇키의 제안에 위험해지는 건 잇키만이 아니다. 《괴뢰왕》을 혼자 상대해야 하는 스텔라도 그와 같이 위험해지게 된다.
하지만, 잇키는 거기에 대한 불안을 조금도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고, 그 궁지에 뛰쳐들라고 말하고 있다.
즉, 그는 말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난 널 믿고 있어. 그러니 너도 날 믿어, 라고.
……그건 아주 어렵고 엄한 요구. 누구나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잃는 것은 무섭다. 자신이 죽는 것보다 더욱 무섭다.
손쉽게 가능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믿을 수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쿠로가네 잇키라면.
믿을 수 있는 모습을, 그는 언제나 자신에게 보여줘 왔으니까──!
"강해, 저 사람은."
"알고 있어."
"죽지 마!"
"알고 있어……!"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스텔라는 불타오르는 날개를 퍼덕여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잇키를 돌아보지도 않고, 비행했다.
클레이델란트의 하늘을.
시선 너머에 있는, 자신이 쓰려뜨려야 할 적을 쫓아서.
◆◇◆◇◆
스텔라가 날개를 펼친 순간, 아이리스는 그녀를 격추시키기 위해 행동을 벌이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무릎이 그녀의 몸을 도약시키지는 못했다.
갑자기 전장에 나타난 잇키에게서, 스텔라에게 의식을 돌린 순간, 《무적갑주》에 둘러싸인 목덜미에, 실과도 같은 가느다란 오한이 내달렸기 때문이다.
"…………"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쿠로가네 잇키의 인력이 가져다주고 있는 것. 자신의 간격 속에서, 자신에게 의식을 떼면 어떻게 되는가.
그는, 위압으로 그녀에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아이리스의 추격은 어쩔 수 없이 봉쇄되었고, 스텔라는 오르=골을 쫓아 하늘로 날아올라, 순식간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아가버렸다. 뤼셸 주택가에 남겨진 건, 아이리스와 잇키 둘 뿐.
오르=골을 도우러 가기 위해선, 먼저 이 기사를 타도해야만 한다.
다시금, 아이리스는 잇키를 바라보았다. 파지직, 찌릿할 정도로 목덜미가 아파 왔다. 방금까지의 위압엔 확실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그 때 억지로 스텔라를 쫓아갔다간, 잇키의 칼날은 자신의 목을 베어버렸을 것이다.
그는, 진심이다.
지금 그는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다.
'당연하지……'
방금 스텔라가 보여 준 분노에 타들어가는 눈도 그렇다. 모멸당해 마땅한 일을, 지금의 자신이 벌인 것이다.
그 오르=골을 도왔으니까.
자기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
자기 자신이라 해도,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난 알아버렸어……'
그 때, 동생의 목을 졸라,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가까이 동생의 죽음에 다가갔을 때, ──자신은 동생을 죽일 수 없다고. 죽게 놔두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 번 알아채 버린 진실은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것이 얼마나 용서받지 못할 진실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자신을 접해 온 모든 사람들을 배신하는 행위라 하더라도, ……아이리스=골은 이 방법 외엔 길이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니
"미안, 해……"
죄악감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숨막힐 정도의 괴로움에, 신음과도 같은 사죄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런 사죄는 아이리스를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지금의 자신에겐, 사죄를 할 권리조차도 없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기에.
그런 그녀에게, ──잇키가 말했다.
"그래도, 아스칼리드 양은 선택한 거군요."
"……에?"
예상치 못한 말에, 아이리스는 곤혹에 찬 소리를 흘렸다.
대체 무슨 의미인가. 내리깔은 눈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잇키가 분노나 증오를 담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 아주 슬픈 듯한 눈을 하면서도, 똑바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자신이 한 행동이 어떠한 것인지를 이해하고 있어요. 《마도기사》로서 관철해야 할 길, 사람으로서의 도리, 《흑기사》라는 인간에 대한 기대, 신뢰. 그 모든 것을 배신하고,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에……미움받는 행동이라는 걸."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아이리스는 이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당신의, ……단 하나밖에 없는, 당신만의 기사도인 거에요."
"으읏……!"
"오늘 이 날까지 저 따위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과혹한 운명과 맞서, 피가 얼어붙을 정도의 공포에 떨면서도 싸워 온 당신이,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선택한 길이죠. 그럼 이제 와서 저 따위가 '당신은 잘못되었다'라든가, '죽은 사람들은 그런 걸 바라지 않는다'같은, 그런 어딘가에서 귀 따갑게 들은 것 같은 주제 넘은 소리를 할 자격 따윈 없어요.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 어떡할 것인가.
자신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 준 그녀에게, 자신이 가능한 일은 무엇인가.
잇키는 생각하고, 답을 내었다.
타타라에게서의 충고를 받은 그 때에.
자신에게도, 양보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다.
관철해야 할 기사도가있다.
서로 걸어가는 길이 다르다면,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뿐──
"여기까지 왔으니, 말은 이제 필요없겠죠."
자신들은 기사이니까.
"내 최약으로, 당신의 기사도를 여기서 꺾겠어!"
검으로, 자웅을 겨룰 수밖에 없다.
스텔라의 뒤는, 쫓지 않는다.
그 뜻을, 잇키는 자세로 나타냈다. 상대를 똑바로 꿰뚫을 것만 같은 안광으로, 같은 지평에 서 있는, 다른 길을 걸어가는 대등한 적을 바라보면서.
"~~~~~~~~~~~~~~으읏!"
그 시선은, 그녀에게 얼마나 큰 구원이었을까.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아도 당연한 자신을, 모멸받아 마땅한 자신을, 그래도 이 청년은 대등한 적이라 인정해 주었다.
가슴 속에 느껴지는, 숨막힐 정도의 감사가 눈물이 되어 흘러나왔다.
감사의 말이, 자신도 모르게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고, 마...... ────으읏.."
하지만, 아이리스는 방금 했던 사죄처럼, 자신의 감정을 입 밖으로 내는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사죄를 씹어 삼키고, 자신도 잇키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고마워.
그건, 비열한 말이다.
불쌍한 자신을 용서해 달라는, 어리광의 말.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겠는가.
그는 이렇게도 당당히, '적'으로서 자신과 맞서 주고 있는데.
감상에 사로잡히는 일은……이제 없을 것이다.
가슴을 펴라.
그것이 아무리 용서받지 못할 짓이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조차 용서할 수 없는 배덕이라 할지라도.
이 결단을 자랑스럽게 여겨라.
그런 자신을 인정해 준 이 멋진 청년 앞에서
'이 이상, 꼴사나운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아!'
이 순간, 아이리스=골은 어떠한 결말을 맞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선택에 일생을 바칠 각오를 다졌다.
동시에, 그 길을 가로막는 기사를 모두 물리칠 각오도.
대지를 부수며 발을 딛고, 배틀 액스를 잇키를 향해 들었다. 그 순간, 아이리스의 전신에서 빛의 폭풍이 뿜어졌다. 모래가 피어오르고, 가로수가 휘어지며, 민가의 창문들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마력이 아닌, ──'검기'.
이 검기엔, 잇키도 숨을 삼켰다.
'엄청난 위압감이야. 지금까지 봐 왔던 아스칼리드 양이 거의 세 배는 더 크게 보여.'
이 정도의 검기는, 잇키도 한 번 밖에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 밤이 드리워진 아카츠키 학원에서 '비익' 에델바이스가 보여준 그것.
아이리스는 지금, 거기에 한없이 가까운 위압감을 두르고 있었다.
그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진정한 바람. 에고에 뚜껑을 덮어 가려 둔 그녀는, 말하자면 지금까지 쭉 몸과 마음이 연결되지 않은 상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리스는 다르다. KOK·A리그 에서조차 보여준 적 없는, 자신의 진정한 바람, 목숨을 걸어 운명을 뛰어넘어서라도 이루어내고 싶은 바람을 위해 싸우는, 진정한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였다.
지금부터 자신이 상대할 적은, 이 세계의 정점에 한없이 가까운 곳에 서 있는 실력자.
그런 상대와의, 진정한 '사투'.
하지만, 그런 적을 눈앞에 두고서도
'난 이제, 그 때처럼 떨지 않아.'
도망쳐, 도망쳐!
에델바이스의 앞에서 비명을 내지르고 있던 마음은, 대기를 날려버릴 정도의 검기에도 동요하지 않고, 그저 고요히 눈앞의 적을 노려보고 있었다.
동요하지 않는다.
슬퍼하지 않는다.
그 성장은, 오늘 이 날까지 잇키가 농밀한 시간을 보내 왔다는 증거.
──서로의 결의는, 다져졌다.
그렇다면, 겨루어 보자.
서로 다른 길을 나아가는 기사도가 교차하는 이 곳에서.
이 너머에 있는 건, 둘 중 하나 뿐일 테니까!
"국제 마도기사 연맹 산하, 하군 학원 1학년 《칠성검왕》 쿠로가네 잇키."
"KOK·A리그 제 4위, 《흑기사》 아이리스=G 아스칼리드."
"자아."
"정정당당히───"
" "승부!!" "
작가 후기
낙제기사 14권을 구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부터 짐승의 피해를 받고 있는 미소라 리쿠에요. 산간에 있는 오래된 목조 주택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만, 어느 틈엔가 족제비가 침입해선 말썽을 피우고 있어요. 매일매일 벽 안이나 지붕을 종횡무진 나뛰면서, 단열재를 죄다 긁어놓고 있어요. 진짜 소음 때문에 죽겠다니까요.
그것만으로도 큰일입니다만, 족제비라는 게 또 맘대로 잡아서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잡는 것도 구청의 허가가 떨어져야 한다나.. 게다가 그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몇 주나 걸리는 둥 아주 지옥이었어요.
……뭐, 지금은 무사히 포획하는 데에 성공하고, 침입 경로도 막아 두어 소음 피해가 사라지긴 했습니다만, 연시부터 해결될 때까지 실로 1개월 정도의 긴 시간이 걸렸어요. 이거 정말……매일 밤 운동회 상태였어서 상당히 MP를 소모했답니다.
길고 긴 싸움이었어……
푸념이 길어졌습니다만, 마지막으로 신세 진 분들께 감사 인사를.
삽화 담당 온 씨. 이번에도 멋진 삽화를 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각성 초과 상태의 네네가 엄청 예쁘게 나와서 또 출연시키고 싶지만, 설정 상으로 그럴 수는 없으니 이 딜레마를 어찌 해야……!
만화화를 그려 주신 소라미치 선생님. 연재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 권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언제나 신세 지고 있는 담당 분, GA 편집부 여러분에게도 감사를. 그리고 가장 큰 감사를, 이 작품을 지지해주고 계신 독자 여러분에게. 벌써 14권이라는 장편 시리즈가 되어 있는 본작에 지금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 권은 드디어 버밀리온 편 최종 국면.
여러 일에 결착이 지어지게 될 거라 생각해요.
있는 힘껏 성대하게 나아갈 예정이니, 함께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권 작가 후기에서 다시 뵙도록 해요.
안녕~
번역 후기
이거 번역하면서 네네란 이름이 하도 많이 나와서 도중에 네네치킨 시켜먹음
네네치킨은 작가한테 광고비 줘야한다 리얼로다가
저번 권부터 오역이 좀 있었는데 이번 권부터 좀 수정합니당
올레루스라 오역했는데 본명은 오를레우스
아이리스 아스칼리드가 들고 있는 무기는 핼버드가 아닌 배틀액스(戰斧)
네네의 무기는 홍색선이 아닌 홍색봉(봉황)
그 외에도 좀 수정된 내용이 있을거임
번역자 : 이거 보고있는 니가(흑인비하 아님ㅎ) 아닌 다른 누군가
이 텍본은 pdf로 보시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장간
최후의 말
강한 충격과 열이 가슴 언저리에서 폭발했다. 그 직후, 시야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선혈.
시야 한가득 퍼지는 엄청난 양의 유혈.
그리고 함께 흩날리는 여러 물체는, 장기들.
그 모든 것들이 자기 자신의 터져 버린 가슴에서 튀어나온 것이란 걸, 그는 알게 되었다. 자각과 동시에 그를 덮치는, 목 아래 부분이 모두 사라진 듯한 탈력감.
꾹 쥐고 있던 영혼의 무장이, 손을 타고 미끄러져 떨어졌다.
뒤이어, 무너지는 무릎.
피바다가 되어 버린 지면에 고스란히 충격을 받은 채 쓰러지는 상체.
적색에서 흑색으로 암전되는 의식.
거스를 수 없는 잠기운과도 비슷한, 생명의 상실감.
모든 것이 사라지는 순간.
"사랑해, 스텔라."
미소를 짓고, 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소녀에게 고했다.
그녀와 만났던 그 날부터 오늘까지 있었던 모든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을.
그렇게……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의 의식은 끊어졌다.
두 번 다시 눈뜰 수 없는, 상실의 어둠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