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장
검신
"누구나가 같은 말을 하지. 나쁜 일을 해선 안 된다. 남을 대할 땐 상냥하게 대해라. 서로 사랑하라. 그것이, 인생을 채색해 주는 행복이라고. ……그럼, 그걸로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은, 어떡하면 되는 거야? 나쁜 짓을 해야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우리들은, 어떡해야 하는 거냐고. 그런 우리들에게, 세상은 이렇게 말했지. 자신을 억누르고, 주위 사람에겐 알랑방귀를 뀌며, 모래를 씹는 그런 아무 맛도 없는 인생을 살아가라고. ……정말 너무하지.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우리들에게 죽으라고 하는 거잖아. 세상은, 이기적이야. 그렇다면, 우리들도 참을 필요 따윈 없겠지. 그 녀석들의 이기적인 생각에 어울려 줄 이유 따윈 없잖아. 그도 그럴 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룰은 단 하나 뿐이니까. 더욱 강한 자가, 자신을 내세운다. 그 섭리 뿐이니까. 마음 내키는 대로 죽이자. 마음 내키는 대로 빼앗자. 마음 내키는 대로 집어삼키자. 마음 내키는 대로, 바라는 대로, 우리들은 우리들의 단 하나밖에 없는 아주 멋진 인생을 즐겨볼 거야. 여유롭게, 유쾌하게, 통쾌하게!"
《괴뢰왕》 오르=골.
그는 그 이기적인 주장에 호응해 온 테러리스트들을 이끌고, 《해방군》을 배반. 《해방군》 기지를 괴멸시킨 뒤, 자신의 《실》의 능력으로 괴뢰화시킨 클레이델란트 왕자 요한을 이용하여, 역사 문제를 구실삼아 버밀리온 황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모든 건 《칠성검무제》에서 히라가 레이센이라는 인물로 참가한 자신을 정면으로 부정한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에 대한 보복──같은 것은 아니었다.
그를 가장 잘 아는 친누나, 아이리스는 말했다. 심심한 사이에, 재밌어 보이는 장난감을 발견하여 손을 대 봤을 뿐이다──라고.
그야말로, 아이리스의 말은 딱 들어맞았다. 그의 악의는 궤도도 차별도 없다. 이유도 없거니와, 최저한의 방향성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타인의 괴로움이라는 자신의 쾌락을 얻기 위해 건국 시 발생한 감정의 인연을 극복하고 손을 맞잡으려 하던 버밀리온과 클레이델란트를, 바라지 않던 살육전으로 내몰았다.
침공하는 클레이델란트 군.
거기에 맞서는 버밀리온 군.
하지만 이 양군의 총력에 의한 전면전쟁이 벌어지는 것은, 버밀리온의 제 1황녀, 루나아이즈 버밀리온의 기전과 용기로, 다행히 막아낼 수 있었다.
뤼셸에서 잠깐 만난 오르=골의 이해를 넘어선 잔학성을 간파해 낸 루나아이즈가, '만약 버밀리온이 패전하게 된다면,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가족들을 처형하겠다'라는 악마의 통화를 교섭 테이블 위에 올려놓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연맹》이 제정한 룰 하에 벌어지는 '대표전'으로 양국의 자웅을 겨루자는 제안에 오르=골을 납득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전쟁의 규모가 커지는 것을 막은 대신, 《연맹》이라는 거대한 조직이 보유하고 있는 병력, 압도적인 수의 이점을 버리는 선택. 오르=골이 요한을 조종하여 정권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상, 침공을 받은 버밀리온이 정규 '대표전'을 벌이자는 전쟁 요청을 받아들이게 되면, 《연맹》이 강제 개입하는 것은 조직의 시스템 상 불가능해지게 된다.
따라서, 버밀리온의 명운은 다섯 블레이저에게 달려 있게 된 것이다.
《홍련의 황녀》 스텔라 버밀리온.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
《흑기사》 아이리스 아스칼리드.
《부전흉수》 타타라 유이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
이 다섯 블레이저들에게.
──그리고, 결전의 날.
전쟁은 지금까지, 4전 3승 1무라는 전적으로, 버밀리온 측의 압도적인 우세로 추이되고 있다. 클레이델란트 팀은 결국, 이 전쟁의 흑막 《괴뢰왕》 오르=골 한 명만이 남아버릴 때까지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최후의 한 명과 상대하는 건, KOK·A리그 제 4위의 기사, 오르=골의 친누나인 《흑기사》 아이리스=골.
그 실력은 이미 보증수표를 받은 몸.
더불어 이 전쟁에 임하고 있는 동기도, 그 누구와 비할 바가 없을 정도로 크다. 오르=골이, 그녀의 고향에서 벌인 대량 살인. 그 날로부터 아이리스는, 동생을 막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다음은 기필코 동생을 막아 비극의 연쇄를 끊어 내겠다는 목적만을 갖고 살아왔으니까.
단고한 결의는, 아이리스에게 일종의 《저주》와도 가까운 힘이 되었고, 그녀의 온몸에 깃든 채 자신의 잠재능력을 넘은 힘을 이끌어내게 되었다.
이 아이리스를 상대로, 오르=골은 손을 쓸 수조차 없었다. 애초에 오르=골은 《해방군》의 뒷공작 담당. 그 편리한 능력을 이용하여 정세를 조작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결코 전쟁에 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블레이저로 명백히 자신보다 아래였던 《척완의 검성》 발렌슈타인에게 손쓸 도리조차 없이 당한 것이 오르=골의 실력. 모든 힘을 다한 아이리스에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다 그 아이리스에, 요한을 쓰러뜨린 스텔라가 합류해 온다면 가망성은 더욱 없어진다.
둘의 맹공에, 오르=골은 도망치기 일쑤.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꼴사납게 목숨을 연명해 나아갔다.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
──그럴 터였는데.
하지만, 여기서 벌어지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버렸다. 절체절명의 궁지에 몰려 울먹이며 살려달라고 비는 오르=골. 그 모습에, 아이리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친애의 정이 깨어나, 오르=골을 지키기 위해 스텔라에게 맞서 버린 것이다. 이 아이리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스텔라는 하늘마저 태워버릴 정도의 분노를 표했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물러나지 않았다. 자신의 행동이 누구에게도 용서받지 못할, 자기 자신조차 용서하지 못할, 이 세상 모든 것에게 비난받을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모든 걸 내버리고 동생을 지키려 했다.
이대로 가다간, 오르=골을 놓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때,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가 전장에 합류했다. 쿠로가네 잇키는 스텔라에게 오르=골을 쫓아 달라고 지시한 뒤, 자신은 단신으로 《흑기사》 아이리스=골과 대치.
《낙제기사》 대 《흑기사》.
《홍련의 황녀》 대 《괴뢰왕》.
버밀리온에서 발생한 전쟁은 마침내──최종 국면에 돌입했다.
◆◇◆◇◆
『자, 자! 자!! 클레이델란트와 버밀리온의 전쟁도 드디어 종반전! 용서도 없이 도를 넘은 바보 놈들이 한껏 날뛰어준 덕에 나라의 반이 사막화되었고, 거기에 나머지 반 정도가 다 부서져 버린 클레이델란트의 수도 뤼셸! 그 황무지의 중심 속에서 지금, 보라색과 흑색. 두 줄기 참광이 만들어내는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다아아앗!』
실황 부머가 타고 있는 헬기의 바로 아래.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
《흑기사》 아이리스=골 아스칼리드.
두 기사가, 자신의 모든 것을 짜내며 상대를 베어내려 하고 있었다.
『배신자인 《흑기사》 아이리스=골은 자신의 모든 힘으로 핼버드를 휘두르고 있어! 폭탄 같은 방대한 마력을 두른 도끼날이, 주변 범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가르고, 부수고, 날려버리고 있다아앗! 아스팔트, 콘크리트, 강철! 모든 것들을 그냥 두부처럼 막 날려버리고 있어!!』
도끼에 닿는 모든 것들을 날려버리는 그 모습은, 미쳐 날뛰는 허리케인조차 물러가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파괴의 폭풍도, 눈앞의 한 남자를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
번개와도 같은 예리함을 자랑하는 참격으로, 날아오는 모든 파괴의 폭풍과 맞서고 있었다.
『하지만 《낙제기사》도 지지 않고 있어! 원을 그리는 《흑기사》의 핼버드! 그리고 《낙제기사》의 참격은 선! 최단거리로 검을 휘둘러 《흑기사》의 핼버드에 충분한 힘이 실리기 전에 영격! 벌써 세 번! 힘으로 짓누르려 하는 《흑기사》의 돌격을 받아치고 있다아아앗!!!!』
잇키의 빠른 연격에 밀려, 아이리스의 몸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동작의 첫 부분을 찔러온다 할지라도, 전신을 갑주 형태의 디바이스 《무적갑주》로 둘러싸고 있는 아이리스를 물러나게 한다는 건 원래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잇키는 그걸 해내고 있었다.
제 6비검 《독아의 태도》. 장갑이나 무장을 타고 흐르는 충격을 전해, 안에 있는 적의 육체를 파괴하는 침투경. 잇키는 그 기술을, 이 싸움에서 휘두른 모든 참격에 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잇키의 참격은 두꺼운 갑옷을 통과하여, 아이리스에게 손상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흑기사》가 두르고 있는 건 보통 갑옷이 아니지! '불굴'의 개념 간섭계. 연맹 산하에서도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방어력과 치유력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무적갑주》!! 그저 《독아의 태도》를 몇 방 갈기는 정도로는 얌전해지지 않을 거라고! 《흑기사》는 벌써 자세를 고쳐 잡고──』
반격에 나선다.
거대한 핼버드를 힘껏 휘두르는, 어퍼 스윙. 도끼날로 지면을 부숴, 아스팔트 조각들을 잇키를 향해 날려보냈다. 그건 원래, 물리 공격에 내성을 지닌 마력을 두른 블레이저를 상대론 통하지 않는 공격. ──하지만, 상대가 《낙제기사》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God damn! 《흑기사》 녀석! 머리는 좀 좋은데! F랭크인 《낙제기사》의 방어력은 일반인이나 다름없어! 보통 블레이저에겐 그냥 모래알 정도로 느껴질 아스팔트 조각도, 《낙제기사》에겐 샷건처럼 느껴질 거야! 저걸 맞게 되면 갈린 고기가 되어 버릴 거라고!』
그리고 지금, 잇키는 《독아의 태도》를 전부 뻗어 버린 자세.
가장 무방비하게 될 공격의 부수 동작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피할 수 없는 타이밍이다.
보통이라면 말이다.
그런 불가능을 가능케 해 왔기에,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니까!
"으읏──!?"
그 직후, 투구를 쓰고 있는 아이리스의 표정이 경악에 물들었다. 자신이 쏘아낸 아스팔트 샷건의 파편들이, 잇키의 몸을 슬쩍 스쳐 지나가듯 빠져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최소한의 동작으로 수많은 공격들을 흘려내는 그 기술.
『《천의무봉》이다아아앗! 그래! 이 녀석은 이게 있었어!!!』
잇키의 《천의무봉》은 천성의 소질을 지닌 쿠라시키 쿠라우도의 완성도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그래도 그저 날아오기만 할 뿐인 돌멩이 정도라면, 어렵지 않게 피해낼 수 있었다.
『파편들을 흘려낸 《낙제기사》가 공격! 예상이 뒤엎어진 《흑기사》도 곧바로 영격! 도끼를 휘두를 자세를 취하고 있닷! 전투 개시로부터 약 3분! 크로스 레인지에서 벌어지는 검극 속에서, 서로 물러나고 나아가며 양보 없는 전투를 벌인다! 완전한 길항 상태!!!!』
A랭크과 F랭크.
공격력, 방어력, 마력──그 모든 것을 아이리스가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음에도, 밀어내질 못하고 있다. 상식적으론 있을 수 없는 길항. 있을 수 없는 선전. 상식을 뛰어넘은 잇키의 검의 기량에, 실황의 목소리가 흥분에 차올랐다.
하지만, ──호각이라는 건 그의 착각이다.
그는 아직 모르고 있었다.
쿠로가네 잇키의 진정한 무서운 점을.
"으윽──"
그 직후, 한 층 더 새된, 쇠가 부딪히는 들린 직후, 길항이 깨졌다. 《음철》과 검극을 나누고 있던 아이리스의 핼버드가, 뒤로 크게 튕겨난 것이다.
아니, 핼버드 뿐만이 아니었다. 잇키의 참격은 아이리스마저 뒤로 날려버렸다.
『읏─────!! 뭔가 엄청난 위력의 참격이 들어간 것 같은데! 《낙제기사》, 아직도 힘을 숨기고 있었던 거냐! 아니, 이건 혹시……!』
이 날을 위해 《칠성검무제》의 영상을 몇 번이고 반복해 돌려 봤던 베테랑 실황자는, 곧바로 이 현상을 알아챘다.
싸움이 시작된 지 이미 3분.
초로 치면 180초. 충분한 시간이었다.
쿠로가네 잇키의 《모방검기》가, 아이리스의 기량을 간파하기에는!
『제 3비검 《원》!! 상대의 참격의 힘을 자신의 참격에 실어 그대로 돌려주는 비검! 그 《홍련의 황녀》를 위기까지 내몰았던 마검이 여기서 터져나왔다아아아앗!!』
《원》은 소수 있는 잇키의 검술 중에서도 한 층 더 난이도가 높은 비검이다. 적의 공격력에 대해 아무런 수비 자세를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충격을 흘려낸 다음, 체내를 순환시켜 상대에게 돌려준다.
만에 하나, 공격을 가해 오는 적의 공격의 '속도', '각도', '위력', ──그 모든 것 중 하나라도, 간파하는 데에 조금의 오차가 나온다면, 적의 모든 공격력이 체내에서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결과는 당연히, '죽음'.
하지만, 쿠로가네 잇키에게 그 만에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에게는 만에 하나라도 오차가 일어나지 않게, 적의 검술은 물론 심리까지도 읽어내는, 조마경과도 같은 통찰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름하야, ──《완전장악》
그것이 바로, 《낙제기사》의 진정한 무서움. 지금까지 벌어진 3분간의 검극. 그 속에서, 그저 도끼를 휘두르기만 했을 뿐인 아이리스와는 달리, 잇키는 아이리스의 정보를 상세하게 수집하고 있었다. 콤비네이션에 깃든 버릇. 기술이 나오는 타이밍. 발상력. 호흡의 템포. 사고의 버릇. 아이리스라는 기사의 모든 것들을.
그렇다면 호각일 리가 없다.
이후로는, ──쿠로가네 잇키의 단독 무대다!
"하아아아아아압!!"
『《낙제기사》! 여기서 승부에 나섰다! 《원》으로 인해 자세가 무너진 《흑기사》를 향해 한 층 더 깊게 파고든다! 《흑기사》! 이 접근을 불리하다 생각했는지, 핼버드로 영격! 하지만 계속해서 튕겨낸다! 《낙제기사》, 핼버드를 튕겨 내며 힘싸움으로 자신의 사정거리 안으로 파고들고 있다아아앗!』
그리고 마침내──
『근접 거리까지 파고들었다아아아앗!! 서로의 몸이 밀착할 듯 말듯할 정도의 거리! 이 간격은 《흑기사》에게 불리! 《흑기사》의 무기는 핼버드! 초근접거리는 날이 닿지 않는 부분이지! 거기까지 파고 든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고! 당연히 《흑기사》는 초근접거리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백스텝! 거리를 두고 있다앗! 하지만 《낙제기사》는 이미 이걸 읽고 있었어! 한 번 더 인스텝! 마치 그림자처럼 딱 붙어 간격을 벌리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남자에겐 이 정도의 거리라 하더라도 공격할 수 있는 무기가 있지!!』
그것은──
"아윽!!"
『검으로 가하는 촌경! 《칠성검무제》에서 《흉운》을 쓰러뜨린 제 2비검 《열갑》이 벌써 작렬! 갑옷 틈으로 비명과 피를 내뱉으며 《흑기사》가 비틀거린다! 지금 이 《열갑》에도 《독아》를 가한 것인가! 그런 짓까지 가능한 거냐!? 어떠한 불리한 자세라도 반격을 받지 않고, 어떠한 거리라도, 어떠한 갑주로 무장하고 있더라도 손쉽게 공격하고 있어! 이것이 《낙제기사》! 규격 외급의 F랭크의 힘이다아아아아앗!!』
"읏, 아아!!"
물론, 아이리스도 계속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열갑》에 당해 자세가 무너진 아이리스는, 자세를 바로잡으려 사지에 힘을 넣었다. 반격을 위해 핼버드를 휘두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잇키는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검의 스윙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예리한 참격을 가해, 그 반격을 초동 단계에서부터 제압.
그리고
『제 7비검 《뇌광》의 연타! 《낙제기사》, 아낌없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카드를 쏟아부으며 맹공! 맹공!! 러쉬──!!!!! 움직임이 멎어 버린 《흑기사》를 걸레짝으로 만들고 있다아아앗! 거기다 그 회전 수는 계속해서 증가 중! 더! 더!! 아직도 계속── 잠깐, 대체 뭐야! 이 가속은!?!?』
경악에 눈을 부릅뜨는 실황.
끝내는 잇키의 속도가, 검은 커녕 몸동작조차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가속되었기 때문이었다.
《뇌광》을 가하고 있다 치더라도 너무도 빠른 그 속도의 정체는, ──조일일심류·열(烈)의 극한 《아마츠카제》.
자신의 형인 오우마의 단련을 훔쳐 봐 익힌, 쿠로가네 가문에 전해지는 검술의 오의 중 하나. 기나긴 역사 속에서 갈고 닦여 효율화된, 전 108개의 콤비네이션을 수만 번이나 반복하여 뼛속 깊은 곳까지 새겨 두어, 사고 단계를 삭제. 몸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자신의 기술들을 가할 수 있는 제압용 검술.
잇키는 그것을 《뇌광》을 연속하여 가하는 것으로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훔쳐 낸 검술을 더욱 높은 차원으로 진화시키는 《모방검기》의 진수.
그 이름하야
"《천진뇌광》───!!"
"으윽~~~~~~~~~~~~~!!"
제 90격에서 108격까지의 참격이 거의 한 박자 사이에 나와, 거듭된 극음은 낙뢰와 같은 굉음이 되어 뤼셸 상공에 울려퍼졌다.
그 정도의 집중타를 맞게 되니, 아이리스도 당연히 무사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몸은 크게 뒤로 날아가, 낙법조차 해내지 못한 채 바닥에 쿵 소리를 함께 등을 부딪히며 떨어졌다.
『어, 엄청난 집중타가 터졌다!! 《흑기사》 아이리스=골, 여기엔 버텨내지 못하고 다운! 터프함이 장점인 《흑기사》의 다운은 A리그 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 역시 이 F랭크는 엄청난 녀석이야! 대자로 쓰러진 《흑기사》의 주변엔 피웅덩이가 퍼져 나아가고 있어! 사람 한 명의 분 치곤 너무도 많은 출혈량! 척 봐도 심각한 대미지! 이거 벌써 끝난 거 아니야!?』
"야, 야! 저거 봤어, 밀리? 세계 4위가 전혀 상대가 안 되고 있잖아!"
"아하하... 이거, 밀리들이 물구나무를 서도 이길 수 없었던 게 당연했네."
『어이 신랑! 역시 넌 진짜 강하다니까!』
『잇키 씨, 멋져요!!』
압도적인 기량으로 《흑기사》를 쓰러뜨린 잇키에게, 중계를 지켜보고 있던 버밀리온 국민들이 갈채를 보냈다. 스텔라의 모친, 왕비 아스트레아도 흥분한 표정으로 곁에 있던 시리우스에게 마치 사위를 자랑하듯 말했다.
"여보! 이거, 잇키 씨가 다 이긴 거 아니에요!?"
하지만
"────……"
"여보……?"
시리우스의 표정은, 주변의 환희 속에서 험하게 굳어 있을 뿐이었다. 오랫동안 그와 같은 시간을 보내 온 아스트레아는 알 수 있었다. 그건, 스텔라를 빼앗기고 싶어하지 않아 부리는 고집에서 비롯된 표정이 아닌, 잇키의 활약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닌, ──진심으로, 잇키의 몸을 걱정하고 있는 표정이라고.
"……확실히 굉장해. 검 하나로 잘도 저렇게까지……감탄조차 느껴질 정도야. 이것이 A급 리그라면 지금 걸로 끝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건 서로의 에고를 걸고 싸우는 진검승부. ……'불굴'의 기사는, 이 정도로 꺾이진 않을 게야."
그 시리우스의 말과, 아이리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건 동시였다. 흑요의 갑주 《무적갑주》에선, 이미 한 방울의 피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천진뇌광》은, 아이리스에게 아무런 유효한 대미지를 주지 못했던 것이다.
"이럴 수가……"
"눈이 휘둥그렇게 떠질 정도의 검술에 빠져 생각하지 못하게 될 부분이지만…… 마력이라는, 운명을 개척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블레이저끼리의 싸움은……말하자면 운명끼리의 싸움. 《낙제기사》와 《흑기사》는 F랭크와 A랭크, 원래라면 맞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오래토록 쌓아 온 것들이, 고작 한 번의 방어에 무너져버린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함에 탄식하는 아스트레아에게, 시리우스가 말했다.
별로 놀랄 일은 아니라고.
당연하게 일어나야 할 일이, 당연하게 일어났을 뿐이라고.
그렇다. 이것이, 쿠로가네 잇키의 현실.
그것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을 텐데──
"이 멍청한 놈이……! 어째서 스텔라와 같이 싸우지 않았던 게야……!"
혼자 남은 잇키의 경솔함에, 시리우스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
천천히, 여유조차 느껴지는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이리스.
그것을 눈으로 쫓으며
"후우……"
잇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진 했어.'
《열갑》, 《원》, 《독아의 태도》, 《뇌광》.
──그 모든 것들의 복합.
지금 공격엔, 현 시점에서 낼 수 있는 모든 기술들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이 이상은 불가능한, 자신의 한계치까지의 러쉬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거라니.'
아이리스는 이미 모든 회복을 마친 상태.
이미 호흡까지 정돈된 상태였다.
한 편 잇키는, 지금 공격으로 상당한 체력을 소모했다.
전투 개시로부터 펼쳐진 일련의 공방은
'내 패배야.'
아무리 기량으로 이기고 있든, 아무리 많은 공격을 가한다 하든, 그 모든 것들이 대미지가 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기술이 개입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 불공평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압도적인 수비력.
그저 견고할 뿐.
그러나, 그렇기에 강하다.
스텔라처럼 스케일이 크다거나, 시즈쿠처럼 범용성이 다양하지는 않지만, 싸움에 있어 이렇게나 우수한 능력은 없다고, 잇키는 아이리스의 능력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힘이, 그녀가 지금 이 싸움에서 바라고 있는 각오와 결의라 생각한다면, 그것도 당연하다.
대죄인인 자신의 동생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죄일까. 오늘까지 아이리스=골을 지탱해 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슬프게 만들었을까. 그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아이리스는 자신의 바람을 따른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보다 더 강고한 자기는 없을 것이다.
바람의 힘은, 마술의 힘.
디바이스가 혼의 구현이라면, ──지금의 《무적갑주》는 알려진 명칭 그대로 《불굴》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잔재주로 《무적갑주》에서, 그녀의 결의에서 약삭빠르게 빠져나가며 조금씩 대미지를 줘 봤자, 아이리스는 몇 번이고 다시 재기할 것이다.
방금 공방에서, 잇키는 그걸 몸소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그녀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무적갑주》를 파괴해 버리는 것. 그녀의 바람을 이겨내는 것이라고.
그것을 해낼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그것 밖엔 없어.'
《칠성검무제》 결승전에서 스텔라를 쓰러뜨린 그 일격. 쿠로가네 잇키라는 인간의 기술, 힘, 바람, 역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은 일격.
마지막 비검──《추영》이다.
하지만, 여기엔 커다란 문제가 있다.
불행하게도, 아이리스는 스텔라와의 결승전을 관전했던 적이 있다. 《추영》은 힘을 한계 끝까지 모은 다음 치는, 예비동작이 확실히 드러난 동작. 《음철》의 도신을 쥐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면, 당연히 경계를 사게 될 것이다. 경계를 무시하고 자세를 취해 힘을 모으고 있다 하더라도, 그 전제조건인 《일도나찰》로 인해 자멸이 찾아올 뿐.
결승전을 관전한 것이 이런 형태로 찾아올 줄이야. 이 아주 불리한 전세에, 잇키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고, ……더욱 안 좋은 것이 있어.'
그것은,
지금의 공방에서, '쿠로가네 잇키가 아이리스=골에게 이기기 위해선, 《추영》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확신한 것이, 잇키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아아아아아아압!!!!!"
그 직후, 아이리스가 드센 기합소리를 외치며, 잇키를 향해 크게 도약했다.
◆◇◆◇◆
『charge!! 이번엔 《흑기사》가 나섰다! 빠, 빨라!』
지면을 부수고, 대기의 벽을 갈라내는 전진. 아이리스는 순식간에 핼버드의 사정거리가 닿는 곳까지 잇키에게 다가갔고, 등이 보일 정도로 무기를 힘차게 든 다음,
『횡 방향 일섬! 풀 스윙!!!』
동작을 속일 생각조차 없다는 듯,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 당연히, 잇키는 여기에 당하지 않았다. 그는 몸을 숙여 이 공격을 피해냈다.
하지만, 그 직후 그의 머리 위를 통해 마치 대포탄이 지나가는 듯한 충격이 스쳐 지나갔고, 뒤에 있는 민가 중 한 구획이 통째로 날아갔다.
『저, 저게 대체 어떻게 돼 먹은 스윙이야!? 풍압만으로 뒤에 있는 민가를 통째로 날려버렸어!!』
그리고, 아이리스는 허공을 가른 공격을 다시금 조정.
아래로 피한 잇키의 정수리를 내리찍을 기세로 공격했다.
이것도 풀스윙.
잇키는 낮은 자세 그대로 옆으로 뛰어 피해 냈고
"───크읏.."
아스팔트 도로에 내리찍힌 핼버드가, 도로를 거미집 형태로 분쇄시켰고, 길 위에 있는 민가를 그 기반부터 날려버리는 광경에, 그는 떠올렸다.
아이리스가 칼디아 시에서 벌인 싸움에서 보여준, 신장 300미터는 족히 넘는 《B.B》의 밟기 공격을 튕겨낸 힘을.
그건, 《무적갑주》의 공격 사용.
《무적갑주》의 치유력은 방어만을 위해 존재하는 능력이 아니다. 블레이저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마력을 무색의 에너지로 방출시켜, 공격이나 속도 강화에 이용하는 기술.
다른 블레이저라면 육체가 파손되지 않을 범위 내에서밖에 사용할 수 없는 그 행동강화를, 육체의 손해를 도외시하여 사람의 몸으로는 낼 수 없는 불가능한 힘, 속도, 거동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다.
그렇다. 300미터를 넘는 《B.B》의 밟기를 힘만으로 밀어냈듯이.
이전에 잇키의 목숨을 구한 아이리스의 힘이, 이번엔 잇키의 목숨을 노리고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에, 잇키의 표정도 험해졌다. 이런 공격이라면, 스치는 것만으로도 뼈가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고. 아무리 이런 풀스윙이라고 해도, 이런 힘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면, 너무도 위험하다.
'리듬에 놀아나기 전에, 끝내야겠어……!'
"《천진뇌광》──!"
핼버드로 세 번째 공격을 하려 동작을 취하는 아이리스의 틈을 찔러, 잇키는 움직였다. 방금까지 아이리스를 완전히 봉쇄한, 신속의 연격. 그 참격으로, 아이리스의 각 부분 관절의 초동을 방해. 움직일 수 없게 봉해 버리려 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리스도 같은 공격을 두 번이나 당할 정도로 멍청하지 않았다. 건이 뒤틀리고, 뼈가 부러지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마력의 힘으로 핼버드를 휘두르는 팔에 더욱 힘을 가했다.
자신도 연격을 가해, 잇키의 《천진뇌광》을 튕겨내려 했다.
하지만,
『잠깐잠깐잠깐! 그 많은 방법 중에서 하필이면 속도로 《낙제기사》에게 맞서려고 하는 거냐!? 그건 잘못된 생각이라고, 《흑기사》 아가씨!!』
실황이 말한 대로, 아무리 마력으로 한계치를 넘어 자신을 가속시킨다 할지라도, 상대가 속도를 특기로 삼는 잇키라면 승부가 될 리가 없다. 둘의 검극은 조금의 길항도 없이 끝났고, 《천진뇌광》이 아이리스의 첫 동작을 봉쇄하여, 그녀의 움직임을 봉해버렸다.
이 뒤에 이어진 건, 검극의 낙뢰 소리로 들릴 정도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집중타.
누구나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그 직후,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크윽!?"
잇키의 《천진뇌광》을 아이리스의 핼버드가 쳐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은 5발 중 한 발. 하지만 곧바로 3발 중 한 발. 두발 중 한 발.
초과 강화에 의한 자상으로 선혈을 흩뿌리며, 아이리스의 회전은 눈에 보일 정도로 가속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jejus! 이거 꿈이지!? 《낙제기사》의 《천진뇌광》이 튕겨나갔어! 《낙제기사》의 속도를 따라잡았다! 아, 아니! 따라잡기는커녕 지금 당장에라도 추월할 기세야! ──이 속도.. 이건 틀림없어! shit! 그래! 《흑기사》한테는 이게 있었어!!』
'시작됐어……!'
잇키와 부머는 순식간에, 이 아이리스의 가속을 알아챘다. 그건, 그녀가 지닌 '불굴'의 능력의 진수. 부러진 뼈가 더욱 강한 뼈로 재생되듯, 손상된 육체를 더욱 강한 부하에 견딜 수 있도록 한 층 더 강고한 육체로 재생시켜, 신체 능력을 영구적으로 계속해서 상승시키는, KOK·A급 리그 제 4위 《흑기사》가 자랑하는 비장의 카드이자 유일한 노블 아츠──
"《강 화 재 생》
『으아아아악!! 《흑기사》가 《강화재생》을 쓰며 맹공에 돌입! 전탄 풀 스윙! 풀스윙임에도 다음 공격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 무기의 특성 따윈 전부 무시하고 도끼날이 되돌아오고 있어!!!』
살이 찢어져도, 건이 찢겨 나가도, 뼈가 뒤틀려 부서져도.
온갖 손상을 강인한 치유력으로 되돌려, 억지로 인간의 형상을 유지한 채, 아이리스는 핼버드를 휘두르고 있었다. 거기다 《강화재생》은 재생할 때마다 육체를 영구적으로 강화시키는 노블 아츠.
속도는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제한 없이 상승하고 있었다.
『《낙제기사》가 완전히 추월당했어! 《낙제기사》, 이제 손도 못 쓰고 있는 중! 반격을 포기하고 맹공에 휘말린 듯 계속해서 피하고만 있다아앗! 일방적인 방어전에 돌입!!!』
무리도 아니다.
《강화재생》에 의해 강화되는 건, 속도 뿐만이 아니다. 공격력도 속도와 같이 상승되는 것이다.
강화는, 이미 스치는 것만으로도 골절 정도로 끝나지 않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닿았다간, 피부와 함께 살이 휩쓸려 떨어져 나가버릴 것이다. 그런 강격이, 방금까지의 잇키의 《천진뇌광》을 상회하는 공격 횟수로 쇄도하고 있으니, 회피하는 것만으로도 한계. 상대의 틈을 노릴 여유 따윈 있을 리가 없었다.
"치잇! 그 간격에 서 있다간 다진 고기가 되어 버릴 거야! 얼른 빠져나오라고!!"
『잇키 군! 부탁이야! 제발 뒤로 물러나───!!』
이 속에 구멍이 날 정도로 위급해진 열세에, 시리우스와 버밀리온의 국민들이 절규를 내질렀다. 그 목소리가 클레이델란트에 있는 잇키에게 닿을 리는 없겠지만, 이 거리가 위험하다는 건, 몸소 싸우고 있는 잇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였기에.
백스텝하여 일단 아이리스의 폭풍권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놓치지 않겠어……!'
"크윽──!?"
잇키를 쫓아, 아이리스가 앞으로 다시금 도약.
거리를 좁히고, 다시금 잇키를 자신의 크리티컬 존 안에 두었다.
『틀렸어! 《낙제기사》, 《흑기사》의 폭풍권에서 벗어날 수 없어! 순식간에 잡혀 버렸다고!!』
실황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지만, 이건 당연한 결과였다.
사실, 쿠로가네 잇키라는 기사는 속도에 특성을 둔 기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을 '빠르게 보이는' 기술에 탁월할 뿐이고, 중거리에서 달려 파고들거나, 비행하는 행동의 속도는, 스텔라나 아이리스 같은 그녀들의 마력을 방출시켜 몸을 움직이게 하는 기사들에 비해선 도저히 이길 수가 없으니까.
곧바로 따라잡히고, 다시금 러쉬의 폭풍우 속에 갇혀버렸다. 아이리스의 핼버드가 만들어내는 풍압이, 조금씩 솜털을 태우고 피부를 쓰다듬어 오기 시작했다.
그 러쉬를 아슬아슬하게 간파해 가며 피하던 잇키에게
'잇키 군. 당신은, 대단해.'
그를 상대하고 있던 아이리스는, 진심으로 그를 칭찬했다. 자신의 공격은 스치는 것만으로도 목숨을 잃는다.
그렇게 약한 방어력으로, 그는 그의 방법으로나마 여러 강적과 맞서, 이겨 온 것이다.
손에 든 가느다란 도 한 자루로.
이 소년은, 언젠가 그 에델바이스조차도 뛰어넘을 검사가 될지도 모른다.
아무 거짓 없이, 아이리스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하지만, 내겐 이길 수 없어.'
그리 확신했다.
당연하다. 잇키의 참격이 수 만 번 날아온다 할지라도, 자신에게 대미지를 줄 수는 없었으니까. 유일하게 대미지를 줄 수 있는 건, 《칠성검무제》 결승전을 끝맺은 마인의 영역의 일격뿐이지만
‘그건 신경쓰지 않아도 돼’
예비동작이 너무도 크다.
경계하고 있으면 그 공격을 받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할 정도. 사전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상대에겐 절대로 통하지 않는 기술이다. 즉, 이 싸움은, 쿠로가네 잇키에겐 아이리스=골을 쓰러뜨릴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 리가 없다.
아니, 이기고 지기 이전의 문제.
승부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현실은, 당신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렇다면, 잇키가 느끼고 있는 압박감은 대체 어느정도일까. 자신의 공격은 단 하나도 통하지 않고, 상대의 공격은 스치기만 해도 죽음.
거기다, 아이리스는 《강화재생》에 의해 공격을 휘두를 때마다 더욱 강해진다. 날뛰는 핼버드의 선풍은 계속해서 그 속도와 파괴력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확실히 그에게 불리해지는 상황.
타개할 수단이 없는 현실.
이 정도의 부조리함을 강요받고 있으니, 정신이 마모되지 않을 리가 없을 터. 지금 잇키는 아슬아슬한 줄 위에서 《흑기사》의 맹공에 휘말리지 않도록 줄타기를 하고 있는 셈이지만, 아이리스가 핼버드를 휘두를 때마다 뺨을 휩쓸고 지나가는 풍압에, 팽팽해진 정신의 끈이 서서히 끊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끊어져 가다, ──치명적인 미스를 낳을 것이다!
"흐읍──!"
순간, 그 일이 벌어졌다.
힘껏 휘두른 핼버드가 분쇄해 놓았던 지면. 잇키가 발을 디딘 그 일부가 무너져내려, 몸의 자세가 흔들린 것이다.
그 치명적인 한 순간을
'지금이다……!'
아이리스는 놓치지 않았다.
잇키가 미스를 벌인 타이밍을 맞춰, 공격 타입을 바꾸었다. 크게 힘껏 휘두른 핼버드를 다시 되돌려 베는 게 아닌, 잇키를 향해 휘두른 자세 그대로 핼버드의 '창날' 부분을 찌르는, 간단한 찌르기 공격.
애초에, 잇키의 수준 정도로 제대로 마력 장벽도 치지 못하는 기사를 사살하기 위해선, 힘껏 휘두를 필요 따윈 없다. 그런데도 구태여 힘껏 휘둘러 왔던 것은, 잇키를 위압하여 초조감에 내몰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초조함에, 미스를 유도해내기 위해서.
그 아이리스의 전략은 현재 성취되어, '창날'의 끄트머리가 잇키의 가슴팍에 닿으려 했다.
"!!"
그럴 터였다.
하지만, 그건 이루어지지 않았다.
'창날'이 잇키의 가슴에 살짝 닿은 순간, 잇키의 몸이 빙글, 하고 '창날'의 위를 타고 굴러가듯 손잡이 바깥쪽으로 회피하고, ──그 회전력을 실은 《음철》이 아이리스의 옆구리를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크윽.."
『워, 《원》이닷! 《흑기사》의 계속해서 가속해 나아가던 맹공 속에서 냉정하게 카운터를 먹였어어어엇!!!』
확실히 심장을 찌를 것이라 확신하던 찰나의 반격.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자세를 지지하고 있던 하체가 무너져, 아이리스의 몸이 뒤로 튕겨나가버렸다.
아이리스에게 대미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애초에 간단한 공격이었기에, 《원》에 실린 힘도 적었고, 무엇보다 대미지 자체가 통했다 할지라도 《무적갑주》가 순간적으로 재생시켜 버릴테니까.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유도당했어……'
먼 거리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잇키의 눈엔, 약간의 동요도, 초조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냉철한 눈.
그것을 보고, 아이리스는 확신했다.
부서진 아스팔트로 인해 자세가 무너진 건, 잇키의 연기였다고. 마무리 일격으로 들어올 콤비네이션을 유도해내어, 아이리스의 기세를 끊어버리기 위해서.
'대단한, 정신력이야……!'
승산이 없을 불공정한 싸움을 강요받고 있음에도, 조금도 집중력이 끊어지지 않았다. 이 잇키의, 자신만만하다고 까지 느껴질 만한 모습에, 아이리스만이 아닌 실황까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하하! 우리는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있을 지경인데, 가장 위험한 꼴인 저 자식 본인은 이렇게까지 냉정하다니, 진짜 한 대 때려버리고 싶을 정도라고! 심장에 X털이라도 나 있는 거 아냐, 저 자식!?』
"무슨 말이야.."
실황의 칭찬인지 빈축인지 모를 말에, 잇키가 쓴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에, 아이리스는 경악했다.
이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다니.
──설마, 정말로 승기가 있다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당황하지 마.'
하지만, 아이리스도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기사. 흔들리고 있는 마음의 고삐를 곧바로 다잡았다. 이 승산 없는 싸움 속에서 잇키의 정신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 그저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인지, 어떠한 생각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심장에 털이라도 나 있는 것일까.
그건 모르겠지만, ──결국 뭐가 어떻든 피아의 현실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잇키의 모든 공격은 자신에겐 통하지 않고, 자신의 공격의 모든 것이 잇키에게 있어 치명상상으로 들어간다.
이 사실은, 아직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동할 필요따윈 없다. 잇키의 정신이 얼마나 터프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맹공을 계속해서 피한다 할지라도, 언젠가 《강화재생》에 발을 잡히게 될 것이다.
이 싸움, 자신의 승산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가자……!'
아이리스는 세 번째로, 핼버드를 치켜들어 잇키에게 달려들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싸움을 끝내고, 1초라도 빨리 자신의 동생을 도우러 가기 위하여.
◆◇◆◇◆
잇키가 아이리스와 싸우고 있을 무렵.
전국이 자신에게 있어 불리하다 판단하고 도망치고 있던 오르=골을 쫓아간 스텔라가 뤼셸의 오피스 거리에서 그를 계속해서 쫓고 있었다.
'역시 떨쳐낼 순 없는 건가!'
목덜미를 찌릿찌릿 불태우는 열량에, 오르=골은 얼굴을 찡그렸다. 오피스 거리의 고층 빌딩군 사이에 펼쳐 놓은 실을 발판 삼아 공중을 밟아 도망치고 있던 오르=골. 그러나 날개를 갖고 있는 스텔라를 상대론 속도 면에서 뒤처지기 마련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전역 지정이 되어 있는 클레이델란트 밖으로 도망친다 하더라도, 언젠가 잡혀 버리고 말 것이다.
어떻게든 스텔라의 속도를 떨어뜨려야 한다.
오르=골은 손을 펼쳐 마력으로 만들어낸 실을 조종했다. 펼쳐둔 실은, 발판에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계 구조의 신》──!"
오르=골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맞춰, 빌딩이 뽑혀 나가고 전차가 들리고, 아파트가 잔해더미로 변해 모였다. 그 결과, 300미터가 넘는 거대한 인형이 만들어졌다.
실에 의해 만들어진 잔해더미의 거인은, 오르=골을 쫓고 있던 스텔라의 앞에 우뚝 선 뒤, 잔해더미가 뭉쳐 있는 주먹을 내리쳤다.
마치, 귀찮은 개미를 뭉개 버리려는 듯이.
하지만, 스텔라에게 있어 《기계 구조의 신》은 이미 한 번 《칠성검무제》에서 격파당한 기술.
단순한, 질량에 의한 물리적인 타격.
그런 건 《홍련의 황녀》 스텔라에게 있어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한다. 쇄도해 오는 주먹을 향해, 스텔라는 주춤하지도 않고 《비룡의 죄검》을 휘둘렀다.
일섬.
비색의 참광이, 잔해더미로 이루어진 거인의 주먹에서 어깨까지 달려 나아갔고, 그 다음 순간, 참격에 의해 발생한 풍압이, 금 간 잔해더미의 팔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그대로 스텔라는 비행속도를 늦출 생각도 없이, 거인의 어깨 위치에서부터 가슴팍으로 충돌.
손쉽게 관통해버렸다.
《홍련의 황녀》라는 작열의 포탄에 의해 꿰뚫린 구멍은, 직경 20미터가 넘었다. 《기계 구조의 신》은 실에 의해 만들어진 잔해더미의 집합체였기에, 그 정도로 거대한 구멍이 뚫려 버린다면, 실끼리 만들어내는 장력의 밸런스가 무너져버려,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붕괴. 무참히 무너지는 잔해더미 인형.
이렇게나 거대한 힘으로도, 단 0.1초도 그녀를 늦출 수가 없는 현실에
"뭐, 그런 고물로 스텔라를 어떻게 해 볼 수 있다곤 생각하지 않았다고."
오르=골은 약간의 초조함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건 그의 작전이, ──스텔라가 그 거인을 부숴버리는 것 그 자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
다음 순간, 하늘을 날고 있던 스텔라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 이유는──스텔라의 전신을 얽어 버린, 수많은 실들.
이것이, 오르=골의 노림수였다.
그는 클레이델란트의 토대, 뤼셸 일대의 지반에 펼쳐 놓은 실을 《기계 구조의 신》에 부여하여, 스텔라가 이것을 파괴할 때, 그 실이 스텔라에게 얽히도록 조정해 놓은 것이다.
그 양이 지반 정도가 된다면, 아무리 스텔라라고 해도 자유로이 움직이는 건 어려울 터.
"잠깐 얌전히 있어 줘!"
스텔라의 움직임이 멎은 것을 확신하고, 다시금 도주하는 오르=골.
하지만
"창천을 꿰뚫어라. 연옥의 화염."
오르=골이 스텔라에게 다시금 등을 돌린 직후.
그의 등에, 열기에 고통을 느낄 정도의 작열이 엄습했다. 100미터나 벌어진 거리였는데, 어째서일까.
깜짝 놀라 뒤돌아본 오르=골은, 보게 되었다.
스텔라가 하늘을 향해 드높이 든 《비룡의 죄검》에서, 홍련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장면을.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용처럼 똬리를 틀며 승천하는 불기둥.
그것이 얽히고, 겹치며, 다발이 되어, 집속되어──이윽고 빛이 되었다.
그 하늘을 꿰뚫는 빛의 검의 방사열에 의해
'읏! 내 실이……!'
불에 타 끊어졌다.
아무 저항도 없이, 손쉽게.
그리고, 구속을 손쉽게 풀어낸 스텔라는, 마치 혜성처럼 빛나는 검을 치켜들고
"모든 것을 불태워라.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
횡방향 일섬. 힘껏 휘둘렀다.
멀리 보이는 지평선을 그리듯.
"우와아아아아앗!"
쇄도해 오는 빛의 쓰나미를, 오르=골은 반사적으로 회피했다. 발판으로 삼고 있던 실의 탄력을 이용하여, 아래로.
그 직후, ──빛의 쓰나미가 뤼셸의 오피스 거리, 지상 80미터 너머에 있는 모든 것들을, 재조차 남기지 않고 '소멸'시켜 버렸다.
고층 빌딩군은 물론, ──거기에 펼쳐 놓은 오르=골의 거미집들도.
"술래잡기는 여기까지야. 오르=골."
냉철한 목소리로 말한 뒤, 스텔라는 날개를 접어 고도를 낮췄다. 그리고 가까스로 회피한 탓에 지면에 추락해 앉은 자세로 쓰러져 있던 오르=골의 눈앞에 착지했다.
"아스칼리드 양이 어리석은 짓을 한 탓에 쓸데없는 수고를 들이긴 했지만, 이제 더는 도망 못 쳐."
황금색으로 불타는 검의 끄트머리를 들이댄 채, 죽음의 선고를 내리는 《홍련의 황녀》. 실제로, 이 자리에는 아까 그랬듯, 오르=골의 목숨 구걸을 들어 줄 사람은 없었다.
드디어, 오르=골의 목에 위기가 온 것이다.
"아하"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르=골은 갑자기 웃었다.
참지 못해 터져나오는 웃음으로.
그는 스텔라의 선고를 듣고, 방금의 아이리스의 행동을 떠올린 것이다.
오르=골 자신도 예상치 못했던, 아이리스의 선택을.
"아하 아하 확실히 누나의 행동엔 깜짝 놀랐어. 설마 그 장면에서 나를 살리려 하다니 말야.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정말 멍청하다니까~"
'그런' 꼴을 당했으면서 말야. 라며 아이리스의 행동을 조소하는 오르=골.
이 모습에
"잠깐 기다려 봐."
스텔라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그건, 아무리 그래도 네가 해도 좋을 말이 아니잖아……그 사람이 어떤 감정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대가로 널 위해 싸워주고 있는 건지……! 넌 거기에, 아무것도 느끼질 못하는 거야!?"
이 말에, 오르=골은 살짝 고개를 갸웃하며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야. ──엄~청 재밌는데?"
뺨을 가르는 듯한 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뭐, 피를 이어받은 사이? 친애의 정이라고 하나? 엄청나지. 《꼭두각시 인형》을 이용해 서로를 죽여버리게 만들었을 때, 실을 타고 전해 오는 감촉이 가장 좋은 건, 역시 가족끼리 죽이게 했을 때였거든. 아하 하지만, 실의 명령도 없이 그런 짓을 하다니……정말, 누나는 옛날과 다를 바가 없이 착하다니까. 이렇게까지 해 주니, 오히려 날 어디까지 사랑해주고 있는지, 여러 모로 실험해 보고 싶다니까? 아하 "
"빌어먹을 자식……!"
빠드득.
스텔라는 끓어오르는 분노에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여기에, 오르=골은 역시나 즐겁다는 듯 웃으며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탁해진 눈을 부릅뜨고, 그 말에 동의했다.
"내가 이상하다는 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어.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슬픔으로밖에 쾌락을 느끼지 못하다니, 이상하다고 말야. 그러니 이래봬도 나름 노력했다구? 이런 모습을 타인에게 들켰다간 분명히 큰일이 날 거라고 말야. 열심히 정상인인 척을 했단 말이지. 모두에게 미움을 사지 않도록. 이상한 녀석이라는 생각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모두의 안색을 살피며 말야. 그랬더니, 마을에 사는 모두가 나를 아주 좋아해 줬어. 상도 몇 개 받았고, 학교의 반장 자리는 언제나 나였고, 러브레터도 잔뜩 받았지. 우리 엄마도, 아빠도, 자랑스러운 아들이라고 말해 줬었어. 생일 파티도 언제나 마을 사람 모두가 해 주었지. 굉장하지? 모두들, 진심으로 나의 생일을 축하해 줬었어. 나도 이렇~게 방긋이 웃으면서──
──그런 것들은, 전부 조금도 재미없었지.
즐거웠을 텐데. 기뻐해야만 하는 걸 알고 있었는데. 기쁘질 않았지. 즐겁진 않지만, 기쁘지도 않았지만, 즐겁고 기쁜 척을 해야 했었어. ──이~런 식으로 말야. 그게 얼마나 기분나쁜 건지, 스텔라는 알 수 있겠어?"
"……너.."
"아하 좀 수다가 지나쳤나 봐."
그리 말하고, 오르=골은 입술을 말아올린 손가락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난 뒤, 정면으로 스텔라를 노려보았다.
"생각해 보니 지금 쫓아온 건 스텔라 한 명뿐이지? 누나랑 같이 왔다면 좀 힘들었겠지만, 한 명뿐이라면 진지하게 도망칠 필요도 없을 것 같네."
천천히, 날개를 펼치듯 두 팔을 들어올려 손을 펼치는 오르=골.
《괴뢰왕》의 전투 태세였다.
스텔라도 여기에 응하여, 《비룡의 죄검》을 쥐어 짤 기세로 강하게 쥐었다.
"사람을 굉장히 우습게 보는 것 같은데?"
"상대를 깔보고 있는 건 스텔라 쪽이야."
"입만 살아서는. 지금까지 계속 꼴사납게 도망만 친 주제에."
스텔라는 이리저리 굴러다녀 흙먼지로 더러워진 오르=골의 망토를 노려보며, 비웃음으로 답했다.
하지만, 이 대화 속에서, 스텔라는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오르=골이 지적했다.
"아하 깔보고 있다는 건, 나를 깔보고 있다는 말이 아니야. ──누나를, 말이지."
"뭐라고?"
"설마 혼자서 날 쫓아올 줄은 생각도 못 했어. 잇키 군을 누나 앞에 남겨 두고 말이지. ……괜찮아? 그 남자, 죽을 텐데?"
그 지적에, 스텔라의 표정이 눈에 띄게 험악해졌다.
"……잇키는 강해."
"확실히 강하지. 그건 알고 있어. 아마 나로는 잇키 군에게 이길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건 내게 그의 검이 통할 때의 이야기지. 설령 신이 상대라고 해도 '벨 수 있는' 상대라면 잇키 군은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는 정말로 강하니까."
하지만
"누나는 달라. 누나는 애초에 '벨 수 없는' 상대니까. 잇키 군의 검이 얼마나 굉장하다 할지라도, 그의 유일한 공격 수단인 참격 자체가 통하지 않는 상대한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
"둘이 싸우고 나서 꽤 시간이 지났지? 이제 곧 결착이 지어졌다는 방송이 흐를지도 몰라. 잇키 군이 죽었다고 말이지. 10초 뒤려나? 5초 뒤? 자, 자! 지금이라도 얼른 돌아가 보는 게 좋지 않겠어? 아하 뭐, ──그렇게 놔두진 않을 거지만 말야!"
순간, 오르=골이 먼저 움직였다.
오른팔을 채찍처럼 스냅을 가해, 다섯 손가락을 통해 뻗어 있는 실로 참격을 가했다.
공중을 가르는 다섯 실의 참격.
그건 세밀하고,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조차 내지 않고 스텔라를 향해 날아갔다.
찢어지는 살.
뿜어 나오는 피.
물론, 일격에 끝나지 않았다.
오르=골은 춤을 추듯 몸을 빙 돌려. 왼손으로 제 2격을 가했다.
"깔보지 마."
"……!"
하지만, 그 콤비네이션은 이어지지 못했다. 스텔라가 일부러 검이 아닌 팔로 실을 받아내고, 손가락에 얽히게 하여, 꾹 쥐어 오르=골을 붙잡은 것이다.
그녀는 오르=골의 도발에, 확실한 말투로 답했다.
"확실히 네가 말한 대로, 잇키와 아스칼리드 양의 상성은 좋지 않아. 하지만, 이기는 건 잇키 쪽이야. 왜냐고? 잇키는 약속했으니까. ──반드시 살아 남겠다고."
자신과 아이리스와의 상성. 그것이 얼마나 심한 건지는 잇키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스텔라는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그 전장을, 홀로 맡는다고 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할 남자는 아니다.
즉, 그에겐 승기가 있는 것이다.
스텔라는, 그것이 뭔지 알 수 없다.
오르=골도 알 수 없다.
아이리스도, 알 수 없다.
아마도……이 세상에서 단 한 명, 그밖에는 모르는, 보이지 않는 활로.
"그렇다면──믿겠어."
믿을 수 있다.
결승전 전날 밤, 키스와 함께 나눈 그 약속을.
《도철》과의 싸움에서, 자기 자신조차 믿지 못하게 된 스텔라 버밀리온을, 그가 마지막까지 믿어 주었듯이.
어떠한 불리한 상대라도, 아무런 승기가 없는 싸움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이기고, 살아남아서
──이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야. 이렇게 스텔라를 안아 줄 수 있는 곳은, 누구에게도 넘겨줄 수 없어.
약속했던 대로, 다시금 자신을 힘껏 안아 줄 것이라고.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렇게 하기에 충분한 힘을, 쿠로가네 잇키는 언제나 보여 줘 왔으니까!
"한 번 더 말하겠어. ──우습게 보지 마. 네 누나가 지금 싸우고 있는 남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승부욕이 강한 남자야. 걱정 같은 건 안 해. 할 필요도 없어. 잇키는 반드시 약속을 지킬 거야. 그렇다면, 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되겠지. 버밀리온의 황녀로서, 힘 없는 자들을 지키는 《연맹》의 《마도기사》로서── 《괴뢰왕》 오르=골, 너를 베어버릴 뿐!!"
강하게 선고함과 동시에, 스텔라는 왼손에 거머쥐고 있는 실을 힘껏 끌어당겼다. 그리고 힘껏 오른손이 당겨진 탓에 밸런스가 무너진 오르=골을 향해, 오른손 하나로 힘껏 쥔 대검을 치켜들고 달려들었다.
조준은, 오르=골의 목.
내리친 칼은, 지금껏 휘둘러 왔던 것보다 더욱 강하고, 빨랐다.
가장 강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최강의 인연은, 오르=골의 말 정도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흔들리지 않는 신뢰야말로, 이 싸움을 결정지을 요소였다.
◆◇◆◇◆
『클레이델란트에 펼쳐진 《흑기사》와 《낙제기사》의 싸움. 처음엔 호각이었지만, 《흑기사》가 자신을 세계 4위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노블 아츠 《강화재생》을 이용해 모든 힘을 쏟아붓기 시작한 순간, 일방적인 전개가 되어버렸어.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더욱 강해져 가는 《흑기사》를 상대로, 《낙제기사》는 계속해서 회피하기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둘의 사투를 그리 평하는 실황자. 하지만 이건 버밀리온 팀에 상당히 좋게 포장하여 말한 내용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다. 왜냐면, 잇키는 이미 만족스럽게 피해낼 수도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무기를 되돌리는 틈도 일절 없이 풀스윙으로 날아오는 핼버드. 《강화재생》에 의해 가속도적으로 위력과 속도가 늘어 가는 그 참격은, 이제 만들어내는 풍압만으로 잇키의 몸을 깎아버리기 시작했다.
《완전장악》과 탁월한 체술로 모든 참격을 스치지도 않고 피해 내던 잇키도, 풍압만은 버텨낼 수 없었던 것이다.
옷이 찢어지고, 몸 여기저기에 피가 배어나온 채,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소모가 명백한 모습.
『……이래서야, 쓰러지는 것도 시간문제겠어...!』
『쿠로가네 잇키! 이제 됐어! 기권해!!』
『당신은 충분에 넘칠 정도로 싸워 줬어요!』
『이대로 가면 진짜로 죽을 거야!! 버밀리온을 위해서 네가 그렇게까지 해 줄 필요는 없어! 부탁이니까 제발 기권해 줘!!』
어느 틈엔가, 성원은 비명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이리스의 맹공에 손발도 꼼짝 못한 채 목숨을 연명해 나아갈 뿐이 되어 버린 잇키의 모습에, 지켜보기만 하던 사람들도 그만 알게 되어 버린 것이다.
자신들이 필사적으로 응원하고 있던 이 싸움이, 골 없는 축구를 계속해 나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이대로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언젠가 잇키는 따라잡히게 될 것이다.
그리 멀지 않은 시간 내에.
그러니 필사적으로 도망쳐 달라고, 그의 안전을 걱정하며 외치는 것이다.
그러나──
"후웃!"
『진짜 위험한 찰나, 참격을 손잡이로 받아냈어! 그리고 그 힘에 맞서지 않고 《흑기사》의 힘을 이용하여 후퇴! 다시금 맹공에서 벗어나 목숨을 연명! 이미 《강화재생》에 의해 축적된 강화로, 《흑기사》의 속도는 몸놀림마저 '번개'의 속도를 능가하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제기사》! 여기까지 위기에 내몰린 상황에서도 집중력이 끊어지질 않는다앗! 《완전장악》에 의한 예측으로 생과 사의 극한을 간파해내는 중! 간파해내어, 죽음으로 이어지는 벼랑에서 버티고 서고 있어! 대체 무엇이 이 남자를 이렇게까지 해낼 수 있게 만드는 것인가!?』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꺾이지 않는 잇키의 전의.
어째서 포기하지 않는 거지?
어떻게 싸울 수 있는 거지?
그 이유를, 실황은 알 수 없었다.
버밀리온의 국민들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대치하고 있던 아이리스는, 뒤늦게나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알아채고
'당했……어!!"
투구에 감싸여 있는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전율하고 있었다.
무엇에?
물론, 눈앞의 소년에게.
이대로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언젠가 잇키는 당하고 말 것이다. 붙잡히고, 죽을 것이다.
그 모든 상황의 인식은, 옳았다. 아이리스의 예상으론, 앞으로 10분.
10분만에, 《강화재생》에 의한 능력 상승은 잇키가 대응 가능한 범주를 넘어설 것이다.
이 승부는, 확실히 자신이 이기게 된다.
그렇다. 그것은 뒤바뀔 일 없는 현실.
──하지만
10분간, 오르=골이 《홍련의 황녀》를 상대로 생존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크읏……!"
그래선, 안 된다.
아이리스의 승리 조건은 잇키를 타도하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오르=골을, 동생을 지켜내는 것.
10분 뒤, 쿠로가네 잇키에게 이긴다 하더라도, 오르=골이 당해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 건, 패배나 마찬가지.
하지만, 승부를 빨리 결정지으려 어설프게 공세에 나선다 하더라도, 잇키는 도주에 전념을 다할 것임이 틀림없다. 아이리스는 소속진영을 배신한 시점에서 반칙 판정을 받아, 대표 자격을 박탈당한 상태. 《사막의 사신》의 탓에 싸움에 개입이 가능한 전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르=골만 쓰러뜨린다면 이 전쟁은 버밀리온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즉, 이 전쟁의 수세에, 아이리스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힘들게 쓰러뜨릴 필요가 없는 상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잇키는 무리를 하지 않는다. 연장전투를 이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결착을 빠르게 이끌어낼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칠성검무제》의 결승전에서 잇키가 보여 준 발도술.
동시에, 잇키가 지닌 검술 중에서 유일하게, 《무적갑주》를 뚫을 수 있는 마인의 영역에 달한 일격.
모든 후퇴를 버린 혼신의 공세로, 그 발도술을 뚫고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어, 승부를 거는 방법 외엔.
──그것이 바로,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가 노리고 있던 점이다.
실력으로 말하자면, 《낙제기사》와 《흑기사》는, 《낙제기사》가 백전을 싸워 백패를 당하는, 그것 이외엔 존재하지 않는 조합이다. 디바이스의 상성이 너무나도 좋지 않았고, 유일하게 통할 가능성이 있는 그 발도술도 사전 정보가 알려져 있어, 명중될 가망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하지만, 싸움은 실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 싸움을 둘러싼 '상황'도,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오르=골을 도우려 하는 아이리스.
스텔라를 믿고 있는 잇키.
신뢰의 차에 의해 발생하는 초조함.
시간이 지날 때마다 더욱 커지는 초조함이 만들어내는, 아이리스가 '승리'가 보장된 장기전을 버리고 '승부'를 거는 단기결전을 가해 올 것이란──불가능한 필연.
쿠로가네 잇키는, 처음부터 그것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라면 '승부'가 되지 않을 자신과 아이리스의 싸움에, 단 한 합에만 존재할 뿐인, 자신의 승기를!
『《흑기사》의 참격을 이용하여 능숙하게 빠져나가 거리를 둔 《낙제기사》. 하지만 곧바로 거리가 좁혀진다! 맹공에 붙잡혔어! 이제 저 녀석의 장점인 스피드조차도 따라잡혀 버렸다고! 완전히 위기에 내몰린 《낙제기사》! 이 이상 싸웠다간 진짜 위험해질 거라고!?』
실황의 비명에, 아이리스가 참지 못하고 쓴웃음을 흘렸다.
위기에 내몰렸다?
무슨 헛소리를.
지금 이 순간, 위기에 내몰린 건, 오히려 자신 쪽이다.
잇키는 《강화재생》이 발동되고 나서, 방어 일변도를 유지하며 거의 공격을 해 오지 않았다. 검을 휘두르지 않은 것이다.
일방적으로 공격했다.
일방적으로 내몰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틈엔가 공격을 하고 있던 자신의 발이, 위기라는 이름의 진흙에 빠져 있었다.
마치, 악몽과도 같이.
'본 적이 없어. 이렇게나 '승리'에 특화되어 있는 기사는……!'
어떠한 궁지, 어떠한 열세라 하더라도, 반드시 승리로 이어지는 길을 찾아내어, 그 길을 나아간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포기를 모르는 자.
하지만, ──그것도 당연하다.
《낙제기사》가 해 온 싸움 중, 자신이 유리한 싸움이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최약으로 태어나, 자신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결의하며, 선택한 자신의 기사도.
무리. 무모. 무소용. 그 부조리한 모든 것들에 꺾이지 않고, 그는 불리한 싸움에 나서 왔던 것이다.
싸워 왔고, ──끝내 이겨 왔다.
지금 아이리스가 상대하고 있는 건, 그런 적.
손쉽게 승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이다.
아이리스도 그것을 싫증날 정도로 뼈저리게 이해하게 되었다.
'어떡해야, 하지?'
《강화재생》이 확실히 잇키를 뛰어넘을 수 있을 10분간, 동생이 생존해 있을 것을 믿고 지금의 전투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한시라도 빨리 동생의 곁으로 달려가기 위해, 몸소 적의 함정에 몸을 내던질 것인가.
이마에 불쾌한 식은땀을 흘리며 고심한 뒤
"────────"
막상 생각해 보니, 본인도 놀랄 정도로 답은 곧바로 나오게 되었다.
『오옷!? 이게 무슨 일이야!? 《강화재생》에 모든 걸 맡기고 일방적인 맹공으로 《낙제기사》를 몰아넣던 《흑기사》가,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백스텝! 자기 발로 거리를 두었어!?』
동생이 태어난 그 날.
처음으로 그의 손을 잡은 그 날 밤.
생각했었다.
그 따스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대가로 바쳐도 괜찮다고.
그럼에도, 지켜내지 못했다.
동생이 흉행을 벌이기 전, 확실히 존재했을 터인 그 따스한 나날들. 아마도……자신 안에 피어오르고 있던 엽기적인 충동에, 필사적으로 저항했을 그 시기에, 그 왜곡된 마음을 알아채고, 상담해 줄 누나가 되어 주지 못했으니까.
쭉 혼자 고뇌하게 만들고, 혼자 싸우게 만들었다.
그 결과가, 그 참극.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고독함을 느끼게 만들 수는 없다. 이제부터는 쭉 동생의 곁에서, 동생의 손을 잡아 주도록 하자. 같은 시간을 보내고, 같은 음식을 먹고, 그에게 고독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전해 주도록 하자.
그것을 세상이 용납하지 않는다면, 세상을 상대로 싸우자.
모두에게 원망을 산다 할지라도, 모두에게 모멸을 받는다 할지라도, 단 한 명밖에 없는 가족을 위하여.
그리고 언젠가……이후로 같이 보낼 시간 속에서, 언젠가 자신이 처음으로 동생의 손을 잡았을 때에 느낀 그 따스한 감정이, 그의 마음속에 깃들 날이 오게 된다면──
'그게 나의, 모든 것이 된다 해도 좋아.'
그렇다면, 고민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적이 무엇을 준비하고 있건, 상관없다.
바람의 힘은 마술의 힘. 운명을 바꾸어 나아가는 힘이 된다면, 이 가슴속에 불타고 있는 바람은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뒤지지 않을 테니까.
'뭐든지 받아내 보이겠어. 내 《무적갑주》로!'
『맹공을 멈추고 거리를 둔 《흑기사》! 핼버드를 머리 위로 치켜올리고, 전신에서 마력을 뿜어내고 있어! 오늘 본 것 중 가장 큰 마력의 폭풍! 드디어 승부를 걸 생각인 건가!?』
'온다……'
이 아이리스의 변조에, 쿠로가네 잇키는 확신했다.
아이리스가 10분 뒤에 있을 확실한 승리를 버리고, 단기결전의 유도에 넘어왔다는 것을.
그녀는 달려올 것이다.
이것이 함정이라는 걸 알고 있더라도, 혼신의 힘으로, 자신의 동생을 구하러 가기 위해서.
──그럴 것임이 틀림없다.
한 기사가 고뇌 끝에 선택한, 답이니까.
'……………이 사람은, 정말로 강해………'
잇키는 생각했다. 자신이 알고 있다면, 아이리스도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치유할 때마다, 자신의 신체 능력을 영구적으로 축적 강화시키는 노블 아츠 《강화재생》. 그 강력한, 견줄 것이 없는 능력에 존재하는 약점──치명적인 결함을.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지키고 싶은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부어서.
그리고, 지금도.
이 정도의 사랑에, 바람에, ──과연 자신은 이길 수 있을 것인가.
'당연히 이겨야지……!'
자신 안에서 스며나오는 겁을, 잇키는 억눌렀다.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소녀와 맺은, 지켜야만 할 약속이 있다. 무엇에도 지지 믿어 온 자신의 에고를 고무시킨 뒤, 잇키는 아이리스와 대치했다.
자신의 바람을 담은 《음철》의 날을 쥐어, 등이 아이리스를 향할 정도로 몸을 뒤틀고, 잇키가 발도술의 자세를 취했다.
그 움직임에 맞춰, 아이리스가 잇키를 향해 강하게 도약했다.
후퇴 따위 생각하지 않는다. 패배 따위 고려하지 않는다. 그저 앞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만을 생각하는 강한 의지로.
거기에, 잇키도 자신의 비장의 카드 《일도나찰》을 발동.
그의 전신에서, 청색의 마력광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하지만, 피어오르게 놔두지만은 않았다.
날뛰는 마력을, 에델베르크에서 수련한 마력 제어로 체내에 담아, 자신의 육체 속에 완전히 작용시켜, 이 직후 일어날 찰나에 대비했다.
이제 곧 맞서게 될, 맞물릴 일 없는 두 기사도.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바람을 가슴에 담은 채, 부딪힌다.
이후의 미래로 나아갈 것은, ──둘 중 한 명.
"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여기서, 《낙제기사》와 《흑기사》의, 마지막 교착이 시작되었다.
◆◇◆◇◆
잇키와 아이리스. 두 기사의 싸움은, 회피 작전에 나선 잇키를 아이리스가 쫓는 장기전에서, 서로가 가장 신뢰를 쏟고 있는 능력으로 운명을 결정짓는 초단기 결전으로 바뀌었다.
선수를 거머쥔 건 물론 잇키.
아이리스가 핼버드의 사정거리까지 도약해 들어가기 직전, 자신도 한 발짝 앞으로 내딛고, 그녀를 자신의 검의 사정거리에 두었다.
거기서 나올 검술은, 《칠성검무제》에서 스텔라를 쓰러뜨린, 발도술.
이 발도술엔, 수많은 성립조건이 존재한다.
하나는 《일도나찰》.
혼신을 찰나의 순간에 쏟아붓기 위하여, 앞으로의 모든 것을 도외시한 극한의 신체강화.
다른 하나는, 발도술의 발동구조.
왼손으로 칼등을 쥐어, 보통 칼을 휘두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와 힘을 칼에 부여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상대가 자신을 향해 똑바로 파고들어 오는 상황.
다가오는 상대에게 칼을 휘둘러 발생하는, 교차법의 작용. 상대의 힘까지 자신의 참격에 활용시키고 나서야, 이 일격은 쿠로가네 잇키의 '궁극기'가 되는 것이다.
실로 성립이 어려운 기술.
거기다, 이 조건은 모두 아이리스에게 파악당한 상태.
아이리스는 《칠성검무제》 결승전에서, 이 기술을 한 번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전 정보를 갖고 있는 아이리스에겐 성립할 리 없는, 예비동작마저 실로 큰 기술.
하지만, 잇키는 그 전제를 뒤집었다.
지혜를 짜내어, 기술을 구사하여, 지금 이 싸움에서밖에 존재하지 않는 승기를 끌어와, 《일도나찰》 상태의 자신에게 아이리스가 똑바로 맞서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 여기에 모든 조건이 갖춰져, 《낙제기사》는 자신의 최강이자 최속인 일격을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적절히 구사해낼 것이다.
거기에, 《흑기사》 아이리스=골 아스칼리드가 노리는 건 틈 찌르기. 그녀는 핼버드를 머리 위로 드높게 들어올린 채, 그 쪽을 베어 보라는 듯 보디 쪽을 텅 비게 만들었다.
선수를 빼앗기는 건 이미 각오한 일. 이 발도는, 단순히 흘러나오는 마력만으로도 무기를 튕겨내는 《홍련의 황녀》가 모든 마력을 짜내 굳힌 방어로도 막을 수 없었던 일격. 그 공격력은 지금까지 봐 왔던 검술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일 것이다.
아무리 《무적갑주》가 있다 하더라도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자신은 연맹 산하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수비력을 지닌 기사.
손쉽게 베이진 않을 것이다.
튕겨낼 필요까진 없어도, 공격을 둔하게 만드는 건 필연.
그걸로 충분하다고, 아이리스는 결단했다.
0.1초만이라도 공격을 둔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 순간의 틈을 타, 자신의 핼버드가 잇키의 정수리를 갈라 버릴 것이다.
이기는 건 자신이라는, 불굴의 마음을 《무적갑주》에 담고, 잇키의 전력을 막아낼 자세를 취한다.
《음철》의 예리함이, 《무적갑주》를 베어낼 것인가.
《무적갑주》의 견고함이, 《음철》을 막아낼 것인가.
최강의 창, 최강의 방패가 부딪히는, 그 결말은──
──처음부터 결정나 있었다.
"─────"
이 싸움, 이 교착에서, 둘 중 하나는 치명적인 미스를 범하고 있었기에. 미스를 범한 건, 《흑기사》 아이리스=골 아스칼리드. 그녀는 잇키의 발도의 속도를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렇기에, 그 그림자마저 쫓아가지 못할 신속의 일격을 무기로 막아내는 건 불가능할 테니, 그 공격을 제압할 카운터를 가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미스란, 이 선택 그 자체.
그녀는, 잇키의 발도의 진정한 특성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일격은 그저, 빠르고 강할 뿐인 공격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기술과 단련된 육체, 길러낸 정신력의 모든 것을 만전의 상황에서 발동시키는, 현 시점에서 만들어내는, 궁극의 일도. 즉, 쿠로가네 잇키라는 인간──아니, 《마인》의 집대성인 것이다.
그 의미를, 아이리스는 고려해야만 했었다.
언제나, 어떠한 때라도, 이길 리 없는 상대를 이겨 왔다. 아무리 열세라도, 아무리 불공정하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들을 이 칼 하나로 이겨온 것이다.
그런 남자가 수많은 상황을 만들어내, 만전을 기하여 가하는 일격.
그렇다면, ──이길 수 없을 리가 없다.
그렇다. 이 기술은 한 번 발동되면, 틈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칼날이 쇄도하는 찰나, 그가 세상에 새겨 온 불가능할 터인 승리의 역사는, 인과에 대해 강한 주체성을 지닌 《마인》의 《인력》에 연결돼, 강고한 인과로서 집속되어 세상에 결과를 새겨 넣게 된다. 지금 이 시간까지 달하는 과정의 모든 것은, 이미 확정되어 있는 인과를 쫓아갈 뿐인 그림자에 지나지 않고, 어떠한 방법을 취한다 할지라도 이것에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발동과 동시에 '베어냈다'는 인과를 집속시키는, 운명에 대한 절대 결정권.
확정되어 있을 터인 패배를, 자신의 칼 한 자루로 승리를 이끌어내 온 남자가 도달한, '참격'이라는 개념의 도달점.
그것이야말로──
"마지막 비검──《추영》"
그 정체였으니.
◆◇◆◇◆
"────아.."
《추영》의, '운명을 베어내는' 진정한 특성.
그걸 아이리스가 알아챈 건, 《음철》의 칼날이 마치 안개를 베어내는 것처럼 아무런 저항도 없이 《무적갑주》에 파고들어와, 자신의 몸을 깊게 베어낸 뒤였다. 인과와 함께 베인 《무적갑주》는, 그 참흔으로부터 균열이 내달리고, 검은 입자가 되어 흐트러졌다.
쿨럭.
작은 기침과 함께, 입에서 핏덩어리를 토해내는 아이리스.
피와 함께 무릎 아래로 힘이 빠져나가, 그의 몸이 앞으로 풀썩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대로 지면에 쓰러지지는 않았다.
잇키가 살짝 앞으로 걸어나와,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받아 주었으니까.
"제 승리에요."
자신의 어깨에 힘없이 늘어진 아이리스를 향해, 잇키는 늠름한 말투로 자신의 승리를 선포했다.
자신들의 싸움의 결말을.
"…………응…"
아이리스도, 살짝 고개를 끄덕여 그걸 받아들였다. 잇키에게서 받은 참격은, 복부에서 척추까지 닿을 정도로 깊었다.
내장은 이미 양단되어, 활동할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명적인 건, 그녀 자신이 이 싸움 속에서 자신에게 부여해 놓은, 《강화재생》의 부작용.
어느 것에나 한도는 있는 법. 과잉하게 강화된 아이리스의 몸은, 이미 《무적갑주》 없이 유지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버렸다. 따라서, 《무적갑주》의 치유력을 잃은 순간부터, 그녀의 몸은 스스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장기는 자신의 맥동에 의해 터졌고, 근육은 자신의 장력에 의해 찢어졌으며, 그 과잉한 스펙의 육체를 움직이기 위해 너무도 과도해진 혈압 때문에, 뇌조직이 사멸하기 시작했다.
아이리스의 몸이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 이제는 외견 뿐이었다.
그리고, ……이 손상은 《재생조》로는 치유가 불가능하다.
당연하다. 《강화재생》에 의한 육체강화의 축적은 영구적인 것.
아이리스 자신의 의지로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육체가 그렇게 변질되어 버린 이상, 아무리 치유를 한다 할지라도 자멸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즉, ……그녀는, 이제 살아날 수 없다.
이렇게 될 것을, 아이리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의 행위가, 지옥을 향한 편도 티켓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강화재생》을 계속 유지해 온 건, ……그저 친애만을 위해서.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다.
──죽는다.
피할 수 없는 결말을, 아이리스가 자각한다.
'떨고, 있어……'
문득, 아이리스는 자신의 몸이 조금씩 떨고 있는 것을 알아챘다.
그것은, 공포 때문일까.
동료를 배신하고, 자신을 길러 준 사람들을 배신하고, 수없이 이기적인 행동을 해 온 주제에, 지금 와서 죽음을 두려워하다니, 이 얼마나 구제할 도리조차 없는 여자란 말인가.
아이리스는 자신을 마음 속 깊이 모멸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상함을 깨달았다.
──떨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몸은 이미 죽어버렸다. 몸을 떨 수 있는 힘 따위,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몸이다.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인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떨고 있는 건, 아이리스가 아닌 그녀가 몸을 기대고 있는 잇키였기에.
"……………"
몸이 직접 닿을 정도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떨림.
그것이, 통곡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란 걸, 아이리스는 알아챘다.
……당연하다. 잇키는 타인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아무런 동요를 하지 않을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자신의 손으로 이끌어낸 결말이라면, 더욱 그럴 터.
원래라면 이런 싸움, 하고 싶지 않았을 것임이 틀림없다. 동료였던 자에게 검을 겨눈다. 그 행위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느꼈을까.
그럼에도
'그런 고통을 참아내면서까지……나의 이기심에, 어울려 준 거구나……'
누구에게도 용납받지 못할 바람을 품어 버린 자신을, 비웃지도, 매도하지도 않고, 한 명의 기사로서 전력으로 맞섰고──모든 것을 다해 주었다.
그리고……지금도.
그는, 결코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늠름한 목소리로, 싸움의 결말을 고했을 뿐.
상대가 나아갈 길을 부숴 버린 자로서, 그것이 무례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건, 아주 고통스러운 노력일 텐데.
'움직여, 줘……'
안 된다.
이 멋진 소년의 강함에, 상냥함에 잔뜩 어리광부리고, 자신만 편해지려 하다니.
그에게 짐만을 남겨둔 채 떠나려 하다니.
그것만은──절대로 해선 안 될 짓이다.
아이리스는 사력을 쥐어짜냈다. 이미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는 몸의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남은 모든 힘을 모았다.
그리고, 어떻게든 한 호흡을 들이쉬고
"……잇키, 군.."
말을 꺼냈다.
"나를, 잊어도…… 괜찮으니까.."
쉬어 버린, 목소리라고도 할 수 없는 말.
하지만 다행히 아이리스는 잇키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기에, 그에게 말로서 전해질 수 있었다. 마음의 짐 같은 건 느끼지 않아도 된다. 자신 따위 얼마든지 잊어도 괜찮다.
그런, 아이리스의 모든 매듭을
"잊을 수 없어요."
잇키는, 확실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힘 없이 자신에게 몸을 기대고 있는 아이리스의 후두부에 손을 얹고
"당신에 대한 걸, 이후로 아주 많은 사람이 비난하고, 매도하고, 틀림없이 역사는……당신을 극악무도한 자라고 기록하게 되겠지만, 전 기억할 거에요. 당신은 아주 상냥한 사람이라는 것을. 당신이 세상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단 한 명의 가족을 구해 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웠다는 것을. 그런 굉장한 기사에게, 내가 이겼다는 것을. 무엇 하나, 전 잊지 않을 거예요. 모든 것을 제 검에 담고, 전 나아가겠습니다. ──제가 선택한 기사도를."
위로하듯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아이리스에게 답했다.
"───────"
그의 답은──사실, 아이리스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그녀의 청각은 이미 망가졌고, 시야도 빛을 잃었으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차갑게 식어 버린 자신의 몸을 끌어안아 주는 그의 온기가, 아이리스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잊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을.
그건……아이리스에게 있어 결코 기쁜 것이 아니었지만
"……고마, 워……"
남은 마지막 숨을 내뱉음과 동시에, 그 말이 자연히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부터, 말하지 않은 채 안에 눌러담아 뒀던, 그 말이.
이 소년에게,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전할 말은, 이것 외엔 없었기에.
"────"
그리고, 전할 말을 전한 아이리스는, 다시금 자신의 몸에 의식을 둔 다음, 생각했다.
'……나, 이렇게나 지쳐 있었구나……'
몸은 이미 일말의 활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눈꺼풀을 들어올릴 힘도, 숨을 쉴 힘도.
죽는다.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 잠이, 두 번 다시 깨지 못할 잠이라는 것을.
하지만, 죽음이라는 수면을 앞에 두고, 거기에 저항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남은 것은, 드디어 쉴 수 있다는 편안함 뿐.
떠올려 보면……그 참극 이후로 푹 자 본 적이 없었다. 눈을 감으면 언제나, 자신은 피칠갑이 되어 버린 교회 속에 있었고, 부모님을, 친구를 계속해서 죽이는 꿈을 꿨으니까.
그것을 자신의 죄로 거두어, 동생을 죽이는 것으로 모두의 원수를 갚는 것에 모든 걸 바쳐 살아 온 아이리스 아스칼리드로서의 인생. 하지만 결국 자신의 진정한 감정을 깨닫고, 그 작은 손에 맹세한 약속을 위해 싸웠던, 아이리스=골로서의 인생. 어느 쪽도, 무엇 하나 이루어낸 것이 없었다.
그래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했다.
이 소년 덕분에, 모든 걸 다할 수 있었다.
그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러니
'미안해……누나가, 열심히 했는데……이길 수 없었……어…………………'
《흑기사》 아이리스=골 아스칼리드는, 자신의 결말을 받아들였다.
마치 따스한 햇볕 위에서 편히 잠들듯, 편안한 표정으로.
◆◇◆◇◆
『결차아아아아악! 교착의 찰나! 《칠성검무제》를 제패한 발도술 《추영》이 작렬!!!!! 마무리를 짓기 위해 달려들었던 《흑기사》를, 《무적갑주》채로 베어버렸다아아앗! 《흑기사》의 배신에 의해 생겨난 예상치 못한 싸움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이겨낸 건,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
자신이 보고 있는 아래에서 벌어졌던 싸움의 결말에, 실황이 환희의 포효를 내질렀다.
『꿈쩍도 않던 《흑기사》를 지금, 《낙제기사》가 애도의 표시를 나타내듯, 바닥에 뉘이고 있어! 《흑기사》는 죽은 건가? 일단 의료진을 보내긴 하지만, 보아 하니 이미 늦은 것 같구만. 아무리 현대 의료가 우수하다 하더라도, 죽은 생명을 되살릴 순 없지. 하지만! 《연맹》을 배신하고 《괴뢰왕》의 편을 든 멍청한 년에게 동정 따윈 필요 없어! 도중에 몇 번이고 간이 서늘해지긴 했지만, 진짜 잘 싸웠어! 《낙제기사》!!!!』
그리고, 그를 칭찬하는 건 실황 뿐만이 아니었다. 싸움을 중계로 지켜보고 있던 버밀리온 국민들도, 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다, 다행이다……! 잇키 씨가 이겼어!』
『저 녀석도 참, 이렇게 심장에 안 좋은 싸움을 하다니……어떻게 되나 걱정했네.』
『정말.. 이제 그렇게 무리하지 말라구!』
국민들은 모두, 잇키가 무사한 것에 안도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단 한 명. 시리우스만이 싸움의 결말에 말을 잊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사내인 게야……'
전사이기에, 그에겐 국민들보다 더욱 한 층 깊은 부분이 보였기 때문이다.
방금 실황은, 아이리스가 마무리 일격을 가하려 돌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선택은 원래 해선 안 될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대로 계속 몰고 갔다면, 《흑기사》의 승리는 뒤집힐 일이 없었을 터.
섣불리 승리를 거머쥐려 위험을 무릅쓸 필요 따윈 없었다.
그런데도, 아이리스는 그리 하지 않았다.
잇키가 그렇게 구도를 짰기 때문이다.
아마 스텔라에게 오르=골을 쫓으라 말한 것도, 전략 중 하나. 잇키는 싸움이 시작되기 전부터 《흑기사》를 전략의 실로 얽어 두고 있었던 것이다.
'종이 한 장 차이……? 대체 어디가 말이냐……'
누구나 겉만 보면, 《낙제기사》가 《흑기사》를 상대로 가까스로 승리를 거머쥔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실체는 완전히 다르다.
이 싸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잇키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 모든 것이 그가 상정해 둔 대로 굴러가, 상정해 둔 대로의 결착을 맺었다.
위기 따윈,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세계 4위의 기사를 상대로, 불만의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 완벽한 실력으로,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그것이 이 싸움의 진실.
그리고──이 싸움을 이해할 자들에게 모두 알려지게 될 터.
싸움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연맹》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기사들이나, 나중에 영상 기록을 통해 싸움을 본 수많은 실력자들에게도.
이 승리 이후, 《홍련의 황녀》를 쓰러뜨린 루키가 나타났다는 잇키의 평가는, 《연맹》을 대표하는 기사라는 인식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누가 처음으로 말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잇키에게 새로운 이명이 부여되었다.
《낙제기사》.
《무관의 검왕》.
《칠성검왕》.
여러 이명으로 불리던 그가, 생애의 대부분을 함께 할 이명──
《검신》 쿠로가네 잇키, 라고.
◆◇◆◇◆
실황과 버밀리온의 국민들이 잇키의 승리에 기뻐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본인은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그는 누워 있는 아이리스의, 피로 더러워진 몸을, 적어도 얼굴만은 손수건으로 닦아 깨끗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온화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그녀의 표정에, 느꼈다.
"……고마워, 라니.."
죽기 직전, 확실히 아이리스는 그리 말했다.
……대체, 어째서.
자신을 죽이고, 자신이 지키려 하던 자를 죽이려 하는 남자에게, 그녀는 어째서 고맙다는 말을 한 걸까.
잇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억측은 가능했다.
하지만, 억측이란 건 어차피 자기 좋을 대로 느끼는 망상에 불과하다.
답을 얻을 수는 없다.
이제……영원히.
"크, 읏.....~~~~~~~~~~~~~~~!!"
사람이 죽는다는 건 그런 것.
사람을 죽인다는 건 그런 것.
그 실감이, 뜨거운 마그마와도 같은 감정이 되어 몸 안을 불태웠다. 자신의 기사도를 선택했을 때 다짐했던 각오에 금이 가, 한심한 비명이 흘러나오려 했다.
하지만, 잇키는 그걸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한 번 이 감정에 짓눌려 버리면, 팽팽하게 만든 집중의 끈이 끊어질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직, 이 감정을 토해 낼 때가 아니다.
이 순간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마력도, 체력도 모두 써 버렸지만, ──싸울 방법은 아직 남아 있다.
지금의 스텔라가 오르=골에게 패배할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아직 싸울 수 있다면 싸우러 가야만 한다.
"────"
잇키는 《음철》을 땅에 짚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일도나찰》은 체력과 마력이 통째로 고갈되어 버리는, 하루 한 번이 제한인 노블 아츠. 하지만, 그 반동으로 생겨날 육체의 손상은, 《칠성검무제》나 《뇌절》과 싸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경미해졌다.
모든 건, 에델바이스와의 수행 덕분이다.
마력 제어에 특성된 노블 아츠를 효율적으로 작용시킬 수 있게 된 덕택에, 전신을 일률적으로 강화시키는 게 아닌, 필요한 부위에 강화를 집중시키는 집중 강화가 가능해져서, 지금까지 몸을 쓸데없이 손상시킬 뿐이었던 에너지까지 검에 집중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체력만 돌 아온다면, 몸은 아직 움직일 수 있다.
그리고, 잇키 정도로 자신의 육체를 컨트롤할 수 있는 인간에게, '수동적'으로 체력을 증산시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잇키는 피의 흐름에 자신의 의식을 불어넣어, 온몸에 순환시켰다.
내린 명령은, '자식(自食)작용' 이라는 생리기능.
원래 이 기능은 사람이 굶주렸을 때, 자신의 육체를 분해시켜 생존에 필요한 최저의 에너지를 긴급 생산해내는 기능이지만, 잇키는 이것을 능동적이면서도 과잉하게 발동시켜, 신체능력의 최대 스펙을 희생시키는 대신 즉각적으로 체력 회복을 촉진시킬 수 있다.
다시금 싸우는 데에 있어 충분히 움직일 정도의 체력을 생산해내는 데에 필요로 한 시간은, 약 5분. 마력만은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이걸로 다소는 움직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잇키는 다시금 누워 있는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사죄는 하지 않겠어요. 당신이 동생을 생각하고 있듯, 제게도 소중한 사람이 있으니까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그는 자신의 육체에 대한 집중력을 높였다.
다음 싸움에 임하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