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5화 (75/77)

제 24장

망해의 눈물

천천히 일어나는 오르=골의 망해. 산산이 흩어진 고기조각이, 지면을 기어 오듯 한 곳으로 모였다. 세포 채 불타버려 쓰지 못하게 된 곳은, 주변에 굴러다니는 잔해나 천으로 보충하여, 오르=골은 사람의 형태를 되찾아 갔다.

이윽고, 산산이 부서진 머리조차 이전과 다를 바 없는 형태를 되찾았고

"정말 너무해, 스텔라. 이런 귀여운 남자애가 그렇게나 눈물을 흘리며 죽이지 말아달라고 간원했는데, 설마 정말로 죽여버리다니 말야."

구멍이 난 뺨에, 입이 갈라질 듯한 조소를 띠며.

"이 살인귀. 살인귀. 살인귀! 나와 다를 바가 없잖아!  아하  아하!"

설마 그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을 줄은, 스텔라도 예상치 못했다. 따라서, 반격을 정통으로 받아버렸다.

온 힘을 다해 저항해도 풀리지 않는 구속에, 불쾧나 땀을 흘리며

"……헛소리, 지껄이지, 마……! 애초에 네가……!"

스텔라는 그 불명예스런 조소에 반론으로 답했다. 클레이델란트를 덮치고, 버밀리온에 전쟁의 불씨를 당겨온 건 네 쪽이 아닌가.

이 스텔라의 반론에

"아하  뭐야뭐야? 올바른 살해와 잘못된 살해가 따로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하는 짓은 똑같다구. 애초에 '올바르다'란 게 뭔데? '잘못된' 것이 뭔데? 혹시 먼저 행동한 녀석이 잘못된 거라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내 잘못이 아니게 되는걸? 왜냐고? 애초에 나를 죽인 건 너희들 쪽이었으니까."

오르=골은 웃으며, 의미 모를 말을 했다.

"무슨, 말을……"

"아하"

곤혹에 빠진 스텔라를 오른손의 실로 구속한 채로, 오르=골은 왼손을 들어올려 주변의 잔해를 이용해 한 인형을 만들어냈다.

걸레로 만든 하얀 머리칼.

청색과 적색 단추로 만들어진 눈.

자기 자신과 닮은 인형을.

그 인형을 '아장아장' 걷게 만든 뒤, 오르=골은 말했다.

"주역들이 다 모일 때까지 심심하기도 하니, 인형극이라도 보여 줄게. 제목은 《피에 젖은 십자가》. 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불쌍한 남자애의 이야기야."

◆◇◆◇◆

"이야기는 15년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프랑스의 변경에서 시작됩니다. 산과 숲에 둘러싸인 자연이 풍부한 마을에, 소년이 태어났어요. 그 이름은, 오를레우스=골. 그의 집은 마을 안에 작은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었고, 딱히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마을의 농부들이 자주 이용하는 음식점이었기에, 생활에 곤란한 점은 없었습니다. 마을의 믿음직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부친. 상냥하고 예쁜, 그리고 노래도 잘 하는 모친. 그리고……언제나 함께 있어 준, 강하고 멋진 블레이저 누나. 소년은 행복한 가정 속에서 아무 부자유스러운 것 없이 행복한 유소기를 보냈습니다. 보내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말이죠.

하지만 이 소년은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이 소년은 보통 사람이 즐겁다고 여기는 일, 행복하다고 느낄 일, 그 모든 것들에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다른 사람이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모습으로밖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잘못된 인간'이었기 때문이지요. 소년 자신이 그걸 알아챈 건, 세 살 때였습니다.

친구를 괴롭혀, 울렸을 때였습니다.

그것이, 아주 즐겁게 느껴졌지요.

너무나도 즐거워, 소년은 거기에 푹 빠졌습니다.

더욱 울리고 싶다고, 더욱 부숴버리고 싶다고.

틀림없이 어른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죽여버리지 않았을까.

──소년은 상냥한 부모님과 누네에게 엄청 혼이 났습니다. 정말, 아주 크게요. 그렇게나 상냥했던 부모가, 창백한 얼굴로, 눈물을 펑펑 흘리며 몇 번이고 소년을 혼내고, 꾸짖었습니다. 언제나 소년을 지켜 준 강하고 멋진 누나도, 그 날만큼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가족뿐만이 아니었죠. 평소 과자를 자주 주던 착한 아저씨도, 이야기를 해 주던 수녀 누나도, 주변 어른들도 모두, 본 적 없는 무서운 얼굴로 소년을 노려보았습니다.

───마치, 세상이 뒤집힌 듯했어요.

그 광경은 작은 소년에게, 자신이 즐겁다 생각한 것이 얼마나 용서받지 못할, '잘못된' 짓인지를 이해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니 소년은 그 이후로, 자신 속에 싹트기 시작한 '기쁨'에 뚜껑을 덮어, 부모님이 가르쳐 준 '올바른' 일을 필사적으로 실천해 나아갔어요. 인간을 잘 관찰하여, 그 사람이 원하는 것, 자신이 해야 할 일, 해서는 안 될 일을 주위 깊게 구별하여, 부모와 어른들이 말하는 '올바르고' 착한 아이를 연기했지요. 그런 소년은, 이윽고 마을 모두가 사랑하는 인물이 되었답니다. 상처 받은 친구들과도 화해하고, 유일무이한 친구가 되었지요. 마을 사람들이 좋아하던 소년 주변엔, 언제나 미소가 가득차 있었지요.

그 모든 것들이──소년에게 있어선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였답니다. 그래요. 하필이면 자신의 진정한 '기쁨'을 알게 되어 버린 탓에.

무엇이 즐거운지도 모르는 채, 그저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억지로 미소를 만들어내고 있는, 그런 자신이 우스워서.

마치 인형 같아서.

자신의 주변에서 즐겁게 웃는 모두가, 부러워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그런 매일이 매년으로 이어지며, 소년은 망가지기 시작했어요.

가장 먼저, 미각이 사라졌어요.

다음으로, 보이는 색이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밤에는 잠도 잘 못 자게 되었어요.

나중에 검사를 해 보고 알았지만, 한계를 넘어선 과잉한 스트레스로 인해 뇌가 반절 정도로 작아져 버렸다고 해요. 하지만 소년은 계속 참았어요.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않고, 계속해서 숨겨 왔지요. 자신이 잘못된 것에 '기쁨'을 느끼는 잘못된 사람이라는 것을 들키면, 다시금 세상이 뒤집혀 버릴 테니까. 그것이 너무 무서워서 견딜 수 없었기에.

소년의 블레이저로서의 자질이 개화한 것은, 그런 때였어요. 그건 어쩌면, 운명이 그를 도와준 것일지도 몰라요. 소년에게 싹튼 능력 '괴뢰'는, 강선의 디바이스를 신경처럼 이용해 다른 생물의 뇌에 작용시키는 것이었지요.

소년은, 이 힘에 구원받았습니다.

이 힘이 있다면……주변 모두에게 들키지 않은 채, 자신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참는 것이 한계에 다다랐기에, 그 날 이후로 소년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잘못된' 일을 벌이기 시작했어요.

마을 안은 들킬 수도 있었기에, 옆 마을로 실을 뻗어, 일부러 상처를 입히는 짓을 벌이고, 사이 좋은 아이끼리 싸움을 붙이고, 행복한 가정을 파괴시키고, ……실의 힘으로 모든 마을 사람들의 감정을 읽어, 지금보다 더 큰 호감을 사는 행동을 취하며, 혼자 있을 때엔 멀리 있는 마을의 사람들을 망가뜨리고 있었지요. 실을 통해 전해 오는, 먼 마을에 있는 사람들의 슬픔, 고통, 소중한 사람을 상처입힌 것에 따른 절망, 그 감정의 동요가, 작아진 뇌에 달콤한 자극을 주었어요. 그건, 너무도……너무도 즐거운 시간이었답니다. 그 시간만큼은, 소년은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나날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답니다.

고작 해야, 아이의 능력일 뿐.

알아챌 사람은 알아채게 된답니다.

소년의 행위는, 어른들에게 들켜 버렸어요.

……그래요. 아주, 아주 나쁜, '잘못된' 어른들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답니다."

◆◇◆◇◆

그 날 저녁.

네 생일 파티니까 넌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홀로 교회에서 쫓겨난 오를레우스는, 언제나 그랬듯 마을 외곽에 있는 강가에 홀로 찾아와, 외부 마을로 실을 뻗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유일한 오락의 시간.

이것이 끝나면……뭐가 즐거운지도 모를 생일 파티에서, 방긋이 웃으며 주변 사람에게 맞춰 줘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 찾아오게 된다. 그러니, 이 고통의 분만큼, 먼저 즐겨 두자는 생각에, 평소 즐기던 '인형 놀이'보다 더욱 가열찬 놀이를 했다.

그렇기에, 알아채는 것이 늦었다.

검은 로브를 두른, 명백하게 마을사람이 아닌 남자가, 강가를 내려와 다리 아래에 숨어 있던 자신을 향해 다가오던 것을.

알아 챘을 때엔 이미 늦었고, 오를레우스의 작은 몸은 손쉽게 벽에 몰린 채, 한 팔에 의해 들어올려지게 되었다.

'뭐, 뭐에요!?'

다리 아래에 있는 벽에 힘껏 부딪힌 오를레우스는, 갑작스레 찾아온 폭력에, 패닉에 빠진 채 남자를 바라보았다.

바라보고, 소름이 돋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남자의 눈은, 지금까지 만나 왔던 어떤 사람과도 다른, 짐승과도 같은 야만한 빛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야, 이 사람…'

창백한 오를레우스를 내려다보고, ──척완의 거한이 입을 열었다.

'요즘 이 주변에서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급격하게 늘어난 폭행 사건, 치안의 악화, 무엇이 원인인지 조사해 봤더니……꼬맹이의 장난질 때문이었을 줄이야.'

'읏……!'

'꼬맹이. 너의 그 힘, 갈고 닦기만 한다면, 이 거짓에 가득찬 세상을 파괴하기 위한 우리 《해방군》에 도움이 되겠어. 나와 함께 가줘야 겠어. 오를레우스=골.'

'시, 싫어……!'

남자가 하는 말의 의미는 절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알 수 있었던 건, 이 남자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인형 놀이'를 알고 있다는 사실.

그건, 위험하다.

이 모든 것을 마을 사람들이 알기라도 한다면, 다시금──세상이 뒤집혀 버릴 것이다.

싫었다.

무서웠다.

그 공포가, 오를레우스를 움직이게 했다.

괴뢰의 능력을 이용해, 입을 막아 버리려 한 것이다.

하지만

'소용없어. 능력끼리엔 상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물리적 접촉을 전제로 삼는 네 능력으로는, 이 발렌슈타인을 쓰러뜨릴 수는 없어.'

아무리 신경을 얽어매려 해도, 몸을 구속하려 해도, 남자의 체표면에서 실이 미끄러졌다. 몸에 실이 걸리지 않아, 접촉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저 자신을 벽에 억누르고 있는 힘이 점점 강해졌고

'강자만이 이 세상의 룰이야. 네 녀석에게 날 거부할 권리 따윈 없어. 저항할 거라면, 이대로 짓눌러 죽여버릴 뿐이지.'

갈비뼈가 뿌드득, 하고 삐걱이며, 격한 고통을 만들어냈다.

압박에 호흡이 불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용서 없는 폭력에, 오를레우스는 알게 되었다. 이 고통은, 협박일 뿐이 아니라는 것을. 이전에 자신이 친구에게 했던 행동과 같았다. 이 남자는, 자신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주, 죽이지……말아 줘…… 아직, 죽고 싶지, 않아……!'

꾸짖음을 받을 때의 부모와는 전혀 다른, 연민과 자애 따윈 조금도 없는 이 남자의 안광에 겁먹고, 오를레우스는 공포에 실금을 하며 목숨 구걸을 했다.

죽고 싶지 않다고.

죽이지 말아달라고.

필사적으로 간원했다.

이 간원에, 척완의 남자──발렌슈타인은 눈을 부릅뜨고는

'……큭큭, 하하하핫!'

아주 재밌다는 듯 웃었다.

걸작이라는 듯 웃으며, 발렌슈타인은 말했다.

'꼬맹이. 네 녀석, 설마… 자신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나?'

'……?'

발렌슈타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오를레우스는 답할 말을 잃어버렸다.

'……좋아. 마음이 바뀌었어.'

발렌슈타인은 오를레우스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꼬맹이. 네 녀석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도록 하지. 1주일 뒤, 이 마을에 다시 오겠어. 그 때, 이 마을에 살아남은 것이 너 뿐이라면, 너를 《해방군》에 넣어 주도록 하지. 하지만……혹시 네 놈 이외에 누군가가 살아있다면, ──네 놈을 포함해서'

빈손에, 거대한 검 형태의 디바이스를 현현.

그걸 가볍게 휘둘러

'몰살시켜 버리겠어.'

석조 다리를 양단시켜 버렸다.

'으읏───……!'

모래먼지와 물방울을 튀기며 붕괴하는 석조 다리.

그 파괴에, 오를레우스는 이해하게 되었다.

몰살.

눈앞의 남자는, 그걸 실행해 낼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 남자에게선, 도망칠 수 없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마을의 자경대원들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도, 누나도, 틀림없이 무리.

하지만

'그, 그런 건……고를 수 없어…, 흑.. 고를 수 없어요……!'

모두를 죽여 자신만 살아남는 것도, 모두와 함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전자는 지금껏 받아 온 교육이, 후자는 공포가, 그것을 거절하고 있다.

아직 어린 아이에게 줄 선택이 아니다.

하지만

'후후. 그렇지는 않을걸.'

오를레우스의 탄식을, 발렌슈타인은 한 번 웃음으로 흘려넘겼다.

'단언하지. 네 놈은 틀림없이 이쪽에 올 거야. 접촉하기 전에 조금 조사해 봤다만……흔치 않다고. 아무 부자유 없는 가정에서 태어나, 사랑받고 자랐음에도, 이런 비뚤어진 부분을 끌어안고 있는 녀석은 말이지. ……넌 태어날 때부터 순수한 악.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사악 그 자체니까.'

'흑, 너무, 해……'

'착각하지 마. 난 널 구해주려고 하는 거야.'

'……에?'

'이 1주일간, 잘 생각해 보도록. 널 죽이려 하는 게 누구인가. 그것이, 나인가. 그들인가. 생각해 보면, 답은 곧바로 나올 테지. ──반드시 말야.'

◆◇◆◇◆

"──그렇게 말하고, 《척완의 검성》 발렌슈타인은 소년 앞에서 모습을 감췄답니다. 하지만, 그는 1주일 뒤, 반드시 돌아올 거에요. 소년은 처음으로 다가온 죽음의 공포에 몸을 떨며, 달려 나아갔어요.

무엇을 위해서?

도망치기 위해서?

아니. 모두를 도망치게 하기 위해서.

가족을 사랑하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을 기쁨으로 삼는 것. 그것이 '올바른' 행위라고, 지식으로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마침, 오늘은 소년의 생일 파티가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벌어지는 날이었어요. 소년은 아주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마을 사람 모두가 참가하는 파티였지요.

말하기엔 딱 좋은 타이밍이었어요.

……하지만, 갑자기 모두가 있는 곳에 이런 말을 꺼내게 된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놀리거나, 반대로 패닉이 벌어질지도 몰라요.

다행히 유예는 1주일이나 있어요. 어른들한테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소년은 아주 현명한 아이였기에, 파티가 끝난 뒤, 정리를 시작할 타이밍을 재어, 어른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어요. 그렇게, 소년의 생일 파티는 예정대로 열렸답니다.

마을 모두가 모여, 소년을 축복해 주었어요. 선물을 주고, 노래를 부르고, 모두 함께, 그의 생일을 마치 자신의 생일인 것처럼 기뻐해 주었어요.

'네가 태어나서 다행이야.'

'너와 함께 있는 것이 자랑스러워.'

'우리들은 행복해.'

소년의 주변엔, 인생 최대의 미소로 가득차 있었어요. 하지만, ……그 날, 소년은 미소를 짓는 것이 아주 어려웠답니다. 언제나 해 왔던 일이었음에도, 그 날만큼은 잘 웃을 수가 없었어요. 소년을 유심히 지켜보단 누나가, 이변을 알아채고 그에가 말을 걸어왔어요. 괜찮다고 얼버무렸지만, ……역시 웃을 수가 없었어요. 축복의 노래 속에서, 그걸 지워버리듯,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금 뇌리에 들려왔어요.

'이 1주일간, 잘 생각해 보도록. 널 죽이려 하는 게 누구인가. 그것이, 나인가. 그들인가.'

그래요. ……소년은 알게 되었어요. 지금까지 몰랐던 삶, 용서받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부모님이 말하는 '나쁜' 삶을 경험하고, 생생히 웃는 저 사람들과 만나, 그제야 알게 된 거에요.

자신은, ──살아있지 않다는 것을.

살아있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름 아닌, 이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왜냐면, 소년은 그들처럼 남들 앞에서 진심으로 웃을 수조차 없었으니까. 그런 것이, 보통 인간의 삶일 리가 없었지요. 소년의 주변 사람들은, 그들만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을 지켜내기 위해, '올바른' 것을 마치 절대적인 규칙이라는 듯 거짓으로 덧칠하여, 그 소년을 사랑하는 척을 하며 소년에게서 살아갈 권리를 빼앗아버린 거에요.

그 깨달음은 이윽고, 소년 속에서 어두운 절망으로 전환되어, 강한 증오로 변모되어 갔지요. 사랑한다고 말하며 자신을 죽여버린 부모가 미웠어요. 자신을 지켜주는 척하며 자신을 죽인 누나가 미웠어요. '올바름'을 이유로 자신의 웃음을 빼앗아간 자신을 향해, 여봐란 듯이 웃고 있는 이 인간들이 미웠어요.

자신이라는 존재를 배제한, 거짓에 가득찬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증오스러웠어요.

어느 틈엔가, 소년은 웃고 있었어요.

언제나 같이 있던 누나도 깜짝 놀랄 정도로, 추악한 미소로.

그런 미소로, 소년은 말했지요.

'고마워. 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야.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니까.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내 행복을 빌어 주고 있으니까. 그러니, ……난 결정했어. 오늘이라는 이 날을, 내 인생의 최고의 날로 삼기로 말이지──자! 모두 함께, 내게 인생을 선물해 주세요!"

◆◇◆◇◆

"이렇게 소년은, 마을 사람들을 망가뜨려 버렸답니다.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방법으로. 지금까지 억눌러 왔던 울분을 토해내듯이. 오늘이라는 그 날을. 자기 자신의 진정한 생일로 삼았던 거에요. 그리고 모든 것을 부숴 버린 뒤, 《해방군》에 들어가기로 했답니다. 이걸로 해피 엔딩~"

인형극이라는 형태로 자신이 '태어난 날'을 재현해 낸 오르=골은, 스텔라에게 질문했다.

"저기, 스텔라? 스텔라나 다른 사람들은 나를 '잘못된' 것이라 부정하고 있겠지만, 너희들과 나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 걸까?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려 하는 나. 자신들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올바름' 이라는, 누군가가 멋대로 만들어 낸 흉기로 나를 죽인 너희들과 말이지. 거기에, ──그렇게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은데 말야!!"

"카학!?"

오르=골이 오른손을 옆으로 휘둘렀다.

그 동작에 맞춰, 스텔라를 얽어매고 있던 실이 한 층 더 깊게 그녀의 몸에 파고들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고, 기도가 막혀, 스텔라의 안색은 검붉게 번해 가고 있었다. 스텔라는 필사적으로 목을 긁어, 실을 잡으려 했지만, 실은 그녀의 목에 깊게 파고들어 있어, 손톱이 걸릴 여지를 주지 않고 있었다.

"스텔라!!! 지금 구해줄게!!!"

이 스텔라의 궁지에, 일단 한 번 스텔라의 비명에 의해 발을 멈춘 버밀리온 연맹의 기사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시끄럽네."

" "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 "

오르=골과의 간격을 좁히려 한 찰나.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몸 여기저기가 베여나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강선에 의한 참격. ──아니, 그게 아니었다.

에델바이스가 스텔라에게 보여 줬던 것과 같은, 《마인》의 인력에 의한 현상.

《사령유희》를 발동시킨 오르=골의 전투력은, 지금까지와는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여력 하나만 따져도 스텔라를 웃돌고 있을 정도.

그런 《마인》을 상대로, 그들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징조는, 몰살의 징조. 되돌리기 어려운 운명이라면, 그 운명에 달할 과정 따윈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엄청난 실력차에서 오는 필연이, 오르=골이 쏘아내는 살기를 칼날로 만들어낸 것이다.

오르=골은 자신의 살기에 부상을 입어 자리에서 쓰러지는 병사들을, 불쾌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래. 대다수가 잘못된 소수를 처분하려 하지. 힘을 이용해 자신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유지하려 해. 그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는 녀석들 따윈 알 바 없다는 듯이 말야. 그런 행위의 모든 것들을 법이나 윤리를 이끌어 와 '올바른' 것이라 정당화시키지. 결국, '올바름' 따위, 힘 있는 자가 자신들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잘못된' 인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폭력이잖아. 발렌슈타인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대로라니까. 이 세상은 거짓에 가득차 있어. 강자가 약자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는다. 결국 그것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실이야. 선인인 척하는 녀석들도, 결국은 힘으로 잘못된 자를 학대하고 있는 거야. 그럼 나도, 힘으로 이 세상에 맞설 뿐이지. 왜냐면,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 이런 것에밖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나는,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어.

그렇지, 스텔라?

하군 학원의 모두를 위해 홀로 싸워 온, 착한 스텔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지금 싸우고 있는, 고귀한 스텔라.

그렇게나 착하고 고귀한 주제에, ──나를 구해 주지 않은 살인귀 스텔라.

나는 너나 누나처럼, 위선자를 아주 좋아해.

거짓으로 가득찬 올바름을 휘둘러 대는, 거짓말쟁이를 아주 좋아하지.

왜냐면──엉망진창으로 부숴 버렸을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야!!!"

"으읏,───"

오르=골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 스텔라를 얽어매고 속박에 더욱 큰 힘이 들어갔다. 이미 산소결핍증에 빠져 있던 스텔라는, 여기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푸르게 변한 사지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고, 눈에선 의지의 빛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이 사라질 때, 실은 살을 찢고 뼈를 끊어, 그녀의 목을 날려버릴 것이다.

그야말로, 그 일이 벌어지기 직전,

"그래도 오늘 이 순간, 네가 우리를 적으로 돌리고 여기에 서 있는 건, 네 선택이겠지."

"으읏──!?"

그 기사가, 찾아왔다.

쓰러져 있던 병사들의 위를, 쏜살처럼 날아와, 오르=골의 이마에 칠흑의 칼날을 찔러넣었다.

꿰뚫는다.

그 일격은──제 1비검 《서격》.

그 공격은 물론

"그럼 피해자가 된 것처럼 지껄이지 마. ──뻔뻔한 것도 유분수지."

《B.B》, 《흑기사》를 쓰러뜨리고, 다시금 전장에 나선 기사.

쿠로가네 잇키였다.

그는 혐오와 증오를 담은 눈으로 오르=골을 노려보며, 그리 내뱉었다. 거기에, 오르=골은 이마가 꿰뚫렸음에도, ──얼굴에 환희의 표정을 만들어냈다.

"아하  기다리고 있었어. 《낙제기사》. 그래. 널 기다리고 있었어. 쿠로가네 잇키 군."

◆◇◆◇◆

"후웃!"

뇌수를 정확히 꿰뚫었음에도 반응을 보인 오르=골에게, 잇키는 이 적이 뇌를 꿰뚫어도 쓰러뜨릴 수 없는 적이라는 것을 곧바로 판단.

오르=골이 리액션을 일으키는 것보다 빨리, 오르=골의 어깨를 발로 차 머리에서 검을 뽑은 뒤, 거리를 두었다.

"죽은 자신의 몸을 조종하고 있는 건가. 정말 성가신 능력이야."

"아하  그렇지. 잇키 군에게 있어서는 특히 말이지."

누나인 아이리스가 그렇듯, 베는 걸로는 치명상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실황으로 인해 상황은 들었어. 잇키 군이 누나에게 이길 줄은 생각도 못 했었다구. 힘들게 이겼으니, 승리자 인터뷰라도 해 볼까? 어떠신가요? 저와 똑같이 살인을 하신 기분은?"

"최악이야."

"아하  같다는 건 부정하지 않는구나."

"그건 사실이니까."

오르=골의 노골적인 도발에도, 잇키는 표정이 무너지지 않았다.

"나도, 아스칼리드 양도, 자신의 기사도를 관철하기 위해 자신의 의지로 싸웠어. 그 선택의 결말도, 책임도, 모두 자신에게 돌아오는 거야."

칼을 들고 상대했을 때부터, 각오는 굳혀 놓았다

아니, 좀 더 나아가서 말하자면…… 《마도기사》라는 인생을 선택한 순간부터.

싸움의 결말, 죽음.

자신이건, 상대이건, 그건 이런 삶을 살고 있는 한,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고통도 느낄 것이다.

슬픔도 느낄 것이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녀를 살해한 건, 나의 결단이야. 이 세상의 정의라든가, 악이라든가, 그런 거창한 이유로 얼버무릴 생각 따윈 없어. 원망할 거면 원망해. 네겐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

"……아하  그런, 잇키 군의 거짓 없는 점, 정말 싫다니까. 죽여도 별로 즐겁지 않을 것 같으니 말야."

바위와도 같이 흔들리지 않는 잇키의 정신성에, 오르=골은 재미없다는 듯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곧바로 미소를 되찾고

"하지만, 재미없어도 죽일 거야. 그걸 위해 기다려 왔으니까. 왜냐고? 너를 저 아이의 눈앞에서 죽이면, 스텔라가 아주 즐거운 반응을 보여주겠지!?"

스텔라를 구속하고 있던 오른손의 반대 쪽.

왼손을, 잇키를 향해 들어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물려, 소리를 낼 때의 동작을 취했다.

"그 자세는──"

"너도 알고 있겠지? 《살인희곡》──내 주변에 쳐 놓은 《거미집》을 확산시켜 뿌리는 광범위 공격. 처음 만났을 때엔 네 손에 의해 막혔지. 잇키 군의 《일도나찰》에 의해 말야. 하지만, 지금의 너는 누나와의 싸움으로 인해 이미 피폐해져 있지. 거기다 지금의 나는 살아 있을 때보다 더욱 강해. 자신의 몸을 걱정하고 싸울 필요가 없으니까. 지금의 잇키 군은, 과연 이 공격을 막을 수 있으려나!?"

그리 말하고, 오르=골은 손가락에 힘을 넣어

"《살인희곡》!!!!"

소리를 냈다.

그 신호와 함께, 그의 주변에 방패 삼아 펼쳐 놓았던 실 형태의 디바이스가, 영체 상태에서 현실화되어,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장력을 해방. 사방팔방으로 비산했다.

하지만, 그 실은 그저 장력에 의해 튕겨나가는 것에 지나지 않다. 수는 많지만, 모두가 직선 방향. 트릭 따위는 없었기에, 잇키의 동체시력으로 간파해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거기다 이 노블 아츠를 보는 건 두 번째.

잇키는 이미, 《살인희곡》의 사각을 눈치채고 있었다.

지면.

오르=골의 《살인희곡》은 광범위한 포화 참격을 흩뿌리는 범위 공격이지만, 힘이 분산되어 있기에, 실 하나하나에 그렇게 큰 위력이 담겨 있지는 않다. 인간을 잘게 썰 수는 있어도, 암반을 부술 힘은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흡!"

잇키는 곧바로 가까이 있던 지면의 균열 속으로 몸을 던졌다.

이곳은, 오르=골과 스텔라가 싸운 오피스 거리.

균열이나 구멍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아하! 피할 수 있겠어!?"

이 응수를, 오르=골은 예측하고 있었고

"괜찮으려나!? 잇키 군이 피한다면, ──뒤에 있는 녀석들은 산산조각이 날 거라고!!!!"

조소했다.

잇키의 결단이 가져다 줄 참극을.

둘의 주변엔 지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클레이델란트의 국민들과, 오르=골의 《인력》에 의해 부상당한 병사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살인희곡》을 막을 수단 따위는 없었다.

산산조각 나서 죽는다.

그것은, 피할 수 없다.

잇키는 그들을 내버렸다.

───내버린 걸까?

아니, 아니었다.

잇키가 그들을 지키려 하지 않은 건,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으읏──!?"

오르=골을 중심으로 모든 방위로 확산된 실의 칼날.

그 칼날의 그물이 가장 처음 닿은 사람을 잘게 썰어 버리려 한, 그 직전이었다.

오르=골의 표정이 경악에 물들었다.

《살인희곡》의 포화 참격이, 위로 빗겨나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궤도로.

막힌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쳐낸 것인가.

어느 쪽도 아니었다.

실은 미끄러지듯, 아무 저항 없이, 위로 날아갔다.

공간 그 자체가 비틀린 것이다.

그런 현상을 가능케 하는 기사는, 여기에 한 명 밖에 없었다.

"어떻게, 늦진 않은 것 같네."

그 목소리에, 오르=골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스텔라의 참격에 의해 녹아버린 빌딩 위.

작은 실루엣이, 달을 등지고 서 있었다.

"《야차 공주》──!?"

"하아아아아아압!"

한 순간이라도 잇키에게서 눈을 뗀다.

이 오르=골의 행동은, 있어선 안 될 실책이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간격을 좁힌 잇키가 오르=골의 오른팔을 잘라내어, 스텔라의 구속을 풀었다.

"치잇."

"《살인희곡》은 자신의 방패를 던지는 것과 같은 기술이지. 쓴 뒤에는 무방비해지고, 재구축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거야. 그 목 위에 올려놓은 건 그냥 장식인 건가?"

"확실히 내 전략은 빗나갔지만, 잘난 척하지 말라고!"

스텔라를 묶어 둔 실은 끊어져 버렸지만, 고작 그것 뿐이라고, 오르=골은 단정했다. 스텔라는 실의 구속에 의한 전신 골절과, 중도의 산소 결핍증으로 인해 곧바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특히, 산소 결핍에 의한 의식의 혼탁이 크다.

보통 기사라면 제대로 걷는 데에도 하루가 필요할 정도의 부상.

스텔라라고 해도 1분은 더 걸릴 것이다.

그리고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는 구태여 기습에 참가하지 않고, 전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었다.

이유는 알고 있다.

이쪽의 공격 범위를 아슬아슬한 곳까지 간파해두려 하는 것이다. 민중을 보호하기 위한 마력을 그 아슬아슬한 데까지 줄여 절약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소모되어 있다.

당연하다. 그녀가 상대한 건 《사막의 사신》. 이 세상 전체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실력자.

그녀가 얻은 승리의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을 터.

《야차 공주》는 도저히 전투와 보호를 양립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리고 그녀는 보호를 선택했다. 선택할 수밖에 없다. 오르=골과 민중의 거리가 너무나도 가까웠기에.

스텔라가 재기할 때까지, 오르=골을 상대할 수 있는 건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 한 명 뿐.

그걸 상대로, 1분.

충분에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누나와 싸우느라 모든 걸 짜낸 찌꺼기같은 남자를 잘게 썰어 버리기엔 말이지!'

오르=골은 팔을 실로 접합. 그리고 잇키를 조준하며 달려들었다.

"지금의 나는 스텔라보다도 강해. 붙잡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오르=골의 무기는 두 팔의 손가락. 그 연장선상에 뻗어 있는 실을 휘두르는 것. 지금까지 전 세계에 분산시켜 두었던 마력을 집중시킨, 실에 의한 참격.

채찍과도 같은 궤도로 종횡무진하게 나부끼며 비래하는 참격.

그 위력은, 닿는 모든 것들을 손쉽게 잘라버린다.

지반, 건물, 그 모든 것들을.

《야차 공주》가 없다면 이 자리는 벌써 피바다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여기엔 《일도나찰》을 이미 쓴 잇키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맞는다면.

조금이라도 맞는다면.

그 조금을 좁히지 못해 당한 기사가, 지금까지 대체 몇 명이나 있었을까.

"────후웃!"

"에엣!?"

잇키는 육안으로는 보기 힘든 가느다란 실의 참격을, 가볍게 회피해 냈다. 오르=골이 아무리 팔을 휘둘러 대도, 머리카락 하나 잘려나가지 않았다.

대체 어째서일까.

자신이 힘도, 스피드도, 더 상회하고 있는데.

'어째서, 손만 뻗어도 닿을 위치에 있는 적을 베어내지 못하는 거야!?'

"이게!!"

오르=골 속에, 짜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당연한 전개.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니다. 오르=골의 맹공엔, 기술도, 전략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힘과 속도만으로 실을 휘두르고 있을 뿐.

아이리스처럼 '기초'가 탄탄한 기사였다면 이것도 나름 위협이 되었겠지만, 오르=골은 전투에 관해선 완벽한 초보. 아무리 힘과 속도가 늘어난다 할지라도, 잇키에게는 닿을 리가 없었다.

《낙제기사》의 크로스 레인지.

그건 수많은 맹자조차 공략해내지 못하고 눈물을 삼킨, 《검신》의 영역이니까.

하지만, 오르=골은 그것을 당연하다고 이해할 만큼의 기량조차 없었다. 대체 어째서? 하는 마음과 함께, 분노가 이끄는 대로, 안 그래도 잡스러운 움직임이 더욱 거칠어져만 갔고, 잇키가 파고들 틈을 만들어냈다.

"읏, 아아……!?"

그 직후, 전국이 역전되었다.

잇키가 반격에 나선 것이다. 그는 오르=골의 공격력에 위축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사령유희》를 구사한 오르=골의 공격력은 확실히 엄청났지만, 잇키에게 있어 한 번이라도 먹는다면 즉사로 이어지는 공격 따위, 언제나 봐 온 것들이다.

따라서, 과잉하게 공격력이 실린 공격에도,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 거기다, 그는 이런 힘을 압도하는 싸움에 익숙해져 있다. 그는 물 흐르는 듯한 동작으로 간격을 좁히며, 오르=골의 연속 공격의 틈을 정확하게 파고들어, 움직이는 사체에 더욱 큰 손상을 가했다.

그건 곧바로 수복되어 유효타가 되지 않았지만, 싸움의 주도권은 완전히 잇키에게 기울어 있었다.

'어, 엄청나다! 완전히 저 신랑의 페이스잖아!

'저런 지근거리에서 《괴뢰왕》의 모든 공격을 간파해내고 있어!'

'《흑기사》에게도 이겼어! 너라면 쓰러뜨릴 수 있다고!!'

잇키의 분투에, 부상을 입은 채 주변에 쓰러져 있던 병사들이 고무되어 갔다. 자신들의 상식을 뒤집어 온, F랭크의 기사를 향한 기대로.

그 열랴에, 오르=골의 표정이 더욱 큰 짜증으로 인해 비틀렸다.

'대체 뭐야, 이 녀석……!'

이미 마력이라고 할 만한 마력은 남아있지도 않았다. 《일도나찰》을 썼다면, 체력도 이미 한계를 넘어섰을 터. 지금은 움직이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엉망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싸울 수 있는 것일까.

바로 옆에 있는데, 계속해서 덤벼 오는데, 잡을 수 있다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것을 인정했을 때, 약간의 식은땀과 함께, 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 날, 세상이 뒤집힌 때, 마음에 새겨진 것과 같은 감정.

──공포.

자신의 이해를 넘어선, 눈앞의 존재에 대한 공포.

오르=골이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감정.

"까불지 마!! 잔재주 좀 잘 부리는 떨거지 주제에!!!"

오르=골은 그 잡념을 떨쳐버리듯, 바닥이 부서질 정도로 오른발을 굴렀다.

그리고, 발가락을 통해 지면에 거미집 형태로 실을 뻗었고

"《회전무대》!!"

거미집을 뒤틀어, 자신을 중심으로 반경 10미터의 지면을 '돌려'버렸다. 갑자기 발판이 옆으로 미끌어져, 바닥에 넘어지는 것을 노린 전략.

그것도, 잇키 외의 기사에게나 통하는 전략이다.

"크윽!?"

잇키는 한껏 단련된 체술로, 움직이는 발판 따위 어렵지 않게 버텨낼 수 있다. 움직이는 발판을 달려 나아가며, 한 손을 바닥에 짚고 있는 무방비한 오르=골에게 달려들어, 참격을 가했다.

기습 속에서도 잇키의 페이스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당당한 모습에, 주변의 환성도 더욱 커져만 갔따.

하지만

'안 돼……!'

이 싸움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던 스텔라의 안색은, 창백하게까지 보였다. 산소 결핍에 의한 빈혈 때문만이 아니다.

초조.

그녀는 알고 있다. 이 싸움이 가져다 줄 결말을. 확실히 기술 면으로 보면 잇키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말, 이 남자의 저력에는 한없이 경탄을 느낄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굉장한 남자라 하더라도,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는 없다.

오늘, 잇키는 이미 《흑기사》에게 《일도나찰》을 써 버렸다. 자신의 마력, 체력, 그 모든 것들을 쏟아붓는 와일드카드를, 이미 빼든 것이다.

지금 싸우고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그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그만큼 엄청난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움직임이 나빠진 건……피로 탓만이 아니야……!'

쿠로가네 잇키라는 남자를 누구보다 보아 온 스텔라이기에, 알 수 있다.

모두가 칭찬하고 있는 잇키의 움직임이──나빠진 것을.

완급을 가하여 얼버무리고 있긴 하지만, 몸 전체의 움직임이 너무도 느리다.

피로 때문이 아니다.

명백하게, 신체의 최대 스펙이 '낮아져' 있었다.

아마도, 최대 스펙을 깎아 체력을 짜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무모함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리가 없다. 곧바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버릴 것이다.

지금의 잇키는, 다 타기 직전의 양초와 같은 것이다.

'움직, 여……!'

1분, 너무도 늦은 시간.

스텔라는 필사적으로 전신의 기능을 되찾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끊어진 의식의 끈을 다시 잡아두는 것은, 《용의 대사》를 쓰고서도 쉽지 않았고

그 때는 찾아왔다.

"거 짜증나네! 왜 그렇게 쓸데없는 저항을 계속하는 거야! 그딴 이쑤시개로 조금씩 찌른다 해 봤자 넌 날 부술 수 없어! 그런 건 너도 알잖아!"

짜증을 부리는 오르=골에게, 잇키는 이렇게 답했다.

"그래. 알고 있어. 그러니, ──난 이기지 않아도 돼."

그리고

"스텔라! 내 말 들리지! 잘 들어 줘!

그는, 이어 말했다.

"난, 여기서 죽을 거야!!"

"……에.."

"스텔라는 이미 이 싸움의 결말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 유감이지만, 난 그를 쓰러뜨릴 수 없어! 쓰러뜨릴 수 있는 수단이 없어! 내게 가능한 건, 스텔라가 재기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것뿐이야! 솔직히 1분이 아슬아슬할 정도밖에 벌어주진 못하겠지만, 스텔라라면 그 시간만으로도 어떻게든 일어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어!"

그러니 그 1분만이라도, 무슨 짓을 해서라도 벌어 두겠다, 고 그는 선언한 뒤

"어제의 약속,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잊지 말아줘! 나는! 스텔라!! 너와 만나 정말 행복했어!!"

오르=골의 맹공을 피하며, 잇키는 크게 외쳤다.

지금 자신 속에 있는, 감사와 기쁨. 그 모든 것들을.

"그 날, 하군 학원에서 너와 만나, 겨루고, 사랑을 나누고──그렇기에 난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어!! 나 혼자였다면 몰랐던 것들, 알 수 없었던 것들, 그 모든 것들을 스텔라에게서 받았어! 스텔라와 만난 그 날로부터 모든 것들을, 나는 무엇 하나 후회하지 않아! 이 자리에 서 있는 오늘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나의 보물들이야!!!"

자신이 그것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느끼고 있는지를.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입가에는 즐거운 미소까지 띤 채로. 마치, 그 날의 모든 것들을 떠올리듯이.

그리고

"그러니, 스텔라! 이 다음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와 만나지 말았으면 했다는 후회를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해! 잘못 생각했다고 해도 그런 생각은 갖지 말아 줘! 그 날 너와 만나 강해진 건, 나뿐만이 아닐 테니까!!"

그 기쁨을 느끼고 있는 건, 스텔라도 같을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러니, 하고 잇키는 남은 모든 힘을, 《음철》을 쥐는 손에 불어넣어

"보여 줘! 내게, 나를 사랑한 기사가 얼마나 강한지를!! 나와 만나 강해진, 네 힘을!! 그걸 위한 길은, ────내가 만들어 두겠어!!!"

맞선다.

약속한 1분까지, 남은 시간 5초.

사력을 다해,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

그런 잇키의 등 뒤로

"────헛소리, 하지 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스텔라가 피를 토하는 듯한 소리로 포효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저 남자는!'

태어나 처음이었다.

이렇게나 분노를 느낀 적은.

분노로, 머리가 돌아 버릴 것만 같았다.

인정할 수 없다.

지금 저 남자가 입에 담은 모든 말들. 그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야, 약속했으니까.

반드시 살아남겠다고.

'약속, 했잖아!!!'

"움직여!! 움직여!! 움직이라고!! 움직이란 말야!!!!!!!"

부들부들 떨며 의식에서 떨어져 나간 사지에, 필사적으로 힘을 넣으려 했다.

"움직이라고!! 제발!! 제발 움직여 줘!!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잇키가!!"

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어떻게든 움직이기 시작한 팔로 허벅지를 아무리 때려 봐도,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감각이, 돌아오질 않았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아앗!!"

스텔라는 눈앞에서 벌어진 수세의 변화에, 비명을 내질렀다.

전투 개시로부터 50초가 지난 지금, 잇키의 움직임이 노골적으로 나빠졌기 때문이다. 대미지를 받은 게 아니다. 애초에 자식 작용에 의한 에너지 생산은 긴급 수단. 그런 방법으로 《괴뢰왕》 오르=골을 상대로 온힘을 다해 전투를 벌인다는 건, 무리인 것이다. 그런 무리를 어떻게든 통하게 만든 건, 모두 잇키의 집중력이 굉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찾아왔다.

연료 고갈.

격한 페인트와 완급으로 오르=골을 환혹시키고 있던 잇키의 다리가, 돌이 되어 움직이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 틈을, 오르=골은 놓치지 않았다.

공격해 들어온다.

왼손의 수도가, 잇키의 심장을 찌르려 한다.

"!!"

하지만, 오르=골의 손에 먹잇감이 잡힌 감촉은 느껴지지 않았다.

꿰뚫었을 터인 잇키의 모습이 안개처럼 사라졌고, 왼손은 잇키의 가슴팍 앞에서 멈춰 있었다.

간격 판단의 오차.

아니, 간격이 오인된 것이다.

제 4비검 《신기랑》.

완급을 준 스텝으로 적에게 잔상을 만들어내, 간격을 오인시키는 기술. 다리가 움직이지 않게 되기 직전에, 잇키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환혹을 만들어낸 것이다. 거기에 놀아난 오르=골은 얼굴을 찡그렸지만, 다소의 오인 따윈 상관없다는 듯 왼손을 뻗은 위치에서 옆으로 휘둘렀다.

그렇게, 실에 의한 참격을 흩뿌렸다.

하지만, 이 찌르기에서 참격으로 이어지는 콤비네이션은 잇키에게 이미 읽혀 있었다.

오르=골이 지닌 무장, 공격수단, 낮은 숙련도. 그 모든 것들을 미루어보아, 이 콤비네이션이 나올 것은 손쉽게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잇키는 모든 것이 고갈된 몸이 움직이지 않게 되어 버리기 전, 이미 이 공격을 받아낼 수 있는 위치에 음철을 들고 있었다.

받아낸다.

세로로 들린 검은 칼날로, 다섯 가닥의 참격을.

스텔라를 구속시킬 정도의 힘은, 이완된 잇키의 몸을 손쉽게 지면에서 들어내버렸다.

오르=골의 힘을 이용하여, 잇키는 뒤로 날아간 것이다. 이 순간, 잇키와 오르=골이 싸운 뒤로 1분이 경과. 쿠로가네 잇키는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멋들어지게 《괴뢰왕》 오르=골을 상대로, 선전했던 대로의 시간을 벌어낸 것이다.

그런 잇키의 기개에, 스텔라도 응했다.

《용신빙의》의 회복력으로 부서진 사지를 재생시킴과 동시에, 용의 심폐기능으로 심신의 혈류를 가속. 산소를 온몸에 불어넣어, 회복에 하루는 족히 걸릴 기능장애를 순식간에 극복. 자신이 낼 수 있을 최고속도로 운동기능을 되찾고, 잇키에게 가세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땅을 박찼다.

"잇────"

오르=골의 오른팔이 잇키의 가슴을 꿰뚫은 건, 그와 완벽한 동시에 벌어진 일이었다.

"──────"

오르=골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휘두른 왼손의 참격이 《음철》에 막힘과 동시에, 잇키의 몸을 실로 감아 공격을 막은 반동으로 자신의 간격에서 벗어나려 한 잇키의 책략을 저지.

자신 쪽으로 잇키를 끌어당겨, 오른손 수도로 잇키의 가슴을 꿰뚫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잇키의 체내에 실을 뻗어낸 다음, ──뽑아 버렸다.

그 직후, 잇키의 가슴이 내부로부터 터져버렸다.

실에 감긴 갈비뼈가 흉근을 뚫고, 내장이 피와 함께 터져나왔다.

그건 인간으로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파괴였고,

"사랑해, 스텔라."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는, 피와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자신은 이 결말에 후회하지 않는다는 듯, 자랑스러운 미소를 보여준 채로.

◆◇◆◇◆

"…………………아하"

자신의 발치에 쓰러진 잇키.

퍼져 나아가는 피웅덩이, 여기저기 비산된 고기조각들.

"아하  아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참상을, 《괴뢰왕》 오르=골은 조소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버텨냈지만, 결과는 같았네! 꼴사납게 발버둥 친 끝에 이 꼴이라니! 이 꼴이야! 이 꼴이라고!! 아하  아하  아하!!"

낄낄 웃으며, 발치에 흩뿌려진 장기를 짓밟았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흩뿌려진 모든 장기를 하나하나 짓밟았다.

그리고, 끝내는 밑으로 축 처진 잇키의 후두부에 발을 올려놓고

"자. 재밌게 봤어, 스텔라?"

이미 늦은 스텔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눈앞에 벌어진,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스텔라의 얼굴엔 모든 감정이 사라져 있었다. 이해하게 되면, 정신이 버텨낼 수 없었기에. 방어본능이, 일시적으로 그녀의 감성을 폐쇄시켜 버린 것이다. 그녀는 이미 그저 고깃덩어리가 되어 버린 잇키에게,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걸어간 뒤, ……곁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아하  불쌍하네. 잇키 군, 이런 모습이 되어 버리다니."

그런 도피를, 눈앞의 사악한 존재가 그냥 두지 않았다.

"스텔라가, 내가 죽은 뒤에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아채고, 기습을 받아 버린 미련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그가 죽을 일도 없었을 텐데 말야. 아니, 좀 더 나아가자면, 너 따위와 만나지 않고, 그의 분에 맞는 F랭크인 채로 살아갔다면, 이런 곳에서, 이런 개밥 같은 처참한 사체가 되는 일도 겪지 않았을 텐데 말야!"

들이댔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듯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의 측면만을 강조하며, 스텔라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그리고

"전부, 전부! 모두 다! 네 탓이야! 스텔라, 네가 잇키를 죽인 거야!!!!"

스텔라의 눈앞에서, 잇키의 머리를 밟아 부숴버렸다.

"잇………………키……………………, 아...."

부서지는 두개골.

비산하는 뇌수.

그것이, 뺨을 적시고

뚝.

스텔라의 제정신을 가까스로 지켜내고 있던 마지막 실이, ──끊어졌다.

"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직후, 절규와 화염이 스텔라에게서 터져나왔다. 하늘마저 불태우는 작열과, 듣는 자의 마음마저 찢어질 정도의 비탄.

그것은 정신의 단말마.

제정신으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절망에, 스텔라의 정신이 무너져갔다.

그리고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정신의 붕괴는, 서서히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탄에 물든 절규는, 인간의 것이 아닌 포효로 바뀌어갔고, 광열 속에 있던 스텔라의 실루엣이, 서서히 인간의 형태를 잃어 가기 시작했다.

하늘을 향해 치켜든 머리에선 한 쌍의 뿔이 생겨났고, 등에선 혈관이 드러나 있는 날개가 돋아났으며, 꼬리뼈를 통해 기다란 꼬리가 생겨났다.

《각성초과》.

《각성》에 의해 변질된 사람의 영역을 넘어선 혼에, 육체 쪽이 끌려가버린 탓에 인간성을 잃게 되는 현상.

그것이, 정신의 붕괴에 의해 유발되어 버린 것이다.

"……크읏!"

이 변모에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는, 창백한 표정을 지었다.

《각성 초과》는 잠재능력의 개화 따위와는 다르다. 자신과는 다른 존재로 변질되어 버리는 현상인 것이다. 이성을 운운하며 다룰 수 있는 힘이 아니다. 그녀는 그것을 몸소 경험해봤기에

'위험해!! 이런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저 열량이 폭주한다면!!'

"도망쳐!!!!! 조금이라도 멀리 도망치는 거야!!!!!"

그리 외쳐, 자신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피난을 명했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전장의 시야 한 곳을 메우고 있는 클레이델란트의 국민들. 그들을 모두, 거기다 부상을 당한 병사들이 도망칠 수는 없다는 것을.

한 편, 가장 먼저 스텔라의 열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리를 둔 오르=골은, 그 광란에 손뼉을 치며 환희했다.

"아하! 아하! 아하! 좋아! 아주 좋아, 스텔라!! 그 비명을 듣고 싶었어! 그 비탄을 보고 싶었어! 그 절망을 느끼고 싶었어!! 아아, 달콤해……! 맛있어……! 녹아내리는 것 같아……참을 수 없어! 이런 감정을 맛보여 주다니, 인생이란 정말 즐겁고 자극적이란 말이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남자가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본 스텔라의 비탄. 스텔라가 망가져 가는 걸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버밀리온의 국민들의 절망.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 필사적으로 생각하는 네네의 초조.

지금 막 폭발하려 하는 광열에서 도망치려 하는 민중의 혼란.

대기를 진동시키는 소란을 통해 전해져 오는 감정의 혼돈.

그 몯느 것들이, 오르=골에게 있어 참을 수 없는 유열이 되었다.

하지만

"하지만……아아, 하지만! 아직이야! 아직 부족해! 너희들은 언제나 나보다 더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었잖아! 나도 너희처럼 인생 최고의 웃음을 지어 보고 싶단 말야!!"

그 때,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을 때의, 마을 사람들처럼.

아직 자신은 그렇게나 즐겁게 웃어본 적이 없다.

그런 건 불공평하다.

인간이란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으니, 자신도 그런 빛나는 최고의 미소를 지을 권리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이런 걸론 부족하다.

"자, 좀 더 울어 봐! 더욱 화내 봐! 더욱 절망에 빠져! 그렇게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는 거야! 그래, 스텔라는 자신이 지키려 했던 모든 것들을 자신의 손으로 부숴 버리는 거야! 그 희극이야말로, ──이제부터 벌어질 파괴와 혼돈의 시대의 개막에 어울리겠지!!!"

더욱 큰 고통을. 절망을.

그걸 바라며, 오르=골은 실을 뻗었다.

그녀를 조종하여, 마지막 마무리를 짓기 위해서.

이제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꼴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그럴 생각이었다.

"■■■■■■■■■■■■■■■■■■■■■■■■■■■■■■■■■■■■■■■■■■■■■■■■■■■■~~~~~~~~~~~~~~~~~~~~~~우우우우우우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크읏──!?"

하지만, 오르=골의 실은 스텔라에게 닿지 못했다. 실로 묶어두기 위해 실을 뻐ㄸ은 찰나.

스텔라가, ──자신의 머리를 땅에 처박았기 때문이다.

"후욱, 후욱... 후욱........"

그 뒤, 그녀는 분노를 부딪히듯, 지면을 향해 이마를 처박은 채 몇 번이고 땅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냉정함이 결여된 행동.

《각성 초과》에 의해 자아를 잃은 것일까. 자신이 사랑하던 남자를 눈앞에서 잃었기에, 그건 어쩔 수 없을 터.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뭔가가 이상하다. 냉정함을 잃은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방금까지 임계 직전까지 달해 있던 광열이, 급속도로 그 기세가 죽어 가며, 빛과 열을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약간 기대하던 반응과는 다른데."

여기에, 오르=골은 얼굴을 찡그렸다.

감정이 이끄는 대로 폭주하여, 주변 사람들을 전부 불태워버릴 것을, 그는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스텔라의 심경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되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스텔라의 지금 모습은 도저히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검게 변모된 피부. 여기저기 빛나는 비늘과도 같은 문양. 날개. 꼬리. 커다란 뿔──

모든 것이, 《각성 초과》에 의한 변질이었다.

하지만, 폭주에 다다르지는 않았다.

"잇키 군은 스텔라를 지키기 위해 무모한 싸움을 벌이면서까지 죽어버린 거라구? 네 탓에 목숨을 잃은 거야. 그 분노에 몸을 맡겨 온 힘을 다해 날뛰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어? 절규와 함께 용서를 구할 생각은 안 드는 거야? 스텔라는 의외로 박정한 사람인걸?"

조금만 더 나아가면 된다는 듯, 오르=골은 말의 흉기를 다시 한 번 들이댔다.

그 직후

"혼자 멋대로, 헛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피를 토하는 듯한 목소리로, 스텔라는 외쳤다.

괴물의 포효가 아닌, 그녀의 목소리로.

◆◇◆◇◆

"혼자 멋대로, 헛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그 절규는, 오르=골을 향한 답이 아니었다. 이미, 스텔라에겐 오르=골의 목소리 따윈 들리지조차 않았으니까.

그럼, 그녀는 누구에게 외치고 있는 것인가.

누구를 향해 분노하고 있는 것인가.

그건 눈앞에서 무참히 죽어 버린, 자신의 연인이었던 남자에게.

"거짓말쟁이……!"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 눈에선,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슬픔과, 불을 뿜을 것만 같은 분노.

그런 눈으로, 무참한 모습으로 변해 버린 잇키의 잔해를 노려보며

"살아남을 거라고 말했으면서! 내 곁은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을거라고, 그렇게 말했으면서!!"

책망.

힐문.

그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실을.

"잇키는 거짓말쟁이야!!"

몰랐다.

이 세상에, 이렇게나 괴로운 일이 있다니.

이렇게나 괴로운 사실이 있다니.

가슴 속에 흘러넘치는 슬픔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도저히 포용할 수 없는 괴로움에,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아니, 차라리 숨이 멎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차라리 가슴이 찢어져,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편할까.

잃어버린 것. 돌이킬 수 없는 것.

그 모든 것들을 잊을 수 있다면……얼마나.

"크흑~~~~~~~~~~~~……!"

하지만

──나와 만났던 것을 후회하지 말아 줬으면 해.

잇키는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다.

자신과 만난 것을 자랑스러워 해 달라고.

사랑해 달라고.

그리 선언하고, 그 남자는 이런 괴로움을 자신에게 맡기고 떠났다.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 용서할 수 없었다.

그렇게나 사랑했으면서, 홀로 남은 자신이 대체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까.

그걸 상상하지 못할 남자가 아니었음에도.

사랑해 줄 것이라면, 살아남아 줬으면 했다.

자신을 내버리고, 살아남아 줬으면 했다.

죽지 말아 줬으면 했다.

"나를 지키고 잇키가 죽는다고……! 그런 걸 내가 바라지 않을 것이란 건, 잘 알고 있었을 거면서!!"

그런 자신의 바람을, 마음을, 그 남자는 알고 있었음에도 무시한 것이다.

처음이었다.

한 사람에게, 이렇게나 큰 분노를 느낀 적은.

"용서 못 해……! 절대로 용서 못 해!! 후회하지 말라고!? 네가 하는 말 따위 누가 들을 것 같아!? 당연하지! 내 바람을 먼저 짓밟은 건 잇키 쪽이니까! 왜 나만 이렇게 네 바람을 이어 가야만 하는 거냐고! 웃기지 말란 말야!!!!!!!!"

그렇다.

잇키의 바람 따위, 알 바 아니다.

이루어 줄 마음 따위, 조금도 없다.

그러니

"내가 잇키와 만난 때부터 오늘까지 겪어 온 모든 것들을 후회하지 않는 건, 나의 의지야!!"

"으읏──!?"

스텔라는 잇키의 잔해에서, 경악에 굳어 있는 오르=골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도.

숨막힐 정도로 슬퍼도.

그래도, 버리지 않는다. 그래도, 잊을 수 없다.

모든 것이 찢어질 것만 같은 마음을 가슴속에 담고, 자리에서 일어나 싸운다는 선택을, 그녀는 한 것이다.

잇키가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앞에 두고도, 오늘 이 날까지 겪어온 모든 것에 긍지를 가졌듯이. 잇키와의 만남, 경쟁, 사랑. 그 모든 시간들은, 그녀에게 있어, 자랑스러운 것들이니까.

잘못 생각한다는, 그런 일은 죽어도 없을 테니까!

"바라던 대로 보여 주겠어……! 그 날, 잇키와 만난 날로부터 강해진 나의 힘을! 네 뒤를 쫓기만 해 온 스텔라 버밀리온의 힘을!! 잇키 따위 곧바로 추월해 주겠어! 그리고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더욱 강해져서! 내 곁을 지킬 수 없게 되어 버린 걸! 분명히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

그리 말하고, 스텔라는 검을 들어 전투 자세를 취했다.

쿠로가네 잇키가 목숨을 걸고 열어 준 길을 지나가기 위해.

그런데, 그 때였다.

"오라버니는 당신을 지키고 싸웠는데, 참 잘도 그런 말을 하시네요."

"────에.."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불쾌감이 드러난 목소리가 들러온 것은.

이 자리에 있을 리 없는 사람의 목소리를, 스텔라는 무심코 시선으로 좇았다.

거기엔

"뭐, 하지만 자기 힘으로 재기한 것만큼은 솔직하게 칭찬해 드릴게요. 여기서 자신과 오라버니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을 지껄였다면, 또 다시 혼을 내주려 했는데 말이에요. 교내 선발전 때처럼 말이죠."

빛에 반짝이는 은발을 나부끼는 몸집 작은 소녀, 《심해의 마녀》 쿠로가네 시즈쿠가 서 있었다.

◆◇◆◇◆

"오랜만이에요, 스텔라 양. 잠시 못 본 사이에 엄청 타셨네요. 요즘 들어 야맘바 스타이라니,  유행에 한창 뒤처진 건데 말이죠."

너스레를 떨고 있는 시즈쿠의 모습에, 스텔라는 눈을 부릅뜨며 놀랐다.

"어째서, 네가 여기에……!?"

"소국인 버밀리온 내엔 치유술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적을 거라 판단하고, 《연맹》 본부가 가맹국에 의료반 증원 요청을 보내 왔어요. 사실은 《백의의 기사》가 오실 예정이었지만, 일본 국내도 나름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기에, 제가 대리로 왔어요."

물론 절 보내지 않았어도 제가 지원했을테지만 말이죠. 하고 답하며 시즈쿠는 스텔라의 곁으로 다가왔다.

거기엔……잇키의 망해가 널려 있는 앞이기도 했다.

"에이, 누군가 했더니. 아마네 군한테 걸레짝처럼 당해 버렸던 잇키 군의 동생이잖아? 아하  이거 참. 너도 참 엄청난 타이밍에 찾아오는구나."

오르=골의 여기저기 금이 간 얼굴이, 꺼림칙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보는 바와 같이, 네 소중한 오라버니께선 지면의 얼룩이 되어 버렸는데, 기분이 어때……! 방금 스텔라가 그랬던 것처럼 절규하면서, 내게 좋은 소리를 들려 달라고!"

오르=골은 히라가 레이센을 통해 시즈쿠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녀의 오빠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쏟고 있는지도.

하지만

"정말, 매번 무모한 행동만 하시고. 못 말릴 사람이라니까요."

"……!"

시즈쿠는 발치에 있는, 자신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남자의 잔해를, 아주 자애로운 눈으로 내려다볼 뿐이었고, 이성을 잃지 않았다.

거기다

"뭐, 그런 사람이니 제가 좋아하게 된 거지만요. ……정말, 서로 마음고생이 끊이질 않네요. 스텔라 양."

스텔라를 향해 어깨를 으쓱하며, 곤란한 듯한 미소를 보였다.

그 눈엔, 약간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무 허식 없는 애정만이, 온화한 빛을 내비치고 있었다.

"시즈, 쿠……? 어떻게, 그렇게……"

이 시즈쿠답지 않은 태도는, 오르=골만이 아닌 스텔라마저도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평소의 그녀라면 이 순간 당장에라도 오르=골을 향해 달려들었을 텐데.

그렇다. 그것이 바로, 시즈쿠라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인식.

다름 아닌, 시즈쿠 본인도 그리 생각하고 있다.

조금 전의 자신이었다면, 오빠의 죽음에 절규하며, 분노에 이성을 잃었을 것이라고.

──그렇다, 칠성검무제 준결승전.

《흉운》 시노미야 아마네의 《과잉한 여신의 총애》에 의해 잇키가 죽음에 이르렀던 그 때처럼.

그렇기에

"스텔라 양이야말로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에요? 오라버니가 절 내버려두고 돌아가신다. 그런 바보같은 일을──두 번이나 용납할 것 같아요? 이 제가?"

"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곤혹에 빠져 있는 가운데, 한 발짝. 스텔라에게서 앞으로. 잇키에게 더욱 가까운 곳으로, 시즈쿠는 걸어 나아갔다. 그의 피로 웅덩이가 된 곳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뒤, 눈을 감았다.

떠오른 건, 그 날의 공포와 후회.

──오라버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오라버니가 집을 떠났던 그 날, 그렇게나 후회했으면서.

이제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고, 오빠의 곁에 쭉 있겠다고 다짐했으면서.

그저 눈물을 흘리며, 분노에 길길이 날뛰며, ……키리코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막을 수 없었다.

멀어져가는, 오라버니의 뒷모습을.

……그런 꼴사나운 모습은, 이제 없다.

그 때는 키리코가 마침 있어 주었기에, 그저 운이 좋았을 뿐. 자신의 오라버니는 무모한 짓을 하는 사람이다. 똑같은 일은 분명히 찾아올 것이다.

유사시에, 사신의 유혹에서 그를 지켜내지 못하면, 자신은 언젠가 또 다시 오라버니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러니, 키리코가 있는 곳을 찾아가 가르침을 갈구했다. 자신의 몸을, 멀쩡한 의식인 채로 조각내는 격통을, 이를 악물어 참으며 《백의의 기사》란 이명을 지닌 세계 최고 수준의 치유술을, 말 그대로 몸을 바쳐 가며 그 지식과 기술의 진수를 흡수하였다.

이제, 그 때의 울기만 할 뿐인 자신과는 다르다.

눈앞의 쿠로가네 잇키는……이미 죽었다.

불보듯 뻔한 사실.

그건, 시즈쿠도 알고 있다.

어떠한 치유술로도, 이 자리에 그 약사 키리코가 온다 해도 이미 늦은 현실.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완전한 형태로 죽은 자를 소생시키는 건, 아직 미답의 영역이었기에.

잇키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그것이 결정사항.

그것이 섭리.

그것이 운명.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건가.

무엇이든간에, 자신에게서 오라버니를 빼앗아간다니, 용서할 수 없다. 자신이 그것을 용납하는 건, 이 세상에서 단 한 명 뿐. 자신의 오빠를 진심으로 미소짓게 해줄 수 있는, 단 한 여자 뿐이다.

자신에게서 오라버니를 빼앗아가려는 어리석은 신이 있다면, 신마저 죽여 보이겠다.

운명이 자신에게서 오빠를 빼앗아가려 한다면, 그 하찮은 운명 따위, 부숴 버리겠다.

불가능할 리가 없다.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 해도, 쿠로가네 시즈쿠라면.

──그 이유는, 쿠로가네 잇키의 행복이야말로, 어떠한 절망스러운 현실이 놓여 있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쿠로가네 시즈쿠의 기사도이니까!

생생유전. 그 모든 것은 사소한 것일 뿐.

자신의 사랑은, 운명조차 뛰어넘는다.

"《청색세계》"

◆◇◆◇◆

주문의 말과 함께, 시즈쿠의 온몸에서 마력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눈이 타들어갈 것 같은 강한 빛이 아닌, 따스하고 부드러운 푸른 빛.

이윽고 그 빛은 시즈쿠의 등에, 천사의 날개처럼 집속되었다. 시즈쿠가 그 날개를 천천히 펼쳤고, 빛나는 깃털이 잇키의 망해를 향해 떨어졌다.

그 순간,

깃털에 닿은 잇키의 몸이 푸른 임광으로 분해되었다. 그 현상을 본 스텔라는, 시즈쿠의 의도를 알게 되었다.

"이건……잇키에게 《청색윤회》를……!"

"네. 《청색세계》는 《청색윤회》를 타인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시킨 노블 아츠에요. 이 노블 아츠를 이용하여, 오라버니를 일단 세포 단위까지 분해한 다음, 재구축시킬 거에요."

"그런 게, 가능해!?"

"그게 불가능하면 제가 이렇게 냉정하게 있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건, 아주 설득력 깊은 말이었다.

그렇다. 시즈쿠는 진심으로 잇키를 소생시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알겠어요, 스텔라 양? 오라버니는 반드시 제가 살려낼 거예요. 그건 저 이외엔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리고 당신에겐 당신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을 거예요."

시즈쿠는 그리 말하고, 감은 눈을 뜬 다음, 그 시야 너머에 있는 '사체'를 노려보았다.

"저 녀석의 머리, 클레이델란트의 왕자님에 의해 완전히 부숴져버린 것 치곤, 원형을 꽤 많이 되찾았죠. 하지만 스텔라 양에게 당한 몸 쪽은 잔해나 쓰레기로 보충한 부분이 많아요. 제 《청색세계》는 치유술이지만, 저 쓰레기 자식의 《사령유희》는 조각난 몸을 이어붙여 억지로 움직이게 만드는 노블 아츠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재가 된 몸까지는 움직일 수 없다, 그런 말이지?"

그건 스텔라 자신도 지적받지 않고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아무리 《괴뢰왕》이라 해도, 잿더미까지 조종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스텔라라면 《사령유희》를 공략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세포 하나 남기지 않고, 전부 불태워 버리면 되는 것.

"그렇기에 잇키는, 자신의 목숨을 내버리면서까지 내게 길을 물려준 거야……"

"거기까지 잘 알고 계씨다면, 얼른 저 쓰레기를 치워 주고 오세요. 거슬리니까요."

그리 말하고, 시즈쿠는 다시금 눈을 감은 뒤, 소생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잇키의 망해가 서서히 분해되었고, 임광이 되어 주변을 떠다니고 있었다. 솔직히, 그 상태에서 소생이 정말로 가능한지는 불안했다. 하지만, 스텔라는 그 불안함을 억눌렀다.

억누를 수 있었다.

시즈쿠가 믿음직한 인물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녀라면, 잇키를 되살릴 수 있다.

반드시.

그러니, 자신도 자신이 가능한 일을, 그가 맡긴 일을 해내도록 하자.

그걸 위해선 일단

"모두들────────!!!!!!!!!!!"

스텔라는 외쳤다.

이 전장에 모인 버밀리온과 연맹의 기사들, 그 모두를 향해서.

"이제부터 난 이 쓰레기를, 온 힘을 다해 쓰러뜨릴 거야! 거기까지 내가 신경쓸 수는 없으니까! 모두 함께 모두를 지켜 줘! 움직이지 못하게 된 사람에겐 손을 뻗어 줘! 누구도 죽지 말아 줘! 나도, 모두도, ──그리고 잇키도! 모두 살아서 버밀리온으로 돌아가는 거야!!"

『공주님……! 제정신을 되찾으셨어!』

『그, 그래! 맞아!! 우리들의 스텔라가 아직 싸우고 있어! 모두들! 아직 포기하지 마!!』

『일어설 수 있는 녀석은 앞으로 나와! 부상자와 클레이델란트의 국민들을 지켜내는 거야!』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스텔라의 고무에, 버밀리온의 병사들을 중심으로 군대가 질서를 되찾았다. 블레이저들은 모두의 방패가 되어 주기 위해 앞으로 나섰고, 오르=골을 중심으로 반경 30미터를 둘러싼 원주 형태로 전개. 그에게서 클레이델란트의 국민들을 지키기 위한 방벽을 펼쳤다.

한 편, 비 블레이저들은 부상당한 자를 데리고 방벽 뒤로 물러났고, 아직 패닉에서 벗어나지 못한 클레이델란트 국민들을 통제하여, 피난 유도에 나섰다.

깔끔한 연대. 정확한 행동.

거기엔, 이미 공황도 동요도 없었다.

절망에 빠져 있던 스텔라가 아직 꺾이지 않은 것이, 그들의 투지심에 다시금 불을 붙인 것이다.

"여어~ 스텔라! 정말 괜찮아!?"

그러던 가운데, 스텔라를 향해 걱정스러운 말을 건네 오는 한 인물.

네네였다.

인간에서 벗어난 스텔라의 이형.

그것이 자신의 인간성을 대가로 얻은 힘이라는 걸, 몸소 체험하여 알고 있었기에.

──하지만

"괜찮아."

여기에, 스텔라는 곧바로 답했다.

똑바른 목소리로. 네네의 걱정은 필요없다는 듯이.

사실 지금도, 스텔라도 네네가 《각성초과》를 겪었을 때 느꼈던 것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지금도 가슴 속에서 계속 날뛰고 있는, 격류와도 같은 충동을.

오르=골에 대한, 너무도 강한 분노를.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그 격정은 곧바로 자신의 이성을 갉아먹어, 증오의 짐승이 되어 버린 자신은 분노와 슬픔이 이끄는 그대로, 오르=골과 함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자들의 목숨을 불태워 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그저 허세가 아니다.

허식은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확신.

왜냐면,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으니까.

격류와도 같은 분노와 슬픔에 삼켜진다 하더라도, 스텔라는 잇키와 만난 것을 없던 일로 만들려 하지 않았으니까.

따라서, 스텔라는 지금도 볼 수 있었다.

언제나, 어느 때나, 자신의 앞을 걸어 나아간 남자의 뒷모습을.

그 날부터 계속 좇아 갔던, 강철과도 같이 굳건한 뒷모습을.

그 뒷모습을 잃어버리지 않는 한──

"이후로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나를 잃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힘'을 쓰도록 하자.

스텔라에겐 잇키처럼 힘을 완전히 봉쇄시킬 정도의 기량이 없다. 《사령유희》의 힘을 제압하기 위해선, 더욱 강한 힘이 필요하니까.

스텔라는 그리 주장했다.

네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여기에, 네네는 약간의 틈을 두고 "알았어" 하는 납득으로 답했다.

"하지만, 장기전은 죽어도 피해야 해! 한 방이야! 《야차 공주》의 이름을 걸고, 딱 한 방! 스텔라의 전력을 받아내어, 스텔라의 힘에서 여기 있는 모두를 지켜내겠어! 그러니 주변 사람들은 신경쓰지 말고 온 힘을 다한 한 방으로 확실하게 끝내라고!!"

"네!!"

스텔라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다른 우려 따윈 없다.

그녀는 다시금 오르=골을 노려보았다.

"뭘 그리 흥분하고 있는 거야……!"

거기에, 오르=골은 지금껏 보여 온 표정 중 가장 짜증에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잇키 군이 살아 돌아온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잇키 군은 이미 죽었어! 그 엉망이 된 사체를 보고도 아직 모르겠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같은데!"

말투가 험해지고, 표정이 분노에 경직되었다.

오르=골은 잇키를 스텔라의 눈앞에서 죽여, 그녀가 비탄에 잠긴 채 폭주하여 자멸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스텔라는 오르=골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절망을 앞에 두고, 동경을 잃지 않고, 자기 자신만이 아닌, 주변의 사람들까지 재기시킨 것이다.

오르=골에게 있어, 당연히 이보다 더 불쾌한 일은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남자가 생각하는 건

"그럼 더욱 죽여주겠어! 그 허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지켜봐 주겠다고! 저런 하찮은 쓰레기 따위, 이 《괴뢰왕》의 힘을 받아낼 수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그리 말하고, 오르=골이 행동에 나섰다. 분노를 숨기지 않는 거친 동작으로, 오른손을 가로로 한 번 휘둘렀다.

채찍과도 같이 허공을 가르는 은빛 섬광.

지금까지는 네네가 그 공격들을 빗나가게 만들었지만, 지금 네네는 스텔라의 혼신의 힘을 받아내기 위해 힘을 온존시켜 두고 있었다. 따라서, 오르=골의 악의는 아무런 장해에 막히는 일 없이 쭉 늘어선 병사들을 향해 날아갔고,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옷!!』』』

튕겨나갔다.

"엣……!?"

『아이고, 아파라!!! 하지만──』

『튕겨냈어! 해 보니 할 만 한데!』

『좋았어! 전방의 녀석들에게 디바이스를 건네! 디바이스를 방패삼으면 그리 쉽게 무너지진 않을 거야!』

『뒤에 있는 녀석들은 임팩트가 오는 순간, 앞에 있는 녀석들을 단단히 받쳐 줘! 뒤로 밀려나지 마!』

병사들이 진영을 바꾸었다.

오르=골이라는 위협에, 더더욱 전진. 그를 둘러싼 원이 반경 20미터까지 좁혀져, 전열 길이를 좁힌 뒤 더욱 두터운 장벽을 만들어낸 것이다.

디바이스를 방패삼은 최전열의 병사들을 등 뒤의 병사들이 받치고 있었고, 그 병사의 뒤로 세 번째 열의 병사들이 받치기 시작했고, 그 열이 4열, 5열───

그런 전열의 구축. 버밀리온과 연맹에 의한 대군의 아낌없는 인력에 의해, 오르=골의 일격을 가까스로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거면 됐죠! 단달리온 국장님!』

여기에, 시즈쿠와 함께 전장에 달려온, 전개를 지휘한 노검사가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혼자선 받아낼 수 없다면, 모두가 받아내면 되는 것. 우리에겐 이런 수많은 아군들이 있으니까요. ──저 남자와는 달리 말이죠."

"큭.."

예쌍 외의 저항에, 오르=골의 분노가 한 층 더 강해졌다

"──그렇다면.."

그런 그가 다음으로 노리는 건, 잇키를 치유하고 있는 시즈쿠였다. 시즈쿠는 아직 군대의 원 내부에 있다. 잇키의 망해가 거기에 있었기에, 움직일 수 없는 상태.

시즈쿠에 대한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 상태라는 건 오르=골도 알고 있었지만, 타인과 자신, 쌍방에게 지금 상태를 동시에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웠다. 거기에 설령 유효타가 되지 않더라도, 인간을 분해하여 재구축한다는 엄청난 기술을 쓰고 있는 시즈쿠에게, 약간이라도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수만 있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거란 건 불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그거면 충분하다.

그걸로, 그의 악의는 성취된다.

"누오오오오오오아아아아아아앗!!!"

"윽!"

하지만, 그 악의는 성취되지 못했다. 화염을 두른 도끼가, 자신의 실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리 간단히 통할 것 같으냐! 나를 누구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게야!"

시리우스는 자신의 거구를 방패삼아, 시즈쿠와 잇키를 지키듯 섰다.

두 번.

두 번이나, 자신이 깔보는 떨거지들에게 자신의 계획이 저지당했다. 그 현실에, 오르=골은 히스테릭하게 혀를 찼다.

"칫. 모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송사리 놈들. 뭘 그리 열심히 움직여 대는 거야! 전부 다 소용 없다고! 너희들은 곧바로 《꼭두각시 인형》으로……!"

조종을 가한다면, 시리우스나 다른 자들은 저항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내가 그냥 냅둘 것 같아!?"

"크윽!"

당연히, 스텔라가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불꽃의 날개와는 다른, 실체를 지닌 이형의 날개로 하늘을 때리며, 도약에 가속을 가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오르=골과의 간격을 좁히고, 대검을 휘둘렀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주변을 신뢰하며 가하는, 망설임 없는 맹공.

하지만, 이 싸움은 오르=골도 바라던 바였다. 자신의 '괴뢰'의 능력을 자신의 몸 한 곳에 집중시키고 있는 지금, 오르=골의 힘은 스텔라의 용의 여력을 상회하고 있다. 그건 방금 싸움으로 이미 증명되어 있다.

"《활극의상》"

오르=골은 자신의 디바이스인 실을 이어붙여 만든 강고한 옷으로, 스텔라의 난격을 가드했다. 동시에 《사령유희》에 의해 극한까지 강화된 주먹으로, 격투전에 나섰다. 실로 베는 것보다, 힘싸움을 벌이는 것이 더 유리했기에.

하지만

'무거워!'

오르=골의 의도는 스텔라의 첫 공격에서부터 무너졌다. 그녀의 참격에 담긴 힘이, 오르=골의 상정을 훨씬 뛰어넘어, 상승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당연했다.

지금의 스텔라는 《각성초과》를 겪은 몸으로 싸우고 있다. 사람의 영역을 벗어난 혼에 이끌려 변질된, 이형의 육체. 그 스펙은, 인간의 육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오르=골은 스텔라의 힘에 휘둘려, 일방적으로 밀리고만 있었다.

그 광경에, 주변의 병사들이 고양되었다.

수십 만의 인간이 외치는, 지진과도 같은 스텔라의 성원.

"크읏~~~~~~~~~~!"

그건 오르=골을 짓누를 정도의 압박감을 선사했고, 스텔라에겐 활력을 선물해 주었다.

응원을 힘으로 바꾸어, 계속해서 나아가는 스텔라. 오르=골은 이걸 컨트롤해내지 못하고, 살짝 밸런스가 무너졌다.

그리고, 마침내 《비룡의 죄검》이 오르=골의 한 쪽 다리를 잘라냈다.

『우오오오오옷! 해냈어!!!』

『순식간에 끝내 버려요! 공주님!!!』

잘려 나간 다리는 곧바로 화염에 휩싸여, 지면에 떨어지자 마자 재가 되어 날아갔고, 한 쪽 다리를 잃은 오르=골은 지면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결정적인 국면.

당연히, 스텔라는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재빨리 오르=골의 가슴을 짓밟아 지면에 억눌러버린 다음, 움직임이 봉쇄당한 그를 향해 《비룡의 죄검》을 내리쳤다.

"이걸로 끝이야! 혼자인 너로는 우리들을 이길 수 없어!"

마무리 일격이 쇄도한다.

쇄도하는 광열의 검은, 조금 스치기만 해도 오르=골의 육체를 세포 단위로 불태워버릴 것이다. 그 '소멸'의 때에, 오르=골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 건, 자신을 축하해 준 마을 사람들의 빛나는 미소였고──

"내가 좋아서, 혼자가 된 줄 알아!!!!!"

"으읏!!"

"철이 들 때엔, 이미 이렇게 되어 버렸어! 완전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어서, 날 이해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그걸 나보고 어떡하라는 말이야! 어떻게 해결하라는 거냐고!!"

울부짖는다.

가슴 속에서 폭발한 분노를 그대롤 울부짖으며, 오르=골은 오른주먹을 쥐어 스텔라를 향해 휘둘렀다.

물론 가슴이 짓밟힌 채로 그 주먹이 닿을 리는 없었지만, 그는 '인형'이다. 오르=골은 자신의 오른어깨를 탈구시켜 리치를 늘리고, 스텔라의 턱에 어퍼컷을 가했다.

완벽한 카운터.

아래에서 턱을 쳐올린 충격에, 스텔라의 몸은 위로 날아가 공중으로 떴다. 애초에 이 정도로 스텔라에게 대미지가 될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간격은 벌어졌다.

"나는 아무 잘못 없어! 아무 잘못도 없는데! 너희는 날 따돌렸어! 지금처럼, 내 주변을 많은 수로 뒤덮고, 자신들이 옳다는 이기적인 논리를 내세우며 날 죽이려 하고 있잖아!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야!! 악마 놈들아!! '올바름'을 방패삼은 악마 놈들!! 그럼 나도 웃어 주겠어! 너희들의 죽음에 웃어 주겠다고!! 그리고, 이 세상 속에서 '힘'에 취해 날뛰고 있는 너희 모두를 전부 죽여버리고, 너희들이 '힘'이라는 이름의 '올바름'을 들이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짓밟아서

내가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겠어!!!"

송곳니를 드러내는 형상을 짓고 울부짖고 있는 오르=골에게서, 검은 오라가 피어올라 세상을 덮어버렸다. 하늘에 떠 있던 스텔라를 향해 날아가는 왼팔. 중지와 엄지를 교차시킨 자세에서 나온 건, 《활극의상》마저 풀어버리고, 자신의 모든 실을 이용해 참격을 가하는, 오르=골이 지닌 최대, 최강의 노블 아츠──

《살육희곡》.

그 위력은 《살인희곡》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한 번 발동되면 이 오피스 거리에 있는 수십 만, ──아니, 뤼셸에 있는 사람 모두를 잘게 썰어 버릴 수 있는, 《괴뢰왕》의 최대 공격력을 지닌 노블 아츠. 이 살육으로, 오르=골은 이 싸움에 종지부를 찍으려 했다.

그걸 오르=골의 표정에서, 끓어오르는 마력광에서, 스텔라의 승부에 대한 감이 미리 감지했다.

그렇기에, 물러나지 않는다.

스텔라도 알고 있었기에.

자신들, 블레이저의 싸움은, 운명의 쟁탈전. 적이 혼심의 힘과 바람으로 승리를 거머쥐려 할 때, 물러나는 자에겐 승기 따윈 오지 않는다. 얼버무리려는 자는, 운명을 개척시킬 수 없다.

다음 한 합을 제압한 자가. 이 싸움의 승자.

"창천을 꿰뚫어라. 연옥의 화염."

하늘 높이 날아간 그곳에서, 자신도 최대, 최강의 노블 아츠를 준비했다. 끓어오르는 홍련의 빛은, 그 채도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하얀 태양빛이 되어 뤼셸을 불태웠다. 하지만, 그런 태양조차도 밝힐 수 없는 어둠이 있었다.

새하얗게 타오르는 하늘.

새카맣게 물든 땅.

세상마저도 덧칠해버리는, 두 마력광.

하지만, 그 상반되는 두 색의 극광은──결코 오래 공존하지 못했다.

결착의 때가 왔다.

용의 날개가 위를 향하며, 대기를 갈랐다.

그 추진은, 《홍련의 황녀》, 자신을 아래로 가속.

《괴뢰왕》을 꿰뚫을 기세로 검을 치켜든 채 쇄도.

거기에, 《괴뢰왕》도 왼손에 마력을 집속시켰다.

극한까지 집속시킨 마력을 기폭제 삼아 참격을 흩뿌려, 쇄도해 오는 태양과 함께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시킬 것이다.

거리가 좁혀진다.

극광이 부딪힌다.

흑과 백이 뒤섞인다.

그리고,

"모든 것을 불태워라.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

"갈채를 벌여라! 《살육희──"

그 순간이었다.

"───────────아?"

오르=골의 몸 여기저기에, '참흔'이 내달린 것은.

◆◇◆◇◆

스텔라도, 처음엔 초조한 나머지 알아채지 못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무시할 수 없는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잇키와 함께 오르=골이 나눈, 1분간의 공방 속.

그 모든 것을 봐 온 스텔라는, 기억하고 있었다. 마지막 일격을 제외하고, 잇키가 모든 페이스를 제압했던 그 싸움. 잇키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오르=골을 베어냈지만, 싸움 도중에 그의 칼날이 그에게 들어간 횟수와, 오르=골이 부상당한 그 상처를 수선한 횟수가, 일치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자에 비해, 후자가 살짝 부족하다.

그 의미를, 쿠로가네 잇키라는 기사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스텔라는, 곧바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걸 위한 길은, ───내가 만들어 두겠어.

그것이, 말 그대로의 의미였던 거라고.

지금 이 순간, 발생한 사상이 바로 그 해답이었다. 갑자기, 오르=골의 온몸에 난 참흔. 그를 벤 것은, 스텔라가 아니다.

《낙제기사》. 쿠로가네 잇키였다.

그는 방금 싸움에서, 스텔라가 재기할 시간을 벌어두는 사이사이, 두 종류의 참격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는, 눈속임 용으로 쓴 일반적인 참격.

또 하나가 바로 진짜 공격. 이 승부를 결정짓기 위한 참격.

그 진짜 공격이야말로, 너무도 예리한 탓에 베인 것조차 모르고, 어느 일정한 힘이나 동작을 가하지 않는 한 벌어지지 않는 상처를 주는, 지효성의 검격.

제 5비검──《시차개화》

단발의 참격 따위, 아무리 받는다 하더라도 오르=골에게 대미지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할 때에 일제하게 그 참흔을 벌려, 승부의 역점(力点)을 뒤틀리게 하는 것. 그렇다. 잇키는 그저 자신의 몸을 내버려 시간을 벌어주기만 한 것이 아니다.

오르=골의 무인으로서 능력이 낮다는 점.

스텔라가 자신의 싸움에서 눈을 돌리지 않을 거라는 것.

배틀로얄이라는 싸움의 시스템.

자신을 둘러싼 요소, 그 모든 것들을 현명하게 분석하여, 이 싸움을 결정지을 포석을 깔아 둔 것이다. 자신에 이은 스텔라가, 확실히 승리를 거머쥐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그 포석은 그가 노렸던 결과를 그대로 가져오게 하였다.

'어째, 서...'

너무나도 갑작스런 손상.

오르=골의 머리는 새하얘졌다.

그건, 치명적인 에러였다.

표면화된 10의 수가 넘는 참흔에 의해, 《살육희곡》에 들어간 힘이 풀려 실이 늘어져버렸고, 기술로서의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런 꼴로, 스텔라의 돌격을 받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고,

"카학!?!?"

늘어진 실을 찢고, 스텔라는 오르=골의 가슴팍에 《비룡의 죄검》을 꽂아넣어, 그의 몸을 대지에 꿰어버렸다.

"내가 말했지. 너는, 우리'들'한테 질 거라고."

그리 말함과 동시에,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이 발동. 대지에 꽂힌 칼을 통해 뿜어나온 불꽃은 대지를 순식간에 용해시켰고, 그 광열은 빛이 되어 하늘을 꿰뚫었다.

《야차 공주》가 중력으로 받아내지 못했다면, 오피스 거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불태워버렸을 고열.

직격을 받은 오르=골은, 여기에 버틸 수가 없었다.

그럴 터였다.

"싫어! 싫다고!! 소멸되고 싶지 않아! 사라지고 싶지 않단 말야!!!"

불꽃에 온몸이 삼켜지며, 오르=골은 아직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방금 전 보여 준 연기 같은 것이 아니었다.

완전한 소멸을 눈앞에 두고,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최후의 발악. 자신의 넘치는 마력을 모두 사용해 《천지를 불태우는 용왕의 불꽃》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왜냐면, 화염의 중심엔, 《비룡의 죄검》이 그의 가슴을 꿰뚫고 있었으니까.

그 칼에서 뿜어나오는 광열은 도저히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불꽃에 휩싸인 오르=골의 육체는 손가락과 발가락 끝부터 서서히 검은 숯처럼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숯은 재가 되어 무너져내렸고.

"이, 이런 건 너무 해! 여럿이서 한꺼번에 나 하나를 죽이려 하고 있잖아!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런 식으로 태어난 게 아닌데! 나도 가능하다면 그쪽에 태어나고 싶었는데! 왜 아무도 나만 구해주지를 않는 거야!!"

그런 오르=골의 절규에, 스텔라는 답했다.

"……확실히, 네 경우는 불행하다고는 생각해."

누구나 느낄 행복을 이해할 수가 없는,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을 왜곡된 마음.

그런 걸 갖고 태어나 버린 현실.

그런 걸 갖고 있으면서도, 강대한 힘에 눈을 떠 버린 사실.

자신이라면 어떻게 살아갔을까.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먼 이야기였다.

그건, 얼마나 고독한 일일까.

──하지만

"하지만, 그런 너를 목숨을 걸고 사랑해 준 사람도 있었어."

"읏……!?"

그렇다.

확실히 그가 말한 대로, '올바름'은 폭력이 될 수도 있다. 그 폭력을 받은 그가 세상을 증오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다 하더라도.

그에게, 고독에서 벗어날 기회가 완전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

딱 한 명. 확실하게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버리면서까지 오르=골을 위해, 이 세상조차 적으로 돌리며 싸워 준 여성이.

"그런데도, 너는 그녀를 기대지 않았어."

"읏, 아아.."

"날 미워해도 돼! 세상을 증오하는 것도 상관없어! 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는 말은 절대 못 하게 할 거야! 그렇게나 큰 애정을, 없었던 걸로 만드는 건 내가 용납 못 해! 네가 지금 이 순간, 혼자서 소멸당하는 건 '올바름' 때문이 아니야. 더욱 간단하고, 단순한 이유──

네가,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옛날 옛적,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건, 비뚤어진 마음을 갖고 있는 그에겐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아이리스는 다르다. 오늘의 아이리스는, 누구보다도 오르=골의 비뚤어진 마음의 희생양이 된 과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가족으로서 사랑하고, 지켜 주려 했다.

혹시 그 때, 오르=골이 아이리스의 애정에 답해 주었다면, 무언가가 바뀌었을 것이다. 이 결말에, 어떠한 변환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틀림없는, 오르=골 자신의 선택.

그렇다면, 오르=골은 '올바름'에 짓눌린 불쌍한 아이 따위가 아니다. 어떤 때에도 자신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그저 겁 많고 이기적인 비겁자일 뿐.

"읏, 아.. 아아……"

스텔라가 들이댄, 반박할 수 없는 진실은, 그 어떠한 칼날보다도 깊숙하게, 오르=골의 가슴을 후벼 팠다. 이젠 무엇도 되돌릴 수 없는 현실.

그런 지금에야, 바뀔 수 있었던 현재에, 후회만이 흘러넘쳤고,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르=골은, 절규했다.

이미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게 된 몸이 된 가운데, 감정을 폭발시키면서.

그런 그의 후회도, 통곡도, 불꽃은 모든 것을 삼켜, ──불태워 나아갔다.

이윽고 모든 것이 재료 변하고, 화염이 꺼진 다음, 다시금 밤이 드리워졌다.

황폐해진 오피스 거리에, 갑작스레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강한 바람이, 그의 타고 남은 재를 싣고 날아갔다. 세상이 그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배제하려 했던 것처럼. 하지만, 모든 것이 바람에 휩쓸리기 전에, 스텔라는 손을 뻗어,

"바다에 내버린다……처음엔 그럴 생각이었지만, 그 사람의 인생을 생각해서 같은 묘에 묻어 주는 것 정도는 해 주겠어."

재를 한 움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울 정도로 후회했다면, 저 세상에서나마 사과하라고."

한심하다는 듯 읊조리고, 발을 돌렸다.

천천히,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나갔다.

자신의 승리를 전해 주기 위해, 황금의 검을 드높이 치켜들고.

이렇게……길고 긴 버밀리온과 클레이델란트의 전쟁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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