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6/77)

제 25장

결착. 그리고....

눈을 뜨자, 새카만 어둠 속에 누워 있었다.

위도, 아래도, 좌우도, 아무것도 없는 어둠.

그저 무명의 공간 속에서, 자신만이 혼자 떠 있는 기분.

가라앉지도, 뜨지도 않았다.

그저, 거기에 있을 뿐.

빛도, 소리도, 열도, 무엇 하나 없는 새카만 세계 속에서, 홀로 있을 뿐.

──이것이, 죽음인가?

자신이 어떻게 된 건지, 아직 기억에 남아 있다. 터져 나간 흉부의 고통. 거기에 이끌려 튀어나오는 장기들의 위화감. 그 모든 것들이 아직도 선명했다.

생존할 리가 없는 부상. 그것마저 각오한 특공.

──자신은 죽었다.

그 순간, 쿠로가네 잇키는 죽은 것이다.

──그럼, 자신이 지금, 눈을 뜬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처음은 무의식조차도 느끼지 못하게 되어 버렸는데, 지금, 어둠 속을 바라보고 있는 건 어째서일까?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그의 이해와는 상관없다는 듯, 세상에 변화가 찾아왔다.

빛이다.

무명의 세계에, 빛이 드리워지고 있다.

작은 주먹 정도의 크기를 지닌 빛이, 누워 있는 자신을 향해 하늘하늘 떨어지고 있었다.

목마른 자가 물을 갈구하듯이.

헤매는 자가 인도에 이끌리듯이.

잇키는, 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손이 움직인다.

빛에 손을 뻗어, 손을 쥐었다.

잡았다.

그 찰나

"앗……!"

쿠로가네 잇키의 세상이, 빛을 되찾았다.

본 적 없는 천정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천정에 매립된 LED 조명의 빛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 빛에서 도망치듯 눈을 감고, 한 번 뒤척인 뒤, 자신이 침대 위에 있는 것을 알아챘다.

대체 여기는, ──하고 다시 눈을 뜨고, 주변을 확인하려 했다.

거기서, 눈이 마주쳤다.

눈을 부릅뜬 채, 숨을 삼키는, 자신이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연인과.

"스, 텔라……?"

"으읏~~~!"

꽃병에 꽃을 꽂고 있던 스텔라는, 그 자세 그대로 잠시 굳어버렸다. 부릅뜬 루비와도 같은 눈동자에, 흔들림이 일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 순간 뿐.

스텔라는 마치 그것을 숨기듯 눈을 감고, 입을 꾹 다문 다음

"……이제야 눈 떴어?"

표정을 경악에서, 살짝 삐친 듯한 것으로 바꾼 뒤, 그렇게 말했다.

그건 틀림없이, 스텔라 본인의 목소리였고

"진짜야……? 나, 아직.. 살아 있는 건가……"

"눈을 떴으면 확인해 봐. 어딘가 이상한 점 같은 건 없고?"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점이 이상하려나."

"그건 그렇네."

스텔라와 이야기하며, 잇키는 상반신을 일으켰다.

몸은 약간의 고통을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움직이고 있었다. 가슴을 더듬어봤지만, 손상의 흔적은 없었다. 고동도 느껴졌다. 이불을 들춰 보니 다리도 건재했다.

몸은 건강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잇키는 혼란에 빠졌다.

"나는, 정말로 살아 있는 건가……"

정말 믿기지가 않아서, 스텔라에게 답을 요구했다.

여기에 스텔라는 응해주었고, 그가 아직 살아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시즈쿠가 연맹의 요청으로 달려와 줬어. 그리고……완전 곤죽이 된 잇키를 세포 단위로 재구성하여 살려 줬지."

"그런 게……"

──가능한 것인가.

그건 진정한 '사자 소생'이 아닌가.

잇키는 깜짝 놀랐지만, 스텔라가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 같은 건 없다. 시즈쿠는, 정말로 그것을 해냈을 것이다.

타인의 죽음이라는 운명을 왜곡시키는 비술.

그런 기적을.

"엄청……나네."

"싸움도 무사히 버밀리온의 승리로 끝났어. 일단, 잇키도 수고했어."

"……?"

그리 말하는 스텔라에게서, 잇키는 살짝 어색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처음 시선이 마주친 이후로, 스텔라는 계속해서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있었다.

이 대화도, 꽃을 꽂으면서 하고 있었다.

──좀 더, 재회를 기뻐해 줄거라 생각했는데.

약간 쓸쓸함을 느끼면서도, 그건 나중에 해도 되겠지, 하고 잇키는 생각했다. 지금은 일단, 자신이 의식을 잃은 뒤의 전말을 알고 싶었다. 버밀리온이 승리하고, 스텔라가 살아있다는 건, 자신이 오르=골에게 걸어 둔 전략이 잘 먹혀들었다는 걸 의미하겠지만, 결착이 지어질 때까지 치른 희생의 수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사해? 그 곳엔……수많은 일반 시민들이 있었는데."

그리 묻는 잇키에게, 스텔라는 아직도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답했다.

"그 싸움 속에서 일반 시민 쪽에 희생은 나오지 않았어. 모두 열심히 버텨 주었으니까. 클레이델란트 국내의 혼란은, 그 뒤로 아직 3일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다 수습이 되지는 않았지만, 모든 걸 알고 있는 요한 오빠와 루나 언니가 진두지휘에 나서 국민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으니, 곧 진정될 거야."

"요한 씨는 괜찮았나 보네."

"괜찮다, 라고까진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루나 언니가 곁에 있으니까."

"네네 선생님은? 그 때, 꽤 심한 부상을 당한 것 같았는데."

"선생님은 KOK·A급 리그 선수시잖아. 연맹의 세포 은행에 충분한 체세포 재고가 남아있으니, 팔 하나 정도는 손쉽게 되찾을 수 있었어. ……조금 큰일이었던 게, 타타라네."

"타타라 양이?"

스텔라는 꽃을 꽂던 작업을 멈추고,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의 반절과 오른팔. 소화기계의 반절. 하반신은 전체 손상. 부상 정도를 따져 보자면 잇키랑 겨룰 수 있을 정도였다구."

그래도 목숨을 건진 건, 그녀가 전투를 벌였을 때 사용한 각성제 덕분이었다고, 스텔라는 말했다. 이 약물에 의한 통각 둔화가, 타타라를 쇼크사에서, 지혈 작용이 실혈사에서 지켜 준 것이다.

"약의 부작용 때문에 망가진 뇌는 시즈쿠가 고쳐 주었으니 어떻게 해결은 됐어. ……하지만, 그래도 몸 쪽은……"

손상이 너무도 컸다.

그렇게 큰 손상은, 《재생조》에 넣어도 치유할 수 없다. 몸의 부분을 재생시킬 수는 있어도, 신경계 쪽엔 분명히 장해가 남게 된다. 완전히 결손된 부위를 원래대로 수복하기 위해선, 자신의 체세포로 체조직을 재생성할 필요가 있었지만, 세포 뱅크는 유지 비용이 엄청났기 때문에, 굴지의 부자나 국가의 중진, 국가에 있어 필요 불가결한 《블레이저》 외엔 이용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그 사실에, 잇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슨 일이 있든 살아 있는 게 최고다.

살아만 있다면, 모로보시처럼 재활 훈련을 하여 후유증을 낫게 할 수도 있으니까.

"그건 그렇고, 내가 죽은 사이에 시즈쿠가 상당히 활약해 줬네."

여기에 대해선 무슨 일이 있어도 감사 인사를 전해 주고 싶었다.

"저기, 스텔라. 시즈쿠를 병실로 불러와 주지 않을래?"

잇키는 그렇게 스텔라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스텔라는 그제야 잇키와 눈을 마주치며

"……시즈쿠는, 아까부터 계속 '여기에' 있었어."

그런 말을 했다.

"에?"

깜짝 놀라며,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것인가, 하고 병실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5미터 정도 되는 병실 내 어디에도, 자신의 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안 보이는데……?"

"거기에 있어."

고개를 갸웃하는 잇키에게, 스텔라는 손가락을 가리켜 답했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은, 잇키 자신의 가슴팍이었다.

"무슨, 말을……?"

"놀라게 되면 몸에 무리가 가니까, 진정하고 들어 줘, 잇키. ……너도 알고 있겠지만, 잇키 너는 그 때 확실히 죽었어. 배가 찢겨나가, 머리를 짓밟혀서……도저히 살아 있을 손상이 아니었지. 타타라보다 더 심한 꼴이었어. ……하지만 시즈쿠는 그런 상태에서도 너를 되살렸어. ──심한 손상을 입은 세포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보충해서."

"…………………에.."

그 말은, 그리고 그 이해는, 얼음물과도 같은 냉기를 동반하며 잇키의 뇌리에 천천히 퍼져나갔다.

"그럼, 내 안에 시즈쿠가 있다는……"

"말 그대로의 의미야. 시즈쿠는 잇키의 몸의 일부가 된 거야."

"───────"

그 순간, 세상이 기울어버린 듯한 현기증이 잇키를 엄습했다.

그렇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이야기이다.

잇키의 부상은 타타라와 비슷할 정도의 중상. 그럼에도, 같은 술자에게 치료를 받았음에도 타타라는 부상이 남아있고, 잇키 자신은 오체 만족인 채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부족한 부분은,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크윽……!"

어째서,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은 거야.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흑.. 그런 바보같은 짓을……!!"

"에!? 잠깐.. 이, 잇키!? 왜 우는 거야!?"

"왜 우냐니, 나를 살려내기 위해서, 시즈쿠가……! 으흑...!!"

눈 안쪽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뜨거웠다. 말을 제치고, 비명이 목 언저리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그것이 폭발하기 직전

"어, 어라!? 혹시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잠깐, 잠자코 있지 말고 네가 무슨 말 좀 해 봐! ──시즈쿠!!"

스텔라가, 이제 이 세상에 있을 리 없는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쿡쿡. 어쩔 수 없네요. 좀 더 오라버니에게 걱정을 끼쳐 드리려 했는데 말이에요."

들릴 리 없는, 하지만 자신이 절대로 잘못 들을 리 없는 목소리가 잇키의 귓불을 때렸다.

"시, 시즈쿠!? 지금, 시즈쿠의 목소리가!"

"이쪽이에요. 오라버니."

"시즈쿠!!"

목소리가 나는 쪽, 자신의 오른쪽 귀가 있는 곳을 폭발적으로 돌아보았다.

거기서, 잇키는 보게 되었다.

"……………………아?"

자신의 오른 어깨 위.

거기에 앉은 채 짓궂게 웃고 있는, 손바닥 사이즈의 시즈쿠를.

"잘 주무셨어요. 오라버니?"

"무, 뭐.. 무슨…………이게 뭐야──────!?!?"

◆◇◆◇◆

잇키의 절규에 시즈쿠는 새가 지저귀듯 즐겁게 웃었다.

"이게 뭐냐니요. 이런 귀여운 여자아이가, 이 세상에 오라버니의 소중한 여동생 말고 또 누가 있겠어요?"

"에!? 에에엑!? 아니, 그.. 너무 작잖아! 진짜 엄청 작은데!?"

그리 말한 뒤, 잇키는 눈치챘다.

잘 보니 작아진 것뿐만이 아닌, 시즈쿠의 몸은 반투명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그렇다. 그 《청색윤회》로 몸을 기체화시켰을 때와 똑같이.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혼란에 빠진 잇키에게, 시즈쿠는 말했다.

"지금 막 스텔라 양이 설명해 주신 대로에요. 오라버니의 유체는 손괴가 너무 컸고, 체세포도 상당히 많이 파손되었지요. 그 모든 것들을 치유하는 데에 시간을 써 버리면, 아직 쓸 수 있는 부위까지 다 손상될 것 같았기에, 일단 긴급 처치로 제 몸을 '연결고리'로 사용해 육체를 수선한 거에요."

저흰 피를 나눈 남매이니까요. 적합도는 완벽했어요. 하고 시즈쿠는 웃었다.

"……단, '연결고리'에 제 체세포를 불어넣은 이상, 저 자신은 그 사이에 자신의 몸을 유지할 수 없어요. 이 모습도 남은 잉여 세포로 만들어낸 것이니, 이 정도 사이즈가 한계이구요."

그러니까──

"그, 그럼 시즈쿠는 확실히 살아 있는 거지!? 일시적으로 나한테 세포를 빌려 주고 있는, 그것 뿐인 거지!?"

"후후. 뭐, 저로서는 이대로 오라버니의 피와 살이 되어 살아가는 게 더욱 좋을지도 모르겠네~ 하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지만요."

"조, 좋을 리가 없잖아!"

"……괜찮아요.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니까요. 그걸 오라버니가 바라지 않을 거란 건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미 육체의 재구성이 끝나, 세포의 성장 여지를 이용한 자기 수복의 단계에 들어가 있어요. 제가 합일을 이루고 있는 것도 이걸 효과적으로 보조하기 위해서에요. 이렇게──"

그리 말한 순간, 잇키의 몸이 파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빛은 잇키의 전신에서 떨어져나와, 그의 눈앞에 있는 인형에 집속.

이윽고 빛이 꺼져 감에 비례해, 청일색이었던 빛에 색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의 소중한 동생의 모습이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분리하는 것도 가능하죠."

잇키와의 합일을 풀어낸 시즈쿠는, 자랑스레 작은 가슴을 쭉 폈다. 그녀의 오체는 모두 무사했고, 평소처럼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이는 그녀였다.

그 모습에

"…그렇구나……, 다행이야………"

자신을 위해 시즈쿠가 희생되었다.

그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 자신의 섣부른 생각이었다는 걸 알고, 전신을 엄습한, 고통스러울 정도의 경직이 순식간에 풀리며, 안도한 나머지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쓰러질 것만 같은 몸을 어떻게든 한 팔로 지탱한 뒤,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가슴 부분에 홍수와도 같이 흘러넘치려 하던 감정을 내뱉은 뒤, 다시금 생명의 은인인 동생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시즈쿠. 시즈쿠 덕에 살았어."

"으읏~~~~~~~~♡"

그 말에, 시즈쿠는 묘한 리액션으로 답해 왔다.

눈이 무서울 정도로 뜨거운 열기와 함께 빛나고 있었고, 코를 벌름거리며──

"이, 이건 못 참겠어요. 이런 '귀여운' 모습의 오라버니에게 감사를 받으면, 저.. 어쩐지 이상한 속성에 눈을 뜨게 될 것 같아요~♡"

마치, 자신의 몸을 억누르려는 듯 자신의 어깨를 감싸 안는 시즈쿠.

"지금도 속성들 투성이인데 더 속성을 쌓는다니, 너무 지나치잖아... 뭐, 그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 지만……"

그런 시즈쿠의 말에 껴든 스텔라도, 살짝 뺨을 붉힌 채, 방금까지는 아마도 일부러 두지 않았던 시선을 살짝씩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어쩐지, 입가가 느슨해진 것처럼 보였다.

"……?"

잇키는 둘의 어쩐지 신경쓰이는 거동에, 왜 그러는 거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그 동작의 진동으로 인해 환자복의 어깨가 스르륵 내려갔다.

드러나는 어깨.

잇키는 얼른 옷을 끌어올리려 했고,

"에.."

위화감을 알아챘다.

옷을 잡은 자신의 손을 보고, 생각했다.

자신의 손이, 이렇게나 작았었나?

이렇게나, 동글동글했었나?

옷소매가, 이렇게나 남아 있는 이유는?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고 생각하며 잇키는 고개를 들었고, 우연히 창문에 비친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마주치고, 너무도 경악한 나머지 머릿속이 새하얘져버렸다.

그 이유는,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초등학교 고학년 때의 쿠로가네 잇키였기 때문이다.

"에에에에에에엑!?!?!? 잠깐, 나.. 이거 나 맞아!? 우와, 나, 어린애 때로 돌아간 거야!? 어, 어째서 이런──모, 목소리도 왠지 톤이 높아졌어!?"

"하아~ 허둥지둥대는 쪼그마한 오라버니, 진짜 귀여워요~"

"시즈쿠!? 잠깐, 왜 내가.. 이렇게 작아져버린 거야!?"

"지금까지 두 사람 분의 세포의 양으로 한 명 분을 채웠던 방금과는 달리, 제 한 명 분의 세포가 빠져나갔으니 원래의 몸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것이 지금 오라버니의 진짜 모습이에요."

"지금의, 나의……"

"제 마력이나 집중력에도 한계는 있으니, 하루 종일 합일시켜 두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오라버니 혼자서도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 몸은 필요해요. 하지만 체세포 수는 부족하죠. 어떡하지, 하고 생각하고, 이건 좋은 찬스──어흠! 고육지책으로서, 어렸을 때의 오라버니를 재현해낸 것이죠."

잘 만들어졌죠? 하고 시즈쿠는 자랑스레 어려진 잇키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헛기침하기 전의 말이 좀 신경쓰이긴 하지만, 이유 자체는 납득이 갔다. 확실히 시즈쿠의 체중 분만큼 세포가 빠져나가면, 원래의 몸을 유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활동할 수 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선, 그 사이즈 자체를 작게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 그런 거였구나."

"납득해 주셨나요?"

"처음 봤을 떈 깜짝 놀랐지만, 이유를 들으니, 응. 납득이 갔어."

"결코, 시즈쿠의 취미 때문에 그렇게 만든 게 아니에요. 어쩔 수 없었다구요. 네."

"아, 알고 있어.."

사실 약간 수상했지만, 추궁하지는 않았다. 잇키는 생각해 봐야 별 수 없는 건 사고의 구석에 처박아 두고, 질문해야 할 것을 물어보았다.

"그럼 외모만이 아닌……신체 기능도 지금 모습에 상응할 정도로 떨어져 있는 거지?"

여기에, 시즈쿠는 "네" 하고 대답했다.

"지금의 오라버니는 그 외모대로, 10살 정도의 신체능력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무모한 행동은 절대로 삼가 주세요. 몸이 부서져 버릴 테니까요."

"그렇구나……"

"스텔라 양도 잘 아시겠죠? 아무리 오라버니가 사랑스럽게 보인다고 해도 변태 같은 짓을 벌이면 용서하지 않을 거에요. 지금의 오라버니는 몸이 작아져서 부담도 크게 느끼고 있으시니까, 혹시 《밤의 일도수라》 같은 걸 벌이게 됐다간, SNS에 다 퍼뜨릴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안 해! 너, 사람을 대체 뭘로 보고 있는 거야!"

"1년 365일 오라버니에게 욕정해 있는 발정기 원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 말 그대로 너한테 되돌려 줄게!"

"아아, 하지만 저와 합일 상태일 때는 '하셔도' 괜찮아요. 뭐, 그 때 만들어질 아이가 스텔라 양의 아이라는 보증은 없겠지만요."

"잇키! 네 여동생, 진짜 엄청 무서워! 대체 무슨 교육을 시켜야 이렇게 자라 버리는 거야!?"

그런 말을 들어도, 중학생 때 이미 가출한 잇키로서는 알 수 없었다. 뭐, 그 가출이 원인이긴 하지만.

"그만큼 무리하지 마시라는 말이에요. 지금의 오라버니는 몸의 30%정도가 결손되어 있는 중상자이니까요. 두 분 다 그 사실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해요."

"응. 알았어. 무슨 일이 있어도 무리는 하지 않을게."

시즈쿠의 충고에, 잇키는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후반의 말은 그렇다 치고, 전반의 말은 정말로 주의해야겠다.

살짝 의식을 기울인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근력이 엄청난 폭으로 떨어져 있었다. 심폐 기능도 상당히 저하되어 있다. 신체 능력은, 반절도 채 되지 않을 정도일까.

몸을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 같은 감각으로 움직이게 된다면, 근육과 건이 찢겨나가 버릴 것이다. 지금의 자신에게 맞춰진 움직임을 취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급무일 것이다.

하지만

"……저기, 시즈쿠. 나는 혹시.. 이대로 쭉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거야……?"

그렇다면, 솔직히 상당히 뼈아픈 손해라고 할 수 있었다. 재활로 되찾는다 하더라도, 이 작은 골격에 탑재시킬 수 있는 근육은 결코 많지 않다. 특히 리치의 감소는 그렇지 않아도 사정거리가 짧은 잇키에게 있어 치명적이다.

하지만, 이 잇키의 걱정에 시즈쿠는 부정으로 답했다.

"아니요. 평생 그 모습은 아니에요. 방금 말씀드렸듯이, 지금 오라버니의 육체는 성장 여지를 이용하여 오라버니의 육체를 수복시키는 단계에 들어간 참이에요. 다행히 오라버니는 아직 16살. 일반적으로 인간은 25살까지 성장하니, 몸의 성장 여지는 충분히 있어요. 이걸 시즈쿠의 마술로 풀활용시키면, 반년만 있으면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가실 수 있을 거에요."

"반년……! 반년만 있으면,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제 계산으로는요. 하지만, 원래 갖고 있을 성장 여지는 사라지게 되겠지만요……"

"아냐. 목숨값이라고 생각하면 값싼 편이지."

반년만에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만만세이다.

잇키는 안도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그가 자신의 몸에 대한 걸 파악함과 동시에, 병실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어이~ 쿠로가네 여동생~"

들어온 건, 요염한 진홍빛 일본풍 옷을 입은 여성.

《야차 공주》 사이쿄 네네였다.

그녀는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잇키를 보고,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뭐야. 드디어 정신 차렸어?"

"네. 시즈쿠 덕택에요."

"못 보는 새에 또 상당히 귀여워졌는데그래?"

"네……그 쪽도 시즈쿠 덕택에요……"

그리 답하며, 잇키는 작은 네네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때, 백업에 나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혼자서는 시간은 벌 수 있었어도 주변 사람들까지 지켜낼 수는 없었을 테니까요."

"팀전이라는 건 그런 거지. 고맙다는 인사를 들을 일은 아니야."

"아뇨. 협력해 주신 것이 아닌, 특공 역할을 제게 맡겨 주신 것에 대한 감사에요."

그 때, 네네는 난입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난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스텔라가 회복할 때까지, 모든 싸움을 잇키에게 맡겨 두었다. 그 이유는, 주변에 있던 클레이델란트의 국민들.

《연맹군》의 전위가 무너져, 클레이델란트 국민을 지킬 방패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네네가 싸움에 가세한다면, 오르=골을 가까스로 쓰러뜨렸다 하더라도 수천 명, 아니, 오르=골이 궁지에 몰린 쥐 꼴이 되었던 것을 돌이켜 보면, 수만 명 단위의 일반인이 살상당했을 것이다.

네네가 완전히 수비 태세에 들어서 주었기에, 희생이 나지 않은 것이다.

동료를 내버린다는 결단은, 상당히 무겁다.

네네의 교사로서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럴 터.

하지만, 네네는 그런 상황에서도 도리를 우선했다.

클레이델란트와 버밀리온을 구한다.

이 싸움의 가장 큰 목표를 내버리지 않고, 잇키의 뜻에 따라 움직여 준 것이다.

잇키는 그 결단에 대해, 다시금 감사 인사를 건넸다. 여기에, 네네는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을 내버린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다니. 멍청한 건 죽어도 낫지를 않나 보네. 정말. 그 때에, 네가 특공으로 나서고, 내가 주변을 지키는 것보다 더 나은 작전은 없었지만 말야. 스텔라가 네 사체 앞에서 눈물 질질 짜면서 이성을 잃고, 끝내는 폭주하기 시작할 때엔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다니까."

"자, 잠깐! 쓸데없는 말 하지 말아요! 애초에 제 힘으로 다시 재기했으니까 그런 건 괜찮잖아요!"

당시의 상태를 들킨 스텔라가 네네에게 항의를 던졌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잇키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은 확실히 스텔라에게 동요를 주었겠지만……그녀는 거기에 짓눌릴 만한 약한 인간이 아니었기에.

나라의 운명을 짊어졌음에도 늠름히 설 수 있는 그녀라면, 반드시 재기해 줄 것이다.

분노를 힘으로 바꾸어내, 싸워 줄 것이다.

자신의 움직임에서 《시차개화》의 존재를 알아채고, 자신이 만들어낸 길을 이어 나아가 줄 것이란 것을.

그 신뢰를 전제삼은 작전이었기에.

"뭐, 살아 있으면 그걸로 된 거지. 요양 잘 하라고."

"네. ……그런데, 시즈쿠한테 볼 일이 있으신 건가요?"

"여기에 네네는 "아, 그래." 하고 원래 용건을 떠올리고, 시즈쿠에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쿠로가네 여동생. 합일이 풀려 있으니 마침 잘 됐네. 잠깐 나 좀 보자."

"뭐에요, 갑자기?"

"지금 막 연맹 본부에서 연락이 들어왔어. 이번 전쟁 속에서 네가 해낸 '사자 소생'. 이미 결정된 죽음조차도 되돌려 자신의 바람을 세상에 관철시키는 그 힘을 평가하여, 오늘 이후로 《심해의 마녀》 쿠로가네 시즈쿠를 《A랭크 기사》로 승격한다──라더라. 거기에 여러 수순이 필요하거든."

"굉장하네, 시즈쿠! 지금 연맹의 학생기사 중에 A랭크는 스텔라와 오우마 형밖에 없는데!"

잇키는 그 알림에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그 본인은,

"……승격은 저 뿐인가요?"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따위보다 오라버니 쪽이 훨씬 더 큰 활약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여기에 네네는 "억지 부리지 마." 라고 답했다.

"세간 녀석들은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있는데, 연맹의 랭크는 어디까지나 블레이저를 관리하기 위한 규격일 뿐이지, 훈장 같은 게 아냐. 단 한 명의 예외 때문에 그 기준을 다 바꿀 수는 없다고."

"우우──"

앓는 소리로 항의하는 시즈쿠. 하지만, 그 이후로는 더 말하지 않았다. 총탄을 한 발이라도 맞게 되면 목숨이 위험해진다. 그런 블레이저에겐 E랭크 판정조차 내려지지 않는다. 그건, 시즈쿠 자신도 연맹의 관리 책임으로서 잘 이해하고 있다.

"뭐, 《각성》을 겪은 이상, 표면상의 랭크 따위 장식일 뿐이라고. 칠성검무제와 이번 전쟁 속에서 이 쿠로 꼬맹이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도 쿠로 꼬맹이를 얕볼 녀석은 이 세상에 없을 거야. 실제로…… 아.."

거기까지 말하고, 네네는 뭔가 기억났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래, 마침 눈을 떴으니 지금 전해 주면 되겠네. ──쿠로 꼬맹이."

다시금 잇키를 향해 돌아선 뒤, 고했다.

"《국제 마도기사 연맹》 프랑스 지부장, 레비 아스칼리드에게서 전언이 있어."

"아스칼리드……"

그 성에, 잇키는 숨을 삼켰다.

그건, 《흑기사》 아이리스=골의 현재 성이었던 것.

즉, 잇키 자신의 손으로 해친, 그녀의 가족이 전할 말이었다.

"……말씀해 주세요."

여기에 네네는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딸의 최후를 후회 없게 만들어 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이 뒤에 어떤 곤란한 일이 있다면 연락하도록. 단 한 번. 나는 단 한 번, 반드시, 이 《총검》 레비는 모든 전제와 논리 따위를 도외시하고, 쿠로가네 잇키 개인을 위해 힘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

그 말을 전했다.

"……………"

"뭐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매도의 말이라도 날아올 줄 알았어?"

"……네. 그 말을 들어도 당연한 짓을 했으니까요."

"딱히 상대도 아무 생각도 없기만 했던 건 아니었겠지. 아이리스의 에고가 어떠한 것인지를 말야. ……누구보다도 아이리스의 곁에 있었던 녀석이니까."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알고 있었음에도 그걸 전하지 않은 건……아마 그렇게 해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녀가 누구에게도 용서받지 못할 바람을 품고, 파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해 가며 지키려 했던 소중한 딸을 살해한 남자가, 감사를 받을 자격 따위는……

"사이쿄 선생님. ……아이리스 양은.."

"프랑스로 보냈어. 오르=골의 재와 함께, 고향 구석에 이장될 것이라 하더라고."

"……그런가요. 다행이에요."

"《총검》 레비가 뒤에 서 준 다는 건, 프랑스 지부가 네 뒤에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야. 랭크 따위보다 더욱 엄청난 걸 얻은 거라고."

"……하지만, 그건 마음만 받아 두겠다고 전해 주시겠어요? 제게 그럴 자격은.."

"안 돼."

"에.."

말이 가로막힌 잇키는 깜짝 놀란 뒤, 그 이유를 시선으로 물었다.

"이유는 세 개가 있어. 하나는 그 자격이 있고 없고를 판단하는 건 쿠로 꼬맹이가 아니라는 것. 두 번째는 《총검》은 다른 사람의 의견 따위로 자신의 생각을 꺾을 할망구 년이 아니니 소용없다는 것. 세 번째는──이 녀석들의 힘은 쿠로 꼬맹이에게 있어 쓸모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야."

"제게, 필요……한 건가요?"

"이번 전쟁에서 쿠로 꼬맹이의 입장은 크게 변했어. 이제 너는 그냥 일반 학생기사의 챔피언 따위가 아니야. 연맹 산하의 제 4위 《흑기사》를 쓰러뜨린, 《국제 마도기사 연맹》이라는 세력의 주력 중 하나가 된 거라고."

"……!"

"당연히 여러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이후로 네 주위를 어슬렁거리게 되겠지. 동경하는 자. 널 원하는 자. 시기하는 자. 질투하는 자. 정정당당히 결투를 신청하는 것이면 다행이겠지만, 비겁한 술수를 써 오는 녀석도 있을 거야."

그렇다면

"아군은 많으면 많을 수록 좋아. 선배의 조언이라고?"

이 네네의 충고에, 잇키는 한 가지 일을 떠올렸다.

《칠성검무제》에 출장하기 위한 대표 선발전.

그 최후에 벌어진 모략극을.

……그렇다. 이 세상엔 자신은 생각지도 못할 수단을 이용해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려 하는 사람도 확실히 존재한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모략에서 몸을 지키는 방법에 빠삭한 사람이 아니다.

틀림없이 그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면, 또 다시 모략에 빠지게 되어 버릴 것이다.

또 다시 여러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걱정을 끼쳐 버릴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선……자신이 갖고 있는 것과는 다른 힘이 필요하다.

정치적인 힘.

그렇다면, 네네의 충고는 옳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언젠가 도움을 받도록 할게요, 라고 전해 주시겠어요?"

잇키는 네네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을 고쳤다.

여기에 네네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시즈쿠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럼 가자. 쿠로가네 동생."

"에에~ 전 오라버니의 치료 때문에 바쁜데요."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30시간이나 밤새 있었잖아. 조금은 쉬라고."

"……하아.. 알겠어요."

거절을 허락치 않는 네네의 말에, 시즈쿠는 마지못해 따랐다.

"그럼 오라버니, 시즈쿠는 잠깐 좀 다녀오겠습니다."

"시즈쿠. 정말 고마워. ……시즈쿠 덕에, 소중한 사람과 영원히 결별하지 않을 수 있었어. 어떠한 감사를 전해도 부족하겠지만, 이 보답은 반드시 할게."

방을 떠나는 시즈쿠를 향해, 잇키는 다시금 깊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여기에 시즈쿠는 방긋이, 그녀 치고는 드물게도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답했고

"아, 맞아요. 중요한 말을 전해드리는 걸 잊고 있었어요.

문앞에서 우뚝 선 다음, 미소지은 채 잇키에게 고했다.

"오라버니. 방금 제가 '오라버니의 피와 살이 되어도 좋다'라고 말씀드렸을 때, 오라버니는 그러면 안 된다고 화를 내셨죠?"

"어? 으, 응……그야 물론이지."

"오라버니가 이번에 스텔라 양에게 한 짓은, 그런 최악의 짓거리였어요."

"윽………!"

동생의 입에서 흘러나온, 들어본 경험이 없는 모멸의 말에, 잇키는 무심코 호흡하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제야.

시즈쿠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엔, 조금의 온정도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을.

그녀가……이전에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자신을 향해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싸움의 결과로서 죽는 것과, 죽는 것을 전제로 싸우는 것.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에요. 자신이 죽을 것을 전제로 짠 작전이라니, 그딴 건 방법이라고 부를 수도 없어요. 설령 이것이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낼 유일한 길이었다 할지라도, 그걸 선택하는 사람은──최악의 쓰레기에요. 뭐, 저는 괜찮아요. 전 오라버니를 사랑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스텔라 양은 아니에요. 오라버니는 스텔라 양에게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스텔라 양의 곁에 있어 줄 것을 자신의 입으로 맹세하셨잖아요. 누군가에게 사랑을 맹세하셨으면, 그 사랑엔 책임감을 가져 주셨으면 해요."

"…………………"

"오라버니. 이번만은 시즈쿠도 오라버니의 편을 들어 드릴 생각은 없어요. 오라버니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용서를 받아 보시라구요."

그리 말하고, 시즈쿠는 "그럼." 하고 한 번 인사한 뒤, 방을 나섰다.

처음부터 끝까지, 얼어붙을 것만 같은 미소를 지은 채로.

◆◇◆◇◆

"………………"

네네와 시즈쿠가 방을 나선 뒤, 잇키는 닫힌 문을 잠시간 아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라버니가 이번에 스텔라 양에게 한 짓은, 그런 최악의 짓거리였어요.

그 시즈쿠의 말이, 몇 번이고 머릿속에 반향되었다.

그런 잇키의 시야 속에 붉은 빛이 서서히 퍼져 나아갔다.

그건, 스텔라의 찰랑이는 뒷머리.

스텔라는 문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문에 손을 대었다.

"스텔──"

방을 나가 버리려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고 반사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 하는 잇키.

하지만, 그 부름은

철컥!

하는, 분노를 쏟아내는 듯한 난잡한 동작으로 문을 잠그는 소리에 묻혀 버렸다.

잇키는 움찔, 하고 작아진 몸을 떨었고

"저, 저기.. 스텔라? 역시, 화 났……지?"

눈치를 살피며, 그녀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여기에 스텔라는 눈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은 채, 침대 앞을 한 번 통과하여 문의 반대쪽에 있는 창문의 커튼을 움켜쥐었고

촤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커튼 레일에 불똥이 튈 기세로 난폭하게 커튼을 쳐 버렸다.

이것이 답이라는 듯.

살짝 어둑해진 병실.

그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분노에 빛나는 홍련의 두 눈과, 눈이 마주쳤다.

"히익!"

뱀에게 노려지는 개구리의 수준이 아니었다.

용이 노려보는 듯한 그 위압감에, 잇키는 무심코 한심한 비명을 내질렀다.

"자, 잠깐잠깐! 진정해 줘. 스텔라! 곁에 있을 거라는 약속을 깨 버린 건 정말로 반성하고 있어! 하지만 그 땐 그렇게 하는 것 외엔 모두를 생존시킬 방법이 없어서......"

하지만, 스텔라는 멈추지 않았다.

위압하듯 큰 보폭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여기에, 잇키는 어떻게든 자신의 선택을 이해시키려는 듯, 이어 말했다.

"사이쿄 선생님과 함께 싸우게 되면 주변 사람들을 지켜 줄 사람이 없어지게 되어 버릴 테니까……그렇다고 내 힘으론 시간은 벌어도 《괴뢰왕》을 처치할 수도 없었으니, 내가 가한 트릭을 알아채게 하기 위해 스텔라의 주의를 끌 필요도 있었고, 그 이외엔………"

하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을 맹세하셨으면, 그 사랑엔 책임감을 가져 주셨으면 해요.

"……그런 건, 변명도 안 되겠지."

시즈쿠의 규탄에 뼈저리게 느꼈다. 이건 선택에 이득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자신은, 스텔라에게 가족이 되자고 말했다. 그 말엔, 스텔라에 대한 책임이 있다. 곁에 있을 것이라 약속하고, 사랑을 나누고, 멋대로 죽어 버리고──

이런 이기적인 놈이 대체 어디에 있을까.

이보다 더 상대를 괴롭게 할 선택은 없을 것이다.

그것을, 지금 막 잇키도 시즈쿠에 의해 체험했으니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상상이 불가능했다.

자신을 위해 누군가가 희생했다는 괴로움.

이 세상에, 이렇게나 괴로운 일이 있다니.

'이런 거를, ……스텔라에게 강요한 거야……!'

"정말 미안해! 어떤 벌이라도 받을 테니, 날 싫어하지 말아 줬으면 해……!"

스텔라라면 자신이 죽어도 이 싸움을 완수해내 줄 것이다. 그 신뢰는 진심이었고, 그녀는 그 신뢰에 응해주었다.

──하지만 그 결과와, 겪은 모든 것을 견뎌내는 것과는, 의미 자체가 다르다. 자신은 스텔라를 깊이, 오르=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상처입혔다.

그런 자신이 가능한 일은, 그저 사과하는 것뿐. 그녀에게서 용서를 받을 때까지.

그것 이외엔 없다.

그러니 잇키는 변명을 거두고, 머리를 숙였다.

"……뭐든지 해 줄 거야?"

이 잇키의 각오가 통한 것인지, 그제야 스텔라가 입을 열었다.

"무, 물론이지!"

"그럼 오늘부터 잠에서 일어날 때, 그리고 잠들 때에 나한테 키스해 줘."

"알았어!"

"그리고 매일 1시간, 나의 어느 점이 좋은지 시로 써서 들려 줘."

"아, 알았어."

"단, 매일 다른 내용이어야 해."

"노, 노력해 볼게……!"

"그 내용을 편찬해서 나를 향한 사랑의 시집을 발매해서 일반유통을 시키는 거야."

"네!?"

"그리고 꿈의 인세 생활로 나를 호화롭게 살게 해 줘~"

"스, 스텔라……?"

어쩐지 이상하다.

잇키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 속에서 아래로 늘어뜨린 앞머리 너머에 있는 스텔라의 표정을 살폈고

"풋, 아하~ 아하핫~~!!"

동시에, 스텔라가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다 농담이야. 이제 다 풀렸어."

"그랬, 어…?"

"응. 그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걸, 시즈쿠가 모~두 말해줬는걸."

그리 답하고, 스텔라는 잇키를 향해 그제야 미소지어 보였다. 아니, 그건 미소라고 하기보다는 쓴웃음에 가까웠고──

"화……안 났어..?"

"물론 엄청 화났었지. 잇키가 눈을 뜨면 코뼈를 부러뜨려버릴 생각으로 눈을 뜨는 걸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저 지금 입원한 환자인데요!?"

"반송할 수고가 줄어드니까 더 좋잖아?"

"에에……......."

"뭐, 그런 내 마음을 다 꿰뚫어 보고 말해준 거겠지. 정말, 잘난 여동생을 갖고 계시네요. 잇키 씨."

"……그야, 내 자랑이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시즈쿠의 도움만 잔뜩 받았을 뿐이니까.

하지만,

"……하지만, 화내지 않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야."

그렇다.

그렇게나 화난 스텔라가 잇키를 힐난하지 않는 건, 더욱 큰 이유가 있어서였고,

"시즈쿠가 대신 화를 내 준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이렇게 살아 있는 잇키를 보니, 역시, 기뻐서……"

"스텔라……"

"으읏~~~~!"

잇키가 이름을 부른 순간, 감정이 복받친 스텔라가 침대에 앉아 있던 잇키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미안해……내가 그 녀석이 죽은 뒤에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확실하게 간파하기만 했었어도, 잇키가 죽지 않아도 됐을 텐데…… 정말, 미안해……!"

자신의 실수를 사과했다.

잇키가 그 선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건 자신의 탓이라고.

그것은 확실히, 사실의 측면으로 보자면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스텔라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그렇다.

틀리다.

자신의 죽음을 발동 시점으로 삼는 노블 아츠. 그런 걸 예상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사실, 잇키도 《사령유희》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즉, 따져 보자면 애초에 원인은 그 때 스텔라를 단독으로 보내 버린 잇키에게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르=골의 비장의 수를 알아챘다면. 스텔라를 혼자 보내지 않았다면. 애초에 자신이 더욱 강했다면. ……이렇게 계속해서 따져 보면 끝이 없게 되어 버려."

그런 후회는, 아주 쓸모없는 행위이다.

후회와 반성은 다르다.

그저 과거라는 칼날로 자신을 상처입히는 행위에, 생산성 따위는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 하나.

잇키는 떨고 있던 스텔라의 어깨를 쥐어, 살짝 몸을 뗐다. 그리고 숨결이 닿을 거리에서, 시선을 똑바로 나누며

"그러니 더욱 강해지자. 다음에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둘이서, 함께.

스텔라의 뺨을 타고 흐르는, 피와도 같이 뜨거운 물방울을 닦아 주며, 그렇게 말했다.

"……응.."

잇키의 앞을 나아가자는 말에, 스텔라는 그제야 기쁨 일색의 미소를 보였다. 이렇게 둘 사이의 응어리는 풀어졌고,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끼리, 숨결이 닿을 거리에 있었다.

서로의 입술을 원하는 건, 극히 당연한 일.

상대의 존재를 확인하는 듯한, 닿을 뿐인 입맞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열은 전해져 온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와, 자신의 체온을 나눈다.

스텔라의 열에 입술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잇키는 떠올렸다.

임사의 선 위에서 본 세계.

빛도, 소리도, 열도 없는, 그저 새카만 어둠을.

쓸쓸한 세계였다.

그것이 죽음이라면, 다시는 겪기 싫었다.

그리고……잊어버려선 안 된다.

자신이 그대로 죽어 버린다면, 스텔라도 산채로 그 세계에 사로잡히게 되어버린다는 것을. 자신이 그녀에게 있어, 그러한 존재라는 것을.

두 번 다시 가지 않을 것이다.

보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더욱 강해져야 한다.

자신에게 맹세하고,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곱씹으며,

───더욱 깊이 원하게 되었다.

"읏, 안 돼.."

그것을 거절한 건, 스텔라 쪽이었다.

"지금, 엄청 감정적으로 되어 있으니까……이 이상 나아가면, 참을 수 없게 되어버려……"

그 자신도 감상적이 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 이상은 확인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곤란하게도,

"미안, 이미 늦었어."

"엣, 꺄앗!?"

"……난 못 참겠어."

잇키는 작아진 팔을 뻗어, 스텔라의 등과 후두부를 끌어안았다.

그녀가 몸을 뺄 수 없도록.

놓치지 않도록.

그렇게 한 번 더 입술을 겹쳐──아니, 빼앗았다.

닿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머릿속에 되살아나는 임사의 고독.

그 얼어붙을 것만 같은 추위를 덧칠해 버리기 위해, 잇키는 스텔라의 열을 갈구했다.

"스텔라……, 스텔라……!"

"……으응.."

이 잇키의 평소의 그라고 생각할 수 없는 난폭한 키스에 스텔라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바로 잇키의 몸이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녀는 긴장을 풀었다.

그가 얼어붙은 채, 자신을 향해 기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것은, 스텔라에게 있어서도 아주 기쁜 일이었고,

'정말, 뭔가가 눈뜰 것만 같아서 엄청 겁 나는데……'

부드럽게 그의 몸에 팔을 두른 다음, 몸에서 힘을 뺐다. 천천히, 어린 잇키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로 몸을 기대어, 그 신호로 답했다.

마음껏 자신을 원해도 괜찮다고.

여기에, 잇키는 스텔라를 더욱 강하게 원하며, 더욱 깊은 키스를 해 왔다.

딱 그 순간이었다.

"스텔라아아아아! 거기 있느냐아아아아아악!!!!!"

"스텔라! 큰일이야!!"

병실의 문의 잠금장치가 날아가, 엄청난 기세로 문이 열린 것은.

" "에.." "

"뭣...."

"어머나~"

병실에 들어온 건 스텔라의 부모님, 시리우스와 아스트레아였다. 입구에서 침대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당연히 둘은 지금 막 키스를 나누고 있던 잇키와 스텔라의 모습을 그대로 보게 되었고

"무, 뭐뭣... 뭔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게야, 이 노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옴!?!?!?"

시리우스가 분화했다. 방금 전쟁에서, 잇키라는 남자에 대한 생각을 여러 모로 고쳐 먹었지만, 그것과 이건 이야기가 다르다.

소중한 딸을 덮치려 하는 남자를 위협하는 건, 아버지의 조건반사.

하지만

"여보!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잖아요!!"

"아야야야야야야야! 여보야! 여보!! 엉덩이가 찢어지겠어!!"

그 폭주는, 시리우스의 엉덩이를 꼬집은 아스트레아에 의해 제지되었다. 아스트레아는 눈물을 그렁그렁 맺고 있는 시리우스의 엉덩이에서 손을 뗀 뒤,

"……잇키 씨. 눈을 떴군요~ 다행이다~"

스텔라도 루나아이즈도 유전받지 않은, 아스트레아 특유의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잇키의 부활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여기에 잇키와 스텔라 둘은 튕겨 나가듯 거리를 두고, 어색함에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아, 네. 덕분에요."

"후후. 우리 버밀리온이 해준 거라곤 병실을 제공한 것 정도라구요. 그것보다, 몸은 괜찮아요? 기분이 나쁘거나 그렇지는 않구요?"

"아, 아뇨. 완전 괜찮아요. 정말, 완전히 건강해요."

"척 봐도 그렇네요~"

" "으읏~~~~~~~" "

잇키와 스텔라의 뺨이 동시에 붉어졌다. 딱히 부모에게 둘의 관계를 숨겨 온 건 아니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역시 스킨십을 나누는 장면을 들켜 버리는 건, 엄청나게 어색했다.

아스트레아는 그런 둘의 풋풋한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농담도 나눌 시간이 없다는 듯,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다.

"잇키 씨는 버밀리온의 영웅이에요. 이번에 당신이 바친 헌신엔, 반드시 버밀리온 국가로서 보답해 드리겠어요. 하지만, 그건 나중의 일로 하기로 하고……스텔라야?"

"무슨 일이야? 엄청 허둥지둥 달려오던데?"

모친의 표정의 변화에, 스텔라도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감지하고, 이리저리 굴리던 눈을 똑바로 아스트레아에게 향했다.

그리고,

"응. 사실 타타라 양에 관한 건데──"

아스트레아에게서 전달받은 사태에,

"뭐, 뭐라고!?"

곤혹과,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

"말씀하신 대로 자동 항행 기능이 탑재된 소형기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아직 평상 운행이 재개되어 있지 않은, 폐쇄 중인 버밀리온 국제 공항. 그 활주로에 서 있는 소형 제트기 앞에서, 전동식 휠체어에 앉은 타타라 유이를 향해 그리 말한 건, 국제 마도기사 연맹 버밀리온 지부 장관, 다니엘 단달리온이었다.

타타라는 남은 왼눈으로 붉게 칠해진 가정용 제트기를 올려다보며,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이번 전쟁의 보수로 받아가도록 하겠어. 그 정도 대가는 치렀잖아?"

"괜찮다는, 국왕의 허가는 이미 받았습니다. 일단 다른 색의 동 타입 제트기도 준비해 두었습니다만?"

"딱히 그런 거는 신경 안 써. ……하지만 연맹 지부의 우두머리인 당신이 《해방군》에 관련된 암살자에게 물품을 공급하는 짓을 해도 괜찮은 거야?"

"글쎼요. 전 당신에 대해 《국립 아카츠키 학원》의 학생이라는 것 이상의 정보를 지니고 있지는 않아서요."

"핫. 《날개의 재상》도 수고가 참 많겠구만그래!"

단달리온의 궤변에, 타타라는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연맹 지부라는 건, 연맹 본부와 직접 관련이 있는 시설이 아닌, 연맹 가맹국이 본부와 연대를 취하기 위해 만들어낸 창구 기관이다. 따라서, 연맹 지부는 본부가 아닌 국가에 대해 의리를 지키는 경우가 많다.

소국끼리 연대를 취하여, 대국의 위협에 상대하는 것이, 연맹의 존재의의. 하지만 내정간섭이 심화된다면, 그 확대를 저해하게 된다.

이 구조는 가맹국의 이해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연맹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가맹국을 배려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이번에 버밀리온에 벌어진 전쟁 속에서, 연맹의 행동에 족쇄를 채우게 되었다.

눈앞에 연맹을 적으로 돌린 자가 있음에도, 강공책을 취할 수 없다. 높으신 분들에게 있어, 이렇게나 답답한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을 이유로, 중앙 집권화를 그리려 하는 움직임도 벌어질 수 있겠군.'

그렇게 된다면, 이제부터 연맹 쪽에서 '일'이 들어올지도 모른다.

'그런 한창 시즌일 때, 이런 꼴이라니. 진짜 한심하네.'

암살자로서 세계 정세에 정통해 있는 타타라는, 이후에 벌어질 미래와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번갈아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무리를 무릅쓰고 일에 나서는 건 프로가 아니다.

일단은 몸을 치유하는 것이 선결.

'《검은 집》로 돌아가 일단 복원 수술을 받고……그 뒤로 재활 훈련 직행이야.'

복귀 까지는 1년 정도 걸릴 것이다.

잠시 휴업이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다.

타타라는 기분을 전환시키고, 소형기에 타기 위해 휠체어를 움직였다.

"그건 그렇고, 벌써 떠나시는 건가요?"

"네 놈들도 언제까지고 나 같은 녀석을 성 안에 들이고 싶진 않을 거 아냐?"

단달리온에게, 타타라는 퉁명스레 답했다.

"스텔라 님은 슬퍼하실 텐데요."

"내 알 바야?"

퉁명스러움과 함께, 목소리까지 험해졌다.

스텔라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타타라는 생각했다. ──그 여자 탓에, '죽을 뻔' 했다고.

나중에 들어 보니, 자신은 의료반의 보호를 받았을 때, 도저히 살아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고 했다. 목숨은 《천사의 가루》로 연명하고 있었지만, 뇌 쪽이 망가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텔라의 지시로 인해 그 파손은 수복되었다. 그녀가 테러리스트를 치료하는 것에 쓸데없는 체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내키지 않아 하던 《심해의 마녀》에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가며 필사적으로 부탁했다고.

……《심해의 마녀》 쪽은 옳았다.

암살자 따위, 살려 둬서 득을 볼 인간이 아니니까.

내버려 뒀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데……'

같이 온 김에 조금 협력해 준 것 뿐인데 제멋대로 착각을 해 대고, 곧바로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정말, 귀찮기 짝이 없다.

그런 여자다. 계속 여기에 있다간, 다음에 만났을 때 무슨 어이없는 말을 꺼낼지 모른다.

얼른 떠나도록 하자.

그리 생각하고, 타타라는 비행기에 타려 했다.

그 때,

"거기 서──────────────어어엇!!!!!!!!!"

목소리가 '쏟아져' 내려왔다.

지금 타타라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부터.

반사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게 갠 푸른 하늘.

밝게 빛나는 태양.

그걸 등지고 추락해 오는, 홍련.

──소름끼칠 정도로 싫은 예감이 들었다.

암살자로서 사선을 넘어 오며 쌓아 온, 제 6감.

타타라는 곧바로 자신의 능력을 발동.

반사의 장벽을 주변에 전개.

그 직후, 하늘에서 떨어진 홍련이 소형 제트기에 꽂혔고, 폭발을 만들어냈다.

"우오오오오오오옷!?"

지근거리에서 발생한 폭풍을, 타타라는 반사로 흘려버렸다. 그리고, 적흑색 폭풍이 그쳤을 때 시야 속에 비춰진 것은, 탄화된 비행기 잔해와, 그 위에 서 있는 스텔라 버밀리온의 모습이었다.

"후우! 어떻게 안 늦은 모양이네. 다행이다~"

"다행은 개뿔!? 뭔 짓거리야 이 고릴라 년아!!"

너무나도 난폭한 방식에 발이 붙들려, 항의를 외치는 타타라.

하지만, 여기에 스텔라도 지지 않겠다는 듯 고함으로 답하며,

"뭘 하냐니, 그건 이쪽이 할 말이야. 타타라! 너, 뭘 멋대로 병원에서 빠져나오는 거야! 승리 축하 파티에 네가 좋아하는 '포니 하우스'의 케이크를 잔뜩 먹게 해 줄 거라고 약속했잖아! 애초에 그런 부상을 입고──"

전신에 붕대를 감은 채, 여기저기가 결손된 타타라의 몸을 보고, 마치 자신의 몸이 베여 나간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몸으로, 어딜 가겠다는 거야."

"니 부모한테 물어봐. 집으로 돌아갈 거야."

"돌아갈 곳 따위, 없잖아."

타타라가 소속되어 있는 《검은 집》은, 이미 《더러운 꽃》에 의해 괴멸되어 있다.

그건, 타타라 자신의 입으로 말한 사실이다.

"……저기, 타타라. 이건 아직 공식발표로 나온 건 아니지만, 클레이델란트의 소란이 진정되면, 곧바로 루나 언니와 요한 오빠의 혼약 발표가 있을 거야."

"거 경사 났네."

"거기서 루나 언니는 버밀리온의 황위 계승권을 포기할 거야. 즉, 버밀리온의 황위를 잇는 건 나라는 거지."

"헤~ 굉장굉장~ 굉장하시네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랑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잖아?"

불쾌할 정도로 진지한 표정으로 말해 오는 스텔라에게, 타타라는 의도적으로 성의 없는 답을 했다. 너랑 이야기할 마음 따윈 없다는 어필.

하지만, 스텔라는 신경쓰지 않고,

"차기 여왕으로서, 너를 고용하고 싶어."

그런, 엄청난 말을 해 왔다.

"……하?"

여기에는 타타라도 무심코 눈이 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암살자로서 고용한다는 게 아냐. 내 근위 기사로서. 네 수비에 탁월한 능력은 그 임무에 최적이라구. 물론 복리후생은 확실히 해줄 거고, 주거할 곳도 제공하겠어."

버밀리온은 그렇게 풍족한 나라가 아니다. 그래도 한 나라의 근위 기사가 된다면, 그 대우는 상당히 클 것이다.

"넌 버밀리온을 지키기 위해 이런 몸이 되어 가면서까지 싸워 줬어. 반대할 사람 따윈 아무도 없을 거야. 모두가 널 환영할 거라구. 그러니, 암살자 같은 어두운 일은 내버리고, 버밀리온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 줘."

그 후한 대우를 제시하며, 타타라를 권유하는 스텔라.

타타라의 능력을 높이 산 헤드 헌팅.

하지만 그건, 억지로 갖다 붙인 이유일 뿐.

……그 뒤에 숨겨져 있을 스텔라의 감정을 모를 타타라가 아니었다.

그러니 타타라는,

"흐음~ 차기 여왕님이 직접 헤드 헌팅을 오셨다라. 뭐, 대우에 따라선 나쁜 이야기는 아니겠네."

"무, 물론 가능한 한 요망에 응해 줄 거야!"

"킥킥킥. 그래~ 그래~ 그럼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 볼까? 저기 있는 연맹의 딸랑이한테 들리면 위험한 요망도 있으니 귀 좀 갖다 대 봐."

"응!"

그러자 스텔라는 환희 일색에, 지금 당장에라도 꼬리를 흔들 것 같은 강아지처럼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무경계하게 다가온 순간, 타타라는 전동 휠체어의 액셀을 풀로 밟아, 스텔라의 정강이에 발판을 부딪히게 만들었다.

"이익!? ──무, 무슨 짓이야!"

갑작스런 격통에 눈물을 그렁그렁 맺으며 항의하는 스텔라.

그런 그녀에게,

"쓸데없는 동정따위 집어 쳐. 멍청아."

타타라는 혐오감을 드러낸 표정으로 내뱉듯 말했다.

"으읏……!"

"뭔가 유쾌한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으니 말해 두겠는데, 나는 니 나라를 위해 싸운 게 아니야. 《검은 집》의 암살자로서, 클레이델란트에 손을 댄 우리 조직 멤버에게 '마무리'를 짓게 하려 온 것뿐이라고. 이 부상도 그 결과로서 얻은 것뿐이고, 너나 다른 녀석들에게 동정을 살 이유 따위는 없어. 잘난 척 기어오르지 마."

"우우……"

이 타타라의 말에, 스텔라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그건 스텔라도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타타라의 행동을 '버밀리온을 위해 싸워 주었다'라는, 사정에 걸맞은 이유를 붙여, 그녀의 인생에 참견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걸 타타라가 바라지 않는다는 것도.

하지만……

"애초에 한 나라의 왕이 될 거라면, 나 같은 쓰레기와 가볍게 말을 걸 생각은 집어쳐. 좀 더 주변의 눈을 신경쓰라고. 애초에 내가 어떻게 되든, 이제 니 인생엔 아무런 상관없는──"

"상관없을 리가 없잖아!!"

"───으읏!?"

"왜냐면, 난 이제, 타타라를 정말 좋아하는걸!!"

바라지 않을 참견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만두지 않은 건, 그만큼 타타라라는 소녀가, 스텔라의 안에서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타타라 덕에 난 강해질 수 있었어! 네가 내게 부족한 부분을 가르쳐 준 덕분에, 오르=골에게 이길 수 있었어! 그것만이 아니야! 버밀리온이 궁지에 몰린 이곳에서, 엉망이 될 때까지 싸워 준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너잖아! 그런 사람이 입은 부상을 치료하지도 않은 채 어디론가 떠나는 걸, 아무 상관없다는 말로 끝내 버릴 수 있을 리가 있겠냐고!!"

이미 논리나 만사의 도리 따위로는 따질 문제가 아니었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조직 멤버에게 '마무리'를 짓게 만들기 위해 일을 벌이던 도중에 해 준 일이었다 할지라도, 자신을 위해서,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타타라가 얼마나 많은 힘을 다해주었는지를 알고 있다.

그런 그녀가 혼자서, 새카만 어둠 속 세계로 돌아가 버린다니. 그런 건 참을 수 없다. 이대로 보내 버린다면, 타타라는 자신 앞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러니, 절대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가지 말아 줘.

그렇게 눈에 눈물을 맺은 채 감정을 부딪혀 오는 스텔라에게,

"………큭,"

이번엔 타타라 쪽이 말문이 막혀버렸다.

……솔직히, 이렇게 될 것은 타타라도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다.

칠성검무제 1회전.

거기서 스텔라가 취한 행동이, 그녀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들여도 되지 않을 수고를 짊어지려 한다. 그것을 손해라 생각하지 않는다.

스텔라 버밀리온은, 그런 인간이라고.

알고 있었음에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 버렸다.

조심성이 없었다.

실수했다.

아니, 그것도 변명에 지나지 않다고, 타타라는 생각했다.

그녀는, 마음 속 어딘가에서……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죽으면 울어 준다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에.

실제로, 타타라는 이 스텔라의 참견이, 자신이 했던 말만큼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렇다. 타타라는, 불쾌하지 않았다. 스텔라라는 소녀가. 솔직히 그것을 입에 담을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지닌 상냥함엔 큰 호감이 들었고, 원하지는 않았지만 잃기도 싫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그녀의 상냥함에 기댈 자격이 없을 뿐이다.

그렇다면,

"……상관없다고 말한 건, 미안했어."

"!!"

"걱정해 준 것도, 뭐.. 일단 감사는 해 둘게."

타타라는 스텔라의 참견을 긍정했다.

거기에, 진심이 담긴 감사를.

그리고 그 참견을,

"하지만, 그걸 이유로 내 삶을 방해할 권리는, 너에겐 없어."

타타라는, 거절했다

"난 암살자야. 이미 몇 명이고, 수십 명이고 죽여 왔어."

"하, 하지만 그건! 그런 곳에 태어났으니까……!"

"태어난 장소에 운이 없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벌인 사실들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내가 죽인 녀석들의 목숨은, 이제 돌아오지 않아."

"………"

"그런 녀석이, 지금까지 벌여 온 모든 것들을 없었던 일로 돌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온화한 생애를 보내다 죽는다니, 뻔뻔한 것도 유분수지."

"잘못을 갚으며 살아갈 방법도, 있을 거잖아…… 암살자 같은 걸 계속해 가며, 죄를 쌓아 가는 것보다 더욱──!"

"그건 무리야."

"어째서!"

"나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지를 않으니까."

"읏……!?"

타타라는 말했다.

예를 들면, ……죽여 온 자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면, 죄를 갚는 길을 걸어 나아갈 선택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자신 속에, 그런 감정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살인은 나쁘다는 것.

남을 상처입혀선 안된다는 것.

그런 당연한 윤리감 같은 것을, 교육받은 적이 없었기에.

그렇기에, 기억이 나지를 않는 것이다.

자신이 어떠한 사람을, 싸구려 초콜릿이란 대가로 죽여 왔는가.

이름도, 얼굴도, 무엇 하나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다.

죽이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런 꼴로, 죄를 갚는 것 따위는 불가능하다.

"나는 암살자라는 이름의 괴물이야. 철이 들 때부터 그랬지. 아무리 겉으로 드러난 사죄를 하더라도, 나 자신만은 얼버무릴 수 없어. 조금도 반성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주제에, 외면만 그럴싸하게 포장하지. 그런 꼴사나운 일이 어디에 더 있겠어?"

그런 비겁자만은, 되고 싶지 않았다.

돌아가는 것도,

돌이키는 것도,

죄를 갚을 수도 없다면,

"적어도, 관철해 나아가고 싶어."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조금도 속이지 않은 채, 악당은 악당인 채 살아 나아가……악당으로서 길 구석에 쓰러져 죽고 싶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이 빌어먹을 인생을,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살아 온 자신을, 조금은 좋아할 수 있게 될 것 같았으니까.

"이건 내 에고를 건 싸움이야. 그러니, 네가 내게 감사를 느끼고 있다면, 방해하지 말아 줘."

"………우, 우읏.."

스텔라에게 양보할 수 없는 에고가 있듯, 자신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바람이 있다. 스텔라의 똑바른 감정에, 똑바른 답으로 답해 준 타타라.

그 답은, 스텔라가 바라는 것과는 달랐지만……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을 막아서지 않았다.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에고라는 건, 타인의 불가침 영역. 그걸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이상은, 무엇을 말해도 강요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 알았어. 이제, 말리지 않을게……"

스텔라는 물러났다.

여기에, 타타라는 살짝 미소지었다.

"그거면 됐어. 타타라 유이 따위,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야. 유령이라도 본 거라고 생각하고 얼른 잊어버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스텔라의 앞에서 사라지기 위해,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단달리온이 준비해 둔 다른 색의 소형 제트기를 향해 휠체어를 움직였다.

"우우, 흑…"

등 뒤에서, 스텔라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쫓아올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에서 '윤리'를 꺼내들어 말리려 하지 않았다. 그것은 스텔라가 값싼 동정으로 타타라의 손을 잡아 막는 게 아닌, 진심으로 타타라를 진지하게 생각하여,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어설프게 성실한 점도, 타타라는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흑, 흐윽…"

그녀의 흐느낌에 느껴지는 가슴 속 고통과 미안함을, 자신이 받아야 할 벌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상냥함에 기댈 자격 따윈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을 가지고 논 대가라고. 그렇다면, 아무리 이 자리가 어색하다 할지라도, 불만을 말할 자격 따위는 없다.

"우으읏~~"

마음 속에 새기도록 하자.

자신이 상처입힌 이 소녀의 슬픔을.

비행기에 탄 뒤, 그녀의 흐느낌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리 결심하고, 타타라는 스텔라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후으으으으으으으으~~~~~~~~~……!!"

떠나며 느끼는 그 마음들을, 교훈 삼아 마음속에 새기고,

"으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

새기고……

"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브"

"아오───!! 으브브, 으브브!! 시끄럽네, 진짜!!"

뚝, 하고 관자놀이 언저리에서 무언가가 끊어졌다.

대체 뭐냔 말야. 저 울음소리는.

뒤가 켕기는 수준이 아니다.

이대로 떠나갔다간 뒷머리가 통째로 잡혀 경추가 부러질 것만 같았다.

그런 건 참을 수 없다.

그러니, 타타라는 휠체어를 빙 돌려, 어떤 물건을 스텔라를 향해 날려보냈다.

날려보낸 건, 한 장의 카드.

그건 깔끔한 종회전을 그리며, 스텔라의 미간에 모서리부터 꽂혔다.

"부훗!? 무, 무슨 짓이야~~~!"

"그거 줄 테니까 이제 좀 닥쳐! 꿈에 나올 까봐 무섭다! 그 울음소리!!"

"뭐야, 진짜! 뜯어말리지도 않으니까 헤어질 때 뭘 하건 내 마음이잖아, 바보야!"

혀를 내밀며 타타라의 난폭한 행동에 항의하며, 스텔라는 '준다'고 했던 '카드'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거……명함?"

"내 암살자 명함이야."

"에? 암살자가 명함도 있어?"

"뭐? 비지니스니까 당연하지."

내 참, 이러니 사회 경험 없는 꼬맹이는.

그렇게, 타타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거기에 내 연락처가 써 있잖아. ……확실히 이 전쟁에서 '그 자식'이 버밀리온에 승리를 가져다 주면, 너와의 결혼을 국왕이 인정한다고 했었지. 새빨간 타인도 아니니까, 연락 주면 결혼식 정도엔 얼굴 비칠게. ……그러니까, 그 재미 넘치는 울음소리 그만 둬. 짜증나니까."

그건……타타라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였다.

자신을 잊지 않아도 된다고.

타타라 쪽에서, 자신과 이어질 연결점을 주었다.

여기에, 슬픔에 잠겨 있던 스텔라의 눈은 활력을 되찾아, 루비처럼 빛났다.

"타타라! 꼭 와야 돼! 연락하면 꼭 와야 된다!!"

"그래……알았다고."

"──자! 지금 내 연락처 보낼 테니까! 꼭 등록해야 돼! 이걸로 이별이라니, 난 죽어도 싫으니까!! 혹시 이 연락처, 거짓말로 보낸 거면 온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낼 테니까 각오해!!"

방금까지의 지박령 같은 음습한 분위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스텔라를 보고, 타타라는 자신의 경솔함을 저주했다.

지금 자신은, 틀림없이 엄청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이다.

자신이 그리던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치명적인 실패를.

혹은, ……나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칫……"

그 진위를 생각하는 것도, 어쩐지 귀찮아졌다. 스텔라와 만난 뒤로, 모든 게 엇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지금은 좀 쉬고 싶었다.

타타라는 짜증에 혀를 차고, 이번에야말로 스텔라에게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어쩐지 기쁜 목소리로 "지금 당장 등록해!" 라든가, "요양 잘 해!" 라는 말을 지껄이는 그녀의 말을 전부 무시하고, 파괴된 것과는 다른 색을 지닌 제트기에 탄 뒤, 밀폐문을 닫았다.

그제야 조용해진 것에 한숨을 한 번 내쉬며, 자동 항행 기능을 기동.

《검은 집》의 요양 시설로 향하기 위해, 좌표를 입력했다.

'아.'

그 도중, 타타라는 하나, 스텔라에게 전하려던 말을 잊어버렸던 것을 깨닫고,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 또 문을 열게 되면, 틀림없이 꼬리를 붕붕 휘두르며 달려올 것이다.

그 뻔하디 뻔하게 상상이 가능한 장면에, 엄청나게 성가신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자신이, 그녀의 미소를 한 번 더 보고 어떠한 표정을 짓게 될지, 살짝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 타타라는 문을 열지 않았다.

그대로 비행기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

한 쪽 팔과 능력을 이용해 시트에 앉은 뒤, 자동으로 항행하는 제트기에 몸을 실은 채, 주머니에 손을 넣어──

가장 새로이 등록된 문자 연락처에, 문자를 보냈다.

'내 이름은 '피어'야. 다음에 만날 때 그 이름으로 안 부르면, 대답 안 한다.'

그 문자를 스텔라가 본 것과, 제트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한 건, 거의 동시였다.

"으읏~~~~~~~~~~~!"

다음에 만날 때.

이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한 친구가 한 말에, 뜨거움이 느껴질 정도의 기쁜 눈물이 방금까지의 차가운 슬픔을 씻어버렸고,

"피어~~~! 진짜로, 여러 모로! 정말정말 고마웠어!!!"

스텔라는 이륙하는 비행기를 향해, 감사 인사를 외쳤다. 이미 멀어진 그녀였지만, 그래도 전해지리라는 듯이.

그리고, 멀어지는 비행기를 향해 언제까지나 힘껏 손을 흔들며

──강하게, 결의했다.

다음에 만날 땐 반드시, 피어를 꼬드겨 내겠다고.

이번 한 번은 그녀의 에고를 존중해 물러났지만, 이 문자는, 가능성이다.

피어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런, 아마 지금은 피어 자신도 알아채지 못한, 아니, 설령 알아챘다 할지라도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그녀의 미래의 가능성.

그걸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용서는 없다.

아무리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다 하더라도, 거절당한다 하더라도.

다시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몇 번이고 덤벼들 것이다.

그녀가 손을 뻗을 때, 바로 그 손을 잡아 줄 위치에 있도록 하자.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건, 피어에게 있어서도 결코 의미 없는 것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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