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화 (1/892)

1화. 바둑판

새들이 지저귀고 꽃향기가 일렁이는 조용한 산속. 시원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까지 평화롭게 했다.

이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노닥이며 이곳에 텐트를 쳤다.

회사 동료들끼리 캠핑을 온 것이었다. 물론 이들은 모두 젊은 사람들이었다. 무거운 텐트를 짊어지고 먼 산길을 올라야 하는 여정이다 보니, 나이가 있는 사람은 체력이 받쳐주질 않았다.

여태껏 젊은 사원들은 다들 회사에서 단체로 캠핑하러 가길 원했지만, 회사는 매년 대형 버스를 빌려 워크숍만을 주최했다. 그래서 사원들은 올해에는 반드시 캠핑을 하겠다고 다짐하며, 캠핑 경험이 있는 동료를 앞장세워 산에 오른 것이다.

이 소프트웨어 기업의 2년 차 사원 계연(計緣). 아직 새카만 머리를 한 그는 당연히 젊은 사원 중 하나였다. 텐트를 세운 그는 동료와 함께 모바일 게임을 했다.

“아아, 야! 계연, 도와줘 빨리! 아, 나 죽잖아!”

“널 왜 도와주냐? 그래 봤자 2초면 죽을 텐데, 그 시간에 내가 도망치는 게 낫지. 됐고, 인제 더블킬을…….”

“망할……. 다음에는 네가 궁수 해. 내가 실드 쳐 줄게!”

“아니, 아니……. 필요 없는데…….”

아무것도 없는 산속 같지만, 멀리 산꼭대기에는 기지국이 있었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은 끊김 없이 모바일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전국에는 신호가 나쁜 곳도, 아니 심지어는 신호가 아예 안 잡히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모든 지역에서 인터넷 신호가 당연히 잘 잡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지국은 건설 속도에 박차를 가했고, 사람들에게 인터넷이 끊길 걱정 없는 세상을 안겨주었다.

사원들은 상대적으로 지대가 평탄한 언덕에 텐트를 쳤다. 옆으로 맑은 시냇물까지 흘러주니, 야외 캠핑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장소였다.

이번 캠핑에는 열댓 명이 함께 왔다. 한 무리는 밖에서 사진을 찍느라 바빴고, 몇 명은 텐트를 조립하고 있었다. 지금 한가한 건 왕강(王剛)과 계연, 이군(李軍)뿐이었다.

왕강은 주변에서 돌을 주워 모아 바비큐용 화로를 만들었다. 야영장을 둘러보던 그는 여유롭게 놀고 있는 계연과 이군을 불렀다.

“계연, 이군, 게임 그만하고 가서 장작 좀 구해와요. 곧 불을 피워야지 점심이라도 먹을 수 있을 거예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왕강이 텐트 앞에 앉아있던 두 사람에게 소리치자, 두 사람은 대답했다.

“예!”

“그러죠.”

알았다며 대답하던 이군과 계연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어차피 이번 판도 이기긴 글렀으니, 두 사람은 잠자코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은 야영장 옆 숲속으로 향했다. 두 사람이 숲에 들어서니,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이 서늘한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숲속엔 널린 게 장작이었다. 사방에 나뭇가지가 널브러져 있었으니 말이다. 이군은 커다란 나뭇가지를 하나 쥐어 들고 이리저리 흔들며, ‘얍, 호, 후’ 같은 소리를 웅얼거렸다. 계연이 보기엔 덜떨어진 바보가 따로 없었다.

행여나 바보병에 전염될까 봐, 행여나 이군의 ‘미친’ 곤봉술에 다칠까 봐 걱정스러워진 계연은 멀찍이 그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계연의 할아버지는 남매가 많았으나, 계연의 아버지는 외아들이었다. 계연에게는 고모만 몇이 있었는데, 요즘 젊은이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계연은 형제자매 없는 외아들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 귀했던 걸까. ‘금화(金花), 은화(銀花), 국흥(國興), 취분(翠芬)’ 등 성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이름을 지어주던 계씨 일가는 손주가 태어나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수십 년간 풍수장이로 일한 고모부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계연에게 ‘연(緣)’이라는 외자 이름을 지어주었다. 온 가족이 만족한 이름이었다.

“하……. 산 공기 진짜 좋네! 역시 여행은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가야 한다니까.”

탄성을 내뱉은 계연은 장작을 줍는 것도 잊은 채 숲을 누볐다. 캠프로 돌아갈 때 장작을 주워도 늦지 않았다.

1분 정도 지났을 무렵, 계연은 유난히 높고 커다란 나무 몇 그루를 발견했다. 주변의 나무들보다 얼마나 큰지 가늠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이군, 이군. 이리 와봐. 여기 엄청나게 큰 나무가 있어, 이군!”

소리치던 계연이 고개를 돌렸지만, 이군은 여전히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놀고 있었다. 계연은 우선 혼자 나무를 살펴보고, 이따가 사람들을 불러오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무 가까이 다가가자, 전율이 계연의 몸을 휘감았다.

맨 앞의 나무만 보아도 땅 위로 드러난 뿌리가 수두룩했다. 흙을 잔뜩 움켜쥔 뿌리는 얼핏 보아도 계연의 허벅지만큼 두꺼웠다.

‘대박……! 이 나무는 몇 년이나 된 나무일까?’

우두산(牛頭山)은 유명한 관광명소 축엔 끼지 못했지만, 캠핑과 바비큐를 즐기러 오는 사람은 제법 되었다. 그러니 이곳에 놀러 온 사람들이 일찌감치 이 커다란 나무를 찍어서 SNS에 올렸을지도 몰랐다.

계연은 별생각 없이 나무를 둘러보았고, 곧 커다란 나무는 그의 시야 한편을 가렸다.

“어라?”

이때, 계연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의문에 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반대편에 늘어진 높고 커다란 나무 틈 사이로 바둑판 하나가 계연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무 그루터기 위에 놓인 바둑판이 말이다.

계연은 저도 모르게 걸어가, 바둑판이 놓인 나무 그루터기 앞에 멈춰 섰다.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여행객 주의’ 등의 경고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물론 바둑을 두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바둑판 위에는 흑돌과 백돌이 질서 없이 뒤섞여 있었다. 흑돌은 진(陣)이고, 백돌은 용(龍)인 걸 보니, 전형적인 중국식 바둑이었다. 심지어 대국하다 중단된 판국이었다.

이에 계연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우두산도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건가?’

그렇다기엔 바둑판과 주변이 온통 낙엽과 마른 가지들로 뒤덮여 있었고, 그중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새똥과 썩은 과일들도 있었다. 이곳에서 누군가 대국했던 것이든, 아니면 모양으로 전시해둔 것이든 간에, 아주 오래전에 펼쳐둔 바둑판인 건 분명했다.

계연의 시선이 바둑판 너머 특이하게 생긴 물건에 향했다. 오래된 나무 옆, 시퍼렇게 녹슨 물건이었다. 어찌나 오래되었는지, 심하게 부식되어 원래의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가까이 다가가 물건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계연은 생각했다.

‘심하게 녹이 슨 도끼인가? 잠깐! 설마 이거 전설 속의 난가기국(爛柯棋局)은 아니겠지?!’

계연이 스스로 생각해도 기가 찼다. 그러나 현재 상황이 전설 속 이야기와 사뭇 흡사하다 보니, 이 광경에 관심이 생겼다.

계연은 다시금 바둑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바둑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계연이였지만, 바둑판 가득 놓인 흑돌과 백돌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순간적으로 용처럼 놓인 백돌들의 형태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중요한 게 빠진 듯한 느낌도 들었거니와, 백돌들이 혼잡한 흑돌들에 둘러싸여 위협받는 듯이 보였다.

흑돌들에게 위협당하는 듯한 기분은 마치 일종의 강박증처럼 계연을 휘감았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바둑판 양옆의 바둑알 통을 본 계연은, 무언가에 홀린 듯 손을 뻗어 백돌을 쥐어 들었다.

묵직한 백돌은 마치 바둑알이 아니라, 그럴싸한 도자기 작품 같았다. 잠시 헤아리던 계연은 마치 도둑놈처럼 주변을 살피다가, 바둑판 정중앙에 백돌을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바둑 용어로 말하면, ‘천원(*天元: 바둑판 중앙의 화점)’의 위치에 말이다.

“됐다. 인제야 마음이 놓이네!”

후련하게 손뼉을 치던 계연은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사진과 동영상을 몇 개 찍은 다음, 동료들을 불러올 생각이었다.

한데 어째서인지 핸드폰을 아무리 눌러도 화면이 켜지질 않았다.

“젠장! 뭐야? 배터리가 나갔나?”

핸드폰의 배터리가 떨어진 게 틀림없었다. 계연은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지만, 짧은 진동음과 함께 켜지나 싶던 핸드폰은 힘없이 꺼졌다. 이번에는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전원이 들어오질 않았다.

‘조금 전 게임을 할 때만 해도 배터리가 80%는 됐는데, 왜 갑자기 전원이 나가버린 거지?’

이내 계연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나무 막대를 휘두르던 이군이 보이질 않았다.

‘그냥 돌아가서 충전이나 해야겠다.’

계연은 이만 돌아가기로 했다. 몇 걸음 가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몇 분 정도 지나자, 계연은 머리가 띵해졌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 옆으로 텅 빈 언덕만이 그를 반겼다.

‘캠프는 어디로 갔지?’

회사 사람들은 고사하고, 텐트마저도 보이질 않았다.

‘제기랄,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만우절도 아니었다. 아니, 행여나 만우절이라 해도 힘들게 친 텐트를 치우면서까지 장난칠 사람이 어디 있겠나?

주변을 살펴보던 계연은 먼 시냇가에 앉아 쉬고 있는 제복 차림의 사람 둘을 발견했다. 이에 계연은 그들에게로 빠르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뭐 좀 여쭐게요. 여기 캠프에 있던 사람들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텐트가 있었거든요!”

갑작스러운 소리에 화들짝 놀란 듯, 두 사람의 몸이 움찔했다.

고개를 돌린 그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계연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잠시 휴식하는 와중에도 주변을 주의 깊게 살펴왔기에 계연의 출현이 다소 뜬금없게 느껴졌다.

계연의 질문에 그들 중 한 사람이 대답했다.

“캠프요? 좀 전에요? 요 며칠 우두산에 캠핑 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다들 실종자 찾느라 바쁜데.”

“네?”

그 대답에 계연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

“산에서 누가 실종됐어요?”

회사에서 캠핑을 오기 전 사전 조사를 했었는데, 이곳에선 아무런 사건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하물며 날씨마저 완벽했었다.

“네. 거의 보름은 됐을 거예요. 계연이라는 사람인데, 회사 동료들과 캠핑을 왔다가 실종되었다고 해요. 참, 산에는 누구랑 같이 오신 거죠? 실종자 수색에 관해 모르셨어요?”

수색 대원은 눈앞의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외모였다. 한편 그 옆의 계연은 수색 대원의 말에 넋을 잃었다.

‘실종? 내가……? 보름이나 됐다고?’

먼저 황당해하던 계연은, 다음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경악하던 계연이 입을 채 열기도 전, 극심한 어지러움이 찾아든 것이다.

눈앞이 캄캄해진 계연은, 순식간에 체력이 바닥 난 듯이 무력감과 어지러움 속에서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선생님? 선생님, 왜 그러세요? 조심하세요!”

“잡아, 잡아!”

“안 되겠어! 지원 요청해……!”

이것이 계연이 이번 생에 들은 마지막 목소리였다. 두 수색 대원의 목소리는 마치 손이 닿지 않는 저 멀리서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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