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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4화 (4/892)

4화. 이상해

불더미 주위에 앉아있던 장수들이 웃고 떠드는 동안, 금순복은 여전히 인상을 피지 못했다. 이를 발견한 장사림이 그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금 노인, 무슨 일이에요? 수선진에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건데요?”

금순복이 따끈한 물을 한 모금 들이켜 입속의 과자를 꿀떡 삼켰다. 주변을 살피던 그가 역시나 작은 목소리로 장사림에게 대답했다.

“사림, 수선진에서 들었는데, 이 우규산에 요괴가 나오는 것 같대…….”

어째서인지 그 말에 장사림의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당시에는 농담처럼 웃어넘기고 딱히 신경도 쓰지 않았어. 작년에만 해도 우규산을 두 번이나 왔었는데, 무슨 일이 있겠나 하고 말이야. 한데 지금 갑자기 마음이 불안하네. 사림, 내 말 우스갯소리로 받아들이지 마…….”

금순복은 설명과 함께 자신을 위로하는 듯한 말을 덧붙였다.

“괜히 혼자 겁먹지 말고, 편히 쉬기나 하세요!”

말을 마친 장사림이 금순복의 팔을 토닥였다. 외지에 나온 그들에겐 작은 규칙이 하나 있었다. 낮이든 밤이든 절대 다른 사람의 어깨를 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산신당에 사람 하나가 널브러져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소름이 끼쳤다. 저기 식물인간처럼 누워있는 계연 말이다.

이들의 말은 절대 농담이 아니었고, 이들이 연기하는 것도 아니었다. 만약 이것이 연극이라면, 계연이 극장과 촬영 기기의 소음을 못 들을 리 없었다. 계연은 이곳에 자신을 제외한 사람이 이들 열두 명뿐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발소리 하나가 서서히 가까워지자 계연은 잡념에서 빠져나왔다.

장사림은 나무 그릇 하나를 들고 신상 뒤의 거지에게 다가갔다. 거지의 이마는 여전히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숨도 금방이라도 끊길 듯 여렸다. 거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얼굴에 때가 잔뜩 끼어 있었지만, 종기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장사림은 손목으로 계연의 머리를 받쳐 들고는, 계연의 마른 입술에 그릇을 조심스레 가져다 대었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이거라도 마셔요…….”

적당히 따듯한 물이 계연의 입가를 타고 흐르며 충분한 물이 그의 입안을 적셨다. 계연의 목구멍은 반사적으로 물을 꿀꺽꿀꺽 삼켰다.

달콤한 물이 속을 적시자, 계연은 온몸이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계연은 조금 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구별할 수 있었다. 그는 일행 중 ‘사림 형님’, ‘사림’, ‘장 두령’이라 불리는, 장사림이었다.

아무래도 이 사람은 정신병자 같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강렬한 의구심이 계연의 마음속에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설마, 내가 타임슬립을 한 건가?’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자신이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에게 신비로운 일이 생기길 바라는 편이고, 계연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계연은 이 상황에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 계연은 매우 불안했다.

아마도 신에게는 인간들의 일부 문학 작품과 영화가, 도전적이고 재미있게 다가왔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현실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않은가.

순식간에 계연의 머릿속은 미지의 위험으로 물들었다. 질병과 천재지변, 인명피해, 악운을 비롯한 모든 불길한 것들로 말이다.

이곳은 어쩌면 법률과 의료 체계가 낙후된 세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계연의 마음에 극심한 긴장감과 불안감을 선사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계로 와버렸다.’

심지어 판타지 영화에서 나올법한 말도 안 되는 위협을 맞닥뜨릴지도 몰랐다. 차라리 맹수면 낫지, 요괴는 정말 두려웠다.

바둑판을 몇 분 보았을 뿐인데, 보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지 않았던가. 이러한 경험 때문인지, 계연은 자신이 떨어진 세계에 정말 요괴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믿었다.

더 최악인 것은, 지금의 자신이 불구에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상황만 보면 그러했다. 자신의 신체는 평범한 축에도 끼지 못했고, 자신을 보호할 능력 같은 건 애당초 찾아볼 수도 없었다. 아마 쥐새끼 한 마리에게만 물려도 죽을지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움직일 수 없었지만, 몸의 감각은 여전하다는 점이었다. 반신불수는 신체 일부 부위의 감각까지 잃는 것이니, 이로써 사지 마비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계연은 당혹스러움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낯선 일행들의 인심이 나빠 보이지 않았지만, 이들이 이곳에서 자신을 꺼내줄지는 알 수 없었다.

‘이곳의 의사라도 찾아가 주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은 홀로 깊은 산중에 있는 데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으니, 무사히 체력을 보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산속에는 위험한 동물이 너무나 많았고, 거기에 바둑판 앞에서 겪은 특수한 경험을 떠올리면, 정말 자신이 요괴의 세계에 떨어졌는지도 몰랐다.

현실은 만화가 아니었고, 요괴는 더욱이 귀엽고 깜찍할 리 없었다. 전래 동화만 보아도 대부분의 요괴는 사람을 잡아먹지 않던가.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다면, 어떻게 해서든 입이라도 열어서 구해달라고 말해야 했다.

* * *

장사림은 눈앞의 거지에게 따뜻한 물을 먹였다. 거지의 입가가 아주 살짝 움직이긴 했지만, 거지는 여전히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질 못했다.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거지를 자리에 눕힌 장사림이 동료들 곁으로 돌아갔다.

“사림 형님, 그 거지는 어떡할까요. 하산할 때 데려갈까요?”

장사림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상태가 좋지 않아. 얼마 살지도 못할 거야. 하산할 때까지 버티지 못하고…….”

그 말을 끝으로 장사림은 입을 다물었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일행은 그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죽겠지!’

이들의 대화에 산신상 뒤편에 누워있던 계연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비는 여전히 그칠 줄을 몰랐고, 뜨내기 장사꾼들은 담소를 나누며 휴식을 즐겼다. 그들의 화제는 사실 21세기 사람들의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저런 헛소문부터 시작해서, 어디 아가씨가 예쁘다는 등의 음담패설도 간간이 나누었다.

물론 그들의 대화를 통해, 계연은 이 무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충분히 확신할 순 없지만, 이들은 어렸을 때 보았던 보따리장수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아마도 먼 길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아 돈벌이하는 사람들인 듯했다.

계연은 별생각 없이 처량한 마음으로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사이사이 들려오는 산신당 바깥세상의 소리에 계연의 마음이 겨우 차분해졌다.

일행은 자신을 거지라고 불렀다.

‘내 영혼이 이곳 세계의 거지에게 달라붙은 걸까? 우두산에서 수색 대원이 발견한 나는 이미 죽었을까? 하긴, 장장 보름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였으니, 죽었겠지……. 어머니, 아버지는 소식을 듣고 크게 상심하셨겠지. 할아버지, 할머니는 연로하신데, 소식을 들으시면…….’

계연이 터무니없는 생각에 잠긴 사이, 투명한 눈물이 그의 지저분한 두 뺨을 타고 흘렀다.

아무런 에너지도 소모하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계연은 허기를 느끼지 못했다.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바깥의 비가 차차 그치기 시작했다.

계연의 마음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뜨내기 장수들은 비가 그치자마자 산신당을 떠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사림 형님, 비가 그친 것 같아요!”

왕동이라는 이름의 젊은이가 말했다.

“그렇긴 한데, 곧 날이 저물 거야. 비 온 뒤 산길은 밤중에 걷기가 위험해. 오늘은 산신당에서 밤을 보내자고.”

뒤이어 장사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연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벌써 해 질 무렵이 되었구나.’

계연에겐 오히려 잘 된 셈이었다. 비가 늦게 그친 덕분에, 일행이 최소한 오늘 밤에는 자신을 혼자 남겨둘 리 없었으니 말이다.

비가 그치자, 일행 중 일부는 산신당 주변에서 빗물에 젖은 장작을 가져와 화로에 말렸다. 밤 동안 사용할 땔감을 충분히 비축해두는 것이었다.

일행들은 계연의 존재를 잊은 듯했다. 밤이 깊어지자, 더는 누구도 계연의 상태를 살피러 오지 않았다.

계연은 장사림이든 누구든 자신의 이마에 새 수건을 올려주고, 자신에게 물을 먹여주길 바랐다. 정확히는 그런 행위 자체를 바라는 게 아니라, 이 장사꾼들이 자신을 버리고 가지 않으리라는 일말의 희망을 붙잡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계연은 이 일행의 눈에는 그저 머지않아 숨을 거둘 병든 거지에 불과했다.

만약 21세기였다면, 벌써 계연은 구조됐을 터였다. 이런 생각을 계연은 셀 수도 없이 거듭했다.

“와, 이 폐허에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무서웠는데 다행이네!”

그때, 놀라움 섞인 낯선 목소리가 산신당 입구에서 들려왔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소리에 장사림의 일행들은 입구를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입구에는 피풍을 두르고 서생처럼 생긴 사람이 서 있었다. 신당 안의 무리를 발견한 그는 무척이나 기뻐 보였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소이다! 낮에 산을 돌아다니다가 벗과 흩어졌는데, 그만 길을 잃고 말았지 뭐요. 그러다 갑자기 비가 내리는 바람에 잠시 마땅한 곳에서 비를 피하던 중이었소. 비가 그치자마자 날이 어두워져서 괜히 무서웠는데, 마침 이곳의 불빛을 보고 찾아왔소이다!”

낯선 사내는 말을 늘어놓으며 산신당 안으로 들어왔다.

“당신들이 산적이라도 상관없소. 당신들이 산에서 내려갈 때 나도 데려가 주신다면, 내 가진 돈을 몽땅 잃어도 괜찮소. 나 혼자서는 도저히 산에서 내려갈 용기가 없소이다!”

사내가 긴장하고 놀란 모습을 드러내자 장사림의 일행들은 웃으며 시름을 놓았다. 그들이 보기에 저 사람은 그저 운 나쁜 서생에 불과했다.

“와서 불 좀 쬐시죠. 저희는 산적이 아니에요!”

“하하하, 서생들은 역시 유유자적하군요. 산에서 산책을 하다니! 무슨 관직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니오, 아니오. 이거 참, 부끄러울 따름이오…….”

서생은 어색한 듯 조심스럽게 행동했지만, 그가 졸인 마음을 내려놓았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런 모습에 뜨내기 장수들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산신당 안에서 싸한 느낌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계연의 등은 서늘해졌다. 그뿐만이 아니라 머리털이 쭈뼛쭈뼛 서며, 온몸에서 닭살이 마구 돋았다.

장사림의 일행과 서생의 대화를 들은 뒤에야, 계연은 산신당에 사람 하나가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아하게도 계연은 저 서생이라는 자가 산신당에 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었다. 서생이라는 자의 발소리를 들은 적도 없었다!

‘저 서생은 어딘가 수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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