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호랑이를 위해 창귀가 된 자
한편, 이곳에 남기로 한 장사꾼 여덟 명은 시야에서 횃불이 사라진 뒤에야 산신당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기쁨이 뒤엉켜있었다.
산왕삼이 아닌 10년산 인삼이라 할지라도, 그 가치가 굉장했다. 어차피 돈 있는 사람들은 제 목숨을 소중히 여겨서, 좋은 약재라면 얼마를 부르든 사 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장 두령! 저 거지 왜 저래?!”
그때, 불더미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계연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는 놀라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장사림이 한달음에 계연의 곁으로 달려갔고, 다른 장사꾼들도 그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들은 몸부림치는 계연의 모습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땀을 너무 흘리는데…….”
“설마 간질인가?”
“나무 막대 가져와서 입 좀 벌려줘, 이러다 혀가 물려 잘리겠어!”
무릎을 꿇고 앉은 장사림이 경련을 일으키는 거지의 몸을 고정한 채,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곧바로 누군가 장작더미에서 적당한 나무 막대를 찾아왔다.
“내가 입을 벌릴 테니까, 바로 입에 끼워 넣어!”
“으……. 으으…….”
계연은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자신이 간질도 아닐뿐더러, 나무 막대가 얼마나 더러울지 누가 아는가!
“몸 좀 고정해봐!”
머지않아, 계연의 떨리는 입술 사이에 나무 막대가 끼워졌다. 다행히도 막대기는 가로로 넣어져, 계연이 막대를 씹을 수 있게 되었다.
잠시 계연을 살피던 장사꾼들은 다시금 불더미 옆으로 돌아갔다.
누군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을 넘기진 못하겠네.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가 대신 땅에 묻어주자고.”
“그래. 앞으로 또 산신당에 올 일이 있을 텐데, 시체를 덩그러니 남겨두고 갈 수는 없지.”
‘아니, 이 사람들이!’
저들이 선의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지만, 계연의 이마엔 핏발이 마구 섰다.
* * *
산왕삼을 캐러 간 사람들이 출발한 지 십여 분 정도가 흘렀다.
어흥!
이때, 두려운 포효가 먼 곳에서 울려 퍼졌다. 산신당 안의 모든 사람이 화들짝 놀라 정신을 번뜩였다.
짹짹…….
푸드덕, 푸드덕…….
주변 숲에서 무수히 많은 새가 겁에 질려 사방으로 날아오르자, 산신당 주변은 다급하게 울리는 새소리가 가득 퍼졌다.
그와 동시에 찬 바람이 산신당 문을 통해 밀려 들어왔고, 불더미가 불안하게 일렁였다.
“두령!”
“사림! 이게 무슨 소리지?”
“들짐승인가?”
장사림의 안색이 창백하게 가라앉았다. 그가 신당 밖의 어둠을 바라보며 무심코 몸을 움츠렸다.
“범의 울부짖음에 산이 놀랐어. 범이야!”
“허…….”
주변엔 차갑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뿐이었다.
“그럼 동이랑 금 노인네는!?”
누구도 함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장사림 또한 주먹을 쥔 채 산신당 밖을 바라보았다.
“범의 울음소리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동이네는…… 무사할 거야. 그래, 횃불도 가져갔잖아. 우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다들 준비하고 있자고. 오늘 밤 잠자긴 글렀어!”
호랑이의 울음소리에 놀란 계연이 몸을 흠칫 떨었다.
이윽고 계연은 놀랍게도 육체의 통제권을 성공적으로 쟁취했다.
계연은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아직 동작이 서툴고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무턱대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는 없었다. 그는 어렵사리 되찾은 감각을 세세하게 관찰하며 만끽했다.
곧이어 계연이 천천히 눈을 떴다. 만약 그에게 거울이 있었다면, 계연은 지금 자신의 눈동자가 다소 옅은 빛바랜 회백색이란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빛이 희미하게 느껴졌고, 어두컴컴해서 앞이 잘 보이질 않았다. 희미하게나마 형체가 보여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계연은 자신이 맹인이 되었다고 생각할 뻔했다.
계연은 살며시 머리를 움직여, 불더미 쪽을 바라보았다. 이내 계연의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불더미의 형체가 너무도 희미했다. 마치 사이에 불투명한 유리를 끼워 넣은 듯, 불빛이 선명하지 않았다.
‘시력에 문제가 생긴 건가……. 적어도 완전 실명한 건 아니라 다행이네.’
계연은 속으로 자신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눈을 뜨니, 눈동자가 다소 시큰거렸다. 견디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불편했다.
“장 두령, 거지가 깨어났어!”
남아 있던 장사꾼들은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는데, 그중 누군가가 눈을 뜬 계연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그 목소리에 일행은 계연이 누워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과연, 거지는 자신들을 바라보며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지금은 장사림마저 일면식 없는 거지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들은 소쿠리에서 나무 패는 칼과 짧은 막대 같은 것을 꺼내 손에 움켜쥐었고, 긴장의 끈을 붙잡은 채 산신당의 입구를 예의 주시했다.
계연은 자신의 시력 문제에 연연할 여력이 없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숨이었다. 계연은 몸을 일으켜 앉아보려 했다. 그러나 두 팔로 지탱해 몸을 살짝 일으키는 순간, 극심한 어지럼증과 무력감이 몰려들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계연은 또다시 바닥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씁……. 하…….”
얼마나 아프던지, 계연은 절로 이를 드러냈다.
계연은 자신이 움직일 수는 있지만, 중병에서 겨우 회복한 상태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었고, 뜨내기 장사꾼들은 계연에게 눈길 한 번을 주지 않았다.
계연은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옆에 놓인 산신상의 받침을 잡은 그는 무척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몸을 일으키느라 기력을 잃은 계연이 어지럼증에 허덕이는 동안, 소리 하나가 산신당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사림 형님, 사림 형님!”
산신당 안의 사람들이 흥분했다.
“동이다! 동이가 돌아왔어!”
과연, 왕동의 형체가 빠르게 산신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곧바로 긴장 어린 표정의 장사림 일행에게 둘러싸였다.
“동아, 왜 너 혼자 온 거야? 금 노인이랑 다른 사람들은? 그 서생은? 방금 범의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너희도 들었어?”
장사림이 몇 가지 질문을 연달아 퍼부으며 왕동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왕동의 안색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는 사람들이 건네는 물도 마다한 채, 장사림을 슬쩍 바라보다 시선을 옮겼다. 겨우 숨을 고른 그가 질문에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은 육 선생이랑 같이 있어요. 산왕삼 캐는 일도 아주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고요. 다만…….”
“다만, 뭐? 아이고, 동아, 평소에는 그리 말을 잘하더니만, 지금은 왜 그리 횡설수설하는 거야!”
“말 끊지 마!”
장사림이 소리쳤다. 그가 얼굴빛이 창백한 왕동을 바라보았다.
“동아, 계속 말해.”
“네. 산왕삼은 비탈에 있었어요. 저희가 겨우 산왕삼을 캐자마자, 멀리서 범 소리가 들렸어요. 정말 깜짝 놀랐죠. 금 노인과 육 서생, 그리고 유전까지 모두 화들짝 놀라 발을 헛디뎠고, 곧장 비탈 아래로 미끄러졌어요!”
살며시 고개를 숙인 왕동의 말에 일행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뭐라고? 미끄러졌다고?”
“금 노인이랑 유전은 어떤데?”
“언덕이 높아?”
“동아, 뭐라고 대꾸 좀 해 봐!”
조급해진 장사림이 왕동의 팔을 부여잡고 물었다.
그가 팔을 흔들자, 왕동은 정신을 차린 듯 한결 말끔해진 어투로 대답했다.
“언덕은 높지 않고, 경사도 심한 편은 아니에요. 다들 크게 다치진 않았는데, 발을 좀 심하게 삔 것 같아요. 금 노인께서 제게 두세 사람을 불러오라고 하셨어요. 아무래도 같이 부축해서 돌아와야 할 것 같아요. 이귀가 지금 살펴주고 있어요.”
“그럼 꾸물대지 말고, 빨리 출발하자고!”
“그래, 그래!”
“나도 같이 가!”
호랑이를 마주치지 않았다는 말에 시름을 놓은 사람들은 서로 돕겠다며 나섰다.
장사림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내가 두(杜)랑 아화(阿華) 데리고 다녀올 테니까, 나머지 사람들은 산신당에 남아서 짐을 잘 지키고 있어.”
그 사이, 장사림과 주변 사람들은 나무 막대에 불을 붙였다.
계연의 손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찌릿찌릿한 한기가 그의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계연은 이 젊은 장사꾼의 목소리를 구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계연은 아무런 발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계연이 희뿌연 눈으로 그들을 보았을 때, 희미한 시야 속에서 왕동의 형체가 두 개로 겹쳐 보였다. 하나는 매우 정상적이었는데, 나머지 하나는 목이 이상하게 한쪽으로 꺾여져 있었고, 가끔 경련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광경에 계연의 몸에 돋은 닭살이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공교롭게도 옆에 있던 장사림과 다른 사람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저건 이미 사람이 아니다!’
조금 전의 호랑이 울음소리를 떠올린 계연은 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
계연은 무서워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일행을 데리고 저 창귀(*倀鬼: 호랑이의 시중을 들며 먹이를 찾아주는 나쁜 귀신)를 따라가겠다는 장사림의 말에 다급해진 나머지, 더는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장사림이 죽는 것을 원치 않을뿐더러, 산신당에 다섯 사람만 남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장사림과 일행이 횃불을 들고 밖으로 달려나가려던 그때.
“어서 가자, 동아 네가 앞장서, 우리가…….”
“잠깐!”
뜬금없이 울려 퍼진 낯선 목소리에 모두가 질겁했다. 불안하게 주변을 살피던 그들은 그것이 그 거지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 일어난 것인지, 그는 산신상 한쪽에 앉아, 산신당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계연의 목소리는 몸 상태와 달리, 아주 맑고 옹골졌다.
“장사림, 왕동은 정상이 아니에요. 따라가면 안 돼요!”
계연의 목소리에 왕동이 빳빳하게 굳은 머리를 힘겹게 돌려 그를 바라보자, 계연은 뒤통수가 저릿저릿해졌다.
“거지, 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사림 형님, 어서 가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응, 그래.”
자신의 동료와 허름한 거지 중 누구를 믿을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장사림은 단숨에 산신당 문을 빠져나갔다.
“거기 서요! 왕동은 이미 죽었다고요!”
그 외침에 장사림을 비롯한 사람들이 우뚝 멈춰선 채, 반사적으로 왕동을 바라보았다. 산신당 밖에서 그들을 바라보던 왕동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얼굴을 가리고 말했다.
“사림 형님, 빨리요. 다들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저 거지가 하는 헛소리는 듣지 마세요. 보세요, 저 멀쩡하잖아요?”
왕동이 한 발자국 다가왔다. 그러자 횃불에 그의 얼굴 반쪽이 비쳤다. 창백한 피부색의 아래 힘겹게 끌어올린 입꼬리는 억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굉장히 어색하고, 상당히 이상했다!
모든 장사꾼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밖으로 나가려던 사람들이 재빨리 발을 물렸다.
장사림은 침을 꼴딱 삼킨 뒤, 왕동과 거지꼴을 한 계연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동아, 너, 너 정말 괜찮은 거야?”
그러나 왕동이 대답하기도 전에, 산신당에 앉아있던 계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호랑이를 위해 창귀가 된 거라고요. 왕동은 이미 창귀예요. 아까 육 서생처럼 당신들을 호랑이에게 유인해 먹이로 바칠 거예요! 저자를 따라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창귀……!”
장사림을 비롯한 사람들이 매우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조금 전 호랑이 울음소리와 산신당으로 돌아온 왕동의 행동을 곱씹으니, 장사꾼들은 머리의 피가 바싹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사림 형님, 저 사람 말 믿지 마세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왕동이 산신당으로 다가왔다. 그의 목소리에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동아, 일단 가까이 오지 마!”
장사림이 횃불을 앞으로 들이밀며 외치자, 왕동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산신당 입구에 선 장사림을 바라보았고, 장사림 또한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짧은 침묵 끝에 펼쳐진 광경은 곧 사람들에게 숨 막히는 공포를 안겨주었다. 왕동이 갑자기 흐릿해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연기가 되어 산신당 밖으로 흩어져 사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