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우물물은 강물을 범하지 않는다
댕그랑-!
나무 패는 칼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고, 놀란 장사꾼 둘이 뒤로 나자빠졌다.
“귀, 귀신이야!”
“아악!”
“이게 무슨 일이야!”
“안으로 들어가! 안으로!”
“그래, 그래, 어서 안으로 들어가. 다들, 어서……!”
나머지 여덟 명의 장사꾼들이 헐레벌떡 산신당 안으로 도망쳐 들어왔다. 그들은 무의식중에 산신상 옆의 거지와 가장 가까이 자리를 잡고 섰다.
장사림은 여전히 불규칙한 숨을 몰아쉬며 어두운 바깥과 계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다, 당신은 고인(高人)이십니까?”
장사림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계연이 손을 들어 그를 저지했다. 계연의 안색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빴고, 그의 입술은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다만 주변이 다소 어두워서 아무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스스슥. 스스슥…….
바람이 서서히 거세지더니, 풀과 나무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곧이어 귓가에 묵직하고 힘 있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그 소리가 가까워졌다. 입을 쩍 벌리고 낮게 우는 짐승의 소리가 산신당 밖에서 흘러들어왔다. 낮게 포효하는 소리도 섞여 있었다.
계연이 마른 침을 삼키며 긴장한 눈으로 산신당 밖을 주시했다. 단 몇 초 사이에 그의 등은 땀에 흠뻑 젖고 말았다.
“조용히 해요. 놈이 왔어요…….”
‘놈?’
잠시 넋을 잃은 장사꾼들은 곧이어 혈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창백해진 얼굴을 내비쳤다. 모두는 계연이 말하는 ‘놈’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 수 있었다.
계연 역시 너무 무서웠다. 솔직히 말하면, 그는 이 장사꾼들보다 훨씬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호흡마저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침착한 자세를 유지한 덕분인지, 장사꾼들보다 상태가 좋아 보였다.
네 개의 발과 두 다리가 내는 소리는 확연히 달랐다. 계연은 건조하고 시큰한 눈을 꼭 감은 채, 청각에 모든 정신을 집중시켰다.
소리는 매우 가벼웠지만, 다양하게 들려왔다. 들어보니 범은 발바닥으로 흙과 마른 낙엽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서로 교차하며 걸어가는 범의 네 다리는 마치 한적하게 산책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들었던 주변의 바람 소리와 풀이 흔들리던 소리가 아까보다 더욱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숲의 새들은 겁에 질린 듯, 아무런 소리도 내질 않았다.
‘호랑이일까? 아니면 호랑이 모습을 한 요괴?’
계연의 낡은 옷가지는 이미 땀에 흠뻑 젖었다.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계연은 산신당 안의 사람들이 이 상황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산신당 안의 사람들은 감히 숨소리조차 내질 못했다. 손에 들린 무기를 꼭 움켜쥔 채, 불더미 옆에 몸을 움츠린 그들은 산신당 대문만 뚫어질 듯이 쳐다보았다.
그들은 계연처럼 예민한 청각을 지니지 않았지만, 바람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주변의 꽃과 풀, 나뭇가지들이 방향성을 잃고 마구잡이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처럼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모든 장사꾼의 이마에 뜨거운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어흥!
이때, 맹렬한 호랑이 울음소리가 산신당 밖에서 울려 퍼졌다. 주변은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고, 수많은 새가 놀라 소리치며 날갯짓을 했다.
물론 산신당 안의 사람들은 더욱이 놀라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이쯤 되니, 금 노인 일행이 아직 살아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계연의 마음은 뒤숭숭해졌다. 좀 전의 창귀도, 지금의 포효성도, 바깥에 절대 평범하지 않은 호랑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으니 말이다.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지는 사람들과 무서워 죽을 것 같은 반 맹인 신세의 자신은, 어쩌면 요괴로 변해버린 맹호(猛虎)는 고사하고, 평범한 호랑이 앞에서도 무릎 꿇고 말지도 몰랐다.
계연이 속으로 욕설을 퍼붓던 바로 그때, 무언가 그의 생각을 가로막았다.
“우물물은 강물을 범하지 않는다지. 산신당에 들어간 것도 아닌데, 너는 왜 저들을 도우려는 거지?”
호랑이의 사나운 포효성이 섞인 낮고 중후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계연의 심장이 움찔거렸다.
‘이런 젠장, 진짜 호랑이 요괴잖아!’
계연은 요괴의 말에 담긴 정보를 잽싸게 알아차렸다. 계연은 태어나 제일 빠른 속도로 머리를 굴렸다. 숨을 몇 번 몰아쉬는 사이에 수백 수천 개의 가능성을 머릿속으로 그려냈다.
그러는 사이 매우 놀란 뜨내기 장사꾼들은, 저도 모르게 자신들 옆의 거지꼴을 한 계연을 바라보았다.
‘망할, 이런 괴상한 곳에 온 이상, 어쨌든 죽게 되겠지. 죽기 전에 도박이나 해보자!’
이를 악문 계연은 두려움에 휩싸였던 소심한 마음을 떨쳐내고, 우렁찬 목소리를 배에서 끄집어냈다.
“우물물은 강물을 범하지 않기에, 그 서생 창귀가 찾아왔을 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하지만 장사림은 심성이 고와 내게 따뜻한 물을 먹인 사람이야. 작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절대 이들을 죽음의 길로 내몰 수 없어.”
단숨에 긴 말을 내뱉고 나니, 계연의 심장이 방아쇠를 당긴 기관총처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뛰었다.
밖에는 침묵이 흘렀다. 계연은 조금 있으면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무슨 문제를 궁리하기라도 한 듯, 한참 뒤에야 흉악한 요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만 이번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이었다.
“내 비록 너를 처음 만났으나, 네가 이곳에 온 이후로 달포 동안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는 걸 알아. 한데, 지금은 어찌 그리 생기가 있는 건가?”
계연이 몰래 시름을 내려놓았다. 다짜고짜 쳐들어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적절한 대답을 찾기 위해, 그는 최대한 머리를 쥐어짰다.
앞서 생각한 것처럼, 계연은 자신의 영혼만 과거에 떨어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니까 자신은 지금 다른 사람의 육체를 차지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상대의 질문은 적어도 중요 요소 세 가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첫 번째, 저 호랑이 요괴는 깊은 산에 살고, 거지가 산신당에 머무는 동안에 이들 둘은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었다.
두 번째, 어쩌면 이 거지는 처음부터 평범하지 않은 인물이었고, 그 때문에 저 사나운 호랑이 요괴가 이 거지를 건드리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몸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잡아먹지 않거나, 결벽증이 있는 요괴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세 번째, 저 요괴가 가장 궁금해하는 점은 이 거지가 원래 곧 죽을 목숨이었다는 것이다. 계연이 과거로 떨어진 것이 맹호의 눈에는 거지가 갑자기 생기를 되찾은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계연은 사실이야 어찌 되었든 좋은 결과만을 원했다. 저 호랑이 요괴를 속여서 일행의 안전과 가장 중요한 자신의 안전을 지켜야 했다.
벌써 긴 시간이 흘렀다. 자칫 바깥의 것이 인내심을 잃으면 큰일이 벌어질 터였다. 계연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자, 예전에 보았던 이야기들과 여러 유치한 환상들이 그의 뇌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한편, 다른 사람들은 거지가 침묵 끝에 입을 연다고 생각했다.
계연은 일부러 느린 어투로 말했다.
“얼마든지 알려줄 수 있지. 말하자니 우습지만, 당시 나는 죽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걸 알고 이곳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미처 생각지도 못하게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며 사는 이치를 깨닫게 되었지.”
산신당 밖의 맹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매섭게 땅을 내리쳤다.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다니!
단순한 말이지만, 그 안에 내포된 뜻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호랑이 요괴도 알고 있었다.
이틀 전, 호랑이 요괴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내리치는 것을 보았다. 두려운 분위기와 헤아릴 수 없는 위엄이 온 천하에 내려앉았다. 한평생 보았던 것과는 달리, 절대 평범하지 않은 벼락이었다. 당시, 호랑이 요괴는 맥이 풀려 동굴 안에서 쓰러지기까지 했다.
호랑이 요괴는 인제야 깨달았다.
‘벼락의 근원이 바로 이곳에 있었구나!’
요괴가 되기 위해 수많은 수행과 고난을 겪은 호랑이 요괴에게 이 정도 시련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거지인 줄 알았던 사람은 죽음의 문턱 앞에서 살아 돌아온 것은 물론, 아주 높은 경지까지 수행을 이룬 것이 분명했다.
사실 이 사람은 호랑이 요괴가 만난 첫 번째 수행자였다. 다른 수행자를 본 적은 없었지만, 그는 이 사람이 평범한 수행자와 비교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순간, 요괴는 인간이 자신을 이상한 요물로 여긴다는 것과 이곳에 오래 머물면 위험해지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호랑이 요괴는 조급하고 불안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선생, 선생은 내 수행을 어찌 생각하는가?”
자신의 말이 너무 뜬금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호랑이 요괴는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나는 백여 년간 이곳 우규산에서 수행하였고, 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가 없네. 선생이 만약, 만약 나를 가르쳐준다면, 육(陸) 산군(山君)은 더 바랄 게 없을 걸세!”
요괴는 존칭까지 써가며 말했다. 호칭이며 말투며, 좀 전과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하늘보다 더 높은 수행의 근본에 관계된 이야기였으니, 호랑이 요괴는 저절로 신중을 기울였다. 그의 수행은 제자리를 맴돈 지 오래였다.
물론, 호랑이 요괴는 수행 방법을 묻는 게 금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새나 짐승들은 요괴가 되려고 더욱이 긴 세월 고된 수행을 갈고 닦으며, 조금의 성과만 보여도 기뻐 날뛰곤 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수행 방법을 타인에게 쉬이 알려주지 않았다. 그는 신중에 신중을 더하여 산신당 안에 있는 속내를 알 수 없는 거지에게 질문을 건네었다. 그저 사소한 방법이라도 전해 듣는다면 여한이 없었다.
양측이 풀리지 않는 원한 따위를 지닌 게 아니니, 기회를 잡아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도 창귀 육 서생 덕분에 호랑이 요괴는 인간 세상의 예의범절을 얼추 알고 있었다. 호랑이 요괴는 자신이 나름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다.
다만 불안하고 초조했던 호랑이 요괴는 말을 마치자마자 긴장하며 이리저리 발을 굴렀다. 그는 기대에 찬 눈으로 산신당 안을 바라보는 동시에, 산신당 안의 사람들이 갑작스레 공격하면 빠른 속도로 반격하거나 도망칠 준비를 했다.
계연은 이 호랑이 요괴가 점점 격분할 줄 알았는데, 저리 고상하게 나오니 다소 당황스러웠다. 그는 바깥의 커다란 호랑이가 어려운 말을 골라 점잖은 체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터무니없는 생각을 잠시 뒤로 접어둔 계연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아주 느린 속도로 말했다.
“외람된 질문이지만, 육 산군, 수행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사람을 몇이나 먹었지?”
계연은 이런 상황에서 당황할수록 겉으로 티를 내선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상황에 따라 적절한 강세를 보이는 것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