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인간과 요괴의 차이
오기 전 이미 식사를 한 것인지, 그들은 물로 목만 축일 뿐, 아무도 음식을 먹지 않았다.
밖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이들의 겉옷이 얼추 마른 다음에야, 그들은 겉옷을 걸치고 움직일 채비를 했다.
계연이 보아하니 그들에게 재정비란, 휴식하며 체력을 회복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아마도 옷이 완전히 마르면 전투력이 대폭 향상하리라.
계연은 문득 게임을 할 때를 떠올렸다. 화면을 눈앞에 들이밀면 정확도가 높아지고 핸드폰을 좌우로 흔들면 공격을 잽싸게 피할 수 있었다.
건장한 체격의 사내 둘이 돼지와 양이 든 자루를 짊어졌다. 그중 하나는 조금 전 요괴의 얼굴을 보고 싶다던 육승풍이었다.
“됐다, 출발하지!”
연비는 여전히 의욕 있게 앞장섰다.
마대를 짊어진 육승풍이 고개를 돌려 계연에게 소리쳤다.
“비렁뱅이, 우리가 좋은 소식 가져올 테니 기다리시오. 돌아오자마자 당신을 데리고 하산하겠소!”
‘이봐, 이봐, 지키지도 못할 약속은 하지 말라니까!’
계연은 그의 말이 터무니없게 느껴졌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마지막으로 산신당을 빠져나가는 육승풍에게 소리쳤다.
“육 협객, 만약 정말 위험한 순간이 오면, 당신들이 계 선생을 알고 있다고 말하세요! 꼭, 꼭 기억하세요!”
육승풍은 이미 산신당 문을 빠져나갔다. 계연의 목소리에 그가 뒤를 돌아보았지만, 어슴푸레한 모닥불은 어두컴컴한 산신당 내부를 밝히기엔 역부족이었고, 더욱이 거지의 얼굴은 보이질 않았다.
그 말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육승풍은 별생각 없이 빠르게 동료를 뒤따랐다.
* * *
우규산에는 크고 작은 산봉우리가 수십 개나 있었다. 산신당이 자리한 곳은 외곽의 조그만 언덕에 불과했다.
아홉 명의 젊은 협객은 강호의 경험이 부족하고 순진했지만, 탄탄한 무술 실력을 자랑했다. 그들은 굽이진 산길을 평지 걷듯 걸어갔다.
그들은 한 시진(*一時辰: 약 2시간) 정도 만에 산봉우리 세 개를 넘었고, 우규산 깊숙이 들어섰다.
이때 아홉 사람은 약간 땀을 흘렸다.
선두에 있던 연비는 사방에 깔린 어둠 속에 드러난 그림자를 발견하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여기로 하지. 사람을 잡아먹는 범이 너무 깊은 산중에 숨어있진 않을 거야. 돼지랑 양을 꺼내고, 준비하자고!”
“응, 그러지!”
“지금 술시(*戌時: 19시~21시) 정도이니, 조금만 있으면 범이 활동하기 시작할 거야!”
육승풍과 막대기를 든 사내가 각자 자루를 내려놓았다. 자루를 펼친 그들은 안에서 어린 암양 한 마리와 몸집이 그리 크지 않은 돼지 한 마리를 꺼냈다.
먼 길을 걸어오는 동안 자루에 갇혀있어서 어지러웠는지, 두 가축은 아무런 울음소리도 내지 못했다.
“녀석들을 밧줄로 나무에 묶어두자. 참, 다리에 상처 내는 거 잊지 마!”
“내가 하지!”
칼을 든 젊은이가 돼지와 양옆으로 다가오더니, 손목을 가볍게 휘두르며 돼지와 양의 뒷다리에 상처를 냈다.
꾸익! 꾸익!
매에!
두 가축은 통증에 몸부림치며 달아나려 했지만, 밧줄에 꽁꽁 묶인 탓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육승풍과 막대를 든 사내는 가축에 묶은 밧줄을 나무에 연결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주변을 살폈다.
“됐다. 나무에 올라가서 기다리자고!”
일행은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흥분한 그들은 가볍게 나무 위로 뛰어오르거나, 빠른 속도로 나무를 타고 올라가 몸을 숨겼다.
순식간에 산속이 고요해졌다. 상처 입은 돼지와 양이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는 소리를 제외하곤, 간혹 밤새가 우짖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숨죽여 기다리던 사이, 어느덧 한 시진(*一時辰: 약 2시간)이 훌쩍 흘렀다.
깍…… 까악…… 깍…….
밤새의 울음소리는 어두운 밤을 더욱 고즈넉하게 만들었다.
육승풍과 칼잡이 두형(杜衡), 그리고 여인 낙응상(洛凝霜)은 산양이 묶인 나무 위에 몸을 숨긴 채, 나뭇가지와 이파리 사이로 아래를 주시했다.
불안함에 몸부림치던 산양과 돼지는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바닥에 엎드려 숨을 골랐다.
“벌써 한참이나 됐는데, 호랑이 요괴가 왜 아직도 안 나타나는 거야?”
낙응상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러게, 사냥감이 떡하니 있으니까 지금쯤 나타나야 하는데.”
“쉿!”
이때, 육승풍이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휘…… 휘…….
갑자기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더니, 주변 나무들이 나뭇가지를 마구 흔들었다.
매에…….
양의 울음소리와 함께, 산양과 돼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불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매에…… 매에…….
꿀…… 꿀꿀…….
상처가 난 두 가축은 초조한 듯 도망치려 애썼지만, 목에 묶인 밧줄에 또다시 제자리에서 허덕일 뿐이었다. 이 변화에 숨어있던 아홉 명의 협객은 정신을 번뜩였다.
휘…… 휘익…….
차가운 바람에 나무 위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휘날렸고, 그들의 온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어째서인지 이상하게 불어오는 바람은 그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지금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은 양과 돼지뿐만이 아니었다. 산속의 모든 새가 순식간에 울음소리를 멈추었지만, 일행 중 누구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멀리서 평범한 호랑이보다 두 배는 더 큰 호랑이 요괴가 바위 위에 올라섰다. 어둠이 내려앉은 수풀 사이로 돼지와 산양이 있는 곳을 바라본 호랑이 요괴는 사람을 쏙 빼닮은 경멸 섞인 눈빛을 드러냈다.
호랑이 요괴는 숨거나 피하지 않고, 나무에 묶인 돼지와 양을 향해 아주 천천히 다가갔다.
이때 돼지와 양은 미쳐서 정신을 놓기 일보 직전이었다. 바들바들 몸을 떨던 녀석들은 바닥에 찰싹 엎드린 채 꿈쩍도 하지 못했다.
‘무슨 범이 저렇게 커!’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랑이 요괴를 목격한 사람들이 말한 대로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나무 위의 사람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털을 쭈뼛 세웠다. 놈을 잡아 해악을 제거해야 했지만, 실제로 거대한 호랑이 요괴와 직면하니 적잖이 겁을 먹은 일행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호랑이 요괴가 두 가축 앞에 멈춰 섰다. 놈의 털이 바람결을 따라 나풀나풀 흔들렸다.
‘왜 먹질 않지?’
모든 사람이 긴장감 속에서 꺼낸 의문이었다. 그들은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면, 호랑이 요괴가 가축을 잡아먹을 때 달려가 공격하자고 사전에 약조했다.
연비의 얼굴은 땀범벅이 되었고, 그의 오른손은 이미 칼집을 움켜쥐었다. 만에 하나 호랑이 요괴가 도망치려는 기미가 보이면, 즉시 동료들과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호랑이 요괴가 매섭게 고개를 들며 그가 숨어있던 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호랑이 요괴의 목청에서 다소 거칠고 호쾌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미있군! 무술인이라? 제 발로 무덤에 찾아왔으니, 선생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행위는 아니겠지!”
연비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머릿속이 삽시간에 새하얘졌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들은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일행의 머릿속엔 오직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요괴다!
“우선 좀 놀아볼까? 으르렁!”
포효와 동시에, 호랑이 요괴가 눈앞의 나무를 향해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은 손발이 얼어붙었고, 대응하는 것조차 잊고 말았다.
연비가 혀를 꽉 깨물어 두려움에서 정신을 차리고는 크게 소리쳤다.
“공격!”
챙!
모습을 드러낸 장검이 고집스럽게 호랑이 요괴를 위협했다.
호랑이 요괴는 칼날을 피하기는커녕, 한쪽 발로 장검을 건드렸다. 연비의 눈에는 이 호랑이 요괴의 발이 제 허벅지보다도 두꺼웠고,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발바닥은 제 머리보다도 크게 보였다.
데엥-!
푹…….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장검이 멀리 날아가며, 호랑이 발에 차인 연비는 나무 아래로 떨어진 채 가슴팍에 피를 쏟아냈다. 수풀로 떨어진 그의 생사는 알 수 없었다.
“개자식!”
막대기를 든 사내 조룡(趙龍)이 호랑이 요괴를 향해 긴 막대를 휘둘렀다. 하지만 호랑이 요괴를 가격하기도 전에, 누렇고 검은 그림자가 재빠르게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퍽-!
우직…….
강철 같은 꼬리를 휘두르자, 도끼와 칼도 무찔렀던 막대가 힘없이 부러졌다. 조룡 또한 호랑이 꼬리에 맞아 피를 토하더니 연비처럼 나무 아래로 떨어졌다.
“어서 구해!”
“가자!”
나머지 사람들이 하나둘 몸을 드러내며 호랑이 요괴에게 공격을 가했다.
육 산군의 힘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연비가 몸을 숨기고 있던 나무 아래 서 있던 그는 마치 고양이처럼 네 다리로 나무를 쥐어 잡고 살며시 몸을 굽히더니, 칼날이 몸에 닿기 직전에 주르륵 나무에서 미끄러졌다.
휘오오오-!
호랑이 요괴가 몰고 온 바람이 불어왔다. 일행의 칼날이 다다르기도 전에 호랑이 요괴는 공격 범위 밖으로 벗어났다.
칼을 꺼내든 두형과 낙응상이 제일 먼저 바람을 가르며 달려나갔다. 호랑이 요괴가 달아난 방향을 재빨리 뒤쫓은 둘은 칼을 휘두르며 아직 땅에 내려오지 않은 호랑이 요괴를 표적으로 삼았다.
호랑이 요괴는 여전히 공중에 네 다리가 붕 떠 있었지만, 마치 바람을 디딤돌 삼기라도 한 듯 힘을 주더니, 거대한 몸을 내던지며 괴이할 만큼 빠른 속도로 땅에 엎드렸다. 호랑이 요괴는 녹색의 눈동자로 두형과 낙응상을 바라보았다.
어흥-!
우렁찬 포효 소리에 나머지 사람들은 긴장한 나머지 동작이 빳빳하게 굳어 버렸다.
‘휙’ 소리와 함께 호랑이 요괴의 몸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호랑이 요괴는 또다시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심해!”
옆에서 부르는 소리인데도 멀게만 느껴졌다. 낙응상과 두형이 겁에 질린 채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사이, 호랑이 요괴는 여전히 그들을 향해 다가오며 쇠붙이처럼 섬뜩한 빛을 내뿜으며 발톱을 드러냈다.
퍽!
푸욱, 퍽!
단숨에 두형을 내친 호랑이 요괴는 이어서 낙응상을 공격했다.
동료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두형과 낙응상은 피를 쏟으며 차례대로 굴러떨어졌다. 그 와중에 두형의 손에 쥐어진 칼은 칼날이 밖으로 휘어져 버렸다.
쿵! 쿵!
스윽…….
낙응상과 두형이 먼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마지막으로 호랑이 요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매우 희미하게 일행에게 들려왔다.
짧은 찰나에 네 명의 실력자가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호랑이 요괴는 나머지 다섯 사람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커다란 고양이처럼 여유롭게 기지개를 켜던 요괴는 무시무시한 호랑이 눈으로 그들에게 야유 섞인 시선을 보냈다.
휘릭, 휘릭-.
드르륵.
곧 90도로 꺾인 귀두검이 회전하며 포물선을 그리더니, 다섯 사람의 발치에 떨어졌다. 칼의 몸체뿐만 아니라, 칼날까지도 소용돌이 모양으로 휘어져 있었다.
육승풍을 비롯한 사람들은 손발이 얼어붙고, 숨이 턱 막혔다. 주먹을 쥐거나 무기를 든 손은 과도하게 긴장한 나머지 마디마디가 새하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