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3화 (13/892)

13화. 기인 계 선생

호랑이 요괴 육 산군은 더는 뛰어오르지 않았다. 성큼성큼 나머지 다섯 사람을 향해 걸어가던 호랑이 요괴가 입가에 미소를 띠자, 심장에 커다란 돌멩이가 쿵 하고 내려앉은 듯, 육승풍을 비롯한 사람들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들에겐 적수가 안 되는 존재였다. 조금 전 호랑이 요괴의 괴이한 동작을 생각하면, 자신들의 무예와 기술로는 도망치는 것조차 힘들지도 몰랐다!

육 산군의 울음소리가 서서히 무거워졌다. 쩍 벌린 입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고, 요사스러운 기운이 육승풍 일행의 주위를 에워쌌다. 지금 그들은 거대한 압력에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요괴가 된 호랑이와 마주 보고 서 있는 것은 강호의 그 어떤 무림 고수와의 대결보다도 압박감이 심했다. 남은 사람들은 더는 육 산군을 공격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심지어 동료 넷의 안위도 잊은 지 오래였다.

쿵쿵쿵쿵쿵…….

육승풍의 심장박동이 격렬해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얼굴은 땀 범벅이 되었고, 머릿속은 새하얀 백지가 되었다.

그는 호랑이 요괴와 가장 가까이 서 있었다. 심지어 호랑이 요괴에게서 풍기는 짙은 야수의 향기도 맡아질 정도였다.

으드득…….

서서히 다가오는 호랑이 요괴를 보며, 육승풍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어금니를 깨물더니, 권법 자세를 취했다. 그는 절대 가만히 서서 죽음을 기다릴 리 없었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걸 알지만, 끝까지 싸워야 했다. 그는 다른 동료들도 그와 같이 생각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뒤이어 나머지 네 사람도 각자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허……. 이리 젊은 무술인은 또 처음 보네. 선생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네놈들의 살이 얼마나 맛있는지 맛보았을 텐데.”

가까이 걸어오던 호랑이 요괴가 혀를 날름거리며 군침을 흘렸다.

“아쉽지만, 산짐승들만 먹어야겠군.”

육 산군은 현재 다섯 사람은 겉으로는 강경한 체하지만, 사실은 무서워 죽을 지경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아마 자신의 작은 공격마저도 이들은 당해내지 못하리라.

그러나 육 산군의 말을 듣자마자, 육승풍의 뇌리에 거지가 해주었던 말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흥-!

포효하는 소리가 또 한 번 울려 퍼졌다. 육승풍은 최대한 빠른 어조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계 선생과 아는 사이다!”

냅다 소리친 육승풍이 정신을 차렸을 때, 호랑이 요괴의 머리는 그의 눈앞에 놓여 있었다. 호랑이 요괴는 겨우 두 주먹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녀석의 콧바람까지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계 선생? 산신당에 갔었나?”

“그, 그렇다!”

몸을 움직일 엄두가 나지 않았던 육승풍은 재빨리 입만 열고 대답했다.

“신, 신당 안의 거지가 우리는 식인 호랑이 요괴의 적수가 안 되리라고 경고했다. 그, 그리고 산중의 호랑이 요괴는 이미 요괴가 되었다고 하였으나, 우리가 이를 무시하였지. 하지만 우리가 떠나기 전, 그는 만약 위급한 상황이 닥친다면 계 선생을 알고 있다고 외치라 했다!”

다소 떨리긴 했지만, 육승풍은 여전히 신속하게 대략적인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만약 계연이 이곳에 있었다면, 육승풍에 심한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다. 계연이 경고해준 것은 맞지만, 이렇게까지 솔직할 필요가 있었을까?

남은 다섯 사람은 저들의 생사가 호랑이 요괴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숨소리조차 죽이며, 침묵 속에서 호랑이 요괴의 반응을 기다렸다.

휘익…… 휙…….

매서워졌다가 부드러워지기를 반복하던 산바람은, 마치 호랑이 요괴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했다. 녹색 안광이 다시금 육승풍을 바라보았을 때, 육승풍은 의아하게도 눈빛에 담긴 살기가 한풀 꺾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이 남긴 말이라면, 내 신중히 고려해야지. 다만 네가 나를 속이려 드는 것일지도 모르니, 네놈과 함께 산신당으로 가서 계 선생의 뜻을 물어봐야겠다!”

육승풍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산신당에 그자가 아직 있다면, 별문제는 없을 터였다.

호랑이 요괴의 승낙을 받은 뒤, 다섯 사람은 중상을 입고 쓰러진 동료 넷을 허겁지겁 찾아 나섰다. 이후 그들은 조심스럽게 부상자를 데리고 산신당으로 향했다. 그들의 뒤에는 매서운 눈을 부릅뜬 호랑이가 뒤따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면 보이지 않았지만, 모두는 호랑이 요괴가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을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연비를 비롯한 사람들은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어려서부터 무술을 연마한 덕분에, 튼튼한 체질을 지니고 있던 덕분이었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일찍이 차가운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등에 업힌 동료들은 이따금 피를 토하며 사경을 헤맸다. 하지만 위험을 막을 정도로 내적인 힘이 강했기 때문에, 제때 치료를 받으면 살아날 희망이 있었다.

* * *

그 무렵 계연은 여전히 아홉 사람이 살았을지 죽었을지, 운 좋게 호랑이 요괴를 죽이는 데 성공했을지 추측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호랑이를 때려잡겠다고 나선 영웅들의 발소리가 들려왔고, 그 뒤로 아주 작은 호랑이 발소리가 이어졌다.

수십만 마리의 양 떼가 심장 위에서 질주하기라도 하듯 계연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계연은 협객들에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욕이란 욕은 몽땅 퍼붓고 싶은 심정이었다.

‘맞아 죽을 놈들! 망할 육 산군을 데리고 오면 어쩌자는 거야!’

계연은 당황스러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혹스러운 티를 낼 수가 없었다. 몇 가지 가능성을 헤아리던 그는 자신이 고수의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육승풍과 일행은 산신당과 여전히 그 안을 밝히는 불빛을 보는 순간, 강렬한 희망에 휩싸였다. 그들은 슬그머니 걸음을 재촉하였지만, 그들의 뒤를 따르던 검은 그림자가 한 발짝 빨랐다.

뒤에서 펄쩍 뛰어오른 호랑이 요괴는 처참한 몰골의 젊은 협객들을 넘어, 산신당 앞에 멈춰 섰다. 협객 일행은 순식간에 겁에 질려 미동도 하지 못했다.

산신당 안의 계연 또한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지난번보다 육 산군의 모습은 훨씬 선명히 보였다. 희미한 시야로 어렴풋이 보이는 방대한 몸집의 호랑이 요괴는 마치 연기처럼 얇은 무언가를 풍기고 있었다.

그때 육승풍 일행이 믿을 수 없다며 눈을 의심하는 사이, 호랑이 요괴는 몸을 일으키더니 앞발을 모아 읍을 했다.

“육 산군, 인사 올리네!”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동그랗게 뜬 일행은 조금 전의 공포심을 완전히 잊고 말았다. 놀랍게도 호랑이 요괴는 산신당 안의 거지에게 예를 올렸다. 호랑이의 몸집으로는 서투른 동작이었지만, 공경하는 마음만큼은 서원의 스승을 대하듯 깍듯했다.

산신당 안의 계연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입으로 때울 수 있겠어!’

“육 산군, 그리 예의 차릴 필요 없네. 내 몸이 편치 않아서 얼굴 보고 인사 나누긴 어렵겠군!”

“선생에게 폐를 끼칠 생각 없네.”

호랑이 요괴가 육승풍 일행을 훑어보았다. 앞발로 땅을 짚고 선 호랑이 요괴는 산신당 안의 반쯤 감긴 회백색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궁금한 것이 있어 찾아왔으니, 선생이 의문을 풀어주었으면 좋겠네!”

호랑이 요괴는 일행의 말이 거짓인지 판명하러 왔다는 이야기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화에 끼어들 용기가 없었던 육승풍 일행은 그저 신기하고도 불안한 기분으로 상황을 지켜보며, 다친 동료들이 숨을 고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무엇이지?”

계연이라고 별다른 수가 있겠는가. 육 산군에게 입을 다물라 할 수 있겠는가? 아니, 절대로 그럴 순 없었다!

“지난번 선생의 가르침에 조금은 뉘우칠 수 있었네. 수행은 사람의 됨됨이와 같이, 악행을 멀리하고 태만하게 굴지 않으며, 마음을 올바로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하였지. 오늘 밤, 이 아홉 사람은 나를 죽이려는 속셈으로 산중에 매복하였더군. 평범한 짐승이라면 계략에 빠져 이미 죽었을 걸세. 내가 나를 죽이려는 사람을 해치는 것은 몸과 마음을 올곧게 갖는 것과 상관이 없을 텐데, 선생은 왜 그들을 구제하려는 것이지?”

‘젠장, 망할 요괴 자식, 이해력이 장난 아니잖아…….’

어제 계연의 허풍에는 저런 의미가 담겨있는 게 맞지만, 정확히 설명하지 않고 다소 애매한 단어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육 산군이 그 뜻을 완전히 헤아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현재 육 산군은 그에게 왜 그들을 구제하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자신을 산 아래에 데려다줄 사람이 없을까 봐 무서워서 그랬다고 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만, 적당한 답을 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펼쳐질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계연은 겉보기에 생각에 잠긴 듯했지만, 사실 그는 당장이라도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도통 좋은 대답이 생각나질 않았다.

계연은 끝내 억지스러운 주장을 끄집어냈다. 하지만 그 전에, 우선 육 산군의 질문에 따라 대답해야 했다. 선생님을 존경하는 학생은 선생님의 칭찬을 좋아하기 마련이었다.

“하나를 듣고 열을 뉘우쳤군. 그 말에 살생을 멈추다니, 산군은 뛰어난 이해력과 보기 드문 추진력을 지녔어. 다만 산군은 호랑이의 몸으로 태어나 수행하여 영지를 얻은 것이니, 창귀에게서 인간 세상의 예의는 배울 수 있어도, 세상 물정은 깨닫지 못했군. 하하…….”

계연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살짝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육 산군이 창귀로 부리던 육 서생은 독서광도 아니고, 평범한 서생들보다 아주 조금 더 뛰어날 뿐이겠구먼.”

그리고 계연은 먼 곳에 모여 있는 젊은 협객들을 가리켰다.

“이들이 왜 산에 호랑이 요괴를 잡으러 왔는지 아나? 당연히 과거 육 산군에게 잡아먹힌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야. 사냥꾼이 범 가죽을 벗기고, 약장수가 호랑이 뼈를 발라내는 것과 달리, 저들은 오직 백성의 안위를 위해 호랑이 요괴를 잡으러 온 거야. 근본적으로 보면, 산군이 먼저 사람을 잡아먹었기에 협객들이 산을 찾아온 것이지.”

이쯤에서 계연은 말머리를 돌렸다.

“물론 이건 다 쓸데없는 소리지. 인간이 본인을 죽이려고 든다면, 본인 또한 인간을 죽여야 하네. 가만히 죽여달라고 목을 내놓고 있는 건 너무 어리석잖은가?”

그 말에 육 산군은 기분이 통쾌했다. 심지어 머리를 살며시 끄덕이며 동감을 표하기도 했다.

“다만 내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들이 산에 들어온 까닭은 자신의 이익이 아닌 의협심을 위해서야. 산에 범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산행에 오르는 자들이 얼마나 있을 것 같나?”

산신당 밖의 호랑이 요괴가 살며시 생각에 잠긴 듯 살며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공손히 대답했다.

“많지 않을 것 같네!”

계연이 웃음 지었다.

“연비와 낙응상, 육승풍을 비롯한 이들은 모두 강호의 젊은 협객들이고, 의협심을 지닌 자들이야. 아직 나이가 어려 다소 경솔한 면도 있지만, 본심만 지킨다면 훗날 강호를 지킬 인물들이지. 산군이 이들을 죽이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나, 그리한다면 이 세상에 정의로운 협객 아홉이 사라지게 되겠지.

이들은 무공의 기초가 매우 탄탄하지만 산군에게는 상대도 되지 않고,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못할 거야. 그러니 산군이 이들을 너그러이 봐주었으면 좋겠네.”

호랑이 요괴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계연은 행여나 그가 허튼 생각을 할까 봐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계연의 말투에는 조금의 다급함도 묻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계연이 덧붙이는 말은 다소 익살스러웠다.

“내 산군에게 재미있는 약속을 하나 하지, 산군은 받아들이겠는가?”

“선생, 물론이지!”

이번에는 육 산군이 빠르게 대답했다.

“이 아홉 사람이 이번에 의협심을 보였다고 해서, 앞으로도 단정한 품행을 이어가리라고 보장할 순 없어. 하물며 이들은 오늘도 명성을 얻을 생각을 하고 왔지. 물론, 젊은 협객이 명성을 원하는 것을 비난할 순 없지만 말이야.

그래서 산군이 증인을 해주면 좋겠군. 훗날 아홉 사람 중 누구라도 악행을 저질러 백성을 혼란케 만든다면, 산군의 방식대로 벌하는 거지. 그땐 이들을 잡아먹고 머리를 잘라도 천도에 어긋나지 않을 거야.

만약 이들 중 정말로 정의롭게 이름을 떨치는 자가 나온다면, 오늘 산군의 행동은 지난날의 악행을 씻고, 헤아릴 수 없는 공덕을 쌓기 충분할 거야! 이것이야말로 마음을 바로잡고, 거침없이 생각하는 것이지!”

“어흥…….”

육 산군은 요망한 눈빛을 드러내며 귀를 기울였다. 조금 전의 의문과 고민이 말끔히 해결되는 기분이 들자 흥분한 그는 낮게 포효했다.

그는 계 선생의 도리를 이해했다. 계 선생의 말에 내포된 이치는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호랑이 요괴인 자신에게도 변신할 가능성이 보였다!

그게 아니라면 또 어찌 인간 세상에서 약조를 지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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