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6화 (16/892)

16화. 운치 있는 집

계연은 이 세계를 알아갈 겸 밖을 돌아다니며 거처를 구하기로 했다.

거리는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는데, 마을 전체가 명절 때처럼 시끌벅적했다.

지금 계연은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비록 시야는 흐릿했지만, 뛰어난 청력으로 사방의 모든 소리를 분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넓은 거리의 각종 대화 소리와 웃음소리, 흥정하는 소리, 심지어는 욕설과 싸우는 소리까지 빠짐없이 들려왔다.

“빙탕후루(氷糖葫芦)! 빙탕후루 팝니다.”

“최고급 화포(花布)랑 비단 있습니다.”

“연지와 물분 팝니다, 연지와 물분!”

“조각 붓꽂이 있습니다. 단향목, 침향목, 황화리목으로 만든 붓꽂이에요. 오셔서 문방사우(文房四友) 구경하고 가세요!”

이곳에선 상점이든 노점이든 할 것 없이 모든 점원이 손님을 모으기 위해 소리쳤다. 요 며칠 가는 데마다 계연은 시끄러워서 귀가 남아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짜증이 나긴커녕, 외려 머리가 더 빠릿빠릿하게 돌아갔다.

계연은 눈을 오래 뜨고 있으면 눈이 시려와서, 줄곧 눈을 게슴츠레 뜨고 다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력이 이리 나쁜데도 불구하고, 그는 평범한 사람처럼 멀쩡히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주변을 거닐던 그들은 문방사우를 파는 상점 앞에 멈춰 섰다. 상점 밖에 놓인 두 탁자에는 각종 문구용품이 진열되어 있었고, 한 점원이 상점 입구에서 손님맞이를 했다.

“손님, 이 붓꽂이 좀 보세요. 우리 영안현에서 최고로 유명한 문구용품이에요. 최고급 황리화목에 노련한 기술자가 조각한 것인데, 어찌나 정교하고 아름다운지 몰라요. 고관과 귀인들께서 좋아하시는 물건입니다.”

육승풍은 단정한 차림새라 제법 잘 차려입은 듯 보였고, 계연의 옷차림은 검소했지만, 기품이 있어서 돈이 없어 보이지가 않았다. 그들 옆의 중개인은 아마도 종놈으로 오해받은 것 같았다.

계연의 흐릿한 시야에는 붓꽂이가 누런 무언가로 보일 뿐이었다.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계연은 무릎을 꿇고 손을 뻗어, 조심스레 붓꽂이를 만져 보았다.

손가락이 붓꽂이에 닿자, 계연은 고개를 갸우뚱한 채 조각을 어루만졌다.

손끝의 감촉을 통해 조각의 결이 느껴졌고, 손가락이 붓꽂이를 스치며 발생하는 마찰음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붓꽂이의 형상이 차차 머릿속에 그려졌다.

‘와씨, 이거 장난 아닌데!’

붓꽂이에는 풍경과 인물이 어우러져 있었다. 풍경은 빈틈없이 빽빽하게 조각되어 있었고, 인물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 생동감이 넘쳤다. 마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작품이었다.

이 세계의 수공예 기술이 궁금해 만져 보았을 뿐인데, 계연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각양각색의 상품을 파는 상인들과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에게서 울려 퍼지는 소음. 그리고 손으로 느껴지는 공예품의 미세한 부분. 이 모든 것들은 계연에게 풍부하고 생생한 감각을 선사했다. 계연의 특출난 청력은 갖가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계연에게 전달하며,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호흡을 느끼게 해주었다.

계연이 천천히 눈을 뜨자, 눈동자가 시려왔다. 희뿌연 세상 속에서 계연은 이제야 단 한 가지 사실을 받아들였다. 자신이 원래의 시공간을 벗어났다는 것을 말이다.

* * *

방금 거리에선 미처 낌새를 차리지 못했던 중개인은 계연의 더듬거리는 손동작에 그의 눈을 확인하고 나서야, 계연이 맹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점원도 이제야 붓꽂이를 살피는 손님이 맹인이라는 것을 눈치챈 듯했다.

“아, 손님……. 붓꽂이가 마음에 드세요?”

점원은 다소 난감해 보였다. 눈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문방사우를 살 리 있겠는가. 저 질문도 이만 붓꽂이를 내려놓으라는 말을 예의 바르게 돌려 말한 것이었다. 이 붓꽂이가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칫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정말 곤란했다.

그 소리에 계연이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 점원의 다정함이 식어버리긴 했지만, 계연은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 붓꽂이는 얼마죠?”

조금 전 육승풍의 매서운 눈초리에 자신의 실례를 알아차린 점원은 한결 공손해진 어투로 대답했다.

“손님, 이 황리화목 붓꽂이를 외부에 진열해두긴 했지만, 재료부터 가공까지 매우 공을 들여 제작한 거라 200문(文)은 주셔야 해요. 그래도 저희는 상도의를 지켜가며 장사하는 거예요. 다른 곳에서는 적어도 은자 100냥부터 값을 부를 겁니다.”

‘200문이면 비싼 건가, 저렴한 건가?’

계연은 아직 돈 개념이 없었다. 다만, 좀 전에 3문을 주고 국수 한 그릇을 먹었으니, 이 붓꽂이를 살 돈이면 국수를 예순, 아니 일흔 그릇이나 먹을 수 있었다. 평범한 백성들이 직접 요리해 먹는다면, 그 돈으로 끼니를 백 번은 때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그리 값이 싸지는 않았다.

계연은 나름 거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은자 150냥, 그러니까 동전이 천문씩 꿰인 돈꿰미를 150개나 가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붓꽂이 하나를 사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수입원이 없던 계연은 구두쇠처럼 돈을 아끼기로 했다.

어차피 사봤자 쓸데도 없었다. 게다가 만에 하나 나중에 형편이 어려워지면, 이 200문이 자신에게 동아줄 같은 존재가 되어주지 않겠는가.

예전부터 계연의 소비관은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1년 365일 게임이나 컴퓨터 부품을 몇 개 사는 것 외에는 큰 지출이 별로 없었다. 그러니 수입이 없는 지금은 오죽하겠는가.

물건을 구경만 하면 낯뜨겁지 않냐고? 계연은 살면서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태생적으로 계연은 낯짝이 두꺼운 게 분명했다.

붓꽂이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킨 계연은 중개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충분히 돌아다닌 것 같은데, 이만 가도록 하죠. 인제 집을 보러 다니는 게 좋겠어요.”

“아, 이쪽으로 오세요, 이쪽으로……. 그럼 동쪽에 있는 집들을 먼저 둘러보시죠.”

중개인이 앞장섰고, 계연이 그의 뒤를 따랐다.

육승풍은 일부러 한 발짝 떨어져서 걸으며, 탁자 위의 붓꽂이를 바라보았다. 점원의 의문 섞인 눈빛 속에서 그가 쇄은자(*碎銀子: 은자를 잘게 부순 것)를 꺼냈다.

“붓꽂이 주세요.”

이들이 붓꽂이를 사갈 리 없다고 여겼던 점원이 곧바로 헤실거리며 쇄은자를 건네받았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우선 무게를 달고, 바로 포장해 드릴게요!”

점원은 붓꽂이와 쇄은자를 들고 잽싸게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쇄은자를 주인에게 건네자, 주인은 작은 저울을 꺼내 쇄은자의 무게를 달더니, 주판을 꺼내 탁탁 소리를 내며 계산했다.

육승풍이 상점 안으로 들어올 기미가 안 보이자, 잠시 후 점원이 대충 포장한 붓꽂이와 거스름돈을 가지고 나와서는 말했다.

“손님, 여기 받으세요. 은자는 6수(銖)가 나와서, 총 250문이에요. 여기 거스름돈 당오통보(當五通寶) 열 개 받으세요!”

백성들은 이 동전의 무게와 액면가가 5문과 같다는 연유로 이를 당오통보라 불렀지만, 사실 이 동전의 진짜 이름은 홍원통보(洪元通寶)였다.

* * *

계연은 아침부터 낮까지 집 몇 군데를 둘러 보았지만, 전부 너무 외지거나, 크기가 너무 작았다. 그것도 아니면 비교적 번화한 곳에 있었다.

계연은 중개인을 따라 다섯 번째 집을 찾았다. 마을의 남쪽에 있는 집이었다.

대강 살펴보니, 대문에 현판이 하나 달려 있었다. 계연이 묻기도 전에, 중개인이 소개를 시작했다.

“계 선생님, 이곳입니다. 거안소각(居安小閣)으로 아마 마음에 쏙 드실 거예요. 대문을 들어가면 바로 정원이 나오는데, 정원에 우물이 따로 있어요. 정원 뒷문과 이어진 공터도 이 집 소유이기 때문에, 확장 공사를 해서 대저택으로 만들 수도 있죠!”

정오의 강렬한 햇빛을 슬쩍 올려다본 중개인이 열쇠를 꺼내 대문을 열었다.

철컥.

끼익-.

그가 대문을 열자, 새하얀 먼지가 후드득 떨어졌다.

“크흠, 큼큼……. 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습니다.”

중개인이 제 어깨에 떨어진 먼지를 툭툭 털고선, 계연과 육승풍을 안으로 안내했다.

이제야 계연의 마음에 드는 곳이 나타났다. 비록 뿌연 시야로는 제대로 보이는 게 없었지만, 오늘 본 집 중에 이곳이 가장 좋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담도 높지 않고, 대문도 나름 평범한 편이었다. 집은 계연이 알고 있는 전통적인 사합원(四合院) 양식의 가옥으로, 본채와 별채 사이에는 뒷문이 하나 있었다.

꽤 널찍한 정원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 오랜 기간 먼지나 낙엽이 쌓이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우물에는 나무 덮개가 덮여 있었다. 덮개가 날아가지 않도록 그 위에는 둥근 돌덩이가 올려져 있었다.

정원에는 커다란 나무도 한 그루 서 있었다. 바람결을 따라 나뭇잎이 살랑살랑 춤추며 소리를 내었다. 나무 그늘 덕분인지 정원은 무척이나 시원했다.

“정원에 나무가 있네요? 이건 무슨 나무죠?”

계연이 갑작스레 물었다.

“아, 나무가 있는 걸 아시네요?”

계연이 웃으며 자신의 귀와 나무를 번갈아 가리켰다.

“제가 귀는 또 굉장히 예민하거든요. 바람이 나무를 가만둬야 말이죠.”

“선생님, 이건 대추나무입니다. 보아하니 오래 산 나무 같군요.”

육승풍이 선수를 치며 공손히 대답했다.

“맞다, 맞다, 대추나무네요. 가을이 되면 달콤한 대추를 드실 수 있겠어요!”

중개인이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뒷문 밖으로 가실까요?”

중개인은 종종 계연이 맹인이라는 사실을 잊었다가, 사소한 부분에서 기억해내곤 했다.

뒷문 밖은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였다. 다 말라버린 밭과 조롱박을 매달아 놓던 구조물도 남아있었다. 이전 주인이 집에서 직접 채소와 과일을 기르던 곳인 듯했다.

하지만 공간이 좁아도 너무 좁았다. 외곽을 빙 두르고 있는 낮은 울타리를 경계선으로 봐도 무방했다. 중개인의 소개를 듣던 계연은 어이가 없었다.

‘그럼 울타리를 슬쩍 넓히면, 이 땅도 넓어지는 건가?’

곧이어 세 사람은 본채와 별채, 주방 등을 둘러보았다. 건물과 정원은 그리 넓지 않았다. 구석구석에 먼지가 쌓여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격식이 있고 우아한 가옥이었다.

집안에 가구라고는 그나마 제일 넓은 본채에 침상 하나와 탁자 하나, 그리고 의자 두 개가 전부였다.

21세기에 살던 계연에게 누군가 이곳에서 살라고 했더라도, 계연은 흔쾌히 승낙했을 터였다. 이곳에 인터넷이 들어오고, 인테리어를 살짝 손볼 수만 있다면 말이다.

정원 안쪽을 한 바퀴 둘러보는 내내, 계연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하하! 선생님, 마음에 드시나 봐요? 선생님께서 이곳을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게다가 가격도 매우 저렴해요. 매입하신다면 은자 36냥에 해드릴게요. 이렇게 넓은 공간까지 딸린 집들은 보통 100냥도 넘어요!”

“네? 그렇게 싸다고요?”

계연은 다소 의아했다. 물론 이곳의 시세가 어떤지 몰랐지만, 비교는 할 수 있었다. 앞서 보았던 조그만 단층집도 30냥이나 했는데, 이곳이 36냥이라니.

하물며 이 집은 지금까지 보았던 집들과 차원이 달랐다. 다른 집보다 두 배는 좋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집값이 40냥도 안 되다니,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저렴했다.

“하하, 크흠! 선생님께서 잘 모르시나 보군요…….”

중개인은 구차한 말들로 이야기를 포장하려 했지만,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큼, 원래 이곳에 사시던 분이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지금 이곳은 관아의 소유예요. 게다가 위치도 다소 후미져서…… 지금까지 팔리질 않았어요. 부자들의 눈엔 차지도 않고, 평민들은 40냥을 마련하기도 버겁잖습니까. 정말 집을 사려는 사람들은 적당히 제 분수에 맞는 집을 찾기 마련이죠. 그래서 도저히 나가질 않는데, 관아에서 이상하게 가격을 안 내리네요!”

“아! 그럼 이 집을 사려면 직접 관아를 찾아가야 하는 건가요?”

“선생님, 이 집으로 정하신 겁니까?”

중개인이 기대에 찬 눈으로 계연을 보며 물었다.

“이렇게 운치 있는 집이 저렴하게 나왔는데, 당연히 사야지 않겠어요? 먼지야 치우면 그만이죠!”

계연이 하하 웃음을 지었다. 기분이 썩 괜찮았다.

“좋습니다, 좋아요. 정말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그럼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같이 관아에 가서 집문서랑 땅문서를 가져오는 게 좋겠죠?”

중개인은 고생스럽게 벌어들인 돈을 손에 쥐기 위해 안달이 난 듯했다. 30냥 정도의 거래를 성사시키면, 그에게는 수수료가 2냥 정도 떨어졌다. 이 얼마나 쏠쏠한 수입인가!

사실 계연도 마찬가지로, 꿈에 그리던 집을 한시라도 빨리 품에 안고 싶었다.

‘지난 생에 이루지 못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번 생에는 기필코 이루고 말겠어.’

옆에 있던 육승풍이 웃음을 지었다.

“선생님, 객잔으로 돌아가 쉬고 계시면, 제가 중개인과 함께 관아로 가서 집을 사고 오겠습니다.”

‘이거 괜찮은 친구네, 전도가 양양해.’

자신이 발품 팔 필요가 없어지자, 계연은 마음이 들떴다.

“그럼 좋죠. 육 대협, 부탁할게요.”

“별말씀을요. 우선 객잔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좋아, 좋아, 앞날이 창창하구먼!’

계연은 육승풍의 성격이라면 21세기 사회에 살더라도 사람들과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타인의 처지에서 고민하고 배려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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