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7화 (17/892)

17화. 손끝에 내려앉은 푸른 기운

반 시진(*半時辰: 약 1시간) 후, 영안현 관아 옆 뜰의 방 안, 현승(*縣丞: 현의 부지사) 휘하의 주부가 의아한 눈빛으로 육승풍을 바라보았다.

“육 대협, 정말로 이 집을 사실 겁니까? 본인이 지낼 겁니까? 영안현 출신이 아니시죠?”

질문을 마친 주부는 주(周) 씨 성의 중개인을 바라보았다. 그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수염을 쓸어내리자, 중개인은 괜스레 마음이 켕겼다.

“왜 그러십니까? 주부 대인, 이 집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집이 부실한가요, 아니면 무슨 분쟁이라도 있습니까?”

주부가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다시금 육승풍을 바라보았다.

“육 대협, 당신들은 우리 영안현의 은인이니, 내 사실대로 말씀드리죠. 이 집은 견고하고 고아하나, 항간의 평판이 좋지 않습니다. 7년간 이 집을 거친 세 명의 주인들은 모두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특히 재작년 한 서생이 이곳에서 놀라 죽은 채 발견되었죠. 그 후로 ‘거안소각’을 찾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야기하던 주부가 웬만해선 타인에게 보여주지 않는 기록부를 육승풍에게 들이밀었다. 그 위에는 이러한 내용의 주석이 달려 있었다.

<<항간에 이곳이 흉가라는 풍설이 있음.>>

무술인인 육승풍도 그 이야기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휙 고개를 돌린 그는 매서운 눈초리로 중개인을 노려보았다. 영안현의 토박이인 그가 이 이야기를 모를 리 없었다.

“어, 그, 그걸 깜빡했네요. 제가…….”

“쯧!”

주부가 그를 흘겨보더니 입을 열었다.

“사실 저희 관아에서 이 집을 샅샅이 조사했는데, 별다른 소득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승려와 도사를 모시고 굿을 치르기도 했죠. 이 집에 관한 소문은 한둘이 아닙니다. 저는 고작 주부일 뿐이지만, 아셔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린 겁니다.”

이야기를 마친 주부가 수염을 매만지며 육승풍을 바라보았다.

“육 대협, 그래도 이 집을 사시겠습니까?”

육승풍은 다소 망설여졌다. 이 집이 흉가로 의심받는다면, 당연히 사지 말아야 했다. 관아의 기록부에도 흉흉한 글이 적혀있는데, 만에 하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선생님이 다칠 게 뻔했다.

“참, 흉가라니, 하는 수…….”

‘잠깐!’

육승풍은 말을 하다 말고 얼어붙었다. 순간 자신이 누구의 집을 거래하는 중인지 떠올랐다.

그는 다름 아닌 계 선생님이었다. 우규산의 맹호 요괴를 제자로 삼고 무릎 꿇게 만든 고수! 대가! 실력자이지 않던가!

뒤이어 그는 계연이 집을 사기로 결정할 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렇게 운치 있는 집이 저렴하게 나왔는데, 당연히 사야지 않겠어요? 먼지야 치우면 그만이죠!’

‘먼지야 치우면 그만이라셨지? 만약 그곳이 정말 흉가였다면, 선생님이 못 알아봤을까?’

그곳이 흉가가 아니라면, 걱정할 게 없지 않은가!

“주부 대인, 이 집 사겠습니다. 다만 제가 거주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 한 분께서 지내실 겁니다.”

주부는 다소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방 안의 또 다른 아역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유일하게 중개인만 남몰래 기뻐하며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육 대협, 다시 생각해 보시죠. 선생님이 머무실 곳이라면 더욱이 신중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말……정말로 사실 겁니까?”

“주부 어르신, 염려하실 필요 없습니다.”

절레절레 고개를 젓던 주부는 더는 육승풍을 말리지 않았다. 자신은 이미 본분에 충실하였고, 그곳이 흉가라는 것도 단지 풍설일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붓걸이에 걸린 붓과 옆에 놓인 벼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 선생님의 대리인 자격으로 기록부에 서명하시고, 은자 36냥을 내시지요!”

육승풍은 군말 없이 붓을 들어 먹물을 묻힌 다음, 기록부에 서명했다. 이윽고 붓을 제자리에 걸어둔 그는 현지 전장(*錢庄: 개인이 운영하던 금융기관)에서 바꿔온 은표(*銀票: 은태환 지폐) 10냥 석 장과 5냥 한 장, 그리고 원보(元寶) 1정(錠) 1냥을 꺼내었다.

돈을 건네받은 주부는 은표와 원보의 수를 자세히 헤아린 뒤에야 돈을 서랍 속에 넣었다. 이후 기록부를 살펴보니, 위에는 반듯한 글씨로 ‘계연’ 두 자가 적혀있었다. 주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맹호를 때려잡은 아홉 사람 중에는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좋습니다. 집문서와 땅문서를 가져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시죠.”

자리에서 일어난 주부는 뒤편의 커다란 책장을 뒤적거렸다. 잠시 후, 나무 상자에서 문서 한 뭉텅이를 꺼낸 그는 그 집의 문서를 골라 육승풍에게 건네었다.

“여기, 잘 챙기세요!”

“감사합니다, 주부 어르신!”

육승풍은 감사 인사를 건네며 문서를 확인했다. 문서는 관인(官印)과 주석, 세칙까지 빠짐없이 갖추고 있었다.

“자, 여기 수수료! 모두 1냥 18주요.”

주부가 은자와 작은 동전 더미를 탁자 모서리에 내려놓았다. 그곳에는 작은 저울도 놓여 있었다.

“앗, 네, 감사합니다.”

중개인은 씰룩이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한 채, 황급히 제 수수료를 챙겼다. 심지어 그는 저울질도 하지 않고 은자를 곧장 제 주머니에 챙겨 넣기에 바빴다.

거래가 성사되면, 파는 사람이 수수료를 냈다. 집값이 비쌀수록 수수료도 올라갔는데, 상한가는 열 냥이었다. 만약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면, 중개인은 집을 살 사람에게 집을 소개해준 수고비 정도만 챙길 수 있었다.

잠시 후, 육승풍과 중개인은 주부의 사무실을 나란히 걸어 나왔다. 행여나 육승풍이 성질을 낼까 봐 겁이 났던 중개인은, 문턱을 넘자마자 부리나케 도망쳤다.

“쳇, 무뢰한 같으니라고!”

꽁무니 빠지게 도망치는 중개인의 뒷모습을 보며 육승풍이 콧방귀를 뀌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를 발로 걷어차려고 했거늘, 중개인은 미꾸라지처럼 잽싸게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렇다고 놈을 뒤쫓자니 격이 떨어졌다.

* * *

운래객잔(雲來客棧)은 영안현에서 근사하기로 알아주는 객잔이었다. 성황당(城隍堂)과 저잣거리에 인접해 있어, 벅적벅적하지만 저녁에는 고요했다. 아홉 협객과 계연은 고급 객실을 각자 하나씩 차지했다.

창문을 열고 멍하니 방 안에 앉아있던 계연은 바깥에서 들려오는 왁자지껄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 세계에 온 지도 며칠이 지났다. 계연은 사실 무척 외로웠다.

육승풍의 일행들은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계연은 평생 그들과 다니고 싶지도, 다닐 수도 없었다. 계연은 몰래 마을 의원을 찾아갔지만, 자신의 시력을 회복할 방법이 없었다. 그가 기대했던 바와 달리, 선문(*仙門: 선인의 거처)에 드는 것도, 지금으로써는 도무지 실마리가 보이질 않았다.

그러나 무술은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육승풍을 비롯한 사람들은 무술인이 확실하니 말이다. 이들은 지난 생에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정말 맹렬한 기세로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자들이었다.

‘문제는, 맹인인 내가, 그것도 속세를 벗어난 고수라고 알려진 내가 비결을 알려달라 한다고? 한 수 가르쳐 달라 한다고?’

그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넋을 놓고 앉아있던 계연은 또다시 그때의 난가기국을 회상했다.

‘왜 하필 내가 발견했을까, 그때 내가 그곳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그 바둑판을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그럼…….’

지직…….

그때 몸속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리더니, 팔이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찌릿해졌다. 실수로 팔꿈치를 부딪쳐서 손가락 끝까지 저릿해졌을 때처럼, 검지와 중지가 얼얼했다.

전류를 따라 바둑알의 형태가 손가락 끝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제길!”

계연은 놀란 나머지 욕을 내뱉었다.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았다. 앞서 육 산군이 떠난 뒤 몸에 나타났던 기이한 현상이 또렷이 반복된 것이다.

산에서 내려온 뒤 계연은 며칠간 셀 수 없이 많은 시도를 했었다. 심지어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을 쏠 때 취했던 독특한 자세들도 한 번씩 따라 해보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이리 뜬금없이 나타나다니.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온몸의 혈을 확 뚫어주기라도 하나?’

안타깝게도 계연에게 그런 신기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계연은 아무런 신체적인 변화를 느끼지도 못했으니, 경맥이 뚫렸을 리도 없었다.

바로 그때, 방 안에 엷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아주 희미한 기류가 창밖에서 스며드는 것 같았다.

계연이 뿌연 눈을 반쯤 뜨자, 오른손 끝에 놓인 바둑알 형체 주변에 보일 듯 말 듯 한 푸른 기운이 나타났다.

옅은 바람결이 느껴지자, 계연은 무언가 떠오른 듯 창밖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푸른 기운이 바람을 타고 나풀거리며 들어왔다.

계연은 손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푸른 기운은 바둑알 형체를 따라 얇은 회오리를 그렸고, 방 안의 바람 또한 서서히 거세지며 휘장을 펄럭였다.

그 찰나 계연은 온 정신과 마음을 현재의 변화에 집중했다. 마침내 운이 트인 것인지, 그의 머리가 영민해지더니 푸른 기운이 좌르르 바둑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똑똑.

“계 선생님, 육승풍입니다. 다녀 왔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계연의 손에 놓여 있던 바둑알은 또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계연은 조금 넋이 나간 듯한 눈으로 제 손가락을 바라보며, 좀 전의 신비로운 경험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방해를 받았다고 해서 화가 나진 않았다. 한 번 나타났으니, 머지않아 이러한 현상을 또다시 볼 수 있을 터였다.

“계 선생님, 안에 계십니까?”

문 너머에서 육승풍이 다시 한번 물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계연이 대답했다.

“들어오세요.”

방문을 열어젖힌 육승풍은 안으로 들어오기도 전에 얼어붙고야 말았다.

온몸에서 짧은 전율이 느껴졌다. 특이한 기운이 마치 이 방을 휩쓸고 간 것 같았다.

방 안에는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가득했다. 계연은 오른팔 팔꿈치를 탁자에 올린 채, 손은 검지(劍指) 모양을 하고 있었다. 휘장은 펄럭였고, 붓걸이에 걸린 붓이 좌우로 흔들렸다.

문이 열리며 계연의 주변을 맴돌던 바람이 점점 옅어졌다. 이내 방 안은 고요하고도 평온해졌다.

계연은 여전히 조금 전의 감각을 회상하고 있었다. 바둑알이 다시금 몸속으로 사라졌을 때, 구석구석 안마를 받아 뻐근한 몸을 풀 때처럼 몸 전체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그는 들어오지 않고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육승풍을 발견했다.

“육 대협, 가만히 서서 뭐 하세요?”

“아, 선생님, 제가 지금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당연한 걸 물으십니다.”

바둑알은 문 두드리는 소리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계연은 육승풍이 목격한 것은 기껏 해 봤자 바람 정도라고 생각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어차피 창문도 활짝 열려있지 않은가.

“아 참! 선생님, 그 집은 제가 대신 거래했습니다. 집문서와 땅문서, 열쇠 받으시지요.”

안으로 들어온 육승풍은 품에서 문서 더미와 계약서, 그리고 자물쇠와 열쇠를 꺼냈다.

그러나 계연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는 좀 전의 감각을 되뇌며, 집문서와 땅문서에 빼곡히 적힌 글씨, 관아의 계약 조항, 그리고 커다랗고 붉은 인장과 서류에 적힌 ‘계연’ 이름 두 자를 확인했다.

계연이 살아온 두 번의 삶을 통틀어, 이것은 그가 첫 번째로 소유하게 된 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