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0화 (20/892)

20화. 거안소각(居安小閣)의 새 주인

객잔을 떠난 계연은 곧장 저잣거리로 나왔다. 계연은 우선 집에서 쓸 이불과 간단한 가구를 준비하기로 했다. 어차피 집에 침상은 있으니, 사람을 고용해 깨끗이 청소하고 나면 사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만약 시간이 부족하면, 대충 침상을 쓸고 이불을 까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무튼, 더는 쓸데없이 객잔에 묵으며 돈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영안현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며칠 내리 시장이 섰고, 백호 가죽은 여전히 현아 밖에 내걸려 있었다. 계연은 눈을 반쯤 뜬 채, 평범한 사람처럼 거리를 거닐었다. 주변 사람들은 계연이 맹인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듯했다.

온갖 호객 소리와 자잘한 대화가 계연의 귀에 들렸다. 하늘에 맹세하건대, 그는 일부러 사람들의 사생활을 염탐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느 상점에서 무엇을 파는지 둘러볼 수 있었지만, 계연은 오로지 청력에 의존해야 했다. 소리를 따라 걷던 계연은 드디어 이불 파는 곳을 찾았다.

재미나게도 이 상점의 옆이 바로 솜틀집이었다. 안에선 ‘팡팡팡’ 솜 타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계연의 머릿속에서 마성의 노래 <탄면화(彈棉花)>가 울려 퍼졌다. 노래가 어찌나 빙빙 맴돌던지, 이불 상점 앞에 도착한 그는 하마터면 소리 내어 노래를 부를 뻔했다.

“여기 이불이랑 베개 있나요?”

계연은 질문을 던지며 상점 앞에 진열된 요를 자세히 어루만졌다. 손끝에 전해지는 촉감으로 이불의 질을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럼요! 기성품 찾으세요, 아니면 새로 맞추실 건가요? 바로 옆이 솜틀집이라, 한나절 만에 솜을 타고, 봉제까지 마칠 수 있어요!”

상점의 주인은 부부인 것 같았다. 계연이 가격을 묻자, 여주인이 상점 안에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아니에요. 기성품으로 사 갈게요. 제가 만지고 있는 이게 기성품이죠?”

“맞아요, 손님께서 보고 계신 것들이 다 기성품이에요! 아, 전부 동전 150문씩밖에 안 해요. 이 겉감은 저희 마을 수아방직(秀兒紡織)에서 짜온 건데, 잘 때 덮으면 얼마나 편안한지 몰라요!”

‘150문? 누굴 바보로 아나! 방금 당신네 부부가 상점 안에서 120문만 받아도 이윤이 남는다고 이야기한 걸 똑똑히 들었는데, 30문이나 덤터기를 씌운단 말이야?’

계연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새로 맞추면 얼마죠?”

“새로 맞추시려면 값이 좀 나가요. 솜틀집 수공비까지 더하면, 대량 180문 정도예요.”

그럼 그렇지, 또 값을 비싸게 부른 게 틀림이 없었다.

“안주인. 제가 이불 세 벌에, 추가로 베개랑 담요를 두 개씩 더 살 테니까, 다 합해서 450문에 주시는 거 어떠세요?”

다소 마른 체격의 손님이 제시한 가격에 안주인은 당황하고야 말았다. 정확히 그들이 정해둔 최저 가격이었다.

“어떠세요? 파시겠다면 제가 수고비 20문을 더 챙겨 드릴 테니, 저희 집까지 좀 가져다주세요. 바로 성 남쪽이라 멀진 않아요.”

동종 업계 사람으로 착각한 것인지, 안주인은 주저하지 않고 계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계연은 선금을 일부 낸 뒤, 상점 주인에게 두 시진(*二時辰: 약 4시간) 후에 집까지 배달해 달라고 말했다.

계연이 떠나자, 안주인은 그가 남긴 쪽지를 가지고 상점 안으로 들어왔다.

“여보, 이상하지 않아요? 저 손님은 가격도 딱 맞히고, 이불도 나름 좋은 걸 골랐는데, 말하는 내내 눈을 꼭 감고 있더라니까요. 여기, 이 주소로 배달해 달래요.”

까막눈인 부인은 남편에게 쪽지를 전달했다.

“쓸데없는 참견하지 말아. 어쨌든 오늘 첫 주문이잖아.”

바깥주인은 부인이 건넨 쪽지를 확인했다. 종이에는 올곧고 힘찬 글씨가 적혀있었다. 문학적 소양이 낮은 그조차도 훌륭한 필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쓰읍. 천우방(天牛坊) 동쪽 ‘거안소각(居安小閣)’…….”

“어머나! 설마 그 집을 말하는 건 아니겠죠?”

부인이 다소 불안한 듯 물었다.

“거기 오두막이 그거 말고 또 어디 있어, 천우방이라는데! 그런 집을 사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바깥주인의 안색 또한 썩 좋지 않았다.

* * *

계연은 시장 곳곳을 구경하며 각종 생활용품을 구매했다. 이불과 담요 외에도 수건과 대야, 대야 받침대, 옷장 같은 간단한 가구들, 빗자루와 쓰레받기 등의 물품도 빠짐없이 구매했다. 심지어 그는 석기 판매점을 찾아가, 정원 대추나무 아래에 둘 석재 탁자 하나와 석재 의자 네 개도 주문했다.

물론, 사람 몇을 고용해 집 안을 청소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그 밖에도 계연은 어제의 다짐을 잊지 않고, 괜찮은 의류 상점을 찾아가 옷을 몇 벌 샀다. 거의 셋째 장주의 옷차림을 그대로 가져다가 붙인 셈이었다.

다만 계연은 더 멋있어 보이기 위해, 200문짜리 옥비녀로 머리를 작게 틀어 올렸다. 거기에 이마에는 앞머리를 내리고, 귀밑머리를 양옆으로 냈으며, 짧지 않은 뒷머리를 가지런히 풀어서 정돈했다. 이곳에선 그야말로 이도 저도 아닌 독특한 모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비록 낙풍처럼 준수하진 않았지만, 이 거지의 본모습도 그리 못 봐줄 정도는 아니었다. 인제 계연은 때깔만 좋은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초연한 분위기까지 물씬 풍겼다.

계연은 생각했다.

‘이게 바로 전통 복장의 좋은 예지!’

모든 준비가 끝나자, 계연은 이만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공사조’ 맞이를 준비하기로 했다. 희한하게도 고작 한 번밖에 가보지 않았는데, 집으로 향하는 길이 머릿속에 매우 또렷하게 그려졌다.

‘거안소각(居安小閣)’이라는 이름이 꽤 마음에 들었던 계연은 이름을 바꾸지 않기로 했다.

계연이 자물쇠를 열고 대문을 밀자, 커다란 대추나무가 살랑살랑 바람에 춤을 추며 그를 반겼다. 옆에서 시끄럽게 조잘거리며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중개인이 없어서인지, 정원에 들어선 계연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계 선생님, 계세요?”

입구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발소리를 들으니, 한 명이 아니었다.

계연은 미시(*未時: 오후 1시에서 3시) 이후 찾아오라고 할 생각이었지만, 현 곳곳의 규표(圭表)가 오시(*午時: 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를 가리키자, 일부 상점들이 물건을 실어오기 시작했다. 계연이 일찍 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들은 대문 앞에서 멍청히 집주인을 기다릴 뻔했다.

* * *

석재 탁자와 석재 의자는 달구지 두 대에 실려 왔다. 석공 넷이 탁자와 의자를 들고 대문을 들어섰고, 계연의 지시에 따라 대추나무 아래에 위치를 잡았다.

탁자와 의자, 그리고 수고비까지 합해서 계연은 순식간에 은자 한 냥을 소비했다. 이번에 산 물건들 중 가장 비싼 것이었다.

네 명의 석공은 물건을 내려놓고 잔금을 챙기자마자, 긴말 없이 곧바로 ‘거안소각’을 빠져나갔다. 계연이 예의 바르게 물이라도 한 잔씩 대접하려 했지만, 말을 꺼낼 틈도 없었다.

드디어 계연에게 쉴 공간이 생겼다. 정원 안 석재 의자에 앉은 그는 본채와 별채에서 분주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따금 다가가 어디에 무슨 물건을 배치하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옛날 시장 사람들은 직업 정신이 투철하네, 손발이 빠릿빠릿한 것 좀 봐!’

게다가 부인과 사내들이 열심히 쓸고 닦는 소리를 들어보니,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들은 청소 시간이 한나절은 걸린다고 했지만, 계연은 저 정도 속도라면 기껏해야 한 시진(*一時辰: 약 2시간) 안에 청소가 끝나리라고 생각했다.

재미있게도 이불 상점을 비롯한 몇몇 상점에선 물건을 대문 안까지 들여주지 않았다. 일부 상점의 점원들은 물건을 배달하고 잔금을 받으면, 아무런 말도 눈짓도 없이 부리나케 대문을 달려나갔다. 마치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나마 집을 청소해주는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굴었다. 그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성실하게 일했다. 누군가 한담을 나누기라도 하면, 관리자가 재빨리 달려가 저지했다. 모든 업무 환경이 이토록 엄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옛날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구나!’

계연은 속으로 감탄하며, 턱을 괸 채 넋을 놓았다.

청소는 대체로 묵은 먼지를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방마다 하얗게 쌓인 먼지를 닦고, 젖은 수건과 대걸레로 방 구석구석을 닦는 동안, 어떤 사람은 전문적으로 창호지를 싹 갈아붙였다. 그것이 너무 신기했던 계연은 일부러 다가가 손으로 창호지를 긁어 보았다.

창살에 붙은 종이가 얼마나 질긴지, 우산을 만들 때 쓰는 기름종이만큼이나 견고했다. 영화에서처럼 침을 살짝 묻히면 톡 하고 뚫리는 재질이 전혀 아니었다.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라도 끄떡없을 것 같았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방 안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며 나른하게 하품하던 계연은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잔뜩 인상을 찡그린 채 한참 동안 우물을 바라보았다. 청소하려면 물이 필요하기에, 우물을 덮고 있던 나무판자는 한참 전에 치워 버린 상태였다.

방금 계연은 우물 쪽에서 냉기를 느꼈다. 고개를 돌려 보니, 나무 그늘 때문인지 우물 전체가 시커멨다.

살며시 눈을 뜬 계연은 우물 아래의 그림자가 무언가 이상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어두운 그림자는 음산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지난 생에 보았던 공포 영화들이 계연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에 계연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괜히 혼자 놀라고 있어!’

팔을 비비던 계연은 멋대로 연상되는 장면을 떨쳐내기 위해 애썼다.

“계 선생님, 계 선생님?”

그 순간, 하늘가에서 울려 퍼지듯 귓전을 때리는 소리에 계연이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움찔하며 정신을 차린 계연은 그제야 자신이 석재 탁자에 엎드려 자고 있었던 것을 알아차렸다.

고개를 돌리자, 집을 청소하러 온 일꾼 여덟 명이 각자 손에 물통과 공구를 들고 정원에 서 있었다.

“계 선생님, 청소 마쳤는데, 한번 확인하시겠어요?”

“다 끝났나요? 벌써요?”

“아하하, 그럼요. 한번 둘러보세요.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좀 더 깨끗이 처리해 드릴게요.”

이렇게까지 말하니, 계연은 이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한번 보도록 하죠!”

계연은 차근차근 방을 둘러보며, 간혹 손으로 창턱과 틈새를 만져 보기도 하고, 고개를 내밀어 침상 아래와 방 모퉁이를 확인하기도 했다. 대체로 굉장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오늘 일꾼을 찾을 때, 계연이 사는 집이 천우방 귀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멀다며 일감을 거절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이들은 계연이 값을 두 배로 불러 데려온 사람들이었고, 역시 그만한 값어치를 했다.

계연이 정원으로 나오자, 일꾼들이 한쪽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좋네요. 다들 수고하셨어요.”

계연은 돈주머니에서 당오통보 한 꿰미를 꺼내 그들의 앞에서 40개를 센 뒤, 2개를 더 얹어주었다.

“이건 품삯이고, 남는 10문으로는 차라도 한 잔씩 사드세요.”

“감사합니다, 계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봐도 될까요?”

사람들의 감사 인사 사이로, 간부 격의 사내가 재빨리 돈을 챙기며 인사를 고했다.

“네네, 멀리 안 나갈게요!”

계연은 온화하고 우아한 자태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새로 꾸민 차림으로 제대로 허세를 부리지 못했으니, 연습이라도 해야 했다.

그나저나 일꾼들의 반응은 모두 비슷했다. 다들 다정하긴 했지만, 그것이 품삯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계연의 풍모를 보고 그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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