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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22화 (22/892)

22화. 거대한 전투

계연은 맞은편의 저승사자에게 말을 걸어야 할지 고민했다. 고정 관념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저승사자는 신령한 존재이지 않은가?

사실은 저승사자도 지금 계연을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 전에는 저승사자도 상황이 급급해 인간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다시 잘 생각해 보니 이 오두막의 새 주인이 아무래도 어딘가 이상했던 것이다.

인적 하나 없는 깊은 밤중에 홀로 본채 문 앞에 서서 정원을 내다보는 게 수상했다. 아직 쌀쌀한 초봄인데 더위를 피하려고 나왔을 리는 없지 않은가?

‘직감이 아주 예민한 사람인가?’

이 저승사자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본 적이 있었다. 잘못 짚었을 수도 있지만, 자정 무렵의 이 집에선 매우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정상인이라면 이곳에서 자면서 악몽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수차례 망설이던 계연은 결국 일단 끼어들지 않기로 했다. 성황신을 뵙고 싶다면, 낮에 신당을 찾아가 향을 피워도 되니 말이다.

이내 계연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한 발자국 나아가,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올려 보았다. 그는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목소리로 낮게 감탄을 내뱉었다.

“이렇게 맑은 밤하늘은…… 참 오랜만이네…….”

계연은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지난번 우규산에서는 하늘을 올려 볼 겨를이 없었는데, 지금 고개를 드니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황홀한 별들이 어두운 하늘 가득 수놓여 있었다.

구름도, 미세먼지도 없는 하늘에 찬란하게 이어진 은하수가 이토록 아름다웠다니!

옆에 저승사자가 있었지만, 손가락 하나로 귀신을 무찌른 대범함이 채 가시지 않아서인지, 계연은 방 옆에서 작은 의자를 끌어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늘과 정원을 번갈아 바라보던 계연은, 불면증에 걸린 평범한 사람처럼 이따금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계연의 정신은 정원에서 들려오는 기척에 집중되어 있었다. 계연은 조용히 앉아있는 동안에도 바둑알 환영을 끌어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체력을 과도하게 소모해서인지, 사지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머리까지 저릿하고 지끈거릴 정도였으나, 계연은 계속해서 그곳에 앉아있었다.

방금 기괴한 존재를 내쫓긴 했지만, 계연은 그것의 원기가 상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은 집 안에 저승사자까지 와 있으니, 고집을 부려 좀 당당하게 앉아있다고 해서 별 탈은 없을 터였다.

일각(*一刻: 약 15분) 정도가 지나자, 계연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언가를 느꼈다. 이상한 냄새가 멀리서부터 서서히 짙어지고 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옛날에 할아버지께서 자주 가시던 서점에서 맡았던 향나무의 냄새와도 비슷했다.

뒤이어 계연은 냄새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이 냄새는 신당에서 피우는 단향목의 향이었다.

심장이 절로 빠르게 뛰었다. 오면 안 될 존재가 도착한 것 같았다.

‘설마 영안현의 성황신이 직접 온 건가?’

단향목 향이 서서히 가까워지자, 계연은 자세를 고쳤다. 다른 귀신이나 요괴와는 달리, 특이한 발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운율을 지닌 듯한 발소리는 비단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휘-, 휘-.

정원에 단향목의 향기를 품은 스산한 바람이 몰아쳤다. 짙은 그림자가 하나둘씩 거안소각의 대문을 통과해, 정원으로 들어섰다. 대부분 저승사자의 행색이었지만, 그중 넷은 만만찮은 관리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온몸을 무장하고 예복을 입은 그들은 어딘가 남달랐다.

꿀꺽…….

계연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딱 삼켰다.

‘과연 얼마나 큰 싸움이 펼쳐질까?’

“무판대인(武判大人), 장선대인(奬善大人), 벌악대인(罰惡大人), 규찰대인(糾察大人) 오셨습니까!”

정원에 있던 저승사자가 공손히 네 그림자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그들은 영안현의 성황신이 아니었지만, 백성의 향불과 공양을 십분 누리는 자들이었다. 적어도 성황당에서 모시는 신 중 하나인 게 틀림없었다. 저승사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범한 존재들은, 몸에서 짙은 단향목 향기를 한가득 풍겼다.

계연은 성황신 아래 관리들의 직책이 어떻게 되는지는 전혀 몰랐지만, 저승사자의 호칭으로 미루어 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시커먼 그림자들은 정원에 멍하니 앉아있는 계연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정신은 오로지 우물에 쏠려 있었다.

“과연 사실이었네. 악한 기운이 다소 사라졌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성황신께서 오늘 밤 이 악귀가 계속해서 울부짖었다고 그러셨네.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악귀의 부상이 가볍지는 않은 것 같군!”

무판대인이라 불리던 자가 고개를 돌려 문 앞의 계연을 바라보았다. 이에 계연의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저자가 거안소각에 새로 온 인간인가? 이상한 점은 없던가?”

줄곧 정원을 지키던 저승사자가 곧바로 대답했다.

“무판대인, 저자는 악한 기운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다.”

“그래!”

기백부터 옷차림까지 고급스러운 성황당 관리들이 짧은 상의를 나누는 동안, 저승사자들이 정원 안팎을 샅샅이 수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승사자 몇이 돌아와 네 명의 관리에게 보고를 올렸다.

“대인, 천우방 부근은 이상 없습니다!”

성황당 소속의 관리들이 서로를 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설마 어떤 고인(高人)이 이곳을 지나다가, 우리 영안현을 도운 건가?”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게. 우선 저놈을 항복시킨 다음에, 자세히 조사하기로 하지!”

“시간이 지나면, 또 변고가 생길지도 몰라!”

“동감하는 바요!”

무판대인이 소매를 펄럭이자, 손에 새까만 판관붓이 쥐어졌다. 그가 매서운 눈초리로 정원 안팎을 살폈다.

“모든 사역은 쇄혼진(鎖魂陣)을 준비하고, 저승사자의 명에 따라 악귀를 포박하라!”

“예!”

“예!”

네 명의 성황당 관리들은 각자 정원의 네 귀퉁이로 걸어갔다. 하나는 제자리에 가만히 섰고, 하나는 철필을 꺼내었으며, 또 다른 하나는 손에 책을 쥐고, 또 다른 하나는 강편(鋼鞭)을 들고 섰다.

‘온다, 온다! 이제 시작인가! 근데 우물에 있는 악귀를 잡는데 이렇게까지 야단법석을 떨어야 하나? 심지어 아무도 내게 비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긴장감과 기대에 휩싸인 계연은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검은 깃발을 든 저승사자 몇이 연기가 되어 사라진 뒤에야, 계연은 먹색의 얇은 무언가가 정원에 내려앉은 것을 알아차렸다. 아마도 저것이 바로 쇄혼진인 듯했다. 다행히도 계연이 앉아있는 곳은 쇄혼진의 범위 밖이었다.

쇄혼진 안의 모든 준비가 끝나자, 무판은 우물을 향해 콧방귀를 뀌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조용하군. 혹여 다칠까 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인가? 오늘이 바로 네놈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저승사자, 시작해!”

무판의 명령이 떨어지자, 손에 긴 막대를 들고 우물을 에워쌌던 아홉 명의 저승사자가 동시에 각자의 허리춤을 만졌다. 그들의 허리에서 밝은 빛이 반짝이더니, 칠흑처럼 새까만 쇠사슬로 변했다.

“핫!”

아홉 명의 저승사자가 동시에 기합을 지르며, 전깃불처럼 반짝이는 쇠사슬을 우물 바닥으로 던졌다.

휘…… 휘…… 휘이……!

순식간에 음산한 바람이 사방에서 몰아치고, 커다란 대추나무가 정신없이 흔들렸다. 옆에서 지켜만 보는데도 계연은 주변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겉옷까지 걸치고 있었지만, 온몸에 닭살이 확 돋았다!

끼아아-. 으윽-.

“쳇, 소리만 내는군. 다들 저승사자를 도와 놈을 끌어올리지!”

곧이어 성황당 소속의 관리 넷이 서슴없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들이 법기를 들지 않은 왼손을 앞으로 뻗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음기가 저승사자들을 둘러쌌다.

순식간에 쇠사슬에 어두운 빛이 번뜩였다!

“일어나!”

끼아아아악-!

저승사자들의 쇠사슬에 묶여 강제로 우물 밖까지 끌려 나온 악귀는 정원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 무수한 머리카락이 아홉 명의 저승사자를 휘감자마자 저승사자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방으로 떨어져 나갔다. 놈을 포박하던 쇠사슬마저 힘없이 풀려 버렸다.

“베어라!”

무판의 명령이 떨어지자, 한참 전부터 주변에 잠복해 있던 저승사자들이 하나둘씩 칼을 뽑아, 놈의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베었다.

흐어어-.

악귀의 잔뜩 갈라진 처량한 비명이 더욱더 크게 울려 퍼졌다. 악귀의 더러운 머리카락 뭉텅이는, 쇠사슬의 힘을 못 이기고 우물로 다시 떨어지다가 공중에서 뒤틀리며 형체를 바꾸었다.

계연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꽉 깨문 치아가 바들바들 떨릴 정도였다.

‘방금 저게 뭐지?’

쇠사슬에 묶인 악귀는 끊임없이 발버둥질 쳤다. 벌겋게 충혈된 눈동자와 창백한 얼굴은 계속해서 바뀌었고, 악한 기운과 음기(陰氣)가 쉼 없이 악귀에게서 흘러나왔다.

시각적인 공포와 정신적인 공포가 동시에 밀려드니, 계연은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흔한 공포 영화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썩을 놈! 오늘 밤 혼비백산하게 만들어 주마!”

무판이 분노 서린 목소리로 소리치며 판관붓을 앞으로 들이밀자, 나머지 세 명의 관리들도 공격을 가했다.

쿵! 쿵! 쿵!

거안소각에서는 음기가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다.

* * *

계연은 강렬한 음기를 견딜 수가 없었다. 적어도 두 명의 저승사자가 시종일관 자신이 있는 곳을 가로막고 선 것을 보니, 아마 평범한 인간인 자신을 위해 일부 음기를 막아주는 것 같았다.

지금 정원에선 네 명의 성황당 관리들이 공격을 가하고 있었고, 악귀를 옭아맨 쇠사슬을 쥔 아홉 명을 제외한, 나머지 저승사자들은 자리를 지키며 무판대인의 분부를 기다렸다.

말이 전투지, 계연이 보기엔 그 무시무시한 악귀가 쇠사슬에 묶인 채 공중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뭐랄까? 두들겨 맞는 것 같았다.

판관붓과 강편 등이 악귀의 몸에 닿을 때마다, 귀가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와 함께 살기가 떨어져 나갔다.

전부터 계연은 자신의 시력에 온갖 의문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의문이 더욱더 깊어졌다. 모든 저승사자와 악귀의 형체가 또렷이 보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채찍질에 살기가 떨어져 나가는 과정까지 고스란히 눈에 담겼기 때문이다.

끝내 진정한 위기를 직감한 듯, 쇠사슬에 묶여있던 악귀의 몸부림이 서서히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 속에서 무수히 많은 창백한 팔들이 튀어나와 주변의 저승사자들을 닥치는 대로 붙잡았다.

성황당 관리들은 법기를 휘두르며, 정원을 가득 채운 괴이한 음기와 대항했다. 기괴한 팔들이 삽시간에 잘려나갔지만, 쇠사슬을 잡고 있던 세 사람을 포함한 저승사자 예닐곱 명은 여전히 악귀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한 저승사자가 칼로 악귀의 다리를 잘라 동료를 구하려 했지만, 쇠붙이의 마찰음 같은 소리만이 크게 울렸다.

댕, 댕!

“으어어-!”

“아악!”

“안 돼!”

“이런!”

일곱 명의 저승사자가 악귀의 창백한 손에서 그대로 으스러졌다. 검은 연기로 변한 그들은 악귀의 손에 그대로 빨려 들어갔다. 그 바람에 악귀를 묶은 쇠사슬은 풀리고 말았다. 악귀가 발버둥을 칠 때마다, 쇠사슬이 사방으로 펄럭이며 곳곳을 내리쳤다.

휘이익-! 퍼억!

주변의 수많은 저승사자가 휘날리는 쇠사슬에 맞아 정신을 잃거나, 저 멀리 날아갔다.

“대담하군!”

네 명의 관리들이 눈을 부릅뜨며 동시에 악귀에게로 다가갔다. 단향목 향기가 섞인 음산한 기운이 정원 위로 넓게 퍼지더니, 커다란 그물망을 형성했다.

“지금이야!”

커다란 그물망이 공중에서 떨어지며, 탈출 직전의 흉악한 악귀를 가차 없이 뒤덮었다.

휘잉…… 휘이…….

그 찰나 정원에 거친 바람이 매섭게 몰아쳤다. 음기를 품은 바람이 아닌, 진정한 강풍이었다. 대추나무 가지가 격렬하게 흔들리고, 나뭇잎이 진법의 통제를 벗어난 듯 아무렇게나 날아다녔다. 계연은 그저 손으로 얼굴을 가려, 매섭게 불어오는 흙먼지와 낙엽을 막을 뿐이었다.

지금 계연의 마음은 놀라움과 뒷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젠장, 방금 내가 상대한 게 저런 놈이었어? 놈이 느릿하게 기를 빨아먹어서 다행이지, 지금처럼 저런 식으로 공격했었다면 난 이미 죽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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