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3화 (23/892)

23화. 짜릿한 자극

손에 쥔 판관붓을 빙빙 돌리며 위로 올린 무판이 우렁차게 외쳤다.

“놈의 혼을 빼버려!”

나머지 세 명의 관리들 또한 각자의 법기를 사용해 공격하였고, 다른 저승사자들도 하나둘씩 악귀에게 달려들어, 커다란 그물망을 사이에 두고 공격을 퍼부었다. 특히 쇠사슬을 당길 때마다, 악귀는 고통스러운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크아아-!

날카로운 비명에 계연은 귀가 먹어버릴 것만 같았다.

바로 그때, 거대한 그물망에 갇힌 악귀의 몸집이 급격하게 부풀었다. 불길한 예감을 느낀 무판관은 판관붓을 거두고, 바늘처럼 날카로운 붓끝으로 그물망 안을 사정없이 찔렀다.

“찢어져!”

펑!

음기와 살기가 폭발하며 무판을 덮쳤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무판이 음기를 맞고 나가떨어졌고, 악귀를 속박하던 거대한 그물망에 구멍이 생겼다.

“안 돼!”

“막아!”

나머지 세 명의 관리들이 곧바로 힘을 합쳤지만, 무판의 빈자리를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악귀는 수월하게 그물망을 벗어나려 했다.

거안소각의 풍수지리 덕분에, 이 흉물이 밖으로 도망쳐 영안현에 해를 끼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놈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쇄혼진 안의 저승사자에겐 크나큰 재앙이 벌어질 터였다.

계연은 구체적으로 얼마나 위급한 상황인지를 알지 못했으나, 문외한인 그가 봐도 지금 상황은 퍽 급박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정원에 앉아있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겁에 질린 계연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대로 자리를 피하려던 찰나,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겨났다.

계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원에서 날뛰던 흉측한 악귀가 돌연 몸부림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마치 겁먹기라도 한 것처럼 그물망 안으로 들어가 몸을 한껏 움츠렸다.

“지금이야! 넋 놓지 마!”

거친 외침과 함께, 무판이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왔다.

악귀는 바보처럼 굴었지만, 성황당의 관리와 저승사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성황당 관리들 뒤편으로 향불의 환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그들의 몸집이 서서히 커지며 그들이 입고 있던 예복이 한껏 부풀었다.

거대한 그물망 틈새로 새어 나오던 회색빛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네 명의 관리들이 빠르게 손짓하자, 네 개의 쇠사슬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쇠사슬은 마치 네 마리의 영사(靈蛇)처럼 회색빛을 내뿜는 그물망을 단단히 졸라맸다.

아슬아슬했던 좀 전의 상황에 그들은 악귀가 원기가 상했어도, 상당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놈을 처치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가도 치렀겠다, 인제 본전을 뽑을 시간이었다!

“담담한 성황은 세속과 싸우지 않으니, 악귀를 물리치고 온 세상을 밝히리라!”

성황당 방면에서 날아온 향불의 연기처럼 보이는 힘이, 한 줄기씩 거안소각 정원에 떨어졌다. 네 명의 성황당 관리들은 드디어 기세가 등등해졌다.

“우리 영안현의 인구는 만여 명에 불과하나, 네놈 같은 악귀가 멋대로 헤집어놓을 곳이 아니다. 죽어라!”

판관붓, 강편, 규찰 부적, 피풍까지.

하늘이 내린 기회와 지리적 우세를 빌려 이들은 흉악한 악귀를 향해 전력으로 돌진했다.

우르르쾅……!

거안소각 정원에 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계연은 숨을 죽이고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만약 초시계로 시간을 쟀다면, 그는 자신의 폐활량에 감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처량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서서히 작아지더니, 악귀는 끝내 검은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그제야 계연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악귀가 사라졌어!’

다리에 힘이 풀린 그는 다시금 방문 앞 의자에 앉았다. 한데, 숨을 고르고 난 그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고개를 들어보니, 세상에나……. 정원을 뒤덮었던 진이 모두 사라지고, 성황당의 네 관리를 포함한 모든 저승사자가 계연을 바라보고 서 있는 게 아니겠는가.

계연은 목이 턱 막히는 바람에 침도 삼킬 수가 없었다.

‘설마 증거 인멸을 위해 사람을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

한참이 지난 후, 무판관과 나머지 세 관리와 저승사자들이 정중히 읍을 했다.

“저희의 눈이 무뎌서, 고인을 알아뵙지 못했소이다!”

“도와주셔서 감사하오!”

감사 인사가 쏟아져 나왔다.

이곳을 지나던 고인이 악귀를 건드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지만, 고인이 내내 정원에 앉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 줄이라곤 이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역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해선 안 되는 것이었다.

네 명의 관리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앞서 고인의 행동들을 떠올리면 방해받기 싫어하는 게 분명했기 때문에, 이들은 재차 정중하게 계연에게 인사를 올린 뒤, 저승사자를 데리고 거안소각을 벗어났다. 우선 돌아가 성황신에게 보고를 올리고, 결정을 요청할 계획이었다.

계연 또한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성황이라는 것에 대해 아는 게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머릿속이 새하얀 백지장처럼 변해 버렸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사실 이번 일로, 계연은 고인 노릇을 관두고 싶었다. 하지만 악귀는 자신의 손짓에 중상을 입은 게 확실했다. 저들이 감사 인사까지 한 것을 보니, 틀림없었다.

정원이 안정을 되찾자, 엷은 바람만이 주변을 맴돌았다. 계연은 기진맥진해져 의자에 늘어진 채로 놀라서 자극을 받은 심장을 쓸어내렸다.

그는 피곤한 눈으로 정원의 우물을 바라보았다. 음산하고 두려운 기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마침내 계연의 마음도 안정을 되찾았다.

‘계속 이러다가 심장병에 걸리면 어쩌지!’

평정을 되찾고 나니, 이런저런 잡념들이 계연의 머릿속을 채웠다.

‘우물 속 그것의 본모습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제아무리 아는 게 없다지만, 그것이 평범한 요괴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거리가 멀지도 않은데, 영안현 성황신이 찾아오지 않은 데에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터였다.

* * *

몸이 힘드니, 마음도 지쳤다. 계연은 이만 생각을 접고, 들어가 잠을 청하기로 했다.

저녁 내내 한숨도 자지 못했는데 몹시 놀라기까지 했으니, 계연은 잠자리에 눕자마자 세상모르고 깊이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니, 어느덧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하암…….”

하품하고 기지개를 켠 계연은, 침상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꼼꼼히 창에 발린 창호지 너머로 햇살이 스며들어왔다.

옷을 갈아입고 간단하게 몸을 푼 계연은 방문을 열어젖혔다. 뜨거운 태양이 온몸을 적시니, 계연은 뼛속까지 나른해지는 기분이었다.

기력도 회복했고, 어디 하나 뻐근한 곳도 없었다. 보아하니 어젯밤 일은 아무런 후유증도 남기지 않은 듯했다. 계연은 이따가 자신의 중요한 능력이 영향을 받진 않았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정원에 우뚝 선 대추나무가 가지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내리쬐는 햇빛에 바닥에는 얼룩덜룩한 나무 그늘이 졌고, 거안소각 어디에서도 음산한 기운을 찾을 수 없었다.

21세기 청년의 영혼을 지닌 사람으로서,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바로 세수와 양치질이었다!

계연이 운래객잔에 머물 땐, 매일 객잔에서 일하는 사동이 신선한 버들가지와 맑은 물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직접 물을 뜨고 준비해야 했다.

정원의 우물을 보니, 계연은 어젯밤 악귀가 기어 나오던 장면이 떠올랐다. 저 우물에서 물을 긷지 말자는 생각이 0.1초간 계연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냥 밖에서 물을 퍼오자.’

계연은 현대의 친구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결벽증이 있지 않고서야 저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원으로 나온 그는 우물을 나무판으로 덮은 뒤, 위에 돌을 올렸다.

주방 문 앞에는 커다란 독과 물통 두 대가 놓여 있었다.

‘그래, 물이나 길으러 가자.’

돼지고기를 안 먹어본 사람도 돼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았다. 비록 직접 물을 길어 나른 적은 없었지만, 말 한마디로 호랑이 요괴를 복종하게 만들고, 손짓 하나로 흉측한 악귀를 물리친 계연이 고작 이런 일에 굴할 리 있나?

* * *

10여 분 후, 천우방 쌍정포(雙井浦).

이곳에는 도르래가 설치된 커다란 우물 두 개가 있었고, 주변에는 청석과 배수구가 가득했다. 쌍정포는 천우방 백성들이 평소 물을 긷고 빨래하는 곳이었으며, 온갖 떠도는 소문이 낭자한 곳이기도 했다.

계연이 멀찍이 떨어져서 들어보니, 어젯밤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어떤 이는 거안소각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며, 또 누가 입주한 게 아니냐는 의문을 품었다.

‘모든 정보를 종합해 보면, 어젯밤 전투 후반부의 소리는 그 진법이라는 것에 묻혔나 보네. 그렇지 않으면 백성들이 저리 무덤덤할 리 없지. 근데 나도 진법 밖에 있었는데, 설마 내 청력이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날 정도로 뛰어난 건가!’

계연은 소매가 넓은 긴 장포를 입고 있었다. 고상한 분위기의 낯선 사람이 이곳에서 물을 긷자, 천우방 백성들의 시선이 절로 집중되었다. 특히 빨래하던 여인들은 더욱이 계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소곤거리는 말소리와 시선을 한몸에 받으니, 계연은 민망하긴커녕, 외려 기분이 좋아졌다. 지난 생에 그는 이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역시 뻔뻔한 사람이 더 즐기는 법이었다!

“아이고, 저 사람은 누구래……?”

“처음 보는데, 잘생겼네!”

“여기서 물을 긷는 걸 보니까, 천우방이나 인근에서 사는 사람이겠죠?”

“그거야 모르지!”

옷감을 비비는 소리와 나무판을 두드리는 소리, 시시콜콜한 집안일을 이야기하는 소리, 사람들이 걸어가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졌다.

계연은 옷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도르래를 이용해 물을 길었다. 도에 달린 물통이 너무 작아서, 두 번을 길러야 계연이 가져온 물통 하나를 채울 수 있었다. 그는 이 과정을 네 번 반복하여, 물통 두 개 가득 물을 담았다.

이 과정에서 계연은 천우방 백성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그들의 일상다반사를 엿들었다. 과거의 생활은 21세기보다 더욱더 짙은 정취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대 사람들은 현대인들보다 훨씬 낯을 가렸다.

계연이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면, 젊은 여인들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눈을 피하곤 했다.

가득 채운 물통을 멜대에 건 계연은 그럴싸한 자세로 멜대를 짊어지고 걸음을 옮겼다.

촤르르…….

뒤편의 물통에서 물이 쏟아지며, 계연의 옷이 흠뻑 젖었다. 재빨리 이곳을 벗어나려 걸음을 옮기자, 두 개의 물통이 더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뒷발에 물통이 차여서, 물이 사방으로 튀기도 했다.

한편, 처참하기 짝이 없는 시력은 그를 더욱더 곤란하게 만들었다. 계연은 마치 춤을 추듯,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어어어……?”

버텨, 버티라고!

꽈당…….

쿵!

물통 두 개가 완전히 엎어지고, 계연은 물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오호호호호…….”

“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이 광경을 목격한 여인들과 길을 지나던 행인들이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고상한 선생 맞나 보네!”

“하하하, 엄마, 저 사람 물도 풀 줄 몰라!”

“아이고 배야, 물을 그렇게 길면 당연히 넘어지죠. 아하하하…….”

‘젠장, 젠장, 젠장! 쪽팔려 죽겠네!’

이로써 물 긷는 것도 기술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두 번의 인생을 통해 철면피를 단련시킨 계연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르다니!

‘그나마 아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네!’

그러나 이렇게 난처한 상황을 벗어나는 건 매우 간단했다. 그 자신이 난처해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뭐, 어차피 눈도 보이지 않는데, 창피할 게 어디 있는가!

이렇게 계연 또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편안히 웃음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