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사건의 경위 (1)
어린 마음에 호기심을 참지 못한 윤청은 몰래 숨어 계연을 훔쳐보았다. 결과적으로 갈수록 소름끼치는 계연의 행동에 윤청은 냅다 도망을 쳤다.
윤청은 친구들과 놀기도 무서웠다. 보통 아이가 겁을 먹으면 어떻게 하던가? 정답은 집으로 달려가 부모님을 찾는 것이다.
윤청 또한 여느 아이들처럼 숨을 헐떡이며 집으로 달려갔다.
윤청도 천우방의 주민이었다. 마을 구석진 곳에 있는 거안소각과 거리가 있긴 했지만, 윤청의 집과 거안소각의 직선거리는 사실 1리(里) 남짓이었다.
윤청의 집은 담벼락이 낮은 조그만 가옥이었다. 집은 크게 앞방과 뒷방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소박한 병풍으로 널찍한 앞방을 분리하여 한쪽은 손님을 접대하는 사랑방으로, 한쪽은 윤씨 부자가 공부하는 공부방으로 쓰고 있었다. 그리고 주방은 본채 바깥에 딸려 있었다. 윤청의 집은 전체적인 수준이 평균 이상인 가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달음에 달려온 윤청이 쾅 소리가 나게 대문을 열어젖히고는 문간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 바람에 집에서 베를 짜던 윤청의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고야 말았다.
“어머니, 어머니! 저, 저기, 어떤 선생님이, 그러니까, 헉헉……그 선생님이 귀신이랑, 헉헉…….”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야지!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니?”
윤청의 어머니가 손수건으로 윤청의 이마에 난 땀을 닦아주었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횡설수설해서야 어찌 체통이 서겠느냐?!”
엄한 목소리에 윤청이 흠칫 놀랐다. 귀신을 마주친 데서 오는 두려움도 순식간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아버지, 집에 계셨네요…….”
고개를 돌린 윤청은 그제야 방 안 창가에서 책을 읽고 계시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청아, 두 주 어르신께서 네 아버지를 새로운 서당의 훈장님으로 추천하셨어. 인제 주씨 가문에서 과외를 하시지 않으셔도 된단다.”
“훈장님이요? 정말이에요, 아버지? 언제부터 가시는데요?”
이 소식에 윤청이 매우 흥분하며 물었다.
“허허, 물론 정말이지. 아직 며칠이 남았다만,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윤청의 아버지가 자랑스레 수염을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앞으로 너도 함께 서당에 가자꾸나. 매일 쓸데없이 나돌아다니지 말고, 성현의 글도 배워둬야지. 그래야 후에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하지 않겠어!”
“네…….”
사실 윤청은 책을 싫어했지만, 아버지께 반항할 순 없었다.
영안현에는 공부할 만한 공간이 있었지만, 대부분 나이 들고 실력이 어중간한 서생들이 차린 글방이었다. 이번에 새로 열리는 서당이야말로 격식을 차린 학습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서당은 이론적으로는 서원(書院)의 아래 단계의 교육기관이다. 서당이 나이대가 어린 사람들을 상대로 운영한다면, 서원의 문하생들은 나이대가 높았다. 조건이 되는 집안의 아이들은 대부분 어렸을 적 서당에서 글을 배우고, 나이가 차면 서원에 들어갔다.
윤재성(尹在成)은 주(州)에서 시행하는 과거 시험인 해시(解試)에서 2등을 거머쥔 학자였다. 영안현 전역의 학자 중에서 단연 최고의 인물이라 할 수 있었으니, 그는 자신이 서당의 훈장님으로 추천받은 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말이다.
“한데 왜 그리 허둥대던 게야?”
윤재성이 책을 내려놓고 윤청을 바라보았다.
“아아, 맞다. 아버지, 그 흉가에 누가 또 이사를 왔어요. 되게 점잖고 상냥하신 선생이신데, 제가 그분이 흉가 안에서 귀신과 이야기하시는 걸 봤어요…….”
“쉿!”
윤청의 어머니가 재빨리 윤청의 입을 막았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윤재성의 안색 또한 어두워졌다. 어리석은 향촌 사람들도 거안소각에 관해선 함구했다. 박학다식한 그가 생각해도 그 집은 심각하게 기괴한 집이었다.
곧이어 윤재성은 무언가 떠오른 듯, 제 아들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그걸 네가 어찌 알고 있는 게냐?”
“아…… 그게……. 선생께서 앞이 안 보이셔서, 아까 쌍정포에서 물을 긷다가 물통을 다 엎으셨거든요. 그래서 선생을 도와 물을 길어 드렸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거안소각에서 지내시더라고요…….”
윤청이 겁에 질린 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안에 들어간 건 아니지?”
어머니가 긴장하며 물었다. 비록 환한 대낮이라 별문제는 없겠지만, 그곳은 불길해도 너무 불길한 곳이었다. 더구나 윤청은 아직 어려 기가 약하니, 부모로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요, 안 들어갔어요. 아버지랑 어머니께서 얼마나 당부하셨는데, 제가 어찌 거길 들어가겠어요. 대문 앞에 물통을 내려두고 얼른 도망쳤어요. 한데 멀찍이서 보니까, 그 선생께서 어딘가를 보고 뭐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물통을 집 안에 넣어두고 나오시더니, 어디론가 걸으시면서 계속 이야기를 하셨어요. 마치 옆에 누가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무슨 ‘생전에’, ‘사후에’ 같은 말도 하시는데, 얼마나 무섭던지……. 더는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서 곧장 집으로 달려온 거예요!”
이야기를 마친 윤청은 겁에 질리고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향해 물었다.
“아버지, 설마 거안소각에 살던 귀신이 그 선생과 함께 밖으로 나온 건 아니겠죠?”
아들의 이야기에 윤재성의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그의 아내는 얼른 윤청의 입을 꽉 틀어막았다.
“됐어, 그만하거라. 앞으로 그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마. 그리고 이 일은……무슨 일이 있어도 입 밖에 내면 안 돼, 알았니?”
“네, 알겠어요!”
어머니가 윤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상공(相公), 청이 데리고 액운도 씻을 겸, 성황당에 다녀와요.”
아들과 관련된 일일뿐더러, 윤재성은 그리 고리타분한 사람이 아니었다. 일부 극단적인 학자들은 귀신 따위가 어디 있냐며 비꼬지만, 거안소각은 다른 흉가들과 차원이 달랐다.
“그러지! 점심 식사 후에, 청이랑 성황당에 가서 향을 올리고 오겠네!”
몇 해 전, 영안현 성황신의 기운이 억눌려 있다는 노도사의 말에 마을에서는 굿판이 벌어졌다. 그 후로 천우방 사람들은 매번 명절 때마다 부지런히 성황신을 찾아가 절을 올렸다.
* * *
계연은 순시관을 따라 영안현을 지나, 묘사방 성황당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들어서자, 계연과 순시관은 대화를 멈추었다.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이는 성황당 앞에서는 한 노인이 향안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순시관 유강이 헐레벌떡 달려가 인사를 올렸다.
“성황신, 계 선생님이 도착했습니다!”
주변이 참배객과 백성들로 가득했기 때문에, 성황신은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순시관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라는 인사를 끝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계연은 성황당의 은밀한 장소로 들어가야만 성황신을 알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성황신이 평범한 노인의 형상으로 성황당 밖에 우뚝 서 계실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는 다소 넋을 놓은 채 성황신을 살펴보았다. 계연의 희뿌연 눈이 정확히 어디를 보는 것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황신에게선 옅은 단향목 냄새가 풍겼다. 어젯밤 계연이 보았던 네 명의 관리들보다는 훨씬 엷은 향이었다.
한편, 성황신 또한 계연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선생의 두 눈동자는 이미 괴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희한하게도 이 선생은 다른 인간과 다를 바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 실명한 눈은 혼탁하긴커녕, 외려 담담히 아득한 곳을 비추고 있었다. 가히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게 틀림없다.
짧은 몇 초간 서로를 탐색한 끝에, 성황신이 먼저 적막을 깨었다.
“영안현 성황신 송세창(宋世昌)이네. 계 선생의 숭고한 덕행이 불결한 그것을 제거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 참으로 고맙네!”
웃어른 앞에선 겸손해야 했다. 하물며 영계의 거물인 성황신 앞에서 함부로 굴 수는 없었다. 계연이 황급히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대답했다.
“성황신, 과찬이십니다. 소인이 그저 보잘것없는 능력을 지녀 운 좋게 도움이 되었을 뿐입니다. 별거 아니었습니다!”
“하하하, 선생은 참 겸손하구먼. 아직 아침 식사를 들지 않은 것으로 아네. 묘외루(廟外樓)에 소박하게나마 상을 차려두었으니, 그곳에서 마저 이야기하지. 이쪽으로 오시게!”
계연은 재빨리 성황신을 따라 손을 뻗으며 최선을 다해 아첨했다.
“염치불구하고 받겠습니다, 먼저 가시지요!”
성황당 주변은 시끌벅적했다. 이따금 백성들이 들어와 성황신에게 절을 올렸고, 절을 받는 성황신은 바로 계연의 옆에 서 있었다. 어느 때보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침착해, 침착해, 다리에 힘 꽉 주고…….’
현재 계연은 마치 성황당 안의 신상과 나란히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 * *
반 묘(*半畝: 약 100평) 정도 크기의 묘외루는 3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네모 각진 천장에 유리기와가 뒤덮인 이곳은 영안현의 유명한 찻집이었다. 이곳에선 식사도 함께 팔았는데, 그 맛이 영안현의 으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계연은 성황신을 따라 묘외루에 들어섰다. 열 자리 중 아홉 자리가 차 있어서인지,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점원이 친절하게 다가와 물었다.
“두 분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2층과 3층에 별실이 남았는데, 2층은 다소 시끄럽고, 3층은 한산합니다. 어디로 하시겠습니까?”
점원은 눈썰미가 상당했다. 먹색 장포를 두르고, 은빛의 머리칼을 흐트러짐 없이 정리한 노인은 호화롭고 고상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 옆의 젊은이는 소박한 푸른 장포를 두르고, 머리 모양은 얼핏 보아도 어수선했지만, 전체적으로 굉장히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수고스럽겠지만, 3층으로 안내해주게나. 내 이름인 송씨 앞으로 다과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네.”
“아아, 드디어 오셨군요. 주인장께서 손님들이 오셨는지 세 번이나 확인하셨습니다. 어서 저를 따라 오시지요. 다과는 모두 준비되어 있습니다!”
점원은 두 사람을 위층으로 안내했다.
성황신과 계연 또한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1층에선 모두가 즐거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얼마나 재미있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치던지, 전체적으로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계연이 계단을 따라 2층으로 들어서자, 확연히 선명해진 소리가 계연의 귓가에 내리박혔다.
“그나저나, 그 아홉 대협, 하나 같이 젊고 대단해. 다들 겨우 스물 언저리에 무술 실력이 그렇게나 화려하고, 더구나 그 여협은 웬만한 사내보다 대단하다더군……. 그자들, 현 관아에서 방문을 붙이자마자 대강 준비하고 우규산에 올랐대. 심지어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이었는데 말이야…….”
“우와…….”
“실로 대담한 자들이네!”
“그러게 말이야!”
2층의 이야기 소리와 아래층의 감탄 소리가 뒤섞였다.
계연과 성황신은 점원을 따라 3층 계단에 올라섰다. 때마침, 이야기꾼이 호랑이 잡는 과정을 날조하기 시작했다.
“두(杜) 대협이 맹호를 향해 칼을 휘둘렀더니, 칼이 스치고 지나간 자국대로 시뻘건 피가 줄줄 흐르더래. 그때, 육 대협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맹호를 확 덮쳤고, 돌덩이처럼 단단한 장력으로 백호의 머리를 내리친 거지!”
“옳거니!”
“듣기만 해도 속이 후련하군!”
여기까지 듣던 계연은 참다못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보아하니, 저들의 구연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군?”
성황신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사실 성황당의 저승사자도 그 백호 가죽을 본 적이 있었다. 듣던 대로 위엄이 넘쳤지만, 가죽 어디에서도 칼자국을 찾을 순 없었다. 이야기꾼의 구연은 민간의 기예 중 하나였다. 연극과 비슷한 듯 다른 구연에 재미를 위한 과장이 첨가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하하, 그리 관심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이야기가 재미있어 그런 겁니다.”
어쩔 수 없었다. 그 아홉 대협은 사실상 육산군 앞에서 겁에 질려 오줌을 지릴 뻔하였으니, 저들의 이야기는 사실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