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6화 (26/892)

26화. 사건의 경위 (2)

성황신은 생각에 잠긴 듯, 질문을 잇지 않았다.

세 사람은 3층에 올라섰다. 눈에 띄게 조용한 이곳에는 차를 마시며 조용히 담소를 나누거나, 누각 밖의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자, 여기입니다. 콩떡, 좁쌀떡, 포도떡, 탕원(湯圓)죽, 열매 절임, 밀전(*蜜餞: 꿀에 절인 과일), 그리고 우전차(雨前茶)까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시고,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점원이 다과를 하나하나 짚으며 설명했다.

“네, 고마워요!”

“고맙네!”

계연과 성황신이 거의 동시에 인사를 건네었다. 이내 둘은 서로를 향해 미소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별실을 나서기 전, 점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이 손님들은 참으로 예의가 바르시구나!

성황신이 눈으로 점원을 배웅한 후 입을 열었다.

“계 선생, 어서 들게나. 여기 다과가 그런대로 괜찮네.”

아침 일찍부터 몸을 쓴 데다가, 먼 길을 걸어와서 그런지, 계연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사양 않고 좁쌀떡을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조금 밍밍하지만 바삭바삭한 식감을 지닌 떡은, 달짝지근하면서도 고소한 좁쌀 향을 온전히 머금고 있었다.

“맛있네요! 정말 맛있습니다! 성황신께서도 어서 드시지요!”

“계 선생의 마음에 드니 다행이군. 나는 작은 현의 성황신이긴 하나, 내 몸뚱어리는 육신이 아닌 진흙으로 만든 신상에 불과해. 인간의 음식으로 식욕을 달랠 수 없을뿐더러, 이것들을 모두 제삿밥으로 사용하기엔 낭비이지 않은가.”

‘육신이 아니라고? 그럼 눈앞의 이건 화신인가?’

대꾸할 말이 없었던 계연은 혼자 다과를 즐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성황신도 차는 마실 순 있는 듯했다.

탕원죽 한 그릇을 비우고 떡을 몇 개 집어 먹은 뒤에야 계연은 수저를 내려놓았다. 성황신 또한 찻잔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계 선생이 영안현의 우환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을 주었어…….”

잠시 회상하던 성황신이 말을 이어갔다.

“7년 전, 덕성부에 지렁이가 나타나서 땅속에서 사악한 기운을 품었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본디 해가 내리쬐거나 천둥이 치면 사악한 기운은 흩어지기 마련이니 말일세. 허나, 공교롭게도 짙은 악기가 땅속의 수맥을 따라 흘러가고 말았지…….”

성황신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수맥은 본디 음기를 띠지. 하필이면 지렁이가 영안현 서쪽의 공동묘지를 뚫고 나온 악기(惡氣)의 영향을 받고 말았네. 그렇게 그것은 흉물이 되어 버렸지. 성황신인 나는 이 일을 알자마자 직접 부하를 이끌어 놈을 처단하기로 하였어. 한데, 그 흉물이 비정상적으로 괴이하더군. 죽은 자의 영혼을 삼킨 탓인지, 아니면 다른 까닭 때문인지, 이미 영묘한 지혜를 지니고 있었어…….”

성황신의 이야기에 계연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악귀는 처음부터 포악했다. 지혜로워진 악귀는 우둔한 행색으로 성황신을 속였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속보사(*速報司: 선악의 인과응보를 담당한다는 기관)와 음양사(*陰陽司: 성황신의 최고 보좌관 격인 기관)의 기관장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지살(*地煞: 풍수지리에서, 터가 좋지 못한 데서 생기는 살)을 일으켜 성황신의 법체에 중상을 입혔다.

상황은 성황신에 불리하게 흘러갔지만,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악귀의 공격을 받은 순간, 성황신은 과감히 향불과 신상의 근본을 소모하며 매서운 반격에 나섰고, 악귀의 영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그 전투로 악귀는 도망쳤지만, 성황신은 면류관(冕旒冠)을 사용해 흩어진 사악한 기운을 한데 모았고, 이로써 악귀가 숨은 곳을 찾아내었다. 그곳이 바로 거안소각의 우물이었다. 그것과 함부로 교전할 수 없었기에, 성황신은 음기로 악한 기운을 가두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임시로 그것을 우물 안 깊은 곳에 가둔 뒤, 부상을 회복하면 다시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을 듣던 계연은 식은땀이 삐질 흘렀다. 성황신이 콕 집어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계연은 당시 그 악귀가 도망쳤다면, 영안현에 크나큰 재앙이 닥쳤으리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재앙이 재앙의 꼬리를 물고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지도 몰랐다.

사실 앞서 거안소각에 살았던 두 인물은 사실 팔자에 맞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것이지, 악귀 때문에 죽은 게 아니었다.

그러나 세 번째 거주자인 서생의 경우는 달랐다.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악귀가, 짧은 시간 동안 우물 밖으로 나와서는 무고한 서생을 죽인 것이다.

성황신 같은 터주신에게도 제약이 있었다. 이들이 백성을 보우하는 신이라고는 하나, 현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그날 이후, 성황신은 백성들의 꿈을 이용해 거안소각이 위험하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 덕분에 거안소각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계연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어렵사리 기회가 찾아왔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던 성황신은 유능한 부하들을 내세우고, 자신은 성황당을 지켰다. 성황신은 이따금 성황당에 모인 향불을 움직이며 부하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종국에는 악귀를 성공적으로 제거하였고, 오래도록 영안현을 괴롭히던 우환을 해결하게 된 것이다.

사건의 경위를 알게 된 계연은 뒤늦게 겁먹은 나머지, 실없는 농담을 내뱉었다.

“제가 거안소각의 마지막 희생자겠군요.”

성황신 또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계 선생은 참 재미있는 이로구먼. 선생을 마주친 그 흉물이야말로 재수가 없었지!”

말을 마친 성황신은 콩떡을 오물오물 씹는 계연을 보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질문을 건네었다.

“한데, 계 선생은 어디 출신이고, 무슨 일로 우리 영안현에 찾아왔는가?”

‘드디어 고문과도 같은 질문 시간이로구나!’

계연은 이러한 질문을 예상하였지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지난 생에 관한 일을 이야기할 순 없는 노릇이었고, 이번 생에 거지가 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계연 본인조차 알지 못했다. 영안현을 찾은 까닭으로 말하자면, 현재로서 계연이 머물 만한 곳이 이곳 말고 더 있겠는가.

계연은 난처한 듯 웃으며 어디에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게다가 이것은 계연의 가장 큰 비밀과 밀접하게 관련된 일이었으니, 최대한 말을 삼가는 편이 좋았다.

자신의 질문에 계연이 웃으며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성황신은 그가 이야기를 꺼린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괜찮네. 계 선생이 이야기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돼. 대범하고, 겸손하고, 거기에 우리 영안현을 구해준 은인이기까지 하니,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계연은 성황신이 단순히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자신을 부르진 않았으리라고 생각했다. 분명 자신의 내막을 알아보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참, 혹시 우리 영안현에 상주할 계획인가?”

이 질문에는 얼마든지 대답할 수 있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당분간은 영안현에 머물 생각입니다.”

잠시 고민하던 계연은 솔직히 말하기로 했다. 비록 성황신은 초월적 존재인지라 자신의 생각을 하나부터 열까지 꿰뚫어 보겠지만,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사실, 소인은 덕행이 있는 고인이 아닙니다. 그저 우연한 기회에 운 좋게 흉물에게 상해를 입혔을 뿐입니다. 성황신께 배우고 싶은 점도 많고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봐도 좋네.”

계연이 앞서 말한 것은 완전히 성황신의 뇌리에서 지워지고야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극히 평범한 외모라고 해서 고인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우연히 악귀를 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단순한 악귀 따위가 아니라, 지살(地煞)을 일으켰던 악귀지 않던가.

“성황신께선 현세의 수련에 대해 아시는 게 있으십니까? 인간의 수행법 말입니다.”

계연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래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신기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인 법이다. 이를테면 천지를 자유로이 노닐며 불로장생의 비법을 얻는 것 같은 이야기 말이다.

성황신이 인상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그저 일개 마을의 성황신일 뿐, 향불과 신상을 얻은 것 또한 중생의 원력 덕분이었지. 평범한 수련 따위가 필요치 않으니, 진귀한 수행법을 알 턱이 없네. 그러나 이곳 저승에 인간의 무예에 대해 아는 자가 있긴 하다네.”

그 말에 계연은 실망을 금치 못했다. 특별한 수행법이 없다니.

“오묘한 수행법은 없지만, 기를 모으는 흔한 방법은 알고 있네. 한데 다소 기초적인 수련법이라, 계 선생에겐 큰 쓸모가 없을 것 같은데?”

‘쓸모가 없다니,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야 낫겠지!’

“이만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인, 그런 기초적인 수련법도 알지 못합니다. 성황신께 실례가 안 된다면, 관련된 서적을 빌려 배우고 싶습니다. 아, 그리고 그 무예에 관한 책도 보고 싶습니다!”

‘내가 그렇게 큰일을 도와줬는데, 설마 이런 사소한 부탁을 거절하겠어?’

계연은 앞도 보이지 않는 눈으로 성황신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성황신마저 기묘하게도 알 수 없는 시선을 느낄 정도였다.

“어허, 선생에게 빌려주는 거야 어려울 것 없지. 내 사람을 시켜 서적을 거안소각까지 빠짐없이 보내주겠네.”

이에 계연이 기쁨을 금치 못했다.

“네, 네. 감사합니다, 성황신님!”

이 성황신은 대화가 잘 통했다. 그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계연은 다른 것들도 묻고 싶었다. 평범한 속세에선 알 수 없는 일들을 말이다.

“성황신께서는 혹시 선문(仙門)이나 종파 같은 곳에서…… 으음, 제자를 얻을 때 어떠한 자질을 보는지 아십니까?”

계연은 질문하면서도 마음이 켕겼다.

성황신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선생이라는 작자가 왜 이토록 상식적인 질문을 하는 걸까? 진정 이자의 말대로 고인이 아닌 건가?’

하지만 상대의 근본이 어떻든, 상대가 영안현을 구한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리 괴기하고 상식적인 질문이면 어떤가!

마음을 가볍게 먹은 성황신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우리 영안현은 땅이 좁고 인구가 적은 데다가 외지기까지 해서, 외부의 소식에 어두운 편일세. 영안현 덕성부에는 선문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 계주(稽州) 전역의 으뜸이라 할 수 있는 것도 옥회산(玉懷山)뿐이지. 들리는 이야기로는, 옥회산에 산의 신위(神位)를 정할 수 있는 산악 칙봉 부적(山岳勅封符籍)이 있다던데, 그것이 사실인지는 모르네. 물론 정통이 아닌 선문도 있기는 하나,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제자를 들이는지는 내 아는바가 없어. 내 견문이 적어, 다른 지역이 어떤지 알려줄 수가 없군. 이런 말이 돌기는 하던데, 구름이 깊어 선하도(仙霞島)를 알 수 없고, 굳센 정신은 장검산(長劍山)에 깃드니…….”

계연은 아직도 옥회산 이야기에 넋이 나가 있었다.

‘칙봉 부적? 산신을 봉한다고?’

“그럼 천정(*天廷: 천제(天帝)가 사는 궁궐)은요?”

성황신이 잠시 뜸을 들이는 사이, 계연이 다짜고짜 물었다.

“천정? 계 선생님이 말하는 곳은 대체 어디인가?”

성황신이 인상을 찌푸렸다. 감히 하늘의 뜰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다니, 비범한 곳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계연이 흠칫 놀랐다.

‘여기에 천정이 없나?’

산신을 칙봉한다는 말에 천정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 듯했다.

‘그럼 이곳에서 소위 말하는 선인은 진정한 선인이 아니라, 속세의 인간이 보기에 선인이라는 건가?’

우선 성황신의 물음에 대충이나마 얼버무려야 했다.

“아, 아닙니다. 오래전에 그곳이 산수신령을 칙봉하는 대단한 선문이라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성황신께서는 오해하지 마시지요…….”

“그렇구먼, 이름만 들어도 비범해 보이는군!”

‘그럼, 비범하죠. 그곳에 대해 들으면 놀라 자빠지실 겁니다!’

천정에 관한 이야기를 뒤로 한 채, 계연은 요괴와 귀신에 관련된 이야기부터 수많은 수행에 대해 질문을 건네었다. 이리저리 에둘러 물은 결과, 각지 성황당을 제외하면 통일된 지부 같은 건 없으며, 소속 관계도 모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쨌든 이 정보들 덕분에 계연은 수행에 대해 알 수 있었고, 동시에 여러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성황신도 모르는 게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계연은 한참 동안 인상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이 복잡하니, 일단 모든 생각을 접어두기로 했다. 지금 이런 고민을 하는 건, 벽돌 나르는 일꾼이 조정 걱정을 하는 셈이었다. 계연은 우선 다른 일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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